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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산업과 관련 새로운 예술의 메카로”

    “디지털산업과 관련 새로운 예술의 메카로”

    “지난 30년 연극· 무용의 메카로 발전한 대학로 시대를 접고, ‘구로 시대’를 열면서 예술위원회가 디지털산업과 관련된 새로운 예술의 메카를 형성하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8일 취임 7개월 만에 기자간담회를 여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며 “취임 후 외부에서 변화를 요청하는 의견들이 많아 대단히 어려웠으나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 위원장은 예술위가 내년에 서울 구로구로 이전하는 것이 2012년 예정된 나주 이전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나주 이전이 유동적이다.”면서 “서울에 예술문화 관련단체가 80%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 예술위 전체를 옮기는 것은 어려울 수 있고, 지방관련 기능을 이전하고, 서울관련은 내버려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기자들이 예술위 공식의견이냐, 개인발언이냐고 거듭 묻자 윤정국 예술위 사무처장은 “예술위는 국가 정책과 결정을 따라야 한다.”면서 “나주 이전이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수습에 나섰다. 윤 사무처장은 “현재 국토해양부와 협의를 통해 예총회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을 매각할 예정”이라며 “이럴 경우 나주 이전 비용인 300억원이 마련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예술위는 1976년부터 사용해 온 동숭동 대학로의 옛 서울대 본관 건물을 문화예술인을 위한 ‘(가칭)예술창조지원센터’ 공간으로 내주고, 이르면 내년 2월 구로구로 이전할 계획이다. 또한 2012년에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나주로 옮길 예정이다. 한편 예술위는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 문화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원로 예술인 지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2월15일 한국화랑협회와 공동으로 사회 저명인사들로부터 미술작품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예술인 사랑 나눔 미술품 경매’ 행사를 열 계획이다. 미술 평론가 출신인 오 위원장은 “1970~80년대에는 동양화 하는 화가들이 여름이면 부채에 그림을 그려 보내줘 여름 더위를 쫓는 등 풍류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관습이 사라졌다.”면서 “그동안 받은 그림들을 여기저기 기증해 그렇게 고가 작품은 없다.”면서 자신도 소장품을 내놓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구로구, 문화예술밸리로 거듭난다

    구로구, 문화예술밸리로 거듭난다

    ‘문화·예술 중심지로 거듭나려는 구로구의 발걸음이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구로구는 문화예술인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옛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구로동 이전을 위한 업무협약 양해각서(MOU)를 1일 교환한다고 31일 밝혔다. 구로구는 지난해 7월 예술교육기관 지원을 담당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지역에 유치한 데 이어 또 하나의 ‘쾌거’를 이뤄냈다. 앞서 지난해 초에는 구로문화재단과 아트밸리예술극장의 문을 열었다. 문예위가 대학로 동숭동에서 구로동으로 이전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1970~80년대 굴뚝산업으로 대변되던 구로구가 서남권의 문화 중심지로 확실히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대학로처럼 문화예술 중심지로 부상할 수도 있다. ●동숭동에서 구로동 시대로 1976년 동숭동에 자리잡은 문예위에도 구로동 이전은 30년 넘는 대학로 시대의 폐막을 의미한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상징되던 예술인들의 공간도 이름만 남는다. 문예위는 가난한 문인과 화가, 연극인들의 메카로 알려진 옛 서울대 본관 건물을 빌려 문화예술인 지원사업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꾸려왔다. 1973년 문화예술진흥원으로 출범한 뒤 2005년 문화예술인이 주축인 자율기구로 변신했다. 현재 3실8부1단에 117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호신 문예위 부장은 “문예위가 대학로에 둥지를 틀며 소극장 130여개가 개관해 유례없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성장했다.”면서 “문화 불모지라는 이미지가 강한 구로지역도 변화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구로구는 구로동에 신축되는 다목적문화센터 공간을 문예위 청사로 제공할 예정이다. 대신에 문예위는 올해 말부터 마로니에 여성백일장, 문화의 달 행사, 예술 순회프로그램 등 다양한 사업을 구로구에서 실시한다. 1일 협약식에는 이를 기념해 6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한다. 서울레이디스싱어즈 등의 음악공연도 펼쳐진다. ●첨단이 접목된 문화예술클러스터 변신 구로구는 현재 580여석 규모의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과 신도림동의 테크노마트 공연장 등 문화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2012년까지 디큐브시티 뮤지컬 전용극장과 돔구장이 들어서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예술공연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또 문예위와 문예교육진흥원 유치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 확보도 가능해졌다. 구로동~신도림동 일대가 대학로에 버금가는 문화예술 거리로 탈바꿈하면, 산업공단에서 디지털단지, 문화예술밸리로 거듭나는 기나긴 여로를 마무리하게 되는 셈이다. 양대웅 구청장은 “문예위가 입주할 다목적 문화센터에 다른 문화예술단체들의 입주도 유도할 계획”이라며 “문화예술기관들이 구로에 집중되면 문화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로구는 앞으로 구로동 일대를 디지털밸리의 생명기술(BT)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문화예술 클러스터로 조성할 방침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아마추어 예술인에 무한도전 기회

    영등포구는 주민의 문화참여 기회를 늘리고 아마추어 문화·예술동호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다음달 9일까지 지원을 원하는 동호회를 모집한다고 26일 밝혔다. 지원 분야는 음악, 무용, 미술 등 공연이나 전시가 가능한 분야다. 구는 지하철 9호선 역사안의 문화공간과 사회복지시설 등에서의 전시 및 공연 등을 통해 문화예술 동호회의 발표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원사업에 선정된 동호회는 최대 150만원의 활동비를 지원받게 된다. 대상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문화예술 동호회로 공공기관 소속단체, 영리 목적의 동호회 등 전문 예술인들의 단체는 제외된다. 학교에서 인정한 중·고교 청소년 동아리의 경우 그룹 대표가 될 수 있는 지도교사를 1인 이상 지정한 뒤 지도교사의 추천서를 제출해야 한다. 지원단체 선정은 ▲동호회 구성 및 활동실적 ▲악기 동호회 연주 모습 ▲사업계획의 충실성 ▲기대 성과 등에 대한 심사를 거쳐 이뤄진다. 특히 소외계층의 문화복지를 위한 문화나눔 활동에 대해서는 우선 지원할 계획이다. 개별 통지되며, 구청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원을 원하는 단체는 구청 문화예술팀(2670-3144)을 방문하거나 또는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한권직 문화체육과장은 “문래동 철재거리 등 문화예술인들이 자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문화공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이번 지원사업도 지역의 문화 역량을 높이기 노력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광장] 장자연 죽음과 동방신기의 반란/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장자연 죽음과 동방신기의 반란/김성호 논설위원

