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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한센병 모두 완치… 차별 대물림 없어야”

    “국내 한센병 모두 완치… 차별 대물림 없어야”

    “귀하게 키운 딸이 사귀는 남자친구의 부모가 이른바 ‘문둥병’을 앓는 한센인이라면 그 결혼시키시겠습니까.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그렇다’ 하신다면 저는 소임을 다했다고 봅니다.” 소록도에서 20년간 한센인과 동고동락해온 국립소록도병원 오동찬(46) 의료부장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녹아있었다. 14일 통화에서 그는 “한센병은 우리나라에서 모두 치유됐고, 유전병도 아니다”라면서 “과거에 생긴 선입견 때문에 아직도 차별을 대물림받고 있다”고 말했다. 1995년 공중보건의로 전라남도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과 첫 인연을 맺은 오 부장은 다음달 26일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제2회 성천상을 수상한다. 그는 “나는 소록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냥 몸이 불편한 환자라고 생각한다”면서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인데 한센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상을 받는 것 같다. 편견을 버려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알려졌지만 1941년 특효약 DDS가 발명되면서 조기 완치가 가능한 병이 됐다. 한국에는 한센병을 앓는 환자는 이제 없다. 하지만 오 부장이 처음 소록도를 찾았을 때만 해도 한센인들에 대한 치료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불편한 손(손가락이 없는 손) 때문에 양치가 어려워 입속에 고름이 생기고 심각한 치주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아랫입술이 처져 침이 흘러내리고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환자도 있었다. 연구 끝에 그는 ‘아랫입술 재건 수술법’을 최초로 개발했다. 그동안 400여명의 환자들이 이 수술을 받았다. 26살에 소록도에 들어온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그는 1년만 채우면 언제든 소록도를 떠나도 됐지만 “한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노는 게 재미있어” 아예 정규직 의사로 병원에 취직했다. 가정도 아예 소록도 안에 꾸렸다. 이제 그의 목표는 해외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그는 10년 전부터 1년에 1~2달씩 한센병 환자가 있는 캄보디아, 몽골 등에 의료봉사를 나가고 있다. “손이 없고 발이 불편한 분들이 사지 멀쩡한 저를 위해 기도를 해줍니다. 저는 제가 준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침팬지가 머리 좋고 나쁜 것은 모두 부모 탓”

    “침팬지가 머리 좋고 나쁜 것은 모두 부모 탓”

    적어도 ‘공부’ 못하는 침팬지는 그 이유를 모두 ‘부모 탓’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침팬지에게 있어서는 ‘후천적 환경’이 지능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인간에게 길러져 좋은 교육을 받은 침팬지라도 야생에게 막 길러진 원래 ‘머리좋은’ 침팬지를 못 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미국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 등 공동연구팀은 침팬지의 인지능력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인간의 경우 지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 주어지는 교육과 가정적, 경제적 조건 역시 지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같은 뿌리인 침팬지 역시 인간과 같은 환경에 노출되면 지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이번 연구는 이같은 가설을 뒤집는다. 침팬지의 지능은 태어난 후 교육같은 후천적 요인이 아닌 절대적으로 유전적 요인에 좌우된다는 것. 한마디로 부모로부터 지능이 그대로 대물림 된다는 이야기로 원래 ‘머리 나쁜’ 침팬지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셈이다. 이번 논문을 위해 연구팀은 9~54세의 총 99마리 침팬지를 대상으로 13개의 인지 과제로 다양한 능력을 테스트 했다. 그 결과 야생에서 자랐든 인간에게 자랐든, 수컷이든 암컷이든 비유전적 요인으로는 침팬지 간의 지능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논문의 선임저자 윌리엄 호킨슨 박사는 “침팬지에게 있어서는 유전적 요인이 지능에 거의 절대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면서 “반면 인간은 비유전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아 이를 분석하기가 매우 복잡하다”고 밝혔다. 이어 “침팬지 간의 인지능력 차이를 발생시키는 특정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 면서 “이 유전자가 진화의 능력을 푸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정책제안·봉사 대물림…여성이 행복했던 일주일

    정책제안·봉사 대물림…여성이 행복했던 일주일

    ■성북구 여성주간 정책 제안 행사 성북구가 여성 주간(7월 1~7일)을 맞아 지난 4일 여성 분야 주민참여정책 제안제를 실시했다. 여성 의견을 경청해야 작게는 가정, 크게는 구 전체를 개선할 수 있다는 취지다. 가장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아빠 육아교육 프로그램’이다. 육아에 대해 과거와 달라진 남편의 역할을 배울 기회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구에서 남편들을 위한 육아교육을 해 줄 것을 제안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이 전공을 살려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교육하자는 제언도 있었고 보육시설을 늘려 달라는 부탁도 나왔다. 구는 제안을 추려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구청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성북여성교실과 성북여성회관의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한지공예, 수채화·유화 작품, 꽃꽂이 전시도 있었다.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나 안심지킴이집 등을 홍보하는 아동·여성 폭력 제로 캠페인, 출산 장려 홍보 캠페인, 여성 중 감정노동자의 인권 향상을 위해 소비자의 동참을 요청하는 행사도 곁들여졌다. 김영배 구청장은 “여성 관련 13개 기관이 참여해 올해 19년째 여성주간 행사를 한다”면서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하는 행복한 성북을 실현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용산구 10일 여성문화한마당 “봉사도 자연스레 대물림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박은희(40)씨는 7일 대가족을 꾸리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3대 가정의 며느리이며 용산구 성평등정책위원회 위원이고 명예 감사담당관인 박씨는 오는 10일 용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여성문화한마당’에서 용산구로부터 여성 발전 분야 유공자 표창을 받는다. 각종 구 봉사활동에 참가한 것도 인정됐다. 그는 “아이들도 덩달아 남을 돕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좋은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탤런트 사미자(74)씨는 용산구 성평등정책위원회 위원장, 여성·아동안전홍보대사 등을 지낸 공로로, 이필봉(56)씨는 장수 기원 촬영 등에서 미용 봉사를 한 공로로 유공자에 선정됐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16명이 표창을 받게 된다. 2부 행사에서는 방송인 이상용씨가 ‘인생은 아름다워’란 주제로 인생의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강의한다.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여성들이 행복해야 가정과 나라가 행복해진다”면서 “이번 행사는 여성의 권익을 높이고 여성 친화적인 문화 환경을 가꾸는 디딤돌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독자의 소리]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다/중부경찰서 여성보호계 경장 이화영

