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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언대] 농업, 거꾸로 보자/전성군 농협 중앙교육원 교수

    “어머나! 쌀 캔이 나왔네.”쌀 캔은 별도로 씻을 필요없이 물만 붓고 밥을 지으면 된다. 당연히 주부들의 눈길이 쏠릴만 하다. 웰빙푸드 바람이 거세지고 있지만 웰빙형 농산식품의 판매는 기대만큼 오르지 않고 있다. 쌀밥 한번 실컷 먹어봤으면 하던 것이 불과 30년 전인데 쌀이 지천으로 남아돌고 있다. 농산품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전략과 대안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이벤트성으로 끝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요계를 벤치마킹해볼 필요가 있다. 장윤정의 ‘어머나’ 돌풍 이후 가요계에 복고풍 열기가 뜨겁다.‘어머나’ 성공비결은 가요시장의 게임법칙을 넘어 트로트는 기성세대만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발상전환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러면 농산품은 어떤 식으로 발상을 바꿔야 할까. 필자는 ‘농업 거꾸로 보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예컨대 빙산을 보자.90%가 물속에 잠겨 있고 10%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활용하지 않은 90%의 ‘블루오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덩치가 큰 대농(大農)보다 발상전환이 빠른 소농이 승리할 수 있다. 쌀의 경우, 관세화로 타결된다 해도 당장 외국쌀이 싼 가격으로 수입되는 것이 아니다. 초기에는 국내 쌀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될 것이고, 관세감축도 연차적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우리 쌀과 큰 가격 차이를 보이기까지 적어도 5년 이상 걸리는 만큼 이 기간에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 한국농업의 핵심역량인 친환경 농업이나 소농의 강점에 걸맞은 성공공식을 찾아내고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블루오션 찾기와 핵심역량구축 시스템이 완성되면 외국쌀이 들어와도 소비자에게 접근할 틈이 줄어들게 된다. 외국쌀을 수입해도 별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수입상들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쌀 소비촉진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렇다고 소비자 주권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가격과 품질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쌀 수입의 빗장이 풀려가는 지금이야말로 ‘어머나´처럼 농업 거꾸로 보기를 실천할 때다. 전성군 농협 중앙교육원 교수
  • 망둥이 뛰면 내맘도 뛴다

    망둥이 뛰면 내맘도 뛴다

    가을은 바다에도 온다. 물색을 자랑하는 바다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물고기들이 가득하다. 서해바다는 망둥이가 한창이다. 망둥이는 대부분 한해살이 어종인데다 10월엔 더욱 먹성이 좋아지는 때라 입질이 잦다. 망둥이 낚시는 채비도 간단하다.5000원짜리 작은 낚싯대 하나면 된다. 흔히 세월을 낚는다지만, 망둥이 낚시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낚시의 맛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영흥도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지금 서해에는 이런 망둥이 낚시가 한창이다.‘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봄 보리멸 가을 망둥이’ 등 우리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망둥이, 서해 바다에 가장 흔한 물고기이며 식탐이 많고 몸에 비해 커다란 입으로 먹잇감을 덥석 물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다. 시화방조제를 지나 영흥도 장경리 해변으로 망둥어 낚시를 갔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2일 일요일 드라이브 겸 차를 몰고 영흥도로 향했다. 영흥도로 향하는 길은 가을이 깊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 물색이 여름과는 전혀 다른 푸른색으로 변해버린 바다와 높은 하늘. 노래소리를 높이고 차창을 활짝 열고 가을의 향기를 만끽하며 2시간을 달리자 어느덧 영흥도 장경리 해변에 도착했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은 오전 10시. 서울에서 서둘러 출발했지만 오전 11시30분이 돼서야 도착했다. 저기 멀리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곳에 무수히 많은 점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다. 잠시 앉아 그들의 몸놀림을 쳐다보니 한 폭의 그림 같다. ●하나도 안 추워요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무릎, 엉덩이, 가슴까지 점차 물속으로 들어가자 여름에 느끼지 못했던 신선한 바다 냄새와 시원함이 온몸을 감싼다. 머리까지 맑아지는 것 같다.“많이 잡으셨어요?”인사를 건네자 웃으며 망둥이가 가득한 양파망을 들어 보이는 이상철(63·정림광학 대표)씨 얼굴에서 행복감이 묻어난다. 나도 서둘러 갯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고 줄을 풀어 바다에 드리웠다. 묵직한 추가 바닥에 ‘턱’하니 갯벌에 닿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는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한 5분 됐을까, 낚시를 살짝 드는데 갑자기 느낌이 온다. 재빨리 챘다. 낚싯대가 휘청거리며 무엇인가 딸려 올라온다. 역시 망둥이였다. 오! 내가 물고기를 잡다니. 쉽게 할 수 있는 낚시라더니 정말이다. 아이와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물때를 맞추세요 한 30분이 지나자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일렬로 서서 낚시를 한다. 밀물이라 사람들도 해변쪽으로 물러나며 낚시를 하기 때문이다. 연신 여기저기서 넣으면 올라오는 망둥이를 바늘에서 빼느라 바쁘다. “낚시는 자주 오세요?” 말을 건넸다.“집이 인천이라 9월 중순부터는 시간만 나면 영흥도에서 망둥이 잡으며 살아요.”하는 김성식(42·동창철강)씨.“어 또 오네. 이놈은 정말 크다.30㎝가 넘겠는데….”라며 망둥이를 들어보인다.“물이 거의 들어왔는데 이제 오신 거예요?”라고 묻는 김씨의 질문에 초보낚시꾼은 “차가 좀 밀려서요.”라고 변명을 했다. 그는 망둥이를 바다속에서 낚으려면 물때를 맞추어야 한다며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는 시간이 가장 낚시가 잘 될 때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망둥이는 낚싯바늘을 두 개를 쓰는데 한쪽에는 갯지렁이, 한쪽에는 갯벌에 기어다니는 ‘민챙이’를 쓰면 큰놈들을 잡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며 민챙이도 하나 건넸다. 민챙이를 꿰고 낚시에 집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한마리가 달려 올라온다. 이번엔 씨알이 정말 굵다. 낚싯대의 휘청거림에 손맛이 짜릿하다. ●가을의 별미 까다로운 채비나 전문 기술이 필요한 바다낚시와는 달리 어린아이부터 낚시 경험이 없는 여자들까지 간단한 채비로 손맛과 재미를 볼수 있는 대중적인 낚시라 전문낚시인은 망둥이 낚시를 낚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말 간단하게 손맛을 보며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낚시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망둥이가 흔해 맛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망둥이회의 고소한 맛은 일품이다. 횟집에서 ‘꼬시래기’라고 파는 것이 바로 망둥이다. 크기에 비해 머리가 커 살점은 별로 없지만 요즘은 씨알이 굵어 횟감으로도 좋다. 많이 잡히니까 초보도 포를 뜨듯 실습해보면 또 다른 맛을 느낄수 있다. 매운탕도 맛있다. 내장을 뺀 망둥어를 몇 마리 넣고 미리 준비한 야채와 양념으로 간을 하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영흥도 장경리 해변에는 소나무가 많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가족들이 모여 함께 먹는다면 별미가 따로 없다. 또 내장을 꺼낸 후 햇볕에 2∼3일 정도 충분히 말려서 양념을 넣고 찜을 해먹거나 기름에 튀겨도 맛있다. ■ 조심하세요 바다에서 망둥이 낚시를 할 때 딱하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다 밑 갯벌은 썰물때 물이 바다쪽으로 흘러가 시내 같은 크고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뒤로 물러서다가 골이 팬 곳으로 발을 딛게 되면 갑자기 물 속으로 몸이 빠져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사고를 예방하려면 낚시를 하는 위치에서 항상 육지 쪽을 향해 골이 없는 위치를 확인하고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가며 낚시해야 한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구명조끼를 입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가을 햇빛이 강해 긴팔옷과 모자·선크림도 준비하는 게 좋다. ■ 망둥이는요 망둥어는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표준말이 아니다. 망둑엇과 물고기로 우리가 흔히 먹는 것은 ‘문절망둑’이다. 학명상 농어목 망둑엇과에 속하는 망둥이는 3∼4월쯤 산란을 해 10∼11월이면 20∼30㎝까지 자라는 1년생 어종이다. 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망둥이는 풀망둑이다. ■ 영흥도 낚시정보 영흥도는 영동고속도로 월곶IC에서 빠져 나온다. 월곶IC에서 303지방도를 이용해 시화방조제→대부도→선재도→영흥대교를 거쳐 영흥도로 들어가면 된다. 또 한 가지는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에서 306지방도를 통해 사강→탄도→대부도→선재도→영흥대교를 거쳐 들어가면 된다. 단 돌아올 때는 서둘러 오후 2∼3시나, 낙조와 저녁을 즐기고 느긋하게 출발해야 밀리지 않는다. 장경리 해변 앞에 있는 장경리슈퍼(032-886-8205), 솔밭슈퍼(032-886-3223), 수해슈퍼(032-886-6476) 등에서 낚싯대와 갯지렁이를 포함해 5000원에 팔고 있으며 갯지렁이만 별도로 살 경우는 2000원이다. 전화로 영흥도 물때를 문의하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영흥도에는 펜션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장경리 해변에 있는 화가의 마을(032-882-3006)을 추천한다. 넉넉한 인심을 지닌 할머니와 필요하다면 집안 살림살이까지 빌려주는 할아버지의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신연숙칼럼] 청계천 이후

    [신연숙칼럼] 청계천 이후

    기자가 살고 있는 대로변 아파트단지 담장과 인도 사이에는 어떤 배려가 있었는지, 녹지공간이 조성돼 있었다.20년 이상된 단지인 만큼 나무들은 제법 커서 대로와 주거공간의 차단막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무들에 빨간페인트 표시가 그려지더니 나무들이 옮겨지고 녹지공간에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녹지대신 ‘실개천’을 조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배출되는 지하수 등을 이용해 담장을 따라 실개천을 흐르게 한다고 했다. 시멘트와 자연석을 섞어 구불구불 실개천이 조성되었다. 시작과 끝지점에는 분수대가 설치되었고 중간중간에는 꽃나무와 수초가 심겨져 보기에 나쁘진 않았다. 밤에 조명까지 비치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실개천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봄 여름 가을의 꽤 많은 시간, 웬일인지 실개천은 흐르지 않는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철 몇 개월동안은 아예 바닥을 앙상히 드러낸 채 낙엽과 쓰레기가 뒹굴기도 한다. 차갑게 말라있는 돌 조경물을 지나칠 때면 차라리 포근한 흙냄새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주민들은 번듯한 녹지를 두고 왜 공사를 하게 뒀을까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청계천 완공날 천변을 둘러보며 집앞 실개천 생각이 났다. 암석과 시멘트구조물로 이뤄진 시설물에 분수와 폭포, 아름다운 조경과 조명 등이 역시 집주변의 양재천보다는 실개천의 확대판을 보는 느낌이었다. 겨울철에도 저처럼 풍부한 물이 흐를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집앞 실개천과 청계천은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다. 실개천은 멀쩡한 녹지를 파내고 인공시설물을 만든 것이지만 청계천은 매연에 찌든 시커먼 고가도로와 복개판을 걷어내고 어둠에 갇혔던 개천을 밝은 세상에 되돌려놓은 것 아니던가. 우리 사회가 자동차도로 이용 편의와 영세상인들의 상권, 오래된 시장 문화 등을 포기하고 하천의 복원이라는 환경대의를 선택한 최초의 역사적 증거물 아니던가. 청계천 복원을 두고 ‘또 하나의 개발’이라든가,‘조금 긴 분수’일 뿐 생태복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등의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정치인 시장의 치적용 생산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편의 대신 자연의 복원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폄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청계천을 찾은 백만여 인파는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갈증을 입증한다. 시민들이 그저 눈요깃거리를 찾아,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징검다리를 밟고 다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속에서 첨벙대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주고 싶었던 것은 찰찰 흐르는 냇물이 간질여주는 자연의 촉감이 아니었을까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선택의 진정성, 지속성이다. 그러니 청계천은 한계를 보완해 나가되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청계천이 단순히 ‘또 하나의 개발사업’이 아니었음을 추후 행동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좋은 조짐은 이미 보인다. 청계천 이후, 정릉천·성북천 복개구간 복원이 결정되었고 변화는 과천 등 다른 도시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안 좋은 조짐도 많다. 호시탐탐 개발 표적이 되는 그린벨트, 레저·주거시설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전국의 숲들이 그 사례다. 당장 건너편 마을의 울창한 도시숲이 사립고교와 신축아파트업체 합작의 골프연습장 시설로 뜯겨나가게 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청계천의 자연성 복원 가치가 얼마나 유의미한 것이었는지, 그것은 이제부터의 행동에 달렸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청계천 인파에 밟힌 시민의식

    청계천 인파에 밟힌 시민의식

    청계천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연휴 마지막 날인 3일에도 북새통을 이뤘지만 시민의식은 여전히 미흡했다. 간간이 빗방울이 흩뿌렸으나 이날에도 약 50만여명의 시민들이 청계천으로 몰려 사흘간 모두 170만여명이 청계천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사흘간 170만여명 찾아 이날 오전 열린 시민걷기대회를 시작으로 7080 가요제 등 문화행사가 오후까지 이어졌다. 걷기대회에는 참가신청자보다 1만여명이 많은 2만 5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청계광장을 출발해 청계천로 남쪽차선 5.8㎞구간을 걷는 행사에는 이명박 서울시장 부부와 임동규 서울시 의회 의장, 임백천·공현주씨 등 서울시 홍보대사와 서장훈(삼성썬더스), 전희철(SK나이츠), 이병규(LG트윈스), 박주영(FC서울) 등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 농구·야구·축구선수들도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대회에 참가한 회사원 김수현(27·여)씨는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청계천 덕에 서울이 한결 여유로워진 느낌”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청계천 주변 식당가에는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몰리면서 ‘청계천 특수’를 누렸다. 무교동의 한 찐빵집에는 200m나 줄을 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의식 부족은 여전 하지만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성숙한 시민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질서의식은 양호했지만 자연사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행사 첫날 인명사고까지 일어났지만 이날까지도 청계천 다리 난간에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는 위험한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린이들이 오간수변 주변 등 미끄러지기 쉬운 곳에서 물장난을 치거나 물속에서 뛰놀아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했다. 진입계단·청계천 위쪽 안전통로 등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보행에 지장을 주기도 했으나 200m이상 대기하면서도 별다른 마찰이나 고성이 오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책로 주변에 조성된 녹지대는 사람들에게 짓밟혀 심하게 훼손됐다. 특히 산책로가 좁은 청계천 상류지점의 잔디와 창포 등 식물의 훼손이 심각했다. 또한 쓰레기를 직접 처리하도록 산책로에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은 탓인지 홍보 전단지와 음료수병 등 생활쓰레기가 녹지대 아래 쌓이기도 했다. 서울시설관리공단 청계천관리센터는 이날까지 사흘간 모두 1t이 넘는 쓰레기를 청계천에서 수거했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예상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관계자는 “안내방송은 물론 자원봉사자 9000여명이 모두 나서 잔디 등을 밟지 말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도록 당부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며 부족한 시민의식을 꼬집었다. 정은주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피난 대란… 버스 폭발 사망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초강력 허리케인 리타가 미국 대륙에 상륙하기도 전에 영향권에 든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23일(현지시간) 붕괴되면서 또다시 도시가 물에 잠기자 미국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리타를 피해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 주민 250만명이 피난 길에 오르면서 주요 고속도로가 큰 혼잡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날 아침 노인들을 태운 버스에서 불이 나 최소 24명이 숨졌다. 휴스턴의 양로원에 사는 노인 43명을 태우고 가던 버스가 댈러스 근처에서 갑자기 폭발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특히 버스 안에 있던 산소통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버스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희생이 컸다. 한꺼번에 몰린 피난민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던 고속도로는 버스 폭발사고로 정체가 더욱 심각해졌다. 허리케인 리타는 24일 오전(한국시간 25일 오후) 미국 남부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250만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리타 피난민’이 일제히 몰리면서 왕복 8차선을 모두 일방통행으로 돌렸는데도 불구, 고속도로는 약 160㎞에 걸쳐 있는 거대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모텔마다 방이 동나 주민들은 자동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기름이 바닥난 주유소가 많아 차량들이 옴짝달싹 못 하는 등 극도의 혼란이 계속됐다. 빌 화이트 휴스턴 시장은 “고속도로가 죽음의 덫이 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한편 오도 가도 못 하는 차량에 휘발유를 공급하기 위해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휴스턴 공항 역시 사실상 마비됐다고 말했다. 전날 4등급으로 세력이 한 단계 약화된 리타는 이날 당초 예상 경로에서 약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텍사스주 갤버스턴과 뉴올리언스의 중간 지점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리타의 영향으로 뉴올리언스에는 22일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23일에는 돌풍까지 불면서 급기야 바닷물이 다시 도시를 덮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현재는 저지대로 지난번 카트리나 때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시 제9지역 주위만 물에 잠겼으나 리타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폭우가 쏟아질 경우 도시 전체가 다시 물속에 잠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국립허리케인센터(NHC)는 내륙에 들어오면서 리타의 위력이 3등급으로 더 떨어질 수 있지만 리타는 여전히 시속 224㎞의 강풍과 폭우,8m 안팎의 해일을 동반하고 있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dawn@seoul.co.kr
  • 한가위 놀이공원

