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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요칼럼] 문화재 안내판 개선 사업의 순서/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문화재 안내판 개선 사업의 순서/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전남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은 3층 전각이라는 드문 생김새라서 일찍이 보물로 지정됐다. 1984년 불이 나는 바람에 다시 지으면서 국가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된 역사도 갖고 있다. 앞에는 두 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대웅전, 다른 하나는 내부에 모셔진 목조삼존상을 설명한 것이다.목조삼존상 안내판의 글귀는 불교적 소재를 적지 않게 다루고 있는 소설가 정찬주의 ‘작품’이다. 작가는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던 쌍봉사에서 젊은 시절 먹고 자며 문학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이 절에서 멀지않은 곳에 이불재(耳佛齋)라는 글쓰기 공간을 마련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글귀는 모두 네 단락이다. 첫 번째는 ‘앉아서 계신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왼쪽의 아난존자와 오른쪽의 가섭존자가 합장하고 서 있는 전통적인 삼존상’이라고 무엇을 조각한 것인지를 먼저 설명했다. 다음은 ‘아난존자는 부처님을 옆에서 오랫동안 모신 제자답게 후덕한 얼굴이며 수행을 잘하는 가섭존자는 겹겹이 수염까지 그려져 있다’고 협시한 두 존자가 누구인지를 밝혔다. 세 번째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인데, ‘우리가 지금 삼존상을 친견할 수 있는 것은 대웅전이 화재를 만나 불길에 휩싸여 있을 때 마을 농부가 달려가 삼존불을 한 분씩 등에 업고 나와 무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마지막은 삼존상의 양식적 특징을 설명하면서 ‘발원문과 극락전 아미타불 대좌의 묵서명에 조성 시기와 동기, 참여자 등이 기록되어 있어 불상 연구에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불교사적, 미술사적 의의를 알렸다. 문화재 안내판의 모범 사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친절하고 충실하다. 모든 안내판이 비슷하게만 적혀 있었더라도 보통 사람은 알 길이 없는 건축적 특징만을 나열한 청와대 경내의 침류각 안내판을 두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대통령이 개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문화재청은 2019년 안내판 개선 사업 예산 59억원을 확보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까지 포함하면 내년에만 80억원 이상이 이 사업에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은 침류각 안내판부터 대통령이 지적한대로 국민의 관심사를 반영해 고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글귀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왜 안내판 하나 바꾸지 못하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쌓이고, 그 역사를 증명하는 기록이 곳곳에서 확인됐으며, 또 그 가치를 드러내는 연구가 속속들이 이루어진 쌍봉사고 대웅전이고, 삼존상이다. 반면 1900년대 세워진 것으로 청와대 경내에 있어 학자들의 연구 대상에서도 비껴나 있었던 침류각은 안내판 문구를 새로 쓰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침류각 안내판이 ‘세벌대 기단, 오량가구, 불발기, 띠살, 교살, 딱지소’처럼 고건축 전문가만 아는 ‘암호’로 가득한 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쓸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내판이 중요할수록 그 문화재 하나하나의 성격을 충실하게 밝히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할 말’이 없는 문화재는 침류각에 그치지 않는다. 안내판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뜻깊지만 ‘쓸 말’을 찾는 노력, 곧 개별 문화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쌍봉사 수준의 안내판은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재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은 곧 가치를 밝히는 작업이다. 어떤 모습이라는 현상보다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더 자세히 안내판에 담는 것이 곧 대통령이 말한 ‘국민의 관심사’에 근접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안내판 개선 사업은 이미 가치가 밝혀진 문화재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침류각처럼 성격을 제대로 모르는 문화재라면 가치를 밝히는 데 먼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 숙종의 기로소 모임 그린 ‘기사계첩’ 국보 된다

    숙종의 기로소 모임 그린 ‘기사계첩’ 국보 된다

    조선 숙종의 기로소(耆老所·70세 넘은 정2품 이상 문관이 모인 자문기구) 입소를 기념하는 행사의 모습을 그린 서화첩 ‘기사계첩’(耆社契帖)이 국보로 승격된다. 1987년 보물 제929호로 지정된 지 31년 만이다.문화재청은 22일 기사계첩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기사계첩은 숙종 45년(1719년)에 열린 기로소 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행사는 1719년에 열렸으나 참석자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이듬해인 1720년에 완성됐다. 1719년 당시 59세였던 숙종은 기로소에 들어갈 나이가 아니었지만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기로소에 들어간 전례에 따라 이르게 기로소에 입소했다. 계첩에는 기로신 중 한 명인 문신 임방(1640~1724)이 쓴 서문, 경희궁 경현당 연회 때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기로소 문신 11명의 반신 초상화, 문신들이 쓴 축시 등도 수록됐다. 마지막 장에는 그림을 제작한 도화서 화원들의 이름이 기록됐다. 당시 만든 기사계첩은 12부이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3점이다. 문화재청은 “화려한 채색과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사실성이 돋보이는 얼굴 표현을 한 점 등 조선후기 궁중행사도 중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여 준다”면서 “조선시대 궁중회화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14세기때 불화 ‘고려 천수관음보살도’와 강원 속초 신흥사에 있는 ‘제진언집(諸眞言集) 목판’, 법장사가 보유한 불경 ‘묘법연화경’은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조선 대표 궁중 회화 ‘기사계첩’ 31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조선 대표 궁중 회화 ‘기사계첩’ 31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조선 숙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하는 행사의 모습을 그린 서화첩 ‘기사계첩’(耆社契帖)이 보물로 지정된 지 31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1987년 보물 제929호로 지정한 기사계첩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22일 밝혔다. 기사계첩은 숙종 45년(1719년)에 열린 70세 이상의 관리들의 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모임에 참여한 관료들이 계(契)를 조직해 궁중화원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행사는 1719년에 열렸으나 참석자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이듬해인 1720년에 완성됐다. 기로소는 나이 70세를 넘은 정2품 이상 문관을 우대하던 기관이다. 1719년 당시 59세였던 숙종은 기로소에 들어갈 나이가 아니었지만 태조 이성계가 60세에 기로소에 들어간 전례에 따라 빠르게 기로소에 입소했다. 그림은 경희궁 흥정당에서 기로소에 어첩을 봉안하러 가는 행렬을 담은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를 시작으로 기로신(耆老臣)들이 경희궁 숭정전에서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인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에서 왕이 기로신들에게 연회를 베푼 광경을 묘사한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기로신들이 하사받은 은배(銀盃)를 들고 기로소로 돌아가는 행렬을 그린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로신들이 기로소에서 연회를 행하는 모습인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순으로 실렸다. 계첩에는 기로신 중 한 명인 문신 임방(1640~1724)이 쓴 서문, 경희궁 경현당 연회 때 숙종이 지은 글,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기로소 문신 11명의 명단, 이들의 반신(半身) 초상화, 문신들이 쓴 축시 등도 수록됐다. 마지막 장에는 그림을 제작한 도화서 화원 김진여(金振汝), 장태흥(張泰興) 등 실무자 이름이 기록돼 있다. 당시 기사계첩 12부를 만들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3점으로 모두 보물로 지정된 상태다. 문화재청은 “화려한 채색과 섬세하고 절제된 묘사, 명암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사실성이 돋보이는 얼굴 표현을 한 점 등 조선후기 궁중행사도 중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면서 “보존 상태가 좋고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 조선시대 궁중회화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어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14세기경 불화 ‘고려 천수관음보살도’와 강원 속초 신흥사에 있는 ‘제진언집(諸眞言集) 목판’, 법장사가 보유한 불경 ‘묘법연화경’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 예고한 문화재에 대해 30일간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관가 인사이드] 대북 제재에 막히고 여론 눈치… 일선 부처 남북협력 연구 ‘쉬쉬’