    백지장 같은 도화지 위에 가족이 첫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신뢰, 관계에 대한 경험, 인생에 있어 살아남기 위한 전략들이 세워진다. 그렇기에 가족이 그리는 첫 그림이 잘못 그려질 경우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가정폭력과 관련된 뉴스나 기사를 접할 때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똥파리.’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 안에서 자란 주인공은 자신의 폭력적 성격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폭행을 행사하다 결국에는 아버지까지 폭행하는 패륜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둡고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고 ‘폭력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 한 가지 우연한 기회에 ‘보보인형실험’ 영상을 접했다. 4세가량의 어린아이들에게 인형을 공격하는 장면과 인형과 즐겁게 노는 영상을 보여준 뒤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실험하는 영상이었다. 인형을 소중히 다루며 즐겁게 노는 영상을 본 아이들은 똑같이 인형을 사랑해주고 인형에게 욕을 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영상을 본 아이들은 어른이 했던 행위보다 더 심하게 인형을 때리고 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부모의 부주의한 언행과 공격적 행동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정폭력을 ‘집안문제’라고 여겨 신고하기를 꺼려 하고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문제가 아닌 명백한 범죄행위다. 따라서 가정폭력 피해가 발생하면 관련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상담, 치료, 지원 등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중부경찰서 여성보호계 경장 이화영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인도 하층민 테주, 화가가 되기까지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인도 하층민 테주, 화가가 되기까지

    꿈꾸는 소녀 테주/테주 베한 지금·그림/이상희 옮김/비룡소 펴냄/28쪽/3만원 책장을 펼치자마자 진한 잉크 냄새가 훅 끼쳐온다. 점과 선으로 이뤄진 이국적인 문양의 먹색 그림을 손끝으로 더듬으면 오톨도톨한 촉감이 기분 좋게 간지럽다. 인도 현지에서 실크스크린(공판화) 기법으로 찍어낸 뒤 손으로 제본해 책마다 고유번호를 붙인 그림책, ‘꿈꾸는 소녀 테주’는 이렇게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촉감으로 독자를 먼저 홀리는 마법을 부린다. 이색적인 감각의 파동이 지나가고 나면, 작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연상되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감싼다. 테주의 가난은 대물림된 것이다. 배를 곯지 않으려 아빠는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돈이나 곡식을 얻고 엄마는 숲 속에서 씨앗이며 열매를 주워 모은다. 꿈꾸는 도시로 나섰지만 테주 가족이 찾을 수 있는 보금자리는 도심에서 밀려난 변두리의 누더기 천막 마을뿐이다. 테주가 결혼한 가네쉬바이 역시 아빠처럼 노래를 불러 벌이를 하는 남자. 순정한 눈빛을 지닌 남편은 테주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다른 사람 앞에선 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던 테주에게 노래를 불러보라, 그림도 그려보라 등을 떠민다. 인도 하층민이었던 테주가 화가가 될 수 있었던 사연이다. 테주가 그리는 자동차엔 늘 두 여인이 있다. 한 여인은 운전을 하고 다른 여인은 창밖을 본다. “두 여인이 다 되고 싶다”는 테주의 말 속엔 질곡 같은 사회적 관습과 제도를 딛고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기쁨과 자유를 맛본 강인한 여성이 움트고 있다. 작가는 집, 마을에 갇혀 있던 여성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 강철새(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는 그림으로 이런 메시지를 대신한다. 책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여성들의 권익 향상에 기여한 책에 주는 브린다시에르상을 수상했다. 5세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한산모시 짜기’ 장인을 만나다

    [이종원 선임기자의 카메라 산책]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한산모시 짜기’ 장인을 만나다

