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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 어떤 건물을 지을까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 어떤 건물을 지을까

    지난 5월 18일 오후 경주에서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역사도시 유적지 주변의 공공건축, 도전과 과제’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체계적인 연구와 기획을 거쳐 부지를 선정하고 공모를 통해 건축설계 안을 선정해 추진하고 있는 ‘경주 월성 발굴조사 운영시설’ 건립 사업을 중심으로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서도 새로운 건축을 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하는 자리였다. 모두 12명의 전문가가 주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한 이 세미나에서 핵심 논점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부지의 적절성으로, 부지가 유적, 곧 월성 성벽과 해자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또 하나는 건물 유형의 적절성으로, 전통 건물 유형인 한옥이 아닌 현대식 건물이 적절한가 하는 점이었다. 이 세미나에서 몇 가지 관점이 제시돼 공감을 얻었는데, 모두 역사도시 유적지구의 공공건축에 관한 사회적 합의의 기반이 될 것들이다. 첫째, 문화재보호법에 따라서 문화재 주변에서는 민간의 재산권 행사가 크게 제약되는 현실을 고려해 문화재 주변의 공공건축은 타당성이 충분해야 하며 건축 수준도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도시의 유적지구 곳곳에 유적의 관리 혹은 출토 유물의 전시를 위한 건축물들이 지어져 왔는데 그 수준이 대체로 낮다는 것이 세미나에 참석한 건축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었다. 둘째,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 새로 지어지는 건축물은 유적과 조화를 이루고 유적을 돋보이게 하는 수준 높은 건축물이어야 하며, 반드시 전통 한옥형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관은 벽체가 일반 건물보다 높아야 하는데 그 위에 한옥 지붕을 얹을 경우 건물이 과도하게 크고 높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전통 한옥에서는 지붕이 건물 전체 입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건축과 문화재 분야에서 각각 6명의 전문가가 나서 경주 월성이라는 상징적인 유적지구에 어떤 공공건물을 지을지 논의하는 세미나의 분위기는 어떨까.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필자는 서로 날카롭게 상대 분야를 비판하는 냉랭한 분위기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간 건축과 문화재 분야는 서로 상반된 방향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서로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세미나의 분위기는 열띠었으나 차분하고 진지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성급하게 비판하기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참석자들의 열린 마음이 읽혔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어서 2011년에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이코모스는 ‘역사도시 및 도시지역의 보호와 관리를 위한 발레타원칙’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역사도시에서 유적의 가치와 환경, 곧 맥락을 존중하는 현대 건축 요소의 도입은 도시를 풍요롭게 하고 도시의 연속성이라는 가치를 살리는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있으니 그것은 새로운 건축이 역사지구의 공간 구성에 부합하고 그곳의 전통적인 형태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특정한 맥락을 이루는 유럽의 역사도시와 달리 지상에 구조물이 전무해 신축 건물이 두드러지기 쉬운 우리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서는 이런 지침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세미나의 소득 가운데 하나는 참석자들이 우리 역사도시의 경관적 특수성에 대해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도시의 유적지구에 새로 짓는 건물은 매장 문화재를 피해 지하를 주로 활용하고 지상으로 노출되는 부분을 제한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우리의 특수한 현실 속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수준 높은 생각에 이른 것이다. 유적이 즐비한, 그러나 현대생활이 지속되는 역사도시에서 새로운 건축을 하는 것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서로 다른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와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에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런 공론의 장을 통한 소통은 서로 다른 생각을 좁히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높은 생각에 이르게 해 준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박물관과 미술관 바로 알기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박물관과 미술관 바로 알기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제대로 그 개념을 모르고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미술관이다. 사람들은 화랑과 미술관, 또 미술관과 박물관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개념의 오류는 박물관의 역사라는 위엄을 통쾌(?)하게 깨트려버린 가족용 코미디 모험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와 그 속편 ‘박물관이 살아있다2-스미소니언의 소동’(2009), ‘박물관이 살아있다3-비밀의 무덤’(2014)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편이 무직의 이혼남인 래리(벤 스틸러)가 가까스로 박물관 야간경비원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경험하는, 아니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되는 영화라면 2편은 스미스소니언 소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을 만큼 확실하게 자연사박물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가 모호하다.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미술, 사진, 조각 등등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다. 그래서 미술관인지 박물관인지 구분이 안 된다. 3편은 영국박물관이 무대인데 역사박물관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시공간을 초월해 이집트 파라오부터 나폴레옹, 폭군 이반, 알카포네 등이 한꺼번에 등장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한다.게다가 자연사박물관에 미술품들이 등장하는 것도 뜬금없다. 미국의 박수근쯤 되는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1930)은 당시 뉴욕에서 성했던 고급한 모더니즘에 대항해 미국 중부의 견실하고 분명한 농촌의 가치를 담고자 하는 지방주의의 중심이 된 작품이다.그랜트 우드의 작품은 인위적인 위장과 몰입을 부추기는 복잡함, 해독불가능한 양가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사물의 본질을 냉정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로 표현해 독일 신즉물주의와 통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모호하고, 한편으론 단순하면서도 소박해 보인다. 자신의 여동생 낸과 치과 주치의 BH 매키비 박사를 모델로 그린 ‘아메리칸 고딕’은 미국 미술의 아이콘이 된 그림이다. 등장인물의 풍부한 시각적 반향들로 인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분명하게 보이지만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은 심리적 상태를 드러낸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안토니오 카노바의 ‘이탈리아 비너스’(1812)가 뒤를 잇는다. 피렌체의 피티궁전에 있는 이 조각은 매우 관능적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작가의 우울한 감정과 감수성을 자신의 조각에 우아하게 표현했다는 카노바의 역작 중 하나이다. 베니스에서 조각과 인체 드로잉을 배운 그는 이후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조각가가 된다. 후에 마지못해 나폴레옹의 궁정 조각가가 됐지만 결코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았던, 생전에 인정받고 존경받았던 보기 드문 조각가였다.그리고 로이 릭턴스타인의 ‘우는 여인’(1964)이 나온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모 재벌기업과 관련해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그의 대표작이라기엔 부족하다. 다만 미술품을 문화적 자산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자산이라고 보는 한국사회의 그림에 대한 낮은 인식의 정도를 드러내는 작품일 뿐이다. 그는 팝 아트의 대표작가로 처음엔 추상 표현주의풍의 작품으로 시작했지만 1961년쯤부터는 만화로 관심을 돌려 만화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확대하는 방법을 통해 1960년대 소비가 미덕인 미국사회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유명해졌다.여기에 유명한 ‘수병과 간호사’(1945)라는 사진이 불쑥 등장한다. 1945년 8월 14일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소식에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쏟아져 나온 인파 속에서 한 수병과 간호사가 환희의 키스를 나누는 장면인데 당시 라이프지의 사진기자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가 촬영한 역사적인 작품이다. 사진은 키스하는 인물의 활기찬 자세처럼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들떠 있는 거리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그리고 그 혼잡한 상황에 에드워드 호퍼의 쓸쓸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이 배경이 되어 준다. 미국의 피폐해진 인간 군상들이 도시의 전형적인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도 욕망을 드러낸다. 바에 앉아 몸을 웅크리고 새벽을 기다리며 허기를 달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고립된 인간의 상실감을 발견한다. 또 시간을 초월해 현대미술도 등장하는데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나 제프 쿤스의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가 그것이다. 코미디 영화에 너무 원칙적인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더 코미디라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 어느 미술관, 박물관도 이런 식으로 체계와 계통 없이 뒤죽박죽 유물이나 소장품을 수집하진 않는다. 물론 가끔 졸부들의 과시욕 넘치는 컬렉션(?)이나 자신의 비루한 교양 수준을 위장하기 위한 수집품에서 발견되긴 하지만. 아무튼 영화는 우리의 부박한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개념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박물관은 형님, 미술관은 동생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일로 박물관의 종류는 그것이 다루는 소장품에 따라 구분되며 종류는 사람들의 삶만큼 다양하다. 천문대나 동물원, 수족관은 물론 야외의 고분군, 유적지도 박물관에 속한다. 박물관학에 의하면 도서관이나 고문서보관소도 박물관의 하나이다. 문화재를 다루건 역사를, 자연사를, 미술품을, 과학을 다루건 모두가 박물관이다. 그래서 과학관은 과학박물관의 줄임말이며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을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의 명칭도 분명하지 않다. 영문으로 ‘National Museum of KOREA’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것, 즉 역사, 자연, 종교, 과학, 미술 등 모든 것을 다룬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제라도 소장품과 소장정책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에 맞는 이름을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은 소장품 수집이 전제돼야 하고 이를 조사 연구하는 학술기관이다. 도서관이 장서를 갖추고 사서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박물관, 미술관도 소장품을 두고 큐레이터가 이를 연구하고 조사해 상설전시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 미술관은 박물관, 도서관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정책관 아래에 있지 않고 당대예술진흥을 담당하는 예술정책관이 관장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부처별로 각기 운영 중인 각종 크고 작은 박물관들을 문화기반국으로 옮겨 하나의 통합된 박물관 정책에 의거해 관장해 나가야 한다. 이런 원칙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문화융성을 외치다 결국 문화만 엉성해지고 말았다.
  •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씨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에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씨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에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25)이 4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명문 악단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으로 임명됐다. 24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 따르면 이지윤은 전날 종신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종 오디션에서 악장으로 선발됐다. 악장은 악단 관리를 총괄하는 자리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4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지윤은 그중 최연소다. 2017~2018시즌이 시작되는 오는 9월부터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고, 2년 뒤 종신 여부가 결정된다. 1570년 창단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멘델스존,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거장들이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명지휘자가 거쳐 간 명문 악단이다. 1992년부터는 바렌보임이 이끌고 있다. 이지윤은 “생애 처음 도전한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 좋은 결과를 얻게 돼 기쁘다”면서 “바렌보임과 함께하며 더 큰 음악적 발전을 이룰 기회를 얻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일본 문화 중심지서 만난 1700점 한국 문화재…누구나 찾는 ‘공동의 광장’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일본 문화 중심지서 만난 1700점 한국 문화재…누구나 찾는 ‘공동의 광장’