    [관가 인사이드] 대북 제재에 막히고 여론 눈치… 일선 부처 남북협력 연구 ‘쉬쉬’

    환경부 설악·금강평화공원 추진 등 연구 국감서 공개되자 “아이디어 차원” 경계 산림청 양묘장 조성 사업 탄력과 ‘대조’ 제재 위반 비판 부담… 부처들 사업 머뭇 전문가 “제재 해제 대비 연구 속도 내야”남북 협력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최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까운 장래에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4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 간 약속이 전면적으로 실천되고 이행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국감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 사업 아이템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각 부처는 “유엔 제재 탓에 남북 협력 사업이 연구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 연구도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유엔제재 때문?… 합법적 연구도 조심조심 지난 10월 환경부 국감에서는 국립공원연구원이 작성한 자연환경분야 남북협력방안 연구 문서가 공개됐다. 이 문서는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연구원은 남북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사업 16개를 선정했는데, 여기에는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조성과 남북 생태관광 활성화 등 기존 계획뿐 아니라, 한반도 생물다양성 통합정보 구축과 설악산~금강산 국제평화공원 지정 등 새로운 것들도 많았다. 남북이 손을 잡고 제대로 추진한다면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환경부를 비롯한 다수 부처가 남북 협력 방안을 연구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남북 문화교류협력 발전방안 연구 명목으로 예산 2억원을 편성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우리나라와 북한의 과학기술 협력을 위해 백두산에 남북 공동연구센터를 세우자는 제안을 내놨다. 통일부도 부처별로 유엔 제재가 풀린 뒤 추진할 수 있는 대북 사업들을 취합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구사업을 진행하는 부처들의 반응은 매우 조심스럽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감에서 남북 협력 방안 연구 문서가 공개되자 “아이디어 수집 차원에서 진행한 것일 뿐”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실제 대북 협력 사업으로 이어 갈 계획은 없다는 뉘앙스였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엔 대북 제재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 사업으로 진행하려면 통일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대북 사업 나선 산림청… 법제처는 본격 연구 반면 자신들의 사업이 유엔 제재에 해당하지 않아 합법적으로 남북 협력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외청인 산림청이 대표적이다. 산림청의 남북 협력 사업은 지난 9월 ‘평양선언’으로 큰 힘을 받았다. 당시 남북한은 산림협력분과 회담을 열어 양묘장 현대화와 임농복합경영, 산불방지 공동 대응, 사방사업 등을 논의했다. 최근에는 대북 지원용 종자 생산을 위한 양묘장 조성을 추진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산림청은 내년까지 양묘장을 완공해 연간 5t의 조림사업용 종자를 북한에 지원할 계획이다. 이처럼 산림청이 순조롭게 대북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북 교류가 없었을 때에도 관련 연구에서 손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남북 관계가 소원하던 시절에도 협력사업을 위한 연구 부서는 활발하게 활동했다”면서 “북한에 황폐화된 산림 규모가 284만㏊라는 사실을 바로 공개할 수 있었던 것도 국립산림과학원이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해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른 부처들도 대북 협력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통일부와 통일법제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법제처는 과거보다 한발 더 앞으로 내딛는 모양새다. 법제처는 내년 초 통일법제 담당 연구원을 채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격월로 한 번씩 열리는 남북법제연구위원회 회의를 전문화하겠다는 판단이다. 이 밖에도 유엔 제재에서 벗어나 있는 문화 분야도 대북 협력에 적극적이다. 문화재청은 남북 간 문화재 교류와 협력을 위해 내년에 97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문체부도 남북 문화체육교류 예산으로 56억원을 준비했다. ●시민사회 “정부, 대북 협력 연구 주저 말아야” 부처들이 연구 단계에서도 남북 협력 사업을 주저하는 것은 자칫 “유엔 제재를 어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유엔 제재가 풀릴 때를 대비해 좀 더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남북 협력 사업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유엔 제재가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남북 협력 사업 연구를 소극적으로 이어 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대비해 ‘마중물’로서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통일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 기회가 와도 이를 살리지 못했다”면서 “남북 협력 사업은 때가 되길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비격진천뢰 무더기 발견된 고창 문화유산과 신설

    조선시대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무더기로 발견된 전북 고창군에 문화재를 전담하는 과가 신설된다. 전북 고창군은 문화·예술·관광 업무를 담당하는 문화관광과에서 문화재 조직을 분리해 문화유산과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17일 밝혔다. 문화유산과 신설 규모와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창에는 비격진천뢰가 발견된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을 포함해 지정문화재가 83건이나 분포돼있다. 선운사와 문수사 건물과 불상 8점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고, 사적으로는 고창읍성·분청사기 요지·봉덕리 고분군 등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고창군이 문화유산과를 만들면 문화재 보존과 활용 정책이 더 세밀해지고 체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청도 예산 증액 등 지원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전북도내 기초단체 가운데 백제 유적인 미륵사지와 쌍릉으로 유명한 익산시에 역사문화재과가 있고, 전주시에 문화재·미래유산·역사복원·동학농민혁명계승 업무를 총괄하는 전통문화유산과가 있다. 그러나 다른 지자체는 대부분 문화재 업무를 문화·예술·관광과 묶어 맡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미군 학살의 상징 필리핀 ‘발랑기가 종’ 귀환...한국 경유해 반환

