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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테러 ‘관타나모 5인‘ 2021년 1월에 재판 시작 왜 이제야?

    9·11 테러 ‘관타나모 5인‘ 2021년 1월에 재판 시작 왜 이제야?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일이다.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했던 ‘관타나모 5인’이 오는 2021년 1월 11일 정식 군사재판에 들어간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서자마자 벌어진 참사에 대한 첫 정식 재판이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시작된다. 테러 주범으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전 작전사령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를 비롯해 용의자 5명은 미군 해군기지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데 이제야 군사법원은 이들에 대한 정식 공판 일정을 처음으로 확정했다. 재판 일정이 확정됨에 따라 군사법원은 12명으로 구성되는 배심원단 선정에 들어갈 예정인데 아홉 달 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판은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서 진행되며, 최고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들 5명의 용의자는 2002~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됐다. 특히 칼리드 셰이크모하메드는 2008년 관타나모 군사법정에 설 예정이었다. 그를 비롯해 5명을 기소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기꺼이 순교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09년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약속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뉴욕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정치적 논란 속에 차일피일 미뤄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그리고 2011년 다시 관타나모 특별군사법정에 세우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지난 2012년 6월에야 정식 기소됐는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기소를 추진했을 때의 혐의와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그 뒤 30차례 이상의 재판 전 심리(Pretrial Hearing)를 진행한 바 있다.미국 국방부는 이전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9·11 테러의 “A부터 Z까지” 책임이 있음을 실토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 검찰은 그가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탄 공격,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미국 언론이 다니엘 펄 살해, 2001년 신발 폭탄을 이용해 항공기를 날려버릴 시도가 미수에 그친 것 등 다수의 공격을 기획했다고 인정했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의 변호인단은 2006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피고들이 했던 자백을 증거로 제출하는 일을 막는 데 매달려왔다. 구금 기간 거친 심문을 통해 얻어낸 자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관타나모에서 반복적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문서에 따르면 그는 물고문을 183차례나 당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다른 네 명, 왈리드 빈 아타시, 람지 빈 알시브, 아마르 알발루치, 무스타파 알하우사위 등도 미군에 인도되기 전에 CIA가 해외에서 운영하는 감옥, 일명 ‘블랙 사이트’들에서 심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北 억류됐다 풀려난 “한미 스파이” 김동철 목사 “날 돕던 북한인 6명 처형”

    北 억류됐다 풀려난 “한미 스파이” 김동철 목사 “날 돕던 북한인 6명 처형”

    북한에 31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지난해 5월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65) 목사가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최상훈 기자와 서울에서 만난 9일(현지시간) 인터뷰 기사를 통해 강제노역과 고문 등 억류 당시의 뒷얘기를 전했다. 다음날 신문 A섹션 7쪽에 게재됐다. 앞서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털어놓았던 그는 자신을 도운 북한인 6명이 처형됐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 목사는 1980년대 부친의 권유로 미국에 이민을 간 뒤 목사가 됐다. 2000년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 2002년에는 대북사업을 위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나선지구 거주 허가를 받았다. 280만달러의 전 재산을 털어 현지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두만강 호텔을 열었다. 연간 호텔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0만달러를 북한 정부에 냈다. 김 목사는 북한에서 사업을 하며 한국과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이 접근해 스파이 활동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손목시계에 장착된 카메라와 도청 장치, 활동자금 등을 건네받았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수집을 요구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북한 내 정보원들에게 돈을 주고, 핵 과학자나 무기시설에서 종사하는 북한 관리들과의 접촉을 위해 군 엘리트들에 대한 접근을 지렛대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이 같은 정권이 지구 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아해지면서 더 혼란스럽고 궁금해졌다”면서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아내 정보기관과 공유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체포돼 약 31개월간 억류 생활을 했다. 누군가 자신의 차 안에 “김 회장, 당신이 찾던 정보요”라고 말하며 봉투를 던졌는데 그 안에는 컴퓨터 저장 장치와 근처 항구에서 촬영한 선박 사진 등이 들어있었다. 얼마 안가 국가보위부 요원이 차를 세워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미 늦었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는 간첩과 체제전복 혐의가 붙여졌고, 2016년 4월 노동교화형 10년을 언도 받았다. 자신에 협력했던 북한인 6명도 처형돼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체포된 후 7개월 동안 나선과 평양의 안전가옥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요원들이 두 손을 뒤로 묶고 무릎을 꿇린 뒤 머리를 욕조 물 속에 집어넣는 물고문을 했으며,이 때문에 두차례나 기절했다고 주장했다.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고 눈을 가린 채 평양 외곽의 강제노역소로 끌려갔다면서 ‘수인번호 429(번)’를 달고 일주일에 6일,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노역을 했다고 설명했다. 관리 요원들이 겨울에는 언 땅을 파게 한 뒤 다시 묻게 했다고 말했다. 북측이 제공한 식사는 현미 밥과 된장국, 깍두기 세 조각으로 변함이 없었다면서 베리류나 식물 뿌리를 캐먹고, 심지어 단백질 보충을 위해 유충을 잡아 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여러 차례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다면서 8명의 무장 경비원들이 하루 24시간 교대로 밀착 감시해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고문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만성적인 허리 통증 등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때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김상덕(미국 이름 토니 김), 김학송 씨 등과 함께 석방돼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미국으로 귀환했다.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안착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기내에 올라 환영했는데 그때까지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북한에 대해 “애증의 나라”라면서 “북한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통제가 강력한 독재이며 노예 시스템”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자신의 억류 생활상 등을 담은 ‘보더 라이더’(Border Rider)를 출간했으며, 영어와 일본어판도 낼 예정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법서라] 고작 6일 누린 ‘납북어부 재심’ 무죄 기쁨…‘과거사 원칙’ 저버린 검찰

