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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全大 이끄는 5大 파워엘리트(지방정부 싱크탱크:14)

    ◎고시파·비고시파·육사파·해외파·영입파/특정학맥·출신지 우대 배제… 능력이 최우선/조직개편 등 아이디어 짜기 골몰/외국투자·기업 유치에 전력 투구 전북 도정을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 군(群)을 단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특정 학맥이나 출신지 등 어느 한 곳으로 무게중심이 쏠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柳鍾根 지사를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는 엘리트 관료들을 들여다 보면 ‘고시파’와 ‘비고시파’,군(軍)에서 넘어온 ‘육사파’가 고루 섞여 있다. 여기에 외국에서 공부한 ‘해외유학파’와 선거를 계기로 공직에 들어온 ‘영입파’가 적당히 섞여 있는 형국이다. 고시 출신으로는 지방자치 국제화 재단에 파견나갔다가 이달초 복귀한 韓桂洙 기획관리실장(51·17회)이 지사의 핵심 브레인이다. 그는 요즘 퇴출대상으로 떠오른 지방공사 군산의료원 문제의 해법을 찾느라 머리를 짜내고 있다. 여기에 韓실장과 같은 시기에 행자부에서 복귀한 朴聖一 기획관(43·23회)이 좋은 팀워크를 이루고 있다. 또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全熙宰경제통상국장(48·22회)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柳지사의 외국 기업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조직개편 소용돌이 속에서도 최근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이밖에 柳成葉 문화관광국장(38·27회)과 李愚喆 회계과장(44·25회),柳基赫 세정과장(45·27회) 등도 지사로부터 신임이 두텁다. ‘비고시파’ 중에서는 요즘 도의 조직 개편 작업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는 朱尤哲 내무국장(57)이 핵심 참모다. 한동안 한직을 떠돌기도 한 그는 최근 지사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면서 徐亨樂 행정부지사(명퇴신청)의 후임으로 강력히 거론되고 있다. 또 임명직 순창군수·도청 공보관 등을 역임한 姜仁馨 민방위재난관리국장(52)과 조용한 성격에 원만하게 일처리를 하는 李基棟 보건과장(52),최근 승진한 全甲哲 감사실장(57) 등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조직 장악 능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육사파’들도 상당수 지사 주변에 포진해 있다. 이들 가운데 선두 주자는 朴鍾煥 보건환경국장(52·25기). 蔡奎晶 익산부시장(52·부이사관)도 朴국장과 육사 동기다. 柳지사의 남성고 후배이기도 한 蔡부시장은 朱국장과 함께 행정부지사 후보로 꼽힌다.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張秉淳 총무과장(46·31기)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곧잘 내놓는 張宰植 예산담당관(44·33기) 등도 역시 육사 출신이다. 오랜 외국생활을 해온 柳지사가 ‘해외파’에 거는 기대치는 매우 높다. 지난 94년 설립된 국제정책실의 책임자인 鄭會相 실장(47)은 미국 콜롬비아퍼시픽 대학원에서 수학한 재원이다. 또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劉哲洙 과학기술정책위원(43·물리학)과 全平九 국제정책자문위원(43·경제학) 역시 미국에서 오래 공부해 온 학자그룹. 탄탄한 이론에 외국어에 능통한 이들은 도의 최대 현안인 외국자본 유치와 해외통상과 관련된 도정의 자문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선거로 인연을 맺은 뒤 비서로 공직에 들어온 영입파는 대부분 30대의 소장파. 적극적인 성격의 朴榮錫 비서실장(36)은 비서로 들어왔다가 3년여만에 실장으로 발탁됐다. 羅世鍊(36·국제행사지원 2팀장)·廉基錫(37·생활지도계장)·李榮浩씨(37·정책지원팀) 등도 지사의 막중한 신임을 바탕으로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지사에게 조언하는 인물들이다.
  • 흔들리는 대학 사회(任英淑 칼럼)

    어느 대학 학사책임자와 불어불문학과 여교수가 최근 나눈 대화 내용이다. “앞으로 여성학을 강의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왜요” “불문과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여성학은 교양과목으로 개설돼 계속 강의할 수 있을거예요” “하지만,나는 여성학을 전공하지 않았는데요” “책 몇권 읽어보고 어떻게 해보세요. 교수님을 생각해서 특별히 귀띔해 드리는 것입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다. 이 대화내용이 보여주듯 지금 대학사회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거세게 밀어 닥친 것이다. 몇년전 부터 조용히 시작한 이 태풍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 것은 지난달말 서울대 개혁안이 발표되면서 부터다. 학부대학·전문대학원 도입,신입생 무시험 선발등을 내용으로 한 서울대 개혁안이 대학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 것은 기존 학문과 교수의 입지를 근본부터 흔들 위험 때문이다. 즉 졸업후 취직이 잘되는 응용학문에 밀려 수요가 적은 기초학문은 시들고 비인기 학과의 교수는 설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실제로 일부 사립대학들은 의학,공학,약학,법학,경영학,신문방송학 등 응용학문 분야는 살리고 물리학,수학,화학,철학,문학 등 순수학문 분야는 축소하거나 아예 없애고 있다. 지난 96년부터 학생들의 전공선택 기회를 넓히기 위해 실시된 학부제의 결과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99학년도부터 학부제가 전면실시 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학부제 실시를 앞둔 지방대학들은 여름방학중에도 교수회의를 소집해 학생 모집 단위를 어떤 학과끼리 묶을지 고심하고 있다. 각 학과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오는 2003년부터는 대학입시생보다 대학정원이 넘치게 된다. 학생이 없는 대학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최근 강제 폐교 대상이 된 광주예술대와 한려대가 있는 호남지역은 이미 대학 진학을 원하는 고교생보다 대학·전문대 정원이 50%이상 많다. 고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도선매식 입학예약제를 시도할 만큼 대학 입장은 급박해졌다. 뿐만 아니라 공부하지 않는 교수는 더이상 대학에 남아있을 수 없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부교수만 되면 보장되던 정년도 흔들리고 교수 재임용제도 또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나 학생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세분화된 전공의 벽을 허물고 학문의 선진화와 고급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대학 구조조정의 기본틀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듯 싶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연두교서에서 “21세기를 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국가안보 과제는 교육”이라고 역설했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첫째도 교육,둘째도 교육,셋째도 교육”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교육문제를 선거쟁점으로 삼아 지난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독일의 교육과학부는 ‘미래부’로 불리기도 한다. 교육개혁에서 우리는 선진외국보다 한발 늦은 셈이다. 대학구조 조정은 개인적인 이해관계 보다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며 이루어져야 성공할 것이다. 어느 교수,어느 학과가 살아 남느냐 보다는 학문과 대학,나라가 살아 남을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사립대학은 이른바 ‘장사가 되는 학과’중심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국·공립 대학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위한 기초학문 발전의 터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무궁화꽃’ 김진명씨 상대 李輝昭 유가족 손배소 기각

