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물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의대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무료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무도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노동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70
  • “미국에의 존경심 회복” 다짐에 피켓물결/전당대회 폐막 이모저모

    ◎고어,“지금은 세대교체해야 할 시기” 열변 ○…뉴욕 맨허턴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4일간에 걸쳐 열린 미민주당 전당대회는 17일밤 빌 클린턴대통령 후보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끝으로 대미를 장식. 이날밤 10시25분 매머드 실내체육관인 스퀘어가든을 가득 메운 민주당 대의원들의 환호속에 연단에 오른 클린턴후보는 연설 첫머리에 『나는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내고 자녀를 기르며 규칙을 잘 지키는 「잊혀진 중산층」을 위해 대통령후보직을 수락한다』고 말해 그의 백악관탈환의 기반을 중산층으로 삼을 것임을 예고. 그는 미국국민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얘기하면서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온 자신의 성장배경을 설명.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3개월전에 아버지가 빗길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의 희생이 자신을 성장시켜주었다고 말하고,시골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인생공부를 배웠으며,자신의 아내 힐라니로부터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는가를 배웠다며 「가정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해 「가정의 가치」가 공화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은근히 강조. ○…클린턴후보는 부시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를 성토하는 가운데 『일본의 총리가 미국국민들에게 동정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우리를 연민의 정으로 내려다보지 않고 존경심으로 바라보도록 하겠다』고 말해 장내가 떠나갈듯한 박수와 피켓의 환호를 받았다. ○…이날 클린턴후보의 수락연설이 끝나자 대회장 돔천창에서부터 3만5천개의 오색풍선이 일제히 쏟아져내려 장내는 축제의 도가니가 되었고 단상단하 할것없이 악단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어 전당대회의 절정을 장식. ○…미국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앨버트 고어 테네시주 상원의원은 지금은 미국이 세대교체를 해야할 시기라고 주장. 고어 의원은 16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거행된 민주당 전당대회 폐막식에서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다가올 선거는 20세기의 마지막 대통령이 아니라 21세기의 첫 대통령을 뽑는 자리』라면서 빌 클린턴이야말로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는데 있어서 최선의 기회』라고 말했다.
  • 카터,“클린턴은 통합력 있는 인물” 열변/민주 전당대회 이모저모

    ○카터등장에 환호성 ○…14일하오 이틀째 열린 민주당전당대회는 정강정책채택에 앞서 20여명의 연사가 등단,각 분야별로 2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인뒤 당정강정책기초위가 성안한 정강정책안을 별다른 수정없이 채택. 이에따라 빈곤한 계층의 여인이 낙태를 할 경우 정부가 경비를 지급하고 동성연애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공공사업과 환경보호에 정부지출을 대폭 늘린다는 내용의 정책이 당의 공식정강정책으로 확정. ○CNN선 상세보도 ○…밤 11시까지 6시간반동안 진행된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지미 카터 전대통령의 공화당 부시행정부에 대한 비판및 클린턴에 대한 지지연설. 앤드루 영 전아틀랜타시장의 소개로 카터 전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장내는 환호와 피켓의 물결로 가득했고 특히 그의 출신주인 조지아주의 대의원석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지미,지미」를 연호. 백발의 카터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손을 들어 답례한뒤 『워싱턴에 새로운 지도자를 맞음으로써 우리 정부도 자신감을 되찾을수 있으며 백악관과 의사당이 한몸이 됨으로써 정부의막대한 재정적자도 개선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하고 『클린턴은 정직하고 통합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민주당이 그를 고른 것은 훌륭한 선택이라고 거듭 강조. ○3색전땐 35% 지지 ○…4년마다 실시되는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에 관한 TV보도를 시청하는 미국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지난 13일밤에는 30분짜리 민주당 전당 대회 보도보다 「머피 브라운」을 시청한 사람들의 수가 많은것 같다고. CNN­TV는 대회광경을 지세히 보도하고 있으나 3개의 TV망은 그날의 상황에 따라 1시간이나 2시간에 걸쳐 하이라이트만을 보도하고 있는데 금년의 경우처럼 방송시간을 줄이게 되면 정치인이나 학자들은 TV가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현장을 볼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주장. ○…이날 발표된 뉴욕 데일리 뉴스지의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후보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로스 페로씨와의 3파전이 될 경우 근 35%의 지지로 부시대통령의 31%,페로씨의 24%보다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간의 민주당대회 첫날인 지난 13일밤 5백명을 상대로 실시된 이 조사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과의 맞대결인 경우도 클린턴 후보가 44%대 40%로 앞서고 있다는 것.
  • 그 놀랍고 뜨거운 권역 순방르포(팽창하는 이슬람:1)

    ◎프롤로그/“제2부흥기” 중앙아에 재응집 바람/탈이념 물결·소몰락으로 압제 벗어나/아제르공등 6개국 회교세력 “뭉치자”/「무주공산」 연고권 노려 이란·터키 외교전 중앙아시아에 거센 이슬람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새로 탄생한 구소련내 회교공화국들은 새로운 구심점을 찾아 연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란·터키등 강국들은 소련의 퇴장으로 「무주공산」이 된 이 지역에서 맹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과거의 연고권을 내세우며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서방에선 소련의 몰락이 가져온 일시적 「이념의 진공상태」가 이란식의 반서방 회교원리주의나 범터키 회교주의로 메워질 경우 소위 냉전후의 신세계질서는 예측불허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진단 이 대두되고 있다.본사 이기동모스크바특파원이 이란·터키와 구소련 중앙아 공화국들을 찾아 이슬람바람의 실체와 함께 변화하는 사회상들을 취재,시리즈로 보도한다. ○회교사원 수리 한창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세력들이 다시 「사라센의 칼」을 뽑아들고 있다. 예언자마호메트의 깃발아래 새로운 종교 이슬람교가 아라비아사막에 출현한 것은 서기 7세기초.그로부터 1천4백여년만에 당시 주변 3개 대륙으로 마치 「천지개벽하듯」뻗어나가던 바로 그 기세로 코란경전의 봉독소리가 이 일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 기세의 파장은 북아프리카 해안의 모로코에서부터 중앙아 초원지대를 이미 지나고 있다.아프가니스탄에는 13년만에 다시 이슬람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군사쿠데타로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알제리인들은 지난 1월총선을 통해 이미 회교국 수립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했다. 이슬람「제2부흥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지각변동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이념대립체제의 붕괴와 소련방의 해체.지난 70년동안 공산 소련의 굴레에 묶여 겉으론 무신론자로 살아야했던 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등 6개 신생독립국들의 회교도들이 남쪽 카스피해 너머의 이슬람형제들을 찾아나서면서 부터이다.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신생 5개국 5천 7백만 주민은 인종적으로는투르크계이며 7백년전 아시아대륙을 휩쓴 몽골인들의 후예로 타지키스탄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르크계언어를 쓰고 있다.타지크인들은 이란인이 쓰는 파르시어를 쓴다.앙카라의 한 외교관은 『중앙아시아주민 대부분이 터키에 와서 2주일만 배우면 터키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한지 불과 반년이 채 안된 지금 알마아타·타슈켄트·사마르칸트·듀산베등 중앙아 각 도시들에서는 폐허가 된 모스크(회교사원) 수리공사가 한창이고 각급학교는 회교교리를 배우는 학생들로 초만원이다. ○미등 서방에 적대적 다시찾은 이들 이슬람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역할을 맡은 선두주자는 바로 원리주의 회교를 표방하는 이란과 세속주의 회교를 앞세운 터키 두나라이다. 전세계는 이 지각변동의 파장을 우려와 의혹의 눈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서방의 몇몇 미래학자들은 소련제국의 멸망과 함께 앞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위협세력이 될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동서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지자세계를 지배할 유일한 이념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인 것처럼 보였다.그런데 테헤란의 한 서방외교관의 말처럼 『서방인들의 눈에 테러·보복·혁명수출이나 일삼고 시대착오적인 신정일치를 고수하는 이슬람원리주의가 기세를 더하고 있으니』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서방국 중에서도 특히 이슬람의 부흥에 우려를 가진 나라는 바로 미국.미국의 우려는 바로 이슬람이 갖고있는 반미·반서방 목소리와 기질에 기인한다.이슬람이 「성전」을 외치며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지난 1979년 호메이니옹의 주도로 이룩된 이란혁명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이란혁명의 주된 구호중 하나가 바로 「대악마」로 지칭된 미국과 서방에 대한 원색적인 적대감이었다.테헤란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변이나 테헤란시내 관광호텔 로비에는 지금도 「미국을 타도하자」는 대형 플레카드들이 내걸려 있다.이란혁명 직후 과격학생들에 의해 4백44일간 점거당했던 과거 테헤란주재 미국대사관 담벼락에는 「미국에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자」「미국이추구하는 힘은 정글의 법칙」등의 구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미국에 대한 이란인들의 증오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테헤란의 한 언론인은 『이슬람이 서방에 비판적인 것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불만때문이다.서방제국주의는 이슬람의 전통을 왜곡시키려 했고 이슬람이 열등한 문화라는 인식을 전파시켰다.그들은 이슬람세계에 억압적인 세속정권을 수립했으며 이스라엘 건국을 통해 긴장을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서방국뿐아니라 이집트·사우디 아라비아·요르단 등 억압적인 민족주의와 왕정을 고수하고 있는 「온건」아랍국들도 코란·종교전통에 바탕둔 회교 원리주의 정치적 바람에 놀라고 있다. 아프간의 무자헤딘 파벌들은 새 국가를 이끌 법률토대를 회교율법 「사리아」에 두기로 합의했다.중앙아 구소련 신생독립국의 회교원리주의자들 또한 아프간의 뒤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다.중앙아 지역서 회교부활을 위해 싸우는 타지키스탄 이슬람 복원회의 한 간부는 『우리사회의 모델은 예언자 모하메트가 제시했던 교리이며 모든 것은 알라신이 지시한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탈선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접경지역 영향 중국도 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3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슬람교도가 태반인 서부 신강자치주등에 이슬람 원리주의·민족주의의 여파가 미칠까 걱정이다. 이란·터키 정부관리들은 하나같이 중앙아 회교형제국들과의 관계개선은 오로지『형제국끼리의 우애와 경제적 도움을 나누기 위한 것일뿐이지 결코 외국인의 목을 자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며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보이려 하지 않았다. 테헤란의 한 몰라(종교지도자)의 말처럼『이슬람은 기독교 못지않게 평등·사랑등 보편적 가치를 신봉하며 증오·보복을 일삼는다는 것은 서방,특히 미국이 퍼뜨린 편견』일지도 모른다. 중앙아 일대에서 일기 시작한 이슬람 바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그리고 이 바람의 여파는 과연 우려할만한 것인가.
  • 손 공보처,「사회변화와 언론의 사명」 강연

