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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D-2] “군소정당도 공약 있어요”

    군소정당이 17대 총선에 유난히 마음 설레는 것은 ‘1인2표제’ 때문이다.25개 ‘선관위 등록정당’ 가운데 14개 정당이 비례대표후보자를 냈다.예전의 2배쯤 되는 수치로,정당투표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구국총연맹에서 사회당까지 폭넓은 이념적 스펙트럼과 시민의 정당,종교정당,노년권익보호당 등 여러 계층을 대변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이중 의석이 없는 당은 9개로,저마다 정당기호를 알리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성정당에서 볼 수 없었던 이색공약으로 당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유효투표 3%’.그래야 의석을 가질 자격을 얻는다.투표율을 60%로 잡으면 64만표쯤 얻어야 한다.그렇지 못하면 후보 1인당 1500만원씩의 기탁금도 돌려받지 못한다.아니면 지역구 5석을 얻어야 하지만,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11번 녹색사민당 그중 덩치가 큰 군소정당이다.지난 3월 녹색당과 사민당이 합당,민주화 운동가 출신 장기표씨가 대표를 맡았다.서유럽 복지국가의 정책이념인 사민주의와 환경보전을 표방하고 있다.6명의 비례대표 후보와 서울 동작갑에 3차례 출마했던 장 대표를 비롯한 28명이 지역구에 도전했다.‘정책공약을 하나하나(11번) 실천하고 일일이(11번) 챙기겠습니다’,‘일거수일투족(11번)을 국민여러분과 함께하자.’,‘젓가락(11번) 같이 11번 후보를 꼭 집자.’ 등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한국노총을 기반으로 한 기본표와 녹색당이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20만표 이상을 획득했다며 원내진출을 자신하고 있다. ●14번 사회당 사회주의 정강정책을 지향하며,가장 좌파적으로 평가된다.1998년 창당돼 역사도 비교적 길다.▲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 도입 ▲비정규직 철폐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 등을 내걸었다.비례대표 후보는 1명이다. ●9번 기독당 유명인사가 많은 정당이다.황산성 전 환경부장관,최수환 전 의원 등 비례대표 후보도 14명이나 된다.“기도의 표 모아 정치 바꾸자.”는 표어에서 보듯,당원이 되려면 ‘개신교 신자’여야 한다.개신교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득표 활동을 벌이고 있다. ●6번 ‘가자희망 2080’ 의사·교수·택시기사·자영업자 등 ‘일반시민’ 1만명이 창당발기인에 참여,지난달 17일 창당했다.당명은 “20대부터 80대까지 모든 세대가 참여하자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대표인 노동선 변호사 등 6명이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했다.기호6번에 대해서는 “평형,조화,행운 등을 상징한다.”며 6에 얽힌 동서양 철학과 수학적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7번 공화당 허경영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 꼬박꼬박 출마한 덕에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선거벽보에 “보릿고개를 없앤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이 도탄에 빠진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뭉쳤다.”며 박정희 정신으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8번 구국총연합 ‘무궁화 혼은 나라사랑 구국의 물결!’이라며 애국세력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국회의원 정원축소,부가가치세 폐지와 통일세 신설,검찰권 완전독립 등을 선거구호로 내걸었다.비례대표에는 2명이 등록했다. ●10번 노년권익보호당 ‘대기업 부회장 출신 웨이터’로 유명한 서상록 명예총재가 이끌고 있다.최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에 1인시위를 벌이며 활발하게 활동했다.“노년의 지혜와 경륜을 국가발전의 초석으로 삼아 윤리와 도덕적 양심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각오다. ●13번 민주화합당 중국에서 한의사 자격증을 딴 이태문 대표만 비례대표 후보에 등록했다.행자부내 ‘국가화합부’ 신설 등이 주요 공약이다. 이지운 박정경 박지연기자 jj@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0)왕은이골의 노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0)왕은이골의 노래

    “이웃끼리 서로 돕는 형세는 생각하지 않고 창칼 휘둘러 날마다 전쟁만 일삼는구나 그 굳세던 성벽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성 위엔 당나라와 신라군 깃발뿐이네. 노래와 춤 가락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름다운 구슬 다시는 아름다움 못 다투네 가련타,물고기 창자 속에 서린 꽃다운 넋들이 봄바람 강물 위에 꽃으로 지고 있네.” -시인 이삼탄 조선 성종 때 시인 이삼탄은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낙화암에 올라,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킨 역사를 아파하면서 이 시를 남겼다.오늘은 이 시의 배경이 된 역사 유적 중 하나인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로 여행을 떠난다. 백제 유적 답사 여행자들에게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거니와 술 마시고 떠드는 관광객 부대들에는 전혀 재미없는 곳이기도 하다.하지만 부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서는 안된다. ●부여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토박이말 지금의 부여가 백제 시대에는 ‘소부리’ 또는 ‘사비’로 불렸는데,사비는 본디 새벽이라는 토박이말이고,지금의 이름 부여도 본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토박이말이었다고 한다.이 토박이말에 나중에 한자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하는데,부여를 제대로 부르자면 새벽의 땅,아침의 땅이라 해야 옳다.그런 부여에 가서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눈에 보이고,손끝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느끼려는 조급함,옹졸함,속좁음을 지긋이 누르고 눈을 감은 채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세상의 절반 혹은 좀 더 많은 부분이 눈에 안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부여땅 역사와 문화도 그러하다.그래서 부여 여행은 단순한 지도 위의 한 지점을 둘러보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으로의 고요하고 깊은 명상과 아름다움을 향한 구도여행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나 신라 역사 문화 유적들은 대부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보고 느끼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백제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망해도 깡그리 망해버린 탓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박살나버린 백제가 조각조각 흩어져 흙 속에 매몰되었거나 강물에 휩쓸려 가버리고,남아 있는 몇몇 흔적에는 망한 나라의 백성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수모와 굴욕의 날들이 숨어 있다. 오늘 여행지 왕은이골은 규암면에 있다.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와 마주보고 있는 규암면에는 규암나루가 있는데,부여를 드나드는 사람이나 생활물자가 모두 이 나루를 건넜었지만 오늘날 규암나루는 민물고기 낚시터로 변해 있다.백마강에서 낚은 장어 잉어로 매운탕을 만들어 빼어난 강의 경치를 즐기며 소주잔을 기울이게 하는 매운탕집도 몇 군데 보인다.매운탕 그릇에 담긴 물고기 창자 속에는 백제 멸망 때 떼죽음 당한 백제인들의 꽃다운 넋들이 서려 있을까? 시인이 절규했던 그 노래를 되뇌며 백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시내를 따라 오르면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에 닿는다.지금은 민가가 몇 채 서 있고 논과 밭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 소박한 모습인데,그 유명한 왕흥사(王興寺)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나당연합군의 공격이 얼마나 잔인했던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폐사지 중 하나다. ●2대 30년에 걸쳐 세워진 호국사찰 왕흥사 법왕(法王)은 그가 죽던 해인 600년 정월 이곳에다 절터를 정하고 왕흥사라 부르게 했다.그 해에 법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되었으니,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아버지다. 무왕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그동안 약화된 왕권을 안정시키고 신라에 계속 밀리기만 하던 전선을 정복전쟁으로 전환시키면서 승리를 구가한 영웅적인 군주였다.국내 정치의 안정을 발판 삼아 강화된 왕권의 표징이자 존엄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역사를 단행했는데,630년 백제의 중심적 사찰로 평가받은 웅장하고 화려한 왕흥사를 완성시킨 것도 대역사 중 하나였다.아버지 법왕이 착공해 놓고 죽자 아들 무왕이 이를 이어받아 30여년 만에 완성시킨 왕흥사는 이름에서 암시되듯 왕이 공사를 직접 챙겼고,몸소 불공을 드리는 곳이어서 왕실의 원찰이자 왕과 특별한 관계를 지녔던 사원이었다. 왕흥사는 작은 강물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지어졌다.단청은 화려하고 장식은 장엄하였다.무왕은 자주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했다.백제가 고구려와 신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정복하게 되기를 빌었다. 하늘 고요하고 맑은날 왕흥사는 언덕 아래의 호수에 비쳐 신비감을 자아냈다.물에 비친 왕흥사의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장엄은 땅 위의 것이 아니라 물 속 깊은 어느 다른 세계의 것인 듯 환상적이었다.무왕은 때때로 작은 배를 타고 천천히 노를 저어 물에 비친 왕흥사로 다가섰는데,노젓는 흔적으로 호수에 잔물결이 일면 왕흥사도 따라서 잔물결졌다.무왕은 배를 멈춰 세웠다.다시 고요해진 수면 위엔 왕흥사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고 왕은 배 위에서 향을 사르고 예배하기도 했다. 절과 호수를 사이에 둔 맞은편 언덕에는 널따란 바위가 놓여 있었다.무왕은 절에 가기 전 먼저 이 바위에 올라서서 물에 비친 왕흥사를 바라보며 예배를 올렸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자온대(自溫臺)라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엔가 기대고 싶어하듯이 무왕도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비록 신라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승리를 계속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왕흥사 부처님께 간곡한 기도를 하는 이유였다. 멈춰서는 안된다고 느낀 무왕은 새로운 백제의 웅비를 꿈꾸면서 사비성(泗泌城) 시대를 지나 새로운 익산(益山) 시대를 열기 위해 익산 천도를 계획했다.엄청난 경비와 시간을 쏟아 부어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익산 천도를 통하여 귀족세력을 재편성함으로써 새로운 인물 중심으로 집권체제를 갖출 계획이었다.국보 제11호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미륵사 7층 석탑을 동서 상탑으로 세우면서 불교의 원력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제압하고 백제 중심 통일국가를 꿈꾸었다.미륵사지 석탑에는 백제 후반 백제인들의 소망이 녹아 있는 셈이다.그러나 무왕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아들이 뒤를 이어 의자왕이 되었다. 의자왕은 옳은 충고를 하는 어진 신하를 박해함으로써 나라를 잃게 되었다.신라의 무열왕과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술을 따르는 수모를 겪으며 당나라로 끌려가서 죽었다.백제인들은 왕흥사를 거점으로 하여 침략군에 항거했다. 그러나 항전 7일 만에 무열왕에 의하여 절은 부숴지고,불타고 깨어져 폐허로 변했다.그 때 수많은 여염집 여자들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능욕당한 뒤 죽었거나 죽지도 못한 여인들은 당나라 군인들의 씨를 받아야 했다. ●백제 부흥세력, 왕흥사 거점으로 항거 당나라 군사왈패들은 국보 9호 정림사 오층석탑 기단부에다 ‘대당평제탑(大唐平濟塔)’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뒷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탑을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세운 전승기념탑이라 왜곡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는 부여에다 유달리 눈독을 들여 신궁을 세우려 했다.왜냐하면 일본 아스카문화의 고향이 바로 백제시대 부여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침략군에게 짓밟혀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백제땅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드물지만,상처를 지닌 채 남아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왕흥사 옛터에 뒹구는 깨어진 기왓장 조각들,민가가 들어선 여기저기 슬프게 드러나 있는 주춧돌들,논밭으로 변해버린 ‘쇠대박이’란 이름에서 그 아름답던 왕흥사의 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소리를 깨달아야 하느니.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0)왕은이골의 노래

