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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love Korea” 한국 찾은 두 사람

    ■ 야스쿠니 다룬 다큐 ‘안녕, 사요나라’ 공동연출 가토 구미코 감독 “고이즈미 총리, 일본 대표로서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한국 감독 김태일(42)씨와 함께 연출한 작품 ‘안녕, 사요나라’가 개막작으로 상영된 제5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 참가한 일본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가토 구미코(30).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일본법원의 위헌판결에도 불구하고 최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를 향해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전쟁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함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겠지요. 진정 일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번 작품도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일본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웃나라가 화내는 이유조차 몰라요.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을 위한 도구였다는 것, 또 거기에 숨겨진 진실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으면 합니다.” ‘안녕,’는 일제에 징용됐다가 야스쿠니에 합사된 부친의 유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벌이는 한국여성 이희자(63)씨와, 그를 돕는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43)의 이야기. 두 사람의 발길을 쫓으며 매듭되지 않은 양국의 과거, 그리고 같이 풀어나가야 할 미래를 조명한다. 이미 오사카, 도쿄에서 일본 관객을 상대로 시사회를 가져 “감동했다.”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야스쿠니 문제를 새롭게 돌이켜볼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원폭 피해자였다. 역사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어찌보면 운명적인 일. 대학에서 개발경제를 공부했으나, 우연히 필리핀에 갔다가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 전환점을 맞았다.“국가간에는 이해가 걸린 문제가 많지만, 사람 사이에는 국경이 없어요. 서로 마주한다면 갈등은 사라질 겁니다. 다큐를 통해 여러 나라에 걸쳐진 ‘벽’을 허물고 싶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그는 조만간 재일 한국인의 애환을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 2·3세인 친구들이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고뇌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기 때문이다. 홍지민 윤설영기자 icarus@seoul.co.kr ■ 시카고大 스마트미술관 리처드 본 수석 큐레이터 “한국 전통미술에 푹 빠졌어요.” 미국 시카고대 스마트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리처드 본(56)의 명함 뒷면에는 용이 새겨진 조선시대 분원백자 사진이 실려있다. 한국 전통미술에 심취한 나머지 명함에도 한국 도자기 모양을 새긴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권인혁)이 한국문화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해외 박물관·미술관의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를 대상으로 매년 개최, 올해로 7회째를 맞은 ‘해외 큐레이터 워크숍’에 참가한 그를 만났다. 본 큐레이터는 1972년 시카고에서 열린 한국미술 전시회 관람을 계기로 한국미술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의 고미술, 회화, 도자기, 불교미술, 공예, 고분유물 등 매년 달라지는 워크숍 주제에 흥미를 느껴 2000년부터 이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해온 열성파다.“평소 시카고대학내 동양문화 프로그램이 많아 관심을 갖고 있던 중 한국미술품을 접하면서 빠져들게 됐습니다.”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물관내 상당수의 중국·일본 미술품과 한국 미술품 3점으로 구성된 ‘동아시아 코너’를 확대,1980년대 초 드디어 ‘한국컬렉션’ 전시를 시작했다.1910년대부터 대학이 소장해온 17세기 분청 등 고려·조선시대 도자기와 회화 등 20여점으로 조촐하게 출발했지만 구입 및 기증을 통해 소장품이 60점 정도로 늘어났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컬렉션은 삼국시대·통일신라 유물과 서예·불교회화, 현대작가의 작품까지 갖춰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게 됐다.“국제교류재단 워크숍에서 배운 지식으로 전시물의 수준을 높이고 시대별 대표유물을 갖추게 됐지요. 후배 큐레이터와 관람객에게 한국미술에 대한 지식을 나눠줄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요즘은 조선말기∼근대기 한국미술을 공부하고 있으며, 은퇴한 뒤엔 한국관을 별도로 하나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8일 개관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해서는 “신설된 동아시아관이 인상적”이라면서 “주변국가들의 문화가 한자리에 모인 만큼 중앙박물관이 아시아 문화의 중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초고층아파트 수 한국 ‘세계 4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네번째로 초고층 아파트를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대한건축학회 60주년 기념으로 열린 ‘초고층 아파트의 해외건설시장 개발방안 세미나’에서 강부성 서울산업대 교수는 ‘세계 주요 도시의 초고층 주거건축 건설동향’논문을 통해 “세계에서 완공 또는 건설 중이거나 건축승인을 받은 40층 이상 초고층 주거용 건물은 모두 2056개”라고 밝혔다. 나라별로는 중국(985개), 미국(392개), 아랍에미리트(134개), 한국(76개), 일본(59개), 호주(42개)순으로 초고층 아파트를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국가가 상위 10위 가운데 5개 나라를 차지해 아시아 국가들이 초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음을 보여줬다. 도시별로는 홍콩이 920개로 가장 많고, 두바이 112개, 뉴욕 107개, 시카고 90개, 마이애미 61개, 서울 44개 순이었다.홍콩은 도시 국가이고, 뉴욕과 시카고는 초고층 건축물의 발상지였던 것에 비춰볼 때 두바이와 서울이 초고층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는 도시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고 강교수는 설명했다. 최근 들어 초고층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는 도시로는 두바이(101개), 마이애미(52개), 부산(30개), 싱가포르(28개)등으로 우리나라가 초고층 아파트 건설의 중심에 서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책꽂이]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안동일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1979년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등 주요 인물 변호를 맏았던 지은이가 재판기록과 당사자들 및 주변 인물들을 직접 만나 확인해 서술한 기록물.1만 5000원.●불황에서 나라를 건진 경제학자들의 투쟁(와키타베 마사즈미 지음, 홍성민 옮김,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 스미스, 리카도, 흄, 빅셀 등 역사에서 경제학자들이 불황이나 경제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밝힘으로써 오늘의 경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향을 제시한다.1만원.●건축, 우리의 자화상(임석재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우리 사회와 문화의 총체적 거울이자 자화상으로서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의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우리 건축이 생활환경 만들기가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라고 비판한다.1만 2000원.●허기진 두뇌를 위한 지식의 통조림(멘탈플로스 편집부 엮음, 강미경 옮김, 세종서적 펴냄) 섹시한 곤충, 점균류와 상사의 공통점, 임자를 못만난 노벨상 등 현대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흥미로운 온갖 정보와 지식을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냈다.1만 4500원.●탄소주권 에너지전쟁(톰 아타나시오 등 지음, 김현구 옮김, 모색 펴냄) 온난화의 진보적 해법으로 ‘1인당 할당제’와 공유재로서의 접근법을 제안한다. 또 원자력에너지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시민 주체의 녹색 에너지 개발을 제안한다.1만 2800원.●최후의 만찬은 누가 그렸을까?(로잘린드 마일스 지음, 신성림 옮김, 동녘 펴냄) 최초의 여성이 등장한 때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여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여성의 시각으로 쓴 여성의 역사. 인류역사의 중심에 여성도 있었다는 점을 집요하게 강조한다.1만 8000원.●스푸크(메리 로치 지음, 권 루시안 옮김, 파라북스 펴냄) 영혼 존재의 증거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영혼을 측정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연구, 전 세계의 사후문화 취재 등을 바탕으로 영혼의 존재를 고찰한 책.1만 4500원.●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윤신향 지음, 한길사 펴냄) 윤이상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윤이상과 음악을 재조명한 책. 저자의 독일 쾰른대학 박사 논문 ‘두 개의 세계 사이, 윤이상의 음악적 사고에 대한 고찰’을 텍스트로 했다.2만원.●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히다카 도시다카 지음, 배우철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동물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본 책.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자연관과는 완전히 다른 동물의 세계로 안내한다.1만 1000원.●자연이 우리에게 준 1001가지 선물(잭 캔필드 등 엮음, 신혜경 옮김, 도솔 펴냄) 대자연이 주는 감동과 함께 자연과 사람, 사람과 동물, 자연 속에서 만난 사람과 가족, 친구, 추억 등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자연 이야기를 담았다.9500원.
  • [지금 그곳은] 국립중앙박물관 주변 이촌동

    [지금 그곳은] 국립중앙박물관 주변 이촌동

    “우리 동네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 들어서니 당연히 좋죠. 뿌듯하기도 하고요. 애들 교육에 이만한 데가 어디 있겠어요.”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을 사흘 앞둔 25일 늦은 오후. 주부 박경선(36·동부이촌동)씨는 각각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들 딸을 데리고 박물관을 미리 찾았다. 개관 전 한적할 때 미리 이곳의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카메라에 담아두기 위해서다. 박씨는 “걸어서 10분 거리니까 운동하기에도 좋다.”면서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용산동 6가에 들어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인근 주민들의 삶도 풍요롭게 하고 있다.‘주한 미 8군’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서울의 최고 주거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문화환경 갖춰 국립중앙박물관 앞에는 ‘세계 6대 규모’와 ‘단일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보물 527호 김홍도 풍속도첩 등 소장 유물의 질도 규모에 못지 않다. 신장·위구르 지역 등의 중앙아시아실까지 마련하는 등 다양성의 미덕까지 갖췄다. 이곳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당연히 국민 전체다. 그러나 인근 이촌동, 동부이촌동 주민들이 어느 누구보다 큰 혜택을 누리게 됐다. 먼저 미 8군 기지 대신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교육·문화 환경이 국내 최고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설명이다. 원래 박물관 자리에는 헬리콥터 기지가 있었다. 일단 기지가 없어지면서 소음도 많이 줄었다. 용산구 관계자는 “박물관 자리 맞은편의 용강중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헬기 소음 때문에 ‘애들이 공부를 못 한다.’는 민원이 쇄도하곤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가격도 ‘강남급’ 이 곳의 발전은 이제 시작이다. 장기적으로 미 8군이 평택으로 떠나고, 그 자리에 민족공원 등이 들어설 만큼 이곳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원래 이곳은 ‘준강남’급이었다. 그러나 지금 인근 아파트 가격은 강남 부럽지 않다. 삼각지 용산자이와 용산시티파크는 평당 200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가람, 대우 등 인근 아파트들도 평당 2000만원 가까이 된다. 국립중앙박물관 ‘프리미엄’이 상당히 붙은 수치다. 다만 요즘 부동산 거래는 거의 끊겼다. 정부의 8·31 부동산 정책의 여파 때문이다. 내놓는 주인도, 집을 보는 손님도 거의 없다. 가격도 약보합세다. 다만 박물관 개장 이후에는 어느 정도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촌동 H부동산 관계자는 “아파트 소유자들이 장래성을 보고 지켜보고 있는 추세”라면서 “연말이나 내년 초쯤에는 가격도 오르고 시장도 어느 정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대 식당가도 환영 일색이다. 인근 동부이촌동은 일식당 거리로 유명하다. 박물관 특수까지 가세하면 서울의 ‘대표 맛집 거리’로 부상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통 일식 우동집으로 유명한 ‘보천’을 운영하는 용원중씨는 “불경기라 손님이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박물관 개관으로 장사할 맛이 날 것 같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첫 국새·제헌헌법 원본 사라져

    첫 국새·제헌헌법 원본 사라져

    1948년 7월17일 제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성문헌법인 제헌헌법 원본이 분실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근간이 된 제헌헌법 원본의 행방조차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27일 감사원이 발표한 ‘공공기록물 보존 및 관리실태’ 감사결과 드러났다. 제헌헌법의 원본뿐만 아니라 정부수립 이후의 첫 국새도 분실됐다. 그밖에 외교사료, 군비밀기록, 특수기록, 행정기록 등 주요 국가기록이 폐기되거나 분실돼 남아 있는 게 없을 정도다. ●기록물 분실 경위도 몰라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 이창환 국장은 “헌법은 우리나라 국가이념과 통치구조 등을 규정하고 있는 최고 규범이기 때문에 제헌헌법과 헌법개정기록물을 역사적·문화재적 차원에서 보존해야 하는데 제헌헌법 원본조차 보존돼 있지 않다.”면서 “제헌국회가 제정한 제헌헌법은 소재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제헌헌법은 1963년에 만든 필사본이다. 원본은 한국전쟁 중 소실된 것으로 추측할 뿐 언제 어떻게 소실됐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또한 개정헌법 필사본을 원본으로 잘못 알고 보관 중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법제처는 지금까지 개정된 9회의 개정헌법 가운데 1∼5차 개정헌법 필사본을 조선왕조실록 등이 보존돼 있는 귀중 기록물 보존서고에 보관하고, 정작 원본은 일반 사무실 캐비닛에 보관해 왔다. 정부수립 이후의 첫 국새도 행방을 알 수 없다. 국새는 국가의 상징인 나라도장인 만큼 문화재적 가치에 따라 영구보존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 수립 이후 1962년까지 사용된 첫 국새와 1차 국새의 견본·주형·모형 등의 관련 기록 전체가 분실됐다. 더욱이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분실경위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이전 군비밀문서 전무 외교·국방·행정 등의 국가 중요문서도 상당수가 분실되거나 폐기됐다. 외교통상부가 정부수립 이후 지난해까지 체결한 조약 1597건의 원본 등 관련 기록에 대한 조사 결과,46건의 조약원본이 없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재정경제부에서 체결한 505건의 공공차관 도입협약 문서 역시 무려 30%에 달하는 147건의 원본이 없어진 지 오래고, 그 외 53건은 관련 문서철이 분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련 비밀기록물도 1980년대 이전 문서는 대부분 파기해 찾아볼 수가 없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소관 비밀기록물 가운데 준영구 이상 보존 비문 1229건을 확인한 결과,1970년 이전 문서는 단 3건,1980년 이전 문서 역시 14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국가기록원에 통보한 대통령 결재문서 178건 중에서도 남아 있는 문서가 없다.41건은 유실됐고, 나머지 문서는 소재파악이 안 된다. 또 중앙행정기관의 주요업무계획 문서도 대부분 파기됐으며, 영국보존 대상인 중대 사건 수사기록물의 관리도 엉망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기록사료 원본도 파기 뿐만 아니라 우표·화폐 등 특수기록물은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실증사료인데도 행자부에서 기록물관리법에 이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아 관리근거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정부수립 후 발행된 61종의 화폐 중 22종의 화폐발행 기록이 없고,33종의 관련문서 원본은 폐기처분됐다. 한국은행은 또 영구보존해야 할 문서 가운데 3만건이 넘는 문서를 마이크로필름에 수록한 뒤 원본을 폐기처분해 버렸고, 스캐닝만 한 영구보존문서 205건도 착오로 폐기조치했다. 또 사료로 지정된 1202건 중 10건은 원본을 폐기하고 사본을 보관하는 등 기록물 가치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표 역시 1948년 발행된 초대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편,1951년 발행된 6·25참전 기념우표 등이 보관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가 기록물 관리실태는 관리부실 차원을 넘어 국가 근간을 훼손할 만큼 심각한 지경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의사인 나도 한센인 편견 마찬가지”