    한가위 놀이공원

    ■ 롯데월드서 ‘옥토버 페스티벌’ 즐겨볼까 문영진(36·보다스튜디오대표)씨는 이번 추석 고향인 충남 당진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롯데월드에서 달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형님 강진(40·충북수산 대표)씨 내외, 조카들과 함께 한가위 기분도 내고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타면서. 서울 송파구 형님댁 부근의 있는 롯데월드에서는 맥주를 무제한 먹을 수 있는 ‘옥토버 페스티벌’이 한창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테마파크에서 놀고 어른들은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공짜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이야기도 나누는 일석이조 추석즐기기. ●입장료는 이렇게 문씨 가족은 아이들은 우대쿠폰으로 1만9500원에 자유이용권을, 어른들은 자유이용권과 맥주 무제한 제공, 비어 기념컵이 포함된 3만원짜리 옥토버 패키지 티켓을 샀다. 다만 아내와 형수는 일단 무료입장 신용카드로 입장한 다음 9000원짜리 비어티켓(맥주 무제한 제공 및 컵)을 사서 이용하기로 했다. ●짜릿한 한가위 “서방님 아무리 급해도 설겆이는 끝내야죠.”“형수님 제가 갔다와서 할 테니 서두르세요. 좀 늦으면 사람이 많아 제대로 못 놀아요. 빨리 가세요.” 문씨는 부엌에 있는 형수와 아내를 채근해 롯데월드로 직행했다. “승업(성동초 5년)이가 제일 오빠니까 동생들 잘 챙겨. 알았지. 그리고 12시에 저기 보이는 시계탑 앞으로 오는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작은 아빠에게 전화해.”라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형수는 좀 불안해했지만,“다들 초등학생인데 괜찮아요.”라며 안심시키고 일단 자이로드롭으로 향했다. 꼭 한번 타보리라 마음 먹었던 놀이기구다. “애리아빠 난 못 타겠어.”하며 자이로드롭의 높이에 기가 눌린 아내가 말한다. 그래서 형과 함께 올랐다. ‘끼릭 끼릭’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간다. 손을 흔드는 형수와 아내가 콩알만해질 때쯤 아래로 떨어진다.‘우∼와’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렇게 오전에는 아트란티스, 자이로스윙 등 아이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데 시간을 보냈다. 12시에 아이들과 만나, 어드벤처 쥬라기 광장에서 하는 새끼꼬기와 송편만들기 대회에 참가했다.“아빠가 어렸을 때 많이 해봤거든. 응원 열심히 해.”라며 용감하게 새끼꼬기에 참가하는 형.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아빠 이겨라, 큰아빠 이겨라.”“큰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큰딸 애리(구지초 4년)의 지휘에 따라 합창한 우리 가족이 단연 돋보였다. 비록 순위에는 못 들었지만 열심히 소리를 지른 덕에 돌아온 것은 응원상. 곰돌이 인형은 막내인 예림(구지초1년)의 몫으로 돌아갔다.“새끼 꼬는 모습은 우리 아빠가 최고였어요.” 오후 2시 벌써 사람들이 월드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퍼레이드카와 무희들을 앞세워 등장하는 월드카니발 퍼레이드는 롯데월드의 자랑.50억원을 투자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마침내 옥토버텐트로 갔다. 입장할 때 나누어준 컵을 내밀자 가득 맥주를 따라준다.“다 드시면 또 오세요. 무제한 리필입니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펼쳐지는 손인형극에 빠져있다. 오후 5시 옥토버 페스트 퍼레이드,5시30분 저먼밴드쇼 등도 놓치면 후회한다. 아이들은 불꽃놀이와 레이저쇼를 보러 가고 어른들은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레이크뷰에서 ‘공짜’맥주를 즐겼다. 신나고 재미있는 한가위다.(02)411-2000,www.lotteworld.com ■ 에버랜드서 핼러윈축제 빠져볼까 우리나라 테마파크중에서 규모나 시설면에서 으뜸, 에버랜드는 동·식물원과 놀이기구, 각종 이벤트로 매일 잔치가 열린다. 이번 추석연휴가 너무 짧아 박찬규(37·청신학원원장)씨는 고향 전남 여수에 내려갈 엄두도 못 냈다. 그래서 부모님 모시고, 여동생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로 나들이를 갔다. ●입장료 다 내면 바보 박씨는 에버랜드 홈페이지에서 할인정보를 찾았다. 신용카드 중에서 50% 할인 되는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봤다.‘나는 삼성, 아내는 비씨카드로 할인을 받으면 되겠군. 수민(7)이는 온라인 회원으로 가입하면 1만 8000원….’ ●호박의 나라 가을 축제인 핼러윈파티가 한창인 에버랜드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설레게 하는 볼거리가 풍부하다.“아빠 저 호박 좀 봐.”하는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2.5m의 호박. 정말 크다. 호박 입으로 사람이 지나다닌다. 카메라는 이럴 때 쓰는 것. 군데군데 쌓아놓은 앙증맞은 호박들이 무섭기보다는 너무 귀엽다. 호박마차, 생호박 50개로 만든 생호박화단…. 그야말로 에버랜드는 호박천지다. 낮 12시30분 에버랜드에서 야심차게 만들었다는 ‘해피핼러윈파티’퍼레이드가 시작한다. 신나는 노래를 시작으로 종이꽃가루를 하늘 높이 날리며 분위기를 돋운다.“아빠, 호박아저씨 좀 봐. 나에게 손을 흔들어.”라는 수민. 아직 제대로 말 못하는 조카 민서(2)까지 아이들이 홀딱 빠졌다. 마치 동화 속에 온 기분이다. 천천히 걸어 물개공연장 옆에서 오후 1시30분에 하는 ‘판타스틱 스윙’ 공연을 보러 갔다. 제목 그대로 판타스틱하다. 저기 산꼭대기에서 날아오는 호루조, 뿔닭 등이 신기하게 수 백미터를 날아 조련사 옆에 내려앉는다.“참 멋지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높다. 갑자기 바람이 부니 거의 뒤집어지듯 떨어지는 녀석, 머리부터 떨어지는 녀석. 뒤뚱뒤뚱거리며 빠르게 우리로 돌아가는 호루조를 보면서 공연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오후 2시의 매직퍼레이드를 본 뒤 숨가쁘게 걸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애니멀원더월드로 갔다. 오후 2시 30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연극이 있다. 어렵게 자리를 잡았다. 골프치는 침팬지, 노래하는 앵무새, 얼룩말, 사자까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동물공연이다. “나보다 골프실력이 낫네.”오랜만에 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 같다. 수민이는 제기차기, 팽이치기, 투호, 윷놀이, 굴렁쇠 등 5개의 전통 민속놀이를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한가위 릴레이 민속놀이’가 펼쳐지는 곳에 관심이 있는 듯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각각의 종목을 끝낸 후 스탬프를 찍는 것도 잊지 말 것.5개 종목을 모두 마치면 ‘에버랜드 해피 핼러윈 머그컵’도 받을 수 있다. 무료로 가르쳐 주는 짚신 공예와 상모 돌리기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포시즌가든을 가득 메운 국화를 보러 가자.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쿠션맘’‘실버스탠드’ 등 28종 11만 송이가 보는 이의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어둠이 내린 에버랜드는 더욱 아름답다. 조명발에 더욱 아름다운 국화, 앙증맞은 호박조명, 노래와 함께 춤추는 분수 등 그야말로 볼거리로 가득하다. 밤에 꼭 봐야 할 것이 문라이트 퍼레이드와 올림푸스 팬터지. 저녁 8시30분. 수백만 개의 전구로 치장한 퍼레이드카와 벌 나비모양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그야말로 황홀함 그 자체이다. (031)320-5000,www.everland.com. ■ 곳곳에 축제가 휘영청 과천 서울랜드에서는 한가위 축제인 ‘우리가락 우리놀이’가 17∼19일 열린다. 정겨운 사물놀이 퍼레이드가 추석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가운데 18일 낮 12시에는 선착순 50가족이 참여하는 허수아비 만들기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또 매일 오후 1시부터 세계의 광장에서는 밤, 사과, 배 등 오곡백과와 농수산물 상품권이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입장객에게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행사도 열린다.(02)504-0011,www.seoulland.co.kr 한국민속촌에는 민속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18일 추석 당일에는 초청공연으로 ‘한가위 맞이 큰 굿 한마당’이 펼쳐진다. 가을 추수로 인해 곳간 가득히 쌓여 있는 곡식들을 보며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다. 길굿, 호방진굿 등 판굿과 상쇠놀음, 소고놀음, 장고놀음 등 개인기예공연이 조화를 이루는 신명나는 행사다. 한가위의 흥겨움을 만끽할 수 있다.(031)288-0000,www.koreanfolk.co.kr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대형 수족관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떴다. 추석 연휴 기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이버들의 특별 다이빙 쇼가 하루에 세 차례 펼쳐진다. 거북, 상어 등과 함께 물속에서도 한가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쇼다. 또한 19일까지 홈페이지에서 ‘달’과 닮은 ‘달 해파리’를 클릭하면 레고세트, 책 등 다양한 상품도 나눠준다.(02)6002-6200,www,coexaqua.co.kr 한강유람선 운영회사인 ㈜한리버랜드는 추석 당일인 18일 여의도선착장(20:40)과 양화선착장(20:10) 및 난지선착장(20:00)에서 출항하는 ‘퓨전국악 유람선’ 선상 공연을 한다. 우리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가락을 들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을 수 있다. 잠실선착장(20:40)과 뚝섬선착장(20:30)에서는 ‘민속놀이 체험 유람선’도 출항한다.(02)3271-6900,www.hanriverland.co.kr. 강원도 홍천의 비발디파크는 추석 연휴 동안 스키장 메인센터 광장에서 윷놀이와 제기차기, 굴렁쇠 놀이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 마당을 마련한다. 설악콘도는 작년에 큰 호응을 얻었던 제기차기 대회를 17,18일 이틀 동안 개최한다. 당일 현장 접수를 받은 참가자는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본관 앞 분수대에서 기량을 겨루며 우승자에게는 아쿠아월드 이용권 등 푸짐한 경품을 제공한다.(033)434-8311.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9) ‘중국의 차’ 유래와 풍습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9) ‘중국의 차’ 유래와 풍습

    “가을바람에 객을 보내며 마시는 고로차, 혓속 깊이 특이한 맛과 향이 남아 무한한 옛정을 느끼게 한다.” 고온(高溫)에서 불에 쬐고 말리는 홍배(烘焙)를 하는 고로차는 마치 옛정을 간직한 가을바람을 닮은 향과 맛이 풍긴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한잔의 찻속에 떨어뜨린다. 차는 근원적으로 ‘평상심(平常心)’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혼자가 되었던 둘이 되었던 차는 ‘평상심’을 나누기 위한 ‘고요함’(靜)과 ‘맑음’(淸)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차의 어머니는 물이다. 그 따뜻한 물속에 담겨서 찻잎이 맑은 색과 향을 뱉어내며 퍼지는 것을 한번 살펴보라. 마치 삶의 윤회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찻잎은 기쁘게 ‘열반’에 들며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 버린다. 차 한잎에 한 인간의 일생이, 한 사회의 역사가,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차의 본향은 중국이다. 중국인들은 대략 5000년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그리고 저 산간오지까지 차가 없는 중국과 중국인은 상상할 수 없다. 중국의 다점(茶店)에 가면 차 한잔을 시켜놓고 한없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차는 일상의 생활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상류층선 차만 다루는 노비 두고 음용 중국의 음다풍속이 일상화된 것은 전한(前漢)시대로 본다.‘사기´에는 춘추전국시대 전한 선제때 차에 관한 기록이 있다. 왕포는 어떤 과부로부터 양혜라는 편료(便了:차를 다루는 노비)를 1만 5000냥에 사들였다.‘동약’이라는 노비매매 문서에는 편료가 해야 할 일을 적고 있다. 먼저 무도(武都)에 가서 차를 사오는 일, 손님이 오면 차를 달여 접대하는 일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편료의 존재는 전한시대에 이미 쓰촨 일대에서 차가 지배층들을 중심으로 일상화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비의 매매가가 1만 5000냥이란 거금이라면 차도 매우 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고전인 ‘삼국지´는 그같은 사실을 잘 일깨운다. 위진시대 직전 유비 현덕은 누상촌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었다. 돗자리를 팔러간 현덕은 당시 명차였던 ‘옥로’를 사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옥로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효심이 지극했던 현덕은 어쩔 수 없이 집안대대로 물려내려오던 보검과 맞바꿨다. 그런 현덕에게 어머니는 “그 까짓 차가 뭔데 조상을 팔았는가.”하며 한탄했다 한다. 현덕이 가보인 보검과 맞바꿀 정도로 차는 귀하디귀한 품목이었음에 틀림없다. 쓰촨성을 중심으로 한 남쪽에서 주로 음용되던 차는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후 수나라가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중국의 원활한 통치와 물자교류를 위해 운하를 건설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당대에 보편화된 것은 차의 가공이다. 단병차뿐만 아니라 떡차, 조차, 산차, 말차 등 여러 제다법이 개발, 보급되기 시작했다. 중국 명차의 주인공은 사찰과 스님들이다. 중국의 차 문화는 대부분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용품으로서 차와 정신문화의 최고봉인 ‘선’이 만나 일궈낸 차문화는 이른바 ‘다선일미’라는 독특한 선차문화를 탄생시켰다. 중국에서는 “천하명산에 승려가 많고 높은 산에는 좋은 차가 난다.”고 했다. 그같은 선차문화를 통한 중국명 차와 차문화의 탄생은 마조 도일선사와 백장 회해선사에서부터 시작된다. 농경시대 중요한 생산동력인 ‘농선결합’의 자급자족적인 생산공동체는 ‘백장청규’를 만들어 냈다. 백장청규의 정신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로 철저한 농선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찰의 ‘백장청규’는 사찰에서 차를 마시는 음다풍속과 함께 차의 재배, 제다, 그리고 상품화까지 지속적인 차 생산활동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큰 절에선 茶僧이 생산·관리 맡아 조동종의 조사중 한 분인 도응 선사가 주석했던 장시성 영수 운거산의 진여선사(眞如禪寺)에서는 1000년 동안 차를 재배해 왔다고 한다. 그 재배면적은 무려 100무(畝:1무는 300평)였고 그 차밭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찬림차는 1000근이나 됐다. 또 다른 기록도 전해온다. 푸젠성 무이사에서 생산되는 무이암차 이야기다. ‘민산이록’이란 책에서는 “무이사의 승려들은 대부분 진강 출신으로 차밭을 삶터로 삼는다. 각 사찰마다 천주 사람을 차 스승으로 삼는다. 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되기까지 장시 일대에서 차를 채취하는 사람은 1만여명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남조(南朝)의 480개 사찰에서는 얼마나 많은 누각이 차를 찌는 연기에 휩싸여 있나.”라는 시구(詩句)가 있을 정도다. 차에 대해 상상을 초월할 만한 기록들이다. 차를 재배한 사찰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여된 인원, 차 생산량 등이 가공할 정도로 어마 어마하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명차의 생산이 당연했다. 대규모 사찰에서는 다승(茶僧)을 두고 차의 생산과 관리책임을 전문화시켰다. 차나무의 재배부터 제다까지 풍부한 경험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그것은 명차를 만들 수 있는 기본조건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대표적인 명차의 산지들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웅이산 달마묘탑, 몽정산의 몽정차, 청성산의 태안사, 서안 차문화의 발상지인 종남산 정업사, 안후이성 구화산의 김지장선차, 천태산 만년사의 천태차, 천주산 마조암·장시성 석문사·보봉사·공공산 보화사·산동성 무염원지·항저우고려사지의 용봉차. 이밖에도 천목산 사자암지, 경산사, 하무산, 천호암 등 명차를 생산한 사찰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으로 많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든 정신을 동반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차도 마찬가지다. 약용과 음용으로 출발한 차는 중국 선불교와 만나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다선일미’로 시작되는 중국 선차의 출발은 “스님들의 가풍을 이루는 석 잔의 차”로 통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사찰에서는 불법을 강론하고 대중들을 초대해 차를 음미하는 상설적인 차 공간인 ‘다당’(茶堂)을 설치했다. 또한 사찰 법당의 왼쪽 모퉁이에 ‘다고’(茶鼓)를 설치해 시간에 맞춰 다고를 울려 차를 마셨고 다두(茶頭)를 두어 찻물을 긷고 차를 우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시켰다. 한 명 내지 몇 명의 다두는 매일 이른 새벽에 찻물을 끓여 차를 준비한다. 그들은 아침, 점심 공양이 끝난 스님들에게 차를 공양했다. 또한 수행을 하던 선승들은 좌선을 하면서 매번 향 하나가 탈 때마다 차를 마시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차에 관한 의례도 발전했다. 새벽에 일어난 사찰의 주지 스님이 불전에 찻물을 봉양하는 ‘차탕’(茶湯), 부처님과 조사에게 올리는 ‘전차’(奠茶), 수계를 전후해 마시는 ‘계랍차’(戒臘茶), 공동으로 함께 마시는 ‘보차’(普茶) 등 차탕회를 할 때 정해진 점차(點茶)와 점탕(點湯)의식이 있었다. 중국 선사들과 사대부의 교류는 위진 시대 이래로 형성된 중요한 지적 교류의 전통이 이미 형성되었다. 이같은 전통은 선차와 문인사대부의 만남을 주선했고 민간에도 선차의 폭넓은 문화가 전파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손님 격에 따라 접대차 달라 저장성 여향의 천목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경산사의 ‘경산의 다연’은 그것을 잘 입증하고 있다. 유명한 차 산지였던 경산사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사찰에 귀한 손님을 초청해 다연을 열었다. 경산의 다연에는 헌다(獻茶), 문향(聞香), 관색(觀色), 상미(嘗味), 약차( 茶), 서의( 誼)로 이어지는 절차에 따라 차를 음미한다. 가장 먼저 주지 스님이 직접 차를 우려 경의를 표시한 다음 ‘다두’에게 명하여 다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음미하게 하는 ‘헌다’를 한다. 다연에 참석해 차를 받은 대중들은 먼저 다완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고, 다시 다완을 들어 올려 빛깔을 살핀 다음 맛을 세 번에 걸쳐 음미한다. 그런 후 차의 향기와 빛깔에 대해 품평하고 주지 스님의 품행을 칭송한 후 불경을 독송하며 다연을 끝냈다. 경산의 다연에 참석했던 명대의 명문장가였던 왕홍 왕기 왕주 왕기 등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높이 걸린 등불 아래 봄비 내리는 승방에서/차 이야기 나누노라니 마음은 한층 그윽하다/만길 용담에는 나는 듯 폭포수 쏟아지고/오봉의 학수에는 구름이 모였구나/빗돌에 새긴 황제의 글귀엔 푸른 이끼 가득한데/경산에 피어난 우담바라가 계절조차 잊게한다/능소화 마냥 아름다운 풍경에/긴 강은 동쪽 바다로 흐른다.” 당시 사찰에서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차 대접에도 차등이 있었다. 최상품은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최하품은 스님들이 마셨으며 보통 손님에게는 보통차를, 최상위 손님에게는 고급차를 접대했다. 송나라때 안탕산의 한 사찰에 낙향을 한 소동파가 방문했다. 다두를 맡은 스님은 소동파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등받이도 없는 나무의자를 가리키며 “앉게.”라고 했다. 그리고 동자승에게 “차”라고 명령을 했다. 소동파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그 다두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알아차렸다. 다두를 맡은 그 스님은 소동파를 객사로 안내하고 “앉으시지요.”권하고 동자승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결국 그 스님은 그가 유명한 소동파임을 알게 됐다. 방장에게 소동파를 인도한 그 스님은 “위로 앉으십시오, 위로 앉으십시오.”라며 환대를 했다. 동자승에게는 “향차를 올리거라.”고 명령했다. 방장과 차담을 마친 소동파가 떠나려 하자 그 스님은 글귀를 소동파에게 청했다. 소동파는 빙그레 웃으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앉게! 앉으시지요! 위로 앉으십시오!/차! 차를 가져와라! 향차를 올리거라!”다두를 맡은 그 스님과 차 문화를 통절하게 비판하는 소동파의 기가 막힌 반전이 차인의 진정한 묘리가 어디에 있음을 알게 한다. ■ ‘분차’와 ‘나한공차’이야기 송나라 때는 투차(차의 맛과 향기 등을 품평하는 대회)의 풍속이 있었다. 투차는 본래 당나라 조정 관료들이 차의 품질을 품평하던 것이었으나 송나라 때 이르러 민간의 풍속으로까지 자리잡았다. 그런 점에서 투차는 매우 대중적인 행사였다. 이에 반해 차를 홀로 즐기는 분차(分茶)의 풍속도 있었다.‘분차’는 끓는 물에 차를 우린 다음 작은 대나무 조리로 저어 찻물의 표면에 사람, 금수, 화조, 산수, 글씨 등 묘한 형상의 무늬를 만드는 것으로 당시 차를 고급스럽게 마시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분차’의 진수는 ‘나한공차’의 전설 같은 이야기속에 담겨있다.11세기 무렵 천태산 나한당에서는 매일 500나한상에 헌다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올리던 동자승은 그 모든 찻잔에 여덟 잎의 연꽃무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찻잔속에 새겨진 여덟 잎의 연꽃 소식에 여러 문인들이 시를 지어 찬미했다. 결국 그 소식은 그 지역의 관리에게까지 알려졌고 조정에서는 재상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재상이 나한당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그 찻잔에서는 ‘대사응공(大士應供)’이란 네 글자가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나한공차’의 이야기다. 분차는 또 차백희(茶百戱)라고도 불렀다. 도곡의 ‘천명록’에서는 “근세 이래로 일부 사람들은 차탕으로 날짐승 들짐승 곤충 물고기 화초 따위의 무늬를 만들 수 있다. 마치 그림처럼 섬세한데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를 차백희라고 부른다.”고 그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천명록’에서 말하는 ‘차백희’는 바로 물속의 그림이란 뜻을 가진 ‘영단청’(永丹靑)으로 불리는 ‘분차’를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에 분차에 가장 뛰어났던 스님의 한 일화가 전한다. 복전이라는 스님은 ‘분차’를 통해 그 어떤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님은 또 순식간에 시 한 구절을 지어내는 특출한 재주가 있었다. 어느 날 분차의 신묘한 재주를 배울 것을 간청하자 그 스님은 이렇게 답을 했다. “찻잔에 수단청 만들어지니/묘한 솜씨는 배워서 됨이 아니라/지난날 육우마저도 비웃으며/차를 우려 좋은 명성 얻는다.” 남송시대의 시인인 육우도 ‘분차’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작은 종이에 비스듬히 초자 몇자 끌쩍이다/맑은 세유로 분차놀이를 즐긴다.” 분차놀이는 일상속에서, 의례속에서 차의 화려함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분차’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여러 가지 기록속에서 사실로 보여진다. 그러나 마치 ‘신의 손’ 같은 차 우려내는 기술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 이런 결혼식은 어떻습니까