    “이웃끼리 서로 돕는 형세는 생각하지 않고 창칼 휘둘러 날마다 전쟁만 일삼는구나 그 굳세던 성벽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성 위엔 당나라와 신라군 깃발뿐이네. 노래와 춤 가락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름다운 구슬 다시는 아름다움 못 다투네 가련타,물고기 창자 속에 서린 꽃다운 넋들이 봄바람 강물 위에 꽃으로 지고 있네.” -시인 이삼탄 조선 성종 때 시인 이삼탄은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낙화암에 올라,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킨 역사를 아파하면서 이 시를 남겼다.오늘은 이 시의 배경이 된 역사 유적 중 하나인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로 여행을 떠난다. 백제 유적 답사 여행자들에게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거니와 술 마시고 떠드는 관광객 부대들에는 전혀 재미없는 곳이기도 하다.하지만 부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서는 안된다. ●부여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토박이말 지금의 부여가 백제 시대에는 ‘소부리’ 또는 ‘사비’로 불렸는데,사비는 본디 새벽이라는 토박이말이고,지금의 이름 부여도 본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토박이말이었다고 한다.이 토박이말에 나중에 한자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하는데,부여를 제대로 부르자면 새벽의 땅,아침의 땅이라 해야 옳다.그런 부여에 가서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눈에 보이고,손끝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느끼려는 조급함,옹졸함,속좁음을 지긋이 누르고 눈을 감은 채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세상의 절반 혹은 좀 더 많은 부분이 눈에 안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부여땅 역사와 문화도 그러하다.그래서 부여 여행은 단순한 지도 위의 한 지점을 둘러보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으로의 고요하고 깊은 명상과 아름다움을 향한 구도여행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나 신라 역사 문화 유적들은 대부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보고 느끼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백제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망해도 깡그리 망해버린 탓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박살나버린 백제가 조각조각 흩어져 흙 속에 매몰되었거나 강물에 휩쓸려 가버리고,남아 있는 몇몇 흔적에는 망한 나라의 백성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수모와 굴욕의 날들이 숨어 있다. 오늘 여행지 왕은이골은 규암면에 있다.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와 마주보고 있는 규암면에는 규암나루가 있는데,부여를 드나드는 사람이나 생활물자가 모두 이 나루를 건넜었지만 오늘날 규암나루는 민물고기 낚시터로 변해 있다.백마강에서 낚은 장어 잉어로 매운탕을 만들어 빼어난 강의 경치를 즐기며 소주잔을 기울이게 하는 매운탕집도 몇 군데 보인다.매운탕 그릇에 담긴 물고기 창자 속에는 백제 멸망 때 떼죽음 당한 백제인들의 꽃다운 넋들이 서려 있을까? 시인이 절규했던 그 노래를 되뇌며 백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시내를 따라 오르면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에 닿는다.지금은 민가가 몇 채 서 있고 논과 밭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 소박한 모습인데,그 유명한 왕흥사(王興寺)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나당연합군의 공격이 얼마나 잔인했던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폐사지 중 하나다. ●2대 30년에 걸쳐 세워진 호국사찰 왕흥사 법왕(法王)은 그가 죽던 해인 600년 정월 이곳에다 절터를 정하고 왕흥사라 부르게 했다.그 해에 법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되었으니,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아버지다. 무왕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그동안 약화된 왕권을 안정시키고 신라에 계속 밀리기만 하던 전선을 정복전쟁으로 전환시키면서 승리를 구가한 영웅적인 군주였다.국내 정치의 안정을 발판 삼아 강화된 왕권의 표징이자 존엄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역사를 단행했는데,630년 백제의 중심적 사찰로 평가받은 웅장하고 화려한 왕흥사를 완성시킨 것도 대역사 중 하나였다.아버지 법왕이 착공해 놓고 죽자 아들 무왕이 이를 이어받아 30여년 만에 완성시킨 왕흥사는 이름에서 암시되듯 왕이 공사를 직접 챙겼고,몸소 불공을 드리는 곳이어서 왕실의 원찰이자 왕과 특별한 관계를 지녔던 사원이었다. 왕흥사는 작은 강물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지어졌다.단청은 화려하고 장식은 장엄하였다.무왕은 자주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했다.백제가 고구려와 신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정복하게 되기를 빌었다. 하늘 고요하고 맑은날 왕흥사는 언덕 아래의 호수에 비쳐 신비감을 자아냈다.물에 비친 왕흥사의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장엄은 땅 위의 것이 아니라 물 속 깊은 어느 다른 세계의 것인 듯 환상적이었다.무왕은 때때로 작은 배를 타고 천천히 노를 저어 물에 비친 왕흥사로 다가섰는데,노젓는 흔적으로 호수에 잔물결이 일면 왕흥사도 따라서 잔물결졌다.무왕은 배를 멈춰 세웠다.다시 고요해진 수면 위엔 왕흥사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고 왕은 배 위에서 향을 사르고 예배하기도 했다. 절과 호수를 사이에 둔 맞은편 언덕에는 널따란 바위가 놓여 있었다.무왕은 절에 가기 전 먼저 이 바위에 올라서서 물에 비친 왕흥사를 바라보며 예배를 올렸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자온대(自溫臺)라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엔가 기대고 싶어하듯이 무왕도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비록 신라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승리를 계속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왕흥사 부처님께 간곡한 기도를 하는 이유였다. 멈춰서는 안된다고 느낀 무왕은 새로운 백제의 웅비를 꿈꾸면서 사비성(泗泌城) 시대를 지나 새로운 익산(益山) 시대를 열기 위해 익산 천도를 계획했다.엄청난 경비와 시간을 쏟아 부어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익산 천도를 통하여 귀족세력을 재편성함으로써 새로운 인물 중심으로 집권체제를 갖출 계획이었다.국보 제11호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미륵사 7층 석탑을 동서 상탑으로 세우면서 불교의 원력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제압하고 백제 중심 통일국가를 꿈꾸었다.미륵사지 석탑에는 백제 후반 백제인들의 소망이 녹아 있는 셈이다.그러나 무왕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아들이 뒤를 이어 의자왕이 되었다. 의자왕은 옳은 충고를 하는 어진 신하를 박해함으로써 나라를 잃게 되었다.신라의 무열왕과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술을 따르는 수모를 겪으며 당나라로 끌려가서 죽었다.백제인들은 왕흥사를 거점으로 하여 침략군에 항거했다. 그러나 항전 7일 만에 무열왕에 의하여 절은 부숴지고,불타고 깨어져 폐허로 변했다.그 때 수많은 여염집 여자들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능욕당한 뒤 죽었거나 죽지도 못한 여인들은 당나라 군인들의 씨를 받아야 했다. ●백제 부흥세력, 왕흥사 거점으로 항거 당나라 군사왈패들은 국보 9호 정림사 오층석탑 기단부에다 ‘대당평제탑(大唐平濟塔)’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뒷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탑을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세운 전승기념탑이라 왜곡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는 부여에다 유달리 눈독을 들여 신궁을 세우려 했다.왜냐하면 일본 아스카문화의 고향이 바로 백제시대 부여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침략군에게 짓밟혀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백제땅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드물지만,상처를 지닌 채 남아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왕흥사 옛터에 뒹구는 깨어진 기왓장 조각들,민가가 들어선 여기저기 슬프게 드러나 있는 주춧돌들,논밭으로 변해버린 ‘쇠대박이’란 이름에서 그 아름답던 왕흥사의 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소리를 깨달아야 하느니.˝
  • [총선 D-7] 민생·치안분야

