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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서 불상 훔친 주범 징역4년… 문화재는 몰수

    일본에서 문화재급 불상 2점을 훔쳐 국내로 들여온 주범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부장 안병욱)는 28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70)씨에게 징역 4년, 함께 기소된 김씨의 동생(66) 등 2명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김씨 일당이 훔친 불상의 국내 반입을 도운 3명은 징역 1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3년, 통관 절차를 도운 손모(61)씨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 일당 3명은 지난해 10월 6일 일본 나가사키현 카이진신사와 관음사에 몰래 들어가 통일신라시대 동조여래입상과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들 불상은 세관에서 모조품 판정을 받았으나 문화재청과 일본 문화청 감정관의 감정 결과 역사·예술적 가치가 높은 진품으로,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하는 일반동산문화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훔친 불상이 문화재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손씨에 대해서는 “불상들이 일본에서 훔친 문화재라는 점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와 함께 훔친 불상 2점을 몰수했다. 장동혁 대전지법 공보판사는 “피고들이 불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일 뿐 몰수가 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소유권과 관련해서는 국제법이나 국제협약 등을 근거로 한 외교적 절차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일당이 훔쳐온 불상들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관 중이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공부하며 즐기는 박물관 여행

    공부하며 즐기는 박물관 여행

    강원도 영월은 박물관의 고을이다. 20여개의 박물관이 밀집돼 있다. 민화, 사진 등 ‘기본’ 아이템부터 지도, 곤충 등 아이들의 눈길을 끌 만한 아이템들이 ‘널려’ 있다. 이뿐 아니다. 경북 포항의 로보라이프뮤지엄 등 지역별로 독특한 박물관이 산재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한 각 지역의 이색 박물관을 소개한다. [강원 영월] 박물관 20곳 줄지어 보는 고을 영월이 박물관의 고장으로 거듭난 것은 2005년부터다.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1기 신활력사업의 하나로 박물관 고을 육성 사업이 지정되면서 다양한 박물관이 속속 들어서게 됐다. 최근에도 인도미술박물관 등이 문을 열며 박물관 러시를 이어 가고 있다. 영월엔 특히 아이들에게 유익한 박물관이 많다. 그 가운데 조선민화박물관은 조선 시대 민화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현대 민화 100여점 등 300여 작품은 상설 전시된다. 민화를 목판에 그리거나 판화로 찍어 보는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2층에는 어른들만 출입이 가능한 춘화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88번 지방도→영월. 영월군 문화관광과(www.ywtour.com) 370-2037(이하 지역번호 033). ▲맛집 주천리 다하누촌은 토종 한우를 싼 가격에 제공하는 한우 전문 상가다. 정육점에서 원하는 부위의 한우 고기를 사다 인근의 지정 식당에서 조리해 먹는 방식이다. 372-0121. 주천묵밥은 도토리묵밥과 메밀묵밥이 별미인 집. 372-3800. ‘꼴두국수’는 가난했던 시절 물릴 정도로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일식당이 유명하다. 372-7743. ▲주변 볼거리 단종의 묘소인 장릉,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쳐진 청령포, 서강이 휘돌아 치며 한반도 지형을 만들어 낸 선암 마을, 큰 칼로 절벽을 쪼개다 만 듯한 기묘한 형태의 선돌 등이 유명하다. [경북 포항] 생활 로봇 한자리서 만나보는 미래 공간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경북 포항의 한국로봇융합연구원 1층에 조성된 로보라이프뮤지엄은 로봇을 활용한 주거 생활과 미래 로봇 환경을 구현한 박물관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평상시 로봇을 접하기 어려운 데다 전시물을 직접 만지고 조작해 볼 수 있어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흥미로워한다. 전시된 로봇 중에는 가정이나 산업 현장에서 실제 이용되는 것도 있다. 물개 로봇 ‘파로’는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심리 치료용으로 쓰인다. 가장 인기 있는 로봇은 ‘제니보’다. 지능형 로봇 강아지로, 스스로 돌아다니고 감정 표현을 하며 코끝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주인을 알아보고 애교도 부린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김천 분기점→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나들목. 포항시 관광진흥과(phtour.ipohang.org) 270-2371(이하 지역번호 054). ▲맛집 포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리국수는 일종의 잡어 칼국수다. 여러 사람이 ‘모디가(모여) 먹은 국수’란 사투리가 변해 모리국수가 됐다. 국수에 아귀와 물메기, 대게 다리 등 각종 해산물을 넣고 칼칼하게 끓여 낸다. 구룡포항 얼음공장 뒤 ‘까꾸네’가 많이 알려졌다. 276-2298. 동림횟집(247-6700), 재성회대게식당(276-2252) 등에서 회와 대게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변 볼거리 내연산 계곡과 보경사, 오어사, 호미곶 등은 전국구 관광 명소다. 동빈 내항에는 비운의 천안함과 동일한 기종의 포항함이 전시돼 있다. 하옥계곡은 때묻지 않은 자연미가 살아 있다. [충북 진천] 문화재급 고대 범종의 종소리 진천종박물관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 범종에 대한 연구와 수집, 전시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종 전문 박물관이다. 성덕대왕신종, 상원사 동종 등 한국의 종은 물론 전 세계의 독특한 종과 장식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긴 밀랍 주조 공법으로 복원복제한 문화재급 고대 범종들이 즐비하다. 박물관은 2층으로 조성됐다. 1층에는 복제된 문화재급 고대 범종들이 전시돼있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대표하는 종이 무려 7000여개나 된다. 2층엔 세계의 종 전시실이 마련됐다.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진천 나들목→좌회전→성석사거리 우회전→벽암사거리 좌회전→백곡저수지 방향 직진→장관교 지나 좌회전→종박물관. 진천군 문화체육과(www.jincheon.go.kr) 539-3623(이하 지역번호 043). ▲맛집 느티나무집은 민물매운탕과 닭백숙을 잘한다. 532-5534. 엄나무에걸린닭은 누룽지를 활용한 닭·오리죽으로 이름났다. 532-8200. 두부촌(533-9946)은 깻잎두부보쌈, 곰가내(532-0767)는 쌀밥 정식이 맛있다. ▲주변 볼거리 진천을 상징하는 것은 농다리다. 농다리는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투박하게 쌓았다. 듬성듬성 구멍도 뚫렸고, 발로 밟으면 삐걱대기도 한다. 그 상태로 1000년 세월을 견뎌 왔다.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보탑사, 정송강사(충북도기념물 9호), 덕산양조장(등록문화재 58호) 등도 둘러볼 만하다. [전남 순천] 한평생 모은 뿌리 깊은 문화유산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샘이깊은물’ 등을 창간하며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은 고 한창기 선생이 평생 수집한 문화유산을 전시한 공간이다. 선생이 창간한 잡지 ‘뿌리깊은나무’에서 이름을 따왔다. 선생이 생전 수집한 우리 문화재는 무려 6500여점에 이른다. 박물관은 이를 유물 전시실과 야외 전시 공간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등 문화재급 유물도 있지만, 서민 생활용품도 제법 많다. 박물관 주변의 백경 김무규 선생 고택도 멋들어지다.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구례에 있던 상류층 양반집을 옮겨 왔다.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승주 방면 우회전→서평삼거리 우회전→낙안읍성 방면 857번 지방도→낙안읍성 주차장→뿌리깊은나무박물관. 순천시 관광진흥과(tour.suncheon.go.kr) 749-4221(이하 지역번호 061). ▲맛집 전주산들청국장(725-6447)은 진한 청국장이 일품이다. 송광사 진입로의 길상식당(755-2173)은 산채정식, 별량면 일출길의 전망대가든(742-9496)은 짱뚱어탕을 잘한다. ▲주변 볼거리 박물관 지척에 낙안읍성이 있다. 남문까지 길게 이어진 성곽 길과 초가집, 흙길 등 온통 누런빛이 감도는 읍성의 풍경이 예스럽다. 금전산 자락의 금둔사는 매화로 유명한 절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는 납월홍매가 이 절집에 있다. 순천의 아이콘은 역시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이다. 갈대 데크를 따라 용산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것은 순천 여행의 필수 코스다.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경주 남산의 재발견…신라 1000년의 미소와 만나는 길