    장마를 앞두고 초여름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옛 어른들은 한여름에 무슨 옷을 지어 입고 어떻게 더위를 견뎠을까. ‘입고 있어야 오히려 시원하다’는 전통 옷감이 있었으니 ‘한산모시’가 바로 그것이다. 가볍고 우아하면서도 천의 짜임이 마치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하기가 으뜸이라 모시의 대명사로 불린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바람을 잠재우고 있던 지난 14일. 모시의 고장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곳곳이 모시밭이었다. 1m 이상 기다랗게 웃자란 모시가 바람에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한산면 지현리 한산모시관에서는 방연옥(69·중요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 짜기 보유자)씨의 모시 길쌈이 한창이다. 갓 수확해 온 모시풀에서 뽑아 낸 굵은 실을 방씨는 일일이 입으로 쪼개 가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입안이 헐고 입술이 찢어지는 일도 다반사”라며 침을 바른 뒤 무릎에 문질러 길게 잇고 손짐작으로 21.6m의 길이로 실타래에 감았다. “쩔거덕 쩔거덕.” 수백 개 날줄 사이를 씨줄을 얹은 북이 바쁘게 움직인다. 참빗처럼 촘촘한 ‘바디’(베틀의 일부)에 모시실을 끼워 가며 같은 동작을 셀 수 없이 반복하는 방씨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가느다란 모시실이 나무 베틀 위에서 고운 옷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모시 고장에서 태어나 60여년 동안 모시를 삼아 온 방씨는 “모시는 품질과 들인 공력으로 볼 때 서양에서 들어온 천과는 비교가 안 된다”며 “모시가 비싼 듯해도 대물림하며 입는 명품”이라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한산모시 짜기’는 한산면 일대에서 1500여년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모시 짜는 장인 기술을 말한다. 오늘날에도 모시를 째고 삼고 짜는 모든 직조 과정은 옛날 그대로다. 2011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등재된 이유다. 한산모시 짜기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100여명의 아낙들이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한 모시를 알음알음으로 판매하거나 한산모시 장에 내다 팔며 모시 고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모시는 섬세한 특성 때문에 모시 베틀도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온 모시 베틀 장인 윤주열씨는 “나무가 뒤틀어지거나 한 치의 틈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천군에서는 윤씨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토록 준비 중이다. 서천군은 해마다 한산모시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리며 진가를 체험할 수 있는 ‘한산모시제’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한산모시관 일원에서 진행한다. 역사적으로 한산모시는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 옷감으로 가치가 높다. 일찍이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산모시는 신라시대에 모시를 짜는 관청을 따로 두고 당나라에 공물로 보낼 정도로 중요한 직물이었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는 주발 하나에 한 필이 들어갈 만큼 섬세한 옷감인 ‘발내포’(鉢內布)라 하여 가벼운 질감을 예찬했다. 오늘날까지 모시는 소재로도, 제작 방식으로도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더위를 이기기 위해 자연 속에서 터득한 지혜를 실천했다. 천연섬유인 모시로 여름옷을 직접 지어 입으며 자연의 순리를 함께하는 길을 걸었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댕기가”라고 하는 가곡 ‘그네’의 가사처럼 한 폭의 풍속도를 그려 내던 이 땅의 여름은 모시옷과 더불어 왔다. 정갈하게 풀을 먹인 모시 적삼과 함께 더위를 이겨 내며 품위와 멋을 지녔던 것이다. 아른아른 속살을 비쳐 내며 와삭와삭 풀 바람을 일으키는 그 싱그러운 청량감이 삼복염천(三伏炎天)에서도 땀을 씻을 만큼 시원하다. ‘한산모시 짜기’는 우리 민족 의류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다. 이 여름에 편리함과 속도를 좇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 글·사진 서천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영화 多樂房] ‘퍼지’

    [영화 多樂房] ‘퍼지’

    에스토니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수십년째 혼자 살고 있는 알리데(라우라 비른)는 한밤중에 인신매매범으로부터 도망친 소녀 자라(아만다 필케)를 발견하고 숨겨준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알리데는 곧 자라가 오래전에 추방된 친언니의 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자 그녀에게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알리데의 지난한 과거는 남자들에게 능욕당하던 자라의 모습과 교차되며 세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알리데에게는, 아니 에스토니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퍼지’는 구 소련이 탄압하던 에스토니아의 끔찍한 풍경을 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형부 한스(피터 프란젠)를 사랑하는 알리데는 독립군인 그를 러시아 공산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견뎌낸다. 갖은 협박과 성폭행 등으로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만신창이가 된 그녀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당 간부와 결혼하고, 마침내 언니와 조카를 추방시킨 후 집안 은신처에 숨어 있는 한스를 혼자 돌보게 된다. 공산당과 독립군, 그리고 독립군을 돕는 공산당의 아내가 한집에 공존하는 위태한 상황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에스토니아에 대한 대유이다. 또한 알리데의 지극정성에도 한결같이 자신의 가족들만 생각하는 한스는 끝까지 조국을 지키고자 했던 독립군들의 애국심을 대변한다. 그것은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변절을 택한 알리데가 결코 범할 수 없었던 무엇이다. 감각적인 영상과 서정적인 음악이 참혹한 역사 속에 어긋난 한 여인의 순정에 애처로움을 더한다. 알리데는 아물지 않은 상처와 죄책감을 간직한 채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후에도 그 집을 지킨다. 오래전 언니의 가족들이 사라진 이곳에 다시 나타난 조카 손녀의 존재는 현대에도 남아 있는 역사의 어둡고 슬픈 그림자이다. 이제 공산당 대신 인신매매범들이 순수한 영혼을 유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라의 등장은 알리데가 과거의 상흔을 시간 속으로 침잠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구세대는 마침내 고통스러웠던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다음 세대에게 미명의 빛처럼 새로운 미래를 열어준다. 길었던 밤을 뒤로하고 떠나는 자라의 벅찬 미소와 알리데의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구슬프고 아리면서도 은근히 평온하다. 알리데에게도, 자라에게도 더 이상 아픔은 없으리라는 안도감이 진하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유사한 상처를 공유한 두 여자의 만남과 이별은 흥미롭게도 한국 멜로드라마들이 기반하고 있는 한(恨)의 정서와 상통하는 데가 있다.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경험했던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대물림되는 역사, 그리고 근현대사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민족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퍼지’의 결말처럼,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까? 우울한 시절에 떨어뜨린, 일말의 희망이 고마운 영화다.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후보자 인터뷰] 김승수 전주시장 후보

