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문화유산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성조기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공수처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민간업체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이석기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82
  • 마크롱 “노트르담성당 최악은 피했다…국민과 재건”

    마크롱 “노트르담성당 최악은 피했다…국민과 재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현장에서 “최악은 피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과 함께 성당을 재건할 것”이라며 모금 운동을 펼치겠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큰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오후 11시 30분쯤 노트르담 대성당 인근에서 “노트르담은 우리의 역사이자 문학, 정신의 일부이자, 위대한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 그리고 우리의 삶의 중심”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슬픔이 우리 국민을 뒤흔든 것을 알지만 오늘 나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며 대성당의 화재 피해 수습과 재건을 위해 전 국민적 모금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롱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파리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이자 관광명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이날 오후 6시 50분쯤 첨탑 주변에서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염에 휩싸였고 지붕의 상당 부분이 붕괴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종묘 정전을 중심으로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종묘 정전을 중심으로

    진달래가 핀 봄날 종묘를 보고 싶어 하는 몇 분과 종묘 나들이를 했다. 고구려부터 존재했던 전 왕조의 종묘는 추정 유적지로 흔적만 겨우 남았지만, 조선의 종묘는 온전히 남아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종묘의 정전은 죽은 왕들의 신위를 모시는 왕가의 사당이다. 왕이 죽으면 신주를 이곳 정전에 모셨다가 그 밑으로 다섯 왕이 죽으면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신주를 땅에 묻게 된다. 그러나 조선의 종묘는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영녕전이라는 별묘를 지어 그곳에 모시고 대부분의 왕은 불천위로 만들어 정전에서 영원히 모셨다. 불천위는 공덕이 큰 왕을 기리기 위해 영원히 모시는 것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평가가 후해서 몇몇 왕을 제하고는 대부분 불천위가 됐다.종묘에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25명의 왕 외에 훗날 왕으로 추존된 왕들이 모셔져 있다. 25명의 왕 중 19명이 불천위로 정전에, 단명하거나 힘이 없었던 왕 6명과 9명의 추존왕, 영친왕 등 16명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추존왕이란 세자로 책봉돼 왕이 됐어야 하지만, 단명하거나 왕위에 오르지 못해 후대에서 왕의 칭호를 받은 왕과 태조의 4대조까지를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세자를 비롯해 다섯 명이 추존왕이 됐다. 정전은 문이 세 곳에 있다. 그 하나는 신문이라 하여 죽은 왕의 혼이 드나드는 문이니 신주가 들고 날 때만 열린다. 신문의 중앙에는 신이 다니는 신로가 있다. 나머지 두 문은 제례를 위한 출입문이다. 동문은 왕이 재궁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제례를 위해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동문에 들어서면 계단을 통해 월대를 오르기 전 동 월랑을 만난다. 종묘에 원래는 없는 양식이나 태종이 월랑을 만들게 했는데 꼭 학의 날개를 보는 듯하다. 양쪽의 월랑 중 동쪽은 비어 있고 서쪽은 벽을 막아 대칭을 깨뜨렸다. 동쪽을 비움으로써 재궁 쪽에서 진입하며 기둥 사이로 정전 건물 전체를 볼 수 있다. 불국사가 청운교, 백운교를 오르면 불국이듯 정전의 월대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구별해 신성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월대는 좌우 폭이 109m에 앞뒤 폭이 69m에 이른다. 박석이 깔린 월대는 정전 건물의 규모와 합해져서 텅 빈 느낌이다. 박석이 거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걸음을 신중히 하라는 의미와 자연광이 난반사돼 눈부심을 줄여 주는 의미다. 정면의 신문 앞에서 정전을 바라보면 하월대, 상월대, 처마선, 용마루선의 긴 수평선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수평선들은 보는 이를 포함해 모든 것을 땅이 붙잡고 있는 느낌이라 관찰자를 차분하게 한다. 합각의 추녀같이 날아갈 듯한 미려함과 화려한 공포도 없이 긴 맞배지붕이 차분하게 분위기를 잡아 준다. 건물의 위계로 보아서는 궁궐의 정전만큼 화려한 장식이 어울리지만 엄숙함과 차분함을 위해 화려함을 내려놓았다. 신문을 통해 정전의 영역에 들어서면 101m의 정전 건물이 보이지만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신문을 더 멀리 배치하면 되겠지만, 일부러 한눈에 다 안 들어오는 거리에 문을 내 건물의 크기에 압도당하게 했다. 정전은 다섯 칸에 협칸을 더해 일곱 칸으로 시작해서 열한 칸으로 증축됐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광해군이 11칸의 정전을 완성하고 두 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다. 조상의 사당을 완성했으나 정작 광해군 자신은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정전에 못 들어간 두 명의 군주 중 한 명이 된다. 목조 건축의 증축은 다른 구조의 증축과 비교해 어렵다. 서에서 동으로 증축됐기 때문에 건물의 중심축이 옮겨지며 월대나 남문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중심축을 따라 이동했다. 정전의 증축이 대단한 것이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자세히 보면 기둥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 흘림의 정도가 조금씩 달라 열한 칸의 기둥에서는 배흘림이 관찰된다. 이후에 사용된 기둥은 민흘림에 가깝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518년 조선 왕조를 지키며 지금에 이른 종묘의 진면목을 보려면 5월 첫 주와 11월의 첫 주에 종묘제례를 함께 볼 수 있을 때 가보는 걸 추천한다.
  • 제43회 가야문화축제 18~21 김해시 일원에서 개최

    제43회 가야문화축제 18~21 김해시 일원에서 개최

    경남 김해시는 15일 제43회 가야문화축제를 오는 18일 부터 21일까지 김해시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가야문화축제는 찬란했던 가야문화를 재조명하고 가야왕도 김해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김해시가 주최하고 가야문화축제제전위원회에서 주관해 해마다 개최하는 김해시 대표 축제다. 올해 축제는 ‘찬란한 가야문화, 빛으로 물들다’를 주제로 정해 공식·민속·체험·축제·설치·연계·부대행사 등 모두 44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동안 대성동 고분군 일원에 설치했던 개·폐막식 등 행사 주무대를 올해부터는 수릉원으로 옮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대성동고분군 보호를 위해서다.18일 오후 수릉원 본무대에서 개막제, 구지봉에서 고유제와 혼불채화를 시작하고 오후 4시부터 축제 시작을 알리는 ‘수로왕 행차’가 1시간 여동안 펼쳐진다. 오후 7시30분 본무대에서 식전공연, 개막식, 축하공연, 미디어불꽃쇼가 이어진다. 올해 처음으로 개·폐막식에서 미디어아트쇼 ‘가야이야기’를 선보인다.시는 인도,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국제자매·우호협력도시에서 개막식에 참석해 축제를 관람하고 초청공연을 한다고 밝혔다. 19일에는 수로왕릉에서 춘향대제(도지정 무형문화제 제11호)가 봉행되고, 오후 6시부터 본무대에서 제2회 전국예술경연대회인 ‘슈퍼스타G’가 열린다. 20일 오후 7시 본무대에서 ‘두근두근 가야사’를 주제로 다양한 계층의 패널이 참여하는 인문학 토크콘서트가 진행된다. 축제 마지막 날인 21일 오후 2시부터 김해교육지원청 앞에서 시민과 다문화가정 등 1000여명이 참여해 줄다리기를 통해 화합을 다지는 ‘세계화합 김해줄땡기기’가 열린다. 이어 오후 5시 본무대에서 김해시립청소년 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 김해 출신 가수 등이 출연하는 ‘가야의 봄 음악회’에 이어 오후 6시 폐막식이 열린다. 대성동고분군과 수릉원, 고분박물관, 가야의 거리, 해반천 일원에서 축제기간 가야역사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된다. 해반천에는 캐릭터유등과 LED분수, LED트리 포토존, LED가야배띄우기체험존을 운영해 밤낮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축제기간 전후로 열리는 연계행사도 풍성하다 사회적기업 및 우리고장 우수제품 판매전, 제13회 김해식품박람회, 제15회 가야 차문화 한마당, 2019 경남 찻사발 공모전과 초대전, 가야금경연대회 등이 이어진다. 올해로 25회째를 맞는 가야사 국제학술회의가 19~20일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열린다. 시 관계자는 “가야문화축제는 1962년 첫 개최된 뒤 2000년 가야역사에 바탕을 둔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거듭되면서 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도심 숲 지키자” 성금 모으는 청주시민들