    연예인의 죽음이 부쩍 늘고 있다. 가수 유니와 배우 정다빈의 자살, 사업자금 압박으로 자살한 한류스타 안재환, 안재환 죽음 이후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 간 최진실, 그리고 장자연…. 어느 죽음치고 애석하고 안타깝지 않은 것이 있을까. 하지만 장자연의 죽음은 스타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넘어 ‘약자의 희생’ 측면에서 애틋함을 더한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장자연이 죽기 전 남긴 비망록. 원치 않는 접대 술자리 강요와 동석, 성상납까지 암시하는 메모속 고통의 기록들은 파문을 일으켰고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렇고 그렇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공공의 기록으로 현실화한 순간.메모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수사의 초점은 관계자들에 맞춰졌고 덩달아 의혹도 부풀려져만 갔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물결이 전국을 휩쓸던 지난 19일, 1년 넘게 끌던 장자연 사건이 마무리됐다. 소속사 전 대표와 전 매니저가 불구속 기소되고 강요죄 공범 혐의로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드라마 PD며 전직 언론인 등 피의자 12명은 무혐의 처리됐다. 굴욕적인 연예인의 입장과 사생활 침범의 실상이 사실상 베일에 가려진 셈이다. 장자연 사건의 종결 이후 ‘연예인 표준계약’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공시하고 권고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를 둘러싼 불협화음이다. 계약기간을 7년으로 한정한 데다 연예인이 항상 자신의 위치를 소속사에 통보하고, 모든 활동을 소속사의 승인·통제 하에 실행토록 한 종전 관행을 뺀 표준계약이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크다. 약자인 연예인이 기획사에 표준계약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우려이다. 인기 아이돌스타 동방신기의 세 멤버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벌이는 법정싸움도 불공정계약에 따른 문제제기이다. 동방신기는 ‘SM측과 맺은 계약기간이 사실상 종신계약인데다 수익배분도 불공정했다.’며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SM측은 ‘해외진출을 계획하는 가수는 오랜 계약기간이 불가피하며 수익배분도 멤버들이 인정했다.’며 맞섰다. SM측은 특히 동방신기 멤버들의 화장품 사업투자는 전속계약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동방신기 팬 12만여명은 ‘노예계약에 반대한다.’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일간지에 광고까지 냈다. 장자연이 죽음으로 불공정계약을 고발했다면 동방신기는 법에 호소한 정면돌파로 보인다. 법원은 일단 양측의 ‘원만한 합의’를 유도했지만 본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종신계약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인격권,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을 돌려달라는 동방신기. 그리고 ‘13년 장기계약은 연예산업 특성에 따른 것’이라는 SM측.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파문은 확산될 조짐이다. 문제는 표준계약의 재정비다. 연예제작자들은 ‘현실성 없는 계약’이라며 ‘수용불가’ 입장이고 연예인은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양측이 근본적으로 합의한 타협점을 찾아 강제성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매니지먼트 등록제나 표준계약서 의무화를 담은 엔터테인먼트산업 관련법안이 빨리 마련돼야 하는 까닭이다. ‘연예인은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지배적 시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장자연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동방신기의 반란(?)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5) 명동예술극장

    [테마 스토리 서울] (5) 명동예술극장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씨에게 명동예술극장은 ‘친정’ 같은 곳이다. 그는 극단 활동을 하던 친오빠의 도시락을 싸들고 명동예술극장을 드나들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 무대를 가진 박씨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960~70년대 한국 공연예술의 요람인 명동예술극장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이는 박씨뿐만이 아니다. 당시 명동은 전국의 멋쟁이들이 모여들던 문화예술의 1번지였고, 그 중심에 명동예술극장이 있었다. 유치진, 이해랑, 오태석 등 쟁쟁한 극작가와 연출가는 물론 김진규, 박노식, 백성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 갔다. 명동예술극장은 1936년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명치좌’란 이름으로 세워졌다. 당시에는 바로크 양식의 3층짜리 석조 건물로 총객석 수는 1178석이었다. 해방 이후 서울시 공공극장이라는 뜻의 ‘시공관’을 비롯해 국립극장, 국립극장 예술극장으로 이름이 바뀌며 오페라, 연극, 무용, 여성국극,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러나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고 2년 뒤 대한투자금융에 건물이 매각되면서 한국 문화예술 심장부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됐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명동국립극장을 되살린 이들은 평범한 주변 명동 상가의 상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이었다. 상인들은 1994년 금융회사에서 극장부지에 신사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명동 옛 국립극장 되찾기 복원 운동에 돌입했다. 이후 외환위기로 금융회사가 부도 나 건물이 법원 경매에 넘어가자 이들은 정부에 부지를 매입해 건물을 복원시켜 줄 것을 건의했다. 당시 김장환 명동상가번영회장 등은 해당 판사를 직접 찾아가 문화관광부에서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명동 지역 부동산 40여곳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다른 곳엔 중개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4년 5월 정부는 감정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부지를 매입했고, 지난 6월5일 약 3년 만의 공사 끝에 마침내 34년 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명동예술극장은 558석 규모의 연극 전용 중극장으로 건물 외관의 3㎜ 페인트를 벗겨내고 바로크 양식의 외관을 그대로 복원했다. 또 무대와 객석 간 거리를 최대 16m 이내로 좁히고, 배우들의 품에 쏙 들어오는 듯한 말발굽형 객석으로 집중도를 높였다. 50~60대 관객들은 23일 소설가 최인훈의 첫 희곡 작품이자 박정자·정동환 주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관람하기 위해 객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찬란한 ‘명동 시대’를 추억하며.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세계 문화예술 올림픽 9월의 제주 달군다

