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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수상자·노벨상 꿈나무 ‘뜻깊은 만남’

    노벨상을 꿈꾸는 서울 성심여중 2년 안병현양, 경기대안중 3년 정연호군 등 중·고교생 5명이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5분 남짓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영어로 발표했다. 150여명의 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자리했다. 행사에는 지난 197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이바르 예베르 박사와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루이스 이그내로 미국 UCLA 의대교수가 참석, 안양 등의 주제발표를 듣고 직접 조언을 했다. 또 다른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예베르 박사는 이론적으로만 설명되던 초전도현상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 공로로, 이그내로 교수는 산화질소(NO)가 혈관 확장과 혈액흐름에 관여해 심혈관질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다. 예베르 박사 등은 이날 열린 ‘2011 WCU(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국제 콘퍼런스’ 행사의 하나인 ‘주니어 세션’에서 중·고교생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그래핀 특성과 연구 현주소

    그래핀 특성과 연구 현주소

    그래핀(Graphine)은 국내 과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신물질이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100대 유망 연구분야에도 포함됐다. 그래핀은 탄소와 탄소가 육각형 형태로 서로 연결돼 벌집 모양의 구조를 이루면서 만들어진 2차원 구조체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앙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연필심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방식으로 그래핀 분리에 처음 성공했다. 이들은 이 성과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래핀의 두께는 0.2나노미터(㎚·10억분의1m)에 불과하다. 실리콘이나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한다. 강도도 다이아몬드의 2배 이상으로 휘거나 비틀어도 부서지지 않는다. 신축성이 좋아 늘리거나 접어도 전기 전도성이 유지되고, 빛을 98% 이상 투과시킬 만큼 투명하다. 그래핀은 이런 특성 덕분에 접는 디스플레이나 입는 컴퓨터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업계에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쓰이는 실리콘 등은 늘리거나 구부릴 때 전기 전도성을 잃고 파괴되지만 그래핀은 이런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학계 연구는 삼성전자와 손잡은 성균관대 연구진들이 주도하고 있다. 홍병희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2009년 삼성전자종합기술원과 함께 대면적 그래핀 합성기술을 개발하고, 지난해에는 안종현 성균관대 교수와 함께 세계 최초로 그래핀 투명전극을 소재로 한 30인치(762㎜) 대면적 스크린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효영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팀은 상온 공정으로 불순물이 없는 고품질 그래핀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주목받았다. 지난 6월에는 최장욱·강정구 카이스트 에너지·환경·물·지속가능성 대학원 교수 공동연구팀이 고용량의 플렉서블한 초용량 축전지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그래핀에 질소를 얇게 입혀 에너지 저장 용량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학계에서는 10년 정도 지나면 그래핀을 응용한 전자기기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투명하면서도 전기가 잘 통하는 그래핀 투명전극 시장은 2015년에 6조 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리처드 파인먼(1918.5.11~1988.2.15)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전기역학을 재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20세기의 거시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된다면, 미시 물리학은 파인먼의 영역. 금고털이와 드럼 연주,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형식과 권위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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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기획W&W] 파인먼씨, 우주왕복선을 부탁해

    [주간기획W&W] 파인먼씨, 우주왕복선을 부탁해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  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  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  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  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  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  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  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  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  “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  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  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  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  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  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  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  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  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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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벨트·중이온가속기 성공 관건은 국제협력”

    “과학벨트·중이온가속기 성공 관건은 국제협력”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영기(49)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이하 페르미랩) 부소장은 국내에 들어설 중이온가속기에 대해 큰 기대감을 표하면서 “과학기술 선진국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라고 반겼다. 김 부소장은 19일 오전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와 중이온가속기의 성공 여부는 국제협력에 달려 있다.”며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김 부소장과의 일문일답. ●“가속기 개념설계 표절 대상 아니다” →과학벨트에 중이온가속기가 설치되는데. -가속기는 국제 과학기술 경쟁에서 한 국가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국내에 계획되고 있는 것은 희귀동위원소의 종류나 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먼저 해낸다면 과학기술 선진국 대열에 금방 진입할 수 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국내 과학 인프라가 부족한데 해결책은. -수준 높은 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 단시일에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경험이 없다. 따라서 국제협력이 바람직하다. 우리도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지식이나 과학기술은 빨리 알수록 좋기 때문에 서로 도와가며 경쟁해야 한다. →페르미랩과의 협력은 어떻게 되나. -한국과 페르미랩은 1970년대 초부터 입자물리 실험에서 검출, 데이터 분석 등에 협력해 왔다. 지난해 6월 교육과학기술부와 가속기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가속기가 미국의 설계를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표절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설계 자체는 기술적 성과이지 과학적 업적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개념 설계는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가도 다 볼 수 있고, 누구든지 쓸 수 있다. 출처를 밝힐 필요는 없다. 과학계는 산업체처럼 이익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고 협력한다. 나도 일본 쪽 국제자문위원인데, 미국보다 더 잘하라고 조언을 하기도 한다. →가속기 설계비 10억~20억원은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설계하는 데만 8개월에 10억~20억원이 들었다면 대략 100만 달러 정도인데, 100만 달러는 미국에서 대여섯 명이 1년에 연구하는 비용밖에 안 된다. 미국 것을 참고하더라도 내용을 연구하고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아주 싸다고 본다. 국내 가속기 건설비용 4600억원도 결코 과다한 금액이 아니다. 미국은 총예산이 5000억원인데, 한국과 달리 인건비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비용(30~40%)이 포함돼 있다. ●“기초과학 튼튼히 해야 노벨상 뒤따라” 이날 인터뷰에서 김 부소장은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어 “노벨상은 가능성 있는 한 사람한테만 투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기초과학을 튼튼히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하다 보면 노벨상은 자연히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이기도 한 김 부소장은 80학번으로 고려대 물리학과에 진학해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도미, 1990년 로체스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버클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시카고대 물리학과 시드니 네글 교수와 결혼했다. 그 후 2003년 남편을 따라 시카고대로 옮겼으며, 2006년 페르미랩 부소장 자리에 올랐다. 유럽입자가속기연구소(CERN) 강입자가속기(LHC) 위원회, 일본 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 국제자문위원회 등에 소속된 그는 가속기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글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송유근군과 풀어보는 우주탄생 비밀

