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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해주민 잇단 시위/미호천 농민,보상요구 농성

    ◎예산군민,늑장 대피령 항의 【청주=한만교 기자】 충북지역 최대 수해지역인 청원군 강외면 35개마을 이장들은 27일 강외면사무소에 모여 청원군 농지개량조합이 추진중인 서평정수장 공사의 관리소홀로 미호천물이 역류돼 농작물에 피해를 입었다며 보상을 요구했다. 이장단은 『이번 수해는 미호천의 물이 공사중인 배수장의 배수관을 통해 농경지로 역류,출수기를 맞은 벼와 비닐하우스의 배추 등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다』며 『이는 공사장 관리를 소홀히 한 인재』라고 주장했다. 이장단 등 피해주민 1백여명은 군수·농지개량조합장 등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않자 30여분동안 조치원∼청주간 국도를 점거,차량통행을 막고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설득으로 자진 해산했다. ◎백여명 군청 몰려가 【예산=김동진 기자】 무한천 범람으로 최악의 수해를 입은 충남 예산군 오가·신암면 주민 1백여명은 27일 군청측이 대피령을 늦게 내려 피해가 커졌다며 군청에 몰려가 이틀째 항의시위를 벌였다. 주민은 『군청측이 지난 25일 상오9시쯤무한천이 범람한 뒤에야 대피령을 내리는 바람에 이 사실을 모르고 제방 보강작업을 하던 주민 박순덕(39·오가면 신원리)씨가 급류에 휘말려 숨지고 마을도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 “한톨이라도 더”… 벼이삭 씻기 안간힘/수해 복구 현장

    ◎갯벌로 변한 농경지 보며 절망·한숨/붕괴된 강둑 쌓기에 국교생도 한몫/음료수·빵등 간식 제공 “따뜻한 인정”/전화불통으로 피해량 확인 안된 곳도 ▷예산◁ 8월의 마지막 휴일인 27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 무안천 제방 복구공사 현장. 민·관·군 1천여명에 휴교를 맞은 오가국교를 비롯,부근 6개 초·중·고교생 1백20명은 뒤엉켜 복구작업을 하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폭 24m,높이 6m의 우람한 강둑이 2백20m나 순식간에 떠내려 간 천재 앞에 세상모를 나이인 초등학생들 마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처럼 흘러내리는 흙더미를 담은 양동이를 묵묵히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어린 학생들은 연신 흘려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는 바람에 온몸이 온통 흙투성이였다. 예산군 일대 오가면과 신암면일대를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현장에 중장비의 굉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이날 상오 9시. 태풍 재니스가 물러나며 날이 개자 전 공무원에게 긴급 복구령이 떨어졌고 예산군청 직원 1백73명이 현장에 달려 왔다.이어 육군 32사단 8연대 3대대 장병들이 덤프 트럭 6대 등 중장비를 동원해 속속 줄을 이었다. 하늘의 뜻으로 밖에 돌릴 수없는 엄청난 재난복구에 민간 건설업체도 즉각 뛰어 들었다. 예산읍의 대산건설은 불도저 1대,대형 포클레인 5대,덤프트럭 15대를 곧바로 투입하면서 고요했던 참사의 현장은 생기를 얻기 시작했다. 집과 농경지를 소용돌이치는 흙탕물에 흘려 보내고 간신히 빠져나와 넋을 놓았던 주민들도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마을 뒷산 임시대피소에서 어른들의 낙담을 말없이 바라보던 초·중·고생들도 힘을 합했다.천방지축으로 뛰놀 어린이들도 모래를 담을 주머니를 날라다 주고 말뚝을 전달해주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예산군청 유병(44)토목계장은 『복구작업에 필요한 흙은 대형덤프트럭 2천4백대 분량인 2만4천㎥로 웬만한 산을 옮겨 놓는 것같은 엄청난 작업』이라며 『주민들도 하루빨리 의욕을 추스려 복구의 의욕을 되찾길 빈다』고 말했다. ▷여주◁ 27일 북내면 천송리 천송마을앞 여주∼원주간 42번국도.군장병과 공무원·주민등 3백50여명이 나와유실된 도로 복구 작업을 벌였다. 동원된 포클레인 6대는 굉음을 내며 2m 깊이로 푹파인 도로속에 흙을 퍼담고 있었고 20대의 덤프트럭은 자갈등을 실어 날랐다. 청송마을 주민들은 고생하는 장병과 공무원들을 위해 음료수와 빵등 간식을 제공하며 이들과 마음을 함께 했다. 이날 복구작업에 나선 55사단 소속 김상현 상병(23)은 『교통이 두절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왔다』며 『다른 지역의 피해도 빨리 복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북내면 금당천등 여주지역 소하천 주변에서도 읍·면별로 유실된 제방에 마대와 골재를 쌓는등 복구작업이 활발히 진행됐다. 하지만 민·관·군의 이같은 복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주 주민들이 입은 상처는 너무도 컸다. 대신면 당산리 당산벌에는 막 패기 시작한 푸른 벼이삭들이 누런 황토물로 덮여 있고 곳곳에는 죽은 가축과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오씨(54)는 『그동안 피땀흘려 가꾼 벼들이 줄기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다』며 『이번 농사를 망쳐 영농자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한강 건너편 흥천면 백석리에서 8만여평의 땅콩밭을 재배하고 있는 신명수씨(60)도 『심어둔 땅콩 모두 떠내려갔다』며 『이같은 수해는 처음본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이 마을은 업친데 덮친 겪으로 남한강으로 유입되는 후포천이 불어난 강물로 역류하는 바람에 농경지가 산사태가 난 것처럼 폐허로 변해 버렸으나 아직까지 전화가 불통돼 정확한 피해상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편 여주지역에선 이번 호우로 농경지 1천37㏊와 가옥 56채가 침수됐으며 도로유실 34곳,산사태 3곳,소규모시설파손 50곳등 21억여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 소양·충주댐서 다단계 방류/한강 홍수조절 어떻게 하나

    ◎한강 인도교까지 11∼19시간 걸려/서해 만조 겹치는 오늘 새벽이 고비 90년9월11일 새벽.밤새 불어난 한강물이 서울시내를 피해 「일산 둑」으로 넘쳤다.능곡평야와 일대 부락이 일순간 물바다로 변했고 황톳물이 10여㎞ 떨어진 고양시 원당읍내까지 밀어닥쳤다. 5년만에 서울은 다시 홍수위기를 맞았다.중부지방의 집중호우와 태풍 재니스의 영향으로 서울 일원엔 25일 하오1시를 기해 홍수경보가 내려졌다.소양강댐과 충주댐,팔당댐 등 한강수계의 댐들은 「불어나는 물을 견디다 못해」 방류를 시작했다.한강물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한강은 이미 경계수위(8.5m)를 넘어 위험수위(10.5m)를 오르내린다.태풍이 예상보다 많은 비를 몰고 오면 한강은 홍수위(13.1m)를 넘어 범람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90년에는 그나마 인구밀집도가 낮은 평야지대,고양시쪽으로 강물이 범람해 인적·물적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한강물이 서울시내를 덮칠 경우 그 피해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다목적댐으로 홍수의 「최일선 방어기지」라 할 북한강의 소양강댐과 남한강의충주댐은 홍수조절능력을 완전히 잃었다.이들 댐은 홍수에 대비해 지켜야 할 제한수위(소양강 1백90m,충주 1백38m)를 이미 넘었다.최대수위인 홍수위(소양강 1백98m,충주 1백45m)에 육박,25일 하오부터 방류량을 늘려 하류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한강의 홍수조절은 한강수계의 댐들에 의해 이뤄진다.댐에 물을 가두었다가 일정수위를 넘으면 방류,댐유역에 홍수가 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물론 댐의 안전도 고려한 것이다. 한강수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댐은 모두 7개.북한강 수계의 화천·소양강·춘천·의암·청평댐과 남한강 수계의 충주댐,그리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지점(양수리)에 팔당댐이 위치해 있다.이중 홍수조절기능을 가진 댐은 소양강댐과 충주댐이다.팔당댐 등 나머지는 발전용이어서 상류에서 물이 들어오는 만큼 자동 방류하게 돼있다. 현재 소양강댐은 초당 2천9백80t,충주댐은 6천9백88t의 물을 방류하고 있다.팔당댐의 방류량은 2만2천6백30t이나 충주댐의 늘린 방류량이 도착하는 25일 밤 이후에는 방류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해안에 만조가 되는 26일 상오에는 충주댐의 늘린 방류량이 팔당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는 시점이어서 이때가 한강 홍수의 최대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이때를 맞춰 서울지역이나 가까운 경기지역에 폭우가 쏟아진다면 우려할만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건설교통부 홍수상황실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한 한강수위가 최고 10.5m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제방안전에는 지장을 없을 것이나 굴포천이나 마포구 망원동,송파구 풍납동 등 일부 저지대가 침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사태악화시 김포군 등 일부제방(4.8㎞)이 한강의 홍수위 13.1m보다 0.3m가 낮아 한강수위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이들 지역으로의 범람 역시 우려된다. 물론 태풍으로 인한 강우가 예상보다 적으면 한강의 범람위험은 그만큼 적다. ◎운전면허 기능시험/10월 24일 이후 연기/강남 시험장 서울경찰청은 25일 서울과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강남운전면허 기능시험장이 물에 잠김에 따라 오는 28일부터 9월4일까지 예정된 기능시험을오는 10월24일이후로 차례로 늦춘다고 밝혔다.
  • “기술 배운다더니…” 두딸잃은 모정 통곡/「경기기술학원」 참사현장

