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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EU, 이란 핵 결의안 합의

    미국과 프랑스·영국·독일 등 유럽연합(EU)의 주요 회원국들이 17일 이란의 핵 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합의했다. 결의안 초안의 주요내용은 핵 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이란에서 박탈하고,이란이 관련 조건들을 충족시키도록 간접적으로 시한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또 초안은 오는 11월 열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차기 이사회에서 “추가조치가 필요한지를 결정한다.”고 돼 있다.이에 정통한 외교관들은 ‘추가조치’는 이란이 결의안에서 정한 조건들을 거부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초안은 프랑스와 영국·독일이 마련했으며 미국과 호주,캐나다가 동의했다.미국과 유럽 주요 3국이 초안에 합의함에 따라 이란에 대한 결의안이 35개 이사국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미국은 이란이 거부하면 제재를 가할 수 있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내용이 명문화되기를 원했다.그러나 EU 회원국들이 반발하자 미국은 호주의 중재로 ‘안보리 회부’의 표현을 빼는 선에서 타협했다. 앞서 미국의 ABC방송은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연구원의 말을 인용,“테헤란 남동쪽의 ‘파르친’ 군사단지에서 이란이 핵 개발을 진행중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올브라이트 연구원은 파르친 군사단지가 핵무기 연구와 실험,생산기지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위성사진이 촬양됐다며 이를 공개했다. 국무부 관계자도 이곳 일부에서 핵 실험과 관련됐을지 모르는 특정 활동에 의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다른 관리는 “테헤란 근처에서 핵 개발이 진행중이라는 증거가 없지만 관심을 갖고 계속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IAEA의 결의안 채택에 영향을 주려는 ‘새로운 거짓말’에 불과하며 농축활동은 핵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평화적인 목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도 이란이 극비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재래식 군사단지로 알려진 ‘파르친’에서 IAEA가 핵 사찰을 벌인 적은 없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7일부터 ‘한국 전통매듭’ 특별전

    무형문화유산인 전통 매듭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한국 전통 매듭·균형과 질서의 미학’ 특별전이 7일부터 10월1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박물관 등에서 소장해온 전통 유물,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 김희진(70)선생이 모은 유물과 창작품 등 200여점을 선보인다.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왕(英王·이은 1897∼1970)과 그의 비 이방자(李方子·1901∼1989)여사가 갖고 있던 매듭,영·정조 시대의 국새 장식용 매듭,국악기·노리개·주머니,조선시대 남성용 장신구를 장식했던 매듭이 포함돼 있다.특히 사찰에서 쓰는 가마의 장식물인 ‘연 수식’(길이 250㎝·보문사)과 왕가의 상여 네모퉁이에 달던 ‘대봉유소’(길이 235㎝·국립민속박물관)는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다. 다음달 2∼8일 열리는 ‘2004 서울세계박물관대회’의 주제인 ‘박물관과 무형문화유산’에 맞춰 기획됐다.조선시대 궁중문화의 품격과 삶의 모습,그 맥을 이어 나갈 미래상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번 전시를 위해 유물과 창작품 등 430점을 기증한 김희진 선생은 ‘한국의 전통 매듭의 이해’라는 주제로 15일 오후 2∼4시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특별강연한다.(02)2077-9484.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우리 동네 이야기] 평창동

