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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마시면 선배에 보고·에어팟 금지…신입생 공지 논란

    술마시면 선배에 보고·에어팟 금지…신입생 공지 논란

    전북 한 대학서 신입생 ‘군기 잡기’ 논란학교 “진상 파악 중…적절한 조치할 것” 전북 지역 한 대학에서 신입생에게 시간대별 연락 요령을 숙지하도록 하고 복장 규정을 강요한다는 글이 게시돼 ‘군기 잡기’ 논란이 일고 있다. 학교 측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지난 11일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전북 한 대학의 악습을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 게시자가 “신입생 공지 내용”이라며 공개한 단체 대화방 캡처 화면을 보면 이 글은 ‘신입생이 캠퍼스 내에서 지켜야 할 것’을 연락 양식, 복장 양식, 인사 양식 등 3가지로 나눠 안내하고 있다. 먼저 연락 양식은 신입생이 선배에게 연락할 때 쉼표, 물음표, 느낌표 등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0시∼09시에 연락할 때는 ‘이른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이라는 표현을, 21시∼0시에 연락할 땐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 술을 마실 때면 반부대(반 부대표)에게 연락하고 반부대는 이를 선배에게 알리도록 했다. 어디서 누구와 몇 시부터 술을 마시는지를 선배들에게 보고할 것과 귀가 시 연락할 것도 명시해놓고 있다. 복장 양식은 마치 1980년대 복장 규제를 연상케 했다. 찢어진 형태의 바지나 스키니, 슬랙스 바지 금지, 귀가 보이게 머리 묶기, 구두·키 높이 운동화 금지에 강의 시간 등을 제외하고 캠퍼스 내에서 에어팟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네티즌들은 해당 글에 5000개에 가까운 댓글을 달고 대학가의 이런 군대 문화를 성토했다. 네티즌들은 “학교 망신 다 시킨다”, “이런 문화 때문에 대학 가기가 싫어진다”, “요즘 군대도 이렇지는 않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해당 대학 관계자는 “이런 글이 SNS에 게시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총학생회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는 중”이라면서 “글 내용이 사실이라면 건전한 학내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구속 보단 제구” AL 타선 잠재울 류현진의 무기

    “구속 보단 제구” AL 타선 잠재울 류현진의 무기

    “구속 낮다” 질문에 자신의 강점 어필제구 되는 6개 구종… 타자 교란시켜 어려서부터 제구 강조한 아버지 영향송재우 “류, 커맨드 좋아 적응할 것” “투수는 구속보다 제구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난 28일(한국시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자신의 제구력으로 아메리칸리그(AL)의 강타선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류현진은 이날 열린 입단식에서 한 기자가 구속이 빠르지 않다는 단점을 언급하자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가운데 던지면 홈런을 맞을 수 있다. 스피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던졌고 지금도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단점에 신경 쓰는 대신 자신의 성공 비결이었던 장점에 더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류현진이 새로 둥지를 튼 AL은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NL)에 비해 타자 친화적인 구장과 공격적인 성향으로 인해 타선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류현진도 그동안 NL 구단들을 상대로 통산 111경기에서 50승 29패 평균자책점 2.86로 강했지만 AL 팀을 상대로는 통산 15경기에 등판해 4승 4패 평균자책점 3.84의 성적으로 상대적으로 약했다. 특히 지난 8월 뉴욕 양키스와의 맞대결에서 4와3분의1이닝 7실점으로 올해 가장 부진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과거 성적에 비춰보면 류현진의 AL행에 물음표가 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토론토가 속한 AL 동부지구는 DJ 르메이휴(양키스·0.327), 라파엘 데버스(보스턴 레드삭스·0.311) 등 AL 타율 상위 10명 중 4명이나 포진해있을 정도로 강타선으로 유명하다.그러나 류현진은 자신의 장점으로 물음표를 자신있게 지우겠다는 태세다. 스트라이크존의 보더라인을 넘나드는 류현진의 제구력은 올해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32로 전체 1위에 오르는 무기가 됐다. 류현진은 올해 탈삼진이 163개로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280개(전체 7위)의 땅볼을 유도해 뜬공 대비 땅볼 비율이 1.11(7위)에 달할 정도로 타자들을 잘 유인했다. 직구 평균 구속이 90.7마일(시속 145.9㎞)로 빠르지 않았지만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과 완급조절 덕분이었다. 타자들은 류현진의 공을 방망이의 중심에 제대로 맞추기 어려워했고, 류현진은 위기 때마다 병살을 유도해내며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야후스포츠 캐나다’의 앤드류 주버 기자 역시 지난 28일 “류현진이 전통적인 무기(구속) 없이도 성공했다는 게 인상적이다”면서 “그는 핀포인트 제구력으로 직구, 커터, 싱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까지 6구종을 던지는데 5가지 구종을 각각 최소 12% 비율로 구사하면서 타자들의 밸런스를 무너뜨린다”고 분석했다. 이어 “류현진은 공짜 출루에도 인색해 볼넷 비율이 3.3%로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류현진은 한국 무대에 있을 때부터 제구력을 강조해왔다. 한화 이글스 시절에도 피홈런에 대해 질문이 나올 때면 류현진은 “볼넷보다는 차라리 홈런이 낫다”는 말을 종종 꺼내기도 했다. 이러한 류현진의 모습은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단련시킨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류현진은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홈런을 맞더라도 볼넷을 주지 말라. 볼넷은 최악이다’라는 말을 노래삼았다”면서 “어린 시절에도 홈런을 맞으면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들었지만 볼넷을 허용한 날이면 어김없이 호된 꾸중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 위원은 2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류현진이 워낙 커맨드가 좋은 선수라서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을 것”이라면서 “아메리칸리그에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경기 표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천재형 투수인 류현진이 작년부터 상대 타선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는 느낌이 있다”면서 “본인이 지난 2년 동안 보인 모습만 유지한다면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초콜릿’ 서서히 스며든 윤계상♥하지원, 심쿵 모먼트 셋