    [법서라] 고작 6일 누린 ‘납북어부 재심’ 무죄 기쁨…‘과거사 원칙’ 저버린 검찰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오는 25일 취임하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겠다는 한 어부가 있습니다. 이 어부는 박정희 정권 당시 간첩 누명을 뒤집어 쓴 채 50년을 살아오다 최근 재심심판을 통해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한 검찰이 항소를 제기하면서 지난한 재판을 다시 이어가야 합니다. 어부는 “검찰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은 지켜달라”면서 새로이 검찰조직을 이끌어갈 신임 검찰총장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실질적으로 불법구금·가혹행위가 인정될 수 있는 경우 법원의 재심개시결정을 존중하여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고, 재심 무죄 선고시 일률적인 상소를 지양하고, 유죄 인정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소를 제기하지 않는다.”- 2019년 6월 27일 대검찰청 ‘과거사 사건 관련 후속조치’ 中 위 문장은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선 새로운 증거가 있지 않은 한 상소하지 않겠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달 27일 전국 검찰청을 지휘하는 대검은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과거사 재심사건 업무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과거 검찰이 일부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문무일 현 검찰총장이 직접 사과한 데 따른 변화입니다. 검사는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과거사 사건은 고문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 진술이 많기 때문에 검찰도 적극적으로 ‘무죄 가능성’도 찾아내겠다는 취지죠. 군사 독재정권 시절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던 이들에게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과거사를 반성하겠다고 외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 벌써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간첩 누명은 쓴 6명 가운데 이미 5명이 세상을 떠난 ‘제5공진호 납북 어부’ 재심 이야기입니다.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검찰은 즉각 항소했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는 “말뿐인 원칙과 약속이었느냐”고 절망했습니다. ■납북된 18살 막내 선원…불법감금·고문으로 ‘간첩’ 누명 1968년 5월, ‘제5공진호’ 막내 선원 남정길씨는 조업 도중 동료 5명과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가 5개월 만에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남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군사 독재정권의 ‘간첩몰이’였습니다. 정보과 형사들은 남씨 일행을 한달 동안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가해 ‘납북 피해자’에서 ‘간첩’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당시 남씨의 나이는 고작 18살.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1969년 징역 1~3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검찰 공소장엔 “피고인들이 1968년 5월 24일 12시경 제5호 공진호에 승선해 경기도 연평도 근해 해상에서 어로작업 중, 선장인 김창록이 북괴 지배 하에 있는 지역인 안골에 들어가야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으니 안골에 들어가서 어로작업을 할 것을 제의하자, 피고인들은 모두 이에 찬동했다”면서 “반국가 단체인 북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했다”고 명시됐습니다. (남씨 일행은 군사기밀 누설 관련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당시 법원은 ‘북괴 구성원들에게 강요된 행위’라며 이 부분에 국한해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유죄 판결의 핵심 근거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자백이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스스로 고기잡이를 위해 북한 영해에 들어간 사실을 인정했고, 법정에서도 유사하게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받아낸 진술은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고, 고문 경찰은 법정까지 나타나 어부들을 지켜보며 심리적으로 압박했습니다. 그 속에서 경찰, 검찰, 법원, 누구도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남씨 일행은 평생을 반공법을 위반한 간첩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50년 만에 무죄 판결 “고문, 가혹행위에 의한 진술은 증거능력 없다” 그렇게 50년을 억울함 속에서 살아온 남씨는 원곡 법률사무소를 만나 이미 세상을 떠난 납북 어부 5명의 유가족과 함께 지난해 7월에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지난 3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고, 4개월 만인 지난 11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는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장기간 불법구금과 광범위하게 이뤄진 가혹행위, 협박, 회유 등으로 인해 피고인들이 경찰 진술뿐만 아니라 검찰 및 법정에서의 진술까지도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추단되거나, 적어도 그 임의성에 강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임의성이 없는 진술’이란 허위진술을 강요할 위험성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라는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1968년 경찰 조사나 법정에서 나왔던 진술 역시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죠.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납북됐다가 1968년 10월 인청항으로 귀환한 뒤 11월 군산경찰서로 이동해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은 사실 ▲군산경찰서 소속 수사관 등이 무허가 여관에서 자백을 강요하면서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으로 강압적인 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요의 진술서 등을 작성한 사실 ▲검찰 조사와 공판기일(법정)에서도 고문 경찰관이 배석해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 등을 기록에 의해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50년 만에 이뤄낸 명예회복이었지만, 남씨의 동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가장 모진 고문을 당했던 기관장 박남주씨는 징역을 마치고 2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남씨 본인도 고문 후유증으로 뇌출혈이 생겨 말이 어눌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무죄 결과를 받아든 남씨는 “50년의 세월 동안 누구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었는데 이제 우리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이제 겨우 1심이 끝났지만, 대검이 불과 한 달 전에 ‘과거사 원칙’을 발표했기 때문에 남씨 측은 사실상 재판이 끝났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행보를 남씨 측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것입니다.■검찰의 항소 “재판부가 법리 오인…법정에서 진술은 유효” 1968년 남씨 일행을 재판에 넘겨 유죄를 이끌어내고, 51년이 흘러선 이번 재심 공소유지를 맡은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지난 17일 ‘납북어부 사건’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했습니다. 6일 만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임의성’, 즉 강요에 의한 진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 재판부가 법리적으로 오인을 했다는 취지입니다. 군산지청의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대검에서 규정한 ‘과거사 원칙’의 방향과 취지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해도 법정에서 고문받은 건 아니잖아요?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일부는 인정했습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진술했다고 판단되기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재판부가 그 부분에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 입장에선 유사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유죄로 인정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대로 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경찰 단계에선 고문을 받았더라도, 재판 단계에서까지 고문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검찰은 재심심판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신문이 확보한 검찰 변론재개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은 ‘피고인 등이 그 공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에서 받은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심리적 억압상태 때문에 자유롭게 진술하기 어렵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거나 그런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을 찾아보긴 어렵다’며 혐의를 자백한 당시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그 근거로 1969년 당시 공판 조서를 제시했습니다. 조서를 살펴보면 남씨 일행은 고기잡이를 위해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사실이 있느냐는 판사의 물음에 대부분 ‘맞다’는 취지로 대답한 내용이 나옵니다.재판장 : 연평도에서 고기잡이가 여의치 않아 선장인 김창록의 제의로 군사분계선 넘어 황해도 구월골에 고기잡이를 간 사실이 있는가요남정길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재판장 :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 북괴에 납치된다는 사실을 몰랐던가요남정길 : 그런 위험성은 인식하였읍니다만 고기를 못 잡으면 보수를 못 받게 되니까 설마 붙잡히지는 않을 터이지 하는 요행수를 믿고 고기 잡을 목적으로 선장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 넘어가서 조업을 한 것입니다검찰은 남씨 일행이 법정에서 경찰의 고문을 폭로하기도 했다며, 이는 강요받아 진술하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재판장 : 군산에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는데 어떤가요피고인1 : 그런 말은 전혀 한 일이 없는데 군산경찰서 정보과에서 너무 심한 고문을 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거짓 진술했습니다재판장 : 군산비행장의 비행기 대수가 500대쯤 금년에 들어왔다는 말을 했든가요피고인2 : 이북에서는 그런 말을 묻지 아니하여 말한 사실이 없는데, 군산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배 안에서 그런 말이 있었는데 왜 말한 일이 없다고 하느냐면서 고문을 하기에 할 수 없이 그런 말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변호인의 반격 “고문 29일 만에 열린 재판, 자유로운 환경이었다고요?” 남씨의 변호를 맡은 원곡 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의 입장이 충격적”이라고 탄식부터 내뱉었습니다. 고문을 당하고서 겨우 29일이 지나 공판이 열렸는데, 그들이 고문당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문으로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는데,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는데, 법정에서 제대로 된 진술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법정에서 고문을 당하진 않았겠죠. 또 누군가는 혐의를 인정하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 고문 사실을 밝혔겠죠. 그렇다고 이미 짓밟힌 상태에서 한 법정 진술을 꼬투리 잡으며 ‘너네 그때 자백했으니까 지금도 유죄야’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에 억압된 환경이 아니다’라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남씨 측은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검사가 일부 부인 취지, 고문 폭로라고 언급한 진술들은 현재 재심심판절차에서의 유무죄 판단대상으로 삼는 공소사실과 관한 군사기밀누설과 관련된 진술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고문 관련 진술을 하면서도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서류의 진정성립과 진술의 임의성은 다투지도 않는 등 강한 의심이 듭니다. 심리적 억압상태 때문에 자유롭게 진술할 수 없다는 사정은 명백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무죄 판결을 통해 어부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검사가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만으론 임의성에 대한 의문점을 없애는 검사의 적극적인 입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상급법원이 자신들의 주장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어부라서 무시하는 건가요” 항소와 상고, 즉 상소제도는 형사소송법 체계의 기본입니다.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사 사건만큼은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이미 수십 년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제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 변호사는 “일반 사건이라면 이해한다. 검사도 법률가인데, 당연히 자기 주장이 있고 고집이 있으니 법률 판단을 더 받아보고 싶겠다”면서도 “그런데 과거사 사건에 대해 대검이 매뉴얼까지 만든 것은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국가도 할 말은 있겠지만, 국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니까 적어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한 ‘우리가 물어뜯진 말자’는 취지 아니었냐”고 덧붙였습니다.남씨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고 합니다. 무죄 판결을 받아들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까지 말했지만, 검찰 항소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에 다시 뛰어들어야 합니다. 항소 소식을 듣고 “유학생 사건은 자체적으로 조사까지 해주면서, 우리 사건은 고작 어부라서 무시하는 거냐”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동료들을 떠내보내고서 외로움도, 허망함도 큰 탓이었을 겁니다. 오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로 취임합니다. 윤 신임 총장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 전쟁범죄 등 반인권적인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의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5공진호 납북 어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를 비롯한 국가권력의 피해자들은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납북선원들 50년만에 재심서 무죄

