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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문턱… 山寺에서 나를 찾다

    겨울문턱… 山寺에서 나를 찾다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국어시간에 꾸벅거렸건, 땡땡이를 쳤건 어지간한 이라면 띄엄띄엄이나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한 구절 정도씩은 읊조릴 수 있죠. 국민시에 가깝습니다. 밑줄 그어가며 ‘속세의 번뇌, 종교적 승화’ 등을 적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것은 바로 가슴 한편에 뭔가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음직한 느낌의 비구니에 대한 첫 심상이었습니다. 겨울이 오는 초입, 비구니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비구니 수행 도량인 경상북도 문경시 사불산 중턱에 있는 윤필암(閏筆庵)입니다. 허리춤 꼬깃꼬깃한 돈으로 손자에게 과자 사주는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느낌의 암주(庵主) 은우 스님부터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여쁜 누이 같은 자성 스님까지 여섯 분이 모여 공부하며 생활하는 곳입니다. 다음달 1일(음력 10월15일)부터 시작될 동안거(冬安居) 준비에 여념이 없으시더군요. 겨우내 땔 장작도 마련해야 하고, 매 끼니 공양할 메주도 떠놓아야 합니다. 연잎, 감자 등으로 만든 전통 사찰식 부각과 유과 등 주전부리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죠. 비구니 스님들 서른 명 남짓 모여 석 달을 지내야 하니 준비할 게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수수 찬바람은 산사의 겨울나기 준비를 더욱 부추기네요. 인생도 이처럼 예측 가능해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요. 힘들어도 웃으며 견딜 수 있을텐데 말이죠. 올 겨울 산중 암자 문 두드려 스님들의 마음 공부 요령을 한 번 배워가도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북방삭풍 몰아치는 날 괘념치 않도록 두둑하게 인생 겨울나기 준비하시기 바랄게요. ●겹겹이 펼쳐진 산세 가슴까지 후련 나그네는 길 자체의 아름다움에 혹하기 십상이다. 허나 진짜 아름다운 것은 길 너머에 있다. 감동을 아껴둬야 만날 수 있다. 바로 1인 수행도량인 묘적암과 윤필암, 그리고 거기까지 오르는 길이다. 윤필암은 본 사찰인 대승사와 묘적암의 갈림길 즈음에 있다. 왼쪽으로 가면 묘적암, 오른쪽으로 가면 대승사가 나오는 곳이다. 차를 갖고 왔다면 윤필암 아래쪽에 세우고 호젓한 산길의 정취를 느껴볼 만하다. 1㎞ 남짓 넘어가니 다리야 약간 퍽퍽하겠지만 쭉쭉 뻗어올라간 삼나무며, 상수리나무 등을 보노라면 눈이 맨 먼저 시원해진다. 인적 드문 호젓한 길 여기저기서 다람쥐들과 연신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을 무심히 쳐다보는 모양이 속계와 불계를 오가는 존재인양 영물스럽기까지 하다. 진짜 아름다운 풍광은 적멸 스님이 홀로 수행하고 있는 묘적암 앞에 펼쳐져 있다. 멀리 사불산의 사면석불이 내다보이고 겹겹이 펼쳐진 산세가 가슴 속에 시원함을 안긴다. 비라도 올라치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는 신비로움까지 더해준다. 적멸 스님은 “며칠 동안 사람 구경 못할 때도 많아 먼 발치에서 등산객만 보여도 반갑다.”고 했다. 낯선 이라도 불쑥 차 한 잔과 한 말씀 청하면 기꺼워하시겠다. 묘적암을 내려오다 보니 길 초입에 우체통이 하나 있다. 사불산 깊은 곳에 자리잡아 우체부 오토바이가 오르기 힘겨워하는 탓에 마련해둔 것이다. 넉넉한 마음씀씀이에 흐뭇해진다. 묘적암, 윤필암을 다녀온 발걸음은 전통의 향기 넘쳐나는 곳으로 향한다. 관광지가 아니어서 발길은 뜸하지만 문경에는 또다른 매력이 숨겨져 있다. 도예 무형문화재 32호 천한봉 선생의 문경요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훨씬 유명하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배용준이 쓴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등장한 뒤 일본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배용준은 이곳에서 5일간 머물며 도자기를 굽고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굳이 배용준이 아니더라도 천 선생의 작품은 찻사발 하나가 1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에서만 연 2억원 넘게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엔 일왕이 사절을 파견해 훈장을 줬을 정도. 여기에 방짜유기 중요무형문화재 77호 이봉주 선생 역시 장인의 기품을 보여주고 있다. 안산에 있던 공방을 옮기기 위해 산좋고 물맑은 곳 찾아 헤매다 2004년 문경으로 접어들었다. 주물로 만드는 안성유기와 달리 방짜유기는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것이다. 현대식 공장은 물론, 전통 방식 유기 대장간을 구경할 수 있다. ●경북의 또 다른 맛은 낙동강 줄기에 뱃사공의 뱃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새로 놓인 다리는 튼튼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때 그 뱃사공들의 갈증과 허기,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곤 했던 그 강변의 주막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이 만나는 곳이라 이름 붙여진 경북 예천군 풍양면의 삼강(三江) 주막이다. 1900년 무렵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이다. 여기저기 떠도는 장돌뱅이들, 찌그덕거리며 노젓는 뱃사공들이 컬컬한 막걸리 맛을 못잊어 삼강주막을 찾았다. 주막 안팎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까막눈의 주모는 술상 내주던 부엌 흙벽에다 빗금을 긋는 식으로 외상장부를 남겼다.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련 할머니는 2005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고, 뱃사공들도 이제는 없지만 텁텁한 술트림이 여기저기 맴돌고 있는 듯하다. 주막 뒤편엔 450년 된 홰나무가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며 서 있고, 싸릿대 얼기설기 빙 둘러쳐진 ‘통시(뒷간)’가 옛 주막의 운치를 더한다. 손두부와 도토리묵은 각 2000원, 배추 지짐이는 3000원, 동동주는 한 주전자에 5000원이다. 한 상을 시키면 에누리 없는 1만 2000원이다. 게다가 술상 내오는 것도, 내가는 것도 모두 ‘셀프’다. 주막 운영을 마을부녀회가 맡고 있다. ●여행 Tip ▲먹을 거리 문경은 약돌돼지석쇠구이가 유명하다. 약돌(거정석)을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구웠다. 비계는 쫀득쫀득하고 살코기는 야들야들하다. 문경새재 가는 길 어귀에 약돌돼지를 파는 식당이 많이 있다. ‘탄광촌(054-572-0154)’과 ‘새재할매집(054-571-5600)’이 유명하다. 밑반찬도 맛있다. 예천에서는 용궁시장 순대국밥을 꼭 먹어보자. ‘1박2일’에 등장하며 유명해진 박달식당도 좋지만, 식사 때 1시간 남짓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차라리 입소문으로 이름이 알려진 단골식당(054-653-6126)을 찾으면 기다리는 수고로움 없이 3500원짜리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행복한 포만감을 누릴 수 있다. 글·사진 문경·예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中 강남 귀족문화·천혜절경 한눈에