    ‘초콜릿’ 서서히 스며든 윤계상♥하지원, 심쿵 모먼트 셋

    ‘초콜릿’ 윤계상과 하지원이 웰메이드 감성 멜로의 진가를 선보이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연출 이형민, 극본 이경희, 제작 드라마하우스·JYP 픽쳐스)이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어가는 이강(윤계상 분)과 문차영(하지원 분)의 따뜻한 설렘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첫 만남부터 남달랐던 이강과 문차영의 인연은 오해와 엇갈림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재회한 호스피스에서 서로의 아픔과 진심을 이해하며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 언제나 올곧게 이강을 향해있는 문차영과 이끌림을 자각한 이강은 숨길 수 없는 마음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서로에게 향하는 걸음은 느리지만, 그래서 매 순간의 설렘이 깊고 진하게 울림을 남긴다. 반환점을 돈 두 사람의 인연이 2막에서 어떤 변화를 맞을지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는 가운데, 거리를 좁혀가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강과 문차영의 ‘심쿵’ 모먼트를 짚어봤다. #“짜장면 같이 먹을래요?” 딱 한걸음, 가까워진 거리! 닫혀있던 마음의 문 열었다! 호스피스에서 재회한 문차영과 이강. 돌아온 시간만큼 쌓인 오해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병원의 규칙을 어기고 문차영이 김노인(오영수 분)과 외출을 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이강은 “난 여기 오래 있지 않을 겁니다. 그때까지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냉정히 말했다. 그리스에서 문차영의 남자친구로 오해했던 문태현(민진웅 분)이 동생인 것도 알게 된 이강은 직접 만든 짜장면을 들고 상심한 김노인을 위로하려던 문차영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을 버린 아들을 기다리느라 매일 짜장면을 먹었던 김노인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문차영과 이강은 중국집에서 마주쳤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김노인을 애도하는 진심을 나눈 두 사람. 비로소 오해를 딛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이강은 문차영에게 “짜장면 같이 먹을래요?”라고 제안했다. 이강과 문차영은 켜켜이 쌓여있던 오해 속에 닫혀있는 마음의 문을 열었다. 딱 한 걸음, 가까워진 거리가 설렘의 시작을 알렸다. #“생일 축하해요. 아프지 말아요. 특히 생일엔” 상처를 치유하는 진심 어린 위로 자신도 모르게 문차영을 신경 쓰기 시작한 이강은 그의 아픔과 상처까지 바라보게 됐다. 생일은 끔찍한 기억이었다고 고백한 문차영. 이강은 그녀가 붕괴사고의 생존자이며 트라우마로 오랜 시간 고통받아왔음을 알게 됐다. 같은 사고로 이강은 어머니를 잃었다. 어쩌면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고 있을 터. 호스피스에서의 첫날, 품 안으로 쓰러진 문차영이 절박하게 살려 달라 외친 이유를 알게 됐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문차영을 직접 찾아 나설 만큼 이강의 마음은 어느덧 달라져 있었다. 홀로 어머니의 기일을 기리던 이강은 문차영과의 사이에 선을 긋지 않고 자리 한켠을 내줬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에게 아픈 날이지만, 이강은 자신보다 문차영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아프지 말아요. 특히 생일엔”이라고 툭 내뱉은 말 속에 담긴 깊은 위로는 문차영의 오랜 상처에 치유의 온기를 나눠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에 손을 내민 두 사람 사이에 따스한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당신 찾아 온 산을 뒤지면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 이끌림 자각! 새어 나온 진심 이강은 어느덧 자신에게 스며든 마음을 처음으로 자각했다. “자꾸 사람을 걱정시키고 신경 쓰이게 하는” 문차영을 향한 자신의 마음에 물음표를 던졌고, “민성아, 내가 또 길을 잃은 것 같다”며 혼란스러워했다. 스스로의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 이강이지만. 산딸기를 따러 간 문차영이 돌아오지 않자 망설임 없이 그녀를 찾아 나서는 그의 행동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두운 밤, 전등 하나를 들고 산을 헤매는 절박한 마음은 이미 문차영에게로 닿기 시작한 이강의 마음을 보여줬다. 늘 환자의 일에 제 일처럼 나서다 위험을 자초하는 문차영에게 “당신 찾아 온 산을 뒤지면서 내가 얼마나 걱정을”이라고 무심결에 속마음을 드러낸 이강. 아직 서로를 향해 헤매고 있지만, 진심은 선명해졌다.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내린 이강의 진심은 떨림의 진도를 높였다. 한편 반환점을 돌아 2막을 앞둔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 9회는 오는 27일 금요일 밤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그래서 연말에 무슨 영화를 봐야 하냐고요?

    그래서 연말에 무슨 영화를 봐야 하냐고요?

    이른바 연말 텐트폴 영화(유명 감독과 배우에 거대 자본을 투입해 제작한 영화)의 습격이다. 마동석·박정민·정해인 주연의 ‘시동’이 지난 18일 개봉한 데 이어 이병헌·하정우 투톱에 마동석이 또 나오는 블록버스터 ‘백두산’도 19일 개봉했다.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최민식·한석규 콤비의 ‘천문’은 크리스마스를 하루 지난 26일 개봉한다. 남성 콤비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들 영화들에 별점과 ‘케미’(케미스트리) 지수를 따로 매겨봤다. ●시동: 필연적이지만 간헐적인 웃음 시동 ‘노란 머리’ 반항아 ‘택일’(박정민 분)은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공부는 더더욱 싫은 ‘미운 열여덟’이다. 배구 선수 출신 엄마(염정아 분)에게 ‘1일 1강스파이크’라는 매를 벌다 1만원으로 갈 수 있는 곳 군산에 이르렀다. 거기서 만난 기묘한 중국집 ‘장풍반점’, 더욱 남다른 포스의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 분)을 만나 겪는 성장담이 ‘시동’의 주요 줄거리다.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필모그래피를 꽉 채운 박정민과 존재 자체가 웃긴 마동석이 만났다. 그러나 웃음이 필연적인 동시에 간헐적이라는 것이 ‘시동’의 한계다. 꽉 짜여진 스토리 라인으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비주얼이나 디테일로만 승부를 보기 때문이다. 전작 ‘유열의 음악앨범’에서도 반항하는 청춘이었지만 좀더 ‘멜로’한 인물이었던 정해인은 여전히 멜로스러운 눈빛 연기를 이어가 다소 불안하다. 어딜 가서 먹어도 실패는 없지만, 특별히 맛나지는 않은 짜장면 같은 영화. 별점 지수: ★★★ (5개 만점) 케미 지수: ★★☆ ●백두산: 압도적 스케일의 CG… 공감은 ‘글쎄’ 백두산이 폭발한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한반도는 아비규환이 되고,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추가 폭발이 예측된다. 사상 초유의 재난을 막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 분)은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 온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 분)의 이론에 따른 작전을 계획하고, 전역을 앞둔 특전사 대위 조인창(하정우 분)이 이 작전에 투입돼 북한으로 급파된다.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이병헌 분)과의 접선에 성공하지만, 오랜 세월 이중 스파이로 살아온 리준평은 자신만의 꿍꿍이가 있다. 영화를 꽉 채우는 것은 역시나 CG의 힘이다. 특히나 초반부 강남역 붕괴 신은 ‘그래, 정말 백두산이 폭발해서 지진이 나면 저런 피해를 끼칠 수도 있겠구나’하는 리얼리티를 끌어 올리며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순간 순간 이런 생각은 든다. 국가적 대위기 상황, 북한에 급파된 부대원들이 너무 희희낙락하는 것 아닌가? 리준평과 조인창 사이 피어나는 끈끈함은 조금 느닷없지 않은가? 이들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블록버스터 ‘백두산’을 보는 관건인데, 순간 순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가장 다급할 때 등장하는 지원군 같은 재난 영화 특유의 신파 공식도 살짝 지루하다. 별점 지수: ★★☆ 케미 지수: ★★★ ●천문: 뜻밖에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였던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세종이 탄 가마가 부서진 사건 이후,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 이후를, ‘봄날은 간다’를 만들었던 멜로의 거장 허진호 감독이 이어 붙였다. 영화 ‘천문’이다. 늘 함께였던 것만 같은 두 배우, 최민식과 한석규는 기실 ‘쉬리’ 이후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각각 장영실과 세종 역으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에서도 세종으로 열연했던 한석규는 8년 만에 다시 세종으로 돌아왔다. 최민식과 한석규의 연기에도 물음표는 필요 없다. 명나라 사신의 술상 앞에서 깽판치는 장영실의 춤사위에서는 모종의 신들림이 느껴지고, ‘엄근진’ 세종 대왕님의 입에서 가끔 터져나오는 욕지거리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하다. 눈길만 스쳐도 눈물이 그렁그렁, 애잔한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를 보고 기자시사회에서는 ‘멜로물’이라는 반응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나 7월 개봉한 ‘나랏말싸미’ 등 세종의 권력 투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국민에겐 너무 익숙한 듯하다. 오랜 세월 사극을 보아온 짬밥으로 엔딩 부분도 예측 가능한 것이 영화의 최단점. 별점 지수: ★★☆ 케미 지수: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서울대 수시, 폐지 예정 특목고 여전히 강세

