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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 3D 파일, 최초로 공개 (영상)

    이집트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 3D 파일, 최초로 공개 (영상)

    이집트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을 3D로 구현한 파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대중에 공개됐다. 이집트 파라오 시대의 왕비인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석회석에 채색토를 입힌 약 50㎝ 높이의 흉상으로, 왼쪽 눈동자가 미완성 상태로 남겨졌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고대 이집트 유물이다. 네페르티티 흉상은 1912년 이집트 유적 발굴 중이던 독일의 고고학자가 발견한 뒤 독일로 밀반출됐고, 현재까지도 독일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신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독일 박물관 측은 네페르티티 흉상의 3D 스캐닝 파일을 실제 유물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보안으로 보호해왔다. 깨지고 훼손되기 쉬운 실제 유물과 달리, 고해상도의 3D 스캐닝 파일은 보안이 보다 쉽고 작은 디테일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해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베를린에 본부를 둔 이집트 박물관과 파피루스 전시관 및 디지털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는 코스모 벤남은 2016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흉상의 3D 디지털 파일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해 왔으나, 박물관 측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코스모 벤남은 “박물관 측은 3D 스캐닝 파일을 공개하면 박물관의 기념품 가게에서 네페르티티 흉상 복제품 판매량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3년 여의 기다림 끝에 결국 박물관 측은 해당 요청을 승인하고 네페르티티 흉상의 고화질 3D 스캐닝 파일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또 저작물사용 허가표시를 통해 몇 가지 이용방법만 지킨다면, 비영리 목적으로 자유롭게 3D 스캐닝 파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독일은 자국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쉽사리 내놓으려 하지 않지만, 독일 안팎에서는 해당 유물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하는 동시에, 이집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다. 실제로 2016년 독일의 예술가 2명이 박물관에서 몰래 네페르티티 흉상을 3D로 스캐닝한 뒤 이를 3D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집트는 2009년부터 식민지 시대에 박탈당한 유물들을 회수하고 있으며, 네페르티티 흉상 또한 반환요구 대상 문화재 중 하나로 꼽힌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박경리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박경리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이자 김지하 시인의 부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25일 별세했다. 73세. 연세대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고인은 생전 국제대, 서강대,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조선시대 불화연구’, ‘신기론으로 본 한국미술사’, ‘한국불교미술사’ 등의 저서를 남겼다. 1973년 김지하 시인과 결혼했으며 이듬해 김 시인이 민청학련 주모자로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옥바라지를 했다. 1980년 무렵 강원도 원주에 정착, 2008년 박 선생의 타계 이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국내 문학 발전에 힘써 왔다. 2011년에는 박경리문학상을 제정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현대조각공원에 박 선생의 동상을 세웠다. 지난 6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박경리 문학제를 열었다. 유족으로 남편 김 시인과 2남이 있다. 빈소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500년 전 아라가야 사슴뿔잔, 정교히 접합됐다

    1500년 전 아라가야 사슴뿔잔, 정교히 접합됐다

    아래에서 위로 좁아지는 원통형 굽다리 받침 위에 해학스러운 사슴 모양의 둥근 몸통이 날렵하게 솟구쳤다. 몸통 위로는 ‘V’자 모양 원통형 뿔을 살포시 얹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약 20㎝ 정도인 이 사슴모양뿔잔은 1500년 전 아라가야 시대 조형미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액체를 채운 것으로 추정되는 몸통 부분은 겉에 이음매가 안 보일 정도로 매끄러워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엑스선컴퓨터단층촬영(X선 CT)으로 경남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 45호분에서 나온 사슴모양뿔잔의 제작 기술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X선 CT는 기계가 360도로 돌면서 투과시킨 X선으로 추출한 단층 이미지를 모아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의료, 자동차, 전자 분야에서 비파괴 조사에 이용한다. 문화재의 경우 내부 구조가 복잡한 유물에 사용한다. 이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사슴모양뿔잔은 V자 원통형 뿔잔과 몸통 상·하부, 굽다리의 4개 부분을 각각 이어 붙여 만들었다. 몸통은 사슴 모양 머리에서 목까지는 흙으로 메워 빈 공간이 없었다. 원통형 뿔과 몸통은 서로 이어져 물이나 술 등 액체를 뿔에 부으면 원통에 채워진다. 뿔과 몸통 상부가 서로 붙어 있었고, 특히, 몸통 내부에는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손으로 누른 흔적이 확연했다. 육안으로 잘 안 보이던 이음새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표면은 매끄럽게 다듬었지만, 몸통 뒤에서 바라볼 때 왼편 쪽에 접합부위가 선명하다. 박종서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연구관은 “사슴 머리를 지탱할 수 있는 몸체의 바닥 부분을 만든 다음 원통형 뿔잔과 연결한 몸체 상부를 왼쪽으로 눌러 붙여 몸체를 완성했다. 그 뒤에 굽다리 받침을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경남 함안군과 두류문화재연구원 요청으로 진행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사슴모양뿔잔 외에도 집모양토기, 배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 등 4점의 아라가야 토기를 분석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결과를 문화재 정밀 디지털 자료로 구축하고, 발굴 보고서에도 수록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춘례 서울시의원, 혜화문 현판 복원 제막식 축사

    김춘례 서울시의원, 혜화문 현판 복원 제막식 축사

    서울시의회 김춘례 의원(더불어민주당·성북1)은 지난 22일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혜화문 현판 복원 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행사에는 유승희 국회의원, 임종국 서울시의원, 유연식 서울시 문화본부장 등의 인사가 참석해 문화재 복원 사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서울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한양도성의 8개의 성문 중에서 동소문으로 불렸던 혜화문은 조선시대에는 여진의 사신이 드나들고, 문을 지나면 우리나라의 동북 지역 즉 강원도와 함경도로 통하는 교통의 시작점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문이었던 혜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화에 불탔고, 일제강점기에는 유지관리가 되지 않아 문루가 허물어지고, 도로 개설로 육축마저 헐려 없어졌던 수난의 역사가 있었다. 이후 혜화문은 서울시의 노력으로 1994년 다시 복원됐고, 금일 혜화문의 원래 현판까지 복원돼 당당히 제 이름을 내걸게 됐다. 본래 현판의 정밀한 고증을 통해 다시 태어난 얼굴을 내건 혜화문은 이제,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힘차게 세계 속에 빛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김춘례 의원은 “혜화문과 같은 문화유산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소유가 아닌,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여겨야 한다. 혜화문이 원래의 제 모습을 되찾기까지 애써주신 서울시와 관계자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축사를 마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수조교 아닌 이수자를 낙점… 문화재청 ‘비공개 회의록’ 논란 키웠다