    세계 문화예술 올림픽 9월의 제주 달군다

    오는 9월 제주가 전세계 문화예술인들의 불꽃 튀는 경연과 축제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문화예술올림픽을 표방한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조직위원장 이종덕)가 그 무대다. ‘자연과 더불어’를 주제로 9일부터 15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신산공원 등지에서 6개 영역 18개 종목 예술경연과 비경연 프로그램 등으로 꾸며진다. 음악, 공연, 시각, 언어, 건축 등 모든 문화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보기 드문 총체적 예술제전이자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국제적 예술교류의 장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직위원회 측은 40여개국 15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델픽대회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에는 신에게 바치는 두 가지 제전이 있었다. 하나는 전쟁의 신 제우스를 위한 스포츠 경연인 올림픽(Olympic)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 바치는 예술제전 델픽(Delpic)이다. 올림픽보다 한 해 앞선 기원전 582년 그리스 성지 델피에서 시작돼 기원후 394년에 막 내린 델픽은 올림픽처럼 4년마다 한 번씩 열렸고 우승자에겐 월계관이 수여됐다. ●6개 영역 18개 종목 40여개국서 1500명 참가 1600년 동안 맥이 끊겼던 델픽대회는 1994년 독일인 크리스티안 키르슈에 의해 현대적으로 부활했다. 18개국이 참여해 국제델픽위원회(IDC)가 출범했고, 6년 준비 끝에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초대 대회가 열렸다. 2회 대회는 2005년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2005년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상만 전 고양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주축이 돼 한국델픽위원회(KDC)를 창설했고, 이듬해 IDC총회에서 3회 대회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현재 IDC 참가국은 36개국이다. 델픽대회의 특징은 경연과 비경연 프로그램이 함께 열린다는 점이다. 경연 프로그램에선 악기, 노래, 연극 등의 기예를 겨뤄 우승자를 가렸던 고대 델픽처럼 각 분야별 참가자들이 예술적 기량에 따라 메달을 수여받는다. 특이한 점은 경연 부문의 종목이 기존 국제 대회와 차별되고, 매 대회마다 채택 종목이 달라진다는 것. 이를테면 올해 ‘음악 및 음향예술’ 분야는 1현·2현 악기, 더블리드 목관악기, 타악기(개인·단체), 아카펠라로 나뉘고, ‘공연예술’은 탈춤, 즉흥무용, 즉흥마임, 그림자연극으로 구분된다. ‘공예디자인·시각예술’ 분야에선 조각, 드로잉, 칼리그라피, 그래픽스토리텔링, 다큐멘터리 제작, 북 아트 종목이 개최된다. ●각국 문화 특성 살린 종목추가 금·은·동메달 수여 대회마다 개최국의 문화적 특성을 살린 종목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이번 대회에선 제주도의 환경을 고려한 돌담쌓기가 ‘소통과 사회예술’분야의 종목으로 채택됐다. 각 종목별로 2명 이상의 국내외 심사위원이 평가를 하고, 결과에 따라 금·은·동메달을 수여한다. 경연 참가자들은 각 국가별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참가할 수 있다. 반면 비경연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축제와 화합의 장이다. 유명 예술가들이 워크숍과 강연을 하는 마에스트로 프로그램과 샤머니즘 축제, 시낭송 축제, 참가 대륙의 날 등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행사들이 다채롭게 열린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제주의 자연경관을 소개하는 제주 사진전과 올레길 걷기 행사 등도 마련된다. 제주세계델픽대회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협조 미비로 지난해 연말에야 뒤늦게 조직위원회가 구성되고, 지난 5월엔 유홍준 조직위원장이 갑자기 중도사퇴하는 등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이종덕 조직위원장이 6월 초 새로 부임하면서 조직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선희 전 국립극장장이 예술총감독을 맡았고 김철호 전 국립국악원장,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장, 김영준 도시건축 대표 등이 분야별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新아시아시대-한국의 미래] 황석영·김지하 구상 재구성

    [新아시아시대-한국의 미래] 황석영·김지하 구상 재구성

    동북아연합은 한국, 중국, 일본이 전세계의 중심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특히 서구열강이 제국주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넓히면서 수백년간 변방으로 밀려났던 아시아 지역의 부활에 한국이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동북아연합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일본과 13억 인구를 기반으로 언젠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인정받는 중국에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그 힘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같은 연합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상하기 힘들다. 세 나라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할뿐더러 이 지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들 사이에 끼어있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논의의 진전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동북아 연합은 ‘아세안과 같은 경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되어야 한다.’ 등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거론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북아 연합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문학계에서 진보진영을 대표했던 김지하(69·작가, 동국대 석좌교수)씨와 황석영(67·작가)씨다. 이들은 풍부한 작가적 상상력을 펼치며 정치·경제적 문제를 뛰어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북아 연합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다. 생명·평화를 기반으로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말하는 김씨와 남·북한과 몽골을 중심으로 한 ‘알타이 문화연합’을 주창하고 있는 황씨의 주장은 ‘연합’이라는 대전제에서는 닮았지만 방법은 판이하다. 김씨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문화’를, 황씨는 ‘민족성에 기반한 공감대’를 연합의 핵심으로 생각한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은 본인들의 주장이 학문의 영역으로 승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현실에 참여할 수 있는 실제 영역에서 평가되고 논의되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주장은 국내·외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하고 바뀐다. 황씨는 “큰 틀에서 우리 민족의 문제를 풀어 보자는 희망적 시각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동북아 연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지난 세월동안 내가 펼쳐왔던 동북아 문화연대론은 희망이자 긍정적인 생각의 발로였다.”면서 “북한 문제를 대하는 오바마의 강경한 정책과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를 지켜보면 당초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2000년대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와 기고, 학술대회 등에서 주장해온 동북아 시대의 의미와 구상을 재구성해 봤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황석영씨의 주장 “친(親) 한국적인 국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황석영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동북아 연대 전도사’다. 황씨가 주장해온 한반도와 유라시아 연합 구상은 최근 ‘알타이 문화 연합’과 ‘몽골+2코리아’로 구체화됐다. 특히 황씨의 이 같은 구상이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신아시아 외교’와 일치하면서 황씨는 이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황씨가 동북아 연대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은 그의 국제적인 인맥에서 나온다는 해석이 많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몽골의 문화계 인사들과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해 왔으며 미국이나 유럽 학자들과도 폭넓게 교류해 왔다. 실제로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황씨에 대해 “한국 문단에서 노벨상에 근접한 유력 후보 중의 하나로 범세계적인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가장 세계적인 구상을 할 수 있는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황씨의 알타이 연합 개념은 민족적인 동질성에 기반하고 있다. ‘몽골의 한 유력 학자가 한글을 자신들의 문자로 수입하자고 제의할 정도로 민족성이 친밀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황씨의 주장이다. 이를 발판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6개국과 중국, 일본까지 포함하는 ‘정치적 컨소시엄’이 바로 ‘알타이 연합’이다. 황씨 역시 이 같은 일이 손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들고 나온 개념이 사전 정지 단계인 ‘알타이 문화 연합’이다. 문화예술인과 학자가 앞장서 알타이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서구식 근대 문명의 대안도 찾아보는 작업을 거치면서 서서히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씨의 이 같은 구상은 그가 참여한 ‘한·중 문학인대회’나 현재 계획 중인 ‘알타이 국제 학술·문화 행사’를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 황씨는 참여하는 국제 모임마다 동북아 작가들끼리 거주지를 맞바꿔 생활하고 작품을 쓰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을 제안하고 있다. 그의 구상에는 동북아 연대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도 담겨 있다. 남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몽골의 광대한 땅에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해 농사를 짓자는 것이다. 그는 “광활한 토지에 옥수수, 밀, 콩 등을 심으면 북한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남한은 이들 작물의 부산물에서 무공해 연료인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몽골+2코리아’ 구상이다. 동몽골의 개발대상 농지는 400만㏊로 남한 경작지 120만㏊의 세배가 넘는다는 것이 그의 추산이다. 이에 대해 “이것이 바로 한국의 진보진영이 꿈꿔왔던 ‘느슨한 연방제’”라면서 “남북관계가 풀린다면 곧바로 동북 중앙아시아 연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황씨의 또 다른 구상인 ‘유라시아 평화열차’는 남북 철도 연결을 좀더 확대한 개념이다. 파리에서 출발해 서유럽, 동유럽을 거쳐 압록강과 서울을 잇는 유라시아 평화열차가 실제 연합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김지하씨의 주장 황석영씨의 ‘알타이 연합’이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데 반해 김지하씨의 ‘동북아 문화연대’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 개념 자체도 추상적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듣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난해한 용어들이 등장하고, 이미 사멸한 것으로 간주돼 역사책 속에서나 다뤄지던 동학사상도 서슴없이 끌어낸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정치학자나 사회학자처럼 현안을 분석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최대한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김씨만큼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과 연합에 대해 고민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평가한다. 특히 실질적이고 당면한 과제인 개념을 역사 속의 사상이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김씨가 처음부터 동북아 문화연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1980년 7년간의 옥고를 마치고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이후 그가 처음에 들고 나온 화두는 ‘생명’이었다. 10년 넘게 홀로 생명의 길을 모색하던 김씨는 유라시아 여행을 통해 고조선 시대의 ‘신시(神市)’ 정신이 중앙아시아 국가에 남아 있다는 데 주목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상징하는 상생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김씨의 구상을 본격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세계생명문화포럼으로 이어져 전세계의 생태학자와 환경운동가, 사상가, 문화이론가들이 참여해 생명담론을 실천하기 위한 대안적 사회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의 구상이 학자들의 학설과 다른 점은 현실의 변화와 긴밀하게 교감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대응이 본격화되자 “동아시아 고대사의 르네상스가 세계적 문화 대혁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한반도와 동북아는 기존 세계를 지배해온 유럽의 생태학, 생물학의 한계를 넘어 우주적 생명학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새 문화로서 풍류(風流), 새 정치로서 화백(和白), 새 경제로서 신시(神市)를 재창조해 민주·자본주의 정치·경제와 이중적 교호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때문에 상고사(上古史)와 동학정신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상을 기저에 갖고 있는 한국민이 새로운 시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본격화된 촛불시위는 김씨에게 한국사회에서도 풍류, 화백, 신시 등 세 가지 현상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는 증거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는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거대한 정치·경제·문화·사상적 대변동이 오는데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상·철학적 대응이 시급하다.”면서 “초창기의 순수한 촛불시위에서 보여줬던 집단 지성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 동북아 문화 르네상스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만 김씨의 주장이 동학의 예언론적 사고에 상당부분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주장이 확산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씨줄날줄] 메세나 특별법/김성호 논설위원

