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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어린이 테마파크 레고랜드 첫 삽

    세계적 어린이 테마파크 레고랜드 첫 삽

    세계적인 어린이 테마파크 레고랜드(조감도)가 강원 춘천에서 28일 첫 삽을 뜬다. 27일 춘천시에 따르면 의암호 내 상·하중도 129만 1000㎡의 부지에 민자 5011억원을 투입해 추진되는 레고랜드 코리아 사업이 삼천동 수변공원에서 기공식을 갖는다. 테마파크 시설은 2017년 3월 문을 열고, 레고호텔, 워터파크, 스파시설, 대형 아웃렛, 푸드코트 등 관광·문화시설은 2018년까지 모두 들어설 예정이다. 시는 레고랜드 개발과 함께 연계해 인근 근화동지역도 함께 재개발한다.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 사업은 지난해 9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활성화를 위한 5대 현장대기 프로젝트로 선정된 뒤 정부는 지난 7월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파크 부지를 개별형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했다. 최근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중도에서 발굴된 유물 보존 방안을 승인하면서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사업에는 영국 멀린그룹이 1000억원을 직접 투자한다. 레고랜드가 문을 열면 연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전망이다. 테마파크 2000여명, 레고호텔 등 관광시설 8000여명 등 1만여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과 해마다 44억원의 지방세수 증대 효과도 기대된다. 또 춘천지역에 있는 인형극장, 애니메이션박물관, 로봇체험관, 상상마당 등과 연계돼 시너지 효과는 물론 현재 서울,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레고 브릭(blick) 제조, 판매 등 연관 산업이 춘천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동용 춘천시장은 “춘천의 랜드마크가 될 레고랜드는 지역 발전의 새로운 계기는 물론 국내 관광 지도를 바꾸는 일인 만큼 행정력을 집중해 조성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조세미 운반 ‘고려 조운선’ 806년 만에 다시 바다로

    조세미 운반 ‘고려 조운선’ 806년 만에 다시 바다로

    고려시대 국가에 내는 조세미를 지방에서 서울로 운반하던 조운선(漕運船)이 806년 만에 복원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고려시대 조운선인 ‘마도 1호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 26일 전남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옆 광장에서 바다에 띄우는 진수식을 연다고 25일 밝혔다. 마도 1호선은 2010년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 수중에서 발굴됐다. 곡물류, 도자기, 대나무 제품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배 안의 유물을 통해 ‘절대연대’(유적과 유물의 형성 시기를 수치화하는 것)가 확인된 최초의 고려시대 선박이다. 길이 15.5m, 너비 6.5m, 높이 3.2m의 규모로, 현재 용량으로 약 30t의 화물을 실을 수 있다. 복원된 마도 1호선은 앞으로 충남 태안군 신진도에 건립될 서해수중유물보관동으로 옮겨 전시와 교육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남 순천시