    전수조교 아닌 이수자를 낙점… 문화재청 ‘비공개 회의록’ 논란 키웠다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제27호), 태평무(제92호), 살풀이춤(제97호) 종목 보유자 8명을 한꺼번에 인정하면서 4년 전 불거진 인정 철회 논란도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각종 의혹이 불거졌지만, 문화재청이 비공개로 일관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재청은 지난 15일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보유자 인정 안건 심의를 받아들여 각각 1명, 4명, 3명 모두 8명을 보유자로 인정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세 종목에서 보유자가 나오기는 각각 19년, 31년, 29년 만이다. 인정 대상자는 승무 채상묵(75)씨, 태평무 이현자(83)·이명자(77)·박재희(69)·양성옥(65)씨, 살풀이춤 정명숙(84)·양길순(65)·김운선(60)씨다. 인정 결과는 25일 관보에 고시하면 최종 확정된다. ●8개월간 ‘검토→예고→보류→검토→인정’ 문화재청은 앞서 3월 15일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보유자 인정을 검토하겠다며 조사·심의 기구인 무형문화재위원회를 열어 보유자 후보 11명을 선정했다. 특히 이 명단에 태평무 종목 양성옥씨가 올라 논란이 됐다. 문화재청은 앞서 4년 전인 2015년 12월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에 관한 보유자 11명에 관한 인정 심사를 진행하고 이 가운데 양씨만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 탈락한 다른 후보들을 중심으로 무용계 일각이 이에 격렬히 반대하면서 결국 이듬해 인정을 철회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 인정에 관해 “오랫동안 보류한 사안이라 검토를 통해 결론을 내리려 한다”며 강행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정승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숙자 한성대 명예교수, 김태원 전 동아대 교수, 성기숙 한예종 교수, 이종호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 임학선 성균관대 석좌교수 등 240여명이 구성한 ‘무용 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불공정심사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즉각 성명을 내고 “문화재청이 불공정심사 논란으로 파문을 일으킨 과거 인정 조사 절차를 다시 강행한다”고 비판했다. 성 교수는 이와 관련, “4년 전 논란이 됐던 양씨는 지금까지 심의를 무려 4번이나 했다. 관련 법령은 재심의는 ‘단 1회에 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법령 위반”이라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에 인정한 박재희씨에 관해서도 “태평무는 강선영류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뿐, 박씨가 속한 태평무 한영숙류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은 유파의 춤”이라고 강조했다. 승무 종목에서는 전수교육조교가 아닌 이수자 채상묵씨가 보유자가 돼 논란을 불렀다. 전수장학생, 이수자, 전수교육조교, 보유자를 가리켜 ‘전승자’로 통칭한다. 보유자는 국가무형문화재 체계에서 최상위에 있으며, 종신 지원금을 비롯해 각종 혜택을 준다. 지원금은 매월 보유자가 130여만원, 전수교육조교가 66만원이다. 보유자로 인정받으면 자신의 계보를 세우고 전수단체도 이끌 수 있다. 정부가 전수단체에 주는 지원금은 매달 400만원이다. 이와 별도로 국가무형문화재 전수단체 공연을 비롯한 활동 지원 예산이 연 100억원 규모다. 전승자의 구성을 살펴보면 보유자 인정 문제가 왜 첨예한 갈등을 부르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말 기준 국가무형문화재는 모두 142개 종목으로, 전통 공연·예술이 46종목(32.4%), 전통기술이 52종목(36.6%), 전통 생활관습이 8종목(5.6%), 의례·의식이 18종목(12.7%), 전통 놀이·무예가 16종목(11.3%), 전통지식이 2종목(1.4%)이다. 142개 종목 전체 전승자는 모두 6882명으로, 이 가운데 보유자는 168명,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전수교육조교는 4.1%로, 285명뿐이다. 반면 이수자는 전체의 92.5%인 6363명에 이른다.●25일 관보에 고시하면 보유자 최종 확정 이수자에서 전수교육조교가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 보유자가 공석일 때 전수교육조교가 교육을 대행하는 점을 비춰볼 때, 이수자가 전수교육조교를 건너뛰고 보유자가 되는 일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번에 탈락한 승무 전수교육조교 김묘선씨는 “전수교육조교를 건너뛴 채 이수자를 보유자로 인정한 것은 전승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린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관련, “승무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에게서 직접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받고 현재 미국, 브라질, 일본, 한국 등에 모두 11개 승무전수소를 운영 중인 내가 보유자에서 탈락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중상모략이 있었다고 의심되는 대목이다”면서 “무형문화재위원회가 떳떳하다면 회의록과 심사 점수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종 의혹을 풀 열쇠는 무형문화재위원회의 회의록 공개다. 김씨를 비롯해 비대위는 지난 3월 문화재청이 보유자 인정을 검토할 때부터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보유자 인정은 문화재청 심의 기관인 무형문화재위원회가 하고, 문화재청장이 이 의견을 받아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무형문화재위원회는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비롯해 명예보유자,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보유단체 인정과 해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선정 등에 관한 거의 모든 사항을 조사하고 심의한다. 2016년 3월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화재위원회 한 분과였다가 별도 분리했다. 현재 전통 예능·기술·지식 3개 분야 위원 24명, 전문위원 47명으로 구성됐고, 위원 임기는 2년씩이다.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영향력이 막강한 만큼, 회의 내용은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모두 공개하게 돼 있다. 회의가 끝나면 7일 이내에 문화재전자행정정보시스템에 회의록을 등재한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지난 8개월간 5차례 회의록에는 ‘시행령 12조에 따라 모두 비공개 처리한다´고 돼 있다. 12조는 ‘해당 사항이 공개되면 공정한 조사·심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다. 다른 사항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한 것에 비해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예컨대 9월 6일 회의에서 함께 논의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수궁가) 명예보유자 인정’에 관해서는 제안사항, 제안사유, 주요내용, 검토의견, 의결사항 등을 2쪽에 걸쳐 상세하게 수록했다. 성 교수는 “무형문화재위원은 11명인데, 태평무 의결 시엔 5명만 참석한 사실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재적위원 과반 출석에 출석 위원 과반 의결이 기준인데, 불참한 위원들은 ‘위임하고 갔다’고 국감에서 답했다. 관련 규정에 의결방식은 ‘거수 또는 기명 투표’로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위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콩쿠르와 같은 일회성 대회도 채점표, 심사 기준을 모두 공개하는 판국에 문화재청은 각종 의혹이 쏟아지는데도 여전히 내용을 감추고 무리하게 인정 절차를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심사 공정… 점수 공개는 불가” 문화재청은 이에 관해 “선정 과정에서 양씨와 관련한 위원은 모두 자진해서 빠졌다. 승무 종목은 정해진 지표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했다. 다만 심사점수 공개는 선정된 분이나 탈락한 분을 위해서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비대위를 비롯한 인정 탈락자들 사이에서는 “실력과 상관없이 위원들과 인맥이 있어야 보유자가 되는 거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급기야 지난 20일 비대위는 ‘정재숙 문화재청장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25일 관보에 고시하면 보유자 인정은 최종 확정되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울산발전연구원 25일 ‘문화도시 울산’ 조성 전문가 토론회 개최