    ◎불에 탄 일기장엔 애절한 사연 절절히/사물함속 “생일축하” 꽃다발만 외로이 ○…『이런데인줄 모르고 기술학원이라고 해서 교육시키라고 딸자식들을 맡겼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졸지에 두딸 정숙(18)·정아(16)양을 모두 잃은 이모씨(38·상업·서울 광진구 성수동)는 성적이 나빠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방황하던 딸들을 입교시킨뒤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던 소박한 꿈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끝맺자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두딸의 장래를 근심하던 이씨는 친구로부터 학원에 대한 얘기를 듣고 미용기술을 배우게 하기위해 지난 봄 두 딸을 학원에 입소시켰다. 『입소전에는 그토록 명랑하던 애들이 점점 얼굴에서 웃음을 잃고 바보처럼 변해갔습니다』 이씨는 아이들이 학원에서 선배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하며 생활했다는 사실을 두딸이 사망하고 난뒤 이날 비로소 알게 됐다. 이씨는 『언젠가 면회를 갔는데 큰딸 정숙이 오른뺨에 손바닥자국이 나있었다』며 『그 때 이유를 알았더라면…』이라고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그때부터 딸들을 두번씩이나 퇴소시키려 했었지만 입소때 쓴 서약서때문에 학원측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이씨는 『지난 20일 둘째딸 생일이었고 오늘이 첫딸 생일인데도 아이들이 경비원이 무서워 면회온 부모에게 생일선물을 얘기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다른 학원을 다니며 착실하게 살겠다는 딸들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며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가 삼키고 간 2층짜리 기숙사 건물의 2층 복도와 방에는 불을 끄며 뿌린 물이 흥건히 괴어 있고 원생들의 곰인형과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 다발,일기장,편지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사고당시의 참혹함을 짐작케 했다. 또 한원생의 사물함에는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종이리본과 함께 원생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20송이의 장미다발이 주인을 잃고 흩어져 있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수원 아주대병원,동수원병원,성빈센트병원,수원의료원 영안실에서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가족들이 『새사람이 되어 밝은 표정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오열,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전북 김제에서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상경한 이순자씨(53·여)는 딸 배모양(17)의 시신을 붙잡고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벌써 가면 어떡하느냐』며 통곡. 한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곧바로 신원이 확인돼 가족들에게 연락이 됐으나 일부 시신은 잠옷을 입고 자다 변을 당하는 바람에 신원확인이 늦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원생 가족 70여명은 이날 하오 3시쯤 경찰이 생존한 원생 78명을 격리시킨뒤 가족들과의 면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하며 사고현장앞 4차선도로를 점거하고 10여분동안 연좌 농성. 조카를 찾아온 장기수(53)씨는 『보도를 듣고 새벽 6시30분부터 현장에 나와 조카를 만나려 했으나 당국이 아무런 설명없이 출입을 통제해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 통분… 오열… 「슬픔의 바다」(「삼풍」 참사/희생자 장례식)

    ◎세딸 잃은 변호사 애써 슬픔 삼키고…/“약혼 앞두고 홀로 가다니” 애끊는 통곡/운구차에 매달리며 울부짖다 실신도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3일 가족과 친지의 오열 속에 엄수됐다. 이른아침부터 희생자들이 안치된 서울시내 병원에서 치러진 영결식에서 아버지·어머니·아들·딸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낸 유족들은 고인의 이름을 부르다 끝내 실신,영결식장주변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지난 1일 한석훈씨(27·삼성물산 직원)등 7명을 시작으로 2일 23명,3일 47명 등 사고발생 5일째인 이날까지 모두77명의 영결식이 치러졌으며 4일에도 전순덕씨(23·여)등 2명의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이번 참사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난 정광진(58)변호사의 세딸 윤민(29)·유정(28)·윤경(25)양의 장례식이 이날 상오 서울중앙병원 빈소에서 친지와 세자매의 친구 등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정씨는 딸들의 마지막 가는 모습에 애써 슬픔을 삼키는 표정이었으며 부인 이정희(53)씨와 막내딸 윤성(21)양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애타게 흐느꼈다. ○…14구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는 이날 새벽부터 사고로 숨진 대우자동차 김태구 사장의 부인 김영배(52) 여사를 비롯한 희생자의 장례식이 슬픔에 가득찬 분위기 속에서 진행. 희생자들의 시신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에는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한 유족들이 통곡하다 실신하기도. 사고가 난 날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변을 당한 대우자동차사장 부인 김씨의 장례식에는 친지들과 그룹 임직원 등 1백2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장지인 충북 증평 선영으로 찾아가 입관순간을 지켜본 뒤 유족인 김사장과 가족들을 위로. ○…이날 상오9시에 치러진 곽정주씨(29·여·의류매장 판매원)의 장례식에서는 어머니 김씨가 『엄마한테 집을 사주겠다고 시집도 안가고 돈을 벌겠다더니 그만 혼자 떠나고 마느냐』고 오열하자 조문객들도 모두 울음을 터뜨리기도. 아버지 곽석성씨(59)도 어머니 김씨와 운구차 앞에서 애끊게 통곡,조문객들의가슴을 아프게 했다. ○…내년에 결혼할 예정으로 약혼을 앞두고 있던 김명희씨(25·여·삼풍백화점 직원)의 장례식장에서도 부모와 친척들이 한참동안 오열. 아버지 김종복씨는 운구차 앞에 선 채로 마냥 눈물을 떨구다 『시집도 못가고 갑자기 떠나버리면 어떡하느냐』며 비통해 했다. ○…사고로 숨진 박미진씨(21·여)의 어머니 이승옥씨(59)는 이날 상오 장례식을 치른 뒤 운구차 옆에 기대어 슬픔을 참지 못해 통곡,친지들이 몸을 부축해 간신히 장례를 치르기도. 이씨는 쉬어버린 목소리로 『내딸 살려내라』고 분노에 찬 울음을 터뜨리고는 『삼풍백화점사장 당장 나와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이날 상오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앞마당에서 이번 사고로 숨진 딸 최현아양(22·삼풍백화점 직원)의 발인을 지켜보던 어머니 김경숙씨(41)가 한때 실신. 김씨는 이날 통곡을 하며 딸의 장례를 지켜보다 딸의 시신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복받치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며 이 바람에 장례식이 지연되기도 했다.
  • 연변동포작가 류연산씨 한·중 국경르포(두만강 7백리:1)