    [우리 동네 이야기] 평창동

    강북에서 성북·한남동을 전통적인 ‘부촌(富村)’으로 꼽는다면 종로구 평창동은 ‘권좌(權座)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박준규 전 국회의장을 비롯 정몽준,김기춘 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 20여명이 여기에 살고 있다.하지만 재벌은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포함해 일부 오너 가족이 거주할 뿐 많지 않다. 정계 인사들이 평창동을 선호하는 것은 청와대와 물리적으로 가까우며 내부순환도로와 서강대교를 타면 국회까지 쉽게 진입할 수 있어서다. 평창동이 권력을 가장 크게 발휘했을 때는 YS시절이다.문민정부의 실세였던 최형우,서석재 전 의원과 이원종 충북지사 등이 평창동에 터를 잡았다.YS의 차남 김현철씨도 반포에서 평창동으로 옮겨왔다.하지만 평창동 출신들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최 전 장관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서 전 의원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소통령’ 김현철씨도 한보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했으며 대선에 나섰던 정몽준 의원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평창동이 이제는 문화권력을 넘보고 있다.1970년대 말 토탈미술관을 필두로 1998년에는 가나아트센터가 들어오면서 점차 예술촌(藝術村)으로 바뀌고 있다.사자골길 삼거리에는 가나아트센터를 따라 갤러리세줄,그로리치화랑,김종영미술관 등 미술관과 화랑이 대거 옮겨왔다.임옥상,전병현 등 현직 작가들의 작업실인 가나아뜰리에와 ‘에꼴 드 가나(Ecole de Gana)’라는 전업작가를 위한 교육기관까지 생겼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2001년에는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와 부인 강인숙씨가 영인문학관을 열었다.여기에는 소설가 이상을 비롯해서 채만식,이광수,박두진,황순원,박종화,김억 등 현대문학을 이끌어온 거두들의 육필 원고와 만년필,안경,주민증 등 애장품이 전시돼 있다. 평창동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대동미를 관장하던 선혜청(宣惠廳)의 평창(平倉)이 있었던 자리에서 유래한다.1914년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평창리에 속했다가 1949년 서대문구,1975년에는 종로구 관할로 변했다.행정동의 평창동은 법정동 구기동까지 포괄한다.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인접해 개발제한구역과 고적이 많다.승가사와 문수암 등 오래된 사찰이 있으며 비봉에는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유지,구기동과 홍은·불광동의 경계를 짓는 비봉에서 홍지문까지 이어진 탕춘대성도 있다. 면적은 8.92㎢로 종로구에서 가장 넓으며 인구는 6800여가구 2만여명이다.이 가운데 약 10%인 700가구가 전망이 좋은 산자락에 위치한 고급주택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데스크 시각] 강화도와 행담도/서동철 사회부 차장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건너다 보면 행담도와 만나게 된다.몇년 전까지만 해도 50여명의 주민이 바지락을 잡아 살아가던 작은 섬이다.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에 속하는 행담도는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아산만을 건너뛰는 징검다리가 됐다.이 섬이 없었더라면 길이 7310m의 서해대교를 세우는 작업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아산만이 바라다보이는 바닷가에는 휴게소가 지어졌다.아마도 가장 호쾌한 풍광을 가진 고속도로 휴게소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휴게소는 여름휴가 기간동안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볐지만,이 섬이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868년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몰고온 1000t급 차이나호는 바로 이 행담도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소총으로 무장한 일행은 작은 배로 갈아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로 상륙했다.이후 덕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시신을 파내려 무덤을 파헤쳤으나,실패하고 황망히 도주했다는 얘기는 국사시간에 배운 바와 같다. 오페르트 사건을 떠올린 것은 프랑스인 페롱 신부가 여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병인박해(1866년) 당시 동료 프랑스 신부들이 순교하는 과정에서 간신히 중국으로 탈출한 페롱 신부는 그만큼 조선 전교(傳敎)의 뜻이 남달랐을 것이다.일행이 시신을 ‘인질’로 대원군과 통상 및 선교를 흥정하고자 한 것도 조선인들이 조상을 극진히 모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선 전교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찾겠다는 뜻은 평가받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남연군의 묘를 파헤친 사건은 결과적으로 천주교 탄압만 심화시켰다. 강화도는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또 다른 교훈을 주는 섬이다.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언덕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지금 사제관의 한옥 지붕을 다시 이느라 분주하다. 강화성당은 영국인 트롤로프 신부가 구상하여 1900년 완성시켰다.정문에 해당하는 외삼문에 들어서면 성당인지,절인지 잠시 혼란을 겪게 된다.절을 호위하는 사천왕문의 모습을 한 내삼문이 방문객의 앞을 가로막기 때문이다.내삼문에는 절에서 봤음직한 큼직한 한국식 종도 하나 매달려 있다. 2층 한옥으로 지어진 본당도 서양의 전통적 성당건축인 바실리카 양식을 한국식으로 변형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절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다만 ‘대웅전’이 아니라 ‘천주성전’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기둥글(柱聯)에도 ‘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같은 천주교 성구가 씌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강화성당에서는 오페르트 일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혀진다.조선인 대부분이 익숙했을 불교사찰의 분위기는 기독교라는 새로운 서양 문화에 대한 이질감을 크게 줄여주었을 것이다.‘현지인’에 대한 배려가 선교 효율의 극대화를 노린 성공회의 노하우라고 해도 가치는 퇴색하지 않는다.나의 신념을 설득하기에 앞서 상대의 신념을 먼저 끌어안는 것은 종교의 범주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23일부터 서울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실행위원회가 열리고 있다.케냐 출신의 사무엘 코비아 WCC총무는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과거 서구의 일부 부국(富國)이 저지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중동이든,아프리카든 한국 기독교의 해외 선교가 오페르트와 페롱 방식이 아니라 강화성당을 지은 트롤로프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충고일 것이다. 서동철 사회부 차장 dcsuh@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3)물마루의 세계, 바다미륵의 세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3)물마루의 세계, 바다미륵의 세계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후끈 습한 열기가 숨을 막는다.무더위 속에 박제된 듯한 육지와 달리 선들거리는 해풍이 불긴 불었으나 여름이 제주도라고 피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덥다.그러나 제주의 신화 속에 발을 담그면 어느새 더위를 잊게 된다.우선 구전되는 신화에 귀를 열자. 오래 전,북제주 김녕에서의 일이다.