    기업은 이윤 창출을 궁극이자 원초적 목표로 삼는다. 그런 생래의 특성을 갖는 기업이 가시적 효과없는 투자와 비용을 꺼리는 건 당연하다. 은근하고 긴 터울의 속성을 갖는 문화예술에야 오죽할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예술분야는 전통적으로 기업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건 즉각의 이윤을 넘는 특장을 뒤늦게 발견하고부터다. 시대의 보편정서와 공통가치를 담는 문화의 힘이 단기의 물리적 현실이익을 뛰어넘는다는 가치의 발견이다. 유무형 문화유산을 앞세운 강국들에서 시작된 문화산업이 굴뚝산업을 능가하는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각광받는 게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단기의 가시적 이윤보다 훨씬 소중한 인류보편의 미덕과 장기의 부가적 효과를 갖는다는 문화예술. 그리고 하이에나처럼 이익을 좇아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기업.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처음 시작된 게 바로 메세나다. 1967년 미국에서 시작된 기업예술후원회가 효시로 한국에선 1994년 발족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를 처음으로 삼는다. 150여개 기업들이 가입해 ‘1기업 1문화운동’이니 문화예술인 후원, 메세나대상 시상 등을 꾸준히 벌여왔고 이젠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액이 6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등 629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다. 전년도 대비 11.5%나 줄었다고 한다. 대기업이 출연한 문화재단 지원이 전체의 30%나 된다니 군소단체나 개인이 받는 지원혜택은 여전히 가뭄의 단비 격이다. 메세나의 지원이 없었다면 그나마도 기대하기 힘든 열악한 상황. 물론 경제불황 탓이 크다. 지금 추세라면 기업들의 지원이 더 위축될 게 뻔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간접지원보다 메세나협의회를 통한 기업의 도움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문화예술계는 입을 모은다.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준다면 문화예술계를 향한 기업의 기부와 지원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메세나협의회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추진중인 메세나특별법(가칭) 제정에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연예인 전속계약 7년 못넘는다

    사생활과 경제권 침해 등 연예인에 대한 연예기획사들의 횡포를 막을 표준계약서가 처음으로 제정됐다. 지난 3월 일어난 탤런트 장자연씨 자살 사건이 연예계 공정질서 확립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며 이번 표준계약서 마련에 촉매 역할을 했다. 장씨의 비극이 연예계 정화에 큰 밑거름이 된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대중문화예술인(연예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연예산업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가수 표준전속계약서’와 ‘연기자 표준전속계약서’ 2종을 심사했다고 밝혔다. 계약서들은 각각 연예제작자협회(가수 부문)와 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기자 부문)의 심사청구를 통해 마련됐다. 우선 연예기획사들은 연기자와 7년을 넘겨 전속계약을 할 수 없다. 지나친 장기계약은 연예인이 다른 기획사로 옮길 기회를 빼앗고 기획사측과 불필요한 분쟁과 마찰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수는 명시적인 계약기간 제한은 없지만 7년이 넘으면 계약해지를 주장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해지를 통보한 이후 6개월 뒤에 계약이 종료된다. 단, 해외활동을 위해 7년 이상 계약 존속이 필요한 경우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별도 합의를 할 수 있다. 공정위는 “대형 연예기획사는 연예인 훈련기간과 투자액 회수기간을 고려해 10년 이상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중소 기획사의 시장 진입을 막아 경쟁을 제한하는 폐해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기획사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는 조항들을 넣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예인에게 항상 자기 위치를 기획사에 통보하게 하거나 사생활 일체를 미리 상의해 기획사의 지휘감독을 따르도록 하는 조항 등은 사라진다. 기획사가 연예인에게 인격권 침해행위 등을 요구하면 연예인은 이를 거절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약해지나 손해배상 청구도 할 수 있도록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기증문화운동을 실천하는 화상(畵商)