    1960년대 납북됐다가 풀려나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선원들이 5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제5공진호 선원 6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은 1968년 5월 24일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에 나포돼 5개월간 억류됐다. 같은 해 10월 말 귀환한 이들은 군사분계선을 월선한 혐의로 연행됐고, 경찰에서 불법 구금된 채 구타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선원들은 재판에 넘겨져 1969년 징역 1∼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유죄 증거들이 수사단계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로 만들어져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문소영 칼럼] 독재란 무엇인가

    [문소영 칼럼] 독재란 무엇인가

    ‘독재’의 사전적 의미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행정·입법·사법의 삼권분립을 부인한 채 한 개인이나 그의 측근이 통치하는 전제정치를 말한다. 고대 로마가 내란이나 외침 등 위급한 상황에서 원로원이 집정관에게 법을 초월한 독재권을 행사하도록 한 데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독재에서 시민의 삶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표적인 독재인 ‘박정희 개발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을 살펴보면 되겠다. 박정희 시대 독재는 ‘긴급조치’로 대변된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 제53조항으로,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 정지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의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실제 적용은 완전히 달랐다. ‘긴급조치 1호’를 보면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유신헌법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과 긴급조치를 비방한 사람”은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여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즉 대통령에게 반하는 정치적 소신을 밝힌다는 이유로 대학생과 지식인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날조된 반국가단체 조직 활동으로 엮어 재판하고 사형하는 등 ‘사법살인’이 횡행했다.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막걸리에 취한 김에 대통령 욕을 했다고 불잡혀 가던 엄혹한 시절이다. ‘없으면 나라님 욕도 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일부는 체험담으로 증언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5·18 광주시민 학살로 정권의 토대를 잡은 전두환 정부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을 ‘호헌’으로 응수하며 탄압했다. 자의적으로 거동이 수상하다며 불심검문하고 가방에 혹여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교양서적이 들어 있으면 불온서적 소지죄로 경찰의 “함께 가시죠”에 응해야 했던 시절이다. 1986년 부천경찰서의 문귀동 경사는 여대생을 잡아다가 성고문을 했는가 하면, 1987년 1월에는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뺌한 박종철 물고문 사망사건이, 6월에는 직격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운동권들을 ‘녹화사업’하는 중에 의문사가 늘어나던 시절은 노태우 정권 때로도 이어졌는데, 1989년 이철규 조선대 학생의 의문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야당의 정치인들이 자유롭게 “독재자”라고 저격하며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면, ‘막걸리 긴급조치’라던 박정희 시대와 비교해 과연 독재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넘쳐 흐르다 보니 ‘달창’과 같은 여성 비하적인 혐오 발언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입에서 나오고, ‘태극기 집회’ 등에서 대법원이 부인한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시민사회를 교란하는 지경이 됐다. 386세대의 대표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집회에서 흘러나올 때에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소 부조리해 보이는 이런 풍경 탓에 지난 50~60년 동안 민주주의를 열망한 세력들이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바꿔 놓았더니 ‘죽 쑤어서 개 줬다’며 분개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수준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감내할 만하다. 문제는 한국당이 극우인 태극기 집회 세력과 거리를 두지 않고, 이들과 연대하거나 오류적 행태를 방치할 때다. 한국당은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극우들의 준동을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내버려두었다. 대단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독일 나치의 등장은 제도권 정당들이 극우들을 정치권 진입을 어리석게도 막지 못한 탓에 발생했다고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밝히고 있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극단적인 세력을 배제하며 억제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좌파 포퓰리즘에 대해 지적질하면서 한국당이 지지율을 올리려고 극단적 세력과 거리 두기에 실패한다면, 수십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온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독재정권의 여당이던 공화당·민정당·민자당의 후신인 한국당이 정권만 잡는다면 극우세력이 끼어들어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식의 착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 고문에 익숙했던 경찰