    언젠가 일본 교토에 가게 되면 반드시 방문하겠다고 마음먹은 장소가 있다. 고려미술관(高麗美術館)이다.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갖는 ‘천년의 고도’ 교토에 우리나라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그 미술관을 세운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생각으로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 우리 문화재로 미술관을 세웠는지도 궁금했다. 5월 초 교토 여행길에 시간을 내어 이 미술관을 찾았다. 교토역 앞에서 시영버스 9번을 타고 교토 시내의 북동쪽 가모가와 중학교 앞에서 내리니 바로 ‘고려미술관’ 방향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뜩이나 조용한 교토의 주택가,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속에 새소리가 듣기 좋았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낯익은 우리의 돌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우락부락하지만 맘결은 한없이 부드러울 것 같은 석인(石人)상이 반겨주듯 철문 양쪽에 지키고 서 있는 곳은 의심할 필요도 없는 고려미술관이다.일본 땅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관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이나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등에 설치된 한국유물 전시실을 찾았을 때와는 감동의 질이 완전히 달랐다. 고려미술관은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혹은 기업의 도움 없이 정조문(1918~1989)이라는 재일동포 실업가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으로 설립된 곳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유일한 한국역사유물 전문 미술관인 고려미술관은 소장품 전시뿐 아니라 연구실을 두고 소장품의 조사연구와 강좌, 일본 내 다른 미술관·박물관과 전시교류 등을 하면서 조선고고학 연구, 민속학도서 자료수집 및 연구자료 출간도 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해 나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났다.●‘재일동포 실업가’ 정조문의 집념과 열정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왼쪽의 정원으로 들어가자 연둣빛 이끼가 가득 덮인 오층 석탑과 다양한 석인상 등 석물들이 5월의 햇살 아래서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고베 부농의 밭에 흩어져 방치되던 것을 발견한 정조문이 15년 동안 찾아다니고 설득해 2000만엔을 주고 손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수백년의 세월을 품고 일본 땅 위에 서 있는 석물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를 생각하면 우리 문화재를 기반으로 하는 이 미술관이 1000여년에 걸쳐 일본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 교토에 자리잡았다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고려미술관을 설립한 정조문은 경북 예천군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정건모)가 구한말 과거 급제 후 정삼품대부의 벼슬까지 한 관리여서 집안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으나 37세에 낙마 사고로 별세한 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정조문이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정진국)가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가산은 거의 바닥이 났다. 6년 만인 1924년 상해에서 돌아온 정진국은 일본 경찰의 감시로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내, 큰아들 귀문(당시 8세)과 둘째 조문(당시 6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에 터를 잡고 베 짜는 일을 시작했지만 경찰의 감시 속에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학교에 갈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정조문은 소학교 4학년에 겨우 편입해 3년을 공부했다. 그가 유일하게 받은 학교교육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배달하며 9살부터 다녔던 학교생활 3년간이다. ‘아야어여’도 모르는 나는 갑자기 소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고 학우들을 따라가느라 고생했다. 1년이 지나 어려움은 사라졌지만 역사수업만큼 나를 괴롭힌 것은 없었다. 신라정벌, 조선정벌, 조선병합…. 역사에서 조선은 언제나 약한 입장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못된 애들이 ‘조선 정벌이야!’ 하면서 나에게 돌을 던지며 때렸다. 그 무렵부터 내 가슴에는 역사에 대한 의문의 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왜 조선은 늘 약할까?” 1937년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후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정조문은 할머니, 동생들과 함께 오사카에 가서 부두 노동자가 됐다. 그러다 광복을 맞았다. 일본에 있던 한국인들은 귀국하거나 일본에서 다시 국적을 취득해야 했다. 그러나 몇 해 만에 조국이 분단되면서 남한의 민단과 북한의 조총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조문은 조국은 하나라며 어느 쪽도 취득하지 않고 ‘조선 국적자’로 남았다.●우연히 만난 조선백자의 매력과 상상초월 가치 오사카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은 그는 교토로 가서 1951년부터 파친코 사업을 시작했다. 선술집, 초밥집, 찻집을 개업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어느 날 교토 시내의 고미술상가를 지나다 ‘야나기’라는 고미술상 쇼윈도에 놓인 백자 항아리를 발견했다.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도자기가 지닌 고졸한 아름다움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즐겨 입으시던 하얀 치마저고리를 떠오르게 했다. 빨려들 듯이 가게로 들어간 그는 상상 외로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비싼지 물으니 조선 도자기의 가치에 비하면 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공사판에서 ‘조센징’이라고 놀림받고 따돌림받으면서 살아온 그에게는 그야말로 세상이 뒤바뀌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는 우리 문화재의 가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고 한다. 1년간 할부로 도자기를 구입한 뒤 다짐했다. “문화재를 수집해 보자. 일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미술관을 세우고 자신을 잃은 재일동포들에게 ‘조선의 자랑거리’를 보여 주자. ” 그는 재일동포와 자라나는 2세들이 이유 없이 멸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진품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전국의 고미술상을 찾아다니며 우리 문화재 수집에 온 힘을 다하는 한편 조선의 역사와 문화 연구 활동을 시작하며 비뚤어진 고대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고자 했다. 형 정귀문과 도쿄에서 활동하는 재일작가 김달수와 함께 한·일 고대사에 관한 의문점들을 하나씩 풀어 보고자 교토대에 재직하고 있던 역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를 찾아갔다. 우에다 교수는 저서 ‘귀화인’(歸化人·1965)을 통해 조선반도에서 고대 일본에 온 사람을 귀화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도래인(渡來人)이 맞다는 주장을 폈던 진보적인 학자였다. 우에다 교수는 비뚤어진 한·일 관계사를 바로잡는다는 뜻에 흔쾌히 동참했다. 사쓰마요를 만든 도래인 심수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시바 료타로도 합류했다. 정조문은 일본인 지식인 및 학자들과 조선인 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1969년부터 계간지 ‘일본 속의 조선문화’를 발간했다. 조선 고대사 연구에 일대 선풍을 일으킨 이 잡지는 1981년 50호 발간으로 휴간에 들어갈 때까지 한·일 역사학은 물론 조선 고대 불교학, 민속학, 풍속학, 고대 언어학 등에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잡지는 광고가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광고를 실으면 의미는 퇴색한다. 북측 기업광고가 게재되면 북측의 읽을거리가 되고 남측 기업광고가 실리면 남측의 잡지가 된다. 일본 기업은 당치도 않았다.●통일된 조국 꿈꾸며 미술관 이름 ‘고려’로 이런 정조문의 사고방식은 고려미술관 건립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미술관 이름을 한반도 최초의 통일왕조 이름을 따와 ‘고려’로 한 것은 남도, 북도 아닌 오직 통일된 조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누구나 찾아와 선조들이 남긴 아름다운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공동의 광장’을 그리며 그는 미술관 건립에 온 힘을 기울였다. 교토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일본 문화의 중심지이며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그런 교토에 미술관을 지어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장소를 물색하다 여의치 않자 교토의 자택을 헐고 지하 1층, 지상 2층의 미술관을 지었다. ●교토 자택 헐고 미술관 지어… 1988년 10월 개관 1988년 10월 25일 고려미술관이 개관했다. 학교라고는 소학교 3년이 전부인 파친코 사업자가 백자 항아리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 지 40여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되찾은 우리 문화재 1700점이 관람객을 맞았다. 소장품은 고분 부장품부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도자기, 회화, 나전 바둑판과 목가구 등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개관 후 1개월간 미술관 입구에서 늘 관람객을 맞았던 정조문은 개관 후 얼마 되지 않은 1988년 11월 미술관에서 쓰러져 1989년 2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세였다. 장례 당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2000여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국제인이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조선이나 한국의 풍토 속에서 성숙한 아름다움은 여기 일본에서도 언어, 사상, 이념을 넘어 이야기합니다. 부디 조용한 마음으로 그 흥취를 느껴 주시기 바랍니다.”(고려미술관 초대이사장 정조문, 고려미술관 리플릿 중) 운영은 어렵지만 고려미술관은 건재하다. 장남 정희두, 차남 정혜윤이 중심이 되어 공익재단법인 고려미술관을 유지관리하고 있고 장녀 정령희의 작은딸 이수혜가 미술관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외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가고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조선시대 불상 CT 찍었더니… 머리서 고려시대 ‘사경’ 나왔다