    [후보자 인터뷰] 김승수 전주시장 후보

    “가장 한국적인 세계 도시! 미래 비전으로 두근거리는 전주를 만들겠습니다.” 김승수(45) 새정치민주연합 전주시장 후보는 “따뜻한 선거, 소통이 있는 공감의 선거, 시민의 일상이 있는 현장 선거, 정책이 있는 알찬 선거를 하겠다”고 말했다. “타 후보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선거를 지양하고 전주 발전을 위한 정책 대결을 통해 시민의 검증을 받겠습니다.” 김 후보는 “그동안 시민과의 만남을 통해 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시장은 시민의 아픔을 함께하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따뜻한 정치인이란 것을 알게 됐다”며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리더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연소 전북도 정무부지사 출신이란 타이틀을 내세웠다. 청렴한 이미지에 강력한 추진력을 무기로 표밭을 누빈다. 새정치연합의 탄탄한 조직을 바탕으로 지지세를 확장하고 있다. 전북도와 전주시 근무 때 약자의 편에서 소통 능력을 발휘해 ‘조용한 승부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따뜻한 품성과 특유의 친화력이 강점이다. 그러나 김완주 지사 밑에서 성장해 전주시장 후보 반열에 올라 ‘대물림 정치’라는 지적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김 후보는 시민과 동고동락하는 현장 중심, 시민 중심의 전주시정을 실현하겠다며 다양한 공약을 제시했다. 주요 공약은 지역 상권 활성화 센터 신설, 전주시민 복지 기준선 제정, 아동 친화 도시, 노인 복지 1등 도시 등이다. 전주형 공동체 사업을 통한 사회적 경제 1번지 조성, 공공기관 인재 채용 시 지역 청년 최대 50% 할당제 도입, 전주동물원을 생태동물원으로 조성하는 것 등도 약속했다. 낙후된 구도심에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컬처밸리 조성, 조선 왕릉길 조성 등도 주요 정책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응급처치 이렇게] 벌 쏘이면 침 제거… 비누로 씻고 얼음 찜질을

    [응급처치 이렇게] 벌 쏘이면 침 제거… 비누로 씻고 얼음 찜질을

    나들이가 많은 봄이 되면 벌에 쏘여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난다. 지난해 5월 곤충에 물려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는 161명으로 전체 곤충물림 환자(2066명)의 7.8%를 차지했다. 보통 5월부터 늘기 시작해 10월까지 환자들이 많다. 벌에 쏘이게 되면 가장 먼저 벌침을 제거해야 한다. 벌침에 달려있는 독주머니를 건드리면 독이 더 나오기 때문에 카드 등으로 긁어내듯이 제거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 번 물리면 독주머니의 근육이 주머니를 수축시켜 어차피 독이 퍼지기 때문에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빨리 제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벌침을 제거한 뒤에는 쏘인 부위를 비누와 물로 깨끗이 씻어 준다. 얼음찜질을 해주면 부기도 제거되고 흡수되는 벌독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벌에 쏘인 부위는 별다른 치료 없이도 가라앉지만 눈이나 입안, 목구멍을 쏘였다면 안구파열, 농양 또는 기도폐쇄 등의 심각한 합병증이 올 수 있다. 벌 알레르기가 있거나 전신에 과민반응이 나타난다면 신속하게 병원으로 가야 한다. 전신 반응은 쏘인 이후 15분 이내에 나타나고 대개 6시간 이내에 증상이 발생한다. 초기에는 눈이 가렵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전신에 두드러기 발진이 나타나고 마른기침이 난다. 증상이 심해지면 호흡곤란, 복통, 설사, 오심, 구토, 어지럼증, 오한과 발열, 쇼크가 오고 피와 거품이 섞인 가래가 나올 수 있다. 기도폐쇄나 쇼크 등으로 수분 내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심한 전신반응을 보이는 환자는 빨리 119에 신고하고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벌떼에게 한꺼번에 많이 쏘였다면 벌 독에 의한 독성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전신 과민반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서 심한 오심, 구토, 설사를 하게 된다. 대개 48시간 이내에 호전되지만 더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그래서 벌침에 한 번에 100회 이상 쏘인 경우 증상 관찰을 위해 입원을 권한다. 만성질환이 있고 고령인 환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정시영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평가팀장
  • 혼자 아이 키우는 청소년 70% 학업 중단