    “의사인 나도 한센인 편견 마찬가지”

    박경철(42)씨는 경북 안동 신세계연합의원의 의사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시골의사 블로그’에 틈틈이 올린 글을 묶어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한때는 주식거래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범상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인 박씨에게 한센인과의 만남은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박씨의 병원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센인들의 정착촌 89곳 가운데 한 곳인 경북 안동 성자원 근처이다. 박씨가 한센인들을 대면한 것은 성자원에서 내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느냐는 전화가 오면서부터이다. 그는 “아픈 환자는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며 망설임 없이 내원을 허락했다. 이후 그가 관찰한 한센인들의 사람기피증은 유난하다 싶을 정도였다. 한센인들을 데리고 오는 봉사자들은 환자가 편리한 시간이 아니라 병원이 편리한 시간, 즉 다른 환자가 적은 시간을 택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해 일반인 환자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병원의 수입이 예년에 비해 감소하면서 불거졌다. 한센인 환자가 얼굴쪽으로 기침을 했을 때 전염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코올솜으로 얼굴을 닦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센인들의 치료는 해야겠고 병원에 오는 것은 싫어서 그는 성자원측에 왕진을 가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한센인들은 “이미 성자원에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있다.”면서 “검사나 사진촬영을 위해 병원을 찾았던 것”이라며 제안을 거부했다. 박씨는 “빛을 보면 안되는 사람들처럼 숨어다닌 한센인들의 여린 가슴은 왕진을 가겠다는 뜻의 이면을 바로 알아챘다.”고 고백했다. 한센인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곡절을 겪은 지난 8월을 ‘위선’이라는 제목의 글로 기록한 박씨는 “얼마전부터 한센인들이 다시 하나둘씩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그는 “아파도 참는 게 버릇이 된 한센인들이 병원에 올 때는 이미 병세가 악화된 경우가 많다.”면서 “국·공립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이들의 건강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안동 신세계연합의원 박경철(42)씨의 ‘시골의사 블로그’ 제목=위선… 성자원은 안동에 있는 소위 나환자촌의 이름이다. 이곳에는 과거 한센병을 앓았던 분들이 예전부터 촌락을 이루고 사시는 곳인데,서안동에서 안동시 초입에 이르는 작은 야산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안동도 아무리 해마다 인구가 줄어드는 전형적인 시골도시지만,이곳 역시 세대가 분화하면서 외곽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반경이 조금씩 넓어져 이젠 이곳 성자원의 턱밑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우리 아파트가 바로 그렇다. 우리 아파트는 성자원과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언덕에 들어서 있어서,아파트 건너편 언덕이(겉으로는 숲으로 둘러쌓인 야산으로 보인다.)성자원인 셈인데,그 덕분에 여름날 저녁이면 닭똥이 분해되면서 나는 묘한 악취가 아파트 전체에 퍼질 때가 종종 있다. 사실 닭똥 냄새는 자꾸 맡다보면 약간 구수한데가 있다. 내가 어릴때는 집집마다 마당에는 소똥을 쌓은 두엄이 커다란 노적가리처럼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두엄에서 나는 소똥 냄새에는 꽤 익숙해져 있었다.사실 소똥이나 말똥,코끼리똥 같은 초식동물의 배설물은 생각 여해에 따라 별게 아닐 수 있다. 원래 우리가 어릴 때 많이 쓰던 마분지란 말똥을 씻어 말린 다음 가공을 해서 만든 종이고,인도나 동남아에서는 코끼리똥으로 종이를 만들어 쓰기도 하는 것이고,네팔이나 중국·인도쪽에서는 소똥을 말려서 그대로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초식동물의 배설물은 어쩌면 섬유질 덩어리 그 자체일 뿐이기도 하다. 하여간 내가 어릴 때 여름날 짚가리에 마른쑥을 얹어서 모기불을 태운 다음,두엄냄새가 묘하게 풍기는 마당에 평상을 치고,할머니께서 홍두깨로 밀어서 호박을 쑹쑹 썰어넣어 끓여주시던 칼국수를 먹던 그 가물가물한 추억들이 요즘도 내 삶을 버티는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여간 닭똥도 원래는 이와 별단 다르지 않은데,다만 요새는 닭에게 사료를 먹이면서부터 닭똥의 냄새가 약간 변질되어 육식동물의 그것처럼 유쾌하지 않은 냄새를 풍기곤 해서 약간 아쉬움이 있다. 하여간 우리 아파트는 그 닭똥 냄새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않다. 만약 이런 상황이 서울이나 수도권의 어느 도시에서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사태가 벌어질 지 모른다.분명히 그곳에 먼저 들어와서 산 주인이 있는데,뒤늦게 지어진 아파트 주민들이 이전을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던지,그쪽으로 진입하는 길에 철조망을 치던지 무슨 사단이 나도 났을테지만 아직 이곳 인심은 그렇지 않다. 이곳 사람들은 그저 원래 거기는 그런 냄새가 나거니 하고 살지,누가 거기를 향해 싫은 소리를 하거나,대책을 세우자고 부녀회를 소집하는 분들은 아무도 없다. 하여간 그 성자원에서 어른들이 우리병원에 오신다. 이분들이 처음 병원에 오실 때,성자원에서 전화가 왔었다.그쪽에서 일을 보시는 분이 우리원무과장에게 아주 어렵고 난감한 목소리로 “저희 어른들이 편찮으셔서 치료를 받으러 가끔 병원에 가셔야 하는데,혹시 그 병원에서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하고 어렵사리 운을 뗐더라는 것이다. 원무과장이 내게 보고를 하면서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원장님 다른 환자분들에 미치는 영향도 있고…”우물쭈물하면서 보고하는 품새가 거절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환자는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의사는 그 환자가 누구던 치료할 의무가 있다. 세상 어느나라던 국가로부터 의사면허를 교부받을 때는 의사는 그가 누구던 가리지 않고 병자를 돌보는 조건으로 부여받는 것이며,의사는 사회로부터 지위고하·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같은 의술을 베풀라는 약속을 요구받은 것이다. 물론 현행 제도는 그렇지 않고,그 제도는 앞으로 영리법인이 허용되면서 더더욱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차별하겠지만,의술이란 그것이 성립할 때부터 자본과 힘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대우를 받도록 약속되어진 것이다. 때문에 의료에서 자본주의 원리를 운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부자는 좋은 집에 살고,비싼 옷을 입고,좋은 차를 탈 권리가 존중되어야 건강한 사회지만,그래도 한가지 사람이 죽고 살고,아프면 치료받고 하는 과정만은 평등해야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는 사회이다.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사람의 목숨에 존귀가 생기고 빈천에 따라 구분이 되는 순간 그 사회는 명운을 다하고 말았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다음날부터 성자원 환자분들이 우리병원에 오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분들을 모시고 오시는 봉사자분들이 워낙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병원을 다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짐작이 갈 정도로,병원에 오시는 것을 마치 무슨 시혜라도 받는 것처럼 감사를 표했으며,병원에 오시는 시간도 환자분들이 편리한 시간이 아니라 병원이 편리한 시간(?)을 택했다.즉 병원에 환자가 가장 적은 시간을 물어서 가급적이면 그 시간에 다녀가시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이 없거나,한쪽 눈이 뭉개진 분,코가 없는 분들이 평생을 음지에서 살다가 그나마 몸이 아파 병원에 가시는 순간마저도 누가 그렇기 시킨 적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표야했던 것인데,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운이 좋아서 우리 부모나 내가 한센병에 걸리지 않아서 내 눈과 코,귀가 멀쩡한 소위 정상인들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진료가 반복되면서 약간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기실에 이분들이 오셔서 짝을 지어 앉으시면,이분들을 중심으로 대기실 의자가 좌와 우로 나뉘고,마치 뜨거운 불판에 익혀놓은 계란 프라이처럼 이분들을 중심으로 대기 환자들이 앉으시는 자리에 원형의 할로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아주 드물게… 이 문제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시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나도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문제로 좁은 지역에 원치않는 소문이 난다면 환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이 며칠동안 내 머리를 괴롭혔고,그런 고민은 ‘아주 가끔씩’ 이 문제를 거론하는 환자가 생길때마다 깊어져 갔다.그리고 어느날부터는 나도 모르게 작년도 같은 달 대비 총 내원환자수를 비교해보고,그 분들이 오셨을 때 같은 시간대에 병원을 방문한 환자가 재진으로 재방문을 하지 않으면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원무과장이 작년도 대비 진료실적이 10% 정도 감소한 상황을(올해 전국 병·의원의 의료보험 진료실적이 전년도 대비 9% 감소했다.)이 문제에 빗대어 보고하다가 내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사실 내 마음속에도 혹시 진짜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일말의 야비한 생각이 들었음도 사실이다. 그렇게 몇달이 흘렀다. 어느날 지역에 지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그 분으로부터 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의 집착이란 무서운 것이다. 처음에는 “절대 아니다.”에서 “그럴 리가 없다.”로 그러다가 결국은 “혹시 그럴지도 몰라.”에서 결국에는 “분명히 그래.”로 바뀌게 되고,마침 그때 주변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좋지않은 상황을 전부 그 쪽으로 몰아가 버리게 된다.부끄럽지만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시커먼 악마가 능구렁이처럼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았고,그 악마는 총 내원환자 감소의 90%는 이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내게 속삭였다. 한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악마가 내게 다시 속삭였다. “이봐,자네 솔직히 그 사람들 오는게 반갑지 않지?…거봐…자신을 속이지 말라구…한번 생각해봐…그 사람들이 전염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자네도 손을 잡거나,몸을 만질때마다 몸에 뭐가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것 같지?…그리고 지난번에는 자네가 청진할 때 그 노인네가 자네 얼굴쪽에 기침을 했다고 알콜솜으로 얼굴을 한 백번쯤 닦았지?…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코앞에서 기침을 해도 눈도 깜짝 안하쟎아?…왜?나병균이 자네 얼굴에 붙었을까봐?…그런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어?…심한 사람들은 같은 대기실에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는 이 병원에 안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구…그리고 자네가 객관적으로 한번 생각해봐…비싼돈 들여서 인테리어 하고 그림걸고 온갖 치장 다해두었는데…그 대기실에 손발과 코와 귀가 허물어진 사람들이 앉아 있다고 상상을 해봐…기분이 좋겠어?…내말이 어때?…잘 생각해봐.” 악마는 그래도 망설이는 나에게 다시 속삭였다. “이봐…좋은 방법이 있어…어차피 자네도 착한사람 컴플렉스 같은게 있쟎아…그걸 이용하라구…거 왜 자네가 가끔 써먹는 수법 있쟎아…왕진가면서 느끼는 자기 만족 같은거 말이야…사실 자네가 왕진을 가는 것도 그냥 119 보내면 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자기만족이쟎아…왠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야…이 경우도 그렇게 써먹으면 돼…거기에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하라구…우아하게 말이야…‘어른들이 일일이 병원에 나오시려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하시겠습니까…차라리 제가 집도 그쪽이고 하니,며칠에 한번씩 퇴근길에 왕진을 가겠습니다’그렇게 말하면 자네는 그쪽에서는 그야말로 훌륭한 인격자로 비칠거고…자연스레 병원에 나병환자들이 일반환자와 뒤섞이는 일도 없을거구 말이야…그야말로 일석이조쟎아…그렇지?’” 나는 그렇게 내안의 악마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는 원무과장을 시켜 그쪽에 내 의사를 전하라고 하면서 거기다 아예 주사나,링거 등을 들고 갈테니 걱정 하지 마시라는 친절한 전언까지 덧붙였다.그러면서도 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좋은 일을 했다는,혹은 현명한 방법을 찾았다는 자가당착에 사로잡혀 악마가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있음을 깨닿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쪽에서 전화가 왔다. “원장님 원무과장님을 통해 원장님의 고마운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사실 이곳에는 저희 식구들을 돌봐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계십니다.그래서 여기는 매일 그 선생님이 들러서 병환을 살펴주시고,치료도 해주시는 덕분에 항상 건강하게들 사시지만,문제는 사진을 찍거나 검사를 하거나 좀 병세가 심각하신 경우에는 의사선생님이 아무리 훌륭하셔도 도리없이 큰 병원으로 나가서 진료를 해야하는데,그 때문에 원장님 병원에 부탁을 드린 겁니다.그래서 원장님의 고마운 마음에는 너무나 감사하지만,원장님이 굳이 저희에게 왕진을 오시면 지금 돌봐주시는 선생님께 예의도 아닌데다…원장님이 오셔도 결국 검사나 사진촬영은 병원으로 가야 되잖겠습니까.아까 원무과장님의 전화를 받고 저희들이 눈치 없이 너무 자주 병원에 가서 원장님께 큰 부담을 드렸다는 생각이 들어 이래저래 전화를 드립니다.원장님…그 마음도 감사하고…그동안 돌봐주신 것도 감사합니다…너무 고맙습니다.” 그 순간 내 귀를 가리고 눈을 멀게했던 악마가 나를 조롱하는 웃음소리가 내 방에 가득함을 깨달았다. 하늘이 무너지고,땅이 꺼진다는 말이 이런 것일지 모른다. 이미 상황은 주워담을 수 없었고 나는 그날이후 그분들을 다시 뵙지 못했다. 이분들은 우리 정상인들이 무차별적으로 가했던 폭력에 상처를 입은 분들이다.이분들은 누가 자신을 슬쩍 쳐다만봐도 어깨를 움츠린다.외출을 하려면 머리에는 챙이 큰 모자를 쓰고,손에는 겨우 한두개남은 손가락을 가릴 면장갑을 끼고,커다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마치 빛을 보면 안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숨어다니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여린 가슴은 “내가 굳이 왕진을 가겠다는 뜻”의 이면을 바로 알아챘고,그 이후로는 내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병원에 오시지 않았다. 아마 그분들 중의 누군가는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날,시내 어느 병원의 대기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몸을 보살펴줄 의사를 찾고 계실 것이고,하찮은 이해관계로 이분들의 가슴에 시퍼런 칼을 꽂았던 나는 오늘도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친구들과 이런저런 농지꺼리를 던지며 의미없는 하루를 또 그렇게 보내고 있다. 내게 인생은 늘 이렇게 부끄러운 것이다. 2005/8/22 시골의사
  • [발언대] 발코니는 생명선… 확장 신중히/정정기 소방방재청 대응본부장