    ◎화룡 8순노인 “강 건너 뼈 묻었으면”/중국땅에 이주했지만망향의 한 때문에 못떠난다/강너머 들려오는 고국 기차소리… 그리움 사무쳐 사연많은 두만강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북으로 달려 7백리.이름하여 두만강이다.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으로서 중국 조선족과 북한 동포들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채 살아 가고 있다.서울신문은 그 강 유역에 얽힌 사연들을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 류연산(38)씨가 엮는 「두만강 7백리」를 새로 연재한다.두만강 양안(양안)에서 한쪽은 변화의 회오리 바람속에 놓여 있고 다른 한쪽은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다.이 시리즈 집필을 위해 작가 류연산씨는 2개월 남짓 두만강 7백리를 답사했고 사진은 본사 김윤찬 차장이 촬영했다. 배낭을 등짐삼아 두만강 7백리를 굽이굽이 돌아 가노라니 깊은 정회가 가슴에 스며들고 마음은 곧 애수에 젖는다.나뭇잎이 져 버린 산야가 사뭇 허전한데 밤새 강물도 꽁꽁 얼어붙었다.물결이 넘실댈 두만강의 봄은 아직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김정구 선생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얹혀 한민족 가슴에 설움을 심어준 이 노래는 답사길에 오른 내 가슴을 적신다.이주민 3세인 젊은 심정이 이러할진대 그 당시 조상들이 살아온 고난의 시대를 구태여 말해서 무엇하랴. 광복전 김정구 선생이 연변공연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자 장내는 눈물바다로 변했다.그 이튿날 도문(오늘의 연변조선족 자치주 도문시)에서는 한 여인이 두만강에 몸을 던졌다.기약도 없이 돈벌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여인이 삶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그만큼이나 한많은 사람들이 두만강가에서 모진 삶을 살았다다.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화용시 노과진 노과촌)을 찾았을 때 조창렬(85·함경북도 경선군 주을면 봉파리 태생)노인은 피맺힌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부모님이 낳은 지 일곱달되는 나를 업고 이곳으로 이사왔디요.그때 증조부님은 굶어 죽더라도 조상산소를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불호령을 쳤다지 뭡니까.막무가내로 자식의 등허리에 업혀 고향을 떠나온 노인은 운명을 앞두고 조상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수다.사람이 팔십이면 쌀벌레라는데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지 못할 걸 생각하면 나는 잠이 안오우다.저 강이 야속하고 인생이 원통할 뿐이외다』 아버지 시신까지는 귀향시키고 외롭게 떨어져 늪골(노과의 원명)을 지키고 있는 노인은 쓸쓸해 보였다. 『삐익』 그 집앞 두만강건너에서 증기기관차가 끄는 열차가 기적을 뽑는다.노인은 그 쪽에 망연한 눈길을 주고는 한숨 짓는다.열차는 조선 삼형제굴을 지나 남촌굽이로 뱀같이 구불구불 흘러온다.애달프다.저 기찻길은 서울도 통하고 중국도 통하건만 고국 땅 허리의 군사분계선과 국경선이 발목을 잡고 있다. 두만강에 얽힌 32년전 19 63년 12월27일의 이야기 하나를 꺼내고자한다.무산쪽으로 달리는 99 31호 열차에서 청년 둘이 뛰어 내렸다.쇠처럼 굳은 언 땅에 나뒹굴던 그들은 벌떡 일어서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강쪽으로 달려갔다.그들은 얼음장이 둥둥 떠내리는 물에 서슴없이 첨벙첨벙 뛰어들었다.바로 조선 청진철도국 백암열차구 차장 김형호와 함북 무산 임산사업소 공무직장 선반공 최상현이었다.이수촌(지금의 노과진 이수촌)에서 5백여m 떨어진 두만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자 아이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때 물에 빠졌던 여자 아이 가운데 하나가 지금 중국 화룡시 팔가자진(화용시 팔가자진) 부진장의 부인인 한친선(원명 한순자·45)이다. 19 64년 1월9일 화룡인민영화관에서는 중조 인사 7백여명이 김형호·최상현의 살신성인적 용기를 기리기 위한 대회를 거행했다.이 자리에서 한순자의 부친 한창도는 구명은인한테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딸의 이름을 한친선으로 고쳐 부를 것을 약속했다.그날 저녁 연변가무단은 김형호·최상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각색한 가극 「친선의 물결」을 공연했다. 이러한 옛날 일을 회상하는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30여년전 이른바 중조 친선의 미담은 오늘날에 와서 많이 퇴색해 버릴만큼 세월이 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십년 대동란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한때 중국과 북조선관계에 틈이 생겼다.조선의 은인들과 빈번한 편지거래를 가졌던 한친선은 처녀시절에 수정주의 조선간첩 혐의를 받기도 했다.중조관계가 완화된 후엔 연락처를 몰라 문안편지 한장 전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지난 연말 두만강 답사길에서 북조선에 사는 김형호 소식을 들었다.용정시 백금향(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48)문화잠장이 북조선에 갔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다. 『재작년 가을 웅기로 친척방문을 가게 됐드랬습니다.도문해관을 넘어 북조선 남양에 이르렀더니 뉘엿뉘엿 해가 지더군요.그곳에서 밤을 나고 이튿날 웅기행 열차를 탈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디요.기래서 짐들을 보관시키고 갖고 간 쌀과 고기며 술을 가방에 넣고는 무작정 아무 집이나 찾아갔습니다.남양군 남양읍 42반이라고 쓴 벽돌집이었는데,방에 앉아 유심히 집안을 뜯어보다가 깜짝 놀랐댔시요.북조선 정부에서 발급한 라성교(조선전쟁 당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희생된 중국 지원군 병사)식 영웅이라는 훈장과 중국 정부에서 발급한 상장들이 액틀속에 정히 넣어져 벽에 걸려 있었댔습니다.그 전에 두만강에서 우리 조선족 처녀들을 구해준 김형호 그 사람이었습네다.우리는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네다. 나는 김형호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화룡시 팔가자진에 사는 한친선 여인에게 전했더니 퍽 감격스러워 했다. 오늘 우리는 도문에 가면 중조교두를 마주하고 선 친선탑을 볼 수 있다.문화대혁명시기 이 자리에는 모택동 사상이 조선에 비치라는 의미에서 조선쪽을 향해 선 모택동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었다.문화대혁명이 끝난 70년대 말에 모택동 동상을 폭파하고 거대한 두 손이 악수하는 모양의 친선탑을 세웠다.자초에는 중국과 조선의 혁명적 친선을 상징하는 뜻이었으리라.하지만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이제는 그 이미지가 폭을 넓혀 두만강 건너 한반도전부를 포함하게 되었다. 연변의 친선탑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대립된 남북한 통일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작가약력 ▲중국 길림성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출생 ▲연변대 조선어문학부 졸업 ▲중산대 철학부 연수 ▲단편소설「푸른매」로 문단데뷔,「아 쪽박새」「인생숲」 등 중·단편소설 60여편 발표 ▲「해란강」「청춘무대」등 문학상과 전국소수민족 우수도서 편집상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이사,연변조선족 문화연구회 회장,연변 인민출판사 문예부 편집위원
  • 성수교 참사 무학여고 장세미양/어제 「눈물의 영혼졸업」

    ◎아버지가 명예졸업장 받아/“수학선생님 꿈 못피우고…” 고실 울음바다 13일 상오 11시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 강당에서 열린 제50회 무학여고 졸업식. 5백2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이날 졸업식에서는 지난해 10월19일 어처구니 없는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장세미양의 아버지 장영남(49)씨의 모습이 보였다. 장씨는 딸의 명예 졸업장을 받기위해 식장으로 나왔다.가슴에는 평소 딸이 좋아하던 노란색 튤립 여섯송이에 안개꽃을 감싸 만든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 장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졸업식장을 지켜보며 눈물을 애써 참았다. 식장에서의 졸업식이 끝난뒤 장씨는 세미양의 학급이었던 3학년 2반 교실로 돌아왔다. 『장세미』담임인 유갑례 선생이 졸업생중 맨 먼저 세미양의 이름을 부르자 대신 세미양의 자리에 앉아있던 장씨의 눈가엔 이슬이 맺혀지기 시작했다.결국 명예졸업장을 전달받으면서 장씨는 끝내 오열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교실안의 조용한 울먹임은 이내 흐느낌으로 이어졌다.흐느낌은 이내 통곡으로 변했고 교실안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졸업도 못한 자식한테 이제 졸업장이 무슨 소용입니까』 장씨는 세미양이 친구들과 찍은 졸업사진이 담긴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쓰다듬으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용돈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더 잘해 주는 건데…』 장씨는 사고가 나기전 세미양이 생일선물로 준 라이터를 마치 졸업하는 세미양의 손이라도 되는 양 한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세미양과 가장 친했던 친구 오명자(18)양은 『세미는 수학선생님이 되고 싶어했어요.같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었는데….아마 하늘나라에서는 대학생이 됐을꺼예요』라고 울먹여 한바탕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 기후난조(외언내언)

    유럽의 물바다를 보고 있다.프랑스 발라뒤르총리의 말로는「세기의 홍수」.20세기 기록으로 최악의 기상사태라 할만하다.그동안 이런 경우를「기상이변」이라고 불러 왔다.최근에는 어법이 좀 바뀌었다.「기후난조」라는 표현을 쓴다. 세계통계로 60년대 기상재해 피해인원수는 연평균 5천만명 정도였다.70년대부터 2억명이 넘는 해가 나타났다.73년과 79년.그리고 80년대에 들어 이 현상은 급격히 늘어났다.81,85,86년만 빼고 모든 해에 2억명을 넘었다.83년엔 3억명,87년엔 3억7천만명에 이르렀다.해마다 피해인원이 늘뿐 아니라 당연히 재해규모도 커지고 있다. 아무도 아직 이 기후난조를 설명하진 못한다.천문학에서는 지구 자전축 기울기의 변동이라는 설을 갖고 있다.지구 공전축에 대한 지축의 기울기가 21.5도에서 24.5도까지 4만년주기로 변하고 이 기울기가 클수록 추위와 더위등 계절의 변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설은 더욱 더 난조를 계속하는 현실에 설득력을 잃고 있다.기상과 환경영역에서 내세우는 온실기체의 온난화 효과라는 가설이 점점 더 우세해지고 있다. 「온실효과로 지구는 더워진다.지구가 더워지면 열파,가뭄,폭풍우,홍수가 더 빈번해진다.뿐만아니라 이 기상현상은 마치 폭포처럼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내리게 된다」… 이것이 온난화 효과론의 견해다.지구는 80년대에 섭씨0·5도 더워졌다.10년단위로 계속 0·5도이상씩 더워져 최소 4·5도가 상승될 것이다 라는 추정도 한다. 설명이야 여하튼 기후난조현상이 나타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그리고 지금 유럽엔 폭우가,한국엔 가뭄이 「금세기 최고」에 이르고 있다.이것은 다른 현상이 아니라 같은 현상이라고 보아야한다.기후난조시대를 사는 재해대비책,그러니까 어떤 기상에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만 한다.
  • 유럽 최악의 홍수… 피해 확산/라인·센강 범람… 인근도시 물바다