    ◎“자유와 책임 조화,신뢰받는 언론문화 신장”/“언론의 기업성,공익위해 기여해야/사이비언론 적절한 대응조치 강구” 손주환공보처장관은 11일 『사이비언론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해야 되며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사회전체의 질을 높여간다는 차원에서 관심있게 정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손장관은 이날 고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대 정외과교우회 주최 월례 조찬강연에 참석,「사회변화와 언론의 사명」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6·29선언 이후 자유언론시대가 이뤄졌고 매체가 늘었으나 선정주의가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국제화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따라서 언론은 ▲자유와 책임의 조화 ▲전문화 수준의 향상 ▲발행부수공사제도의 정착 ▲통일언론의 명제정립 ▲뉴스가치에 대한 언론사내 이견조화 등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날 손장관의 연설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는 6공화국 들어 역사적 일대전환을 맞았다.정치분야에서 민주화와 통일의 진통을,경제분야에서는 성장과 배분의 문제로 갈등을 경험했다.사회부문에서는 지역간·계층간 첨예한 갈등과 민생문제등을 해결해야 했고 외래문화홍수 속에 우리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새 가치관을 정립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6·29이래 언론은 국가권력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성역없이 취재·보도하고 있다.이는 기자를 대상으로 기자협회가 90년에 설문조사했을때 72.7%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데서 잘 나타난다. 또 한국언론의 자유상황에 대해 국제언론계에서도 인정,1995년 IPI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되어있다. 다만 우리 언론이 이처럼 향유하는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는 가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수 없다.언론 자유란 언론사에 귀속되는 것이라기 보다 국민의 알권리 신장을 위해 언론사에 신탁된 국민의 자유로서 인식돼야 한다. 이처럼 언론자유속에 과열경쟁에 의한 무책임한 보도로 침해받는 인권이 나날이 증가하고 언론중재 건수가 계속 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전례없는 양적팽창을 이룩,6·29 당시 28개 일간지가 92년 5월 92개에 이르렀고 주간지는 7백35%,월간지는 2백28%가 늘었다.방송도 공민영방송체제로 개편,국민 채널권이 넓어졌고 유선방송법이 제정돼 뉴미디어방송시대에 돌입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볼때는 일부 중앙지와 방송사를 제외하고 아주 열악한 경영상태에 머무르고 있다.언론 선정주의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비난도 없지않다.또 최근 각 신문이 지나친 증면경쟁을 벌이는 것도 낭비와 과소비가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까지 있으므로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점개선을 위해 첫째 우리언론은 자유와 책임을 조화,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둘째 공익성과 기업성이 언론성장과 발전의 두바퀴란 차원에서 공익성을 위해 기업성이 기여해야 한다.셋째 전문화의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넷째로 ABC(발행부수공사제도)가 조속히 정착,합리적 운영과 제작·광고의 과학화와 매체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다섯째 통일언론에 명제를 정립해 나가야 하며 이는 통일시대를 맞이한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여섯째 언론팽창과 더불어 다시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사이비기자의 대두이다.1개 군에서 20개이상 지방신문기자가 다툼을 벌이는 현상을 보게 되면서 지역민들의 비판하는 소리를 또 다시 듣게된 언론현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일곱째 우리 언론계 내부에는 아직도 뉴스의 가치판단에 대한 세대간 이견차이가 존재하고 있다.이것이 언론인 상호간·내부세대간에 풀리지 않는 불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언론이 아직까지 이와같은 상호불신을 완전히 극복치 못함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언론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공고한 기반이 구축됐다.그러나 자유와 책임이 조화된 건강하고 신뢰받는 언론문화가 신장돼야 한다.이제는 정부와 언론이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국정의 책임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새롭게 이해·협력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할 때이다.
  • 문민정치의 기반다졌다/하토리 다미오/「6·29」5주(해외특별기고)