    조선시대 불상 CT 찍었더니… 머리서 고려시대 ‘사경’ 나왔다

    뽕나무 종이에 은가루로 쓴 보물급 ‘대반야바라밀다경’ 발견 조선시대 불상 머리에서 고려시대 사경(寫經·종이에 옮겨 쓴 불경)이 나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실상사와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전북 남원 실상사 극락전에 안치된 조선 건칠불(乾漆佛·흙으로 만든 뒤 삼베를 감고 옻칠을 반복해 완성한 불상) 좌상 머리 안에서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경이 발견됐다고 24일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건칠불 좌상을 지난해 경북 포항 성모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3D CT) 장비로 촬영한 결과 뽕나무 종이에 은가루로 쓴 ‘대반야바라밀다경’(대반야경)이 모습을 드러냈다.가로 11.8㎝, 세로 30.6㎝ 크기의 사경은 전체 600권으로 엮인 ‘대반야바라밀다경’의 제396권이다. 병풍처럼 접을 수 있는 절첩장 형태(折帖裝)로 돼 있고 은가루로 섬세하게 보상화, 당초 무늬를 그려 넣은 표지에 금가루로 ‘대반야경’이라고 표시돼 있다. 사경의 끝부분에는 “이장계(李長桂)와 그의 처 이씨(李氏)가 시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부친의 명복을 빌고 집안의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사경으로 보인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유적연구실장은 “제작 시기를 14세기로 보는 이유는 당시 사경에 주로 쓰인 송설체(중국 원나라 조맹부의 서체)로 쓰인 데다 표지에 그려진 꽃 문양, 책을 제본한 상태, 뽕나무 종이에 은가루로 글씨를 쓴 것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뽕나무 종이에 은가루로 쓰고 절첩장 형태로 책을 엮은 경전은 현재 국내에 넉 점만 남아 있고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어 이번에 발견된 사경도 보물급 유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실상사 사경과 가장 비슷한 형태는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불에서 수습한 사경 세 첩이다.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경은 보물 959호로 지정돼 있다. 연구소는 이번에 실상사 건칠불 좌상과 함께 실상사의 보광전에 있는 건칠보살입상도 3D CT로 촬영해 두 불상이 15세기 전후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진 삼존불임을 밝혀냈다. 나머지 건칠불은 동아대가 소장하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사람이 곧 풍경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사람이 곧 풍경

    사람은 곧 풍경입니다.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몸으로 표현하는 기예를 볼 때면 세상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한 네 곳의 지역 명사 체험여행을 따라가 봤습니다. 여정 전체에서 길어올린 건 ‘흥의 발견’이었습니다. 틀에 갇힌 춤사위는 없었고, 악보 위에 박제된 음악 역시 없었습니다. 불의 마법을 이해한 도예가도, 300년 전의 맛을 기억하는 종부의 손도 그랬습니다. 이번 여정은 그러니까 사인사색의 풍경을 좇는 인문여행입니다.●인간문화재 하용부(경남 밀양)뼛속 깊은 ‘춤꾼 DNA’… 나비 같은 몸짓에 홀리다 기쁨을 아는 얼굴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희열을 길어올리지 못한다면 절대 지을 수 없는 표정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실없는 농담 섞어가며 강연을 진행했다. 그의 얼굴에선 무슨 일에서든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같은 대한민국 장년 남성의 전형적인 표정이 엿보였다. 한데 춤판이 열리면서 그의 얼굴은 완벽하게 변했다. 입가엔 옅은 웃음과 침울한 슬픔이 교차했고, 눈가엔 열락의 세계가 흐르는 듯했다. 어떻게 저리 쉽게 변할 수 있을까. 경남 밀양의 춤꾼 하용부 이야기다. 춤을 선보이기 전 그는 다소 장황하게 자신의 과거를 관객들에게 풀어냈다. 한데 솔직히 그리 재밌는 스토리는 아니다. 학창 시절에 껌 좀 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이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이가 어디 한둘일까. 그의 진가는 역시 몸짓에 있다. 몰아치다 늦추고, 주는 듯 빼앗아간다. 손오공이 여의봉을 다루는 재주가 저랬을까 싶다. 하용부는 가만히 서 있어도 춤이 된다는 ‘전설의 명무’ 하보경의 손자다. 춤꾼의 DNA를 타고 났다. 5세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전통춤을 추기 시작해 여태 춤꾼의 계보를 잇고 있다. 나라 안팎을 오가며 우리 춤을 알리는 일도 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의 공연은 밀양연극촌(055-355-2308)에서 열린다. 즉흥 춤 공연과 춤사위 배우기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거친 숨소리와 나비처럼 떨리는 손짓을 지근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 춤을 배우는 시간도 흥겹다. 처음에 멀쑥해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저마다 흥의 세계로 빠져든다. 밀양은 한천의 고향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한천의 역사가 근 80년을 헤아린다. 제주 등에서 들여온 우뭇가사리를 겨우내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해 양질의 한천으로 되살려 낸다. 한천테마파크(1577-6526)에 박물관, 기념품점, 한천 맛집 등이 들어차 있다.●아리랑박물관장 진용선(강원 정선)‘한류 원조’ 아리랑… 세계를 울린 역사에 놀라다 강원 정선의 아리랑 박물관에서 알게 된 사실 몇 가지. 미국 장로교단에서 발행한 찬송가 229장(Christ, You Are the Fullness)은 우리 아리랑을 번안한 것이다. 유엔이 아프리카 나라들에 보급한 음악책 일부엔 아리랑이 담겨 있다. 엮음 아리랑은 요즘의 랩보다 수세기 앞서 빠른 비트의 음악을 실현했다. 이처럼 아리랑의 이면엔 우리가 모르는 역사가 무수히 숨어 있다. 이를 발견하게 하는 이가 진용선 아리랑 박물관장이다. 아리랑 박물관은 세계를 울린 아리랑 이야기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사진 두 장을 제외한 전시물 모두가 진본이다. 진 관장이 젊은 날을 통째 바쳐 수집한 것들이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지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The Living Reed) 역시 이곳에 있다. 아리랑을 담아낸 소설로, 평단으로부터 한국 외교관 100명이 할 일을 펄 벅 한 명이 해냈다는 극찬을 받았다는 책이다. 아리랑은 일본에도 수출됐다. 요즘으로 치자면 ‘한류의 원조’다. 1930년엔 고바야시 지오코란 여가수가 아리랑 앨범을 냈다. 앨범 재킷엔 ‘금색가면’이란 이름을 박았다. 차마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가명을 쓴 것이다. 요즘의 ‘복면가왕’인 셈이다.한국전쟁은 사람과 국토를 산산조각 냈지만, 역설적으로 아리랑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위문 공연차 한국을 방문한 뮤지션들이 세계에 다양한 장르로 아리랑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진 관장이 거둔 결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들이 부르고 연주한 아리랑 음반을 찾아낸 것이다. 야전화장실에서 통역관의 아리랑 휘파람 소리를 듣고는 이를 재즈풍으로 재해석한 오스카 페티포드의 ‘아디동(아리랑) 블루스’, 종군기자가 기록한 아리랑 멜로디를 보고 편곡해 불렀다는 미국 여가수 엘리 윌리엄스의 ‘아디동’, 미국 포크 음악의 비조로 꼽히는 피트 시거의 ‘아리랑’ 앨범, 그리고 1970~80년대 폴 모리아 악단의 ‘아리랑’ 등과 만날 수 있다. 홍익여행사 등 몇몇 여행사에서 관련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정선아리랑열차를 타고 가는 상품이다. 진 관장의 강연을 듣고, 군립예술단의 공연을 보고, 정선 아리랑의 여러 가락들을 배울 수 있다.●재령 이씨 13대 종부 조귀분(경북 영양)종가의 300여년 손맛에 반하다 경북 영양엔 전설적인 요리서가 전해온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가의 레시피 ‘음식디미방’이다. 이름 그대로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340년 전 석계종가의 1대 종부인 ‘여중군자’ 장계향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어두운 눈으로 등잔불을 밝혀가며 간신히” 썼다. 그런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이를 꿸 사람이 있어야 보배가 될 터. 당대의 음식을 현재로 소환하는 이가 바로 석계 가문의 13대 종부인 조귀분 여사다. 종부에서 종부로 300년 넘게 이어져 온 손맛을 식탁 위에 펼쳐 놓는다.두들마을은 재령 이씨 집성촌이다. 이 마을 가운데 터를 잡은 석계종택에서 ‘음식디미방’ 속 요리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잡과편(떡의 일종) 등 비교적 손쉬운 음식들이 대상이다. 조 여사가 강연자로 나선다. 음식디미방의 레시피대로 만든 한상차림을 맛볼 수도 있다. 물론 값은 녹록하지 않다. 유물전시관과 두들마을의 고택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 감동을 주는 건 조 여사와의 대담이다. 봉제사 접빈객(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맞는 일) 등 종부가 걸어온 삶의 뒤안길 이야기가 잔잔하고 재밌다. 그는 일행 중 한 명이 종부의 삶을 살아 보고 싶다고 하자 “종부 될 생각일랑 아예 말라”고 했다. 물론 힘든 종부의 삶에 빗댄 농담이니 오해 없길. 하기 싫다 말하면서도 그럴수록 더 꼼꼼하게 차려내는 이가 종부이니 말이다.●흑자 도예가 김시영(강원 홍천) 흙과 불의 연금술사, 黑에 빠지다 시종 겸손하면서도 구태여 자신의 가치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불의 길을 개척한 이라 했고, 흙의 연금술사라고도 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그의 삶을 뒤따라가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김시영 작가는 국내에서 드문 흑자(黑磁) 명인이다. 말 그대로 검은빛의 도자기를 빚는 이다. 고려청자, 조선백자는 익숙하다. 한데 까만 도자기라니, 도무지 생경하다. 흰빛을 즐기는 우리네 정서에 비춰 보면 검은빛은 어둡고 묵직한 주제에 더 잘 어울린다. 백의민족이란 고전적인 수사와도 동떨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대학 시절 우연히 마주한 흑자는 이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렬했다.흑유(黑釉) 또는 흑자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 널리 만들던 검은 도자기다. 흰빛을 즐겼던 조선시대에 맥이 끊겨서 그렇지 고려 때만 해도 청자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철분이 든 약토(유약)를 발라 굽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검은빛이 나온다. 더 중요한 건 불이다. 김 작가는 “흑자의 7할은 불”이라고 했다. 가마에서 얼마나 불에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오묘한 색채의 무늬가 자기에 침착된다. 이를 요변(窯變)이라 부른다. 김 작가는 그 불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린다. 그가 흑자 재연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대학시절 태백산맥 종주 중 발견한 흑자 파편 때문이다. 이때 마주한 신비로운 검은색은 결국 그를 도예가의 길로 이끌게 된다. 강원 홍천의 ‘가평요’(033-434-2544)에 가면 다채로운 빛깔을 내는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흑자를 만날 수 있는 전시장이다. 흑자를 계승하게 된 사연, 흙과 불의 조화에 따라 사뭇 다른 빛깔로 태어나는 흑자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다. 그의 두 딸도 도예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 작가 역시 서예가였던 아버지 옆에서 먹을 갈면서 검은빛에 동화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김 작가는 오는 8월 1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Trans: 흙, 쇠, 나무’전을 연다. 변화무쌍하면서도 직관적인 그의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 angler@seoul.co.kr
  • [단독] 대구 ‘70억 순종 어가길’ 역사 왜곡 논란