    【프랑크푸르트·쾰른 AP AFP 로이터 연합】 지난주 독일과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등 유럽 일대를 강타했던 폭풍과 폭우로 10여명이 사망한 데 이어 28일에도 라인,센 등 유럽의 강들이 범람,막대한 홍수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네덜란드,독일,프랑스 등에서는 29일 상오 현재 각 피해 지역 주민들이 강물 범람을 우려해 안전 장소로 대피하고 있다. 지난주 폭풍 등 기상 악화로 16명이 사망한 프랑스에서는 29일 현재 강물 수위가 『세기적인 홍수』가 몰아쳤던 지난 93년 12월의 기록적인 수위를 초과할 것이라고 기상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독일 라인강 연변의 쾰른시는 28일 자정이 갓 지나 수위가 10m 이상으로 상승,13개월만에 처음으로 강이 범람했으며 지금까지 7천여명의 수재민을 낸 코블렌츠시에서는 현재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긴데다 단전까지 겹쳐,당국은 홍수로 인해 낡은 상수도관이 파열될 것을 우려,시민들에게 식수 보관을 권고하고 있다. 네덜란드 남부 림부르흐주에서도 2천명 이상이 홍수 위험으로 안전 지대로 대피했으며 뫼즈강 연변의 주도 마스트리히트시는 27일 밤 뫼즈강의 수위가 30㎝ 상승하며 범람,주민 1천5백여명이 긴급 대피했으며 현재 강 인근의 도로들이 물속에 잠겨 철도 운행도 폐쇄된 상태다.
  • 도심 빌딩·아파트 순식간에 “와르르”/가상 시나리오/서울 대지진

    ◎낮12시 진도6/한강교량·청계고가 잇따라 붕괴/제방 무너져 산강범람 침수사태/하오1시 진도7/지하철 폭삭… 도시가스 연쇄폭발/갈라진 지반틈 사람·한량들 매몰/밤되자 암흑속 추위·공포에 떨어 우리 서울은 지진에 어느 정도 안전한가.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일본 간사이(관서)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이 서울에서 발생했을 경우,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어떠한 재난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처절한 결과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이들의 이같은 주장은 우리의 대형 건축구조물 거의 모두가 내진설계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는데 근거하고 있다.일본 간사이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을 계기로 우리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서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것을 가상한 시나리오를 엮어본다.이 시나리오는 한양대 김소구 교수,한국자원연구소 전명순 박사 등 전문가들과 김치운 상수도사업본부장,최재범 도시계획국장,박영호 민방위국장 등 서울시 관계자들의 의견을 참고로 구성했다.이는 어디까지나 가정된 상황이다. ○○년 ○월○○일 낮 12시.강진이 불행하게도 평화로운 우리의 서울을 강타했다.진앙지가 경기도 광주로 추정되는 진도 6의 수직형 강진이 한강변을 따라 엄습한데 이어 1시간의 여진끝에 진도 7의 가공할 파괴력의 대지진이 도심쪽을 맹타한 것이다. 경부선 새마을 열차가 방금 통과한 한강철교가 폭음과 함께 엿가락처럼 휘어진채 중간중간이 끊어지면서 시퍼런 한강 물속으로 잠겼다.한강철교에 이웃한 동작대교와 마포대교 등 강남·북을 잇는 대형 교량들 역시 잇따라 붕괴되면서 성난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망·실종 40만명 이 순간 온 시민이 온갖 정성을 들여 모처럼 잘 가꾸어 놓은 한강시민공원 제방 곳곳은 힘없이 무너졌고 모래와 자갈을 동반한 강물은 물기둥을 이루며 무너진 둑 사이로 쏟아져 내려 한강변 주택가 곳곳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같은 시각 도심 한복판.동서를 연결하는 거대한 청계고가도로 역시 기둥이 뿌리째 뽑히면서 차도 상판이 순식간에 청계천 바닥으로 떨어졌다.교각과 상판은 10여m 아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이웃한 크고 작은 건물과 질주하는 차량들을 무차별로 덮쳐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잠시후인 하오 1시쯤.이보다 더 강력한 진도 7의 대지진이 또다시 도심 한복판을 때렸다.핵폭탄과 같은 위력의 두번째 지진은 고귀한 인명은 물론 주위의 크고 작은 빌딩·터널·교량·아파트 등을 닥치는대로 파괴했다.대통령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인명구조를 위해 민방위·예비군은 물론 군병력이 동원됐다. 이 시각 서울시청 지하 상황실.시장이 대단히 심각한 표정으로 민방위국 교통국 하수국 소방본부 등 관련실·국으로부터 피해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모든 한강교량의 통행금지.송수관로 파괴.도시구조물의 절반 파괴.단전·단수·통신 불통.가스공급 중단.화재발생 다수.지하철 운행중단 등…』 서울시의 피해상황 집계는 실로 엄청났다.무엇보다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사망 10여만명,실종 30여만명,부상자 50여만명,이재민 1백여만명 등으로 우리가 일찍이 겪지 못했던 숫자다.이뿐만 아니다.한강교량 20개 1만8천9백86m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개가 끊어지거나 파손됐다.터널 16곳 9천5백14m,고가차도 57곳2만2천여m,지하철 총연장 2백16·5㎞,아파트 50여만가구 가운데 절반가량이 피해를 입었다. ○곳곳 화염 휩싸여 이 시간 여의도 63빌딩.전망대를 향해 숨가쁘게 올가가던 엘리베이터가 모두 가장 가까운 층에 멈췄다.진도 4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엘리베이터 창문 너머로 강남·북에 우뚝 선 거의 모든 고층 아파트가 무너지고 도로 곳곳은 힘없이 갈라지고 내려앉았다.방금전에 폭삭 주저앉은 청계천 고가도로가 복개천이 갈라지면서 개천 아래로 추락했다.그뒤를 이어 승용차·버스 등 각종 차량들이 휴지처럼 찌그러진채 깊게 팬 웅덩이속으로 빠졌고 생지옥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다.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지나는 지하철 1·2호선과 이웃 빌딩들도 중심을 잃고 흔들리다가 그대로 폭삭 내려앉았다.이 일대의 고층빌딩은 무너져 내리면서 이웃한 저층 건물을 덮쳐 곳곳에서 신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도시가스의 연쇄 폭발로 도심지 곳곳은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그불은 통신구의 광케이불로옮겨붙어 주민들의 기본생활인 가스와 통신은 완전히 끊겼다.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던 직장인들,쇼핑을 나온 시민들은 진동이 없는 곳으로 파도처럼 움직이다 갈라진 땅속으로 빨려들어가거나 붕괴되는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혔다. ○콘크리트속 아우성 도심지 곳곳의 빌딩 역시 화염에 휩싸였다.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려가지만 워낙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불길을 잡는데 역부족이었다. 밤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강남과 강북을 연결해주는 지하보급품기지가 없는데다 모든 육로의 수송수단이 끊겨 서울은 생필품공급이 중단됐다.전기와 가스공급마저 끊긴 탓으로 시민들은 추위와 암흑속에 떨었다. 순식간에 우리의 서울은 폐허로 변했다.그러나 그 다음날 여명과 함께 생필품 보급이 시작되고 구조 및 복구작업이 본격화됐다. ◎“모든 건출물 내진설계 해야”/암반층 넓어 지진 일어나면 저층가옥 더 위험/지진공학 교수들 법규강화 요구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므로 내진과 관련한 국내법규를 강화해야 한다는주장이 제기됐다. 20일 대한건축학회 소속 지진공학교수들은 지난 88년 제정된 건축법시행령과 그 규칙은 6층이상,또는 연면적 10만㎡이상의 건축물만 내진설계대상으로 정했으나 실제 지진이 발생하면 고층건물보다 저층가옥이 위험하다며 내진설계대상을 모든 지상건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원 이동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암반이 많은 지질에서는 저층건물의 위험도가 고층건물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그는 『89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진이 났을 때 고층건물은 피해가 없었으나 저층구조물은 대부분 파괴됐고 지난해 일본 동북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주로 저층구조물의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정란 단국대교수도 『지난 85년 멕시코시티에 지진이 났을 때 미국인이 내진설계기준에 맞춰 지은 고층호텔과 미국대사관 등은 전혀 파괴되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은 건축물은 완전히 무너졌다』며 『지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국내 저층건물도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88년 법을 처음 만들 때는 건설업체의 부담을 이유로 내진설계의 적용대상을 제한했지만 이제는 구조물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하철 공사중 상수도관 파열