    미군 학살의 상징 필리핀 ‘발랑기가 종’ 귀환...한국 경유해 반환

    미국이 117년 전 필리핀과의 전쟁 중 전리품으로 빼앗은 ‘발랑기가의 종’ 3개를 마침내 필리핀에 반환하기로 했다. 이 종들은 1899~1902년 미·필리핀 전쟁 중 미군이 자행했던 민간인 대학살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종’(鐘)이다. 필리핀 매체 스타 글로벌과 GMA 뉴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샤이엔 워런공군기지에서 열린 발랑기가 종의 반환 기념식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 종들이 곧 필리핀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대통령궁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발랑기가 종들의 반환에 환영한다”면서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필리핀으로 종 3개가 모두 돌아올 때까지 (종들은) 반환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발랑기가의 종’은 한 세기 넘게 응어리진 미군의 ‘필리핀 살육’이라는 피의 역사를 품고 있다. 필리핀 사마르섬 발랑기가의 성당 종탑에 있던 이 종들은 양국이 전쟁 중 미군이 빼앗은 전리품이다. 원래 성당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었지만 1901년 9월 28일 필리핀 반군이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 9연대를 공격하는 신호로 사용했다. 당시 반군 300여명은 여성으로 변장해 무기가 든 목관을 성당으로 가져갔고, 이튿날 아침 종소리를 신호로 삼아 공격해 미군 48~76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미·필리핀 전쟁에서 미군이 경험한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됐다.하지만 이 공격은 피의 보복을 불렀다. 9연대는 최소 2500명에서 1만명에 달하는 원주민을 살해한 뒤 시신과 성당, 마을들을 불질러 초토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종 3개도 사라졌다. 미군은 그동안 9연대가 반란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으며 1902년 4월 9일 발랑기라를 떠날 때 원주민들로부터 종들을 선물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인 작가 봅 쿠티가 2004년 발표한 ‘개들을 교살하라(Hang The Dogs): 발랑기가 대학살 역사의 진실’이라는 책을 통해 미군이 전리품으로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필리핀 정부는 지속적으로 종 반환을 미국에 요구했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강력하게 영구 반환을 제기해왔다. 결국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8월 미 의회에 종 반환 계획을 보고했다. 필리필 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종 2개는 와이오밍주 워런공군기지에 있고, 마지막 종 1개는 한국의 주한미군 2사단 영내 박물관에 있다. 필리핀에서 9연대가 빼앗은 종 3개 중 2개는 미국으로 보내졌지만, 1개는 9연대가 보관하다 한국에 주둔하면서 넘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 국방부는 조만간 워런공군기지에 있는 종 2개를 항공편이나 배편으로 한국에 보낸 후 최종적으로 종 3개를 이르면 연내 한꺼번에 필리핀에 반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발랑기가의 종의 반환은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진중에 세워진 대장의 군기)’를 떠올리게 한다.국제적으로 전쟁 중 획득한 노획품은 반환하지 않는 게 통례다. 수자기는 강화도 광성보의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이 사용했던 깃발이었다. 함포와 야포를 쏘며 상륙하는 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어져 어재연 장군을 포함해 조선군 243명이 전사하고, 미군 3명이 숨졌다. 미군이 강탈한 수자기는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보관하다 136년 만인 2007년 10월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영구 반환이 아닌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10년만 대여하는 조건이었다.어재연 장군기는 문화재청에서 2010년부터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이관돼 전시 중이다. 김명주 강화역사박물관 학예사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관된 후 2012년 미측과 상의해 기간을 연장했고, 2014년 갱신할 때 2020년까지 대여하는 것으로 다시 기간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수자기는 그림으로만 전해졌는 데 미국이 대여한 어재연 장군기를 통해 실물을 볼 수 있게 됐고, 현재 국내에 있는 거의 유일한 보존 가치가 탁월한 진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학예사는 “대여 기간의 연장을 요구하면서도 미 측에 영구 반환해달라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아 내부적으로 검토만 하고 있다”면서 “지방의 박물관이 홀로 나서기 쉽지 않은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갖고 영구 반환을 적극 추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백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 돼야”

    [인터뷰 플러스] “백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 돼야”