    가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사고 발생이 많은 계절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생활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사고에 대한 기억들은 뒷전이 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고 불감증은 잘 치유되지 않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아파트 발코니의 확장을 합법화한다는 소식은 국민들에게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안전이다. 주거공간은 무엇보다도 안전해야 한다. 생활의 대부분을 그 안에서 지내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며 가족간의 사랑이 형성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높은 지가로 주거용 건물의 고층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아파트는 안전관리상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주거공간의 안전을 위한 아파트의 발코니도 이런 관점에 있어서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파트의 발코니가 건축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공간이라고 하여 이를 단순히 보너스 공간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발코니는 화재시 피난장소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상층으로의 연소 확대를 방지하거나 지연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발코니가 나와 이웃의 안전을 위한 생명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거 편의를 위해 확장한다면 안전상으로는 심각한 위협요인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 화재는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화재층보다는 바로 직상층에서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화재층에서의 사망자가 31.9%인 반면 직상층에서의 사망자가 48.7%이었다.2003년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상층부 6가구에 연소가 확대되어 3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하는 대형사고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발코니를 함부로 개조하거나 주거부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생명선을 없애는 것과 같다. 특히 발코니가 개조되지 않아도 종이박스와 같은 불에 잘타는 물건만 쌓아 놓아도 화재시 10분안에 발코니 내부의 온도가 900℃이상이 되고 15분 정도면 직상층으로 연소가 확대된다는 국내에서의 실제 화재실험 결과도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1996년 히로시마의 20층 아파트 9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과 19분 만에 최상층인 20층까지 확대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발코니를 거실로 개조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였다. 발코니를 실제 주거 공간으로 활용토록 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안전시설의 설치가 필수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발코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화염 차단벽(스팬드럴)과 화재차단 기능을 가진 돌출바닥을 설치하는 것도 고려하고 소화시설의 보강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기존건축물은 예전의 소방법령이 적용되어 화재안전측면에서 신축건물보다 더욱 취약하므로 다른 각도에서의 검토도 필요하다. 이제는 주택을 단순히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으며 잠을 자기 위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아니다. 생활편의성과 더불어 예술성도 강조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우선해야 할 것이 안전이다. 특히 고층 공동주택의 특성상 화재안전의 확보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대책이 필요한 분야이다. 일반인의 식견으로 이런 세세한 측면까지 고려하기란 쉽지 않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 합법화, 그 제목이 주는 설렘만큼이나 안전한 공간확보는 더욱 강조돼야 한다. 안전은 대충 확보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정기 소방방재청 대응본부장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방은진 감독 데뷔작 ‘오로라공주’

    강단있기로 소문난 여배우의 감독 데뷔작은 역시나 기대할 만했다.27일 개봉하는 스릴러 ‘오로라 공주’(제작 이스트필름)로 ‘감독 방은진’은 강렬한 첫 펀치를 날렸다. 그의 첫 선택은 한 여자의 잔혹한 복수극. 그 대목에서 영화는 극장가에 여진을 남기고 있는 ‘친절한 금자씨’와 분위기상의 계보를 함께한다고 할 만하다. 어린 여자아이를 심하게 구박하는 여자가 백화점 화장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된다. 살인자의 정체에 물음표를 찍는 게 아니라 그의 동선을 적나라하게 잡아 화면을 채우는 접근방식에서부터 감독의 두둑한 배짱이 읽힌다. 외제자동차 외판원인 30대 여자 정순정(엄정화)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잔혹살인은 한동안 계속된다. 대형 웨딩홀을 운영하는 바람둥이 졸부(김용건)와 그의 밀회 파트너(현영), 택시기사(김익태), 갈비집의 마마보이 청년(박효준) 등이 줄줄이 정순정의 표적이 된다. 여주인공의 연쇄살인 동기를 알 수 없어 수동적인 관람밖에 할 수 없는 관객에게 영화는 강력반 형사 오성호(문성근)에게 사건해결을 맡김으로써 작은 힌트를 귀띔해준다. 오 형사는 다름아닌 정순정의 전 남편. 살인현장에 남겨지는 오로라 공주 스티커, 백화점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정순정의 모습 등을 확인한 오 형사는 정순정의 범행을 직감하면서도 늘 한발 늦은 보폭으로(의도적인 듯) 범행현장을 맴돌 뿐이다. 영화는 심리스릴러물의 ‘핵’인 반전을 비교적 일찌거니 공개한 뒤 관객의 공감을 얻어가는 전략을 썼다.‘모성(母性)의 처절한 복수드라마’라는 수식어 이외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돼 버릴 만큼 반전장치가 선명하다. 너무 빨리,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살인의 이유와 반전의 모양새는 오히려 아쉬울 정도. 정신병리학적으로 따져야 하는 ‘이유없는’ 살인스릴러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메시지가 부담스럽게 투명한 셈이다. 긴장의 강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드라마는 크게 흠잡을 데 없는 밀도를 갖췄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전반적으로 감정의 습도를 좀 낮췄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돈으로 죄값도 치를 수 있다고 믿는 냉혈 변호사(장현성)를 크레인에 묶어놓고 울부짖는 정순정의 마지막 쓰레기장 인질극에는 긴장미가 뚝 떨어질 정도로 감정과잉이다. 억울하게 아이를 잃은 모성의 치밀한 복수극이라고 하기엔 여주인공의 감정 톤이 지나치게 높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황금어장 내준 대가가 이건가”

    “황금어장 내준 대가가 이건가”

    “이게 사람 사는 마을입니까.” 경남 진해시 웅촌동 괴정·수도·삼포마을 462가구 주민 1200여명은 해만 지면 몰려드는 깔따구떼에 3개월째 시달리고 있다. 마을 옆 신항만 준설토 투기장에서 번식한 깔따구떼가 시도때도 없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이 곳 100여개의 횟집은 개점휴업 상태로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11㎜길이의 깔따구는 모기처럼 생겼지만 물지는 않는다. 서식지의 오염정도 등을 가늠하는 지표동물로 화학적산소요구량(COD) 6이상인 4급수에서 살며, 해질녘에 떼지어 다닌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10일 준설토 투기장 1공구에 ‘곤충성장억제제(IGR)를 뿌렸지만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지난 12일 깔따구 시체를 포대에 담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으로 소포로 보내기에 이르렀다. ●해질녘 나타나는 ‘용오름’현상 21일 오후 5시30분쯤 진해시 웅촌동 괴정마을. 해가 저물자 깔따구가 떼를 지어 날아들기 시작했다. 낮에 숲 등지에 숨어있다 불빛을 찾아 날아 든 것이다. 새까맣게 떼지어 회오리 모양으로 다니는 것으로 보고 주민들은 ‘용오름’이라고 불렀다. 어판장 앞 횟집 수족관에는 깔따구가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40대의 횟집주인은 “누가 회를 먹으러 오겠느냐.”면서 “지난 여름부터 장사를 망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황금어장을 내줬더니 돌아온 것은 환경파괴뿐”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준설토 투기장 맞은 편 수도마을도 형편은 똑같았다. 진입로에는 ‘환경오염행위 조장하는 해수부를 해체하라’는 현수막이 10여m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투기장 옆 깔따구 시체 더미에서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악취 풍기는 준설토 투기장 신항만 공사가 시작되기 전 이 일대 앞바다는 황금어장이었다. 해수부는 당초 준설토를 먼 바다에 버릴 계획이었으나 지난 1992년 우리나라의 ‘런던협약’ 가입으로 바다투기가 어려워지자 1997년 이 해역 195만평을 준설토 투기장으로 고시했다. 하지만 생계터전을 순순히 내준 주민들만 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마창환경운동연합 수질분석 결과에 따르면 준설토 투기장에 고인 물의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23.9으로 나타났다. 방류구 주변 해역도 12.5으로 측정돼 인접한 진해만의 2.24에 비해 5∼10배에 달했다. ●마땅한 대응책 없어 문제는 해결책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약품 방제는 2차 오염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195만평의 광활한 지역에 약제를 살포하기도 쉽지 않다. 고압선이 많아 헬기 살포도 쉽지 않다. 습지여서 선박이나 인력 투입도 어렵다. 지난 17일 현장을 찾은 강무현 해수부 차관은 “대책위를 구성, 공사를 앞당기는 방안 등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매립지의 지반이 안정되려면 통상 5∼10년이 걸려 그 동안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결국 이주와 보상 외에 대안이 없다는 분석이다. 진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생각나눔] 발길 뜸한 무인화장실 없애? 놔둬?

    [생각나눔] 발길 뜸한 무인화장실 없애? 놔둬?

    서울시가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도심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설치한 무인 자동화장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청계천 주변이나 재래시장 등 무인 자동화장실이 절실한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용률이 저조하고 설치·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아 서울시는 향후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13곳은 시간당 1명도 안 찾아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9월 한달동안 서울시내 36개 무인 자동화장실을 이용한 시민은 5만 2757명으로 화장실 한 곳당 1465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무인 자동화장실 제조사인 프랑스 데코사가 전 세계에 설치한 무인 자동화장실(2941개)의 월평균 이용 인원인 363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시간당 이용인원은 1.6명으로 2시간 동안 3명꼴로 이용한 셈이다. 이용인원이 한 명 이하인 곳이 중구 훈련원공원(0.4명), 영등포구 영등포구청(0.5명), 서대문구 서대문역(0.5명) 부근 등 전체의 36%인 13개에 달했다. 마포구 아현역(5.4명), 중랑구 사가정역(5.1명), 종로구 종로3가(4.7명) 부근은 비교적 이용률이 높은 것으로 꼽혔다. 서울시는 2001년부터 총 27억 8000만원을 투입해 무인 자동화장실을 설치했다. 한 개당 연간 226만원의 수도·전기요금 등이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설치·관리 비용으로 한 개당 월평균 80만원(화장실의 내구연한을 10년으로 가정)이 소요되는 셈이다. ●화장실 설치하면 건물주 반대 이처럼 무인 자동화장실의 이용실적이 저조한 것은 35개의 화장실 가운데 23개가 지하철역에서 300m 이내에 있고,8개가 주변에 개방·공중화장실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주변에 무료 화장실이 있는데도 굳이 유료(100원)인 무인 자동화장실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화장실의 경우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 부근에 설치된 화장실은 뚝섬유원지에 가는 방향과 정반대에 있어서 시간당 이용인원이 0.7명에 그친다. 서울시의회 보건사회위원회 조일호(한나라당·은평2)의원은 “서울시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이용실적이 낮은 것은 장소를 잘못 선정한 것”이라면서 “무인 자동화장실을 설치하는 것보다 대형건물의 화장실을 시민들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건물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위생과 김강열 과장은 “무인 자동화장실이 없으면 안 되는 곳도 상당수 있다.”면서 “하지만 무인 자동화장실을 설치하기까지 주변 건물주들의 반대가 심해 적절한 장소를 확보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가 매년 이용현황을 분석하고도 무인 화장실의 위치를 재배치한 곳은 2곳(면목동·종로)에 불과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身의 휴양지! 일본 온천마을