    “도심 숲 지키자” 성금 모으는 청주시민들

    충북 청주에서 숲을 지키기위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전개된다. 이 운동은 보전가치가 큰 자연자산이나 문화유산을 영구 보전·관리하기위해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이를 매입하는 것이다.청주도시공원지키기대책위는 도시공원 일몰제 대상인 구룡산의 민간개발을 막기위해 모금운동을 추진한다고 15일 밝혔다. 이들은 1구좌당 1만원을 받는 방식으로 시민참여를 유도해 100억원 이상을 모은 뒤 구룡산 내 사유지를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대책위는 SNS와 일일호프 등을 통해 모금운동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전국 확산을 위해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와 협약식도 갖기로 했다. 대책위 신경아 집행위원장은 “트러스트 발족식을 아직 안했는데 벌써 수백명이 참여해 300만원이 모아졌다”며 “목표가 달성되면 구룡산 방죽 일대 사유지를 우선 매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얼마나 많은 땅을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 시민들의 간절함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은 녹지가 20%수준으로 떨어지자 국민운동 차원의 트러스트 운동이 이뤄져 지금의 녹지를 확보했다는 게 대책위 설명이다. 대책위는 구룡산을 지키기 위한 1인시위와 현수막 퍼포먼스,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이들이 다양한 방법을 총 동원하는 것은 구룡산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박완희 시의원은 “청주도시기본계획을 보면 동쪽 우암산, 서쪽 부모산, 남쪽 구룡산, 미호천과 무심천 합수부 수변공원, 이렇게 4곳이 4대 대표공원으로 지정돼 있다”며 “시가 우암산과 부모산처럼 구룡산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해 보존하면 되는데 민간개발을 추진해 안타깝다”고 했다. 공원구역으로 지정되면 일몰대상에서 제외돼 개발이 불가능해진다. 박 의원은 “정부가 일몰제 대응방안으로 공원구역 지정을 권고했지만 시청 직원들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재산권침해를 이유로 어렵다는 말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는 도시공원 가운데 구룡산만 매입할 경우 우려되는 형평성 논란과 열악한 재정여건 등 때문에 민간개발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한다. 시는 공원내 사유지의 재산권 확보를 위해 일몰제가 마련됐는데 공원구역으로 다시 지정하면 지주들 반발이 불보듯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시는 구룡산 전체 매입에 200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책위는 도시공원에서 해제되도 산지법에 따라 개발이 불가능한 구룡산 양쪽 능선과 국공유지 등을 제외하면 시가 800억원만 투입해도 구룡산을 지킬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민간개발이 진행되면 사업자는 70%를 공원으로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체납하고 30%는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게 된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종묘는 사직과 함께 왕조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다. 조선시대 한성에 화재가 나면 종묘가 진화 1순위였다. 군주제에서는 왕이 곧 국가이며 이 왕과 왕의 조상을 모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세운 시조의 조상과 그 후손인 왕들을 모시는 곳이 종묘다. 많은 외국인이 종묘를 파르테논과 비교해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는 별칭이 있다. 외국인들이 종묘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종묘제도는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있었으나 중국은 공산화를 가치며 명맥이 끊기고 우리는 종묘와 종묘제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아직도 제례를 올리는 살아있는 정전을 유지하고 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이 있으며 정전에 19분의 왕의 신주가, 또 영녕전에 16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업적이 있다고 판단한 ‘왕 중의 왕’ 19분을 정전에, 태조 이성계의 4대조와 사도세자를 비롯한 추존왕 9분과 재임기간이 짧고 업적이 미약한 왕 6분과 영친왕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조선의 임금 중 폐위된 광해군과 연산군을 당연히 제외된다. 문화재 이전에 전주이씨의 사당이기에 제례는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주관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매장하며 신주를 만들어 혼을 신주에 모신다.종묘는 유학을 통치기반으로 삼은 조선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새왕조가 들어서면 정통성을 위해 종묘를 세우고 전 왕조의 종묘는 패망한 왕조와 운명을 같이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고려의 종묘는 송악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일제가 종묘를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이 위대한 건축물이 남아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한번 완전히 소실되었다. 일제는 종묘를 파괴하지는 안았지만, 조선왕조의 종묘 앞을 유흥가로 만들어 집창촌이 되도록 하였다. 이 집창촌은 ‘종삼’이라는 이름으로 1968년까지 번성하다가 세운상가 개발과 함께 ‘나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30여년 만에 해체되었다. 종삼 집창촌은 오랫동안 소위 먹물들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욕정을 풀어놓던 곳이었다. 어느 원로시인은 명동의 술과 종삼의 여자는 작가들에게 고향같은 곳이라고 말을 했단다. 세운상가는 군부정권의 상징적 도시개발 사업이었다. 일제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화마를 끊기 위해 가로세로의 격자 공지를 조성하였는데 이를 소개지라 하였다. 세운상가는 이 소개지에 종로와 청계천을 잇는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이 소개지 덕분에 을지로, 퇴계로 등 지금 강북의 큰 길들이 쉽게 만들어졌다. 당시 군출신의 서울시장 김형옥이 세운상가 개발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집창촌의 한 여인이 시장임을 몰라보고 놀다가라고 팔을 잡았고 이에 화가 난 김형옥이 종로구청에 들러 집창촌의 해체를 지시했다고 하는 설과, 세운상가의 개발로 정비가 필요했던 지역에 대한 계획적인 정비였다는 설이 나도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군출신 시장의 추진력 덕분에 종묘 앞의 집창촌은 빠른 시간 내에 해체되었고 지금의 종묘 앞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공지로 있었다. 세운상가는 김수근이라는 대한민국 대표건축가의 작품이지만 군부정권의 기형적인 요구로 지어졌기 때문에 김수근 스스로 본인의 대표작품에 넣지 않았다. 종묘 주변은 많은 역사가 있다. 종묘의 한쪽 끝은 창경궁과 이어지는 북신문이 있다. 왕은 비공식적으로 이 문을 통해 종묘를 찾아 선대의 왕들과 많은 마음의 대화를 했었다.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붙어있었지만, 일제가 율곡로를 만들며 단절되었다. 현재 율곡로를 확장해 지하화하고 담장과 문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빠르면 올해 이 복원된 보행로를 따라서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묘 뒤쪽으로는 익선동과 이어진다. 피맛길이라 하면 종로의 뒷길만 생각하지만 익선동길도 창덕궁 창경궁에 따른 피맛길이다. 종묘의 담장을 따라 순라길이 있었다. 순라군이라 하여 지금의 방범순찰대 역할을 하던 군인들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순찰하던 길이다. 지금도 순라라는 이름은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종묘의 정문 앞에는 임금이 행차시 물을 마시던 어정이 복원되었고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누구든 종묘 앞을 지날 때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종묘를 얼마나 신성시 하였는지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종묘를 살펴보자. 종묘의 문은 외대문 이라고 하지만, 원래 창엽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정면은 세 칸이며 가운데 칸은 신문이다. 왕의 신주를 모실 때만 개방하는 문이니 이 문이 열리기를 바라지 마시라. 궁궐의 문과 달리 세 칸의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가운데 신문을 높여 솟을대문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사자의 집이라서 화려함은 없는 단아한 건물들로 축조되었다. 문을 들어서면 박석이 깔린 삼로가 보인다. 삼로중 중앙의 높은 길은 ‘신로’라 하여 산 사람이 딛지 않는 길이고 왼쪽은 ‘어로’라하여 임금의 길이다. 오른쪽은 ‘세자로’다. 신로는 지금도 관람객들에게 밟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다. 