    경주 남산의 재발견…신라 1000년의 미소와 만나는 길

    남북 8㎞, 동서 4㎞. 경북 경주의 진산, 남산(495m)의 체격입니다. 산 치고는 작고 야트막한 편이지요. 한데 덩치는 작아도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는 깊고 또 넓습니다. 과장 좀 보탤까요. 딱 ‘나무 반 유물 반’입니다. 확인된 절터만 150곳이고 불상은 129기, 탑은 99기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체 문화유적은 694개소이고요. 고(古)신라부터 통일신라 이후, 심지어 고려시대 유물까지 빼곡합니다. 산 전체가 절집이자 지붕 없는 박물관인 셈입니다. 그러니 국립공원으로 지정(1968년)된 건 당연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2000년)된 것도 어색할 게 없지요.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경주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남산을 프로그램에 넣는 걸 잊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경주 남산(南山)은 옛 월성 왕궁의 ‘남’(南)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산의 이름도 이 같은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됐다. 대릉원 등 문화재가 밀집한 도심이나, 불국사가 깃든 토함산 등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지역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남산이 늘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한발짝 비켜 섰던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산엔 신라의 모든 것이 새겨져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를 품은 우물 나정(井)과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은 신라가 종말을 고한 포석정이 각각 남산 자락에 있다. ‘신라의 역사가 시작되고 끝난 곳’이란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화산으로 치자면 남산은 활화산이다.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문화재가 발굴되고 있다. 2007년에도 남산 열암곡에서 대형 마애석불이 발견됐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발견될지 모르니 ‘남산에선 구르는 돌 하나도 문화재급’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겠다. ●절터 150곳·불상 129기·탑 99기…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남산을 둘러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정표도 두 가지 종류로 세워져 있다. 노란색 글씨는 문화재 탐방 코스, 흰색은 단순 산행 코스다. 가장 일반적인 건 삼릉~용장골 코스다. 바둑바위와 금오산 정상을 찍고 용장계곡으로 내려온다. 이 코스에선 ‘신라 1000년의 미소와 만나는 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문화재와 만날 수 있다. 단순 산행이라면 3시간 남짓 걸리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이곳저곳 문화재를 들여다보자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들머리는 삼릉이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 잠든 봉분 셋이 연달아 솟아 있다. 삼릉을 찾게 하는 건 주변의 솔숲이다.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소나무들이 빼곡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솔숲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불상은 석조여래좌상이다. 남산 일대 상당수의 불상들이 그렇듯, 이 불상도 목과 얼굴 부분이 없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의 희생양이었을 거란 게 유력한 추정이다. 인근 계곡에 쳐박혀 있던 것을 196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얼굴은 잃었지만, 불상의 자태는 당당하다. 넓은 어깨와 가슴, 선명한 옷 매듭 무늬 등에선 기백이 넘친다. 경주남산연구소의 김구석 소장은 “7~8세기 신라 초기의 불상들은 이처럼 가슴이 넓고, 목 주름 등이 박력 있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라며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허리 부분이 잘록해지고 가슴의 윤곽도 좁아지는 등 미려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석조여래좌상 위엔 아담한 크기의 마애관음보살이 서 있다. ‘미스 신라’라고 불리는 불상이다. 키 154㎝로 아담하고, 입술은 루즈를 바른 듯 붉다. 신라 석공이 붉은 빛 도는 돌 부분에 부러 입술을 새겼다니, 선인들의 해학에 설핏 웃음이 새어나온다. ●일곱 부처와 비승비속의 신선을 만나다 큰 바위에 아미타부처 여섯 분을 새긴 선각육존불을 지나면 선각여래좌상이다. 고려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산의 문화재 가운데 가장 ‘어린’ 마애불상인 셈. 코는 두리뭉실하고 입술은 썰면 반근은 족히 나올 만큼 두툼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눈은 실실 웃고 있다. 부둥켜 안고 있는 바로 옆의 부부바위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계신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남산에서 얼굴이 가장 잘생겼다는 삼릉계 석불좌상과 기골이 장대한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면 바둑바위에 닿는다. 대릉원 등 경주의 주요 문화유적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남산에 들면 최소한 두 번은 놀란다. 그 작은 산에 유물이 빼곡한 것에 놀라고, 암릉이 많은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선 굵은 바위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데,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믿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불상과 탑들이 이 같은 풍경과 기막히게 잘 어우러져 있다는 거다. 하나하나가 ‘있을 만한 곳에 있’다. 다리쉼을 하려는 고갯마루, 한 굽이 돌아 시선이 닿는 암벽마다 어김없이 유물들이 세워져 있다. 이는 유물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좋지만, 몇 발짝 떨어져서 완상하는 게 더 낫다는 뜻과 맥이 닿는다. 금오산(468m) 정상을 찍고 용장계곡으로 향한다. 골이 깊어질수록 풍경도 속도를 낸다. 하산길의 으뜸 명소는 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 높이는 4.5m. 경주사람들은 이 탑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부른다. 남산 자체를 기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원래 탑을 세울 때 기단을 쌓는데 이 석탑은 별도의 기단을 세우지 않았다.”며 “해발 380m만큼의 산을 기단 삼았으니 국내 최고 높이의 탑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산길에 가끔 뒤를 돌아보시라. 늘 이 석탑이 보일 만큼 풍경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삼층석탑 아래 삼륜대좌불도 인상적이다. 원반 모양의 세 돌받침(삼륜대좌) 위에 부처를 모신 특이한 구조다. 삼륜대좌불 아래는 매월당 김시습의 발자취가 서린 용장사터다. 김시습은 용장사에 7년간 머물며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돌아봐도 나무랄 데 없다. 한데 기왕 나선 길, 봉화골의 칠불암까지는 다녀오는 게 좋겠다. 남산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국보(312호)다. 다만 남산 동쪽의 통일전이 들머리여서 서쪽의 삼릉~용장골 코스와 하나로 묶자면 체력이 달릴 수 있다. 통일전에서 왕복 3시간 남짓 걸린다. 칠불암 바로 위는 신선암 마애불이다. 결가부좌를 튼 대부분의 불상과 달리 구름 위에 한 쪽 발을 떠억하니 담그고 있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호방한 형상이다. ●신라의 건국 신화와 함께… ‘삼릉 가는 길’ 삼릉~용장골 코스가 산행을 겸한 답사길이라면 ‘삼릉 가는 길’은 남산 아래 자락을 따라 걷는 트레킹 길이다. 신라의 역사가 시작된 나정 등을 끼고 있어 신라의 건국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복원 공사 중인 월정교에서 삼릉까지 약 8㎞ 거리지만 코스의 중간쯤인 나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담긴 우물터다. 박씨 문중의 제각을 수리하려고 땅을 파다 팔각건물지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발견됐다. 경주사람들은 나정이 박혁거세의 신궁(神宮)터라고 믿고 있다. 박혁거세 신화 또한 이 대목에서 역사로 굳어진다. 신궁의 실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길은 1980년대까지 실제 사용됐던 남간 마을의 신라 시대 우물과 신라의 첫 왕궁터 창림사지, 배리 석불입상, 포석정 등을 거쳐 삼릉에서 끝난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을 나와 35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면 삼릉이다. KTX는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2시간 10여분이 소요된다. 경주남산연구소(www.kjnamsan.org)는 다양한 남산 답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 무료. 777-7142. ▶맛집:삼미정은 직접 빚은 동동주와 두부가 맛있는 집이다. 삼릉 초입에 있다. 745-8761. 고두반은 지역 농산물로 상을 내는 농가맛집.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748-7489. ▶잘 곳: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보문단지 내 한화, 대명리조트 등이 좋겠다. 최근 문을 연 블루원 리조트도 깔끔하다. 한옥 펜션인 야선미술관은 단체가 묵기 좋다. 자체 생산한 농산물로 차려낸 밥상도 맛있다. 010-9215-1618. 글 사진 경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5)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5)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무려 500만 장의 잎사귀가 돋아난다. 느티나무 그늘은 그냥 시원한 게 아니다. 500만 장의 잎이 모였다 흩어지며 그늘을 지었다가 햇살을 담기를 되풀이한다. 그래서 느티나무 그늘은 살아 춤추는 생명의 보금자리다. 세상 일에 지친 누구라도 품어 안고 나무는 사람들을 평화의 길로, 혹은 안식의 길로 이끈다. 지친 몸뿐 아니라, 나무는 번잡한 마음까지 평안에 들게 한다. ‘힐링’ ‘치유’가 화두로 떠오르는 이즈음, 느티나무 그늘이야말로 원초적 생명을 회복시키는 생명의 치유자다. 우리 사는 세상에 느티나무 그늘이 절실한 이유다. 너른 벌판 가장자리에 홀로 우뚝 선 느티나무 그늘로 중년의 부부가 하이킹용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선다. 널따란 평상 위에 도시락을 풀었다. 마치 안가의 대청마루처럼 몸도 마음도 편안해 보인다. 하이킹에 나선 부부가 더위에 지친 몸을 풀고, 모자란 기력을 보충할 요량이다. ●대전 최고령 거목… 키 26m·가지 26m 국내 최대 대전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로 알려진 괴곡동 느티나무다. 대전의 남쪽 외곽에 위치한 괴곡동은 도시 근교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오래된 농촌마을의 풍경을 가졌다. 마을 풍경의 중심에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는 너른 들이 내다보이는 새뜸마을 어귀에서 이곳을 지나는 누구라도 받아들일 만큼 너그러운 자태로 서 있다. “여기 시집와서 지금까지 이 집에서 살았죠. 나무의 나이를 우리가 어찌 알겠어요.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나무는 벌써 저만큼 큰 나무였다고 옛날 어른들이 이야기한 걸 생각하면, 1000년도 더 됐을 거예요” 멀리 펼친 나뭇가지 끝에 닿을 듯한 자리의 집 앞 텃밭에서 굽은 허리에 뙤약볕을 잔뜩 이고 마늘을 캐던 이경애(72) 할머니가 땀을 식히려 나무 그늘로 들어섰다. 정자로 쓰는 느티나무야 곳곳에 많이 있겠지만, 괴곡동 느티나무만큼 좋은 나무는 없을 것이라는 자랑이 이어진다. “점심 때가 지나면 마을 사람들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무 그늘로 모여요. 열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어서 이 평상 두 개면 다 올라와 앉을 수 있지요. 잠깐만 밭에 나가면 힘들어 죽는다 하다가도 나무 그늘에만 들어오면 신기하게도 모두가 편안해져요. 원체 시원한 그늘이니까 그런가봐요. 누가 막걸리라도 가져오는 날이면 나무 그늘이 근사한 잔치판이 되지요.” 괴곡동 느티나무 주변은 비교적 세심하게 관리한 흔적이 두드러진다. 이태 전에는 나무 뿌리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단정한 울타리와 데크를 새로 설치하고, 평상도 다시 놓았다. 대전시를 대표할 만한 나무임은 분명하지만, 나무를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대전 시민들 가운데에도 이처럼 좋은 나무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부근을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나무는 크고 아름답다. 나무는 키가 26m쯤 되고, 줄기 둘레는 9m에 가깝다. 게다가 나뭇가지도 그의 키와 같은 길이인 26m까지 사방으로 고르게 펼쳤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느티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천연기념물 지정 청원… 해마다 칠석날 동제 올려 나이도 그렇다. 마을 사람들은 1000년 전에 마을 옆으로 흐르는 갑천이라는 이름의 개울로 떠내려오던 어린 느티나무가 이곳에 뿌리내렸다고 한다. 느티나무를 뜻하는 괴(槐)자를 마을 이름에 붙인 것도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다. 하지만 1982년에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할 때의 조사에 따르면 나무의 나이는 650살로 추정했다. 지금으로 보면 680살이 된 셈이다. 대전문화연대와 대전충남생명의숲은 지난해 여름, 대전 지역의 노거수를 두루 조사하고, 여러 노거수 가운데 괴곡동 느티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달라고 청원했다고 한다. 대전시에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 즉 문화재급으로 지정된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상황에서 대전을 대표할 만한 자연 문화재로 이 나무를 꼽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칠월칠석에 괴곡동 느티나무에서 동제를 올린다. 이때에는 나무 바로 앞의 새뜸마을뿐 아니라, 주변 마을의 주민들도 찾아온다. 비교적 크게 벌이는 이 동제는 소원을 하늘에 올려 보내는 당산제와 달리 삼복의 무더위를 들녘에서 보내며 지친 농부들의 몸을 치유하는 대동굿 성격으로 진행된다. ●“그늘서 쉬면 찌뿌드드한 몸·마음 상쾌해져” 나무 그늘에 새 손님이 찾아왔다. 매우 다정해 보이는 노부부는 휴대용 라디오와 돗자리를 따로 준비했다. 지나다 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이 나무를 찾아온 것이다. “자동차로 10분 쯤 걸리는 구봉마을에서 왔어요. 집 근처에도 둥구나무가 있지만, 짬만 되면 일부러 여기 와서 쉽니다. 대전 시내에 이만큼 시원한 곳이 없어요. 두어 시간씩 쉬고 돌아가면 찌뿌드드했던 몸과 마음이 몰라보게 상쾌해져요.” 젊은 시절에 육군본부 소속의 사이클 선수 생활을 했다는 이무성(74) 노인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최근에 중풍이 찾아와, 말도 어눌해지고 행동도 불편해졌다고 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환중에도 나무가 있어 유쾌하게 지낼 수 있다며 그는 나무 줄기를 그윽히 바라본다. 나무를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온 마을 노인에서부터 스쳐 지나는 중년의 하이킹족 부부,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병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누구라도 품어 안는다. 무더운 여름 한낮, 대전 괴곡동 느티나무는 원초적 평안을 불러오는 치유의 생명체였다. 글 사진 대전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대전 서구 괴곡동 503번지. 호남고속국도의 지선에서 연결되는 대전남부순환고속국도의 서대전나들목을 이용하면 괴곡동에 빠르게 갈 수 있다. 나들목을 나가서 대전역 방면으로 1.6㎞ 가서 관저지하차도로 진입하여 다시 2㎞쯤 간다. 가수원네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하여 다시 1.8㎞ 간 뒤 오른쪽으로 난 마을길로 나가서 200m쯤 앞에서 좌회전한다. 철로 변을 따라 200m 남짓 가서 좌회전하여 철길 건너편으로 돌아들면 괴곡동이다. 나무는 마을 입구에 있다.
  • 산타클로스 고향은 핀란드 아닌 터키?

