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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조각 한만년 대표 별세

    출판계의 원로 구봉(久峰) 한만년 일조각 대표가 30일 오후 10시 19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79세. 고인은 식민치하인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전문 경상과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48년 탐구당에 입사,출판계에 몸을 담았다.52년에 원고를 수발하다 알게 된 유진오 박사의 딸과 결혼한 뒤 53년에 일조각을 설립했다. 고인은 한국학이란 말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영리를 떠나 한국학 관련 전문도서와 학술논문집을 간행,한국학의 개척과 정립에 향도적인 역할을 다했다. 특히 일조각을 역사학과 사회학,법학,의학을 중심으로 하는 학술전문출판사로 키우는데 힘을 쏟았다.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과 고 양주동 박사의 ‘고가연구’,김용섭 교수의 ‘조선후기농업사 연구’ 등은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힌다.지금까지 일조각에서 펴낸 한국학 관련도서는 1000여종에 이른다. 고인은 70년 검인정교과서 사장에 이어 1974년부터 80년까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도서의 부가가치세 면세조치를 이뤄내는 등 출판문화 진흥에 기여했다.우당 이회영선생 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활동도 왕성하게 펼쳤다.이같은 공로로 대한민국예술상,화관문화훈장,인촌상,간행물윤리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일업일생(一業一生)’이 있다.몇차례 정계 입문 권유를 받기도 했으나 “일업일생,출판이 평생의 업”이라며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문예출판사 전병석 사장은 “출판계의 사표”라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효숙(74)씨와 4남1녀가 있다.장남 성구(서울대 의대),차남 경구(국민대),삼남 준구(서울대 의대),사남 홍구(성공회대)와 딸 승미(연세대)씨는 교수로 활동 중이다.발인은 4일 오전 8시.장지는 강원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선영이다.(02)760-2091. 김종면기자 jmkim@˝
  • 김기덕감독 문화훈장 받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사마리아’로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김기덕(44)감독이 7일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는다.
  • 원로작곡가 황문평씨 타계

    영화 주제가 ‘빨간 마후라’로 유명한 원로 작곡가 겸 평론가 황문평(黃文平)씨가 13일 오전 11시50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5세.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본명이 해창인 고인은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를 졸업한뒤 가요작가로 입문,1948년 한국 최초의 음악영화 ‘푸른언덕’의 주제가를 비롯해 영화 ‘원술랑’삽입곡 ‘이 몸 님일래’와,‘꽃중의 꽃’‘호반의 벤치’등 영화·드라마음악 800여곡을 작곡한 한국 대중음악의 산증인.대중문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독특한 해설로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고인은 평소 우리 대중문화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으며 특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신중한 입장과 태도를 견지했었다. 1948년 한국무대예술원 음악위원장을 시작으로 군가 제정위원,HLKZ-TV국 편성과장·음악과장을 거쳐 KBS TV 개국위원,방송윤리위원,공연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방송관련 일에 주로 몸담았다.이후 한국연예협회 이사장을 시작으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및 고문,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문화사전 편찬위원,참전예술인협회 명예회장을 지내는 등 영화 예술계 원로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영화와 음악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비롯해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상,대종상,청룡상,KBS가요대상 특별공로상,서울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자신의 대표적인 음악을 수록한 ‘황문평 작곡집’을 비롯해 가요 야화를 담은 ‘노래따라 세월따라’ 등이 있고 수필집 ‘어린꿈의 신화’‘돈도 명예도 사랑도’를 남겼다.유족은 장녀 인아(60),장남 인규(58),차남 원규(56)씨 등 2남 1녀.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면 발인은 17일 오전 8시.(02)3410-6902. 박상숙기자 alex@˝
  • 화제의 승진 4인

