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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위의 섬’ 무섬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지정

    ‘물 위의 섬’ 무섬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지정

    경북 영주시 무섬마을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됐다.문화재청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일명 ‘무섬마을’ 일원 214필지 66만 9193㎡가 조선 중기 이래 집성촌이자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지역 구심체 역할을 한 곳이라며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한다고 22일 밝혔다. 무섬마을은 17세기 중반 입향시조(入鄕始祖·마을 터를 처음 잡은 사람)인 박수와 김대가 들어와 자리를 잡은 이래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으로 유서 깊은 전통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뜻있는 주민들이 아도서숙(亞島書塾)을 세워 항일운동의 지역 구심체 역할을 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반가사유상 갈등, 그 절호의 국가홍보 기회

    [서동철의 시시콜콜] 반가사유상 갈등, 그 절호의 국가홍보 기회

    “반가사유상은 도대체 미국에 나가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를 놓고 한창 논란이 빚어지고 있을 때 여러 사람에게서 받았던 질문이다. 상당 기간 문화재 담당기자를 했다니까, 뭔가 뚜렷한 주관에 그럴듯한 논리라도 갖고 있는 줄 알았나 보다. “가면 가서 좋고, 안 가면 안 가서 좋은 거지 뭐.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하면 우리 문화의 정수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고, 보내지 않으면 사유상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은 것 아냐?” 이렇게 대답했으니 대부분 “무소신의 극치”라며 실망했을 것이다. 어쨌든 미국 전시가 확정된 반가사유상은 곧 뉴욕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반출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지금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지 모르고, 반대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복수의 칼’을 갈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유상의 반출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그만큼 한바탕의 난리굿이었다. 사유상 논란을 두고 국정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상 반출 계획에 문화재청이 제동을 건 꼴이니, 그런 요소는 분명히 있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재안을 문화재청이 받아들여 반출을 최종 허가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적어도 내부의 사전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간 큰 기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국제적 시각에서 사유상 반출 논란의 본질은, 자국의 문화 수준을 세계에 과시하고 싶어 하는 국가 조직과 대체 불가능한 국가적 문화 자산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국가 조직의 지극히 건강한 견해 차이일 것이다. 오히려 문화선진국 국민일수록 한 점의 문화재 때문에 국가기관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고, 여론이 들끓는 한국의 높아진 문화 수준을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사유상 논란은, 다시 한번 무소신을 드러내는 꼴일지는 모르나, 아무도 진 사람이 없는 우리 모두의 ‘윈윈게임’이었다. 다만, 그런 ‘국제적 시각’에서 바라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사유상 반출의 수혜자인 미국에서조차 메트로폴리탄 전시회가 이렇듯 어렵게 성사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의 국가홍보 기능이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관심을 끌 만한 이슈에 의미를 부여해 현지 언론에 노출시키는 해외홍보는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주는 중요한 기능이다. 특히 반가사유상의 경우, 이렇게 형성된 긍정적 인식이 국내로 유턴했을 때 감정의 앙금이 여전히 짙게 깔린 우리 사회의 사유상 갈등도 상당 부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늦지 않았다.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 영남 80명 최다…수도권 67명, 행시 출신이 132명…절반 넘어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 영남 80명 최다…수도권 67명, 행시 출신이 132명…절반 넘어