    송유근군과 풀어보는 우주탄생 비밀

    빅뱅 이론과 도플러 효과, 일반 상대성 이론 등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는 딱딱한 과학용어들이 있다.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더 흥미를 느낄 방법들은 얼마든지 있다. EBS는 12일 밤 9시 50분 ‘다큐프라임-원더풀사이언스’에서 천재소년 송유근(14)군과 함께 우주 탄생의 비밀에 얽힌 키워드들을 파헤친다. 송군은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천문우주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우주는 오래 전 거대한 폭발로 생겨났다. 처음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고, 밝고, 뜨겁고, 높은 밀도에서 시작했지만 폭발 이후 팽창 과정에서 우주 질량의 일부가 뭉쳐 별들을 만들었다.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성취이자 우주탄생 이론 중 대세로 자리 잡은 ‘빅뱅 이론’이다. 아무도 빅뱅의 순간을 본 적은 없지만 빅뱅 우주론을 믿는 이유는 몇 가지 근거 때문이다.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은 외부 은하의 스펙트럼에 나타난 적색편이 현상에서 외부은하들이 우리 은하계로부터 빠른 속도로 후퇴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외부은하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역으로 계산하면 약 200억년 전에는 우주가 하나의 점과 같은 상태였다는 얘기다. 빅뱅 이론의 결정적인 근거는 1964년 미국 벨연구소의 아르노 펜지아스(88)와 로버트 윌슨(85)이 우연히 발견한 우주배경복사(宇宙背景輻射)로 설명된다. 나팔 모양의 전파 안테나를 이용해 전파 잡음을 연구하던 이들은 우연히 하늘 전역에서 들어오는 잡음을 발견한다. 빅뱅의 메아리가 전파로 바뀌어 펜지아스와 윌슨의 전파망원경에서 잡음으로 감지된 것이다. 위대한 발견을 인정받아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WHO & 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 & 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영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대표작 ‘가지 않은 길’에서 갈림길 앞에 선 한 사람의 선택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노래했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갈림길 앞에 선다. 묻기만 하면 수백만개의 답을 늘어놓는 인터넷. 정제된 ‘지식의 바다’였으면 좋겠는데 ‘자료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해 주지 않고, 우리는 어떤 검색결과를 선택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때론 엉뚱한 결과와 지식을 가져다 준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순서에서는 이런 네티즌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Google)의 검색창에 넌지시 그의 고향인 ‘실리콘밸리’를 치고 엔터키를 눌렀다. 실리콘밸리를 소개하는 무수한 글 중에 등장하는 새로운 궁금증을 재차 구글에 묻고 물었다. 1시간가량 검색과 검색결과에 대한 선택, 검색을 반복하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17세기 유럽 귀족의 유행과 교육법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 와중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인물들도 등장했다. ‘아이비리그’(동부에 있는 8개 명문 사립대학의 통칭)에 버금가는 서부의 명문대 스탠퍼드는 어떻게 실리콘밸리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19세기 미국 서부를 달궜던 ‘골드러시’(금광이 발견된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현상)는 오늘날 ‘옐로 저널리즘’(선정주의 언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들을 가르치기 위한 광산 재벌의 유럽여행은 어떻게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을까. 또 경제학의 기본원리로 꼽히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왜 여기에 등장한 것일까. 구글 검색창이 말하는 스스로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방대했다. 다만 검색에 검색을 더한 결과이자 더 이상 묻지 않으면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결과였다. 수많은 검색 결과 중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면 전혀 다른 인물과 사건의 등장으로 이어졌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구글 검색창은 제자의 대답에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져 결국 ‘진리’에 이르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인터넷의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검색의 순서에 충실한 덕분에 기사는 역사를 거꾸로 올라간다. ☞실리콘밸리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탠퍼드대 교수 윌리엄 쇼클리. 그는 1956년 당시 스탠퍼드대 공대 학장이던 프레드릭 터먼의 제안을 받는다. 부지와 학생을 제공할 테니 ‘쇼클리 트랜지스터 연구소’를 만들어 보라는 것. 파격적인 조건을 받아들여 설립된 연구소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반도체 연구소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쇼클리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각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나 둘씩 팔로알토 부근에 창업을 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65개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이 만들어졌다. 당시 연구원 중에는 1968년 인텔(현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도 있었다. 