    [新국토기행] 전남 순천시

    <볼거리> 물과 숲으로 둘러싸인 전남 순천은 남도의 부드러운 대지의 기운을 받아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조상들의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고풍이 간직돼 있어 곳곳이 힐링의 명소다. 교통이 편리하고, 도심에도 유명 관광지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천은 다양한 문화재를 종류별로 보유한 유일한 도시다. 순천만, 선암사, 승선교, 송광사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최고 점수인 별 세 개를 받았다. [낙안읍성] 조선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실제로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1983년 민속마을(사적)로 지정됐다. 성곽 높이 4m, 둘레 1410m 안에 초가 108가구가 정겹게 살아간다. 500여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어 한국 영화,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옛 삶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짚으로 만든 짚물공예체험,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열매·잎·풀과 황토로 하는 천연염색, 대장간 체험 등이 있다. 외국인에게 가장 한국적인 관광명소다.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16국사를 배출한 한국 삼보 사찰 중 하나다. 목조삼존불감 등 희귀 불교 문화재가 많다. 우리나라 대표 불교박물관인 성보박물관이 있다. 부속 암자인 천자암에는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곱향나무 두 그루 쌍향수와 사찰에서 국재를 모실 때 몰려든 대중에게 나눠 주려고 밥을 저장했던 목조 용기인 바사리 구시 등이 있다. 송광사는 평생 무소유로 살다 가신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산속 암자 불일암은 1975년부터 법정 스님이 혼자 지내면서 수많은 글을 집필한 곳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는다. [선암사] 신라 말기인 서기 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 무지개 모양의 보물 400호 승선교와 강선루에 이르는 숲길 양옆에는 참나무, 삼나무 등의 많은 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아름다운 사찰의 옛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최고의 산사로 꼽을 정도다. 선암사는 매화 피는 봄철이 으뜸이다. 선암매로 불리는 매화 50여 그루는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선암사에는 꼭 봐야 할 세 가지로 철불, 보탑, 부도가 있다. 산비탈에 있는 녹차 야생차밭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귀한 차로 대접받는다. [순천 드라마 촬영장] 3만 9600㎡(약 1만 2000평) 부지에 200여채가 들어선 대규모 오픈 세트장이다. 1960년대 순천읍내, 1970년대 서울 변두리, 1980년대 변두리 번화가 등을 지었다.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으로,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준다. 이웃과 따뜻하게 숨 쉬는 모습이 담겨 있어 갈수록 인기다. SBS ‘사랑과 야망’, KBS ‘제빵왕 김탁구’ 등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주무대로 주목받는다. [순천만] 세계 5대 연안습지의 하나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서는 순천만을 이렇게 표현했다. 순천만 갈대는 4계절 색깔이 다르다. 봄은 보리색, 여름은 초록색, 가을은 은빛이다. 겨울은 앙상하게 남은 누런 갈대들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을 한 용산의 전망대는 필수 코스. 순천만의 유명한 S자 수로와 낙조, 수많은 철새를 볼 수 있다. 매년 8만~12만 마리의 철새가 온다. 흑두루미·노랑부리저어새 등 천연기념물 30종과 먹황새·뜸부기 등 희귀 조류의 천국이다. 순천만을 30분간 돌아보는 생태체험선 ‘에코피아’는 예약해야 탈 수 있다. [순천만정원] ② 지난해 440만명이 찾아와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이 지난 4월 순천만정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순천시가 미래 100년을 만들어갈 새로운 도약으로 삼고 있다. 개장 6개월 만에 300만명을 돌파했다. 111만 2000㎡ 규모의 정원이 주는 편안함과 싱그러움 덕에 최고의 힐링 장소가 됐다. 봄에는 튤립, 철쭉동산, 유채꽃, 꽃양귀비, 여름에는 물놀이체험, 호수정원, 가을에는 억새, 겨울에는 눈꽃 얼음 등 계절별 맞춤형 테마로 운영된다. 2~5m 높이로 설치된 국내 유일의 무인궤도차를 타면 순천만 인근과 동천 등을 볼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소요시간은 20여분.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전남 순천은 연중 풍성한 농작물을 수확해 좋은 음식을 만들기에 최고 적합한 조건을 지닌 고장이다. 남도의 건강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각양각색의 농산물은 훌륭한 식재료로 손색이 없다. 한정식과 백반은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에 놀라고, 그 맛에 한번 더 놀라고, 마지막으로 값을 치를 때 또 한번 놀란다. 임금님이 순천 한정식을 맛봤더라면 수라상을 거절하고, 순천의 음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약간의 과장 섞인 이야기도 흔히 나오는 말이다. [순천한정식] 남도 맛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보통 토하젓·정어리젓·새우젓 등 각종 젓갈을 비롯해 음식 가짓수도 15개가 넘는다. 한끼 6000~7000원 하는 기사식당만 해도 고등어조림, 김치찌개 등 15개 이상 반찬이 나온다. 정통 한정식집 대원식당은 4인 기준 한상에 8만~10만원이지만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상다리가 휠 정도의 20여 가지 음식에 눈이 동그래진다. 이 식당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순천을 찾을 정도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직원이 재료와 먹는 방법을 알려줘 고향의 어머니가 주는 느낌을 받는다. 1966년부터 장천동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찾은 손님은 몇 년이 지나도 단번에 기억하는 주인 이혜숙(64)씨의 눈썰미에도 놀란다. [짱뚱어탕] 순천만은 썰물 때 광활하게 펼쳐지는 갯벌이 아름답다. 바로 이곳에 청정한 갯벌을 상징하는 짱뚱어가 산다. 도마뱀처럼 잽싸게 갯벌 바닥을 돌아다닌다. 색깔도 거무튀튀한 게 메기를 닮았다. 무척 영리해서 그물을 피해 다닌다. 솜씨 좋은 낚시꾼들이 홀치기 낚시로 한 마리씩 잡을 뿐이고, 양식도 어려워 그 수가 많지 않다. 짱뚱어는 봄부터 가을까지 잡히지만 겨울잠을 자기 전에 영양분을 비축하는 가을에 가장 맛이 좋다. 짱뚱어를 100마리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일찍부터 순천에선 보양음식이었다. 1980년대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 순천의 별미가 됐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 달을 사는 짱뚱어의 특징 때문에 스태미너 음식으로 알려졌다. 청정 갯벌이 줄어들면서 순천만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짱뚱어는 전골로 끓이거나 그냥 구워 먹는다. 순천에서는 탕으로 즐겨 먹었다. 추어탕처럼 삶아 체에 곱게 거른 뒤 육수에 된장을 풀어내 시래기, 우거지, 무 등과 함께 걸쭉하게 끓여낸다. 시원한 국물이 일품. 순천만 인근 식당들은 짱뚱어를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댄다. [화월당] 순천에는 1928년부터 3대째 이어오는 전통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빵집이 있다. 찹쌀떡과 볼 카스텔라 딱 두 종류만 판매한다. 택배로 주문하면 사나흘 만에야 올 정도로 제품이 달린다. 매장으로 찾아가더라도 오후 늦은 시간엔 빵이 동난다. 화월당은 1920년 현재의 자리에 일본인이 문을 열었다. 1928년부터 점원으로 일하던 조병연씨의 아버지가 광복 때 인수했다. 특히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레시피를 고수한다. 화월당 찹쌀떡은 크기가 프랜차이즈 제과점 등에서 파는 것보다 50% 이상 더 크다. 피가 얇고 대신 팥소의 양이 많다. 하얀 떡살이 물렁물렁하면서 씹히는 게 부드럽다. 볼 카스텔라는 테니스 볼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죽을 얇게 펴 카스텔라를 만든 뒤 팥소를 넣고 말아 공 모양으로 빚는다. 방부제는 물론 떡이 딱딱해지는 걸 막는 첨가제도 넣지 않는다. [웃장 국밥] 순천 웃장 하면 국밥이다. 먼 곳에서 먹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 순천 웃장 국밥은 맛도 있지만 다른 곳과 차별화돼 있다. 국밥보다 먼저 수육이 나온다. 6000원짜리 국밥 두 그릇 이상 주문하면 1만원 상당의 수육이 공짜로 나온다. 100년 된 동외동 순천 웃장에 있는 국밥골목에는 가게가 15개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재료만 쓴다. 냉동실에 들어가지 않은 돼지머리 고기, 콩나물, 야채 등의 싱싱한 재료만을 사용한다. 일반 국밥과는 달리 돼지 창자인 곱창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고 삶은 돼지머리에서 발라낸 살코기만 쓴다. 국물 맛이 깔끔하고, 뒷맛이 개운한 게 특징이다. 순흥식당은 35년, 상원·신화식당은 30년 됐으며 대부분 10~20년 이상 된 식당들로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주말이면 대형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갈 곳 없는 사직단 율곡·신사임당 동상