    민주노동당은 주민등록번호 부여방식을 무작위로 바꾸자는 공약을 내놨는데,이렇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가.추진과정에 발생할 문제점은 파악됐나. ●민주노동당 개인정보의 마구잡이 유출을 막자는 취지에서 나온 공약이다.구체적으로는 주민등록번호 자체에 나타나는 성별·연령별 차별을 막자는 취지다.호주제로 인한 자녀와 여성의 피해를 막는 목적도 있다.예산은 썩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공무원 인사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는데,구체적인 방안을 말해달라. ●한나라당 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자는 취지다.중앙인사위의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다.대통령이 장·차관급을 임명할 때 국회 상임위에서 심의하는 절차도 신설할 것이다.순환보직제를 축소함으로써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겠다. 민주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경찰 인력확충을 한다고 하는데 상충되지 않나. ●민주당 각종 시위 등 시국치안에 나서는 인력만 민생치안으로 돌릴 수 있으면 큰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 열린우리당은 국무총리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열린우리당 국무조정실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마음대로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국무위원 임명과 해임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 자민련은 공무원의 직무성과가 승진 및 보수와 연결되도록 인센티브제도를 실시하겠다고 하는데,현행 제도와 무엇이 다른가. ●자민련 공무원 보수를 민간기업 임금상승률과 연계해서 주자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직무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그리고 나서 다면평가를 하면 된다.현행 인센티브제는 성과급의 차이가 별로 없다.포상 수준으로 성과급 차등을 크게 둬야 한다. 한나라당은 평소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도 농어민 이익과 관련해서는 개방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는데,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가. ●한나라당 세계적 개방 물결에 동참하면서도 농어민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 아줌마 거부하는 ‘뉴 포티’는

    중년 여성들의 옷차림,왜 젊어지는가. 오늘의 40대는 옛날의 40대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뉴 포티(New Forty)’로 불리는 40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직장생활을 한 첫 세대로 ‘아줌마’를 거부하는 것이 특징이다.베이붐 세대로 소비력도 강해 이들의 특징은 새로운 물결이 되고 있다. 얼마전까지 10대들이 유행을 주도했지만 워낙 유행 주기가 짧아 패션업계에선 이들을 고정고객으로 삼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대신 고정고객으로 소비력을 갖춘 40대가 타깃이 됐다고 한다. 에스모드 최용숙 마케팅 주임교수는 “럭셔리브랜드에 탐닉했던 40대가 스스로의 코디 감각으로 옷을 입게 되면서 옷에 관해 세대의 벽을 파괴했다.”며 “옷이 편안하면 몸도 푹 퍼질 수 있는데 반대로 20대 옷이 체형보정의 효과도 가져올 뿐 아니라 밑위가 짧은 로 웨스트 바지는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아랫배가 있는 40대 여성들 체형의 결점을 오히려 잘 감춰줄 수 있다.”고 40대의 젊은 옷차림은 여러가지가 딱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컨설턴트 박경화씨는 “평균수명 80세의 시대에 40대란 ‘아직 늙기엔 너무 이른 나이’라는 심리적인 인식도 자리잡고 있다.”고 40대 여성의 ‘젊은 멋내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허남주기자˝
  • [총선 D-12] 경남 남해·하동-박희태·김두관 후보

    한나라당의 아성인 영남에서 열린우리당 돌풍의 진원지로 꼽히는 곳이다.4선 의원의 관록과 ‘리틀 노무현’의 패기가 맞붙어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3대 총선부터 이곳에서만 내리 4선을 기록한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에게 참여정부 행정자치부장관 출신인 열린우리당 김두관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영남의 끝자락에서 여야 실세의 ‘대선 2라운드’가 펼쳐지는 셈이다.전국 지역구 평균보다 5000여명이나 적은 미니 선거구임에도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공식 선거전에 들어가기 전의 여론조사 결과는 박후보와 김 후보의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두후보의 지지율은 엇갈렸다. 박 후보 측은 “박근혜 대표 효과와 열린당에 대한 견제 심리에 힘입어 지지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면서 “선거 막판에 전통적인 영남 지지층까지 결집하면 막판 뒤집기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후보는 60대 경륜을 바탕으로 평소 깨끗한 의정 활동을 펼친 만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영남 민심이 박 후보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박 후보는 “5선이 되면 국회의장을 맡아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면서 “다수당 중진으로서 밀려오는 개방의 물결에 대응해 실질적인 농어촌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김 후보측은 이장과 군수를 역임하면서 ‘지역 일꾼’으로 자리매김한 이력을 최대 장점으로 삼고 있다.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한 김 후보는 “지난 16년 동안 박 의원이 지역 발전에 무슨 역할을 했느냐.”면서 “관광산업과 첨단산업단지를 유치,지역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김 후보측은 “지난 87년 농민회 활동을 시작으로 멀리 서울에서 군림하는 대신 지역주의에 맞서면서 주민들과 울고 웃은 ‘풀뿌리 정치인’”이라면서 “젊은층이 많은 하동에서는 15% 포인트 정도 앞서고,박 후보의 고향인 남해에서도 40대 이하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로 박 후보를 제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16대 총선때 민국당으로 출마해 고배를 마신 남명우씨를 내세웠지만 상대적인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박희태 후보가 본 김두관 후보 장점 마을 이장에서 출발,남해군수를 거쳤다.오랫동안 지역에서 일했기 때문에 지역 사정에 밝은 것도 큰 장점이다.지역의 군수가 하루아침에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은 일할 때의 추진력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김 후보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그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도 높이 사고 싶다. 단점 선배가 후배의 단점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어색해 그저 한 가지 안타까운 점만 지적하고 싶다.김 후보는 좀 급한 편인 것 같다.성격 얘기가 아니다.그의 사고 방식이나 언행,정치적인 행보가 사회적인 통념에 비해 좀 급진적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김 후보에게는 앞으로는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라고 충고하고 싶다. ●김두관 후보가 본 박희태 후보 장점 제13대 국회 때 민정당 후보로 당선된 뒤 주요 당직을 두루 거쳤다.중앙정치 경험이 풍부하고 당내 계파와도 두루 화합하는 원만한 성격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대변인을 맡았을 때 국민들에게 말 잘하고 토론에 능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심어줬다.소탈한 성격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단점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정책을 생산하고 정치발전을 선도해야 하는데,이런 노력보다는 ‘언어 유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지역에 뿌리 내리고 주민들과 함께 생활해 본 경험이 없고,지역 주민의 뜻을 정책으로 반영하는 활동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새 시대에는 새 인물을 준비해야 하는데,후배를 키우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서울탱고] 동물원의 ‘혜화동’