    그곳에선 굴러다니는 돌도 문화재급이라 했다. 얼핏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만큼 농축된 시간들이 여전히 도시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의 떡시루’ 같은 곳이란 뜻일 터다. 동·서양을 잇는 문명의 교차로, 터키 이야기다. 터키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게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등의 경승지들이다. 한데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이호준 지음, 애플미디어 펴냄)는 다르다. 느닷없이 터키 남부의 고색창연한 도시 보드룸을 들이댄다. 중세 이슬람과 가톨릭 세력들이 번갈아 가며 점령했던 지역으로, 두 세력의 패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보드룸=베드로’라 표현하면 좀 더 알기 쉽겠다. 이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들의 복선이기도 하다. 유럽이 아닌 동양의 시선으로 본 터키 역사이야기를 쓰겠다는 예고다. 현직 서울신문 기자인 데다 저서 ‘사라져 가는 것들, 잊혀져 가는 것들 1, 2’ 등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전하길 즐겼던 저자의 성정에 비춰 볼 때 능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책은 보드룸 등 터키의 역사와 그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위트 있게’ 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산타클로스의 터키 출생설이다. 저자는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터키 남쪽 안탈리아에서 144㎞ 떨어진 소도시 뎀레라고 밝히고 있다. ‘산타클로스는 핀란드의 산타 마을 출신’이란 상식에 쨍하고 금이 가는 순간이다. 저자에 따르면 산타클로스는 280년 경 뎀레에서 여러 선행과 이적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성 니콜라스 주교의 아바타다. 부유한 곡물상인의 아들이었던 성 니콜라스는 자신의 유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쾌척하는데 여기서 그의 상징이 된 ‘굴뚝 출입설’이 태동한다. 한 마을에 어여쁜 처자 셋이 살았다. 결혼을 앞둔 이들의 최대 애로사항은 지참금이 없다는 것. 처자들 몰래 돈을 전달할 방법을 궁리하던 성 니콜라스는 굴뚝으로 돈을 던져 넣는 ‘묘계’를 생각해 낸다. 굴뚝을 타고 내려오는 산타클로스의 기벽은 이때부터 생겼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스토리텔링은 성 니콜라스가 죽은 세 소년을 살려냈다는 기적에서 비롯됐다. 이런 얘기들이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여러 상업적 형태로 각색됐다. 결정타는 미국의 코카콜라사에서 날렸다. 겨울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자신들의 상징색인 빨간 옷을 입고 흰 거품(수염)을 뒤집어 쓴 산타클로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정색하고 다룬 ‘폴라 익스프레스’(2004)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들으면 펄펄 뛸 얘기다. 여기에 절세가인 클레오파트라가 연인 안토니우스와 함께 로맨틱한 순간을 보냈다는 아폴론 신전과 클레오파트라 해변, 유령도시 카야쾨이에 얽힌 이야기들도 감칠맛을 더한다. 책은 저자의 터키 여행 시리즈 제1권이다. 저자는 “역사를 기록한 이들에 의해 윤색된, 혹은 시간이 감춰 둔 이야기들을 캐내 지속적으로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보은 풍림정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보은 풍림정사 은행나무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잦아들고 언 땅을 녹이는 새 봄의 온기가 대지에 스민다. 봄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바람결에 담긴 봄기운은 또렷하다.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농촌 마을에도 스멀스멀 봄이 곧 들이닥칠 기세다. 기름진 논과 밭에 뼈를 묻고 살아가는 늙은 농부들은 자연의 흐름 앞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의 흐름을 벗어나는 법도 없다. 늘 자연의 빠른 걸음걸이에서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난 거리만큼을 유지하며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순리를 따르는 삶이다. 자연에 앞서지도 자연을 거스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자연에 기대 사는 농부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사는 농촌에서 누구라도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건 그 안에 자연의 순리가 살아있어서다. ●기와 돌담·솟을삼문과 절묘한 조화 충북 보은 회인면 눌곡리. 너른 들녘을 거느리고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농촌 마을에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봄기운이 담겼다. 봄의 소리를 가슴에 안고 분주히 오갈 농부들의 발걸음을 맞이할 들녘은 그러나 아직 고요하다. 언 땅이 풀려 축축해진 흙길이 정겹기만 하다. 평안한 마을길을 걷다 보면 길옆으로 이어진 낮은 비탈에 기대어 세워진 한 채의 고택과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발길을 붙잡는다. 보은 풍림정사와 그 집의 솟을삼문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다. 봄을 앞두고 달콤한 정적이 감도는 마을 들녘에 사람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지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번듯한 신작로를 지나는 자동차도 고작해야 한두 대 정도다. 모두가 다가오는 새 봄의 농사일 채비로 한창 웅크리고 있는 중이다. 마음으로만 봄을 재촉하는 참 평화로운 정적이다. 발길을 붙잡는 풍림정사 대문 앞의 은행나무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평범한 나무다. 큰 나무도 아니다. 키가 18m쯤 되고, 가슴 높이 줄기 둘레는 4m가 채 안 된다. 지금의 생육 상태로 보아서 나이는 대략 150살 정도로 짐작된다.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은 물론 아니고, 산림청 보호수 목록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그저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다. 그러나 나무 앞으로 펼쳐진 들판을 거느리고 서 있는 풍림정사 은행나무의 자태는 여느 문화재급 은행나무 못지않게 아름답다. 낮은 기와 돌담과 고택의 기와지붕 위로 널찍이 드리운 나뭇가지가 이뤄낸 유장한 곡선은 옛 선비의 기품까지 느끼게 할 만큼 듬직하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 그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 것이지 싶다. ●여성인권 강조한 선비 박문호가 심어 자연의 곡선을 닮은 우리 옛 건축물이 큰 나무와 잘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풍림정사 은행나무는 이런 점에서 유난하다. 아예 처음부터 이 자리에 꼭 이만한 크기로 서 있었던 것처럼 나무와 풍림정사의 조화는 완벽하다. 기와 돌담이 바닥에 이룬 수평선을 디딤돌 삼아 수직으로 일어선 은행나무의 곧은 줄기는 사람의 눈을 가장 즐겁게 하는 황금분할의 비례를 이뤘다. 또 사방으로 고르게 펼치며 기와지붕 위로 살포시 올라선 나뭇가지가 드리우는 그늘의 풍성함은 고택의 빈 마당을 빈틈없이 채운다. 그야말로 나무와 사람살이가 이룬 아름다운 조화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관리하는 나무임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나무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나무의 위치나 주변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 그저 풍림정사와 관계 있는 나무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풍림정사의 연륜이 그리 길지 않아 나무의 연륜도 쉽게 짚어볼 수 있다. 풍림정사는 이 마을 출신의 선비 박문호(1846~1918)가 개화파와 수구파의 정쟁으로 혼란스럽던 조선 후기에 손수 지은 서당이다. 정통 성리학의 명맥을 잇고자 한 그는 당장에 자신이 벼슬을 얻는 것보다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2년의 일이다. 나무의 나이도 풍림정사를 세운 때와 일치한다. 결국 나무를 심은 것도 박문호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풍림정사를 짓고 대문 앞에 나무를 심었다. 정통 유학자답게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잘 자랄 수 있는 건강한 묘목을 구해 심었을 것이다. 이 땅의 정신세계를 지켜온 유학의 가치, 혹은 공자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떠올리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자연의 순리 그르치는 억압 물리쳐” 선비 박문호는 특히 남녀 차별 극복을 매우 강조했으며 최초의 본격 근대 여성 교육서인 ‘여소학’(女小學)을 펴내기도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하늘이 주어진 본성대로 혹은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강조했다. 억압된 여성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남녀 모두 순리에 따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바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전히 박문호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눌곡리 마을에서는 풍림정사와 그의 은행나무를 정성껏 지키고 있다. 한때 마을 사람들은 풍림정사 은행나무에서 열리는 은행을 거두어 판매한 이익금으로 풍림정사와 은행나무를 관리했다고도 한다. 고작 200년도 채 안 된 나무이지만 후손들에게는 천년을 더 살아온 여느 큰 나무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은행나무다. 그건 바로 우리 삶과 자연의 순리를 그르치는 온갖 억압과 장애를 물리치고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는 옛 사람에 대한 자랑이다. 눌곡리 들녘을 한 바퀴 돌아 풍림정사 은행나무로 스며드는 상큼한 바람에는 옛 선비와 그를 따르는 농촌 사람들이 지켜온 인간 사랑의 큰 뜻이 담겨 있었다. 글 사진 보은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충북 보은군 회인면 눌곡리 126-3. 청원~상주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보은군을 찾아가는 길이 무척 빠르고 편하다. 보은 풍림정사는 회인톨게이트에서 불과 2㎞ 거리밖에 안 된다. 톨게이트를 나가자마자 나오는 사거리에서 1.3㎞ 직진한다. 개울 건너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해 논밭 사이로 800m쯤 가면 왼편 길가에 풍림정사가 있다. 나무는 풍림정사의 솟을대문 앞 조붓한 마당에 서 있다. 풍림정사 주변은 마을이 없어 한적한데 1㎞쯤 직진하면 회인면 소재지인 중앙리 마을이 나온다.
  • 초의선사 해동다맥·법통 전수 물증 찾았다