    문화, 문화재, 전문 인력양성,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백제사로 20년 넘게 한 길을 살아온 이 사회의 숨은 진주가 있다. 아무도 관심 없던 90년대부터 문화재를 유지·보존하고 관리·활용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문화재청장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상임이사이자 (사)문화살림의 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오덕만 선생을 찾았다.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에 비해 백제사의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에 대한 국민적 지평을 넓히고 민족 문화재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을 천명(天命)으로 받아 천직을 수행하는 장인 오덕만 대표의 모습 속에 우리 사회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소중한 시대의 자산이고 기대되는 민족의 문화전도사란 생각이 든다. 편집자 주→‘문화’를 한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신자유주의적 문화관을 극복하는 방안은.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문화는 공생(共生)과 공존(共存)의 길에서 선린(善隣)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살림의 문화라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갖고 ‘문화살림’이란 이름으로 지난 20년간 ‘문화재 보존과 활용’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활동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극심한 양극화이고 ‘문화는 산업이다’라며 관점에서 문화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문화가 고부가 상품을 만드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본축적의 새로운 개간지가 되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문화의 공유적·보편적 가치와 공공재로서의 의미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문화복지 차원에서 지역문화, 공동체문화, 생활문화의 활성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백제사와 백제문화인가요. -제가 송파에 들어와 산 지 40년이 되었어요. 1988년도에 송파구는 강동구에서 분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송파를 말할 때 이주민이 만든 도시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곳에 우리 고대사의 한 국가였던 백제의 도읍이 있었던 거예요. 663년 백강전투에서 패한 왜와의 연합군 백제의 681년(B.C.18년~A.D.663) 역사 가운데 493년간의 왕도지가 송파였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요?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 등 백제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의 유적들이 원형을 갖추고 보존되고 있는데 지금의 송파구민은 물론, 국민들이 백제를 모르고 살아요. 저도 90년대 중반에 송파에 정착하면서 백제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백제는 고구려, 신라보다 더 먼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경제력과 문화력을 꽃피웠고, 이를 기반으로 해상교역 등을 통해 동아시아 일대로 문화전파력을 갖출 수 있었어요. 백제문화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 멋지지 않나요? 이런 백제가 더 많이 부각이 되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와 공동체로 지역에서 20년 넘게 활동하셨습니다. (사)문화살림을 직접 설립하셨나요. -80년대 중반에 상봉동에서 목회를 하면서 지역 운동을 했어요. 당시에 초교파적으로 젊은 목회자들이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에 소속되어 노동·농민·도시빈민교회를 할 때였어요. 당시 상봉동 지역은 삼표연탄공장의 분진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극심한 환경적 피해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길래 씨 같은 분들이 진폐 환자로 발생하는 등 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당시 환경단체와 대학생들과 함께 공해문제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어요. 90년대 초반에 다른 목회자께 교회를 맡기고 저는 부모님이 계시는 송파로 오게 되었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안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당시에는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시작한 일이 ‘현장체험 주말학교’였어요.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다양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만 데리고 다니다가 이웃의 학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도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을 받다 보니 점차 규모가 제법 커지게 되었어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전문 체험학습지도사를 양성하고, 또 지역의 문화재를 자원봉사로 설명해 주는 문화재 해설사도 양성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문화살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 동력이죠. →(사)문화살림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일반회원 수는 430여명, 카페회원 수는 1900여명, 80여명의 활동가가 있어요. 주요 활동은 문화재 보존 활동, 교육 활동, 문화재 활용 사업, 네트워크 사업으로 크게 4가지로 구분해요. 첫째로 문화재 보존 활동은 문화재지킴이활동으로 성균관지킴이, 창덕궁지킴이, 한양도성시민순성관, 한성백제유적지킴이, 위례청소년지킴이, 청년유네스코세계유산지킴이가 있어요. 둘째로 교육 활동은 송파지역문화유산교육, 파주시지역문화유산교육, 국외문화재서울시민아카데미, 문화재지킴이 기본교육과 심화교육이 있고요. 셋째로 문화재 활용 사업은 송파구의 석촌동 고분 및 풍납토성과 파주시의 반구정 황희선생유적지 문화재활용사업이 있어요. 네트워크 사업은 송파문화예술네트워크사업과 서울·경기권의 문화재지킴이단체들의 서경문화유산포럼, 전국의 문화재지킴이단체와 문화유산활용단체와 연대를 깊게 하고 있어요. →문화재지킴이 활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5년에 문화재청이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민간의 문화재지킴이 활동과 연계하여 전국의 문화재들을 관리·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민관 협력사업입니다. 국민의 자원봉사활동으로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활동입니다. 전국에 약 8만명의 문화재지킴이들이 있고 상시 감시활동부터 모니터링, 환경정화 활동, 안내 및 교육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재를 지키는 것을 넘어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남북교류협력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업이 있나요. -민간 차원의 남북문화재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목표로 지난 10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북문화재 협력네트워크 창립대회를 했습니다. 문화재는 민족 동질성 회복과 민족혼을 일깨우는 상징물이기에 교류협력을 넘어 민족통합과 통일에 기여하리라 봅니다. 우선 문화재 전시 등으로 남북문화교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화재지킴이’ 지도사 양성을 위한 민간자격증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2016년 고용노동부 민간자격증으로 제가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는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자격증 부여단체로 등록되어 곧 추진하려 합니다.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기본 지식과 활동요령은 물론, 문화재 관련 법령과 수리 등의 기본 관리에 전문성이 요구되기에 이를 지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국가 문화재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지방문화재 보존과 활용은 물론, 청소년들의 문화재 의식 제고를 위해 학교나 현장에서 지킴이를 교육하고 관리·운영해야 하는 전문가는 지금 당장 필요한 전문가입니다. →인생 철학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上善若水(상선약수)입니다. 도덕경에서 老子가 이르길, ‘물은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이라 했어요. 이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듯이 몸을 낮추어 겸손하며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하는 저의 마음이지요. 또한 사회적 리더로서 항상 저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살기에 “순리에 따라 오는 사물은 거부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사물은 뒤쫓지 않으며, 몸이 좋은 시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바라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으면 생각하지 말라”는 명심보감의 글귀도 제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1960 전북 김제 출생 학력 1979.2 동인천고등학교 졸업 1986.12 한성신학교(합동보수) 신학과 졸업 1987.12 총회신학원(개혁) 목회연구과 졸업 경력 1989.4 녹원생활협동조합 설립 이사장 1999.9 현 위례역사문화연구회 회장 2005.2 현 한국체험교육협회 회장 2007.5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문화재청장 표창 2011.11~2017.12 서경문화유산포럼 회장 2013.3 현 (사)문화살림 대표이사 2014.10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 2015.11 현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상임이사 2017.3 현 한양도성문화제 추진위원장 2017.6 현 송파문화예술네트워크 회장 2017.9 현 (사)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 부회장 2018.4 현 문화재청 궁능활용심의위원 2018.10 현 송파구 관광정책자문위원 강사 경력 2005.9~2008.12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사, 울산 현대한마음회관 체험학습지도사 강사 2009.6~2012.12 전국문화관광해설사(한국관광공사) 보수교육 강사 2009.8~2012.12 서울시 공무원 직무교육 한국사 강사(서울시인재개발원) 2010.3~2012.12 서울시민대학(서울시립대) 강사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고려 라마탑형 사리함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빨리 환수해야지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고려 라마탑형 사리함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빨리 환수해야지요”