    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李興基 부장판사)는 31일 핵물리학자 고 李輝昭 박사의 중국계 미망인 마리안 심 리 등 유족 3명이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저자 金辰明씨와 ‘핵물리학자 이휘소’의 저자 孔錫夏씨 및 출판사 등을 상대로 낸 1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李박사가 미 정보기관에 의해 살해됐다는 등 일부 내용이 거짓이지만 소설기법상 극적 전개를 위해 필요한 수준”이라며 “오히려 관련 소설들의 출간으로 李박사의 명성이 높아진 만큼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 “기초과학연구비 신청하세요”/학술진흥재단

    ◎10개 분야 397억 지원/새달 24일 까지 연구과제 접수 한국학술진흥재단은 올해 반도체 신소재 기계공학 유전공학 생물화학공학기초의학 해양·수산과학 농학 등 10개 기초과학 분야에 397억원을 지원한다. 대학의 교수·시간강사,학술연구기관·단체의 연구원,박사후 연구원에게신청자격이 주어진다. 신규 공동연구과제의 지원상한액은 5,600만원이다. 오는 25일 공모,다음 달 24일 마감한다.연구기간은 1년이다. 기초과학분야 교수의 연구능력을 높이고 과학기술의 선진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대학부설 기초과학연구소에 모두 152억원을 지원한다.이 가운데 121억원은 교육부가 지정한 36개 연구소에 우선 지원한다.지원분야는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이다. 반도체 분야는 실리콘 소자 및 공정,IC설계·CAD,화합물 반도체 기술,신물질 개발 등에 28억원을 지원한다.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와 함께 사업을 추진한다. 신금속 재료,뉴세라믹 재료,고분자 재료 등 신소재 분야에는 41억원이 투입된다.2000년대 고도 산업사회를 주도할 고급 기술인력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 낙후된 유전공학분야에는 46억원을 지원한다.분자생물학 분자유전학 분자세포생물학 분자면역학 분자암학 분자육종학 식물분자생물학분자체세포유전학 분자발생생물학 바이러스학 등이 지원대상이다. 기초의학 분야에도 41억원을 투입한다.암,질병 역학 및 예방,병원체와 숙주반응,독물 및 약물의 해독,생체내 신호 등을 지원하고 치의학과 한의학도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서로 분야가 다르거나 유사·동일계열에도 지원하는 학제간 연구가 있다.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접목시킨다든지 동일계열의 수학과 물리학을 공동연구할 수 있다.학문적 대형연구를 유도하기 위해 이 사업을 만들었다.문의는 연구지원 3팀 (02)3460­5562∼5.
  • 名唱 成又香(이세기의 인물탐구:172)