    1990년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검찰도 이를 알았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7일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심의 결과 범인으로 몰린 최인철씨와 장동익씨가 경찰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발표했다.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낙동강변에서 데이트 중이던 여성이 강간살해당한 뒤 시신이 유기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채 발견됐다. 미제로 남았던 사건은 이듬해 11월 경찰관 사칭 사건 용의자인 최씨와 장씨가 범행 사실을 자백해 재판에 넘겨졌으며, 이들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을 복역하다 모범수로 감형돼 2013년 출소했다.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변론한 문재인 대통령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주장했으나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최씨와 장씨의 고문 피해 주장이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다며 부산 사하경찰서 수사팀에 의한 고문 행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사하서 수사팀은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고, 현장검증을 하루에 마친 것처럼 검증 조사를 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와 장씨는 검찰 수사에서도 고문 피해를 주장했지만 수사검사는 이들의 진술을 확인하지 않고, 송치된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면 발견할 수 있는 모순점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수사검사는 피해 남성의 진술에 부합되도록 감정서를 왜곡해 해석하는 등 객관의무위반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최씨와 장씨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를 통해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전병헌, 징역 8년6개월 구형에 “생사람 잡아…깊은 모멸감”

    전병헌, 징역 8년6개월 구형에 “생사람 잡아…깊은 모멸감”

    한국e스포츠협회를 통해 여러 대기업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병헌 전 의원에게 검찰이 총 징역 8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전 전 의원의 뇌물 혐의에 징역 7년과 벌금 6억원, 5억6000여만원의 추징, 직권남용과 업무상 횡령 혐의에는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금품 수수 전까지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업들을 압박하다가 금품 수수 후에는 기업의 불법 행위를 눈감았다”라며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기획재정부 공무원을 압박해 e스포츠협회에 부당하게 예산을 지원하게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런데도 피고인은 범행을 전부 부인하며 오히려 ‘비서관에게서 제대로 보고를 받지 않았다’며 모든 책임을 비서관에게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 전 의원은 최후진술에서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범죄자가 돼 있었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로 생사람을 잡고 있다. 검찰이 일반적인 의정활동을 모두 범죄 의도와 정황으로 몰아가는 것에 깊은 모멸감을 느끼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전 전 의원은 “선의와 상식적 활동을 불법 활동으로 왜곡해 시작한 수사에서, 첫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검찰은 별건 수사·표적 수사라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죄를 끌어내기 위한 먼지털기식 기소를 했다. 70∼80년대 물고문 조사와 다를 것이 뭐냐는 항의도 터져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실이 아니면 물러서는 것이 용기이고 정의의 실현인데,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한 번 짜둔 프레임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전 전 의원은 국회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의원 시절 롯데홈쇼핑,GS홈쇼핑,KT에 요구해 각각 3억원, 1억5000만원, 1억원 등 총 5억5000만원을 e스포츠협회에 기부하거나 후원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또 청와대 정무수석 재직 시 기획재정부 예산 담당 간부에게 전화해 협회 예산 지원을 요구하고, 협회 자금을 횡령한 혐의도 받는다. 전 전 의원의 선고 공판은 내달 21일 오후 열린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박종철을 만나러 갑니다”

    “박종철을 만나러 갑니다”

    13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예정 부지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 32주기 시민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박 열사의 사진을 들고 “보고 싶다, 종철아”라고 외치며 부지를 돌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올해 경찰로부터 이관받아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한다. 연합뉴스
  • 시리아 난민 소년에 ‘물고문’ 하는 또래들…영국 사회 충격

    시리아 난민 소년에 ‘물고문’ 하는 또래들…영국 사회 충격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이 학교에서 ‘물고문’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영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영국 메트로 등 현지 언론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웨스트요크셔 허더즈필드에 있는 한 학교 학생들이 시리아에서 온 난민 소년 한 명을 폭행하는 장면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됐다. 가해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난민 소년의 목을 눌러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코와 입에 물을 마구 들이부었다. 이중 한 소년은 “익사시키겠다”며 키득거렸고, 피해 학생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피해 학생은 간신히 가해학생들을 피해 현장에서 도망쳤지만, 가해 학생들은 도망치는 뒷모습에도 비웃음을 날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해 학생은 2년 전 영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시리아 난민 출신의 15세 학생으로, 이번 영상은 1개월 여 전인 지난달 25일 오후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최초로 유포한 사람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영상이 공개된 후 1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후 해당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피해 학생의 여동생 역시 또래들로부터 오빠와 비슷한 차별 및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영국 사회가 더욱 충격에 빠졌다. 시리아 출신의 한 저널리스트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죽음과 파괴, 폭력을 피해 영국으로 온 아이들이 학교에서 악의적인 공격을 받고 물고문을 당하는 등 괴롭힘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고, 많은 시민들이 가해 학생들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이후 피해 학생과 그의 가족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크라우딩펀드 모금을 시작했고, 몇 시간만에 2만 8000파운드, 한화로 4030만원이 넘는 온정이 모였다. 한편 폭력사건이 발생한 학교의 교장은 “학생들의 안전과 복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경찰은 문제의 영상에 등장하는 가해 소년들을 대상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탁 치니 억 하고…’ 박종철 사건 조작, 검찰 알고도 덮었다