    中 강남 귀족문화·천혜절경 한눈에

    13세기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방문한 뒤 ‘동방견문록’을 통해 항저우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칭송했다. 중국 청나라 건륭제는 항저우 등이 있는 양쯔강 남쪽 강남의 산수를 가리켜 “강남 풍경, 천하제일”이라고 극찬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중국 강남을 눈으로 유람할 기회가 마련됐다. 교양 다큐멘터리 채널 MBC 라이프가 11일과 18일 오후 11시 내보내는 ‘인문기행 중국’의 6~7부를 통해서다. MBC라이프는 개국 기념으로 7부작 인문과학 다큐멘터리 ‘인문기행 중국’을 마련했고, 앞서 1~5부를 통해 베이징, 운난 지역을 조망했다. 이번 강남 유람에서는 항저우부터 샤오싱, 난징까지 중국 고대 및 중세 왕조들이 도읍지로 선택한 고도(古都)들을 돌아다닌다. 소설 ‘미실’로 세계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 김별아가 길라잡이가 돼 화려하게 꽃을 피운 강남 귀족문화를 살펴본다. 인문도시 항저우를 탄생시킨 시후가 첫 대상이다. 이무기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 ‘천녀유혼’ 등의 모티프가 된 다리 ‘딴차호’를 비롯해 소동파가 중국 4대 미인으로 손꼽았던 시후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또 관우와 더불어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충신 악비의 묘를 만나게 된다. 고사 ‘와신상담’으로 잘 알려진 월나라 도읍지 샤오싱에서는 명필 왕희지가 물길 따라 술잔을 주고받았던 유상곡수를 접할 수 있다. 신라 포석정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또 중국 근현대사의 중심인 난징을 살펴보다 보면 6부 ‘중국 귀족문화의 요람, 강남유람’이 막을 내리게 된다. 7부 ‘천하제일 풍경-강남수향’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미인이 나왔다는 쑤저우(소주)를 먼저 찾아간다. 중국 역사상 가장 빼어난 미인 서시의 궁전 ‘관와궁’을 비롯해 유네스코가 지정한 줘정위안 등 귀족 정원과 민간예술이 살아 있는 사원과 사찰 등을 접할 수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장지연, 총독부 기관지에 700여편 기고”

    “장지연, 총독부 기관지에 700여편 기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공직자와 지식인, 문화예술인 등 당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1905년 황성신문 주필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을 비롯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 20명가량도 친일행위자 명단에 올라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정책실장은 “친일행위자 중 사회지도층이 많은 것은 한국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경시되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친일파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해 장면 전 부통령, 김성수 전 부통령 겸 동아일보 사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들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22세이던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면서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함께 냈다고 편찬위 측은 밝혔다. 장면 전 부통령은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았던 경력 때문에 포함됐다. 이 연맹은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냈으며 미사 후에는 단체로 신사참배를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던 김성수 전 부통령은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를 맡고 1943년 8월에는 ‘매일신보’에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는 등 징병을 격려하는 글을 썼다. 음악가 안익태와 무용가 최승희, 시인 서정주 등 문화예술인의 친일행적도 발견됐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1938년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발표했는데, 본래 일본 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사용되던 일본의 관현악 ‘에텐라쿠’를 그대로 차용했다. 1942년에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의미로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현대무용가 최승희는 1937~1944년까지 무용공연 수익 중 7만 5000원이 넘는 금액을 국방헌금·황군위문금 등으로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 서정주는 ‘매일신보’에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해 “교복과 교모를 이냥 벗어버리고 주어진 총칼을 손에 잡으라.”고 썼다. 언론인 장지연, 이종욱 전 의원 등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들도 친일행위자로 분류됐다. 장지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투사로 알려졌지만 1914~1918년까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700여편의 글을 실었다. 조계종 종무총장과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욱 전 의원도 1977년 건국훈장이 추서됐지만 1941년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라.”는 통첩을 전국 사찰에 보낸 사료가 발견돼 친일 인사로 규정됐다. 편찬위는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 군·경찰·헌병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주말 데이트] 30년간 복지사업 실천 무원 서울 명락사 주지스님

    [주말 데이트] 30년간 복지사업 실천 무원 서울 명락사 주지스님

    스님의 웃음은 포대 화상을 닮았다. 복덕원만(福德圓滿)을 상징하는 후덕한 포대 화상처럼 스님은 참 둥글게 웃는다. 웃음뿐 아니라 ‘마음 잘 쓰는 법’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지난 30년 덕행까지도, 스님은 복과 풍요를 나눠주는 포대 화상과 다르지 않다. 지역민 복지, 새터민 돕기, 노인 복지까지 “희생·봉사·헌신이 바로 수행의 근본”이라면서 보시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서울 청룡동 명락사 주지 무원(천태종 총무부장) 스님. 4일 명락사에서 만난 스님은 얼마전 ‘100만독 관음정진 불사’를 마친 몸이었지만 여전히 건강한 낯빛을 띠고 있었다. ●첫 다문화母子 자립공간 ‘명락빌리지’ 더구나 최근 몇 달간은 ‘명락빌리지’ 개원 준비까지 겹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그다. 명락사 바로 곁에 위치한 명락빌리지는 국내 최초 다문화모자가정을 위한 자립 공간. 현재 중국, 몽골, 베트남인 등 9가구 16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 등으로 혼자 젖먹이를 키우는 편모가정이다. “이들 역시 우리의 자손들입니다. 저출산 상황을 감안하면 더없이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하죠.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제대로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은 우리 몫이지요.” 스님은 명락빌리지가 ‘수용 공간’이 아닌 ‘자립 공간’임을 강조한다. 이곳에서는 3개월 또는 반년의 시간을 주고 한국문화 적응 교육을 시키고 일자리 등도 알선하며 완전한 한국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완전한 한국인 가정’으로 만든다는 취지. 예산은 모두 ‘다문화가족돕기1만등불밝히기’ 같은 행사로 신자들에게서 모은 것이다. 여기에는 일반 신자들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스님은 다문화가정을 “사각지대에 놓인 존재”라고 말한다.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고 포용보다는 규제의 잣대가 적용되기 때문. 하지만 스님은 오히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글로벌 시대의 견인차’가 될 자질이 많다.”고 그 가능성을 높이 산다. 그러기에 복지를 위한 역량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스님의 이런 보시행은 오래됐다. 명락사 주지로 취임하기 전 있었던 인천 황룡사에서는 새터민 돕기 활동을 했다. 새터민만으로 구성된 ‘평양민속예술단’ 등은 아직도 명락사 내 교육관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전국 순회 공연을 다니고 있다. 이렇게 복지 사업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스님은 “수행의 근본이 바로 희생·봉사·헌신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수행은 깨달음을 구하는 행위지만, 그 깨달음은 어떤 방법으로 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깨달음을 위한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스님은 바로 소외된 자들에게 내미는 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희생·봉사·헌신이 바로 수행의 근본” 스님의 이런 행보는 사실 출가 시절의 인연과 관계가 깊다. 17세, 스님의 출가는 빨랐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과 병듦, 죽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결국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절로 들어갔다. 3년간 오대산 일대 절에서 수행을 했고, 20살에 구인사로 들어가 남대충 대종사를 모시고 본격적인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 스승에게 받아 평생을 들고 온 화두가 ‘마음 잘 쓰는 것이 도 잘 닦는 것’이란 문구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누구를 만나든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을 부처로 보고 거기에다 내가 얼마나 마음을 잘 쓰고 있는가를 견주고 있지요.” ●“전세계 불상 모신 다문화 사찰이 꿈” 그 ‘마음 쓰는 방법’이라는 게 다름아니라 보시행을 베푸는 것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젊은 나이에 총무원 일을 맡으면서부터 그는 다짐대로 이 방면의 일을 계속했다. ‘한국다문화센터 정책자문단장’,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 대표’ 등 이래저래 걸친 직함만도 셀 수 없다. 하지만 직함은 명목상의 것일 뿐, 스님의 몸은 그 직함보다 더 바쁘다. 그는 “복지는 시설만 세우는 정적인 복지가 아니라, 직접 발로 뛰는 움직이는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종교·이념을 떠나서 사람의 인연을 중시하는 복지, 스님은 “그런 보시행 속에 불교의 미래가 있다.”고 했다. “너무 잘하려는 것도 탐심(貪心)”이라고 하지만 스님은 지나온 발걸음처럼 지금도 여전히 ‘마음 쓰는 법’을 고민하며 용맹정진하고 있다. 그리고 인천 황룡사, 경주 청강사 등 그가 세운 10여개의 절과 마찬가지로, 역시 지나가면 그만일 곳이지만 지금 명락사에서도 작은 꿈을 키우고 있다. 바로 명락사를 ‘다문화 사찰’로 만든다는 것. 그는 “이곳에 전세계의 불상들을 모셔두고 모두가 자신의 방법으로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쉼터로 만들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교육 정상화의 문화적 접근/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교육 정상화의 문화적 접근/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한 이래 교육은 항시 존재해 왔다. 교육은 가족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 정립에 가장 우선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한편 사회구조와 시대정신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교육의 변화를 동반하고, 한 시대의 교육이념과 교육제도는 그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그래서 교육은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시대의 거울이 된다. 광복 이후 맛본 달콤한 산업화가 한국사회에 치열한 경쟁을 조장하면서 이제 우리의 교육현장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대학입시라는 처절한 각축에서 살아남는 것이 사실상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못마땅하기 그지없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측은하고 가련하다. 학교와 학원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가 늦은 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조그마한 방심에도 부모들의 성화가 여지없이 엄습한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심리적 압박과 부실한 성적이 때로는 아파트 옥상에서의 비상(飛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냥 신나고 설레는 사춘기를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보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들의 처지도 얄궂기는 마찬가지다.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청하고, 아이들의 관리감독에 몸살을 앓는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정책에 장단을 맞추기가 너무나 곤혹스럽다. 모든 것을 다 퍼주었건만 시험기간에는 영락없이 자식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눈에 쌍심지를 켜도 따라가기 힘든 입시설명회에 참석해야 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학별 전형요강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니, 중장년의 세월이 그저 무겁게만 느껴진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진학이 배움의 목표가 되면서 교육은 기형화되고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병폐를 수반한다. 폭넓은 지식과 윤리적 덕성의 함양은 어느덧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었고, 전략과 전술에만 익숙한 시험기계로 전락한 아이들에게선 타인에 대한 배려부재와 사고의 경직성이 두드러진다. 한편 행실과 버릇이 온당치 않아도 성적이 좋으면 관대해지는 부모들과 교사들은 은연중 아이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의 일탈을 가져온 주범은 바로 학벌을 중시하는 문화다. 출신대학은 한국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으뜸의 척도이고 또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수한 학벌은 취업의 관건이고, 탄탄한 인맥형성의 근간이며, 배우자 선택의 주요 고려사항이 된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오늘도 어디에선가 약발이 먹힌다. 현재의 능력보다 어린 시절 불과 몇년간의 성실성이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문화 속에서 교육의 정상화는 한낱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최근의 교육정책은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근시안적 처방이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 학원이라면 결코 돈이 아깝지 않다는 부모들의 견고한 공감대가 형성된 문화 속에서 이른바 ‘학파라치’와 학원심야영업 규제의 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학벌이 곧 유복한 삶의 전제조건이라는 인식이 존속하는 한 작금의 조치들은 입시철만 되면 사찰과 교회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을 결코 막을 수 없다. 또한 ‘기러기 아빠’를 결연히 감수하는 세태 속에서 외고개혁 역시 우리의 교육현실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지치기로 썩은 뿌리를 도려낼 수는 없다. 교육을 정상화하는 작업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하다. 교육당국은 이 땅의 교육이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에 입각하여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편 학벌위주 문화의 희생자이자 동시에 이러한 문화를 만든 공범자인 우리 모두에게도 예사롭지 않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교육이라는 시대의 거울에 비추어진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학술·종교플러스]