    대규모 인사인 만큼 화제의 승진자도 많았다. 제일기획 상무보로 발탁된 김찬형(44)씨는 내로라하는 이벤트 전문가. 지난 88년 제일기획에 경력으로 입사,그동안 탁월한 이벤트 연출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평소 세련된 패션감각과 잘 다듬은 구레나룻·턱수염을 자랑,‘삼성맨답지 않은 삼성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세대 재학시절 응원단 ‘아카라카’의 단장을 맡았고 제일기획 입사 전 이벤트 전문회사 ‘연 하나로’에서 활동하는 등 일찌감치 이벤트와 인연을 맺었다.중앙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개막식 연출을 맡아 한국의 IT(정보기술)를 적극 표출하는 독창적인 개회식 행사를 선보여 세계의 주목받았다.이 공로를 안정받아 본인은 문화훈장 옥관장을,회사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의 역량은 2003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한 경쟁 프리젠테이션에서 더욱 빛났다.지금까지의 경쟁 프리젠테이션과는 달리 남북 긴장 완화,평화 정착이라는 염원을 아름답고 감성적인 화면에 담아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임원들과 세계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최근에는 국내 최초의 ‘이벤트 수출’로 평가받는 2004 아프리칸 네이션스컵(ANC) 축구대회 개막식 행사 연출까지 맡아 국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또 중국인으로는 처음 왕통(41) 중국통신연구소장을 상무보로 승진시켜 2002년 이후 3년 연속 외국인을 정규 임원으로 발탁했다. 왕 상무보는 베이징 우전대학을 졸업한 뒤 우리나라 정보통신부격인 중국의 신식산업부 산하 베이징설계원에서 부원장(한국의 국장급)을 지내고 당부서기까지 겸임한 고위 공무원 출신.삼성이 중국내 통신사업을 위해 설립한 중국통신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2000년 입사했다. 입사후 우수연구원 영입과 연구인프라의 조기구축,중국연구소 조직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왕 상무보는 베이징설계원 시절 GSM(유럽식 이동전화) 방식을 전격적으로 도입하는 등 탁월한 성과를 올려 34세의 나이에 기획관리·마케팅 담당 부원장으로 발탁됐다.중국정부는 능력을 인정,현재까지도 신식사업부에 원적을 유지해 주고 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중국연구소 개소식 때 중국의 장춘강 신식산업부 차관 등 중국 통신업계의 거물들을 대거 참석시키기도 했다.한국통신에서 6개월동안 교환근무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승진 연한을 2년 앞당겨 전무에 발탁된 삼성전자 서강덕(47)씨는 플래시메모리 사업의 성공 기반을 조성한 인물로 평가된다.지난해 플래시 메모리 및 차세대 기술개발을 선도,인텔을 제치고 삼성전자가 플래시 부문 1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근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연루됐던 윤석호(51) 구조조정본부 전무는 삼성SDI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박건승 류길상기자
  • 부고/중요무형문화재 정경태옹

    중요무형문화재 가사의 예능보유자 정경태(鄭坰兌)옹이 31일 오전 4시50분 별세했다.86세. 정옹은 1931년 시조창에 입문한 이후 가곡과 가사 거문고 단소 대금 등을 차례로 배웠으며,1951년에는 전주국악원을 창설했다. 1975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그는 보관 문화훈장과 KBS 국악대상 공로상,방일영 국악상 등을 수상했다.유족은 부인 석정숙씨와 6남2녀.빈소는 서울 국립의료원,발인은 2일 오전 7시.(02)2260-7147.
  • 원로 아동문학가 윤석중선생 별세

    동요 ‘낮에 나온 반달’을 쓴 원로 아동문학가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선생이 9일 0시5분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92세.선생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뒤를 이어 ‘어린이’지를 발행하고,‘새싹회’를 조직하는 등 평생을 동시와 동화에 바친 아동문학의 거목이었다. ▶관련기사 18면 ‘낮에 나온 반달’을 비롯하여 ‘어린이날 노래’ 등 1000편이 넘는 동시와 ‘열손가락 이야기’ ‘멍청이 명철이’ ‘열두 대문’ 등 다수의 동화집을 남겼다.정부는 이날 윤석중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고 또 국립묘지에 안장키로 했다. 유족은 부인 박용실(朴鏞實)씨와 아들 태원(台元)·원(源)·혁(赫)씨,딸 주화(珠華)·영선(善)씨 등 3남2녀.빈소는 삼성서울병원.발인은 12일 오전 9시 서울 방배동 방배성당.(02)3410-6915. 황수정기자 sjh@
  • 故 석동 윤석중 옹의 삶/아이들과 한평생 ‘아흔두살 어린이’