    [단독] 대구 ‘70억 순종 어가길’ 역사 왜곡 논란

    역사학계선 사업 초기부터 비판 “일제가 순종 꼭두각시 만든 행렬” 市 “굴욕의 역사 직시해야” 반박대구 중구가 70억원의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조성한 ‘순종 어가길 조성사업’이 역사 왜곡의 현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구 중구는 2013년 순종어가길 조성사업을 시작해 지난달 말 마무리했다고 24일 밝혔다. 당시 국토해양부의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 공모 사업’에 선정됐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1909년 전국 순행을 떠나 대구를 처음 방문한 것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순종이 다녀간 대구 북성로에 쌈지공원을 만들고, 민족지사 양성소였던 우현서루 터와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광문사 터(현 수창초등 후문 대성사 자리)에도 공원을 꾸몄다. 걷기 좋도록 주변 환경을 개선했고 거리 갤러리를 조성하는 등 역사성을 복원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대구의 역사학자들은 이 사업이 한국 근대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됐다고 초기부터 비판했다. 순종 황제는 1909년 1월 7일 대구를 시작으로 마산과 부산 등 남부 도시를 12일까지 돌았다. 그러나 이 순행은 순종의 자의적 결정이 아니었다.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가 순행을 강요했는데, 그 목적은 독립을 지키려는 조선 의병들의 투쟁을 억누르고 일제에 순종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의도는 일정에서도 드러난다. 순종은 부산항에서 일제의 제2함대 기함 아즈마에, 마산항에서는 일본 기함 가토리에 승선해 메이지 일왕에게 축배를 들었다. 즉 대한제국 황제 순종의 대구 순행은 일제에 굴복한 비극적이고 굴욕적인 어가행렬이었던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 문화재감정위원은 “반일 감정을 잠재우려는 일제의 속셈을 알고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던 순종의 처지를 안다면, 수십억원의 세금으로 조성해 관광 상품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대구 중구가 비판 여론이 일자 뼈아픈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여행)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달성공원 앞에 조성된 순종 동상의 문제점도 들었다. “동상에서 순종은 성스러운 의식에서 입는 대례복을 입혔는데, 이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여행에 맞지 않는다”면서 “굴욕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만한 안내판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계명대 사학과 이윤갑 교수도 “당시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식민지 지배를 앞당기기 위해 순종을 꼭두각시로 내세운 행차”라며 “이를 기념하는 순종어가길을 만든 것은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로, 지금이라도 전면 백지화하고 다른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 중구 도시경관과 최미향 주무관은 “굴욕의 역사라 해서 숨길 필요는 없고, 상징 조형물에는 다크 투어리즘과 부합되는 설명문이 있어 보는 이들이 역사를 직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성남 꿈다락 토요 문화학교 ‘우리 동네는? 우리 놀이터’ 참가자 모집

    성남문화재단이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체험하며 지역에 대해 이해하고 애정을 키우는 2017 경기 꿈다락 토요 문화학교 ‘우리 동네는? 우리 놀이터’ 참가자를 모집한다. ‘우리 동네는? 우리 놀이터’는 평소에 지나치던 우리 동네를 탐방하면서 평범한 일상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특별한 시간을 경험하고, 또래 친구들과의 작업을 통해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공유함은 물론 창의력과 소통하는 법까지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자 성남문화재단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후원,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가 협력하는 ‘꿈다락 토요 문화학교’에 지난 3월에 선정되어 추진되는 사업이다. ‘우리 동네는? 우리 놀이터’는 ‘나는야 미디어 동화탐정’ ‘나는야 성남 탐험가’ 등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초등학교 1 ~ 3학년 어린이 대상의 ‘나는야 미디어 동화탐정’은 지난 13일 시작해, 오는 11월 25일까지 4기수에 걸쳐 진행된다. ‘나는야 성남 탐험가’는 중학교 재학생 및 동 연령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오는 6월 3일부터 12월 2일까지 3기수, 8차시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지역 탐방과 동네 주민 인터뷰를 통해 성남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발굴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랩+힙합 춤+뮤직비디오 등 재미있는 문화예술로 표현하는 지역연계 통합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육의 기본 틀은 제공하지만 교육과정 중에 학생들이 내용을 만들고, 그 내용을 다양한 문화예술로 표현하는 학생 주도형 프로그램으로 기존 주입식 문화예술교육에서 심화․발전된 프로그램이다. 참가 접수는 성남미디어센터(www.snmedia.or.kr)에서 온라인 접수만 가능하며, 선착순기수별 15명 마감이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성남미디어센터 홈페이지나 전화 031-783-8068로 문의하면 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박경리 작가 동상 러시아 건립… 서울 푸시킨 동상에 화답 차원

