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화예술계 부패,어떻게 없앨까/임정희 연세대 디자인학부 겸임교수 미학·미술평론가
지난 5월4일 국가청렴위원회는 영상물 등급심의, 각종 문화예술 경연대회 운영, 건축물 미술장식품 설치와 관련된 내용을 주로 한 ‘예술행정분야 청렴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최근 문화예술부문이 지식정보사회에서 중요한 성장 동력이라는 인식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문화자원의 축적이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 현장에는 전문화되지 못한 문화예술행정, 배타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대표성도 담보하지 못한 채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관계를 지속시켜 온 문화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의 폐해가 적지 않다.
예술경연대회를 보자. 작가 등용문 역할을 해야 할 경연대회는 다양성과 창의성 대신 ‘대회맞춤형’인 획일적인 예술경향을 선호한다. 또 서열과 순번에 따른 심사위원들의 나눠먹기식 심사를 관행화하고, 수상자 및 수상기념 공연·전시·연주에 대한 세간의 무관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또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선정을 둘러싼 비리와 수상자들과의 밀착은 음성적으로 심화되어 왔다.
대회 무용론이나 폐지론 등이 거론될 때면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장관상과 같은 고위관직 시상제를 강화하거나, 상금의 상향조정, 시상자 특전 확대 등을 통하여 변화의 요구들을 무마, 왜곡시켰다. 문화예술을 관권에 밀착시켜 실추된 권위를 만회하려는 얄팍한 시도는 예술의 자율적 발전을 저해하고 예술의 권력 종속화를 부추겨 왔다. 대회 입상경력이 임용과 승진 과정에서 오용됨으로써 예술계내 기득권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국가청렴위원회가 개선안 마련을 위해 조사를 벌였던 게임물 등에 대한 등급심의 과정에서 발생한 금품수수 비리, 건축물 미술장식 설치과정에서 건축주-브로커-작가의 유착에 따른 리베이트 관행의 비리들도 예술 경연대회를 둘러싼 비리처럼 이익에 집착하는 구조적이고 전형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미숙하고 관료적인 문화행정도 문화자원 개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수한 문화생산 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 미흡한 문화 현장과의 접근성,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시혜적 태도, 경직된 절차 등으로 인해 조사와 연구는 제외된 채 형식적 행정이 답습되었다. 내실있는 행정을 위해서는 경제, 환경, 복지, 정치, 교육 등 타 부문과의 연계체계를 강화하고, 문화예술 내부의 영역별 차이나 단체간 갈등에 대한 이해와 갈등해소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현실적 모순과 이견은 덮어둔 채 절차적 정합성에 따라 갈등을 봉합하려고 하면 비리는 현실 표면 깊숙이 숨어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투명한 행정, 문화마인드를 갖춘 공정한 행정,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며 전문적인 행정만이 잠재적 문화자원을 창의성의 통로를 통해 현실적 차원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문화예술은 행정이나 문화예술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키우고 나누어야 할 자원이다. 문화는 감성에 기초하고 있으나, 이성 그리고 윤리적 성찰과 더불어서야 비로소 제 가치를 발한다. 문화예술의 특성은 무관심한 창조, 이익에 무관심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종종 ‘이상주의적’,‘자기희생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상상력과 개방적인 창의력에 기초한 무관심한 창조는 주위로부터 인지를 얻게 되면 상징적 가치를 얻게 된다. 또 그 가치는 최종적으로 명예나 재산으로 바뀐다. 인지와 상징의 단계를 생략하고 직거래로 권력이나 경제적 부와 교환할 때 문화예술의 존재론적 특성은 사라지고, 부패하는 것이다.
임정희 연세대 디자인학부 겸임교수 미학·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