    2013년 대한민국 정부부처에 포진한 1급 이상 파워엘리트는 총 24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감사원 같은 독립기관을 제외하는 등 서울신문이 자체 기준을 적용한 결과다. 나이 50대 중반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나와 행정학, 법학, 경제학을 전공한 행정고시 출신들이 많았다. 시도별로 서울 출신이 55명으로 전체의 약 4분의1(22.8%)을 차지했다. 경북이 33명으로 뒤를 이었고 충남 23명, 경남 21명, 전북 19명, 부산 15명, 전남 14명, 충북 12명, 대구 11명, 경기 10명 등으로 집계됐다. 큰 권역으로 분류하면 영남이 80명으로 가장 많았고 수도권 67명, 호남·충청 각각 38명이었다. 출신 고교는 경기고가 13명으로 가장 많은 5.4%를 차지했으나 과거에 비하면 비중이 크게 줄었다. 이어 경북고 12명, 서울고 11명, 대전고 8명, 중앙고(서울) 7명, 경복고·진주고·휘문고 각 5명 순이었다. 출신대학은 서울대가 77명의 파워엘리트를 배출해 전체의 3분의1(32.0%)을 점유했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각각 22명(9.1%)으로, 이른바 ‘SKY대학’의 비중이 전체의 50.2%로 절반을 넘었다. 전체 241명 중 240명이 대학을 나온 가운데 경북 안동고가 최종학력인 최창식(59) 대검찰청 사무국장이 유일한 ‘순수 고졸’ 출신이었다. SKY대학 다음으로는 성균관대가 18명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했다. 한양대는 13명으로 5.4%, 한국외대는 12명으로 5.0%였다. 이어 육군사관학교 9명, 영남대 7명, 전북대·중앙대 각 5명, 동국대·방송통신대·부산대 각 4명 순이었다. 여성은 10명으로 전체의 4.1%였다. 장관급은 조윤선(47) 여성가족부 장관, 윤진숙(58) 해양수산부 장관 등 2명이었다. 정현옥(55) 고용노동부 차관, 이복실(52) 여가부 차관, 곽진영(48)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윤미량(54) 통일교육원장, 변영섭(62) 문화재청장, 조주영(55) 기상청 차장, 전혜경(55) 국립농업과학원장, 이금형(55) 경찰대학장도 여성 파워엘리트에 이름을 올렸다. 최고령은 73세인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었다. 이어 정홍원(68) 국무총리, 아시안게임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박종길(67)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이은철(66) 원자력안전위원장·박승춘(66) 국가보훈처장 순이었다. 최연소는 1967년생으로 46세인 박형수 통계청장이었다. 박 청장은 한국은행·조세연구원 출신이다. 그다음으로는 조윤선 장관과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같은 47세로 뒤를 이었다. 정부부처를 이끄는 인물들인 만큼 행정고시 출신이 132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웃도는 54.8%를 차지했다. 이어 외무고시 19명(7.9%), 사법시험 15명(6.2%), 기술고시 14명(5.8%) 순이었다. 행시는 27회 25명, 28회 21명, 26회 17명, 25회 14명, 29회 11명 등 순으로 25~29회 5개 기수가 전체의 3분의2(66.7%)를 차지했다. 말단인 9급에서 공직을 시작해 1급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은 2명이었다. 장병원(57)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과 고졸인 대검 최 사무국장이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대한제국공사관 환수 유공 김원모·박보균 모란장 서훈