    서울대 수시, 폐지 예정 특목고 여전히 강세

    지난 9일 발표된 서울대 수시 합격자 명단에서 출신 고등학교를 살펴보면 여전히 특수목적고가 강세입니다. 전체 합격자 2574명 가운데 50.5%가 일반계 고등학교 합격자라고 하지만 여전히 하나고, 대원외고, 외대부고, 대일외고, 한영외고 등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가 합격자 수 배출 수위를 차지했습니다. 서울대 합격생 배출 전통의 1위는 서울예고이며, 2위 하나고는 지난해 서울대 수시 최초 합격생 46명, 올해는 55명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3위는 대원외고로 지난해는 32명, 올해는 35명의 서울대 수시합격생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어 선화예고가 30명의 서울대 수시전형 합격생을 기록했으며, 외대부고는 지난해 37명, 올해는 30명의 출신 학생이 서울대 수시에 합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정부가 대학 입시에서 정시 비율을 확대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은 기존의 자사고, 외고 등 강자들의 기세가 여전합니다. 영재고와 과학고의 서울대 수시합격생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학고 비율은 지난해 6.5%에서 올해 5.2%로 줄었고, 영재고 비율도 10.9%에서 10.4%로 소폭 줄었습니다.특히 자사고와 외고는 오는 2025년 폐지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지만 하나고의 올해 입학 경쟁률을 보면 자사고 폐지 여부는 그리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울지역 자사고 가운데 가장 높은 경쟁률인 2.39대 1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경쟁률인 2.35대 1보다 상승한 것입니다. 사실 교육부에서 자사고와 외고 폐지 방침을 발표했을 때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더 많았는데 이는 폐지 시기가 이번 정권이 아닌 다음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5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물음표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설사 명목상 자사고와 외고란 이름은 뺏기더라도 학생 선발권한이 고등학교에 있다면 여전히 명문고란 위상은 유지할 것이란 분석입니다. 하나고 외 서울 시내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은 1.19대 1로 지난해 1.3대 1과 비교하면 소폭 하락했습니다. 모집 정원에 미달하는 학교도 일부 있었습니다. 경쟁률이 1.5대 1에 미치지 못하면 면접 없이 추첨만으로 선발하는 자사고도 있는지라 추첨으로 고등학교 당락이 결정된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지역 자사고 가운데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은 곳은 목동에 있는 한가람고로 여학생 경쟁률은 2.29대 1이었습니다. 용인에 있는 외대부고의 입학 경쟁률은 2.2대 1로 지난해 1.7대 1보다 상승했습니다. 경쟁률 상승 폭은 점점 학령인구가 줄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훨씬 더 높다고 봐야 합니다. 서울 강남의 한 자사고 교장 선생님은 대한민국은 헌법이 존재하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므로 자사고 폐지는 정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더군요. 그리고 입시설명회를 하는 진로 담당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기준선을 정해주셨습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합해 속칭 스카이로 불리는 세 개 대학의 신입생 약 1만 명과 의대·치대·한의대 전국 입학생 4500명, 그리고 2022년 부활하는 약대 입학생 1500명으로요. 이 기준선 안에 들어가서 약 1만 6000명 안의 대열에 합격하면 양극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승점 16점’ 다우디가 몰고온 우승의 꿈

    ‘승점 16점’ 다우디가 몰고온 우승의 꿈

    승점 16점. 다우디 오켈로 영입 후 현대캐피탈이 얻은 성적이다. 다우디의 합류 전 4승 6패 승점 11로 5위에 머물던 팀 순위도 어느새 3위로 수직상승했다. V리그 사상 전례가 없던 우간다 출신의 다우디가 리그를 뒤흔들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로 시작했지만 초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대체 선수로 다우디를 영입했다. 낯선 나라에서 온, 그것도 배구를 시작한 지 5년 밖에 안됐다는 선수에게 물음표가 달렸지만 다우디는 첫 경기부터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다우디는 매 경기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6경기 평균 득점은 22.83점이다. 평균 득점으로 따지면 안드레스 비예나, 가빈 슈미트, 펠리페 안톤 반데로 등 다른 팀 외국인 선수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다우디가 뛴 6경기에서 5경기가 3세트 셧아웃 승리 경기다. 다우디는 월등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높은 타점을 자랑한다. 스파이크 높이는 360㎝, 블로킹 높이는 345㎝에 달한다. 다우디의 탄력에 상대 선수들은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팀 동료 신영석은 “다우디는 높은 타점에서 공을 때리면서 상대의 블로킹이 힘들어 하도록 한다”면서 “역대급 라이트 공격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영석은 “연습 때는 다우디의 공격을 전혀 막지 못할 정도여서 앞으로 더욱 무서워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다우디 효과에 문성민과 전광인 등 토종 주포도 함께 살아나며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도 “다우디의 가세로 이제 현대캐피탈이 현대캐피탈다운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선두 대한항공과는 승점 6점 차.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다우디가 유일하게 부진했던 경기에서조차 풀세트 접전 끝에 승점 1점을 따냈다. 남은 경기마저 다우디가 지금의 활약을 이어간다면 지난 시즌 챔피언 현대캐피탈의 리그 2연패도 꿈만은 아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음향 사고가 무색했던… 바이올린 여제의 ‘베토벤 마법’

    음향 사고가 무색했던… 바이올린 여제의 ‘베토벤 마법’

    지난달 29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바이올린 여제’ 아네조피 무터(56)의 연주를 직접 들으러 온 관객들로 가득 찼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끝나고 장내 조명이 어두워지자 붉은 꽃 장식이 달린 검은색 롱드레스를 입은 무터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뒤엔 지난 30년간 늘 곁을 지킨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73)가 있었다. 무터가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오키스가 건반에 손을 올리자 관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숨소리마저 낮췄다. 그런데 그 순간 멀리서 “삐” 하고 높은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2·3층 객석과 1층 객석 뒤쪽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1층 무대와 가까운 좌석에서는 매우 크고 또렷하게 들리는 소음이었다. 이미 무터와 오키스가 공연 첫 곡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4번’ 연주를 시작한 직후였다. 두 연주자는 매우 빠른 템포의 1악장 연주를 주고받으며 베토벤 탄생 250주년 월드투어로 준비한 이번 연주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객석 좌측 앞쪽은 계속되는 소음으로 어수선했고, 무터의 바이올린도 오키스의 피아노 소리 안에 갇힌 듯했다. 첫 곡 1악장 연주가 끝나자 앞쪽 객석에 앉은 청중 10여명이 동시에 손을 들어 공연장 관계자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 소음은 3악장으로 구성된 4번 곡이 끝나고서야 멈췄다. 이후 소음 원인은 공연장 내부 공기 순환을 위해 가동하는 공조기 이상 탓으로 파악됐다. 1부 두 번째 곡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부터는 무터의 마법이 시작됐다. 무터의 활과 오키스의 건반은 서로 대화를 나누듯 조화롭게 음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무터는 때로는 강렬하고 날카롭게, 때로는 느슨하고 따뜻한 선율을 긁어내며 이른 봄을 불러냈다. 다소 어수선했던 첫 연주 탓에 그녀의 명성에 ‘물음표’를 품기 시작했던 청중도 ‘느낌표’를 켜고 한 음 한 음에 집중했다. 2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연주는 압도적이었다. 베토벤이 바이올린을 위해 쓴 곡이지만, 무터와 오키스는 마치 대형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이 지난 30년간 다진 호흡이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바이올린 활이 끊어지는 그녀의 격정적인 연주의 끝엔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청중은 객석을 떠날 줄 몰랐고,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갈채에 두 사람은 베토벤, 존 윌리엄스, 브람스의 연주곡 등 세 곡의 앙코르 연주로 화답했다. 콘서트홀을 빠져나오는 청중의 기억엔 연주 초반 음향 사고도 이미 지워진 듯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오후 2시 토론회, 오라는 거냐”… 청년들에 혼쭐난 황교안