    【대구=남윤호기자】 26일 상오 6시30분쯤 대구시 중구 덕산동 지하철1호선 공사구간에서 대형 상수도관이 파열돼 중구 종로 1·2가,계산동·수동등 인근 7천여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9시간동안 중단됐다. 또 직경 4백50㎜의 대형 상수도관에서 쏟아지는 수돗물이 주변 도로로 넘쳐 이 일대가 물바다를 이루면서 출근길 시민들이 심한 교통체증으로 불편을 겪었다.
  • 나란히 세워진 인공­성조기/박정현 파리특파원(오늘의 눈)

    로버트 갈루치핵대사와 강석주외교부부부장이 핵협상을 마무리지으면서 기본합의문에 서명을 하던 21일 북한대표부에는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자리를 했다. 41년전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성조기와 인공기가 공식적인 테이블에 1백여명의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놓인 것은 두번째인 듯하다.다만 그때는 상호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차원이었다면 이번에는 관계개선을 전제로 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만큼 이번 합의문은 한반도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의 핵카드가 이렇게까지 커진데는 한국의 구소련및 중국과의 수교도 작용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말하고 있다. 북한은 한중·한소 수교로 충격을 받아 더욱 핵카드에 매달리지 않을수 없었다는 얘기다.이런 점에서 보면 미·북관계개선이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요인으로 작용할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설이나 「물바다」등의 용어를 들을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지곤 하던 일은 이제 더이상 있을 것 같지 않다.유엔 안보리의 문턱을 넘나들며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게 했던 사실도 어느덧 옛일이 된듯하다. 30억달러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진 한국의 경수로지원금도 이런 평화의 대가로 생각할수 있다.아니면 장기적인 통일비용쯤으로 칠수도 있다.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잘된 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고 이런 역사적인 합의문을 굳이 인색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합의문의 의미를 퇴색하기에 충분한 한가지가 있다.바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합의문과 별개로 마련한 소위 양해각서라는 「비밀문건」이다. 양측의 서명이 이뤄질때쯤 한국의 한 외교관은 한마디로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보여온 사안들을 별도의 비공개 문서로 만들자고 제의했고 미국은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양해각서와 이날의 성조기와 인공기가 주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는 것이 앞으로 할일인 것같다.
  • 커먼스먼트(외언내언)

    『문자가 만들어졌을 때 귀신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열자)는 중국의 옛말이 있다.문자가 권력지배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을 비판한 말이지만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겐 문자가 바로 권력임을 실감케 해주는 말이다. 졸업시즌이 시작됐다.14일부터 중학교 졸업식이 거행되고 17∼18일을 전후하여 국민학교와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식이 펼쳐진다.귀신도 울릴만큼 큰 힘을 지닌 문자에 의한 학업의 각단계에 마침표가 찍히는 것이다. 마침표는 해방을 의미하고 그로 인한 졸업식소동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조선조 선비 양성기관이던 사학(중학·동학·서학·남학)의 졸업식때 당시 교복인 「청금」을 갈기갈기 찢은 것이나 몇년전까지 중·고교졸업식장에서 교복이나 모자를 찢고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행태가 벌어진 것은 그런 해방감의 한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졸업이란 말에는 새로운 시작의 뜻 또한 담겨 있다.「졸업식」을 뜻하는 영어의 커먼스먼트(Commencement)는 「시작」「개시」라는 의미도 지닌다.실제로 국민학교와 중학교의 졸업은 다음 단계의 학업시작을 의미하며 고등학교와 대학졸업은 사회생활의 시작이 된다. 따라서 졸업식이란 그동안 길러주고 가르쳐준 부모님과 스승께 감사를 드리고 정든 학우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이자 새 출발의 새 각오를 다지는 기회이기도 하다.그러나 요즘 졸업식엔 그같은 무게가 실리지 않고 있다.중·고교졸업식장이 「눈물바다」가 되던 것은 옛말이고 졸업생들은 가능한 한 빨리 학교를 빠져나가 술집등으로 향한다.옷찢기등의 행태가 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나 졸업식의 의미가 그만큼 퇴색한 셈.대학졸업식장은 자동차와 기념촬영인파로 북적대지만 정작 식장안은 텅 빈 채 맥빠진 졸업식이 거행되곤 한다. 아무리 세태가 변해도 졸업식은 의미있는 기념식이다.뜻있는 졸업식을 기대하며 올해 졸업생들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낸다.
  • 93 대전에스포가 남긴것/취재기자 방담

