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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프레스코 기법’ 재현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프레스코 기법’ 재현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교수

    추억의 명화 ‘고통과 환희’는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천장벽화 ‘천지창조’의 탄생과정을 다룬 내용이다. 찰톤 헤스톤이 주인공 미켈란젤로를 맡아 명연기를 펼친다. 율리어스 2세 교황의 요청으로 벽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가 숱한 고통을 겪으며 완성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다. 미켈란젤로는 천장벽화를 그리기 위해 임시로 마련된 18m 높이의 설치대 위에서 웅크린 채 일을 하다 온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을 하다 물감 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작품은 4년에 걸쳐 완성된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벽화를 그릴 때 대부분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했다. 프레스코(Fresco)는 이탈리아어로 ‘축축하고 신선하다’는 뜻이다. 프레스코화는 신선하고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를 말한다.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고 물에 용해되지도 않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프레스코화는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미켈란젤로 외에도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거장들이 주로 프레스코화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가 유화가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고 20세기 들어와 멕시코의 리베라, 오로츠코 등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프레스코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61) 동국대 교수는 2007년 5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 때 다른 여러 그림과 함께 전통 프레스코 기법의 그림 4점을 내걸어 화단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중견 화가가 프레스코 기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단 그랬다. 당시 정영목 서울대(미술사) 교수는 “전통적인 방식의 진짜 프레스코를 처음 선보였다”면서 “젖은 듯 스며든 야릇한 색감과 그 기법상의 성격은 오원배 특유의 형이상(形而上) 회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데 아주 적격”이라고 평가했다. 5년 뒤인 2012년 11월 오 교수는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 법당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후불 벽화를 그려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보통 불화는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하는데, 오 교수는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등을 부처 가까이에 그려넣어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프레스코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아트싸이드에서 그동안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스코화 3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600년 전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대가들이 즐겨 그렸던 전통 프레스코 기법을 직접 재현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9일 동국대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작업과정에 대해 먼저 물었다. 방음벽을 만들 때 사용되는 흡음판을 들고 설명한다. “이 흡음판에 석회를 입히고 마르기 전에 스케치를 한 다음 색깔을 입히는 것이지요. 젖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야 화학작용이 잘 이루어지면서 흡착력이 좋고 오래도록 변색되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마르기 전에 그리는 전통기법을 사용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마른 상태로 그리는 이른바 프레스코 세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여러 차례 보수된 것도 마른 상태에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프레스코 회화는 원래 크레타와 그리스 벽화, 폼페이 벽화 등에도 나타난다. 중세 초의 벽화에는 여러 가지 혼합 방법으로 사용되다가 14~15세기 이탈리아 대가들에 의해 프레스코화가 가장 활발해졌다. 또한 아시아 쪽에서는 11~12세기 인도 지방의 일부 벽화에서 프레스코 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미술사가들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장군총 등을 프레스코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류 최초의 회화는 프레스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타미라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된 여러 벽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석회암 동굴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린 것이 오랜 세월동안 마모되지 않고 전해지게 된 것이지요.” 오 교수가 프레스코화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2년 프랑스 유학 때였다. 그는 당시 파리시내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마한 호텔에서 지냈다. 말이 호텔이지 꼭대기의 비둘기집처럼 작고 허름한 곳이다. 아는 사람도 없어 방안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창문을 열고 한참 밖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붕 굴뚝의 색깔이나 생김새가 각양각색이었다. 토기로 구운 것, 쇠로 만든 것, 구리로 만든 것 등 그 형태가 달랐다. 또한 같은 집이라도 방의 수만큼 굴뚝이 솟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부터 시간만 나면 창문을 열고 빨강, 파랑 등 각기 다른 색깔의 지붕과 굴뚝을 보면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보들레르의 플라네르(한가롭게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처럼 할 일 없이 파리시내 곳곳을 기웃거리며 스케치를 했다. 그러면서 프레스코를 꾸준히 익혔다. 1985년 유학길에서 돌아온 뒤 세 차례 더 파리에 갔을 때에도 계속 스케치를 하며 프레스코화를 틈틈이 그렸다. 그러다가 2007년 인사동 개인전 때 네 작품을 슬쩍 공개한 것이 처음이었다. 유학시절을 회고하던 그가 잠시 한 일화를 소개한다. “제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학과대표(아틀리에 양켈)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루브르박물관 앞 광장에 유리 피라미드의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 둘레에 출입을 금지하는 펜스를 쳐놓은 것을 보게 됐습니다. 하루는 학생 10여명과 야간에 급습(?)을 했지요. 그 펜스에다 낙서화를 그린 뒤 ‘야음을 틈타 프랑스 졸개들을 데리고 와서 한글로 그림을 그리다’라는 글을 써놓았습니다. 매표소로 가려면 펜스를 돌아가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있었고 이를 보고 기분이 좋다는 한국 사람도 있었지요.” 유학시절 재불화가인 한묵 선생과의 인연도 잊지 못한다. 이에 대해 “1961년 홍익대 교수를 박차고 파리로 가서 신문배달, 페인트칠 등 궂은일을 하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신 분”이라고 말한다. 힘든 유학생활을 어떻게 견디고 또 앞으로 어떤 작가정신으로 걸어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형태의 짤막한 그림을 좋아해 흉내를 자주 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미술반에서 활동했다. 이때 화가인 미술선생을 만나면서 장차 화가를 꿈꾸게 된다. 크고 작은 규모의 미술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시간만 나면 월미도와 차이나타운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주로 ‘인간’과 ‘소외’에 관심을 둔다. 1970년대에는 가면이나 탈을 쓴 인간의 이미지를 작품에 주로 담는다. 군대생활과 맞물려 통제된 사회, 언로가 막힌 시대상을 표현하고자 가면을 동원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짐승 혹은 중성화된 생명체(인체)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때는 그가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선 시기에 해당한다. 유학시절에는 세계적으로 뉴페인팅이 주도하던 시기로 아방가르디아, 신구상회화 등에서 힘을 얻어 거친 표현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1990년대에는 ‘암울한 도심 풍경과 배회하는 유령(인간) 시리즈’,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화면이 양분되고 꽃이 등장하는 ‘이중적 풍경’ 시리즈 등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대의 미술은 인간 정신의 표현에 그 목적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회화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표현 가능한 모든 기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제게는 프레스코화입니다. 프레스코화는 전통적 회화 기법이지만 제작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죠. 또 시도가 각기 다른 작품을 한데 모아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는 프레스코화에 자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파리 유학 시절에 아름다운 지붕을 보면서 시작된 프레스코화를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프레스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도 이 같은 지난한 작가적 연구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나라 프레스코화의 전망에 대해서는 “사찰이나 여러 조형물 등에 반영구적인 벽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오원배 화가는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송도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했다. 198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1985년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수료한 뒤 귀국했다. 1986년 동국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대학강단에 섰다. 그러면서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연구교수로 세 차례 다녀왔다. ‘이달의 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1989년), ‘올해의 젊은 작가전’(조선일보 미술관, 1993년) 등 13회의 개인전과 300회 넘는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동아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등에서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아시아프’ 총감독(2012년)을 역임했다. 주요 상훈으로는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 1등상(1984), 프랑스예술원 회화 3등상(1985), 조선일보 올해의 젊은 작가상(1993년), 이중섭미술상(1997년) 등이 있다. 파리국립미술학교, 프랑스 문화성, 일본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국내외 30여곳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동국대 예술대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성인50% “종교, 평화보다 갈등 유발”