이곳에 사는 어부 윤동지가 고기를 낚으려고 물 깊이 천근수를 내렸더니 커다란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이상하다싶어 돌을 내던지고 다시 그물을 내렸지만 똑같이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장소를 바꿔서 그물을 내려도 마찬가지였다.사흘째도 돌이 올라오더니 드디어 그날 밤 꿈에 현몽하였다.“나를 곱게 모셔주면 자식 귀한 사람들이 자식을 얻도록 해주겠다.” 윤동지는 ‘조상이 내게 오셨구나.’싶어 그 돌을 가져다 미륵으로 모셨다.그러나 애기가 울어대고,강아지가 짖어대는 바람에 미륵을 편히 모실 수가 없게 되자 지금의 미륵당으로 옮겨 따로 모셨다고 한다.말하자면 ‘바다에서 온 미륵’인 셈이다. 이렇듯 ‘바다 미륵’에 관한 전설은 북제주군 곳곳에 남아있다.김녕의 미륵당은 서문 하르방당,윤동지 하르방,미륵보살 하르방으로도 불린다.옛날 김녕에 동·서문이 따로 있었는데,서문 밖으로 미륵당을 옮기면서 서문하르방당이 되었다.윤씨하르방이란 윤씨가 바다에서 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 ●북제주군 곳곳에 하르방 남아 있어 김녕미륵은 일주도로변 아름다운 해변에 좌정하고 있다.바닷가로 흘러내린 용암과 백색의 모래사장이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파란 바닷물과 조화를 이룬 곳.바람막이 돌담을 거느린 미륵이 바다를 향해 정좌해 있고,작은 나무 두어 그루가 해풍을 막아서 있다.제주도에는 널린 용암 자연석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를 굳게 미륵이라고 믿고 신봉한다.이 서문하르방은 기자와 미륵신앙이 하나로 결부된 산육신(産育神)인 셈이다. 북제주 삼양에도 비슷한 전설이 남아 있다.김첨지라는 이가 어느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화들짝 잠을 깼다.미륵먹돌이 선몽한 꿈을 꾼 것.이상하다고 여긴 그는 서둘러 꿈에 보인 곳을 찾아가 낚싯줄을 던지니 먹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김첨지는 먹돌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 알가름의 팽나무 아래에다 미륵으로 모시고 서물날(음력 11일과 26일)마다 제를 올렸다. 그 후 첨지 집안은 우환이 사라지고 복이 넘쳤는데,이를 전해들은 동민들도 그를 따라 미륵먹돌을 모셨다.서물날 이 미륵돌을 건져 서물당이 되었으며,이 때문에 서물 물때에 맞춰 제례를 올렸다.지금도 나무가 우거진 돌담 안에는 제단이 놓여져 있고,미륵먹돌은 제단 밑에 묻혀 있다. 북제주 화북의 미륵 역시 바다에서 태어났으나 약간 다른 점이 있다.바다에서 건져 ‘나에게 태인 조상’이라고 믿고 조상신으로 모셨더니 동지벼슬도 얻고 부자가 된 것까지는 같다.그러나 마을 청년들이 소용없는 짓이라며 미륵을 당 밖에 내버리고 불을 지르려고 했다.그러자 돌미륵이 제 발로 걸어 나왔으며,이 와중에 미륵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났다.이 상처는 동민들에게 피부병으로 나타나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뛰늦게 이를 깨달은 동민들이 다시 미륵을 정중하게 모시자 피부병이 씻은 듯 나았다고 전한다.피부병을 다스리는 미륵불인 셈이다. 필자는 10여년 전,작은 책 한권을 준비하면서 민중의 삶에 유전되는 미륵을 ‘마을미륵’으로,특히 제주도 마을미륵을 ‘바다미륵’으로 규정했었다.바다미륵의 출현은 확실히 ‘제주도적’이어서,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육지미륵의 원조는 역시 백제 무왕이 건설한 익산 미륵사.미륵사 미륵은 삼존불이 솟구치면서 현현하였다.이렇듯 육지의 미륵은 거개가 땅에서 솟구쳤다.미륵출현의 기이(奇異)는 대단히 비의(秘儀)적이라 꿈에 현몽하여 당신의 존재를 알린다.그런데 제주 미륵은 땅이 아닌 바다에서 올라왔다. 알다시피 미륵은 ‘미래불’이다.석가모니 불타가 2500년 전에 중생을 제도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도솔천 용화수 아래에서 중생제도를 행할 삼회를 기다리는 ‘마스터 플랜’이 그것이다.불교가 개창된 이래 미륵신앙은 하나의 운동,즉 미래불을 향한 기다림이었다.그 미륵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래불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이 땅의 민중이 미륵신앙을 대하는 모습은 포괄적이었다.목잘린 불상,목만 남은 불상,내력도 모른 채 밭을 갈다가 얻은 불상,더 나아가 단순한 돌덩이일 뿐인 바위,그것을 민중은 미륵이라고 믿어 왔다.미륵불의 현신이 이처럼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제주도 미륵은 이 다양성에다 ‘바다’를 보탰다. 땅과 달리 바다에서 미륵이 출현하는 방식은 해양문화사나 불교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녀 가히 ‘물마루의 세계관’이라 이름할 만하다.물마루는 수평선을 뜻한다.수평과 수직의 세계관은 다르다.한국문화의 기본 신앙 격인 산신신앙의 산은 수직적이다.단군 할아버지가 신단수로 ‘내려온다.’고 했을 때,당수나무에 빌면서 ‘설설이 내리소서.’ 했을 때도 수직적 강신은 금방 확인된다.제주도에도 한라산에 오르면 이런 산신이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제주미륵 신화 그러나 바닷가는 다르다.바다의 민중은 물마루를 보며 산다.물마루는 희망이자 절망이다.외지 물화를 가득 실은 배도 물마루에 오를 때는 돛대 끝자락부터 모습을 드러낸다.벌떼처럼 들이닥치는 왜구의 선단이 이 물마루에 돛대를 들이밀면 이곳 사람들은 서둘러 산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느낀 점이지만,바다 위에 뜬 섬은 물마루에 홀연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 이내 망망대해로 변하곤 한다.거기에 섬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이처럼 제주도의 바다미륵에는 평생동안 물마루를 지켜보면서 일상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섬 사람들의 수평적 세계관이 층층이 잠복해 있다.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재미있는 점은 제주도의 바다미륵이 모두 북제주 쪽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생각컨대,이는 육지로부터 전래된 불교가 북쪽에 먼저 선을 보인 결과이리라.바닷가에 흔한 해수관음 신앙보다 바다미륵을 받아들임으로써 독자적인 민중적 신앙체계를 구축한 제주사람들의 면모가 새삼 돋보인다.당래하생(當來下生)을 서원했던 제주사람들의 꿈이 바다미륵으로 구현된 셈이다. 살펴 보면,제주 불교는 민간적 토속신앙과 결탁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절 가듯 당(堂)에 가고,당 가듯 절에 가는’ 식이었으니 가히 비승비속(非僧非俗)이요,무불융합(巫佛融合)의 전형인 것이다.수많은 불교신앙 중 미륵만이 유일무이하게 신당(神堂)과 결부돼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물마루의 수평적 질서는 우리나라만의 내림이 아니다.음력 7월14일,올해로 따져 8월29일 일본 오키나와의 하테루마지마(波照間島) 주민들도 어김없이 미륵제를 지낼 것이다.이들은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며 미륵보살을 앞세워 축제를 벌인다.미륵신앙이 멀리 바다를 건너 머나먼 섬까지 파급된 것이다.일본 본토의 이토(伊豆)반도 같은 해안가에도 미륵신앙이 전래돼 풍요와 다산의 주술을 담당한다.오키나와의 수많은 불교신앙 중 미륵이 차지하는 위상은 단연 돋보인다.그 미륵은 엄숙하게 사찰에 모셔지지 않고 마을민의 축제에 불려다니고 있는 중이다.이런 마당에 해상교류 강국이었던 옛 유구국 사람들의 물마루적 세계관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일본 오끼나와까지 파급된 제주 미륵신앙 이런 바다미륵을 말하자면 제주읍성의 동·서문 밖에 1기씩 남아 있는 미륵을 빼놓을 수 없다.바로 지금의 제주시 동편 건입동과 용담동 한두기(大甕浦口)가 그곳이다.마을에서는 이 미륵을 일러 미륵돌미륵,미륵부처,혹은 서자복미륵,동자복미륵 등으로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륜사(海輪寺)를 일명 서자복사,만수사(萬壽寺)를 일명 동자복사라고 부르고 있는데,여기에서 미륵명칭이 유래됐음직하다.지금은 민가에 둘러싸여 있지만 제주시 한두기포구와 제주항이 굽어보이는 건입동 쪽에 위치해 지금까지 거친 제주 바다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망망대해를 오가면서 배를 기다리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물마루에 모인다.물마루에 배가 떠올라야 그 지루한 기다림이 끝나기 때문이다.누구나 미술시간에 수직과 수평의 구도를 배웠으리라.바다에서는 물마루의 수평선 하나가 다른 모든 구도를 압도한다.그 수평은 평온한 것 같지만,태풍이라도 거느리면 노도로,해일로 거칠 게 없는 ‘파문’을 일구기도 한다. 이런 ‘물마루의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바다를 이해하는 첩경이다.세계의 수많은 모험가와 항해자들이 목을 매면서 지켜보았을 그 물마루를 바라보면서 제주민중은 바다미륵을 건지고 있었던 셈이다.
  • 여름방학 숙제 마무리 여기가 ‘딱’