    명절이면 실향민들은 임진각에서 망향제를 올린다.못 견디게 가고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런 식으로나마 달랜다.하지만 이들보다 사정이 더 딱한 사람들도 있다.아예 고향이 사라져 망향 대상조차 없어진 불쌍한 도시인들이 그들이다.이들은 집값이나 교육여건에 따라 유목민들처럼 도시 여기저기를 떠돈다.재개발 물결로 유년시절의 놀이터는 온데간데 없다.고향이란 단어가 등장하면 ‘심정적인 고아’가 된다. 그러나 간혹 이들이 고향의 흔적을 느낄 때도 있다.놀이터에서 구슬치기와 딱지 따먹기를 함께 하며 뒹굴던 친구들을 만나면 그렇다.뿔뿔이 흩어져 제각각 살다가 오랜만에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을 때다.모처럼 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그러다 누군가가 유학을 간다며 한마디 툭 던지면 회자정리(會者定離)란 사자성어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다.‘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초등학교 동창들의 어렴풋한 기억 ‘투잡스’의 전형인 동물원(www.ezoo.or.kr)은 정신과 의사 김창기씨를 비롯,5명이 멤버다.평소에는 서로 다른 본업에 열중하다 틈을 내서 음반을 한 장씩 낸다.‘주경야음’(晝耕夜音)하는 이들은 1987년 ‘거리에서’로 첫선을 보인 뒤 9집까지 낸 장수그룹이다.고(故) 김광석씨도 동물원 출신이다. “87년인가,친구 하나가 갑자기 유학을 떠난다고 하더군요.가장 순수했을 때가 초등학교 시절이라 그때의 감정을 섞어 아쉬운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죠.” ‘혜화동’을 직접 쓰고 부른 김창기씨는 혜화초등학교를 졸업했다.아버지 직장을 따라 호주로 떠나기 전인 초등학교 6학년까지 혜화동에서 살았다.눈이 내리면 혜화동 언덕에서 썰매를 타거나 형제들과 함께 언덕 위에서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 함께 놀던 친구들은 인터넷 덕분에 40줄 가까이 돼서야 만났어요.세월 탓인지 다들 많이 변했더라고요.치맛바람을 타고 공부깨나 하던 애들은 별볼일 없어지고,오히려 가난했던 친구들은 근사하게 바뀌고….” 그는 혜화동에서 나온 뒤 연극이나 술 마시려고 동숭동에는 가봤지만 웬일인지 혜화동 쪽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았다.지하철4호선 혜화역 덕에 일반인들은 동숭동까지 포함,혜화동의 범위를 실제보다 넓게 보지만 그의 눈에는 어린 시절의 혜화동이 동숭동과는 구별된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찾으면 크게 느껴졌던 운동장이 별로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변한 혜화동을 찾으면 마음의 고향이 깨질 것 같아서요….” ●세 빛깔 어우러진 혜화동 지하철4호선 덕분에 동숭동 일부를 포함해서 생각되는 혜화동에는 세 가지가 엉켜있다.성직자와 수사들의 궤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톨릭대 성심교정과 1958년 근대 교회건물을 처음 드러낸 혜화동성당.이제는 의대만 남았지만 방송통신대에 일부 존재하는 서울대 문리대의 발자국.런던의 웨스트 엔드처럼 연극을 골라 즐길 수 있는 소극장들의 천국도 문화동네 혜화동을 상징한다.굳이 파리의 몽마르트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동사거리에 이르는 1.1㎞의 대학로는 젊은이들의 해방구다.주말에는 차량통행을 막아 ‘차 없는 거리’에서 젊은이들의 공연이 넘쳐난다.마로니에공원 한 가운데는 1929년 4월5일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당시 심은 마로니에나무가 서있다.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가기 전까지 경성제대 터는 상아탑의 낭만이 서려 있었다. 이태수 서울대 인문대학장은 “60년대 문리대생이 음악을 들으며 토론하던 ‘학림다방’과 중국음식점 ‘진아춘’을 모르면 간첩”이라면서 “진아춘의 주인이 지금은 교수나 장관이 된 학생들이 음식값 대신 맡긴 시계를 전시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대학로에는 소극장 50여곳과 카페 500여곳이 밀집돼 있다.낭만적 분위기보다는 다소 상업적인 모습을 갖춘 지 오래다.서점 자리를 단란주점이 꿰차는 등 지성인의 거리라는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하지만 마로니에공원과 동숭아트센터 앞에선 지금도 주말마다 각종 공연과 뮤지컬,마임,코미디 등이 펼쳐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배우 박시윤(30)씨는 “80년대 젊은이들의 풍류마당과 막걸리 문화로 상징되던 대학로에 90년대에는 폭주족의 굉음과 힙합댄스 열풍이 불기도 했다.”면서 “이제 대학로는 여러 문화가 뒤엉킨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라고 말했다. 대학로 뒤편 산등성이로 올라가면 젊은 신학도들의 요람인 가톨릭대와 혜화동성당이 눈에 들어온다.성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라 도시의 번잡스러움을 잠시 잊고 산책하기에 일품이다.중세 수도사들의 옷을 입은 젊은 수사들도 더러 눈에 띈다.김수환 추기경은 여기서 ‘혜화동 할아버지’로 불린다.민속자료로 지정된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고택과 하비에르 국제학교도 자리하고 있다. 이유종기자 bell@˝
  • 권지예 첫 장편 ‘아름다운 지옥’

    “1970년대에 정치는 억압적이었지만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낭만적이었다.또 그 시대를 통과한 청춘이란 얼마나 순정하고 촌스러운지.그 사람 냄새나는 촌스러움이 너무 귀하게 느껴져서 지금에 와서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다.” 첫 소설집도 내기 전에 단편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받아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작가 권지예(44)가 첫 장편 ‘아름다운 지옥’(문학사상사 펴냄)을 내놓았다.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실린 이 두 권의 성장소설은 폭압적인 현실과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한 소녀가 여성으로 커가는 달콤새콤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소설은 주인공 혜진이 열두 살 되던 해 식구들이 전농동 단층 기와집으로 이사오는 것으로부터 열린다.이후 ‘내 집 장만 기념’으로 심은 라일락 향기에 실려 소녀의 가족사가 피어난다.정보계 장교 출신의 아버지로 인한 잦은 이사 추억,별을 달지 못해 전역한 아버지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위축되는 모습,갈수록 쪼그라드는 살림을 걱정하는 어머니,자기보다 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하늘의 시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혜선 등 애틋하고 아련한 가족사가 이어지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작품의 다른 축은 혜진의 사랑 이야기.그녀가 아프면서 커가는 모습이 이광수의 ‘사랑’보다 ‘선데이 서울’에 더 감수성을 자극받던 사춘기,생활고로 집앞에 내준 술집 논산옥에서 들려오는 끈적한 농지거리 풍경에서 지레 짐작해버린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세계.어린 작부 진숙과의 인연,그리고 대학생이 됐을 때 찾아온 소설같은 사랑 등을 징검다리 삼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과정에 ‘웃으면 복이와요’의 비실이 배삼룡 흉내내기,통행금지 사이렌에 쫓기는 풍경,박정희 전대통령의 유고로 인한 80년의 봄 풍경 등이 동행하며 ‘추억 여행’을 더 생동감있게 만든다.아늑하기만 한 소설 속 공간은 작가와 동시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풋풋한 기억에 젖게 만든다.그렇다고 그 추억이 과거에 갇혀 있지만은 않다.그 또래의 소녀라면 누구나 겪을 ‘통과제의’라는 보편적 감성을 확보하면서 공감의 물결은 넓어진다.시의적절한 비유와 탄탄한 이야기 전개도 돋보인다. 가족사와 내면 풍경을 흥미롭게 엮어가는 작가는 그 먼지쌓인 원형질의 세계를 닫으며 이렇게 얘기한다.“백원에 몇장하는 고무줄 잘 끊어지는 헐렁한 팬티와 엄마가 입던 걸 줄인 누리끼리한 인조견 속치마”로 상징되는 그 때가 비록 비루하고 ‘지옥’ 같았지만 그래도 꿈과 낭만이 있어 행복했고 아름다웠노라고.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청산도에 살으리랏다