    문화도시 울산을 만들기 위한 전문가 초청 토론회가 열린다. 울산발전연구원은 오는 25일 롯데호텔 울산에서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울산의 방향’을 주제로 ‘제36회 울산콜로키움’을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는 문화계 전문가, 울산시, 울산발전연구원 등 30여명이 참여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진행한다. 이채관 (사)와우책문화예술센터 대표(실험과 실천:지속가능한 도시 기획)와 송교성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지식공유실장(문화도시 추진절차와 내용)이 각각 주제발표를 한다. 이어 신동호 코뮤니타스 대표, 이재호 울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각각 ‘문화도시 추진체계와 전략’, ‘울산시 문화도시 조성’을 주제로 발표에 한다. 토론회에서는 우세진 울산과학대 교수, 전수일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김구대 내드름 연희단 대표, 김정배 울산문화도시포럼 이사장이 참여해 문화도시 조성 방안을 제시한다. 울산발전연구원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문화도시 울산을 만드는 데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총 지원금 140억원…서울문화재단, 2020 서울예술지원 공모 시작

    총 지원금 140억원…서울문화재단, 2020 서울예술지원 공모 시작

    서울문화재단은 예술인들의 안정적이고 다양한 창작활동을 위해 총 140억원 규모의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특히 이번 지원 사업은 ‘응모 자격이 까다롭다’는 예술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지원 기준을 기존 성과 중심에서 창자가 주체 중심으로 대폭 개선했다.재단이 오는 26일부터 공모를 시작하는 ‘2020 서울예술지원’ 사업은 크게 ▲예술창작지원 ▲예술기반지원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등 총 3개 사업으로 진행한다. ‘예술 창작지원’은 연극, 무용, 음악, 전통, 시각, 다원, 문학 등 총 7개 분야를 대상으로, 예술활동 경력단계에 따라 3개 ‘트랙’으로 세분화했다. 지원자는 ‘신진예술인’(A트랙), ‘유망예술인’(B트랙), ‘중견예술인’(C트랙) 등 자신의 경력에 맞춰 응모하면 된다. A트랙은 예술 전문 활동 경력 5년 내외, B트랙은 6년 이상 15년 내외, C트랙은 경력 10년 이상 예술인이 지원 대상이다. 재단은 이처럼 지금까지 생물학적 나이로 구분하던 지원 기준을 예술활동 경력단계별로 개선했다. ‘공연 및 시각 예술분야’에서는 작품과 전시 제작에 드는 직접 경비 외에 창작 과정을 인정하는 별도의 창작활동비도 신설했다. 작업계획 구상 전 과정을 준비하기 위한 지원(창작준비 지원)과 예술활동 전반의 질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예술생태계 인프라를 간접 지원하는 ‘예술기반지원’ 등도 새로 마련했다. 공모는 총 2차로 나누어 진행되며, 1차는 26일부터 12월 17일 오후 6시까지 ▲예술창작지원-창작활동지원 ▲공연장 상주단체 육성지원 두 분야를 모집한다. 2차 공모는 2020년 2월 진행하며 ▲예술창작지원-창작준비지원 ▲예술기반지원 공모를 진행한다. 거주 지역 상관없이 2020년 서울에서 예술 활동을 계획하는 예술인 누구나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www.ncas.or.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문화재단 누리집(www.sfa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백사 이항복의 후손, 400년간 지켜온 문화재 기증

    백사 이항복의 후손, 400년간 지켜온 문화재 기증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1556∼1618) 15대 종손인 이근형씨에게서 종가가 400년간 간직한 문화재 17점을 기증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이항복 종가가 전달한 유물 중 백사 관련 자료는 모두 6점이다. 특히 백사가 1604년 받은 ‘호성공신 교서’는 보물급 가치가 있다고 중앙박물관은 강조했다. 교서는 신하가 공을 세웠을 때 왕이 주는 이름과 업적, 특권, 명단을 적은 문서다. 호성공신 교서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하는 데에 공을 세운 신하 86명에게 등급을 나눠 하사했다. 이 중 1등 공신은 이항복과 정곤수 두 명뿐이며, 현존 호성공신 1등 교서로 유일하다. 가로 271㎝, 세로 37㎝ 크기로, 명필로 알려진 한호가 글씨를 썼다. 이항복 후손들이 기증한 초상화는 모두 2점이다. 이항복이 호성공신과 위성공신이 됐을 때 받은 초상화가 낡자 18세기에 베껴 그린 후모본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 측은 “서울대 박물관에 있는 ‘이항복 초상화 초본’과 얼굴 표현이 유사하다. 서울대 작품은 이항복이 57세 때인 1613년 초상화 초본(밑그림)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항복이 손자를 위해 직접 쓴 천자문은 손 글씨 천자문 가운데 가장 이르다. 정자체로 쓴 뒤 “정미년(1607) 4월 손자 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먹은 노인이 땀을 닦고 고통을 참으며 쓴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 이 노인의 뜻을 저버리지 말지어다”라고 당부를 남겼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사라져가는 향토 민요 2만곡, 이곳에 ‘저장’

    사라져가는 향토 민요 2만곡, 이곳에 ‘저장’