      세상에는 보통 결혼식 같은 것은 도무지 싱거워서 재미가 있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남녀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있는 법. 그래서 공중결혼식에서 수중결혼식까지 벌어지는가 하면 신랑신부가 알몸으로 식을 올리는 등 기발한 취향의 결혼식「언·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곡예사 신랑 신부는 로프 위에 무릎 꿇고 주례는 소방차(消防車) 사다리서 ★ 공중곡예 결혼식 「프랑스」의「뜨루즈」시에 있는 널따란 공원에서 가장「드릴」있는 결혼식이 베풀어졌다. 지상 18m의 공중에 둥실 떠올라서 곡예사인 신랑 신부가 식을 올리는 동안 이 가관을 구경하려고 도시락을 싸 들고 모여든 관중 2만명도 숨을 죽인 채 하늘을 응시했다. 신랑 신부는 두 사람이 모두 대담무쌍한 공중 그네타기 곡예사였다. 신랑은 정식 예복차림이고 신부는 펄럭이는「가운」을 걸쳤었다. 두 삶은 그 옷차림으로 두 줄기의 강철제「로프」에 무릎을 꿇고 엄숙한 선서를 했다. 주례도 함께 허공에 올라갔었다. 그는 소방차의 사닥다리를 하늘 높이 뽑아 올려서 그 꼭대기에서 두 남녀의 앞날을 축하해 주었다. 이 주례는「파리」에서 용명을 떨친 목사였다. 그는 일찍이「파리」의 교회부흥기금모금에 도움이 되도록 사람을 모으기 위해「세느」강에 뛰어든 빛나는 경력의 소유자. ★ 알몸 결혼식 「플로리다」의「마이애미비치」근방에 있는「누디스트」촌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신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2백명의 하객 앞에 섰었다. 옷을 입은 사람이 한 사람 있긴 있었다. 주례를 맡은 변호사. ★ 수중 결혼식 자연주의자들이 일부러 햇빛 찬란한 태양 아래서 자연상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식을 올렸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물속에서 지낸 신랑 신부도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수중결혼식은 한국의 어느 남녀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미국「필라델피아」수심 5m의「풀」속에서 식을 올린 것이다. 신랑 신부는 주례를 보는 목사에게 접속된「마이크로폰」을 단 잠수모자를 쓰고 풍덩 뛰어 들어갔다. 점잖은 목사는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풀」의 조약대에서 십자를 긋고 의식을 거행했었다. 목사까지 물속으로 끌어들인 열성적인「커플」도 없는 것은 아니다.「로스앤질리스」의 한「커플」의 경우. 수영광인 목사를 설득해서「풀」밑바닥에서 주례를 맡아보게 하는데 성공했다. 세 사람은 해수욕복에 잠수모자를 쓰고「이어폰」에 접속된 긴 선을 쥐고 결혼 행진곡의「리듬」에 맞추어 사이 좋게「풀」속으로 뛰어들어 갔었다. 이때 신부의 해수욕복은 물론 초(超)「비키니·스타일」. ★「파라슈트」결혼식 미국사람 중에는 비행기상에서 하늘을 날면서 결혼식을 올린「커플」도 있다. 이전에「뉴요크」의 한 신랑 신부는 비행기가 꼭 고도 640m에 이르렀을 때 선서를 하고「파라슈트」로 나란히 뛰어내렸는데… 흥분한 신부는 3백m나 내려와서「파라슈트」를 여는 끈을 잡아당겼단다. 기구(氣球)결혼식 올리다가 무서웠는지 뛰어내린 신부도 죽을 뻔 그런가 하면 기구 결혼식을 올린 남녀도 있었다. 이때는 매력적이면서도 흥분하기 쉬웠던 신부가 불과 152m 상공에서 식을 끝내자 말자 갑자기 무서웠는지「테네시」강에 뛰어내려 한때 소란을 피웠다. 다행히 신부는 지나가던 배에 구조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있었다. 신랑쪽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예정대로 유유히 457m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무사히 내려와서 응급치료를 받은 신부를 데리고 갔다. ★「제트·코스터」결혼식 「뉴요크」유원지의「제트·코스터」를 타는 동안에 사랑에 빠진「힐다」라는「브론드」의 처녀와「데이비드」라는 청년은 숨막히는 결혼식을 거행했다. 「제트·코스터」가 맹렬한「스피드」로 급상승하고 혹은 급강하하면서 선로를 달리는 사이에「데이비드」군과「힐다」양은 무사히 식을 올렸다. 주례를 맡은 목사의 머리카락과「가운」은「제트·코스터」가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크게 뒤로 휘날리고 사진사는 문자 그대로 눈알이 뱅뱅도는 의식을「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 회전통 결혼식 「제트·코스터」만이 멋이냐.「포·터라이드」라는 시속 72km의「스피드」로 회전하는 회전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린「커플」도 출연하는 판이다. 1956년 1월 미국「아이오와」주「데모인」시에서「아이오와」주 축산물경진대회가 열렸을 때의 경사다. 회전통 속에서 원심력 하나로 벽쪽에 붙어 서 있을 수 있는「커플」은 선서의 말을 큰 소리로 마치 싸움하듯 외쳐야 했다. 더욱이 놀란 것은 이 결혼식의 중매와 주례를 맡은 사람은「아이오와」주지사. ★ 전화 결혼식 1933년 대서양을 횡단하는 세계 최초의 국제전화 결혼식이 있었을 때 세계는 정말 놀랐었다. 미국「디트로이트」에 사는 신랑과「스톡홀름」에 사는 신부의 목소리는「뉴요크」「메인」해안,「그라스고」「런던」경유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었다. 전화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신부는「웨덴든」에서 남편이 사는 미국으로 향해 출항하기 전에 일찌감치 미국시민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전화 결혼식은 7분간이 걸렸지만 그 중 3분간은 신랑이 전화가 멀어져 들리지 않는다고 신부에게 소리소리 지르는데 쓰여 신랑은 4분간의 통화료(당시 돈으로 9「파운드」10「실링」)만 냈다. 평소에 원수 진 사람들만 골라 화해(和解)겸 식(式)올린 괴짜도 ★ 박애(博愛) 결혼식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곱게 실천한 신랑 신부가 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 신랑의 들러리는 신랑을「스피드」위반으로 잡아 무거운 벌금을 빼앗아 간 교통순경이었고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와 재판 중인 여성복 양재사. 또 주례를 맡은 목사는 신랑의 새 사업인「나이트·클럽」개점에 반대해서「데모」까지 한 목사였다. 귀한 손님으로는 이「나이트·클럽」논쟁에서 목사쪽을 두둔하는 기사를 쓴 신문기자까지 끼여 있어 실로 다양스러웠다. 식이 끝난 뒤 이들이 모두 다정한 친구가 된 것은 물론이다. <KHS합동 = 본지독점>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미 남부 카트리나 대재앙] “교도소 한곳에 시신 2000구 수습”

    미 정부 고위 당국자가 4일(현지시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사망자가 수천명이 될 것이라고 처음 공식 확인한 가운데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이재민을 다른 주에 분산 수용하는 문제가 연방정부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뉴올리언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 1800여명의 인력이 휴식 없이 수색 중이지만 피로 누적, 장비 부족 등으로 악전고투하고 있으며 한 책임자는 “모든 고립된 이재민을 구조할 만한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은 정부 각료로는 처음으로 뉴올리언스를 완전 소개한 뒤 도시 자체를 옮겨 건설할 가능성을 거론해 논란에 불을 다시 지폈다. ●“모든 이재민 구할 수는 없지 않으냐” 카트리나 내습 일주일 만인 이날 미시시피주 당국은 시신 수습에 착수, 오후 5시 현재 152명의 사망을 확인했고 뉴올리언스에선 59구의 시신을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리빗 보건장관은 CNN에 출연,“이번 재해로 인한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인할 순 없지만 수천명 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연방 관리가 이 정도 사망자 수를 언급한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크레이그 밴더웨건 해군 소장도 “한 감옥의 시체 공시소에만 1000∼2000구의 시신이 수습돼 있다.”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해안구조대장 브루스 존스는 현장에 다녀온 생존자 수색대원들의 말을 인용,“한 집에선 노인 세명이 침대에 누운 채 죽어가고 있었다.”며 “구조대원들이 많이 지쳐 시 전역에 흩어진 이재민들을 모두 구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에 숨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희생자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또 다른 허리케인 비껴갈 것 같아 다행 USA 투데이는 “이재민들이 빠져 나간 뉴올리언스 곳곳에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다.”며 “물이 빠져나간 주택의 다락방과 구겨진 휠체어, 아직도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 고속도로 주변에 시신들이 널려 있다.”고 참혹한 현장 모습을 전했다. BBC는 뉴올리언스의 상징 슈퍼돔에서 이재민들이 겪었던 악몽의 순간을 되살렸다. 피로와 허기에 지친 이재민들은 강간, 살인, 자살 등의 음산한 소문에 시달려야 했고 한 의료팀이 산모의 출산을 돕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인분이 보였으며 깨끗한 물도 부족했다. 리빗 장관은 “미시시피주 빌럭시에서 이질 발생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CNN 등은 “피해지역에서 깨끗한 물이 부족하고 물에 잠겨 있는 시신들이 처리되지 않아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와 E콜리 박테리아 등 전염병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 경찰과 주방위군이 신원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무고한 이를 사살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특히 한 여성은 화장실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으며 강간범은 사람들에게 구타당해 죽었다는 목격담까지 등장했다. CBS와 CNN 등 주요 방송사는 뉴올리언스 북쪽에 위치한 폰차트레인 호수와 미시시피강을 연결하는 덴지거 다리 위에서 이날 오전 경찰이 약탈자로 보이는 8명에게 총격을 가해 4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경찰 간부는 “이들이 먼저 경찰에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뉴올리언스 상공을 비행하던 민간 헬기 1대가 추락했으나 총격에 의해 추락하지는 않았으며 탑승했던 2명도 찰과상만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많은 우려를 낳았던 다섯번째 허리케인 ‘마리아’는 해안지대로 비껴갈 것으로 예보돼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처토프 장관 “아예 옮기자” 뉴올리언스 시민 48만여명 중 수천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이재민이 된 만큼 이들을 한두 지역에서 전담할 수 없어 분산 수용이 과제로 떠올랐다. 4일 현재 25만여명이 텍사스주 구조센터 등에 수용돼 있는데 릭 페리 주지사는 이날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웨스트버지니아, 유타, 오클라호마, 미시간, 아이오와, 뉴욕, 펜실베이니아주 등이 수용 의사를 밝힌 상태다. 처토프 장관은 루이지애나주 매터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식량과 식수 공급이 재개될 것이란 희망를 갖고 도시를 재건하는 동안 사람들이 뉴올리언스 집에서 몇주, 몇달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며 “그것은 위생과 건강 문제가 있어 합리적 대안이 아니다. 추가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뉴올리언스를 미국의 다른 쪽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라며 “몇 군데가 될지 말할 수 없으나 우리 조국은 앞으로의 일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외신 bsnim@seoul.co.kr
  •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고려 500년 도읍지였던 개성은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까탈스럽고 번거로운 CIQ(출입관리시설) 검문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북측의 통제를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여행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분단 55년 만에 문을 연 개성 관광길. 금강산에 이어 두번째 북한 관광길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손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개성 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다소 낡아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는 화분으로 한껏 멋을 냈고, 그 사이로 시민들이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교복 입은 아이들, 한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들…. 풍경 하나하나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진촬영을 통제해 가슴에만 담아온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개성. 하루로는 진정 아쉬움이 컸던 개성 당일관광으로 안내한다. 개성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것은 조심하세요 개성 관광은 북측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이 적지 않다. 어길 경우 위반금을 물어야 하며, 심할 경우 북측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때와 북측 CIQ 및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북측의 정치, 경제, 사상 등 서로 자극할 수 있는 대화는 자제하고, 검문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소지물품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신분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개성관광증은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출입 여권 및 비자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휴대품에는 제한 규정이 있는데 ▲10배율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초점거리가 160㎜ 이상인 카메라 렌즈나 이를 탑재한 카메라 ▲광학 24배줌 이상 캠코더 ▲휴대전화(PDA포함)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 관광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물품 등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는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측 귀환시 반환받을 수 있다.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기념품은 1인당 300달러까지만 면세가 적용된다. 북측 의약품과 뱀술, 영정술, 우황청심환과 북한 사상 관련 각종 출판물은 남측 반입이 되지 않는다.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북한군들은 남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지 내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삼가고,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 개성 37mile 당일치기 여행 벽은 무너지고… ‘개성 시내의 모습은 어떨까. 선죽교, 박연폭포의 경치가 아름답다던데’ 설렘 속에 시범관광단을 실은 버스가 서울 경복궁을 출발했다. 개성까지의 거리는 약 50㎞. 승용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는 북한 땅으로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 곳은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 민족의 통일 염원을 담은 다리지만 차량 통제를 위해 겹겹이 막아놓은 바리케이드가 먼저 분단 현실을 실감케 한다. ‘남북왕래차량외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가로막힌 도라산역 남측 CIQ(출입관리시설). 버스에서 내려 CIQ에서 간단한 짐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경수속을 마쳤다. 출경 수속은 일찍 끝났지만 정해진 시간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버스가 다시 남측 CIQ를 출발했다. 군사분계선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평온해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한다.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철길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널리 알려진 낡은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북한땅.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으로 넘어가자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버스를 응시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군 장교가 버스에 올라 눈으로 인원체크를 하는 것으로 북측 CIQ 입경 수속이 시작됐다. 버스 앞에서 눈으로 인원을 세는 사이 버스에는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그 시선은 마치 이곳부터는 ‘북한’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이어 인민군 장교가 ‘개성 관광증’에 찍힌 일련 번호에 따라 호명하는 순으로 버스에서 내린 뒤 몸검사와 짐검사가 시작됐다. 인민군과 세관,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CIQ에서는 가방을 열어 일일이 모든 것을 체크한다.CIQ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기정동 마을이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몇 ㎜입네까?”라며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위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여행의 재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CIQ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평양 아리랑 총회사 소속 직원들이 술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판매원 김윤화(21)씨는 “시내에 들어가면 술 한병에 여기보다 다섯달라(5달러) 이상 비싸요.”라며 권한다. 실제 개성인삼주가 이곳에서는 8달러지만 박연폭포 앞에서는 14달러를 줘야 한다. 1시간이면 달려올 거리를 3시간 만에 버스가 개성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는 20대 후반의 문광철(관광총회사 소속)씨와 조성(개성시 소속)씨 등 2명의 안내원이 동승했다. 이동중에 시내나 북한 주민 등의 사진 촬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일행 중 한명이 “시내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문씨는 “그러면 아주 불쾌한 관광이 됩네다.”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끝나지 않아 덜컹거린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드디어 개성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중심가에는 20층은 족히 돼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베란다는 갖가지 화분들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제갈길을 재촉했다. 아파트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멀리 아파트 창문으로는 빠꼼히 버스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보고픈 충동이 밀려 왔다. 언젠가는 마음놓고 걸어볼 날이 오겠지…. 버스는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에 도착했다.992년 창설된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으로 1308년 성균관으로 개칭됐으며, 조선시대 설립된 성균관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성균관으로 불린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10년 재건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물과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 석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북측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안내원들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이어진다.“고려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많이 약탈했습네다. 이제 북·남이 힘을 합쳐 다시 찾아와야지요.” 송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이옥한(40) 해설원은 유물 설명중 ‘개성 깍쟁이’의 유래에 대해 “‘깍쟁이’라는 말은 ‘가게 쟁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셈이 밝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상업이 번창해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박물관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죽교에 도착했다.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의 일환으로 건립한 돌다리지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의 길이는 6.67m, 너비는 2.54m. 원래는 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둘러 보호하고 옆에다 돌다리도 하나 더 놓았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화려함은 없지만 정갈한 느낌이다. 안내원 한명이 다리 한편에 있는 옅은 붉은색 얼룩을 가리켰다. 그는 “이게 정몽주 선생의 피”라며 “그래서 선지교였던 이곳이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죽교 옆에는 정몽주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여러개 서 있다. 당초 일정이 개성민속여관에서 정몽주 생가인 ‘숭양서원’으로 바뀌었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여관으로 꾸민 것으로 현재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고 있어 관람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7월11일 붉은기, 선죽동, 제2인민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측 안내원에게 “학교 간판이냐.”고 묻자 “번지인데 이 집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주 영정 등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서는 개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원 앞에 있는 간이 상점에 들르자 북한 음료가 눈에 띈다. 코카콜라와 비슷한 검은색 음료는 ‘코코아 탄산단물’이며, 환타와 같은 음료는 ‘모란봉 레몬 탄산 단물’이란다. 가격은 1달러. 냉장고에서 꺼낸 코코아 탄산단물은 달착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갈증을 풀어준다. 숭양서원을 나와 개성백화점, 김일성 동상 등을 지나 개성 남대문 로터리를 돌아 다시 선죽교 인근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다른 식사 장소로는 통일관과 영통식당, 민속여관내 식당 등이 있다.2층 식당에서는 한상 가득 개성식 식사가 차려져 나왔다. 반찬으로는 개성 약밥과 떡합석, 삼색나물, 닭고기 장과, 돼지고기 편찜, 오이소박이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우메기’. 종업원 김영실씨는 “찹쌀 70%에 멥쌀 30%로 만들었는데 기름에 튀긴 뒤 떡 위에 우묵우묵 칼자국을 내서 ‘우메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왜 안 나오느냐고 묻자 “개성은 보쌈김치가 유명한데 그건 겨울에 오셔야 합네다.”라고 덧붙인다. 식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하지만 11첩 반상기와 단고기(개고기) 정식 등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을 연상시킬 만큼 널찍한 초원이 반긴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은 구릉들로, 푸른 초원이 덮여 있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에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아스팔트 4차선 도로다. 평양까지는 160㎞로 승용차로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도로 주변에서는 옥수수 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농부들이 노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감시원이 있어) 멋진 경치를 눈으로만 담아와야 했다. 200m 남짓한 숲길을 오르자 박연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다 못을 만들고 그 아래 37m 높이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 위에는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 아래 직경 40m의 고모담이란 바위 연못이 있다. 박연폭포는 화강암벽의 순수 자연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반도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인근 소나무, 화강암벽이 자연스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포수 아래 동쪽 언덕에는 법사정이라는 정자가,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각각 절묘한 미색을 자랑한다. 자남산 여관 서점에서 산 ‘개성관광안내 책자’에 따르면 ‘옛날 퉁소를 잘부는 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서 퉁소를 부는 그에게 끌리어 물 밖에 나온 용왕의 딸이 박진사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살았다고 하여 ‘박연’이라고 한다. 그 아래 고모담은 박진사의 어미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통곡하다가 물에 떨어져 ‘어미담’ 또는 ‘고모담’이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박연폭포 위 대흥산성에 오르면 위에서 박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는 마사토로 질지 않다. 1시간 남짓 박연폭포를 돌아본 뒤 짧은 개성 관광이 마무리됐다.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원들의 재촉에 “여행이 수박 겉핥기 식이다. 너무 짧다.”며 곳곳에서는 아쉬움 섞인 푸념들이 들려 왔다. 박연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반세기 만에 찾은 남측 손님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 꼭보자 베스트3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던 만큼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왕릉과 고려 31대 공민왕릉, 고려민속박물관, 선죽교, 영통사 등 고려 유적지가 주류를 이룬다. - 왕건왕릉(북한 사적 제53호) 개성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왕건왕릉과 신혜왕후 무덤은 왕건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왕릉은 1994년 새롭게 단장됐다. 3단 축조의 웅장한 무덤과 그 앞에 문무관의 석인상, 호랑이와 양을 비롯한 석조군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능문과 제당도 갖춰져 있다. 무덤안을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으며, 능앞에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왕릉에서 청동의 왕건조각상이 출토돼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등신대의 인물조각상으로 연구가치가 높다. - 공민왕릉(북한 국보급문화재 제39호) 개성에서 서쪽으로 9.8㎞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봉명산 문선봉 아래에 있는 무덤은 쌍분으로 왼편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이고, 오른편이 부인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이 무덤은 남한에서 주로 보는 왕릉과 달리 3개의 층단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분의 높이는 6.5m. 각 봉분에는 12각의 병풍석을 돌리고 12지신상과 연꽃무늬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애통한 나머지 9년 동안 자신이 직접 주관, 방대한 조영사업을 벌였다. 이 왕릉에는 고려시대 수학, 천문, 지리, 건축, 예술 등 총체적인 역량이 집대성돼 있다. - 영통사(북한 보물급 문화재 35~38호) 1027년(현종 18년) 창건되었다.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해 분향하였으며,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도 이곳에서 교관을 배웠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로는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6호인 영통사대각국사비, 제37호인 영통사 당간지주, 제35호인 영통사동삼층석탑, 제38호인 영통사서삼층석탑, 국보급문화재 제37호인 영통사오층탑이 있고 보광원, 중각원 등이 있다. ■ 3가지 코스 중 고르세요 개성관광은 ‘고려반’‘박연반’‘왕릉반’ 등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코스를 택하게 돼 있다. 고려반은 오전 개성시내관광(고려박물관, 선죽교, 개성민속여관), 오후 박연폭포를 참관하는 코스이며, 박연반은 오전 박연폭포, 오후 개성시내 관광을 하는 것. 왕릉반은 공민왕릉과 왕건릉을 참관한 뒤 오후에 개성시내관광을 하는 것이다. 관광은 대략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쯤 모두 끝나게 되며,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 시범단지를 견학한다. 관광 중 세부적인 해설은 북측의 전문 해설원들이 맡게 되며, 점심식사는 개성시내에 있는 자남산호텔식당이나 영통식당, 통일관, 민속여관내 민속식당 등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아산에 따르면 본 관광 시기와 요금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3차례 실시된 시범관광의 경우 관광요금 17만 4000원과 식대 2만 1000원을 포함해 19만 5000원인데 본 관광 요금이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문의 및 예약은 현대아산 (02) 3669-3000.
  • 0.7m의 전율…견지낚시