    [그의 삶 그의 꿈] 기증문화운동을 실천하는 화상(畵商)

    부산미술관 로비에는 낯익은 두상(頭像)이 하나 전시되어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역사상 가장 많은 미술품을 기증한 이의 예우로 시립미술관측에서 제작, 전시한 것이다. 조각가 이영학 씨가 제작한 이 두상의 주인공은 부산공간화랑 대표 신옥진(62) 씨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현존 인물의 상(像)이 세워지는 건 아주 파격적인 사건이다. 그만큼 부산시립미술관이 최다 기증자에게 최고의 ‘답례’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립미술관 전체 기증작 700여 점 중 신 대표가 기증한 작품은 모리스 위트릴로의 <성 레오나르도 교회> 등 서양미술사의 주요 화가와 일본 근대 미술 거장, 국내 유명작가의 작품을 총망라한 총 313점에 이른다. 그는 미술품을 상업적인 이윤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대중과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많은 작품을 기증한 것이다. 부산공간화랑 대표 신옥진. 그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생업으로는 그림을 유통하는 화상(畵商)이지만, 현역 화가이면서 미술품 감정위원이고, 부산의 권위 있는 미술상(美術賞)의 운영자이면서 다양한 예술품 기증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순의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예술적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문화생산자이다. 그에게 대뜸 “선생은 여러 수식어 중에 자신이 무엇으로 불리면 좋겠습니까?” 라는 물음에 “시인으로 불렸으면 영광이겠다”는 답이 바로 나온다. “예술 영역 중에서 시가 예술의 본질이자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그림이나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나면 ‘아! 시적이다’라는 감탄사가 먼저 나오잖습니까? 그만큼 시는 사람의 영혼을 뒤흔드는 예술의 정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큰 욕심이고 무리”라며 “아직 그 길은 멀고 요원하다”는 말로 끝까지 겸손함을 잊지 않는다. “미술작품 기증을 많이 하셨던데요?” “총 600여 점 정도 되는 것 같군요. 부산시립미술관에 300여 점, 경남 도립미술관 200여 점, 부산박물관 30여 점, 그 외 밀양박물관, 전혁림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에 기증을 했습니다.” 미술관 예산으로는 사기 힘든,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예술가치가 높은 작품을 기증해 그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증의 동기를 물었다. “애초 화랑을 시작할 때 문화활동의 한 과정으로 운영했기에 그 연장선상에서 시작이 된 거지요. 처음에는 평생 살아온 지역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기증을 결심 했었지만, 기증문화가 더욱 활성화 되어 기증도 문화활동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증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에서 ‘신옥진 기증 작품전’이 열리고 있기도 하다. 그의 대외직업은 공간화랑 대표이다. 이 화랑이 미술계의 ‘신옥진’을 있게 했고, 부산 미술계가 변화하는 계기가 된 곳이다. “1975년부터 시작했으니까 34년째군요. 그 시절 동양화가 90% 소비될 시절이었는데, 저는 서양화전문화랑을 열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최초였죠. 사실 화상으로서 그림을 사고파는 밥벌이보다는, 문화활동 공간으로써, 문화예술인들 교류의 장으로써의 역할이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문화예술인들과의 폭넓은 교류와 문화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럼으로 인해 부산과 중앙 미술계와의 괴리감을 많이 해소시켰다. 중앙 유명 작가들의 초대전 유치와 부산작가와의 교류 등에 힘을 쏟아 미술계의 일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부산미술계에 끼친 영향이 많으실 텐데요?” “아이고,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먼저 손 사레를 친다. 그래도 부산의 대표적 화랑 대표이면서 큰 품의 미술품 기증자인데 싶어 다시 물었다. “한국화랑협회 초대 감정위원장으로 각종 옥션에서 미술품을 감정해 왔기 때문에 부산에서는 위작이 거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점과 부산 화가들의 작품교류와 유통이 활발해졌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질문에 대한 그 짧은 대답에서 큰 울림이 들린다. 그의 건성건성 대답에서도 그가 해왔던 일들에 대한 진정성이 가득 묻어 있기에 그렇다. 그는 부산청년미술작가상을 제정한 운영자이다. ‘부산청년작가상’은 ‘공간화랑’에서 주관하는 ‘될 성 부른’ 작가들을 발굴하는 꽤나 권위 있는 미술상이다. 1989년도에 제정했으니 20년이 훌쩍 넘었다. 첫해 예유근 화가(부산미술협회 부이사장)를 시작으로 올해 설치미술가 김성철 씨까지 수상자를 배출했다. 부산청년미술작가상은 청년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 발표의 기회를 부여하는 부산미술계의 권위 있는 상. 그래서 신예작가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영광의 상이라 할 수 있다. “부산 최초의 상이다 보니 다른 미술상 제정에 영향을 준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것이죠. 좋은 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부산의 젊은 작가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는 얼마 전 시인으로도 등단했다. “시전문잡지 《심상》 3월호로 등단이란 것을 했습니다. 참으로 영광이지요. 서울신문에서 기자밥도 먹고 학창시절 학원지 등에 시를 투고도 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는데 나이 육십이 넘어 이루게 됐습니다.” 미술계의 거물급 인사가 굳이 문단의 말석에 앉으려 했던 이유는 뭘까? ‘절대 명예욕 때문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인생의 갑자를 새로 시작하는 회갑을 지나면서 새로운 꿈을 다시 한 번 꾸는 거죠. 내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가 문인들과 함께한 세월은 거의 화랑을 연 시점과 같다. “말석에서 김춘수, 전봉건 선생의 심부름도 많이 했어요. 요즘도 허만하, 김규태 시인과도 교류가 있고요. 문단의 신인으로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가다. 그의 작품에는 늘 아이들과 초록의 물고기나 게가 등장한다. 화면 가득 환하게 웃는 아이들과 초록의 자연이 숨을 쉬고 있다. 그래서 싱그럽고 풋풋함을 상징한다. 철과 시멘트의 메마르고 단절된 도시적 공간에서 ‘자연과 인간성 회복’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작가다. 그래서 그는 자연과 닮았다. 그에게 화가로서의 자신의 작품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저는 화상이므로 작품을 감상하거나 평가함에 있어 객관화 시켜 볼 수 있는 안목은 가졌다고 봅니다. 굳이 저의 작품을 평가하라면, 제 작품은 화랑에 걸릴 작품이 아니고 표구점에서나 팔릴 정도의 가격과 수준이라 평해 두고 싶습니다.” 자신의 작품에도 한 치의 더함이 없는 엄정한 평가를 내리는 화백, 신옥진. 그의 겸손하면서도 엄격함에 신뢰의 두께는 더 두터워진다.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 신옥진. 애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스스럼없이 기증하면서 ‘버리는 것이 곧 얻는 것’이라는 믿음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 그도 그의 삶에서 잘 했던 일 중 하나가 ‘좁지 않은 보폭의 인생을 살았기에 인색하거나 이기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씨익 웃는다. 그의 미소가 참 좋다. 따뜻하고 넉넉하다. 글 최원준 시인·사진 문진우 사진작가
  • 제주 서귀포에 영상관광휴양지