    ◎노 대통령,다양한 이해의 조정자역 훌륭히 수행 노태우대통령이 87년 민정당대표위원 당시 발표한 「6·29선언」으로 부터 5년동안 한국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다른나라에서는 10년이 경과해도 나타나기 어려운 큰 변화들이 계속 되었다.민주화·서울올림픽·북방외교의 성공·남북회담과 유엔동시가입·급속한 경제발전등 외국인으로 볼때 당혹스러울 정도의 큰 변화였다. 이같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 한국인들의 놀라운 활력과 적응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이러한 큰 변화는 국제적으로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변혁기의 와중에서 나타났다.그러나 동·서화해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되더라도 세계질서변화에 대응할만한 경제력의 축적이 없었다면 한국의 큰 변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한국의 경제력 축적은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노대통령의 민주화 선언은 한국정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노대통령은 지난 88년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그는 급속한 자유와 개방의 물결속에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많은 과제들을 처리해 가면서 한국의 정치를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 시켰다. 그 과정은 불안한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문민정치 실현의 기반을 마련해 냈다. 한국의 민주화는 경제의 대외개방과 민간부문의 자율화를 가져오고 경제적 평등화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근로자들의 임금면에서 평등화 현상은 뚜렷하다.통계로 볼때 학력별 또는 직종별 임금격차는 급속히 감소되고 있다.저학력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률과 지금까지 임금수준이 낮았던 제조업 분야의 임금상승률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이같은 임금상승에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과거에는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일본보다 적었으나 민주화이후에는 오히려 확대되는 조짐이 보인다. 민주화에 따른 경제자유화는 기업의 경영능력을 시험하고 있다.경제의 고성장하에서 나타나고 있는 적지않은 결손기업의 출현과 전반적인 이익률 감소는 앞으로 산업구조변동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근로자의 임금상승은 내수를 촉진하여국내시장을 확대시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경제성장의 상당부분을 내수가 차지한다는 것은 수출의존적인 한국경제가 한층 성숙화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소비자의 높아진 구매요구수준을 만족시킬만큼 산업기술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데 있다.또 임금이 상승,상품가격이 인상되었으나 제품의 품질은 그만큼 향상되지 않아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임금상승은 한국민주화의 가장 비싼 대가였다.국민들이 자유로이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산업현장에서는 임금인상 요구가 분출됐다. 많은 한국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생활을 즐기려는 경향이 짙어졌으며 이같은 현상도 민주화의 대가이다.한국은 민주화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그 비용의 대부분은 국민들 스스로 부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행히 한국에는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커다란 무형의 자원이 있다.그것은 「보통사람들의 보통두뇌」이다.보통두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기업의 경우 의사결정이 경영진에 의해 이루어진후 하부조직에 일방적으로 지시된다면 보통의두뇌활용은 불가능하다.권한을 하부조직에 위임함과 동시에 하부조직 의사가 경영진에 전달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업무의 분담은 산업민주화라 할수 있다. 한국기업중에는 우수한 두뇌를 소수만 확보하고 그밖의 생산현장이나 판매일선에는 단순노동자만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우수한 두뇌를 어느정도 잘 활용해 왔다.그러나 산업이 다각화 되고 상품과 시장이 다양화 되는 상황아래서는 어떤 우수한 두뇌도 전체를 모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다양한 현대의 경제구조하에서는 다수의 보통두뇌가 정보교환을 잘할 경우 소수의 우수한 두뇌를 능가할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공조할 수 없는 사상을 주장하는 단체도 등장할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다.한국사회는 6·29선언이후 언론의 자유가 크게 신장되고 다양화 되고 있다.민주화의 정도는 보통사람들의 보통두뇌의 활용과 정보의 공유정도,의사결정과정에 걸리는 시간등의 척도에 의해 측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선언한 노대통령의 임기는 내년초 끝난다.노대통령은 민주화 선언이후 공정한 선거과정을 통해 당선된 지도자로서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했다.외교면에서는 특히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그가 취임이후 펼쳐온 북방외교는 한국외교의 새지평을 열며 구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또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실현시켰으며 남북통일의 길목을 열었다. 노대통령은 외교면에서의 지도력 발휘와는 달리 내정면에서는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그러나 노대통령은 지도력이 부족하기 보다는 강력한 지도력의 발휘를 자제했다고 할 수 있다.노대통령은 민주화이후 「초대」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시대와 같은 지도력 발휘를 억제하고 다양한 이해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민주화시대에는 강력한 지도력이나 지배력의 발휘가 반드시 바람직 스러운 것은 아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과 타협이 필요하다. 한국의 민주화는 얼마간의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성숙화의 방향으로 발전할것으로 보인다.노대통령은 한국의 정치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화로 발전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 문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탈이념물결”… 다양한 소재·목소리 분출/등록제실시로 출판사 3천곳 신설붐/월북작가 해금… 「해방공간」문학사 복원/사전검열 폐지따라 공연예술의 자유 만끽/TV방송 공·민영시대로… 지나친 상업주의 경계해야 문화는 자율성과 다양성의 토양위에서 꽃을 피운다.강압적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자유화시대로의 길을 연 6·29선언은 바로 기름진 문화의 토양을 제공했다.6·29선언 이후 지난 5년동안 우리 문화는 그동안의 편협성과 경색에서 벗어나 폭넓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꽃을 피웠다.월북작가작품 해금,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폐지,출판활성화 조치등이 6·29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고 예술가의 상상력을 억압하던 온갖 금기에서의 해방과 함께 탈이데올로기 현상을 겪으며 우리 문화는 비로소 참된 다양성을 획득해 냈다. ▷문화부기자 방담◁ 김정열차장(부장급) 이헌숙기자(차장급) 윤석규기자 김성호〃 백종국〃 김균미〃 김동선〃 ­6·29선언은 문화·예술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문학·출판·미술·공연·방송·영화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특히 공연대본에 대한 사전심의 및 출판물납본제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사전검열이 행해져왔던 출판계와 공연예술계에 대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88년7월19일에 단행된 월북작가 작품 해금 조치는 그중 가장 뚜렷한 성과였습니다.6·29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88년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나왔던 월북작가작품 해금조치는 박태원 이태준 임화 등 그동안 남한에서 접근과 출판이 용이하지 않았던 1백20여 월북문인들의 8·15이전 작품의 공식출판을 허용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운동권」 예술성 회귀 ­6·29선언은 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불구의 문학사를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또 문화 각 부문에 만연했던 「정치적 기준」을 「문화적 기준」으로 대체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이후 보다 개방적인 문화 흐름을 선도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운동권 문학에 있어서의 문학성의 강조경향,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열기 등도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와 함께 6·29선언으로 인한 자유화의 진전등 국내상황변화에 크게 힘입은 사례들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출판계의 민주화는 먼저 출판사의 폭발적인 증가로 나타났습니다.87년10월이 지나면서 명실상부한 등록제가 된 것입니다.신고만 하면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거지요.80년이래 허가제의 내용을 갖는 이름뿐인 등록제가 자리를 잡은지 8년만의 일입니다.이를 계기로 6·29선언이 있기 전해인 86년말 2천6백여개에 그쳤던 출판사 수가 87년말 3천4개,88년말 4천3백97개,89년 5천97개로 늘었으며 현재는 2배에 가까운 6천개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88년12월 문화부는 공연법 시행령을 고쳐 20년동안 표현의 자유 시비를 불러 일으켜온 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했습니다.마침내 공연예술계가 공연소재와 표현방식 등 공연물에 대한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이는 공연당사자들이 공연작품에 대한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고 작품을 구상·준비해 오던 때와 비교해 볼 때 한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작업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작업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비로소 적용될 수 있게 된 셈이지요.이에따라 체제비판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 등을 이유로 공연이 금지됐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작)「금지된 장난」(김훈작)「춤추는 인형들」(엄한얼작)등과 같은 작품들이 공연돼 공연의 다양화를 가져왔습니다. ­각 대학의 학생미술운동도 6·29선언을 계기로 활성화됐습니다.또 문예진흥원 등 관계당국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과거 「민중미술」을 이끌어온 「현실과 발언」,민중미술협의회 등에 전시지원을 했습니다.6·29선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군·빨치산소재 등장 ­영화와 방송분야도 6·29선언의 덕을 톡톡히 누리게 됩니다만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진 대중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출판·학술 분야의 민주화는 분명 6·29선언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또는 개방까지기다려야 했습니다.출판사들의 등록이 자유로워졌고 이에따라 각종 출판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실정법 위반 시비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정치적인 결단인 6·29선언에 따른 입법조치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공연예술계는 자율화의 혜택을 크게 누렸습니다.정부는 제도권 밖의 「민족극」극단의 활동에도 관용을 보였습니다.이에따라 그동안 제도권내에서 유일하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창작극만을 공연해온 극단 연우무대가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야 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습니다.어떻든 공연여부로 화제를 모았던 극단 아리랑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와 「격정만리」등도 무난히 관객들의 앞에 올려졌습니다. ­6·29선언에서 비롯된 문화 전반의 민주화·자율화 분위기는 결국 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했습니다.문학·방송·미술·공연·출판·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경우만 해도 많은 소설가들이 그동안 금기로 되어왔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신의 「쫄병시대」,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고원정의 「빙벽」등 88년부터 쏟아져 나왔던 군병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군의 비리까지도 일정부분 소설화했던 현상은 6·29선언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분단이나 빨치산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좌익의 시각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이밖에 운동권 문학에서도 문학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돌고 있습니다. ­6·29선언 뒤 몇년동안 북한원전과 기행문,마르크스·레닌 원전 등은 출간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그 결과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빚어졌고 동유럽 공산국가의 몰락으로 이념서적의 인기가 급락하고 말았습니다. ­90년대 들어 미술분야에서는 「민중작가」가 아닌 일반작가들도 통일문제를 들고나와 나름대로 이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소재로 삼는 대상이 다양해진 것이지요.이에 비해 「민중미술작가」들은 과거에 비해 그림들이 예술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철학적·미학적으로 자기반성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과거처럼 급진적이고 지나치게 선동적인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왔던 사회고발영화와 농도짙은 성애영화가 대거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5공의 비리를 핵심권부에 맞춰 그린 정치소재의 「서울무지개」(감독 김호선)와 성을 소재로 한 「매춘」(감독 유진선)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또 「전쟁과 평화」「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국두」 등 구소련과 중국영화들이 국내극장가에 처음 나붙게 됐습니다.6·29 이후 본격화된 북방정책의 결과이지요. ○특수방송 잇단 설립 ­외형적으로 공영체제가 허물어지는 흐름에서 평화방송 교통방송 불교방송 등 특수방송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지난해 서울방송 라디오·TV개국으로 공·민영 혼합체제가 구축됐습니다.또 토론프로그램이나 코미디·드라마 등에서 비판금지대상이나 소재의 벽이 허물어져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민족동질성의 뿌리를 찾아내기 위한 당국의 배려도 이젠 많이 늘어났다고 봅니다.올상반기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북한미술전이 그 한 예입니다.북한의 화가들이 작업한 수많은 원화들을 일반인들이 여과없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죠.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북방과의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종교계의 경우 지나친 북방선교가 문제가 될 정도로 적극적인 북방진출이 이루어졌지요. ­자율화 민주화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주의에 의한 문화왜곡등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올해들어 방송위원회가 대폭 개정한 방송심의규정은 자율화·민주화의 한계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이번 개정에서 오히려 내용이 강화된 것으로 ▲인권 보호 ▲방송언어의 순화 ▲광고의 국민건강을 위한 규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6·29선언은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과제를 노정시켜왔으나 문화의 다양화 작업을 가능케했으며 탈이데올로기에 따른 한민족 문화의 뿌리 찾기등 값진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같은 변혁은 바로 우리 문화의 총량을 제고하는 귀중한 계기였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윤식 문학평론가/자율성의 참뜻 되새길때 6·29선언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8개항으로 된 이 선언을 검토해보면 한갓 시국수습안의 일종이었음이 드러난다.이점에서만 보면 그것은 시류적인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건이다.그러나 좀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국민대단합이라는 커다란 명제가 놓여있다.국민대단합이라는 명제를 내걸었다는 것은 그것이 당시의 제일 중요한 과제였음을 새삼 말해주는 터이다.무엇이 국민대단합을 저해하고 있었던가.8개항의 수습책이 달성되지 않는 한 국민대단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8개항을 수습할 수 있는 기본항이랄까 원칙이란 무엇일까.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쉽사리 그것이 자율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각 부문별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해진 것은 8개 수습항목중 6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항목이 실상 6·29선언의 으뜸 항목임은 일목요연하다. 자율성의 원칙이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항을 이룰 때 어떤 사회도 상당한 혼란을 면하기 어렵다.국가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사회적 욕망분출이 조정되던 사회보다 자율성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한층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바람직한 사회의 도래를 위해 상당한 기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법이다.이 원칙이 세계사의 변화라든가 후기 산업정보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5년간을 두고 알게 모르게 실천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이 자율성의 달성이 얼마나 소중한 과제였는가는 6·29선언에서도 지적된 물가안정이라든가 흑자경제 등 5공화국의 치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터이다.6·29선언이 단순한 시국수습책에 멈추지 않는,역사적인 문건으로 평가되는 참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전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문화(문명)쪽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해둘 필요가 없을까.문화란 개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으로 규정된다.자율성이 조금도 억압되지 않는 사회만들기야말로 문화의 방향성이라 함은 이를 가리킴이다.이 점에서 6·29선언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향성의 표현이었다.기업문화,정치문화,교통문화 등의 표현이 가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렇다면 새삼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러한 자율성이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느냐에 있다.그동안의 자율성의 옹호가 문화의 특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었음이 사실로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것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도 사실로 인정되는 터이다.문화창출의 자율성이 문화유통의 자율성(상업주의)에 의해 좌우될 때 문화가 도리어 위협받게 되는 것,이 이율배반 앞에 놓인 것이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6·29선언의 한가지 귀결이다.자율성,그것은 문화쪽에서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종의 배리가 아닐 수 없다.
  • 외언내언