    미국서 우리 문화재 추적하는 김정광 이사장이 말하는 환수 운동 “부처님 세 분과 고승 두 분 사리, 한 사리함 모신 聖物”미술관 측 “사리만 반환”…韓정부 “전부 반환”에 무산“문정왕후 어보 환수 위해 美정계 실력자에 편지 전달”“알렌 후손 찾아다녀…15일 알렌 콜렉션 서울시 기증”“미국내 문화재 전수조사 위해 정부 차원 지원 필요”“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 라마탑 모양의 고려 사리함 반환이 아직도 해결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걸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뜁니다. 나이가 들고 교포라서 한국 유물을 보니 벅찬 감정도 있겠지만 티베트 양식의 불탑에 3명의 부처와 2명의 고승 사리를 한 자리에 안치한 사리탑은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특이합니다. 한국 불교에서는 성물(聖物) 중에 성물입니다. 꼭 찾아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게 제 과제입니다.” 미국에서 우리 문화재 환수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정광(75) 한국문화유산보존재단 이사장은 “‘고려 라마탑형 사리함’은 생각만해도 흥분된다”고 말한다. 32년째 미국에서 생활하는 그가 모처럼 귀국한 터에 지난 10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돌아온 문정왕후 어보 환수와 알렌 콜렉션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법한 그에게 문화재 환수운동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1987년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 팔리새이즈 파크(Palisades Park)에 살고 있다. “이 사리함은 특이합니다. 큰 사리탑에 5개의 작은 사리탑이 들어있습니다. 다섯 명의 사리가 들어있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과거 부처님인 정광불과 연등불, 인도 왕자 출신으로 당나라를 거쳐 고려에서 포교활동을 한 지공선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라는 시를 남긴 나옹선사의 사리지요. 한국 불교의 법맥입니다. 큰 사리함이 높이 22.5cm로 금은제입니다. 이 미술관은 한국관 한 가운데 전시하고 있지요. 가서 보면 가슴이 뛰고 벌렁거리지만 한편으론 약 오릅니다.”이 라마탑형 고려 사리함은 일본인이 개성의 화장사 또는 양주의 회암사에서 불법으로 도굴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스턴미술관은 이를 1939년 일본인으로부터 매입했다. 두 절은 모두 고려시대의 고승 지공선사(?~1363)와 나옹선사(1320~1376)가 주석한 곳이다. 고려 왕실과 관련있는 화장사는 비무장지대(DMZ)에 있어 지금은 폐허가 됐고, 양주 회암사에는 지공선사와 나옹선사, 무학대사(1327~1405)의 부도탑이 같이 있다. 조선 건국에 많은 역할을 한 무학대사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처님과 지공·나옹 선사로 이어지는 불교 법통을 무학대사가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증표로서 부도탑을 한 자리에 모은 것으로 보인다. - 문화재 환수 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2008년쯤 뉴욕주 한국불교신도회장을 지내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문화재 관계로 뉴욕을 방문했는데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고, 미국에서 유랑하는 우리 문화재를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당시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왔던 이상근씨(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를 만났지요. 7명이 왔는데 용비어천가 2권을 소장한 컬럼비아대 도서관과 고려 사리함을 갖고 있는 보스턴미술관을 안내하면서 우리 문화재가 처한 현실을 보게 됐습니다. 환수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 미국에서 하던 수출, 수입 비즈니스도 다 닫고 난 다음이니깐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고. - 라마탑형 사리함, 그동안의 환수 추진 과정을 설명하면.☞ 이것에 대해 보스턴미술관이 “사리는 한국에 반환하겠다. 그리고 사리함은 한국에 6개월 또는 상당기간 대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여 기간에 한국이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나서 돌려달라는 뜻이었지요. 한국 정부의 승인과 보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런 메시지를 문화재청에 전달하니 당시 이건무 청장이 안된다고 잘라버렸습니다. “사리함 전체를 반환해야지 일부 반환은 안된다”는 것이 이건무 청장의 논지였지요. 음미해 볼 대목은 있지만 해외 유물 가운데 일부만 반환된 사례들도 많습니다. 그 후 미술관 측은 한국 정부가 반대했으니 시민단체는 반환 요청을 할 권리가 없다는 허망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해((遺骸)’인 사리도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계속 반환요청을 하며, 이를 위해 불법 유출을 입증할 사료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하자고 하지만 불법으로 취득했다는 입증 자료가 없어서 저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소송 비용도 만만찮고. “큰 박물관에서 장물아비처럼 절도품을 보관해서야 되겠나”며 여론의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 사리함이 어떻게 보스턴까지 갔을까.☞ 이게 화장사 것인지, 회암사 것인지는 학계에서 밝혀야 할 사안입니다. 보스턴미술관 토미타 고지로 보고서를 보면 일본인이 이 두 절에서 불법 도굴한 것들을 보스턴미술관이 1939년 매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일본의 조선 골동품 판매회사인 야마나카 상회가 보스턴, 파리 등에 지점을 내고 우리 공예품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던 시기죠. 5명의 작은 사리함 가운데 3명은 실존 인물이어서 사리가 들어있고, 정광불과 연등불 사리함에는 사리 대신 구슬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실, 사리는 시신의 일부 내지 인체의 연장으로서 국제법상 매매가 금지돼 있다는 것을 보스턴미술관 측에 계속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 그러면 지난해 문정왕후 어보는 어떻게 환수됐나.☞ 이 때문에 저는 뉴욕에서 어보를 소장한 LA 카운티 박물관(LACMA·라크마)까지 몇차례 왔다갔다 했습니다. 매릴랜드에 있는 미국 국립아카이브(NARA)도 수차례 가서 마이크로필름을 뒤지며 기초작업을 했지요. 제가 사는 곳인 뉴저지주 상원의원이자 친한파 외교분과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에게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전달해달라며 반환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주자, 그는 편지를 4통이나 더 썼더라구요. LA 상원의원 2명, 국토안전부 장관,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미국 정계 실력자로 상원 외교분과위원장인 그의 편지가 주효했다고 믿습니다. 민간 차원의 운동을 넘어 미국 조야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지요.이 건은 혜문스님이 2009년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우연히 찾아낸 비밀문서 ‘아델리아 홀 레코드’를 열어보면서 시작됐습니다. 6·25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한 미 해병대 1시단 병사들이 요충지인 중앙청·경복궁·방송국 등에 대해 경계근무를 서면서 종묘에서 조선왕실 어보 47개를 호주머니에 넣어 가져갔고, 당시 양유찬(1897~1975)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분실신고를 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거죠. 이것을 라크마가 소장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보 옆에 쓰인 ‘6실 대왕대비(六室 大王大妃)’가 종묘 6실(중종의 방)에서 나온 것을 입증한 것이지요. 미국 병사의 절도품이란 것인데, 우리 정부가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양유찬 대사가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기사 1953년 11월 17일자에 실렸던거죠. 그 기사를 40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2016년까지 환수운동이 이었졌고, 도난품이라는 것이 입증되니 미국이 돌려준 거죠. - 오바마 대통령도 국새와 어보 등 9가지 문화재를 돌려줬다.☞ 미국에서 2008년부터 민간 차원의 문화재환수운동이 시작됐고, 문정왕후 어보 사진과 환수 캠페인이 현지 신문에 조그맣게 실렸습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캠페인을 눈여겨 보던 차에 한 미국인이 “우리집에 어보처럼 생긴 것이 있다”고 신고했고, 그게 다시 보도되니 “옆집에도 보니 그런 게 있더라”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미국의 국토안보부가 압수해 보관하고 있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4월 한국을 방문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반환한 것이지요. 미국은 불법 문화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숨기는 대신 반환을 하지요. 큰 결정입니다.- 알렌 콜렉션 반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외교관과 선교사 등을 지냈던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의 후손을 찾아낸 거지요. 그가 고종의 주치의를 지냈던 만큼 좋은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알렌 후손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지만 막연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10여년 전 그의 후손을 초청했다는 짧은 기사 한줄을 단서로 더듬어갔지요. 초청자를 찾아보니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허정 박사였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허정 박사와 통화에 성공했고, 그분이 10여년째 해마다 한번씩 후손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푸시더라고요. ‘그 만찬에 저도 참석해도 되느냐’고 하니 오라고 해서 비행기 2시간 타고가서 후손들과 안면을 텄지요. 후손들을 설득해 매입도 했지요. 알렌과 그 후손들이 어렵게 사는 바람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에 많이 팔아버렸던 거죠. 왕권의 상징인 부채인 ‘화조도접선’과 사진, 편지, 일기 등 30여점을 가져와 15일 서울시청서 기증식을 갖는다. 사실 알렌 증소녀보다는 그 사돈이 더 많이, 더 좋은 문화재를 갖고 있는 것을 파악했는데, 기증하지 않고 팔려고 해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문화재입니다. - 문화재청은 미국 124곳에 우리 문화재 4만 4000여점이 있다고 기록했다.☞ 허허, 아무리 적게 잡아도 그 두 배는 될 것입니다. 정부가 미국에서 현장조사한 곳은 6곳 뿐입니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러가면서 박물관 사서에게 물어보니 한국 고서 1만 2000여권 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여기에 5000권이 있다고 기록했지만 배가 넘지요. 브루클린박물관의 도록을 문화재청이 지원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 창고에 들어갈 흔치 않는 기회가 생겨서 가보니 그 안에는 우리 문화재가 수두룩했고, 투구와 갑옷도 있었습니다. 발톱이 3개인 투구로 미루어 왕족의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도록에는 없는 것들이었죠. 박물관 측도 아직 정리조차 못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무척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개인이 소장한 것은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지요.- 우리 문화재의 소재 파악과 유출 경로 조사가 시급하다.☞ 먼저 이런 것을 제안합니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하는 ‘앤틱 로드쇼’처럼 우리 교민을 상대로 하는 문화재나 유물의 가치에 대해 설명해주고 감정 가격도 평가해 주는 겁니다. 교민들이 미국에 이민오면서 가져온 가보나 유물을 조사해 파악하는 것이지요. 고위 관리를 지냈던 가문에는 이런 게 많을 겁니다. 교민들에게 한국 문화재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해 주고, 대학이나 박물관 등에서 본 한국 문화재를 제보하게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겁니다. 그 다음엔 미국의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전수조사하는 것입니다. 큰 프로젝트이니만큼 수년에 걸쳐 정부 차원의 예산과 전문가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도록도 만들어고 해야 하니 우리 정부와 해당 박물관과의 교섭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버드대도서관이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이런 제안에 구두로 “오케이”한 상태입니다. 그는 “부처님과 전생 부처님 둘, 두 명의 고승의 사리가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한국 불교 최고의 성물입니다”라며 “이 사리함을 들여와야 하는데…”라고 되뇌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문병훈 서울시의원 “서울시 대변인 소관 비영리법인 관리 및 감독 필요”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서초3)은 9일 진행된 서울시 대변인 행정사무감사에서 “대변인 소관 비영리법인이 설립 목적과 사업계획에 따라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검사 및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제3조에 따라 비영리법인의 설립허가를 받고자하는 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또는 문화재청장(권한의 위임이 있는 경우에는 그 위임을 받은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 및 특별자치도지사를 말한다)에 사업계획 및 수입·지출 예산을 적은 서류를 제출해야 된다. 이에 문 의원은 서울시 대변인 소관 비영리법인 검사 및 감독 현황에 대한 질의했다. 그러나 김의승 서울시 대변인은 “사업실적 및 사업계획 등의 보고가 2005년 규칙 조항에서 삭제되면서 비영리법인으로부터 사업 실적 및 사업 계획서를 받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 고 말했다. 문 의원은 대변인 소관 비영리법인이 설립 목적과 사업계획에 따 라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황파악이 되고 있지 않은 실태를 지적하며 “대변인은 소관 비영리법인이 설립 목적과 사업계획에 맞게 운영하고 있는지 파악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변인은 “대변인 소관 비영리법인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시에 위임을 한 것이므로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내딛는 걸음마다 1500년 전 대가야를 느끼다