    ‘채식요리·전통사찰음식’ 세미나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은 9일 서울 종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 6차 정기세미나를 개최한다. ‘채식요리와 전통사찰음식’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유혜선 불교여성개발원 이사가 진행을 맡았다. 선재사찰음식연구원장 선재 스님,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장 적문 스님 등이 사찰음식 관련 문제에 대해 발표한다. (02)722-2101~2. 한기총 언론상 20일까지 후보접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회장 엄신형 목사)는 오는 20일까지 제7회 한기총 언론상 후보를 추천받는다. 기독교계 언론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기자 및 출판인을 대상으로 기자상·방송인상·출판인상·경영부문·잡지부문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02)741-2782. 6~7일 동아시아 국제학술회의 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사연구포럼은 6~7일 이틀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 세계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연다. 한·중·일 연구자들은 ▲동아시아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다양성 ▲동아시아의 다문화주의:담론과 정책 ▲역사 기억과 해석 등 4개 세션, 7개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 “사찰경영, 신도를 감동·동참시켜라”

    종교의 목적은 탈속적이지만 교단의 운영에는 역시 돈이 필요하다. 교회는 물론 최근에는 문화재관람료 징수 논란 등으로 든든한 수입원을 잃은 사찰들까지, 현대적 경영을 내세우며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영이 장기적으로 옳을까.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김응철 교수는 종교조직 수익사업의 미래에 대해 ‘물음표’를 찍는다. 김 교수는 5~6일 충남 아산 온양관광호텔에서 개최되는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법진 스님) 전국분원장 회 및 학술회의에 앞서 “종교조직의 재정은 신도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참여와 활동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한다.미리 나눠준 ‘사찰재정의 관리방안’이라는 논문에서 김 교수는 “최근 대부분 종교단체들이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고 일부는 기업을 설립해 그 이윤을 종교조직으로 환원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통일그룹을 통해 건설·스포츠·레저·식품 등 사업을 벌이고 있는 통일교와 제약·식품·농원·부동산 임대 사업을 꾸려가는 원불교를 예로 들었다.여기에 그는 “이윤추구라는 기업 운영 원리와 보시행을 바탕한 종교조직의 운영원리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이런 경영은 장기적으로 평판의 저하 등 부작용을 유발하여 재화는 있지만 신도가 없는 조직을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김 교수는 신도 활동에 기반한 모범적인 재정경영 사례로 대만 자제공덕회, 불광산사, 일본 조동종을 든다. 그러고는 “사찰재정 관리는 결국 신도들이 감동하고 동참하는 방안을 찾는 데서 모아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전법포교활동을 전개해야 사찰재정이 확대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을 정리한다.한편 이번 학술회의에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조기룡 교수는 ‘사찰경영의 성공적 사례와 사회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한다. 또 고명석 조계종 포교원 선임연구원은 ‘신도교육과 신도조직관리의 효율적 방안’을 주제로 발표한다.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공주형 미술세계] 미술가들의 손길로 재탄생 세계 7대명소 나오시마를 떠올리며…

    [공주형 미술세계] 미술가들의 손길로 재탄생 세계 7대명소 나오시마를 떠올리며…

    꼭 가봐야 하는 세계 7대 명소라니 다 가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관심이 갑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여행 잡지 ‘콩드 나스트 트래블러(Conde Nast Traveler)’가 선정했다니 신뢰가 갑니다. 두바이, 파리와 함께 나란히 선정된 세계 7대 명소 중에는 생소한 지명이 하나 있습니다. ‘나오시마’입니다. 2006년 모토히로 가쓰유키 감독의 영화 ‘우동’의 배경이 된 이곳은 일본 4개 섬 중 하나인 시코쿠 섬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15분을 가서 공항버스를 갈아타고 40분을 이동해서 페리로 5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할 만큼 교통이 만만치 않은 이곳에 연간 35만명의 여행객이 몰린다니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나오시마는 원래 구리 제련소가 있던 작은 섬이었답니다. 쇳돌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쇠붙이를 만들고 정제하는 과정에서 섬 전체가 심각한 공해에 시달렸습니다. 황폐한 이 섬이 ‘나오시마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변화를 시작한 것은 연간 매출 4조원에 달하는 일본의 출판 교육 그룹 ‘베네세’가 20년 전 10억엔을 들여 이 섬 절반을 사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베네세의 소유주 후쿠다케 회장과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있었지요. 공해로 찌든 작은 섬에 제련소에서 나온 폐기물 대신 야요이 구사마의 ‘호박’을 비롯한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놓았습니다. 듬성듬성 놓인 작품을 이정표 삼아 산책을 합니다. 오랜만에 비운 마음이 긴 산책로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땅 속 미술관도 만들었습니다. 건축가가 동굴 유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지중미술관입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제임스 터렐의 ‘오픈 스카이’등이 단순히 보는 미술관을 넘어 생각하는 공간으로 여행자의 동선을 유도합니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년 세월이 무색하게 방치되어 있던 사찰, 신사, 도로도 미술가들의 ‘집 프로젝트’로 생기를 찾습니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자전거를 타고 발품을 팔며 동네 구석구석 ‘집 프로젝트’를 찾아 돌아다니다 낯선 나와 만납니다. 문득 숨이 턱 걸리게 달려야 하는 일상에서 쌓아도 쌓아도 부족한 스펙 때문에 유보해 두었던 질문이 이곳에서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지요. 놀랍게도 이것은 나오시마 섬의 변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들이 계획하고 실천했던 ‘베네세’라는 변화의 지향과 방향을 같이 합니다. ‘좋은’을 뜻하는 라틴어 ‘베네’와 존재를 뜻하는 ‘에세’의 합성어인 ‘베네세’는 말 그대로 ‘더 나은 존재’를 뜻합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분명한 변화의 방향이 몸과 마음으로 느껴진 때문일까요. 이 섬에 온 여행객들은 TV를 끄고 자연 가까이에서 더 많은 소유가 아닌, 더 나은 존재를 생각합니다. 변화의 목적과 이유의 소중함을 떠올립니다. 그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작정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뛰는 것도, 시행착오를 대번에 좌절이 아닌, 더 나은 목표로 수정하는 것도 말입니다.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를 열린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포부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가칭)의 첫 전시 ‘신호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작가들을 한데 모아두고 앞으로 ‘좀 더 신선하고 재미있으며 새로운’ 미술을 보여주고 ‘21세기 대한민국의 하늘을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힘과 다양성을 겸비한 미술문화로 물들이겠다.’는 출사표를 던졌으나 변화의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미술평론가>
  • [도시와 산] (31) 대전 식장산