    대한제국공사관 환수 유공 김원모·박보균 모란장 서훈

    문화재청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환수 1주년을 맞아 2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유공자들에게 서훈과 포상을 수여했다. 서훈자는 2명으로 공사관의 잊힌 사연을 처음 알린 김원모(왼쪽·79) 단국대 명예교수와 공사관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정립한 박보균(오른쪽·59) 중앙일보 대기자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김 교수는 1983년 워싱턴 등기소에서 조선공사관 부동산 문건을 발견하고 ‘주미조선공사관을 되찾자’라는 사설을 단국대 교내 신문에 게재했다. 일본이 이를 대한제국으로부터 단돈 5달러를 주고 빼앗아 갔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박 대기자는 공사관 환수와 관련해 여론 형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0년 이후 20여 차례 현장을 방문해 기사와 칼럼을 작성했다. 이 밖에 공사관 환수 주체인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대통령 표창을, 공사관 환수를 위해 협상을 지원한 현대카드주식회사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미국 현지 협상과 종합조사 등을 수행한 씨비알이코리아주식회사와 강임산(45)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활용지원팀장은 문화재청장상을 각각 받았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89년 ‘대조선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주차’는 ‘주재’, ‘화성돈’은 ‘워싱턴’의 당시 한자 표기)으로 개관해 대사관의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워싱턴DC 로건서클 역사지구 내 문화재 탐방로로 지정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옛 공사관을 2015년 이후 문화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문화재 관리부실, 더 이상은 안된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옴부즈맨 칼럼] 문화재 관리부실, 더 이상은 안된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역대 왕의 행적을 알려주는 인장이자 상징물인 조선왕실의 ‘어보’에 낙서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선 제8대 예종의 어보에서 한글로 ‘예종’이라고 쓴 글씨 이외에 썼다가 지운 흔적도 확인됐다. 이 문화재가 우리나라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유물인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 자(8면)에서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대표인 혜문 스님이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록의 사진에서 예종의 어보에 낙서 흔적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훼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고 보도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와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립박물관에 소장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반출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이미 국내 국립고궁박물관에 관리 중인 예종 어보에 낙서 흔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하지 않은가? 예종 어보 낙서사건을 계기로 서울신문이 낙서가 발견된 단편적인 상황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부실한 문화재 관리상황까지 짚었다면 더 생산적인 비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문화재 당국은 언론 보도 이후 시민단체의 질의와 유물 훼손 여부에 관한 정보요청에 대응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어보에 한글로 ‘예종’이라는 글씨가 쓰인 것은 사실이나, 이는 낙서라기보다 이전에 유물의 관리를 위해 표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글씨를 새긴 것이 아니고 필기구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보존처리 기술로 쉽게 지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러나 유물의 관리를 위해 사인펜 등으로 유물에 직접 표기를 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이는 현재 문화재 부실관리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2012년 국정감사에 제출된 서울시 문화재 관리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시 소재 보물급 문화재 7건을 포함한 총 40건의 문화재가 훼손돼 26억원이 보수 예산으로 책정되었지만 유물 및 문화재의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법률소비자연맹 등 각종단체에서 저조한 목조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률, 자연재해 위기대응 예방시스템과 실무 매뉴얼 부재, 문화재 안전관리 예산 감소, 잦은 도난과 7.2%에 불과한 회수율 등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과 5년 전인 2008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다시피 했는데 문화재 관리의식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내 비종교적 전통 문화재의 90% 이상은 이미 소실된 상태라고 한다. 지난 6월 서울신문을 통해 보도된 경복궁의 엉성한 문화재 훼손기준을 지적하는 기사와 같이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재 관리 부실을 비판하는 글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새로운 문화재의 발굴과 지정 못지않게 문화재의 관리·보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다뤘으면 한다. ‘문화재 기사는 따분하다’는 선입견은 진화하는 문화재 발굴과 보존·복원방법, 문화재와 지킴이들의 숨은 이야기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바꿔놓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문화재청은 어보 낙서 사례를 거울삼아 문화재·유물 보존·관리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한다.
  • 숭례문 ‘대형 퍼포먼스’ 사고로 무산

    국보 1호인 숭례문 뒤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고 이를 촬영하려던 이명호(38)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의 퍼포먼스가 캔버스가 넘어지는 사고로 좌절됐다. 이 교수는 18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18일 오전 2시부터 기중기 3대를 동원해 숭례문 뒤에 흰색 초대형 캔버스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오전 6시 45분쯤 캔버스를 지탱하던 지지대 한쪽이 무너지면서 캔버스 틀이 숭례문 주변 울타리와 감시초소를 덮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숭례문에는 피해가 없었다. 이에 숭례문 관리소의 현장관리를 전제로 행사를 허용했던 문화재청은 오전 7시 30분쯤 퍼포먼스를 중단해 달라고 이 교수 측에 통보했다. 이로써 50여명의 스태프와 2억 1000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 행사는 무산됐다. 이 교수는 “경기 용인의 야구장에서 벌인 리허설과 구조 검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숭례문이 화마에 스러진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본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복원된 숭례문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유물 조선왕실 어보에 ‘한글 낙서’ 발견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유물 조선왕실 어보에 ‘한글 낙서’ 발견