    당시 청와대·안기부에 굴복해 은폐 방조 김근태 사건도 검찰이 검찰권 남용했다 피해 당사자에 공식 사과·재발 방지해야 1980년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 당시 검찰이 정권의 외압을 받고 사건을 축소·졸속 수사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11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김근태 고문은폐 사건에 대해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보고를 받고 당시 검찰의 졸속·부실 수사와 사건은폐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특히 박종철 사건에 대해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수사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검찰총장 이하 검찰 지휘부에 전달되는 청와대 및 국가안전기획부의 외압에 굴복해 졸속·늦장·부실 수사로 점철됐음을 확인했다”며 검찰이 당시 정권으로부터 외압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과거사위는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검찰의 공식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는 한편 사실상 정권의 외압을 가능하게 했던 안보수사조정권 폐지를 권고했다. 1964년 도입된 안보수사조정권은 정보기관이 안보사범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보받거나 사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현재도 효력이 유지되고 있다. 박종철 사건은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질식사한 사건이다. 당시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사망 원인을 거짓 발표했고, 경찰은 가해자를 2명으로 축소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준비하던 상황에서 ‘손을 떼라’는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결정에 굴복해 수사를 치안본부에 일임하는 등 사실상 사건 은폐·조작 기회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또 치안본부장의 발표가 거짓이라는 점을 알았음에도 “조작·축소 가담 혐의가 없다”고 처분하는 등 수사 의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씨의 부친을 찾아가 사죄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후 같은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확립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거사위는 김근태 사건에 대해서도 당시 검찰의 검찰권 남용을 인정했다. 1985년 당시 민청학련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은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대공분실에 강제 연행돼 고문을 받은 사실을 검찰에 알리고 수사를 요구했으나 검찰은 이를 묵살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고문 사실을 인지하고도 안기부가 제공한 대응방안을 받아들이고 이를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고 전했다. 당시 검찰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공분실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검증이나 구속 장소에 대한 감찰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별세…문재인 대통령 애도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별세…문재인 대통령 애도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 열사. 그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노환으로 28일 별세했다. 89세. 문재인 대통령은 고인에 대해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비보를 듣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 때로는 아들 이상으로 민주주의자로 사셨습니다”라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고인은 지난해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런데 최근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며칠 간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부산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오는 31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저는 아버님의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가고, 주름이 깊어지는 날들을 줄곧 보아왔습니다. 언제나 변치않고 연대가 필요한 곳에 함께 계셨습니다. 진심을 다한 위로와 조용한 응원으로 주변에 힘을 주셨습니다”라고 밝혔다.이어 문 대통령은 “아버님, 지금쯤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계실 것 같습니다. 박종철은 민주주의의 영원한 불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아버님 또한 깊은 족적을 남기셨습니다”라면서 “아버님, 아픔을 참아내며 오래도록 고생하셨습니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라고 애도했다.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가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는 독재의 무덤입니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의 상징입니다. 지난 6.10 기념일 저는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면서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고인의 아들인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다음날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허위 조사 결과를 발표해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다.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 사건은 올 초 개봉한 영화 ‘1987’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89세로 별세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89세로 별세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 열사. 그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지난해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누워 지냈다. 고인은 최근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며칠 간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부산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오는 31일이다. 앞서 고인은 지난 3월 20일 문무일 검찰총장으로부터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일에 대해 사과를 받았다. 당시 문 총장은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고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겠다”면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고인은 문 총장에게 “와 줘서 고맙다”고 답했지만 노환으로 기력이 약해진 탓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고인의 아들인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다음날 사망했다.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허위 조사 결과를 발표해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다.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 사건은 올 초 개봉한 영화 ‘1987’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박씨의 부음을 접하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민 청장은 경찰청 차장이던 지난 1월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박 열사가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고 시민사회에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 총장을 비롯한 부산고등검찰청장과 부산지방검찰청장 등 검찰 고위인사들도 이날 오후 고인의 빈소를 조문할 예정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박종철, 탁 치니 억 하고…”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사망

    “박종철, 탁 치니 억 하고…”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사망

    1987년 6월 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발언으로 전국민적 분노를 불러왔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이 6일 오후 11시 40분쯤 노환으로 사망했다. 86세.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1933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강민창 전 본부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안동사범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전했다. 종전 후 경찰에 입문해 1986년 1월 제10대 치안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씨가 고문 수사로 악명이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의 물고문으로 사망했을 때 강민창 전 본부장이 경찰의 최고 책임자였다. 경찰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지만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갖가지 노력으로 사건의 진상이 언론에 보도됐다. 강민창 전 본부장은 박종철씨 사인이 물고문과 관계 없는 단순 쇼크사라면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이 해명은 더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물고문이 있었을 것이라는 전국민적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영화 ‘1987’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박종철씨를 고문했던 경찰관과 함께 강민창 전 본부장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1993년 7월 27일 대법원은 강민창 전 본부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전두환 정권 시절 자행됐던 경찰의 수많은 고문 수사의 최고책임자로서 너무 가벼운 판결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강민창 전 본부장의 장례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가폭력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조성