    서울 종로구 창덕궁 돈화문 건너편에 국내 최초로 사라져가는 향토민요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전용 공간이 생긴다. 서울시는 21일 와룡동에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을 개관했다고 밝혔다. 향토민요는 일정한 지역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르던 노래를 말한다. 전문 소리꾼이 부르는 통속민요와달리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역의 삶과 정서, 언어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상 1층, 지하 2층, 연면적 1385㎡ 규모의 한옥 건물인 박물관은 음원감상실, 상설전시실, 영상감상실, 우리소리 아카이브로 구성됐다. 이곳에는 전국 각지의 향토민요 음원 2만곡이 전시돼 방문객 누구나 듣고 경험해볼 수 있다. 이 중 약 1만 8000곡은 MBC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전국 800여개 마을을 직접 찾아가 채록한 것이며, 약 2000곡은 국가무형문화재와 전문 국악인 등이 직접 기부했다. 옛 음악교과서, LP음반, 공연의상 등 실물작품 5700여점도 보존됐다.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인근에는 2016년 문 연 국악전문 공연장 ‘서울돈화문국악당’도 자리잡았다. 서울시는 궁중음악 중심의 국악당과 서민음악 전문 박물관인 이곳을 연계해 일대를 우리 전통음악을 보존·계승하는 ‘돈화문 국악로’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박원순 시장은 “이곳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묻은 전국 각지의 향토민요를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라면서 “전통문화의 거리 ‘돈화문 국악로’를 전통음악의 계승과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은행나무, 황금빛 날개 되어 - 영동 영국사(寧國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은행나무, 황금빛 날개 되어 - 영동 영국사(寧國寺)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 #천태산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시 ‘은행나무’ 중에서, 곽재구, 1991> 은행나무는 억울하다. 가을이 되면 욕이라는 욕은 다 먹어 혈색(?)조차도 노랗게 변한다. 도심 보도(?道)에 떨어진 은행 열매는 거의 지뢰 취급을 받는다. 매년 가을마다 사람들은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 그러나 가로수가 은행나무인 이유가 다 있는 법.2018년 서울시 가로수 현황 통계에 의하면 서울 도심 가로수 총 306,287주 중에서 은행나무는 109,784주로 전체 36%에 육박한다. 그 다음 수종(樹種)으로는 양버즘나무, 느티나무, 왕벚나무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은행나무는 생육에 무척이나 강하고 사람 손을 타지 않는다. 오죽하면 진화론 주창자인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 불렀으며 히로시마 원폭(原爆)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도 은행나무다. 그러다 보니 은행나무는 공룡과 암모나이트가 번성하던 중생대부터 지금까지 진화도 하지 않은 채 1목 1과 1속 1종의 식물 분류 계통을 유지하며 멸종되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또한 은행나무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 정화하는 능력이 우수하고, 나무의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도 불이 옮겨 붙지 않을 정도로 끄덕없다. 더구나 열매에는 독성이 있는 은행산이라는 성분이 있다. 바로 이 독(毒)성분에는 고약한 냄새가 있어 해충이나 뱀, 그리고 멧돼지와 같은 큰동물도 근접을 하길 꺼린다. 비록 인간에게는 열매 내음이 악취로 다가오겠지만 알고보면 인체무해한 천연 해충제가 바로 은행나무 열매다. 따라서 예로부터 집주변이나 사찰, 누각 등지에는 꼭 은행나무를 심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암수 구별이 있는 자웅이체인 은행나무는 오직 암나무만이 열매를 맺는데 2011년 산림청에서 은행나무 성 감별 DNA 분석법을 개발하기 이전에 심은 가로수 암나무들을 현재 열매가 없는 수나무로 교체 작업중이다. 황금빛 날개짓 가득한 은행나무를 만나러 영동 영국사(寧國寺)로 가 보자. #가로수짱 #암수나무 #살아있는화석 우리나라에는 현재 총 23주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들이 있다. 그 중에서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은행나무다. 더구나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가지의 뻗음과 방향이 자유분방해서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높이 31m, 둘레 11m 암나무인 은행나무는 사찰 초입의 천왕문 역할도 하여 예로부터 영국사의 수호신으로도 인정받아 왔다. 또한 서쪽으로 뻗은 가지 중에서 하나가 유주(乳柱)가 되어 땅에 뿌리를 둔 후계목으로 자라는 신기한 현상도 볼 수 있다.영동군 양산면에 위치한 영국사는 충청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천태산(天台山, 해발 715m)'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방문객들은 천태산 입구 천태동천의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진주폭포와 삼단폭포를 만나고 곧 은행나무 한 주가 크게 솟아 있는 영국사 입구에 다다른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되었고,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는 왕명으로 탑과 승탑, 금당을 새로 지어 국청사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그 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다 하여 현재의 영국사(寧國寺)로 개명하게 되었다.현재 영국사에는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 승탑(보물 제532호),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와 높이 31미터가 넘은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수령 1,000살 가량의 은행나무 등을 비롯한 지방유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영동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사찰로 이름나 있다. <영동 영국사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우리나라 은행나무 유명 사찰은 양평 용문사, 영동 영국사, 금산 보석사, 청도 적천사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의 가벼운 등산 코스로,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3. 가는 방법은? - 충북 영동군 양산면 영국동길 225-35(누교리1397) - 천태산 주차장에서 천천히 삼단폭포 쪽으로 걸어올라가면 된다. 4. 영동 영국사의 특징은? -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로 은행나무와 천태산 등산로에 위치하여 유명한 사찰이다. 5. 여행지로서의 유명 정도는? - 주말을 제외하고는 항상 조용한 사찰이다. 6. 꼭 가 볼 장소는? - 은행나무, 원각국사비, 영국사 승탑, 영국사 삼층석탑, 망탑봉 삼층석탑, 영국사 후불탱화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짜장면 ‘덕승관’, 어죽 ‘가선식당’, 송어회 ‘송천가든’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yeongguksa.com/bbs/content.php?co_id=101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노근리 평화공원, 난계 국악박물관, 월류봉, 물한계곡, 송호국민관광지, 옥계폭포, 반야사, 와인터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은행나무만 보러 가기에는 사찰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시간을 두고 천태산 등산길 가운데 영국사를 만난다면 꽤나 괜찮은 절집이 될 수도 있다. 수령(樹齡)이 오래되다보니 노란 은행잎을 보기 위해서는 날짜를 잘 맞추어 가야 한다. 영국사 홈페이지에 은행나무 축제가 공지된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울산시 ‘묘법연화경 권1’·‘선원제전집도서’ 문화재자료 지정