    여름방학 숙제 마무리 여기가 ‘딱’

    8월 중순,한여름 더위 막바지.피서도 끝나가고 아이들의 개학도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이제 서서히 개학 준비를 해야할 때다.방학과제물이 특히 걱정이다.학원이다 피서다 해서 방학을 보내다 보니 밀린 과제를 하기가 만만치 않다.더욱이 체험학습형 과제가 많은 초등·중학생들은 마음만 바쁘기 십상이다.그러나 서울과 경기 지역에는 한나절이나 하루만 시간을 내면 쉽게 둘러볼 수 있는 유익한 곳이 적지 않다.재미있게 방학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울·경기 지역의 흥미 만점 이색박물관을 소개한다. ●한국전통의 멋과 얼을 찾아서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세중옛돌박물관(www.stsmuseum.com)에서는 전통 신앙과 불교와 연관된 1만여점의 석물을 감상할 수 있다.왕릉과 사대부집 묘 앞 문인석에서부터 왕릉을 보호하던 석수,망부석,동자석,효자석,돌솥,맷돌 등 선인들의 돌 유물까지 망라돼 있다. 용인의 등잔박물관(www.deungjan.or.kr)은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조상들이 썼던 등잔을 한데 모아놓은 곳이다.나무·유기·철제·도자·토기 등잔과 청동·은입사 무쇠촛대 등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과천에 있는 마사박물관(www.kra.co.kr/Kra/html/kra_intro_new13.html)에는 흙으로 만든 말과 안장,띠고리,마패 등 말과 관련된 13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 곳이다.주변에는 경마장과 국립현대미술관도 있어 주말 나들이에 권할 만 하다.여주에 있는 목아박물관은 불상과 불화 등 불교 관계 유물과 목공예 작품 6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민속생활사를 체험하고 싶다면 파주의 두루뫼박물관(www.durumea.org)을 추천할 만 하다.원삼국·삼국·고려·조선시대의 각종 민속 생활용품 1500점이 전시돼 있다.특히 토담과 사립문,터주가리,업양가리,서낭당,솟대,원두막 등 민속문화재를 복원,전시해놓은 것이 볼 만하다. 서울을 벗어나지 않겠다면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www.zipul.co.kr)을 찾아가보자.짚풀 관련 민속자료 3500여점을 비롯해 연장,조선시대 못,한옥문 등을 한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다.매주 한두 차례 볏짚과 수수깡 등으로 망태기와 복조리 등 생활용구를 만들어보는 프로그램도 열린다. 쌍문동에 있는 옹기민속박물관(www.onggimuseum.org)은 우리나라 전통 옹기만을 모아놓은 곳이다.곡식과 장류,김치 등을 보관하던 옹기에서부터 요강과 거름통까지 볼 수 있다.1층 천장에 그려져 있는 800여종의 사찰·궁궐의 전통 단청문양도 볼거리다. ●하루에 끝내는 외국문화 체험 전 세계 지구촌 민속을 한자리에서 보고 싶다면 남산 서울타워에 있는 지구촌민속박물관(www.jiguchonmuseum.org)을 추천한다.각 대륙별로 마련된 전시관에 180여개국에서 수집한 민속유물이 전시돼 있다.세계의 인형만을 모아놓은 세계인형관과 역대 대통령과 유명 인사들이 쓰던 지팡이만을 보여주는 지팡이관,세계 민속 탈이 한자리에 모인 세계민속탈관 등도 볼 만하다. 일산에 있는 중남미문화원(www.latina.or.kr)은 중남미 지역에서 30여년 동안 외교관으로 재직했던 이복형 원장이 만든 박물관 겸 미술관이다.중남미 토기와 석기,가면,가톨릭 예술품에서 석상과 브론즈 등 중남미 문화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월∼토요일에는 예약을 하면 전통요리인 파에야를,주말에는 멕시코 전통음식인 타코를 즐길 수 있다. 종로구 소격동에 있는 티벳박물관(www.tibetmuseum.co.kr)도 볼거리가 쏠쏠하다.60여평으로 작은 규모지만 티베트인들의 불교미술과 일상 생활용품을 알차게 전시하고 있다. 종로구 화동에 있는 장신구박물관(www.wjmuseum.com)은 전 세계의 아기자기한 장신구 1000여점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호박 장신구를 비롯해 라틴 아메리카의 황금 장신구,유럽의 유리구슬 목걸이,중세와 근세 에티오피아에서 제작한 은십자가 등 각국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는 유물들이 많다.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셀라뮤즈자기전시관은 주택가 사이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근·현대 유럽도자기 전문 박물관이다.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프랑스,독일,덴마크의 명품 자기와 유리 예술품 500여점에 아시아 도자기도 함께 전시돼 있다.세계의 자기를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놀이·공부·숙제를 한곳에서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www.comicsmuseum.org)에서는 우리 만화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다.우리 만화사를 빛낸 작품이 연대기별,작가별,장르별로 전시돼 있는 자료관에서는 희귀만화와 만화의 제작과정을 배울 수 있다.전시관에서는 오는 11월30일까지 ‘길창덕 만화세계 50년 ’이 열리고 있다.체험관에는 만화의 한 장면에 들어가 볼 수 있는 ‘만화 장면 속으로’,만화를 그려보는 ‘체험교육실’,3D애니메이션 상영관 등이 마련돼 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로봇박물관(www.robotmuseum.co.kr)에서는 전 세계 로봇의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다.로봇의 태동 단계에서부터 지능형 로봇까지 로봇을 통한 문명발달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로봇 콘텐츠 3500여점이 전시돼 있다.40여개국의 초기 로봇과 스페이스 실물 오브제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볼거리로 가득 차 있다. 서울 신천동에 있는 삼성어린이박물관(www.samsungkids.org)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체험식 박물관이다.부모와 함께 직접 만지고 조작해보고 실험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아이들의 탐구와 표현 능력을 길러주는 과학·미술·방송국·사회·문화 등 11개 전시 및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학교에서 배우기 어려운 심화 내용에 대해 특별교육 프로그램이 연령대별로 준비돼 있다.여름방학을 맞아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예매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테마별로 골라보는 재미 특정 주제만을 다루고 있는 이색 박물관도 흥미롭다.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 건너편에 있는 부엉이박물관(www.owlmuseum.co.kr)은 부엉이를 주제로 한 미술품과 공예품,생활용품 200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24평으로 규모는 작지만 부엉이를 주제로 한 접시·화병·지폐·동전·토기·봉제·유리 등 풍부한 볼거리가 자랑이다.차와 음료를 무료 제공하며,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태평양박물관은 화장품과 차에 대한 유물이 전시된 곳이다.선사시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왕족과 사대부,평민들이 쓰던 화장용기를 살펴볼 수 있다.분합과 연지합,유병 등 화장용품 용기에서부터 대야,거울,손톱다듬기,빗,귀고리,귀이개,반짇고리,실패 등 침구류와 장신구,다구류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자수박물관은 우리나라 전통의 색과 문양의 자수와 보자기,의상 등 3000여점의 자수제품을 모아놓은 곳이다. 2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실과 바늘,옛 의복까지 한 눈에 둘러볼 수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한국은행 본점에 있는 한국화폐금융박물관(museum.bok.or.kr)은 우리나라 화폐의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한국은행의 설립 배경과 목적,한국은행의 업무에서 화폐가 만들어지고 순환하는 과정,위·변조 화폐 식별법,미래의 화폐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화폐와 역사정보와 관련된 자료도 전시돼 있다.오는 10월31일까지 ‘시대와 화폐전’도 열리고 있다.국가보호시설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면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 기슭에 있는 분재박물관(www.bonsaitv.com)에서는 분재를 보고,직접 가꾸는 법을 배울 수 있다.2300여평에 80종,1200여개의 분재가 전시돼 있다.분재의 역사를 민화와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자료실과 분재에 대한 강의와 실습이 이뤄지는 분재생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용인에 있는 삼성교통박물관(www.stm.or.kr)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전문 박물관이다.자동차 모형과 부품,액세서리 등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비롯해 경주용차,스포츠카,컨셉트카 등을 감상할 수 있다.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태엽 자동차와 초기 교통수단인 마차와 자전거 등 세계의 교통·운반수단도 전시돼 있다.용인 에버랜드와 호암미술관도 가까워 주말 나들이에는 제격이다. 식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용인에 있는 국내 최대의 사립식물원인 한택식물원(hantaek.co.kr)을 권한다.20만여평에 수생·희귀·약용·덩굴·음지식물관과 잔디화원,구근원,나리원,호주·남아프리카 온실이 갖춰져 있으며,자생식물 2500여종,외래식물 4500여종을 살펴볼 수 있다. 여주에 있는 한얼테마박물관(www.han-ul.or.kr)은 주제별로 다양한 유물을 모아놓은 곳이다.편지와 교지 등 고문서가 전시된 고문서유물관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과학기기를 비교할 수 있는 과학유물관,심청전 활자본과 춘향전 등 국보급 사료를 모아놓은 전적 유물관 등이 볼만하다. 김포에 있는 덕포진교육박물관은 엄마·아빠 세대의 학교를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60∼80년대 학교에서 쓰던 비품과 교과서,교재는 물론 사각 양은 도시락,갈탄 난로,풍금 등 지금은 사라진 옛 교실의 풍경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일제강점기의 교과서와 교복,통지표,책가방,칠판 대용으로 쓰던 석판 등도 전시돼 있다.인두와 다리미,새끼 꼬는 기계인 메기틀 등 전통 농기계와 옛 생활용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산 오르記] 장성 백암산