    갈 곳 없는 사직단 율곡·신사임당 동상

    서울 종로 사직단에 세워진 율곡 이이(왼쪽) 선생과 신사임당(오른쪽)의 동상이 이전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직단 복원을 앞두고 내년 3월쯤 옮겨야 하나 소유권자가 누구인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14일 문화재청 사직단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이 동상들은 내년 초 사직단 발굴이 예정돼 이전해야 한다. 현재 동상이 있는 곳은 잡물고(제사에 필요한 기구 등을 보관하던 창고), 소복방(사직단을 관리하는 낮은 지위 인물들의 숙소) 등 사직단의 중요 건물 5곳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발굴과 복원이 꼭 필요한 곳이라 동상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김영렬 사직단 관리사무소장은 “지금의 위치는 동상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면서 “사직단 복원 용역이 완료되고 사업비가 확보되면 내년 3~4월쯤 발굴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상 소유권자인 종로구청이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이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로구의 공원·문화·재산관리 부서에선 동상이 구 소유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동상 이전 장소를 결정할 주체가 없는 상황이다. 구 관계자는 “동상이 문화재가 아닌 데다 재산관리목록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율곡 선생과 밀접한 인연을 맺은 지역으로도 사직단 동상이 갈 형편이 안 된다. 경기 파주시와 강원 강릉시가 동상을 새로 제작했거나 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파주에서는 시와 파주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율곡 이이 선생·신사임당 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2010년부터 율곡 선생 일가 묘가 있는 자운서원으로 사직단 동상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비용 과다 등의 이유로 상반기에 동상을 새로 제작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율곡 선생이 태어난 강릉에서는 이미 2009년 오죽헌에 동상을 만들었다.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울신문사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주도해 건립한 15기 동상 가운데 하나로 1970년 10월 이학수 고려원양 사장이 헌납해 조각가 최만린의 작품으로 세워졌다. 한상봉 기자 hsh@seoul.co.kr
  • 신라시대 굴식돌방무덤, 양평에서 발견

    신라시대 굴식돌방무덤, 양평에서 발견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 돌방무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은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로, 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사팀은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미뤄 6∼7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부고고학연구소 측은 이미 이 신라 돌방무덤들은 양평군 내에서는 잘 알려졌으며, 도굴은 이미 30년 이전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최대 규모’ 유물은 이미 30년전 도굴 ‘멘붕’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최대 규모’ 유물은 이미 30년전 도굴 ‘멘붕’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소식이 화제다.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 돌방무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은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로, 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사팀은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미뤄 6∼7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부고고학연구소 측은 이미 이 신라 돌방무덤들은 양평군 내에서는 잘 알려졌으며, 도굴은 이미 30년 이전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날 발견된 굴식 돌방무덤이란 판 모양의 돌과 깬돌(할석)을 이용해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뒤 봉토를 씌운 무덤이다. 천장은 조임식(사방의 벽을 좁혀 쌓은 형식)으로 이뤄져 있으며 내부에는 바닥에 시신을 올려놓는 시상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이런 귀중한 유물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도굴꾼들 대단하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유물 찾아야 한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양평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중부 고고학 연구소(양평 신라 돌방무덤 발견)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신라시대 굴식돌방무덤 발견, 유물 확인 안 되는 이유는..

    신라시대 굴식돌방무덤 발견, 유물 확인 안 되는 이유는..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 돌방무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은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로, 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사팀은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미뤄 6∼7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부고고학연구소 측은 이미 이 신라 돌방무덤들은 양평군 내에서는 잘 알려졌으며, 도굴은 이미 30년 이전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신라 굴식돌방무덤 발견 ‘최대 규모’

    신라 굴식돌방무덤 발견 ‘최대 규모’

    문화재청은 지난 13일 중부고고학연구소가 긴급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 산23-1번지 일원에서 신라 시대 굴식 돌방무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양평 신라 돌방무덤은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신라 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로, 유물은 도굴로 인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사팀은 고분의 축조 방법과 석실의 구조로 미뤄 6∼7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부고고학연구소 측은 이미 이 신라 돌방무덤들은 양평군 내에서는 잘 알려졌으며, 도굴은 이미 30년 이전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新 국토기행] 멋:유교문화의 보고