    한국 성인의 절반 정도가 종교에 대해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 유발 측면이 짙다고 보고 있으며 10명 중 7명은 종교인들을 배타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고산문화재단(이사장 영담 스님)이 한국리서치에 의뢰, 18세 이상 65세 이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0일 공개한 ‘한국인의 종교인식과 불교의 인상’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종교가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을 유발한다’는 의견에 ‘매우 동의’ 14.6%, ‘약간 동의’ 35.9% 등 50.5%가 동의했다. 또 68.0%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응답했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는 천주교 31.7%, 불교 31.6% 등 두 종교 간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개신교는 21.6%로 3대 종교 중 신뢰도가 최하위였다. ‘무종교인들이 종교를 갖게 된다면 어떤 종교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24.6%가 불교, 21.6%가 천주교를 택한 반면, 개신교는 3.6%에 그쳤다. 한국불교와 조계종에 대해선 대체로 긍정보다는 부정적 답변이 많았다. 우선 지난 20년간 불교계 사회활동 중 금 모으기와 실업극복운동이 53.7%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정신문화적 치유활동이 50.0%, 학교 내 종교자유 보장활동이 48.9%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한국불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32.9%에 그쳤고 ‘불교 지도자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42.8%)는 견해도 절반에 못 미쳤다. 이와 관련해 한국불교가 개선해야 할 점으로는 ‘불투명한 재정 사용’(37.9%)과 ‘불교지도자의 자질 및 역할’(27.1%), ‘불교인의 삶’(15.7%) 등이 지적됐다. 조계종에 대한 질문에선 일단 조계종이 문화재(전통사찰) 보존에 기여한다는 응답이 42.4%,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다는 응답이 21.8%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국고보조금 집행에선 37.5%가, 문화재 관람료 투명 운영에 대해선 39.4%가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특히 41.7%가 ‘조계종이 사회적으로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고 답한 반면 14.9%만이 ‘조계종을 신뢰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응답자들은 한국불교가 더 큰 신뢰를 얻기 위해 ‘윤리 도덕 실천운동’(37.2%)과 ‘봉사 구제활동’(36.4%), ‘명상·수행 등 마음치유활동’(19.1%)을 전개해야 한다고 봤다. 한편 스님들에 대한 신뢰도에선 선방 수행자가 51.6%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종단 원로 스님 36%, 농어촌 작은 사찰 주지 28.1%, 행정·포교 종사 스님 15.9% 등이었다. 반면 도시 대형사찰 주지 스님은 9.9%만이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박물관과 성속의 경계/서동철 논설위원

    산중사찰의 들머리에 해당하는 일주문(一柱門)은 대개 큰 법당이 있는 중심 영역에서 웬만큼 떨어진 골짜기 아래 세워졌다. 속세(俗世)와 성소(聖所)를 가르는 경계를 상징하는 셈인데, 불자들은 일주문에서부터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마련이다. 가톨릭 교회에 성속을 나누는 물리적 경계는 없는 듯하지만, 신자들은 성전에 들어서자마자 십자가를 그으며 성스러운 공간에 진입했음을 절대자에게 고(告)하고 스스로의 마음도 다잡는다. 이슬람 사원에서는 깨끗하게 몸을 씻는 의식을 치러야 성역으로 들어가 기도할 수 있다. 종교의 예배 공간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미술관을 포함한 박물관도 관람객이 느끼는 안팎의 공기는 크게 다르다. 어느 나라 박물관이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국가대표급 박물관이라면 종교적 성소에 준하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박물관의 경비와 검색은 대부분 삼엄하다. 제복차림 요원의 날카로운 눈빛을 의식하며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다 보면 허튼짓하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언젠가 찾았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짜증 날 정도로 검색이 철저했다. 모든 관람객을 소장품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다루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지경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도 기다리고 기다려 검색대를 통과한 뒤 길고 긴 줄에 다시 서서 입장권을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이집트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은 아예 군이 경비를 맡고 있다. 관람객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건물 밖에서 총을 든 경비병들에게 신분증이나 여권을 보여주어야 입장할 수 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있는 중국국가박물관은 우리 국립박물관처럼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신분증을 내보여야 입장권을 받을 수 있고, 까다로운 검색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우리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 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입장료가 없다. 여기에 용산의 중앙박물관만 해도 현관에 들어서면 어디가 박물관 전시공간이고 어디가 외부공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안팎이 없다. ‘열린 박물관’의 취지가 나쁘지는 않지만, 편안함만 강조하고 긴장감은 사라진 박물관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아무도 긴장하지 않으면 사고는 언제든 일어난다. 게다가 폭발물이나 인화물질의 유입을 방지하는 검색 시설조차 없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민속박물관도 다르지 않다. 박물관에 성(聖)과 속(俗)을 가르는 최소한의 경계를 만들면 문화유산의 격(格)이 높아진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이 한국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카타르 도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2일(현지시간) 열린 ‘2014 유네스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남한산성이 이같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 3건이 한꺼번에 처음으로 등재된 이래 창덕궁과 수원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2010년) 등이 잇따라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려 왔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역사유적지구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 일대의 고구려 유적까지 합칠 경우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4건에 이른다. 남한산성은 지난 15일 개막한 이번 회의에서 43개국이 제출한 41건의 등재신청 목록 가운데 12번째로 심사를 받았다. 등재 심사에선 남한산성이 세계유산 가운데 인간이 남긴 기념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유산’의 6개 조건 가운데 특히 등재 기준 2와 4를 충족했다고 평가됐다. 기준 2는 특정 기간, 지역 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 증거임을 밝히는 것이며, 기준 4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를 뜻한다. 둘레 11.7㎞, 면적 52만 8000㎡인 남한산성은 백제 온조왕 때 왕성으로 처음 축조된 뒤 조선 인조 때인 1624년 사찰과 승려가 동원돼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군사유산이자,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를 엿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문화재청은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7~19세기 국내 축성술 변화·동아시아 건축 교류 증거”

    “7~19세기 국내 축성술 변화·동아시아 건축 교류 증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가치는 ‘비상시의 왕궁’이라는 데 방점이 찍혔다.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등 국가전란 시 왕실과 조정의 명운을 보장하는 임시 수도의 역할을 했다. 또 방어력을 갖춘 산성도시로서 조선시대 행궁 가운데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춘 왕궁이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일상적인 왕궁과는 별개 산성이면서도 전란 때 왕이 일상적으로 거주한 곳은 남한산성 외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그 원류를 찾아가면 백제 온조왕 때 왕성과 통일신라 시대 주장성에 잇닿는다. 그러다 1624년 인조 때 뒤로 굽어지는 ‘굽도리 방식’의 산성으로 탈바꿈했다. 18세기 영·정조 때는 석재 중간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지지력을 높였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포좌와 포대를 만들었다. 이들 성벽은 시기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남한산성은 7~19세기에 이르는 국내 축성술의 발달 단계와 무기체계의 변화상을 잘 드러낸다”면서 “동시에 16~18세기 동안 전란을 거치며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간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남한산성이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초대형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는 점과 축조와 운용 과정에서 사찰과 승려가 동원된 점 등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남한산성에는 수어장대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등의 기념물 외에 남한산성 소주와 같은 유·무형유산 10점이 곳곳에 자리한다. 아울러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현대 도시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을 등재하는 기준은 ‘유적이 얼마나 잘 보존돼 있는지’와 ‘역사성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 ‘현대인의 삶과 얼마나 잘 조화되느냐’ 등이다. 여기에 인류의 보편 가치까지 강조된다. 이를 포괄하는 것이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으로 남한산성은 특정 기간·지역 내에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로 꼽힌다. 경기 광주시 중부면에 자리한 남한산성은 2009년 6월 세계유산 등재 잠정목록 후보로 선정된 뒤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가 제출됐다. 지난 4월에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동물박사가 들려주는 동물이야기] 녀석들 이름 어떻게 지었나