어로와 세자로는 지금 주인이 없으니 밟아도 된다. 종묘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신로를 따라 이동하여 정전에 이르는 길이고 하나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궁과 전사청을 거쳐 정전의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르는 방식이다. 신로를 따라 이동하는 방법은 정전과 영녕전의 남문인 신문이 개방되지 않아 평소 불가능하다.두 번째 길을 따라 이동하며 살펴보면 들어가며 좌우에 연못이 있다. 연못의 주 용도는 소방수로 쓰기위해 만들어지나 때에 따라서 정원의 일부로 보는 연못이 되기도 한다. 오른쪽의 연못은 네모난 연못의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섬에는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죽으면 향기만 남는다는 뜻과 제당에 향이 쓰여서 향나무를 심었다 한다. 실제로 다른 향교나 사당을 가도 다른 장소에 비해 향나무가 많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는 일제때 일본의 향나무인 가이스카 향나무를 심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아직도 가이스카 향나무가 많이 보인다.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설에 따라 땅을 뜻하며 둥근 섬은 하늘을 나타내니 땅이 하늘을 품은 연못이다. 못 가운데 하늘은 사후의 세계라 향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우측에 향대청과 공민왕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향대청에는 망묘루가 있다. 루라는 글자가 붙은 건물은 오늘날 피로티 구조와 같이 기둥으로 받혀진 떠있는 마루의 구조다. 주로 전망을 하며 쉬거나 연회를 하는 장소다. 경복궁의 경회루가 대표적이고 남원 광한루 진주 촉석루도 많이 알려져 있다. 망묘루는 건물의 형식이나 위계를 보며 정말 왕이 종묘를 보던 공간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향대청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고 예전에는 근처에 종묘를 지키는 군인들이 머무는 건물도 있었다 한다. 현재 향대청에는 정전안에 모셔진 신위를 재현한 공간과 설명이 있다. 신주는 혼이 머무르는 집과 같다. 밤나무로 만들며 홀을 만들어 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공민왕 신전이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하여 전 왕조에 대한 예로 마지막 왕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일인의 손에 있던 공민왕의 영정이 반납되어 적정한 장소를 찾지 못하다 종묘의 한쪽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삼로를 따라가다가 길이 갈라진다. 신로는 없이 어로만 있는 길을 따라가면 재궁과 이어지고 신로를 따라가면 정전과 영년전의 정문에 이른다. 재궁은 임금과 세자가 제사전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이곳은 세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그나마 왕과 세자가 머무르는 공간이라 격을 조금 높였다. 향대청은 막새없이 앍매흙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나 재궁의 건물은 막새기와를 사용하였고 박공의 측면에는 풍판까지 설치되어있다. 세 건물 중 중앙에 있는 건물은 임금이 머무르는 어재실이다. 이곳에는 왕의 밀랍인형과 용교의라는 의자가 놓여있다. 이 밀랍인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고종이나 순종이다. 이유는 9장복이 아닌 12장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는 12장복을 입고 왕은 9장복을 입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하였고 최초로 12장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12장복은 9장복에 비하여 화려하며 면류관에 구슬을 꿰어 단 유의 수가 12줄이다. 9장복은 류의 수가 아홉줄이다. 어재실의 한옆에는 무쇠로 된 큰 솥단지같은 것이 있는데 이름이 ‘드무’라하며 소방수를 담아두었던 단지다. 왼쪽에는 어 목욕청 건물이 있는데 목욕재개를 하는 곳이다. 왕이 어떻게 목욕을 하였는지 기록이 없어 욕조를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다. 재궁은 정전의 동측 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전사청과 제정이 있다. 전사청은 제수 음식을 준비하던 곳으로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건물이 앉아있다. 당연히 제기고와 찬간이 갖추어져 있고 생물을 도살하는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제례의 음식은 익히지 않은 생물을 올린다. 고기는 소와 양과 돼지고기를 생것으로 올리는데 전사청까지 살아있는 제수용 동물이 들어와 전사청에서 검사를 한뒤 도살되었다. 전사청 앞에 단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찬막단이라 하여 여러 제수 음식을 검사하는 단이고 하나는 성생위라 하여 살아있는 소 등의 제수용 생물을 검사하던 단이다.왕가에서는 소, 양, 돼지를 올렸고 양가에서는 양과 돼지를 올렸으며 민가에서는 돼지만 올렸다. 요즘 가정의 제사에는 소고기 산적을 올리는데 조상님을 왕의 대우를 하는 것인 셈이다. 전사청 옆에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문를 통해 통제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이 제정으로 제사때 쓰는 우물물이니 신성시되고 보호되었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되었다. 임진 왜란때 종묘의 건물들이 모두 불탔지만, 왕들의 신위는 제일 먼저 왕과 함께 피신되었다. 제사에 쓰이는 제기는 가져갈 수 없어 포장을 해서 이 제정에 숨기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배례를 마친 왕과 신하들은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른다. 이 정전 건물이 종묘의 백미다. 동문을 지나면 월대 위로 월랑이 보이고 이 월랑의 기둥 사이로 정전건물 전체가 보인다. 월랑은 정전에 없던 형식을 태종이 만들었는데 마치 학의 날개같이 정전건물은 한층 멋지게 보이게 한다. 월대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장치다.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를 오르면 높은 축위의 공간이 불국이듯 월대는 신의 영역을 상징적으로 구분한다. 월대의 중앙에서 살짝 비켜서 부알판위가 있는데 이는 삼년상을 모시고 신주를 모실 때 정전에 들어가기 전 신주를 임시로 모시는 곳이다. 백미터가 넘는 월대와 정전 건물은 담장 안 어느 곳 에서도 온전히 한눈에 담을 수 없다. 상하월대와 처마, 용마루의 수평선은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킨다. 수평선이 갖는 차분함은 경건함이 절로 우러나게 한다. 열아홉 칸을 구성하는 열주도 수직선이 아니고 수평선의 구성 요소로 보인다. 공간의 구성요소와 규모는 신전으로서 경건함을 갖기에 최적으로 디자인 되었다. 만약 전면의 신문과 담장이 더 물러나서 그곳에서 정전이나 월대가 한눈에 쉽게 들어왔다면 또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원래는 정전이 석실 5간 허실 두 간 합이 7실이었다. 유교의 법식에 4대조를 모시니 태조의 4대조와 이성계를 모시기 위해 다섯 간을 만들도 예비로 두간을 만들었다. 이전의 풍습을 따르면 4대조를 모시니 왕이 한 명 죽게 되면 제일 윗대의 한 분은 신위를 땅에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중국 송대의 별묘기록에 따라 영녕전을 지어 태조의 4대 추존왕을 한 명씩 영년전에 모시고 정조를 정전에 모셨다. 영년전은 4대조가 넘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묘였으며, 정전은 제사를 지내는 제묘였다. 연산군에 이르러 성종이 승하하자 다시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었고 태조를 영년전으로 모셔야 했으나 시조라 하여 불천위로 정전에 계속 모시고 정종을 영년전으로 모시게 된다. 이때부터 공적이 있는 왕은 계속 정전에 모시고 그렇지 못한 왕은 영년전으로 모셨다. 불천위가 있으면 원래는 그 이상의 공적이 있어야 다시 불천위로 모실 수 있었으나 자신의 부친 공적을 높여 불천위로 만드는 왕이 많아졌고 후대에는 그 공적이 미미한 왕조차도 불천위로 정전에 남았다. 명종대에 정전을 11칸으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종묘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때 종묘가 정전 11간에 양 협실 두 간, 영녕전 네 간에 양 협실 세 칸씩으로 복원 되었다. 이후 정전은 동쪽으로 두 차례 네 간씩 증축 되었고 영녕전은 동서 양측으로 증축되어 최종은 현종때 정전 19간 영녕전 16간으로 완성되었다. 증축이 얼마나 정교하게 잘 되었는지 전문가들조차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영녕전은 불천위가 아닌 왕과 추존왕을 모신 곳으로 효심, 또는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별묘다. 원래는 현 왕의 4대조까지만 모시고 나면 인연이 끝났다고 보고 땅에 묻는 것이나 불천위와 이 별묘는 조선왕조의 왕들을 영원히 모시도록 만들었다. 조선왕조가 세계에 유래 없는 긴 시간을 유지한 것에는 이곳 종묘의 공이 크지 않을까 싶다. 5월과 11월의 첫주에는 종묘제례가 시연된다. 이때 연주되는 제례악 역시 세종 때 만들어진 우리 음악으로 서양의 음악인들에게도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시기를 맞추어 가면 건축물로서 세계문화유산과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그때 가 보시길 추천한다. 글 사진: 최세일 한건축 대표
  • 광양시 광양읍 ‘전남도 읍면동 현장행정 평가’ 대상 수상