    9일 타계한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 선생은 풍요로운 우리말 표현을 담은 아름다운 동시와 동화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였다.선생의 작품은 어느틈엔가 사라져버린 전래동요의 빈 자리를 메우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새로운 ‘국민동요’였다. 선생은 13세 때인 1924년 동시 ‘봄’을 ‘소년’지에 발표하여 등단한 이후 80년 가까이 어린이 문학운동에 몸을 바쳤다.방정환·윤극영 등과 일제강점기 문화적 암흑상황을 아동문학으로 극복하려 노력한 주역이기도 하다.남의 책에 서문을 안 써주기로 유명했던 춘원 이광수도 그의 동요집에는 주저없이 글을 실었다고 한다. 1941년 일본 상지대를 졸업한 선생은 해방을 맞은 1945년 ‘주간 소학생’을 창간하여 본격적인 어린이 문학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한국전쟁을 거치며 동요가 사라질 위기가 닥치자 어린이 노래 운동을 다각적으로 펼쳤다. 그의 동시는 한국적 정서에 충실하면서도 서양식 동요의 운율에 쉽게 적용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그가 남긴 1000여편의 동시 가운데 무려 800여편이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낮에 나온 반달’은 대표적인 사례이다.리듬감 있는 그의 동시는 우리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퐁당퐁당)와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댁에…’(집 보는 아이),‘기차길 옆 오막살이/아기 아기 잘도 잔다…’(기차길 옆 오막살이)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밖에 ‘날아라 새들아…’(어린이날 노래)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졸업식 노래)는 한국사람이라면 노래를 들으며 한번쯤 환희를 맛보거나 눈물을 흘렸을 명곡들이다. 그는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필치로 동화 창작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열손가락 이야기’ ‘멍청이 명철이’ ‘열두 대문’ 등 동화집은 그 결실이었다. 선생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3·1 문화상(1961)과 국민문화훈장(1966),‘외솔상(1973),막사이사이상(1978),대한민국문학상(1982),세종문화상(1983),대한민국 예술원상(1989),인촌상(1992) 등을 수상했다.팔순을 맞아 동요집 ‘여든 살 먹은 아이’를 출간하기도 한 선생의 노작(勞作)은 ‘새싹의 벗 윤석중 전집’에 대부분 실렸다. 황수정기자 sjh@
  • 한국 연극에 ‘풍자의 씨앗’ 남기고…원로 극작가 이근삼씨 별세

    원로 극작가인 이근삼(李根三) 서강대 명예교수가 28일 오전11시1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75세. 고인은 사실주의극이 중심을 이루던 1960년대 한국 연극계에서 비상식적 인물과 소극(笑劇) 요소를 도입,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부패한 권력층과 타락한 지식인을 예리한 풍자와 우화(寓話)로 그려냈다.또 웃음 속에 소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 웃기면서도 슬픈 이중의 웃음구조를 창출했다.서사와 우화적 수법,극적 아이러니 등 기존 연극의 상투성을 탈피한 다양한 시도는 한국연극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후배들을 아꼈던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외아들을 화장한 다음날,약속돼 있던 대로 연극배우 윤주상의 결혼식 주례를 서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평양 출신인 고인은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과 뉴욕대학원에서 극문학을 전공했다.1959년 ‘사상계’에 단막희곡 ‘원고지’를 발표하면서 데뷔한 이래 2001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까지 56편의 희곡을 발표했다.대표작으로는 ‘국물 있사옵니다’‘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유랑극단’ 등이 있다. 극작가로서의 활동외에도 육군사관학교,동국대,중앙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민중 극단 대표,한국 펜클럽 본부 부회장,방송위원회 심의위원장을 역임했다. 국민훈장 모란장,문화훈장 목관장,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인숙(洪仁淑)씨와 딸 유리(惟悧),유원(惟媛),유정(惟貞) 등 3녀.빈소는 서울대 병원,발인은 12월1일 오전 7시.(02)760-2010. 이순녀기자 coral@
  • 부고/ 일본 와카 시인 손호연 여사