터먼 학장은 쇼클리 연구소와 함께 이스트만코닥,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을 유치했고, 과수원 마을에 불과했던 팔로알토는 이후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IT 혁명의 중심지가 되어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프레드릭 터먼 19세기 말 이후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미 서부의 명문으로 떠오른 스탠퍼드대의 고민은 ‘두뇌 유출’이었다. 당시 스탠퍼드대가 자리 잡고 있던 캘리포니아의 주 산업은 광업과 농업이었다. 고급교육을 받은 스탠퍼드대 졸업생은 다들 대기업들의 거점인 동부로 떠났다. 터먼 학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탠퍼드대 교수들과 졸업생들에게 모교 캠퍼스 안에 회사를 창업하도록 독려했다. 그 결과 팔로알토는 빠르게 산학연구단지로 변모했다. 오늘날 ‘벤처’의 모태다. 초기 설립된 회사 중에 터먼의 제자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1939년 창업한 ‘휼렛패커드’가 있었다. 터먼은 나중에 휼렛패커드의 이사를 지냈다. ☞스탠퍼드 조지 허스트, 헨리 헌팅턴, 릴런드 스탠퍼드 등은 골드러시에 편승해 대륙횡단 철도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1862년 38세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스탠퍼드는 26세에 결혼했지만 44세(1868년)에야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16세가 됐을 때 온 가족이 유럽으로 ‘그랜드 투어’를 떠나는데, 여행 도중 아들이 갑자기 장티푸스로 죽고 만다. 스탠퍼드 부부는 당대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에 아들을 기리는 건물을 짓기 위해 보스턴을 찾았다. 그러나 총장과 면담을 하다 뜻밖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재산이면 하버드에 버금가는 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부부는 1891년 팔로알토에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대학’이라는 이름의 대학을 설립했다. 사람들은 줄여서 ‘스탠퍼드대’라고 불렀다. 아들을 기리기 위한 부부의 유지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아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개교 초창기에는 모든 학생의 학비가 면제됐다. 스탠퍼드의 첫 입학생 중에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는 당시 17세의 허버트 후버가 있었다. 그는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던 광부가 되기 위해 지질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골드러시 1800년대 중반 미 서부는 금광을 찾기 위한 골드러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선택받은 자들만 영광을 누렸다. 이들은 자신의 뿌리인 영국의 귀족 같은 생활을 누리길 원했으며 저택과 자녀교육 등에 ‘신 귀족문화’를 도입했다. 1820년생인 조지 허스트는 이런 ‘골드러시’의 일원이었고 40세가 넘어 은광을 발견해 벼락부자가 됐다. 이후 그는 릴런드 스탠퍼드 등과 함께 대륙횡단 철도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42세에 18세 여성과 결혼, 43세에 아들(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을 낳았다. 허스트는 1880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라는 신문사를 인수했고, 1887년 아들에게 이 회사를 물려줬다. 아버지의 광산사업을 정리한 윌리엄 허스트는 언론사업에 치중했고 1920년대에 30여개의 언론사를 거느린 최초의 언론재벌이 됐다. ‘뉴욕저널’, ‘저널아메리칸’을 운영했다. 그가 조지프 퓰리처의 ‘월드’를 상대로 벌인 치열한 언론전쟁은 부정확한 보도를 양산하면서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윌리엄 허스트 19세기 미국에서는 영국에서 유행했던 그랜드투어가 급속히 확산됐다. 윌리엄 허스트 역시 그 수혜자였다. 갑부 아버지를 둔 덕에 그는 10세에 어머니와 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유럽 골동품 수집이었다. 윌리엄 허스트는 도자기나 귀금속 같은 골동품 대신 거대한 유적에 유독 집착했다.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중세의 성 등이 수집대상이었다. 실제로 그는 유적의 벽이나 기둥을 통째로 뜯어오는 데 관심이 많았다. 나이가 들자 허스트는 수집품들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고민에 빠진다. 결국 캘리포니아 샌시메온 일대 25만 에이커(1012㎢·서울 면적의 1.7배)의 땅에 수집품의 일부를 전시했고 이는 미국 최대의 인공공원인 ‘허스트 캐슬’이 됐다. ☞그랜드투어 18세기 영국의 부유층에서는 자제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최고의 지식인을 가정교사로 동행시켜 세계여행을 하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를 ‘그랜드투어’라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헨리 스콧과 그의 가정교사가 떠난 여행이다. 스콧의 의붓아버지 톤젠드는 1759년 ‘도덕감정론’을 출간해 유명해진 글래스고의 한 교수에게 가정교사 역할을 부탁했다. 톤젠드는 그에게 여행의 모든 경비와 별도로 당시 교수 연봉의 2배에 해당하는 300파운드를 평생 연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스콧은 교수와 함께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녔고 벤저민 프랭클린, 볼테르 등 당대의 철학가들을 만나며 견문을 넓혀갔다. 이 여행은 1766년 스콧의 동생이 프랑스 파리에서 노상강도에게 살해되면서 어이없이 끝을 맺었다. 가정교사를 맡았던 교수는 평생 연금이 보장됐기 때문에 복직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행에서 배운 식견을 10년 동안 집대성한다. 이 책이 저 유명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었고 교수의 이름은 바로 애덤 스미스였다. ☞찰스 톤젠드 찰스 톤젠드는 영국의 귀족이자 정치가다. 네덜란드의 대학과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아들 하나를 둔 버클루 공작의 미망인 댈키스 백작부인과 결혼했고, 하원의원을 거친 후 재무장관이 됐다. 그는 북아메리카에 중과세를 부과하는 ‘톤젠드 조례’를 만들어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또 의붓아들인 헨리 스콧을 ‘그랜드투어’에 보내면서 현대 경제학의 탄생에도 이바지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퀴리부인 실험기구 대전 왔다