    울산시 ‘묘법연화경 권1’·‘선원제전집도서’ 문화재자료 지정

    울산시는 대한불교조계종 청룡암 소장 ‘묘법연화경 권 1’과 ‘선원제전집도서’를 시 문화재자료로 지정 고시했다고 21일 밝혔다. 울산시에 따르면 ‘묘법연화경 권 1’은 표지에 먹물로 ‘법화경’(法華經)이라 표제를 쓰고, 아래에 ‘원’(元) 자를 적었다. 현재 1책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원래는 ‘원형이정’(과거 4권의 책을 분류하는 표기법) 4책으로 제본됐다. 책 끝 부분에 ‘융경육년임신이월일 경상도상주지사불산대승사개판’(隆慶六年壬申二月日慶尙道尙州地四佛山大乘寺開板)이라는 기록이 있어 1572년 경상도 상주 대승사에서 간행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본문 서체는 조선 초기 명필인 성달생 서체 계통의 판본이고, 같은 대승사 간행본은 현재 고려대 만송문고와 동국대 도서관 등 2곳에만 소장돼 있다. 시 관계자는 “임진왜란 이전 판본으로 귀중본에 해당한다”며 “현존하는 판본이 희소해 문화재 자료로 지정·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조선 전기 국어사 연구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원제전집도서’는 책 끝 부분에 ‘1635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기록과 연화질(불사를 맡아보는 임시 사무소 일과 관계있는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과 시주질(시주한 사람 명단)이 수록돼 있다. 인출과 보관 상태도 대체로 양호하다. 비록 임진왜란 이후에 간행된 것이지만 이보다 후에 간행된 1681년 운흥사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선례가 있어 이 책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해 보존·관리할 가치가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현재 울산에는 국가지정문화재 28건, 시지정문화재 120건 등 총 148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노승재 서울시의원, 풍납토성 주민대책수립 및 도시재생지역 선정 당위성 강조

    노승재 서울시의원, 풍납토성 주민대책수립 및 도시재생지역 선정 당위성 강조

    서울특별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노승재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송파1)은 문화본부 소관 행정사무감사에서 사적지정으로 재산권의 제약을 받고 있는 풍납동 주민들의 현실을 전하며 문화본부와 문화재청, 국세청 등의 협력을 촉구했다. 노 부위원장은 “집단이주대책과 특별공급이 불가한 상황에서 3권역에 소규모주택사업, 자율주택사업을 활발히 추진해 2권역 주민이 3권역으로 이주하여 풍납동을 떠나지 않고 정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주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며 “많은 주민들의 요구사항이므로 이를 위해서 서울시와 송파구의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문화재청과 협의해 3권역 보상 완료 후 철거된 토지를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발굴기간·비용 부담 및 지하 2m 터파기 금지에 따라 지하주차장 불가 등 사업성이 낮아 소규모주택사업 추진이 어려운 만큼 발굴조사 대신 전체면적의 10%만 시험발굴하고 발굴기간 주민 이주비용 및 발굴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 부위원장은 보상 완료후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을 획일적으로 철거해 주차장 조성 또는 펜스를 설치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지역의 슬럼화를 염려했다. 이에 개선 방안으로 건물 철거 대신 리모델링을 통해 청년주택으로 활용하거나 주민사랑방, 아이돌봄교실, 취미교실 등 으로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 노 부위원장은 “풍납토성주변이 도시재생사업(역사문화특화) 후보지로 선정돼 송파구와 풍납동 주민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해 문화본부장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물었다. 끝으로 노 부위원장은 문화본부에서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줄 것을 당부하면서 행정사무감사를 마무리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복궁 향원정은 ‘온돌 정자’였다

    경복궁 향원정은 ‘온돌 정자’였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월부터 시작한 향원정(보물 제1761호) 복원 전 발굴조사에서 그동안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던 온돌 구조를 찾아 20일 공개했다. 경복궁 후원에 있는 육각형 2층 정자인 향원정은 정자 건물인데도 아궁이가 있는 독특한 형태로 지었다. 향원정에 난방을 위한 온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연기가 다니는 통로와 배출구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지난 9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한 조사단은 구들장 밑으로 낸 고랑인 ‘고래둑’과 불기운을 빨아들이고 연기를 머물게 하는 온돌 윗목 고랑을 가리키는 ‘개자리’를 확인했다. 남호연 연구소 학예사는 “외부 기단과 내부 기단을 쌓아 올린 이중기단을 만들고 이 사이에 방고래와 개자리를 둘렀다”면서 “불길과 연기가 이 통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빠졌다”고 설명했다. 배병선 연구소장은 “인공호 가운데 올린 작은 정자이다 보니 지반이 연약해 관통형 온돌이 아닌 둘러서 나가는 특이한 형태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정자가 기울어진 원인도 찾았다. 정자를 받치는 6개 기둥 중 동남 방향 기둥 주춧돌 아래 초반석에서 균열을 찾았다. 배 소장은 “초반석이 뜨거운 열기를 지속적으로 받아 금이 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원정은 고종 때인 1870년 전후에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7월부터는 일반에도 공개할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가가 주는 훈장 증서부터 전통 한지로 바꿔야죠”

    “국가가 주는 훈장 증서부터 전통 한지로 바꿔야죠”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유산 가운데 중국 ‘짝퉁’이 아닌 것은 한지와 쇠숟가락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 한지를 만드는 기술이 다 사라졌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한지는 한지가 아니다(한국의 전통 한지)’란 책을 펴낸 박후근(왼쪽·54) 국가기록원 행정지원과장과 정재민(오른쪽·55) 농학박사는 지난 4년간 주말이면 한지 제조업체를 답사하고 닥나무 씨앗을 얻으려고 섬까지 찾아다녔다. 한지가 생업이 아니지만 천 년이 지나도 바스러지지 않는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진짜 한지를 찾고자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종이를 제조하던 관서인 조지서가 폐지되고 일제 조선총독부가 대량생산 기술을 도입하면서 전통 한지 기술이 소멸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립수목원에서 근무하는 ‘닥나무 전문가’인 정 박사는 “종이는 중국인 채륜이 발명했다고 하지만 그 전인 고구려 초에 종이가 있었다는 설이 많다”며 “볏짚으로 만든 중국 선지보다 우리 고유 수종인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질이 뛰어나 고려 사신들이 선물로 쓸 정도로 고려 종이는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종이 발명국으로 알려진 중국 사람들이 탐내던 우리의 종이 제조기술이 일본의 문화 말살정책으로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한지는 빨래처럼 마구 빨아도 무르거나 찢어지지 않아 중국 선지나 일본 화지보다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입증한다. 다라니경은 우리만의 독특한 종이 표면 처리 방식인 도침처리를 한 닥나무 한지에 인쇄돼 1300여년이 지났지만 석가탑 안에 남아 있었다. 2017년 인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지 워크숍에는 종이를 오래 두드리는 도침을 한 한지를 물에 담갔다 쫙 펼치는 시연을 통해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국가기록원 근무를 계기로 전통 한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걸 알게 돼 한지 연구에 뛰어든 박 과장은 “중국과 일본의 자기는 알아도 한국 도자기는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중국 선지와 일본 화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지만 한지는 아니다”라며 한지 제조업체가 점점 사라져 간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전통 한지 제조업체는 20여년 동안 40곳 넘게 사라져 현재 21곳밖에 남지 않았다. 일부 업체는 인간문화재가 일하고 있지만 판잣집에 가까울 정도로 사정이 열악하다. 우리 한지의 현실이 이처럼 처참해진 것은 앞장서서 한지를 사용해야 할 정부부터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박 과장은 지적했다. 문화재청조차 국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보다 펄프가 섞인 종이를 더 많이 쓰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과 증서도 수십년이 지나면 누렇게 삭는 종이를 쓰는데 모두 한지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얼마 전 전남 신안 가거도, 전북 군산 선유도 등을 방문한 끝에 어렵게 구한 닥나무 씨앗을 경기도 여주에 정성스레 심었다. 전국 각 지역에서 다양한 품종의 닥나무를 재배해 먹물이 번지지 않는, 왕이 사용하던 편지지 수준의 한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글 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佛, 약탈한 19세기 유물 칼 세네갈에 돌려줘