    0.7m의 전율…견지낚시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계곡들이 고요함과 적막함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곳은 강태공들의 차지. 견지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계곡으로, 강으로 손맛을 즐기러 떠납니다. 조상들의 멋과 여유를 간직하고 있는 견지낚시. 아름다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강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서나 세월을 낚을 수 있는 견지낚시는 릴낚시나 대낚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꾼’만 하는 낚시가 아닙니다. 짧은 낚싯대에 큼직한 고기를 낚는 재미도 좋지만, 맑은 물 흐르는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다보면 스트레스까지 말끔히 날아갑니다. 현대인을 위한 웰빙 레포츠이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가족형 레저로 견지낚시는 더욱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견지낚시는 물에 들어가서 하는 흘림낚시와 배에 앉아서 하는 배낚시로 나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여울과 견지’, 견지협회 회원들과 함께 견지의 맛을 보러 떠났습니다. 가평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300년이 넘은 낚시 정확하게 견지낚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소요정’이란 그림에 견지낚시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 왔음은 분명하다. 일본인 미쓰사키 메이지가 쓴 조기백과에는 1730년대 평양에 사는 홍씨가 견지낚시를 발명했다고 적고 있다. 역사가 최소한 300년 이상 되는 셈이다. ●숏다리, 잡으면 대물 견지대는 불과 70㎝. 세계에서 가장 짧은 낚싯대다. 낚싯대보다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견지대 하나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 구조를 살펴 보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전후 원대(손잡이 부분)에 나무빗살을 스무 두어 개 박은 것으로, 그 모양은 파리채와 비슷하다. 원대의 직경은 겨우 3∼4㎜. 빗살의 위와 아래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약간씩 비틀려 어느 낚시도구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절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비틀림’ 때문에 낚싯줄이 고르게 감긴다. 또 큰 고기가 걸리면 낚싯대가 휘면서 줄이 풀릴 때 탄력을 줘 매달린 물고기에게 충격을 가한다. 그 작은 낚싯대가 큰 물고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비결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대나무와 등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쓰였으며 지금은 솔리드 글라스대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국내 유일한 배 견지터 청평댐 앞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배 견지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견지낚시는 흐르는 물에서 해야 하므로 댐의 수문을 열지 않으면 낚시를 할 수 없다. 청평배견지(011-745-3342)에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1만5000원이면 OK! 낚시도구에 미끼까지 1만원이면 충분하다. 견짓대 한 대에 수십만원짜리도 있지만 줄을 포함해서 2000∼5000원짜리 보급형도 있다.2만∼3만원이면 사림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칠칠낚시(www.77fishing.co.kr)에서는 미끼와 밑밥을 담은 목걸이형 주머니(1000원), 낚은 고기를 담아 두는 살림망(3000원), 미끼를 담아 물고기를 유인하는 썰망세트(8000원) 등 기본 장비를 판다. 수장대(7000원)는 여울견지에서 몸을 지탱하게 하거나 살림망을 걸어두는 필수 장비. 사고에 대비한 구명조끼(3만원선)와 체온유지를 위해 바지장화(4만원)도 준비해야 한다. # 지금이 ‘딱’이에요 아침 10시 우리나라 유일한 배 견지터인 청평댐을 찾아갔다. 벌써 많은 강태공들이 북한강 지류에서 배를 타고 견지낚시를 하고 있었다. 함께 나간 이들은 강대식(71)·이정훈(56) 씨를 비롯해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이상 견지낚시를 즐긴 도사급들이다. “이맘때가 견지낚시를 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라는 강대식씨는 “물고기들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먹이 사냥 움직임이 활발해져 씨알이 굵은 놈들이 자주 나온다.”고 말한다. 그는 “물도 그다지 차지 않고 무엇보다 피서객들이 없어 한가로이 세월을 낚을 수 있기 때문에 꾼들은 이맘때를 항상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이정훈씨는 “낚시의 종착역이 바로 견지낚시”라며 “견지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거든다. 웃음으로 반겨 주는 꾼들의 얼굴에선 한 점의 각박함이나 스트레스를 읽을 수 없었다. 일단 깻묵과 구더기를 4대1정도로 섞어 밑밥을 만든다. 그 다음 밑밥을 넣은 썰망에 추를 달아 강에 던진다. 흐르는 강물을 타고 썰망이 저만치 가라앉는다.“이게 고기들을 유인하는 겁니다. 썰망 사이로 빠져 나가는 미끼를 먹으려고 고기들이 썰망 앞쪽에 모이죠. 자, 손맛을 볼까요….” 손을 강물에 넣어 보았다. 물살이 꽤 빨랐다.“추가 좀더 무거워야 할 것 같은데….”그는 중간 노란 고무에 추를 달고 바늘에 구더기 3마리를 끼우고 강물에 바늘을 던졌다. 순간 “어, 왔네. 역시 바로 오네.” 금방 고기가 물었다. 이씨의 환호에 덩달아 들떴다. 설장(견지대의 머리부분)이 휘청이며 ‘투두둑´ 줄이 풀려 나간다.“견지대를 옆으로 뉘어서 몸쪽으로 쭉 당기세요. 오른손으론 대를 돌려 줄을 감아요. 조심 조심! 줄이 설장 밑으로 감기면 휘어지지 않아 대가 쉽게 부러져요.”뭔가 도울 게 없을까 대를 쥐고 있던 내게 이씨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들고 있는 대가 20만원이나 하는 고가품이라며…. 하지만 물고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폭이 10㎝도 안되는 설장에 보이지도 않는 낚싯줄을 감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는 손맛 물고기의 퍼덕거림에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설장이 휘청휘청, 놈이 바늘을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손을 타고 온몸에 전율이 전해졌다. 갑자기 이씨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왔다. 저기저기….” 정말 푸른 물 속에 검은 물체가 하나 보였다. 표면에 모습을 드러낸 놈은 누치였다.30㎝는 족히 넘어 보인다. 놈도 위험을 직감했는지 마지막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견지대를 머리 위로 올려서 공기를 마시게 해요. 물고기 힘빠지게….”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이씨는 내게서 낚싯대를 잡아챘다. 순간, 누치는 바늘을 빼고 사라졌다. 아, 그 아쉬움이라니…. 또 다시 바늘을 바닥에 드리우고 견지대를 몸 안쪽으로 당겼다 밀었다하는 스침질을 하며 바닥을 훑었다. 스침질을 할 때마다 설장을 반바퀴씩 돌려 줄을 풀어 준다. 견지로 반평생을 살아온 이씨의 스침질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몸짓처럼 부드러웠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이렇게 입질이 없을 때는 뭔가 잘못된 겁니다. 줄을 감아 미끼가 있는지 아니면 이물질이 붙지는 않았는지 한번 살펴 보세요.”역시 선배의 말은 들어야 한다. 바늘에 청태(파래같은 물이끼)가 잔뜩 묻어 있다. 새 미끼로 갈았다. 바로 그때 옆자리에선 또 환호성이다.“왔다.” 견지대를 쭉 당겼다 밀면서 감기를 몇 번. 이번엔 20㎝가 넘는 누치였다. 신기했다. 이렇게 작은 낚싯대로 큰 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내가 잡은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우리 배에서 잡았다는 자족감에 젖었는데 이번엔 옆 배에서 환호성이 들렸다.“멍짜(50㎝가 넘는 물고기)야. 멍짜가 왔어.”박찬화(50)씨는 휘어진 견지대를 두 손으로 잡고 소리친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20분이 흘렀을까, 놈이 실체를 드러낸다.60㎝ 가까운 녀석이라 뜰채로 건져 올렸다. 우리 선조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낚싯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짧은 낚싯대로 그처럼 큰 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나는 다시 한번 집중했다. 어깨너머 구경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는 일. 또 한마리를 더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 물고기도 사람을 알아 본다네 이상도 하지. 같은 배에 나란히 앉아서 스침질도 비슷하게 하는데 왜 내 바늘에는 소식이 없을까. 욕심탓인가, 내 낚시바늘은 여전히 가뿐한데 옆사람은 5분에 한 마리씩 잡아올렸다. 정말 고기에게도 눈이 있다더니…. 누치는 미끼가 흘러갈 때 문다. 그래서 스침질을 할 때마다 줄을 조금씩 풀어줘 썰망 앞에 있는 녀석들을 유인해야 한다. 추를 달아 썰망 앞 2m 정도에서 스침질을 해야만 물고기의 입질을 받을 수 있다. 무작정 던져 놓고 물고기가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라나. 역시 어느 분야든지 고수는 다른 법. 우리 배에서만 누치 20여마리를 잡았다. 물론 내가 잡은 것은 한 마리도 없다. 하지만 내가 건진 것은 ‘많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전, 일행은 잡았던 누치를 모두 놓아 주었다.“원래 우리는 손맛을 보려고 오지. 또 누치는 가져가 봐야 별로 쓸 데가 없어요.”올 때처럼 역시 빈바구니였다. 아, 이것이야말로 자연과 하나된 삶의 모습이구나. # 자연과 내가 한 몸 청평에서 차를 몰고 약 1시간을 달려 홍천 팔봉산 앞 계곡으로 들어갔다. “요즘 계곡에는 피서객들이 지나간 뒤라 입질이 자주 없지만 대물이 종종 출현해 손을 즐겁게 해주지요.” 바지장화를 입고 견지대를 뒤에 꽂고 가는 김정교(50·견지협회 사업국장)씨의 모습이 멋스럽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줄을 강물에 띄워 보내며 스침질을 한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계곡물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든다.“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요. 줄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좋은 사람들….” 김군학(51·건축업)씨는 한창 견지낚시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경제적이지요. 낚싯대가 2만원이면 되는데 대낚시나 바다낚시와는 비교가 안되죠. 초보자도 배우기 쉽고….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견지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없어져요.” 섬유수출업에 종사하는 권재구(55)씨의 견지낚시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다. #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움 정말 산그늘에서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니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듯, 강물은 그렇게 흘러간다. 계곡 얇은 곳에는 아이들과 견지낚시를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아빠 잡았어. 이것 봐. 물고기야.”하는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와 반바지를 입고 스침질을 하던 황소윤(9·고양초등학교)양의 목소리다. 불과 2∼3㎝도 안되는 피라미를 잡고는 너무 좋아한다.“견지낚시는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키워 주고 자연과 함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효과가 있지요. 정말 아이들이 쉽게 배우고 바로 손맛을 느낄 수 있어 가족 레포츠로 그만이에요.” 황선태(38·식당운영)씨의 견지예찬론이다. “어허 왔네.” 조그마한 피라미를 들어 올리는 김정교씨의 웃음은 결코 커다란 누치를 잡을 때에 비해 작은 것 같지 않다. 피라미의 손맛은 누치와는 또다른 묘미가 있다. 견지대는 70㎝도 안 될 정도로 작아 손에 오는 느낌이 대낚에 비해 훨씬 살아 있다. 찌를 쓰지 않고 오직 줄을 타고 오는 느낌만을 손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예민하고 섬세하다. 그래서 민물, 바다, 루어 등 낚시를 웬만큼 안다는 사람들이 찾는 마지막 코스다. 또 루어나 플라이처럼 물고기를 찾아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물고기를 유인하므로 체력 소모가 적다. 자연과 벗하며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견지를 하며 다가 오는 가을을 준비하면 어떨까.
  • [논술 가이드라인] “예이츠詩 욕망과 연관 분석하라”

    [논술 가이드라인] “예이츠詩 욕망과 연관 분석하라”