    조선 왕실의 의례용 상징물인 ‘어보’(御寶)에서 한글 낙서가 발견돼 훼손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어보는 역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의 행적과 공덕을 담은 인장(印章)으로, 우리나라가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유물이다. 국내에는 모두 324과(顆)가 남아 있다.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최근 조선왕실어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선 8대 왕인 예종의 어보에서 낙서로 의심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단체의 대표인 혜문 스님은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록의 사진에서 예종의 어보 하단, 거북의 머리 앞쪽에 한글로 ‘예종’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화재청에 훼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문을 발송했다.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 어보는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종묘에 보관돼 있던 중요한 문화재”라며 “측면에 한지를 붙이고 한문 묵서로 누구의 어보인지 표기하는 것이 관례인데 예종 어보처럼 한글로 직접 쓰여진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예종 어보 하단에는 이 같은 낙서 외에 또 다른 글씨를 썼다가 지운 듯한 흔적도 발견됐다. 혜문 스님은 “문화재 당국의 부실한 문화재 관리 행태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며 “누가 새겨넣은 것인지, 볼펜으로 쓴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펜으로 쓰여진 흔적으로 판단해 조만간 간단한 보존처리를 거쳐 복구한 예종 어보의 모습을 공개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친일논란 인사의 물품이 문화재? 역사 눈감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최근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백선엽, 민철훈, 윤웅렬, 윤치호, 민복기 등의 의복과 유물 등 총 11건 76점의 문화재 등록을 보류한 조치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1일 이들 유물이 “의생활 분야에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며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으나, 곧바로 항일 독립운동가 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운암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회’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등은 아예 이달 초 기자회견까지 열어 “친일행위자들의 물품이 문화재로 등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문화재 당국을 압박했다. 이는 역사적 맥락을 읽기보다 단순히 보전가치만을 따진 ‘기계적’ 행정이 불러온 결과로 풀이된다.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4일 경기 파주 소재 ‘감악산 결사대 사당’을 비롯한 6·25전쟁 관련 역사문화유산 5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면서도 현장 답사도 없이 국가보훈처에서 발간한 ‘국가수호사적지 조사보고서’만을 근거로 결정하는 무성의함을 드러냈다. 친일 논란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화재 행정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백선엽(92) 전 육군참모총장은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1943년 4월부터 해방 때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며 항일단체들과 직접 교전까지 벌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은 가장 죄질이 나쁜 친일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백 전 총장의 장군복 등 5점을 무더기로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재판했던 판사인 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도 마찬가지. 해방 이후 검찰국장과 대통령 비서관, 검찰총장을 지낸 그는 대법원장까지 오른다. 대법원장 시절인 1975년에는 인혁당 피고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법살인’이란 오명까지 남겼다. 민철훈(1856~1925) 대한제국 오스트리아·독일 전권대사는 한술 더 떠 1910년 국권 피탈 뒤 일본 황실로부터 아버지에 이어 남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문화재청은 민복기의 검사 법복, 민철훈의 대례복과 코트 등을 문화재로 지정하려 했다. 구한말 정치가인 윤치호(1865~1945)와 부친인 윤웅렬(1840~1911)도 반발을 불러왔다. 윤치호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로 변절해 조선 청년들의 자원입대를 독려하며 일본제국의회 귀족의원까지 지냈다. 윤웅렬은 구한말 형조판서, 대한제국 군부대신 등을 지냈으나 국권 상실 뒤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이들 일가가 소유한 교지, 마패와 복식류 등 69점을 무더기로 문화재 지정 예고했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윤우식 선생 생가·교남 YMCA회관 문화재 등록 예고

    윤우식 선생 생가·교남 YMCA회관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은 경북 예천의 윤우식 생가와 대구의 옛 교남(嶠南) YMCA회관 등 항일유적지 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4일 밝혔다. 남석(南石) 윤우식(尹雨植·1906~1934)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無名堂)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33년 9월 예천 지역에서 조선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구속돼 이듬해 재판 중 사망했다. 그의 예천 생가는 영남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ㄴ’ 자형 건물인 사랑채와 ‘ㄱ’ 자형 건물인 안채가 ‘ㅁ’ 자형 배치를 이루며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당이 자리한다. 옛 교남 YMCA회관은 3·1독립만세 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이 회합하던 장소다. 교남 YMCA의 임원과 회원 등 17명은 해방 뒤 건국훈장 애국장 등 포상을 받았다. 또 물산장려운동과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新幹會)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으로 사용된 역사적인 곳이다. 1914년 건립된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1층과 2층 사이가 ‘돌림띠’(Cornice)로 장식됐다. 창 위쪽은 아치로 인방(引枋)을 만들어 사각형 창문을 설치하는 등 1910~1920년대 조적조(組積造) 건축양식을 대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향후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불허” 번복… 반가사유상 美 간다