    제주 서귀포시에 영상촬영센터와 관광휴양시설이 복합된 영상관광휴양지가 들어설 전망이다.제주도는 ㈜히든포트(대표 강병구)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산68 일대 30만 1000㎡에 2013년까지 1176억원을 투자해 영상박물관, 드라마 전시장, 종합촬영센터 등이 있는 휴양문화시설과 숙박시설을 건립하는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왔다고 25일 밝혔다. 히든포트는 휴양문화시설에 SBS의 주요 히트작과 출연배우, 소품, 의상 등 주요 콘텐츠를 전시하고 방송관련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숙박시설 중 가족호텔(58실)은 수학여행단과 기업체의 연수시설로, 단독형의 콘도미니엄(359실)은 드라마 작가 등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을 겸한 휴양시설로 사용한다. 도는 영상관광휴양지구가 조성되면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유명한 성산포 섭지코지, 신영영화박물관과 연계돼 서귀포시 동부권이 영상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지방시대]전주 한옥마을 추억 한자락/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지방시대]전주 한옥마을 추억 한자락/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이곳 중심에 있는 한옥마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추억 한 자락이 서려 있다. 2006년 2월21일. 참여정부 핵심정책의 하나인 혁신도시 출범식이 있었던 날. 전국 시장·도지사와 정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청와대 주요 인사들도 전주를 찾았다. 그만큼 비중 있는 행사였다. 이러니 그날 축하 오찬이 얼마나 중요한 일정이었느냐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그곳 대신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통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애쓰는 전주문화예술인들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이 자신이 제안한 핵심 정책사업 관련 행사장 대신 한옥마을을 찾았다는 것은. 그날 잔치의 주인장 역할을 톡톡히 하며 주목을 받고 싶었던 도지사가 ‘남의 잔치’의 들러리 역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렇고(그때까지만 해도 전라북도는 전주전통문화사업에 매우 미온적이었다). 이것으로 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사업은 엄청난 힘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당시 참석 원로들에게 이런 부탁을 드렸다. 제발 ‘소외론’, ‘낙후론’을 내세우며 ‘징징거리지’ 말라고. 대신 참여정부가 잘한 일, 지방분권이나 국가균형발전, 권위주의 청산과 민주주의 확산,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및 복지정책의 확충 등을 강조하며 덕담으로 분위기를 잡아달라고. 전통문화도시사업에 관한 것은 추진단장과 전주문화재단이사장이 적당하게 건의하겠다고.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나 대통령의 일처리 방식을 감안한 전략적 대응을 준비한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해 왔던 사람들의 전략이 그랬다. 지금은 금기의 용어가 되어버렸지만 당시 지역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던 지역혁신,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 등 참여정부가 소중하게 여기는 정책 명분에 호소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일, 그중에서도 국가사업으로서의 명분을 갖춘 일을 앞장서 해 나갈 테니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해달라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다. 간담회 결과는?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국무형문화전당, 아·태무형문화센터 등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약속도 받았다. ‘이 정도면 됐다!’ 했는데 원로들의 생각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적극 해나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이 좀 미흡하다 싶었던 것이다. 광주광역시의 아시아문화수도처럼 ‘전주를 전통문화중심도시로 만들어주겠다!’와 같은 명백한 선언적 약속을 기대하고 있던 어르신 한 분이 기어이 ‘우리 지역은 수십년간 낙후되고, 산업화에 소외당하고’ 타령을 늘어놓고 만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노 대통령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우리 한번 잘해 봅시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언론 홍보를 위한 기념촬영도 대통령이 직접 챙겨주었다. 그렇게 하여 전주한옥마을은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날 동력을 얻었다. 그 이전에 이곳을 찾아 ‘매우 한국적’이라고 감탄했던 권양숙 여사에 이어 기로에 서 있던 우리 전통문화와 한옥마을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몫은 바로 그 소중한 뜻을 살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진정 멋스럽게 가꾸어가는 일이리라!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
  • [문화마당] 문화재정보 DB화… 행정 일원화를/김창규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문화마당] 문화재정보 DB화… 행정 일원화를/김창규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한국의 지식정보화는 세계인이 감탄하는 수준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 기술은 가장 효과적인 지식정보의 유통·전달매체이며, 사회기반 구조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의 통계는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 총가입자수가 1571만명으로 총가구수 대비 보급률 94.2%, 만 6세이상 국민의 인터넷 이용자수가 3536명으로 인터넷 이용률 77.1%라고 보고하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성숙은 한국사회를 단순하고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사회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다층적인 상호작용을 촉진시키고, 이를 통한 소비자층의 세분화가 나타나고 있다. 쌍방향의 의사교류가 가능하고, 지식과 정보가 공유됨으로써 사회 각 부문의 자율성이 크게 신장되었다. 따라서 과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문화의 미학적 예술성 고양이라는 기본이념 아래 공급자 중심에서 추진되어온 국가정책 방향은 문화예술인의 창작기반 조성, 문화향유권의 신장이라는 수요자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전통문화 및 문화재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 전통문화의 본류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중심문화로 발전하며, 문화재의 보존 및 활용,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전승활동 및 창작활동의 지원, 문화산업 및 문화관광산업의 발전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시너지효과의 최대화와 국가 경쟁력의 제고가 도모되어야 한다. 문화 수요자의 문화재 접근성 및 문화재 향유권 신장을 위하여 전국에 소재하는 문화재정보를 네트워크화하고, 국내외에 제공하는 문화재 정보화시스템을 구축·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의 박물관·미술관·연구소·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함과 동시에 전국의 유관기관 상호간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문화재정보를 국내외에 제공하는 사업을 확대·추진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재정보는 문화재의 발굴·연구, 문화재의 보수·복원·정비·관리, 문화재의 공개·전시·활용 등에 이르는 일련의 모든 과정에서 형성된 정보들이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관리될 때에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재행정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문화재관련 행정기관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관련 직원 및 전문지식의 상호교류도 제한적인 실정이다. 문화재 정보내용의 정확성 및 문화재 정보의 체계적 관리를 도모하고, 문화재 정보화예산의 효과적 운영을 위하여 문화재 관련기관을 문화재청으로 일원화할 것이 기대된다. 또한 무형문화재의 공개 및 활성화를 위하여 국립극장 등에서의 전통기능과 전통예능 공연기록을 포함한 다양한 관련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학술연구와 일반에게 상시 제공하는 체제를 구축·운영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전승 및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전승지원금 이외에도 조세부과에 있어서 일반 근로자와 달리 그 과세대상 연한을 보다 연장하여 여러 해 동안에 벌어들인 소득을 평균하여 과세하는 제도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문화재정보의 효과적 운영을 위해 인터넷이나 DVD 등을 활용한 문화재 디지털라이브러리를 구축하여야 한다. 이와 아울러 숭례문 방화사건과 같이 사회적 불만을 문화재의 방화로 해소하는 신종범죄에 대처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의 합리적 보존을 위해서도 문화재정보화는 중요하다. 이 경우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 도입 등을 통한 문화재 방재시설 인프라를 확충하고, 문화재방재 유관기관 상호간의 유기적 협력체제의 강화를 기대해 본다. 김창규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 춘천에 전력IT·문화 산단 조성