    유일한 한국인 와카(和歌·일본 단가) 시인 손호연 여사가 22일 오전 7시30분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80세. 손 여사는 60여년 동안 단가 2000여 수를 지었다.지난 98년 일왕이 주재하는 ‘신년어전가회’에 초청받는 등 일본에서 최고의 단가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지난해 10월 한일양국의 상호이해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일본 외무대신 표창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단가집 ‘호연가집’‘제1무궁화’‘제5무궁화’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이승훈 리인터내셔널 회장 등 1남 4녀.빈소는 서울아산병원.발인은 24일 오전8시.(02)3010-2295
  • 우크라이나 문화훈장 수상

    강화자(姜華子) 베세토 오페라단 이사장은 한국의 오페라예술을 우크라이나에 처음 알려 양국의 문화교류 및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 문화훈장 서훈자 37명 선정

    문화관광부는 20일 문화훈장 서훈대상자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및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했다.문화훈장 서훈대상은 모두 37명으로 국악인 황병기씨와 고 신동엽·천상병 시인 등 5명이 은관문화훈장,배우 황해(본명 전홍구)씨와 문학평론가 김병익씨,가수 조용필씨 등 11명이 보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다음은 문화훈장 서훈자.●은관문화훈장(5명) 황병기,이종상,고 박봉석,고 신동엽,고 천상병 ●보관문화훈장(11명) 박외선,손석우,황해,황적인,길창덕,허만하,심우성,김동현,김병익,강효,조용필 ●옥관문화훈장(13명) 최은순,박노을,김기덕,박행보,윤승중,진성기,구희서,이토 아비토,이장호,김춘옥,안종만,고 김숙자,고 배호 ●화관문화훈장(8명) 양중해,노상준,정영삼,정지옥,이영철,이칠용,김영임,고 변훈 서동철기자 dcsuh@
  • 세종문화상 수상자 등 선정

    문화관광부는 557돌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발전 유공포상자 및 제22회 세종문화상 수상자를 1일 발표했다. 임정빈(66) 미국 UC 버클리대 한국어 과정 책임교수는 은관문화훈장,바우더베인 발라번(56) 네덜란드 레이던대 한국학과 주임교수는 보관문화훈장이 서훈된다. 또 송호림(38)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근정포장,알브레히트 후베(53)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학과 교수는 문화포장 대상자로 선정됐다.김영진(55) 서울 남성중학교 교장,정삼숙(62) 미국 애틀랜타 제일한국학교 교장,이종숙(67)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한국학교 교장은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세종문화상은 문화부문에 KBS 국제협력실,학술부문에 남풍현(68) 단국대 명예교수,과학·기술 부문 이일항(55) 인하대 정보통신대학원장,교육부문에 김수형(61) 경기여고 교장,국방·안보부문 노병천(47) 육군 제22사단 53연대장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 부고/ 국악현대화 선구자 이성천 선생

    이성천(李成千) 전 국립국악원장이 26일 오전 6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67세. 고인은 국악의 현대화에 선구적 역할을 한 대표적인 1세대 창작음악 작곡가이다.1936년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나 가톨릭대 의학부에 다니다 음악인으로 삶의 행로를 바꿨다.서울대 국악과와 대학원을 다녔고,이후 창작 국악에 평생을 매달렸다. 고인은 2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가야금 창작곡의 효시 ‘독주곡 제1번’(1962년)을 비롯하여 ‘놀이터’(1966년),‘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1974년),‘나의 조국’(1981∼1985년),‘타령에 의한 전주곡’(1986),‘초혼’(1990년) 등이 대표작이다.그는 또 국악기의 연주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 1987년에는 21현금을 고안하고,이를 위한 곡을 발표하여 가야금이 다채롭게 변신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국립국악원장과 한국국악교육학회장을 역임한 고인은 예술원 회원과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한국문화대상과 KBS국악대상작곡상,세종문화상을 수상하고 2001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영숙(崔榮淑)씨와 아들 정헌(正憲)씨와 딸 경애(景愛)씨 등 1남3녀가 있다.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은 29일 오전 9시.(02)590-2697.
  • 부고 / 신용호 前교보생명 명예회장