    身의 휴양지! 일본 온천마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 멀리 산 너머 장엄한 노을을 바라보며 노천온천에 몸을 푹 담근다. 온 몸을 에워싸던 노곤함이 서서히 풀린다. 온세상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다.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포근한 온천 생각이 간절해지는 쌀쌀한 계절이다. 가까운 온천도 좋고 먼 나라의 온천도 좋다. 모처럼 외국 바람을 한번 쐬어보고 싶다면 가까운 일본으로 향하면 어떨까.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로텐부로(露天風呂·노천온천)가 지천인 일본의 온천 문화를 즐겨보자. (1) 나가노현 유다나카 시부 좀 허름하지만 단아한 건물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따라 굽이굽이 마을을 걸어 올라간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다. 작은 상점과 오래된 건물의 모습이 눈에 익은데…. 한편으로는 고즈넉하고 또 한편으로는 적막한 느낌. 아, 이곳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그곳이구나. 일본 나가노(長野)현, 시가고겐(滋賀高原) 근처의 온천마을 야마노우치마치는 일본식 온천을 즐기기에 적격이다. 그중 유다나카 시부 지역의 온천장은 대부분 노천온천과 실내온천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온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건물의 유효기간을 정해놓은 듯 낡은 것은 무조건 번듯한 새 건물로 올려야 하는 우리와 다르게 아기자기하면서 고풍스러운 건물이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다. 유카타(浴衣·목욕가운)만 입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일본 온천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보다 많은 온천을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해 이곳에서는 9개 온천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일명 ‘대중욕탕 돌아보기’.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수건(300엔)을 갖고 도장을 찍으며 다른 분위기의 온천을 체험한다. 온천마다 위, 습진, 피부병, 신경통, 부인병 등 각기 다른 효능을 갖고 있다니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험할 것을 권한다. ●‘센과 치히로’의 흔적을 따라 시부 온천 지역을 걸으며 찾은 또 하나의 재미. 골목을 따라 걸으면 왼쪽에 4층짜리 갈색 기둥의 목조건물이 눈에 띈다. 무척 낯이 익은 이 건물은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됐던 가나구야(金具屋) 여관이다. 영화의 영향인지 헷갈리지만 ‘신들의 휴식처’로 묘사된 것처럼 건물은 은근한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마치 온천장 주인 할매 ‘유바바´가 살고,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온갖 유령들이 목욕을 즐길 것 같다. 나중에 괴물로 변해버린 검은 유령 ‘가오나시´도 순박한 하얀 얼굴로 느긋하게 온천을 즐길 듯하다. 100년 이상된 건물로 시설은 썩 좋지 않지만 영화덕에 명소로 떠올라 지금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묵기 힘들어졌다.‘센과 치히로’에 푹 빠졌던 마니아라면 한번쯤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다. 대부분의 여관에서는 다다미로 꾸며진 일본식 전통 가옥에서 특유의 별미 음식으로 아침과 저녁을 먹을 수 있다.1인 보통 1만5000∼2만엔 정도. 방값이 더 저렴한 곳도 있지만 싼 만큼 질 좋은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기묘한 온천, 원숭이 온천 가나구야 여관보다 훨씬 전부터 유다나카 시부 온천 지역의 명소가 된 곳은 ‘온천하는 원숭이들’로 유명한 ‘지옥계곡 원숭이 온천(지고쿠다니 야엔코엔)’이다. 요코유가와 하천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험준한 계곡 사이로 기세좋게 물을 뿜어내는 곳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이 유다나카 시부 온천의 원천수. 이곳을 지나 숲 속으로 20분쯤 걸어가면 일본 야생원숭이 200여마리가 누리는 세상이 나온다. 몇마리는 미지근한 물 안에 들어앉아 온천을 즐기고, 어린 원숭이들은 물장난을 치며 논다. 태평하게 온천을 하며 잠에 빠져드는 ‘내공’있는 원숭이들도 있다. 이미 1970년 미국의 사진잡지 ‘라이프(Life)’ 표지에 실리며 유명해져 사람이나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뚫어지게 쳐다보지는 말 것. 이곳 원숭이들은 오랜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글 나가노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나가노현은 혼슈의 정중앙.‘일본의 마음’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홋카이도와 더불어 가장 유럽과 닮은 지역으로 크기는 우리나라 경상남도와 비슷한 1만 2598㎢다.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 (02-732-7525·www.jnto.co.jp/kor) ● 가는 길 보통 나리타 공항이나 니가타 공항을 이용한다. 니가타 공항에서 나가노까지 버스로 2시간30분, 전철이나 차로는 3시간 정도 걸린다. 나가노 시내에서 유다나카 시부 온천마을까지는 전철로 편도 50분정도 걸리며 요금은 1200엔선. 도쿄에서는 신칸센으로 1시간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도쿄를 통해 가는 것은 4시간, 니가타 공항을 거치면 4시간30분∼5시간 정도 소요된다. ● 먹거리 잘 알려진 나가노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단연 메밀국수다. 이 외에 포도, 사과 등 과일도 자랑거리다. 일본 최고의 와인 생산지이자 니가타현에 이어 가장 많은 양조장이 모여있기도 하다.100여개의 유서깊은 양조장에서 고유 브랜드의 사케를 판매하고 있다. 나가노 시내 북동쪽으로 전철 20여분 거리에 있는 전통마을 오부세에는 특히 유명한 양조장들이 많다. 맑은 공기와 물, 질좋은 쌀로 만든 고급 사케를 10만원 선이면 살 수 있다. ● 발길 닿는 곳이 스키장 일본은 가깝고 눈이 많은 데다, 눈의 질도 뛰어나 해외스키여행의 최적지다. 해외여행의 부담이 있지만 리프트권 구입비용이나 대기시간으로 충분히 보상받는다. 해발 3000m를 넘나드는 높은 산에 둘러싸여 ‘일본의 지붕’으로도 불리는 나가노에는 30여개의 스키장이 있다. 특히 하쿠바(白馬)지역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알펜, 노르딕 경기장이었고, 고류(五龍)스키장에서는 개막식이 열렸다. 하쿠바 스키점프에서는 유럽의 아름다운 전원마을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리프트권은 하루 3000∼6000엔, 렌털요금은 3500∼5000엔 정도. 리프트권 하나로 거의 모든 스키장의 리프트를 탈 수 있는 게 최고의 매력이다. ● 여기도 가보세요 나가노시 젠코지(善光寺)는 무종파 사찰로, 서민 신앙의 본거지다.17세기 초에 지어진 본당은 일본의 국보. 본당 지하에 불빛 하나 없는 □모양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아미타여래입상’이 보관된 밀실로 들어가는 문고리가 잡힌다. 조금 더 걸어가면 지상으로 향하는 빛이 조금씩 보이는데, 이 빛이 마치 극락으로 향하는 그것과 같다고 해 극락왕생의 꿈을 이루는 절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스키의 대부이자 한국 스키대표팀의 지도자를 지낸 마루야마 쇼지(72·全일본스키연맹 전무)가 운영하는 ‘다이카쿠칸’(www.taigakukan.com)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6∼7평 되는 작은 규모의 스키박물관에서 다양한 스키장비, 동계올림픽 기념품, 비디오·DVD 등을 볼 수 있다. ● 여행상품 투어엣(www.tourat.com)은 유다나카시부온천향, 오부세 마을, 젠코지, 지옥계곡원숭이온천 등을 여행하는 ‘나가노 온천 자유여행(2박 3일)’ 상품을 90만원선에 판매하고 있다.1588-0074. (2) 곳곳이 길거리 족탕 기후현 게로온천 일본 중부 기후현에 위치한 게로 온천은 아리마·구사쓰와 함께 일본 3대 온천 가운데 하나로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산세가 수려한 히다산맥 사이에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전통 여관들에서 다양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예로부터 류머티즘성 질환과 운동기능 장애, 신경통 등에 효능이 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해발 1800m 고지에서 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가 하면, 탁 트인 계곡과 산을 바라보며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나무 통 속에 들어가 머리만 내놓고 온천에서 나오는 뜨거운 수증기를 쬐는 통찜질 등 이색 온천도 경험할 수 있다. 전통 일본여관들의 로비와 길거리 곳곳에 마련돼있는 족탕도 눈길을 끈다. 길거리에 있는 족탕은 무료다. 걸어다니느라 지친 다리를 온천물에 담그고 가족이나 친지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면 피곤은 온데간데없다.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여관에서는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성들이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저녁을 맛볼 수 있다. 특히 게로 온천이 위치한 히다지방의 쇠고기는 유명하다. 일본에서 최고급품으로 평가되는 히다 쇠고기는 지방이 적당히 섞여있어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최고의 전골요리 재료로 꼽힌다. 온천 이외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라카와고에서 옮겨온 대형 전통 가옥인 합장촌이 지척에 있어 걸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게로시의 전통 민예나 연극을 관람하고 메밀국수 밀기와 약초 염색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승용차로 1시간 정도면 옛 일본의 정취와 숨결이 살아 숨쉬는 다카야마에 갈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가는 길:나고야에서 JR 다카야마 본선을 타고 1시간4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나고야에서 버스로도 올 수 있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 도쿄에서는 신칸센으로 나고야(약 1시간 40분 소요됨)까지 와서 JR 다카야마 본선으로 갈아타고 오거나, 신주쿠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6시간 정도 걸린다. 글 사진 기후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3) 오이타현 벳푸 10대 지옥순례 “지옥 순례 한번 해보실까요?” 누군가 이런 제의를 해온다면.‘저 사람이 미쳤나’하며 눈을 부라리기도 전에 뒷걸음질부터 치게 될 것이다.“싫소. 내가 지옥을 가야 한대도 나는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출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 도리질치던 당신도 다음 말을 끝까지 들으면 사정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고요, 일본 벳푸에 있는 지옥온천 순례(지고쿠 메구리) 말이에요.” 오이타현 벳푸는 세계 최고의 온천지대이다. 무려 3800개의 원천수에 딸린 온천이 지금도 열기로 꿈틀거리고 있다. 지옥이라는 단어는 지하 수백m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열탕의 모습이 꼭 지옥을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졌다. 직접 보면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잿빛 진흙이 끓어오르는 오니이시보즈 지옥,150마리의 악어가 우글거리는 오니야마지옥, 적색 점토가 붉은 피 연못을 연상시키는 지노이케지옥, 코발트빛 청아한 연못에 뜨거운 증기가 치솟는 우미지옥까지…. 지금도 각각의 특색을 지닌 채 살아있는 10개의 지옥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경이에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죄다 온천탕으로 개발하지 않고, 이처럼 관광상품으로 보존하고 있는 대목에서 일본인의 슬기가 엿보인다. 벳푸 지옥순례를 원하면,2000엔짜리 9개 지옥(보즈 지옥은 제외) 공통입장권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그러지 않고 따로 지불할 경우 지옥당 400∼500엔을 지불해야 한다. 벳푸역 니시구치에서 버스를 타고 우미 지옥앞에서 내려 차례차례 걸어다니며 둘러보면 된다. 온천욕을 해보고 싶다면, 지옥 근처의 온천이나 벳푸 8탕에서 노곤한 몸을 달래도 좋다. ●가는 길: 서울에서 오이타공항을 거쳐 공항버스로 가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오이타까지 1시간 35분, 공항에서 벳푸까지 약 35분이 걸린다. 후쿠오카 공항을 거쳐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시간은 더 많이 걸리지만, 훨씬 저렴하다. 서울에서 후쿠오카까지 1시간 10분, 후쿠오카에서 벳푸까지는 약 2시간 걸린다. 글 사진 오이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1) 경주이선생 가장결