    내딛는 걸음마다 1500년 전 대가야를 느끼다

    ‘올레길·둘레길·바람길·오지길·보부상길….’최근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불면서 곳곳에 걷기에 좋은 길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걷기 마니아들을 위한 특이한 체험 대회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대가야(42~562년) 도읍지인 경북 고령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대가야 왕릉길 걷기 대회’가 가장 대표적으로 꼽힌다. 고령군은 10일 대가야읍 지산동 고분군 일원에서 ‘대가야 왕릉길 걷기대회’를 마련한다고 8일 밝혔다. 올해로 8회째다. 대가야고분군은 대가야읍 시가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지산리 산 능선에 밀집해 있다. 무려 704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산 능선을 따라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다. 이번 걷기대회는 오전 10시 대가야문화누리 잔디광장 특설무대에 마련된 행사장을 출발해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를 거쳐 왕릉길을 돌아오는 6㎞ 구간에서 펼쳐진다. 등산로 곳곳에는 포토존과 대가야 이벤트존이 마련돼 대가야 숨결을 체험할 수 있다. 행사장 주변에는 대가야박물관과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체험축제장 등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아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올해는 3대 가족이 함께 참가할 경우 특별사은품을 받을 수 있으며, 다문화가정 및 청소년들의 참가를 위해 다양한 체험 부스도 운영한다. 대가야고분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5년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대상에 선정돼 2020년 본 등재를 목표로 한다. 곽용환 고령군수는 “대가야 왕릉길 걷기대회에 참가하면 지산동 고분군이 간직한 1500년 전 시간과 만나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제헌헌법 근간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문화재 된다

    제헌헌법 근간 ‘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문화재 된다

    우리나라 제헌헌법(1948)의 근간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이 문화재가 된다.문화재청은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삼균주의를 토대로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6일 밝혔다. 임시정부가 광복 이후 어떤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 알려주는 유물이자 조소앙이 고심하며 고친 흔적이 남아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소앙이 주창한 삼균주의는 개인·민족·국가 간 균등과 정치·경제·교육 균등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자는 이론이다.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통과됐다. 강령은 총강(總綱), 복국(復國), 건국(建國) 3개 장으로 나뉜다. 개인이 소장한 건국강령 초안은 가로 36.9㎝, 세로 27.1㎝ 원고지 10장으로 구성됐다.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1956년 건립된 경희대 본관은 고대 그리스식 기둥과 삼각형 박공벽을 사용한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로, 한국적 요소인 태극과 무궁화 문양을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고맙다, 그 자리에 있어 줘서/손원천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고맙다, 그 자리에 있어 줘서/손원천 문화부장