    “불허” 번복… 반가사유상 美 간다

    국외 반출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결국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전시된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매년 60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은 오는 10월 29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 반가사유상의 반출을 허가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9일 밝혔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29일 반가사유상의 반출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국립중앙박물관에 통보한 지 11일 만이다. 이번 결정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포장 및 운송 과정에서 전시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조건으로 반출 허가를 재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적으로 중재한 끝에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화재청은 반가사유상이 그동안 전시를 위해 3000일간 해외로 반출된 바 있고, 선진국들은 훼손을 우려해 중요 문화재의 국외반출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출 불허 결정을 내렸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추수감사절, 성탄절, 신년에 걸쳐 접근성이 가장 좋은 1층 기획전시실에 반가사유상을 전시할 계획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2013 창덕궁 달빛기행 사전예매 3분 만에 매진

    2013 창덕궁 달빛기행 사전예매 3분 만에 매진

    ‘2013 창덕궁 달빛기행’ 사전예약이 3분 만에 매진됐다. 6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 ‘2013 창덕궁 달빛기행’ 예매 3분 만인 2시 3분 현재 모든 입장권이 매진됐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이달 20일부터 오는 10월 20일까지 15차례 개최된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대표적인 야간 고궁 행사로 사전예매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2010년 시작된 창덕궁 달빛기행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며 예매사이트 예매 1위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지금까지 총 58회 진행됐으며 내국인 6200여명, 외국인 1500여명이 참가했다. 하반기에는 늘어나는 외국인들의 수요에 맞춰 인터파크 외국인 페이지(http://ticket.interpark.com/global)를 별도로 운영하며 외국인 전용 안내 창구도 개설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남 대흥사 천불전 보물 됐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 보물 됐다

    문화재청은 전남 해남군 삼산면에 있는 대흥사 천불전(千佛殿)을 보물 제1807호로 지정했다고 5일 밝혔다. 1813년 중건된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南原·금당천 남쪽)의 중심 건물이다. 1821년 풍계 현정 스님이 기록한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 등을 통해 건물의 중건과 천불 조성·봉안의 역사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공포의 구성과 세부적 조각 수법, 빗천장과 우물천장의 장식과 구성 등은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으며 견실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공포와 빗천장 등의 구성과 세부적 수법은 인근에 위치한 미황사 대웅전(1754년), 불갑사 대웅전(1764년), 불회사 대웅전(1808년) 등과 유사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4대 궁·종묘·조선왕릉 만 24세까지 무료입장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의 무료 관람이 만 24세 이하 국민으로 확대된다. 문화재청은 5일 청소년의 문화유산 관람 기회 확대를 위해 현행 만 18세 이하로 되어 있는 무료 관람을 국제 청소년의 날인 오는 12일부터 만 24세 이하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무료 관람 확대는 문화재청이 주간에 유·무료로 개방하는 일반 관람에 한하는 것으로 창덕궁 후원과 경회루 연향, 경복궁·창경궁 야간 개방 등 특별 관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궁·능 무료관람을 희망하는 경우 해당 궁·능의 매표소에서 학생증, 청소년증,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을 제시하고 무료관람권을 발부받아 입장하면 된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은 ‘청소년 단체 사전예약제’와 ‘지도교사 등 인솔자 지원 할당제’도 실시한다. 내년 1월 1일부터 의무화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2013 공직열전] (3) 국무총리비서실 실·국장급 주요간부