    보험업계의 산증인으로 교보생명을 창립한 대산(大山) 신용호(愼鏞虎·사진) 전 교보생명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6시 서울대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6세. 고 신 회장은 지난 1958년 대한교육보험을 창업,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개발하는 등 한국 보험업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교보생명이 보험 외길을 걸으면서 국내 보험업계의 빅3로 입지를 다진 것은 고인의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는다.’는 도전정신과 부단한 자기계발을 통한 창의력이 밑바탕이 됐다.고인은 1980년 서울 광화문 1번지에 사옥을 완공한 뒤 지하아케이드에 수익성 높은 상가를 유치할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단일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교보문고를 설립,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고인은 또 건축과 디자인에도 정통해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가 설계,최근 준공한 교보생명 서초동 사옥 설계도를 17번이나 거절했다.결국 마음에 드는 설계도를 얻고,외벽 타일은 수백번의 시험을 거쳐 ‘곰삭은 붉은색’ 타일을 탄생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특히 우리문학의세계화와 문화창달을 위해 대산문화재단을 설립하고,농촌 발전을 위해 대산농촌문화재단을 만드는 등 공익지원사업에도 앞장섰다.이같은 공로로 1996년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순이씨와 교보생명 회장인 장남 창재씨,차남 문재씨,장녀 영애·경애씨가 있다.장지는 선영인 충남 아산군 덕산면 대치리 산 48의 3이며,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영결식은 교보생명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3일 오전 6시30분.상주는 장남 창재씨,호상은 유태영 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이 맡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방일영 前 조선일보 회장 별세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의 부친인 우초(愚礎) 방일영(方一榮) 전 조선일보 회장이 8일 오전 2시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평안북도 박천 출신인 고인은 조선일보가 폐간된 지 2년 뒤인 1943년 4월 당시 사장이던 할아버지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의 비서로 조선일보에 입사한 뒤 조선일보사를 56년간 이끌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 경영인의 한 사람이다.고인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 방응모 회장의 뒤를 이어 1953년 사장에 취임,지난 93년 회장직을 물러날 때까지 조선일보를 한국 굴지의 신문으로 자리매김시켰다.회장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다가 99년 지병으로 은퇴했다. 6·25전쟁 중 30살의 젊은 나이로 사장 자리에 앉은 고인은 사옥이 불타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스스로 윤전기를 손질하고 사채를 얻으러 다니는 등 회사 재건에 박차를 가했으며 이후 탁월한 경영능력과 인력관리를 통해 조선일보의 성장을 일궜다. 고인은 1963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1969년 아시아신문재단(PFA) 부이사장,1976년 IPI한국위원장 등을 역임했다.또 방일영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도 힘써 82년과 99년 각각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한편으로는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해 조선일보를 키웠으며,코리아나호텔 설립에 특혜 의혹을 받았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족은 장남인 방 사장과 차남 용훈(勇勳)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5남 1녀.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7시,장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가릉동 선산.(02)760-2091∼2(서울대병원),(02)724-5110(조선일보사). 이종수기자 vielee@
  • 명창 박동진 그는 누구인가 / 소리에 눈 뒤집혀 산 ‘큰 광대’