    [동물박사가 들려주는 동물이야기] 녀석들 이름 어떻게 지었나

    호랑이, 표범, 반달곰, 늑대, 두루미, 황새같이 우리 땅에서 오래 산 동물들이야 그 이름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또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았지만 코끼리, 기린, 코뿔소, 사자, 하마, 악어, 타조와 같은 매우 특징적인 동물에 대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름에 따른 생김새를 떠올린다. 어릴 때부터 책이나 사진, 동영상을 통해 익숙해지도록 학습된 결과다. 그러나 마코르, 오카피, 봉고, 하테비스트, 시타퉁가, 니알라, 화식조 등의 이름에는 금방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없다. 우리나라 동물원에 없거나 몇 군데만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름이 낯설 수밖에 없다. 수족관의 다양한 어종이나 식물 이름도 마찬가지다. 같은 동물이나 식물을 두고 서로 다른 언어나 사투리로 부르는 바람에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찌감치 과학자들은 라틴어를 이용한 학명을 사용함으로써 혼돈을 막는다. 학명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동물의 명칭을 더 어렵고 번거롭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말에서 동물의 이름은 그 형태나 소리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십장생의 한 가지요, 기풍이 고고해 옛 선비들의 시와 화폭에 즐겨 담긴 두루미를 보자. 우는 소리가 ‘뚜루루루 뚜루루루~’라고 들리는 데서 두루미라고 불리게 됐다. 해부학적으로 기관의 구조가 긴 코일 형태로 말려 있어 마치 트럼펫 나팔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를 띠기 때문이다. 두루미의 한자어는 학(鶴)이다. 영어로는 크레인(crane)이라고 하는데 쉰 목소리로 운다는 뜻의 크란(cran)에서 기원한다. 라틴어로 그루스(grus), 일본어 츠루(tsuru)도 모두 울음소리에서 비롯됐다니 흥미롭다. 무거운 물건을 줄에 매달아 옮기는 기중기를 영어로 크레인(crane)이라고 하는데 그 형태가 목이 긴 학처럼 생긴 것도 재밌다. 지난 3월 경기 시화호 갈대습지에 방사한 삵도 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삵은 위험에 놓여 상대를 위협할 때 등을 위로 활처럼 추켜올리고 입을 크게 벌리면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쓰-악 쓰-악 캬악’ 소리를 낸다. 코뿔소라는 이름은 글자대로 이해할 수 있어 참 쉽다. 그러나 분류학적으로 따질 때 소와 관계가 먼 ‘기제목’(말목)으로 분류된다. 코뿔소는 영어로 라이노서스(rhinoceros)인데 고대 그리스어로 코를 뜻하는 ‘rhino’와 뿔을 뜻하는 ‘ceros’의 합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뿔소에도 흰코뿔소, 검은코뿔소,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 등 여러 종이 있는데 흰코뿔소라는 이름의 유래도 영어로 말 그대로 ‘White rhinoceros’다. 그러나 네덜란드어로 넓다(wide)는 의미의 ‘wijd’를 영어로 ‘white’라고 잘못 옮기는 바람에 흰코뿔소가 됐다는 설과, 야생에서 석회질이 많은 흙에 뒹굴거나 새의 배설물에 의해 허옇게 보여서 그렇게 불린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흰코뿔소는 특별히 흰색을 띠지 않는다. 하마(河馬)는 이와 반대다. 고대 그리스어로 ‘말’을 뜻하는 ‘hippos’와 ‘강’을 뜻하는 ‘potamos’를 합친 히포포타무스(hippopotamus)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강에 사는 말(horse of the river)을 가리킨다. 그러나 분류학적으로 하마는 말과 거리가 멀다. 정작 하마는 코뿔소와 달리 ‘우제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늑대의 경우 늑대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찾을 수 없지만 북한에선 늑대를 ‘말승냥이’라고도 부른다. 북한 동물학자인 원홍구 박사의 ‘조선짐승류지’에 따르면 ‘큰 개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자세히 보면 이마가 개보다 더 넓고 콧등도 더 넓다’고 설명했다. 늑대가 승냥이보다 덩치가 큰 데서 유래해 앞에 ‘말’자를 붙인 것이다. 또 타조와 같이 날지 못하는 대형 조류인 화식조가 있다. 뉴기니와 호주 북동부의 열대 삼림에 주로 서식한다. 목에 선명한 보랏빛 피부와 연결된 붉은색으로 축 늘어진 살갗이 ‘불을 삼키는 것 같다’고 해 불 먹는 새 화식조(火食鳥)라는 이름을 달았다. 기린(麒麟)은 한반도에 서식한 적이 없지만 역사엔 오래전부터 등장한다. 신화에 나오는 기린은 실제 기린이 아니라 사슴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이다. 한때 국보 207호 천마도(天馬圖)에 그려진 게 머리에 뿔이 있어서 기린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강원 인제군 기린면의 지명 유래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제문화원장을 지낸 오정진 사슴생태복원운동본부 회장에 따르면 인제에 사슴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데서 유래했다. 기린은 임금이 정치를 잘해 태평성대를 이룰 때 출현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영어(giraffe)는 아랍어 ‘빠르게 걷는다’(zarafa)를 어원으로 본다. 흥미 있는 것은 학명(Giraffa camelopardalis)의 뒷부분이다. 글자 그대로 낙타(camel)의 몸통에 표범(leopard)의 무늬를 띤다는 뜻이다. 현존하는 새 중 가장 큰 타조(駝鳥)도 목이 길쭉한 게 낙타(駝)와 같기 때문이다. ‘한국동물원 80년사’에 따르면 창경원 당시 보유 동물은 124종 800여 마리였다. 1984년 서울대공원 개원 땐 무려 374종 3909마리로 늘었다. 150여종을 외국에서 들여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만큼 이름을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일런드(Eland), 시타퉁가(Sitatunga), 스프링복(Springbok), 니알라(Nyala)처럼 우리말로 표현하기 난감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외래어로 받아들이고 큰개미핥기(Giant anteater), 흰코뿔소(White rhino), 검은코뿔소(Black rhino), 북극곰(Polar bear)처럼 영어를 직역하기도 했다. 한글 이름을 정하기 위해 생물학자, 국어학자, 동물원 전문가로 위원회도 만들었다. 동물원에서는 주요 동물에 대해 종별 명칭 외에도 각 개체에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 지능이 높을수록 희귀해 마릿수가 적은 경우 더 그렇다. 코끼리, 고릴라, 돌고래, 호랑이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제주 앞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되짚어 볼 게 있다. 2001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장군이’와 ‘반돌이’를 떠올려 보자. 야생 적응이 서툴러 사찰에 침범하고 등산객을 따라다니며 먹이를 구걸하는가 하면 양봉농가의 꿀통을 덮쳐 피해를 입히는 등 말썽을 꽤 피웠다. 이후 곰 복원을 위해 지리산에 방사한 동물에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일련번호로 대신할 뿐이다. 장군이, 반돌이 이후 20마리 이상을 방사했지만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위치추적을 위해 부착한 전파발신기의 일련번호와 체내에 삽입된 쌀알 크기의 마이크로칩만 개체 확인을 위해 있을 뿐이다. 야생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는 시도는 이어질 것이다. 그때도 물건의 제품번호처럼 번호를 사용하고 불렸던 이름은 회수하는 게 야생동물의 의인화에 따라 지나치게 감성에 치우치는 일을 예방하는 길이다. vetinseoul@seoul.go.kr
  • 대구음식관광박람회 12일 개막