    [산 오르記] 장성 백암산

    백암산(741.2m)은 호남정맥의 원줄기를 이룬다.서쪽으로는 입암산,충녕산,유달산 등을 거쳐 신안군까지 뻗치고,동으로는 불태산,지리산,백운산 등으로 이어진다.전남 장성과 전북 정읍을 가르며,내장산의 일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산세나 경관은 내장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사시사철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며,고찰 백양사가 둥지를 튼 명산이다. 더위를 식혀줄 비가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산행에 나섰다.백양사 입구 주차장에 이르자 휴일을 즐기려는 연인과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빗방울이 제법 굵어지자 일부는 우산을 펼쳐들고 운무가 자욱한 진입로 숲 터널 속으로 사라진다.사찰까지 300m쯤 이어진 포장도로가 금세 어두워진다.햇볕 쨍쨍한 날에도 가느다란 빛줄기조차 투과하지 못하는 곳이다. 길 양쪽엔 수백년 됨직한 갈참나무와 느티나무,애기단풍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활엽 관목림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지칠 줄 모르는 매미 울음이 하모니를 이룬다. 모처럼 한가로움을 즐기며 발길을 재촉했다.백양사 바로 아래쪽 쌍계(2개의 연못)오른편에 ‘비자나무숲 모니터링 지역’이란 팻말이 보인다.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된 이곳 비자나무 군락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아름드리 나무엔 도토리만한 비자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비자는 예부터 기생충인 촌충을 구제하는 데 쓰였다.이곳 비자나무숲은 고려 고종때 각진국사가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백암산은 굴거리나무 숲(천연기념물 제91호),갈참나무,졸참나무,고로쇠나무,때죽나무,아기단풍 등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전국 숲 해설가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쌍계루(雙溪樓)를 지나 고불총림 백양사에 들어서자 전국의 불자와 등산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백양사는 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로서 각진국사를 비롯해 만암 대종사,서옹 종정 등 이름난 스님들이 거쳐간 절이다.백제 무왕때 승려 여환이 창건해 백암사라 이름 지었다.그 후 고려 덕종때 중연선사가 중창하며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했으나 조선조때 환양선사가 중창하며 다시 백양사로 바꿨다. 환양선사가 학바위 아래 영천암에서 제자들에게 아미타경을 설법할 때 백양(白羊) 한마리가 내려와 경청한 뒤 눈물을 흘리며 사라졌다고 하여 백양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천연림으로 이뤄진 등산로에 접어들자 빗줄기가 잦아든다.하늘을 쳐다 봤더니 보이질 않는다.관목수림이 비를 막아 우산 노릇을 했나보다. 직각에 가깝게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약사암이다.시간은 꽤 지났지만 고작 500m를 올라왔을 뿐이다.숨이 막히고 온몸이 땀에 젖는다.가파른 절벽아래 세워진 약사암이 위태로워 보인다. 약사암에서 한숨 돌리고 50여m쯤 올랐다.향내가 진동하는가 싶더니 목탁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절벽에 천연동굴이 아가리를 내밀고 있다.석굴암같은 동굴안엔 부처님 상이 본사를 굽어보고 서 있고,그 아래에서 한 스님이 독경에 열중이다.아래쪽엔 석간수가 흘러나와 약수터를 이루고 있다. 목제 계단과 자갈길을 따라 700m쯤 올라가니 백학봉이 나타난다.학바위라고도 하며 이 산의 이름이 이 흰색 바위에서 유래됐다.북동쪽으론 내장산이,서남쪽으론 입암산이 안개속에 희미한 자태를 드러낸다.등산로의 난코스는 여기서 끝난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백양사∼영천굴∼약사암∼백학봉∼상왕봉∼운문암∼약수동계곡∼백양사이다.총 10㎞ 남짓한 거리로 5시간 정도면 종주가 가능하다.백학봉∼상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등산로는 평이한 편이다. 주변엔 떡갈나무,비자나무,조릿대밭이 널려 있다.최정상인 상왕봉 조금 아래쪽의 운문암엔 지난해 입적한 서옹 방장스님이 오랫동안 머물며 수행했던 곳.아무리 안개낀 날씨에도 문만 열면 산 아래 전경이 훤히 드러난다고 해 운문암(雲門庵)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약수동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빗줄기가 거세지고,한치앞을 분간하기 힘들다.그래도 빗속의 등산은 더위를 식혀주어 또다른 맛이 난다. ●볼거리·먹을거리 백양사 인근 남창계곡과 몽계폭포가 여름 휴양지로는 그만이다.장성호와 영화촌 금곡마을,홍길동 생가터 등도 둘러 볼 수 있다.장성군청 문화관광과(061-390-7224).장성호 주변의 청암가든(061-393-8823)은 메기탕(1인분 6000원)가물치회 (1㎏ 2만5000원) 등을 즐길 수 있다.백양사 집단시설지구엔 산채정식과 도토리묵 집이 즐비하다.주변경관과 풍치가 빼어난 백양관광호텔(061-392-0651),가인마을 민박촌(061-392-7683).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1번 국도로 진입한 뒤 8㎞쯤 가다가 738번 지방도로를 타고 3㎞쯤 가면 백양사 입구에 이른다.광주에서는 버스종합터미널에서 하루 20여 차례 운행되며 50분쯤 소요된다.내장사 쪽에서는 추령 고개를 넘어 복흥3거리에서 백양사로 이어지는 국도를 타면 된다.단풍철만 제외하면 사찰 입구의 주차공간은 넉넉하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종교단신]

    ●한명국목사 BWA 차기 부회장에 한명국 서울침례교회 목사가 최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세계 45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세계침례교연맹(BWA) 상임위원회 국제회의에서 차기 부회장으로 지명됐다.BWA의 부회장은 모두 16명으로,임기는 5년이다.한 목사는 내년 3월 실행위원회의 최종 결의를 거쳐 7월 영국 버밍햄 세계침례교대회에서 정식 취임한다. ●생명살림불사 추진委 7일 발족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생명살림불사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오는 7일 오후 1시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열린다.추진위원회는 공양미를 친환경농산물로 올리자는 운동과 생명살림불사 교육원 마련을 위한 기금 조성사업 등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다.(02)733-1884. ●해외입양인 위한 문학의 밤 대한불교 천태종 사회복지재단은 미국·덴마크 등 15개국 430여명의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문학의 밤’행사를 5일 오후 6시 서울 관문사 옥불보전에서 연다.행사는 환영행사 및 만찬,승무와 태껸 공연,민속예술단 초청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이들 입양인은 4∼8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세계한인입양인대회 참석차 방한했다. ●제2회 귀순동포 영성수련회 한국기독교 귀순동포 정착지원 협의회는 오는 16∼18일 경기도 남양주 천보산 민족기도원에서 최근 집단 입국한 탈북동포 450명을 대상으로 제2회 귀순동포 영성수련회를 연다.수련회에서는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유관지 수지 목양교회 목사 등이 강연을 한다. ●장애아동 템플스테이 열어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별바라기와 공동으로 5∼7일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장애아동 템플스테이를 연다.교사,자원봉사자 등 18명의 도움을 받아 행사에 참가하는 장애아동 13명은 명성황후 생가 방문,사찰 예절,도자기 제작 체험,참선요가 등을 체험한다.
  • [기고] 이제 불교가 세상 속으로 간다/현고 스님/조계종 전통문화사업단장