    박경리 작가 동상 러시아 건립… 서울 푸시킨 동상에 화답 차원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의 동상이 올해 러시아에 세워진다.한국·러시아 간 민관 대화 채널인 한러대화(KRD)와 토지문화재단은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내에 러시아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 박경리 동상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상은 권대훈 서울대 조소과 교수의 작품으로 2014년 이미 완성됐다. 청동으로 제작한 박경리 인물상과 마천석으로 만든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의 모형, 화강석 지대 등 세 부분으로 돼 있다. ‘토지’의 주무대인 경남 하동, 작가의 고향인 통영에 세워진 동상과 같고 지대 등에 적힌 언어만 다르다. 동상은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한국학과 건물 옆에 세워진다. 한러대화와 토지문화재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현재 미정)에 맞춰 동상을 건립하고 제막식을 열 예정이다. 박경리 동상 건립은 한·러 문화외교사업의 일환이다. 러시아 작가동맹의 요청으로 한러대화가 2013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앞에 푸시킨 동상을 세워준 데 대한 화답의 성격을 띤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1897년 한국학과를 개설해 120년째 이어오는 등 한국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올해부터는 동양학부에 박경리 강좌를 열어 고려인 작가 박미하일이 번역해 지난해 펴낸 ‘토지’ 1부 1권과 이미 번역된 ‘김약국의 딸들’을 강의 교재로 쓰고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 ‘사방팔방’에 숨은 미래유산을 보다

    서울 ‘사방팔방’에 숨은 미래유산을 보다

    서울시청 앞에 늘 있는 ‘서울광장’은 언제 조성됐을까. 조선시대의 ‘광장’이었던 경복궁 앞 육조거리부터 시작된 서울 ‘광화문 광장’의 역사는 어떤 사연을 안고 있을까. 서울역 고가를 공중정원으로 재생한 ‘서울로7017’에서 돌아보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한양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뛰어넘은 공간을 돌아보는 행사가 다시 마련됐다.서울신문은 서울시와 함께 서울의 주요 미래유산과 역사유적을 둘러보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오는 27일부터 시작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연중기획 행사로 27일부터 매주 토요일에 진행한다. 올해 답사는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진행한다. 참가비는 무료다. 답사 프로그램인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는 서울시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서울의 기억을 담은 근현대 문화유산을 100년 후의 보물로 보존하는 미래유산 사업을 촘촘하게 시민들과 함께 둘러본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광장이나 서울로7017과 같은 장소나 시설뿐만 아니라 서적, 예술품, 시장, 골목, 기술, 음악, 경관, 소설, 시 등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망라한다. 근현대 유산 보존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공부하고 현재를 알아가며 미래를 조망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가 있다. 2012년부터 5월 현재까지 서울시가 선정한 미래유산은 총 426건이다. 올해 답사의 핵심은 사방팔방(四方八方)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을 사방으로, 사대문 밖을 팔방으로 구분해 기원전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시’ 서울 속에 숨은 미래유산을 13회 프로그램으로 훑는다. 또 다른 테마는 사계절이다. 도봉구 창포원(초여름 꽃파랑)~물색이 짙어지는 선유도(물파랑)~초록의 섬 서울숲(신록초록)~붉게 타오르는 정동길(초가을 단풍)~백제의 고향 올림픽공원(가을 은행노랑)~서울의 허파 남산(겨울 흰눈) 등 서울의 풍광까지 만끽할 수 있다. 어젠다 탐방도 투어의 백미다. 서울의 물길(한강, 청계천, 중랑천)과 서울의 근대(정동, 장충동)를 묶어 선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진 않지만 ‘우리 서울’의 뚜렷한 한 축을 이루는 무형유산은 서울의 문학1·2, 놀거리(홍대 일대)와 먹거리(종로 일대)라는 타이틀로 내놓는다. 야간탐방과 청소년용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서울로7017 등 야경이 좋은 곳을 3회에 걸쳐 돌아보고,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청소년을 위한 교육용 프로그램도 5회 진행한다. 해설과 진행, 자료발굴을 위해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소속 박사급 연구원 3명을 비롯해 모두 14명의 연구원이 투입된다. 해설은 노주석, 최서향, 정순희, 한세화, 박정아, 전혜경, 김미선, 김은선 연구원 등 8명이 나선다. 전담 자료조사에도 5명 연구원이 투입됐다. 고홍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서울 사람들이 살아 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 세대 간 공유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견인하는 중심에 미래유산이 있다”면서 “이번 탐방을 통해 그 가치를 알아가고 보존의 중요성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청은 서울 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web/main/index.do).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청동기시대 무덤 안 사람뼈… 매장의례 단서 찾았다

    청동기시대 무덤 안 사람뼈… 매장의례 단서 찾았다

    18㎝의 두터운 재층 바로 위 매장 “시신 묻기 전 불피워 의식 치른 듯”강원 정선에 있는 매둔동굴 안에서 30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시대 무덤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연세대 박물관이 지난 2월 매둔동굴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두께가 최고 18㎝에 이르는 청동기시대 재층에서 최소 네 명분의 사람 뼈가 나왔다고 23일 밝혔다. 재층 바로 위에는 매장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인골 두 구가 박혀 있었다. 재층 위의 유골 가운데 1호 인골은 머리를 동굴 안쪽에 두도록 안치됐고 두개골과 등뼈, 갈비뼈 일부가 남아 있었다. 2호 인골은 두개골만 있는 상태였다. 한창균 연세대 박물관장은 “재층 속에 있는 목탄의 방사선연대측정 결과 전체적인 시기가 기원전 12∼8세기로 나타났다”며 “두꺼운 재층으로 미뤄볼 때 시신을 묻기 전에 불을 사용한 의식을 치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 청동기 시대 무덤에서 불을 쓴 흔적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월 연당리 피난굴도 청동기시대 것으로 확인됐지만, 인골의 상태는 매둔동굴이 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덤의 재층은 재의 색깔이 하얀색인 위쪽과 재가 회색인 아래쪽으로 나뉘어 있었다. 회색 재층에서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청동기 시대 돌화살촉이 함께 발굴됐다. 조사단은 매둔동굴에 살았던 청동기인들이 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과거 신석기시대 형성된 문화층의 뒷부분에 묻혀 있던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청동기 시대 재층 안에 섞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창균 관장은 “매둔동굴의 돌화살촉은 인근에 있는 아우라지 고인돌에서 나온 돌화살촉과 형태가 비슷해 매장 의식에 쓰인 유적일 수 있다”고 했다. 연세대 박물관은 이번에 발굴된 사람 뼈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주검의 성별, 나이, 체질 특성과 무덤의 성격(가족무덤 또는 공동무덤) 등을 밝힐 계획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과거 3차례 감사… 4년 전에 “MB정부 담합 방조”

    그동안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는 엄밀히 따지면 총 다섯 번이나 이뤄졌다. 그러나 4대강에 매장된 문화재에 대한 감사와 4대강 사업의 준설토 처리 실태에 대한 감사는 4대강 보 개방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어 관련 감사는 세 번 이뤄졌다. 22일 감사원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감사는 이명박 정부 때 두 번, 박근혜 정부 때 한 번 이뤄졌으며, 정권에 따라 감사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무엇보다 관심이 쏠리는 건 2011년 발표된 ‘4대강 살리기 세부계획 수립 및 이행실태’ 감사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첫 번째 감사로 이명박 정부 때 시행됐다. 4대강 사업의 초기 단계부터 사업이 효율적으로 계획·집행됐는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본 만큼 이번에 시행될 정책감사와 감사 내용이 겹칠 가능성이 크다. 당시 감사 결과는 싱거웠다. 4대강 사업의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데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천이 과거보다 홍수에 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결론도 있었다. 당시 논란이었던 예비 타당성 조사 12건과 환경영향평가 82건 역시 모두 이행했으며, 문화재 조사 역시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막바지였던 2013년 1월 감사원은 두 번째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과 수질 관리실태’에 대한 감사로,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보 등 시설물의 기능과 수질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16개 보 가운데 15개 보에서 세굴을 방지하기 위한 바닥보호공이 유실되거나 침하되는 등 보의 내구성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다. 수질예측도 잘못해 수질이 악화될 우려가 크다는 문제도 발견됐다. 세 번째 감사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7월 발표됐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설계·시공 일괄 입찰 등 주요 계약 집행실태’에 대한 감사다. 건설사들의 담합 의혹이 핵심 감사 사항이었다. 감사 결과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한 탓에 사실상 담합을 방조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화가 수향 이순영씨, 애장품 ‘동해’ 서울시의회 기증