    국가폭력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조성

    내년 이관… 시민단체가 운영 독재정권 시절 국가 폭력과 인권 탄압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추모·체험학습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관리도 시민단체가 맡는다.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독한 ‘6·10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엔 고문과 불법 감금, 장기 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많은 분의 절규와 눈물이 담겼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면서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새로 만들어지는 민주인권기념관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미래를 열어 가는 공간이 될 것”이라면서 “공공기관, 인권단체, 고문 피해자와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이 이 공간을 함께 키워 가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덧붙였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등은 지난 1월 “시민사회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운영하도록 해 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해 제6기 이사회 출범 후 민주화 기념관 건립을 재추진하면서 이곳을 유력 후보지로 검토했다. 이에 정부는 과거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시민사회에 환원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로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지만, 이는 결국 그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민주화운동 시절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지난해 개봉해 누적 관객수 700만명을 돌파한 영화 ‘1987’에 관련 내용이 묘사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민주화 이후 이곳을 보안분실로 이용하다가 2005년 10월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경했다. 정부는 우선 관리권을 경찰에서 행안부로 옮겨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조성한다. 이어 이르면 내년 초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관리권을 넘기는 절차를 밟는다. 박종철 기념사업회와 고문피해자 등으로 ‘인권기념관 추진위원회’도 꾸린다.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역사학자도 참여한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건물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기로 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시민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의 품으로

    시민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의 품으로

    국가에 의한 인권 탄압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내년 초부터 시민사회로 관리권 이관절차가 진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6·10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엔 고문과 불법감금, 장기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많은 분의 절규와 눈물이 담겼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면서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사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독했다. 지난 1월 ‘박종철 기념사업회’ 등은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토록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해 제6기 이사회 출범 후 민주화 기념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면서, 이곳을 유력한 후보지로 검토했다. 이에 정부는 과거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곳을 시민사회에 환원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지만, 이는 결국 그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2011년 숨을 거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고문을 받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개봉해 누적 관객 수 700만을 돌파한 영화 ‘1987’에 관련 내용이 묘사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민주화 이후 이곳을 보안분실로 이용하다가 2005년 10월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경해 지금에 이른다. 일단 관리권을 경찰에서 행안부로 이관해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건립하도록 돕는다. 관리권 이관은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를 맡긴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고문피해자 등으로 ‘인권기념관 추진위원회’도 꾸려 이들이 주도하는 활용방안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역사학자가 참여한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건물의 원형은 최대한 보존한다. 일반 시민들은 이곳에서 민주화 열사에 대한 추모나 체험형 교육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美 CIA 첫 여성국장 탄생

    美 CIA 첫 여성국장 탄생

    물고문 전력에 반성문 서한 제출도미국 중앙정보국(CIA)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장이 탄생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 상원은 17일(현지시간) 지나 해스펠(61) CIA 국장 내정자에 대한 인준안을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가결했다. 해스펠 신임 국장은 인준 과정에서 과거 물고문 전력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였었다. CIA가 해외 비밀공작을 수행하던 2013년 총책임자였던 그가 태국에서 ‘고양이 눈’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비밀 감옥을 운영했을 때 물고문 등 가혹하고 잔인한 심문 기법을 지휘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베트남전 당시 포로가 돼 고문을 받은 경험이 있는 정계 거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악성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매케인 의원은 인준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논란이 확산되자 해스펠 국장은 상원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 의원에게 “(9·11 이후의) 가혹한 구금과 심문 프로그램은 시행되지 않았어야 했다”는 내용이 담긴 반성문 취지의 서한을 보냈고, 결국 상당수 의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워너 의원은 표결에 앞서 “해스펠은 고문 같은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지시를 대통령이 할 경우 진실을 말하고 그에 맞설 사람이라고 믿는다”며 지지의 뜻을 거듭 밝혔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물고문 의혹’ 해스펠 “비도덕적 지시 피할 것”

    ‘물고문 의혹’ 해스펠 “비도덕적 지시 피할 것”

    과거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물고문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가 9일(현지시간)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고문을 지시하더라도 따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스펠은 의회의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의회 인준 문턱은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이날 상원 정보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고문 프로그램의 비도덕성 및 실효성 여부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해스펠은 “트럼프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한’ 일을 수행하도록 지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내 도덕 나침반은 강하다. 나는 어떤 일이 기술적으로는 합법적이어도 내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면 CIA가 떠맡지 않게 하겠다”고 답했다. CIA의 과거 구금과 심문 프로그램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거듭 확인했다. “고문이 효과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믿지는 않는다”면서도 과거 심문을 통해 중요 첩보를 확보한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인준 표결을 앞두고 상원 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미 상원은 공화당 51석, 민주당 49석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조 맨친 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청문회 직후 찬성 의사를 나타내 해스펠이 무난히 인준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오늘 지나 해스펠이 멋진 일을 했다. CIA를 운영하기에 (해스펠만큼) 적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청문회 통과를 촉구했다. CIA에 33년간 근무한 해스펠은 해외비밀공작 전문가로 지난해 2월 CIA 사상 첫 여성 부국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물고문 저지른 보육교사들, 실형 대신 사회봉사명령 그쳐

    물고문 저지른 보육교사들, 실형 대신 사회봉사명령 그쳐

    부산의 한 아동보호시설에서 몇년에 걸쳐 물고문을 포함해 아동에게 상습적으로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보육교사 7명이 법원으로부터 실형이 아닌 사회봉사명령을 받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부산가정법원은 최근 아동학대 혐의로 송치된 부산 금정구 A 아동보호시설의 전직 보육교사 7명에게 봉사활동 40시간과 아동학대 예방 교육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20~30대 여성들인 보육교사들은 2010~2014년 시설에 수용된 13~14세 아동 5명을 상습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가정법원에 송치돼 보호처분을 받았다. 보육교사들은 아동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물건을 훔쳤다는 등의 이유로 육체적인 가혹 행위는 물론 사실상의 물고문까지 가했다. 오줌을 싼 벌로 물을 가득 채운 고무 대야나 욕조에 아동의 머리를 강제로 밀어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한 것이다. 한 보육교사는 아동들을 줄 세워 앉힌 뒤 수저 없이 손으로 식판의 밥을 먹게 했다. 다른 보육교사는 아동의 머리채를 잡고 벽에 쥐어박고 밀폐된 장롱에서 잠자게 했다.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나무 막대기로 발바닥을 때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여자아이에게 팬티만 입혀 30분간 복도에 세워두는 일도 있었다. 사탕을 얻어먹었다고 냉장고 속에 있던 사탕 30개를 한꺼번에 다 먹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4년간 상습적으로 일어난 보육교사의 가혹 행위는 2015년 한 아동이 교회 선생님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금정구청은 아동전문보호기관과 사실 확인에 나섰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아동학대 혐의로 보육교사 9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은 이들을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고 7명만 가정법원에 송치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 혐의를 받은 보육교사들이 형벌 대신 사회봉사 등 보호 처분에 그치게 됐다. 해당 보육교사들은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에 모두 A 보호시설을 그만둔 상태다. 박민성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부모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이 같은 학대를 당했다면 보육교사들이 과연 사회봉사 명령만 받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경찰과 검찰 조사, 재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법률대리인 도움을 받으며 피해를 있는 그대로 진술해 사건 진실이 규명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 사무처장은 이어 “아동학대를 저지르면 사회봉사명령이 아닌 강한 처벌이 우선돼야 하며 아동학대 이력이 있으면 관련 시설 등에 근무를 못 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정구청은 법원 결정 이후 A 시설에 보호 중인 60여명의 아동을 다른 기관에 전원시키고 1개월 사용정지 명령을 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물고문 사라졌지만 약자 배려 없는 공권력 자세는 똑같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물고문 사라졌지만 약자 배려 없는 공권력 자세는 똑같아”