    佛, 약탈한 19세기 유물 칼 세네갈에 돌려줘

    프랑스 정부가 식민통치 시절 약탈했던 19세기 저항운동 지도자의 칼을 세네갈에 돌려줬다.18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지난 17일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반환 기념식을 갖고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에게 칼을 넘겼다. 칼은 1850년대 프랑스 식민 지배에 대항해 투쟁을 이끈 서아프리카 통치자 오마르 사이두 탈이 쓰던 것이다. 그는 1860년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맺었지만 4년 뒤 화약 폭발로 숨졌다. 그 뒤 프랑스인들은 그의 도서관에서 나온 칼과 책을 압수했다. 칼 반환은 프랑스가 자국 박물관에 소장된 서아프리카 유물들을 반환하는 사업의 첫 단계다. 지난해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의뢰로 만들어진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 있는 박물관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온 유물을 최소 9만점 소장하고 있다. 특히 파리에 있는 뮤제 드 콰이브랑리 박물관에만 최소 7만점이 소장돼 있다.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부르키나파소 우아가두구 대학에서 아프리카 유물과 문화예술품을 반환하는 구조를 몇년 안에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정부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유럽 각국이 과거 식민지에 약탈 문화재를 돌려주는 물결이 일고 있는데, 지난 5월 독일은 1890년대 나미비아에서 약탈한 ‘스톤 크로스’를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톤 크로스는 포르투갈이 15세기 아프리카 영토 지배권을 주장하기 위해 해안에 세운 돌 십자가다. 영국도 1897년 나이지리아 남부 베닌 왕국을 강제로 합병하며 약탈한 청동 유물 ‘베닌 브론즈’를 돌려주기로 지난해 합의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MOAB’(모든폭탄의 어머니) 사용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MOAB’(모든폭탄의 어머니) 사용했다

    2017년 4월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하르주에 있는 IS 근거지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슈퍼 폭탄 ‘MOAB’을 투하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기만 했던 MOAB이 처음 실전에서 사용된 것이었다. 당시 MOAB 한 발이 IS 근거지인 땅굴을 완전히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을 초토화시켜 IS 대원 94명이 몰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때 조선군도 육전에서 당시로서는 최첨단 폭탄인 ‘진천뢰’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군의 주력무기로 알려진 비격진천뢰보다 무게도 무겁고 살상력도 5배 이상 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화기전문가이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출신의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초빙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육전에서 사용한 진천뢰는 비격진천뢰보다 5배 이상 큰 폭발력과 살상력을 갖춘 직경 33㎝의 대형 폭탄으로 왜군을 격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5일 전북 고창읍 고인돌박물관에서 열린 ‘비격진천뢰 보존 및 활용사업 학술대회’에서 ‘임진왜란에 사용된 완구와 진천뢰의 구조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1635년 편찬된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조선군은 진천뢰와 비격진천뢰를 함께 사용했는데 진천뢰는 대완구로, 비격진천뢰는 중완구를 이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렇지만 비격진천뢰와는 달리 진천뢰는 기록만 있을 뿐 실물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형태는 알려지지 않았다.채 교수가 찾아낸 화포식언해의 기록에 따르면 진천뢰는 철로 주조해 둥글게 만들어져 무게는 113근(67.8㎏), 철로 만든 뚜껑은 10냥(375g)이었으며 폭발을 지연시키는 주격철 통의 무게는 1근 8냥(900g)이다. 주격철 중간에 4개의 구멍이 있어 여기로 도화선을 내 몸통 속 화약을 폭발시키는데 화약은 5근(3㎏)이 사용됐으며 유탄으로 사용된 능철(마름쇠)이 30개 정도 들어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진천뢰 전체 무기는 117근 2냥(70.2㎏)이라고 채 교수는 밝혔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3호인 ‘항병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1월 16일 “진천뢰가 효과가 있어 왜적의 간담을 벌써 서늘케 하니 지극히 기쁘지만 안동의 진영에는 3개 뿐인데다 화약이 바닥나 수송할 수 없다”라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한편 채 교수는 세종때 사용됐던 나무통 속에 화약, 능철, 쑥잎을 넣어 수류탄처럼 쓰였던 나무통 폭탄 ‘질려포통’이 대신기전에 부착해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폭탄을 대신기전에 결합시킨 일종의 지대지 미사일이라는 설명이다.채연석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는 거북선과 판옥선에 설치된 대형함포를 이용해 왜선을 파괴 격침시켰고 육전에서는 진천뢰와 비격진천뢰를 이용해 왜적을 토벌했음을 알 수 있다”라며 “특히 진천뢰는 당시 최첨단 대형 폭탄으로 왜군을 토벌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화약무기”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1위는 장원진”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 성료