    라 로슈푸코의 「잠언」(481)은 「친절」에 대해 이렇게 써놓고 있다.­『진정한 친절만큼 희귀한 것도 없다.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저 남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거나 아니면 다만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뿐이다』◆이건 친절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다.남의 비위나 맞추는 언행과 친절의 본질이 다르다는 뜻.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는 옳은 말이 친절이나 예의로 통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므로 참다운 친절은 교언령색이 아닌 진실과 애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데에 라 로슈푸코의 진의는 있었다고 하겠다.그래서 그는 진정한 친절만큼 희귀한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로 들면 매사가 너무 어려워진다.엄숙해진다.가령 자선에 대해 말한다고 치자.『자선을 베풀면서 거기 스스로 희열을 느낀다면 그건 이미 자선이 아니다』고 하는 자선관은 극히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해석일 뿐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워진다.오른손이 하는 자선을 왼손이 알게 하는 자선이나마 요청되는 것이 사회현실이기 때문이다.친절도 그렇다.『남을 기쁘게 해주는 친절』이라면 얼마나 요청되는 우리사회인가.◆상냥함과 친절함이 많이 모자라다는 지적을 받는것이 우리 사회.인사성 없고 무뚝뚝하고.이에 대한 성찰로 근자에 각계에서 친절과 인사를 생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서울 구치소에도 그 물결이 와 닿는다.면회인을 형제처럼 대하는 웃음과 친절의 민원실로 되고 있는 것.사실 우리는 『면회인도 반죄인』같은 시대를 살아왔다.공연히 오금이 저렸다.아니,저리게 만들었다.『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는 어깨띠가 그 저림을 풀어준다.◆좋은 일은 꾸준히 성심으로 펼쳐져야 한다.또 이런 움직임은 더 널리 번져 나가야 한다.친절­인사­웃음.우리 사회의 윤활유로 되어줄 요소들이다.
  • 민주주의 가능성 활짝 열었다/「6·29」5주(해외 특별기고)

    ◎로버트·J·마이어 미카네기위 회장/아시아에 새정치 수범 보여 지난 87년 여름,지금의 노태우대통령이 한국에서 민주적 정치개혁을 단행한 의미는 5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더욱 부각되고있다.내년 2월이면 그는 5년 단임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서울에서 간선대통령제에 반대하는 시위군중의 물결을 직접 목격했다.그때 6·29선언을 한 장본인이 다름아닌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씨였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대통령직선제와 함께 오랫동안 정치적 반대자였던 김대중씨의 공민권을 회복시킨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그때 정치규제에서 풀린 김씨는 지금 제1야당의 당수가 되어있다. 노씨는 그무렵 (국가적)위기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나는 사회적 혼란을 진정시키고 국민화합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민정당대표,대통령후보직 그리고 다른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이다.…나는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웃을수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노태우후보는 87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37%의 득표로 승리한후 정치적 제휴를 통해 성공적으로 통치해왔다.노정부는 지난 45년 건국이래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정권이다.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이전부터 연간 7∼9%의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해왔기때문에 노대통령이 한국정치에 기여한 독특한 공로는 다른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뚜렷한 민주주의발전궤도는 4단계를 거쳐왔다고 본다.첫째는 정치적 안정,둘째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할만한 경제적 성장,셋째 정치적 참여,넷째 사회적 정의라고 할수있다. 민주국가의 발전에 있어 정치와 경제간의 서로 다른 특징,그리고 민주정치의 본성에 관해 아시아지역에서 노대통령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시대의 지도력은 경제적 성장이 더이상 정치적 정통성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이 될수없다』는 인식을 갖고있다.또 경제가 발전하면 결국 정치를 경제로부터 분리시키며 따라서 정치적 정통성은 정치 그 자체로서 확립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아울러 갖고있다. 노대통령은 집권한후 여소야대국회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을 극복하기위해 보수진영의 정치적 결합을 성공시킴으로써 국회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확보했다.점차 확대되어나가는 정치적 개방성은 금년 3월의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의 의석을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하게했다.더욱 곤혹스런 것은 국민당을 결성,국회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정부에 반기를 들고나온 재벌총수 정주영씨의 등장이었다. 민자당은 정씨의 이같은 사태발전을 전혀 바라지 않았다.역설적으로 말하면 노태우씨는 한국의 민주주의제도를 확립하는데 성공했지만 그에따른 피해자는 바로 그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이 한국에서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인내는 참으로 놀랄만했다.그동안 동구나 다른 아시아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한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노대통령의 집념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정치적 수범으로서 심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훌륭한 전례는 지난 5월 태국사태때 깊은 영향을 주었다.바바라 크로세트가 뉴욕 타임스에 썼듯이 경제만 발전되면 민주적 개혁이 수반될 것이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비단 태국에서만이 아니다.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의사표시나 자유선거가 초래하는 불안정보다는 차라리 부패한 권력에 의한 안정이 더 낫다든가,아시아인들은 서구와는 다르다는 따위의 논쟁을 점차 경멸해왔던 것이다. ◎군출신 없는 대선 “큰 사건” 노대통령의 선언과 그의 민주화과정에 있어서의 인내의 덕택으로 다가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순수한 민간인후보자들만 출마하여 경쟁을 하게 될것이다.군인출신이 한사람도 후보에 포함되지 않는것은 한국정치사에 또하나의 첫기록을 남기는 셈이다. 이번에 출마하게될 것으로 보여지는 인물들은 민자당의 김영삼,민주당의 김대중,국민당의 정주영후보등이다.김영삼씨는 한국정치사의 우여곡절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고 김대중씨는 제1야당의 지도자이며 정씨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에 나서고있는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와 비견되고 있다. 한국에 있어 민주주의의 장래는 밝다.비록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총리급회담등 남북대화를 통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노력이 매우 느리긴 하지만 민주화로 가는 과정은 낙관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영향은 다른 나라에도 본보기가 될수있을 것이다.한국민주주의에 대한 노대통령의 기여는 한국현대사에 있어 뚜렷한 이정표로 기록될것이다.6·29 민주개혁선언은 한국에서 일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6·29선언」 얼마나 이룩됐나