    초의선사 해동다맥·법통 전수 물증 찾았다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의 다맥 전승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이 대규모로 발굴돼 불교계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초의선사의 법맥을 이었다고 자처하는 스님들은 5∼6명 있었지만 초의선사로부터 이어져 온 이른바 해동 다맥과 법통을 밝히는 실제 증거물이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화제의 유물들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지난 7월 초부터 발굴과 조사과정을 거쳐 지난 4일 전남 담양군 용흥사에서 공개한 용흥사 소장 고서 및 사료 851점. 불교계가 국고보조금을 받아 추진 중인 ‘불교 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구축사업’의 시범사업을 통해 건져낸 것들로 조선후기 불교계의 동향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유물들은 초의 스님이 소장하던 것을 전 대흥사 주지 응송(1893∼1990) 스님이 갖고 있다가 제자인 백운 스님에게 물려준 초의문고(큰 목함 2개, 작은 목함 2개)를 비롯해 역시 백운 스님이 응송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서 및 근대문서 428점, 백운 스님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고서 263점, 그리고 현 용흥사 주지 진우 스님이 응송 스님에게 받은 고서와 개인 수집 물품 90점이다. 유물의 소장 추이를 볼 때 초의선사의 해동다맥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범해(1820~1896)와 원응(1856~1927), 응송 스님을 거쳐 백운 스님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1457년 세조가 강진 무위사에 대해 ‘감사와 수령은 전에 내린 전지(傳旨)에 의거해 더욱 보호하고 잡역을 감면하라.’고 지시한 ‘교지’(敎旨)와 초의 선사가 책을 보관했던 목함, 친필 수초본 19권, 조선후기 강원에서 교학 참고서로 필사돼 전해진 사기 74권은 문화재급 유물들이다. 수초본은 초의선사가 직접 기록한 중국 시집 관련 책자들로 주역 관련 서적이 포함돼 있다. 초의선사 목함에서 수습한 57권의 가흥대장경도 눈길을 끄는 유물. 가흥대장경은 중국 명말∼청초 120년에 걸쳐 조성된 민간 대장경으로 그동안 문헌으로만 전해지다 실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조선후기 대강백 연담(1720~1799) 스님의 ‘화엄현담 사기’ 원본과 초의선사가 1855년 쓴 친필 서문이 들어 있는 ‘만선동귀집’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며 ‘동사열전’은 현존 최고의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유물은 네 귀퉁이에 사천왕을 뜻하는 ‘천왕’(天王)의 글자가 새겨진 초의선사의 25조 가사와 낙관 6개 및 다구이다. 불가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법통을 전수하는 사법(嗣法) 과정에서 가사와 발우(의발)는 필수품. 해동 다맥이 초의∼범해∼원응∼응송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인 셈이다. 불교계는 25조 가사가 대종사 이상의 최고 품계를 받은 선사들만 착용할 수 있는 촘촘한 가사라는 사실을 들어 초의선사 유품이 확실하다고 평가한다. 가사를 전해받은 응송 스님의 경우 친일행적이 있는 데다 대처승이란 이유로 승적 박탈 상태에 처해 조계종에선 잊혀진 스님. 따라서 해동 다맥의 전승자인 응송 스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조사에서 연구책임을 맡은 이종수 동국대 HK연구교수는 “불교기록문화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에서 의외로 조선후기 불교사를 규명할 중요한 기록들을 얻었다.”면서 “특히 초의선사의 가사와 유품들에 대한 연구 고증을 통해 해동 다맥을 확실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불교·기독교 뉴욕서 세계평화를 말하다