    “1위는 장원진”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 성료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 영광의 얼굴들이 결정됐다. 1위는 장원진에게 돌아갔다. 18일 오후 6시 경주시 예술의 전당에서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가 열렸다. 지원자 1200여명 중에 서류 전형과 예선을 걸쳐 총 23명만이 본선 대회에 진출해 지난 2개월 동안의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였다. 영예의 1위는 장원진에게 돌아갔다. 장원진은 슈퍼모델 경주 상에 이어 1위까지 거머쥐며 새로운 슈퍼모델의 탄생을 알렸다. 장원진은 “꿈인 것 같다. 정말 현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너무 많은 분들이 수고해줬는데 제가 이 상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잘하라는 뜻에서 주신 것 같다.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이 영광은 부모님께 돌리겠다”고 덧붙였다. 2위는 이주헌에게 돌아갔다. 3위를 차지한 민하경은 장원진처럼 2관왕에 올랐다. 웰빙 육우 상과 더불어 3위에 호명돼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이번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는 1995년 슈퍼모델 출신 배우 한고은과 SBS 최기환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다. 두 사람은 지난 2014년도에 이어 두 번째 MC 호흡을 맞추게 된 만큼 안정적인 호흡과 매끄러운 진행을 자랑했다. 화려한 볼거리도 풍성했다. SF9, 제시, 에이티즈는 2019 슈퍼모델의 탄생을 축하하는 특별 공연을선보였다. 카이는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 본선 진출자들의 런웨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색다른 콜라보로 특별한 시간을 만든다.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는 경주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솔루미에스테, 러비더비,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 싱가포르항공, 더룩오브더이어코리아, 경주문화재단, 워너비뷰티아카데미 등과 함께 한다. SBS 미디어넷이 방송, 제작했다. <다음은 ‘2019 슈퍼모델 선발대회’ 수상자> ▶ 슈퍼모델 1위 = 22번 장원진 ▶ 슈퍼모델 2위 = 13번 이주헌 ▶ 슈퍼모델 3위 = 1번 민하경 ▶ 슈퍼모델 경주 = 22번 장원진 ▶ 슈퍼모델 솔루미에스테 = 7번 조아람 ▶ 슈퍼모델 러비더비 = 10번 이석기 ▶ 슈퍼모델 웰빙육우 = 1번 민하경 ▶ 슈퍼모델 LUUK = 16번 박정하 사진=SBS 미디어넷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태안 바다의 보물 3만여점 세상 밖으로

    태안 바다의 보물 3만여점 세상 밖으로

    충남 태안 국립해양유물전시관(태안전시관)이 모든 전시실 단장을 마치고 18일 전면 개관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일부 공간만 관람을 허용하고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상설전시실 제2∼4실을 개방한다고 이날 밝혔다. 태안전시관은 서해 중부해역에서 발굴한 난파선 8척과 수중문화재 3만여점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1실 ‘서해, 수중발굴’은 우리나라 수중발굴 역사와 서해 중부해역 주요 수중유적, 수중발굴 현황을 소개한다. 2실 ‘서해, 해양교류’는 목간과 죽찰을 비롯하여 고려를 대표하는 청자, 지역특산품을 담아 운반했던 도기항아리 등 주요 유물을 전시한다. 특히 보물로 지정한 ‘청자 음각연화절지문(연꽃줄기무늬) 매병 및 죽찰’은 배에 실려 있던 당시 모습 그대로 수중에서 발견됐다. 3실 ‘서해, 배’는 서해에서 발견된 난파선을 재현해 우리나라 전통 배의 모습과 특징을 소개한다. 태안 해역에서 발견한 ‘마도 1호선’을 1, 2층에 걸쳐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4실 ‘서해, 뱃사람’은 선원들의 생활을 보여 주는 유물을 전시한다. 태안전시관은 2007년 이후 태안 앞바다에서 나온 유물을 보관·전시하고자 2012년 설계해 지난해 문을 열었으며, 8개월 만인 지난해 8월 관람객 5만명을 돌파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가 큰일 때 ‘땀’ 흘리는 밀양 표충비 18일 1리터 땀

    국가 큰일 때 ‘땀’ 흘리는 밀양 표충비 18일 1리터 땀

    나라에 큰 일이 생기기 직전에 땀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경내 사명대사 표충비가 18일 오전 땀을 흘린 것으로 확인돼 관심이 쏠린다.18일 밀양시와 홍제사에 따르면 사명대사 표충비에 이날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쯤 까지 1리터쯤 땀이 흘렀다. 홍제사 범철 주지는 “이날 오전 5시쯤 표충비각에 예불을 드리러 갔더니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성현 무안면사무소 총무담당은 “표충비가 땀을 흘린다는 주민들의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나가봤더니 비 앞뒤와 옆 등 4면에서 한출 현상이 보였다”고 말했다.경남도 유형 문화재 제15호인 표충비는 임진왜란때 승병을 이끌고 왜병을 크게 무찌른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새긴 비석이다. 사명대사의 5대 법손(法孫) 남붕(南鵬)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만들어 1742년 세웠다.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땀방울이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과 받침돌에는 맺히지 않는것으로 전해져 신비함을 더한다. 전문가들은 ‘표충비각 땀’ 현상에 대해 주변 기후환경 때문인지 비석 자체의 결로 현상에 따른 것인지 등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으나 과학적으로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홍제사와 무안면사무소 등에 따르면 표충비는 2018년 1월 밀양세종병원 화재 참사 직전에도 땀을 흘렸다. 1894년 동학농민 운동때,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때도 땀을 흘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근에는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대통령 탄핵심판때 등에도 각각 땀을 흘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산 좋아하는 이라면 꼭 봐야 할 이호신 생활산수전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