    청와대로 가는 서울 종로구 효자로 중간쯤에 ‘통의동 보안여관’이 있다. 최근에 재생작업(리모델링)을 거쳐 설치미술 작품 등을 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로 태어난 곳이다.보안여관이 들어선 자리는 경복궁 영추문 대각선 방향이다. 그러니까 권부로 들어가는 길목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셈이다. 무슨 사연으로 서슬이 퍼랬을 옛 경성의 관청들 사이에 여관이 자리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흰 아크릴판에 파란 글씨로 쓴 옛 간판이며 낡은 적벽돌 외투를 두른 외양이 인상적인 건 분명하다. ‘기록이 전하는’, 그리고 ‘여관으로서’ 보안여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당 서정주는 자서전 ‘천지유정’에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시기에 이미 여관으로서 기능을 했다는 뜻이다. 공식 문서에 등장하는 건 1938년이 최초다. 경성상공명부에 ‘이유숙’이라는 운영주 이름과 ‘세금 31.60원’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최소 30원 이상 세금을 내는 업소만 경성상공명부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하니, 보안여관이 제법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1일 ‘통의동 보안여관’에서는 설치미술전 ‘내일 없는 내일’전이 열렸다. 그간의 재생 작업에 마침표를 찍는 행사이자 건축물로서의 새 출발을 알리는 자리였다. 이날 돌아본 보안여관은 옛 목재 골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벽면의 마감재 정도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 오래된 나무 기둥과 서까래들은 얼마나 많은 개인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문화공보부 공무원 시절이던 1960년대 초 이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대통령 보고용 자료를 만들었고, 소재구 초대 국립고궁박물관장이 “보안여관 등불 밑에서 ‘문화유적 총람 1, 2, 3’의 원고를 마감”했다. 기자 역시 대학 시절 보안여관에서 ‘달방’을 살았던 기억이 여태 선연하다. 작은형과 함께 머리를 누이고 도란도란 나눴던 정담이며, 머리를 타고 흐르는 장맛비에 뜨겁고 찝찔한 ‘싸나이’ 눈물을 함께 흘려 보낸 기억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보안여관은 거쳐 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청춘의 한때가 새겨진 ‘기억의 집’이다. 요즘 이런 ‘기억의 집’들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화재청이 서울 석관동 의릉 내의 ‘구 중앙정보부 강당’(등록문화재 92호)에서 진행하는 문화행사들이 그 예다. 상상해 보시라. 초기 건축 기술이 집약된 건물에서 역사 강의를 듣고 영화 감상하는 순간을. 문화가 뼈와 살로 곧장 이식되지 않을까. 이처럼 충북 청주에선 낡은 연초제조창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새 단장됐고, 제주에선 병원 영안실이 수준급의 갤러리로 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이런 흐름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 머지않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이 될 것이다. 다만 두려운 건 그 전에 보전해야 할 유산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서울 한복판에도 이런 데가 있나 싶을 만큼 낡은 공간들이 여전히 있다. 행여 ‘토건족의 삽질 욕망’을 자극하지나 않을까 꽁꽁 싸매서 숨겨 두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 점에서 보안여관을 비롯한 서촌 일대의 완만한 도시재생 작업이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크다. 서촌에서 보듯 우리가 ‘빨리 빨리’ 해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일 터다. 도시재생. 삶과 기억, 문화가 건축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일 말이다. angler@seoul.co.kr
  • 창덕궁 희정당 내부, 한 달간 일반 공개

    창덕궁 희정당 내부, 한 달간 일반 공개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창덕궁 희정당(보물 제815호) 내부가 한시적으로 공개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종로구 와룡동 희정당 내부를 8일부터 30일까지 매주 목∼토요일 오후 2시와 3시에 공개한다고 1일 밝혔다. 희정당은 선정전과 대조전 사이에 있는 전각이다. 연산군 2년(1496년)에 숭문당이 소실되자 이를 다시 지어 희정당이라 바꿔 불렀다. 이후 몇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는데 현재 건물은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재건한 것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韓 음식문화의 뿌리 ‘장 담그기’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韓 음식문화의 뿌리 ‘장 담그기’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콩을 사용해 메주를 쑤고 이를 된장과 간장으로 만드는 과정인 ‘장(醬)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한국 음식문화의 뿌리인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고대부터 오랫동안 장을 담가 먹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점, 우리나라 음식 조리법이나 식문화에 관한 연구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한국의 주거문화·세시풍속·기복신앙·전통과학적 요소 등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점, 세대 간에 전승되어 모든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다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승하는 생활 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김치 담그기(국가무형문화재 제133호), 제염(국가무형문화재 제134호)과 마찬가지로 특정 보유자나 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우리나라는 콩을 발효해 먹는 두장(豆醬) 문화권에 속한다. 삼국 시대부터 장을 만들어서 먹은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장을 따로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와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상궁인 ‘장고마마’를 두었다. 메주를 띄우는 과정을 거친 후 된장과 간장 두 가지를 만드는 점, 전년도에 쓰고 남은 씨간장을 이용하는 겹장 형식을 거친다는 점도 한국 ‘장 담그기’의 독창적인 부분이다. 문화재청은 30일 이상 지정 예고 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광화문 대통령 위원회’ 구성, 위원장 유홍준… 연내 출범

    ‘광화문 대통령 위원회’ 구성, 위원장 유홍준… 연내 출범

    문재인 대통령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을 추진할 ‘광화문 대통령 시대 위원회’가 곧 활동을 시작한다. 청와대는 연내 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도록 인사 검증 등을 거쳐 조만간 위원회 구성을 매듭지을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위원장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사실상 내정됐다. 위원회 위원은 해당 공약을 수립하는 데 참여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7~9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청와대는 지난 2월 유 전 청장을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준비할 자문위원으로 위촉했으나, 개헌 문제에 막혀 유 전 청장은 지금까지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수도 이전의 법적 근거를 담은 대통령 개헌안이 청와대의 바람대로 국회를 통과했다면 행정수도를 세종시 등 서울 이외 지역으로 이전하고, 집무실 또한 행정수도로 옮기는 방안이 공론화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토대로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는 데 필요한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해 이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려면 비서실, 경호실, 부속실 등 옮겨야 할 기관이 적지 않은데다 대통령 경호에 빈틈이 없도록 대대적인 리모델링도 필요하다. 따라서 청와대가 집무실 이전 추진 결정을 내리더라도 실제 공약이 실현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조선 500년 역사 간직한 ‘강원감영’ 납시오