    퀴리부인 실험기구 대전 왔다

    라듐을 발견한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1867~1934)가 사용했던 실험기구들이 대전에 왔다. 27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퀴리박물관으로부터 3년간 무상 임대한 실험기구 3점이 지난 26일 대전에 도착했다. 전압을 정밀 측정하는 ‘4분 전위계’, 정밀 진동이나 고주파 진동을 생성하는 ‘압전석영’, 방사선 강도와 에너지를 정밀 측정하는 ‘이온화 챔버’ 등이다. 이들 기구는 100여년 전 퀴리 부인이 각종 실험 등에 사용했던 것으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KINS 관계자는 “올해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지 100년이 되는 퀴리 부인의 업적을 기리고 청소년들에게 노벨상에 대한 도전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소장품 일부를 임대했다.”면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능에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이 실험기구를 전시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KINS는 다음 달 말이나 6월 초 원자력안전역사관에서 이 실험기구를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퀴리 부인은 폴란드 태생의 여성 과학자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을 각각 받았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기초과학 투자해야 노벨상” 노보셀로프 방한 간담회

    “기초과학 투자해야 노벨상” 노보셀로프 방한 간담회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7일 울산과학기술대(UNIST)가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노벨상은 새로운 차원의 연구개발 성과를 낸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며 “기초과학에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이날 UNIST 그랜핀연구센터 명예 연구소장(석좌교수)에 임명됐다. 그는 “연구 자체를 즐기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제로”라며 “노벨상을 꿈꾼다면 연구를 즐겨라.”고 말했다. 또 한국이 과학벨트와 같은 대규모 기초과학연구단지를 조성한다면 함께할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은 과학 거점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 이후 UNIST와 울산과학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물질:그래핀’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학점 3.0 이하 1년 최대 1500만원 내야

    올해 개교 40주년을 맞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교 이후 처음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초상집 분위기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베츠 로플린 총장이 사립화 문제로 교수 등과 갈등을 빚다 물러난 뒤 2006년 7월 부임한 서남표 총장은 종신 교수직 심사제와 함께 학생을 상대로 전 과목 영어 수업, 차등 등록금제를 도입했다. 차등 등록금제는 2008년 입학생부터 적용되고 있다. 학점 4.3점 만점 중 3.0점 이하 학생을 대상으로 0.01점 떨어질 때마다 6만원씩 학기당 최대 750만원이 부과된다. 1년에 1500만원까지 낼 수 있는 징벌적 성격의 등록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카이스트가 4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권영진(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학생 7805명 중 이 제도의 적용을 받은 1006명이 1인당 평균 254만여원씩을 등록금으로 납부했다. 학점 미달로 등록금을 낸 학생 비율은 2008년 4.9%, 2009년 8.0%, 지난해 12.9%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는 지난 1월 전문계고 출신 ‘로봇영재’ 학생이 자살한 후 자신의 트위터에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부과하는 현 시스템은 창의적인 괴짜 학생들을 배출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반면 박희경 기획처장은 “차등 등록금제는 수년간 국고로 지원해 공부시키는 데 따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라고 반박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자폐증 앓은 ‘아이큐 170’ 12살 수학천재 화제