    교육부의 논술 기준을 따를 때 어떤 문제가 해당되고 안되는지 궁금해진다. 입시전문학원인 종로학원은 29일 교육부 기준에 따라 주요 대학들의 최근 기출 논술 문제를 분석, 공개했다. 이 학원에 따르면 논술에 해당하는 유형으로는 주요 대학의 정시모집 논술 문제가, 논술에 해당하지 않은 유형으로는 수시모집 논술 문제가 많았다. 논술에 해당하지 않은 유형 가운데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로는 고려대와 숙명여대의 2006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고사를 예로 들었다. 숙명여대는 소설가 복거일씨의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라는 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발견 과정과 과학사적 중요성에 대해 서술할 것을 요구했다. 고려대는 정수와 유리수의 관계를 간단히 소개한 뒤 복소수의 필요성과 실수와 구별되는 복소수의 성질 세 가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수학·과학과 관련한 풀이의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유형으로는 고려대와 이화여대의 2006학년도 수시1학기 수리논술을 예로 들었다. 고려대는 염색공장의 생산량과 염색업자와 양식업자의 이윤을 표시한 표를 주고 서로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설명하라는 문제를, 이화여대는 아파트에서 남산타워의 높이를 계산하는 방법을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교육부의 기준에 맞는 출제 가능한 문제로는 고려대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의 2005학년도 정시 논술문제와 서강대의 2004학년도 정시 논술문제를 제시했다. 서울대는 두 개의 우리말 제시문을 주고 별도로 제시한 특정 문장을 인용해 자신의 견해를 담아 논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냈다. 고려대는 4개의 우리말 제시문을 주고 공통 주제와 제시문간 관계, 자신의 생각을 물었다. 연세대는 영국 시인인 예이츠의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이라는 시를 번역 제시하고,‘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쓰라고 요구했다. 이화여대는 3개의 우리말 제시문을 바탕으로 네번째 제시문에 대해 찬반 입장을 정해 현대사회 안에서 비일상성이나 비현실성이 지니는 기능을 논하라는 문제를 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1년만에 2집 ‘Hip’로 A/S? 친절한 춘자씨

    1년만에 2집 ‘Hip’로 A/S? 친절한 춘자씨

    ‘춘자스럽다’라는 형용사를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엽기, 독특, 가슴, 터프, 솔직, 강렬, 중성, 코믹…. 이런 단어들을 마구 뒤섞어 한데 버무리면 춘자라는 가수가 ‘뿅’하고 눈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가수 춘자(26·본명 홍수연)는 충분히 춘자스러웠다. 연예인과의 인터뷰 내내 쉬 가시지 않는 “이 사람의 실제 모습은 과연 어떨까?”라는 궁금증은 첫 질문부터 이내 사그라들었다. 고정관념을 뒤엎는 통쾌함은 없었지만, 대중적 이미지와 다름없는 실제 모습에서는 사람 냄새가 폴폴 풍겨났다. ●드라마에, 영화 OST에 “바쁘다 바빠” “나원참, 드라마 나온다고 난생 처음 하이힐도 신고, 머리도 기르고, 속눈썹도 가닥가닥 붙이고…1집때의 워낙 드센 캐릭터로 기억들 하실까봐 주위 권유를 따랐지만, 노래 연습할 짬 내기도 힘들고, 정말 불편하네요. 하하.” 타이틀곡 ‘남자는 가로 여자는 세로’와 설운도와 함께 녹음한 트로트풍 댄스곡 ‘A/S’를 담은 2집 앨범 ‘hip’으로 돌아온 춘자는 요즘 자신의 잰걸음이 다소 버겁지만, 그리 행복할 수가 없다며 특유의 호탕한(?)웃음을 흘렸다. 본격적인 노래 홍보 활동을 시작이 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곳 저곳에서 자신을 찾아주니 행복하단다. 그녀는 현재 KBS 2TV 드라마 ‘그녀가 돌아왔다’를 통해 연기 욕심을 채우고 있다. 김효진의 단짝 선배이자 문천식의 상대역인 양숙역으로 나온다. 그녀의 리얼한 연기에 시청자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녀는 새달 8일 개봉 예정인 영화 ‘가문의 영광2’OST 작업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2집 앨범에 수록된 곡 가운데 1∼2곡이 영화 뮤직비디오에 삽입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대우 받아서 좋기는 좋은데, 그래도 역시 가수는 노래로 알려져야 하는데…” 기회가 되면 코믹한 ‘동네 양아치’나 스릴러물속 ‘사이코’, 액션물속 ‘막무가내 경찰’역할로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는 그녀. 하지만 무엇보다 노래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드라마 출연용으로 조금 꾸몄더니 ‘예뻐졌다.’고 난리가 났더라고요. 예전에 그렇게 남자같았나요?(웃음)”라며 목소리 톤을 높인다. 맞장구 대신 “예전의 ‘엽기’이미지가 여전히 잘 어울린다.”고 말하자, 고개를 갸우뚱한다.“이해할 수 없어요. 전 그냥 솔직해서 당당한 것일뿐인데요.” 그럴 수도 있겠다. 대중들이 하지 못하는 것(특히 여성들이 그럴것이다)을 그녀가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는 것일게다. 그녀 생각도 같았다. ●“‘춘자 밴드’도 만들고파” 실제 성격을 물었더니, 이내 조신한 목소리로 “천상 여자라니까요.“라며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밥도 손수 짓고, 빨래도 하고, 짬나는 대로 뜨개질도 한다며 미소짓는다. 하지만 뒤에 따라 붙는 남자스러운(?) 웃음이 꽤나 잘 어울리는 것은…. 춘자의 과거가 궁금했다. 물어봤더니 이내 속사포처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지역미인선발대회’ 수상자 출신인 어머니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그녀. 어릴 적 동요보다는 대중가요를 따라 춤추고,15살때 경기도 안양의 한 라이브카페에서 노래한 첫 무대 경험. 고교 졸업후 ‘난영가요제’대상 수상과 2002년 월드컵 당시 ‘트레이닝복’과 ‘탱크톱 패션’으로 미사리와 의정부, 홍대 등 라이브 클럽을 돌며 자유롭게 노래부른 경험 등 그녀의 시간 여행은 끝날줄 몰랐다. 하지만 가수 아니랄까봐 결국 얘기는 앨범 얘기로 귀착됐다.“두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녹음을 마칠 정도로 자신감있게 불렀어요. 대중과 좀더 공감할 수 있도록 여러 장르를 시도했죠.” 기회가 되면 ‘춘자 밴드’를 조직해 펑키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 활동도 해보고 싶다는 그녀는 이미 3집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빠르면 12월 록발라드, 재즈, 솔 등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올거예요. 춘자도 다소곳해지냐고요?그런 걱정은 매달아 두세요. 하하.”춘자는 춘자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한국 최초의 수중결혼식

    한국 최초의 수중결혼식

      수중결혼식 비용 모두 2만원, 답례품은 사진 든 예쁜 카드로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한국 최초의 수중결혼식이 12월 14일 하오 2시 수심 3m의「워커힐·풀」속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전 세계를 통틀어 7번째인 이 수중경사를 구경하려고 모여든 인파는「워커힐·풀」을 가득 채웠는데 하객들은 모두 신발을 벗어 들고 입장. 구두가 뒤바뀌는 소동도 벌이고. 7백여 하객이 빽빽이 들어선 가운데 먼저 신랑인 현용남(玄勇男)(30·기독교방송근무)군이 물속에 입장, 다음 신부인 이애자(李愛子)(25·기독교방송근무)양이 노란「스폰지」로 된 수중「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물속에 입장. 식은 수심 3m의 물속에서 진행되어 하객들은 장내에 특설된「마이크」를 통해『지금 결혼서약서에「사인」했습니다』『이제 곧 한국최초, 아니 세계최초의 수중「키스」가 있겠습니다』하고 소개되는 것으로 겨우 식의 진행을 알 수 있는 정도. 그동안 하객들은 물위에 떠있는 흰 꽃송이 5, 6개가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모습과 때때로 흰 물거품이 솟아오르는 것만을 구경하고 있을 뿐. 신랑의 할머니뻘 된다는 한 할머니는 흰 물거품이 솟아오를 때마다『저거 저러다 물먹는 거 아니냐?』고 초조해 하기도. 고대(高大) 밴드가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드디어 수중결혼식의「클라이맥스」인「키스」가 성공한 순간 두 개의 소형 축포가 터지고 색채도 선명한「핑크」빛 축연(祝煙)이 물속에서 솟아올라 장내는 삽시간에「핑크·무드」. 식이 끝난 후 신랑 현용남씨가 밝히는 바로는, 이 진기한 수중결혼식에 든 비용은 모두 2만원. 청첩장은「스쿠버·다이빙·클럽」에서 찍어주고「워커힐·풀」은「워커힐」측이 무료제공. 대신 이 두 원앙은 첫날밤을「워커힐」에서 지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겐 예쁜「카드」가 답례선물로 주어졌는데 이「카드」엔 수중결혼식 광경사진이 들어있다.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 서훈받은 사회주의자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 내한

    서훈받은 사회주의자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 내한

    “항일전선에 바친 아버지의 짧은 삶이 이념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4일 서울 인사동의 한 한정식집. 두번째 고국을 찾은 고영광(68)씨를 위해 조촐한 환영회가 열렸다. 고씨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의 아들. 김산은 남에서는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북에서는 연안파였다는 이유로 양쪽에서 모두 배척당한채 비운의 생을 살았다. 우리 정부는 올해에야 김산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가정체성을 흔든다며 반대도 만만치 않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 때문에 일괄적으로 한 단계 낮춰 훈장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늦게나마 부친생애 되새길 수 있게 돼” 이런 논란에 대해 아들 고씨의 입장을 물었다.“아버지는 민족의 독립에 전 생애를 걸었습니다. 이 명백한 사실은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나, 남북이 분단됐다는 이유로도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경위야 어떻든 2년여 간에 걸친 노력 끝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서훈을 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늦게나마 드러내 놓고 부친의 생애를 되새길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의 희생과 도움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고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가 1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1957년 대학 입학 무렵에야 어머니에게서 아버지 얘기를 전해들었다.“일제 침략에 비분강개할 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다고 하시더군요.” 뒤늦게 여기저기 흩어진 아버지의 흔적들을 모았지만 곧 몰아친 문화대혁명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를 처형한 캉성(康生)은 마오쩌둥의 최측근이자 바로 문혁의 주도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 후 어머니가 재혼한 뒤 성을 고씨로 바꿨고, 그가 ‘장영광’이 아닌 ‘고영광’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문혁의 광풍이 잦아들면서 70년대 말부터 중국정부에 이의를 제기해 80년대 초 마침내 아버지를 복권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호적도 바꿨다. 이제 서른이 넘은 그의 아들들도 모두 할아버지 김산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남북 분단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번에야 뒤늦게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다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고씨가 김산의 ‘진짜’ 아들인지 증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번 한국행도 우리 정부의 공식 초청이 아니라 김산을 기념하는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초청으로 이뤄졌다. ●정지영 감독 “김산 영화 내년 촬영” 그러나 김산의 마력은 이미 우리 문화 전반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씨가 ‘토지’를 애초 1권 분량의 소설로 기획했다가 김산의 일대기를 접하고는 만주·연해주·일본·조선을 넘나드는 대하소설로 바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산의 생애는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남부군’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이 나섰다. 정 감독은 “이장호 감독 등 많은 감독들이 욕심을 냈는데 군부독재 때문에 아무도 엄두를 못냈다.”면서 “나에게 좋은 기회가 돌아온 만큼 누구보다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이미 4년여 동안 김산의 흔적을 찾아 중국 땅을 누비고 다녔다. 연말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고씨의 자문을 받은 뒤 내년부터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산은 누구? 평북 용천 출생인 김산은 아나키스트로 독립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때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을 접하게 된다. 그는 이후 ‘체계적 항일’을 위해 사회주의로 전향, 광둥 코뮌·해륙풍소비에트·대장정 등 중국혁명에 투신했다. 중국혁명이 조선의 광복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었던 것. 동시에 ‘물속의 소금’이라는 그의 화두에서 알 수 있듯 조선민족의 문제가 중국 해방에 녹아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중국 공산당에는 편치 않았다. 스탈린이 끝내 트로츠키를 제거했듯, 중국 공산당은 그를 트로츠키주의자·일본스파이로 몰아 38년에 처형하고 말았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내부의 적들을 숙청하는데, 이 방법을 배워온 인물이 캉성”이라며 김산 처형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치열한 삶에 견줘 죽음은 너무나 허망했지만 권력에 물들지 않았던 순혈의 혁명가 김산에게는 그런 죽음이 더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1)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1)중국인 술사 두사총과 ‘정감록’