    [2013 공직열전] (3) 국무총리비서실 실·국장급 주요간부

    총리비서실은 국무총리가 국정을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보좌한다. 비서실 주요 자리들은 총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데려와 쓸 수 있도록 특채가 가능한 ‘복수직’으로 열어놓고 있다. 비서실의 정무·민정·공보 등 3개실 실장 셋 모두 특채로 들어온 별정직이다. 비서실 10명 가운데 4명꼴인 37.5%, 고위공무원단 10명 가운데 7명인 70%가 특채 출신이다. 국무조정실 특채가 100명 가운데 2명꼴인 것과 대조적이다. 정무·의전·청문 등 일반 공무원들과 다른 역할을 하는 것도 특채가 많은 이유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자기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이 자리를 메웠다. 배경과 ‘출신’이 같지 않고, ‘잡고 있는 줄’도 다르다. 생각과 개성도 제각각이어서 불협화음으로 덜거덕거리기도 하고, 긴장과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이태용 실장은 취임 초부터 관심을 끌었다. ‘박근혜 정부 막후 실세’라는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의 추천을 배경으로, 대구·경북(TK) 인사들이 밀었던 후보자와 치열한 전투 끝에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 자신도 “김용환은 나의 보스고, 나는 영원한 ‘꼬붕’(수하)”이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저돌적인 성격에 말과 행동도 거침없다. 신중한 정 총리가 “그게 일개 실장이 총리에게 보고하는 태도냐”고 꾸중을 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옛 자민련 출신으로 여론과 민원 취합, 주요 정책의 진전 상황 파악 등 ‘청문 업무의 칼’을 쥔 현직을 발판으로 선거직에 뜻을 두고 모색 중이다. 총리의 국회와의 창구역할을 하는 김희락 정무실장은 정국 흐름을 짚어내고 대응책을 처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 같은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정권 부침 속에서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 걸쳐 12년 동안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일했다. 총리실 국장으로 정무 업무를 다룬 경험도 있어 일과 조직에 친숙하다. 섬세하고 균형감 있는 일처리와 판단력이 돋보이는 ‘영국 신사’다. 무리 없이 원만한 해결책에 치중하는 게 흠이라면 흠.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여권 인사들과의 친분도 두텁다. 신중돈 공보실장은 10여년 동안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특파원을 지낸 중앙일보 출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 때 국회로 영입돼 박희태·강창희 의장과 호흡을 맞추며 여의도와 정계에 발을 넓혔다. 1960~1970년대 6년 5개월 동안 총리실 인사와 살림을 주무른 명 총무수석 신성재(83)씨가 아버지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비서팀장으로 5년 남짓 일해 의전과 한국사회 인맥에도 일가견이 있다. 긴 미국생활로 “문화 차를 느낀다”는 지적도 있다. 임충연 비서관은 대학 1학년 때 최연소로 공직에 입문, 다양한 업무를 거친 공직 34년차의 베테랑. 9명의 국무조정실장을 보좌한 명 비서관 출신.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 과거 모셨던 상사들과도 끈끈한 관계다. 이대현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현역 언론인으로 최근 발탁된 유일한 인사. 한국일보 문화부장과 대기자를 거친 문화통. 감성적이고 섬세한 글쓰기로 이름 높다. 문화재청 심의위원을 역임, 행정 경험도 있다. 김철휘 비서관은 청와대, 총리실에서 20년 넘게 역대 대통령과 총리 말씀에 감동과 메시지를 담아온 연설 전문가다. 김성환 의전관은 김황식 전 총리에 이어 정권을 넘어 의전관 자리를 꿰차고 있다. 문고리 권력을 쥔 ‘악역’ 담당이지만 책임감과 업무 능력, 순발력은 합격점. “고향의 지자체로 자리를 옮겨 경륜을 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전언. 정무실 국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의례 교체되지만 황기영 비서관은 정 총리의 인정을 받아 유임된 사례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국회 업무에 밝고 일처리도 민첩하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부여 낙화암 고란사 고란초 낙석 방지 철망에 고사위기