    자녀를 둔 청소년 한부모(24세 이하) 10명 중 7명이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명 중 1명은 월평균 총수입이 50만원 미만으로 빈곤했고 10명 중 6명은 정부지원금에 의존해 생활했다. 또 10명 중 3명은 한부모가정 출신으로 빈곤뿐 아니라 가구 유형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엿보였다.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데이터를 재가공해 분석한 ‘청소년 한부모의 생활실태 및 자립지원 방안’ 보고서에서 18일 이같이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24세 이하 청소년의 분만 건수는 매년 2만건을 넘고 있다”면서 “최근 10년 동안 청소년이 낳은 출생아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년 한부모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정부 통계는 없지만,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1만 5000여 가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한부모 대상 정부 정책으로는 여성가족부의 자립지원사업이 있는데, 2010년 1222가구에서 2011년 1620가구, 2012년 1831가구로 늘고 있다. 청소년 한부모들은 정규 학교 외에 진로직업교육과 훈련에서도 배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직업교육을 받은 비율은 28.6%였다”면서 “나이가 어릴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영유아기 자녀가 있을수록 청소년 한부모의 직업훈련 경험이 낮았다”고 평가했다. 또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청소년 10명 중 2명만 퇴소한 뒤 원래 가정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답해 시설에서 나간 뒤 주거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결국 청소년 한부모의 자립을 위해서는 포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김 연구위원은 결론 내렸다. 임신, 출산, 양육의 생활주기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고 아이를 입양시키는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권 보장과 취업과 연결되는 직업교육 체계도 자립에 중요하다고 한다. 또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자립지원 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제안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혼자 아이 키우는 청소년 70% 학업 중단

    자녀를 둔 청소년 한부모(24세 이하) 10명 중 7명이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명 중 1명은 월평균 총수입이 50만원 미만으로 빈곤했고 10명 중 6명은 정부지원금에 의존해 생활했다. 또 10명 중 3명은 한부모가정 출신으로 빈곤뿐 아니라 가구 유형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엿보였다.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데이터를 재가공해 분석한 ‘청소년 한부모의 생활실태 및 자립지원 방안’ 보고서에서 18일 이같이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24세 이하 청소년의 분만 건수는 매년 2만건을 넘고 있다”면서 “최근 10년 동안 청소년이 낳은 출생아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년 한부모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정부 통계는 없지만,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1만 5000여 가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한부모 대상 정부 정책으로는 여성가족부의 자립지원사업이 있는데, 2010년 1222가구에서 2011년 1620가구, 2012년 1831가구로 늘고 있다. 청소년 한부모들은 정규 학교 외에 진로직업교육과 훈련에서도 배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은 “직업교육을 받은 비율은 28.6%였다”면서 “나이가 어릴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영유아기 자녀가 있을수록 청소년 한부모의 직업훈련 경험이 낮았다”고 평가했다. 또 한부모가족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청소년 10명 중 2명만 퇴소한 뒤 원래 가정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답해 시설에서 나간 뒤 주거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결국 청소년 한부모의 자립을 위해서는 포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김 연구위원은 결론 내렸다. 임신, 출산, 양육의 생활주기별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고 아이를 입양시키는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권 보장과 취업과 연결되는 직업교육 체계도 자립에 중요하다고 한다. 또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자립지원 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제안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지하경제 양성화, 역외탈세에 승부 걸라

    정상적인 송금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외로 몰래 빠져나간 자금이 한 해에 최대 24조원에 이른다는 국책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조세회피처로의 불법 자본유출 실태 보고서를 보면 2012년 우리나라의 불법 자본유출 규모는 최소 6조원에서 최대 24조 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불법 자본유출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하고 있다. 역외탈세를 줄이기 위한 강도 높은 대응책이 요구된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1970~2012년 상반기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한국의 자산누적 금액은 7790억 달러로 세계 3위라고 한다. 지난해 5월에는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재벌 총수 등 한국인 245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했다고 밝히면서 국세청의 역외탈세 조사가 탄력을 받기도 했다. 역외탈세만 뿌리 뽑아도 지하경제 양성화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불법자금의 해외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부는 5년간(2013~2017) 필요한 134조 8000억원의 복지재원을 세출절감(84조 1000억원), 지하경제 양성화(27조 2000억원), 비과세·감면 정비(18조원)로 조달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복지재원 조달을 위한 무리한 세무조사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으로 인해 세수 증대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국세청이 최근 기업조사를 축소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세무조사는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조세 부담을 크게 할 가능성도 있다. 까닭에 지하경제 양성화는 중범죄라 할 수 있는 해외 재산 빼돌리기를 뿌리 뽑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탈세 조사를 통해 1조 789억원을 추징했다. 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동안 역외탈세 추적은 대재산가의 편법 대물림이나 해운, 선박, 무역업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류붐을 타고 해외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업종을 대상으로 비자금 조성 등의 역외탈세 여부에 대한 감시망을 확대하기 바란다. 역외탈세는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갈수록 수법이 지능적이고 치밀해지고 있다. 조세피난처와의 조세협정을 늘리는 등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야당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역외탈세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안도 낮잠을 자게 해서는 안 된다. 일정 금액이 넘는 부동산이나 선박, 항공기, 보석류 등의 국외 재산을 신고 대상에 포함해 현행 10억원 이상 해외금융계좌신고제의 취약점을 보완하자는 취지다. 가령 미국처럼 과거 미신고분을 자진 신고할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등 특별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 “한국 노동시장 너무 불평등… 복지국가 아니다”