    ‘대구음식관광박람회’가 12일부터 4일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다. 대구시는 13회째를 맞는 대구음식관광박람회의 올해 주제는 ‘자연으로 맛보는 푸드&힐링’이라고 11일 밝혔다. 행사에선 자연·힐링·대구·세계 등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 음식전시관이 마련된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각종 꽃요리와 전통 사찰음식, 그리스·호주 등의 음식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대구 추천 맛집으로 선정된 음식점 등이 현장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한마당과 요리 체험관, 수제빵 무료 시식관 등이 운영된다. 이 밖에 각종 문화공연과 요리경연대회, 제과·제빵 경연대회 등도 열려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행사안내는 대구음식관광박람회 사무국(053-601-5455)으로 문의하거나 대구음식관광박람회 홈페이지(www.colorfulfood.co.kr)를 참조하면 된다. 시 관계자는 “대구음식박람회는 지역 외식산업을 발전시키는 바탕이 돼 왔다”며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꽉 막힌 남북, 종교계가 교류 재개 물꼬 트나

    꽉 막힌 남북, 종교계가 교류 재개 물꼬 트나

    지난 2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을 계기로 종교계가 한껏 고무돼 있다. 한국천주교사상 첫 추기경 방북인 염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은 종교행사 없이 현지 기업 근로자와 천주교 신자 격려 차원에 머물렀다. 종교계는 그러나 최근 극도로 경색된 남북 상황에 비쳐볼 때 천주교의 방북은 큰 의미를 갖는 사건으로 여기는 추세다. 따라서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 교류를 다시 추진할 움직임을 보여 주목된다. 우선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오는 8월 25∼29일 인천 송도에서 열릴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제8차 총회에 큰 기대를 쏟고 있다. 27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ACRP 송도 총회는 ‘조화 속에 하나 되는 아시아’를 주제로 아시아 종교지도자와 국내 종교인 등 5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종교행사. ACRP 본부는 당초 총회를 남북 공동개최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남북관계 경색 탓에 남한 단독 개최로 선회했다. 따라서 KCRP 측은 천주교 방북을 계기로 북측 종교인들의 총회 참여 의사 타진에 나서는 한편 개성에서 예정됐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인 기도회’도 조심스럽게 추진할 예정이다. 불교계와 기독교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조계종은 오래전부터 추진해 온 중·단기 사업의 재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전격 중단된 내금강 불교유적 공동조사와 북한 불교문화재 공동 전수조사, 남북 사찰 간 결연을 통한 평양 불교회관 건립을 놓고 북측 불교계와 접촉을 시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6월 29일 만해 한용운 선생 열반 70주기를 맞아 금강산에사 만해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는 공동 학술대회에 우선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천태종도 이미 복원을 끝낸 개성 영통사와 인근 사찰을 연결하는 순례코스 조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원불교는 2003년 평양에 빵 공장을 설립해 2006년부터 국수공장으로 전환해 운영하다 2011년 중단된 공장 재가동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창교주인 소태산 대종사의 북한 지역 흔적이 담긴 순례 코스 마련과 개성 교당 복원도 기대를 거는 중점 교류 사업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7년 평양에서 착공한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의 조용기심장병원 완공에 전기를 맞을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추진 중인 북한 교회와의 만남도 개신교계의 기대를 모으는 사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이 회동에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강명철 중앙위원장의 참석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 조그련 측은 지난달 WCC에 공문을 보내 “6월 제네바 회동 요청에 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경색되면서 답보상태에 빠졌었다. NCCK 강석훈 목사는 이와 관련해 “염수정 추기경의 방북은 한반도 화해와 평화에 큰 관심을 보여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맞물려 전해진 낭보임에 틀림없다”며 “종교계의 남북 교류도 화해와 평화에 우선 초점을 맞추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변진흥 KCRP 총장도 “원칙적으로 종교계는 남북 관계의 변화에 상관없이 항상 교류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이번 염수정 추기경 방북을 계기로 종교계가 우리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봉합, 수습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 일반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면 남북 교류도 그 바탕에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토 속살 들여다보기… 도래인의 역할은?

    교토 속살 들여다보기… 도래인의 역할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유홍준 지음 창비/412쪽/1만 8000원 무려 1000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고도 ‘교토’(京都). 경주를 제쳐놓고 한국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일본의 문화를 논할 때 교토를 빼놓을 수가 없다. 사찰 3030곳과 신사 1770곳을 품고 있는데,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만도 17곳. 한 해 800만명이 찾아든다는 교토에 한국이 각별한 관심을 갖는 큰 이유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른바 고구려·백제·신라계 도래인(渡來人)의 존재와 역할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권 교토의 역사’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작심하고 교토 해부에 나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권째 작품이다. “마치 미적분 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는 서문 속 심경 그대로 교토 속살 들여다보기 작업이 녹록지 않았음이 충분히 읽힌다. 책은 교토 문화유산의 대종인 사찰과 신사(神社) 답사기 형식으로 엮여 있다. 하지만 길을 따라 훑어가는 종전의 평면적 답사기와는 조금 다른 흐름이다. 공간의 문화유산에 역사라는 시간성을 얹어 ‘일본문화 본고장’의 진면목을 풀어내고 있다. 유 교수가 책에서 주목한 건 역시 일반의 인식과 비슷하게 ‘1000년 고도’ 속 도래인의 역할이다. 황폐한 교토에 댐과 수로를 만들어 비옥한 땅으로 일군 하타씨(秦氏)를 비롯해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이 소장된 광륭사, 원효와 의상 대사의 실물에 가까운 초상화가 보관된 인화사 등에 담긴 도래인의 숨결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책은 한반도 도래인의 역할과 숨결을 중시하면서도 그들의 뒤를 이어 번져갔던 당나라 문화 배우기(唐風)며 헤이안 시대 중엽(후지와라 시대) 이래 자발적인 힘으로 문화를 일궈내려 했던 시도인 국풍(國風)까지를 소개한다. 그 치우치지 않는 입체적 답사의 바탕은 이렇게 요약된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일본 답사기는 국내 답사기와 달리 일본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교토 답사의 모범답안’을 만들려 했다는 유 교수는 일본 문화의 정수가 모인 교토를 후속편 ‘교토의 명소’를 통해 한 번 더 훑어낼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IT기술 혁명-다가온 미래학교] (중) 서울 계성초 스마트 교육 현장