    [도시와 산] (31) 대전 식장산

    백제의 한 장군이 이 산에 군량미를 쌓아 뒀다고 한다. 신라와 자주 전쟁을 치렀고, 국경을 이뤘던 곳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백제로서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 중종 때 도술가인 전우치가 3년간 먹고도 남을 만한 보물을 이 산에 묻어 놓아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식장산은 이름만큼이나 유난히 ‘밥’과 관련 있는 역사와 전설이 많다. 대전의 식장산(食藏山·해발 598m)은 이렇게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자락이 넓고 물이 좋아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땅이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식이 들어간 산 이름도 이곳이 유일하다는 얘기도 있다. ●밥의 역사와 전설이 배인 풍요로운 산 이런 전설도 내려온다. 옛날옛적에 효성이 지극한 어느 부부가 이 산 밑에 살았다. 가난한 부부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아들 하나가 있었다. 철없는 아들은 할머니의 밥을 자주 빼앗아 먹었다. 부부는 고심 끝에 아들을 버리기로 했다. 산에 올라 땅을 파다 보니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먹을 것이 나오는 밥그릇이 나왔다. 이 밥그릇 덕에 풍족하게 살았다. 부부는 늙은 어머니가 숨지자 욕심을 버리고 그릇을 다시 산에 묻었다. 이 때문에 ‘식기산’이라고도 불렸으나 식장산에 묻혀 사라졌다. 식장산은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보문산과 계족산도 한밭벌을 빙 둘러싸고 있지만 모두 500m가 안 되는 산이다. 식장산은 험하지 않지만 넓은 숲과 뛰어난 생태계로 대전의 허파 노릇을 톡톡히 한다. 대전시는 1996년 식장산의 세천유원지 일대를 ‘자연생태보존림’으로 지정했다. 시 조사로는 이 일대에 224종의 식물과 노루, 살쾡이, 너구리, 박쥐 등 100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100여종의 새와 파충류, 양서류 등도 서식하고 있다. ●물 많은 음산… 평탄하고 넓은 산자락 생태계의 중심지 세천유원지 초입에 들어서면 물막이 댐이 맞이한다. 1934년 계곡을 막아 만든 것으로 폭 100m 길이 250m 크기의 저수지가 형성돼 있다. 1980년 말 대청댐을 막아 대청호 물을 수돗물로 쓰기 전까지 대전 시민의 식수원이었다. 지금은 흘러내려 온 계곡물을 가둬두고 있지만 대전시내를 가로지르는 대전천의 발원지다. 식장산을 자주 찾는다는 등산객 이상준(56·대전 둔산동)씨는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산이다.”면서 “7부 능선에서도 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저수지를 따라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예전에는 좁은 산길이었다. 길은 폭 2m 가까운 임도가 닦여져 있고, 통나무길이나 돌길로 꾸며져 있다. 길이 평탄하다. 산책을 나온 기분마저 든다. 길옆으로 계곡 자락이 넓게 펼쳐진다. 군량미를 충분히 숨길 정도로 품이 넓다. 평원 위에 펼쳐진 밀림 같다. 그 자락에 조그만 바위들이 쌀밥에 콩 박히듯 박혀 있다. 숲은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팽나무 등 활엽수로 가득했다. 침엽수는 거의 없다. 흔한 소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온 산이 단풍에 물든 듯했고, 길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길 따라 계곡물·바람·새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3㎞ 가까이 지나자 오르막이 좀 심해진다. 약간 숨이 찬다. 초입부터 이곳까지 벤치가 만들어져 쉬기에 좋다. 1㎞쯤 더 가 독수리봉에 올랐다. ‘해발 586m’라는 팻말이 서 있다. 정상과 별 차이가 없다. 서쪽에 서대산, 동남쪽에 속리산이 보인다. 권진수(58·대전 대동)씨는 “날씨가 좋으면 경북 상주에 있는 구병산까지 보인다.”면서 “숲이 우거져 햇빛 한번 안 쬐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산이다.”라고 설명한다. 등산로가 대전방향인 동쪽으로 모두 나 있다. 고향이어서 자주 찾는다는 60대 남자는 “음산이다.”고 말한다. 여자 등산객이 유난히 많다. 반대편 충북 옥천쪽 능선은 절벽이다. 절벽으로는 소나무 숲이 들어차 있다. 산불에 타 거무스레했다. ●긴 세월 거친 사찰도 여럿 그 절벽 중간에 구절사가 붙어 있다. 1393년 조선 태조 2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중건돼 있었고, 칠성각과 산신각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져 있다. 산신각에 젊은 남자가 앉아서 먼 산을 한없이 바라본다. 병을 앓아 이 절에 들어왔다는 60대 남자는 “예전에는 비구니들만 있었는데 도둑들이 (불상 등을 노리고) 자주 들어와 2005년인가 주지 스님이 비구로 바뀌었다.”고 쓸쓸히 전한다. 886년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산사’도 있다. 마곡사의 말사로 대전시유형문화재 10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중앙과 왼쪽 불상은 토불(土佛), 오른쪽 것은 석불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전을 보수할 때 상량문에서 ‘법장사’라는 옛 이름이 발견되기도 했다. 식장산에는 개심사와 식장사도 있으나 고산사만큼 역사가 길지 않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밤이면 새옷입은 식장산 대전 최고의 야경 연인들은 夜~好~ 식장산은 밤에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대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 부근 전망대다. 낮의 대전시내를 최고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인들 사이에 ‘데이트 명소’로 소문이 나 있다. 길은 세천유원지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포장이 된 산길을 타고 차로 10분쯤 가면 이곳에 다다른다. 길이가 4㎞ 정도밖에 안 되지만 도로가 워낙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마주 오는 차를 피하다 보면 늦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전시내는 발끝에서 한없이 먼 아래 누워 있다. 대전시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보문산 전망대와 딴판이다. 연인과 함께 벤치에 앉아 시내를 감상하던 최근원(25)씨는 “대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고 특히 야경이 멋져 자주 온다.”면서 “이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인다.”고 말했다. 그는 “외지인들이 이곳에 와 대전을 보고는 도시가 꼭 별처럼 생겼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식장산 전망대에서는 큰 밭(한밭·大田)이 빙 둘러친 산과 계곡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듯 보인다. 산 아래 별 모양으로 깊숙이 내려앉았다. 오른쪽에 푸른 대청호가 보이고, 계족산이 도시와 호반 사이에 둘러쳐져 있다. 왼쪽에는 보문산이 펼쳐져 있다. 먼 북쪽 산이 계룡산 자락이다. 주말이면 패러글라이딩 애호가, 타는 사람, 사진작가 등으로 붐빈다. 전망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자는 “주말에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라면서 “‘오래전부터 찍어온 사진을 시간대별로 펼쳐보면 대전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인다.’고 말하는 시민도 있다.”고 전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충북 주요 사찰 갈등 2제