    ◎“민주·화해·자율” 정신혁명이 최대결실/자자제실시로 선언8개항 완결/역대정권의 정통성 시비 일거에 해소/북방외교 대성공… 통일시대 가시화 6·29선언은 민주화와 자율화를 골간으로 한다.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체제로의 이행을 약속한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취임이후 임기만료 8개월여를 앞둔 현시점까지 6·29선언에 담긴 약속을 착실히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노대통령의 표현대로 이는 노대통령의 통치철학이었고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이념이 되어왔다. 6·29선언 5주년을 맞으면서 약속사항들이 어느정도 지켜졌는가를 각론적으로 따지는 것은 자칫 무의미할 수 있다.정치적 시비는 있을 수 있겠지만 지난해 지방의회선거의 실시로 6·29선언 8개항은 사실상 완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6·29선언속에 담겨있는 민주,화해·화합,자율의 정신을 국가·민족적 과업에 구현시켜 나갈 수있는 태세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이는 번영과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원을 목표로 한다.그러나 이것은노대통령과 정부만의 과제는 아니다.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풀어나가야만 달성할 수 있는 과제이다.6·29선언으로 시작된 우리의 민주화 대장정은 이제 국민 각자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할 만큼의 단계로까지 무르익은 것이다. 6·29선언의 8개항은 ①조속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새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권이양 ②대통령선거법개정과 공명정대한 선거관리 ③시국관련사범의 대폭석방및 사면복권 ④인간존엄성의 존중과 기본권의 최대한 신장 ⑤언론기본법폐지등 언론자유의 창달 ⑥지방자치,대학자율화,교육자치등 사회 모든 분야의 자치와 자율보장 ⑦정당활동의 보장과 대화·타협의 정치풍토 마련 ⑧과감한 비리척결과 밝고 맑은 사회건설등이다. 이가운데 정치적 시각에서 굳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면 단체장선거연기와 연관한 지방자치,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 정도일 것이다. 지방자치 문제는 선언당시 「지방의회」로 명시됐던만큼 사실상 위약의 소지는 없다.그러나 단체장선거의 금년 실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뒷받침되었다.6·29선언을 탄생시킨 「국민의 뜻」이 단체장선거 연기에도 투영됐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은 노대통령 자신만의 의지로 이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그러나 노대통령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노대통령은 6·29선언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 『온 나라가 위기와 긴장감에 휩싸여 나라의 운명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속에서 민주화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수용하지 않고는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물론 나라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술회했다.당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은 여권의 패배로 간주되는 상황이었다.따라서 이를 골자로한 6·29선언은 가히 「혁명적 조치」로까지 평가되었고 이를 바탕으로한 정면돌파작전은 노대통령에게 대선에서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렇게 출범한 6공정부는 역대 정권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정통성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었고 지속적인 민주화조치를 통해 우리 정치의 민주대 반민주구도를 타파할 수 있었다. 노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화가 더이상 이슈화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해냈구나 하는 한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민주화가 더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게 된 것이다.대통령이 코미디의 소재로 될 만큼 권위의 색채는 엷어졌다.공직자 모두에게 군림이 아닌 봉사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민주화의 정착은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자유경선에 의해 선출된 것으로도 확인된다.지난 총선을 통해 재야정치권이 해체되어 제도권 정치로 흡수된 것이나 차기대통령선거의 각당 후보가 순수민간인 출신이라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척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표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에 따른 한국의 대외적 위상제고는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결국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을 성취해 냈다.또 국제적인 화해조류에 맞춰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발효시키는등 남북한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6·29선언을 실현하는데 있어 숱한 우여곡절과 함께 부정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이른바 민주화의 대가이다.6·29선언으로 물꼬가 터진 민주화의 물결은 엄청난 욕구의 분출을 몰고왔다.이에따라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무질서가 범람하고 탈제도로 치닫기도 했다.노대통령의 이미지도 우유부단으로 희석되기도 했다. 이는 6공정부가 추구했던 경제의 자율화,개방화와 맞물려 급격한 임금상승,근로조건 향상등에 따른 우리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켰다.그리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우리 경제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 경제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산업구조조정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우리경제의 기조를 안정적이고 대외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 총체적으로 6·29선언은 나라의 모습과 국제적 위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음이 틀림없다.외국의 저명학자들도 동의하듯이 노대통령은 역사발전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아직도 극복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그 주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도 국민 각자가 져야 할 것이다.
  • 이산가족 재회에 조건도 많다(사설)

    동족상잔의 비극때문에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일이야 말로 이땅에 화해의 물결을 넘치게 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과제이다. 이 과제는 누구도 거스를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며 민족의 염원이다.그런데도 북한은 제7차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8·15이산가족교환방문사업을 핵문제와 연계시키면서 거부태도를 표명해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졌다.북한은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적십자실무대표접촉에서 「상호핵사찰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우리정부의 방침에 반발,『이같은 방침이 남측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노부모방문단교환사업은 성사될수가 없다』고 위협했다.이 때문에 이날 접촉에서는 이산가족재회를 위한 실무적인 논의조차 없었고 다음 접촉일자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의 가당찮은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지난4일 연형묵정무원총리가 같은 이유를 내세워 「이산가족재회사업의 전도를 흐리게 할수도 있다」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온바 있다.그러나 바로 다음날 열린 제2차 실무접촉에서 남북양측은 「이산가족재회는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데 다시 합의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합의된 인도적인 사업을 핵문제와 연계시켜 거부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호도될 수 없는 파렴치한 작태이다. 북한의 이같은 자세는 남북상호핵사찰을 촉구하고 있는 우리정부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일뿐 이산가족재회자체를 무산시킬 의도는 아닌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성사되기까지는 불안감을 떨칠수가 없다.북한은 대남정책에 관한한 이중적인 전략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발을 감행해온 북한당국의 대남전략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발효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무장병력을 남쪽에 침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우리사회의 혼란을 부채질하기 위해 이른바 「범민주대회」의 서울개최를 획책하고 있다.이같은 도발행위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들이다. 우리가 앞에서도 지적한바 있지만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려는 인도적인 사업은 민족의 염원이다.그런데도 북한이 이것을 대남전략의 한 고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안에 10만명의 외국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외국인관광객에는 이처럼 문을 열면서 같은 동포,더구나 이산가족들에게는 문을 닫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반민족적이며 반인륜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8·15이산가족재회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남북양측에서 고작 2백명이 오갈뿐이고 방문지도 서울과 평양으로 국한돼 있다. 외국인들보다는 같은 동포에게 먼저 문을 활짝 열어야 하고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만날수 있게 해야 한다.북한당국은 이것이 핵무기개발보다 급선무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이땅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며 또 북한이 선의의 동반자가 될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극히 일부 이산가족의 상봉에도 무슨 큰 생색이나 내듯 술수를 계속 부린다면 남북관계의 전망은 결코 순탄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노태우대통령시대의 한국민주주의/카네기위원회 학술회의 중계