    자폐증 앓은 ‘아이큐 170’ 12살 수학천재 화제

    최고의 천재과학자로 손꼽히는 알버트 아인슈타인보다 아이큐가 높은 자폐증 소년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12살의 제이콥 바넷은 최근 매우 창의적인 수학공식을 제시해 대학생 뿐 아니라 교수들까지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아인슈타인의 아이큐는 160. 바넷은 이보다 조금 더 높은 170으로, 최근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바넷의 아이큐는 내로라하는 천재들을 버금간다. 아인슈타인과 빌게이츠 160, 음악의 천재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165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적분, 대수학, 기하학, 삼각법 등 각종 수학공식을 스스로 터득한 뒤 현재는 자신보다 20여 살이 더 많은 동급생을 가르치는 바넷은 학교에서도 인기스타로 손꼽힌다. 하지만 2살 때부터 자폐증과 비슷한 발달장애인 아스퍼거장애를 앓기 시작한 바넷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자폐증 아이들처럼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바넷은 3살 때 5000피스에 달하는 퍼즐을 모두 맞췄고 점차 수학과 천체물리학에 소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8살 무렵, 아이의 천재성을 처음 발견한 그의 엄마는 프린스턴 대학에 그가 수학 및 천체 물리학 이론과 관련한 공식을 만드는 동영상을 보낸 뒤 입학 허가서를 받는데 성공했다. 현재 그의 지도를 맡고 있는 스콧 트레맨 인디애나 대학 교수는 “바넷의 이론을 보는 순간 매우 흥미로웠다.”면서 “그가 제기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노벨 수학상 또는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치켜세웠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52)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고전 톡톡 다시 읽기](52)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버트런드 러셀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대해, 중세 기독교에 끼친 지대한 영향 외에는 그다지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러셀이 보기에 ‘티마이오스’는 과학이나 철학이기보다는 종교에 가까웠다. 그런가 하면 어린 시절의 하이젠베르크는 신학 학교 지붕 위 따뜻한 햇살 속에서 ‘티마이오스’를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양자 역학으로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하이젠베르크지만, 만일 ‘티마이오스’가 없었다면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불확정성의 원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종교와 과학 사이에 놓이는 책, 아니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종교와 과학을 중첩되도록 만드는 책!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이곳에 존재한다. ●과학으로서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는 우주의 발생과 구성 원리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우주 구성의 근본 물질은 불, 흙, 물, 공기. 이 4원소는 당시 자연철학자들의 사유를 이어받은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4원소의 내적 구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하학적 형식으로 그것들을 정의한다. 이에 따라 4원소는 기하학적 입자로서 설명되고, 우주의 생성은 순수한 형식의 세계로 펼쳐진다. 플라톤은 또한 우주의 생성 원리에 관해서도 기존의 자연철학자들과 결별한다. 그는 자연철학자들이 ‘사랑’과 ‘투쟁’ 따위의 모호한 표현으로 우주의 발생을 말하던 방식과 달리, 수(數)의 비례 관계를 자신의 근거로 삼는다. 수와 기하학적 질서 위에 구축된 우주! ‘티마이오스’는 오늘날 과학이 우주를 다루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종교적인 차원에서 읽힐 여지가 있는 것은 우주 발생의 순간에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라는 신 때문이다. 하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주 원리를 담은 형상(形相)과 우주의 재료가 되는 질료가 신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의 마음대로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형상들을 본(本, paradeigma)으로 삼아 제작할 뿐이다. 질료 역시 재료로 쓰기 위해서는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 신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한쪽으로는 설계도를 따르려 애쓰면서, 다른 쪽으로는 재료들과 씨름하는 장인(匠人)의 모습이 데미우르고스라는 신이다. 신조차도 따라야 하는 우주의 원리가 있고, 그 원리들을 수와 기하학의 세계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티마이오스’는 과학에 가깝다. ●종교로서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의 시간 배경은 플라톤의 대표작인 ‘국가’ 속의 이야기들이 오고간 다음 날로 설정되어 있다. 실제로 ‘티마이오스’가 ‘국가’의 후속편인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플라톤 스스로가 ‘티마이오스’를 ‘국가’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 플라톤의 근본적인 고민은 인간의 정의로운 삶이었다. 그에게 정의로움이란 훌륭한 삶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정의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삶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누군가 ‘왜’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인간이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될까. 플라톤은 이런 명령 대신 우주를 가지고 들어온다. 즉 훌륭한 삶에 관한 플라톤의 논의는 인간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다시 우주로 확장됨으로써 완성된다. 하여 플라톤은 우주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앞서 ‘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다. 생각해 보면 데미우르고스라는 신이 형상을 보았다고 해서 꼭 우주를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의 ‘선견과 배려’가 있다. 신은 훌륭한 이이고, 그는 자신이 훌륭한 만큼 “모든 것이 최대한으로 자기 자신과 비슷한 상태에 있기를 바”란다는 것! 이것이 우주가 만들어진 이유이자, 인간이 존재하게 된 이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이 훌륭하게 되기를 바랐던 신의 마음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다. 우주에는 우리 삶을 이끄는 섭리가 담겨 있고,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은 그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플라톤에게 우주는 인간을 이루는 물질적 원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인간의 삶을 훌륭하게 이끄는 원인이다. 인간의 물질적 바탕을 넘어 삶의 근거로서 우주. 플라톤의 이러한 목적으로서의 우주가 중세 기독교의 세계관과 맞닿게 된다. ●우주, 삶의 새로운 상상력 우리는 ‘티마이오스’를 통해 과학으로 풀어진 섭리를 만난다. 이 때문에 ‘티마이오스’는 신학자와 과학자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 된다. ‘티마이오스’ 속의 독특한 우주는 세계를 바라보는 플라톤의 시선에서 기인한다. 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풀어줄 열쇠였다. 플라톤이 우주를 수학적으로 해석한 피타고라스 학파에 그토록 심취한 이유도, 삶의 윤리를 정초할 새로운 세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하늘 속에 담긴 땅의 모습을 보았고, 땅 위에 펼쳐진 하늘의 원리를 읽었다. 오늘날의 과학은 플라톤의 이런 시선이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지구상의 동물, 식물, 벌레 심지어 물방울까지 똑같은 사전의 코드를 이해하고 있다. 효모 세포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바다와 인간이 가진 염과 광물질의 비율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또한 우리 몸이 허용할 수 있는 원소의 양은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의 양과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그러니 우주를 본다는 것은 인간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과학은 우주가 얼마나 다채롭고 생기로운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플라톤이 말했던 수적 비례와 기하학적 질서를 넘어서는 질적 다양체의 세계. 과학은 우리를 그 세계들과 이어주는 다리다. 그러니 사회가 규정해 놓은 획일화된 가치 속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과학이 펼쳐놓은 우주로 들어가 보자. 과학의 다리를 건너는 약간의 수고로움만 들인다면 다채로운 우주 속에 존재하는 우리 삶의 무한한 가능성들과 통로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의 윤리를 창안할 수 있는 우주적 상상력!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받게 된 최대의 선물이 아닐까.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과총 올해 과학기술 10대 뉴스 선정