    ●“도지사 구두약속” vs “검토일뿐” 충북지역 주요 사찰들이 지자체 및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는 26일 80억원을 투입해 템플스테이와 각종 불교문화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회관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해양부 23억원, 조계종 종단 15억원의 사업비를 각각 확보했고, 도와 보은군에도 각각 15억원씩의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가 예산지원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법주사 측은 정우택 지사가 수차례 지원을 약속했지만 딴소리를 한다며 사퇴운동까지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법주사 관계자는 “지사가 구두로 약속을 해 모든 행정적 절차를 마친 상태인데 이제와서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는 공식적인 예산지원 요청서를 받아보기 전인 지난달 22일 법주사 주지가 찾아와 정 지사가 확답을 주지 못한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지사 비서실 관계자는 “예산지원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예산지원하겠다는 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천태산 등산객 요금징수 불법 논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천태산과 인접한 영동 영국사는 문화재관람료 징수문제를 둘러싸고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영동군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주민들이 영국사 주차장 입구에서 관람료 징수 철회 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등산객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영국사를 둘러보지 않고 천태산을 오르는데 등산객들에게까지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사가 관람료를 계속 받을 경우 등산객이 줄어 인근 상인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문화재 관람료를 받으려면 영국사 소유의 경내로 매표소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사는 2003년부터 1000원의 관람료를 받고 있다. 군은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관람료 징수는 정당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주지와 주민들 간의 감정 때문에 벌어진 일 같다.”고 말했다. 영국사와 주민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27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고려시대는 조선왕조에 의해 배척되고 왜곡된 상처와 흔적을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지금까지 유산으로 남아있고, 흔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흔적을 규명해 고려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것이 고려인의 후예라면 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책무이다.” ●조선 성리학적 사대주의의 오류 한흥섭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이런 ‘책무’를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속에 녹아든 음악사상에서 찾는 것으로 실현한다.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등을 집필한 한 교수는 신작 ‘고려시대 음악사상’(소명출판 펴냄)에서 고려시대의 문화사 복원의 하나로 국가제전인 ‘팔관회’와 궁중음악 ‘아악’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 교수는 “고려에는 드높은 위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적 유산이 있었지만 조선왕조에 들어와 철저히 배제되고 왜곡됐으며, 이런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왜곡의 바탕에는 너무나 견고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대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에서 이어져 고려왕실의 공식행사 중 하나가 된 팔관회로, 고려 문화의 결집체이자 상징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위령제적 성격이 짙은 불교의례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천령과 명산대천 등에 제사하고 복을 비는 토속의례의 성격이 강해진다. 팔관회의 핵심 의례인 ‘백희가무’에는 국선, 선가, 선랑, 화랑 등 춤추고 노래하며 토속신령에 기원하는 가무단이 행사를 이끈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또 왕의 사찰방문과 환궁 행렬이 이어지면서 축제적 성격도 띤다. 결국 팔관회는 유교적 의례와 신선이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적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백희가무에서 드러나는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된 종합행사다. 그러나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과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된다. 팔관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 없이 단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팔관회가 불교의례라고 단정짓는 것에 대해 저자는 “피상적인 시각에서 비롯한 오류에 불과하다.”면서 “팔관회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고려문화의 실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대한 절차”라고 강조한다. ‘궁중음악의 총칭’으로 정의되는 아악에 대해서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악이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는 한국국악계의 지배학설도 시대착오에 불과하다는 것. ‘고려사’를 통해 국가제사를 진행하고 문물제도를 정비한 성종(982~997년) 때 이미 아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성종은 원구에서 풍년을 기도하고, 태묘를 건축해 친히 제향을 치뤘다. ‘고려사’의 ‘예지’에 나온 의례절차를 보면 이들 의례에는 반드시 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성종 때에 이미 아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악은 삼국시대부터 존재 아악기의 구성을 따지면 아악이 삼국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아악과 당악, 향악에는 각기 고유의 악기로 연주한다. 예컨대 생, 우, 훈, 편종, 편경 등 아악기는 철저히 아악에만 사용했다. ‘삼국사기’의 ‘악지’에는 고구려악을 소개하면서 생, 소, 지 등의 악기를 거론한다. 당나라 역사서인 ‘북사’에 백제의 아악기 우와 지가 소개돼 있고, 신라 눌지왕 때 만든 ‘우식악’에는 훈과 지 등의 악기 연주가 묘사돼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악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 또 외국 문헌에는 보통 한 국가의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전해진다는 점을 종합하면 이미 그 전에도 궁중음악인 아악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전에는 ‘현존하는 아악을 문묘제례악 한 곡 뿐’이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도 엄연히 궁중음악인데, 이를 제외하는 오류도 범한다고 지적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부침을 겪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음악사상 분야도 벗어날 수 없다. “고려시대 음악문화의 실상에 대한 논의나 상상력이 더욱 풍요롭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에서 저자가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들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진다. 2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막내린 맹탕 국감

    유례를 찾기 힘든 ‘맹탕’ 국정감사가 23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국정 난맥을 속시원히 파헤치는 이른바 ‘한방’이 없었던 국감이었다. 정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해낸 ‘실속’도 없었다. 야당은 시간 부족에 허덕였다. 미디어법 장외투쟁 끝에 허겁지겁 국회에 복귀한 탓이다. 그럼에도 전술적으로 정운찬 총리에 과도하게 집중했다. 재·보선까지 겹치면서 힘이 분산됐다. 그 결과 세종시, 4대강 등 거대 쟁점에 매몰되고 말았다. ‘상시 국감’ 체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한 국감이었다. ●극명히 드러난 우량·불량 상임위 교육과학기술위는 불량 상임위의 대표격이다. 국감일정 12일 가운데 6일을 파행했다. 여야가 툭하면 고성을 질러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는 ‘여야충돌 위원회’로 불릴 만했다. 환경부 등 환경노동위의 피감기관들은 국회를 조롱했다. 자료 늑장 제출과 불성실의 절정을 보여줬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국감 개시 30분 전에 A4용지 박스 16개 분량의 자료를 제출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정신 좀 차려라.”는 의원들의 추궁에 “정신 멀쩡합니다.”라고 되받았다. “잘못된 실수 하나가 개밥에 도토리처럼 발생했을 뿐”이라는 발언 등으로 국감을 중단시켰다. 반면 지식경제위는 정부로부터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허가제 추진 의사를 이끌어냈다. 초당적 정책 대응의 전형이었다. 국방위 역시 여당이 먼저 나서 군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따져 물었다. 보건복지가족위도 신종플루, 독감 백신 문제 등 민생 관련 사안에 대한 정부 정책의 잘잘못을 진단해냈다. ●동료 의원에게 주목받은 의원들 맹탕 국감 속에서도 눈에 띈 의원들이 있었다. 정무위에서는 한나라당 이성헌·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같은 의원들에 의해 ‘우수 의원’으로 추천됐다. 기획재정위에선 민주당 강봉균 의원이 ‘고용유발 효과가 큰 기업에 대한 법인세 차등 인하 방안’ 등으로 대안 있는 국감의 본보기로 꼽혔다. 국토해양위에서는 민주당 김성순 의원의 충실한 자료와 성실성이 돋보였다. 행정안전위의 민주당 최규식 의원은 발로 뛴 인물로 추천됐다. 농림수산식품위에서는 농어민 입장에서 정부를 질타한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지식경제위에서는 우량 상임위라는 호평을 이끌어낸 정장선 위원장이 여야 의원들에게 후한 평가를 받았다. 이지운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소외 이웃·사회 향해 자비의 발걸음”

    “소외 이웃·사회 향해 자비의 발걸음”