    불교·기독교 뉴욕서 세계평화를 말하다

    한국의 대표적 선승인 진제(동화사 조실) 스님이 미국 뉴욕에서 간화선 법문을 하고 세계적인 석학 폴 니터 유니언신학대 석좌 교수와 세계 평화를 주제로 대담하는 행사가 마련된다. 6일 대구 동화사에 따르면 진제 스님은 오는 15일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법회를 통해 간화선 법문을 하는 데 이어 16일 맨해튼의 뉴욕 유니언 신학대에서 폴 니터 교수와 ‘종교간 평화’를 주제로 대담 시간을 갖는다. 이번 법회와 대담은 지난해 12월31일 동화사가 폴 니터 교수를 초청해 기독교-불교의 종교 간 평화대회를 연 데 대한 답방형식으로 리버사이드 교회와 유니언신학대가 진제 스님을 초청해 마련된 것이다. 진제 스님과 폴 니터 교수는 지난 연말 대담 직후 마음의 평화를 통한 세계평화 만들기와 초종교·초종파적 자세로 인류평화에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고 그 실천과제로 한국 선불교 수행인 참선(간화선)을 평화의 수행법으로 세계화할 것에 합의한 바 있다. 진제 스님은 ‘남진제 북송담’이란 말이 있을 만큼 인천 용화선원 선원장 송담 스님과 함께 한국 선불교의 쌍벽을 이루는 대선사. 따라서 한국 최고의 선사가 이례적으로 미국 교회에서 법문을 하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초교파 신학교(1836년 설립)에서 다원주의 신학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와 대화를 나누는 자리라는 점에서 국내 종교계에 큰 반향을 불러올 전망이다. 먼저 15일 법회에서 진제 스님은 간화선 수행이 세계평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편이란 점과 수행법에 대해 법문을 할 예정. 이 자리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각 종교 지도자와 종교학자, 대학생, 일반인 등 15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회가 열리는 리버사이드 교회는 1930년 미국 침례교가 주축이 돼 세운 교회로 뉴욕의 주요 관광지이자 마틴 루터킹 목사와 넬슨 만델라, 피델 카스트로 등 각국 정치인들이 연설한 곳으로 유명하다. 동화사 측은 미국 개신교계의 유서 깊은 핵심 공간에서 불교 법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현지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16일 폴 니터 교수와의 대담은 지난해 동화사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다원화·다변화시대의 종교의 역할과 개인 수행의 중요성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뉴욕의 유명 대학 종교학자, 각 종교의 대표급 지도자, 선불교 관계자, 종교 수행자들이 대담을 참관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담이 열리는 동안 동화사 수좌 스님 20여명은 뉴욕의 거리를 거닐며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사도 예정돼 있다. 행사기간 중 행사장 주변에서는 동화사의 역사와 공동체 운영, 수행과 관련한 ‘동화사 천년 불교사진전’이 열리고 한국 불교와 간화선에 대한 영문 도서도 배포한다. 특히 행사장에는 전통 자수로 재현한 동화사 본·말사의 문화재급 탱화 3점이 걸리게 되며 행사가 끝난 뒤 탱화는 유니언신학대와 컬럼비아대 한국불교학과,한국불교뉴욕사원연합회에 각각 1점씩 기증된다. 동화사 측은 “제66차 유엔총회가 열리는 기간 중 종교 간 평화대화가 마련됐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며 “한국선불교 수행이 종교를 넘어 인류공영을 위한 평화의 수행법으로 소개되는 만큼 천년불교의 위상과 수준 높은 정신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외규장각 도서 귀환 환영합니다”

    145년 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반기는 행사가 11일 강화도와 경복궁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비록 임대 형식이지만 지난 4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귀국절차를 마친 외규장각 도서 296권에 대한 기념 행사다. 환영대회는 문화재보호재단 주관 아래 ‘해외문화재 귀환 환영위원회’(위원장 김의정)가 주최한다. 위원회는 11일 오전 외규장각 도서가 원래 보관돼 있던 강화도 외규장각 터에서 도서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고유제를 치른다. 오후에는 경복궁 일대에서 국민축제가 벌어진다. 광화문을 거쳐 근정전에 이르는 이봉(移封) 행렬과 근정전 앞에서의 또 한차례 고유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봉 행렬에는 의궤를 태운 가마를 중심으로 취타대, 문무백관, 기마대, 무용수 등 520여명이 참가한다. 정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규장각에서 기록한 일기를 근거로 행렬을 재현했다. 다채로운 축하 공연도 준비돼 있다. 축제 하이라이트는 고유제가 끝난 뒤 의궤를 다시 가마에 봉안하는 장면. 의궤가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는 상징적 퍼포먼스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음 달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145년 만의 귀환-외규장각의 궤’를 주제로 특별전을 연다. 풍정도감의궤를 비롯해 반환 의궤 약 70점과 관련 유물 약 50점이 일반에 공개된다. 박물관 전시 뒤에는 강화도 등 전국 순회전에 나선다. 한편, 일본 궁내청에서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국내 문화재급 도서 1205권도 곧 귀환 길에 오르게 돼 기쁨이 배가됐다. 일본 정부가 10일 오전 11시쯤 한·일도서협정 발효에 따른 제반 절차를 완료함으로써 도서 1205권도 귀국 길에 오르게 된 것. 협정은 ‘발효 후 6개월 안’에 도서를 돌려주게 돼 있어 늦어도 12월 10일까지는 귀환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서울서 ‘대장장이 45년’ 류상준·상남 형제