    ‘정감록’엔 중국인 술사 두사총(杜師聰)이 썼다는 ‘두사총비결’(杜師聰秘訣)이 포함돼 있다. 외국인의 이름을 빌린 예언서란 점에서 이채를 띤다. 자세히 알고 보면, 때로 중국 술사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적이 없지 않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를 따라 중국의 술사들이 많이 왔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조정의 후대를 받았다. 위세를 부리다 못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조선왕조실록’에 그런 내용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다. 뒷날 한국 민중은 그런 몹쓸 중국 술사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민중들이 칭찬하는 중국 술사도 없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두사총이다. 이상하게도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에는 그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두사총은 민간설화와 함께 민중의 기억 속에 길이 간직되었다. 그가 저술했다는 ‘두사총비결’은 늦어도 19세기 말부터는 ‘정감록’의 일부가 되었다.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에 가면 묘라리(妙羅里)란 마을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이 마을 이름을 처음 지은 이가 바로 두사총이었다고 기억한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온 두사총은 중국 군대를 따라 전국 각지를 누볐다. 한 번은 이곳을 지나게 됐다. 두사총은 이곳의 지세를 자세히 살핀 다음 ‘풍취라대’(風吹羅帶)라고 결론지었다. ●술사 두사총은 명나라군대의 일원 비단 허리띠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이란 이야기다. 비단 띠는 고관대작이나 두르는 귀한 물건이라, 장차 이 마을 사람들은 부귀를 누리게 된다는 풍수예언이었다. 그런 뜻을 새겨 두사총은 마을 이름을 ‘묘라’(妙羅 매우 고운 비단)라고 했다. 훗날 묘라리는 번영을 누렸고, 묘라, 후리, 두무동 등 3개 마을로 발전했다. 따지고 보면, 두사총은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군대의 일원이었다. 그에겐 조선의 지세를 자세히 염탐해 중국에 보고할 사명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조선에 어마어마한 명당이 있다면 그 맥을 끊어 땅 기운을 약화시킬 임무를 띠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두사총은 그런 일에 종사한 흔적이 없다. 그는 전국을 유람하다 좋은 자리가 나오면 스스럼없이 조선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조선에 명당이 있다면 그 복은 당연히 조선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이런 두사총의 마음은 한국 민중에게 전해졌고, 민중은 그를 자기들 편으로 믿게 됐다. 두사총의 행적에 관해 많은 설화가 남아 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에도 한 가지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생달리란 마을 입구에 ‘마총’(馬塚)이란 비석이 서 있고, 깊은 곡절이 있는 말 무덤이 있다. 경상도까지 살펴보게 된 두사총은 이곳에서 ‘연주패옥(連珠佩玉)’이라 불리는 대명당을 발견했다. 구슬을 꿰고 옥을 단다는 뜻의 이런 명당에 묘를 두면, 그 집안에 금관자·옥관자를 단 정승 판서 벼슬이 수없이 나온다고 한다. 이 천하제일의 명당을 두사총은 정탁(鄭琢·1526~1605)에게 전해줄 생각이었다. 정탁은 지조 높은 선비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곽재우(郭再祐) 및 김덕령(金德齡)과 같은 명장을 발탁해 나라를 구하려고 애쓴 문신이었다. 정탁은 자기 한 몸의 안락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두사총은 정탁이야말로 장차 이런 명당의 주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몰래 정탁의 하인에게 그 명당 터를 일러줬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정탁이 세상을 떴다. 정탁의 아들은 아버지가 묻힐 명당을 찾아 하인과 함께 생달리까지 찾아왔다. 그런데 그들 일행이 생달리 동구 밖에 도착했을 때 불행히도 그 하인은 말 뒷발에 차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들은 몹시 억울하고 분심이 치밀어 올라 그 자리에서 말을 칼로 베어 죽였다. 생달리의 마총에 관한 전설에서 거듭 확인되듯 중국 술사 두사총은 ‘우리 편’으로 기억되었다. 전설 속의 그는 정탁과 같은 충신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조선 최고의 명당을 조선 최고의 신하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이었는지 누구도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 있다. 민중은 중국인 술사 두사총을 의리 있고 믿을 만한 지관으로 손꼽았다는 점이다. 두사총은 국적을 떠나 도선 및 무학대사 등과 더불어 한국 민중이 가장 존경하는 풍수의 대가였다. 사실 임진왜란 때는 다수의 중국인 술사들이 전국을 훑고 다녔다. 명나라 군대가 가는 곳마다 그들이 보였고 그 기세도 높았다. 조선 사람들은 중국 술사들에 대해 깊은 혐의를 두고 있었다. 그들 술사는 아무래도 중국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인 술사들에 대한 불신이 깊어가는 가운데 민중은 그 반대편에 선 인물을 찾고 있었다. 민중이 보기에 진정 훌륭한 지관이라면 조선의 길지를 조선인들에게 돌려줘야 마땅했다. 위에서 살핀 두사총과 정탁에 관한 설화는 이런 민중의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호종단이란 나쁜 중국인 술사 두사총과는 영 딴판인 중국인 술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악질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이가 호종단(胡宗旦)이다. 그는 멀리 중국 송나라 때 인물로 제주도에 파견돼 명당기운을 해칠 사명을 띠었다 한다. 당시 세상엔 한 가지 소문이 횡행했다. 제주도엔 13개의 명당이 있어 천하제일의 인재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을 주도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중국 황제는 무척 당황했다. 황제는 압승지술(壓勝之術 명당기운을 억누르는 기술)의 대가 호종단을 제주도로 보내 13혈(穴)을 찾아 침질을 하게 했다. 비밀리에 호종단은 북제주군 표선면 의귀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서귀읍 서홍리로 옮겨 혈을 죽이려 했다. 이렇게 13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기(地氣)를 억눌렀다. 제주도 동부지방에는 샘이 별로 없고 서쪽에는 샘물이 많은 편인데, 그것은 호종단의 소행과 관련이 있다 한다. 더러 호종단의 뜻대로 된 곳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개는 천지신명의 방해로 호종단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둘러 일을 끝낸 호종단은 중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가 탄 배가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 앞바다의 한 섬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 마리 날쌘 매가 배 위로 날아왔고 그러자 사나운 폭풍이 일어나 배를 물속에 가라앉혔다. 호종단은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았다. 제주도 사람들의 해석이 재미있다. 호종단의 횡포에 분노한 한라산신이 매로 변해 복수했다는 것이다. 호종단의 귀로를 차단했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고산리 앞바다의 그 섬을 차귀섬(遮歸島)이라 부른다. 호종단의 활동과 죽음에 관한 설화는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 역사상 제주의 풍수지리를 염탐할 목적으로 외부에서 술사들을 파견했을 법은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제주도의 어느 지역에선 샘물이 메마르고 인재의 배출이 멎었을 리는 없다. 도리어 사태는 그와 반대로 진행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정 지역에서 샘과 인재가 메마르자 그것을 호종단과 같은 악질적인 술사들의 행위 탓으로 돌렸다고 생각된다. 때로 민중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두려움의 근본적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호종단은 민중이 공동의 기억 속에 불러들인 가공인물일 수도 있다. 그 점은 민중의 희망을 대변하는 두사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극히 선한 것과 극히 악한 것은 역사적 실체가 없는 기억의 창조물일 가능성이 많다. ●망각된 중국 술사 섭정국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당시 국왕 선조는 명나라에 술사의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다.“특별히 방술에 정통한 사람을 보내 주시어 지리를 명백히 살피게 하여 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실록, 선조 26년8월8일 기축) 조선 측은 왜란이 터지자 수도 이전을 비롯해 궁궐과 능묘의 이전을 검토 중이었다. 국내엔 이처럼 큰일을 감당할 마땅한 전문 인력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중국 측에 도움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명나라 군대를 따라 조선에 들어온 술사들이 여러 명이었다. 김상(金上), 풍중영(馮仲纓), 왕종성(王宗盛), 양문성(楊文成), 이문통(李文通), 유원외(劉員外 이름은 미상)가 이를테면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그들 가운데 풍중영과 왕종성은 수도 한양의 풍수를 논하기도 했다.“건국된 지 2백년 만에 재액(災厄)이 있겠으나 그 뒤로는 무사하다.”(선조 26년8월10일 신묘)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은 1592년 임진년에만 한 차례 난리를 겪을 뿐 운수가 무궁하다는 일종의 덕담이었다. 선조는 그 말에 무척 감격해했다. 중국의 여러 술사들 가운데서 가장 각광을 받은 이는 섭정국(葉靖國)이었다. 그는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와 가까워 왕실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풍수에 관한 일이라면 모두 관여했다. 선조비(宣祖妃)의 능을 정하는 문제에도 깊이 간여했다. 외국인이 조선 왕비의 능묘를 정하는 일에 뛰어들자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설사 섭정국 같은 이가 풍수에 능해 길지를 얻는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격국(格局)과는 다르다. 그는 심지어 길가의 낮은 지역과 집 뒤의 조그마한 동산을 가리키며 가장 좋은 곳이라 하니, 무슨 증거로 그 말을 믿겠는가?”(선조33년7월14일 을묘) 본래 풍수지리에 관한 이론은 고대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한·중(韓·中) 두 나라의 풍수 보는 법은 상당히 달랐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풍수지리설이 등장하기도 했고, 지역마다 유행하는 이론도 달라 서로 일정할 수가 없었다. 당시 한국에는 김여견(金汝堅), 김덕원(金德元), 송건(宋健) 및 이의신(李懿信), 박상의 등이 술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조선인 술사들의 능력을 불신했다. 결과적으로 섭정국의 활동영역은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었다. 서울에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는 것까지도 그의 견해를 참고할 정도였다(선조32년4월29일 무인).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 섭정국은 남대문에 벽보를 붙여 명나라의 도망병들을 불러 모아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조선 측에 물자 공급을 독촉하면서 관리를 구타하고, 도망병들을 거느리고 못할 짓이 없었다 한다. 선조는 풍수설(風水說)에 현혹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은 섭정국의 터무니없고 괴이한 주장을 맹신해 왕비를 장사지내는 일정을 몇 달씩이나 지연할 정도였다. 그러나 섭정국은 거만을 피우며 도리어 조선왕조의 관리와 백성들을 마음대로 때리고 짓밟는 등 만행을 자행했다. 얼마 후 섭정국은 명나라로 송환되었으며 한국 민중은 그를 깡그리 잊었다. 민중은 사기꾼 같은 섭정국이란 존재를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두사총비결’에 담긴 뜻 두사총은 조선의 중앙 정치무대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민중은 그를 무척 친근하게 여겼으므로, 예언서의 저자로 둔갑시켰다. 섭정국의 경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크게 보아 ‘두사총비결’의 요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어떤 곳이 길지며, 어느 곳이 흉한 땅인가를 밝혀 놓은 것이다. 이런 논의는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공통되는 점이 대부분이다. 물론 ‘두사총’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주장도 전혀 없지 않다. 길지에 관한 ‘두사총’의 견해를 살펴보면 우선 “태백산과 소백산은 백두산에서 갈려 내려와서 산맥이 나뉘었는데 본래부터 왕성한 기상이 있어 화기(和氣)가 넘쳐흐른다.”고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영천의 백운산, 동주, 용해를 먹을 것이 풍족해 대를 이어 길이 보존할 땅으로 보았다.‘정감록’은 어느 것이나 태백산과 소백산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두사총’ 역시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좀 더 부연하면 ‘정감록’은 백두산에서 시작돼 지리산까지 뻗어나간 백두대간의 주요 명당을 무척 중시한다.‘두사총’도 그런 입장이다.“화산, 가야산, 지리산, 두류산과 삼풍의 네 평야는 곧 어진 정승이나 좋은 장수가 계속해서 나올 곳으로서 땅은 기름지고 풍속은 순후해서 오래 갈수록 더 좋으나 누가 주인이 되겠는가?” 그밖에 영가의 백운산, 화약산, 대아산, 도성산, 명주(강릉), 소양의 기린산과 낭읍의 대미산을 길지로 손꼽은 것도 백두대간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두사총’은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의 명산을 꽤 중시하는 편이다. 오서산과 성주산, 강화의 마니산, 약수산을 “병화(兵火)가 들어가지 않고, 간사한 것이 침입하지 않는다”고 했다.“태령의 수양산과 곡산의 밝고 아름다움은 재앙과 어지러움이 이르지 않아서 길이 복된 땅이 될 것이오”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 여러 산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이른바 십승지(十勝地)에 속하지 않으며 ‘두사총’에만 길지로 나와 있다. 그런데 누구나 길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한다.“덕을 쌓고 오랫동안 어진 일을 한 집이 아니면 어떻게 여기에 살 수가 있겠는가?” ‘두사총’은 이렇게 반문한다. 이런 자격 검토도 실은 ‘정감록’ 요소요소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메시지다. ‘두사총’의 개성은 흉한 땅에 대한 주장에서 좀더 뚜렷이 부각된다.“호남의 산은 등을 돌리고 달아난 것이 많아서 좋지 못한 일이 많이 생긴다. 이것은 내버려두고 말할 것이 없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호남의 지세를 배역(背逆)으로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례로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가 그렇다. 그와는 달리 ‘정감록’에는 부안 변산, 무주, 운봉, 해남 등지를 길지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웬일인지 이런 전통을 ‘두사총’은 따르지 않는다. 그 대신 “신안 몇 고을은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고 하여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어쨌거나 호남을 푸대접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흔히 길지로 취급하는 경기도 양근의 용문산 등에 대해서도 ‘두사총’의 평가는 몹시 부정적이다.“양근 용문산과 유양산은 안으로 세 가지 안목의 정교한 것이 없으면서도 오로지 깊고 궁벽한 것을 숭상하여,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어 여기에 산다. 그러나 용문산 기운은 삼각산에 빼앗겼으니 이는 아마도 헛된 꽃이요 죽은 굴혈일 것이다. 게다가 산 안의 형세도 돌아서서 버리고 끌고 나갔다. 지각 있는 군자라면 내 말이 없더라도 알 것인즉 삼가고 삼가라.” 인용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용문산으로 들어와 피란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있다. 그런데 이것은 19세기 말의 사정이었다. 앞에서 말하기를,‘두사총’은 충청도와 경기도 일원의 새 길지를 언급한 점에 한 가지 특색이 발견된다고 했다. 그에 덧붙여 19세기 말 경기도 용문산 일대의 형편도 사실적으로 기술돼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를 종합해 보면,‘두사총’은 19세기 말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지방에서 저술되고 읽혔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도 임진강 동쪽, 철령 이남을 이상향으로 상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으로 봐야 옳겠다.“임진강 서쪽과 철령 북쪽은 무엇을 족히 의논하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서북 지역은 극히 흉한 땅이란 얘기다. 굳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주장이다. 어찌 보면 새로운 듯하면서도 ‘두사총’은 ‘정감록’의 상궤를 그리 멀리 이탈하지는 못한 것이 틀림없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유행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이드의 깃발을 쫓아 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구시대 유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내맘대로’ 자유롭게 떠나는 선진국형 개별자유여행(FIT)이 새로운 추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어디를 가보았다는 ‘점찍기식’ 여행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유럽의 관문인 프랑스를 FIT로 직접 다녀왔다. 쪽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초록빛 계곡과 드넓은 초원을 따라 파리에서 노르망디, 루아르, 꼬뜨 다쥐르, 프로방스까지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렌터카와 지하철, 버스, 프랑스 철도와 연안 여객선, 조그만 지방 철도에도 올랐다. 여행도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났다. 에펠탑이나 니스해변 등 여행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명소들보다 프랑스의 푸른 자연속에 숨겨진 비경들이 더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패키지 여행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기자가 다녀온 10박 11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소개한다. ■ 도움말 MK유럽, 레일유럽, 프랑스관광청 프랑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행, 이렇게만 하면 준비가 반이다 준비에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랐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준비에 노력한 만큼 편하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출발 한달전.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항공과 숙박, 이동수단 등의 순으로 여행의 골격을 잡았다. 항공편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서 특가 상품을 찾아냈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니스행 항공권으로 항공료 79만 9000원에 파리 스톱오버(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 비용 10만원, 세금 10만 9000원 등 모두 100만 8000원. 정상 가격(130만∼180만원대)보다 많이 쌌다. 일본이나 두바이 등을 경유하는 60만∼80만원대 항공편도 있었지만 편하고 빠른 직항편을 택했다. 숙박은 유럽지역 호텔 예약 전문업체인 MK유럽(02-719-0461)을 통해 일정에 맞는 주요 도시에 호텔을 정했다. 인터넷에 숙박예약 사이트가 많지만 MK유럽은 국내 여행사 등에 호텔을 공급하는 다국적 호텔 체인업체로 훨씬 저렴하다. 숙박은 특급부터 일반 호텔까지 다양하며, 숙박비는 문의해 경비에 맞추면 된다. 교통수단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단거리 이동은 현지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철도나 렌터카 등은 국내에서 예약하는 것이 편하고 저렴하다. 유럽 지역의 철도는 레일유럽 한국사무소가 있는데 개인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서울항공(755-1144)과 걸리버(2170-6500),RTS(722-4033)에서 대행한다. 렌터카는 허츠나 에이비스, 알라모 등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개별 여행인 만큼 휴대전화 로밍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통신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분당 발신은 1000∼2000원, 수신은 400∼500원이다. 여행자 보험은 출국직전 공항에서 가입하면 된다. 비용은 보상액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사망 1억원, 상해치료 2000만원, 질병치료 1000만원, 휴대품 분실 40만원의 경우 10일에 1만 5000∼2만원선이다. 여행 준비물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기가 가볼 곳에 대한 여행정보를 미리 찾아 준비하고, 프랑스 여행서적 2권 정도를 지참하면 좋다. 특히 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는 불어 안내서밖에 없는 만큼 불어 사전도 지참하면 요긴하다. 이 정도만 준비하면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기타 현지 여행 정보는 기사의 <ⓘ>를 참고하면 된다. ◆ DAY1 몽마르트르, 야경에 취하다 ●설렘과 걱정, 파리에서의 첫날밤 ‘잠시후 샤를르 드골공항(CDG) 도착하겠습니다.’현지 시간 오후 6시40분(국내 시간 새벽 1시40분). 파리 도착을 알리는 대한항공 KE 901편 기장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파리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하다. 오후 1시55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왔지만 파리는 한낮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쬔다.‘뭘 해야하나?’ 첫 숙박지를 찾는 것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목적지는 파리시내 북쪽에 위치한 ‘포레스트 힐 라 빌레트’(Forest Hill La Villette). 시내 지도를 펴고 한동한 고민한 끝에 고속전철(RER)과 지하철을 타는 것이 찾기 쉬울 듯싶어 공항 RER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RER 티켓(8.75유로)과 지하철표를 10묶음 단위로 할인 판매하는 ‘카르네’(carnet)를 구입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함께 탈 수 있는 티켓 1장은 1.30유로지만 카르네는 10유로. <ⓘ-1> 처음 타본 RER는 후텁지근했는데 무엇보다 내릴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없어 당혹스러웠다.RER는 20분만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고, 지하철 2,7호선으로 갈아타고 ‘포르트 드 라 빌레트’(Porte de la Villette)역 에 내렸다. 지하철 역시 안내방송이 없어 역구내의 간판을 보면서 내릴 곳을 가늠해야 했다. 지하철 문도 우리와 달리 수동식으로 내릴때 녹색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열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 프런트에 ‘호텔 바우처’(호텔 예약서)를 보여주고 방을 얻은 뒤 짐을 풀었다. 별 3개인 호텔 숙박료는 조식을 포함,1박에 210유로. <ⓘ-2> ●젊음이 가득한 몽마르트르 언덕 밤 9시.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기위해 과감히 방을 나섰다. 지하철 7,2호선을 타고 앙베르(Anvers)역에 내려 사크레쾨르 사원이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순백의 성당 잔디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붐볐고, 언덕위의 노천 식당 테라스는 활기가 넘쳤다. 배가 고파왔다. 성당 아래 ‘레테 앙 팡트 두스’(L´ete en Pente Douce)라는 작고 예쁜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오늘의 요리’로 치즈와 토마토, 돼지고기 등을 넣은 샐러드 ‘살라드 뒤 뮐레’(11유로)로 양이 무척 많다. 팁은 식탁에 놓고 나오면 된다. <ⓘ-3> 순백색 조명을 밝힌 성당을 올라가자 야경을 감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너무 자주 보여(?) 금방 익숙해 졌다. 이어 성당을 끼고 오른쪽길로 올라가면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타나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10여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밤 12시 호텔로 돌아와 파리의 첫날밤을 지냈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아침 7시로 밤을 꼴딱 세운 셈이다. <ⓘ-4> ◆ DAY2 센강은 좌우를 나누지 않는다 ●쪽빛 하늘을 따라 도심을 걷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물빛이 창밖에서 쏟아진다. 그 빛에 놀라 잠을 깬 것은 오전 5시. 시차 탓에 빨리 일어난 것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인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전 8시.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중심인 시테(Cit)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5> 시테역에 내리자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인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파리 중심석이 새겨져 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비취는 성당 내부는 장엄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어 걸어서 파리의 중심을 흐르는 센(Seine)강을 건넜다. 강폭은 넓지 않았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 3·4대학(소르본대학)을 거쳐 뤽상부르 공원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앙리 4세의 왕비가 세운 공원으로 넓이가 25만㎡에 이른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나무과 넓은 잔디밭. 잔디에 누워 하늘을 봤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죽은자들의 세계 카타콩브 찌는 듯한 더위는 시원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지하묘지 카타콩브(Catacombes·입장료 5유로).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간 지하묘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주택가 한복판에 만들어진 지하묘지로 800m에 이르는 동굴안에 인골 600만기가 안장돼 있다. 낮 12시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나선형 계단을 땅속으로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동굴안에서 서늘함이 밀려왔다. 기온은 11∼12도. 밖의 날씨와 비교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 춥다. 가로 1.5m, 높이 3m의 동굴을 따라 100m쯤 걸어들어가자 유골이 동굴 양 옆으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출구까지는 45분이 걸린다.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와자’(Wadja)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식당이다.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는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디저트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채요리는 꽃양배추 샐러드, 메인요리는 생선과 쇠고기, 디저트는 과일프루츠나 치즈빵 중에 고르면 된다.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가격도 14유로로 비교적 저렴하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등 저명인 100여명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공원처럼 편안한 곳이다.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7호선 퐁마리(Pont Marie) 역에 갔다. 역에서 나와 퐁마리 다리를 건너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보이는 ‘베르티용’(Berthillon)이라는 집이다. 유사한 아이스크림 집이 많아 헷갈리기 쉽지만 간판에 ‘31번’이라고 쓰인 집이 원조다. 가격은 1컵짜리가 2유로,2컵짜리가 3.5유로다. <ⓘ-6> 휴식도 여행의 일부. 오후 8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7> ⓘnformation center ⓘ-1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RER와 버스, 택시 등 다양하다.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에어프랑스 버스의 경우 편도 11.50유로 정도이며, 택시는 도심까지 40∼50유로(야간 20% 할증)다. 환율은 1유로에 1240원 정도. ⓘ-2 이는 공시 가격으로 국내에서 예약하면 훨씬 저렴하다. 호텔 숙박료는 대도시와 지방,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방 도시의 별 1∼2개짜리 호텔이 40∼80유로다. 별 3개 이상은 100∼300유로 선이다. ⓘ-3 팁은 음식값이나 택시요금의 10% 정도지만 식당에서는 통상적으로 2∼3유로 정도면 된다. ⓘ-4 항공권은 에어프랑스 티켓을 끊었지만 왕복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인천∼파리행은 오전 10시25분, 오후 1시55분 두차례 있는데 오전은 에어프랑스, 오후는 대한항공이 운항된다. 두 항공사가 코드셰어(좌석공유)를 해 두 곳 중 저렴한 항공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된다. 돌아오는 항공편은 오후 1시15분,9시50분에 있다. 에어프랑스 티켓으로도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5 지하철은 14호선까지 있으며, 운행은 오전 5시30분부터 자정넘어(0시30분)까지 운행한다.1·3·5일권인 파리비지트 패스(www.parisvisite.co.kr) 등 다양한 할인 티켓 제도가 있지만 하루에 티켓이 2∼3장 정도면 충분한 만큼 카르네가 간편하다. ⓘ-6 프랑스 거리는 집 주소만 알면 지도 한장만 들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돼 있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 번호를 따라 가면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7 프랑스 전원은 220V로 우리나라와 같다. 