    먹고 사는 방법은 세월 따라 바뀌고 먹고 사는 일이 생존의 결정적 요인이라서 그런지 방법이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옛날에는 땅에 씨를 뿌리는 수고로움도 없이 대지와 태양이 빚는 결실을 잡아먹고 살았다. 그 후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는 수고를 더해야 하는 농사를 지어 살았다.인구가 늘자 자연자원에 태양 대신 인간의 기술을 더하여 공산품을 만듦으로써 높은 소득을 얻었다. 이런 굴뚝산업으로도 욕망의 배를 다 채우지 못한 사람들은 기술집적도가 높은 고도화된 산업활동과 굴뚝 없는 산업,즉 지식정보화 산업을 통해 보다 높은 소득창출을 했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좋은 머리와 근면성으로 세계에서 20여위를 오르내릴 정도의 나라가 됐다. 그런데 고민은 지금부터다.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기고 3만∼4만달러의 고소득 고지를 확보하려면,어떤 경제활동이 있어야 할까?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IT산업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배를 채워 줄 수 있을까? 이구동성으로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한다.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은 타문화권이 구사할 수 없는 차별성과 창의성이 결정적인 경쟁력이다.차별성과 창의성의 원천은 우리들만의 문화 정체성이 그 바탕이다.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가발전과 근대화를 서구화도 아닌 미국화와 경제개발 일변도로 추진하면서 문화적 가치를 도외시했고,자기 문화에 대한 멸시와 무차별 파괴,무분별한 외래문화 유입으로 지금은 거의 식민문화 상태에 있다. 그런 가운데 조계종과 그 소속사찰은 민족문화의 전통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조계종이 계승해온 불교는 1700여년의 역사속에 민족의 피와 살이 되고 정신이 되어 이룩된 민족문화다.그래서 불교문화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제 세상은 이런 조계종이 지닌 전통문화유산을 단순히 지키고 간직해 관람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국민적 부를 창출하는 문화산업 자원으로서의 활용과 가치창출을 요구한다. 이런 시대적 소명을 자각한 조계종은 2003년부터 온라인상에 수백개 사찰을 건립하는 ‘전통사찰 정보화사업’을 시작하였고,‘사찰체험(temple stay)’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국 거점사찰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중이다.그리고 지금부터는 우리가 지닌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재해석,재창조하여 상품적 가치가 있는 제품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모든 국민이 체험,구매하여 쓸 수 있도록 하는 전통문화산업 지원을 위한 센터건립과 개발을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 많은 국민들은 불교가 산중에만 머물지 말고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자고 애원해왔다.그러나 불교는 자기수행이 우선이라는 종래의 생각을 계속한 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했다.그러나 이제 책임있는 주체가 나서서 확실한 답을 주려는 것이다. 이번 조계종의 전통문화사업단 발족 의미는 불교가 민족전통문화로서 불교문화를 향수할 국민적 권리를 인정하고,주려는 데 있다. 전통문화체험,특히 불교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소득 창출의 수단이 되자는 것이다. 그러나 두렵다.경험과 지식이 짧아서 두렵고,상업주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이 두렵다. 그렇다고 스님들이 독점한 채 불공과 관광사찰만으로 한국불교 1000년의 미래사를 쓸 수 있다는 안일과 오만을 더이상 방관할 수는 없다. 시대적 상황속에 우리 불교가 취할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해온 현명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함께 발맞추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현고 스님
  • 국립극장 17~21일 ‘범패 페스티벌’

    속세에서 접하기 힘든 불교음악 범패(梵唄)와 불교무용 작법(作法)을 서울 도심 야외무대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마련된다.17∼2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범패 페스티벌’은 국립극장이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무대는 각 지방의 사찰에서 전승되고 있는 5편의 범패와 작법을 선보이는 자리로,우리 전통예술의 한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공연이다.범패는 불교의식인 ‘재(齋)’를 올릴 때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며 부르는 노래로,정가·판소리와 함께 3대 전통 성악으로 꼽힌다. 인도에서 발생해 9세기쯤 당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래 때문에 주로 산스크리트어나 한문으로 돼 있지만 전승 과정에서 우리말 가사와 곡조로 된 한국식 범패 ‘화청’‘축원’등도 불려졌다.민요 명창들이 불러 유명해진 ‘회심곡’이 한 예이다. 무대에 오를 범패와 작법은 서울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영산재’(17일),전라도의 ‘영산작법’(18일),영남의 ‘불모산 영산재’(19일),조계종 스님들이 펼치는 ‘범패와 작법’(20일),현대 언어로 만들어진 ‘현충재’(21일).범패는 난이도가 높아 범패를 제대로 전수받은 스님들만이 수행할 수 있다.현재 태고종 사찰인 서울 봉원사에 보존회가 결성돼 범패와 작법을 가장 잘 보존·전승하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 전라도식 범패와 경상도식 범패가 전승되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조계종 전통의식연구원,영산작법보존회,불모산 영산재보존회,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범패와 작법무보존회 등 주요 단체들과 동주 스님,이석정 스님,석봉스님,인묵 스님 등 예능 보유자들이 참여한다.영산재는 보통 사흘에 걸쳐 열리는 대규모 행사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각 범패의 주요 부분을 간추려 1시간30여분 길이로 축약해 선보일 예정. 예술감독을 맡은 최종민 국립극장예술진흥회장은 “불교를 빼놓고 한국문화를 모두 다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불상·불탑 감상 못지않게 불교음악과 불교무용을 직접 보고 듣는 것도 한국문화의 깊숙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국립극장은 이번 ‘범패 페스티벌’에 이어 내년에는 ‘굿 페스티벌’을 마련할 예정이다.1만 5000∼2만원.(02)2280-411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보물 400호 선암사 승선교 복원

    300년 가까이 된 전남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400호)가 12일 해체 복원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치(활) 모양의 승선교는 기초 자연암반 균열로 붕괴위험이 있어 2002년 11월 문화재청과 순천시가 4억 7000여만원을 들여 기초 암반을 화강석으로 보완하고 홍예석 147개 가운데 깨지거나 강도가 약한 32개를 새로 교체해 이달말 복원이 마무리된다. 둥그런 형태의 홍예석은 계곡물이 지나는 곳으로 길이 8.76m,최대 높이 6.34m,너비 3.62m다. 홍예석은 직육면체로 밑면이 좁고 윗면이 넓은 쐐기형으로 깎인 돌이다.한개 길이는 0.6∼1m인데 밑변의 폭과 높이가 30∼36㎝,60∼70㎝ 등으로 다양하다.복원에 쓰인 돌은 원래 재질과 흡사한 화강암으로 전북 익산의 함열면에서 가져왔다. 선암사 정문 앞 계곡을 가로지르는 승선교는 다리 양측 밑부분이 세월의 무게를 못이겨 차츰 내려 앉으면서 반원 형태가 뒤틀려 1년 8개월 만에 복원됐다. 승선교는 조선 숙종 39년(1713년) 이 사찰 스님인 호암화상이 6년 동안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선암사 종무소 관계자는 “선암사는 사찰의 터 기운이 세서 다른 절에 있는 사천왕상이 없고,승선교를 건너기만 해도 세속의 잡념과 묵은 때를 털어버린다는 속설이 있다.”고 말했다. 순천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해인사 확장공사 불교계 환경운동 ‘딜레마’