    [新 국토기행] 멋:유교문화의 보고

    안동은 유교문화의 보고다. 보유한 지정 문화재만도 307점에 이른다. 국가지정 문화재 87점(국보 5점, 보물 39점 등), 경북도도지정 문화재 220점(유형 69점, 무형 5점 등) 등이 있다. 이 때문에 안동을 찾는 많은 관광객은 무엇을 돌아봐야 할지를 몰라 난감해한다. 하지만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봉정사와 한국국학진흥원의 유교목판,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이 하회마을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돼 이들 문화재만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회마을 연간 100만명이 찾는 명실상부한 안동 관광의 1번지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과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강이 곡선을 그리며 감싸는 하회는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마을에는 조선 5대 명재상으로 이름 높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7년 동안 겪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국보 제132호) 등 많은 보물급 유적이 있는 충효당(보물 414호), 풍산 유씨의 대종가 양진당(보물 36호) 등 중요문화재 18점이 있다. 1984년 마을 전체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됐다. 160여채의 전통 기와집과 210여채의 초가집이 끊어질 듯 연결되는 길, 돌담과 어울려 있다. 마을 서북 쪽에는 해발 64m의 절벽인 부용대가 있다. 하회마을은 물 위에 핀 연꽃처럼 보이는데 그 연꽃을 보는 자리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 마을에는 서민들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선유줄불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도산서원·병산서원 도산서원은 사적 제170호로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동서재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전체적으로 간소하다. 당초 퇴계가 1561년에 도산서당을 건립, 후학양성에 힘썼던 ‘성리학의 성지’였으나 선생이 타계하자 후학들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했다. 서원 안에는 400여종에 달하는 4000권이 넘는 장서와 장판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했는데 그 편액은 명필가인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다. 도산서원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 건너편에는 과거시험을 보던 곳인 시사단이 있다. 서원 인근에는 퇴계가 태어나고 묻힌 태실과 묘소, 종부가 손님을 맞는 퇴계종택, 제자 금난수(1530∼1604)가 지은 고산정, 퇴계의 14대 후손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인 이육사(1904~1944)의 묘소와 문학관이 있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권율 등 명장을 등용한 문신 겸 학자 서애 선생이 후학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제자들이 ‘존덕사’를 지어 위패를 모셨다. 사적 제260호이다. 서원의 만대루나 입교당에 올라서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병산이 이름 그대로 병풍처럼 자리하고 낙동강이 그 앞을 잔잔하게 흐른다. 고미술연구가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는 이유다. 두 서원은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으며 유네스코 실사를 거쳐 2016년쯤 등재가 확정될 전망이다. ■봉정사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625~702)의 제자 능인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으로 유명하다. 하회마을처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간 뒤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사찰 입구 솔 숲길은 여왕이 다녀간 길이라고 해서 ‘퀸스로드’로 이름 붙여졌다. 1987년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 등 영화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곳으로 국보와 보물이 가득하다.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비롯해 대웅전(국보 제311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영상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 14점이 있다. 경내 영산암은 사찰이라기보다 사대부가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뛰어난 미를 갖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가까이서도 아름답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절집이다. 안동시는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다는 계획이다. ■국학진흥원 유교목판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쓴 책을 찍어내기 위한 목판 기록물로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기록유산 중 하나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2월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는 718종의 유교책판 6만 4226장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후보로 최종 결정했다. 내년 6월쯤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들 목판의 유형으로는 문집류가 583종(81.2%)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성리서 52종, 족보류 32종, 예학서 19종, 역사·전기류 18종, 몽훈·수신서 7종, 지리 3종, 기타 4종으로 유학자들이 만든 기록물이 대부분이다. 유학 집단의 사회적 공론을 거쳐 후손이나 후학이 자발적으로 경비를 모아 책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을 제작했다는 점과 주요 등재 기준인 진정성, 독창성, 세계적 중요성이 뛰어나 등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목판은 현재 자동통풍시스템, 자동항온항습시설, 가스식 자동소방시스템, 출입통제 및 도난방지시스템 등 첨단시설을 갖춘 목판 전용 수장 시설인 장판각에 보관 중이다. 사전 예약(054-851-0764)해야 관람할 수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마을에서 800여년의 긴 역사를 이어 전승돼 온 탈에 담긴 웃음, 풍자, 해학으로 민중의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풍자적으로 그려 내는 게 특징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에 사는 허 도령이 제작했다는 하회탈은 모두 14개였으나 3개가 분실되고 현재 10종 11개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됐다. 탈놀이 전 과정은 모두 10개 마당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상설공연(1~2월 매주 토~일, 3~12월 매주 수·금·토·일요일)에서는 6개 마당만 무료 공연된다.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관람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표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근간이기도 하다. 예술성과 민중성이 뛰어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 선정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 선정

    문화재청은 2016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으로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을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한양도성은 1394년 한양이 조선의 수도로 선정된 이후 총길이 18.6㎞ 규모로 축조된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유산으로, 문화재청은 2016년 1월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예정이다. 사진은 한양도성의 광희문-장충동 구간. 문화재청 제공
  • 세월이 멎은 듯… 달도 숨다