    8일 타계한 박동진 옹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할 만한 판소리 명창이었다.1992년 한 TV 광고에 출연하여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일갈한 것이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듯,우리도 몰랐던 우리 것의 소중함을 심어준 진정한 광대(廣大)였다.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인 박 명창은 1916년 현재의 충남 공주시 무릉동 감나무골에서 태어났다.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부모는 면서기라도 시킬 요량으로 그를 대전에 있는 중학교에 보냈지만,졸업을 몇달 앞두고 이동백 송만갑 장판개 이화중선 김창용 등 당대 명창이 망라된 협률사의 공연을 보고 자신의 말처럼 “눈깔이 홀랑 뒤집혀지는” 체험을 한다. 이후 머슴노릇을 하며 청양의 시골소리꾼에게 배우고,대구의 기생들 소리선생을 하다가 박초월 김소희 박귀희 등이 활동했던 여성창극단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조학진에게 적벽가,정정열에게 춘향가,박지홍에게 흥보가,유성준에게 수궁가,김창진에게 심청가를 잇따라 배우면서 앞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25살 무렵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자살을 하려고 독약을 마시는 쓰라린 기억도 있었다. 그러나 열등감을 오기로 극복하면서 한국전쟁 직후 만난 두 번째 부인의 내조 속에 하루 10시간씩 6년 동안 소리공부에 전념한 것이 오늘날 그를 있게 한 바탕이 됐다.1962년에는 국립국악원,1967년에는 국립창극단에 들어가 소리공부를 계속하면서 1968년 흥보가를 시작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완창했다.잊혀져 가던 판소리를 부흥시키고,수많은 명창들이 완창에 도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970년 서울신문 문화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73년에는 적벽가로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됐고,1982년에는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1998년 늦가을 고향에 판소리 전수관을 세우면서 후진양성에도 의욕을 보였지만,다음해 평생을 뒷바라지하던 부인과 사별한 뒤 급격히 쇠잔해졌다. 그는 지난달 7일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도 소리를 하시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하지.소리보다 더 좋은 것을 보지 못했어.요즘은 너무 양악에들 빠져 있지만….세상이 미쳐 돌아가 민족의 얼과 정신을 잃어가는 거지.”라고 변함없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걱정을 남겼다. 한편 박 명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날 저녁부터 조문행렬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노무현 대통령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심대평 충남지사 등 각계에서 보낸 조화도 빈소 안팎을 메웠다. 빈소를 찾은 윤미용 국립국악원장은 “판소리 발전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라면서 “앞으로 이만큼 국악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추모했다.국악인 신영희씨는 “내가 TV코미디에 나가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국악인이 무슨 귀족이냐,광대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자신감을 얻은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빈소에는 이밖에 고인과 30여년 동안이나 호흡을 맞춰온 중요무형문화재 고법 보유자 주봉신 명고수와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최승희·강정자 등 후배 국악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한편 고인이 마지막까지 원로사범으로 적을 두고 있던 국립국악원 광장에서 10일 신영희씨의 추모창 등으로 영결식이 치러지면 유해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선영에 안장된다. 서동철 기자 dcsuh@ ■소리에 시대정신·현장성 담아 민초 곁으로 69년 흥보가 등 다섯마당 완창 신기원 “나는 명창보다 광대가 더 좋다.좌중을 웃기고 울리는 광대야말로 소리꾼이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다.” 박동진 명창이 생전에 몇 번이고 강조하던 얘기다.그는 종종 ‘욕쟁이 명창’이라고 불릴 만큼 육두문자를 섞은 욕설을 늘어놓는 것이 특기였다.품위를 떨어뜨린다고 곱지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관객이란 파안대소하면서 웃음보를 터뜨려야 비로소 마음을 열고 소리에 서서히 빠져들기에” 적절히 의도된 것이었다. 박 명창은 국악팬들로부터 판소리의 대부로 떠받들어지기 이전까지는 ‘근본을 알기 어려운 소리’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당대의 명창들로부터 판소리 다섯 마당을 모두 섭렵했지만 스승들로부터 충분한 구전심수(口傳心授)를 이루지 못하고 ‘피나는 탐색 끝에 스스로 터득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 명창의 ‘약점’은,역설적으로 판소리의 시대정신과현장성을 살리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완벽하게 물려받은 스승의 바디가 없으니,평생 추종해야 할 소리의 모범 또한 없었다.판소리 문화의 보수적인 틀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설도 과감히 바꾸었고,어려운 한문투를 쉬운 요즘 말로 고치는 것은 물론,그때그때 유행하는 말까지 집어넣은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대중성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박동진으로 추앙받지는 못했을 것이다.그는 1969년 흥보가를 시작으로 판소리 전 마당을 완창해 토막소리에 그치던 소리판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여기에 변강쇠타령과 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숙영낭자전,무숙이타령 등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잊혀졌던 마당을 차례로 모두 세상에 빛을 보게 만들었던 것은 그가 판소리 문화의 재정립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1973년에는 9시간40분짜리 창작판소리 ‘이순신전’을 발표하고,‘예수일생’을 판소리로 짜 선교활동을 폈던 것은,현대사회에서도 판소리가 살아있는 예술로 충분히 효용을 갖고 있음을 확신했기에가능했던 일이었다. 서동철기자
  • 박동진 명창 별세