    “오후 2시 토론회, 오라는 거냐”… 청년들에 혼쭐난 황교안

    “구색 맞추기 사진 찍으려 청년들 이용” “어디서 보수라 말하는 것 자체가 수치심” 정의당, 공천 20% 이상 청년할당 검토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청년정책을 발표하겠다며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청년들을 만나 예상치 못한 고강도 쓴소리를 들었다. 청년정책 발표를 듣고 난 대학생 A씨는 황 대표가 잇따라 내놓은 경제정책 ‘민부론’, 외교·안보정책 ‘민평론’을 모두 언급하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집권하지 않았을 때 추진할 수 있는 내용인지도 의문스럽다”고 일갈했다. 또 “참석한 분들 모두 한국당이 현실을 직시하는지, 개혁 의지가 있는지 직접 만나 확인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기대를 저버리고, 구색 맞추기로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청년들을 이용한 것이라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B씨는 “한국당을 지지하는 친구들은 ‘샤이 보수’가 아니고 ‘셰임 보수’라고 한다”며 “어디 가서 보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수치심이 든다고 한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전국 대학생들의 광화문 집회를 추진하고 있다는 C씨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공정인데 야당의 대안은 여전히 물음표”라고 했다. 이어 “공관병 갑질 박찬주 영입 등 계속 청년의 신뢰를 잃는 행보를 하면서 어떻게 청년의 지지를 얻으려는지 의문”이라고 직격타를 날렸다. 이에 황 대표도 표정이 굳어졌다. 청년창업가 D씨는 “이 행사는 오늘 청년들의 공감 비전을 듣겠다고 주최한 것 아니냐”며 “그런데 솔직히 시간부터 평일 오후 2시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는 청년들은 오지 말란 이야기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의당은 내년 총선에서 청년 후보를 일정 비율 이상 공천하는 ‘청년할당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청년할당제에 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이야기를 21일 상무위원회에서 안건으로 해 의견을 나눌 것”이라며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10% 청년 할당 공천을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 당은 그것보다는 세게 20% 이상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다”고 밝혔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오후 2시 토론회, 오란 거냐”…청년들에 혼쭐난 황교안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청년정책을 발표하겠다며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청년들을 만나 예상치 못한 고강도 쓴소리를 들었다.  청년정책 발표를 듣고 난 대학생 A씨는 황 대표가 잇따라 내놓은 경제정책 ‘민부론’, 외교·안보정책 ‘민평론’을 모두 언급하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집권하지 않았을 때 추진할 수 있는 내용인지도 의문스럽다”고 일갈했다. 또 “참석한 분들 모두 한국당이 현실을 직시하는지, 개혁 의지가 있는지 직접 만나 확인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기대를 저버리고, 구색 맞추기로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청년들을 이용한 것이라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B씨는 “한국당을 지지하는 친구들은 ‘샤이 보수’가 아니고 ‘셰임 보수’라고 한다”며 “어디 가서 보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수치심이 든다고 한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전국 대학생들의 광화문 집회를 추진하고 있다는 C씨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공정인데 야당의 대안은 여전히 물음표”라고 했다. 이어 “공관병 갑질 박찬주 영입 등 계속 청년의 신뢰를 잃는 행보를 하면서 어떻게 청년의 지지를 얻으려는지 의문”이라고 직격타를 날렸다. 이에 황 대표도 표정이 굳어졌다.  청년창업가 D씨는 “이 행사는 오늘 청년들의 공감 비전을 듣겠다고 주최한 것 아니냐”며 “그런데 솔직히 시간부터 평일 오후 2시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는 청년들은 오지 말란 이야기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의당은 내년 총선에서 청년 후보를 일정 비율 이상 공천하는 ‘청년할당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청년할당제에 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이야기를 21일 상무위원회에서 안건으로 해 의견을 나눌 것”이라며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10% 청년 할당 공천을 하겠다는 것인데 우리 당은 그것보다는 세게 20% 이상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상무위 논의 후 오는 24일 국회에서 진행될 제3차 전국위원회에 토론 및 보고 안건으로 올려 전국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불편함을 거부하는 교육, 미래는 없다

    [강남순의 낮꿈꾸기] 불편함을 거부하는 교육, 미래는 없다

    매 학기 강의가 시작되는 첫날, 나는 학생들에게 ‘배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다. 인문학적 배움은 여러 가지 정보를 습득하고 암기하거나 또는 선생이 지닌 지식을 그대로 학생들이 전수받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진정한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우선적인 과정은 ‘불편함의 경험’이다. ‘비판적 사유’를 배우는 것을 주요한 교육 목적으로 하는 인문학적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마음이 즐겁고 편하기만 했다면, 선생이나 학생이나 실패한 것이라고 나는 수업 시간마다 강조한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면서, “닥터 강, 오늘 수업 중에 내 마음이 심히 불편했습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그 말은 나에게 ‘오늘 많이 배웠다’는 고마움의 표현을 의미하는 ‘선생과 학생 사이의 암호’가 되곤 한다. 배움이란 새로운 정보의 습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움이란 자신의 고유한 관점이 형성되고 그러한 관점이 타자를 보는 방식, 인생관, 세계관 등 나의 삶의 방향성을 규정할 수 있는 가치관을 구성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적 분야의 수업을 통해서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은, 즐겁고 마음 편한 경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드러나는 현상들을 그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수업을 통해서는, 새로운 배움이란 없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유를 동반하는 새로운 배움에는 몇 가지 필요한 구성 요소가 있다. 첫째, ‘탈자연화’의 과정이다. 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 과정이다. 둘째, 이러한 탈자연화가 가능하려면 ‘뿌리 질문’이 필요하다. ‘뿌리 질문’이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뿌리 질문은 어떤 관습이나 현상에 대해, 애초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라는 근원으로 돌아가서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곳곳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공평이 숨쉬는 공기처럼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깨어지게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눈에 보이는 차별과 배제의 현실 세계가 어떻게 구성됐으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뿌리 질문’을 하는 것은 인문학적 배움이 지닌 책임적 과제이다. 이러한 뿌리 질문을 통한 탈자연화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사회에 어떠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의 평등, 다양한 형태의 정의를 확산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책임적 시민으로서의 과제를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회, 문화, 관습과 전통 등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과제’로서 다가온다. 인문학적 과제 중의 하나는 우리가 물려받은 다양한 전통들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그 전통들이 지닌 다층적 문제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한 책임적 개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의 책임적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과정에서 인문학 분야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지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현상들에 대해 ‘왜’를 묻게 하고 대안적 세계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문제로 보기 시작하는 것’에서 새로운 배움, 새로운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차별과 배제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전혀 문제로 보지 못할 때, 우리 사회가 ‘모든’ 이에게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변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를 문제로 보는 배움은 ‘불편함’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학생들을 즐겁게 웃게만 하는 인문학적 수업시간에, 진정한 배움이 불가능한 이유이다. 광주의 H중학교에서 ‘성윤리 단원 수업’ 평등 교육을 담당해 학생들을 가르치던 한 도덕 교사가 직위해제를 당하고 검찰에 기소됐다. 그 교사의 이름은 배이상헌이다. 몇몇 학생들이 그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7월 4일 광주시교육청에 신고했다. 교육청은 이 신고를 ‘학교 내 성희롱 및 성폭력 고발’로 접수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스쿨미투 매뉴얼’에 따라 신고받은 지 20일 만인 7월 24일 ‘성비위 사건’으로 규정하고 그 교사를 직위해제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 남부경찰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이유로 9월 23일 그 교사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교육청은 어떤 ‘피해’와 ‘가해’인가에 대한 포괄적이고 엄밀한 검증 과정을 축소한 채 한 교사에게 ‘가해자’ 표지를 붙이고 ‘직위해제’를 해 버렸다. 교사에게 ‘가해자’ 표지가 붙은 ‘직위해제’라는 것은 한 개인과 그 가족의 경제적 생존권만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생존권을 박탈하는 총체적 박탈조치이다. 도대체 그 교사는 무슨 잘못을 한 것인가. 나는 이 사건에서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 11분짜리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와 이 단편영화의 감독인 엘레오노르 푸리아가 만든 98분짜리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다’를 모두 보았다. 이 영화들은 ‘미러링’ 장치를 차용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의 심각성을 인지시키는 영화이다. 이론으로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선뜻 이해 못 하는 여성 차별의 현실을, 거꾸로 ‘남성 차별의 현실’로 만들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돕는 영화이다. 내가 이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은, 성차별적 현실세계의 불평등성과 그 폭력성을 구체적이면서도 실감 나게 인지하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교재’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차별당할 때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장면들에 여성 대신 남성이 들어서니 ‘부자연스럽게’ 보이고 지독한 불편함과 수치심까지 느끼게 될 수도 있다(예를 들어 웃옷을 벗고서 조깅하는 여자, 지나가는 남자에게 성희롱하는 여자 등).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현실세계가 뒤집어져서 거꾸로 재현될 때 사람들의 우선적 반응은 지독한 불편함이다.그런데 11분짜리 단편영화를 수업시간에 보고 ‘불편함’과 ‘수치심’까지 느꼈다는 몇몇 학생들의 경험에 기반해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모든 ‘불편함’ 자체를 가해·피해의 단순한 프레임에 넣는 것, 그것이 곧 선생의 학생에 대한 ‘가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복합적으로 조명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적 검증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몇몇 학생이 ‘불편함’을 느끼게 된 이유가 선생의 고의적이고 부당한 가해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자연스러운 것’처럼 간주되는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를 문제로 보게 하려는 특정한 교육적 의도와 장치에 의한 것인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면밀한 정황 조사나 교육적 함의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성평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려고 했던 한 도덕 교사에게 ‘가해자’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고서 직위해제는 물론 검찰에 기소까지 함으로써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교육청의 행동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약자를 생산하는 전체주의적 교육행정의 전형일 뿐이다. ‘미러링’ 장치를 통한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의 고양이라는 수업의 목적은 간과한 채 단지 ‘남성 교사·권력자·가해자’ 대 ‘학생·약자·피해자’라는 단순 도식을 작동시키면서,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배움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불편함’이 생략된 교육과정에서 현실세계가 담고 있는 무수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변화의 주체’로서 이행하는 진정한 평등 교육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인식 세계를 깨고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세계의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써 상투적이고 무비판적인 인식을 깨는 ‘불편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배움이 가능하다. 특정한 학습 장치를 통해서 단지 ‘불편함을 주었다’는 이유로 교사를 징계하고 ‘가해자’라는 표지를 붙이는 행위를 “매뉴얼대로 했다”는 교육을 용인하는 사회에, 현상유지만 가능할 뿐 ‘보다 나은 미래’란 없다.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자치광장] 꺼져 가는 자치분권의 불씨를 살리자/서정협 서울시 기획조정실장