    [IT기술 혁명-다가온 미래학교] (중) 서울 계성초 스마트 교육 현장

    “지금부터 20분간 마인드맵의 설명을 늘리는 ‘트리 확장’을 시작합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의 계성초등학교 5학년 슬기반. 조기성(41) 교사의 말에 학생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교실 앞면의 전자칠판에는 자기 생각을 지도 그리듯 이미지화한 ‘마인드맵’이 준비돼 있다. 트리 확장은 학생들이 스스로 정보를 찾아 마인드맵의 가지를 늘려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5명씩 모둠(그룹)을 지어 앉은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자료를 찾았다. 2모둠의 민석이와 민준이가 태블릿PC를 클릭하더니 찾은 자료들을 마인드맵의 ‘트리’ 끝 부분에 붙여 넣었다. 민석·민준이가 맡은 것은 ‘불교문화’ 부분. 두 학생은 ‘직지심체요절’과 ‘고려청자’, ‘고려청자에 이름 붙이는 방법’, ‘고려청자와 빗살무늬토기의 다른 점’ 등을 인터넷에서 척척 찾아내더니 능숙하게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조 교사가 “민석이와 민준이가 가장 빠르네!”라며 칭찬을 하자 다른 학생들도 바빠졌다. ‘5분사탐-고려의 불상’이란 동영상을 들으며 메모를 하던 5모둠의 주원이가 태블릿PC에 정보를 넣었다. 동영상이 안 떠서 고생하던 태화 역시 분발하는 모양새였다. 학생들이 바쁘게 움직일수록 마인드맵의 가지 수도 여기저기서 점점 늘어났다. 이날 슬기반 사회 과목의 주제는 ‘불교의 영향과 고려 사람들’이었다. 5개의 모둠으로 나눠 ▲팔만대장경판 ▲불교의 영향 ▲사찰의 영향 ▲불교문화 ▲건축과 불상 등 5가지 소주제를 하나씩 맡아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각 주제에는 관련 영상과 찾아야 할 과제 등이 제시돼 있다. 트리 확장을 끝낸 후 각 모둠에서 1명의 학생이 반 전체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고 친구들의 질문에 답도 해야 한다. 수업은 태블릿PC로 게임이나 웹서핑 등 딴짓을 하기 어려울 만큼 밀도 있게 진행됐다. 수현이는 “1주일에 2~3번 정도 이런 수업을 하고 있다”며 “책을 보면서 선생님 수업을 듣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짝꿍 혜림이도 “수업한 뒤 교과서를 보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이 학교는 2011년부터 사회와 과학 등 일부 과목에서 태블릿PC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다. 조 교사가 삼성에서 태블릿PC를 협찬받아 3학년부터 수업에 도입해 올해 3~6학년까지 확대됐다. 외국어, 미술, 도예, 무용, 인성, 국악 수업과 함께 특성화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태블릿PC를 수업에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초반에 거부감도 있었다. 남궁순옥(58) 계성초 교장은 “태블릿PC를 도입할 때 주변에서 ‘아이들이 게임이나 웹서핑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며 “하지만 예상외로 학습 효과가 뛰어나고 학생들도 수업을 즐거워해 점점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블릿PC는 수업 시간에만 사용하고 수업 종료 후엔 바로 회수하는 게 원칙이다. 남궁 교장은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첨단 기기는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수업을 준비하는 게 교사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조 교사는 수업 개설에 ‘삼성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는 EBS 클립뱅크나 유튜브 등에서 적절한 것을 찾아 링크를 붙이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 교사는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사의 몫”이라며 “일부 회사에서 나오는 디지털 수업 자료는 콘텐츠까지 제공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라면 지금의 수업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자료를 찾을 때에도 인터넷에 널려 있는 자료가 아닌 출처가 분명한 자료를 찾도록 가르치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단순한 질의응답 서비스나 출처를 모르는 블로그 자료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은 백과사전이나 도서관, 교육청 등 공공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 조 교사는 “첨단 기기를 활용한 수업은 아이들의 역량을 키워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스로 자료를 찾고 협업해 더 큰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바로 이 수업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했던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에서도 이런 부분이 강조됐다. 미래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공부하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며, 그러려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 한영중학교의 김두일(39) 과학 교사는 현재 중학교 3학년 과학 과목의 8단원 중 2단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 교사가 수소 풍선을 천장에 띄우고 공기 중에 풍선이 뜨는 이유를 설명하면 학생들이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자기 생각을 주고받는다. 학생들의 답이 즉각 오기 때문에 교사는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학생들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SNS를 활용하자 수업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게 가장 큰 성과다. 김 교사는 “교사와 학생들이 충분히 공감하지 않은 채 첨단 기기만 활용한다면 오히려 해악이 될 수 있다”며 “미래의 수업은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고 자존감과 자신감 등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남 김해시 김해외국어고등학교의 박승훈(36) 영어 교사도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게 미래 수업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 수업에 메모, 갈무리, 뉴스 클리핑 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인 ‘에버노트’를 사용한다. 에버노트사에서 인증한 전 세계 26명의 앰배서더(홍보대사) 중 한 명인 그는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사진이나 글귀, 뉴스 등을 에버노트로 모아 수업에 활용한다. 학생들에게는 휴대전화 등에 에버노트를 설치하도록 하고 일상생활에서 갑자기 떠오른 노래를 영어로 녹음해 발표하게 하는 등 다양한 수업을 하고 있다. 박 교사는 “에버노트라는 프로그램이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학생들에게 사용법을 익히라든가 하는 식으로 강요를 하면 안 된다”며 “첨단 기기나 각종 프로그램이 수업에 도입되면 오히려 불편해하는 학생도 있다. 지금까지 수업이 교사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수업은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비상시의 왕궁’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비상시의 왕궁’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의 가치는 ‘비상시의 왕궁’이라는 데 있다. 둘레 11.7㎞, 면적 52만 8000㎡인 산성은 백제 온조왕 때 왕성으로 처음 축조된 뒤 조선 인조 때인 1624년 사찰과 승려가 동원돼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선시대 행궁 가운데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춰 국가전란 시 임시수도의 역할을 해 왔다. 엄연한 왕궁이면서 동시에 수어장대와 숭렬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등의 기념물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남한산성 소주와 같은 무형유산도 존재한다. 성곽을 둘러싼 문화재와 자료가 10점이나 될 만큼 유·무형 유산의 복합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남한산성처럼 독특한 역사성과 왕이 거주하는 비상 왕궁의 성격을 지닌 곳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남한산성은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현대 도시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세계문화유산을 등재하는 기준은 ‘유적이 얼마나 잘 보존돼 있는지’와 ‘역사성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 ‘현대인의 삶과 얼마나 잘 조화되느냐’ 등이다. 여기에 인류의 보편 가치까지 강조된다. 이를 포괄하는 것이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으로 남한산성은 특정 기간·지역 내에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 주는 탁월한 사례로 꼽힌다. 경기 광주시 중부면에 자리한 남한산성은 2009년 6월 세계유산 등재 잠정목록 후보로 선정된 뒤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가 제출됐다. 같은 해 6월 예비실사와 9월 본실사를 거쳐 올 2월에는 보완자료 제출까지 마친 상태다.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한국은 11번째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확실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해 보인다. 29일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해 ‘등재권고’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등재권고를 받은 문화유산은 그해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예외 없이 등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남한산성은 오는 6월 15~2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이 왕궁과 관련된 시설을 갖췄으며, 축조와 운용 과정에 사찰과 승려가 동원된 점에서 독특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우리나라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2010년)에 이어 11번째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인사 장경판전(1995)을 비롯해 종묘(1995), 석굴암·불국사(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경주 역사 유적지구(2000)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그레그 스미스 지음, 이 새누리 옮김, 문학동네 펴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월가(Wall Street)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12년간 일한 저자가 풀어놓은 월가의 자화상. 유럽·중동·아프리카의 미국 에쿼티 파생상품 책임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닷컴버블, 9·11테러,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유서 깊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뿌리가 헤지펀드의 영역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다. 2012년 더 이상 고객을 기만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면서 뉴욕타임스에 월가의 관행을 폭로하고 골드만삭스의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책은 칼럼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월가는 비대칭적인 정보를 통해 투자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항상 지켜본다. 그리고 이들의 두려움과 탐욕을 이용해 100% 수익을 올린다. 이런 구조 속에서 투자자는 항상 지는 게임만 할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가 고객을 ‘멍청이’라 부르며 ‘흡혈 오징어’가 되어가는 과정, 직원을 실적에 따라 해고해 버리는 ‘행군명령’ 등을 생생하게 그린다. 400쪽. 1만 8000원. 콤플렉스(할 포스터 지음, 김정혜 옮김, 현실문화 펴냄) 오늘날 명사의 반열에 오른 세계적인 건축가를 ‘스타 건축가’(starchitect)라고 부른다. 최근 개관한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보듯이 이들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프린스턴대 미술사·고고학과 교수이자 저명한 미술 비평가인 할 포스터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 또는 이미지 노릇을 하는 스타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헤친다. 저자는 렘 쿨하스, 노먼 포스터,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자하 하디드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건축가들이 펼쳐놓은 건축물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이미지 만들기’를 든다. 건축이 미술처럼 보이고, 미술이 점점 건축처럼 보이는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라는 진단과 함께 건축과 미술이 뒤섞인 콤플렉스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묻는다. 그는 이들 건축가의 작품이 지닌 또 다른 특징으로 ‘글로벌 양식’을 꼽는다. 공학적 성과물이기도 한 건축물들은 거대하며, 가볍고, 투명하고, 아이콘 성격이 짙지만 그 이면에는 교묘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자리한다고 꼬집는다. 392쪽. 2만 8000원. 작은 한옥 한채를 짓다(황인범 지음, 돌베개 펴냄) 북촌에 이어 새로운 한옥 마을로 주목받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서촌 체부동에 ‘벽안의 한옥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가 12평짜리 고졸한 한옥 ‘어락당’을 마련했다. ‘서촌 파 교수댁 어락당 탄생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어락당의 대수선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직접 이 집을 세우고 만든 도편수, 즉 한옥 공사현장의 책임자가 6개월간 현장에서 남긴 메모 800여개와 수천장의 사진들을 바탕으로 한옥이 지어지는 얘기를 전한다. 저자는 독문학을 전공했으나 전공과 무관하게 1997년 목수에 입문해 사찰과 향교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화재 신축 및 수리현장에서 일해 왔다. 사찰의 살림집인 요사채를 짓다가 2010년부터 서촌에서 한옥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채의 한옥을 지으며 아주 기본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전통과 현재의 괴리였다. 현대인의 일상에 들어온 한옥은 전통 건축의 장점은 존중하되 최적화된 살림집이어야 한다. 책에는 그런 고민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풀어간 과정과 그 결과로 1930년대 도시형 한옥의 원형으로 되살아난 어락당의 탄생 과정을 담았다. 336쪽. 1만 8000원.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펴냄) ‘열하일기’ ‘동의보감’ 등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소개해 온 저자의 근대성 탐사 보고서. ‘계몽의 시대’ ‘연애의 시대’ ‘위생의 시대’로 이뤄진 3부작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 근대 계몽기 신문 매체를 주요 사료로 삼아 현재까지 한국사회에 남아 있는 근대적 삶의 양식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디지털 문명이 고도화한 현재에도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20세기에 갇혀 있다며 근대성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1권 계몽의 시대는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을 다뤘다. 시간은 곧 돈이며 목표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라는 의식이 기차의 운행방식과 닮았음을 보여준다. 2권 ‘연애의 시대’는 근대 계몽기 여성성과 연애 관념이 새롭게 만들어진 연원에 초점을 맞췄다. 3권 ‘위생의 시대’는 우리의 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위생 관념을 체화하고 청결 강박증에 빠졌는지를 계보학적으로 짚어본다. 각권 224~296쪽. 1만 3000~1만 4000원.
  • “슬픔 나누고 희망 모으자” 세월호 아픔 힐링