    ◎민족의 恨한큼 깊고 아득한 울림/동편제 대표격 김세종제 ‘춘향가’ 명맥이어/굵은 통성 세마치장단 할용 꾸밈없는 득음/우렁차고 한이 여울지는 소리 남창 못잖아/판소리 오미 오롯이… 힘든 가풍계승 정업/시류 영합않고 안숙선 등 13제자 길러내 춘전(春田) 成又香은 김세종제(金世宗制) ‘춘향가’의 명맥을 잇는 이 시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다.송계(松溪) 김세종은 전북 순창출신으로 조선조말의 申在孝문하에서 수학한 동편제소리의 전설적인 인물.장자백 이동백에 이어 강산제 소리의 대가였던 鄭應玟이 김씨 창제를 이어받았고 춘전이 정응민을 잇고 있다.지난 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년’ 기념공연만 봐도 그가 소리에 들인 공력이 얼마만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성소리 뒤늦게 소개 춘전이 걸어온 판소리의 길은 민족정서의 심연만큼이나 멀고 깊고 아득하다.그의 성색은 감기다가도 곧게 뻗고 잠기다가도 치솟으며 서럽고 답답한 삶의 애락이 소리전체에 면면히 깔려있다.넘실대는 가락은 물리학적인 음향이 아닌,민중의 아픔과 슬픔,절망과 신명을 능란하게 엇가른다.어느 때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막을듯이 유장한 진양조 장단을 울리다가도 숨이 넘어갈듯 자지러진 휘몰이며 산천초목이 더덩실 춤추고 일어서는 엇모리 단모리의 멋스러움은 가히 절품의 경지다. 마치 ‘남창을 연상케하는 호방하고 장엄한 소리는 삼각산을 등에 지고 대로를 가듯 시원하게 소리판을 짜나간다’고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은 평한다.보성소리는 다른 소리제에 비해 뒤늦게 서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72·74년에 그가 두번에 걸친 연구발표회를 가졌을 때 각 신문은 ‘춘전 강산제의 특색은 굵은 소리인 통성을 많이 쓰고 진양조보다 빠른 세마치장단을 활용하면서도 꾸미지않은 비범한 득음이 가슴을 울린다’고 특필했다. 오죽하면 국악계에선 그의 통큰 소리를 두고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우렁차고도 한이 여울지는 소리에 연전에 작고한 고수 김명환이 무덤에서벌떡 일어나 장단을 치러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춘전은 전남 화순에서 성영문과 김재녀사이의 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명고수 성차옥이백부이고 명창 주난향과는 고종 사촌간이다.어릴 적 이름은 판례였고 동네의 한학자 한분이 예명과 아호를 내려주었다. 5살이 되자 벌써 백부에게 가곡과 평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화순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화순의 안기순을 독선생으로 모신 것을 비롯 10대에 섭렵한 스승만도 광주의 정광수 남원의 강도근 한애순 강요진 등등이다.그리고 20세가 되던 무렵에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산간벽지로 송계를 찾아들어가 4년간 살이 물러터지도록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사했으며 다시 서울에 올라와 박초월 박녹주의 ‘흥보가’‘수궁가’의 창제와 더늠을 익히는 등 그의 학습은 문자그대로 ‘금성철벽(金城鐵壁)’으로 소문나있다. 춘전이 처음 회천에 갔을 때 스승은 ‘신식소리나 배우라’고 가르치기를 거절했으나 그의 타고난 성음에 가능성을 느끼고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세종제춘향가는 통성으로 우조를 써야한다’고 처음부터 단단히 강조해 마지않았다.스승이 부르는 ‘심청가’의 발림이 너무 애절하여 눈이 퉁퉁 붓도록 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씩 목에서 피를 토하는 가혹한 수업을 받았다. 임종자리에서도 스승은 ‘소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정절을 버리는 것과 같다.절대로 소리를 만들지 말고 옛것을 그대로 하라’고 끝까지 타일렀다.‘판소리는 한바디를 기둥삼아 불러야하며 판소리 한바탕에는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오미(五味)가 골고루 배열되어있으나 여러 바디의 좋은 대목만 따다가 조각보같이 짜맞추면 단맛만 앞서고 오미가 결여되어 판소리의 원리가 깨어진다’고 했다. ○“옛것 그대로” 스승 유언 춘전은 스승의 창법에다 다양한 붙임새를 개발하여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완자걸이 등 기묘한 장단붙임과 통성의 덜미소리를 들고나서면서 좌중을 사로잡는다.더구나 소리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통성이 강한데다 소리맺음을 할 때 짧게 끊거나 힘차게 통성으로 올려끊는 스승의 가법을 가장 잘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그래서 그의 공력은 곧잘 ‘설 벼린 칼은 쉬 부러지지만 수만번 단단히 벼린 칼은 바위를 쳐도 끄떡없다’는 이치에 비유되기도 한다.원로 국악인 성경린씨가 ‘성우향의 명창으로서의 대성은 타고난 성음,음악적 재능과 함께 하나같이 높은 스승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다. 70년대 이후 서울에 올라와 활동하면서 긴 곡절끝에 부군과 이혼 후 바둑교실을 열고있는 아들 진성환과 살면서 며느리인 원미혜가 그의 뒤를 잇고있다.삼양동 언덕배기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리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에 봉지쌀을 사가지고 오면서 집앞까지 쌀이 새는 줄도 모른채 빈봉지를 들고올 만큼 경황없는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잔칫집에 나가 창을 부르지 않았고 ‘일반 가객들이 힘들고 난삽하여 꺼리는 가풍이지만 그는 계승의 책임감으로 이를 지켜왔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자양성에만 한 평생을 던져왔다. 그의 문하에는 1백여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도열해있으나 아직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있다.그의 제자중에는 각종 판소리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수연 김영자 박양덕 안숙선 등 13제자가 있고 그는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완창발표를 12차례나 갖기도 했다.순수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로서 업적과 소리의 진가는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데도 흙속에 묻힌 보석인듯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얄팍한 세태가 안스럽기만 하다. ○문화재 재정안돼 아쉬움 허무하고 긴 예로(藝路)의 여정에서 인생의 파란이 얼룩져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상(嚴霜)속의 정목(貞木)’답게 단 한번도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초연한 자세로 주변을 감싸고 보살핀다.그를 아끼는 기라성같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존경과 선모를 한몸에 받는 이상,그리고 위대한 스승들로부터 이어받은 소중한 유음(遺音)을 전승하는 일을 자신의 정업으로 삼은 이상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스스로 우뚝선 참으로 홍복의 예인에 틀림없다.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전남 화순출생 ▲1949년 동일 창극단입단 ▲1950­52년 강도근판소리수업 ▲1953­57년 정응민문하사사 ▲1955년 전국판소리명창대회 1등▲1958년 임방울창극단 입단 ▲1960년부터 한국국악협회 회원 ▲1968·72년 재일교포 위문공연 ▲1972년 제1회 江山 박유전制 ‘심청가’완창발표 ▲1974년 제2회 김세종制 ‘춘향가’완창발표, 전국명인명창대회 장원 ▲1977년 전주대사습대회장원 대통령상수상기념 ‘춘향가’ 완창발 표 ▲1986년부터 국립창극단 초청강사, 사단법인 판소리보존회 연구 분실원장, 김세종제 ‘춘향가’ 완창발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 후보지정 ▲19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주년기념공연(세종문회관 소강당 ) ▲1998년 김세종제 ‘춘향가’ 발표 성우향판소리연구소 대표, 국악예고 및 서울대등 8개대 출강 KBS국악대상(88년) ‘판소리 수궁가 (전3매)
  • “뉴트리노 질량 보유” 증거 발견/국제연구팀 발표