    [자치광장] 꺼져 가는 자치분권의 불씨를 살리자/서정협 서울시 기획조정실장

    “주민들이 예산과 재정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필수 교과과정에 도입해야 합니다.” “시민이 치안활동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도록 ‘주민자치경찰위원회’를 발족해야 합니다.” 여느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닌, 지난달 25일과 31일 이틀간 이뤄졌던 ‘서울시 자치분권 원탁토론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다. 100여명의 시민들은 자치분권과 관련해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에 참석한 교수 등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자치가 시민들의 향상된 의식 수준에 부응하는지 묻는다면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다. 지방이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수행하려면 재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세가 지방세보다 약 3배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데 비해 지방의 예산은 중앙정부보다 1.5배나 많다. 결국 중앙으로부터 재정을 지원받는 지방의 자주성이 상실될 수밖에 없어 지방세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방의 행정환경에 따라 자체적으로 조직을 꾸릴 수 있는 권한 역시 이중삼중 법령으로 규제되고 있어 지방 사정에 맞는 행정 대응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최근 자치분권의 중요한 이슈인 ‘자치경찰’은 지역 주민과 밀착된 치안행정의 일부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주민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한 주민 중심의 치안행정을 펼칠 수 있는 것은 물론 지방의 복지행정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피해자 지원이 가능하다. 현 정부도 이런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해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등 다방면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로 넘어간 각종 법률 제·개정안은 기약 없이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이 총선이어서 법안이 폐기되지 않을지 더더욱 걱정이 드는 게 현실이다. 어렵게 불타오른 자치분권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해 서울시도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분권 전문가 협의회와 자치경찰 준비 태스크포스 등 내부적인 대응과 함께 시민들의 관심 확대와 인식 함양을 위한 각종 토론회와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정말 내 삶을 바꿀 수 있으려면 자치분권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는 지난 토론회에서의 한 시민의 목소리가 귓속에 여운으로 남는다.
  • [이슈있슈] 엄마도, 82년생도 아니지만