    [김문이 만난사람] 서울서 ‘대장장이 45년’ 류상준·상남 형제

    단조(鍛造)의 예술이다. 아무리 딱딱한 쇳덩이라도 필요한 생활 도구로 척척 만들어 내니 말이다. 역사를 거슬러 천년의 기술도 뚝딱 재현해 낸다. 인기 TV드라마 ‘서동요’ ‘대장금’ ‘주몽’ ‘태왕사신기’ 등에서 봤던 소품 도구도 그러한 단조의 예술로 빚어냈다. 하여 어떤 시인은 신화창조의 영웅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류상준(58)·상남(55)형제. 요즘 같은 ‘현대문명’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45년째 대장장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형제끼리 아름다운 동행의 길을 걷고 있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장장이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집도 사고,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행복하게 산다. 이쯤 되면 실업난이라는 이유로, ‘눈높이’라는 핑계로 탱자탱자 노는 이들에겐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수색역 바로 옆 ‘형제 대장간’. 10평밖에 안 되는 공간이다. 두 형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쉴 새 없이 메질을 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두들기고 다지고, 벌겋게 달궈진 고철덩이들은 형제의 손기술에 의해 새로운 모양으로 태어났다. 낯선 손님이 왔음에도 “잠깐만 기다리쇼.”라는 말만 던지고는 바삐 일만 한다. 그렇게 20여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인터뷰에 응했다.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장간 안에는 낫, 도끼, 지렛대, 이북호미, 경기호미, 낙지호미, 굴 까는 조새 등 생활 주변에서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앉을 의자 하나 놓을 공간도 없어 서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인기척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형제에게 뭣부터 물어볼까 찬찬히 생각하다가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인사했다. 형 상준씨가 “천직인데요, 뭘.”이라면서 피식 웃는다. 천직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말 그대로 타고난 직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람을 느끼고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겠다. 다음 궁금증이 ‘얼마나 벌까’였다. 이번에는 동생 상남씨가 “신문에 쓸 건 아니겠지요.”라면서 “(한달) 천만원 정도 벌어요.”라고 답한다. 이어 “나는 월급을 받고 형은 사장님이다.”라면서 웃는다. 또 생긴 궁금증, 과연 자녀분들은? 형 상준씨는 “우리는 딸만 둘인데 지금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생 상남씨는 “우리집 아들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얼마 전에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화 하나. 상남씨의 아들이 취직면접 때였다. 면접관이 아버지 직업을 묻자 아들은 “수색에서 형님과 함께 대장장이로 일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사는 집안이구나’라고 느꼈던지 다음 질문을 안 하고 그냥 통과시키더라는 것. 형 상준씨도 한마디 거든다. “우리집 딸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버지가 대장장이라고 자랑을 해 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대장간 체험을 하러 오기도 했지요.” 잠시 선입견을 가졌던 것이 미안해진다. 그래서 얼른 화제를 바꿨다. 훌륭하게 살아온 대장장이의 내력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형 상준씨가 말한다. 서울 모래내(남가좌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대장간을 보면서 신기함에 빠졌다. 쓸모없는 쇳덩어리들이 생활 도구, 농기구 등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졌다. “저는 원래 공부에 취미가 영 없었어요. 공부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한테 ‘중학교 진학을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어떤 부모도 그런 자식을 좋아할 리 없지요.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기술을 배우라. 밥은 안 굶을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동네 대장간으로 달려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때 대장장이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박용신(4년전 작고) 스승님이었지요. 풀무질부터 차근차근 배웠습니다.” 1966년 당시 대장간에서 받은 첫 봉급은 1000원이었다. 그때 호미 한 자루 가격이 50원. 일당으로 따지면 비록 호미 한 자루 값만도 못했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열심히 일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쇠망치를 잡는 단순한 일이었으나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대장장이의 길을 닦았다. 또한 당시 아버지는 편자 박는 일을 했는데 틈틈이 시간나는 대로 아버지한테 그 일을 배우기도 했다. 성격이 워낙 꼼꼼해 물건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런 점이 스승한테 인정을 받으면서 10년동안 모래내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뒤 1976년 서울 암사동으로 가서 대장간을 차렸다. 그의 정성스러운 솜씨로 젊은 나이에 단골손님들도 많이 생겼다. 6년 뒤인 1982년, 상준씨는 다시 모래내에서 대장간을 차렸고 1997년 수색으로 옮기면서 동생이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 이르자 동생 상남씨가 얘기한다. “형님은 일찍 대장장이 일을 시작했고 저는 원래 장사를 했어요. 떡집, 야채장사, 치킨집,옷장사 등 안 해 본 게 거의 없어요. 그러다가 거덜나서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가 됐지요. 친구집에서 전전하기도 했고…. 그런 저를 보고 형님이 대장장이 일을 같이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흔쾌히 받아들였지요. 같이 한 지 15년 됐는데 그 사이에 빚도 갚고 집고 사고 자식들 대학 보내고 다 했습니다.” 그는 또 “형님도 월세 살다가 6년전에 집을 장만했고 외환위기(IMF) 당시 은행에서 빌린 3000만원도 열심히 일해서 다 갚았다.”면서 “대장일을 하다 보니 땀 흘린 만큼 돈도 벌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원래 1년만 해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오게 됐다. 이제는 천직으로 여긴다.”고 털어놓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형제는 주로 농기구를 제작했다. 지금은 공사장이나 건축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얼마 전에는 북한의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도구를 2000여개나 주문받아 납품했다. 최근에는 방송국에서 자주 찾아온다. 역사드라마에 사용할 소품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쇄도한다. 역사속의 병장기는 물론이고 드라마 ‘식객’에서 사용된 ‘서울식 전통 칼’도 제작해 화제가 됐다. 이래저래 형 상준씨는 TV에도 여러번 출연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쇳덩이로 예쁜 장미꽃을 만들었고 EBS 특집 ‘극한직업’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금나라 병장기를 재현하고 있다. 칼과 창, 방패 등 금나라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학교수의 부탁을 받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전국에서 주문 오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외국인 교수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국에서 매년 대장장이 국제대회를 여는데 한번 참가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인간문화재급에 해당하는 명장 신청을 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형 상준씨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 글도 잘 모르니 싫다.”면서 뿌리쳤다. 가끔 칼을 잘 만드는 명장도 찾아와 한수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형 상준씨한테 지나온 대장장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승이 만든 물건을 가지고 와서 수리해 달라고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 스승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홀로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애들도 다 잘 커 주고 그러니 걱정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도 직업을 잘 택한 것 같아요.” 그는 똑같는 김장 김치라도 써는 칼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듯 정성을 쏟는 만큼 물건의 질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전통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에만 해도 현재 10개 미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제품도 많이 들어오고…. 특히 대장장이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몇년 후면 아마 서울에서 대장간이 사라지고 말걸요.” 형제의 꿈은 무엇일까. 동생 상남씨가 말한다. “그동안 만든 작품들이 많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병장기라든가, 삼국시대의 농기구 등 역사 속의 우리 것을 재현하는 전시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또한 대장간 체험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견학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60대 후반에는 꼭 성사시킬 것입니다.” 형제는 뜨거운 화덕 앞에서 다시 망치를 들고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두들긴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45년 세월만큼이나 단단해진 그들의 인생이 아름다워 보인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류상준·상남 형제는 “국내 첫 鍛造 예술전시관 만들겁니다” 형 상준씨는 1954년 서울 모래내(남가좌동)에서 8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1966년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래내 대장간에서 스승 박용신(4년전 작고)씨한테 대장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0년동안 모래내에서 기술을 익힌 뒤 1977년 서울 암사동으로 옮겨 대장간을 열었다. 지금의 수색역 근처에서 대장간을 차린 것은 1997년. 이때부터 동생과 함께 ‘형제 대장간’을 시작했다. 그의 딸 둘은 중앙대와 추계예술대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있다. 동생 상남씨는 1957년 모래내에서 태어나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장사꾼으로 나섰다. 떡집, 치킨집, 옷장사, 야채장사를 하다가 망해 15년 전부터 형과 함께 대장장이 일에 동참했다. 상남씨의 아들은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현재 KCC그룹에 다니고 있다. 형제의 꿈은 국내 최초 단조예술 전시관을 만드는 것이다.
  • [APEC] MB·간 “이번 도서반환은 한·일관계 변화의 시발점”

    [APEC] MB·간 “이번 도서반환은 한·일관계 변화의 시발점”

    일제 강점기 일본이 빼앗아 갔던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문화재급 도서 1205책(150종)이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외무상은 14일 일본 요코하마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유래(수탈)한 도서 1205책을 인도(반환)한다.’는 내용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협정문에는 협정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도서를 대한민국 정부에 인도하며, 양국 간 문화 교류를 발전시키고자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대통령은 “이번 도서 반환이 한·일관계의 획기적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간 총리와 내각의 노력에 감사한다.”면서 “양국 역사에 묻혀 있던 도서가 돌아오는 것은 (양국의) 새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국의 협력관계는 과거와는 또 다른 희망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간 총리는 “(이번 반환이) 한·일관계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일·한 도서협정 서명식을 통해 앞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국회 동의를 얻어 가까운 시일 내에 도서가 전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가급적 연내에 반환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지만, 자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이 다소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국회 비준에는 다소 진통이 예상된다. 협정식에는 한국 반환에 합의된 ‘대례의궤’, ‘왕세자가례도감의궤’ 등 두 권의 도서가 전시됐다. 의궤는 조선 왕실에서 치러진 의식 전말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일종의 행사보고서다. 양 정상은 ‘셔틀외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간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가급적 연내에 다시 한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간 총리는 또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의 논의 재개를 요구했으며, 이 대통령은 다음 번 일본 방문 때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와 함께 6자회담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장이 돼야 하고,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향후 대북 문제에 대해 긴밀히 공조하기로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조건과 관련해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회담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북한의 비핵화라고 하는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취임 이래 일관되게 언급해 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6자회담의 재개 조건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지를 갖는다는 전제로 회담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코하마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정부 보유 미술품 보험 가입 의무화

    앞으로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고가 미술품은 반드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조달청은 정부 각 부처가 보유한 문화재급 고가 미술품의 도난·분실·화재 등에 대비해 감정가 4000만원 이상 미술품의 보험가입을 의무화했다고 12일 밝혔다. 또 전문적인 보관·관리가 필요할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정부부처 등 국가기관이 보유한 미술품은 1만 256점으로 이중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미술품은 199점(감정가 196억원)이다. 특히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를 비롯해 천경자의 ‘공작과 여인’, 김흥수의 ‘유관순’ 등 60점은 1억원 이상으로 평가됐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80여개 문화재 곳곳에 개발·보존 균형 어려워”

    “80여개 문화재 곳곳에 개발·보존 균형 어려워”