    “지난 60년은 그만두고 양류목운(楊柳木運)의 해에는 갑자기 군대가 소요를 일으켜 여(女)군주가 도망을 칠 것이다. 만일 동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하게 되리라. 나라의 태공은 푸른 바다에 외로운 그림자가 되어 신세가 처량해질 것이나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달아나 숨기 바쁘니, 삼강오륜이 끊어지도다. 하늘 재앙 혹독해 벌레의 독을 무어라 형언하랴. 부자가 먼저 죽나니 후회해도 소용없도다.”(경주이선생 가장결) ‘정감록’의 일부로 돼 있는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이다. 정치적 격변을 알리는 끔찍한 예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내용을 일일이 살피기에 앞서 우선 거기에 보이는 연도 표기방식이 특이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양류목운’이라고 했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임오년과 계미년의 운세를 말한 것이다.‘경주이선생’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편년체 예언이 분명한데, 특히나 음양오행설로 육십갑자를 푼 셈이다. ●한국의 운세를 나무에 빗대는 이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운세는 나무 운세(木運)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그랬다. 다들 우리나라를 나무(木)로 상정했다. 그 기원은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인 고려 공민왕 6년(135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음양오행에 달통해 사천소감 벼슬에 있던 우천흥이란 일관(日官)이 있었다. 그는 공민왕에게 올린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도선국사가 지은 ‘옥룡기’(玉龍記)란 예언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 지세가 물(북쪽)은 뿌리요, 나무(남쪽)는 줄기가 됩니다.” 우천흥은 도선이 한 말이라며 자신의 견해에 권위를 부여하려 애쓴다. 과연 이 주장이 도선에게서 비롯됐는지는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백두산을 뿌리로 삼아 지리산까지 줄기가 뻗친 한 그루의 나무로 이해된 사실만은 틀림없다. 역사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 그보다 200년쯤 앞서 고려 인종 때도 비슷한 인식이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알다시피 묘청은 도읍을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는데, 그 역시 고려란 나라를 한 그루 나무로 보았다. 묘청이 서경에 새 궁궐터로 잡은 곳이 ‘대화세’(大華勢), 즉 큰 꽃봉오리 형상의 명당이었다. 그는 나라 전체를 커다란 나무로 인식했고, 그 중에서 지세가 강한 여러 명당을 꽃으로 간주했다. 대화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꽃 즉, 최고의 길지를 뜻했다. 한국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는데, 나무가 바로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동국(東國)’ 또는 ‘진단(震檀)’이라 불렀다. 동쪽 나라를 뜻하는 ‘동국’이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진단’의 진(震) 역시 팔괘의 하나로 동쪽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의 시조가 단군이라서 덧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라 하고 그래서 나무 운세로 보는 것은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표현된 것이다. 지구가 둥근데 하필 우리나라를 동쪽으로 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약용이나 홍대용과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든가 자전하는 줄을 알게 돼 중국적 세계관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동쪽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인습의 뿌리는 정말 끈질기다.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역시 ‘고려사’에 실려 전한다. 한국 고대 풍수지리의 아버지라 할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정할 때의 전설이다. 그 때도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과 함께 곡령 고갯 마루에 올라 지맥을 두루 살폈다. 위로 천문을 보고 아래로는 시수(時數)를 살핀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이곳 지맥은 임방(壬方:북쪽)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물을 어머니(水母)로 삼은 나무(동쪽)가 줄기인데, 말머리 명당에 이르러 멈춰선 형세입니다. 공 역시 물의 운명이오니 마땅히 물의 대수(大數·물의 수는 1과 6으로 6이 대수다)에 따라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수인 6에 6을 곱하면 36구가 되는데 이것이 천지의 대수에 부응합니다. 제 말대로 하시면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미래의 임금)을 낳게 될 것이오니 이름을 부디 왕건이라 하십시오.”(고려사 세계 7) 도선은 태조 왕건의 운세를 나무로 보고, 그 아버지는 나무를 살리는 물이라 여겼다. 마찬가지로 송악 명당이 있게 한 뿌리는 백두산인데 북쪽의 임방에 위치하므로, 오행으로 풀이해 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송악 명당을 낳은 금강산과 태백산 등 백두대간은 송악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나무로 간주됐다. 따지고 보면 송악 역시 그 나무의 꽃 또는 열매에 해당해 근본적으로는 나무로 파악됐다. 도선의 머릿속에서 송악과 고려 태조 왕건은 나무로 동일시되었다. 나무인 왕건이 태어나서 자랄 집은 당연히 물이라야 하므로 대수 36구가 길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며, 송악에는 푸른 소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 도선의 처방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의 운세는 늘 나무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壬午와 癸未가 楊柳木이 되는 이유 오행상생설로 보면 나무를 살리는 것은 다름 아닌 물(水), 죽이는 것은 불(火)이다. 따라서 나무인 한국에게 물의 해는 길하고 불의 해는 흉하다는 식의 운세 풀이가 나오게 된다. 흉한 해 즉, 불(火)로 정의되는 해는 말(午)의 해요, 그 뒤를 이은 양(未)의 해도 좋지 않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한국의 운세는 말과 양 등 십이간지(十二干支)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육십갑자를 구성하는 열 개의 천간(天干)이 또 있어서다. 나무에 해로운 불은 병정(丙丁) 둘이며, 이로운 물이 또 두 가지이다. 임(壬)과 계(癸)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임과 계년이라면 나라 운세가 보통은 아주 좋다. 하지만 십이간지인 말과 양의 해가 나무와 상극인 관계로 임오년과 갑신년의 운세는 상생과 상극이 맞부딪쳐 어정쩡해진다. 비유하자면 어린 나무(柔木)다. 역술가들은 임오년과 계미년의 국운을 흔히 양류목(버드나무) 운세라 부른다.‘경주이선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버드나무 운세라는 말로 두 해의 운세풀이를 시작한다. 하고 많은 나무 가운데서 버드나무란 또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버드나무라면 으레 생명력이 끈질기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는 귀양 가는 친구에게 뜰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기도 했는데, 버드나무가 정든 임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버드나무는 가늘고 긴 가지가 특별하다. 축 늘어진 모양은 마치 미인이 긴 머리를 풀어헤친 듯도 하려니와 하늘하늘한 여인의 허리를 연상케 한다. 낙락장송의 꼿꼿한 기개는 아닐지라도 유려함과 생명의 활기가 느껴지는 나무다.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물이 올라 푸르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양류목’ 운세는 다소 불리한 가운데도 끝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을 가진다. 말과 양의 해라면 나무가 죽을 수이고, 특히 큰나무가 해를 많이 입을 운이다. 다행히 임과 계년이라서 다 죽지는 않는다. 산불 때 그렇듯 큰 나무는 힘없이 쓰러지되 작은 나무는 도리어 살아남을 운세다. ●임오군란과 양류목운 다시 맨 앞에서 인용한 ‘경주이선생’의 첫 대목을 상기해보자. 고종19년(1882) 임오년의 정세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참 많다. 첫째, 군대의 소요가 일어난다는 예언이 있는데 그 해에는 실제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당시 정국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가 개화파와 대립하는 형세였다. 개화파는 사실상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가 손수 이끌다시피 했다. 왕이 개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개화파 관료가 점차 조정에 많이 임용되었다. 고종18년(1881)에는 신식군대인 별기군까지 창설되었는데, 소외감을 느낀 구식 군인들은 그것을 왜별기(倭別技)라 부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절만 해도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았다. 하지만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그들은 봉급이 13개월치나 밀리는 등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다. 재정을 담당하는 선혜청 당상이자 병조판서였던 민겸호야말로 이런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 구식 군인들의 믿음이었다. 마침 그해 6월, 전라도에서 올라온 세미(稅米)가 서울에 도착하자 구식 군인들에게도 1개월분의 급료가 지불되었다. 그런데 선혜청 담당 관리들의 농간으로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이 지급되자 구식 군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불신하던 민겸호의 집에 난입했고, 장차 민씨 일파의 보복이 있을까 염려한 나머지 반대파인 대원군에게 의지했다. 대원군은 몰래 심복을 보내 구식 군인들을 통솔했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의 재집권을 꾀했다. 그 바람에 구식 군인들의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군인들은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강화한 뒤 명성황후의 측근들과 개화파 주요 관리들의 집을 차례로 습격했다. 대원군의 밀명에 의해 그들은 친왕적이고 개화정책에 우호적이던 대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했다.“부자가 먼저 목숨을 잃는다.”는 ‘경주이선생’의 예언처럼 부와 권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다. 개화파의 군사적 기반인 별기군 병영도 무사하지 못했다. 구식 군인들은 일본인 교관 호리모토 레이조(堀本禮造)를 살해했고, 일본 대사관에도 침입해 13명의 일본인 목숨을 빼앗았다. 둘째, 예언서 ‘경주이선생’에는 여 군주가 도망친다고 돼 있는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하던 명성황후가 충주로 도피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구식 군인들은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 궐내로 난입했다. 그들은 개화파의 우두머리라며 명성황후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대원군의 조종을 받은 것이었다. 목숨이 위급해진 왕후는 무예별감 홍재희의 도움을 얻어 충주 장호원에 있던 친척집으로 피신했다. 셋째, 국태공이 납치된다는 예언도 적중해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었다. 국왕인 고종은 임오군란으로 벌어진 정치적 난맥상을 진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대원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대원군은 왕의 의지에 상반된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대원군은 그동안 실시돼온 개화정책을 거의 모두 파기했다. 별기군을 혁파하고 구식 군대인 5군영을 복구하였으며, 신식 정부기관인 통리기무아문을 없애고 3군부를 설치했다. 대원군은 최대의 정적인 명성황후의 실종을 서둘러 사망으로 단정하고 국상을 치렀다. 개화파로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자 개화파는 톈진(天津)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을 통해 청나라에 군사적 후원을 부탁했다. 청나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오장경(吳長慶)이 이끈 청나라 군대 4500명이 서울로 급파됐다. 그는 군대를 앞세워 한국의 내정에 직·간접으로 간섭하였고, 자신을 찾아온 대원군을 불법 체포해 톈진으로 압송했다. 한국 내에서 청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킬 방안에서였다. 이로써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하던 ‘호랑이’ 대원군은 권좌에서 영원히 축출되었다. 예언대로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양류목운’의 예언은 적중했다.“손님이 주인행세를 할 것”이라 했는데 과연 오장경이 지휘하는 청나라 군대가 멋대로 주인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임오년은 ‘경주이선생’이 말하듯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충주로 피난한 명성황후도 무사했고, 불시에 청나라로 붙잡혀간 대원군도 다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갑신정변까지 ‘경주이선생’에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경주이선생’에는 고종21년(1884)에 일어난 갑신정변도 정확히 예측돼 있다.“정중수운(井中水運)은 자미(북두성) 자리에 저녁 무지개가 뜬 형국이다. 그러다 다시 동쪽으로 달아나리라.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죽음이 참혹하구나. 남북 군사들이 부딪쳐 화가 점차 심한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자미성이라면 천자 또는 임금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 무지개가 뜨는 것은 무척 흉하다. 무지개는 하늘에 보이는 벌레로 해석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난다는 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고 한 것도 불길하며, 변란의 주체가 동쪽으로 달아난다고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세력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대립한다고도 했으므로 후환이 두렵다. 이 예언대로 한 해가 흘러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옥균과 박영효를 비롯한 개화파 청년 인사들이 그 해 10월17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의 정변은 일단 성공했으나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탓에 정권이 오래 가지 못했다. 겨우 사흘밖에 집권하지 못해 ‘삼일천하’란 다소 비웃는 듯한 표현까지 등장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위로부터의 근대적인 개혁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김옥균 등 정변의 주체세력은 그들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양반 출신이었지만, 오랜 사회적 악습으로 남아 있던 문벌 타파를 실천하고자 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자며 평등권을 부르짖었다. 아쉽게도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고 후유증도 심각했다. 서울에 와 있던 청나라 장수 위안스카이의 무력 공세에 밀린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후일을 기약하며 일본으로 망명했다. 이 사건 이후 한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세력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불쌍한 처지에 놓인다. 청·일 양국은 그 이듬해인 1885년 4월 18일, 톈진조약을 체결해 장차 한국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할 경우 두 나라가 동시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약속하기에 이른다. 과연 갑신정변이 일어 난지 정확히 10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청·일 두 나라는 톈진조약에 의거해 한국에 동시 출병했고, 마침내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은 장차 한국을 병합할 기초를 다진다. 불행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맞는 ‘경주이선생’ 갑신정변을 분기점으로 잘 맞아 들어가던 ‘경주이선생’도 틀리기 시작해, 고종 23년(1886) 이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맞고 틀리고는 ‘경주이선생’이 저술된 시기와 직접 관계가 있다. 나는 이 예언서가 1884년 갑신정변이 끝나자마자 쓰였다고 본다. 이미 다 알고 쓴 것이라서 1880년대 초반의 일은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1886년 이후를 무슨 수로 맞히겠는가? 맞는 예언서는 이미 예언서가 아니다. 그것은 술사를 비롯한 민중의 역사적 인식이 기록된 일종의 역사서일 뿐이다. 그 때 있었던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주된 관심사만을 한데 주워 담은 역사 말이다. 예언은 사실 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뜻밖에도 거기에 민중의 역사적 기억이 집적돼 있다.‘경주이선생’에는 특히 민중이 바라본 정치와 경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권력과 돈의 향방을 따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사설] 물관리 일원화로 효율성 높여야

    물 관리체계의 개선 방안을 놓고 어제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관계장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으나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상수도와 공업·농업용수 등 물의 용도가 워낙 다양하고, 부처간 미묘한 주도권 다툼 때문에 교통정리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속발전가능위원회가 부처 협의와 시민사회단체간 토론을 수십차례 거쳤음에도 큰 방향조차 잡지 못한 것은 물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중한 수자원의 효율적인 관리와 재정낭비를 줄이려면 관리체계의 일원화는 이를수록 좋다. 우리나라는 이미 ‘물부족국가군’으로 분류돼 6∼7년 뒤에는 연간 40억t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된다. 수자원 총량(2001년 기준)이 연간 1276억t이지만 댐과 하천, 지하수를 통해 얻는 총이용량은 26%인 133억t에 불과하다. 엄청난 수자원이 시설부족과 관리부실로 유실되는 실정이다. 질적인 면도 문제다. 특히 상수원 오염과 정수시설 부실로 수돗물은 마음놓고 마실 수 없는 지경이다. 공업·농업용수는 제외하더라도 상수도조차 건설교통부(광역상수도)와 환경부(지방상수도)가 나눠 맡아 수질, 요금, 상수원 개발 등이 제각각이다. 이래서야 양질의 생활용수 공급에 어려움은 물론이고 효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광역·지방상수도 관리분담에 따른 중복투자로 재정손실만도 4조원에 이른다. 물 관리 일원화를 가로막는 요인 중에는 부처 이기주의나 각종 인·허가권에 얽힌 담당 공무원의 이권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자원 정책이 댐 신규건설 등 공급보다 품질 중심의 수요관리로 방향을 잡았다면 댐 건설은 건교부가 그대로 맡되 상수도관리권은 환경부로 모두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3) 차와물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3) 차와물