자기전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충전하면 된다. ◆ DAY3 전원 드라이브, 느림을 즐기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과 개선문 전날 너무 일찍 잠을 청한 탓에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아 오후부터 시작될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다. 책을 펴고 오를리(Orly) 공항에서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원 몽생미셸로 가는 길을 연구했다. 전날 5유로 주고 구입한 미슐랭(Michelin) 프랑스 전도를 펴고 고민하는 사이 어느 덧 날이 밝았다. 오전 일정은 에펠탑과 개선문. 식상하리만치 유명한 파리의 상징물이지만 빼놓을 수는 없었다. 오전 8시 에펠탑을 향했다. 에펠탑은 6호선 트로카데로(Trocadero)역과 비르아캥(Bir-Hakeim)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샤이요(Chaillot) 궁전도 구경하면서 내려갈 겸 트로카데로 역에서 내렸다. 멀리 샹드 마르스 공원과 에펠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1898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은 높이 320m로 3개 층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어 샤를르 드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역에서 내려 개선문을 본 뒤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넓은 도로를 따라 유명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오를리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센강을 따라 앵발리데(Invalides) 옆에 있는 에어프랑스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센강 유람선을 타는 바토뮤슈 승선장에는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센강과 어우러진 에펠탑의 풍경이 장관이다. 퐁데 앵발리드 다리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앵발리드 공원을 지나자 정류장이 나타났다. 도보로 30분. 오를리행 버스는 30분마다 1대씩 있는데 1인당 8유로다. 차비는 기사에게 내면 된다. 시내 교통이 막혀 공항까지 40분쯤 걸렸다. ●렌터카를 몰고 시골 풍경속으로 오를리 웨스트 공항 허츠 렌터카 데스크에서 한국에서 예약한 바우처와 함께 국제면허증, 신용카드를 내밀자 손쉽게 수속을 끝냈다. 직원은 프랑스내 호텔 주소를 물은 뒤 “한번도 안 탄 새차를 빌려 주겠다.”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수속을 마친 뒤 터미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렌터카는 이제 막 출고된 소형 벤츠. 타코미터(운행기록장치)에 36㎞라고 찍힌 갓 출고된 차량이었다.<ⓘ-8> 오후 1시30분. 무작정 공항을 빠져 나왔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 낯선 차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괜히 빌렸다.’는 후회도 들었다. 렌터카 직원이 “공항을 나가 5분쯤 파리 시내쪽으로 가다가 ‘베르사이유’(Bersailles) 방향의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로 진입하라.”고 알려줬지만 긴장한 탓에 진입로를 놓쳤다.10여분쯤 헤매다 결국 차를 세운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겨우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편도 3차로의 차선중 모든 차가 가장자리의 차선을 이용한다는 것. 추월할때만 1·2차선을 이용했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 비가 올 때는 110㎞. 차들은 운전경력 15년인 나도 별로 내본적이 없는 170∼190㎞의 속도로 말그대로 쌩쌩 달린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자 주변 경치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벌판에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속의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샤르트르 지방을 지나 고속 휴게소로 들어갔다.<ⓘ-9> 낯선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달린지 3시간. 국내에서 좋아하는 음악 CD 등을 가져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쯤 달리자 오후 5시30분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널찍한 갯벌 사이로 난 긴 도로를 달리자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웅장한 수도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도원 앞 주차장(주차료 4유로)에 차를 세운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성 내부 관람은 6시까지로 아쉽게도 입장이 마감됐다. 그렇지만 성안 마을 등은 돌아볼 수 있었다. 성안은 17세기의 마을 모습 그대로다. 고풍스러운 호텔, 식당,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과거의 마을이다. 레스토랑 호텔인 ‘메르 풀라르’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비스킷 가게에 들러 버터와 우유가 듬뿍 들어간 ‘칼레트’ (9유로) 한상자를 샀다. 오후 8시쯤 성을 나와 숙소를 잡기로 했다. 다른 지역의 숙소는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했으나 이 지역은 렌터카 일정이 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몽생미셸에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성밖 마을에는 호텔들이 많았다. 그러나 차로 1시간을 달려 항구도시 생말로(St.Malo)에 도착했다. ●시골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 밤 9시. 생말로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해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제트스키, 보트 등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의 일종인 상트로 바트릭 바탕고 ‘오베르주 쥐네스’(Auberge de jeunesse). 건물이 아담하고 예쁜데다 해변 근처에 있어 인기가 높은 숙소다.2인실을 빌려 짐을 풀었다.(숙박료는 조식 포함 1인당 16.5유로). 방은 깨끗하고 넓었다.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올 초부터 한국 배낭여행객들이 조금씩 찾고 있다.”며 2유로인 침대 커버를 무료로 건네줬다. 짐을 풀고 인근 ‘엘 파티오’(El Patio)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했다. 작은 피자와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자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달아났다. 특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는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값은 10유로. ⓘnformation center ⓘ-8 렌터카는 국내 대행업체에 전화로 예약하면 이메일로 바우처를 보내주는데 인쇄해서 가져가면 된다. 비용은 24∼27일(3박 4일) 72시간 빌리는데 89.59유로이며, 세금 등을 포함해 143유로 정도가 든다. 예약시 오토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국제면허증은 각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면 당일 발급해 준다. 인지대 5000원. ⓘ-9 휴게소는 우리나라 비슷하다. 주유소를 거쳐 들어가면 대형 슈퍼마켓과 화장실, 레스토랑이 있다. 톨게이트도 우리나라 체계와 비슷해 입구에서 표를 뽑은 뒤 나갈 때 돈을 지불한다. ⓘ-10 프랑스의 운전에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은 ‘선진입차 우선’인 교차로. 우리나라와 같은 사거리에는 대부분 로터리가 있는데 왼쪽에 진입한 차가 없으면 들어갈 수 있다. ⓘ-11 고성 투어버스는 투르역 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하는 투어 차량이 있다. 반나절(5∼6시간), 하루코스(9시간) 등이 있는데 20∼40유로다. 입장료와 점심값은 별도다. ◆ DAY4 투르, 동화나라로 가는 길 ●생말로에서 투르까지 안개 낀 ‘그랑베 섬’(Rocheur du Grand Be)과 해안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변은 이른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지는 해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몰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가자 프랑스 최대의 항구답게 수백여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고, 영국 등지로 떠나는 대형 여객선도 기적을 울리며 사람들을 불렀다. 오전 10시. 간단하게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루아르(Loire) 고성지역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보다는 시골 국도를 달리고 싶은 마음에 국도를 따라 떠났다. 내리던 빗줄기도 점차 줄어든다.<ⓘ-10> 시골길은 무척 한적했다. 스쳐지나가는 하나하나의 풍경이 그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고흐, 고갱,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스쳤다. 대형 지도를 따라 가다 보니 수차례 길을 잃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냥 주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라발, 앙제시내를 거쳐 지나갔다. 기름이 거의 바닥이 가까워 온다. 주유도 하고 잠시 쉴 겸 다시 고속도로에 들렀다. 얼마쯤 달리자 휴게소다. 주유소는 셀프 주유다. 노랑, 파랑, 빨강 라벨의 주유기가 있어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 근처에 있는 “주유원에게 어느 것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쉬페르 프르미에르’(Super Premiere)라고 쓰인 노란색 주유기를 가리켰다. 처음으로 직접 해보는 주유. 차의 주유기를 열고 넣자 45ℓ나 들어간다. 기름이 가득차면 저절로 멈춰 주유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름값은 50유로로 따져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계산은 주유한 후에 중앙에 있는 계산원에게 가서 주유기 번호를 불러주면 된다. 투르로 향하는 길은 영화속에서나 봤음직한 전원 풍경 그대로다. 경치에 취해 차를 대놓고 쉬어가기를 여러번. 사나흘을 머물러도 좋을 듯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의 만남 오후 4시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리는 루아르 계곡에 접어들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20㎞의 루아르 강을 따라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 귀족들의 수많은 성이 흩어져 있다. 프랑스 전역에 약 5000개의 성이 있는데 이중 쉬농소·앙부아즈·랑제·앙제·블루아·쇼몽·슈베르니성 등 80여개가 이 곳에 있다.<ⓘ-11> 첫 목적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무대가 된 위세(Uss)성. 투르시내에서 28㎞떨어진 곳으로 1485년에 건축됐다. 동화속의 성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첨탑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아름답다. 너무 조용해 정말 공주가 잠만 잘 수밖에 없었을 것처럼 고요하다. 사진은 성 앞에 있는 작은 강 뒤에서 찍는 것이 예쁘다.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인근에 있는 아제 르 리도(Azay-le-Rideau)성으로 향했다. 성보다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휴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점심은 인근의 ‘라망드’라는 식당에 들어가 오믈렛(8유로)으로 간단히 때웠다. 이어 빌랑드리(Villandry) 성으로 향했다.16세기 건축물로 르와르 고성중 가장 마지막에 곳.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쉽지 않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성 관광’ 안내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각종 야채가 있는 정원, 장식정원, 분수정원 등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내부와 정원 관광은 8유로. 오후 7시. 투르 시내에 예약한 ‘홀리데이 인 호텔’에 들어갔다. 기차역 앞에 있어 찾기 쉬웠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면 먼저 호텔 체크인을 한 뒤 가로막을 통과할 수 있는 비밀 번호를 받아야 하며, 주차료 7유로를 내야 한다. 식사는 역 앞에 있는 ‘로데옹’(L´odeon)이란 식당.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를 파는 곳으로 가격은 15∼20유로. ◆ DAY5 작은 마을에 들러 고흐를 기리다 ●투르에서의 한적한 휴일 프랑스의 주말은 어떨까. 시민들의 휴일 생활을 엿보려 일요일마다 시청앞에 장이 서는 벼룩시장을 찾았다. 100여개의 노점에는 집에서 쓰던 소품이며, 책, 그림, 찻잔, 액자, 음악판과 CD 등 없는 것이 없다. 쓰던 물건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예쁜 액자 하나를 사려고 물어보자 30유로. 새것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몽콩투르(Moncontour) 포도주 동굴 저장 지역이 나왔다. 파리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이 곳의 경치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포도밭 산책로’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보니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포도밭과 대형 저장고가 보였다. 마을 전체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인근에 있는 ‘뱅 드 부브라이’라는 곳에는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집을 지은 이색적인 마을. 바위산 위에 지은 돌탑과 그 아래 마을, 호텔 등 모두가 돌산과 연결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렌트카로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시내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리 외곽도로의 교통 체증 탓에 5시가 넘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1890년 7월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 비록 이곳에서 고흐가 산 시간은 두달 남짓하지만 이 곳을 무대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고흐가 자취했던 ‘라부(Ravoux)의 숙소’(입장료 5유로) 등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고흐의 자취를 더듬어 갈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안내판이 나온다. 그림을 그린 방향을 어림잡아 가늠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마을과 계단, 오베르 교회, 까마귀 들판 등을 그림의 소재를 돌아본 뒤 산중턱에 있는 고흐의 묘지를 찾았다. 동생과 나란히 묻혀 있는 묘지는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여 있지만 다른 묘지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오후 8시. 오를리 공항 근처 홀리데이 인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DAY6 니스 해변, 푸른 바다에 마음을 적시다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렌터카를 반납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남프랑스의 니스(Nice)로 향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공항터미널로 향했다. 렌트카 반납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전 11시 공항으로 출발했지만 반납은 열쇠를 건네 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12> 비행기는 오후 3시. 공항 방침상 짐을 보관해 주는 장소나 라커가 따로 없기 때문에 출발 시간까지 무작정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가 1시간30분이나 연착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3∼4시간 걸리는 떼제베(TGV)를 이용하는 것는 건데 아쉬움이 든다. ●가슴을 열어주는 니스해변 오후 6시 ‘리비에라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니스에 도착했다.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와 함께 지중해를 바라보는 꼬뜨다쥐르 지방의 중심도시.4번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선 버스’(요금 4유로)에 올랐다. 니스 해변을 따라 가는 버스에서 보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공항에서 해변까지는 약 6㎞.20분 정도 걸린다. 리비에라(Nice Riviera) 호텔에 짐을 푼 뒤 곧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고 싶을 정도로 푸르다. 그 속에서 흘러가는 여유로운 시간. 호텔에서 마세나광장에서 해변으로 가면 활모양으로 뻗은 해안을 따라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하다.<ⓘ-13> 프롬나드데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3.5㎞에 걸쳐 계속되는데 해변은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데크체어로 채워져 있다. 밤 9시가 넘도록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볼거리도 많다. 마세나 광장 등지에서는 음악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길거리에 동상처럼 서있는 각종 캐릭터 모형은 실제 사람으로 관광객들이 돈을 넣으면 슬쩍 움직인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간 높은 바위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빠끄 드 샤또라고 불리는 ‘성터공원’이다. 해안선과 옛항구 등 니스의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편도 0.7유로)가 있다. 맛집은 마세나 광장 인근에 있는 지중해 요리 전문점 방돔(Le Vendome)에서는 원조 홍합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9유로. ◆ DAY7 칙칙폭폭, 지중해를 끼고 달리다 ●기차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기차를 타고 지중해의 쪽빛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것만큼 시원한 것이 있을까. 맑게 갠 하늘, 검푸른 지중해의 먼 바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 니스에서 칸, 툴롱, 마르세유, 아를, 아비뇽을 거쳐 계속되는 철로변의 풍경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굳이 어느 도시에 내리지 않아도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광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다. 이렇게 기차 여행이 시작됐다. 호텔에 큰 짐을 맡긴 뒤 니스빌 역으로 갔다. 한국에서 끊어온 3일짜리 프랑스철도 자유 티켓으로 첫 목적지인 아를(Arles)로 향했다. 시간표는 각 역마다 비치돼 있다. 직접 가는 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르세유(Marseille)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오전 9시 니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은 영화의 도시 칸 등을 지나가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마르세유엔 11시26분, 아를에는 오후 1시51분에 도착했다. 기차는 영화에서 보는 왜건형 칸막이방. 한 방에 6명이 마주보고 앉아서 간다. ●작지만 예쁜도시 아를과 아비뇽 론강(Le Rhone)을 끼고 있는 아를은 작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의 유적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아를 역에서 걸어서 라마르틴 광장을 거쳐 내려가면 카발르리몬, 원형투기장, 고대극장, 생트로핌 교회, 반고흐 카페, 반고흐 다리 등 볼거리가 많다.3세기 초엽 만든 생트로핌 교회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견본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장소다. 반 고흐가 요양을 했다는 아를 요양원에서는 이젤을 펴놓고 예쁜 정원을 그림에 담는 화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고흐 다리는 시내에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바리올(Barriol)행 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20분 정도를 걸어야 볼 수 있다. <ⓘ-14> 오후 6시 아를 역으로 돌아와 인근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향했다. 기차로 17분.14세기 교황청이 이 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세계 교회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교황청 광장 주변 카페들이 예쁜데 로셰 데 돔 공원에서 바라본 론강의 경치가 압권이다. 공원에서는 ‘생베네제’ 다리가 보이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인 ‘아비뇽 다리위에서’라는 동요의 무대가 된 곳이다.12세기 지어졌으나 17세기 홍수로 소실돼 지금은 반쪽만 남아있다. <ⓘ-15> ◆ DAY8 섬섬옥수, If I were a bird ●하늘 빛을 담은 프리울섬 마르세유 항구에 있는 어시장은 어촌 마을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정어리와 도미 등 각종 생선을 판매하는 어부들과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 600년전 그리스인들이 세운 항구도시다. 마르세유에서는 한번쯤 여객선을 타고 인근섬 여행을 떠나도 좋다. 아침 일찍 항구의 ‘벨주부두’에 있는 마르세유 여객선 터미널(www.answeb.net/gacm)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섬’(Ile D´If)으로 가는 배가 떠난다. 왕복 10유로. 오전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배가 출발하는데 만선이면 시간에 관계없이 출발한다. 이프섬은 배로 10여분 남짓 걸린다. 여객선의 종착지는 이프섬에서 10분쯤 더 떨어진 ‘프리울 섬’으로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은 사막을 연상케 한다. 섬에 내려 순회 코끼리 열차(왕복 3.5유로)에 올랐다. 차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30분쯤 걸리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황홀하게 만든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쪽빛 물빛 그자체다. 가는길에 있는 해수욕장은 2∼3일쯤 푹 쉬다가고 싶게 만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전 11시30분 배를 타고 서둘러 섬을 나왔다. 기차를 놓쳐 바로 직후 있는 테제베를 예약했다. 일반 철도는 그냥 타도 되지만 테제베는 예약이 필요하며, 따로 수수로(1.5유로)를 내야한다. 그래도 프랑스 대표 철도인 테제베를 타본다는 기대감에 표를 끊었다. 그러나 니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50분. 일반열차가 2시간10분 걸리는 것에 비해 이 구간에서만은 시속 300㎞이상으로 달린다는 테제베가 오히려 일반 고속열차보다 느리다. 자리도 일반열차에 비해 불편하다. ⓘnformation center ⓘ-12 렌터카 반납시 우리나라와 달리 꼼꼼하게 체크하거나 묻는 일이 없다. 기름이 부족하거나 렌트 시간을 초과하면 미리 100유로 정도 임치해 놓은 돈에서 제하고 돌려준다. ⓘ-13 공항 등 프랑스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 유아 등에 대한 우대가 특별하다. 줄을 서지 않고 우선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14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분명한데 남프랑스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지만 건조해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온난하다. ⓘ-15 프랑스 철도 예약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여행 계획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도 패스중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한다. 패스를 이용하는 국가 수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유럽 전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유레일 패스가 유리하지만 프랑스 등 특정 국가만을 여행하려면 프랑스 패스를, 프랑스와 인근 국가 3∼5개국을 이용하려면 유레일 셀렉트 패스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2국가만 여행하려면 프랑스-이탈리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다. 프랑스 철도패스는 1등석 성인이 299달러이며,2명 이상 여행할 경우 세이버 티켓을 끊으면 15%정도 저렴하다. 나머지 패스의 경우 1개국을 추가할 때마다 7만∼10만원정도 요금이 올라간다. 특히 철도패스에는 센강 유람선, 박물관 할인 등 보너스 할인 혜택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다. 모든 패스로는 해당국가 테제베와 일반 철도 모두를 탈 수 있는데 테제베를 타려면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예약비로 1.5∼8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 일반 철도는 예약없이 기차역에 나가 오는 기차를 그냥 타면 되는데 3일권의 경우 한달동안 3일을 탑승 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 DAY9 포도주·풍경, 프로방스의 유혹 ●프로방스 철도에 몸을 싣고 아침 일찍 ‘살레야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과일, 야채 판매상과 꽃시장,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서민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니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중심부에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전문점 등이 즐비하다. 생필품은 물론 고급 브랜드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췄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프랑스 전통 치즈와 포도주, 과자 등 각종 먹을거리를 맛봐도 좋다. 낮 12시 호텔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코드다쥐르 지방의 웅대한 산악풍경을 볼 수 있는 프로방스 철도(www.trainprovence.com)에 올라보기로 했다. 철도역은 니스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m,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하루 4차례 정도 기차가 운행한다.<ⓘ-16> 철로가 단선이라 교행이 어려운데다 철로가 오래돼 수리를 자주해 역에 도착하면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기차는 두칸짜리 아담한 기차지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기차다. 기차역에서 프랑스철도 티켓을 보여주면 50% 할인해 준다. 디뉴까지는 150㎞로 3시간10분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앙트르보(Entrevaux)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17세기 요새마을 앙트로보 앙트로보까지는 크고 작은 13개의 기차역을 지나는데 1평 남짓한 간이역도 많다. 기차는 바르강 계곡을 따라 달리는데 깎아지른 듯 세워진 바위산과 계곡, 산허리에 매달린 자그마한 마을 등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차창밖으로 매력적인 마을이 즐비하다. 이날도 철로에 이상이 생겼다. 오래된 철로라서 수리중이라는 차장의 말에 따라 중간에 내려 2∼3개 역을 버스로 갈아타고 갔다. 바위산 단면들은 지층이 지리책에 나온 사진처럼 그대로 보아도 멋있다.2시간 걸려 도착한 앙트르보는 17세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산 정상에 있는 요새도시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 성을 휘감고 올라가는 길이 이채롭다. 그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성문이다. 강에는 마을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고성을 들어가는 길에 입장료를 따로 받는 사람이 없어 입장료 자판기에 돈을 넣고 3유로짜리 코인 티켓을 끊은 뒤 회전문에 넣으면 들어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그렇지만 건너보이는 마을 전경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다. 정상에는 각종 방과 감시탑, 감옥 등 전형적인 성이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DAY10 마지막 시간은 마티스와 함께 ●니스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제 막 적응이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후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오전에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티스 미술관까지는 17번 버스(1.20유로)를 탔다. 가는 길에 검표원들이 버스를 가로 막고 표검사를 했다.<ⓘ-17> 마티스 미술관(입장료 4유로)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인근 시미에 지구에 있는 로마시대의 투기장과 원형극장, 목욕탕 등 유적들이 더 볼만하다. 이어 걸어서 20분정도 떨어진 샤갈미술관(입장료 4.5 유로)에는 구약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17장의 연작 유화 등 450점이 전시돼 있다. 오후 2시 공항으로 출발, 아쉬웠던 여행이 끝났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탔는데 편도 요금은 25유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프랑스. 일상에 찌들어 쫓기듯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nformation center ⓘ-16 기차는 니스에서 알프스 온천마을인 디뉴(Digne)까지 운행한다. 니스에서 오전 06:42,09:00,12:43,17:00에 출발하고, 디뉴에서는 07:00,10:33,13:58,17:25분에 출발한다. ⓘ-17 버스 티켓을 기사에게 구입하면 꼭 버스에 비치된 개찰기(콩포스테·Composter)에 표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표에 시간이 찍히고 이후 표가 1시간 정도 유효한데 만일 이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검표원에게 걸리면 ‘무임승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문다.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30배의 벌금을 물게 된다. ⓘ-18 관광지와 호텔 주변은 소매치기 등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구급차(19), 소방서(18), 주 프랑스대사관(01.47.53.01.01), 한국관광공사(01.45.38.71.23), 대한항공(01.42.97.30.80)으로 연락하면 된다.
  • “곤충학교 가보자”