    “한국 노동시장 너무 불평등… 복지국가 아니다”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가 아니다. 노동시장이 너무 불평등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미래가 보장된다. 그렇지 못한 계층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 특히 부모가 교육비를 내지 못하면 가난이 대물림된다. 이것에 대한 개선이 굉장히 느리다.” 저서 ‘세상을 바꾸는 착한 돈’(문학세계사)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한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70) 파리정치학교 교수가 2일 서울 중구 봉래동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의 복지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서유럽식 보편적 복지국가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장 위급한 보건, 실업문제 등 각종 위험요소에 대비할 기본적인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런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미래 경제 번영의 기본이 돼야 하지만 한국은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복지에 대해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사회적 압력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다”면서 “아주 강한 사회적 압력이 있어야 복지국가로 발전하고 노동시장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의 기부문화를 소개하고 분석한 새 책을 언급하면서 “국가나 기업이 담당할 수 없는 부분에서 박애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간 기부는 혁신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모든 이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 국가의 몫이다. 하지만 마약 퇴치나 중독자 지원 프로그램 등은 국가가 운영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을 민간에 넘겨 더 경쟁적인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그는 기부문화 발전을 위해 비정부기구(NGO)의 기부금 관리·배분을 관리할 독립기구를 설치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띤 NGO 활동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사설] 각박해진 우리 공동체 주변을 돌아봐야

    우리네 세상살이가 메마르고 힘겨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계형 범죄는 갈수록 늘고 있고 기부 참여율은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각박하고 팍팍한 게 최근 서민의 일상이지만, 고위공직자의 절반 이상은 오히려 재산을 불렸다고 한다. 이래 가지고서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공동체의 결속이 온전히 이뤄질지 우려가 앞선다.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2013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2012년 범죄 발생 건수가 전년보다 2.2% 늘었다.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는 줄었지만 생계형 범죄인 절도는 4.1% 증가했다. 또 최근 1년간 현금을 기부해 본 사람의 비율은 전년보다 2.3% 포인트 줄어든 32.5%로 나타났다. 통계만 놓고 보면 양극화의 벼랑에서 막다른 선택을 하는 서민이 많아지는 가운데 공동체 내부의 나눔 문화는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으로 어제 공개된 관보에 따르면 국회의원, 법관, 고위공무원, 중앙선관위원 등 고위공직자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지난해 저성장 기조에서도 재산을 늘렸다고 하니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열패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상습적인 범죄 행위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지만 생계형 범죄의 증가는 우리의 허술하고 열악한 사회안전망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시장에서 낙오되고 도태된 이웃이 패자부활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도 공동체와 사회 시스템이 이들을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공동체의 유대감이 허물어지고 있는 징조는 기부참여율의 하락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 모금액을 나타내는 사랑의 온도탑이 어느 때보다 높은 수은주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전반에는 나보다 남을, 개인보다 공동체를 배려하는 기부 문화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공동체가 성숙한 연대 의식을 갖지 못하면 경제 성장과 번영은 이룰 수도 없고, 설령 이룬다 한들 지속되기 힘들다. 공동체의 결속은 양극화의 대물림을 극복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의 보장, 그리고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주말 하이라이트]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MBC 토요일 오전 8시 45분) 방송인 김나영은 2003년 리포터로 방송에 데뷔한 이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선배 양희은은 ‘굉장히 머리가 좋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며 실제 김나영의 모습을 밝혔다. 항상 밝게 웃는 김나영의 모습 뒤에는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재혼 등으로 아픔을 겪었던 그가 가슴 깊이 간직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또한 예능인과 패셔니스타 이미지 사이에서 빚어진 말 못할 고민 등 그동안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 데뷔 10년 만에 예능이 아닌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는 이야기도 담겼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가족 단위 실험을 통해 독성 물질들이 어떤 경로로 몸속에 들어왔는지 역추적한다. 대물림된 독성 화학 물질이 인체에 주는 영향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와 독성 화학 물질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소개한다. 우리 몸이 해독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는 방법, 현미 채식을 통한 3주간의 기적도 공개한다. ■만나고 싶습니다(EBS 일요일 오전 9시 40분) 산악인 엄홍길은 언제나 리더의 모습으로만 익숙해져 있다. 그런 그에게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 1996년 그의 마나슬루 등정 모습을 촬영했던 방송사 촬영 감독 이거종씨다. 그가 힘들고 좌절할 때마다 묵묵히 옆을 지켜준 이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 [손성진 칼럼] 희망이 보이는 사회로