    전남 완도에 다녀왔다.몸살날 정도로 봄빛이 예쁜 청산도,숭어가 펄떡펄떡 뛰노는 소안도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청산도의 봄빛은 이미 곰삭아 있었다.섬을 파랗게 덮은 보리는 벌써 솜털같은 이삭을 하나씩 피우고 있었고,돌담 너머로는 샛노란 유채꽃 물결이 출렁거렸다.푸른 빛이 한층 짙어진 바다로부터 밀려드는 훈풍은 밀밭을 손질하는 아낙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고 있었다.완도의 섬속의 섬,청산도와 소안도를 다녀왔다. 글 청산도·소안도(완도) 임창용기자 sdragon@ ●청산도(완도군 청산면) 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50분 거리인 청산도(靑山島).푸른 숲이 우거진 산이 많아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하지만,이맘때 청산도의 푸른 빛은 실상 보리빛이다.섬 어느 곳을 가도 해안에서 바라보면 산 아래 계단처럼 펼쳐진 다랑논에 어김없이 보리가 자란다. 선착장이 있는 도청항에서 차로 3∼4분쯤 가면 영화 ‘서편제’가 촬영된 당리마을이다. 영화에서 소리꾼인 유봉(김명곤 분)과 그의 딸 송화(오정해 분),동호(김규철 분)가 신명나게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돌담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 촬영후 시멘트로 포장됐다가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걷어냈다고 한다.지금은 길 입구를 중심으로 심어놓은 유채꽃이 만발해 돌담길 주변 색깔이 더 예뻐졌다.오히려 영화속 배경보다 한층 더 화사한 분위기가 난다. 당리마을 한가운데엔 유봉이 툇마루에 앉아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집이 있다.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집들 가운데 끼어 있는 유일한 초가집이다.사람은 살지 않고 당시 주인공들의 복장을 한 인형을 설치해 영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청산도에서 빠질 수 없는 볼거리는 돌담이다.밭둑,논둑,축대,집 둘레엔 어김 없이 돌담이 쌓여 있다. 완도군청 직원 안봉일씨는 “청산도는 아무데나 파헤쳐도 주먹만한 것부터 집채만한 것까지 온통 돌뿐”이라며 “그래서 예전부터 밭 하나 일구려면 몇 달이 걸렸다.”고 했다. 돌담뿐만 아니라 벽돌 대신 돌을 쌓아서 지은 집도 있다.진흙을 이겨 틈을 메우면서 벽을 쌓은 뒤 지붕을 덮은 집들이다.높다랗게 쌓은 돌담과 돌벽들은 수백년,수십년이 지났음직 하지만,거의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다.돌담 쌓기는 지금도 청산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중요한 건축공법이다. 돌이 많다보니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청산도엔 쌀이 항상 부족했다.오죽하면 ‘청산도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만 먹으면 부잣집’이란 말이 있을까. 그래서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얻기 위해 무진 애를 썼는데,그중 가장 특이한 방법이 ‘구들장 논’과 ‘구들장 수로’다.비탈진 산자락에 돌을 쌓은뒤 흙을 덮어 만든 논과,여기에 물을 대기 위한 물길이다. 그 방법이 기발하다.구들장 모양의 넓적한 돌을 기와를 겹쳐 쌓듯이 가운데 방향으로 경사지게 쌓아 맨 아래 중앙에 사람이 기어들어갈 정도의 네모진 구멍을 만들었다.돌을 겹쳐 쌓은 위엔 흙을 두껍게 깔아 보리나 벼를 심었다. 이렇게 하면 비가 내렸을 때 스며든 물이 경사진 돌을 따라 가운데로 모여 구멍을 따라 나오게 되고,구멍아래 있던 논에선 이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돌이 많은 특이한 지질과 한 방울의 물도 버리지 않으려는 주민들의 의지가 빚어낸 첨단 농법이 아닐 수 없다. 섬의 북동쪽 진산리엔 갯돌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아이 손톱만한 것부터 어른 머리 크기까지 갖가지 색깔의 동그란 돌이 해안을 덮고 있다.파도가 밀려왔다가 내려갈 때마다 ‘차르르 차르르’ 돌구르는 소리가 때묻지 않은 어린애 웃음소리처럼 정겹다 ●소안도(완도군 소안면) 소안도는 해안 풍광과 상록수로 이루어진 방풍림이 아름다운 섬이다.특히 일몰 무렵 해안에 가면 숭어떼가 붉은 햇살에 반사돼 반짝이며 펄떡펄떡 뛰노는 모습은 너무 눈부셔 가슴마저 덩달아 뛰게 한다. 숭어가 워낙 많아 이곳에선 ‘개매기’란 특이한 방법으로 어로작업을 한다.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해안 지형이 오목하게 생긴 곳에서 주로 하는데,소안도에선 섬 북쪽 월항리 앞 바다가 적지다. 개매기란 바다(갯)를 막아(매기) 고기를 잡는다는 뜻.밀물 때 해안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수백m 길이에 말뚝을 박아 그물을 매 썰물로 물이 줄어들면 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한 주민은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개매기 체험행사를 했는데,워낙 숭어가 많아 커다란 마대자루에 고기를 담아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월항리 주민들은 올해도 7월부터 8월까지 10여회 정도 체험행사를 열 예정.물이 무릎 아래까지 빠지면 일제히 면장갑을 끼고 들어가 물반 고기반인 바다에서 숭어를 잡는 행사다.참가비는 1인당 5000원 정도. 여의도 3배 크기의 소안도는 항일운동의 거점이기도 하다.일제의 침략이 본격화한 1905년 이후 주민들은 당사도 등대 습격사건 등 가열찬 항일운동을 펼쳤다.항일,민족교육의 중심에 서 있었던 비자리의 사립 소안학교 터에 최근 건립한 소안도 항일운동기념관엔 당시 항일운동을 이끈 인물들의 사진과 업적을 담은 자료가 전시돼 있다.또 항일운동 모습을 인형이나 홀로그램 등으로 재현한 세트 등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들러볼 만하다. 이것도 맛보세요 소안도는 톳과 전복양식으로 유명하다.이곳 주민들은 톳 양식 만으로도 한 해에 가구당 평균 3000만원의 소득을 올릴 정도.시설비가 많이 드는 전복 양식을 하는 사람들은 상당한 부자에 속한다. 소안도 음식점들은 대부분 전복 음식을 낸다.그중 면 소재지가 있는 비자리의 ‘청포도식당’(061-53-7248)은 다양한 전복 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곳.주메뉴는 전복회와 전복 구이,전복 내장 볶음을 세트로 내는 ‘소안정식’이다. 전복회는 두툼하게 썰어 한 번 입안에 넣으면 한참 동안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달큰하면서 풋풋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구이는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사실 서울 등 도심에서 전복을 구워먹는다는 건 지나친 사치다.얇게 저며 회로 먹거나,몇 점씩 넣어 죽을 끓여먹을 정도로 전복은 ‘귀하신 몸’이다.그래서 전복을 통째로 구워 군고구마 먹듯 베어먹다 보면 ‘이래도 되나.’하며 스스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전복 내장은 젓갈(게우젓)을 담그거나 전복죽을 쑬 때 넣는 줄만 알았는데 이곳에 오니 볶음요리가 있다.약간의 양념을 해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접시에 담아준다.쌉싸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참 독특하다. 전복요리 이외의 음식도 다양하고 푸짐하다.몸통만으로도 접시에 가득찰 정도로 큰 삼치 구이·광어회·간재미 찜 등 해산물,톳나물 무침·모자반 무침 등 해초류,성게알젓·게우젓 등 고급 젓갈 등 20여가지가 상을 가득 채운다.음식값은 4인 1상 기준 6만원. 완도읍내에선 항동리 ‘해궁횟집’(554-3729),개포리 공용터미널 뒤의 ‘대도한정식’(554-3537)의 음식이 먹을 만하다.완도읍내는 대체적으로 음식값이 비싼 편.해궁횟집의 경우 참돔회는 1㎏에 9만원,우럭은 6만 5000원. 대도한정식은 4인 1상 기준 12만원으로 지방으로선 상당히 비싸다.참돔,우럭,병어회와 푹 삭힌 홍어가 들어간 삼합,메생이국,날치알,새우찜,키조개 회,톳 냉국,산나물 등 40여가지의 음식이 나온다.이중 회를 뜨고난 뒤 나온 생선뼈를 푹 우려내 끓인 미역국은 진하면서도 시원해 가장 돋보이는 음식이다. ●가는 길 완도까지는 서울에서 열차,항공편으로 광주까지 가서,완도행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광주 버스터미널에서 완도까지 2시간30분 소요.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완도까지 직접 가는 고속버스도 하루 4회 있다.5시간 30분 소요. 청산도는 완도읍에서 19.2㎞ 떨어진 둥근 소라형 모양의 섬.해안선 길이가 98㎞에 달한다.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청산도행 고속페리호가 하루 4회 출발한다.요금은 6050원,승용차는 운전자 1명 포함 2만 3000원.농협에서도 하루 4회 철부선을 띄운다.청산도 내에선 승용차나,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소안도는 완도 화흥포항을 출발해 노화도,소안도를 거쳐 보길도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1시간마다 배가 출발한다.문의 완도 버스터미널(061-552-1500),여객선터미널(552-0116),화흥포항(555-1010). ●숙박 청산도엔 등대모텔(061-552-8558),청산민박(552-8800),제일민박(552-8807),읍리민박(552-8841),압개민박(552-8703) 등이 있다.소안도엔 제일장(553-7550),현대장(553-7547),소안장(555-0050) 등 여관이 있다.대부분 규모가 작고 건물도 낡아 시설은 깔끔하지 못한 편. 섬에서 꼭 숙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완도읍내에서 소규모 호텔이나 깔끔한 장급 여관을 찾아 묵으면 된다.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550-5524),관광안내소(550-5152). 글 완도 임창용기자 sdragon@˝
  • 빌딩숲 보리밭! 여의도