    “슬픔 나누고 희망 모으자” 세월호 아픔 힐링

    세월호 참사 이후 종교계가 이른바 ‘힐링 모드’로 급속하게 선회하고 있다. 4~5월 중 예정된 기념행사를 대폭 축소, 혹은 취소하는 한편 희생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국민들과 함께 극복의 총력을 모으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불교계와 원불교, 개신교계는 그동안 흩어졌던 기도와 봉사의 구심점을 갖춰 희생과 아픔의 현장에 모여드는 추세여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의 주요행사인 연등회와 봉축 법회를 대거 바꿔 ‘실종자의 생환 기원’과 ‘국민 고통·슬픔 함께 나누기’로 선회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올해 연등회는 화려한 장엄무, 가무를 지양하고 국민의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함께 모으는 경건한 행사로 전환해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6일 오후 동국대 운동장서 열리는 어울림마당은 기존 연희단의 공연 대신 희생자들을 위한 천수경 독경과 석가모니불 정근,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축원의식으로 진행된다. 같은 날 오후 7시 동국대∼동대문∼종각사거리 구간의 연등행렬에서도 화려한 장엄등 대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백색 장엄등과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적색 장엄등을 선두로 스님 300여명이 백색등을 들고 행진한다. 오는 5월 6일 조계사에서 열리는 봉축법요식도 추모법회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봉축 행사를 대폭 축소하는 대신 희생자 추모와 유가족 돕기의 움직임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조계종은 재난구호봉사단을 사고 현지에 급파해 구조대원과 유가족 지원에 매달리고 있으며 부산불교연합회는 연등연합대회와 제등행렬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적절한 시기에 추모제를 열기로 했다. 태고종도 전국 시·도 교구 종무원과 사찰에서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매일 봉행 중이며, 진각종도 전국의 심인당(법당)에서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강도불사’를 열고 있다. 원불교는 최대 경절인 오는 28일 대각개교절(창교일) 기념식을 축소하고 대각개교절을 기념한 놀이잔치 등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지난 21일부터 진도 교당에서 매일 두 차례씩 실종자 가족들이 동참한 가운데 실종자와 구조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독경을 진행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에 재난재해구호대와 원봉공회를 파견했으며 진도실내체육관에 자원봉사센터를 마련, 구호대원·가족에게 차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최근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관에서 긴급 교단장 회의를 열고 다음 달 11일까지를 ‘슬픔을 당한 가족과 함께하는 공동기도주간’으로 선포했다. NCCK는 회원교단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 “한국교회가 단 한 사람의 생존자까지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당부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회원 교단장들은 소속 교회에 새벽기도회나 주일 예배에 세월호 관련 주제를 놓고 특별기도 시간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교인과 시민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처를 교회별로 마련토록 독려하고 있다. 앞서 문화사역 단체인 마커스 미니스트리는 설립 11주년을 맞아 대규모로 준비했던 행사를 취소했다. 이와 맞물려 천주교도 교구별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회를 차례로 열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월호 추모 연등회 열린다…세월호 침몰 사고 위로