    ◎1천7백 자원봉사자 성공개최 도움/도우미 인기최고… 외국언론 긍정보도/새치기·쓰레기엔 “눈살”… 식중독사건·바가지요금 등 흠으로/국민 3명중 1명 관람… 흥미위주 전시많아 교육효과 “반감” 「새로운 도약의 길」을 주제로 한 대전엑스포가 7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지난 8월7일 93일간의 일정으로 화려하게 개막된 엑스포가 숱한 화제를 남긴채 우리 역사의 한장으로 기록되고 있다.간혹 서투른 운영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짧은 준비기간에 비해서는 대과없이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른 셈이다.3개월동안 박람회장에서 취재한 기자들의 좌담을 통해 엑스포의 하와 실을 하나씩 짚어 본다. ­대전엑스포는 처음부터 질서의식을 강조했죠.88올림픽 때처럼 깨끗하고 질서있는 모습을 외국에 보여주자는 것이죠.「질서 올림픽」이란 말도 이때문에 나왔습니다.그러나 처음에는 잘 지키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흐트러 지더군요.은근과 끈기라는 말을 무색케 한 셈입니다. ○특별입장 많아 ­맞아요.어린이들은줄을 서는데 어른들이 새치기를 했어요.특히 50대 이상이 심했죠.낮부터 술을 마시고 한데에서 드러누운 사람들도 있었고요.게다가 우리사회의 병폐인 권위 의식이 엑스포에서도 또 다시 드러났어요.「나 하나쯤이야」하며 뒷문으로 입장하는 이른바 귀빈(VIP) 관람객 얘기죠.엑스포장에서는 바로 옆에있는 남의 눈이나 외국인을 의식해서인지 매일 쓰레기가 줄어드는데 반해 엑스포장을 벗어난 도로변이나 고속도로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고 해요. ­이번 엑스포에서 뭐니뭐니 해도 도우미들의 인기가 최고였죠.대전 중심지나 유성에 도우미 간판을 내건 식당이 줄잡아 50여개나 된다고 해요.국내외 언론들도 엑스포보다 도우미들의 취재에 더 열을 올린 느낌도 들고요.도우미들을 관리하는 조직위 관계자는 하루에도 중매를 서달라는 부탁을 여러차례 받아 갑자기 「중매장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인기만큼 많은 곤욕도 치렀죠.엑스포 개장때부터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어요.주로 밤늦게까지 집단미팅을 했다든가 하는 얘기들이죠.장난 전화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며칠씩 쫓아다니는 「진드기」형 남자때문에 도우미들이 애를 먹었대요.더욱이 막판에 한 도우미의 간통사건으로 「혹시」가 「역시」로 비춰지지 않을까 도우미들은 상당히 걱정하더군요. ○안전수칙 허술 ­당초 생각과는 달리 큰 사고 없이 대회를 마친 것 같아요.준비 기간이 짧아 부실공사의 우려도 있었고 관람객이 대거 몰릴경우 불의의 대형사고에 대처할 만큼 조직위의 구성이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지요.그러나 사고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에요. ­특히 개장 이틀째인 8월8일 일시적인 폭우로 엑스포장이 물바다가 된 것은 천재로 치부하기엔 조직위의 대응이 너무 허술했어요.집단 식중독 사건도 세계적인 대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드문 일이었죠.튀니지·폴란드 등 국제관에서 잇따라 발생한 도난 사건도 허술한 경비 탓이고 대회 막바지인 지난달말 갑천에서 보트가 뒤집혀 관람객 1명이 사망한 것도 조직위의 안전 수칙이 허술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엑스포 타운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추억거리죠.조직위 요원·도우미·취재진·국내외 관람객 등이 숙소로 묶는 이곳은 엑스포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젊음의 장소였죠.타운내에 있는 생맥주집과 통닭집·노래방·슈퍼마켓 등은 날마다 새벽 3∼4시까지 불야성을 이뤘어요.낯익은 얼굴 몇을 보는것은 예삿일이고 외국인들과도 쉽사리 잔을 기울 수 있는 밤의 엑스포장이었죠.그러나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며 떠들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 숙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해요. ○상설전시관 운영 ­엑스포 개막 당시 프레스 센터의 시설이 첨단 과학의 집결장이라 할 수 있는 엑스포장에 비해 「원시적」수준에 그쳐 취재단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죠.국내 취재진만 해도 2백여명이 넘는데 50여평도 안되는 곳에서,발디딜 틈이 없었죠.에어컨이 작동되는 조직위 본부와는 달리 선풍기 1대로 더위를 식혔고 식수나 전화기 등 기본 시설도 제대로 안돼 사우나실을 방불케 했죠.대회 중반에 가서야 다소 나아졌지만 그것도 외국 기자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했던 조치였다는 말도 있었고…. ­국내 기업 대부분은 당초 엑스포의 참여를 극구 꺼렸으나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때문에 엑스포에 참가하게 됐다고 하더군요.최소한 2백억원 이상을 투자하고도 3개월 뒤면 전시관을 모두 철거한다는 처음 방침때문에 모두 반대했습니다.그런데 구회장이 오명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상설전시관으로 운영한다면 참가할 생각이 있다고 말해 극적 합의를 봤다더군요. ○관람객들 탄성 ­매일 하오 9시부터 갑천변에서 펼쳐졌던 수상 스크린쇼는 과학과 예술을 신비하게 조화시켜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어요.이어 벌어지는 불꽃놀이 행사도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지만 엑스포장 맞은편 둔산지구의 아파트 주민들은 밤잠을 설치는 등 많은 불편을 겪었죠.일부 주민들은 조직위를 찾아와 불꽃놀이 행사를 멈추게 할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요. ­이번 엑스포에 숨은 일꾼들은 단연 자원 봉사자들이죠.하루에 1천7백여명이 경비·청소·심부름 등 갖은 허드렛일을 맡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죠.도우미들에 비해 언론이 소홀히 다뤄 다소 사기가 떨어지기도 했으나 맡은 일을 99% 완수했다고 하더군요.또 관람객의 교통 편의를 위해 차량 홀·짝수 제에 적극 참여한 대전 시민들도 개최지 시민으로서 한 몫을 한 셈입니다. ○“88보다 못하다” ­대전엑스포를 보는 외국의 눈이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대부분 긍정적이더군요.일본 매일신문은 지난 달 7일 관람객 동원에서는 성공적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88올림픽보다 못하다고 보도했으며 영국 로이터 통신도 8월초에 국제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 채 선전행사에 치중한다고 논평했어요.그러나 미국·일본·러시아·중국·아르헨티나 등 선진국과 개도국 대부분의 언론들은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로 한국국민의 진가를 보여줬다고 보도했죠. ­엑스포장내의 각종 요금이 한때 뜨거운 감자였죠.음식비가 시중에 비해 최고 3배까지 비싸 관람객들이 식당을 외면하자 식당 업주들은 부정적으로 보도한 언론 탓이라며 정정보도까지 요구하더군요.자기들끼리 요금을 낮춘 데다 10월 들어 관람객이 크게 늘자 다소사정이 나아졌지만 불만은 여전했죠.놀이 시설이 마련된 놀이동산도 입장요금을 받다가 뒤늦게 취소하는 등 요금 측면에서 이번 엑스포는 낙제점수를 면키는 어렵습니다. ­당초 관람객 목표인 1천만명을 3백50만명 정도 초과할 것으로 보여 인원 동원 측면에서는 일단 성공적인 편이죠.그러나 전시 내용이 지나치게 영화에만 치우쳐 어린이들의 과학 교육에 어느정도 기여했는지는 더 두고 볼일 같아요.즐겁다고 교육적 효과가 높은 것은 아니니까요. □엑스포 특별취재단 ◇단장 우홍제 편집부 국장 ◇취재팀 ▲전국부 김앙섭편집부국장 최홍운차장 최용주기자 이천열기자 ▲경제부 채주인기자 백문일기자 ▲과학부 김규환차장 김규환기자 ▲문화부 노주석기자 ▲생활부 손남원기자 ▲사회부 박상열기자 ▲사진부 남상인기자 최병규기자
  • 한풀이 하듯 “전두환이…” 연발/정승화씨

    ◎“댐 성금모금엔 관여 안했다”/이학봉씨 국회 국방위와 건설위는 국정조사 시한을 하루 남겨둔 9일 각각 12·12및 평화의 댐 의혹규명을 위한 증인신문을 계속했다. ▷국방위◁ ○…노태우전대통령의 증인채택문제로 3일째 공전되다가 이날부터 활동을 재개,12·12 관련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등 당시 피해자및 가해자측 인사 9명에 대한 증언을 청취. 민주당의원들은 이날 전두환씨를 비롯한 신군부세력의 부도덕성과 하극상을 부각시키며 12·12가 정권장악을 위한 군사반란이라는 답변을 유도하는데 주력.이를 위해 12·12 주도세력의 정전계엄사령관의 불법 연행,군 지휘계통을 무시한 병력이동,전씨의 보직변경설 배경,쿠데타 모의여부등을 집중 추궁. 반면 민자당의원들은 12·12보다는 10·26사태 당시 현장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정씨를 대상으로 김재규와의 관계와 계엄사령관으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점을 공략. 나병선의원(민주)은 『합수부에 연행된 직후 신군부세력으로부터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에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장해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느냐』고 질의,정씨로부터 『그때부터 이미 군사반란의 낌새를 인식했다』는 답변을 유도. 정씨는 답변에서 『12·12는 일부 부하군인들이 총장공관을 습격하고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한 숨길 수 없는 반란』이며 『김영삼대통령이 군사쿠데타적사건이라 규정했지만 분명히 「군사반란에 의한 군사쿠데타」이다』라고 주장. 정씨는 이같은 사태의 재발방지를 묻자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이 국민과 법에 의해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사법처리를 촉구한뒤 『수도권에 있는 정치부대를 재편성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 정씨는 이어 아직 원한이 가시지 않은듯 계속 「전두환」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전두환이가 5·16에 대한 사관생도의 지지데모로 인해 박전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사조직을 운영해오며 군내 실권을 장악해오다가 10·26이후 그런 야심이 깨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12·12의 원인을 해석. 정씨는 이어 『당시에는 몰랐는데 전두환이는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쫓겨간다는 얘기가많이 나돌았던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12·12의 직접 원인을 군부내 실권이 없어지게된 전씨의 군권장악 기도로 주장. 정씨는 이어 『전두환이가 청와대 금고에서 있던 9억원가운데 6억원을 박전대통령의 유가족에게 주고 1억원은 자체예산으로 썼으며 나머지를 갖고 왔다면서 2억원짜리를 내놓더라』면서 『국방부장관에게 이를 보고했더니 자신에게도 5천만원을 갖고 왔더라는 얘기를 듣고는 또 한번 속은 것을 알았다』고 답변. 김전헌병감은 『사건당일 김계원대통령비서실장이 숨진 박대통령을 보안사령부에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의 병실에 옮긴뒤 중정 운전사인 유성호에게 시신을 지키도록해 보안사는 초긴장상황이었다』면서 보안사령관인 전씨가 이 사실을 알았다고 폭로하고 이어 『전씨는 보안사령관으로써 경호책임을 맡고 있는 경호실이외의 사람이 대통령의 시신을 지키고 있다면 당연히 체포해야 하나 역할을 회피했다』고 주장. 가해자측 증인인 황영시전1군단장은 『12·12는 장전수경사령관이 실력행사로 나와 이를 진압하지 않을 경우 국가기강이 문란해짐은 물론 우리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자위권 발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변. 황씨는 김영삼대통령이 12·12를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그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하극상도 아니고 군사쿠데타도 아니다』고 계속 주장. 황씨는 또 사건당일 경복궁에 있다가 「진도개 하나」가 발동됐는데도 부대복귀는 커녕 전방의 예하 9사단 병력등을 서울로 이동시킨 이유에 대해 『생존이 최고의 법이다.생존을 위해서라면 따를 필요없다,국가기관의 주요 임무를 방해하는 세력에 의해 내려진 것이므로 응하지 않았다』고 억지. ▷건설위◁ ○…평화의 댐 건설 의혹과 관련,이학봉전안기부차장과 안수한 성기수씨등 참고인 2명에 대한 증언청취를 계속. 이전차장은 답변에서 금강산댐의 수공위협에 대한 판단근거와 관련,『북한이 금강산댐 공사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너희들은 서울을 물바다로 만드는 전쟁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훈시하는 통신첩보를 입수했었다』고 답변. 이씨는 『금강산댐 건설에 적용되는 수로변경식은 17억∼18억달러가 소요되나 압록강이나 청천강에서는 훨씬 싸게 발전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전제,『때문에 북한이 주장하는 농업및 공업용수 마련과 함께 수공위협도 겸했다고 판단했다』고 피력. 이씨는 그러나 『나는 금강산댐과 관련한 북한의 동향과 대응책에 관한 일만 했을 뿐이며 성금모금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성금모금의 관련을 부인.
  • 수돗물 흘려 변심 앙갚음 애인누나 가게 물바다로(조약돌)