    “길은 무형의 문화재입니다. 한 예로 길가의 주막과 거기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모두 길에 포함될 때 진정한 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서울 종로구청 학예사 나신균(36) 주임은 ‘종로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나 주임은 관내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역사와 보존을 연구하는 책임자다. 구청에 별도의 학예사를 두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종로에는 박물관이나 개인소장품을 제외해도 총 80여개에 달하는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종로대로에도 세종로 사거리 교보빌딩 앞의 ‘고종즉위40년 친견기념비’부터 시작해 보신각터, 탑골공원, 종묘, 흥인지문(동대문)에 이르기까지 문화재가 줄을 잇는다. 급변하는 종로를 바라보는 나 주임의 입장은 어떨까? 그는 “개발와 보존의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개발을 하려고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온다.”고 입을 모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종로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던 시기에 아무런 제약 없이 문화재터를 덮거나 갈아엎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재개발이 진행되는 요즘 부메랑이 되고 있는 셈이다. 나 주임은 “개발의 필요성이 있고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도 원한다.”면서 “다만 개발이 이뤄지면서 옛 종로의 구획까지 사라지고 있는 점은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발조사가 한창인 청진구역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건물터와 조선백자 등 문화재급 유물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보존하고 어떤 부분을 옮기는 등의 판단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 주임은 탑골공원 옆에 위치한 육의전 빌딩이 문화재 보존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육의전 빌딩은 개발 과정에서 발굴한 육의전 터를 지하 1층에 원형대로 보존해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돼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일본에서는 문화재보호를 위해 일반화된 방식이다. 그는 “유난히 건물터가 많고 개발이 필요한 종로에 적합한 방식이고, 건물주 입장에서도 문화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사회플러스] 가야고분 도굴 父子 검거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2일 가야 고분에서 문화재급 가야토기 수십 점을 도굴해 판매한 전문 도굴꾼 박모(54)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장물범 김모(47)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는 도굴 기술을 전수하겠다면서 아들까지 범행에 동참시켰다. 박씨 등은 2007년 7월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경남 함안 가야읍의 함안고분에서 탐침봉 등을 이용해 매장돼 있던 삼국시대 토기 35점을 도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 등은 같은 달 대구와 대전 등의 골동품 영업장에 유물을 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의 통장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유물 한 점에 30만~40만원의 가격으로 장물범에게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하지만 이들 유물은 관련 범죄 공소시효 기간인 10년이 지난 뒤 유통될 때의 가격은 상정하기 어려운 고가의 문화재”라고 말했다.
  • 황산벌 전투·기마군 행진… 내년 세계 大백제전 93개 프로그램 확정

    ‘황산벌 전투 재현, 백제탈 및 기마군단 퍼레이드’ 내년 9월18일부터 10월17일까지 한달간 백제의 고도 충남 공주·부여에서 열리는 ‘세계 대(大)백제전’ 추진계획이 확정됐다. 세계대백제전조직위원회는 29일 ‘700년 대백제의 꿈’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축제의 프로그램이 조직위 주관 21개, 공주시 주관 35개, 부여군 주관 37개 등 모두 93개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 등 8만여명이 백제탈을 쓰고 걷는 ‘백제탈 퍼레이드’, 백제의 역사와 번영을 표현한 ‘수상공연’이 포함돼 있다. ‘탈 인형극 공연’, ‘탈그리기 체험’ 등 각종 백제탈 관련 이벤트가 이어진다. ‘대백제 기마군단 퍼레이드’도 있다. 말 185필과 150명의 병사가 행진, 웅장함을 한껏 뽐내게 된다. 백제군 5000명이 신라군 5만명과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황산벌 전투’는 축제의 백미다. 공주시 금강 고마나루에서 백제시대 영웅 설화를 판타지로 각색한 ‘백제열전’, 부여 백마강변에서 백제금동대향로 등 백제 문화유산을 이미지화한 수상 미디어퍼포먼스 ‘낙화암의 달빛’이 공연된다.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백제유물유적 복원전’, 20여개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국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세계역사도시 전시관’, 국내외 문화재급 백제유물 150여점을 전시하는 ‘백제유물 특별기획전’도 열린다. 조직위는 대백제전에 해외 20개국, 연인원 260만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석원 대백제전추진위원장은 “백제인의 숨결을 한자리에서 모두 느낄 수 있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문무왕릉비/김성호 논설위원

    대영박물관이며 루브르가 약탈문화재로 채워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유물들을 원 위치로 되돌릴 경우 박물관이 텅 빈다는 소리는 괜한 게 아니다. 이 나라들이 유네스코 문화재반환 관련협약에 소극적이고 모르쇠로 일관함은 그래서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외규장각도서 반환서 ‘동급 가치’의 유물 맞교환 입장을 크게 물리지 않고 있다. ‘문화재는 원 위치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는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 이 메아리 없는 외침에서 우리는 비켜나 있지 않다.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잃고 빼앗긴 국보·보물급 유물이 한둘일까. 주로 민간차원의 약탈문화재 반환노력이 빛을 보고 있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약탈의 잔혹성을 규탄하고 반환의 정당성을 애써 주장하지만 문화재에서도 힘의 논리는 지배적이다. 문화재 약탈 비난에 앞서 갖고 있는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생각해봄은 어떨까. 국보1호 숭례문의 소멸 말고도 귀중한 유물들의 도난·훼손은 다반사다. 문화재 훼손 손실을 떠나 인식부족 탓에 눈뜨고도 잃어가는 것들이 태반이다. 전북 익산 왕궁리유적 주변마을의 지붕이며 담장, 부엌에 유적지서 발굴된 것들과 같은 기와, 석재들이 널렸음은 서글픈 몰인식의 일화로 회자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하단부가 보존돼 있는 신라 제30대 문무왕비의 윗부분이 발견됐다. 1961년 하단부가 수습된 바로 그마을의 수돗가 마당에서다. 18세기 발견됐다가 홀연히 사라진 지 200년 만에 되찾은 의외의 횡재에 박물관측은 쾌재를 부른다.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업적, 백제평정 사실, 신라 김씨왕실의 원천을 밝힐 근거확보의 희열이다. 마당에 방기된 채 빨래판으로 쓰이던 걸 수도검침원이 발견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문화재급이다.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말만으로 외치고 강조해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빼앗긴 우리 원형질 유산을 되찾아야 한다는 공허한 권리주장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지금 주변부터 살펴야 할 것 같다. 우리집 마당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빨래판이 국보급 유물일지 어찌 알까. 중요한 건 말의 성찬이 아닌, 현실 속에서 보고 찾아야 할 가치의 똑바른 인식이다. 더 늦기 전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윤증 선생 유물 1만여점 국민품으로

    윤증 선생 유물 1만여점 국민품으로

    우리나라 종가 가운데 문화재급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 후기 대학자 명재(明齋) 윤증(1629~1714) 선생의 유물과 유품 1만여점이 7일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됐다. 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날 회의실에서 윤증 선생의 12대 종손인 윤완식(53)씨가 참석한 가운데 윤증 집안 유물 영구 기탁식을 가졌다. 윤씨가 이날 기탁한 유물은 8999점으로 2007년부터 연차적으로 기탁한 1644점을 합치면 모두 1만 643점에 이른다. ●보물 1495호 ‘윤증 초상’ 6점 포함 윤씨는 2004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던 것을 수탁기간이 끝나자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영구 기탁했다. 당초 이 유물들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윤증고택 등에 있었다. 윤씨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던 것은 유물을 보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면서 “유물은 본래 있던 지역에 있어야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도역사문화연구원으로 옮겨 영구 기탁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탁한 유물 가운데 보물 제1495호인 ‘윤증 초상’ 6점이 가장 눈에 띈다. 윤증 초상은 1744년 어용화사인 장경주가 그린 것부터 일제 강점기 때까지 그려진 것으로 국내 초상화 변천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초상화 제작연대와 내용을 기록한 ‘영당기적(影堂紀蹟)’도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도역사문화연구원 서흥석 연구원은 “누가, 언제, 얼마를 받고 초상화를 그렸는지 자세히 기록한 책자를 남긴 것은 국내에서 매우 드물어 사료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상투관·빗·합죽선 등 중요민속자료도 중요민속자료 제22호로 지정된 유품 54점도 기탁됐다. 윤증 선생 등이 쓰던 상투관, 빗, 신, 합죽선, 인장 등으로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초기 천문과학 형성과정과 우주관을 보여주는 해시계와 혼천의도 있다. 논산시 향토문화유적 제12호 ‘윤증가의 책판’ 1039점과 고문서 6000여점도 기탁됐다. 서흥석 연구원은 “고문서를 해독하면 윤증 선생 조상 때부터 교류해온 이율곡과 성혼, 김장생, 송시열 등 기호학파 거두들의 숨은 얘기나 학설, 인물평 등이 기록돼 있을 가능성이 커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윤증 선생은 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로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해 평생 후학양성에 힘쓴 소론의 영수이다. 스승 송시열의 주자학적 조화론과 의리론을 비판한 진보세력으로 노론의 정국 전횡을 견제했다.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이번에 기탁받은 윤증 선생의 유물을 훈증처리한 뒤 수장고에 보관하고 훼손된 것은 보수할 계획이다. 도록을 발간하고 특별전시회와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다른 문중도 유물 기탁하는 계기됐으면” 종손 윤씨는 “문중의 유물이지만 지역 것이기도 하다. 집안에 남아 있는 유물 1000여점도 정리되는 대로 기탁할 계획”이라며 “이번 유물 기탁이 연구자료나 후손 교육에 쓰이고 다른 문중에서도 사회에 유물을 기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국보급 13세기 고려불화 日서 발견