    광양시 광양읍 ‘전남도 읍면동 현장행정 평가’ 대상 수상

    광양시 광양읍이 지난 11일 전남도에서 주관한 ‘2018년 읍면동 현장행정 평가‘에서 1위로 선정돼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행정의 최일선인 전남 22개 시·군 279개 읍·면·동 중 최고로 공식 인정받아 더 의미가 크다. 전남도는 문화유산·관광시설 관리, 복지행정실천, 주민소통 등 일선행정의 10개 분야 25개 지표를 분석했다. 1차 서면평가, 2차 현장검증, 3차 사례발표 평가를 거쳐 심사가 이뤄졌다. 광양읍은 상사업비 3000만원도 지원 받는다. 광양읍은 선진 안전문화 운동 전개, 아름다운 동네 가꾸기, 훈훈한 공동체 만들기 사업 등 맞춤형 복지 실천과 재해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현장 행정을 활발히 펼쳐왔다. 특히 ‘십시일반 사랑愛 냉장고’, ‘우리 동네 꿈나무 소원 하나 들어주기’, ‘민관협력 사랑愛 집수리’ 등 다양한 시책을 발굴해 소외계층을 위한 따뜻한 복지시책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와 함께 광양읍 동‘서천변을 비롯한 도심 속 공한지와 도로변 유휴 부지를 정비해 사계절 꽃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동네 가꾸기를 연중 추진 지역민과 방문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정홍기 광양읍장은 “그동안 주민들이 노력해 온 결과가 성과를 맺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행정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행정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 읍장은 “주민들과 꾸준한 소통을 통해 ‘다함께 잘사는 행복 1번지 광양읍’을 만드는데 더 힘써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광양시는 2017년 읍면동 현장행정평가에서 광영동이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광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금요칼럼] 선진리왜성의 벚꽃/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선진리왜성의 벚꽃/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여의도 봄꽃축제가 어제 막을 내렸다. 봄이 늦은 우리 동네 파주의 벚꽃도 벌써 끝물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이 펴낸 ‘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에는 벚꽃에 얽힌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오타 히데하루 일본 가고시마국제대 교수의 ‘사천왜성을 통해 본 한일관계’라는 글이다. 사천왜성의 문화재 지정 명칭은 ‘사천 선진리왜성’이다. 이곳에서도 지난달 30~31일 ‘선진리성 벚꽃축제’가 열렸다. 선진리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것이다. 다른 왜성들처럼 해안 구릉에 자리잡았고 부속 항구도 갖추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통양창성(通陽倉城)이 있었다.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나르는 전국 12조창(漕倉)의 하나였다. 조선은 다시 수군기지인 선소(船所)로 삼았다. 오타 교수에 따르면 왜군은 성의 중심부에 석축으로 천수대(天守臺)를 쌓고 위에는 검게 칠한 3층의 천수각을 지었다고 한다. 오사카성 등에서 보듯 망루와 지휘소를 겸하는 다층(多層)의 천수각은 일본식 성을 상징한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구로이타 가쓰미 도쿄대 교수에게 선진리왜성의 조사를 맡겼다. 1933년 선진리왜성은 1933년 부산 구포와 기장 죽성리, 김해 죽도, 창원 웅천과 안골, 순천, 울산과 서생포, 거제 장문포, 양산 물금 증산리 왜성과 함께 ‘고적’이 됐다. 총독부는 이어 왜성을 현창하는 사업에 나섰다. 선진리왜성의 경우 이곳에 주둔했던 왜장 시마즈 요시히로의 후손이 참여했다. 시마즈는 남원에서 박평의와 심당길을 비롯한 조선도공들을 납치해 일본으로 끌고가기도 했다. 왜성 곁에는 조명군총(朝明軍塚)도 있다. 왜란 당시 전사한 조선군과 명나라 지원군의 무덤인데, 일본에는 이들의 신체 일부를 묻은 귀무덤이나 코무덤이 있으니 조명군총은 바로 귀 없는 무덤이자 코 없는 무덤이다. 시마즈 일가는 선진리왜성 일대 땅을 사들여 총독부에 기증하고 성 내부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모든 사람이 즐기는 이른바 만민해락(萬民偕樂)의 공간을 제공해 ‘국민국가 형성’에 기여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왜성과 주변에서는 2002∼2006년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공원화를 추진하면서 왜성 당시의 석축을 상당 부분 되살리고 일본식 성문도 복원했다. 남해안의 왜성 가운데 일본식 건축물을 복원한 것은 선진리왜성이 유일하다. 남해안 왜성 11곳은 광복 이후에도 ‘고적’에 해당하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위를 유지했다. 지금처럼 시도기념물이나 문화재자료로 ‘격하’된 것은 1997년이다. 김영삼 정부가 벌인 ‘역사바로세우기’에 따른 ‘일제잔재 청산’ 작업의 결과다. 경복궁 내부의 총독부 청사를 허문 것도 김영삼 정부 때였다. 개인적으로 ‘비극의 역사도 역사’라는 데 동조해 반대했지만, 그 건물이 사라진 뒤에는 없애기를 백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임진왜란 당시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 왜성에서 왜장의 후손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외치며 심은 벚꽃을 즐기며 축제를 벌이는 시대다. 근대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문화유산이 각광받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군산이 그렇고 목포가 그렇다.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찾은 군산 동국사도 그랬다. 일제강점기 일본식으로 지은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보존가치는 있다. 하지만 최근 새로 지은 천불전까지 대웅전의 일본풍을 닮아 있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어느 쪽은 일본이 남긴 역사의 흔적에 관대한 반면 미디어는 또 온통 반(反)일본적 구호뿐이다. 왜성의 벚꽃이 그저 즐거운 사람과 어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무엇이 옳은지 알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다.
  • [여기는 남미] “마추픽추 돌려달라” 페루 가족, 14년 만에 패소한 사연