    조선 500년 역사 간직한 ‘강원감영’ 납시오

    조선 시대 500년 역사를 간직한 강원감영(江原監營)이 23년에 걸친 복원공사를 모두 끝내고 준공된다.강원 원주시는 1995년부터 시작된 강원감영 복원사업을 완료, 다음달 3일 준공식과 함께 축하공연을 연다고 30일 밝혔다. 강원감영은 조선 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돼 고종 32년(1895)에 8도제가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 전체 업무를 관장했던 곳이다. 문화재청과 시는 강원감영도(圖)를 근거로 1995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듬해부터 복원·정비사업에 들어갔다. 2005년까지 1단계로 선화당·포정루를 보수하고 내삼문·중삼문·내아·행각 복원에 성공했다. 이어 선화당 뒤편에 있던 원주우체국을 이전·철거하고 2단계 사업인 후원권역 복원을 추진했다. 영주관과 환선정, 봉래각, 채약오, 책방, 방지 등 후원 복원을 끝으로 23년에 걸친 대장정의 복원사업을 모두 마쳤다. 시는 현재 시범 개방 중인 강원감영을 문화재청과 협의해 올해 안에 완전히 개방할 예정이다. 건축물과 담장, 수목에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야간에도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50여년 만에 제자리 찾은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50여년 만에 제자리 찾은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50여년 간 다른 유물로 여겨진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가 제자리를 찾았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55호에 해당하는 유물의 명칭을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에서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변경하고,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보물 제2001호로 신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경상도 경주시 노서동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귀걸이인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는 함께 발굴된 ‘경주 노서동 금팔찌’(보물 제454호),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보물 제456호)와 함께 1967년 보물 제455호로 지정됐다. 당시 지정 명칭은 ‘태환이식’(太環耳飾·굵은고리 귀걸이)으로 출토지가 명시되지는 않았다. 노서동 금귀걸이는 1933년 발굴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박물관이 각각 한 개씩 보관해왔는데,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듬해 도쿄박물관이 소장한 귀걸이가 국내에 돌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각종 전시도록이나 자료에서 보물 제455호를 소개할 때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가 아닌 그 형태와 제작 기법이 유사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사진이 사용됐다. 2009년 국보와 보물 명칭을 개선할 때도 보물 제455호의 이름이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가 아닌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로 명명됐다. 지난해 보물 지정 명칭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문화재청은 지난 3월 자문회의와 문화재위원회를 통해 두 금귀걸이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결국 이번에 보물 지정번호를 바로잡았다. 이번에 보물 제2001호로 새로 지정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 쌍이다. 외형상 주고리, 중간 장식, 마감 장식의 삼단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시대 5~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신라시대 경주에서 만든 전형적인 귀걸이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제작기법과 조형성이 우수하고 펜촉형 장식물의 창의적인 형태와 입체감이 돋보이는 점 등에서 신라 고분 금속공예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불교 의식 ‘불복장작법’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불교 의식 ‘불복장작법’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불상이나 불화에 불교와 관련한 물품을 봉안하는 의식인 ‘불복장작법’(佛腹藏作法)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고려시대 이래 700년 넘게 이어진 불복장작법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30일 밝혔다. 불복장작법은 세속적인 가치를 지닌 불상이나 불화에 종교적인 가치를 부여해 예배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의식이다. 불복장 의례를 설명한 책인 조상경(造像經)이 1500년대부터 간행됐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전승의 맥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불교문화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중·일 3국 중에서 의식으로 정립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고 ‘조상경’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경전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절차와 의례요소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고, 세부 내용마다 사상적·교리적 의미가 부여됐다는 점도 문화재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 요인이다. 더불어 2014년 4월 설립된 ‘대한불교 전통불복장 및 점안의식보존회’는 불복장작법 보유단체로 인정 예고됐다. 문화재청 측은 “전통 불복장 법식에 따라 의식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등 전승 능력을 갖췄고, 종단을 초월한 주요 전승자가 모두 참여해 복장의식을 전승하려는 의지가 높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30일 간의 예고 기간과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불복장작법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및 보유단체 인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종로구의 전통 한복 논란이 남긴 것/주현진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종로구의 전통 한복 논란이 남긴 것/주현진 사회2부 차장

    “‘반짝이 한복’ 고궁 무료 입장 폐지 논란으로 전통 한복 보존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최근 서울 경복궁 정문 앞에서 만난 강한솔(27·여)씨 일행은 요즘 고궁에서 유행하는 반짝이 한복 대신 단아한 전통 한복을 빌려 입은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젊은이들 입장에선 고궁 한복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한복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요즘 대세인 반짝이 한복이 전통 한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구별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고유의 것은 잊혀지고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10~20대 내국인 여성들은 고궁 한복 나들이 의상으로 반짝이 한복을 선호한다. 금박, 은박, 큐빅, 망사 등 화려한 장식과 함께 링 속치마로 서양식 드레스처럼 치마통을 동그랗게 부풀리고, 저고리 뒤로 크게 묶은 리본이 특징인 일명 반짝이 한복이 고궁을 찾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다. 시대에 따라 옷이 바뀌는 만큼 전통 의상이라고 해도 다양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과 전통 한복을 왜곡한 국적 불명의 옷이어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맞선다. 반짝이 한복은 문화재청이 한복 고궁 무료 관람을 시행한 2013년 전주 한옥마을에서 등장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한복을 입고 인증샷을 올리는 문화와 맞물리면서 고궁 한복 입기가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 과정에서 화려한 드레스 느낌의 반짝이 한복이 탄생했다고 한다. 고유의 의상인데도 전통 양식과 차이가 크다는 것과 별개로 낮은 제작 단가를 맞추기 위해 해외 시장에서 무분별하게 만들어 수입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종로구가 지난 9월 문화재청에 반짝이 한복 고궁 무료 입장 혜택 폐지를 요청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종로구의 전통 한복 논란은 우리가 전통 한복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라고 하면 첫손에 꼽는 것이 한복이지만, 보존과 계승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만큼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이 제값을 받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어어지길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전통 한복 논란이 고궁 무료 입장 폐지 쪽으로만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안타깝다. 정작 고민해야 할 전통 한복 보존 방안에 대한 논의는 쏙 빠졌기 때문이다. 국감에 한복을 입고 나와 무료 혜택 폐지 반대 이야기만 한 국회의원, 무료 입장 혜택 폐지 주장은 ‘꼰대’ 발상이라며 감정적인 공격에만 급급했던 일부 언론, 보존 방안 고민 대신 반짝이 한복 무료 입장 폐지는 어렵다며 소극적인 방어에만 골몰한 해당 부처 등이 대표적이다. 종로구가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는데 손가락만 본 격이 아닐 수 없다. 연암 박지원은 법고(法古)와 창신(創新) 앞에서 법고를 내세우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病痛)이고, 새것을 만들자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라고 했다. 전통을 지키면서 발전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종로구는 그동안 역사 도시 1번지라는 정체성에 착안해 한복, 한옥, 한식, 한글, 한지 등 우리 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지자체 혼자 전통을 지켜 나가기엔 한계가 있다. 전통이 사라지면 한류도 발전할 수 없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한복 업계뿐 아니라 우리 모두 전통 한복을 계승하면서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아 가길 기대해 본다. jhj@seoul.co.kr
  • 목조 문화재 훼손 흰개미 찾는 탐지견

    목조 문화재 훼손 흰개미 찾는 탐지견

    29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화전에서 탐지견들이 목조 문화재를 훼손하는 흰개미를 찾고 있다. 문화재청 소속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에버랜드가 위탁 운영 중인 에스원탐지견센터는 사흘간 서울 지역 중요 목조 문화재에 대한 흰개미 탐지 활동을 실시한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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