    따뜻한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싱그러운 4월초.“봄기운을 느끼러 어디로 가볼까.”하고 고민하지 말자.3일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에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면 무조건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가보자. 눈이 부시게 푸른 보리밭과 분홍빛 벚꽃이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차 막히는 스트레스도 없고 고유가 시대에 기름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입장료도 없다. ●서울 도심 한복판 녹색의 보리밭 물결 4일 오후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가면 당신은 놀랄 것이다.“아니 여기 언제,누가 이렇게 큰 보리밭을 만들었지.”,“빌딩 숲 사이에 보리밭길이라,노래가 절로 나오네.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아이들과 손잡고 거닐면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4일과 5일 이틀 동안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9000평의 보리밭이 조성된다.아이들과 아내 또는 연인의 손을 잡고 금난새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짠짠짠∼ 짠짠짠∼ ’스텝을 밟으며 보리밭 사잇길을 거닐어 보자.생각만 해도 유쾌하지 않은가.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시장개방에 맞서는 농촌의 힘겨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리기 위한 ‘빌딩숲 보리밭 축제’가 농림부와 농협중앙회 주최로 4,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다.서울신문사와 KBS가 주관하고 하이트와 포커스가 협찬한다. 이 축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우리 농업의 무한가치를 알리고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촉구하는 대국민 퍼포먼스로 농촌 특유의 ‘어메니티(Amenity)’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어메니티란 어떤 사물이나 환경에서 느끼는 ‘쾌적성’을 말한다.농업은 식량생산,환경적·공익적 기능뿐 아니라 그 경관이 지닌 어메니티만으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자원.그 소중함을 녹색 보리밭을 걸어 보며 느껴보자. 빌딩 숲 사이에 녹색의 바다처럼 펼쳐질 보리밭은 경기도 이천의 보리 재배농가 10여 곳에서 겨우내 정성 들여 가꾼 보리를 작은 화분 40만개에 담아 농촌 들녘의 보리밭처럼 만든 것이다. 70∼80㎝ 정도 자란 싱그러운 보리밭 사이를 거닐면 농촌의 정취가 저절로 느끼질 것이다.전시된 보리 화분은 ‘생분해성 비닐포장지’에 담아 4일 오후 3시와 5일 오전 10시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학생들의 산 교육을 위해 보리를 잘 키우는 법도 알려준다. 또한 문화마당 3곳의 화분 배포처에는 ‘농촌학생돕기 장학금 모금함’이 설치돼 있다. 보리밭 축제의 부대행사도 좋은 볼거리다.4일 오후 7시부터는 금난새가 지휘하는 유라시안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쉼표 음악회’가 열린다.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봄과 우리 가곡 ‘보리밭’ 등이 화려한 조명 속에 연주돼 봄밤을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1시10분부터는 KBS가 전국 들녘의 실제 보리밭을 위성으로 연결,건강한 농업인들의 모습을 도시민들에게 전하는 특별 생방송 ‘보리밭 사잇길로’를 진행한다. 보리밭 앞에 설치될 ‘희망나무’도 눈길을 끈다.나무 앞에 설치된 코너에서 오색지에 소망의 글을 적어 3.5m 높이의 철제 골조로 만든 희망나무에 걸어보자.마치 나뭇잎처럼 물결칠 것이다.아이들과 함께 적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우리 농업 만세’,‘극복하자 WTO’,‘힘내세요,농업인 여러분.우리가 있습니다.’ 등 격려의 글이 농업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자 이제 푸른 보리밭의 정취를 맘껏 누렸다면 벚꽃이 한창인 여의도 윤중로나 63빌딩으로 옮겨도 좋을 것이다. Go! Go! 여의도 ●벚꽃이 흩날리는 윤중로 서울에서 벚꽃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윤중로.국회의사당 뒷길(서강대교 남단∼파천교 북단) 1.5㎞를 따라 30∼40년 생 왕벚나무 1621그루가 해마다 이맘때면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린다.또 여의도 강변을 따라 약 10㎞가 아름다운 벚꽃으로 물결친다. ‘벚꽃 터널’을 걸으며 꽃냄새를 가슴 깊이 마셔보자.운좋아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 우수수 떨어지는 ‘꽃비’에 흠뻑 젖는 ‘행운’을 만나는 사람은 그야말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벚꽃행사는 12일까지 계속된다.이 기간중 윤중로구간의 교통이 전면 통제된다.또 청소년 음악회와 거리의 악사를 위한 자유 공연장이 운영되며 풍물패,고적대,경찰악대 등의 연주회도 열린다.볼거리 제공을 위해 경찰기마대 행진이 있고 벚꽃 사진작품 전시회 등도 개최된다. 총 450만여명의 꽃놀이 인파가 여의도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많은 인파에 휩싸여 아이들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국회주변도 차량들이 통제된다.여의서로(파천교 북단에서 국회,서강대교 남단)와 국회뒤편 고수부지 하단도로는 축제기간에 전면통제된다.또 올림픽대로 여의하류 IC에서 파천교북단은 출근시간(아침 6시∼ 낮 12시)을 제외하고는 통제된다. 행사기간중 여의도 일대는 극심한 차량 정체가 예상되므로 승용차를 가지고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이나 여의나루역,2호선 당산역을 이용하면 걸어서 5분에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다양한 이벤트와 벚꽃이 만나는 63시티 오는 11일까지 ‘63벚꽃대축제’를 한다. 3일과 4일,11일에 63빌딩 만남의 광장에서는 전자 현악기로 신나고 경쾌한 클래식 선율을 들려주는 여성 4인조 ‘벨라트릭스’의 ‘전자클래식 연주’,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율동이 돋보이는 ‘밸리댄스 공연’이 펼쳐진다. 만남의 광장 통로를 인조벚꽃으로 꾸며 포토존으로 제공하는 ‘63벚꽃터널’을 만들었고 여기서 찍은 사진을 응모하면 우수작에는 푸짐한 경품을 제공한다. 또한 ‘뚝딱이 아빠’ 개그맨 ‘김종석’의 사회로 일본 어린이 댄스 신동들이 갖가지 무용과 율동을 선보이는 ‘일본어린이댄스페스티벌’ 등도 연다. 구경하다 출출할땐… ●구마산 어른들을 모시고 갔다면 점심에 보양식인 추어탕 한 그릇이 제격일 것이다.여의도 백화점옆 미원빌딩 2층에 위치한 ‘구마산’은 옛날 마산식 추어탕집이다.전직 대통령과 전 서울시장 등이 찾은 곳으로,추어탕과 석쇠구이 갈비가 유명하다.추어탕 7000원,석쇠갈비 1인분에 2만원.(02)783-3269. ●마라김치방 “집에서 먹는 김치도 지겨운데 나와서도 김치요리 먹으라고?”라며 투정 부릴 필요없다.일단 한번 먹어보면 맘이 달라진다.KBS별관 뒤쪽에 위치한 ‘마라김치방’은 김치요리 전문점으로 빨간 김칫국물에 하얀 국수를 말아내는 김치말이국수를 비롯해 김치주먹밥,김치전,김치전골,김치보쌈,김치해물전골 등이 주 메뉴이다.김치말이국수 4000원,김치주먹밥 3000원 (02)780-2489. ●스카이뷰 연인과 함께 ‘폼’나게 먹으려 한다면 63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스카이 뷰’와 ‘스카이 라고’를 강추한다.두 음식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63빌딩의 59층에 위치해 수려한 전망을 만끽하며 서양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스카이 뷰’는 안심스테이크와 바닷가재가 메인 요리인 ‘미식가 C코스’가 인기다.1인당 9만원.‘스카이 라고’는 낙지 스파게티 1만 5000원. 두 곳 모두 (02)789-5902로 문의하면 된다. 한준규기자 hihi@˝
  • 죽음 앞의 인간/필립 아리에스 지음

    사람들은 시대마다 죽음을 다르게 받아들였다.중세 초기 죽음은 일상적이고 공개적인 것이었다.죽음을 감지한 임종자는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였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원탁의 기사’나 ‘롤랑의 노래’,‘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왕이나 기사들은 이런 죽음의 전형이다. ‘죽음 앞의 인간’(필립 아리에스 지음,고선일 옮김,새물결 펴냄)은 중세 이후 현대까지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저자는 ‘아동의 탄생’‘사생활의 역사’ 등의 저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역사가.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1120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구에서 죽음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섯 단계를 거쳐 변화해왔다.중세 초기엔 길들여진 죽음,즉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명제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반면 공동체의 결속이 약해지고 사회가 개인주의화한 중세 끝무렵엔 자신의 삶을 사후에까지 이어가려는 경향이 강했다.16세기 이후부터는 ‘친숙했던’ 죽음이 점차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돼 인간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그럼에도 시체에 대한 호기심은 극도로 높아져 해부학 열풍이 일고 시간(尸姦)이 성행하기도 했다.부자들은 집에 개인용 해부실을 둘 정도로 해부학이 유행했다. 17세기 이후의 그림에서 시체는 종종 묘한 관능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됐으며,18세기 문학에선 죽은 자들과의 연애담이 수없이 등장한다.죽음에 대한 이런 모순적인 태도를 저자는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이라 부른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죽음은 아름다운 유혹이었다.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 그려진 에드거 린턴의 죽음 장면은 그같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죽어가는 린턴은 자신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딸에게 자기와 곧 함께 있게 될 것이라며 딸의 죽음을 말한다.이 놀라운 장면은 당시로선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다.죽음은 사랑하는 이들과의 영원한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면 그토록 아름답게 채색되던 죽음이 갑작스레 공포스러운 것으로 역전된다.작가 플로베르는 인간의 죽음을 더없이 추한 모습으로 그렸다.“…혀 전체가 입술 밖으로 빠져나왔으며,제멋대로 굴러가는 두 눈은 마치 꺼져가는 두 개의 전구처럼 빛을 잃고 있었다.” 저자는 죽음에도 역사가 있어 시대마다 죽음을 다르게 인식하고 또 다르게 죽어갔음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4만 3000원. 김종면기자˝
  • 본사 주최 ‘보리밭축제’ 후원 허상만 농림장관

    “농촌에 대한 향수와 자연이 주는 감동을 전하고 싶습니다.” 허상만(許祥萬) 농림부 장관은 25일 “올해 쌀 재협상을 앞두고 도시민들에게 우리 농업과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일깨우고 우리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해 보리밭 축제를 후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허 장관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도시민들이 잠시나마 녹색의 보리 물결을 대하면 자연에 대한 감동과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도시민들은 건강뿐만 아니라 자연을 조금이나마 가까이 접하고 싶은 심정에서 산에 오르곤 한다.”면서 “그러나 앞으로 농촌이 쾌적한 자연의 생산지,자연 학습장으로 바뀌면 누구나 농촌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를 위해 도시민의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지원하고 조기 퇴직자들의 귀농을 위해 정부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허 장관은 “보리밭 축제와 같은 ‘우리 농(農)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면서 “국민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농업이 고품질의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친환경 산업’이라는 말을 국민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11년간 농촌에 62조원을 투자해 생산기반을 정비하고 있으나 아직도 도·농간 소득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농촌의 복지여건도 뒤떨어진 게 사실”이라면서 “올해를 새로운 농정의 원년으로 삼아 혁신과 변화를 통해 도약·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올해로 다가온 쌀 재협상과 관련,“정부는 관세화 유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실리를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겠다.”면서 “협상과정을 투명하게 모두 공개하고 쌀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정부의 과제”라고 설명했다.아울러 허 장관은 “올해 광우병·조류독감 등 가축질병으로 농가의 시름이 커 마음이 무거웠지만 정부의 방역 대책을 믿고 따라준 가축농가와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새달 4·5일 여의도 보리축제