    [여기는 남미] “마추픽추 돌려달라” 페루 가족, 14년 만에 패소한 사연

    페루의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마추픽추의 소유권을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낸 페루의 한 가족이 패소했다. 소송을 낸 지 14년 만이다. 9일(현지시간) 페루 대법원은 사발레타 사발레타 일가가 낸 소송에서 "원고 측 주장에 근거가 없다"면서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발레타 사발레타 일가는 1960~1970년대 국가가 아무런 보상비도 지급하지 않고 마추픽추의 소유권을 강제로 빼앗았다며 2005년 소유권 반환 소송을 냈다. 소송에서 사발레타 사발레타 일가가 소유권을 주장한 곳은 현 마추픽추 국립공원 전체 면적 3만5000헥타르 중 2만2000헥타르다. 사발레타 사발레타 일가는 소유권 반환과 함께 그간 국가가 벌어들인 관광수입의 일부를 위로금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일가가 요구한 위로금은 1억5000만 솔레스(페루의 화폐단위), 우리돈으로 약 520억원에 이른다. 소송에서 페루 정부는 사유지였던 마추픽추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적법하게 소유권을 징발했다고 맞섰다. 대법원은 페루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사발레타 사발레타 일가는 잉카 유적이 남아 있는 마추픽추 외에도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는 옛 농지 일부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기각됐다. 페루 문화부 관계자는 "1960~1970년대 농지개혁 때 마추픽추의 소유권 이전이 적법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을 소송 과정에서 완벽하게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지루하게 계속된 소송이 마무리되면서 마추픽추 일대의 주민들은 한시름을 덜게 됐다. 현지 언론은 "마추픽추 일대의 주민들이 혹시라도 국가가 소송에서 패하는 게 아닌가 불안해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페루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이 처음 발견했다. 1983년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73년 만에 개인 지하실서 찾은 필름… 변사·음악·악극 결합 ‘이색 공연’으로 재탄생

    73년 만에 개인 지하실서 찾은 필름… 변사·음악·악극 결합 ‘이색 공연’으로 재탄생

    원판 9롤 중 1롤은 유실…7롤만 복원돼 英영화협회 특별전서 전세계 관객 만나우리가 1934년작 ‘청춘의 십자로’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소장자는 해방 이후 6·25전쟁 직후까지 단성사를 경영한 사장의 유족이었는데, 그는 모친을 통해 이 필름을 전해 받은 후 줄곧 지하실에서 보관해 왔기 때문이다. 당시 무성영화는 인화성이 강한 질산염(Nitrate) 필름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필름이 온습도를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필름 아카이브의 보존고가 아닌 공간에서 70년 이상 버틴 것이다. 2007년 필자를 포함한 한국영상자료원 조사단은 소장자의 자택에서 이 필름을 처음 만났다. 모두 9롤이었다. 1롤은 ‘끝(完)’ 표시만 있는 자막이었고, 본편인 것으로 추정되는 또 한 롤은 밀가루 반죽처럼 엉겨붙어 검색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른바 백화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누군가에 의해 필름 캔이 개봉되어 필름이 밀봉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공기와 만났기 때문이다. 결국 나머지 7롤만 복원에 착수해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버전이 되었다. 유실된 롤에는 줄거리상 영복과 영옥이 시골에서 떠나는 장면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청춘의 십자로’의 원판 필름은 등록문화재(제488호)로 지정되어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특별히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청춘의 십자로’의 가치는 보존에만 머물지 않았다. 1930년대의 무성영화 상연 방식을 재현한 변사공연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변사와 음악, 악극이 결합된 ‘청춘의 십자로’ 무대는 2008년 처음 공연된 이래 가장 최근에는 2019년 2월 BFI(영국영화협회)에서 열린 초창기 한국영화 특별전의 개막식 공연까지 50차례 이상 이어지며 전 세계의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청춘의 십자로’의 발굴과 이를 활용한 이색적인 공연은 무성영화의 존재 가치가 과거에만 머물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스페인 지배와 텍사스 독립, 알라모 전투 역사가 서린 곳