    “한국 불교 중흥의 새 역사를 창조하겠습니다.” 91.5%라는 역대 최대 지지율로 대한불교조계종 신임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자승(55) 스님은 22일 당선 확정 이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심과 원력을 다해 사부대중의 뜻을 모아 불교 중흥에 헌신하겠다.”며 당선 소감을 전했다. ●“사부대중 뜻 모아 불교 중흥” 자승 스님은 이날 발표한 당선소감문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종단의 변화와 합리적인 개혁을 기대하는 종도들의 뜻과 의지를 확인했다.”면서 “이를 한국불교의 도약과 중흥이라는 결실을 맺으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선거 전부터 유권자들이 다수 포함된 중앙종회 종책모임을 아우르고 각 교구 본사 주지들의 폭넓은 지지도 확보했었다. 대세론이 굳어지면서 거론됐던 일부 후보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자승 스님은 50대 젊은 총무원장이라는 점, 압도적 지지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점 때문에, 조계종 행정 혁신의 기대를 온몸에 받고 있다. 이에 스님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조계종이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활동을 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는 “조계종은 지금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과 가치관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소외된 우리 이웃과 사회를 향해 자비의 발걸음을 적극 내디뎌 국민과 세계인의 존경과 신뢰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스님은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현 총무원장 지관 스님 임기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던 정권과의 불화에 대해서는 “소통 부족의 결과였다.”고 원인을 진단한 뒤 “취임 이후 얼마든지 대화와 소통을 통해 둘 사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화·소통 통해 정권과의 문제 해결” 이날 선거로 교구와 계파 등을 떠난 폭넓은 지지를 확인한 스님은 향후 각 계파의 이익문제에 대해서는 “종단 발전이 가장 먼저”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종단 운영의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종단 발전”이라면서 “그 다음에 각 교구의 이익을 따지고, 계파의 이익 등은 차순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그에 관한 종책과 공약, 대정부에 관한 사항 등은 취임 이후 다시 정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덧붙였다. 자승스님은 선거과정에서 ▲대중공의의 열린 종단, 함께하는 종단 실현 ▲승려노후복지 문제 해결 ▲교권 확립을 통한 한국불교 위상 확대 등을 정책기조로 제시한 바 있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장은 국내 최대 불교 종단의 지도자로 종단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며, 300억원에 달하는 조계종 1년 예산을 운용하고 총무원 소임자 및 사찰 주지 임면 권한을 가진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사적 및 명승’ 분류 없앤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사적 및 명승’이란 분류가 앞으로는 쓰이지 않게 된다. 기존 지정돼 있던 ‘사적 및 명승’은 모두 ‘사적’과 ‘명승’으로 각각 재분류됐다. 문화재청은 21일 “문화재보호법상 국가지정문화재 종별로 정의돼 있지 않던 ‘사적 및 명승’이란 분류를 없애고, 기존 것은 각각 성격에 맞춰 ‘사적’과 ‘명승’으로 재분류해 관리한다.”고 밝혔다. ‘사적 및 명승’은 가치 있는 역사적 유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두루 갖춘 지역에 대해 1970년대부터 내부적으로 써오던 분류로 총 10곳이 지정돼 있었다. 하지만 문화재보호법상 이 분류에 대한 정의가 없어 2006년부터 재분류가 논의돼 왔다. 이날 문화재청은 기존 ‘사적 및 명승’으로 분류돼 있던 ‘경주 불국사 경내’ 등 6개소를 각각 ‘사적’과 ‘명승’으로 재분류하여 지정 예고했다. 우선 사적 및 명승 1호인 ‘경주 불국사 경내’는 사적으로 재분류했고, ‘속리산 법주사 일원’(4호)은 사적(보은 법주사)과 명승(속리산 법주사 일원)으로 나눴다. ‘가야산 해인사 일원’(5호), ‘지리산 화엄사 일원’(7호)과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8호)’, ‘대둔산 대흥사 일원(9호)’도 각각 사찰지역인 사적과 사찰 일원의 명승으로 나눴다. 앞서 문화재청은 이달 초 ‘부여 구두래 일원’(6호) 등 나머지 4건도 모두 명승 등으로 재분류한 바 있어, 이달로 기존 10건이 모두 재분류 됐다. 이날 재분류 지정예고된 이들 6개소는 30일 예고기간에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사적, 명승 등으로 지정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상생의 미학 강조하는 메시지 담아

    상생의 미학 강조하는 메시지 담아

    현직 기초자치단체장이 ‘상생의 미학’을 주제로 한 소설적 에세이를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원구는 20일 이노근 구청장이 최근 소설적 기행 에세이 ‘운주사로 날아간 새(서연 펴냄·286쪽)’를 출간했다고 밝혔다. 이 구청장은 작품에서 가공 인물인 만덕 스님, 천영수 선생, 김갑수 학형 등 답사꾼 3명을 내세워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찾아가 천불천탑 등 석탑, 대웅전, 불상, 탱화, 와불, 칠성바위 등 불물(佛物)들을 49개 테마로 나눠 이틀간 함께 돌아보게 한다. 작품 중간엔 신비의 새 두 마리, 벌, 황구렁이와 백일몽 등이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되는 묘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져 소설적인 흥미진진함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겪는 갈등을 통해 읽는 이에게 ‘권선징악’의 교훈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되살려내고 있다. 특히 해박한 불교 지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선인선과 악인악과(善人善果 惡人惡果)’의 업보론적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동시에 대안까지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구청장은 “책을 쓰면서 현대인들에게 탐내고 화내는 것은 어리석으며 공존하고 공영하는 ‘상생의 미학’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많은 문화유적지를 다녔는데, 남도 화순의 미스터리 사찰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되어 한반도에서 유일한 천불천탑의 베일을 벗기기로 마음먹고 구전설화 등 문헌자료를 직접 찾아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평소 주말에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등 문화기행을 즐기는 이 구청장은 책 집필을 위해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4년간 10여 차례 현지답사하는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한편 이 구청장은 2005년 역사 수필인 ‘경복궁 기행열전’을 펴내기도 했으며, 1996년 한국수필과 한맥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시 문화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도시와 산] (29) 전주 고덕산