    화가 수향 이순영씨, 애장품 ‘동해’ 서울시의회 기증

    5월 19일 오후 여류 화가 수향 이순영 작가(만 83세)가 서울시의회 초대 회고전을 마치고 애장품인 ‘동해’를 서울시의회(의장 양준욱)에 기증했다. 서울시의회 의장실에서 열린 이날 기증식에는 서울시의회 양준욱 의장, 김기만 의원, 김경호 사무처장 등과 남편 이성준씨, 아들 이주영, 딸 마리아요안나 수녀 그리고 조카 이혜자 교수가 참석했다. 세필 지본 수목 담채인 동해는 1977년에 그려졌다. 고국을 떠나기 전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애착을 갖고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수향의 대표작으로는 2012년 한국 문화재유물로 선정된 ‘비봉폭포’(일명 ‘적취’, 현 고려대학교 소장)를 포함해 동해, 홍도, 독도, 월매, 대승폭포, 제3 비봉폭포 등이 꼽히고 있다. 1980년 호주 시드니로 이주해 호주한인 미술협회 창설 및 회장 역임한 수향은 개인전 6회(1976~2005년 한국, 일본, 호주), 단체전 20여회(1986~2016년), 국제 예술 문화 교류 협회전 6회(2011~2016년)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한편 수향은 휴전선 이북에 자리한 고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산수화의 대가인 심산 노수현 선생과 재당 배렴(1912~1968) 선생에게서 산수화를 사사받았다. 이날 양준욱 의장(더불어민주당. 강동3)은 서울시의회에 작품을 기증한 수향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이어 양준욱 의장은 “대한민국 국전 특선 수상 등 산수화 부문에 국내외적으로 명성이 높은 수향 선생님의 작품이 서울시의회에 걸리게 되어 무척 기쁘다”면서 “수향 선생님의 뜻을 담아 소중하게 관리하여 작품이 더욱 빛나도록 하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핵심생활권 ‘제주 제이하임’…교통, 학군, 편의시설 등 우수한 입지 갖추며 ‘눈길’

    제주핵심생활권 ‘제주 제이하임’…교통, 학군, 편의시설 등 우수한 입지 갖추며 ‘눈길’

    성지건설개발㈜이 제주도 제주시 이도2동 1169-2외 2필지에 들어서는 ‘제주 제이하임’을 공급한다. ‘제주 제이하임’은 전용 29~35㎡의 소형 평형대로 구성되며 지하 1층~지상 17층, 총 208실 규모로 지어지는 주상복합형태의 주거상품이다. 타입별 실수는 A타입(전용 35㎡, 160실), B타입(전용35㎡, 32실), C타입(전용29㎡ 16실) 등으로 실수요의 선호가 높은 세가지 소형타입으로 지어진다. 이 주거시설이 들어서는 곳은 제주의 중심지로 다양한 생활 편의시설들을 갖췄다. 제주시청, 지방합동청사 등이 위치한 제주행정타운을 비롯해 CGV, 보성시장, 동문시장, 제주한국병원, 제주동부경찰서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풍부한 생활인프라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교육환경도 잘 갖춰졌다. 광양초, 제주제일중, 오현고가 인접한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제주 기적의 도서관, 제주동부 청소년경찰학교, 제주대학교 등 연령대를 아우르는 교육시설들이 위치해 있어 수요가 많을 전망이다. 또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인 제주의 중심에 위치한 ‘제주 제이하임’의 우수한 주거비전도 눈여겨 볼 만하다. 글로벌생활문화를 누릴 수 있는 제주의 중심지로 구제주 문화의 대명사인 대학로와 동문시장 등이 인접해 우수한 정주여건을 자랑한다. 우수한 입지에 위치한 만큼 ‘제주 제이하임’의 편리한 교통환경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 상품은 제주지역 대부분의 버스가 다니는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춰 제주지역 어디든 이동하기 편리하다. 또한 일주대로 대로변에 위치해 광양사거리, 시외버스터미널을 쉽게 이용해 제주도 내 전역에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제주국제공항(약3km), 제주항 여객터미널(약2km) 등이 인접해 있어 제주도 외 지역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멀티교통망이 돋보인다. 제주 천혜의 자연환경도 누릴 수 있다. ‘제주 제이하임’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삼성혈을 비롯해 신산공원, 산지천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도심 속에서도 쾌적한 환경을 접할 수 있다. 여기에 자연사박물관, 제주문화회관, 수운근린공원, 국립박물관, 제주국민체육센터 등도 이동하기 편리해 쾌적한 환경에 문화여건까지 갖췄다. ‘제주 제이하임’은 기존에 보기힘든 소형타입 형태의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선보인다. 특히 전 타입 특화평면 상품으로 제주원도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멀티형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 1.5룸 형태가 아닌 전 실이 2룸 위주로 구성되 방과 거실, 주방을 모두 분리시켜 주거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여기에 모든 생활가전이 구비 되어 있는 풀퍼니시드 상품으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에게 부담이 적어 오픈 전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주 제이하임’은 호텔식 서비스도 주목할 만 하다. 쾌적한 주거공간 유지를 위해 하우스키핑 서비스를 제공하며 입주민들의 편의를 높이는 공용세탁실도 조성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입주자들의 안내를 돕는 컨시어지와 발렛파킹 서비스도 제공하는 등 주거공간의 가치를 높여 주거 편의성을 극대화 했다. 제주 제이하임 분양관계자에 따르면 “제주에 공급되는 주거상품은 관광객 증가를 비롯한 지속적인 인구 유입과 다양한 개발계획 시너지 효과 등으로 전국에서 지가상승률이 높은 편이라 투자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며 “또한 생활인프라가 우수한 입지에 합리적 분양가로 공급되는 제주 제이하임에 실수요층의 많은 인기도 예상된다”고 했다. ‘제주 제이하임’의 홍보관은 제주시 구남동에 위치해있으며, 입주는 2018년 말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창작국악뮤지컬 ‘수표교연가’ 시흥시청 늠내홀 무대오른다

    창작국악뮤지컬 ‘수표교연가’ 시흥시청 늠내홀 무대오른다

    창작국악뮤지컬 ‘수표교연가’가 경기 시흥시청 늠내홀 무대에 오른다. 시흥시는 오는 28일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창작국악뮤지컬 ‘수표교연가’를 시흥시청 늠내홀에서 공연한다고 21일 밝혔다. ‘수표교연가’는 임진왜란 후 한양 도성 내 청계천 수표교 일대서 실제 발생했던 일을 무대에 옮긴 것이다. 조선 최대의 ‘동악시단’을 만든 이안눌 선생과 연인 은비의 고결한 사랑을 그렸다. 이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당대 전쟁 체험과 현실을 보여주는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는 시어가 쉽고 서정적이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서울 남산 계곡에 비파정을 세우고 4379수의 시를 지었다.이 무대는 이계환 작가의 원작을 천년가무악 최영희 대표가 각색했다. ‘수표교연가’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애절한 사랑이 여운으로 남는다. 이미 서울과 인천에서 두 차례 공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평화통일 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악발전에 평생을 바쳐온 천년가무악 최영희 단장이 기획한 ‘수표교연가’ 2년마다 한 차례 공연한다. 지난 1차 공연은 경서도소리로, 2차공연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엮었다. 올해 진행되는 3차공연은 판소리와 서도 소리로 엮어 조선시대 시문학을 신선하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공연은 주호종 전북대 교수가 연출했다. 특별출연으로 서울시무형문화재 경제지조 제47호 보유자 변진심 선생과 광명농악풍물보존회, 재경진도강강술래보존회 등이 함께한다. 한편, 수표교는 서울 청계천의 다리로 조선 세종 2년에 처음 세워졌다. 세종 23년(1441년) 다리 앞에 개천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수표가 설치되면서 수표교로 불렸다. .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괴산군수 관사 연말 민간에 개방

    괴산군수 관사 연말 민간에 개방

    충북 괴산군은 군수 관사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지난달 취임한 나용찬 군수의 공약에 따른 조치다. 나 군수는 선거 기간 “관선시대의 유물인 관사는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명분과 기능을 다해 군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관사는 1919년 지어진 고택이다. 건축면적 179㎡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전통양식에 따라 배치돼 있다. 전체 대지면적은 830㎡다. 1950년 지역의 한 유지가 괴산군에 기증한 이후 최근까지 관사로 사용됐으며 2004년 등록문화재 144호로 지정됐다. 군은 관사의 문화재 가치와 기능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수공사와 정비를 진행한 뒤 올해 말부터 개방한다. 군은 전통문화교육이나 전통혼례 장소, 전통고택 관람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사가 개방되면 연 1000여만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文대통령, 유가족 추모사에 눈물