    임창용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 - 박준영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 변호사 법은 과연 얼마나 공평한 것일까. 얼마 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면서 든 의구심이다. 15세 소년이 18년 전 택시 기사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10년간 복역했는데, 나중에 진범이 잡힌 사건이다. 소년이 누명을 쓰기까지 경찰의 불법감금과 극심한 폭행이 있었지만, 검사와 판사는 이를 외면했다. 경찰이 내민 소년의 허위자백만을 근거로 법정 최고형을 합작했을 뿐이다. 지난해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은 법(엄밀히 말하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약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극 중 변호사로 나오는 이준영은 실제 이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44) 변호사와 이름이 같다. 박 변호사는 약촌오거리 사건 말고도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과 삼례 나라 슈퍼 살인사건 등 많은 재심을 이끌어 낸 재심 전문 변호사다.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들이 대부분 오래된 사건이지만, 지금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예전의 물고문이나 폭행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서를 함부로 쓰고, 자백했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유무죄를 재단하던 것도 달라졌다고 봐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런 강압적 수사가 있게 했던 본질적 이유는 달라진 게 없어요. ” 그가 강조한 ‘본질’은 경찰이나 검사, 판사 등 법을 집행하고 심판하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자세다. “얼마 전 늦은 밤에 친척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10대인 아이가 밖에서 추위를 피하려 종이를 모아 불을 피우고 길거리에 세워진 차 문 손잡이를 잡아당긴 죄로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거예요. 경찰이 아이를 새벽까지 잡아 두고 심야조사를 하고 있던 거죠. 중범죄도 아닌데 방화와 절도죄 의심만으로요. 심야조사는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죠. ” 반인권적 수사를 막기 위한 규정과 장치는 곳곳에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로선 알려주지 않으면 그런 장치가 있는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나 노숙인 같은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설령 알아도 그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사실 자기 변호가 어려운 약자들을 위한 장치인데 외려 돈 많고 힘센 사람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이용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진술거부권만 해도 만든 취지는 사회 약자들이 강압적 수사에 의해 진술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거든요. 한데 실제론 강자들이 더 애용하죠. 증언거부권이나 조서열람권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조사거부 논란이 일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검찰 조사와 재판에 툭하면 불응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등의 사례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박 변호사는 요즘 ‘낙동강변 2인조 부녀자 살인사건’ 재심 인용을 기다리면서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에 참여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재심을 청구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도 무죄임을 확신한다”면서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한이 된다고 안타까워한 사건이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두 사람은 직접 증거는 하나도 없이 자백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21년간 복역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극심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진행됐던 수사와 재판기록을 검토한 박 변호사는 “당시 기록만으로도 지금 재판하면 판사들이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오염된 자백과 조서에만 집착해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재심 인용 결과가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그는 “사실상의 국가범죄”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터진 1987년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부산의 부랑자 보호시설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실은 부랑자라고 볼 수 없는 아이나 여성 등에 대한 폭행과 성폭행, 강제노역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만행이 자행됐어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거리 청소’를 하려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길거리서 구걸하던 사람들이 적잖이 잡혀갔는데, 복지원과 경찰의 결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뉴스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에선 10년간 513명이 죽어나갔고, 가혹행위 정황이 짙었다. 거쳐 간 사람이 수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에선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복지원 원장은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는 데 그쳤다. 1심에서 10년 징역형을 받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대법원 파기 환송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당시 그러한 만행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제대로 조사하겠다”고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만 해도 나중엔 진상이 밝혀지고 인권신장으로 이어졌어요.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이 남영동 분실을 찾거나 박종철 열사 부친을 찾아가 사과도 했고요. 형제복지원에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 수백명이 죽었는데 그동안 누구도 관심이 없었어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사회 약자들도 ‘법이 평등하구나, 우리도 인간이구나’ 하고 생각할 겁니다.” 박 변호사는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의 외부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의 과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재심사건을 주로 다룬 만큼 검·경의 문제점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재심 사건을 지금의 법과 제도의 문제로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큰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사권 조정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수사를 경찰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법적으로 인정해 줄 필요도 있어요. 다만 경찰이 현재 시점에서 검찰의 수사지휘와 특수수사 역량을 무리 없이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접한 일선 경찰 중엔 상당수가 아직 검찰의 깨알 같은 수사지휘를 원하고 있었어요. 물론 경찰에도 능력이 뛰어난 간부들이 많지만 수사권을 완전히 넘겨주기엔 좀더 준비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 변호사는 또 “일반사법경찰과 특수사법경찰을 한데 묶어 수사권 독립을 논의하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이 합리적으로 권한을 나누고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sdragon@seoul.co.kr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사건만 맡는 ‘흙수저’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전남 완도 옆 노화도란 섬에서 태어나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막일과 배달일, 주먹질을 하면서 방황했다. 지방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군 복무 후 장학금을 못 받게 되자 자퇴한 뒤 군대 선임을 따라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일찍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악착같이 공부했고, 5년 만인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초기 국선변호를 주로 맡았다. 인맥과 학벌에 밀린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면서 자기 방어권이 약한 사람들을 주로 만났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가출 소녀들의 눈물은 그를 울렸고, 이후 재심 사건에만 몰두했다. 박 변호사는 모든 재심 사건에서 무료변론을 하고 있다. 변호할 사람들이 가난한 사회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재심 진행에서 가장 큰 동력인 시민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시민 지지가 있어야 목격자나 관련자들의 증언 확보도 수월해진다. 영리 목적으로 재심을 맡았다가 자칫 시민들의 지지를 잃어 재심 진행이 어려워질까 우려한다. 재심 사건은 한 번 맡으면 평균 5년은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박 변호사는 기존에 맡았던 일반 사건 수임료에 사비까지 털어 재심에 매달렸지만 2년 전 파산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포털사이트를 통한 스토리펀딩에 시민들의 후원이 몰렸고, 그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5억원이 넘는 후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최유정·홍만표 등 법조 거물들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더 큰 지지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박 변호사의 주 수입원은 강연료다. 재심사건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인권 관련 강연이 많이 들어온다. 지난해의 경우 많을 땐 월 20회까지 했다. 올해도 월 10회는 강연에 나선다. 일선 경찰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보호를 주제로 강연한다. 과거사위원회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선 공식적인 국가 업무를 맡았기에 약간의 보수도 받는다. 재심 사건 외에 일반사건은 아예 맡지 않고 있다.
  • “안했다” “잘 모른다”··· ‘재일동포 간첩 조작’ 고문 수사관, 재판 중 법정 구속