    ○… 부산 남부경찰서는 28일 방정화씨(24·여·회사원·부산시 남구 감만2동 20의 9)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 경찰에 따르면 방씨는 남자친구인 정모씨(26)가 최근 다른 여자와 사귀는 것을 알고 지난 10일 상오 2시쯤 정씨의 누나(32)가 경영하는 부산시 남구 감만2동 모빌딩 지하의 레스토랑을 수돗물로 침수시켜 2천2백여만원어치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 전 전대통령 대 국민 발표 전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계신 이때,제가 새삼 재임중의 일에 관해 번거롭게 말씀을 드리게 된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일기가 불순하여 농사마저 어려워져서 농민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의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터에,그동안 정부가 두번이나 바뀐 6∼7년전의 일이 또 다시 시비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입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국회의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원회,특히 1988∼89년의 국회특별위원회 등에서 되풀이 다루어졌고 더러는 일부 정당차원에서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평화의 댐 축조에 관계했던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저 자신도 1989년 12월의 국회증언에서 말슴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정치권과 언론등에 의해 다시 평화의 댐에 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었고,저 스스로는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인식되고 있으며,이것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또 그것이 저와 관계된 사안인 만큼,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를 돌아볼때,조선왕조 선조임금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가 『일본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율곡 이이선생이 10만양병을 제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때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비록 국고가 다소 축이 나고 민생이 어려워졌을는지는 몰라도 왜적의 침입을 받아 수년간 전국토와 백성이 유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파적 입장때문에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보고한 통신부사의 말을 따른 결과 엄청난 국난을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했으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침략을 당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의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영세중립국도 군대는 갖고 있고,수 백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나라들도 만일의 외침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3분의1을 방위비에 투입하여,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말에 『한나절 싸움에 이기기 위해 1천일에 걸쳐 군사를 기른다』(양병천일 용어일일)고 했는데,9백99일동안은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공연한 정성과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문제는 본질상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위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 건설로 인해 금강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 바,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도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 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감축을 제의했는데,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 하는 사실과,또 그들이 우리에게 기상천외 하고 악랄한 도발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6·25는 물론 1·21사태,남침용땅굴,아웅산 암살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등 전쟁광이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저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전과가 있는 북한이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면,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가 따져보고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위에 열거한 사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기는 커녕,모두가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워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남조선 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10여일 전에 귀순했다는 북한군 장교도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인민무력부에 대해 인민군의 전투 준비완성에 큰 몫을 할 금강산댐의 건설을 지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귀순한 것은 제가 이미 퇴임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금강산댐의 수공가능성을 조작했다」고 비난 받는 저를 변명해주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에 와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여러 이점들을 지난 몇년간 헛되이 흘려 보냈다는 반성이 있지만,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우리의 국가발전과정에서 선진국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울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 우리의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1986년에서 올림픽 때까지의 그 엄청났던 민족적 열의와 고조된분위기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린 오늘의 시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그때 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연달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른 국제올림픽 관계자들도 혹시나 서울올림픽마저 북한의 방해때문에 실패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가 붕괴된 오늘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호전적이고 경직된 자세는 변함이 없지만,1986∼87년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와의 체제경쟁에서 결정적 열세에 몰린 나머지 극도의 초조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운이 뻗어 오르던 그 소중한 시기에,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침략기도를 사전에 봉쇄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날까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가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 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 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습니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방 여러나라는 물론 국제연합과 세계 대댐 학회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댐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각오하고 금강산댐 공사현장을 폭격할수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공사에 관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는 댐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등을 모두 추정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따라서 우리측도 대응댐에 관해 실무자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력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 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 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서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 진도에 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1단계 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긴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입니다. 발전을 하거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라 유사시 북으로부터의 수공을 막는 일종의 「방벽」의 성격이 그 1차적 기능인 만큼 일반적인 댐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도 몇시간의 호우로 인해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었고,서울의 한강변은 몇년에 한번씩 홍수가 져 큰 물난리를 겪는것이 우리 실정인 것입니다. 1984년 홍수때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소양댐이 범람하고 파괴되더라도 수문을 열지않고 버텨야 하느냐,아니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수문을 열어야 하느냐하는 심각한 기로에 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내려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입니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1988년 6월에 완공된 것이며,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서는 2단계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이 서 있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화천댐등 우리의 기존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의 댐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해서 우리의 댐들을 모두 비워놓고 있어야 하는데,그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평화의 댐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화천댐은 수공을 받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질학적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듣기로는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또 평화의 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지난 일을 오늘의 상황과 기준에 서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저에게 부하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에서 지켜왔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6·25때 「맥아더」원수가 막료들이 모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해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일도 있듯이,최고결정권자는 국가의 이익과 백년대계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부분적 진실에만 집착하기 쉬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판단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간절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1988년과 1989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기회에도 호소한 바 있습니다만,지난 날의 허물과 잘못은 모두 저에게 물어 주시고,이제는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보다 살기 좋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재임중 과오도 많았고 부덕하고 불민한 이 사람이지만 그 점만은 국민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성도 없는 금강산댐을 빨리 만들라고 오늘도 인민무력부장을 다그치고 있는 김일성 부자가 그 대응댐을 만든 전직 대통령의 「저의」를 거듭거듭 따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여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든,그것은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씨 감사원 회신(전문) 1,본인은 1993년 8월16일자 귀원의 「평화의 댐 감사관련 질문서를」를 받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방법에 대하여 원로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그런데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준 분들은 대통령 소속하에 있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의 배경·경위와 타당성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4조의 규정내용에 비추어 볼때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헌정사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귀하도주지하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로써 행하여 지는 것이 원칙이며 평화의 댐에 관련된 정책결정 역시 관련 부처에서 작성된 문서로써 행하여 졌습니다. 따라서 귀원의 감찰활동상 필요한 자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관중인 관련문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는 지난 수년간 국회차원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또다시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칫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한 배경과 경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아는대로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별첨한 「평화의 댐에 관하여」는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개막10일 중간점검(대전엑스포 ’93)