    文대통령, 유가족 추모사에 눈물

    文대통령 기념사 23차례 박수… 역대 최대 1만여명 ‘눈물 바다’ 기념식 참석했던 50대男 쓰러져… 대통령 탄 차량, 구급차에 길 양보 자신이 태어나던 날 계엄군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37)씨는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장에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슬픈 생일’이란 제목의 편지를 낭독하다 눈물을 쏟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편지 낭독을 들으며 손수건으로 연방 눈가를 훔치다 김씨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벌떡 일어서 김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김씨는 대통령이 뒤따라온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선 고개를 돌렸고, 문 대통령은 흐느끼는 김씨의 손을 잡고 “울지 마세요. 아버지 묘역에 같이 참배하러 가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김씨를 가만히 끌어안아 다독였다.37년간 가슴 한편에 한을 묻고 살아온 광주 시민과 오월 영령에 문 대통령은 이렇게 위로를 건넸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문 대통령은 김씨의 아버지 고(故) 김재평씨의 묘역을 찾아 “아버지는 숭고한 일을 하셨다. 그동안 혼자 찾아 뵙을 텐데, 힘든 일 다 극복하시라”고 유족들을 거듭 위로했다. 대통령과 포옹한 김씨는 “아빠 품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9년 만에 제창 형식으로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기념식장에 울려 퍼졌다. 문 대통령은 이 노래를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정세균 국회의장 등 내빈들의 손을 잡고 함께 불렀다. 제창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2007년 기념식 이후 처음이다. 시민들은 민주묘지 초입부터 도로변을 따라 ‘당신들의 희생정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은 노란 리본을 달았다. 노란 리본 물결 사이로 문 대통령이 입장하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차를 탄 채 행사장에 들어갔던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민주의 문’ 앞에 내려 시민들과 교감하며 200~300m 떨어진 행사장까지 걸어서 입장했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기념식에는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정부, 여야 지도부, 5·18 유공자·유족, 세월호 가족 등 역대 최대 인원인 1만여명이 참석했고, 문 대통령이 기념 연설을 하는 동안 23차례 손뼉치며 환호했다. 기념사를 마치자 일부는 기립 박수를 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행사가 끝나고서 근처 식당에 들러 5·18 유가족들과 비빔밥을 먹었다. 배석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유가족들이 ‘한이 풀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광주시민들은 “지난 9년 동안 ‘일베’ 등 5·18을 폄훼하는 세력들이 판을 치면서 자존심에 멍이 들었다”면서 “새 대통령이 진상 규명을 약속하고,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넣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해 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이모(51)씨는 “문 대통령이 광주·전남 주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갔다”면서 “감성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통령을 가진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통령 참석 행사는 통상 출입증 역할을 하는 ‘비표’를 사전에 발급받아야 입장할 수 있지만, 이날 기념식은 비표 없이도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국민개방 행사로 치러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나중에 대통령이 (주영훈)경호실장에게 ‘오늘 경호하시느라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국민이 좋아하지 않으시던가요’라고 물으시더라”고 전했다. 한 50대 공무원은 “문 대통령이 유가족을 껴안는 모습을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면서 “기념식 중계가 끝나는 순간, 서울의 딸도 감격스럽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차명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면서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기념식에는 새 정부의 ‘통합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 진보, 보수 단체 가리지 않고 자리를 함께했다. 공연행사에 참석한 예술가도 전국 17개 대학교수로 꾸렸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가수 전인권씨는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상록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했다. 한편 문 대통령 탑승 차량과 경호 차량은 기념식 후 이동하다 119구급차를 보고선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길을 양보해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다. 구급차에는 5·18 기념식장을 빠져나오다 쓰러진 50대 남성 A(54)씨가 타고 있었다. A씨는 1980년 5월 계엄군에 연행돼 고문을 받고 풀려났지만,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다 이날도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양보로 A씨는 병원으로 무사히 옮겨져 안정을 취했다. 광주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서울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文대통령 “5·18정신 헌법에 담겠다”

    文대통령 “5·18정신 헌법에 담겠다”

    “광주정신으로 정의로운 통합… 발포 진상·책임 반드시 밝힐 것”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현직 대통령의 5·18 기념식 참석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4년 만이다. 기념식에는 1997년 정부기념일 지정 이후 최대인 1만여명이 운집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에서 “오월 광주는 지난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다”며 현 정부가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5·18 관련 의혹의 진상 규명 의지를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상처받은 광주를 위무(慰撫)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면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한 진상 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5·18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켜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면서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2호 업무지시’를 통해 제창을 지시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5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라며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실제 문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날 행사에는 문 대통령과 정 의장,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을 포함한 정부 인사와 여야 지도부, 5·18 유공자·유족, 세월호 가족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서동철 칼럼] 품위 있는 문화국가를 위하여

    [서동철 칼럼] 품위 있는 문화국가를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청와대를 옮기고 그 자리에 서울역사문화벨트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새 정부 인사들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청와대 자리를 박물관과 공원 등으로 조성할 뜻을 거듭 밝혔다.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도 찬반양론이 없는 정책이 없다지만, ‘청와대 터의 문화공간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일찍부터 서울역사문화벨트 조성 공약 기획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었다니 청와대의 문화공간화 계획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위원회를 이끌었다는 소식이니 실망스럽지 않은 기획안이 벌써 대통령에게 보고된 상태인지도 알 수 없다. ‘박물관과 공원’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도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청와대 자리에 박물관이 들어선 미래가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문화유산 분야를 오래 취재한 기자라서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기획위원회가 어떤 박물관을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대표 박물관’ 말고 다른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온갖 박물관이 있고,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징적인 자리에는 상징적인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품위 있는 나라라고 믿는다. 국가대표 박물관이라면 당연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다. 중앙박물관이 국가대표 고고미술사 박물관이라면, 민속박물관은 국가대표 민속생활사 박물관이다. 물리적 규모는 중앙박물관이 크지만, 두 박물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선 두 박물관의 상황을 차근차근 따져 보는 게 좋겠다. 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에 자리 잡았다. 용산 박물관은 1997년 기공식을 가졌으니 공사에만 8년이 걸렸다. 기획과 설계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으니 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은 10년이 넘는 대역사였다. 용산에 자리 잡은 이후 중앙박물관은 반듯한 하드웨어만큼이나 전시와 교육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방이 공원과 아파트 단지에 포위된 듯 옹색한 입지는 국가대표 박물관에 걸맞지 않다. 용산에 자리 잡기 이전 경복궁의 중앙박물관은 당연히 외국 관광객의 방문 1순위였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외국 관광객은 경복궁 내부에 있는 민속박물관만 둘러보고, 중앙박물관 방문은 포기하곤 한다. 이런 현상은 단체 관광객에게서 더욱 뚜렷하다. 민속박물관은 2030년 경복궁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기 이전에 지금의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 용산 중앙박물관 옆 공원의 일부를 이전 부지로 점찍었지만 ‘없었던 일’이 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면 문화정책 실행기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짐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민속’에 머물지 않는 영역 확대가 불가피하다.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교육 및 프로그램 공급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노령화하고 있는 마당에 노년층에 문화를 공급하는 역할 또한 당연히 민속박물관의 몫이다. 국가대표 박물관을 짓거나 옮기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천문학적 비용도 수반된다. 하지만 어차피 민속박물관이 옮겨 갈 자리는 새로 마련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박물관의 입지를 결정해야 하는 마당에 청와대 자리를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름처럼 중앙박물관이 다시 중심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존 용산 박물관 건물은 민속박물관이 그대로 물려받으면 된다. 하지만 중앙박물관 규모의 시설을 북악산 아래 새로 짓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속박물관을 청와대 자리로 옮기는 방법도 좋다. 기존 청와대 시설을 상당 부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청와대 자리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선다는 뉴스가 기다려진다.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비단 펼친 물길에 달빛마저 쉬어 가누나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비단 펼친 물길에 달빛마저 쉬어 가누나