    [이슈있슈] 엄마도, 82년생도 아니지만

    겪지 못한 삶에 상처주려 안달인 사회 이해하지 못해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철수도, 아빠도… 62년생도, 92년생도 보통의 이야기였다. 부자는 아니지만 김지영은 학원을 못 다니거나 밥을 거를 만큼 가난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해 꿈까진 아니어도 원하던 회사에 취업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누군가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아이를 낳았다. 실은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 누군가에게 김지영의 일상은 특별함이기에 김지영의 아픔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지영 자신조차 그렇게 여긴 듯 하다. 일상의 이상함을 남편인 정대현이 고백할 때까지 몰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아프게 하고 나서야 자신의 아픔을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물었다. 마음의 ‘병(病)’에 자격을 물을 때 책부터 영화까지, 논란에 논란이 더해질 때 솔직한 심정은 물음표였다. 어느 소설이 그렇듯, 어느 영화가 그렇듯 작가와 감독이 초점을 맞춘 한 인물의 이야기일 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김지영에 가지는 반감은 걷잡을 수 없이 크고 막연해서 만든 이부터 읽는 이, 이야기하는 이로 번졌고 그 형태는 혐오에 가까워보였다. “관심있는 남자한테 ‘82년생 김지영’ 보자고 해 봐.” 이성친구가 한 장난섞인 말에 이 영화가 이성으로부터 비호감으로 낙인찍히는 기준이 되고 있음을 알았다. 영화에 대해 ‘재미있다, 없다’가 아니라 ‘본다, 보지 않는다’를 논하는 것이 생소했다. 64년생 엄마는 지영이 엄마의 이야기에 눈물을 보였고, 59년생 아빠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잘 몰라서 머쓱해 하는 지영이 아빠의 모습에 공감한 듯 웃었다. 89년생인 나는 어느 인물도 아니었지만 그 모두를 본 적이 있었다. 김지영은 아프다.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보통의 삶을 살다 우울증에 걸렸다. 그게 그토록 미움받을 일인가 묻고 싶다. 누군가의 삶이 이전보다 힘들 수 없다고 해서 힘든 게 아닌 게 되는 걸까. 모두가 납득할 만한 힘듦이어야 힘들다고 말할 자격을 얻는 걸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마음이 힘들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린 딸이 보채는 바람에 커피를 엎지르고는 ‘맘충’ 소리를 들은 김지영은 참고 참다 말했다. “저를 아세요?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쪽이 아세요? 왜 다른 사람 상처 주려고 안달이에요.”  상처 주려고 안달인 사회. 사랑하는 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잃고 나서 후회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겪지 않은 삶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지영아, 너 하고 싶은 거 해.” 어딘가에 있을 지영이에게. 나이자 당신이며, 여자이자 남자이며,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에 보내는 응원이라 느꼈다. ‘그때는 다 그랬어’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힘이 될 수 없을 테니까. 이해하지 못해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철수의 이야기도, 62년생의 이야기도 나올 테니까. 그럴 때 ‘뭐가 힘들어’가 아닌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들을 수 있기를.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가끔,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가끔,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식물세밀화를 완성하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길게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식물의 뿌리로부터 줄기와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일련의 삶의 과정을 기다려야 하는 데다 무엇보다 한 종의 식물을 그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환경의 장소에 가서 여러 가지 개체를 관찰한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식물은 환경에 따라 형태를 달리한다. 햇볕을 얼마나 받는지, 토양 산도는 얼마나 다른지에 따라 같은 민들레일지라도 잎과 꽃의 색도, 크기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달라도 종이 같다면 고유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공통점을 드러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종의 형태 특징을 쉬이 알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식물세밀화의 역할이다. 그러니 식물세밀화를 그린다는 건 식물 개체 하나하나를 각각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러 식물을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은 개체 각각의 다름을 기록한 식물세밀화도 세상에 나왔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식물세밀화가인 앙투안 니콜라 뒤센은 프랑스 곳곳을 다니며 산딸기속 식물을 관찰했고 이 기록을 ‘딸기의 박물학’이란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겉으로는 일반적인 산딸기 도감처럼 보이지만 페이지를 조금만 넘기면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도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느 페이지에는 도무지 이 그림이 무슨 산딸기인지 알 수 없게끔 이름이 쓰여 있지 않거나 또 어떤 페이지를 보면 식물 이름 뒤에 물음표를 적어 놓았다. 뒤센은 환경 변이나 종에 연연하지 않고 각기 다른 형태에만 집중해 그림을 그려 냈고, 그렇게 서로 다른 종인지 또는 같은 종이지만 환경이 다른 곳에서 자라 다른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산딸기 그림을 그대로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그렇다고 이 기록이 식물세밀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당시에 어느 장소에서 어떠한 형태의 산딸기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될 수 있다. 지금 산과 들에 한창 피어 있는 가을 들국화를 볼 때엔 뒤센의 도감을 생각한다. 종자로 번식하는 식물 중에도 그 무리가 가장 크고, 너무 커서 모두들 그저 뭉뚱그려 들국화라 부르는 식물들. 들국화라 함은 한 종의 식물처럼 보이지만 들국화라는 이름의 식물은 없다. 그저 들과 산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국화과 식물을 들국화라 할 뿐이다. 지금 밖에는 우리가 들국화라 부르며 지나쳤던 흰 꽃의 구절초, 샛노란 산국과 감국, 보라색의 개미취와 쑥부쟁이 등이 있다. 구절초에는 또 이와 비슷한 산구절초, 포천구절초, 남구절초 등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다양한 국화속 식물들만큼은 제대로 식별해 식물세밀화를 그려 낼 자신이 없다. 이들은 너무나 다양한 무리로 존재하고, 서로 교잡하고, 의외의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언젠가 한 연구자가 국화과의 한 종인 해국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해국 식물세밀화를 요청한 적이 있다. 이미 전국에 분포하는 해국을 수집한 상태였고 나는 한 장의 해국 그림만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전국 곳곳에 분포하는, 형태가 다른 해국 그림 수십 장을 그려 내야만 했다. 내가 관찰한 해국들은 잎도 꽃도 제각각이었으며, 이 기록은 오히려 환경에 따라 해국의 형태가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지 그 변이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시간이었다. 1년 전 출장으로 일본에 갔을 때 서점에서 유일하게 본 들국화 도감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들국화를 즐겨 주시면 되겠습니다.’ 글과 사진으로 가득 찬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도감에 저런 무책임한 문장이 쓰여 있다며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들을 형태로서 식별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롭고 힘든 일인지를 나는 충분히 알기에 오히려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식물세밀화를 그리면서 나는 늘 ‘종’이라는 단위에 갇혀 있었다. ‘종’으로 식물을 분류하고 그려 내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식별의 중요성을 늘 말해 왔다. 그래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이유가 생긴다고, 그렇게 식물 종 보존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종’보다도 작은 풀 한 뿌리, 꽃 한 송이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어쩌면 ‘집 마당에 가을이면 피는 흰 구절초 종류’라든지 ‘매일 지나는 버스 정류장의 연보라색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개체 하나하나를 부르고 인식하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올가을, 들국화만큼은 식별의 부담을 내려놓고 자연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색과 형태, 그 아름다움을 즐겨 주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 ‘82년생 김지영’에 물음표 단 장범준 댓글, 논란에 결국 게시물 삭제

    ‘82년생 김지영’에 물음표 단 장범준 댓글, 논란에 결국 게시물 삭제

    가수 장범준의 아내 송승아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는 글을 SNS에 올린 가운데, 장범준이 해당 게시물에 “????”라는 댓글을 달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22일 송승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와 함께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무슨 말인지 참 알 것 같네. 내일아 빨리 와”라는 글을 적었다. 이후 해당 게시물에 남편 장범준은 “????”라는 댓글을 달았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됐지만, 댓글을 단 그의 의도를 궁금하게 했다. 많은 추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는 송승아의 의견에 장범준이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는 의견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영화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시사회 이후 호평을 바탕으로 더욱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특히 작품 속 김지영은 아내, 어머니, 며느리 등 한국 여성의 서사를 담고 있다. 해당 영화에 공감한 송승아와 이에 물음표를 단 장범준의 모습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이를 젠더갈등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브렉시트 불확실성 속 1600만개 과일·야채 썩는다

    브렉시트 불확실성 속 1600만개 과일·야채 썩는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고조됨에 따라 영국에서 막대한 양의 농산물이 썩어가고 있다. 브렉시트를 우려한 영국 내 EU 회원국 노동자들이 대거 영국을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영국 전국농민연맹(NFU)은 20일(현지시간) 인력난에 따라 사과 1600만개에 이르는 분량의 과일과 야채가 농장과 과수원 등지에서 고스란히 썩고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NFU가 영국 농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올해 수확철에 이미 사과 1147t이 버려졌다. 이 같이 심각한 인력난이 벌어진 까닭은 브렉시트 이후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국 내 EU 회원국 국민들이 영국을 떠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U 회원국 국민들은 브렉시트가 이뤄질 경우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입국 심사도 더욱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NFU는 이번 인력난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잿빛’ 전망을 내놨다. 영국 내 계절노동자들은 브렉시트 결정이 내려진 이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절하하면서 독일, 네덜란드 등의 EU 회원국들로 떠나고 있다. 지난 8월만 해도 노동력이 17% 부족한 수준이었으나 지난 달에는 20%로 높아졌다. 이번 달에는 수치가 더 오를 전망이다. 알리 캐퍼 NFU 원예·감자위원회 위원장은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인력난은 해마다 악화하고 있다”며 “(브렉시트 자체가) 사람들이 이곳에서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을 줬다”며 비판했다. 근,ㄴ 그러면서 브렉시트로 EU 회원국 국민들은 수많은 ‘물음표’를 품게 됐다며, 이들이 “‘내가 내년에 돌아올 수 있을까?’, ‘여권이 필요하게 될까?’, ‘국경에서 검문을 받게 될까?’” 등의 걱정에 불안해졌다고 설명했다. NFU는 인력난 해결을 위해 영국 정부에 EU 회원국 이외에서 받아들이는 노동자의 수를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 대변인은 “영국이 EU를 떠나면 농민은 물론 영국 전체에 이득이 되는 이민 체계를 도입할 것”이라며 ‘계절노동자 계획’(SWP)을 시행해 수확철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멜로가 체질’ 천우희-전여빈-한지은, 고민에 빠진 ‘서른의 멜로’

    ‘멜로가 체질’ 천우희-전여빈-한지은, 고민에 빠진 ‘서른의 멜로’