    ‘여름방학에 곤충을 배워보자.’ 포천 국립수목원과 구리 환경사업소가 곤충 전시회와 생태교실을 운영한다. 국립수목원은 3일 산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26일까지 ‘체험, 곤충의 세계’ 전시회를 연다고 밝혔다. 전시실엔 나비 등의 곤충표본, 왕사슴벌레 등의 곤충생태관과 함께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곤충체험코너를 마련했다. 또 가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곤충표본만들기, 곤충사육방법 등 체험강좌도 실시한다.(031)540-1033. 구리시 환경사업소도 토평동 환경사업소 곤충생태전시관에서 5∼6일 이틀동안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곤충생태교실’을 연다. 실내전시관에선 수백종의 나비 표본을 볼 수있다. 살아있는 호랑나비·노랑나비 수백마리가 자유로이 날아 다닌다. 장수풍뎅이의 생육과정과 왕잠자리의 물속 유충 등 다양한 곤충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곤충 채집과 표본제작 도구, 생수와 비상용품도 제공한다.(031)550-2582포천·구리 한만교기자mghann@seoul.co.kr
  • 특색있는 수영장 베스트5

    특색있는 수영장 베스트5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삼복 더위에 아이들과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지만 생각나는 곳은 수영장뿐. 그렇다면 수영장도 컨셉트에 맞춰 골라가는 것이 센스다. 온천과 수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 찜질방과 수영장이 결합된 곳,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곳 등 수영장도 각양각색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기 전, 나들이 컨셉트를 생각하며 수영장을 정해보자. 알찬 휴식이 될 것이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찜질방은 겨울에만 간다고? 그건 찜질방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요즘은 찜질방도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마치 리조트를 연상케 할 정도다. 실내수영장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도 많아 가족단위 나들이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물장난하고 어른들은 땀 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이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격 아닌가. (1) 튜브 가지고 찜질방으로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으로 가다 보면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아스클 리조트(031-955-5055)를 만날 수 있다. 아스클을 보통 찜질방으로 생각하면 오산. 입구의 풍경부터 다르다.‘아니 찜질방에 웬 튜브를 갖고 오나?’는 생각으로 들어서면, 그 다음은 신발장 번호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발장 번호가 2000번까지 이어진다! 수영장은 아스클의 중심에 있다. 유아들을 위한 풀, 물이 흐르는 유수풀, 성인풀 등 모두 3개. 몸을 데울 수 있는 조그만 탕도 별도로 있다. “준이가 오빠니까 동생하고 놀아. 그리고 아빠 찾으려면 이벤트 홀이나 불한증막으로 와. 잘 놀고 있어.”라며 아빠 엄마는 돌아선다.“오래간만에 둘만의 시간이네.”한증막에서 낮은 목소리로 아내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들이 많이 눈에 띈다. 머리를 타고 가슴까지 흐르는 땀. 일주일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1시간이 지나도 녀석들이 오지 않는다. 첨벙첨벙 물속에서 노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자 이제 나가자.”라는 부모의 성화에 더 놀겠다고 버티는 아이, 아예 누워서 우는 아이도 있다. 부모와 아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는 흔치않은 곳이다. 또 주말마다 이벤트홀에서는 노래자랑과 가족대항 림보게임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피트니스센터, 게임방, 노래방,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DVD에 홈시어터 시스템까지 설치된 모임방 등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는 복합 공간이다. 수영장과 찜질방을 이용하는데는 성인 1만원, 소인 8000원. 또 평일 오전 10시까지는 조조할인 요금을 적용해 50%까지 저렴해진다.www.ascle.co.kr (2) 월드컵 경기장의 스포랜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내 쇼핑몰에는 4000여평 규모의 찜질방과 스포츠센터를 갖춘 스포랜드가 있다.2000평의 찜질방에는 4개의 남녀공용 찜질방과 PC방, 영화관, 헬스장 등이 있다. 또 스포츠센터에는 최신 설비의 정수기능을 갖춘 7레인 25m 규격의 수영장과 워터 슬라이더와 버블배스 등 놀이시설을 갖춘 유아용 풀 등이 있다. 월드컵 쇼핑몰에 있어 주말에는 주차하기가 좀 힘들다. 때문에 서둘러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다. 토요일 12시부터 오후 2시,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어른 8000원, 아이 6000원.(02-302-7002) (3) 목동 청학스포츠랜드 원래는 오래된 실내수영장이었는데 리모델링을 해 수영장 가장자리에 찜질방을 마련해 놓았다. 찜질방에서 수영장을 가기 위해 올라가거나 내려갈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바로 물에 뛰어 들면 된다. 황토, 자수정, 소금 등 테마 찜질방과 눈이 내리는 얼음방이 있으며 대리석으로 만든 휴게실을 갖추고 있다. 수영장은 25m레인을 4개나 갖추고 있고 물도 첨단 오존 필터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아쉬운 것은 아이들 전용 수영장이 없다는 점. 연중무휴이며 24시간 운영한다. 어른 8000원.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다.(02-2643-3581) 이밖에 김포 황토옥천탕(031-989-8925,www.hwangtook.com).시흥 귀빈사우나(031-491-0832)는 야외에 수영장을 갖추고 있어 가족끼리 하루를 보내기에 좋다. (4) 노릇노릇 삼겹살이 익어가는 아이들의 천국 80년대 부모님 손을 잡고 야외 수영장을 갈 때면 휴대용 버너와 삼겹살은 필수품이었다. 물 속에서 한참을 놀고 돌아와 막 지어낸 따끈따끈한 밥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얹어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말 꿀맛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야외수영장에서 취사는 물론,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까지 금지되면서 이런 일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수영장에서 음식을 사먹으면 돈도 돈이지만 맛도 없고 불결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주는 옛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주는 서울 근교의 가볼 만한 수영장들을 찾아보았다. 서울에서 가장 큰 야외수영장을 꼽으라면 태릉에 있는 워터캐슬(02-971-0743)을 들 수 있다. 워터캐슬은 1만 5000여 평의 규모로 소나무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라 물의나라, 숲의나라, 꽃의나라 등 세 가지 테마로 꾸며진 테마파크다. 수 십년된 소나무들이 즐비한 숲이 잘 가꾸어져 있어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나무 그늘에 돗자리만 펴면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숲의나라에서는 그늘막이나 텐트 등을 설치하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왔다는 주부 민성신(38·서울 종로)씨는 “일단 소나무 숲이 마음에 들고 이렇게 밥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너무 좋다.”며 “옛날 생각도 새록새록 난다.”고 감탄한다. 이렇듯 이곳은 수영도 하고 온가족이 함께 음식도 해먹으면서 여름나들이 기분을 한껏 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어린이 놀이터, 미니 동물농장, 야생화체험장도 있어 아이들의 자연학습에도 그만이다. 워터 슬라이더와 오픈형 하이 슬라이더에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으며 200 여개의 무료 선탠베드, 냉·온수 샤워시설, 파우더 룸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1만원에 3∼4인용 텐트를 대여해준다. 어른 주중 7000원 주말 9000원. 태릉의 육군사관학교와 서울여대를 지나서 있다.www.easterncastle.co.kr (5) 수영장에서 야영을 경기도 광주에 있는 금원농원(031-762-3702)은 좀 특별한 수영장이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수영장은 전국에 이곳밖에 없다. 수영장 바로 옆 2000여 평의 소나무 숲에서 돗자리를 펴고 삼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취사도 가능하다. 화장실, 음수대, 샤워실 등이 갖춰져 있다. 매점도 있지만 아이스박스에 먹을거리를 준비해 가는 더 좋다. 10만여평의 농원에 운동장, 어린이 놀이터, 자연학습장, 산책로, 사슴목장 등을 갖추고 있어 복잡한 피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입장료는 어른 8000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는 데는 1만원이 든다. 중부고속도로 경안IC에서 빠져 팔당댐 방향으로 20여분쯤 가거나, 미사리에서 팔당대교를 건너지 말고 새로 난 길로 계속 직진하면 된다. 이밖에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시 풍동에 있는 YMCA 일산수영장(031-901-2796)은 지정된 취사지역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위쪽에 골프연습장이 있어 연습장 그물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수영장 수심이 낮아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게 장점. 일산 백마역 부근 애니골에 위치하고 있다. 어른 8000원, 어린이 5000원. 경기도 여주군 장흥면 일대에 있는 야외수영장들은 모두 취사가 가능하다. 장흥유원지 안에 있는 로얄 수영장(031-826-5471)과 오뚜기 수영장(855-2022)의 경우 수영장 바로 옆에 쳐져 있는 천막에서 취사가 가능하다. 유아풀이나 간단한 미끄럼틀 등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있어 가족나들이로 제격이다. 수원 팔달구 원천유원지내에 있는 파도수영장(031-214-8866)은 최신식 워터파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파도풀, 유수풀, 워터슬라이더 등을 갖추고 있고 주변에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다. 경부선 신갈IC에서 나와 수원시내로 가는 길에 원천유원지 푯말이 보인다. ■ 여름날 하루라도 머물고 싶은 스파캐슬 친절한 스파캐슬씨에게 저멀리 서해안 파도가 헐떡이고 있었소. 수덕사 초입 기념품가게 아낙도 부채질에 그만 짜증나 정자에 누워 잠들었소. 예당저수지, 그 물결도 연신 혀를 내밀며 그늘로 잦아들고 있었소.45번 그 좁은 포도 위로 작열하는 태양… 에어컨 빵빵 틀어놓아도 아무 소용없는 차안, 그냥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는 땀… 아! 누가 피서 가자고 말하였소? 오후 3시. 서울서 쉬엄쉬엄 2시간거리에 있는 충남 예산 덕산 스파캐슬로 가는 길… 바깥풍경은 그야말로 불친절한 더위로 헉헉대고 있었소. 갓 개장을 한 탓에 해미IC에서부터 당신이 친절하게 붙여놓은 이정표에 사실 어느 한사람 대놓고 말하진 않았어도 ‘친절한 스파캐슬씨’에게 속으로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소. 특히 우리 식구는 덕산온천은 처음이라 낯설었소. 땡볕에 말은 아꼈지만 그 임시표지판은 참으로 초행길을 부드럽게 안내해줬소. 서둘러 개장한 탓에 곳곳이 공사중인 어수선한 분위기가 미안했던 당신인지라 땀으로 범벅된 우리를 해맑은 미소로 맞이하며 짐을 풀도록 도와주었소. 너무 더워 짐을 풀자마자 우린 실내스파로 향했소. 천천향(天泉香)으로 명명된 테마별 스파시설은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소. 평균 온도 49도를 유지하는 온천수는 약알칼리성 수소탄산나트륨형 단순천으로, 게르마늄이 함유된 온천공 2개를 보유하고 있다해서 그런지 부모님과 함께 못온 것이 못내 아쉬웠소. 특히 부인병, 피부병, 류머티즘, 세포재생 촉진, 피부미용 등에 좋다는 말에 더더욱 가슴을 쳤소. 천장에 수놓은 별자리들을 보며 수치료 전문 시스템을 갖춘 바데 풀을 중심으로 유러피언 스파를 비롯한 풋 스파와 키디 풀, 유스 풀 등 각종 이벤트탕에서 몸을 풀고 있노라니 정말 잘 왔다 싶었소. 중앙에 달린 대형스크린에서 방송되는 콘서트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덤이었소. 막힌 공간을 싫어하는 탓에 다 이용해보진 않았으나 산소방, 황토숯방 등 테마찜질방 사랑채도 달려있어 피로와 스트레스 풀기엔 제격인 듯싶었소. 주변 편의시설로 카페테리아는 물론이고 릴랙스뮤직룸, 수치료 상담실,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든 등은 여느 곳과 비교할 만한 듯했소. 그리고 9월에 개장할 노천스파나 워터레이, 써니레이, 워터슬라이드, 토렌트 리버 등은 온가족이 사시사철 즐길수 있는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생각들었소. 더욱이 숙소에서 그 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유쾌한 일이었소. 600년 역사의 덕산 온천의 새 명소로 떠오를 덕산 스파캐슬씨. 인근에 추사고택, 수덕사, 예당 저수지는 식후 산책겸 아이들의 체험학습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볼거리라 생각했소. 참, 또 하나. 9월 노천스파 개장 이전에 방문하면 스파 이용권(일일 48,000원)을 일반인들에 30% 할인 해 준다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들에겐 더더욱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소. 여느때면 휴가를 바다로 갔다 해수욕하는 지, 더위를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짜증만 났었겠지만, 올 여름은 정말이지 살갗도 안태우고 제대로 피서를 즐긴 듯 하오. 여름엔 만사가 귀찮아지는 내 체질엔 덕산 스파캐슬씨가 찰떡궁합인 듯 싶었소. 몸도 가뿐하니 그동안 내 몸을 떠돌던 일상의 무게도 눈 씻은 듯 사라진 듯 싶소. 아이들도 돌아오는 길에 언제 다시 가냐며 보채기까지 했소. 허허... 1박만 하고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지만 당신이 희망했던, 생애 단 하루라도 머물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소. 그렇소. 우린 어느새 스파캐슬(www.spacastle.com)씨에 푹 빠져 버린 것이오. 그 뽀송뽀송한 하루... 정말 잊지 못하게 쿨~했소. 다음에 갈땐 스파캐슬씨를 세놓고 놀 것이라오. 그럼 이만 총총.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수상스포츠 무료로 배워요”

    서울시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다음달 6·7일 여의도지구에서,27·28일에는 뚝섬지구에서 수상 레포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한강사랑 레포츠 페스티벌’을 개최한다.행사는 매일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진다. 페스티벌 기간 어린이·가족·성인부로 나누어 물속에서 축구경기를 토너먼트로 벌이는 ‘한강 물 축구대회’와 재즈, 살사댄스 등 스포츠댄스 시범과 강좌, 서핑보드와 암벽 등반 등 에어바운스(공기를 주입한 대형 조형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레포츠 놀이마당’도 열린다.물 축구의 한 팀은 어린이 3명, 가족 4명, 성인 5명으로 구성된다.12m×8m 규격의 경기장에 아이들 무릎 높이로 물을 가둬 만든다. 전·후반 10분씩이며 공은 소프트볼 경기용을 사용한다. 아울러 특별 프로그램으로 여의도지구에서는 열기구 체험, 모래조각 시연 및 모래성 쌓기 대회가, 뚝섬지구에서는 전문강사의 지도로 래프팅 등을 즐기는 ‘한강 수상 레포츠 체험’, 머드체험 등의 행사가 각각 마련된다. 물 축구대회에는 8개 팀이 참석한다. 다음달 3일까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홈페이지(hangangfest.seoul.go.kr)를 통해 참가신청을 받는다.(02)3780-0776.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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