    세월호 추모 연등회 열린다…세월호 침몰 사고 위로

    ‘세월호 추모’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사고로 석가탄신일(5월6일)을 전후한 불교계 최대 축제인 연등회(燃燈會, 중요무형문화제 제 122호) 행사가 예년의 축제 분위기가 아닌 추모제 형태로 진행된다. 전국 대부분의 사찰은 봉축행사는 진행하되 연등 문화제는 축소하거나 취소하고 연등행렬은 추모 분위기로 바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로 했다. 사찰 앞에도 화려한 연등 대신 백(白)등을 달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할 예정이다. 21일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오는 25~27일 종로 일대에서 예정됐던 연등회 문화제 행사를 취소하고 연등행렬만 추모제 형태로 열기로 했다. 26일 저녁 7시 연등행렬은 동국대 운동장에서 연등회 기념법회후 종로, 조계사로 이어지며 백등을 앞세워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될 예정이다. 조계종은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 예정됐던 연등 문화제는 취소하고 조계사 앞에서만 체험행사를 갖기로 했다. 한편 연등회 보존위원회 부처님오신날봉축위원회는 지난 16일 불기2558년 부처님오신날 연등회의 시작을 알리는 점등식을 광화문 광장에서 가졌다. 위원장 자승스님은 기원문을 통해 “진도 앞바다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는데,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기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일본 속 한국문화 유적 답사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일본 속 한국문화 유적 답사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테마기행이 여행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마치 자유여행을 온 듯한 만족감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적지를 몸소 체험하는 현장답사기행의 인기가 특히 높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일본 속의 한국 문화 유적 답사’는 고대 한국 문화의 일본 전파 경로를 따라 일본 속에 뿌리내린 한국 문화의 원류를 찾아보는 테마기행이다. 지난달 27일 일본 간사이국제공항의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마친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답사기행 일행은 오사카 히라가타시의 전왕인박사묘(傳王仁博士墓)로 향했다. 백제의 학자 왕인의 묘로 추정되는 곳이다. 답사기행의 해설을 맡은 이종태 국민대 교수는 “응신천황(應神天王) 15년, 아직기(阿直岐)의 추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적혀 있다”며 “일본 아스카문화(飛鳥文化)와 나라문화(奈良文化)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 문자와 문물을 전한 백제 학자의 뜻이 시공을 초월해 양국을 이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농부가 죽순을 캐다 발견했다는 다카마쓰총고분(高松塚古墳)은 1972년 발굴 당시 짙은 채색의 벽화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전후(1945년) 최대의 발굴’이라며 연일 1면 톱을 장식했다. 벽화에 색동 주름치마를 입고 등장한 여인들은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인상이다. 특히 고구려의 진파리 1호분, 강서대묘와 중묘의 벽화와 흡사한 사신도가 눈길을 끈다. 이 교수는 “장례의식은 누군가의 강요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며 “일본 고분에서 채색의 벽화가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고대 한국의 풍습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제의 고승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에 크게 공헌했다. 백제인의 예술성과 일본인의 불심이 빚은 불교 건축물이 곳곳에 즐비하다. 세계문화유산인 호류지(法隆寺), 도다이지(東大寺) 등 거대 사찰의 가람배치와 축조기법은 백제에서 가져온 것이다. 특히 신성한 본당을 둘러싸고 있는 긴 복도인 회랑(回廊)의 설치는 전형적인 백제 양식이다. 호류지의 금당은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비천도’(飛天圖)로 유명하다. 1949년 화재로 사라져 아쉽게도 모사 작품이었지만 하늘로 훌훌 날아가는 천녀, 위엄 서린 관세음보살 그림이 살아 있는 듯 꿈틀대고 있었다. 백제 사람이 만들었다는 구다라(백제)관음상도 빼놓을 수 없다. 2m가 넘는 목조 관음상의 부드러운 얼굴과 눈썹의 선, 입가에 살포시 머금은 ‘백제의 미소’에서 백제 장인의 흔적이 느껴졌다. 일찍이 프랑스의 지성 앙드레 말로가 ‘모나리자’, ‘미로의 비너스’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술품으로 꼽은 작품이다. 단일 목조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도다이지(東大寺). 이 교수는 “백제계 행기(行基)와 양변(良弁) 스님이 성무천왕(聖武天王)의 간청으로 불사를 주도했고 그 공로로 지금도 사찰 내에 그들의 흔적(행기당, 개산당)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가람의 총책임자는 고구려 출신 고려복신(高麗福神)이고 대불전 전당을 건립할 때 책임자로 신라인 저명부백세(猪名部百世)가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높이 16m의 금동불상 ‘비로자나대불’을 보고 한 시인은 “부처의 진리를 크기로 가둘 수 없고 오묘한 깨달음의 장엄한 빛을 감출 수 없다”고 예찬한 바 있다. 일본 불교의 시조인 쇼토쿠(聖德) 태자의 혼이 밴 오사카의 사천왕사(四天王寺)는 백제 부여 군수리 절터와 같은 가람양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독창적인 일본식 사고를 곁들인 고대 건축 유적이어서인지 우리 사찰과는 모양이 크게 달랐다. 마지막 날 방문한 ‘고려박물관’은 이번 답사의 특별코스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 유일한 우리 문화재 박물관이다. 건물 앞뜰에는 낯익은 우리 문인석이 서 있었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 교포 정조문씨가 40여년간 일본을 돌아다니며 모은 것들로 국보급 문화재도 수두룩하다. 정씨의 아들인 정희두씨는 박물관 입구에 자리 잡은 고려시대 석탑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고베(神戶) 농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10년 넘게 주인을 설득해 사들인 것”이라며 “수집품 하나하나마다 이런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려미술관은 영원히 뺏길 뻔했던 일본 내 우리 문화재들을 되찾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차별받던 재일 교포들에게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줬고, 일본으로 하여금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고치도록 한 것이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소중한 문화유산에 담긴 역사적 의의와 높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국내외 문화유적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1989년부터 ‘일본 속의 한국 문화 유적 답사’, ‘중국 실크로드 학술 문화 유적 답사’ 등의 행사를 잇달아 열어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 교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역사 문화 유적을 찾는 참가자들의 열기는 뜨겁다. 연령층도 대학생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상진(60)씨는 “일본 속의 한국 문화에 대해 책에서만 공부를 했는데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매우 뜻깊은 답사여행이었다”고 말했다. 4년째 답사에 참여하고 있는 한부자(59)씨는 “일본 문화의 일정 부분이 우리 문화의 도래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며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 원조는 백제 문화”라고 웃으며 말했다. 문화 유적은 과거의 흔적이며 이를 통해 현대문화의 정신과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다. 더욱이 문화 유적 답사는 선조들의 지혜와 삶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 문화유산의 높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한층 더 매력적이다. 글 사진 오사카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문화재 보호단체 대표, 알고보니 도굴범

    문화재 보호단체 대표, 알고보니 도굴범

    국고보조금을 받고 활동하던 문화재 보호단체 대표가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매장문화재 수백점을 도굴해 판매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일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북의 비영리단체인 모 문화지킴이 대표 장모(5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다른 도굴범 박모(61)씨, 장모(54)씨와 이들에게 매장문화재를 사들인 경북 구미의 개인 사찰 주지 권모(50)씨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3명의 도굴범이 유통시킨 문화재는 236점으로 전부 회수됐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도기·토기류 233점을 도굴해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훔친 문화재에는 중앙정부 관서명이 기재된 조선시대 초기 ‘분청 인화 국화문 접시’ 등이 포함돼 있다. 조사 결과 2008년부터 문화재 단체 대표로 활동한 장씨는 훔친 골동품을 개인 소장 박물관에 보관하다가 처분하고, 정상 거래인 것처럼 가짜 서류를 준비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함께 입건된 박씨는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던 중 문화재 2점을 도굴했다. 이 중 1점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40억원 상당의 석조약사여래좌상으로 단돈 200만원에 권씨에게 판매했다. 박씨는 도굴 과정에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일부 파손한 뒤 무자격자에게 수리를 맡겨 2차 훼손이 발생했고 가치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굴범들이 훔친 문화재 전부는 권씨가 소장 목적으로 사들였다. 권씨는 불법으로 도굴한 문화재인 것을 알고도 사찰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3억 3000만원 상당을 주고 이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문화재 관리 현주소] (상) 카르텔 덫에 걸린 문화재 수리