    ◎「6·29선언」으로 민주화길 열고 한반도통일의 디딤돌 놓다/권위주의 청산… 언론자유 급신장/여당사상 첫 후보경선,정치발전 기틀 마련/자율·개방화 촉진… 경제내실 다져/고임·고물가,시장원리 따른 불가피한 진통 미국의 권위있는 「윤리와 국제문제에 관한 카네기위원회」(회장 로버트 J 마이어스)가 「노태우대통령 시대의 한국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22일 뉴욕 맨해턴의 메릴하우스에서 열린 이 학술회의에는 미국측에서 제임스 릴리 미국방부 안보담당차관보와 학계의 데이비드 I 스타인 버그 조지타운대 교수등 한국문제를 다루는 주요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으며 한국측에서는 유종하 주유엔대사와 김달중 연세대교수 한승수 전상공장관등이 참가했다.상오 9시부터 하오6시까지 계속된 이날 학술회의는 노태우대통령이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리게한 확실한 업적을 남겼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그의 공적을 한국의 정치발전사에 길이 남게 될것이라고 평가했다.이날 주제발표를 한 주요 인사들의 발표요지를 정리해 본다. ○한국민주발전의 역사적 고찰 ◇개스턴 J시거(조지 워싱턴대 아시아연구특별교수·전미국무부차관보)=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한미관계는 1987년 이후 보다 더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그것은 6·29선언 이후 미국이 그동안 기대해 왔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87년초 당시 미국무부 차관보로서 한국과 관련해 나의 관심은 북한으로부터 위협이 있는한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은 확고하다는 점과 87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져서 한국에 문민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었다. 곧이어 본인은 한국을 방문하게 됐는데 서울에 머무는 동안 당시 노태우후보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그때 본인은 노후보가 민주화의 필요성에 확신을 갖고 있는 훌륭한 지도자라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은 경제적 기적에 이어 정치적 기적을 이루어 낸 보기 드문 나라중 하나다.그러나 경제적 기적에서 정치적 기적을 성취해 내는 과정에서 획기적 계기는 6·29선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인권문제에 눈부신 개선이 있었고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중 가장 기억해야 할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고르바초프 당시 소연방 대통령과 가진 한소정상회담이다.소연방이 지금 붕괴됐다고 해도 이 한소정상회담이 남긴 역사적 의미는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5년간 노대통령 지도 아래 추진된 한국에서의 민주화 경험은 민주주의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한국민주화 장래 ◇로버트 J 마이어스(카네기위원회 회장)=뉴욕 타임스지는 지난 4월18일자 사설에서 『임기를 몇달 남겨놓고 있는 노태우대통령은 이제 그가 추진한 한국의 민주화 작업을 마무리할 더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재선을 추구할 수 없는 노대통령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부를 이양하고 남북통일을 향한 길목을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한국역사상 보기 드문 위치를 확보했다』고 논평했다. 이 사설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노대통령이 한국의 민주발전과 남북통일에 하나의 커다란 표석을 세웠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그가 이룩한 업적과 그가 잡은 역사의 방향은 앞으로도 한국의 정치발전 과정에 계속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지금 사회전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급속한 자유화와 개방의 물결 속에서 얼마간 혼란을 겪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경쟁국가들로부터 이례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는 계속될 것이고 경제적 어려움도 끝내는 한국인 스스로 극복하고 말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잘한 일이거나 못한 일이거나 간에 그들이 이룩한 한 두가지의 업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장개석은 국민당 기치아래 중국을 통일한 업적으로,모택동은 똑 같은 땅덩이 위에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것으로,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동서독을 통일한 공로자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대통령은 한국의 역사 발전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인물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그의 6·29선언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한국이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공헌했다.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해낸 적절한 인물이다. ○오늘의 한국민주주의 ◇데이비드 I스타인버그(조지타운대 교수)=1987년 6·29선언은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적 변화를 가져 오게한 이른바 「노태우시대」의 시작이다. 6·29선언은 한국의 정치자유화를 촉진시킨 결정적 요인 이었을뿐 아니라 당시 거리에 즐비했던 젊은이들의 데모사태를 잠재우게 한 정치인으로서의 일대 결단이었다.또한 이 선언은 전통적으로 타협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사회에서 타협을 통한 위대한 결단이었다고 말할수 있다. 한국은 여러면에서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발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 행정부로부터 사법부가 독립하고 있다는 징후가 눈에 띄고 있다.또 여당이 국회에서 과반수선을 유지하면서 국회가 참으로 정치의 무대가 될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높은 교육열로 정치의 유동성이 크게 높아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일부에서는 노대통령에게 강력한 지도력을 주문했지만 노대통령이 만일 그랬었다면 그는 또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그의 인내심은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공화국하에 한국민주주의 ◇김달중(연세대교수)=6·29선언이 한국민주화에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우리 헌정사에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또 하나의 공적은 6·29선언이 권력을 종적인 구조로부터 횡적인 분산구조로 변화시켰다. 이를 통해 사회의 자율화와 개방화가 촉진됐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한국민주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중의 하나는 언론의 자유라 할 수 있다.지금 한국언론에서는 세칭 「성역」이란게 없어졌다.대통령이 거침없이 비판되고 심지어는 만화에서까지 희화화 되고 있다. 사법제도에 개혁이 있었고 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이 개정됐다.정치의 자유화와 사회의 다양화는 제6공화국 시대에서 이룩된 가장 큰 발전이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정당의 비민주적 운영은 앞으로 개선 돼야할 대단히 중요한 부문으로 남아 있다.정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는 집권당인 민자당만이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라진 것중 하나는 민자당이 사상 처음으로 지난 4월 당의 대통령후보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해 냈다는 사실이다.이종찬후보가 경선사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민자당의 이번 시도는 당내 민주화에 하나의 큰 발전으로 평가될 수 있다.검찰과 경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문제도 남은 과제이다.더 넓게는 교육분야와 민간경제 분야에서의 자율화 촉진도 중요한 일이다. 지난 5년동안 노정부는 권위주의 잔재를 없애는 일뿐 아니라 경제적 진전과 함께 정치적 발전을 이룩하는 공적을 남겼다. 전통적으로 상황이 달라 비교가 적절치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가 추진된 필리핀과 한국에서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아키노 정권의 민주개혁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아키노정권을 이어받아 새로 대통령이 된 라모스는 앞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계속 도전을 받을 것이 확실하지만 노대통령은 민주개혁과 통일문제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민주·경제발전의 역사적조망 ◇한승수(전 상공장관)=6·29선언이후 자유화 개방화 조치는 경제부문에서도 노조설립,민간부문의 자율화,대외개방을 이루었고 저임금,자원집중관리,수출드라이브정책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고임금 고소비 현상으로 인한 물가인상,무역적자로 한국경제 전도에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크게 보아서는 자유경제의 기본질서인 시장원리로의 복귀에 따른 불가피한 고통이라고 본다.이것은 6·29선언이 민주화를 이뤄 정치적 내실을 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과 같이 경제적인 면에서도 내실을 다져 우리경제의 기조를 안정적이고 대외 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로버트 원(미 한국경제연구소 회장)=노태우대통령의 성공은 그동안 한국이 성취한 경제발전이 밑거름이 됐다. 산업화는 무엇보다 통신시설의 확대,지식의 보급,도시화,사회안정 그리고 중산층의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이런 것들은 모두 민주정부를 지지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한 예로 한국의 전화보급률은 지난 10년동안 4배나 증가했는데 이는 국민상호간 정보교환을 돕고 정치조직망을 형성하게 했다.이것들이 바로 권위주의의 붕괴를 유도하고 민주화를 촉진했다. 사회의 민주화가 단기적으로 보면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비효율적으로 작용 할수도 있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민주화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지역내 지도적 국가가 됐으며 세계무역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다.더 나아가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88년의 올림픽유치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와 산업국가를 동시에 성취하는데 상호작용을 해왔다.거듭 말하지만 한국의 성공적인 변화는 앞서 지적한 전제조건들의 성숙에서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경제개발 6차5개년계획을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상당부분 수정한바 있다.92∼96년간에 걸쳐 추진될 7차5개년계획은 점증하는 사회 경제적 요구와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다. 비록 어려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노정부 5년동안의 시책은 한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데 의문의 여지없이 크게 공헌했다.
  • 유고/끝없는 내전… 문화유적지 황폐화

    ◎12세기 성곽·대성당등 쑥대밭/두브로브니크/박물관자리엔 군기지 들어서/사라예보시/관광객 발길끊겨 연20억불 손실 유고연방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끝없는 민족분쟁으로 엄청난 인명및 경제적 피해와 함께 유서깊은 문화유적지가 갈수록 황폐화돼 가고 있다.더욱이 언제 내전이 끝날지 몰라 복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의 8개월에 걸친 유혈분쟁으로 중세문화가 보존된 아드리아해안의 두브로브니크시시가 피폐화된데 이어 지난 3월 세르비아계중심의 소연방이 결성되면서 불똥이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번져 84년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사라예보마저 다시 쑥대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여러 민족으로 구성돼 있는 유고가 연방해체의 길로 들어서면서 각 공화국간의 영토분쟁이 심화돼 전쟁을 피해 서유럽으로 난민의 물결이 줄을 잇고 있는데다 주관광수입원이던 옛 유적지마저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자 각 공화국 역시 심한 곤경에 처해있다. 동과 서의교량역할을 하면서 서양민족지배(로마 오스트리아등)아래 있을때는 서양문화를,동양의 지배(터키)아래 있을때는 이슬람문화를 창조하면서 독특한 유럽 모자이크문화를 지니고 있는 유고는 내로라하는 유적지만 하더라도 각 공화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적의 나라다.특히 세르비아공화국의 수도이자 한때 연방공화국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는 로마제국의 요지였으나 그때의 유적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그동안 수없이 치른 전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유고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프레스코 미술관과 정교회유물관등이 있는 세르비아의 국립박물관을 비롯,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고도 두브로브니크,그리고 인근 자다르,시베니크등이 있다. 그중에서 매년 유고 전체 관광수입의 70%에 육박하는 20억달러이상의 외화벌이를 담당했을 정도로 고색창연했던 두브로브니크시는 이미 그동안의 전쟁폐해로 30여개의 유적지가 파괴되었고 4백여개의 교회가 폐허가 되는등 옛모습을 잃은지 오래다.연방군과 크로아티아의 최대격전지였던 이곳은 12,13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성벽,르네상스 스타일과 베네치안 고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스폰차궁전,라파엘로의 마돈나와 이콘등이 보관된 대성당등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적지가 전쟁으로 파괴만 될뿐 복원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소유고연방소속의 세르비아민병대의 포격으로 올림픽을 위해 지어졌던 올림픽경기장이 3개월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거의 황폐화돼버렸다. 이제 사라예보의 주위에 있는 아이스하키와 스케이트경기장,한 바로크풍 빌라에 있는 올림픽박물관도 옛 모습은 간데없고 그자리를 세르비아 민병대의 로켓발사기지가 메우고 있으며 대형 콘크리트 건축물들은 탄흔으로 얼룩진채 흉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이처럼 유고의 유적지가 황폐화되자 역사유물을 수호하자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유고의 지식층을 비롯,유럽공동체(EC)각국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유고문화유적복원을 위한 모금운동과 함께 세계적인 지원을 호소하고나선지 오래지만 유고내전이 계속되는 한 이같은 노력은 큰 결실을 거두기는 힘든 실정이다. 이같은 국제적인 노력에도 불구,유고내전의 당사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토확장에만 혈안이 돼 있다.결국 유고의 문화유적복원은 내전종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교전당사자들이 인식할때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 동요집 「물새발자욱」 출간 염근수할아버지(인터뷰)