    스페인 지배와 텍사스 독립, 알라모 전투 역사가 서린 곳

    미국 텍사스주에서 휴스턴 다음으로 큰 도시, 샌안토니오(San Antonio). 샌안토니오 여행은 누구나 알라모에서부터 시작한다. 알라모는 샌안토니오에 흩어져 있는 다섯 개의 ‘선교관 마을’(Mission) 중 하나로 유일하게 도심에 있다. 18세기 초 스페인 제국은 자국의 식민지인 멕시코와 가까운 텍사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선교관 마을은 원주민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지어진 대규모 마을 공동체다. 명목상으로는 전도를 내세웠지만 선교사들을 통해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북미 대륙 통치를 확장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이후 스페인은 태평양 해안을 따라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에도 선교관 마을을 세우게 된다. 미국에서 성인(聖人·Saint)을 뜻하는 ‘San’이란 단어가 붙은 지역은 역사적으로 스페인과 밀접하다. 하얀 화강암으로 지어진 알라모엔 붉은 핏빛의 역사가 서려 있다. 외모에서부터 멕시코의 뿌리가 느껴지는 아저씨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알라모를 설명했다. 마침 대포 발사 행사가 열리기에 물었더니 알라모 전투를 재연 중이라 했다. 알라모 전투는 1836년, 186명의 텍사스 민병대가 1800여명의 멕시코군에 맞서 싸우다 3명만 살아남고 전멸한 사건이다. 샌안토니오 상점에 가면 ‘Remember the Alamo’(알라모를 기억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품을 많이 보게 되는데, 바로 알라모 전투 패배 후 나온 말이다. 치욕을 잊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알라모 전투는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었고 1836년 4월 21일 샌저신토(San Jacinto)전투에서 텍사스 민병대가 승리함으로써 텍사스 혁명을 매듭지었다. 알라모 전투는 텍사스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최초의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 교과서에도 비중 있게 실리며, 우리의 임진왜란처럼 종종 영화로 제작돼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다섯 개의 선교관 마을은 샌안토니오강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잡고 있다. 알라모를 제외한 나머지 네 곳은 너른 초원 위에 지어져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을 건물을 구경하면서 200년 전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했다. ‘주민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날랐고, 수로를 통해 농지에 물을 대 채소와 곡식을 길렀다. 수확하면 환기가 잘되는 어두운 창고에 보관해 겨울을 대비했다. 외양간엔 소가 열 마리 정도 있었다. 불을 붙인 양초는 천장에 매달린 촛대에 넣었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 사람들은 성경을 읽었고 성모 마리아상 아래에서 조용한 기도를 올렸다.’나이가 지긋한 미국인 관광객들은 선교관 마을에서 진지했다. 샌안토니오의 선교관 마을은 텍사스 독립의 역사와 건축학적 의의가 인정되어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몰타행 하늘길 열린다…주 3회 운항 합의

    지중해의 숨은 보석이라고 불리는 몰타로 가는 직항편이 신설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국토교통부는 5일 서울에서 열린 한-몰타 항공회담에서 한-몰타 간 여객 주 3회 운항횟수 설정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항공사에서 신청할 경우 한국과 몰타를 오가는 직항편이 주 3회까지 신설될 수 있다. 양국 항공사가 제3국 항공사와 코드셰어(편명공유)에 참여할 수 있다. 몰타는 나라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일 정도로 아름다운 유적과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특별한 신혼여행지·휴양지로 알려지면서 매년 항공수요가 15%가량 급증하고 있다. 현재 국적 항공사 중 취항을 준비하는 곳은 없다. 국토부 국제항공과 신윤근 과장은 “이번 회담에서 마련된 기반을 통해 한국과 몰타 간 직항편이 신설된다면 우리 국민들의 편익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 과장은 “아직 몰타행 직항이 없는 인근 동북아 국가들의 항공수요를 흡수해 우리나라가 동북아 항공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포토 다큐] 높을 것도 낮을 것도 없었네… 우리 집, 우리네 삶

    [포토 다큐] 높을 것도 낮을 것도 없었네… 우리 집, 우리네 삶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에 우뚝 솟아 있는 마천루들의 웅장한 모습,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라 불리는 경주의 천년 역사를 품고 있는 대릉원과 낡은 기와주택단지를 탈피하고 새롭게 태어난 황리단길,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간직한 안동 하회마을의 초가집까지.누군가에게는 지친 일상 속 힐링을 위한 공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꾸리는 삶의 터전이 되었을 집, 늘 곁에 있지만 쉽게 보지 못하는 집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바라보고 소개한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어떤 유물 나올까… 경남, 가야사 유적지 올해 63건 학술조사

    어떤 유물 나올까… 경남, 가야사 유적지 올해 63건 학술조사

    경남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가야사 유적지를 대상으로 올해 63건에 이르는 학술조사를 벌여 어떤 성과를 거둘지 눈길을 끈다. 4일 경남도에 따르면 국정과제인 ‘가야사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과 연계해 올해 국비 43억원과 지방비 52억원을 들여 도내 18개 모든 시·군이 가야사 유적지에서 정밀발굴 등 사업을 실시한다. 사상 최대 예산을 들여 실시하는 데 따라 가야사 규명에 중요한 결실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올해 학술조사 31건은 학술적 가치를 기대하는 ‘비지정 가야유적’을 대상으로 실시될 예정이어서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파악된 경남지역 가야유적은 544곳이다. 국가 및 도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은 43곳에 그친다.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비지정 유적이 많다. 지난해에는 도내 12개 시·군에서 가야유적 학술조사 36건을 진행해 함안군 지역에서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아라가야 왕성지 흔적이 확인됐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가야인의 천문사상을 엿볼 수 있는 별자리 덮개돌이 발견됐다. 창원현동 유적지에서는 국보급으로 나뉘는 배모양 토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도는 올해 가야유적 학술조사 성과를 가야사 연구와 유적복원 정비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복원된 가야유적지의 관광자원화와 가야역사문화 콘텐츠도 적극 발굴할 계획이다. 안재규 도 가야문화유산과장은 “경남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가야유적에 대한 학술조사로 가야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해 가야사가 전설에서 벗어나 역사로 재평가되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울릉도 세계문화유산 추진하면서 독도는 왜 빠지나요

    울릉도 세계문화유산 추진하면서 독도는 왜 빠지나요

    道 “등재 과정서 日 당사국 자처 우려” 시민단체 “포함 안 되면 강력히 저항”경북도가 지형·지질학적 가치 등을 지닌 화산섬인 울릉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독도를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도는 4일 경주 켄싱턴호텔에서 ‘울릉도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과 향후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 앞서 자연, 생태, 지질 등 관련 분야별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울릉도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위원회’(위원장 서영배 서울대 교수)를 발족했다. 서영배 위원장은 “울릉도는 섬 생태나 식생을 볼 때 한국의 갈라파고스(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불리는 섬)로서 울릉도에만 식생하는 특산식물이 있어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세미나에서 박재홍 경북대 교수는 ‘울릉도의 특산식물 사례 분석을 통한 울릉도의 세계자연유산적 가치’ 주제발표에서 “울릉도의 특산식물종 33분류군 가운데 88%가 향상진화(시간 경과에 따라 종의 변형에 의해 일어나는 종분화)의 생물학적 가치를 지녔으며, 이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도는 울릉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국가브랜드 제고와 울릉도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도는 올해 기본용역에 들어가는 등 2023년까지 등재를 완료한다는 구상이다. 도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 당사국의 의견 제시 절차가 있는데 독도를 포함시키면 일본이 당사국을 자처하고 나설 우려가 커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독도단체 등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경중(60) 푸른 울릉독도가꾸기회장은 “경북도가 독도를 스스로 제외하는 것은 ‘독도가 영토분쟁지역’이라는 일본 주장에 힘을 더해 줄 우려가 있다”며 “아예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지 말든지 아니면 당연히 독도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북도가 독도를 빼고 추진하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릉 주민 김모(54)씨는 “국제사회에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 정부 의도를 잘 아는 경북도가 스스로 일본 편을 드는 듯한 행정을 편다”고 비난했다. 안동·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무게 40t·길이 200m 화합·평화의 징검다리