    새벽달빛이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풀벌레소리는 어느새 수곽의 물소리에 젖어들고 있다. 새벽예불을 위해 가만히 문을 열면 사방은 바로 고요해진다. 인간의 소음에 모든 삼라만상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분별과 자만으로 인해 자연과 소통하지 못한다.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인류최악의 강진도 제일 먼저 동물들이 그 반응을 보인 것은 그 같은 자연과학적인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와 발우를 부여잡고 청수(淸水)를 공양하기 위해 자우홍련사 툇마루를 나선다. 오렌지처럼 푸른 달빛이 축축한 대지에 차가운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내 영혼을 먼저 깨운다. 초의스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샘물인 유천의 물소리다. 산등성위에 살짝 얹힌 두개의 바위 틈 사이로 대나무가 박혀 있다. 그 대나무를 타고 세 개의 작은 수곽을 지나 유천의 물이 숙성되면 암반으로 흘러넘친다. 마치 안개비처럼 산구름처럼 소리없이 물이 흘러내린다. 그 물소리가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유천에 가볍게 반배를 한다. 그리고 발우를 수곽에 얹으면 또르륵 이슬방울처럼 스며드는 유천의 물은 마치 광망한 바다에 아침을 물고 나오는 붉은 해가 세상에 젖어들 듯 장엄한 울림을 전해준다. 발우에 담긴 유천의 물을 부처님께 공양한다.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물에 대해 초의스님은 이렇게 말했다.“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정신이 되는 것이다.” 물은 차의 맛을 좌우한다.“나에게 젖샘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 수벽탕이나 백수탕이 돼버리니 어찌하면 목멱산 아래 해거옹에게 이 물을 드릴 수 있을까.”라며 찻물을 끓이는데, 좋은 물을 권하고 있다. 찻맛의 절반은 물맛이라는 말이 있다. 차는 물에 우려내는 것이므로 물의 등급에 따라 찻맛과 그 효능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옛 차인들은 물을 차를 내는 데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다. 차를 우려내는 데 있어서 물은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찻물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좋은 찻물을 먹을 수 있었던 산골이나 시골지역도 개발의 바람과 대기오염으로 인해 그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은 현대산업사회의 폐해가 자연환경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인들에게 차의 물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차는 좋은 물을 통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의스님은 “차는 물의 마음과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이니 참 된물(眞水)이 아니면 다신(茶身)을 나타낼 수 없고, 참된 차 (眞茶)가 아니면 수체(水體)를 나타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물과 제대로 된 차가 만났을 때 좋은 차는 그 생명력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떤 물이 참된 물일까. 환경이 오염돼 버린 현재의 지구촌에서는 좋은 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옛날 차인들이 추천했던 물의 품수(品水)를 통해 차를 우려내기 위한 참된 물을 정의해볼 뿐이다. 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에서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졌다. 물의 존재는 곧 생명체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물을 마시면 육신과 영혼을 증장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나쁜 물을 먹었을 때는 육신과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로 순수한 물은 바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 같은 물이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한 것이 참된 물인 것이다. 초의스님께서는 이렇게 소중한 물에 대해 여덟가지 덕(八德)이 있다고 했다.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럽고(軟), 아름답고(美), 냄새가 나지 않고(不臭), 비위에 맞고(調滴), 먹어서 탈이 없는(無患) 여덟가지로 물의 덕을 설명하고 있다. 초의스님의 설명에 따른다면 물은 완전무결한 식품이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모든 맛과 효용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이렇게 완전무결한 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는 품천(品泉)이 있다. 육우는 (다경)에서 물의 등급을 “산의 물을 쓰는 것은 상품이고, 강물은 중품이며 우물물은 하품이다.”고 평하고 있다.(자천소품)(煮泉小品)에는 “돌은 금의 근본이요, 돌에서 흐르는 정기는 물을 낳는다.”고 깊은 산중에서 나오는 물이 최고임을 밝히고 있다. 산중의 물중에서도 최고는 이름난 명산의 샘물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샘물은 바로 돌샘이다. 돌은 산의 뼈요, 물은 산의 골수같은 것이기 때문에 돌샘에서 나오는 샘물이 최고인 것이다. 돌샘은 산의 정기가 모인 것으로 담백하고 맑고 차기 때문에 물을 길어놓아도 오랫동안 물의 기운이 그대로 유지된다. 산중의 물중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돌 사이에서 나는 석간수는 맑고 달며, 자갈샘은 차갑다. 땅밑의 샘은 담백한 물을 뿜어내고 황석(黃石)에서 솟아나는 물은 좋은 물이다. 다만 청석(靑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결코 좋지 않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계곡의 물은 발원지에서 멀수록 좋으며 그 흐름이 조용하고 완만하게 흐르며 맑아야 한다. 또한 계곡 위쪽의 인적이 끊어진 곳이어야 한다. 흐르는 물이 발원지에서 멀수록 좋은 것은 물이 흐르면서 광물질 이물질 등이 자연스럽게 여과되어 어느정도 흐르면 담백한 물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명산의 물중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샘에 고여 있는 물이다. 물이 넘쳐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는 것은 샘이 죽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물도 함께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은 강물이다. 강물 역시 명산을 발원지로 해서 시작해 흐르는 물이 좋다. 강물은 또한 오염도를 줄이기 위해 가능하다면 인간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좋으며 빛깔은 맑으며 물맛은 지극히 찬 것이 좋은 것이다. 다음은 우물물이다. 인가가 밀집된 지역에서 인공적으로 솟아나게 하는 샘물인 우물물 중에서도 돌이나 모래속에서 솟아나는 상품의 물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물물은 가까이에 있는 인간의 오물이 섞일 수도 있고, 기름진 논이나 비옥한 땅에서 건수가 스며들 가능성이 많아서 제일 하품으로 쳤던 것이다. 이밖에도 호수물, 빗물, 웅덩이물 등이 있으나 찻물로서 적합하지 않다. 물은 흐르는 유천(流川)이 좋고 돌틈의 석간수가 솟아나는 샘물이 좋다. 물의 종류에는 하늘의 은택으로 내린 샘물인 영천(靈泉),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늘 물인 천수(天水), 바위틈에서 솟아 흐르는 지천(地泉), 강물인 강수(江水), 우물물인 정수(井水), 유황성분이 함유된 온천(溫泉),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약수(藥水)가 있다. 이중에서 현재 찻물로 쓰일 수 있는 물은 영천 지천 정수 정도일 뿐이다. 현대에는 그 만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다천(茶泉)이 몇군데 존재한다. 신라시대의 다천으로 사선(四仙)들이 차를 달여마신 강릉 한송정,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차를 달여마시고 차공양을 올린 오대산 서대 우통수, 고려시대 송악의 안화사(安和寺) 샘물, 충주의 달천수(達川水), 금강산에서 시작되어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 속리산 삼타수(三陀水), 초의스님이 마셨던 두륜산 일지암의 유천(乳泉)등이 있었다. 현존하는 다천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경주 기림사의 오종수(五種水)다. 석간수로 최상의 찻물로 꼽히며 물색이 음수(陰水)중 음수인 감로수(甘露水), 물맛이 젖처럼 달콤하며 마시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화정수(和靜水), 물에 기운이 있어 장수가 된다는 장군수(將軍水), 눈이 맑아지는 물인 안명수(眼明水), 까마귀가 쪼는 자리에 물빛이 배어 그 자리를 파서 감로수가 샘솟았다는 오탁수(烏啄水)가 그것이다. 초의스님이 계시던 일지암의 유천(乳泉)도 명수(明水)중 명수다. 초의스님은 “나에게 젖샘(乳泉)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 수벽탕이나 백수탕이 돼버리니, 어찌하면 목멱산 아래 해거옹에게 이 물을 드릴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일지암의 유천은 찻물로는 최상의 물로 평가할 수 있다. 오죽하면 초의스님이 젖샘이라고 불렀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써야 할 찻물은 어떤 것이 있는가. 차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물의 소중함과 귀함을 알고 있으나 도시에서 찻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장 좋은 찻물은 아침일찍 인근에 있는 높은 명산의 약수터 물을 길어 오는 것이다. 국가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받은 약수터인가를 확인한 후 찻물을 먹을 만큼 길어다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2∼3일 동안 먹는 것이다. 그다음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생수(生水)다. 인위적으로 생산한 생수는 요즘 차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수의 생명은 짧다.3∼4일이 지나면 생수의 본 성품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정수기를 통해 걸러진 물도 찻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정수기를 통해 정수된 물은 많은 부분에서 물의 본 성품을 강제로 빼앗아버려 썩 좋은 찻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가장 흔히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다. 수돗물을 찻물로 쓰기 위해서는 하루쯤 침전해야 한다. 침전하는 도구로는 옹기항아리가 가장 좋으며 유리병도 무방하다. 옹기항아리나 유리병 바닥에 삼투압을 할 수 있는 물질인 맥반석, 돌, 굵은 모래등을 가라앉혀 놓으면 맛있는 물을 얻을 수 있다. 여름에는 뚜껑을 삼배보자기로 덮는 것이 좋으며 겨울에는 본래 뚜껑을 덮어두면 된다. 한 항아리의 물은 3분의2만 쓰고 나머지는 허드렛물로 쓰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일지암 암주 ■ 김노경과 초의스님 ‘유천일화’ 일지암에는 유천이란 샘물이 있다. 유천(乳泉)은 말뜻 그대로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서 나오는 젖처럼 맑고 담백한 천상의 물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생명을 기르는 젖과 같은 샘이다. 명나라 전예형은 (자전소품)에서 “젖샘이란 종유석의 샘이며 산골의 고수다. 그 샘물의 빛깔은 희고 비중은 무겁다. 매우 달고도 향기로워서 마치 감로와 같다.”고 적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물에 대한 비유다. 유천에 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바로 추사의 부친인 김노경과의 일화다. 추사의 부친이었던 김노경은 일지암에서 가까운 완도 고금도에 유배를 왔다. 그곳에서 4년을 보낸 김노경이 마침 그 유배가 풀렸다. 해배가 되어 서울로 돌아가던 도중 김노경은 일지암을 들를 결심을 했다. 그가 촉망하는 아들 추사의 인품에 비해 초의스님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노경은 초의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학식과 선풍이 뛰어남을 알았다. 그런 그가 초의스님이 권하는 유천을 맛보았다. 김노경은 중국의 유명한 차와 물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었다. 유천의 물을 맛본 김노경은 “일지암 유천의 물은 그 물맛이 ‘수락’보다 더 좋다.”고 극구 칭찬을 했다. 일지암 유천의 물맛은 참으로 뛰어나다. 당나라 때 소이는 (탕품)에서 물을 끓이는 기술에 따라 3품, 뜨거운 차를 잔에 따르는 솜씨에 따라 3품, 탕기의 종류에 따라 5품, 물을 끓이는 땔감의 종류에 따라 5품 등으로 분류했다. 소이는 이 중 가장 잘 끓인 물을 ‘득일탕’(得一湯)이라 했고 그 다음을 어린탕, 너무 많이 끓어버린 물을 백수탕으로 구분해놓았다. 좋은 물도 물이지만 좋은 용기에 잘 끓여야 제대로 된 찻물이 된다는 뜻이다. 소이는 “사람이 백살을 넘은 것처럼 너무 오래끓은 물을 이야기하다가, 때를 놓치거나, 볼일 때문에 내버려두다가 비로소 사용하려면 물은 이미 성품을 잃은 뒤다. 감희 묻거니와 머리털이 희고 얼굴이 창백한 나이 많은 늙은이가 활을 들고 과녁을 맞힐 수 있겠는가. 아니면 씩씩하게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활발하게 걸어서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돌이킬 수 있겠는가.” 끓인 물이 차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은 조금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물 못지 않게 끓이는 물에 대한 차인의 정성은 소중해야 한다.
  • ‘맛있는 수돗물’ 가이드라인 만든다