    세월이 멎은 듯… 달도 숨다

    단풍 하면 퍼뜩 떠오르는 곳이 내장산 국립공원이다. 우리나라 단풍 유람의 대표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한데 내장산 국립공원이 전북 정읍 쪽의 내장산뿐 아니라 전남 장성 쪽의 백암산과 입암산을 아우른다는 것을 아는 이는 뜻밖에 적다. 백양사가 깃든 백암산은 그나마 유명세를 얻은 편이다. 입암산을 아느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외로 꼬기 일쑤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한 축인 입암산 일대에 장성새재 옛길이 남아 있다. 세인의 시선에서 살짝 비켜 선 곳이니 한적함이야 더 말할 게 없을 터. 남도 사투리는 이를 ‘다붓한(한적한) 새름길(샛길)’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삼한시대 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입암산성 가는 길을 덧붙이면 멋진 트레킹 코스가 완성된다. 길의 들머리는 남창계곡이다. 산성골, 새재골 등에서 흘러온 여섯 지류가 합류되는 곳이다. 예부터 ‘과실의 왕은 감이요, 감의 왕은 대봉’이라 상찬을 받아온 대봉감의 산지로도 이름났다. 전남대수련원 입구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남경산기도원 왼쪽 흙길 임도로 들어선다. 넓고 완만한 길이다. 계속 직진해서 새재화장실을 지나면 곧 장성새재 갈림길이다. 전 구간을 통틀어 화장실은 이곳뿐이다. 미리 ‘해결’하고 가는 게 낫겠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장성새재를 거쳐 백암산과 백양사 또는 순창새재까지 갈 수 있는 길이다. 흔히 새재 하면 경북의 문경새재를 떠올리지만 장성에도 새재가 있다. 한데 이름의 어원은 다소 다르다. 문경새재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조령(鳥嶺)의 순우리말 표현이다. 장성의 새재는 지름길 혹은 샛길의 의미가 강하다. 김채림 장성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지역에 살던 선조들이 장을 보거나 과거를 보기 위해 정읍으로 넘어갈 때 지름길로 이용했던 길”이라며 “한양으로 가는 삼남대로인 갈재(노령)를 이용하기 곤란한 사람들도 관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샛길로 장성새재를 이용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장성새재 옛길은 장성 쪽 남창계곡에서 전북 정읍 입암공원지킴터까지 5㎞ 남짓한 구간을 이른다. 한데 이 구간을 종주하면 원점회귀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산행거리도 짧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따라서 옛길 정상인 장성새재까지 3㎞ 정도 걸은 뒤 되짚어 나와 입암산성까지 다녀오길 권한다. 이 경우 산행거리가 약 14㎞로 확 늘어난다. 하지만 경사가 완만해 오르는 데 별 어려움이 없고 볼거리가 많아 좀 더 발품 팔 이유는 충분하다. 장성새재 정상에서도 입암산성 북문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지만 현재는 폐쇄됐다. 김 해설사는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여 보겠다고 이 코스로 올라붙었다가는 죽을 만큼 고생한다”고 경고했다. 오래전 장성새재 가는 길은 정감 넘치는 오솔길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군용도로로 쓰기 위해 폭을 넓히면서부터 주변 환경이 훼손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1970년대 들어 차량 통행은 금지됐고 길은 다시 옛 정취를 되찾아가는 중이다. 옛길은 인적이 드물다. 산행 내내 사람 한 명 보기 어렵다. 그 덕에 길을 독차지하고 걷는 호사도 누린다. 길은 완만한 편. 길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위로는 산새들이 삐쭝대며 날아간다. 가을이 짙어지면서 단풍 빛깔도 한결 요염해졌다. 거리가 짧으니 숨이 찰 까닭도 없다. 산책하듯 ‘싸목싸목’ 걷다 보면 어느새 새재 정상이다. 선조들은 새재를 월은치(月隱峙)라고 불렀다. ‘달이 숨은 고개’란 뜻인데, 숲이 어찌나 깊든지 하늘에 뜬 달이 보이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성새재 갈림길까지 되짚어 내려온 뒤 입암산성 등산로로 접어든다. 갈림길에서 5분가량 올라가 다리를 건너면 숲 체험장이다. 전남대가 1960년대 조성한 삼나무 숲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삼나무가 수직의 세상을 펼쳐낸다.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나무의자도 여럿 놓여 있다. 삼나무 이파리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빈 의자 위로 사뿐히 걸터앉는다. 삼나무 숲 끝자락은 계곡이다. 단풍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계곡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면 잠시 가팔라졌다가 다시 완만해진다. 이렇게 몇 굽이를 돌면 은선동 삼거리다. 왼쪽 길은 갓바위(638m), 오른쪽은 입암산성 남문 방향이다. 어느 쪽으로 가도 입암산성을 돌아 원점회귀할 수 있다. 예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몇번의 된비알을 지나면 입암산성 남문이다. 오랜 시간을 버텨왔을 성벽이 어찌나 견고하든지 입에서 쉼 없이 탄식이 쏟아져 나올 지경이다. 입암산성은 호남 내륙의 자연과 선조들의 지혜가 어우러진 천혜의 요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전라도를 방어하는 데 중요한 곳으로 노령산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높이 626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계곡을 감싼 형태의 성곽) 산성으로 3.2㎞ 정도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축성 시기는 불분명하다. 다만 ‘고려사’ 등에 1256년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향토 사학계에서는 삼한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백제 때는 견훤이 요새로 쓰기도 했단다. 과거 네 곳의 포루(砲樓)와 두 곳의 성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문만 공개되고 있다. 남문 성벽은 수직에 가깝다. 성 안에는 물이 솟는 곳이 예닐곱 곳에 달한다. 양식만 비축한다면 외적의 침입에도 오랜 시간 성을 지킬 수 있는 모양새다. 남문에서 북문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도 곳곳에 옛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내마을터가 특히 인상적이다. 1980년대까지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성내마을터를 지나 북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입암산이란 이름의 근원이 됐던 갓바위(笠岩)로 가는 길이다. 둥근 접시 모양의 갓바위는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갓이다. 갓바위 위는 최고의 전망대다. 드넓은 들녘 한가운데 입암저수지가 보이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호남고속도로와 정읍 시가지, 두승산 등이 한눈에 잡힌다. 입암산성 최고의 망루다운 전망이다. 하산길은 어려울 게 없다. 노송들 사이로 능선길을 따라 20~30분 내려오면 은선동 삼거리다. 글 사진 장성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와 백양사 방향으로 가다가 남창(입암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북이면 사거리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관건이다. 기차는 사거리에 있는 백양사역에서 내리면 된다. 사거리터미널에서 남창 가는 군내버스는 오전 8시 20분, 10시, 오후 1시 50분, 4시 50분 네 차례 있다. 남창에서 나가는 시각은 여기에 30분을 더하면 된다. 사거리에서 남창계곡을 거쳐 백양사까지 가는 버스도 하루 다섯 차례 운행한다. 고속버스는 장성터미널, KTX는 장성역까지 각각 가야 한다. 장성 시내에서 사거리까지는 20~30분에 한 대꼴로 버스가 오간다. →맛집:장성호 인근의 호반가든(392-8692)은 메기찜이 맛있는 집이다. 시래기를 깔고 갓 잡은 메기를 올린 뒤 갖은 양념을 섞어 졸여낸다. 짭짜름하게 양념이 밴 시래기에 메기를 얹어 먹는 맛이 각별하다. 2인분 2만 5000원. 백련동 시골밥상(393-7077)은 유기농 식재료로 차린 열두 가지 반찬이 맛있는 집이다. 1만원. 청자연(394-9909)도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은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들이 일품이다. 두 집 모두 홍길동 테마파크 인근에 있다. →잘 곳:숲 속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면 축령산자연휴양림(390-7770)이나 방장산자연휴양림(394-5523)이 좋겠다. 축령산은 편백나무 숲이 깊고 방장산은 고창과 서해 일대가 조망된다. 홍길동 테마파크(394-7240)에도 소규모 숙박시설과 오토캠핑장이 마련돼 있다. 남창계곡에도 오토캠핑장이 있다. →주변 볼거리:주변에 단풍 명소가 많다. 그 가운데 백양사가 가장 가깝다. 장성호관광지에 임권택시네마테크가 조성돼 있다. 전망대에선 장성호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테마파크 인근의 금곡영화마을은 영화 ‘태백산맥’ 등의 배경이 됐던 산골마을이다. 필암서원도 지척이다.
  • 태안서 조선시대 추정 선박 첫 발견