    ◎줄서기 수백m 질서의식 “합격”/하루평균 13만 관람… 인기관 북새통 여전/편의시설 확충·쓰레기 처리 등 개선 시급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주제로 내건 경제·과학·문화의 축제 대전엑스포가 16일로 개막 10일째를 맞았다. 당초 우려됐던 관람객들의 관람질서는 하루평균 13만명을 웃도는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어 우리 국민의 질서의식이 크게 앞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리허설등을 통해 드러났던 운영의 미숙,기반시설미비등 각종 문제점들이 개장이후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아 대전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조직위의 보다 조직적인 운영이 뒷받침되어야 할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막 10일동안의 문제점과 운영상황을 총점검해 본다. ◇회장운영 및 시설관리 지난 8일 1백3㎜정도의 비에 국제관등 일부 전시관의 기능이 마비되고 대회장 곳곳이 물바다를 이루는가 하면 정전사태를 빚은 것은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조직위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공사기간이 2년4개월로 짧았다고는 하지만 대회를 진행하면서 부실한 전시관이나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폐장이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취약성을 보완해 가는 조직위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예약제 실효 못거둬 개장초부터 북새통을 이룬 일부 국내전시관의 관람편중 현상에 대해 조직위는 속수무책이다. 조직위는 인기전시관의 혼잡을 피하기 위한 대책으로 대회장 안에 마련된 20개소의 꿈돌이 안내소를 통해 관람예약제를 실시했으나 일부 전시관만 이에 호응할뿐 크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관람객들은 삼성의 우주탐험관을 비롯,한국화약 한빛탑,기아 자동차관,럭키금성 테크노피아관등 일부 인기있는 전시관의 20∼30분짜리 입체영상을 보기 위해 3백m이상 줄을 서 4∼5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곤욕을 계속 치르고 있다. 27만평에 달하는 행사장 곳곳에서 나오는 쓰레기문제 역시 조직위의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조직위는 당초 1인당 3백40g정도의 쓰레기 발생을 예상하고 인력과 장비를 마련,배치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5∼6배이상의 쓰레기가 나와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음식·숙박료 치솟아 ◇편의시설 및 음식·숙박요금 행사장 안의 편의시설부족과 턱없이 비싼 음식물,기념품등의 가격은 관람객들의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음식값은 시중에서 3천5백∼4천원하는 갈비탕·설렁탕·비빔밥을 4천5백∼5천원씩 받고 있고 기념품 역시 손바닥만한 꿈돌이 인형 2개짜리 1세트에 6천원,볼펜 1자루에 7백50원씩 받고 있다. 궂은 날이 많았던 지난 10일 동안 도시락을 준비해온 가족중심 관람객들은 비를 피할 시설의 부족으로 우산을 쓰고 식사를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또 차양시설 부족으로 더위를 못견뎌 쓰러지는 어린이가 속출,지난 12일에는 어지러움과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30여명이 행사장내 중앙진료소를 찾았다. ○전화 불통소동까지 ◇사건·사고 개장 이틀만인 지난 8일 대전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남문주차장과 국제관을 비롯한 대회장 곳곳이 물바다를 이뤄 관람객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또 이날 정전사고로 운행중이던모노레일이 멈춰 72명의 승객이 공중에서 2시간 이상 공포에 떨었으며 9일에는 전기에너지관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던 국민학교 어린이 1명이 에스컬레이터 틈새에 발이 끼어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잦은 정전사고와 함께 지난 12일에는 대회장과 프레스센터,엑스포타운등의 3천1백여회선의 전화 모두가 북부전화국의 교환기 고장으로 불통돼 4시간30분이상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지난 12일 국제전시구역인 독일관 2층 VIP라운지에서 자해행위를 하며 인질소동을 벌인 독일계 캐나다인 토머스 피카시씨가 14일 강제출국조치됐으며 13일에는 중국관에서 관람객이 천장에서 떨어진 전시물을 맞고 부상을 당하는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5일에는 테크노피아관에서 예약표를 나누어 주던중 1만여명에 이르는 예약신청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낮12시35분 이후의 관람을 중지하는 휴관사태도 있었다. ○자원봉사자에 칭송 ◇질서의식 및 관람태도 이런 상황에서도 관람객들의 관람자세는 수준급이라 할 수 있다. 전시관마다 장사진을 이루긴 해도 차례를 묵묵히 기다리며 수만명이 좁은 전시회장에 한꺼번에 몰려들지만 관람객들로 인한 사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관람객과 함께 각종 행사장과 엑스포타운내의 화장실과 방을 청소하는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올림픽등 국제행사 때마다 확인하는 일이지만 대전엑스포에서도 숨은 일꾼으로 벌써부터 칭찬을 받고있다. 관람객들은 또 개장초에는 국내전시관 쪽에만 몰려 혼잡을 빚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교적 한산하던 국제관으로 발길을 돌리는 바람직한 관람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일본·중국관등은 국내관처럼 1백∼2백m씩 줄을 서는등 관람열기가 더해가고 있고 대부분의 국제관에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한 관람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1백8개 외국참가국 가운데 아프리카와 중남미,동남아국가등 상당수의 외국전시관들이 자국 토산품등 상품판매에 치중,아쉬움을 주고 있다.
  • 엑스포장 침수 소동/조직위,“대책 없다”

    엑스포행사가 집중호우와 각종 사고로 큰 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가 근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일관,성공적인 행사진행이 우려되고 있다. 조직위는 이혼란이 호우와 낙뢰로 인한 일시적인 자연재해때문이라며 사고원인분석과 시설점검이나 8월의 집중호우 대비책등을 제대로 강구치않고있다. 한편 관람객수는 8일 10만명 9일에는 13만여명을 기록했다. ▷침수 및 사고◁ 8일 하오 행사장은 1백3㎜의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한빛탑주변광장과 남문등 각 출입구부근에 발목이 잠길정도로 물이 차는 등 물바다가 되었다. 또 급격히 불어오른 갑천물이 역류해 갑천변무대가 12㎝가량 잠겼다. 이 때문에 수상쇼등 이날 예정됐던 모든 공연일정이 취소됐다. 하오 4시50분쯤에는 모노레일이 전원공급장치의 고장으로 갑자기 운행중단돼 국제관부근을 지나던 모노레열차에 탄 승객 70여명이 높이 6m의 레일위에서 2시간여동안 공포에 떨어야했다.또 9일에는 전기에너지관을 관람하던 김동수군(7·서울 강서구 화곡동)이 에스컬레이터에 운동화가끼어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는 첫 인사사고가 발생했다. ▷전시관폐쇄◁ 네덜란드관이 정전과 침수로 인해 9일 일시 폐쇄했다. ▷문제점◁ 엑스포행사장은 장마시 상습침수지역으로 7월에도 물난리를 겪었다.특히 배수관이 돌과 흙으로 막혀있는 등 배수시설의 미비와 문제점이 여러차례 지적돼왔으나 이번 침수에서 배수로의 어느 곳이 막혀 물이 넘쳤는지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또 인공조성된 갑천의 하류가 상류보다도 높은 구조적인 문제점도 안고있다.더욱이 1백50㎜의 강우량에 대비해 수방대책을 마련했다면서도 1백3㎜의 비에도 혼란을 빚어 재검토가 시급함을 드러냈다.소요전력에대한 계산착오로 일시적인 정전사태가 국제관과 프레스센터등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대책◁ 임풍환 조직위종합상황부장은 『침수는 집중호우로 인한 어쩔 수없는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면서 『모노레일사고등은 해당업체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밝혔다.조직위는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어렵다는 입장에서 호우나 태풍경보시 관람객의 입장금지나 퇴장,갑천홍수시 전원차단과 행사장폐쇄등의 조치와 함께 기존 수해방지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평화의 댐 의혹 명확히 가려내야(사설)

    평화의 댐.이른바 「정권안보용」이었던가 「국방안보용」이었던가.또 성금모집과 댐축조과정에 비이가 있었던가,있었다면 어느만큼인가.무성한 논의와 시비가 일고 있는 가운데 감사원의 특감이 진행되고 있다. 이 단계에서 추찰컨데 감사원 특감의 핵심은 당초엔 개혁차원 사정대상으로서의 비리부문이었을듯 싶다.그러나 이제는 그 논의와 시비가 「정권안보용」이냐 「국방안보용」이냐로 확대됐고 오히려 이 부문이 진실규명의 핵심이되고 있는듯 하다.물론 정권안보용 이었다면 그것은 당시 권위주의적 집권자의 소위 정권유지용 상징조작물로서의 기능을 지적하는 것일 것이다.무언가 방만하고 흐트러졌던 국가사회 기강을 북의 수공위협과 대응댐 축조라는 국민적 위기감으로써 돌파하겠다는 집권자 자의의 산물이었으리라는 해석이라 할수 있다. 반면에 그것이 실제로 국방안보용이었다 해도 이제 개혁적인 새 시대정신에 비추어 다시한번 당시의 객관적인 안보정세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조명이 있어야 할것으로 본다.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 백년대계와 안보를 위해서도 긴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평화의 댐에 대한 의혹과 시비는 그야말로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명료하게 가려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먼저 북한 금강산댐의 수공위협이 실존했는지,평화의 댐 대응건설은 현실안보 상황과 경제능력이 비추어 적정한 계획이었는지가 중점 감사대상이 되어야 할것이다.이어서 7백억원에 가까운 국민성금과 정부예산등 1천6백여억원의 정확한 용처도 밝혀내야 한다. 「평화의 댐」감사 방침이 발표되자 86년 당시 사업을 주도했던 안기부와 국방부 그리고 전두환전대통령의 측근들이 모두들 진상규명에 원칙적으로 기피하지 않는 기본입장을 밝히고 나선 마당이다.물론 지금으로서 안기부와 국방부의 입장과 주장엔 차이가 있다.세간의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의 당시 안기부 관련 인사들은 북의 금강산댐이 전력과 농공업용수공급을 위한 단순산업용이 아니라 88올림픽을 방해하고 수도권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수공용이었다고 주장한다.또 다른 쪽은 당시 북측의 미묘한 군사동향 정보와 금강산댐 축조증후를 안기부쪽이 과장판단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그러나 어떻든 안기부가 현재 보관중이라는 「금강산댐 백서」는 사실의 규명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현단계에서 평화의 댐 건설이 추진되던 5공 말기가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나 각종 시위로 크게 어지러운 때였다는 사실을 주목하고자 한다.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실 그것이 정권안보용이었다면 그럴수록 앞으로의 정치발전과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도 모든 내막이 샅샅이 밝혀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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