    ‘맛있는 수돗물’ 가이드라인 만든다

    정부정책 가운데 수돗물만큼 공급자(정부·지방자치단체)와 수요자(일반 가정)간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드물 듯하다.“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란 홍보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지만, 수돗물에 대한 불신의 눈길은 여전히 거둬지지 않고 있어서다. 최근 국회 일각에서 ‘약일 수도, 독일 수도 있는’ 불소(F)를 수돗물에 사실상 강제적으로 투입하려는 법 개정안을 마련(서울신문 9월12일자 22면 참조)한 이후 수돗물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 입맛 끄는 수돗물 돼야” 이런 가운데 정부의 수돗물 수질정책이 조심스럽게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 수돗물의 안전성만 강조해서는 더이상 ‘말발’이 먹혀들지 않을 것으로 판단,‘품질 향상’으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보겠다는 것이 요지다. 환경부가 요즘 준비하고 있는 ‘맛있는 수돗물 프로젝트’가 그것인데, 떨어질대로 떨어진 수돗물의 매력을 되살리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맛있는 물’ 프로젝트는 말그대로 수돗물의 맛 향상이 목표다. 그렇다면 어떤 물이 맛있는 물일까. 일본 후생성과 몇몇 대학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맛있는 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온 끝에 몇가지 기준을 마련한 적이 있는데,‘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하고, 섭씨 8∼14도의 수온 및 중성이나 약산성을 띠어야 한다.’고 돼있다. 칼슘·마그네슘 등 미네랄 성분이 적정하게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었다.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최근 이런 일본의 ‘맛있는 물 지수’ 기준을 적용해 우리나라 4대강 수계 30개 광역정수장의 물맛을 재는 흥미로운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한강수계의 경우 10개 정수장 물 가운데 ‘지수상으로’ 맛있는 물로 평가받은 곳은 3곳이었고, 금강·섬진강수계는 9곳중 2곳, 낙동강북부수계는 4곳중 2곳, 낙동강남부수계는 7곳중 4곳이란 결과가 나왔다. 실험결과에만 비추면 ‘낙동강 남부수계 정수장의 물이 가장 맛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런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활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일본에서 ‘맛있는 물 지수’가 1985년 개발되긴 했지만 현재는 이 지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수도정책과 최문규 사무관)이다.“건강하고 맛있는 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앞으로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단서도 달았다. ●수돗물이 가장 맛있다? 환경부는 이같은 수돗물 성분분석보다는 소비자들의 ‘물맛 평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지난달 한국상하수도협회와 서울YWCA는 서울시민 2000여명을 상대로 정수장물과 수도꼭지에서 받은 수돗물, 정수기로 거른 수돗물, 생수(먹는샘물) 등 4가지 종류의 물맛을 평가토록 한 시음행사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시음대상 물이 어떤 종류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품평을 내놓았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수도꼭지 수돗물을 마신 응답자의 59%가 ‘맛있다.’는 답변을 내놓은 반면 정수장 물(2종류)은 46%와 47%, 생수(2종류)는 42%와 50%, 정수기수돗물은 49%가 맛있는 물이라고 평가한 것(그래프 맨위). 서울YWCA 조주은 소비자환경부 차장은 “수돗물의 물맛이 다른 물에 비해 더 맛이 좋거나 적어도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시음행사와는 별도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평소 마시는 수돗물이 맛있다.’는 응답(8%)과는 딴판이었는데,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크다는 증거다. 이런 현상은 설문조사의 다른 항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수돗물 안전성이 검증됐더라도 정수기나 생수를 사용하겠다.”는 응답이 44%인 반면 ‘수돗물을 그냥 마시겠다.’는 비율은 31%에 그쳤다. 심지어 ‘검사결과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응답도 25%에 달했다. ●“내년부터 가이드라인 시행” 환경부가 수돗물의 안전성 홍보에 치중하는 대신 ‘맛있는 수돗물’ 만들기로 방향을 전환키로 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최문규 사무관은 “삶의 질이 예전보다 향상되면서 수돗물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기준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는 수질기준 만족 등 위생·안전성 여부가 주된 관건이었지만 갈수록 불쾌한 맛과 냄새 제거 등 맛있는 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 6월부터 ‘맛있는 물 가이드라인’ 작성을 위한 포럼을 6차례 개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 지난 5일엔 한국상하수도학회 주최로 공청회도 열었는데,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등을 모두 반영해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는 물’을 맛있는 물의 기준으로 잠정 설정한 상태다. 이를 위해 불쾌한 맛을 내는 염소냄새 제거를 위해 수돗물에 포함된 잔류염소 함유량을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한 최대한 떨어뜨리겠다는 입장이다. 수도꼭지 수돗물에서 ℓ당 0.2㎎ 이상의 염소가 포함되도록 한 현행 수도법의 개정도 고려 중이다. 흙냄새나 곰팡이 냄새 등을 유발하는 미생물 제거를 위해 별도의 수질기준 항목을 만드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최 사무관은 “미국이나 일본 등은 수돗물 정수장 등에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수질기준 이외에 별도의 ‘2차 수질기준’을 마련해 권고기준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맛있는 물 가이드라인’을 연내 확정해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일단은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맡길 계획이지만, 일반 주민들로 구성된 패널을 운영해 수돗물의 맛을 평가토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씨줄날줄] 발코니/염주영 수석논설위원

    우리나라 도시거주자의 45%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주거생활의 편의 면에서 단독주택은 아파트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도시는 갈수록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숲으로 변해간다. 금방 질식할 것만 같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소통시켜주는 숨구멍이 필요하지 않을까. 단절된 내부와 외부 공간을 연결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발코니가 그런 기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발코니는 ‘발판’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balcon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원래는 교회나 대형극장의 2층 객석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이후 호텔 등에 도입되어 휴식과 조망 등을 위해 건축물의 외부에 달아내어 만든 것이 오늘날의 발코니다. 주위에 난간(欄干)을 둘러친 것으로 보통 2층 이상에 설치한다. 지붕이 없다는 것이 베란다와 다른 점이다. 건물의 외관상으로 볼 때는 장식적 요소가 되며, 옛날에는 권력자가 군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최적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는 전용 정원이 없는 아파트에 바깥 공기와 접하는 유일한 장소가 되고 있다. 즉, 거실의 연장으로써의 리빙 발코니는 유아(幼兒)의 놀이터나 일광욕, 휴식, 조망, 분재 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돼 생활에 윤기를 주고 있다. 부엌에 연결되는 서비스 발코니는 주방의 보조공간(장독대나 세탁)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피난의 기능을 중시해 발코니 개조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파트의 발코니가 곧 사라질 것 같다. 정부가 발코니를 개조해 거실이나 침실 등으로 사용하는 것을 내년부터 허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평당 2000만∼3000만원대를 오르내리는 고급 아파트의 경우 5∼10평의 실내공간을 덤으로 얻게 됐으니 말이다. 이미 발코니를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 가구가 전국적으로 203만가구나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를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발코니 개조 합법화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발코니 없는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촌의 생활은 더욱 삭막하지 않을까. 내가 사는 아파트의 발코니를 개조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염주영 수석논설위원 yeomjs@seoul.co.kr
  • 고양시 “홍보비 내십시오”

    “조형물에 대한 홍보비를 내십시오.”“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에 설치된 한국토지공사 조형물에 대해 고양시가 홍보비를 요구하고 나서자 토지공사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4일 경기도 고양시와 토지공사에 따르면 고양시는 지난달 15일 ‘토공이 설치한 석재 조형물 2개에 새겨진 ‘토공 로고’와 ‘캐치프레이즈’를 고양시의 홍보물로 바꾸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토공에 보냈다. 토공이 이를 거부하면 홍보비를 징수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공문을 접수한 토공은 고양시의 요구에 응할 수도, 응하지 않을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 달이 다 되도록 회신을 못하고 있다. 고양시가 문제삼은 조형물은 호수공원 제3주차장 옆에 세워진 자연석 형태의 가로 4.5m, 세로 1,5m 크기 표지석과 한울공원 광장 호숫가에 호수공원의 연혁을 담아 세운 6m×2m 크기의 시호석. 표지석엔 ‘국토사랑 나라사랑’이란 토공의 캐치프레이즈와 붉은색 토공 로고,‘한국토지공사’란 글자를 새겼고 시호석에도 로고와 공사 명칭이 새겨져 있다. 또 한울공원 광장 후면에 세워진 높이 3m의 원뿔형 분수는 그 자체가 토공의 로고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설물은 토공이 호수공원 조성공사를 수주,1995년 말 완공하면서 설치해 고양시에 기부채납했다. 고양시 공원관리사업소 관계자는 “표지석 등의 설치비용은 공사비 255억원에 포함된 것으로 소유권이 고양시에 있다.”며 “시민들로부터 ‘시 재산을 토공의 선전물로 존치시키면 안 된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시 세수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 협조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호수공원의 연간 내방객이 200여만명에 이른다.”면서 “토공 로고와 캐치프레이즈를 지우고 고양시 것으로 바꾸기 위한 예산 1000여만원을 이미 내년 예산에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고양시는 토공이 로고 등의 교체에 응하지 않으면 전문기관에 의뢰, 분수를 포함한 토공 시설물의 직·간접 홍보비를 산출해 토공에 요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 서울지역본부 김용구 총괄차장은 “고양시 요구는 전례없는 일로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홍보물로 인정할 경우 전국에 산재한 토공 택지개발지구나 지구내 도로 등에 설치된 로고와 캐치프레이즈 시설물에 대해 전국의 자치단체가 고양시와 같은 요구를 해올 수 있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차장은 “주택공사와 일반 건설회사 등도 이같은 요구를 받으면 파장이 더욱 커진다.”면서 “고양시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광명 음악밸리축제’ 성공 이끈 음악평론가 박준흠씨