    ‘서울 도심 한복판을 녹색의 보리밭 물결이 수놓는다.’ 식목일 연휴를 맞아 다음달 4일과 5일 이틀 동안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9000평의 보리밭이 조성된다.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보리밭 사잇길에서 가족 사진도 마음껏 찍을 수 있다. 서울신문사와 KBS는 농림부와 농협중앙회의 후원으로 서울 도시민들에게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시장개방에 맞서는 농촌의 힘겨운 현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구하기 위해 ‘보리밭 축제’를 마련했다. 빌딩 숲 사이에 녹색의 바다처럼 펼쳐질 보리밭은 경기도 이천의 보리 재배농가 10여곳에서 겨우내 정성들여 가꾼 보리를 작은 화분 40만개에 담아 농촌 들녘의 보리밭처럼 조성된다.방문객은 70∼80㎝ 정도 자란 싱그러운 보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전시된 보리 화분은 ‘생분해성 비닐포장지’에 담아 4일 오후 3시부터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학생들의 산 교육을 위해 보리를 잘 키우는 법도 알려준다.문화마당 3곳의 화분 배포처에는 농촌학생돕기 장학금 모금함이 설치돼 따뜻한 손길을 기다린다. 보리밭 축제의 부대행사도 좋은 볼거리다.4일 오후 7시부터는 금난새씨가 지휘하는 유라시안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쉼표 음악회’가 열린다.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봄과 우리 가곡 ‘보리밭’ 등이 화려한 조명 속에 임시로 마련된 객석의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이에 앞서 오후 1시10분부터는 KBS가 전국 들녘의 실제 보리밭을 위성으로 연결,건강한 농업인들의 모습을 도시민들에게 전하는 특별 생방송 ‘보리밭 사잇길로’를 진행된다. 보리밭 앞에 설치될 ‘희망나무’도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3.5m 높이의 철제 골조로 만든 희망나무는 나무 앞에 설치된 코너에서 오색지에 소망의 글을 적어 걸면 나뭇잎처럼 물결이 치는 건강한 나무로 변한다.문화마당 주변은 벚꽃이 만발해 나들이 승용차들이 붐빌 것으로 예상된다.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에서 가깝다. 김경운기자 kkwoon@ ˝
  • 화가 김병종 ‘생명의 노래’展 26일부터 가나아트센터

    단아(旦兒) 김병종(51·서울대 미술관장)은 한글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시서화 일치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문인화와는 다른 차원의 한국적 미의식을 보여준다.그의 그림은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다.전체적으로 보면 추상화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상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구려 벽화 속의 비마(飛馬)가 한 순간에 뛰어나올 것 같은가 하면,한마리 새가 지상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하다.하늘과 땅,음과 양,자연과 인간의 기운이 화면에 넘쳐난다.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작가 김병종이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26일부터 4월1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김병종­생명의 노래’전에는 새,물고기,꽃,나비,말,아이 등이 등장하는 50여점의 작품이 선보인다.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어린시절 섬진강 물가에서 놀던 기억을 살려 물의 기운을 필획의 기(氣)로 풀어낸 신작들을 다수 공개해 관심을 모은다.물고기를 타고 가거나 물고기 위에 물구나무선 소년,물고기 옆에서 나란히 헤엄치는 소년의 모습을 힘찬 붓놀림과 여백의 울림을 통해 표현한다.작가는 “멱을 감다 우연히 바라본 햇빛이 수면에서 반짝이던 느낌과 물결에서 발견한 선의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한다.자신의 호 ‘아침 아이’의 이미지처럼 해맑은 동심을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작가가 10년 넘게 ‘생명의 노래’에 매달려 온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바보 예수’ 연작을 그려오던 작가는 1989년 치명적인 연탄가스 사고를 당했다.사경을 헤매며 두달 반 동안 입원한 그는 회복후 어느날 등산길에서 우연히 노란 들꽃을 만났다.그리고 거기서 생명의 신비를 발견했다.이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무심히 봐넘기지 않게 됐다.작가 특유의 ‘생명의 미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병종은 자신의 그림 뿌리를 한국미술사에서 찾는다.“나는 한국미술사로 정신적 유학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그곳에서 내가 집어낸 것은 고구려 벽화의 힘과 문인화의 여유,민화의 해학,기운생동의 운필이다.” 작가의 말은 그의 작업방식에서 그대로 확인된다.화선지라는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닥종이판에 먹과 몇몇 단색을 사용한 그의 그림은 문인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수묵화의 현대적 감각을 잊지 않는다.그는 먼저 치자로 물들인 닥원료를 천연풀에 반죽해 토담에 미장질 하듯 판을 짜고 물감을 겹겹이 바른다.그러면 누르스름한 바탕색이 배어난다.그의 그림이 주는 정겨움과 장판지 같은 투박한 맛은 그런 고단한 과정의 산물이다.김병종의 그림은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지고 단순화됐다.필치와 선조(線條)를 적절히 사용하는 골법용필(骨法用筆)을 한국화에 적용해 거칠면서도 굵은 획이 눈에 띈다.작가는 “단번에 긋는 꾸밈없는 필치를 구사하는 나는 전통 필법의 관점에서 보면 사문난적인 셈”이라고 말한다.‘해에게서 소년에게’‘산첩첩 물겹겹’‘춘삼월’‘봄날은 간다’‘송화분분’ 등은 그와 같은 작가의 회화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세무민원 인터넷발급 확대 과세표준증명등 10종 추가

    오는 25일부터 납세자가 세무서에 직접 가지 않고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세무 관련 민원서류가 현재 6가지에서 16가지로 늘어난다.국세청은 21일 부가가치세 과세표준 증명,부가가치세 면제사업자 수입금액 증명,표준 재무제표 증명 등 세무 민원서류 10가지를 인터넷 발급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민원인은 자신의 PC로 국세청 홈택스서비스(www.hometax.go.kr)에 접속해 증명서류를 신청한 뒤 프린터로 출력해 사용할 수 있다.출력된 서류는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공문서 원본으로 인정된다. 국세청은 인터넷 발급서류를 복사하면 ‘사본’이란 글자가 나타나거나 물결모양의 배경무늬가 사라지도록 하는 등 위·변조 방지장치를 마련했다. 오승호기자 osh@˝
  • [토요일 아침에] 老보살 울린 서러운 봄날/여연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남도의 끝에서 봄꽃들이 너무도 통절하고 극적으로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다.마치 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몸부림을 치며 바람 실은 봄 햇살을 만나면 그냥 여기저기에서 툭툭 숨가쁘게 터져나오고 있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수만 가지의 생명들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충만감을 맛본다.한편에서 깨어나고 또 한편에선 허공을 타고 적멸로 되돌아가는 저 아름다운 ‘반역’은 너무도 깨끗하고 명징하다.마치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아침을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이처럼 탄생이란 위기와 소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봄은 왔건만 세상은 아수라장이다.한땀 한땀 국민의 손에 뽑힌 대통령이 그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략적으로 탄핵당했기 때문이다.가끔씩 전라도 절에 오는 창원의 노보살에게 전화가 왔다.“씨님,도대체 이럴 수 있능교.아무리 임금이 잘못했다케도 이런 빕은 없능교.글 잘쓰는 우리 씨님이 한말씀하시소.” 평소 엄격한 노보살의 숨소리가 전화너머로 거칠게 들려왔다.아직도 정치는 우리의 현실 삶을 규정하고 있음이 새삼 떠올랐다.누가 저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순박한 노보살의 가슴을 울리는가.그 놀라고 서러운 가슴은 또 누가 위로해줄 것인가.갑자기 암담한 생각이 치솟아 올랐다. 우리는 아직도 80,90년대의 엄혹한 시대현실을 한발짝도 비켜가지 못한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눈물’이 솟구치는 날들이다.광화문에서 부산 서면에서 제주도에서 일렁이는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보며 새삼 그리움의 물이 가슴에 고인다.관행과 관습의 껍질을 벗고 상실의 시간을 채우려는 역사의 노력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은 종종 우리를 배반한다.그런 일들이 상식과 이성을 초월해 너무도 비일비재하다.우리가 믿었던 진실과 승리 그리고 그 아름다운 이성들이 단지 54분만에 짓밟힌 것이다.그들이 우리를 배반한 것은 아마도 너무도 많이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그들에게 세월의 힘 속에 남긴 그리움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모자람이 적은 삶을 살아본 적도 없고 소중한 그리움도 그들의 가슴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에선 인생을 네주기로 나누어 산다.젊은 날 학생기엔 주경야독으로 배우고 익히며,철이든 가주기엔 결혼을 해 식솔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자식이 성년이 되면 임주기로 모든 것을 물려준 뒤 숲에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살고,죽음이 가까우면 유행기로 성지순례를 다니다가 홀로 쓰러져 죽는 것이다.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우리의 역사는 지금 성년이 됐다. 모든 것을 물려준 뒤 숲에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완강한 강화유리 같은 소통불가의 현실을 우리 시대 지도자들은 알아야 한다.들새 산새들이 분주한 날갯짓을 하는 신새벽 중생들의 삶속으로 들어와 그들의 절망과 희망을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절망어린 마음을 가슴에 담고 그 절망의 정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아야 한다.팔만대장경에 이르길 “달은 사람의 본성이다.”라고 했다.충만된 달처럼 우리의 영혼은 충분히 차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우리 시대 지도자들은 자신만을 위한 깊고 깊은 골방에서 나와 봄꽃이 지천으로 핀 우리들 영혼의 안뜰로 걸어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여연스님·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 [시네마 천국]새영화 ‘모나리자 스마일’