    부여 낙화암 고란사 고란초 낙석 방지 철망에 고사위기

    “나이 드신 관람객들이 ‘옛날에는 고란초가 많았는데 왜 지금은 없죠’라고 물어보세요.” 충남 부여군 부소산에 있는 고란사 주지 탄공(49) 스님은 “20여년 전만 해도 절 뒤에 고란초가 꽤 많았는데 지금은 두세 포기밖에 남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란초 ‘원조’ 고란사의 고란초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백제 멸망 시 3000궁녀가 백마강에 목숨을 던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낙화암 위의 고란사 뒤편 절벽에 자생하는 고란초는 수학여행을 가면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고란초라는 이름이 고란사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간 25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이곳 고란초가 줄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지질조사 이후다. 교수들은 이 절벽에 균열이 생겨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뿔처럼 튀어나온 바위를 깎아내고 낙석 방지용 철망까지 설치했다. 이런 환경 변화가 고란초에 독이 됐다. 햇볕에 자주 노출되자 말라 죽기 시작했다. 고란초는 길이 5∼15㎝, 너비 2∼3㎝에 포자가 점처럼 박힌 풀로 바위틈과 이끼가 붙은 곳에서 잘 자란다. 그늘과 습기가 충분해야만 한다. 이계영 부여군 문화재관리팀장은 “고란초는 강가 절벽이나 바닷가 숲 등 일부 다른 곳에서도 자라지만 원조는 고란사 게 아니냐”면서 “이를 살려 보려고 군농업센터에서 양식도 하고, 바위에 가로 90㎝, 세로 60㎝ 크기의 유리관도 설치해 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고란사가 매일 물을 뿌려 주기도 어렵고, 관리가 안 된다”고 전했다. 백제 의자왕이 고란사 약수임을 확인하기 위해 약수에 잎을 띄우게 했다는 고란초. 전 고란사 주지와 부여 출신 변호사 등이 모임을 만들어 이곳 고란초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것을 추진하고 나섰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부여군이 천연기념물로 신청하면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조사에 나설 계획”이라며 “역사성과 문화재 가치 등이 기준이 되지만 선정이 된다 해도 천연기념물 분과위원회 심사 등이 필요해 족히 1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반가사유상의 외출/서동철 논설위원

    경복궁 안에 버티고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것은 1995년이다. 논란이 뜨거웠는데, 존경하는 어르신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었다. “찬성하는 쪽도 옳고, 반대하는 쪽도 옳아. 그런데 없어지면 다른 건 몰라도 눈은 시원할 거야. 광화문 거리에서 북악산도 보이고….” 생각해 보면, 온갖 당위를 끌어 들였던 찬반 논리는 간데없고 지금은 어르신의 말씀만 진리가 되어 남았다.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국 전시가 결국 불발됐다. 문화재청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반출 허가를 신청한 목록에서 반가사유상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중앙박물관을 비롯해 반출에 찬성한 쪽은 한국 문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세계 문화 중심지인 뉴욕의 대표적인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무산됐다고 한숨짓는다. 반출을 반대한 쪽에서는 대체할 수 없는 국가대표급 문화재의 해외 전시에 신중해야 하는 만큼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고 반긴다. 총독부 청사 철거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 얘기는 맞고, 누구 얘기는 틀린 것이 아니다. 그저 사유상이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결론이 내려졌을 뿐이다. 전시를 추진하는 사람들조차 가정이지만, 사유상이 없는 중앙박물관이란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전시회 대표 유물의 반출이 좌절된 중앙박물관 심정도 이해가 간다. 전시가 확정된 문화재는 국보 9건과 보물 14건을 포함해 130점 남짓이다. 선산 금동보살입상과 금동약사여래입상이 불교 문화의 정수라면,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을 비롯한 장신구들은 왕실 문화의 꽃이다. 특히 현대적 감각이 물씬 느껴지는 황남대총 남분의 금목걸이는 뉴욕의 멋쟁이들도 탐낼 만한 명품이다. 감은사터 서삼층서탑 사리장엄구와 경주 계림로 보검, 황남대총 남분 유리잔이 더해진 것은 신라의 황금 문화가 로마 및 페르시아 문화와 활발하게 교섭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반가사유상의 부재(不在)는 전시회가 현지 관람객들에게 던질 문화 충격을 감소시키고, 전시장의 구성마저 다시 손보아야 할 만큼 치명적이다. 설왕설래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과 중앙박물관·문화재위원회 모두 직분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이제 남은 것은, 달라진 여건에서도 중앙박물관이 메트로폴리탄 전시회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반가사유상 못지않게 뉴욕에 가는 문화재 하나하나가 중요한 문화 자산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훼손 우려… 금동반가사유상 해외전시 안 된다”