    태안서 조선시대 추정 선박 첫 발견

    ‘바닷속 경주’로 통하는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조선시대 백자를 대량 싣고 있어 백자의 해상 운송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5일 “지난 6월부터 시행 중인 마도 해역 발굴조사 결과 분청사기 대접 2점 등 백자 111점이 실린 길이 11.5m, 폭 6m 규모의 선박을 발견했다”면서 “좀 더 연구 조사를 진행해야겠지만 분청사기 등이 실려 있는 것으로 봐 이 선박이 지금껏 한 번도 발굴된 적 없는 조선시대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내년 4월부터 정밀 수중발굴을 시행할 예정이다. 출수된 백자는 제작 상태, 기종 등을 고려했을 때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지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접시, 잔, 촛대 등 일상 용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발견 당시 종류별로 10점씩 포개진 상태였고, 완충재로 쓰였을 볏짚도 함께 발견돼 화물로 선적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백자 촛대는 그동안 발굴된 사례가 없이 전세품(傳世品·소중히 다뤄져 전래되어 온 미술품 등)만 남아 있어 도자사적 연구 가치가 크다. 태안군 마도 해역은 빠른 물살과 암초, 짙은 안개 등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배들이 침몰한 장소다. 덕분에 ‘바다의 타임캡슐’인 옛 선박을 2007년부터 연차적으로 수중 발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태안선, 마도 1, 2, 3호선 등 4척의 고려시대 선박과 3만여점의 유물을 인양했다. 한반도 주변 해양에서 발굴된 12척의 옛 선박들도 대부분 고려시대 및 그 이전 선박들이었다. 신종국 연구관은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 지역에 가마가 산재해 있었고, 생산지와 수요지가 붙어 있어 해상 등을 통한 장거리 운송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면서 “이번에 출수된 백자들은 해로를 이용한 백자 유통 과정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세계유산 등재 심포지엄서 가능성 따져본다

    서대문형무소 세계유산 등재 심포지엄서 가능성 따져본다

    서울 서대문구는 다음달 1일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옛 서대문형무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과 가치를 엿보는 ‘동아시아 근대 감옥의 가치 발굴과 비교 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에선 중국, 타이완, 일본 내 근대 감옥들의 보존과 활용 현황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서대문형무소와 비교한다. 발표는 6가지 소주제로 진행된다. 서울신문 주필을 지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의의, 김정동 우리근대건축연구소장은 건축사적 의의에 대해 기조강연을 한다. 주애민 중국 여순감옥박물관 연구실장은 ‘한·중·일·타이완 근대 감옥의 보존과 활용비교’란 주제발표를 갖는다. 이종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김태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연구사, 조두원 남한산성 관광사업단 박사가 사례 소개와 등재 가능성, 등재 방법론 등을 제시한다. 미즈시마 에이지 일본 쓰쿠바대 교수, 장석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재근 문화재청 국제협력과 사무관,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 등은 종합 토론을 벌인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부산 정관박물관 개관 앞두고 돌연 증축 논란

    부산 정관박물관 개관 앞두고 돌연 증축 논란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들어서는 정관박물관이 부산시의 ‘변덕’ 때문에 올해 개관하지 못하게 됐다. 정관신도시 주민들의 문화지수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정관박물관은 지난 4월 완공됐지만 갑자기 증축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30일 부산시에 따르면 2003년 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정관신도시 택지 조성 과정에서 움집터와 청동기, 삼국시대 유물이 대량 출토되자 문화재청은 박물관을 짓는 조건으로 택지 조성 공사를 승인했다. 이에 LH는 134억원을 들여 2만 196㎡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박물관을 지어 시에 기부하기로 했다. 박물관은 2011년 5월 개관 예정이었으나 주택공사가 토지공사와 합병하면서 공사가 미뤄져 지난 4월 완공됐다. 시는 5월 한 달간 박물관을 시범 운영한 뒤 6월에 공식 개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시가 지난 4월 초 돌연 LH에 어린이 체험 공간을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곽근성 LH 부산울산지역본부 차장은 “공사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에서 부산시로부터 공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LH는 지난달 1억원을 들여 박물관 3층 옥상에 152.07㎡(약 46평) 크기의 어린이 체험 공간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일부 주민은 시가 박물관 옥상에서 카페를 운영할 목적으로 증축 공사를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관신도시에 사는 장모(56)씨는 “시가 주민과의 약속까지 어겨 가면서 증축 공사를 하는 데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권철 시 문화재담당은 “어린이 체험 공간은 최근 박물관의 추세라 부득이 증축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관박물관 개관은 유물 전시 준비 등으로 내년 2월에야 가능하다. 그동안 직원들 인건비와 건물 유지비용으로 혈세만 더 들어가게 됐다. 글 사진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씨줄날줄] 농악과 공동체/문소영 논설위원