    [손성진 칼럼] 희망이 보이는 사회로

    한 끼 밥, 인간의 기본 욕구마저 채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가난했기에 가난한 줄도 모르고 살았을까. 험난한 세월을 용케도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 가난의 고통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 같은 21세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 4000달러 시대, 주체할 수 없는 풍요의 뒤편에서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한 절대 빈곤이 공존하는 현실은 비극이다. 세상은 풍족해졌는데 주린 배를 잡은 이웃들은 줄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몇 명 이상의 극빈층이 자살이라는 우울한 선택을 한다. 서울 송파 세 모녀의 자살이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새삼스럽지도 않다. 비극은 계속되고 있었고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사실 무관심하다. 자살을 죄악시하기만 했지 애틋한 이면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담한 결과만으로 따져 볼 때 한국의 위정자들은 복지에 관한 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가난한 백성을 진휼(賑恤)하는 일은 수령의 중요한 업무였다. 진휼을 게을리하다간 목이 달아났다. 왕도 변복(變服)을 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살폈다. 이 시각에도 무관심 속에 많은 이들이 죽음의 낭떠러지 위에 선다. 사업에 실패하고 직장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웃들은 수없이 많다. 송파 사건 이후 지자체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전수조사한다며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런 호들갑도 결국 호들갑으로 끝나버릴 것이라는 게 서글프고도 비관적인 현실이다. 한 번이라도 거리의 구석을 유심히 살핀다면 위태하게 생명을 부지하는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낄 터이다. 종이 줍기로 하루 몇 천원 벌이를 하는 노인들, 오래도록 일거리가 없어 술에 의존해 사는 노동자들…, 우리는 얼마나 관심 있게 바라다보았는가. 지방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정치꾼들은 “서민을 위해서!”라며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기력도 없는 이들의 표를 노리고 입바른 말을 해댈 것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외면당한다. 반짝 관심에 그치는 한 죽음으로의 행진은 또 이어지고 말리라. 자살이 죄악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다. 죽은 자의 고통은 끝나겠지만 남은 자에게는 몇 배의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배곯음의 설움, 극한의 고통을 아는 부모 세대들이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남은 가족들에 대한 배려심 덕이었다. 손등이 쩍쩍 갈라지도록 악착같이 일하면서 견뎌 왔다. 모진 삶을 견뎌 냈던 또 하나의 동력은 희망이었다. 언젠가 잘살게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기대였다. 힘든 세월을 보상받을 만큼 희망은 실현됐다. 지금 우리에겐 가난을 버티게 해 줄 희망이 있는가. 계층 간의 간격은 너무 벌어져 있고 장벽은 높다. 부는 대물림되고 고착화됐다. 부를 바탕으로 한 교육의 질도 양극화됐다. 낮은 교육의 질로는 높은 스펙을 갖추기 어려우며 이는 질 낮은 일자리로 이어진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재화들이 점점 더 줄어든다. 기회 균등한 국가고시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제도의 변화는 ‘개천에서 용 나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적은 봉급으로는 수십 년치를 모아도 집을 장만하기 어렵다. 젊은 시절의 열등한 사회생활보다 그에 이어진 노년기의 삶은 더욱 피폐하다. 더 큰 문제다. 이는 결국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번 경쟁에서 밀려나면 재진입이 어렵고 자신감은 상실된다. 희망이 없는 사회구조가 지속하는 한 자살은 줄지 않는다. 우리나라 빈곤인구는 800만명이나 된다. 전 국민의 16%다. 최저생계비의 120%만으로 사는 이들이 410만명에 육박한다. 상당수는 잠재적 자살위험군이다. 소외 계층에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의 증액이 우선이다. 신분 상승의 기회도 만들어 줘야 한다. 절망스러운 광경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수석논설위원
  • “삼국지 인물들 우상파괴” 파격 평설집 펴낸 마포부구청장

    “삼국지 인물들 우상파괴” 파격 평설집 펴낸 마포부구청장

    “세상에 삼국지는 ‘나관중 삼국지’와 ‘김경한 삼국지’ 딱 두 권”이라며 12권짜리 삼국지를 펴냈던 김경한 마포구 부구청장이 다시 ‘평설 인물 삼국지’를 내놨다. 제목처럼 인물별 캐릭터 얘기다. 널리 알려졌듯 촉한 정통론인 나관중 삼국지는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을 최고 존엄으로 부각시켰다. 삼국지 마니아인 김 부구청장은 정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면서 우상 파괴에 나섰다. 이번 평설은 그래서 파격적이다. 11일 김 부구청장은 “스스로 무능함을 드러내면서 망한 왕조와 먼 친척뻘이란 이유로 유비의 촉한이 정통성을 갖췄다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 중 난센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학에서 어떤 국가가 정통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국가의 존립 근거를 합리화할 ‘정당성’이 있고, 국가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 안녕을 확보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유비의 촉한이 조조의 위나라나 손권의 오나라보다 조금도 우위에 있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위나라가 정통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이런 입장이라 인물평은 더 파격적이다. 그는 유비를 어릴 적부터 황제를 꿈꾸던 ‘조폭 출신 야심가’라고 부른다. 관우는 ‘살인범에서 신이 된 사나이’, 제갈량은 ‘탁상물림 선비’다. 반면 조조야말로 ‘한나라 중흥 충신’이다.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기 위한,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고 위험한 책이 삼국지예요. 그럼에도 필독서처럼 통용되고 있으니 ‘이왕이면 정확하게 보라’ 그 말을 해 주고 싶은 겁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정부, 가파른 소득불균형 속도 원인 직시해야