    과총 올해 과학기술 10대 뉴스 선정

    올해 우리 과학기술계의 최고 뉴스로 노벨상을 받은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Graphene) 분야의 국내 연구성과가 꼽혔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기술 10대 뉴스 선정위원회는 그래핀 등을 올해의 과학기술 10대 뉴스로 선정했다고 13일 발표했다. 선정위는 과총 사무처가 1~10월에 모은 207건의 뉴스 가운데 31건을 압축,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8일까지 온라인 투표를 통해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 환상의 소재 그래핀 그래핀은 손목시계 모양의 컴퓨터나 종이 두께의 모니터 등을 구현해 줄 환상의 소재로 불린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소재다.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 박사가 수상자들보다 조금 늦게 그래핀을 얻어 노벨상 수상을 아깝게 실패한 점이 이 뉴스를 1위로 만드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과학계의 노벨상 수상 염원을 드러낸 대목이다. 국내 과학자들은 상용화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성균관대 나노과학기술원의 홍병희·안종현 교수팀은 6월 차세대 전자기기에 활용할 수 있는 고성능 그래핀 투명 전극 소재를 30인치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대학 이효영 교수 연구팀은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환원제인 요오드산을 이용해 상온공정에서 불순물이 없는 고품질 그래핀 대량 생산의 가능성을 열었다. 2 국과위 법안 통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상설화와 과학비즈니스벨트 법안 통과가 2위로 꼽혔다. 두 법안은 지난 8일 한나라당의 날치기 처리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과위를 행정위원회로 격상시키고 장관급 위원장을 두기로 하면서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과학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는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도시가 건설되는데, 경기도·충청도·광주광역시가 벌써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3 나로호 2차발사 실패 나로호 2차 발사(사진 ①)가 또 실패했다는 아쉬운 뉴스가 3위로 선정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나로호를 발사했지만, 이륙 137초 뒤 폭발해 “5025억원짜리 불꽃놀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한·러 공동 조사단은 나로호 실패에 대한 원인 규명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고, 3차 발사 날짜를 조율 중이다. 4 전기 무인 자동차 개발 4위에는 지난해 12월 1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전기로 가는 무인 자동차를 처음 개발했다는 뉴스가 올랐다. KIST 인지로봇연구단 강성철 박사팀은 빌딩이나 나무 숲으로 인해 위성항법장치(GPS) 신호가 정확하지 않은 곳에서도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전기차 셔틀 KUVE를 개발했다.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지정된 도로와 인도 사이 연석이나 차선을 따라 시속 10㎞로 3시간 동안 주행할 수 있다고 강 박사팀은 밝혔다. 5 초고체 현상 첫 발견 다시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 성과가 5위에 올랐다. KAIST 김은성 교수와 최형순 박사가 기체·액체·고체를 뛰어넘는 새로운 물질 상태인 초고체(supersolid) 현상을 세계 최초로 발견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김 교수는 2004년 고체 헬륨을 영하 섭씨 273도의 극저온으로 냉각시키면 고체임에도 일부가 별다른 저항 없이 자유롭게 흐르는 독특한 물질상태인 초고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후 이 현상이 헬륨의 물성변화에 의한 현상이라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김 교수팀은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팀이 보유한 회전식 희석냉각장치를 활용해 초고체 상태가 실재함을 다시 증명해 냈다. 6 해상도 높은 인간 뇌지도 책이 6위의 주인공으로 뽑혔다. 가천의대 조장희 박사팀이 0.3㎜ 핏줄까지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선명한 사람 뇌지도를 발간한 것. 조 박사팀은 7.0테슬러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치로 촬영한 뇌 사진을 엮어 올 1월 독일 스프링거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기존 뇌 지도보다 해상도가 3배 이상 되는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22명이 참여했다. 7 중수소 핵융합 반응 7위는 거대과학 분야에서 거머쥐었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한국형핵융합연구로(KSTAR)가 중수소 핵융합 반응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10월 11일 FEC2010 행사에서 KSTAR의 올해 3차 핵융합 플라스마 실험 결과 등 성과를 발표했다. 이 성과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 세계 7개국이 참여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의 선행 연구장치로서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8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KAIST 윤덕용·송태호 교수를 비롯해 과학계가 천안함(사진 ②) 침몰 원인 규명을 주도한 과정이 꼽혔다. 윤 명예교수가 민군합동조사단장을 맡아 ▲북한의 어뢰추진체에서 나온 ‘1번’ 글씨 ▲절단면을 통한 원인 추론 ▲선체에 흡착된 알루미늄 산화물 분석 등을 통해 조사에 나섰다. 결과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윤 명예교수는 “정부와 언론이 기초과학 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9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한국 첫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남극으로 출항해 평탄빙 쇄빙시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내용이 꼽혔다. 지난해 12월 남극으로 향한 아라온호는 3차 쇄빙 시험을 마치고 올해 3월 15일에 무사히 귀항했다. 88일간의 항해 동안 서남극 케이프벅스와 동남극 테라노바베이에서 정밀조사 활동을 벌였다. 10 나노소재 인공광합성 KAIST 박찬범 교수가 나노 소재로 인공 광합성에 성공했다는 내용이 10대 뉴스에 턱걸이했다. 신소재공학과의 박 교수는 4월 23일 자연계 광합성을 모방, 태양전지 등에 사용되는 나노미터 크기의 광감응 소재를 이용해 인공 광합성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기고] 과학비즈니스벨트 앞당기자/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기고] 과학비즈니스벨트 앞당기자/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2003년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소행성 ‘이토가와’의 암석 샘플 채취를 위해 탐사선 ‘하야부사’를 발사했다. 하야부사는 예정대로 임무를 수행했지만, 엔진 고장과 통신 두절로 인해 3년 동안 우주공간을 떠돌다 지난 6월 기적적으로 지구로 귀환했다. JAXA 과학자들의 노력과 기술력이 이뤄낸 하야부사의 귀환은 일본의 과학기술력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람들은 하야부사의 귀환을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그 기적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일본은 1900년대 초부터 기초 자연과학 분야에 국가적 지원을 해왔으며, 이런 노력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 문부과학성은 ‘과학기술 입국’을 국시로 재인식,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이후 정부 주도로 연구개발(R&D)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세계가 놀랄 만큼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아직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기초과학이야말로 응용과학의 기반이자, 경제발전의 토대가 된다.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릴 때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2월 국회에 제출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조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2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표류하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취지는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 등 첨단 기초과학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첨단지식산업단지, 비즈니스 인프라 등과 연계해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거점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구상하면서 모델로 삼았다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1954년 설립된 후 수많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리고 이 연구소가 운영하는 강입자 가속기는 초기 설치비용만 약 29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최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로서 새로운 분야의 연구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사용하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8000여명의 과학자가 찾아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과학벨트가 조성되면 세계의 과학자들이 모여든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이 집적될 과학벨트는 우주 개발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학벨트는 거의 모든 분야 과학기술의 집합체인 우주기술이 다른 기술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엄청난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또 이러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토대로 국제적인 공동연구와 협력의 장이 마련되어 우리나라 우주기술의 경쟁력을 한층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에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다. 우리 과학기술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최고의 기회가 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하루빨리 추진되기를 기원한다.
  • “노벨委 실수로 김필립교수 수상못해”

    “노벨委 실수로 김필립교수 수상못해”