    ◎기존 물리학 이론 붕괴… ‘실종된 질량’ 설명 轉機 【도쿄 AP 연합】 기존 입자물리학에서 에너지만 있고 질량은 없는 것으로 돼있는 뉴트리노(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됨으로써 기존물리학 이론의 붕괴와 함께 우주의 이른바 ‘실종된 질량’을 설명할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기대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중부 다카야마에서 연구를 수행해온 120명으로 구성된 국제적 연구팀은 1년여의 실험 결과 뉴트리노가 질량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데이터를 얻었다고 5일 발표했다. 이번 발견이 추후 실험에서도 계속적으로 이뤄져 학계에서 정통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면 현대과학 핵심이론의 수정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우주가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만큼 무게가 나가지 않는 의문을 푸는 실마리도 제공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뉴트리노는 물질의 기본 구성입자의 하나이나 질량이 없고 에너지 부분만 맞추기 위해 설정된 인자이다. 그러나 이번 실험 데이터 분석 결과,결합하는 미립자에 따라 일렉트론­뉴트리노,무온­뉴트리노,타우­뉴트리노 등 3가지 타입으로 분류되는 뉴트리노가 진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진동하는 모든 것은 질량을 갖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 파키스탄 비상사태 선포/핵실험 이모저모

    ◎국민들 “회교권의 자랑” 폭죽 터뜨려/외화 인출사태 우려 全은행 휴무지시/무디스사,외채 신용등급 B3으로 내려 【이슬라마바드·워싱턴 외신 종합】 핵실험 강행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한 파키스탄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화유출 저지책을 마련하는 한편 국민들에게 내핍생활의 불가피성을 알리는 등 제재조치에 맞서기 위한 대응책을 발표했다. 파키스탄 국민들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경제가 파탄에 빠질 것이란 관측에도 불구,정부가 인도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환영하는 등 나라전체가 축제분위기로 들떠 있다. ○…샤리프 총리의 발표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파키스탄 국민들은 핵실험 성공은 ‘전 회교권의 자랑’이라며 폭죽을 터뜨리는 등 열광적 분위기를 연출.종교지도자와 노조,사회단체들도 인도의 도전에 대응하는 과감한 조치였다며 환호일색.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비롯한 야당지도자들도 앞으로 큰 대가를 치러야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우선은 “인도측의 도발에 따른 당연한 자위(自衛)행위”라며 단합된 분위기를 과시.그러나 경제제재가 위력을 발휘하더라도 이같은 국민들이 지지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 안보에 대한 외부 공격위협’을 이유로 헌법 232조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화예금에 대한 인출사태를 우려,모든 국내은행 및 외국계 은행에 대해 휴무를 지시. 한 고위 은행관계자는 “휴무 지시는 파키스탄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당하게 됨에 따라 예상되는 외화예금 인출사태를 막고 외환거래 중단을 통해 루피화의 폭락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 한편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예비구금에 대한 보호조치,이동 및 집회의 자유 등 헌법상의 기본권을 포함한 모든 법질서가 중단된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29일 대(對)국민 담화문을 발표,“외국의 경제제재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가적 내핍생활이 불가피하다”면서 “정부는 당장 수입을 10∼15% 정도 줄일 계획이며 이에 따라 소비도 10% 가량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민들에게 이를 참고 견뎌줄 것을 호소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차관 동결 등으로 파키스탄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사는 이날 파키스탄의 외채 신용등급을 B2에서 B3로,외화예금 등급은 B3에서 Caa3로 내렸다. ○…러시아 지구물리학원은 파키스탄의 핵실험의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의 4분의1인 5㏏급으로 지난 11일 인도가 실시한 핵실험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발표.이는 리히터 규모 4.9의 지진과 비슷한 강도를 갖는 것이다.
  • 과학기술원장 崔德隣 교수

    정부출연연구기관 최초로 실시된 한국과학기술원 원장 공모에서 崔德隣 교수(62 물리학과)가 제 10대 원장으로 28일 뽑혔다. 崔 교수는 교육부장관의 동의와 과기부장관의 승인을 거쳐 6월 9일 3년 임기의 원장에 취임한다.
  • 엘니뇨로 낮·밤 모두 길어진다/美 대기환경硏 보고서