    춘천에 전력IT·문화 산단 조성

    첨단 전력 정보통신(IT)산업과 대형 콘서트홀이 어우러진 국내 첫 제조·문화복합산업단지(조감도)가 강원 춘천에 들어선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2일 전기기기에 IT 기술을 접목한 유망 전력IT 업체 등 22개기업과 25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이 갖춰진 복합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날 도청 신관 소회의실에서 김진선 강원지사와 이광준 춘천시장, 박기주 KD파워 대표이사 등 22개 업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기업 이전 및 전력IT·문화복합산업단지 조성 협약을 체결했다. 다음 달 서울~춘천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수도권까지 30~40분대 거리에 놓이고 공단이 조성될 춘천 남산면 창촌리 일대는 고속도로 강촌IC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놓여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기업체들은 2011년까지 3878억원을 투자해 창촌리 일대에 55만 4639㎡ 규모의 전력IT·문화복합산업단지를 직접 조성한 뒤 한꺼번에 이전해 올 계획이다. 전력IT는 전기기기에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해 전기기기의 유비쿼터스를 실현하는 것으로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 등으로 원격 조작이 가능해 편리함과 안전성, 에너지절감 효과가 기대되면서 2012년 세계 시장규모는 9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기업체 입주와 함께 서울대 연구기관인 기초전력연구원이 이들 전력IT 기업과 함께 이전해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게 된다. 산업단지에는 300실의 창작스튜디오와 700실의 문화예술인 체류시설, 2500석 규모의 콘서트홀 등을 갖춘 문화시설도 들어선다. 건물은 연면적 7만 6033㎡에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로 건립된다. 국내외 문화예술인들이 6개월~1년씩 머물며 창작예술작업과 공연할 수 있는 아트센터로 운영될 계획이다. 유명 음악인, 화가, 디자이너 등 예술인과 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명소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기업체가 이전해 오면 2014년까지 2400여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직접 고용 외에 문화시설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문화예술인과 시설 사용인원, 주거단지내 사원가족 등을 합하면 1만여명이 상주하는 작은 신도시로 만들어질 전망이다. 강원도는 원주지방환경청, 춘천시 등 관련 기관과 테스크 포스를 구성해 업체측이 제출한 산업단지 조성계획을 1개월 만에 처리하는 등 행정 서비스를 최대한 제공하기로 했다. 안권용 강원도 산업입지지원계장은 “서울~춘천간 도로여건이 좋아지면서 춘천지역 기업체 입주가 봇물을 이룬다.”며 “첨단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대구 팔공산 문화센터 개소

    팔공산의 자연과 불교문화, 예술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문화센터가 문을 열었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는 28일 대구 동구 불로동에 팔공산체험문화프로그램 운영센터를 마련해 27일 개관식을 했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팔공산 자락에 사는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서 자신의 작업장을 일반에 공개하고 시민들이 팔공산과 예술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달부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에 팔공산 고건축 탐방, 옛길 찾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팔공산 자락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 예술인의 작업장을 탐방하는 예술아카데미도 연다. 이와 함께 팔공산 사찰과 고분군 등 각종 문화자원을 활용한 명상캠프가 수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체험프로그램은 다음 달 6일 팔공산의 고건축물 탐방을 시작으로 올해 모두 30차례 진행될 예정이며 참여자에게는 프로그램 참가비용 일부가 지원된다. 매주 정기프로그램에 선착순으로 30명을 모집하며 20명 이상 단체는 원하는 날짜에 맞춰 참가할 수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고시플러스]

    ●국립공원관리공단 6급 채용 일반행정(6급)·공원관리(6급) 등 수십명. 6월3일 오후 5시까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http://recruit.knps.or.kr) 통해 원서 접수. 단 연구분야 지원자는 우편접수 및 방문접수만 가능. 필기시험은 6월13일 예정. 문의 인력개발팀 (02-3279-2762) ●한국보건산업진흥원 62명 모집 외국인환자유치(전문직) 18명 등 총 62명. 6월4일 오후 6시까지 방문 또는 우편접수. 접수 장소는 서울 노량진동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층 발전전략실 인력개발팀. 문의 인력개발팀(02-2194-7426) ●국립중앙극장 인턴 선발 ‘국립극장 60주년 기념 사업단’ 등에 문화예술인턴 수십명. 응시자격은 만 29세 이하로 대학졸업자(전문대 포함) 이상. 6월4일까지 이메일(sinsam00@mcst.go.kr) 통해 원서 접수. 계약기간은 올해 12월까지며, 일급은 3만 2000~3만 8000원. 문의 총무팀(02-2280-4031) ●한국에너지기술원 신입·경력 연구기획(신입직)·경영지원(경력직) 등 모집. 28일 오후 5시까지 인크루트 홈페이지(http://ketep.incruit.com) 통해 원서 접수. 문의 02-3469-8300 ●도로교통공단 인턴계약직 서울본부와 경기도지부 근무 인턴계약직 8명 모집. 응시자격은 만 29세 이하로 공무원·기업 등 입사 대기자 및 대학 재학·휴학생은 제외. 29일까지 이메일(서울 sjl1231@rota.or.kr 경기 leh5878@rota.or.kr)로 원서접수. 문의 인사교육팀(02-2230-6278)
  • “한나라·민주당 保革 구분안돼 진보정당은 노조수준에 머물러”