    우리나라의 소득불균형 악화 속도가 최근 20년간 가파르게 진행돼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1990~2010년 지니계수 측정이 가능한 아시아권 28개국을 분석한 결과, 중국은 연평균 1.6%씩 상승해 소득불균형 악화 속도가 가장 빨랐고 한국(0.9%)은 인도네시아와 라오스, 스리랑카에 이어 다섯 번째로 최상위 수준을 보였다. 지니계수란 한 국가의 소득이 균등하게 분배되는지를 보여주는 지수다. 이 자료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중국은 우리가 겪은 것처럼 고성장에 따른 결과이며, 나머지 국가는 경제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우리와 비교하기가 어려운 빈국이란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살고 못사는 계층은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 꾸준히 높아졌는 데도 소득격차가 줄지 않고 더 커졌다는 점은 곰곰이 되짚어 볼 문제다. 이는 부유층과 빈곤층 간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이를 상쇄할 중산층이 엷다는 뜻이다. 최근 생활고로 인한 서울의 세 모녀 자살 등 잇따른 가족 자살은 이번 지니계수 조사 결과와 연관성이 있음을 여실히 확인시켰다. 우리 주위에는 지금도 최저생계비를 지원받는 절대 빈곤층이 부지기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1위란 점도 이 같은 여건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부국으로 성장했지만 ‘부의 쏠림’을 해결하지 못해 지금도 사회문제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 ADB 자료에서도 지적됐듯이 1970~1980년대 쉼없는 고성장을 일궜지만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성장의 그림자다. 특히 1997년에 겪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빈부의 격차를 벌려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도 심화시켰다. 최근의 저성장 국면에서는 일자리 부족 등으로 인해 노동소득 비중도 낮아져 계층 간 분배 구조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가 부유층과 빈민층으로 극단적으로 갈라설 땐 어떤 명약으로도 치유하기는 힘들다. 정부는 ‘100세 시대’에 대비한 복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복지예산도 100조원을 넘기고 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사회복지비는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정부는 경기를 진작시키는 재정수단을 강구하고 기업은 일자리 확충과 생산성 향상에 힘써야 한다. 부와 가난이 대물림하는 경제사회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우리의 소득불균형 악화 속도가 매우 가파른 원인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이다.
  • [복지사각 안놓친다] 강남구 민·관 협력체계 구축…복지재단 5월 출범

    강남구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기부문화 조성과 ‘강남 더하기 행복지원단’ 운영에 나선다고 5일 밝혔다. 화려한 도시 풍경 속에서도 서울 25개 자치구 중 여덟 번째로 많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는 등 매년 복지 수요가 늘어나는 그늘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운영하는 ‘강남 더하기 행복지원단’은 우리 이웃을 우리 동네에서 돕는다는 목표 아래 법적 복지 급여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위기가정을 발굴해 복지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민·관 협력체계다. 복지담당 직원과 지원단 민간위원들이 여러 사정으로 동 주민센터를 방문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찾아가 각종 문제 해결과 다각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는 5월 비영리 법인인 ‘강남복지재단’도 만든다. 공공복지에서 드러난 재원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기업체 등 지역사회 구성원이 복지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할 강남복지재단은 ▲저소득 위기가정의 자활능력향상 사업 ▲중증질환가구의 의료·주거·생계비 지원사업 ▲빈곤 대물림 차단을 위한 장학사업 등 지역사회 안전망을 빈틈 없이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는 ‘1인 1기부계좌 갖기 운동’과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G+스타존’을 활용한 상시 기부사업 추진, 구 직원들의 매월 ‘자투리 봉급 기부’ 등 모금활동을 연중 펼치고 있다. 지난해 41억 2000여만원을 모아 주민들에게 지원했다. 신연희 구청장은 “이젠 주민 모두가 나서서 이웃을 돌봐야 한다”며 “건강한 지역 공동체 형성을 통한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씨줄날줄] ‘스위스 모델’/박찬구 논설위원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개인주의에 바탕한 아메리칸 드림이 쇠락하고 대신 공동체 문화를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갈파한다. 미국 조상이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과 가족의 이동성과 안전성을 추구한 흔적이 현재의 휴대전화 발달과 총기 소유에서 드러난다면, 성(城)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영위하던 유럽인의 전통은 복지와 공존이라는 가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리프킨의 주장은 양극화와 공동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면 개인이 국가라는 공동체로부터 선의의 베풂과 보호를 받은 적이 드물었다. 왕정의 무능으로 제국주의 일본의 착취를 가장 뼈저리게 당한 것은 힘없는 백성이었고, 지배층이 저지른 분단과 전쟁의 고통도 오롯이 갑남을녀의 몫으로 돌아왔다. 압축성장기에는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국가가 제시한 목표를 믿고 앞으로만 내달렸다. 그 결과는 대책 없이 노년을 맞게 된 베이비부머 세대의 처지에서 드러난다. 전쟁의 폐허에서 ‘자식에게 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은 교육 열풍을 불렀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의 부재 속에 고학력과 좋은 일자리, 고소득이 대물림되는 양극화의 악순환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난은 제 탓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낯을 살펴보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의 근저에는 국가의 정책적 무능함과 미흡한 복지망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배부른 복지를 비난하기보다 유럽이 견지하고 있는 복지의 가치와 공존의 시스템에서 우리의 살길을 모색하는 게 더 타당해 보이는 이유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복지’(위기의 노동, 2005)라는 글에서 “복지국가의 위기론이 맹위를 떨칠지라도 도리 없는 사회·경제적 약자들과 불가피한 시장 탈락자들에게 최소한의 물적 생계수단을 보장한다는 사상이야말로 문명을 야만과 구별하는 마지노선”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스위스 국빈 방문을 계기로 ‘스위스 모델’이 회자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1위인 스위스에서 개방과 실용을 배워야 한다는 요지다. 대표적인 벤치마킹 사례로 기술 장인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스위스식 교육이 거론된다. 솔깃한 얘기다. 하지만 척박하고 빈곤한 사회적 시스템을 방치한 채 또 하나의 과열과 거품에 그치지 않을지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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