    무게 40t·길이 200m 화합·평화의 징검다리

    조선 중기 시장 활성화로 규모 커져 전통 농촌문화·난장문화 결합 발전 2015년엔 유네스코문화유산 등재 베트남 등 해외팀 참여 국제행사로충남 당진시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는 국내 최대 줄다리기 행사다. 개막이 다가오면서 이처럼 커진 줄다리기 변천사에 관심이 쏠린다. 3일 당진시에 따르면 오는 11일 줄다리기 민속축제가 막을 올려 마지막 날인 14일 본 경기가 펼쳐진다. 줄다리기 줄은 암줄과 수줄이 각각 20t으로 모두 40t에 이른다. 직경은 1m이고 길이는 암·수줄 합쳐 200여m다. 짚단 4만속 안팎을 들여 제작한다. 당초 기지시줄다리기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여느 농촌처럼 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을 막는 마을공동체 놀이였으나 조선 중기부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커졌다. 시장을 뜻하는 지명(機池市)처럼 서울과 남부지역 물산이 오가는 집산지로 사람과 돈이 몰렸다. 게다가 내포지방(충남 서해안 일대)의 교통 요지인 것도 난장이 서기에 제격이었다. 전통 농촌문화에 난장문화가 결합된 것이다. 줄다리기는 시장 흥행에 절대적이었다. 바다와 가까운 곳이어서 여기에 해양문화도 접목돼 줄다리기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름을 날린 예덕보부상도 기지시로 몰려 300년 전부터는 한 달에 장이 12번이나 섰을 정도로 상설화됐고, 줄다리기 행사도 덩달아 커졌다. 특별한 줄 제작술이 필요했다. 고대영 당진시 학예연구사는 “인근 안섬에서 닻줄을 만들던 세줄꼬기 방식을 도입해 만들어 두줄꼬기의 다른 지역 줄보다 튼튼하고 남성적”이라며 “진흙펄 연못을 만들어 줄을 꼬는 줄틀을 보관할 만큼 진화했다”고 했다. 지금처럼 행사가 커진 것은 1970년대 충남도 무형문화재에 이어 1982년 국가무형문화재 75호 지정되면서다. 참가 지역도 송악읍을 벗어나 당진 전역으로 확대됐다. 이후 줄다리기 장소를 시장에서 외곽으로 옮기고 윤년에 열던 것도 매년 개최로 바꿨다. 201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예로 이어졌다. 고 연구사는 “올해 기지시줄다리기는 베트남 등 해외 전통 줄다리기팀도 참여해 국제행사로 거듭난다”면서 “더불어 남북이 축구 등만이 아니라 이 전통 줄다리기를 함께 즐기면서 화합을 다지는 평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2021년까지 지산동고분 세계문화유산 등재”

    “2021년까지 지산동고분 세계문화유산 등재”

    개장 앞둔 대가야생활촌 운영방안 토론 농업인과 만나 6차 산업 발전 의견 나눠 이 지사 “우륵교 통행 문제 대구와 상의 남부내륙철도 성주·고령역사 유치 지원”“대가야의 심장인 고령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관광도시인 안동과 경주에 견줘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고령을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시켜 일자리와 돈이 물처럼 넉넉히 흐르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2일 현장 목소리를 듣는 시군별 소통간담회를 위해 방문한 고령군에서 이같이 대가야 문화관광 활성화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이 지사는 먼저 오는 11일 개장을 앞둔 ‘대가야생활촌’에서 고령군관광협의회 회원들을 만나 운영 방안을 토론하고 건의사항을 들었다. 대가야생활촌은 1500년 전 대가야의 도읍지였던 고령군이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대가야읍 일대 부지 10만 2000㎡에 총사업비 537억원을 투입해 조성했다. 그는 “지산동고분군과 대가야박물관,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등과 연계해 대가야문화벨트를 조성함으로써 고령이 특화된 관광도시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지산동고분군이 2021년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경북도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지사는 6차 산업 발전 방안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1차 산업인 농수산업과 2차인 제조업, 3차인 서비스업이 복합된 게 6차 산업이다. 딸기를 활용한 체험·관광 6차 산업 현장인 ‘봉이 땅엔’ 농장을 찾아 고령 특산물인 딸기 수확 체험을 하고 농업인단체 대표 20여명과 6차 산업 발전 및 애로사항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격려했다. 이덕봉 농장 대표가 “농촌 인력 확보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하자 이 지사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 사업 도입과 농촌인력지원센터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고령군청에서 열린 현장 소통 간담회에서는 각계각층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인탁 고령문화원장은 “고령군 최대 현안인 남부내륙철도 고령역사 유치가 가능하도록 지원해 달라”고 하자 이 지사는 “현재 설계 용역 중이며 그 결과에 따라 성주든, 고령이든 꼭 성사될 수 있도록 도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상용 고령군관광협의회장이 “고령군이 2006년부터 전국 유일하게 운영하는 가야금 전문테마 박물관인 우륵박물관을 도립박물관으로 승격해 달라”는 건의에 대해 이 지사는 “중장기 과제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 지사는 대구·경북 불통의 대명사로 불리는 우륵교도 찾았다. 우륵교는 대구 달성군과 고령군 다산면을 잇는 총연장 1㎞의 강정고령보 위에 건립한 도로이지만 대구시와 달성군 반대로 차량 통행이 7년째 막혀 있다. 다산면 주민 200여명은 박수로 이 지사를 환영한 뒤 “차량 통행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했고, 무거운 표정을 짓던 이 지사는 “대구시와 달성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륵교 차량 통행 문제를 대구경북상생위원회 회의 과제로 어렵게 상정해 놨다. 주민들 불편이 더 초래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글 사진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피란수도 부산’ 세계유산 시민아카데미사업추진…세계유산 등재