    ‘멜로가 체질’이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둔 가운데, 깊은 고민에 빠진듯한 세 서른, 천우희, 전여빈, 한지은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들이 멜로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극본 이병헌, 김영영, 연출 이병헌, 김혜영, 제작 삼화네트웍스)에서 일을 잊고 범수(안재홍)와 성공적인 ‘땡땡이 데이’를 보낸 진주(천우희)는 백허그를 하며 “변하지 마요~”라고 말하는 등 날이 갈수록 사랑스러움 지수가 상승했다. 은정(전여빈)은 즉흥적으로 찾아간 보육원에서 상수(손석구)를 마주치고 색다른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돌아와 홍대(한준우)와의 추억을 회상하던 그녀는 차츰 상처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았다. 이처럼 진주와 은정이 각자의 멜로를 찾아가는 동안, 한주(한지은)의 멜로에는 물음표가 찍혔다. 여자친구 하윤(미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 재훈(공명)에게는 “미워하는 마음보단 사랑하는 마음이 더 귀한 거잖아”라며 용기를 줬지만, 정작 자신은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오늘(27일) 공개된 스틸컷에서는 진지하게(?) 회의 중인 진주, 은정, 한주, 그리고 효봉(윤지온)의 모습이 포착됐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소곤거리는 한주와 미간에 주름을 잡고 팔짱을 낀 채 이를 듣고 있는 진주와 은정을 보니 꽤나 심각한 상황에 마주한 듯하다. 하지만 한주는 남자와 손잡은 것만으로도 친구들에게 ‘중대발표’를 할 만큼 새가슴이 아니던가.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는 방송 직후 공개된 예고 영상(https://tv.naver.com/v/9936525)에서 예측할 수 있다. 한주와 아들 인국(설우형)을 버리고 떠난 책임감 제로 한주의 전 남편 승효(이학주)가 다시 찾아온 것. 어이없어하며 “인국이 데려가겠다는 거야?”라고 묻는 한주에게 “우리가 같이 살면 어떨까?”라며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는 그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한편, 한주와 승효의 만남을 목격한 재훈은 “못 보내요. 실장님”이라며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한 가운데, 과연 한주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제작진은 “오늘(27일) 밤, 한주가 선택에 기로에 놓이며, 친구들과 갈등하게 된다”고 귀띔하며, “한주뿐만 아니라, 진주와 은정까지.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세 서른의 멜로는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멜로가 체질’ 제15회, 오늘(27일) 금요일 밤 10시 50분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화마당] 고독과 친구 맺기/송정림 드라마 작가

    [문화마당] 고독과 친구 맺기/송정림 드라마 작가

    추석을 앞두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가 이사하신 집, 어머니 산소에 등을 기대고 한참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데, 차창 밖 하늘에 노을이 걸리며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조르주 무스타키의 ‘나의 고독’. 고독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는 노래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오버랩돼 흘렀다. 홀로 고향 집을 지키던 어머니가 어느 날 말했다. “이 외로움을 너도 겪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구나.” 아버지 돌아가신 후 10여년의 시간을 어머니는 외로움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 세월이 쌓이고 인연이 늘수록 이별도 더해 간다. 몇 해 전, 몇 달 전, 불과 며칠 전에도 이승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했다. 예정됐든 뜻밖이든 모든 이별은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이별은 그리움을 부르고, 만날 수 없는 현실에 그리움은 외로움이 된다. 김광석 노래처럼 우리는 누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슬픔과 고독의 신기록을 경신해 간다. 아름다움도 연륜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꽃이 피어나면 그저 즐겁다가, 아름답다가, 흩어지는 꽃잎에 가슴이 베인다. 사실 외로움을 느끼게 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성장하는 동안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어린아이는 뛰어놀고 장난치느라 외로울 시간이 없다. 어른이 되면서 고독이 침범해 들어온다. 누가 곁에 있다고 고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의 혼잡 속에서 혼자를 느끼기도 한다. 언제 외롭냐고 물으면 답을 못한다. 때때로 외롭다가, 종종 외롭다가, 수시로 외롭다가, 자주 외롭다가, 매일 외롭다가, 나중에는 언제나 외로워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까. 왜 외로운지 물어도 딱히 대답하지 못한다. 함께 있어도, 홀로 있어도, 군중 속에 있어도 외롭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타인에게 기댔다가 오히려 상처를 입기도 한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했다가 더 외로워지는 경험도 한다. 그러면서 알아 간다. 인생은 그냥 외로운 것임을. 그런데 조르주 무스타키는 이렇게 노래를 이어 간다. 고독이 나와 함께 있으니 난 외톨이가 아니라고. 혼자 있는 외로움을 말하는 단어 ‘고독’. 그런데 고독이 있기 때문에 외톨이가 아니라니…. 고독을 친구 삼을 줄 아는 경지에 달하면 외로움도 더이상 외로움이 아니게 되는 걸까? 재(財)테크, 시(時)테크, 우(友)테크…. 인생 마지막을 준비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고독을 즐기는 법을 알아 가는 게 아닐까.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는 법, 고독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법을 알아 가고 싶다. 고독하다는 것은 오롯이 나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길어 간다는 뜻이다. 고독 앞에서 내가 보내 버린 시간들이 가슴으로 걸어 들어온다. 고독 앞에서는 내가 보내 버린 사람이 떠오른다. 그 앞에서는 내가 방치해 버린 감정이 떠오른다. 그래서 고독 앞에서는 겸손해지고 미운 것이 없다. 다 고맙다. 그러므로 고독하다는 것은 사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그립다는 뜻이고, 당신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고독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면 더이상 이별에 상처받지 않는다. 슬픔에 마음을 베이지 않는다. 인생의 내공이 쌓여 훌훌 떨칠 줄 알고 흘려보낼 줄 안다. 고독을 친구 삼는 순간, 고독이 함께하기에 나는 외톨이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은, 물음표로 가득한 인생 시험지를 다 풀어내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고독은 철학 선생이다. 살아갈수록 고독이 두렵지 않게 된다면, 고독을 친구 삼을 줄 알게 된다면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다. 연륜이 쌓여 가는 일은….
  • “늙은 여우..차인 주제에” 장재인, 악플 공개..충격

    “늙은 여우..차인 주제에” 장재인, 악플 공개..충격

    남태현의 ‘양다리’를 폭로한 장재인이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받은 악성댓글(악플)을 공개했다. 장재인은 5일 인스타그램에 각종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캡처해 올렸다. “장재인이 모두 저지른 일” “차여서, 자존심 때문에” “혼자 분노해서 화를 주체 못 하고” “양다리가 아닌데도 폭로하고” “확인도 없이” 등의 내용이었다. 장재인은 이 악플 캡처본 옆에 물음표 표시만 남긴 채 말을 아꼈다. 장재인은 지난 6월 약 2개월째 공개 열애 중이던 남태현의 양다리 정황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폭로했다. 남태현이 자신과 교제하는 동안 다른 여성과 만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상대 여성이 장재인에게 먼저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이 여성은 “장재인과 이미 정리했다”는 남태현의 말을 믿고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장재인은 당시 “그동안 다른 여자들은 조용히 넘어간 것 같지만 추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더는 볼 수 없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다. 이에 남태현은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면서도 자필 사과문을 올려 장재인과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장재인이 남태현의 팬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양다리 폭로 직후에도 “남태현 팬들 그만해달라”며 이들로부터 받은 악플을 공개한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애국 프레임에 갇힌 아이돌 나라