    1953년 미국 동부의 명문 웰슬리대학에 매력적인 여교수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예술사 강의를 맡아 부임해온다.교수를 임용할 때 집안을 따질 정도로 보수적인 이 대학에 이례적으로 서부 출신이면서 취임한 진보적 교수는 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에 변화의 숨결을 불어넣으려고 모든 관행에 당차게 도전한다.하지만 동료 교수들과 ‘졸업후 결혼’ 등 주입된 역할모델에 젖은 학생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19일 개봉하는 ‘모나리자 스마일(Mona Lisa Smile)’은 여성을 짓누르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여교수의 열정과 의욕을 다룬 로맨틱 드라마.왓슨이 대학 내외의 보수적인 틀을 깨려고 애쓰는 모습을 비추는 영화의 분위기는 얼핏 ‘죽은 시인의 사회’를 떠오르게 한다.남자인 키플링 교사 대신에 여자 교수를,영국 명문 사학고교 대신에 미국의 명문 여대로 무대만 살짝 바꾼 듯하다.여기에 페미니즘이라는 세계관을 슬쩍 더했다고 보면 된다. 모범생 학생들은 교재를 미리 다 읽고와 왓슨의 슬라이드를 보자마자 강의 내용을 줄줄 왼다.이에 왓슨은 썩은 고기의 내장을 그린 그림,자신이 어릴 적 그린 그림 등을 교재로 하여 학생들의 예술·명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변화를 향한 그녀의 노력은 강의실 밖에서 더 강렬하다.현모양처를 지고지선의 목표로 삼는 학생들에게 왓슨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고,주부만이 아니라 남성만큼 다양한 역할이 많다고 역설한다. 그녀의 진심은 서서히 학생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변화의 물결이 인다.하지만 교수들에게는 눈엣가시.재임용때 탈락시키려 하지만 예술사 수강신청이 개교 이래 최고라는 왓슨의 인기 앞에서 불가항력이다.영화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담으려다 소화불량에 걸린 듯하다.훌륭한 세트와 음악 등 눈길을 끌 만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50년대 이야기,상류 사회,페미니즘 그리고 로맨스 등으로 주제가 흩어지면서 산만해진다.가장 큰 문제는 감독의 메시지가 너무 희미하다는 것.예일대 로스쿨 진학을 포기한 제자의 항변에 대응하지 못하는 왓슨의 무기력한 모습은 단적인 예다.당연히 닮은꼴인 ‘죽은 시인의 사회’보다 파격이 덜하고 반전도 약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서울여성영화제 새달 개막… ‘인 더 컷’등 70여편 상영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WIFFIS2004·위원장 이혜경)가 새달 2∼9일 신촌 아트레온 1·2관과 녹색극장 3관에서 열린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주제 아래 펼쳐지는 올해 행사는 ‘피아노’로 잘 알려진 제인 캠피온 감독의 신작 ‘인 더 컷’을 비롯해 세계 22개국 여성 감독들의 영화 7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영화제는 모두 6개 섹션.기존 ‘새로운 물결’‘아시아 특별전’‘감독 특별전’‘여성영상공동체’‘아시아 단편경선’ 등 5개 부문에 ‘영 페미니스트 포럼’이 추가됐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인 더 컷’은 제인 캠피온 감독이 지난해 완성한 드라마.현대인의 숨겨진 욕망과 사랑을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맥 라이언,마크 러팔로가 주연했다.니콜 키드먼이 제작했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화제작이 가장 많이 포진한 섹션은 최근 2년간 만들어진 여성감독들의 우수작품들이 나오는 ‘새로운 물결’.‘인 더 컷’을 비롯해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이수연 감독의 ‘4인용 식탁’,캐나다 감독 빕케 폰 카롤스펠트의 ‘마리온 브리지’ 등 30편이 상영된다. 아시아 특별전에서는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무성영화 ‘폭포의 백사’ 등 1930∼60년대 일본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기감독들의 작품 6편이 선보인다. 감독특별전에서는 독일의 여성감독 마가레테 폰 트로타가 집중조명된다.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로젠슈트라세’를 포함한 5편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02)583-3598. www.wffis.or.kr 황수정기자 sjh@˝
  • 붓으로 실천하는 색채미학 최성훈 초대전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작가 최성훈(60·대불대 회화과 겸임교수)의 그림에는 고전과 현대,추상과 구상,전통과 개성이 공존한다.자연주의 구상 계열의 작업을 꾸준히 벌여왔지만,그는 결코 대상을 판에 박은 듯이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자신만의 독특한 선과 색을 통해 사물의 이미지와 정조(情調)를 큰 틀에서 담아낸다.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최성훈 초대전’은 ‘최성훈류’라 할 만큼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필법의 회화세계를 보여준다.출품작은 크게 풍경·인물·정물로 나눠 볼 수 있다.그가 그려내는 풍경에는 흔히 숲 속 오솔길,언덕 위의 외딴 집,한 조각 얼굴을 드러낸 호수,임자 없는 나룻배 등이 등장한다.작가는 자연의 속살,우리의 잃어버린 세계를 온통 붉은색의 팬터지로 처리한다.격정적인 추상 표현주의의 세계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인물화에 임하는 정신은 풍경화를 그릴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작가는 원근법을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인물을 유난히 도드라지게 그린다.어부들은 눈부신 바닷물결 속에서도 부표를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검정 깃발을 꽂아놓는다.작가는 어쩌면 이런 빛과 어둠의 원리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의 인물화는 마치 고전시대 인물화에서처럼 무대 연출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이번 작품들은 모두 ‘여가’를 주제로 한 여성인물화다.작가에게 정물화는 풍경화나 인물화와 마찬가지로 색채미학을 실천하기 위한 또다른 수단이다.이 전시는 작가의 ‘2004 오늘의 미술가상’ 수상을 기념해 마련됐다.(02)736-1020. 김종면기자˝
  • [결혼 이야기]양양현(34)·김동연(28)씨

    2002년 8월15일,내 나이 서른 둘,진정한 짝을 찾았다.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처음 만난 그 순간,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에게 얼굴가득 환한 웃음을 보였다.그 때 벌써 서로의 의미를 예감이나 한듯 말이다. 두번째 만나던 날,영화 ‘오아시스’를 보고 나오는데 비가 내렸다.그녀의 작은 우산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었고 세번째 만나는 날 그녀의 손을 덥석 잡을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잦은 만남으로 이어졌고,그녀를 바래다 준 후에도 휴대전화가 방전될 때까지 아쉬움의 대화는 늘 계속되었다.담배를 끊는 것만큼이나 전화를 먼저 끊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후 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 아침을 시작하였고 그녀의 전화가 없던 날 출근시간에 지각을 할 만큼 어느새 그녀의 아침 전화에 점점 익숙해졌다. 개천절에 그녀를 위한 가을이벤트를 마련했다.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보트를 탔다.서로 마주보고 앉았지만 그녀에게 내 어깨 뒤로 펼쳐진 잔잔한 물결 속의 공지천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게 배려하였고, 난 열심히 노를 저으면서 그녀의 행복한 얼굴에 동화되었다.힘이 들 때쯤 그녀는 김밥을 하나씩 입에 넣어주었다.정말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100일째 되던 날,그녀에게 빨간 장미 백송이를 주었고 난 매일 그녀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멋진 손목시계를 선물 받았다.처음 받아본 의미 있는 선물이라 기분이 너무 좋았다.이렇게 우리의 만남은 쌓여갔고,때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힘들기도 하였지만 서로를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즐겁고 기쁜 일로 여겨졌다.마침내 난 그녀의 영원한 남자가 되겠다고 온 정성을 담아 고백을 했고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2003년 6월14일,만난 지 8개월 만에 우린 결혼을 했다.이젠 그녀의 모닝콜 전화소리는 없지만 사랑스러운 아내가 나의 잠을 깨워준다.살아가면서 늘 행복한 맘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싱그러운 아내가 내 곁에 있어 오늘도 나의 얼굴엔 미소가 배시시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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