    [도시와 산] (29) 전주 고덕산

    고덕산(高德山·603.2m)은 ‘천년고도’ 전북 전주시를 지켜온 산이다.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과 대성동,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 등에 걸쳐 있다. 전주시가지의 높은 건물이나 막힘이 없는 곳에서 보면 남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정상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시내에서 가깝지만 교통이 약간 불편해 가까우면서 먼 산처럼 느껴진다. 사람 발길이 뜸한 만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고 남고산성, 관성묘, 남고사 등 문화유적과 명승지가 많아 전주시민들의 애틋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을이면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단풍이 빼어나고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산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고덕산은 덕이 높은 산이란 뜻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고대산(孤大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으로 기록돼 시대마다 달랐다. 고달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높다리기’라고도 불렸다. 산의 모습이 우뚝 솟아 있으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기품이 있어 “덕이 높다.”라는 고덕이 어울리지만 유래는 알 수 없다. 높다라기산에서 차음됐다고도 한다. 임진왜란을 비롯해 전란이 닥칠 때마다 고덕산과 그 줄기에 있는 남고산성은 전주를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치열한 전쟁터였다. 고덕산 줄기에는 둘러볼 만한 유적들이 많다.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장군을 무신으로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관성묘는 고종 32년(1865) 전라도 관찰사 김성근과 남고산성을 책임지던 무관 이신문이 제안해 각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했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상이 있고 양쪽 벽에 ‘삼국지연의’ 내용을 그린 벽화가 있다. 남고진 사적비에는 남고산성의 내력이 담겨 있다.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각 봉우리에서는 한옥마을을 비롯한 전주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만경대에는 고려 말기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1337~1392년)가 당시 서울인 개경을 바라보며 지은 시가 지금도 돌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정몽주는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년)가 전승 기념으로 전주 오목대에서 큰 잔치를 베풀면서 고려를 엎고 조선을 개국할 뜻을 피력하자 말을 달려 남고산 만경대 올라 기울어가는 고려를 걱정해 이 시를 지은 것으로 전해내려온다. ●문화유적의 보고 남고산성 고덕산에 오르다 보면 남고산성(사적 제294호)을 거치게 된다. 고덕산의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형 산성이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220m) 정상을 중심으로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았다. 남고산성은 문화유적의 보고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따르면 남고산성은 901년 후백제의 견훤(867~935년)이 쌓았다. 이 때문에 견훤산성 또는 고덕산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견훤은 전주의 동서남북을 제압하기 위해 산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각각 사찰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남고산성은 폭 3.4m 높이 1.2m, 길이 5.3㎞로 축성됐으나 현재 3㎞ 구간만 밝혀졌다. 전주에서 남원, 순창으로 통하는 교통상 요지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으나 이곳에서 끝까지 대항했다. 현존하는 성벽은 임진왜란 당시 전주 부윤 이정란이 왜군을 막을 때 쌓았다. 1811년(순조 11년) 관찰사 이상황이 증축, 이듬해 박윤수가 관찰사로 부임해 완공했다. 전주시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108억원을 들여 성곽길이 2950m 가운데 1546m를 복원했다. 이 산성은 조선 순조 때 수축해 남고진을 두었고 효종 때 설치한 중진영, 숙종 때 쌓은 위봉산성과 함께 전주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산성 안의 남고사 앞쪽에 남장대, 뒤편에 북장대를 두었다. 남장대 아래 계곡에 군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고 산성별장 1명이 22명의 지휘관과 1400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주둔했다. ●사방 탁 트인 조망권 장관 고덕산은 전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등산코스로 유명하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3~4시간이면 정상을 밟는다. 남고산성 성벽 위를 걷기도 하지만 정상에 이르는 길에서 모두 만나게 된다. 코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동서학동 좁은목 약수터 방향, 평화동 흑석골 방향, 전주교육대학 뒤쪽 등이다. 예전에는 약수터를 경유하는 코스를 많이 선택했지만 평화동에 아파트 밀집지역이 형성되면서 학산 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아졌다. 문화유적탐방을 나서는 등산객들은 아직도 전주교대 뒤쪽길을 선택한다. 어느 코스든 비교적 길이 평탄하고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초입부터 중턱까지 구간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여성 등산객들이 선호한다.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 않던 산행길은 남고산성 북동쪽 성곽 뒤로 올라서면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 성곽길을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는 전주시가지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고덕산 정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지막 정상부근 오름은 만만치 않다. 아마추어 등산가들은 10여분 정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짝 힘을 써야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압권이다. 북서쪽으로는 발 아래 전주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익산시까지 내려다보인다. 동쪽으로는 기린봉, 치명자산 너머 진안 마이산이 가물거린다. 남동쪽으로는 아득히 지리산 연봉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고 서쪽으로는 모악산의 자태를 살펴볼 수 있다. 고덕산은 최근 들어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등산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적한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과 문화유적을 탐방하는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많아졌다. 남쪽 기슭에는 전원생활을 추구하는 동호인들의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남고사도 가보세요 남고사(南固寺)는 전주시민들에게 친근한 사찰이다. 역사적 의미가 큰 남고산성 안에 있는 절로 전주 사람들은 초·중·고 시절 한두 번쯤은 소풍을 간 경험이 있다. 예로부터 해질녘에 들리는 남고사의 종소리를 ‘전주팔경’의 하나로 꼽을 만큼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전주시내 남쪽에 위치한 작은 사찰로 접근성이 좋아 주민들이 산행할 때 자주 찾는다. 산 아래 주차를 하고 2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도달한다 남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의 제자 명덕화상이 668년 창건했다. 보덕이 고덕산 남쪽에 경복사를 창건해 열반종의 근본 도량으로 정했는데, 명덕화상이 남고사를 창건해 그 말사의 자격으로 열반종의 전통을 이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 때는 남고연국사(南固燕國寺)라고 불렸다. 남고연국사가 남고사로 표기된 것은 견훤이 산성을 쌓고 사고(四固) 사찰을 지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까지는 교종 계통의 사찰이었으나 조선 세종 때 선·교 양종을 통합하면서 정한 48개 사찰에 들어가지 못해 사세가 크게 위축됐다. 임진왜란 이후 선종이 크게 신장되면서 선종계 사찰이 됐다. 1680년(숙종 6년)에 관음전이 들어서고 1881년(고종 18년)에 중건했다. 1981년 대웅전, 1984년 삼성각, 1985년 관음전을 중건했다. 1992년 관음전과 요사가 불에 탔고 1995년 관음전을 인법당으로 복원하고 1996년 목조관음보살상을 모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관음전은 1680년 창건돼 1992년 10월7일 불에 탄 것을 1995년 복원했다. 사천왕문에는 다른 절에서처럼 사천왕상을 모시지 않고 사천왕을 그린 탱화만 둔 점이 특이하다. 옛 절터 남고사지는 현재 대웅전 오른쪽 앞 건물자리다. 도 기념물 제72호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그저 시간 됐으니 끝나는구나 하는거지 뭐”

    “그저 시간 됐으니 끝나는구나 하는거지 뭐”

    “그냥 시간이 됐으니 끝나는구나 하는 거지. 뭐 특별한 소회랄 게 있나.” 신임 총무원장 선거로 부산한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 최대 종단 지도자의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이달 30일로 자리를 떠나는 총무원장 지관(77) 스님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조계사 사적비는 문화재적 가치 지녀” 퇴임을 앞두고 7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스님은 “끌어내면 그만하는 거고 아니면 4년 채우는 자리 아니냐.”면서 덤덤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대했다. 종교편향 논란부터 문화재관람료, 자연공원법 문제 등 결코 녹록지 않은 4년을 지내왔지만, 스님은 구차한 지난 이야기들을 늘어놓기를 거부했다. 한창 열기가 뜨거운 후임자 선거를 두고도 “엄정관리 해야 한다.”는 당부뿐. 일찌감치 재선 출마의 의지가 없음을 공공연히 밝힌 스님은 “아마 잘되고 있겠지.”라고 하면서 그저 넘긴다. 스님은 임기말이랍시고 지난 얘기를 되씹는 것보다는 현재의 일에 열정을 보였다. 대신 이야기를 꺼낸 것이 8일 제막식을 갖는 ‘세존사리탑’과 ‘조계사 사적비’. 둘은 스님이 총무원장 소임을 맡으면서부터 원력을 냈던 주력사업 중 하나다. “사리탑은 1910년대 세운 것인데, 광복 직후부터도 왜색 논란이 많았지. 조계종 총본산에다가 그런 것을 계속 둘 수는 없잖아.” 사람들의 뜻을 모은 뒤 지난해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 1년 반 만에 완성을 했다. 더불어 조계종의 역사를 같이한 중심사찰인 조계사에 사적비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조계종의 80년사를 기록한 사적비도 함께 세운 것. 비문도 직접 지었다. 스님은 “임기 내 끝내야 된다는 생각에 너무 서두른 것 같다.”면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적비는 산사에 가장 어울리는 유형의 조형물이고 문화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후임을 위한 당부의 말을 물으니 “다음 세대뿐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해야 할 일은 늘 많다.”고 답을 한다. ●불교대사전 편찬작업 계속 스님은 남은 임기를 잘 정리하는 것은 물론 조실로 있는 서울 경국사에 머무르면서 ‘가산불교대사림’(불교대사전) 발간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예정이다. “국민 모두가 생명을 아끼고 섬기는 동체대비의 마음을 회복하길”이라고 빌며 스님이 20여년 전부터 해온 작업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제모습 찾은 낙산사 베일벗다