    ◎강력한 편서풍 일으켜 지구 자전속도 늦춰 【보스턴 AP 연합】 지구촌에 갖가지 자연재앙을 몰고온 엘니뇨 현상이 지구의 자전속도까지 늦추게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하루의 길이가 길어지는 셈이다. 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대기환경연구소 데이비드 솔스타인은 미 지구물리학연맹회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엘니뇨현상은 강력한 편서풍을 만들어 내 지구의 자전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한 감속은 10분의 1 마이크로초.1마이크로초는 100만분의 1초로 미미했지만 지난 2월5일에는 최고 10분의 8마이크로초까지 차이가 나기도 했다. 지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전하고 있는데 고공에서 부는 편서풍이 강해지면 자전속도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15년동안 수집된 자료를 분석한 것이다. 만일 엘니뇨의 반대현상으로 적도 부근의 태평양 수온이 이상적으로 낮은 라니나가 나타날 때에는 자전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엘니뇨현상은 지난 50∼100년 만에 가장심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인도에선 혹서로 250명,중국에선 폭우로 2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곳곳에서 산불과 연무를 일으켜 멕시코에선 대기오염으로 인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 성년의 날/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젊은이의 양식(良識)이란 이른 봄의 살얼음과 같다’고 독일의 물리학자 리히텐베르크의 잠언은 말한다. 세월은 학교나 서적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젊을때는 밤을 낮삼아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나이들면 비로소 인생의 희비를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생을 알만하고 살만할때 사람들은 죽음의 고비를 맞게 된다. ‘인생은 짧은 이야기’ ‘짧은 기간의 망명’이라는 말이 이를 대변해준다. 로마의 케사르가 피살되면서 ‘이로스야 하루일이 끝났다. 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 한 것은 전쟁으로 얼룩진 그의 일생을 하루에 비교한 예이다. 청춘기의 하루하루는 순간처럼 짧지만 한 해는 길게 마련이다. 반대로 노년에 이르면 한 해가 짧고 하루가 길다. 청춘은 ‘황홀한 기쁨’이긴 하지만 결코 영원하지는 않다. 오늘(18일)은 성년의 날이다. 만 20세가 된 젊은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젊은이’로서의 여러가지 권리를 새롭게 갖게 된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숙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법적으로 보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각종 선거권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으며 친권자의 동의없이 혼인할 수 있고 흡연·음주 금지 등의 제한에서 자유롭게 놓여난다. 유충에서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듯이 ‘만 20세’의 자유를 보다 넓고 크게 누리기 위해 자기자신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시기다. 어렵게 얻은 자유를 부화(浮華)나 경박, 유흥업소 출입 정도로 생각한다면 소중한 권리를 스스로 축소하는 일이다. 젊음이란 메마른 대지에 윤택한 초원을 가꾸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센 폭풍으로 비와 눈보라를 휘몰아쳐오기도 한다. 미풍이 있는가 하면 선풍이 있고 열풍이 있는가 하면 서릿발같은 삭풍일 수도 있다. 세대마다 그 세대만의 독특한 방향과 속도로 인해 어느 세대에선 인류의 역사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어느 세대에선 예기치 못한 비극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나라 안팎으로 모든 것이 어려운 시기에 맞는 성년이다. ‘젊음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각오로 부디 훈풍의 세대를 만드는 건강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 핵시계 ‘자정 2분전’으로/美 핵물리학회 새달 결정

    ◎印 핵실험 영향 現 ‘14분전’서 더 단축/47년 등장이후 최고 위험수위 시각 최근의 잇딴 인도의 핵실험으로 ‘지구종말의 시계’(Doomsday Clock)로 알려진 ‘핵시계’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핵시계를 관리하고 있는 미 핵물리학회 이사장인 레너드 라이저 박사는 인도 사태는 오는 6월 열릴 이사회 의제로 상정될 것이며 핵시계 분침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서명 및 가입에 부정적인 경우 예상되는 시각은 ‘자정 2분전’.53년 미·소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에도 맞춰진 ‘자정 2분전’은 47년 핵시계 등장이후 가장 위험한 수위를 나타내는 시간이다. 인도는 74년에도 1차 핵실험을 강행,72년 미소가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에 서명한 덕에 ‘자정 12분전’으로 물러난 시계를 ‘자정 9분전’으로 단축시킨 전력(前歷)이 있다. 핵시계는 47년 미국 핵물리학자들이 핵으로 인한 인류멸망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자정을 지구멸망의 상징으로 삼아 만들어냈다. 핵물리학자들은 핵의 발달상황과 국제관계의긴장정도를 반영,부정기적으로 시계의 분침을 고쳤다.핵시계가 마지막으로 조정된 것은 95년 12월의 ‘자정 14분전’. 미·소의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 서명과 전략 전술핵무기폐기 선언으로 핵시계 등장이래 최고의 평화시기를 가리킨 91년 ‘자정 17분전’에서 3분 앞당겨진 시각이다.미소 양국의 협정 불이행 및 우라늄 플루토늄의 불안정한 비축 등이 그 이유.핵시계의 분침이 바뀐 것은 모두 14차례.49년 구 소련이 최초로 원자탄 실험을 했을때 자정 3분전을 가리켰으며 미소가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에 서명한 63년에는 12분전으로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68년 프랑스·중국이 핵무기를 확보하면서 5분이나 앞당겨졌고 69년 미상원의 핵 비확산조약(NPT) 비준 이후 ‘자정 10분전’으로 맞춰졌다.80년에는 미소의 군비감축협정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세계의 남북대륙 갈등 및 민족분쟁 등이 심해지면서 7분전으로 앞당겨졌다. 이어 81년과 84년 88년 미소 양대국을 축으로한 냉전상태와 지역분쟁 빈발,군비경쟁이 첨예화돼 시계는 자정 4분,3분,6분전으로 각각 조정됐다.88년에는 미소가 중거리핵장비 제거협정(INF)을 체결,6분전으로,90년에는 동구민주화 운동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10분전으로 맞춰졌다.
  • 음악평론가 韓相宇(이세기의 인물탐구:169)