    노벨상위원회의 실수로 한국인 과학자가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에서 제외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적인 과학 잡지인 네이처지는 24일자 온라인판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의 월터 드 히어 교수가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장자로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솔로프 박사가 선정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노벨상위원회는 앞서 이들이 2004년 사이언스지에 탄소의 단층 구조체인 그래핀(Graphene)의 합성과 관련한 논문을 게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드 히어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2004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의 물질은 그래핀이 아닌 탄소의 복층 구조체인 그래파이트였으며, 실제로 그래핀을 합성하고, 그 특성을 실험한 결과는 2005년 네이처지에 실렸다. 실제로 2005년 네이처지 438호 197~200쪽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논문이, 같은 호 201~204쪽에는 미국 컬럼비아대 김필립(43) 교수의 그래핀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드 히어 교수는 “노벨상위원회의 판단과 달리 많은 학자들은 김 교수가 공동수상자가 됐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김필립 교수의 모교인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도 “김 교수가 공동수상자로 선정됐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병남 교수(물리·천문학부장)는 “국가적 지원이 있었다면 김 교수의 노벨상 공동 수상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네이처지는 올해 수상자인 가임 교수 역시 “김 교수가 중요한 공헌을 했으며, 기꺼이 그와 상을 나눌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네이처지는 이어 노벨상 위원회도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웹 버전에서는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서울 태생인 김 교수는 1986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 1992년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1999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년간 버클리대 물리학과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으며, 2001년 컬럼비아대 교수로 임용돼 2005년 네이처지에 그래핀의 물리적 특성을 처음으로 규명한 논문을 게재,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노벨상에 왕도는 없지만 물리학·화학 유리”

    “노벨상에 왕도는 없지만 물리학·화학 유리”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과학자를 양성하는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정부와 대학은 과학자 개개인이 어떻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가에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노벨상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따른 개인적인 성과로 봐야 한다.” ●“노벨상이 궁극적 목적이 돼선 안돼” 한국 기초기술연구회 과학위원인 영국 맨체스터대 앨런 노스 부총장은 23일 방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노벨상에 대한 열망이 큰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노벨상은 궁극적인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1824년 설립된 맨체스터대는 2만 5000명의 학부생과 1만명이 넘는 대학원생이 재학하는 영국 최대의 대학으로 지금까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안드레 가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도 맨체스터대에 재직 중이다. 노스 부총장은 “맨체스터대는 규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처럼 일부 학생과 연구진에 집중하는 엘리트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서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특별한 혜택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도 노벨상을 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벨상을 빨리 받고 싶다면 학문의 흐름을 읽기 쉽고 방향이 명확하게 보이는 물리학과 화학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물리학 및 화학의 경우, 발견하고 입증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이를 풀어내는 것만으로 노벨상에 다가설 수 있지만 생물학과 의학은 연구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 많이 도출되는 만큼 체계적인 지원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엔도르핀을 최초로 발견한 한스 코스테리츠 에버딘대 교수의 제자로 왕립학회 회원이자 마약 연구의 권위자인 노스 부총장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스위스 볼륨 연구소 연구실장, 제약기업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며 미국과 유럽, 학계와 기업을 아우르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노스 부총장은 “미국은 다른 나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비 지원을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은 특화된 전략을 세우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미국 주도의 과학기술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간섭하지 않는 연구지원으로 유명한 유럽 각국의 과학기술 지원방식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고도 했다. 막연한 연구과제 대신 정부예산 심사 단계에 아예 기업인들을 참여시켜 연구성과가 어떤 결과물을 내고, 지적재산권 보호와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짜임새 있는 계획을 제출한 과학자들에게 지원을 몰아주고 있다는 얘기다. ●“한인 과학자들 귀국하지 않는데 충격” 노스 부총장은 특히 “미국에서 많은 한인 과학자들을 만나 봤는데, 적극적이고 자신의 연구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다만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충격적이었다.”며 한국의 과학정책을 의아해했다. 글 사진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타임 선정 20세기 세상을 바꾼 25명의 여인들