    문화재청은 그제 ‘농악’(農樂)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다음 달 말쯤 등재가 확정되면 ‘김치와 김장문화’(2013년), ‘아리랑’(2012년) 등에 이어 한국은 17번째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농악은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풍물이나 두레, 풍장, 굿 등이다. 농악은 김매기나 논매기, 모심기 등의 힘든 농사일을 할 때 연주했다고 하지만, 전문 연주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나고서 연주했을 것이다. 농악의 악기 중 북·장구·징·꽹과리 등 네 개의 민속 타악기로 연주하면 1979년 시작한 ‘사물(四物)놀이’가 된다. 식량을 늘렸다는 측면에서 인류의 농사짓기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농사는 힘든 노동이었다. 소와 말 같은 대형동물이 현대의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역할을 해야 할 만큼 말이다. 특히 과거의 농사는 공동체와 협력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가족만으로 파종과 수확을 할 수 없어서 협동심을 이끌어내며 흥을 돋우는 농악의 역할이 중요했다. 농악의 시작을 알리는 기록이 없어 그 시기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농악은 농업과 관련이 있으니, 약 6000년 전 한반도에서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 혁명’ 때부터 함께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구석기인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린 것이 약 4만년 전이니 음악이 6000년 전쯤 시작했다는 추정이 망상은 아니지 않을까. 고구려 등 삼국시대에는 5월 파종과 10월 추수 후에 하늘에 제사지냈는데 이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 동안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겼다 하니, 이때는 제례악과 함께 농악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후렴구인 “아으동동다리”에서 동동은 농악에서 쓰이는 북소리라고도 하고, 고려 제25대 충렬왕이 일반 농악에 관심이 커서 장려한 일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니, 고려 때는 이미 농악의 정착단계로 보인다. 조선에 와서도 세종·세조 등은 농악과 농가(農歌)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는 농악이나 김치문화, 아리랑 등은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한 유산들이다.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나타난 인간 소외나, 노동 소외, 극단적 탐욕 등을 해결할 방안으로 공동체적 삶이 주목받는 덕분 같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니,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등이 주목받는 이유도 성공신화를 쓴 영웅이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와 부의 불평등이 세계적으로 100년 이래 최악이란다. 농악이 ‘혼자 잘살면 뭐하나! 같이 잘살아야지’ 하는 정신을 북돋아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확실시

    농악,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확실시

    한국 ‘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문화재청은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심사보조기구에서 만장일치로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고 29일 밝혔다. 농악의 등재가 확정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김치와 김장문화’의 등재에 이어 모두 17개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날 유네스코 홈페이지에 공개된 평가결과에서 산하 임시소위원회인 심사보조기구가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농악’에 대해 ‘등재권고’ 의견을 내놨다”고 말했다. 심사보조기구는 한국의 등재신청서를 모범사례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평가에서 심사보조기구는 모두 46건의 등재신청서를 심사해 32건은 ‘등재권고’, 6건은 ‘정보보완권고’, 8건은 ‘등재불가권고’를 제시했다. 심사 결과는 다음달 24일부터 28일까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되는 제9차 무형유산위원회에 넘겨지며, 이때 열리는 회의에서 농악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여부도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한국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이상 2009년) 등이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농악은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 타악기를 합주하면서 행진하거나 춤을 추며, 때론 연극 같은 공연을 펼치는 종합예술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풍물굿, 매구, 풍장, 걸궁, 걸립, 판굿 등으로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오늘날까지도 전국 각지에서 전승되는 농악은 영남, 호남, 영동 등 5개의 문화권으로 나뉘며 현재 국가가 지정한 농악은 강릉농악, 구례잔수농악, 임실필봉농악, 평택농악, 아리농악, 진주삼천포농악 등 6종목이다. 한편 북한의 ‘아리랑’도 인류무형유산 심사보조기구 평가에서 농악과 함께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 다만 이 종목은 북한의 평양, 평안남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북도, 자강도 지역의 아리랑에 국한된다. 우리나라는 2012년 12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을 인류무형유산에 이미 등재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불법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 팔 걷었다

    해외로 불법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문화재찾기 한민족네트워크’가 29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00여명의 관련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정치권과 종교계, 정부기관 등이 함께 참여하는 이 단체의 공동 대표에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이사장에는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이 각각 선출됐다. 사단법인 형태의 이 단체에는 시민운동단체인 ‘평화3000’의 박창일 신부와 김준혁 한신대 교수, 환수운동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 스님 등이 동참했다. 한민족네트워크는 창립선언문에서 “문화재는 곧 그 민족의 역사로, 그러한 문화재가 우리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왜곡되고 사라지는 것”이라며 “국외로 반출된 약탈문화재를 마지막 하나까지 되찾고 민족의 정기와 역사를 재정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범식에는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고 일본에서 한국문화재 반환운동을 벌이는 아리미쓰 겐(有光健) 조선한국문화재반환연락회 부대표가 ‘문화재 환수와 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특강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숭례문 ‘엉터리 단청장’에 속은 문화재청