    ◎‘올곧은 비평’ 음악계 정의의 사제/방송·강연 통해 고전음악 정신 전하는데 전력/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 살아가는 ‘노신사’ 누군가 음악평론가 韓相宇를 향해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했다.그의 해박한 음악지식은 단순히 평론가의 차원이 아니라 몸속에서 음악이 넘쳐서 흘러나오는 식이다.그가 음악을 감상하는 태도는 한음한음을 주의깊게 들으면서 악보의 쉼표와 점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실력이다. ○논리정연한 이론가 음악을 통해 정신적 위로와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옷깃을 여미고 기도하듯이 콘체르토와 심포니에 접근해 나간다.거짓이 없는 순결한 마음을 지키면서도 예술가의 고뇌나 센티멘탈리즘대신 이론가답게 논리정연하고 글귀마다에 번뜩이는 경구가 도사린다. 악곡뿐만 아니라 그 곡에 관련된 예술가 자신의 삶과 죽음,연주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궁구(窮究)하여 절중(節中)을 기하는 주의다. 그러나 미소망상(微小妄想)이 없고 자신을 포장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원로 박용구씨의 말대로 ‘어떤 경우에도 결백하고 청담(淸淡)한 인품을 지닌 신사가 한상우’인 것이다. 이른바 ‘작곡가나 작품명을 줄줄이 외우고 디스크 진열을 자랑삼는 것’은 천열(賤劣)하다고 지적하고 전통을 중시하지만 완강하게 자기고집만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유하는 마음가짐이 그의 인간됨이며 옳지 못한 일을 지적할 때도 날카로운 송곳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를 부드러운 유머와 재치로 감싼다. 그의 생활방식도 음악을 대하는 진지함과 상통한다.집안은 조선왕조 후기에 총융사(總戎使) 어영대장 공조판서를 지내고 갑신정변때 나이 사십에 순절한 충숙공(忠肅公) 韓圭稷이 그의 증조부이고 포대장 장위사(壯衛使) 찬정(贊政)을 지낸 韓圭卨이 작은 증조부,부친은 충북 제천중을 설립하고 제2대국회의원을 지낸 韓弼洙씨다.그러나 부친은 ‘계파’를 따지는 것을 지극히 자제하여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한만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일러왔다.‘과거집착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자유로움 속에서 떳떳한 자세’는 바로 부친이물려준 가르침 덕분이다. ○세계적 명반 대량 소장 부친은 37년 서울을 등지고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는 제천으로 낙향했고 그는 다음해 그곳에서 태어났다.형제는 4남2녀중 막내,다섯살을 전후해서 유성기옆에서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교회나 동네모임에서 하모니카 독주,한때는 부친이 광산에 손대는 바람에 모진 파란을 겪기도 했으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강한 생활력’을 터득할 수 있었다.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세계명곡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악책과 음악사전문학작품집에 몰두하여 음악이론을 향한 탄탄한 지식을 쌓아왔다. 그가 방송에서 음악해설을 시작한 것은 문화방송제작위원으로 있던 72년부터다.그때도 방송 첫머리에서 ‘안녕하세요’라든가 ‘오늘 날씨가 좋다’는 식의 형식적인 멘트를 하지않았다.‘물론 안녕하니까 나의 방송을 듣고있다’는 생각에서 청취자를 음악의 숲으로 인도해주었고 이런 결곡한 매너가 ‘나의 음악실’을 14년이상 장기프로로 성공시킨 비결일 것이다.음악평에 손댄지도 30년이가깝다.서대문구 대신동 그의 집 음악실에는 낡은 유성기에서 레이저 디스크등 최신 오디오시스템을 고루 설치하여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저녁에는 음악회에 간다. 그의 음악평중에서 지난 75년,한 일간지에 시리즈로 실었던 ‘해방 30주년을 맞아 살펴본 현실과 그 반성’은 음악계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 일대사건으로 기록된다. ‘음악계 이대로 좋은가’제하로 ‘연주회는 돈많은 자랑이거나 교수진급을 위한 것,교향악단은 연주회보다 개인레슨같은 부업에만 치중하고 교수는 특기자 입학을 미끼로 한 밑천 잡자는 식,오페라는 나눠먹기 배역에다 해외유학생들은 귀국하자마자 대학전강부터 따고나서 자리를 고수하기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었다.이어서 ‘작곡도 탈낭만(脫浪漫) 탈정서(脫情緖)운동으로 지나치게 난해하고 애매모호할뿐 아니라 음악성이 결여되어있고 평론가 자신도 색종이를 오려붙이듯이 미사여구나 동원해서 주문식 잡문이나 쓴다’고 몰아붙였다. 이로 인해 음악계는 발칵 뒤집혔으나 평론계의 원로 유한철씨는 ‘한국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관점에서 시정해야 할 점을 끌어내어 격려한 사항은 바람직하다’고 공감해 주었다.최근에도 그는 ‘신인발굴의 허구성’이란 글에서 ‘교향악단들이 예술적 양심으로 되돌아가 청소년연주회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을 보이라’고 전제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청소년협연자를 내세우는 연주를 하지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음악 조기영재교육 장려 그는 대학강단과 서울예고에 몸담고 있는 동안 비평활동과 음악의 조기영재교육을 장려하고 방송과 강연을 통해 차원높은 고전음악 정신을 전하는데 전력해온 공로자다.가족은 핵물리학을 전공한 辛承愛 교수(이화여대)와의 사이에 남매,그들 부부는 ‘인간으로서 또는 전문직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적인 가정’으로 소문나 있다.좋아하는 음악가는 브람스와 슈베르트,카루소가 1910년대 취입한 SP를 LP화시킨 RCA 50주년기념판과 빈필하모닉 150주년 기념음반등 세계적 명반들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 70년대부터 살고있는 그의 집마당에는요즘 살구나무 감나무등 유실수와 회양목 향나무등 수목이 우거지고 집안은 봄꽃들이 만개하여 꽃향기가 범람한다.‘부자는 부(富)로 괴롭고 빈자는 빈(貧)으로 괴롭다지만 나는 부하지도 빈하지도 않으니 괴로울 이유가 없다’는 그는 때마침 취미와 전공과 직업이 모두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속에서 살고있는,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틀림없다.물질의 허욕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계의 ‘정의의 사제’ 로서 그는 오늘도 자신을 위한 보보행진(步步行進)을 멈추지 않는다. □연보 ▲1938년 충북 제천출생 ▲1958년 제천고 졸업 ▲1962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졸업 ▲1962­69년 무학·경기중교사 ▲1969­84년 문화방송제작위원 ▲1980­86년 문화공보부 자문위원 1980­93년 국립극장 자문위원 ▲1987년 대한민국음악제 집행위원 ▲1984년 단국대대학원 졸업 ▲1982­85년 公倫 영화심의위원, 아세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1985­88년 公倫 음악심의위원 ▲1984­96년 서울예고 음악과장▲1987­89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자문위원, 국제음악제 운영위원 ▲1989­93년 한국음악협회부이사장 ▲1990년 문화부 기획위원 ▲1991년 남북문화예술교류정책자문 ▲1996년 KBS교향악단 자문위원 ▲1996­97년 월간음악춘추편집인 ▲1997­현재 KBSFM음악회 실황중계진행자,성균관대 출강 한국음악협회이사,세계청소년음악연맹 한국위원회이사, 예술의 전당이사,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사 ‘선율,온 영혼의 불꽃’ ‘삶과 죽음의 음악’(청한출판사) ‘북한음악의 실상과 허상’(신원문화사) ‘한국오페라 50년사’등 출간 예술평론가상(80년) 국음악상(94년)
  • 초중력 지닌 중성자별 발견/“지구인력 1천억배로 우주時空 왜곡”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 이론 첫 규명/美 과학자들 학계 보고 【콜럼버스(미국) UPI 연합】 지구 인력의 1천억배에 해당하는 거대한 중력을 지닌 중성자 별이 주변 우주의 시공(時空)을 왜곡시켜 물질의 움직임에 영향을 끼친다는 가설이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실로 규명됐다. 이 현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예측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발견이다.미국 일리노이대 프레드 램,국립항공우주국(NASA) 윌리엄 장,두 물리학자들은 이같은 발견을 20일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물리학대회에 보고 했다. 램교수는 UPI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강력하게 굴곡된 시공에서 독특한 상대성 이론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수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두 학자는 NASA의 로시 X레이 ‘타이밍 익스플로러’위성을 이용해 지구의 1천억배 가량의 중력을 지닌 은하계의 중성자별 4U 1830­30을 연구했다. 이들은 이 별의 표면에 사람이 있다면 “즉시 중력에 의해 으스러져 분자층으로 변할 것”이라고 비유했다.중성자별이란 초신성(超新星)이 폭발할때 타다 남은 고밀도 분석(噴石)으로 질량은 태양과 맞먹으면서도 직경은 16㎞밖에 안돼 어마어마한 중력장을 파급시킨다.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그 주변의 시공이 고도로 왜곡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중성자별은 정상정인 별의 궤도를 돌면서 2원 체제를 이루지만 강력한 중력 때문에 동반별의 표면으로부터 뜨거운 가스를 빼앗고 이 뜨거운 가스는 중성자별을 향해 나선형으로 접근하며 궁극적으로 광속의 절반에 해당하는 고속으로 별 표면에 충돌,강력한 X레이를 방출한다고 램교수는 설명했다.
  • 경산대 총장 소환 조사/교수 채용 금품수수 의혹