    ‘피란수도 부산 유산’을 알리는 세계유산 시민아카데미 사업이 추진된다. 부산시는 ‘대한민국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유산을 알리고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피란수도 부산, 세계유산 시민아카데미’ 사업을 4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세계유산 시민아카데미 사업’은 부산관광공사가 진행하며 피란수도 부산 버스투어 , 피란열차 역사체험 프로그램, 찾아가는 피란수도 부산 ICT 홍보관, 피란수도 부산 역사콘서트, 피란수도 부산 홍보 영상물 제작 등 5개 프로그램이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2017년 12월 문화재청 심의를 거쳐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조건부 등재됐으며, 올해는 피란민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산을 추가하고 전체 유산의 종합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해 조건부 등재를 해소할 계획이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지난 2015년 광복70주년과 한국전쟁 65주년을 맞아 한국전쟁기간인 1023일 동안 피란수도 부산에서의 공공·국제협력 사례를 보여준다. 프로그램별 세부 일정 및 참여자 모집은 부산관광공사 홈페이지(www.bto.or.kr)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곽옥란 시 문화유산과장은 “세계유산 시민아카데미 사업을 통해 시민들에게 ‘피란수도 부산’의 가치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유산 등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문화재와 소통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문화재와 소통

    문화재는 대중 소통의 중요한 대상이고, 문화재 보전이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 활동이다. 문화재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사는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1964년의 ‘베네치아 헌장’에서 2008년의 ‘문화유산 유적지의 해설과 소개를 위한 이코모스 헌장’에 이르기까지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문기구인 이코모스가 채택·발표한 헌장들은 한결같이 대중 소통이 문화유산 보전 과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문화재의 보수나 복원 같은 보전 활동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논란의 불길이 문화재 담당 당국이나 전문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옮겨 붙기도 한다. 보전 방법이 하나로 딱 부러지지 않는 데다 문화재 보호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기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일에서 신뢰를 얻는 첩경은 개방과 소통이다. 과거 음식점의 위생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주방을 고객들이 훤히 바라볼 수 있도록 매장 쪽으로 완전히 개방하는 것으로 어찌 보면 쉽게 해소됐다. 고객들은 주방에서 뜨거운 불길을 마다 않고 열심히 조리하는 모습을 보며 의심 대신 음식과 조리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음식을 즐길 준비를 한다. 최근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문화재 보수·복원 현장에는 안전과 작업 환경을 위해 폐쇄적인 울타리나 가설덧집을 설치한다. 그런데 보수나 복원 작업은 짧아도 몇 달 길면 몇십 년이 걸린다. 그렇게 긴 기간 동안 불투명한 장막 속에서 어떤 일이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온전한 모습의 문화재가 짠 하고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드디어 작업 결과가 공개됐을 때 그 문화재를 접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긴 기간의 작업 과정을 수시로 관찰해 잘 알고 있다면 만족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아이의 시험성적표를 받아들고 결과에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현 단계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임을 아는 부모의 태도가 싸늘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이제 문화재 보전 활동도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투명하게 대중에게 내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완공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보다 최선의 방법으로 진실하게 진행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문화재를 대중과 차단하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은 문화유산이 결과보다 과정임을 잘 말해 준다. 1882년에 첫 돌을 놓은 이래로 한쪽은 사용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공사를 계속한 이 위대한 건축에서 완공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설계자인 가우디의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그야말로 끝나야 끝난 것일 터이다. 2013년부터 이 성당의 건축을 담당한 건축가 조르디 파울리는 2030년이 지나도 장식 요소까지 완성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가족성당의 건축에서 완공이란 마지막 공사 과정의 진행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재 보수나 복원 현장의 울타리나 가설덧집을 투명하게 만들어 작업 과정을 공개하면 대중들은 문화재란 언제나 완성되고 온전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보수·복원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을 바꿀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문화재와 일상적으로 소통하면서 그것의 보전 활동이 문화재에 또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얼마나 흥미로운 볼거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화재 보전 활동을 둘러싼 논란들도 많이 사라지리라. 현장의 작업 과정을 밖으로 보여 주는 것, 어찌 보면 간단한 이 일이 문화재의 보호·관리, 나아가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 골드러시부터 21세기까지…역사 품은 ‘멜버른의 얼굴’

    골드러시부터 21세기까지…역사 품은 ‘멜버른의 얼굴’

    노란색의 플린더스스트리트 역만큼은 멜버른 여행에서 반드시 기억에 남는다.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의 주도 멜버른. 멜버른 사람들에게 “시계 밑에서 봐”라는 말은 플린더스스트리트 역 앞에서 만나자는 의미와 같다. 역 입구에 런던의 빅벤이 연상되는 둥근 시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플린더스스트리트 역은 여행의 중심이자 약속 장소여서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색 바랜 트램이 덜컹거리며 기차역 앞을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21세기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지만 시선을 멀리하면 좀 달라진다. 우아한 유럽풍 건축물 뒤로 번쩍거리는 초고층 빌딩들이 삐죽빼죽 솟아 있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가장 고풍스러우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도시다. 1851년 금광이 발견되기 전까지 멜버른은 낙농업으로 살아온 조용한 지역이었다.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이민자들이 모여들었고 멜버른은 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교통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 1854년에 세워진 플린더스스트리트 역은 가파른 경제발전의 결과물이다. 이때만 해도 헛간 같은 가건물로 만들어진 작은 역이었다. 디자인 공모와 공사를 거쳐 1910년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형태를 완성하게 된다. 대영제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였던 멜버른은 1956년 남반구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할 만큼 번영을 누렸다. 그러면 왜 ‘플린더스’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우리나라의 ‘퇴계’나 ‘세종’ 같은 지명처럼 호주에서는 플린더스라는 지명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플린더스는 호주의 역사에서도 퍽 중요하다. 올 1월 런던 시내 공사 현장에서 매슈 플린더스(1774∼1814)라는 이름이 새겨진 관을 발견했다. 플린더스는 19세기 초 호주의 해안과 섬, 오지 등을 항해하며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국명을 제안한 영국 탐험가다. 플린더스는 아프리카를 최초로 횡단한 유럽인 리빙스턴에 비유해 ‘호주의 리빙스턴’이라고도 불리며 유럽 이민자가 많은 호주에서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다.호주인들은 의미 있는 자연이나 건축에 플린더스의 이름을 붙였다. 애들레이드의 플린더스대학교, 남호주의 플린더스산맥 국립공원, 호주 본토와 태즈메이니아 사이에 있는 플린더스 섬 등. 그중 가장 익숙한 것이 멜버른의 플린더스스트리트 역이다. 골드러시로 시작한 플린더스스트리트 역은 멜버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고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82년에 호주 빅토리아주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정선 아리랑 뮤지컬 ‘아리아라리’ 흥행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세계인들에게 알려지며 인기를 얻는 강원 정선아리랑이 뮤지컬 ‘아리아라리’를 통해 또다시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하게 될 ‘아리아라리’ 4회 공연 예매표가 모두 매진됐다고 21일 밝혔다. 아리아라리는 700석을 갖춘 국립국악원 공연장에서 22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을 시작으로 24일 오후 3시 공연까지 4회 진행된다. 다음달 2일부터는 정선 아리랑센터에서 매월 2, 7일 5일장에 맞춰 상설 공연한다. 아리아라리는 조선시대 경복궁 중수를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정선 떼꾼의 여정과 산골가족의 사랑 얘기를 정선아리랑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서건희 정선군 문화관광과장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국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며 “동계올림픽 문화유산인 아리아라리를 통해 정선아리랑을 국내외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