    판소리 명창 박동진(朴東鎭·사진)옹이 8일 타계했다.향년 87세. 박옹은 이날 오전 9시10분쯤 충남 공주시 무릉동 ‘박동진 판소리전수관’에서 실신,119구조대가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찾지 못했다. ▶관련기사 12면 제자 김양숙(39)씨는 “아침에 목욕을 하신다고 해 물을 받아놓고 식사를 준비하다 안 나오시길래 욕실 문을 열어봤더니 의식을 잃고 욕조에 비스듬히 누워 계셨다.”며 “어제까지도 북을 들고 소리를 하시던 선생님이셨다.”고 말했다. 1970년대 후반 국립창극단장을 지내기도 한 박옹은 지난 98년 고향에 판소리전수관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82년 은관문화훈장과 89년 서울시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인철(仁哲·50·미국 앨라배마 현대자동차 현장소장),인수(仁秀·48·현대해상화재보험 이사),인석(仁石·43·평산공업 개발부장)씨 등 3남이 있다.장례는 국악인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발인은 10일 오전 10시.(02)3010-2270.정부는 박옹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
  • ‘동백 아가씨’ 작곡가 백영호씨

    1964년 ‘동백아가씨’를 작곡해 이미자를 ‘국민가수’ 반열에 올려놓은 원로 작곡가 백영호(白映湖·사진)씨가 21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83세. 1920년 부산에서 태어나 만주 신경음학원에서 공부한 고인은 ‘동백아가씨’‘여자의 일생’‘서울이여 안녕’‘울어라 열풍아’‘황포돛대’‘추억의 소야곡’등 이미자의 히트곡들을 주로 작곡했다.이밖에도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남상규의 ‘추풍령’ 등 4000여곡을 발표해 국내 가요계에서 ‘최다 작곡’ 기록을 세웠다.지난 94년 서울정도 600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과,99년 옥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최근까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과 서울중구문화원 이사를 맡아왔다. 유족은 부인 박정선씨와 경권·경국·경무씨 등 3남.빈소는 서울삼성의료원,발인 23일 오전 5시.장지 경남 사천시 선영.(02)3410-6917
  • 부고 / 청강 김영기화백 별세

    한국화단의 원로 청강(晴江) 김영기(金永基) 화백이 1일 오후 9시30분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타계했다.92세.191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중국 베이징의 보인대(輔仁大)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당대 중국 최고 화가인 제백석(齊白石ㆍ1863∼1957)을 사사했다.해방 후 이화여대·홍익대·고려대·성균관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고,국내외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1970년대에는 전통 동양화를 ‘한국화’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조선미술사’ ‘신라문화와 경주고적’ ‘동양미술사’ ‘오창석’ 등이 있으며,정부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김 화백의 선친은 영친왕의 서화 스승이자 ‘해금강 총석도’의 작가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유족으로는 부인 이정란(80)씨와 경식(캐나다 거주 화가),정림(치과의사),혜림(캐나다 거주)씨 등 1남2녀가 있다.빈소는 서울아산병원,발인은 3일 오전 10시.(02)3010-2237.
  • 소설가 故 이문구씨에 은관문화훈장

    지난 25일 타계한 소설가 고(故)이문구씨에게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문화관광부는 한국문학 발전에 공헌한 고인의 행적을 기려 27일 빈소인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방문,유족들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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