    전통기법으로 국보 1호 숭례문 단청 복구 공사를 하겠다던 장인이 몰래 화학안료와 화학접착제를 쓴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3억 9000여만원의 인건비를 빼돌리기도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전통기법을 이용해 숭례문 단청 복구 공사를 하겠다고 계약한 뒤 화학안료·접착제를 사용하고 인건비를 줄여 부당이득을 챙긴 홍모(58) 전 숭례문 복구공사 단청장과 제자 한모(48)씨 등 6명을 사기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은 또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문화재청 공무원 최모(55)씨 등 5명은 직무유기 혐의로, 공사 과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감리사 이모(50)씨 등 2명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입건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호자인 홍씨는 2012년 8~12월 숭례문 단청 복구 공사를 진행하면서 계약 내용과 달리 화학안료와 접착제를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그는 돌가루와 조갯가루 등을 이용한 전통방식 복원에 자신 있다고 밝혔지만 공사가 시작되자 어려움을 겪었다. 색이 잘 발현되지 않았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아교가 엉겨붙었다. 홍씨는 이를 숨기려고 화학안료를 전통안료와 2대8 비율로 섞고 화학접착제도 1대3 비율로 물에 섞어 사용했다. 날림으로 작업한 단청은 공사가 끝난 후 3개월 만에 벗겨졌다. 재시공에 필요한 비용은 11억원으로 예상된다. 앞서 2009년 12월 홍씨는 ‘전통기법만을 이용해 단청을 입힐 수 있다’고 문화재청을 속여 숭례문 복구공사의 단청장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홍씨가 전통기법으로 단청을 복구한 경험은 1970년대 스승이 맡은 금정산성 복원 공사에 잠시 참여했던 것이 전부였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씨줄날줄] 문화재 공소시효/서동철 논설위원

    충북 제천의 정방사는 산 아래 청풍호의 풍경이 아름다운 절로 유명하다. 금수산 자락에 자리 잡은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산방사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의상대사가 절을 짓고자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으로 날아와 꽂혔다는 창건설화가 전한다. 큰법당에 원통보전(圓通寶殿)이라는 편액이 붙었으니 관음도량이다. 실제로 관음신앙의 영험 있는 기도처로 알려지면 많은 신자들이 찾는다. 주존(主尊)인 높이 60㎝의 아담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2001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만들어질 당시에는 아미타삼존불의 좌협시보살이었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목조관음상은 2004년 김쪽같이 사라졌다. 지난 5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전화가 걸려 왔다. 불교문화재 특별경매전에 출품된 불상이 아무래도 정방사 관음보살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의 제보였다. 불교계가 만든 도난 문화재 도록과 비교해 보니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이다. 관음상이 경매에 나온 것은 장물 취득 및 알선 범죄의 공소시효 7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도난 문화재라는 사실이 탄로 나도 처벌받지 않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경매에는 정방사에서 훔쳐간 나한도도 나왔다. 현재 문화재청이 파악하고 있는 도난문화재는 모두 796건에 이른다. 문화재청은 인터넷 홈페이지로 ‘도난 문화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을 둘러보노라면 문화재 절도가 결코 옛날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 도난당한 문화재는 경주 숭혜전(崇惠殿)의 하마비다. 대릉원과 이웃한 숭혜전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시대 것인 하마비(下馬碑)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내용의 글귀를 새겼다. 숭혜전보존회는 도난 사실을 지난달 알았다.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깊이 숨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의 작은 사자상은 3개가 사라지고 지금은 한 개만 남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빼돌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석조문화재의 작은 부수유물이 여전히 문화재 절도범들의 손쉬운 범죄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북 영천시 공덕동의 고려시대 삼층석탑 앞에 놓였던 향로석도 2009년 도난 사실이 확인된 이후 아직 오리무중이다. 문화재 절도에는 공효시효가 없어야 한다. 버텨도 노다지를 캘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도 국외반출의 문제는 남는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문화재를 국외로 빼돌리다 걸리면 나머지 인생은 반드시 교도소에서 보낸다는 인식을 분명히 심어주어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1500년전 마한시대 원형 문양 그대로 출토

    1500년전 마한시대 원형 문양 그대로 출토

    거의 원형을 유지한 5세기 후반 백제 금동신발 한 쌍이 전남 나주시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404호)과 인접한 정촌 고분(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3호)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삼국시대 복암리 일대 마한 세력의 세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정촌 고분 일대에서 발굴 조사를 벌여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23일 밝혔다. 조사 결과 정촌 고분은 마한시대 수장층의 돌방무덤(석재를 쌓아 만든 무덤)이며, 출토 유물들은 백제는 물론 신라, 가야와의 교류 흔적을 보여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성백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발등 부분에는 용 모양의 장식이 있다. 또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달렸다. 바닥에는 연꽃과 도깨비 문양을 투조와 선각으로 꾸며 화려하게 장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유물이 백제의 지방 지배와 관련된 하사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상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은 “그간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창 봉덕리, 공주 수촌리, 고흥 안동 고분 등지에서 백제 금동신발이 발견됐으나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수습됐다”면서 “이번에 발굴된 금동신발은 장식까지 완벽한 상태”라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금동신발은 백제와 관련이 깊은 유물로, 백제가 영산강 유역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시점과 토착 세력과의 관계 등 당시의 정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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