    타임 선정 20세기 세상을 바꾼 25명의 여인들

    ‘철의 여인 대처, 패션 아이콘 샤넬, 섹스심벌 마돈나까지….’ 미 시사주간 타임이 19일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25명의 ‘파워우먼’을 추려 발표했다. 이들 여걸은 여성 특유의 감성을 앞세우면서도 때로는 남성을 압도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세상을 바꿨다. ●코라손 아키노·힐러리 클린턴 포함 우선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정치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여성 지도자가 눈에 띈다. 유럽 최초로 여성 국가수반이 됐던 마거릿 대처(85) 영국 전 총리와 독일 첫 여성 정상인 앙겔라 메르켈(56) 총리, 이스라엘에서 처음 여성 총리가 된 골다 메이어(1898~1978년)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타임은 “대처가 11년간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사회적 저항에도 공기업 민영화나 저세율 정책 등을 줄기차게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끌었던 코라손 아키노(1933~2009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63) 미 국무장관도 포함됐다. 주요 2개국(G2)인 중국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부인이었던 장칭(江靑·1914~1991년)과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년)도 나란히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혔다. 2명 모두 ‘그림자 내조’에 그쳤던 영부인의 역할을 벗어나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황혼기의 모습은 엇갈렸다.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였던 엘리너는 남편의 정치활동을 도우면서도 직접 라디오에 출연하고 칼럼을 쓰면서 여성문제 등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1945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유엔 주재 미국대표를 맡는 등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도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진두지휘하며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남편이 1976년 사망한 뒤 반혁명분자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통적으로 ‘여풍’이 강했던 패션 및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화장품 회사 설립자인 에스티 로더(1908~2004년), 패션제국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1883~1971년) 등이 ‘세기의 여성’ 자리를 차지했다. 또 단돈 35달러를 들고 고향 미시간주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최고 팝스타’의 꿈을 이룬 마돈나(53)도 마찬가지다. ●마리 퀴리·버지니아 울프도 뽑혀 이 밖에 방사성 원소 폴로늄, 라듐 등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거머쥔 마리 퀴리(1867~1934년), 저서 ‘침묵의 봄’ 등을 통해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레이철 카슨(1907~1964년), 테레사 수녀(1910~1997년),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년) 등도 역시 ‘파워 우먼’으로 선정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 노벨상 유감/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열린세상] 노벨상 유감/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필자는 상 받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노벨상의 경우는 좀 다르다. 노벨상이 지니는 국가적 위상 제고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올해도 한국은 노벨상 좌절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반면, 이웃 나라 일본은 꾸준히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내고 있다. 이미 물리학·화학·생리학 등 기초 분야에서는 물론 문학 분야에서까지 도합 10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상자를 배출한 마당에, 이번 노벨 화학상 역시 2명의 일본인에게 돌아갔다. 지난 2008년 물리학상 2명, 화학상 1명에 이어 2년 만의 쾌거다. 도대체 무엇이 두 나라의 차이를 가져왔을까. 필자는 최근 ‘바보’ 연구를 하다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는 ‘센몬바가(專門馬鹿)’가 있다. 우리말로 ‘전문바보’라는 뜻인데, 이들은 한 분야에 바보스럽게 몰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센몬바가’는 한번 책상에 앉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른다. 세상에 난리가 나도, 전쟁이 일어나도, 나라가 망해도 자기 연구에만 몰두한다. 혹은 골방 같은 연구실에서, 혹은 도량 같은 작업실에서, 날 새는 줄 모르고,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전문분야에 스스로 감금되어 연구에 연구, 작업에 작업을 거듭하는 이 ‘전문바보’들이 오늘의 일본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마디로 ‘센몬바가’는 일본의 민족성 교육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작품이다. 일본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업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또 그것을 높이 평가해 주는 민족전통으로 유명하다. 또 일본은 나름대로 학벌을 중히 여기면서도 한 분야의 전문가를 최고로 쳐주는 교육문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명인(名人), 장인(匠人), 대가(大家), 달인(達人)이라는 낱말에서는 일본 냄새가 난다. 바로 이런 풍토에서 ‘센몬바가’가 탄생한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된다. 다른 것은 못해도 된다. 하나만 잘하면 그것이 최고다. 한 분야의 1인자가 최후의 1인자다.” ‘센몬바가’에 숨어 있는 이 정신이 오늘날의 노벨상 강국 일본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대한민국은 노벨상 좌절을 아쉬워함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멀리 보고 ‘전문바보’들이 맘껏 활개를 치며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적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기왕에 노벨상 얘기가 나왔으니 차제에 다른 노벨상 강국인 미국의 또 하나의 비결을 벤치마킹해 보자. 미국에서는 시카고 대학을 노벨상 왕국이라 한다. 그것은 동문교수 중 노벨상 수상자가 70명이 넘기 때문이다. 과거 시카고 대학은 동부 명문대학들에 비해 역사도 훨씬 짧고 시카고에 위치해 있어서 우수한 학생들을 동부 명문대학들에 빼앗겨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데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시조인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공이 컸다. 1929년 총장이 된 로버트 허친스 박사는 4년 교과과정 중에 위대한 고전(great classics) 100권 읽기를 포함시켰다. 각 분야를 망라하여 100권의 고전을 읽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러한 진리 탐구에 필요한 역할모델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고전 속에서 위대한 사상과 인물을 만나 원대한 꿈을 품고 위대한 인간이 되라는 취지였다. 이 교육비전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효력을 발휘하여 방금 얘기한 바와 같이 놀라운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기획을 위해 반드시 배워두어야 할 대목이다. 독서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전문바보론’이나 ‘위대한 고전론’이나 우리의 독서문화를 성찰케 하는 자극제임에 틀림없다. 짧은 소견인지는 모르되, 바야흐로 ‘e북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깊은 사색이 깃든 독서를 위하여 아무래도 활자책이 더욱 매력 있게 보인다. 행간에 머물다가, 여백에서 노닐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로 남기고 페이지를 넘기는 즐거움이란! 조선후기 대학자 정약용, 발명가 에디슨, 천재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하나같이 메모광이었음을 명심할 일이다.
  • ‘류샤오보 노벨상’ 中여론도 두갈래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인사인 류샤오보(劉 曉派·55)가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이 지난 11일까지도 중국에서는 이 문제가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당국의 철저한 통제 속에 인터넷과 언론이 이 문제를 묻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관영 언론은 오로지 ‘범죄자’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키로 한 것이 중국의 발전을 방해하려는 ‘서방의 정치적 음모’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식인들을 제외한 중국 일반 시민들은 혼돈에 빠졌다. 고대했던 중국 국적자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지만 기뻐하기는커녕 ‘음모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베이징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리카이푸(李開福)는 “류샤오보는 중국의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 사람인데 왜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느냐.”며 “국내 문제는 다른 국가나 단체가 간섭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적을 계량화할 수 있는 화학상이나 물리학상 등과 달리 평화상에는 심사위원들의 가치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면서 “불순한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부로 추앙받는 마오쩌둥 전 주석의 고향인 후난성의 한 택시기사는 전화통화에서 “류샤오보 관련 소식을 알고 있다.”면서 “공산당 일당독재 폐지를 요구하는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제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인권 상황은 30년 전보다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서부 쓰촨성에서 일자리를 찾아 3년 전 베이징으로 올라왔다는 한 농민공은 “류샤오보가 누군지 진짜 모르겠다.”면서 “노벨상을 받은 것은 축하해줘야겠지만 국가가 반대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본격적으로 언론을 통한 대응에 들어갔다. 관영 신화통신은 ‘노벨평화상은 서방의 정치적 도구’라는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의 칼럼 내용을 전재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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