    산 좋아하는 이라면 꼭 봐야 할 이호신 생활산수전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

    계단을 오르자 별이 뜬다. 조금 더 오르면 산봉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다 올라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북한산의 전모가 드러난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처음으로 전모를 들킨 도봉의 영봉과 북한의 기경(奇景)’이 펼쳐진다고 상찬한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이호신 생활산수전’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파출소 오른쪽 골목에 접어들어 옛 서울시장 공관 향해 오르다 보면 왼편에 돌올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재능문화재단이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설계를 맡겨 지은 JCC아트센터 1층에서 2층을 오르는 계단 위 담에 자리한 ‘북한산의 밤’이란 작품이다. 별이 반짝반짝 쏟아진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붉은별, 노란별, 흰별 등 온갖 빛깔로 빛난다. 현석(玄石, 검돌) 이호신(62) 화백은 도무지 빈틈이 없다. 세상에나, 크레파스로 별을 그린 다음 먹을 써서 농담(濃淡)을 달리 표현했단다. 기가 막히다. 산자락의 섬세함은 또 어떻고, 소나무 등 나뭇가지는 힘차고 생기가 돈다. 살아있다.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하늘색 덕에 산은 눈인지 운무인지 모를 여백을 오롯이 품고 있다.엘리베이터 타고 4층부터 올라가자. 앞의 ‘북한산의 밤’과 마찬가지로 올해 그린 ‘북한산과 도봉산’이 눈에 훅 들어온다. 마치 드론을 띄운 것 같다. 정릉 국민대 앞쪽에서 띄운 드론이 백운대와 저멀리 인왕까지 굽어보는 데 골골이 표현 안되는 것이 없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송추로 뻗어나간 계곡 좌우로 상장능선, 우이령 옛길과 오봉, 선인, 자운, 만장에다 멀리 사패능선까지 다 들어온다. 그리고 골골에 숨은 사찰이며 암자, 사람 사는 아파트며 건물까지 세세하다. 이 그림을 돌아가면 2014년에 그린 ‘사패산에서 본 도봉과 북한산’이 나온다. 앞의 그림이 담지 못한 뒷모습을 엿보는데 널따란 바위 위에 이호신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아웃도어를 폼나게 입은 등산객들이 스틱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이 화백의 북한, 도봉 산행에 앞장 선 시인 청산(聽山) 이종성의 모습도 보인다. 얼마나 적요(寂寥)해야 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까 싶은데 이 시인의 작품 ‘사패산에서’가 멋들어진 글씨로 천지개벽하는 것 같은 하늘에 쓰여 있다.와! 감탄은 금물이다. 이제부터다. 뒤를 돌아보자. 북한산과 도봉산을 시원하게 조망한 큰 그림들이 주변에 죽 둘러 처져 있다. 그리고 다시 입구 쪽으로 나오면 이 모든 작업들의 밑바탕이 됐던 화첩에 들어간 몇 점이 유리 전시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 화백이 직접 연필로 봉우리 이름을 적고 봉우리 특징들을 갈파한 밑그림들이다. 3층으로, 2층으로 내려오면서 작품들은 조금씩 세세해진다. 나무나 풀, 사찰, 바위 등등이다. 그리고 1층 어둑한 전시실 안에 들어와 화초 몇 점 보고 자리에 앉아 동영상을 바라보는데 이 화백과 이 시인의 인터뷰, 그리고 대금 연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 위주로 사계를 나눠 보여준다. 누구나 생각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기자는 이 방법이 전시를 가장 오롯하게 느끼는 순서라고 생각한다. 이 화백은 2014년과 이듬해 한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 이 시인과 함께 두 산을 다녔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 산청 집의 작업실에서는 밥 먹는 것 빼놓고는 매달렸다고 했다. 이 화백은 “붙어야 한다”고 했다. “산에 붙어야 산을 그리고, 그림에 붙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문화유산에 붙어야 문화유산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이왕에 시작했으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열심을 다한다”고 했다. 옛 선인들이 그랬듯 시와 그림을 일치시키는 노력을 하면서도 오늘날 이 산에 깃들어사는 이들의 즐거움과 슬픔을 그림에 담는 것이 자신의 의무요 사명이라 했다.그의 작품을 미리 본 이들은 말한다. “제가 본 북한산의 풍광과 조금 다른데요.” 이 화백은 겸재나 단원의 진경(眞景)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교유하고 느낌을 공유하는지 그 마음마저 담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해서 아웃도어 같은 알록달록함도 이 시대의 우리가 즐기는 산행 문화로서 그림에 들어가는 것이 생활산수, 또는 도서출판 다빈치가 펴낸 도록집 ‘북한도봉 인문진경’에 또렷이 드러난 개념이라고 했다. 이미 책을 많이 낼 정도로 필력도 빼어난 그의 말을 옮기면 “인문과 지리, 유산과 풍광을 시인은 쓰고 화가는 그렸다”고 했다. 한국화 화가인데도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을 들려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화가는 보통 사람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을 간파해 일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여성봉 바위에서 본 오봉과 북한산의 밤’ 역시 바위 바닥에 누워 바라본 풍광을 담은 것인데 사람들은 그 바위 앞에서 바라보면 그 장면 안 나온다고, 딴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가 멀리 산청에서 한달에 한번 상경해 산을 타고 내려가는 일정을 하게 된 것은 40년 서울살이 할 때 했어야 했던 일을 미룬 죗값을 한 것이라고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이해를 구해 남들이 가지 못한 곳을 조금 빠르게 다녀와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화첩만 무려 13권이라니 얼마나 많이 그리고 그렸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돈도 안 되는 그림들”을 그린 뒤 “내 죽은 뒤에나 진가를 알아주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을 여럿 소장하고 있는 이화여대 박물관과 이배용 전 총장의 배려로 JCC아트센터 귀한 공간을 얻어 북한과 도봉을 그린 150점 가운데 겨우 40점만 내걸게 됐다.지독한 사람이다 싶다. 바닥에 엎드려 작업하고, 그러다 한 번 작품을 들어 펼쳐 보고 전모를 본 다음 다시 바닥에 엎드려 작업한다고 했다. 까마귀처럼 하늘을 빙 돌고, 다시 지상에 내려와 부분을 보는 경지다. 정민 교수는 이를 ‘대관소시(大觀小視)’라고 표현했다. 전북 남원 실상사에 있는 부처와 사찰, 주변 풍광을 모두 표현했는데 도법 스님이 그냥 떠나겠다는 그의 발길을 붙잡고 일주일만 더 있어 보라고 해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벼락처럼 깨치듯 전체가 부분으로, 부분은 전체로 맥이 뚫려 일거에 작업했다고 했다. ‘북한도봉 인문진경’ 책을 짠 박성식 다빈치 대표는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산청 대원사 작품을 보고 직접 가서 장독대 숫자를 세봤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 화백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라고 뚝잘랐다. 상투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우리 문화유산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그걸 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붓길이길 희망한다고 했다. 전시회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드는데 전북 정읍에 내려가 노모 모시며 농사 짓는 틈틈이 작업한다는 ‘영원한 토지 그림 그리는’ 박정렬(73) 화백을 만났다. 그의 거칠고 투박하며 끝이 뭉툭하게 돌아간 손가락 마디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이 화백의 그림이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더니 그의 답이 이랬다. “하늘이나 나무를 보면 생명이 솟음치는 기운 같은 게 느껴진다. 생각대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작품만 봐도 하늘에 영기(靈氣) 같은 게 느껴진다. 이 화백은 붓질을 한번에 긋는데 거기에 생명과 약동하는 기운이 있다.” 박 화백에게 꼭 보라고 권할 만한 작품을 꼽아달라고 하니까 도록집을 한참이나 꼼꼼이 뒤져 3층 계단 바로 앞의 ‘영봉에서 본 인수봉’을 찾아냈다. 지난 15일 막을 올려 내년 1월 31일까지 월요일과 성탄절, 설연휴만 빼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마침 북한산 형제봉 능선 아래 내처 내려가면 성곽길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전시관에 이른다. 북한과 도봉을 사랑하는데 아직 눈이 어두워 산의 전모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 이참에 눈과 귀를 확 떴으면 좋겠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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