    제모습 찾은 낙산사 베일벗다

    2005년 4월5일 강한 바람을 등에 업고 강원도 일대를 삼킨 화마(火魔)는 천년고찰조차도 피해갈 수 없었다. 1300여년 전 의상대사의 원력이 서린 강원 양양 낙산사는 그렇게 산불 앞에 모든 걸 내어주고 말았다. 불이 지나고 경내에 남은 것이라고는 사천왕문과 대성문의 일부, 그리고 불길 속에서 스님들이 안고 뛰어나온 ‘건칠관음보살상’뿐이었다. 그후 이어진 4년간의 복원불사. 잿더미 속에서 낙산사는 사부대중의 염원을 모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7년 1차 복원불사에 이어, 2차 복원불사 회향식을 앞두고 6일 찾아간 낙산사는 고졸함과 신생의 탄력을 두루 갖춘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정념 주지스님 “사람·자연·문화의 조화” “낙산사는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8번이나 대화재가 났습니다. 특히 13세기 몽고침략 시기와 6·25전쟁 때 많은 건물들이 소실됐죠. 하지만 부분부분 이뤄진 전각 복원은 체계성이 없었습니다.” 낙산사 주지 정념(47) 스님은 “기존 건물이 밀집돼 있고 바람길을 막아 불이 쉽게 번졌던 것”이라고 했다. 이에 복원불사는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길, 바람길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지형을 따르다 보니 ‘ㄱ, ㄷ’자가 아닌 형태의 전각이 나오기도 하고, 요사채들은 서로 거리를 넓혀 숨통을 텄다. “사람과 자연, 문화가 하나 되는 사찰을 만들고 싶다.”는 주지 스님의 바람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복원불사는 우선 국립문화재연구소의 2년여에 걸친 발굴조사로 시작됐다. 조사를 통해 2005년 화재는 물론 6·25전쟁으로 소실되기 이전까지의 흔적도 찾아냈다. 이에 주법당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은 조선초기의 모습을 따랐고, 유구의 흔적이 일관적이지 않은 다른 전각들은 18세기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山寺圖)’를 바탕으로 그대로 복원을 했다. 160억원 가량이 들어간 대규모 불사. 주지 스님은 “화마의 아픈 기억이 있는 만큼 화재 대책도 단단히 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원통보전 등 주요 건물에는 수막시설을 설치하고 사찰 곳곳에 10여대의 방수총을 설치했다고 한다. 또 건물마다 방화사 및 방화수, 소화기를 설치하고, 건물 주변에는 화재에 강한 나무들을 식수했다. ●새로운 수행분위기·지역사회와의 소통 힘써 새로 태어난 낙산사는 옛 모습을 찾아가는 것 외에도 새로 수행 분위기를 만들고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심검당’ 등 정진 공간을 만드는 한편, 지역아동센터·유치원 등도 함께 지어 운영하고 있다. 사찰 무료입장, 커피·국수 무료 제공도 오래전부터 해온 일. 또 이번에 끝난 2차 불사에 이어 부속·편의시설을 짓는 3차 불사를 진행, 템플스테이체험관 등도 지을 예정이다. 그리고 정념 스님은 낙산사의 역사 보전을 위한 ‘특별한 준비’도 했다고 한다. 낙산사의 역사와 함께 복원 불사에 관한 기록을 담은 타임캡슐. 여기에는 언젠가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꼭 불사에만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 금과 불사비용을 함께 넣었다고 한다. 스님은 “그걸 원통보전 보살상 밑에 묻었다.”고 귀띔하면서 “그걸 열 일은 앞으로 절대 없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양양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역사와 불교… 소통의 세계로

    역사와 불교… 소통의 세계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강화도 삼랑산성, 그 안에 위치한 전등사는 강화의 역사와 함께해 온 사찰이다. 4세기 말 창건 이후 수차례 중수를 거치는 동안 전등사는 몽고항쟁을 지켜봤고, 또 병인양요를 겪어야만 했다. 전등사가 중심이 돼 올해 아홉 해째를 맞는 ‘삼랑성 역사문화축제’는 전등사와 강화도의 역사 사이의 연장선이다. 행사 자체도 애초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문서 반환 운동의 일환으로 촉발됐다. 그러던 것이 불교문화 행사, 지역 축제와 결부되며 커졌고, 지난 해에는 10만명 가까운 인원이 찾을 만큼 큰 역사문화축제가 됐다. 새달 10~18일 전등사 일원에서 열리는 올해 축제는 ‘역사와의 소통(笑通)’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특히 올해에는 전등사가 보관 중인 ‘정수사개판(淨水寺改版) 묘법연화경판(妙法蓮華經板)’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출해 완전한 형태의 서책을 묶는 시연행사를 마련한다. 해인사의 인출 전문가들이 참여해 20권가량을 만들어낼 계획. 완성본은 새로 준공한 전등사 ‘설법전’에 모실 부처님 복장유물로 들어가고, 강화도 지역 박물관에도 기증할 예정이다. 2년 전부터 실시한 영산대재(靈山大齋)는 올해도 이어진다. 중요무형문화재 50호인 영산재는 죽은이를 천도하는 불교식 진혼제로, 국가의 위기와 함께 했던 강화의 호국영령들을 위로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한 것. 삼랑성문화축제에서 시연되는 영산재는 대중적 성격을 가미해 작법(作法)들 사이에 살풀이나 민요 등 다른 전통 문화 공연을 삽입해 넣었다. 11일 전등사의 고승들을 기리는 ‘다례제’에 이어 열릴 예정이다. 또 삼보사찰 송광사에서 가져온 100년 이상된 기와 200여점에 단청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을 모아 ‘고(古)기와 그림전’을 열고, 전등사와 강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강화의 가을바람전’, ‘생태사진전’ 등도 개최한다. 이 밖에도 10일 ‘전등사 가을음악회’, 17일 ‘강화문화한마당’, 18일 ‘서도소리 공연’, ‘비보이 공연’ 등 공연과 각종 체험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전등사 주지 혜경 스님은 “소통의 문제가 대두되는 오늘날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웃음으로 소통하는 길을 열고 싶었다.”면서 “종교적 색채를 넘어 역사를 돌아보고 세대·계층·지역이 소통하는 행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눈·귀·입이 즐거운 도봉산으로 오세요

    눈·귀·입이 즐거운 도봉산으로 오세요

    빼어난 산세, 웅건한 기상을 지닌 서울 도봉산에서 가을 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 서울 도봉구는 25~26일 도봉산 주차장과 인근 공원에서 ‘제3회 도봉산 축제’를 연다고 22일 밝혔다. 축제는 도봉산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산사 음악회와 사찰 음식전, 등산복 패션쇼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로 꾸며졌다. 또 신종플루에 대비, 방역활동을 하고 공공화장실에 직원을 배치해 수시로 살균 세척제로 소독과 감지 측정 검사를 한다. 최선길 구청장은 “축제가 도봉산을 관광특구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미 문을 연 인근 서울창포원과 도봉산 입구 디자인거리 조성사업, 만남의 광장 및 생태하천, 산림테라피단지 및 올레길 조성사업 등으로 서울의 대표적 생태관광단지 ‘그린토피아 도봉’을 만드는 데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대표하는 가을 산 축제로 자리매김 지난해 1만 6000여명이 찾은 도봉산축제가 신종플루로 일정은 짧아졌지만 더욱 알찬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축제 첫날인 25일 오전에는 최 구청장과 주민 1000여명이 도봉산 등반에 나선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씩 도봉산을 오르는 최 구청장과 주민들이 함께 산에 오르면서 구정에 대한 각종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예정이다. 또 팀별로 등산상식 필기시험, 구간별 체력 테스트 등 재미난 게임도 한다. 주차장 한 쪽에서는 등산복 패션쇼와 등산 장비 꾸리기 및 텐트 빨리 치기, 탈북가수 차영주의 공연도 열린다. 이어 오후 6시에는 도봉산입구 공영주차장 특설무대에서 도봉산 축제를 알리는 개막 행사가 펼쳐진다. 석양이 길게 드리운 도봉산을 깨우는 천년의 북소리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성악가 박요환, 오미선의 축하공연과 환상의 레이저와 불꽃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밤을 수놓는다. 또 가수 조항조, 박상철, 애프터스쿨, 설운도 등의 공연도 이어진다. ●구청장과 등반·바둑대회 등도 개최 도봉산입구 생태공원에서 스님의 맛깔스러운 음식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사찰음식 전시와 시식행사가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스님들이 사찰 음식을 집에서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추천 음식에 대한 재료와 조리방법을 알려준다. 또 시식코너에는 사찰에서 만든 삼색송편, 연근부침, 탕평채, 각종 부각과 튀김, 차 등을 맛볼 수 있다. 도봉산 제1휴식처에서는 도심의 회색 때에 찌든 현대인을 위한 산사 음악회가 열린다.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가을 밤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맑고 고운 선율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음악회로 도봉산 축제의 자랑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대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사인회와 등산용품 전시회도 열린다. 또 축제 기념으로 도봉산 입구 등산용품 전문매장 26개가 그랜드세일에 들어간다. 이밖에도 도봉산입구를 중심으로 깃발그림 전시회, 도봉산 사진전, 26일 도봉구민 바둑대회도 열린다. 남명택 문화공보과장은 “신종플루 등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도봉산 관광특구 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고자 이번 축제를 준비했다.”면서 “서울 시민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에게 도봉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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