    【대구=韓燦奎 기자】 대구지검 특수부는 20일 교수 채용과 관련해 돈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경산대 변정환 총장(66)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변총장에게 94년 9월 물리학과 교수에 지원했다 탈락한 김모씨 아버지로부터 2천만원,95년 9월 한의예과 교수로 채용된 이모씨로부터 3천만원 등 모두 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추궁했다. 변총장은 그러나 금품수수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빠른 시일 안에 변총장을 다시 소환할 방침이다.
  • 이성은 죽었는가/이진우 지음(화제의 책)

    ◎서양 합리주의의 위기 진단 서양 합리주의 내지 서양 이성의 위기를 진단하고 새로운 탈(脫)현대적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한 연구서.서양 이성은 본래 비판에서 탄생했다.고대의 플라톤적 이성이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설정한 소피스트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탄생했다면,데카르트적 근대 이성은 플라톤에게서 영향을 받은 중세의 신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잉태됐다.이성에 의거해 세계를 계몽하는 대신 이성 자체를 계몽시키고자 했던 니체 역시 이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형이상학적 이성이 몸보다는 의식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삶을 왜곡시켰다고 비판하면서 ‘몸’의 해명을 통해 새로운 이성을 추구했던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지금 왜 서양 이성의 죽음을 이야기하는가.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 거론되는 서양 이성의 주요 결함은 지배와 획일화이다.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성의 부재와 혼란은 서양 이성이 절대화되고 보편화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푸코가 제시하고 있는 ‘권력의 미시물리학’,바티모의 ‘약한 사유’,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는 모두 절대이성이 갖고 있는 지배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이다.그러나 지은이(계명대 철학과 교수)는 서양 합리주의를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략을 철저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포스트모더니즘을 새로운 이성을 모색하는 실마리로 삼는 까닭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서양 이성의 결함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은 폭력적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이성과 권력의 구조적 관계를 해명하는 데도 관심을 보인다.이 책은 역사와 존재,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공시적 성격의 씨줄과 ‘계몽의 이성’‘이성의 계몽’‘계몽의 자기계몽’이라는 통시적 성격의 날줄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문예출판사 1만3천원.
  • 아인슈타인 중력이론 입증/로마대 물리학자