    [문화재 관리 현주소] (상) 카르텔 덫에 걸린 문화재 수리

    지난해 5월 문화재청이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해 대대적인 숭례문 복구 준공식을 열었다. 옥색 저고리 차림의 박 대통령은 “감격의 순간을 국민과 함께 맞게 돼 기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불과 5개월이 흐른 지난해 10월 숭례문의 ‘옷’이나 다름없는 단청이 떨어져 나갔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이어 기와, 누각 기둥 등 곳곳이 앓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국민 여론은 활활 타올랐다. ‘원전 비리’에 빗댄 박 대통령의 일성과 함께 감사원과 경찰의 내사가 이어졌다. 지난 달 26일 발표된 경찰의 종합 수사 결과는 우리의 문화재 관리, 운영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단면이었다. 사회적 명망이 높았던 도편수 신응수(71) 대목장은 숭례문 복원 공사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문화재청으로부터 공급받은 금강송과 국민 기증목 상당수를 빼돌린 혐의가 드러났다. 또 신 대목장을 비롯해 다수 문화재 시공업체들이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을 대여받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고 대형 시공업체 대표가 수리 과정에서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입건됐다. 문화재청 직원 등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혐의는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업계 일각에선 문화재 수리·보수업계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일부가 공개됐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면허 대여’나 ‘떡값’은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며 수리업계 전반의 입찰 담합, 보조 사업 과정에서 국가예산이 전용되는 행태 등 훨씬 더 심각한 비리가 여전히 덮여 있다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문화재 수리·보수업계에선 ‘입찰 담합’이나 ‘자본적 보조 사업’ 과정의 예산 전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업체들은 오히려 “8000만~1억원의 소규모 공사를 주로 수주하는 대다수 수리·보수업체들은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형편”이라며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불만을 토로한다. ‘자본적 보조 사업’이란 사찰, 고택 등의 문화재 보유자가 주변 공사를 위해 20%의 예산을 갖추고 정부 보조를 신청하면 80%의 예산을 지원받는 방식의 사업을 뜻한다. 문화재청과 시·도 지자체가 발주하는 관련 공사 대다수가 조달청의 전자입찰을 통해 이뤄지는 마당에 어떻게 담합이 가능하냐는 항변도 만만찮다. 현재 조달청의 공개입찰은 업체의 시공 경험, 재무 상태(각각 10~15점), 공사 가격(70~80점) 등의 배점에 따라 이뤄진다. 배점이 큰 가격을 정하는 데는 난수표까지 동원된다. 하지만 앞선 감사원의 ‘4대강 살리기 사업’ 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건설업계의 수법은 문화재 수리·보수업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게 업계 일부 종사자들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업체들의 ‘입찰 담합’과 ‘자본적 보조 사업’ 수주야말로 완전한 사각지대”라고 꼬집는다. ‘입찰 담합’은 수리·보수업체가 다수의 자회사를 들러리로 내세워 특정 공사의 공개 입찰에 나서거나 입찰 전 지역·업체별로 미리 잠정적으로 공사를 배분한 뒤 입찰에 나서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자회사는 부인, 자녀 명의로 된 별도의 회사이거나 아예 표면적으로 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비공개 회사인 경우가 많다. A업체가 B지역의 C문화재 수리·보수 공사에 참여할 경우 공개된 자회사와 비공개 관계사 등 5~10곳을 한꺼번에 동원해 인위적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아울러 주로 지역에 기반을 둔 문화재 수리·보수업체들은 기술자, 기능인들의 촘촘한 인맥으로 엮이곤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쪽 업계만큼 ‘카르텔’이 두껍게 형성된 곳은 드물다”고 귀띔한다. 카르텔을 섣불리 깼다가는 지역 업계에서 입지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나무 바꿔치기’ 혐의로 물의를 빚은 신응수 대목장도 자신이 운영하는 강원 강릉시 W목재 옆에 아들이 운영하는 S목재 회사를 따로 두고 있다. W목재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사용된 목재를 전부 공급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던 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W목재와 S목재는 문화재 보수입찰(목재 분야)에서 자주 경합했던 곳들”이라며 “사무실을 함께 쓰고 창고만 따로 운영해 사실상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한 업체가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올해 국비가 투입된 전국의 문화재 보수정비사업은 총 1081건에 2338억원(2월 기준)에 이른다. 이 중 국비 3억원 이상을 들인 사업은 175건, 1651억원 규모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국비가 투입되지 않은 (중소규모) 사찰, 고택의 수리·보수까지 합하면 연간 문화재 수리·보수 시장의 규모는 5000억원까지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문화재 수리는 3곳의 대형 업체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광화문 복원 사업의 시공 업체로 대표이사가 이번 경찰 조사에서 특경법(횡령), 뇌물공여, 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된 J사와 지역 시·군 구획정리 사업에서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진 숭례문 시공 업체 M사, 역시 오랜 기간 문화재 보수 사업을 해 온 W사 등이다. 이 가운데 경찰에 입건된 J사의 K(76) 대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 지역 공연 사업에 종사한 것으로 알려진 K 대표는 이후 낙안읍성 민속마을 등 전남 지역 문화재 건축 사업을 통해 자리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장에서 직접 먹고 자며 회사를 키울 만큼 열성을 보였고 오랜 세월 문화재 수리업계에 몸담으며 자연스럽게 문화재청 공무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는 이번 경찰 조사에서 법인자금 횡령, 뇌물공여, 수리기술자 자격증 대여 등의 혐의로 입건됐다. ‘자본적 보조 사업’도 업계에서는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서류상으로만 20%의 자본을 갖춘 뒤 정부 보조금을 받아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는 관행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히 떠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수리·보수업체 상무나 이사가 브로커로 참여해 실질적인 사업을 주도하고 문화재 보유자에게는 리베이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결국 실제 사업예산은 정부 보조금 80%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리베이트 등으로 10~15%가 지출돼 부실 공사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채동욱 불법 사찰’ 수사는 미적…‘채군계좌 삼성 돈’ 수사는 가속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채 전 총장을 둘러싼 개인 비리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채 전 총장의 ‘뒷조사’를 했다는 것에 대한 수사와 별개로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12)군의 어머니 임모(55)씨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25일 검찰에 따르면 채 전 총장 관련 개인 정보 유출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조기룡)에서, 임씨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 등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서봉규)에서 수사하고 있다. 형사6부는 이날 삼성 측이 지난달 “전 계열사 임원인 이모(56)씨가 회사 돈 17억원을 횡령했고 이 가운데 2억원이 채군 계좌를 통해 임씨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채 전 총장의 고교 동창으로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일하다가 2011년 퇴직했다. 두 사람은 채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의혹을 수사하던 2003년을 전후해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형사3부는 혼외자로 지목된 채군의 개인 정보 유출에 청와대 총무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 외에 교육문화수석실과 고용복지수석실까지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지만 지금까지 청와대 관계자 중 단 한 명도 소환 조사를 받지 않았다. 청와대의 4개 비서관실이 각각 관련 기관을 통해 채 전 총장에 대한 뒷조사에 나선 시기는 혼외자 의혹 첫 보도 시점보다 두 달 이상 앞선 2013년 6월에 집중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신륵사 앞 남한강 인도교 건설 싸고 여주시- 문화재청 ‘충돌’

    경기 여주시가 신륵사 관광지 인도교 건설을 놓고 문화재청과 갈등을 빚고 있다. 24일 시에 따르면 시는 남한강을 사이에 둔 북내면 천송리 신륵사와 연양동 금은모래유원지를 잇는 길이 420m, 폭 3m 규모의 관광형 인도교 건설을 추진 중이다. 남한강 대표 랜드마크로 만들어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끈다는 취지다. 시는 96억원을 들여 2016년까지 사업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지난해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8월 이후 세 차례 열린 문화재심의위원회에서 부결 또는 보류 판정을 내렸다. 조사당(보물 180호), 다층석탑(보물 225호), 보제존자석종(보물 228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8개나 되는 신륵사 바로 앞에 인도교를 설치하면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다. 심의위원들은 위치를 200∼300m가량 위쪽 또는 아래쪽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양쪽을 곧바로 연결하지 못하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관을 저해하지 않도록 설계를 변경하고 사찰과 불교계의 협조를 얻어 지방선거 이후 심의를 다시 요청할 계획”이라며 재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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