    ‘광명 음악밸리축제’ 성공 이끈 음악평론가 박준흠씨

    지난 주말, 경기도 광명시는 음악에 흠뻑 취했다. 강렬한 록 비트와 감미로운 포크 선율이 하루종일 광명의 하늘에 넘실거렸다. 전국에서 모여든 20만 관객들은 30여년을 아우르는 한국 음악의 성찬 앞에서 내남없이 한데 어울렸다. 척박한 음악환경에서 피어난 한송이 꽃이라고나 할까. 광명을 ‘음악도시’로 색칠한 광명음악밸리축제를 이끈 주인공은 바로 음악평론가 박준흠(39)씨다. 음악팬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는 대중음악전문지 ‘서브’의 편집장이자 웹진 ‘가슴’을 이끌고 있는, 국내에 몇 안되는 음악평론가다. 이번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기획과 진행 등을 도맡으면서 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썼다. ●20만명 음악축제에 빠지다 광명음악밸리축제는 사경을 헤매고 있는 대중음악계로서는 ‘기이’하면서도 ‘축복’ 같은 행사였다.‘음악도시 광명 3일간의 음악축제’라는 부제로 7일부터 사흘동안 ▲싱어송라이터 전문 음반사인 하나뮤직 스페셜과 밸리초이스 ▲인디뮤직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라는 큰 줄기로 치러졌다. 출연진은 우리의 대중음악 역사를 모두 아울렀다. 한국 포크의 역사 한대수·조동진과 민중음악의 뿌리깊은 나무 노래를 찾는 사람들, 기타리스트 이병우, 인디밴드 허클베리핀 등 80개 팀이 함께했다. 전국에서 모인 20만명의 다양한 관객들은 이에 화답하듯 인근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주무대가 있던 광명시민운동장을 매일 가득 메웠다. 이번 축제의 부제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다.‘좋은 음악창작자는 좋은 앨범을 만든 사람’이라는 당연한 명제가 통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아프게 반영한다. 박씨는 “존중받아야 할 음악가들이 걸맞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한 자리에 모셨다.”면서 “음악인들도잘 모르는 노동음악가 연영석씨의 노래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을 보고 ‘진정성 있는 기획은 통하는구나.’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지역 문화축제의 모범 이번 축제는 음악 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와 더불어 지역 문화축제의 모범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광명을 음악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백재현 광명시장의 의지도 큰 몫을 했다. 광명음악밸리축제는 대공연장과 음악 유통·교육·기획시설, 클럽 등을 갖추게 될 광명의 ‘음악밸리’ 사업을 알리는 행사다. 이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 이번 축제를 통해 광명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던 사람들도 광명시의 ‘팬’이 됐다. 더구나 하이서울페스티벌 등의 행사비용보다 적은 5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 수가 아닌 행사의 질로 승부하는 도시 이미지 마케팅을 경험하지 못한 시의회와 관료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민중음악이나 인디음악을 하루종일 공연하면 누가 오겠냐.’는 비난이 많았다. 지역 예술단체를 앞세워야 한다는 ‘외압’도 있었으며, 예산 문제로 심야 음악영화제를 열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러나 문화기획의 전문성에 대한 주위의 신뢰가 있었기에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음악은 삶을 위로할 수 있어야 박씨의 이력은 음악애호가에서 전문가로 변한 전형이다. 음악을 좋아하던 형과 누나를 둔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록의 ‘세례´를 받았다. 광운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것도 음향 엔지니어를 꿈꿨기 때문. 결국 LG정보통신연구소, 케이블TV 등을 거쳐 95년 음악기획자 겸 평론가로 들어섰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한 고교 시절은 암흑의 80년대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의식에 민감했던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박씨는 “독재정권과 억압적인 학교 시스템을 견디는 창구가 음악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삶의 일부다. 때문에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창작행위도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번 축제 때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공공미술 프로그램 등을 포함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상을 외면한 음악은 장식물에 불과하다. 나 역시 ‘왜 이렇게 생계가 힘들까.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구나.’라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음악은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척박한 우리나라를 정상적으로 바꾸는 데 일조해야 한다. 훈장처럼 과거의 경력을 들먹이는 사람들은 허클베리핀이나 연영석의 노래를 듣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화려한 생활만을 노래하는 ‘엔터테이너’들이 점령한 가요판을 비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인디음악을 이번 축제의 중심인 토요일에 배치했다. 작품성과 삶에 대한 진정성을 겸비한 인디음악의 10주년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최근 물의를 일으켰던 펑크밴드 럭스를 공중파에 추천한 것도 그다. 앞으로의 목표는 음악 배급, 행정, 정책 등 제작인력을 키우는 것. 한국 음악계는 ‘산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낙후돼 있다. 박씨는 “문화정책은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음악인프라 구축과 함께 대중음악이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는 문화시스템 기획자로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광명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66년 서울 출생 ▲85년 광운대 전자공학과 입학 ▲95년 LG정보통신연구소, 케이블채널 GTV 등에서 근무하다 음악평론가로 전업 ▲98년 1월∼99년 3월 대중음악 전문지 서브 편집장 역임 ▲99년 8월 음악전문서 ‘이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교보문고) 출간 ▲99년 10월 대중문화 비평 전문웹진 ‘가슴’ 창간 ▲2000년 3월∼2002년 1월 인터넷방송국 쌈넷 방송국장 역임 ▲2005년 3월 광명음악밸리축제 음악감독 취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정감록’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음양오행설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양과 오행은 별개다. 사전에서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 삼라만상을 음과 양이 자라나고 없어지는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음양설이다. 음양설의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이치로 설명하는 것이 다름 아닌 오행설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 이것이 음양오행설이다. 이를 줄여서 음양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온갖 종류의 예언과 점에 음양설이 남긴 자취는 뚜렷하다.‘정감록’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역술가들은 모든 사물을 음양과 오행으로 풀이해 상생 또는 상극관계를 찾아낸다. 달리 말하면 점치고자 하는 어떤 사물이 있을 때 이름, 빛깔, 형태 및 성질을 음양 또는 오행으로 구별해 점괘를 벌려놓는 것이다. 그 방법은 우선 사물에 각기 하나의 숫자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추수(推數)라 한다. 점을 치려면 이를 다시 5진법(오행) 또는 2진법(음양)으로 번역한다. 그런 다음 최종적으로 길흉을 판단한다. 음양설을 신봉하는 역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5진법과 2진법으로 환산된 사물의 상생 또는 상극관계다. 그들에게는 구약 성경에 가끔 선보이는 신의 계시 같은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역술가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호박의 색깔이 붉다 해서 양이요 화(火)로 치부한다면, 이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서북의 술사들, 왕조의 운명을 추수(推數)하다 ‘정감록’을 구성하는 여러 예언서 가운데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이 있다. 무학대사가 추수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듣기는 어렵다. 이 책에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이어 삼한이, 그 다음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가 등장한다.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조는 당연히 조선이다. 신라를 우리역사의 큰 흐름에서 제외한 점으로 볼 때, 서북지방 술사들의 손끝에서 나온 예언서가 아닐까 한다. 그들은 기자조선과 고구려 또는 고려를 강조하는 경향이 유별났다. 역시 ‘정감록’에 실려 있는 ‘역대왕도본궁수’란 것도 비슷하다. 여기에는 단군조선을 빼놓고 기자조선으로 우리 역사의 처음을 삼았다. 이어 삼한이 등장할 법하지만 그 대신 어쩐 일로 신라를 등장시켰다. 신라에 이어 고구려와 고려가 연달아 나온다. 고려를 고구려의 후계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려의 뒤를 이어 조선이 추수돼 있는데, 이 점은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과 동일하다. 그러나 두 예언서가 추수한 결과는 다르다. 먼저 언급한 예언서에서는 조선왕조를 4745로 추수했다. 나중 것은 9357로 보았다. 전혀 다른 숫자가 동일한 왕조의 운을 예언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자. 전자는 “음으로 음에 이바지하니 왕씨보다 수명이 부족하다. 양을 합하고 양을 잉태했으므로 마지막은 삼한과 경우가 같아 불(火)에 속해 물(水)을 꺼린다.”고 했다(동국역대). 이에 비해 후자는 조선의 운세를 이렇게 점쳤다.“상(象)을 보니 앞이나 뒤가 모두 금(金)이다. 숫자를 놓고 볼 때 위나 아래나 모두 불(火)이다. 공자의 도가 무력에 굴복해 마침내 번신(藩臣)이 되고 말리라. 양으로 음에 이바지하니 도둑이 궁궐을 불태울 것이고, 음을 합하고 음을 잉태하므로 덕도(德島)에 군사를 보내리라.”(역대왕도) 조선 왕조의 운명에 관한 두 예언서의 점괘는 판이했다.‘동국역대’는 음으로 음에 이바지하므로 수명이 짧다 했지만 ‘역대왕도’는 그와 정반대였다. 양으로 음에 이바지해 도둑이 궁궐을 불태운다 했다. 이뿐인가.‘동국역대’는 양을 합하고 양을 잉태한다 했으나,‘역대왕도’는 음을 합하고 음을 잉태한다고 풀이했다. 이처럼 추수하는 것, 달리 말해 사물의 이름·형태와 성질에 따라 일정한 숫자를 부여하는 행위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다. 둘 중의 하나가 옳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추수 행위 자체가 억지일 수도 있다. 예언의 결과를 두고 평가한다면 조선왕조의 수명이 고려보다 짧다고 했기 때문에 ‘동국역대’는 완전히 틀린 셈이다. 고려왕조는 34대 474년 동안 유지됐고, 조선의 역년은 27대 518년이었다. 그밖에도 ‘역대왕조’는 조선이 숭문(崇文)에 힘쓰다가 결국 남의 나라의 속국이 된다든가, 역적(도둑)이 궁궐에 불을 지른다는 둥 제법 그럴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역대왕조’의 예언이 맞았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동국역대’는 조선왕조가 망할 징조를 드러내기 훨씬 전에 쓰였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대왕조’는 왕조의 패색이 짙어가던 19세기말의 저작일 수가 있다. 이런 의혹은 ‘정감록’을 연구하면서 몇 차례 제기된 문제다. 어떤 예언서의 내용 가운데 용케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은 실상 지난 일을 마치 예언처럼 꾸며놓은 것으로 봐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예언은 무조건 다 틀린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에 들어맞는 수도 있다. 우연히 적중하는 수가 있고, 동일한 문구라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실과 부합되어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수수께끼 같은 편년체 예언서 “원계용처 수맹구(猿鷄用處 隨猛狗)”란 정감록 예언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 ‘칠언고결’이란 예언서의 한 구절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원숭이와 닭이 쓰이는 곳에 사나운 개가 따라간다.’는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제시기 역술가들은 이 구절을 기발하게 해석하기도 했다. 원숭이는 신(申)년, 닭은 유(酉)년, 개는 술(戌)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개해의 운세가 몹시 사납다고 풀이했다.1944년은 마침 갑신년이었다. 어떤 역술가들은 그 해 운세가 을유년인 1945년과 비슷하다고 보았고,1946년 병술년은 몹시 흉하다고 예언했다. 알다시피 한국은 1945년 일제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었다. 해방된 해를 1944년과 마찬가지라고 본 것은 누가 보아도 전혀 틀린 예언이었다. 그러나 1946년이 1945년보다 나쁘다고 예측한 것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신빙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예언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칠언고결’의 한 대목을 예로 꺼내든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18세기 이후 한국의 예언서가 대체로 편년체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조선 전기나 고려시대의 예언서는 한시 또는 무슨 운문체의 사부(辭賦)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것들이 대종을 이뤘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마냥 편년체 연대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전형적인 것으로 ‘서계이선생가장결’이 있다.‘무학비결’도 부분적으론 역시 마찬가지다.‘무학비결’의 일절을 보면,‘기사년에는 쥐처럼 훔치는 도둑을 면하기 어렵다. 경오년에는 용이 슬피 우는 것을 보리라.’고 했다. 기사년에 간신이 조정에 들어와 경오년엔 임금이 엄청난 곤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꼭 이런 식으로 매년 일어날 정치적 사건을 간결한 문체로 요약했다. 편년체 역사를 방불케 한다. 편년체라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자치통감강목’이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가 쓴 책이다. 기원전 403년부터 시작해 서기 96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분별해놓고, 매년 중요 사건을 대요와 세목으로 등급을 엄격히 정해놓고 쓴 것이다. 본래 주자는 대요만 썼다 하며 나중에 제자 조사연(趙師淵)이 세목을 완성했다 한다.‘자치통감강목’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보다는 의리(義理) 관계를 따지는 데 치중했다. 자연히 사실관계가 너무 단순히 처리됐고, 그 과정에서 앞뒤가 모순되거나 틀린 서술도 적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성리학자들의 도덕사관이 도처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역사서인데,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적인 교양서적이었다. 대부분 평민 지식인이던 술사들 역시 ‘자치통감강목’을 읽었다. 그 탓인지 혹은 그 책이야말로 역사책의 전형이라 믿었기 때문인지, 술사들은 “미래의 역사”를 담는 그릇으로 편년체를 선호했다. 도덕적인 평가가 담긴 간단명료한 예언이야말로 ‘정감록’을 비롯한 조선후기 예언서의 뚜렷한 특색이다. 성리학적 지배질서에 반항하던 술사들도 성리학이 이룩한 문화의 코드를 이용했다. 그러나 예언서가 ‘자치통감강목’은 아니다. 예언서는 본질적인 면에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에 관한 추정인 만큼 표현방식이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앞에 예로 든 ‘원숭이와 닭이 쓰이는 곳에 사나운 개가 따라간다.’는 간단한 구절만 해도 그렇다. 술사들은 이 한 줄로 미래의 어느 시기 3년간의 운세를 점쳐 놓은 것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음양오행설이 예언서의 상징적인 표현과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칠언고시’에 ‘세치백룡 인하거(歲値白龍 人何去) 약탐사미 필흉잔(若探蛇尾 必凶殘)’이란 짤막한 구절이 있다. 우리말로 옮겨보면 대강 이런 뜻이다.“해가 백룡을 만나면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 만일 뱀의 꼬리를 만진다면 흉도(폭도)가 반드시 잔인해질 것이다.” 번역은 되었으되 이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백룡’이니 ‘뱀의 꼬리’ 같은 상징적 표현 때문이다. 백룡은 경진년(庚辰年)이다. 그 까닭이 궁금한 사람도 있겠다 싶어 약간 설명을 보탠다. 천간(天干)을 오행으로 배열하면 경(庚)과 신(辛)은 쇠(金)이다. 쇠는 색깔로 치면 하얀(白) 것이 되고, 방향으로는 서쪽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진(辰)은 곧 용이다. 따라서 백룡은 경진년이다. 백룡을 만났다 함은 경진년이 된다는 뜻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고 물은 것은 그 해의 처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어서 나오는 ‘뱀의 꼬리’란 경진년 다음해인 신사년 말을 가리킨다.‘흉도가 반드시 잔인해질 것이다.’고 했으므로, 그 해 연말에 거사를 일으키면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흉잔(凶殘)’을 흉하고 잔하다 즉, 길하지 못하고 잔약하다 또는 망한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후자의 경우라면 거사를 했댔자 쓸모없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세 글자를 놓고 완전히 상반된 해석이 양립한다. 지금 인용한 문제의 예언을 두고 많은 역술가들은 이렇게 보았다. 경진년(1940)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할 것이며, 그 결과 한국 사람들은 설 곳이 없다고 해석했다. 과연 그 해에 일제는 한국인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중국에서는 잇따른 일본군의 공격으로 중국정부가 궁지에 빠져버린 바람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시 충칭으로 옮기는 일대변동이 일어났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떤 역술가들은 이듬해인 신사년(1941)에 독립운동을 했댔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하지만 ‘정감록’은 본디 조선왕조의 멸망을 염두에 두고 저술된 예언서였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의식한 예언서는 아니었다. 신사년에 관한 해석에서 보듯 ‘정감록’은 본래의 저술의도와는 무관하게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될 수도 있는 신축성을 과시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기독교 신도들은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를 읽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개탄했고,‘요한계시록’을 외며 언젠가 찾아올 해방을 염원했다. 하필 ‘정감록’만 상징적인 고무줄 예언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기독교의 예언서와 ‘정감록’이 동질적이란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계통에 속했지만 공통된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축성이야말로 예언서의 운명이다. ●자꾸만 되풀이되는 비슷한 구절 예언서 ‘정감록’엔 음양오행설로 포장된 상징이 즐비하다. 휴전선 안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곳은 지뢰탐지기가 없이는 누구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상징체계를 풀어헤칠 도구가 없이는 ‘정감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상징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앞에서 인용한 ‘해가 백룡을 만나면 ….’이라는 구절과 흡사한 내용이 ‘정감록’ 안에서 또 발견된다.‘오백년논사비결’엔 ‘세우백호 인하거(歲遇白虎 人何去) 약탐사미 필잔흉(若探蛇尾 必凶殘)’이라 했다.‘경인년을 만났으니 사람은 어디로 갈거나. 뱀해 말엔 반드시 흉도가 잔인성을 발휘하리라.’는 뜻이다. 뱀 꼬리라면 계사년이다. 이 대목을 두고 역술가들은 6·25의 참극을 정확히 맞혔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경인년은 전쟁이 터진 1950년이고, 계사년은 가까스로 휴전협상이 마무리된 1953년으로 국내의 상황은 무척 불안했다. 참 신기한 노릇도 있다.‘조선왕조실록’에서 ‘정감록’ 사건을 샅샅이 조사해보면, 지금 문제로 삼고 있는 구절이 이미 순조26년(1826)에도 이미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사실이 확인된다.‘세월이 백룡(白龍)을 만나면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歲遇白龍人何去). 해(年)가 사미(蛇尾)를 만나면 반드시 흉도가 잔인해질 것이다(年逢蛇尾必凶殘)라는 괴상망측한 시를 퍼뜨렸다.’는 혐의로 술사 정상채 등이 체포됐다. 그 때는 백룡 즉, 경진년(1820)이 지난 지도 6년이나 된 시점이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채는 문제의 구절을 순조11년(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 난과 관련지었던 모양이다.16년 전 평안도 정주 등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홍경래가 아직 살아 있다며 정상채는 이 구절을 인용했다. 아울러 그는 홍경래 일파야말로 역적이 아니라 중국역사에 견주어 말하면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진승 등은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농부였다. 정상채는 결국 체제부정적인 유언비어를 살포한 죄로 사형을 받았다(실록, 순조 26년10월27일 을해). 사실 ‘백룡’이니 ‘사미’니 하는 용어가 예언서에 포함된 유래는 생각보다 깊다. 영조24년(1748)년 5월 청주에서 발생한 ‘정감록’ 사건 때도 용과 뱀 꼬리가 거론됐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용두(龍頭)’와 ‘사미(蛇尾)’였다. 해석하는 방식 역시 위에서 살핀 것과 마찬가지다. 용은 곧 진(辰)해, 뱀은 곧 사(巳)해며, 두(頭)는 정월(正月), 미(尾)는 곧 연말인 12월로 보아 뱀해 초나 뱀해 말에 난리가 일어난다고 했다. 음양설에 기초한 예언의 뿌리는 이렇게 깊고 질기다. 정감록의 원본이라고 하는 ‘감결’에는 문제의 구절을 약간 변형시킨 대목이 있어 다시 눈길을 끈다.‘남도교룡 금안재(南渡蛟龍 今安在) 수종백우 주종성(須從白牛 走從城)’이라 했다. 해석해보면,‘남쪽으로 간 이무기와 용은 지금 어디로 갔나. 신축년이 되자 틀림없이 종성으로 달아났도다.’는 것인데, 기발한 풀이가 있다. 이무기와 용이란 영물인데 이것이 남쪽 즉, 남한으로 들어와 신축년(1961)부터 민족중흥에 앞장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제3공화국을 세워 조국근대화 사업을 달성하리란 예언이 정감록에 있다는 해석이다.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매우 위험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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