    “안했다” “잘 모른다”··· ‘재일동포 간첩 조작’ 고문 수사관, 재판 중 법정 구속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 당시 국군 보안사령부에서 고문 수사를 했던 고병천(79)씨가 2일 위증 사건 재판 종결 직전 법원 직권으로 구속됐다. 피해자들 앞에서 고문 사실을 털어놓지도, 진정한 사과와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자 재판장은 “이 사건의 가장 큰 증거는 피고인”이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이다.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의 심리로 이날 오후 열린 재판에서는 검찰 신문과 구형, 최후 진술을 듣고 변론을 종결하는 결심이 예정돼 있었다. 고씨는 검찰 신문 과정에서는 위증 혐의와 과거 가혹행위에 대해 인정하며 “변명 같지만 실무 수사관인 내가 대표인 듯 조직과 동료들, 선배들을 생각했고 나에게 돌아올 눈총도 무서웠다”면서 “고령의 쓸데 없는 관념으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해 누를 범했다. 모든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고씨는 재일동포 유학생 중 간첩을 색출하겠다는 보안사의 계획에 따라 1982년 11월 이종수씨와 1984년 8월 윤정헌씨를 영장 없이 연행한 뒤 간첩 혐의를 자백하라며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12월 윤씨의 재심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지요”라는 검찰 측 질문에 “네”라고 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윤씨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2012년 고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위증죄 공소시효(7년)가 끝나기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13일 고씨를 기소했다. 이날 재판에는 윤씨를 비롯한 고문 피해자들도 일본에서 건너와 법정에서 고씨의 사과를 기다렸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장경욱 변호사는 “고씨는 그동안 (고문 범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가 뒤늦게 추상적이고 소극적인 인정을 하고 빠져 나가려는 것 같다”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고문 상황을 일일이 고해 반성을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문 피해자인 김정사씨도 “고씨의 변호인은 이미 30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지나지 않았다.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갖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서 “그 때 제 나이 21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온갖 고문을 하고 구타하고 ‘김지하를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한다’니까 ‘그럼 너도 죽으라’며 진짜로 반 죽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책임을 모두 이 사람에게 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한 것에 대해서만이라도 책임을 지든 사과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사죄라는 것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돼야 진정한 사죄”라면서 “고문 자체도 일방적이었는데 사죄받는 것마저 피고인 본인 방식대로 해야 하니 그걸 받으라고 하는 건 잘못을 인정하는 마당에 아닌 것 같다”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고씨가 사죄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 판사는 “그것을 고할 때의 고통이 수반되는 사죄여야만 사죄로서의 무게를 갖는다”고도 덧붙였다. 재판장의 주문에 피해자들의 대리인인 장 변호사가 고씨를 대면해 과거 간첩 조작사건 당시 행했던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 일일이 물어보고 고씨의 답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고씨는 이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한 윤씨, 이씨에 대한 고문은 인정한다면서도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선 “제가 안 했다”, “잘 모른다”며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장 변호사가 “물고문, 전기고문 한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고씨가 “나는 사용한 기억이 없다”고 말해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윤씨는 방청석에서 일어나 “저는 이 사람이 보이는 공간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불안하다. 너무 원통해서”라면서 “이건 사과가 아니다. 애매하게 말하고 그냥 이 재판을 빨리 끝내고 넘어가면서 가능하면 가볍게 형을 받겠다는 속마음이 훤히 보인다”며 고씨를 비난했다. 이 판사는 “이 재판은 위증 사건이지만 본질은 위증에 한정할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다”면서 “피고인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한다고 진술했는데 피해자 측에서 요구하는 사죄 방식과 달랐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기억하기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고 피해자들이 계신 자리에서 그것을 기억해 진술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다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기엔 기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고씨를 질타했다. 이 판사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해내라고 하면서 귀가를 시키는 건 이 사건으로부터 도망 내지는 누군가 보호를 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피고인이 적어도 재판에서 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도주와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집행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 묻자 고씨는 “다 잘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이 판사는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중요하다. 그 무엇 부분을 기억해 내셨으면 좋겠다”면서 “피해자들이 어떻게든 아픈 과거를 정리하고 떠나보내 줄 수 있도록 도와줄 열쇠는 피고인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씨의 변호인이 “고령이고 증거 인멸의 염려가 없다”며 법정 구속이 부당하다고 반발했지만 이 판사는 “사실은 피해자들은 물론이지만 피고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으리라고 상식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면서 “이 사건의 가장 큰 증거는 피고인인데 혹여 다른 생각할까 겁이 났다”며 구속이 불가피했음을 거듭 설명했다. 고씨에 대한 검찰의 구형은 오는 30일 이뤄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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