    ◎“젊은시절의 꿈 나이여든에 이루었죠” 지난해 「서낭굿」에 이어 두번째 동요집 「물새발자욱」(누리기획간)을 펴낸 염근수옹.나이는 여든 여섯이지만 마음은 아직 동심으로 팔팔한 현역시인이다. 이번에 그가 낸 동요집 「물새발자욱」에는 「서진강 물소리」「너와집 굴피집」등 고향에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질박한 토속어로 동심을 노래한 동요 93편이 5부로 나뉘어 수록됐다. 『고요한 아침바다/모래 불가에/종종걸음 발자욱/물새발자욱//무어라고 써놓은/글은 글인데/잔물결이 사르르/지워버려요//너무 예쁜 조갑지/동그란 구멍/어쩌면 이렇게도/동그랄까요//그 이야기 써놓은/글이 아닐까/잔물결이 사르르/지워버려요』(「물새발자욱」) 문학평론가 정원석씨는 이 시집에 대해 『리듬감과 유머감각이 풍부한 근래 보기 드문 동요집으로 이의 출현으로 한국동요 문학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염옹은 1907년 황해도 백천출생으로 21년 양정고보 재학시절 「피꽃」이라는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문단에 데뷔했다.20년대 아동문학지「별나라」와 「새벗」의 주간을 역임하고 그의 동요 「댕댕이」「할머니 편지」가 홍난파의 「조선동요100곡집」에 실릴 정도로 이미 뛰어난 동요작가였던 염옹은 생활고로 한약업에 종사하기 전까지 다양한 이력을 거쳤다.일제시대 조선일보기자로 필화사건을 겪기도 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으로 강릉 농악을 살려 명맥을 이었으며,일제의 금지조치로 사라져가는 정선어러리(아리랑)를 채록,그 유실을 막았다. 서울 갈현동 맏아들네 집에서 틈틈이 동요를 짓는 그는 『속에서 우러나와야 쓰지 일부러 짓지는 않는다』면서 『어렵던 시절을 보내고 이제 젊은시절 동요짓던 동심으로 되돌아간 사실이 되우 기쁘다』고 말했다.
  • 약하게 부드럽게/이용성 중소기업은행장(굄돌)

    「…약지승강,유지승강,천하막불지,막능행…」노자는 물처럼 유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예시하면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유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하가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행하지를 못한다」고 적고 있다.이른바 민주화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사회 주변의 많은 분규를 접할때마다 나는 이 글귀를 자주 떠올리며 그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곤 해본다. 처음에는 모두가 잘해보자는 뜻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종전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부분이 늘어나고 계층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다보니 결국 갈등이 표출,증폭되어 분교라는 힘겨루기 양상이 벌어지게 되었다.이것은 어떻게 보면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갈파한 것처럼 「산업중심의 문명을 유지하는 기반인 역할분담,의무와 책임에 관한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현상」을 방불케 하는,매우 혼란스럽고 생소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당연한 결과로 우리 경제 및 사회전반은 일찍이 예상치 못했던 진통으로 크게 흔들렸었고 값비싼 대가를 치렀으며 불가피하게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안게 되었다. 사태의 전말이 이러할진대 그간의 술한 분규의 핵심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각 주체가 겸허한 자세를 취하기 보다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오만한 위세를 자랑하지는 않았던가? 같은 배에 탄 입장에서 어느쪽도 승자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이르면 답은 자명해진다.피차 길게 이기는 방법을 모르고 그저 찰나의 승기를 잡고자 우격다짐으로만 일관했던 것이다. 「약하게…부드럽게…」성현이 일깨워준 승리의 비결을 따르는 자는 영원히 이길 것이요,역행하는 자는 영원한 패배를 자초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 외언내언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몸을 덮어 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너 보리는 장미꽃향기 풍겨오는 그윽한 6월의 훈풍과 노고지리 우지지는 새파란 하늘과 산밑을 훤히 비추어주는 태양을 꿈꾸면서 오로지 기다림과 희망속에서 아무 말없이 참고 견디어 왔다」한흑구씨의 수필 「보리」의 한구절.◆이 수필이 보여주듯 보리는 우리민족의 기상과 정서를 상징하고 있다.이제 「보릿고개」라는 말은 사라졌지만 가난했던 시절,서민들은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하는 소박한 꿈도 지니고 있었다.지금의 젊은이들은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꽁보리밥에 찬샘물을 붓고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먹던 그 애틋한 추억을 50살 넘긴 중·노년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또 보리밭은 가난한 연인들이 은밀히 사랑을 나누던 낭만의 장소이기도 했다.◆요즈음에는 시골에서도 잘 볼수 없는 보리밭이 서울 한 복판에 만들어졌다.서울시 한강관리사업소가 5곳의 한강시민공원 주변에 일군 7만6천㎡의 보리밭.지난해 10월중순 파종했는데 지금은 수확이 한창이다.1백가마쯤 나올 예정인데 이것을 양로원·고아원등에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수확은 보잘것 없지만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물에 잠기는 강변저지대에 보리밭을 만든 그 발상이 재미있다.어린이들에겐 자연학습장이 되고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데이트코스가 되고 중·노년들에겐 옛날을 회상할수 있는 장소가 되고….일석삼조의 멋진 아이디어.올가을에는 재배면적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좋은 생각이다.각박하고 답답한 서울 한복판에서 황금물결 일렁이는 보리밭을 볼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천둥·번개동반 비/서울 20㎜·경기 60㎜

    9일 하오9시쯤부터 서울을 비롯 경기도와 강원도 지방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렸다. 이날 비는 또 초속5∼7m의 강한 바람과 함께 내려 밤늦게 귀가하는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일부 지방에선 밭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기상청은 『대기가 불안한데다 서해에서 발달한 기압골의 영향으로 10일새벽까지 서울의 20㎜를 비롯 강화·포천등 경기도 북부지방에 60㎜가 내렸다』고 밝히고 10일 낮에도 서울·경기지방에 2∼3차례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겠다고 내다봤다. 한편 서해 전해상에는 9일 하오11시를 기해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바다의 물결이 3∼4m로 매우 높았으며 동해와 남해도 2∼3m로 높게 일었다.
  • 체코연방 총리지명자 클라우스/프라하 출신… 열렬한 시장경제 지지자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으로부터 차기 체코슬로바키아연방 연립정부 구성을 요청받은 바츨라프 클라우스 재무장관은 체코지역 출신의 열렬한 자유시장경제 지지자. 그는 지난 89년 연방재무장관직에 오른 이래 국가통제경제의 신속한 민영화를 추진해왔으며 아울러 대부분의 대형 국영기업체들을 민간에 매각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도 주도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지난 41년 프라하에서 출생한 그는 63년 프라하 소재 경제대학교를 졸업한 뒤 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일했으며 66년과 69년에는 이탈리아및 미국의 코넬대학에 유학. 그는 69년 8월 바르샤바조약군의 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는 개혁물결이 분쇄되고 뒤이어 몰아닥친 반체제인사 숙청파동으로 진보적 공산당원 및 지식인들이 고위직에서 추방될 당시인 70년 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해임됐다. 이어 71∼86년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립은행의 하급직을 거쳐 87년 집권 공산당이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프라하예측연구소내 개혁성향 경제학자그룹의 일원이 됐다.
  • 체코연방 양분 가능성 높다/총선이후 공화국의 장래 불투명