    국보급 13세기 고려불화 日서 발견

    │도쿄 박홍기특파원│13세기 말에 그려진 고려시대의 탱화가 일본 교토시에 위치한 사찰 묘만지(妙滿寺)에서 발견됐다. 교토국립박물관은 지난 2월 묘만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탱화 가운데 세번째로 오래된 고려 탱화를 찾았다고 지난 30일 발표했다. 탱화는 보리수 아래서 성불한 미륵여래가 부모가 기거하는 궁전으로 돌아와 중생 앞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미륵대성불경변상도(彌勒大成佛經變相圖)’로 가로 1.3m, 세로 2.3m의 대작이다. 보존 상태는 매우 좋다. 제작연대는 서기 1294년에 해당하는 ‘지원(至元) 31년’이라고 탱화에 씌어 있다. 화가는 ‘화문한서(畵文翰署)’라는 궁중화가 조직에 속한 이성(李晟)이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탱화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채를 피했지만 한가운데 자리한 미륵여래의 얼굴과 가슴 부분 등은 세세하게 묘사, 입체감이 뛰어나다. 박물관측은 “중요문화재급 발견”이라면서 “고려 탱화로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은 3건밖에 없다. 궁중 화가가 그린 탱화로는 가장 오래된 것인 데다 고려 탱화의 최전성기 양식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hkpark@seoul.co.kr
  • 밑 단 살짝 걷어올린 롤업 팬츠, 큼지막한 빅백 어깨에 걸치면… 내 남자친구도 ‘멋男’

    밑 단 살짝 걷어올린 롤업 팬츠, 큼지막한 빅백 어깨에 걸치면… 내 남자친구도 ‘멋男’

    까칠한 노총각의 삶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가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다. 트렌디물 답게 건축가·의사 등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주인공이라 많은 볼거리를 쏟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패션이다. 트렌디 드라마가 패션의 참고서가 돼 온 것은 예사. 그러나 드라마를 보며 여성들이 박수를 쳐대는 것은 엄정화가 뭘, 어떻게 걸쳤느냐가 아니다. 바로 주인공 조재희로 분한 지진희의 옷차림이다. 사실 사십줄에 들어선 노총각이 이토록 멋스러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인간문화재급에 가까운 게 현실.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발랄하고 경쾌한 옷차림을 보며 “언젠간 내 남자친구도 저렇게 입혀야지.”라는 바람을 키우고 있을 듯 싶다. 드라마에서 조재희는 완벽주의자. 융통성 없는 성격이 옷차림에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기본 공식은 단정한 셔츠와 팬츠다. 흔하디 흔한 두 가지 아이템을 놓고 보면 멋진 정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실루엣만 놓고 보자면 지루하다. 주름 하나 없는 셔츠를 목까지 잠그고 밑단은 바지 속에 꼭꼭 말아 넣었다. 바지는 엉덩이가 딱 달라 붙고 바지단은 깡총하게 올라 붙었다. 딱 ‘범생이’ 스타일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지진희의 패션은 셔츠와 팬츠만 잘 선택해도 저렇게 멋져 보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보여 준다.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 패션 인기 마흔살 노총각이 걸치고 나오는 셔츠는 색상과 무늬가 화사하기 그지 없다. 무채색 계열의 칙칙한 셔츠는 없다. 품은 항상 살짝 달라 붙어 몸매를 드러내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단정하면서도 남성미를 제법 느끼게 한다. 아무 무늬 없이 심심한 화이트 셔츠를 걸칠 때도 재킷이 아니라 연한 회색의 조끼와 바지를 한벌로 입어 격식있는 자리에 맞는 옷차림을 선보이기도 한다. 넥타이는 물론 재킷을 걸치지 않아도 무방한 직장인들이 쉽게 따라 하면서도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스타일링이다. 각양각색의 피케 셔츠 활용도 돋보이는데 이때도 품을 넉넉하게 입지 않는다. 짙은 색상의 피케 셔츠에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매치하는 것은 기본 스타일이지만 단단한 몸매가 드러나도록 살짝 달라 붙게 입는 것이 세련미를 돋보이게 하는 비결이다. 바지 또한 스키니진처럼은 아니더라도 꽤 달라 붙는다. 통이 다소 좁은 일자형 바지라 다리가 두껍거나 선이 곱지 않은 남자들이라면 스트레스 좀 받을 만하다. 여자들의 S라인까지는 아니겠지만 이제 남자들의 옷맵시도 군살없는 허리와 다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지의 밑단을 살짝 걷어 올린 롤업 팬츠가 자칫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옷차림에 숨통을 터 주는 요인. 지난해부터 남자들의 바지단이 짧아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스타일은 흔히 키가 커야 소화가 가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단신 연예인’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배우 봉태규나 가수 유희열 등 아담한 남자들도 롤업 팬츠를 꽤 멋스럽게 소화해 용기를 준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의 남성 패션 담당 정수형 대리는 “여성의류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롤업 팬츠가 20대 남성은 물론 30~40대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롤업 팬츠를 시도할 때 가장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자칫 다리가 짧아 보이지 않을가 하는 점. 지진희의 스타일리스트인 이양숙씨는 “벨트와 신발의 선택이 중요하다.”며 “오렌지색·녹색 등 과감한 색상의 벨트로 시선을 높여 주고 날렵해 보이는 로퍼를 신으면 길어 보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굵은 시계·옥스퍼드 슈즈도 포인트 이렇듯 액세서리는 단점을 보완하고 옷차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붓칠’이다. 아직도 액세서리는 여성들이나 신경쓰는 것이라는 고집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지구 밖으로 던져 버리도록. 동대문시장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값싸게 구입한 의류일수록 돈을 좀 들인 가방·벨트·신발·시계 등을 매치해야 ‘저렴한’ 인상을 피할 수 있다. 지진희의 스타일 중 가장 눈에 띄는 소품은 단연 빅백이다. 여러 브랜드가 쏟아낸 올해 봄·여름 신상품에서 이미 예견된 바, 여행가방과 동급으로 놓일 만큼 커다란 백은 멋 좀 안다는 남성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아이템이 됐다. 빅백의 유행은 남자들도 고운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챙길 소지품이 늘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지진희는 거의 매회 다른 스타일의 빅백을 들고 나오는데 눈 밝은 시청자들은 포털 사이트 여기저기에 “어디 제품이냐?”는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소매를 걷었을 때 드러난 팔목이 심심하지 않도록 알이 크고 굵은 시계도 포인트를 주는 데 한몫한다. 뭐니뭐니해도 롤업 팬츠에 어울리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관건. 발목까지 훤히 드러나기 때문에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격식 있는 자리에는 로퍼 외에 옥스퍼드 슈즈를 신으면 어울린다. 가벼운 외출에는 컨버스 소재의 슬립온(끈이 없고 실내화처럼 생긴 운동화)으로 경쾌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양말을 신는다면 바로 ‘센스꽝’으로 전락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도움말 및 사진제공 : 클럽모나코, 라코스테,멀버리, 옥션.
  • 인천 중구 근대역사문화지구 올해 안으로 지정 완료키로

    인천시 중구는 올해 안에 지역내 근대건축물 밀집지역에 대한 ‘인천개항장 근대역사문화지구’ 지정을 마치기로 했다. 문화지구 지정 대상지역은 관동, 중앙동, 해안동, 항동 일대 47만 1476㎡이다. 이곳에는 인천시 지정문화재인 옛 일본제일은행 지점(제7호), 인천우체국(제8호), 일본58은행 인천지점(제19호)을 포함한 문화재급 근대 건축물 10점이 남아 있다. 중구는 소실되거나 철거 위기에 놓인 이들 건축물의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이를 토대로 시에 문화지구를 신청, 올해 안에 지구 지정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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