    애국 프레임에 갇힌 아이돌 나라

    오늘도 평화로운 아이돌 나라에 뜻밖에 퇴출 바람이 불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 이후 국내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트와이스, 아이즈원 등 걸그룹 내 일본 국적 멤버들의 퇴출운동으로까지 번졌다. 나라 간 정치·경제 갈등의 순간마다 아이돌 내 외국인 멤버로 불똥이 튄다. 이번 ‘평.시.기의 아이돌EYE’에서는 이들이 케이팝신으로 들어오게 된 유구한 역사와 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등을 한 번 톺아 보기로 했다.●유니클로 불매하듯… 아이돌 외국인 멤버는 나가라? 이정수 기자(이하 이) 한일 경제 갈등에 대한 국내 여론이 일본인 멤버를 둔 걸그룹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윤하 대중문화평론가(이하 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연예인을 상품으로 치부하는 셈이죠. 물건 불매운동을 하듯이. 서효인 시인(이하 서) 정치·경제 분야에 문제가 생기면 문화 분야가 먼저 철퇴를 맞게 되죠. 중국의 ‘한한령’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이잖아요. 어느 쪽으로든 문화 콘텐츠 외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불매 운동인데요. 김 그래도 예전보다는 다소 차분한 대응이 많아진 느낌이에요. 서 날마다 나오는 한일 경제 갈등 관련 뉴스는, 특히 정치권 반응은 자극적인데, 그에 비해서는 아이돌 팬덤이 상당히 점잖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김 생각해보면 예전에 대만 출신의 트와이스 쯔위가 대만 국기를 들었다가 논란이 되어 사과를 한 사건도 있었잖아요. 그렇게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대중들도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 비해 면역력이 생겼다고 할까요. 이 몇 달 전에는 트와이스 사나가 인스타그램에 일본 연호가 바뀌는 것을 두고 ‘쓸쓸하다’고 글을 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쯔위 때는 대만 국기에 대해 사과를 했는데, 사나는 왜 사과하지 않느냐, 한국 팬들을 우습게 본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쯔위 논란에 대해 ‘한한령 전이었으니까 중국시장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다, 한한령 이후였다면 굳이 사과를 했을까’라는 식으로 의문 제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해당 이슈에 멤버가 울면서 사과를 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상당히 비인권적인 모습이었죠.●외국인 멤버를 대하는 양가적 태도 이 1세대 아이돌부터, 아이돌 내 외국인 멤버를 영입했던 역사를 살펴보면 H.O.T.나 S.E.S 같은 그룹들에는 외국인 멤버는 아니지만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재외 교포 멤버들이 있었고요. 그 뒤에는 Y2K나 써클처럼 한중일 멤버가 고루 있는 아이돌들도 나타났습니다. 이후 특정 국가를 겨냥한 아이돌을 만들면서 그 나라 사람을 멤버에 넣거나 했죠. 김 사람들이 외국인 멤버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양가적입니다. 외국인 멤버들이 케이팝신에 들어오게 된 건 어떻게 보면 그 분야에서 필요로 했기 때문이잖아요. 물론 지금은 양상이 달라져서 케이팝을 동경하는 외국인들이 연습생이 돼 데뷔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외국어 이슈를 쉽게 해결하거나 주요 타깃으로 잡은 해당 국가와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영입이었죠. 안팎에서도 그런 의미에서 외국인 멤버를 긍정적으로 쉽게 받아들였고요. 그렇게 좋다고 데려와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순식간에 태도가 바뀌는 걸 볼 때마다 제가 다 허탈해져요. 서 ‘글로벌’이라는 게 자유무역이 전제가 되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물자나 서비스가 이동하는 거죠. 근데 이런 격변기에 동아시아에서 외국인 멤버를 끼워서 글로벌하게 아이돌 활동을 하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획기적인 발상이었는데 말이죠.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시간이 흐른다거나 사과를 하면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정부가 정책적으로 빗장을 걸어버리는 건 어떻게 안 되는 거니까…. 이런 추세라면 당분간은 자국민 중심으로 아이돌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앞으로의 아이돌 속 외국인 멤버 경향은? 김 리스크 여부와 상관없이 외국인 멤버가 늘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클 거라고 봅니다. 해외 진출 파이가 점점 커지고 있거든요. 요즘 국내시장은 음원에서 광고까지 아이돌에 별 관심이 없어요. 기획사들도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요. 이 사실 국내 시장에 신경 안 쓰고 해외 투어만 노리고 데뷔하는 그룹도 많습니다. 김 아이돌 성공의 관건이 높은 국내 인지도나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이 아니라, 얼마나 공고한 팬덤을 꾸릴 수 있느냐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여기저기 투어를 돌면서 다양한 해외 팬들을 공략해 보는 게 사실상 훨씬 유효한 방식이죠. 이 1세대 때부터 일본 진출에 대한 시도는 늘 있어서 그룹 내 일본인 멤버가 많았잖아요. 요즘엔 미국 시장을 많이 노리니까 향후에는 흑인이나 백인 멤버를 일부로라도 영입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데뷔를 국내에서 하지 않고, SM에서 NCT를 지역마다 만드려는 것처럼, 다른 기획사에서도 그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죠. 김 일리 있어요. 그러나 그런 그룹들이 케이팝의 주류가 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케이팝 자체를 좋아해서 영어나 자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노래를 하면 더 좋아하는 해외팬들도 적지 않거든요. 서 엑소(EXO)의 ‘으르렁’을 볼 때 노래가 좋다는 생각만 했지, 중국인 멤버가 누구인지가 중요했나요? 김 그게 본령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케이팝신은 지금껏 외국인 멤버들을 필요에 의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대체재나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 프레임에만 가둬 생각해온 게 아닐까요. 이해도 배려도 일관성도 없이. 서 대중문화에 ‘외국인 리스크’라는 것도, 역사나 정치 같은 정무적인 문제가 이유가 되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걸 분리해서 즐길 줄 아는 게 대중문화 소비자들의 진보라면 진보겠죠. 정리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대담자 소개합니다 김윤하(오른쪽) 대중음악평론가. 무대에 반해 시작한 케이팝 ‘덕질’도 어언 1n년차. 서효인(가운데) 시인, 작가, 문학편집자. 그러나 무엇보다 가요 애호가일 때가 가장 평화로운 사람. 이정수(왼쪽) ‘덕업일치’를 실현 중인 문화부 대중음악 담당기자. 그룹 소방차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던 꼬마가 몸만 자랐다.
  •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선율…그날 아이들도 ‘구원’했을까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선율…그날 아이들도 ‘구원’했을까

    “머리를 식히며 유머를 즐기는 시간은 건강한 기분 전환이, 나아가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1일 오후 8시. 600석 규모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관객이 자리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의 단독 리사이틀 ‘유머레스크’의 현장 분위기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그의 명성을 실감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영혼의 동반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멘토’로도 널리 알려진 그의 내한공연은 제2의 조성진을 꿈꾸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을 겁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영국 왕립음악원 11년 교수 출신의 연주를 직접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레슨’이 되기 때문이죠. ●연주와 동시에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집중하는 어른들 이번 연주회 주제를 ‘유머의 다면적 속성을 탐독하는 음악 여정’으로 잡은 케너는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홀 안을 울리는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무대 열기에 비해 다소 민망하게도 연주 시작과 동시에 고개를 떨구는 사람들, 정확히는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조금 과장하자면 구민회관에서 열리는 민방위 교육 현장이 떠올랐습니다. 졸음을 주체 못 하는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었고, 그런 학생들의 옆자리에는 중년 여성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백발의 피아니스트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제 앞자리에 앉은 초등학생은 공연장이 불편하고 지루해 발목부터 허리, 팔, 목까지 온몸의 관절이 배배 꼬여 따로 놀던 참입니다. 역시 아이의 옆자리엔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연주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스쿨 오브 락’이 떠올라… 누구를 위한 시간이었나 아이러니하게도 청중의 구원을 기원하는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연주를 들으면서 최근 본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이 떠올랐습니다. 160분 내내 유쾌한 록 음악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공연이었습니다. 작품 배경인 명문사립학교 ‘호러스 그린’의 아이들은 오직 하버드와 예일 등 명문대 진학만을 목표로 경쟁합니다. 음악 시간엔 부모의 뜻에 따라 피아노와 첼로, 클래식 기타를 칩니다. 그런 아이들이 삼류 록밴드에서 퇴출된 가짜 교사 ‘듀이’를 만나면서 비로소 저마다의 꿈을 좇습니다. 뮤지컬에서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와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꿈은 제가 원하는 건가요? 아빠가 원하는 꿈인가요?” 그날 밤 2시간의 피아노 연주를 함께했던 그 아이들에게 그 공간과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물음표가 남습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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