    ◎슬로바키아공 정당들 “독립” 공약/시장경제도 개편… 국가연합될듯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존속여부와 경제개혁 장래를 결정할 연방의회 및 체코와 슬로바키아공화국의회 총선이 5·6일 이틀간 실시돼 동구 마지막 다민족국가 장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투표가 끝난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어느 정당도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체코지역에서는 민주국민당(ODS)이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슬로바키아지역에서는 독립을 주장하는 슬로바키아 민주운동(HZDS)이 민족주의 분위기에 힘입어 우세를 보이고 있어 연방와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 총선은 민주화이후 90년에 이어 두번째 실시된 선거이지만 지난번 선거가 공산주의 포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성격이었던 만큼 54년만의 첫 민주의회선거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41개 정당이 후보를 내세운 혼전상을 보였지만 최대쟁점은 연방해체와 시장경제개편 강행문제. 1천1백30만 유권자중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체코지역에서는 바크라브 크라우스재무장관이 이끄는 자유우파 ODS가 가장 유력하며 전공산당인 좌파연합은 급속한 시장경제도입 부작용에 대한 불만을 이용,지지도가 높았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연방해체론자인 메치아르 전슬로바키아수상이 이끄는 HZDS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역시 독립을 공약한 슬로바키아 기민당(KDH)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메치아르 전수상은 프라하중앙정부가 슬로바키아를 푸대접해온데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이용,큰 호응을 받았다.그는 HZDS가 승리하면 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켜 체코와 대등한 입장에서 국가연합을 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체코출신 정치지도자들은 슬로바키아가 독자의 길을 걷게 되면 체코가 국제법상의 모든 권리와 조약을 승계,슬로바키아는 무에서 재출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체코측은 경제력이 뒤진 슬로바키아가 떨어져 나가면 체코의 유럽공동체·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빨라져 독일·오스트리아와 접경한 지리적 이점으로 중부유럽 중심세력으로의 합류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체코연방 해체는 유고에서처럼 민족분쟁을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체코와 슬로바키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전투를 벌인 일이 없을 뿐더러 2차세계대전때도 유고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히틀러의 부추김을 받아 살육전을 벌인 것과는 달리 평화공존을 유지했다. 연방해체의 정치공방 다음으로 쟁점이 된 문제는 경제개혁방안.슬로바키아측 메치아르는 시장경제도입의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체코측 크라우스재무장관이 추진중인 급격한 사유화정책을 중단하고 자본가에게만 유리한 세제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체코측 정치인들은 메치아르가 선거에 승리해 연정에 참여할 경우 민주화이후 경제개혁을 수포화할 것이기 때문에 연정자체를 거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투표결과 가장 큰 득표율을 보여 차기 수상으로 예상되는 크라우스 ODS총재는 연방유지와 시장경제 개혁은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메치아르가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슬로바키아가 독립하더라도 합스부르크시대의 헝가리·오스트리아와 같은 밀접한 정치유대를 맺고 기존의 민주화정책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체코연방은 1918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공화국이 합병해 구성되어 히틀러가 38년 뮌헨조약에 의해 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켰으나 45년 종전후 다시 연방화,동구민주화이래 민족주의 물결을 타고 독립운동이 재연되었으며 이번 총선이 그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외교적 고립 중국 벗어났다/천안문사태 3돌… 북경의 위상

    ◎서방제재 세월지나며 “희석”/등소평 제2차 경제개혁 가속화될듯 북경 천안문광장에서의 민주화시위가 유혈진압된지 4일로 만3년.그러나 아직도 「6·4천안문사건」은 어제의 일처럼 자금성일대를 어슬렁거리는 망령으로 남아 있다.북경의 대학가와 천안문 주변에는 5월하순부터 경찰의 경계활동이 강화되면서 생업에 몰두해온 일반시민들에게는 오히려 「그날」이 오고 있음을 일깨워주게 된다.정부당국자들은 올해도 초긴장상태에서 이날을 맞고있다. 최근들어 수감자들의 인권위반문제로 시달려온 당국자들은 이번에는 유명작가 왕약망등 일부반정부인사들의 출국을 허용하고 6·4시위주동자들인 왕단위경생 왕군도 진자명등이 건강한 모습으로 옥중생활을 하고있는 사진까지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지도자들은 아직도 유혈진압의 무자비함과 인권위반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대신 6·4사태직후 서방선진국들이 내건 경제제재와 외교고립문제는 이제 거의 마무리지은것 같다.경제제재의 경우 지난해 5월 아시아개발은행(ADB)차관재개 발표를 끝으로 모두 풀렸으며 외교적고립문제도 지난해 11월 베이커미국무장관의 북경나들이를 고비로 사실상 후권단계로 접어들었다. 지난 1년동안 서방선진국들로부터 외교적 후권을 인정받기위해 중국지도부가 쏟아부은 노력은 처절할 정도였다. 어쨌든 지난해 8월 가이후 일본총리가 북경을 방문하면서부터 서방의 대중국외교제재가 풀리기 시작했다.중국지도자들과는 얼굴도 대하지 않겠다던 선진국 수뇌들중 9월초 메이저영총리에 이어 10여일후 이탈리아총리가 방중길에 올랐으며 11월중순에는 마침내 미국도 베이커국무를 북경에 보내 화해의 신호를 보냈다. 뒤이어 지난 1월말 이붕총리는 6·4사태이후 처음으로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등 서구국가를 순방하고 유엔안보리 정상회담에까지 참석,잠시나마 부시미대통령과 대좌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천안문사태에따른 서방의 제재로부터 벗어날수 있게 됐다.다시말해「외교적사면」을 받은 셈이다. 중국은 이같은 외교적 성과를 위해 서방선진국 이외 중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채널 보강을 위해 강택민총서기를비롯,양상곤국가주석,이붕총리등 최고의 거물급들이 직접 앞장섰다.이들 3명이 지난1년간 20여개국을 순회한 것을 비롯,부총리급이상 고위대표단의 해외방문은 모두 57개국에 달했다.그런가하면 김일성이나 도 무오이 베트남당총서기 등 외국국가원수및 정부수뇌를 북경으로 초청한 경우도 38회에 달했다.지난5월 한달동안에만도 5명의 대통령과 3명의 총리가 다녀갔을 정도여서 중국TV의 톱뉴스는 매일같이 중국지도자들의 외국손님 접대장면으로 채워지고 있을 정도이다. 파리와 뉴욕 등지에서 반정부활동을 주도해온 그룹들의 목소리도 차츰 낮아지고 있다. 홍콩에서 해마다 열리는 6·4기념시위 행진이 처음에는 10만명에서 지난해 1만명으로,다시 올해는 4천명으로 줄어들어 가는 것도 세월따라 그만큼 관심이 멀어져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내부에는 아직도 40여개의 반체제 지하조직이 형성돼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경찰당국은 지목하고 있으며 호남성출신 한 학생지도자는 2일 워싱턴에서 중국지하조직망을 연결시켜 반정부활동을 활성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경제정책의 경우 3년만에 6·4사태 이전상황으로 회귀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지난해 말까지 치이정돈(안정화)을 끝낸데다 소붕괴의 원인을 경제실패 때문이라고 판단한 등소평이 다시 2단계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올해 6·4기념일이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고 있는 것같다.강경보수파에서 탄압의 빌미를 주지 않을뿐아니라 2단계 개혁물결이 뒤집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강원의 6월은 축제의 달/강릉단오제·정선아라리기행등 풍성

    ◎단오제/농악·씨름·그네등 전통놀이 한마당/아라리/아우라지강따라 아리랑 유적 답사 푸르름이 그 깊이를 더해가는 6월들어 강원지역을 대표하는 두개의 축제가 펼쳐진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인 강릉단오제가 3일부터 7일까지 강릉시 및 명주군 일대에서 열리고,정선아리랑의 본고장에서 펼쳐지는 「정선아라리 민요유적기행」 및 「전국 젊은 시동인」 시축제가 정선읍 아우라지강변과 공공도서관에서 6·7일 계속된다. 음력5월5일 단오날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을 모시고 영동일대의 주민들이 한마당에 모여 거행하는 향토축제를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강릉단오제는 지난 67년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행사내용은 지정문화재로 제례·굿·관노가면극 등이 있고 민속행사는 향토민요경창대회·시조경창대회·그네대회·농악경연대회·씨름대회·궁도대회등 수릿날의 전통풍속과 놀이로 꾸며진다. 강릉시민들은 이 축제가 전통성과 역사성을 갖추고 그 유풍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본격적 향토신제가 되고있다고 자신하고 있다.한편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배어있는 민요현장을 찾는 「정선아라리 민요유적기행」은 7일 상오9시30분 정선읍에서 정선군 북면 여랑리의 아우라지강변으로 출발한다. 떠나간 임에 대한 아낙네의 그윽한 정한이 서려있는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뱃사공들의 노래로 물결치는 아우라지강변에는 주인공 아우라지처녀상과 아우라지노래비가 있다. 「정선아라리 민요유적기행」은 바로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산굽이마다 굽이치는 정선군 일대를 돌아보며 정선아리랑을 낳은 이 땅의 풍류정신과 서민들의 애환을 정선아라리 가락속에서 찾아보는 행사이다.이날 행사에서는 또 강변시낭송회와 아리랑에 관한 주제발표(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 최봉출·정선아라리연구소 진용선소장)도 있게 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