    삼보(三寶) 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대규모 불사건립 계획을 놓고 환경단체와 마찰을 빚고 있다.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찰들이 환경파괴적인 행위에 대해 비판과 보전운동을 펼쳐왔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불교환경연대를 비롯, 불교단체들까지도 환경운동단체들과 연계,일관된 목소리를 내왔다.하지만 불교환경연대 등이 해인사의 반환경적인 사찰건립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불교계 환경보전운동이 혼란에 빠졌다.한쪽에선 생태보존을 위해 단식투쟁을 벌이는 마당에,다른 쪽에서는 반환경적인 대형 불사건립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찰과 환경운동은 불가분의 관계? 그동안 불교계는 북한산국립공원 관통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금정산 관통구간 공사 반대 등 굵직한 국책사업에 대해 환경파괴를 우려하며 일관된 목소리를 내왔다. 새만금방조제사업을 반대하며 수경스님이 삼보일배운동을 주도하는 등 환경운동과 불교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비쳐져 왔다.지난달 30일 천성산 환경보존 대책위원장인 지율스님은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에 대한 공사중지를 요청하며 12일째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 중이다. 최근 강원도 평창 월정사(주지 정념스님)는 지역환경단체들과 공동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추진 중인 ‘오대산국립공원 월정사∼상원사간(7.8㎞) 도로포장사업’에 대해 환경보호 차원에서 공사 불가 입장을 통보했다.국립공원관리공단은 먼지 발생 등의 이유를 들어 이미 50억원 가량의 예산을 확보,포장공사를 벌일 방침이었다.이에 지역환경단체와 월정사측의 반대에 부딪혀 공사가 유보된 상태다. 월정사측이 도로포장을 반대하게 된 이유는 사찰측과 지역주민,환경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제4교구 오대산 환경위원회’에서 반대결정을 했기 때문이다.위원회는 지역 자연·문화·생태·수행환경보존을 위해 월정사∼상원사간 도로를 비포장 상태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결정했다.월정사∼상원사간 도로 포장재가 친환경적인 포장재가 아니라는 이유도 들었다.친환경적인 자연탐방로 없이 포장이 이뤄진다면 사람과 동물의 피해발생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불교환경연대 사이트(www.budaeco.org)에는 사찰주변 건물과 개발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환경분쟁 사안이 여러 건 올라 있다. ●대형불사 건립놓고 자중지란 이에 반해 경남 해인사는 국립공원 가야산내에 대형 불사건립 계획을 발표,불교환경연대를 비롯한 불교단체와 내부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 해인사측은 수행공간 확보를 위해 문화재보호지역에 신행·문화도량(제2사찰)과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의 처소로 쓰일 암자(내원암) 건립을 추진 중이다.2006년 완공을 목표로 옛 해인초등학교와 상가건물이 있는 터에 235억원을 들여 8600평 규모의 제2 해인사를 건립할 예정이다.해인사는 이곳에 팔만대장경을 보관할 법당과 일반인을 위한 수행공간과 숙소,대규모 지하주차장을 갖출 계획이다.바로 뒤편에는 건평 390평 규모로 내원암도 세운다는 복안이다. 이에 대해 불교환경연대측은 “해인사의 대형 불사건립은 물량주의에서 비롯된 환경과 전통적 가치의 파괴”라며 “법보(法寶) 종찰인 해인사가 대규모 신행도량을 건립해 환경훼손에 앞장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한불조계종 중앙신도회를 비롯, 전국교사불자연합회,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참여불교 재가연대 등 16개 불교관련 단체도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 인근에 내원암을 짓는 것은 해인사 스스로 문화재와 막대한 자연환경을 외면하는 처사나 다름없다.”며 대형 불사 계획을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해인사내 78명의 소장파 스님들도 “해인 골프장과 가야산 관통로 건설을 저지한 해인사가 대형 불사로 환경을 훼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환경보존 명분 훼손될까 우려 해인사 대형불사 건립과 관련,환경부는 약 1만평 규모의 신축부지가 국립공원과 문화재 보호지역이어서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해인사는 환경부에 자연보전지역 형태변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계속 심의가 미뤄지고 있다. 불교환경연대는 80년대부터 시작된 불사복원이 ‘우선 크게 짓고 보자.’는 식으로 대형화 추세여서 불사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특히 국립공원내 사찰들은 환경보전의 상징처럼 비쳐져 왔는데,자칫 물질적 가치추구의 오명을 갖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황호섭 생태보존국장은 “해인사는 가야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59호 국가지원 지방도로 개설사업을 앞장서 막아내는 등 환경보전 운동의 상징적인 사찰”이라면서 “이번 대형사찰 건립 등에 대한 논란으로 업적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해인사는 지난 2001년에도 높이 43m의 청동대불 건립을 추진하다 수경·도법스님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취소한 적이 있다.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불교계가 사찰복원 등 문화재 보호에 충실한 것은 이해되지만 생태환경을 도외시한 무분별한 복원계획은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해인사 대규모 佛事 재고를/김희욱 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원장