    ◎위성측정으로 ‘렌제­티링 효과’ 존재 확인 【워싱턴 AFP DPA 연합】 움직이는 물체는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를 변형시킨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가운데 지금까지 입증되지 않았던 부분이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고 27일 간행된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보도했다. 이 잡지는 로마대학의 물리학자 이냐지오 추폴리니가 이끄는 연구진이 인공위성레이저스호(號)와 레이저스Ⅱ호(號)를 통해 지구의 회전이 위성 궤도를변화시키는 정도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연구진은 “미국이 지난 76년 쏘아올린 인공위성 2대의 궤도를 레이저로 측정한 다음 EGM­96이라는 지구 중력장 모델을 합체시켜 계산을 했다”면서 “렌제­티링 효과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아인슈타인은 지난 1916년 중력장의 개념을 바탕으로 물질이 공간과 시간의 구조를 변형시키고 이 변형된 구조가 물질에 중력의 효과를 제공한다는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추폴리니는 “우리는 렌제­티링 효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값의 크기가 10% 이내이며 전체 오차가 ±20%라는 아인슈타인의 예언은 정확했다”고 덧붙였다.
  • 세종과학기지 개설 10년의 연구 성과

    ◎남극해저 고체가스층 발견 큰 수확/유류 분해능력 뛰어난 미생물 균주 분리 성공/극지적응 예방의학·영양염의 생산성 연구도 우리나라가 남극의 생태계와 자원 조사를 위해 킹조지섬 바톤반도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한지 10년이 됐다. 남극은 개발이 일체 금지되고 오로지 과학활동만이 허용된 지구상 최고의 청정지역.빙하와 해저퇴적물에는 과거 지구환경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건조하고 깨끗한 대기는 천체물리학 연구의 최적지로 꼽힌다. 이처럼 남극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접근 가능한 최상의 천연 연구지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각국은 앞다퉈 이곳에 과학기지를 건설했다.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를 비롯,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호주·브라질 등 17개국이 모두 44개의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85,86년 남극 해양생물자원협약과 남극조약에 차례로 가입한뒤 88년 세계에서 17번째로 과학기지를 세웠다.세종과학기지는 서울에서 1만7천240㎞ 거리의 남극반도 서북단 킹조지섬 바톤반도에 건설됐으며,본관동·연구동·거주동·장비지원동 등 6개 건물과 2개의 천문관측소로 이뤄져 있다.또한 담수화시설,소각시설,생물학적 오배수처리시설 등 남극환경 보호를 위한 시설을 갖추었다. 한국해양연구소는 세종과학기지를 운영하면서 그동안 열차례에 걸쳐 월동대와 하계대로 이뤄진 남극과학연구단을 파견했다.월동대는 기지운영과 기지주변의 자연환경 및 기상관측 연구활동을 하며,하계대는 국내 학계 및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연구팀을 이뤄 생태계 연구 및 해양조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극연구는 크게 지구환경연구,부존자원연구,국제적 위상 정립이란 세가지 방향으로 나눠 이뤄지고 있다. 지구환경 분야에서는 남극 고유의 환경 및 생태계 특성을 장기적으로 관찰하며 지구의 환경변화가 남극에 미칠 영향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부존자원 연구는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과 해양생물 자원의 탐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같은 연구 결과 최근 남극해저 50m 깊이에 가스가 고체상태로 묻혀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연구팀은 올해 안에 상당한 분량의 고체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몰층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또 남극에서 채취한 세균에서 유류 분해능력이 뛰어난 미생물을 발견,균주를 분리하는데도 성공했다. 이밖에 월동대원의 극지환경 적응에관한 예방의학적 연구와 스코티아해의 영양염에 관한 1차 생산성 연구도 큰 수확으로 꼽힌다.
  • 경산대 총장 “임용비리” 교수 2명 돈 받고 채용

    ◎검찰,계좌 추적나서 【대구=한찬규 기자】 대구지검 특수부는 9일 경산대학교 변정환 총장(66)이교수 2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잡고 법원으로 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학교법인과 총장 관련자의 금융기관 계좌추적에 나섰다. 변 총장은 94년 9월 물리학과 교수지원자 김 모씨의 아버지로 부터 1천만원을 받는 등 두차례에 걸쳐 모두 2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또 95년 9월에도 한의예과 교수지원자인 이 모씨로 부터 교수로 채용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 서울대 졸업식 첫 부부박사/컴퓨터·의공학 전공 장윤석·김보연씨

    ◎“한때 포기 생각… 모교강단에 서는게 꿈”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인공은 공대 컴퓨터공학 박사 장윤석씨(32)와 의대 의공학 박사 김보연씨(31·여)부부. 장씨는 88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부인 김씨는 이듬해인 89년 이화여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장씨와 같은 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장씨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부부 가운데 한쪽이 박사과정을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서로를 조금만 이해하면 얼마든지 논문을 함께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와 모교인 서울대에서 함께 강단에 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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