    겹쳐난 봉우리마다 품은 편백숲·솔숲… 바람길따라 물빛 흐르는 화폭 한 자락충북엔 고개가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개라는 계립령이 충주에 있고, 속세와 이별하는 속리산 말티재와 ‘울고 넘는’ 박달재, 새재, 죽령 등 무수히 많은 고개가 이곳저곳을 가르고 있지요. 충북의 남쪽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영동이 특히 그렇습니다. 저 유명한 추풍령과 괘방령, 우두령, 도마령 등이 경북, 전북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이 깊으니 당연히 골도 깊겠지요. 흐르는 물도 맑을 것이고요. 이처럼 산과 물이 빚어낸 모습들을 풍경이라 정의한다면 영동은 그야말로 절경이 담긴 산수화 같은 곳이 아닐는지요. 수많은 고개가 도시의 때를 막고 물길이 이를 정화한 덕에 여태 오지적 풍경들을 잃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추풍령이 상당히 험한 고개인 줄 알았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으로 시작되는 옛노래 ‘추풍령’(1978·남상규)의 영향 때문일 터다. 그런데 나이 들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초등학교 교정에서 선 올드보이들이 느끼는 옛 기억과의 괴리감이랄까. 추풍령이 그랬다. 겨우 220m 남짓한 야트막한 언덕. 차마 고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높이다. 하지만 물리적 규모와 다르게 추풍령은 고갯길의 변천사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한때 수많은 사람과 물산이 오가던 고개였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한순간에 그 지위를 잃었다. 그나마 근근이 이어 오던 국도로서의 명맥 역시 바로 옆에 고속화도로가 놓이면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여전히 고속도로와 고속철로, 국도 등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정작 추풍령 고개는 세인의 발걸음에서 벗어나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추풍령엔 사실 뚜렷한 볼거리가 없다. 한때 나라의 주요한 길목이었다는 역사와 중장년의 가슴을 적셨던 옛 노래의 무대였다는 향수 정도가 남았다. 등록문화재(47호)로 지정된 추풍령역 급수탑, 시골 느낌 폴폴 나는 면소재지 풍경 등이 그나마 볼거리 축에 속할 정도다. 그런데도 굳이 추풍령을 찾은 건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가 남아 있어서다. 이를 기억의 소환이라 불러도 좋겠다. 추풍령에서 퍼뜩 느껴지는 단어는 추풍낙엽이다. 그래서 예전 과거 보러 한양 가던 선비들은 극구 이 길을 피해 갔다고 한다. 한데 이웃한 괘방령은 전혀 달랐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벽에 써 붙이는 걸 ‘괘방’(掛榜)이라 부른다. 괘방령은 이를 차용한 이름이다. 그러니 한양 가던 선비들이 어느 길을 선택했을지는 더 물을 것도 없다. 요즘도 입시철엔 자녀의 합격을 바라는 이들의 발걸음이 은근히 많아진다고 한다.풍경으로만 보자면 상촌면의 도마령이 단연 윗길이다. 영동과 전북 무주를 잇는 고개다. 도마령 정상에서 굽어보는 풍경이 장쾌하다. 민주지산, 천만산 등 고산준령들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도마령의 구절양장 길을 돌아 내려서면 편백나무 숲과 만난다. 영동의 한 독림가가 평생 동안 애면글면 가꾼 숲이다. 규모는 40만평 정도. 이정표에는 ‘감고을 영동 편백숲’, 소유주가 낸 설명서에는 ‘영동 편백 치유숲’이라 표기돼 있다. 그간 비밀의 숲처럼 감춰져 있다가 최근 2대 산주가 개방을 결정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숲을 보고 있자면 보석의 원석을 대하는 느낌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숲은 여전히 거칠다. 반면 그만큼 싱싱하고 짙푸르다. 산주는 앞으로 숲이 개발되더라도 시멘트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시멘트로 대표되는 도시화의 유입을 막겠다는 뜻이기도 할 터다. 산과 물이 빚어낸 풍경 가운데 월류봉을 빼놓을 수 없다. ‘달이 머무는 봉우리’ 월류봉은 영동의 명산인 민주지산에서 내달린 산자락이 황간면 원촌리에서 한천과 만나 불끈 솟아 오른 봉우리다.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멋들어진 봉우리 네댓 개가 서로 어깨를 겯고 있는 모양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여행차 다녀간 곳으로도 알려졌다. 500년 된 배롱나무가 인상적인 반야사와 반야사 계곡도 돌아볼 만하다. 노근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통한의 현장이다. 철길 아래 터널 등에 총탄과 포탄의 흔적이 여태 남아 있다. 주변에 평화공원도 조성돼 있다.영동의 서쪽으로 간다. 양산팔경을 품은 송호리가 명소다. 송호리는 ‘비단강’이 돌아나가는 곳이다. 원래 이름은 금강(錦江)이지만 영동 사람들은 굳이 비단강이라 풀어 부른다. 마을과 마을을 돌아 나가는 모양새며, 그 와중에 만들어 낸 풍경들이 비단결처럼 곱다는 뜻일 터다. 비단강은 영동 일대를 휘감아 돌다 곳곳에 빼어난 명소들을 빚어냈는데 그중 하나가 송호리 국민관광지다. 송호리 국민관광지의 핵심은 솔숲이다. 강변을 옆구리에 끼고 솔숲 사이를 산책하는 맛이 각별하다. 면적은 약 30만㎡(약 8만 6000평). 양산팔경의 하나인 여의정(6경), 용암(8경) 등이 이 안에 있다. 영동은 우리나라 3대 악성 중의 한 명인 난계 박연(1378~1458)이 태어난 곳이다. 심천면 일대에 국악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편종 등 국악기들을 전시한 난계국악박물관, 국악체험촌, 난계사 등이 몰려 있다. 사실 지방자치단체가 국악의 본향 노릇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외면하는 국악을 관광에 접목시키는 게 소도시의 역량으로는 버거웠을 수 있다. 50년 넘도록 이런 역할을 꿋꿋이 이어 오는 공로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싶다. 옥계폭포는 박연이 자신의 호를 따왔다는 폭포다. 중부권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달이 뜨는 산’ 월이산 암벽에 그림처럼 걸려 있다. 마지막으로 장선마을 이야기를 덧붙이자. 영동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도착할 때까지는 도착한 게 아니라고 할 만큼 깊숙한 산골에 터를 잡았다. 마을은 십여 가구 정도로 제법 커 보이지만 실제 주민은 서너 가구에 불과하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도랑이 충북과 충남을 가르는 경계다. 도랑 왼쪽은 충남 금산, 오른쪽은 영동이다. 마을 주민들은 하루 수차례 충남, 북을 가로지르며 너나없이 살아간다. 충남 쪽 도랑가에 작은 정자가 있다. 장선마을의 옥구슬 정자 ‘장선경루’(長仙?樓)다. 정자에 앉아 도랑물 졸졸대는 소리를 듣자니 시나브로 해가 진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맛집:가선리 일대에 어죽집이 몇 곳 있다. 가선식당(746-8665)은 그중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다. 금강의 별미로 꼽히는 어죽과 도리뱅뱅이를 맛볼 수 있다. 이웃한 선희식당(745-9450)의 명성도 못지않다. 도리뱅뱅이는 충북 영동, 옥천 등의 토속 음식이다. 피라미나 빙어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돌려 기름에 튀긴 뒤 고추장 양념에 조려 낸다. 영동 읍내의 사랑채(745-6004), 황간면의 인터식당(742-4525) 등은 ‘올갱이’(다슬기의 사투리)국으로 이름난 집들이다. 특히 사랑채는 밑반찬이 정갈하고 맛있다. 부추나 아욱을 주로 쓰는 여느 집과 달리 근대를 주재료로 삼는 것도 이채롭다. →가는 길:영국사, 송호리 등 영동 서쪽의 관광지를 먼저 보겠다면 대전통영고속도로 금산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낫다. 이어 68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양산면 방향으로 곧장 가면 된다. 월류봉, 추풍령 등 황간 일대의 명소들을 먼저 찾겠다면 경북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빠르다. 영동 읍내와 와이너리 등은 경부고속도로 영동 나들목과 가깝다. 장선마을은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내비게이션에도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선리 방향으로 가다 장선교에서 우회전한다. 이어 펜션 등이 들어찬 마을을 지나고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지난 뒤에 한참을 더 가야 나온다. 영동편백 치유숲(745-3740)도 찾기가 쉽지 않다. 먼저 자계예술촌을 찾아간 뒤 ‘영동 감고을 편백숲’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주소는 용화면 자계리 산 1-3이다. 이제 막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곳이어서 주차시설 등은 갖춰져 있지 않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황간 나들목에서 영동 방면으로 2㎞ 거리에 있다. →잘 곳:송호국민관광지(740-3228) 야영장에서 캠핑을 하는 것도 좋겠다. 오토캠핑장은 없고 전기도 사용할 수 없는 ‘아날로그’ 캠핑장이지만 찾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송호리 바로 옆의 비단강숲체험마을(745-5432)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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