    해인사(海印寺).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대장경 판전과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는 법보종찰.여기에 불자들이 해인사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현대에만도 효봉,동산,자운,성철,영암,일타,혜암 스님과 같은 훌륭한 수행자들을 배출한 대표적 수행도량이기 때문이다. 해인사가 발표한 불사계획을 살펴보면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일반인과 불자들을 위한 산사출가체험관·도서관 등 신행문화도량이 들어선다고 하지만,사찰음식 전문식당,다원,극기훈련장,전시장 등의 시설을 지을 계획이라고 하니,관광단지로 개발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지하에 3000여평에 달하는 주차장을 짓겠다는 것도 대규모 관광객을 유입하겠다는 발상 같아 씁쓸하다.큰 걱정은 두 가지다. 첫째,대장경과 대장경을 모신 판전과 같이 해인사가 보유한 세계적 문화유산에 이번 불사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판전의 경우 바람과 습도 등 자연환경의 영향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00m 골짜기 아래 8000여평 이상의 대규모 시설이 들어섰을 경우 그 영향은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할 것이다.더구나 판전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암자를 신축하겠다는 계획은 어불성설이다. 둘째,해인사를 오늘의 해인사로 가능하게 해주었던 스님들의 수행환경이 혹시 침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해인사에는 지금도 신도회가 없다.여기에 어떤 불자도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해인사만큼은 스님들의 수행처로 유지돼야 한다는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인사 앞을 지나는 59호 국도를 확장하려고 했을 때에도,2㎞ 떨어진 곳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에도 스님들,재가불자들이 온 몸으로 막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그런데 불과 700m 떨어진 곳에,그것도 해인사 스스로가 대규모 관광문화단지를 조성한다고 하니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사가 마무리됐을 때의 상황을 가정해 보자.주말마다 수천명 이상이 해인사를 방문할 것이며,자동차 배기가스,오폐수 방류,소음공해 등으로 주변 생태환경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이로 인해 얼마 안가 판전의 대장경이 급속하게 부식돼 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인사 스님들의 수행환경이 크게 훼손당해 수행자들이 부득이하게 해인사를 떠나는 경우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최악의 가정이긴 하지만,수많은 개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걱정이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과거 역사에 안주해 해인사를 있는 그대로만 유지하자고 할 수는 없다.일반인들이 쉽게 묵어갈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필요하고,문화체험도 중요할 것이다.도심 인근에 그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야말로 필자나 불자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화문 도심 빌딩 사이에 초가집이 어울리지 않듯이 그런 시설이 있어야 할 곳과 없어야 할 곳이 있다. 많은 현대인들이 수행전통과 역사문화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해인사가 스스로 이 가치와 자부심을 훼손해서는 안될 것이다.해인사가 지금이라도 불사계획을 전면 보류하고,광범위한 여론수렴 절차 밟기를 희망한다.이런 번거로움이라면,백번을 허송해도 후회가 없을 만큼 중요한 곳이 바로 해인사이기 때문이다. 김희욱 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원장˝
  • 美태도 왜 유연해졌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이 3차 6자회담 첫날 밝힌 협상안에는 에너지 지원과 대북 안전보장 등 한국과 일본,중국이 수차례 요구한 내용들이 적지 않게 포함됐다. 특히 미국이 고수해 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CVID)’란 용어를 쓰지 않은 점은 이례적이다.“미국이 협상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동맹국과 미 민주당측의 불만과 비난을 일견 수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23일 “북한의 약속위반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폐기할 것을 다짐하는 것만으로 대북 지원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점은 미국이 기술적으로 한발짝 물러섰음을 시사한다.1,2차 회담이 열린 지난해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기 이전에 어떠한 보상책을 제공하는 것은 공갈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공언한 것과 대조적이다.물론 미 국방부의 반대에 부딪혀 국무부가 요구한 즉각적인 대북 안전보장이 ‘잠정적인 안전보장’으로 바뀌었지만 경제제재 해제와 대테러 지원국 명단에서의 제외가 협상안에 포함된 것은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리비아식 핵 폐기 방식’을 모델로 삼았으며 해결의 출발점을 북한의 핵 폐기 공약에서 찾았다.북한이 취할 단계별 조치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의 폐기를 다짐하고 ▲핵 시설의 무력화(북한이 밝힌 동결)와 제거에 이어 ▲장기적인 감시 프로그램 가동 등을 들었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지원의 구체적 일정표가 빠졌고 핵 시설 공개에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까지 포함시켜 북한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사찰 등 핵 폐기를 위한 준비기간을 3개월로 정한 것도 보다 긴 기간을 통해 원조를 바라는 북한측을 납득시키기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LA타임스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양측 모두 11월 미 대선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져 있다고 전했다.전문가의 말을 인용,이번에도 양측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며 보다 성의있는 협상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CVID 대신 핵 폐기를 위해 ‘영구적이며 철저하고 투명한 방식’의 부드러운 표현을 쓰는 것은 북한이 CVID를 문화적으로 ‘무례’라고 반발한 데 대한 미국식 응답이라고 전했다. mip@seoul.co.kr
  • 美태도 왜 유연해졌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이 3차 6자회담 첫날 밝힌 협상안에는 에너지 지원과 대북 안전보장 등 한국과 일본,중국이 수차례 요구한 내용들이 적지 않게 포함됐다. 특히 미국이 고수해 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CVID)’란 용어를 쓰지 않은 점은 이례적이다.“미국이 협상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동맹국과 미 민주당측의 불만과 비난을 일견 수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23일 “북한의 약속위반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폐기할 것을 다짐하는 것만으로 대북 지원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점은 미국이 기술적으로 한발짝 물러섰음을 시사한다.1,2차 회담이 열린 지난해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기 이전에 어떠한 보상책을 제공하는 것은 공갈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공언한 것과 대조적이다.물론 미 국방부의 반대에 부딪혀 국무부가 요구한 즉각적인 대북 안전보장이 ‘잠정적인 안전보장’으로 바뀌었지만 경제제재 해제와 대테러 지원국 명단에서의 제외가 협상안에 포함된 것은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리비아식 핵 폐기 방식’을 모델로 삼았으며 해결의 출발점을 북한의 핵 폐기 공약에서 찾았다.북한이 취할 단계별 조치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의 폐기를 다짐하고 ▲핵 시설의 무력화(북한이 밝힌 동결)와 제거에 이어 ▲장기적인 감시 프로그램 가동 등을 들었다. 그러나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지원의 구체적 일정표가 빠졌고 핵 시설 공개에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까지 포함시켜 북한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사찰 등 핵 폐기를 위한 준비기간을 3개월로 정한 것도 보다 긴 기간을 통해 원조를 바라는 북한측을 납득시키기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LA타임스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양측 모두 11월 미 대선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산만해져 있다고 전했다.전문가의 말을 인용,이번에도 양측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며 보다 성의있는 협상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CVID 대신 핵 폐기를 위해 ‘영구적이며 철저하고 투명한 방식’의 부드러운 표현을 쓰는 것은 북한이 CVID를 문화적으로 ‘무례’라고 반발한 데 대한 미국식 응답이라고 전했다. mip@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토막소식]

    종로 청소년 후원 결연식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법장스님)은 21일 대한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로구 관내 불우 청소년들과 후원결연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총무원은 종로구에 거주하는 소년소녀가장,편부모가정 학생 등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 20명에게 매월 10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한다.또 결연 학생 사찰 초대하기,생일카드 보내기,초파일 등달기 등의 행사도 마련된다.(02)731-0356. 한편 총무원은 종로구를 시작으로 ‘1사찰 1가정 결연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간선도로 옥외광고 규제강화 서울 관악구(구청장 김희철)는 다음달부터 남부순환도로 등 관내 4차로 이상 도로변의 옥외광고물 제한규정을 강화한다. 대상도로는 남부순환도로와 시흥대로,관악로,동작대로,봉천복개도로,신림로,은천로,쑥고개길,신대방길,난곡길 등이다.이들 도로 주변 업소의 간판 수는 현행 3개에서 2개(곡가지점 업소는 3개)로 제한되며,가로형 간판은 업소당 1개(곡가지점 업소는 2개 이내) 이내로 설치가능하다. 대신 돌출간판의 경우 지금까지 1층에는 설치할 수 없었지만,기준에 부합할 경우 이를 허용키로 했다.02-880-3873. 체납세 징수 기동반 운영 서울 중랑구(구청장 문병권)는 서울시가 운영중인 체납 세금 징수팀을 본뜬 ‘38 체납 기동반’을 신설,운영에 들어갔다. ‘38’은 납세 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38조에서 따온 것으로 기동반에는 세무경력 5년 이상의 공무원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5회 이상 체납자 5000여명과 1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 1700여명을 대상으로 ▲주민등록지 거주여부 확인 ▲재산 압류 ▲공매·인허가 취소 ▲자동차번호판 영치 ▲전국은행연합회 신용정보자료제공 등을 전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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