    “훼손 우려… 금동반가사유상 해외전시 안 된다”

    해외 전시를 놓고 논란에 휩싸였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국행이 무산됐다.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반가사유상의 해외 전시가 최종 불허됨에 따라 문화재 보호와 해외 홍보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이 재가열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30일 오는 10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특별전’을 위해 문화재청에 반출 허가를 신청한 문화재 목록 가운데 금동반가사유상과 기마인물형토기, 토우장식장경호 등 3점에 대해 반출 불허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전날 박물관에 보낸 공문에서 “다량 유물 및 장기 국외 반출 자제 권고, 서류 보완 제출”이라는 문화재위원회의 ‘조건부 가결’을 근거로 “문화재위 권고 사항에 따라 3건 3점을 조정(불허)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문화재위 동산분과는 격론 끝에 반가사유상 등의 해외 반출을 조건부로 가결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반가사유상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는 허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잦은 해외 전시로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문화재위의 반출 허가 결정을 뒤엎었다. 문화재 반출 허가의 최종 결정권은 문화재청장이 가지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39조)은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등의 국외 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도 국외 전시 등의 문화 교류 목적 반출은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박물관은 이번 결정으로 10월 29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세계 3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국보 12점, 보물 14점을 포함한 대규모 전시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반가사유상은 보험 평가액만 500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고의 문화재인 까닭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출 여부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옻칠 채색 ‘채화칠장’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옻칠 채색 ‘채화칠장’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옻칠에 천연안료를 배합해 공예품 표면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전통공예인 채화칠(彩畵漆)을 하는 장인인 채화칠장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채화칠장을 중요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하고, 이의식(59)씨를 보유자로 인정 예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채화칠은 삼국시대 이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성행한 칠기장식기법으로 나전칠(鈿漆)이 창안되기 이전 우리 칠기장식의 대표적인 문양 표현 방식이다. 이의식씨는 전북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1998년 인정) 기능 보유자로, 1968년 이후 꾸준히 전승활동을 하면서 칠공예인으로 명성을 쌓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제주흑우’ 천연기념물 지정

    ‘제주흑우’ 천연기념물 지정

    문화재청은 22일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던 ‘제주흑우’(黑牛)를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해 안전행정부 관보에 공고했다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석가탑서 통일신라 금동불

    석가탑서 통일신라 금동불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의 기단 속에서 금동불입상(銅佛立像) 1점을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불상은 연구소가 지난 17일 불국사 삼층석탑 상층기단의 면석을 해체하기 위해 기단 내부 적심석을 수습하던 중 발견했다. 발견 위치는 북측 상층기단 면석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48㎝, 동측 상층기단 면석 외곽에서 석탑 중심부 쪽으로 100㎝ 지점이다. 불상은 통주식(通鑄式)으로 주조된 소형 금동불입상으로 높이 4.6㎝, 지름 2.3㎝ 크기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도금 흔적이 미세하게 확인됐다”고 전했다. 연구소 측은 이 불상이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석탑이 조성된 742년 나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진단구 성격으로 납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상의 얼굴과 신체는 고려 정종 2년(1036) 등 수차례 일어난 지진 때 기단부가 무너져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6년 발견된 ‘불국사 서석탑중수형지기’에 따르면 보수는 2년 뒤에야 이뤄졌고 불상 역시 이때 재납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최성은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은 많지만 발견 위치와 크기가 이례적”이라며 “석가탑의 기단에서 나온 데다 이렇게 작은 불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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