    │아스타나(카자흐스탄) 이종락특파원│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공식 수행하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씨는 서울신문의 현지 단독 인터뷰가 파장이 일자 13일 프레스센터를 찾아와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명박 정부의 이념적 정체성은 뭔가. -일부에서 현 정권을 보수우익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스스로는 중도실용 정권이라고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나는 봤다. 현 정권은 출범 후 ‘촛불시위’ 등으로 자기정신을 정리할 기회가 없었다. 1년 동안 정신이 없었던 것 같고 여러가지가 꼬였던 것 같다. →이명박 정부를 극우라고 하는 쪽도 있는데 소위 좌파 문화예술인이 동행하게 된 이유는. -욕 먹을 각오가 돼 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다 대응했는데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에) 동참해서 가도록 노력하겠다. 미국이나 유럽 좌파들이 많이 달라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다는 건가. -옛날에는 위에서 파이를 키워서 부스러기를 나눠줘서 하부구조를 이렇게 하겠다는 게 보수였다면, 진보는 분배와 평등을 강조했다. 지금은 전세계가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에 직면해 있어 고전적 이론 틀로는 안 된다. 아래에서부터 파이를 키우자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의 진보세력의 현실은. -한국의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도 비정규직 문제나 외국인 근로자 문제까지는 못 나가고 그저 노동조합 정도에서 멈춰 있다. KBSTV의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인 핀란드의 타루가 ‘한국의 좌파는 우리나라의 보수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지난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하는데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의 정책을 봤을 때 그게 어디 좌파 정권인가. →현 정치구도에 대해 어떻게 보나. -영남 토착인 한나라당, 호남 토착인 민주당으로는 진보, 보수를 따지기 어렵다. 진보, 보수를 할 단계까지 못 갔으나 한나라당이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서울(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서 전국정당의 기틀을 잡은 것은 진전이다. →현 정부가 꼬여 있는 남북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은 뭔가. -수동적으로 미국 정책을 기다리거나 추종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정책을 주도적으로 견인해야 한다. 이 대통령에게 수시로 조언을 하고 있다. 최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가입과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가입을 연기해 달라고 제안했다. 현 정부가 PSI를 유보한 것은 참 지혜로웠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역할은.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의 변화가 제일 중요한 만큼 내가 단초를 열고 싶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해결하지 못 하면 현 정부에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 때까지 정부의 변화가 없으면 내가 대단히 곤란해질 것이다.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가수 이소라/박정현 논설위원

    연예인에게 인기는 생명이고, 인기는 곧 돈으로 직결된다. 연간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들은 극소수이고, 생활고를 겪는 무명 연예인들이 즐비한 게 연예계의 현실이다. 연기자협회에 소속된 1670명 가운데 출연료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연기자는 200여명에 불과하다. 무명 연예인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2년 전에는 생계가 곤란한 동료 연예인을 돕기 위한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가 출범했을까. 연예인들은 돈 때문에 망신을 사기도 하고 명예를 얻기도 한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10년 동안 40억원을 기부한 가수 김장훈, 익명의 기부 천사 문근영은 후자에 속한다. 한류스타 권상우는 불황으로 방송사 광고수익이 줄어들어 드라마 시장이 어려워지자 회당 5000만원 받던 출연료를 1500만원으로 자진삭감해 주목을 받았다. 탤런트 박신양은 억대의 돈을 벌었지만 비난을 샀고, 강병규는 억대 인터넷 불법 도박으로 명예와 일자리를 잃었다. 박신양은 ‘쩐의 전쟁’ 출연료 3억 8600만원을 돌려달라는 법정 다툼에서 얼마 전 이겼다. 하지만 드라마제작사협회는 박신양이 거액의 출연료를 요구해 드라마 발전을 방해했다면서 그의 드라마 출연 무기정지를 결정했다. 가수 이소라가 입장료를 청중에게 돌려주기로 해 화제다. 이소라는 지난 8일 서강대에서 ‘소극장 콘서트-두 번째 봄’을 공연한 뒤 “오늘 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노래를 여기까지 오신 분들에게 들려드린 건 미안한 일이다.”면서 입장료 반환 의사를 밝혔다. 청중은 “괜찮다. 훌륭했다.”고 말렸지만 환불의사를 꺾지 않았다. 환불금액은 1인당 5만원씩 400여명의 청중에게 2000만원이고, 부대비용을 합하면 무려 3000만원이 된다. 가수가 공연 취소나 공연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청중의 요청으로 입장료를 돌려준 적은 있다. 하지만 가수가 청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환불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신선하다. 이소라가 청중에게 주는 것은 입장료가 아니라 데뷔 18년차 가수의 자존심과 프로정신이다. 그의 목이 빨리 나아 입장료를 돌려주는 일이 없기 바란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기고] 삼각산 자락 순국선열 묘역 성역화해야/김현풍 서울 강북구청장

    [기고] 삼각산 자락 순국선열 묘역 성역화해야/김현풍 서울 강북구청장

    온 나라가 경제살리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마이너스 경제성장은 피할 수 없고, 실업자 수도 100만명을 넘보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소비경기 등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일자리 창출 등 여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역사 속에서 위기 극복의 묘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난을 이겨낸 선조의 지혜에서 교훈을 얻고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바로 세운다면 위기를 이겨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깎아내리고 전통을 천시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에 대한 열등감과 패배감을 새겨 놓았으며, 광복 이후 혼란과 분단은 애국과 매국을 뒤집어 놓았다. 이제 잘못된 역사 의식을 떨쳐 버리고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되찾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다. 여기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 자락에 고이 잠들어 계신 21기의 순국선열 묘소를 소개할까 한다. 이곳엔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어 순국한 이준 열사를 비롯해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선생, 항일독립운동과 좌우 합작운동을 펼친 여운형 선생,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임시정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시영 선생 등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헌신한 선열들이 모셔져 있다. 또 신익희, 조병옥 등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진 정치가와 오상순, 현제명 등 문화예술인, 조국 광복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17위의 광복군 합동 묘까지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교육장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한 분, 한 분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들이건만 묘소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채 우악스러운 철문과 철조망에 갇혀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1991년부터 벌초와 묘소 관리를 자처하고 나섰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깔끔하게 정비되었으며, 잠겨있던 문도 열려 참배가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환경부에서 7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시영, 신익희 선생 등 독립유공자 14분의 묘소를 새로 단장했다. 주변에 있는 국립4·19 민주묘지는 기념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오지만 그 수많은 발길 중 순국선열 묘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푸대접은 조국을 위해 몸바친 선열들을 뵐 면목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후손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순국선열 묘역을 제대로 활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게 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각각의 묘소별 정비가 아닌 묘소간 탐방로를 연결, 이야기가 있는 순례 코스로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묘소를 거리와 안장자별 특성에 따라 건국 존, 독립 존, 문화예술 존 등 테마별로 묶어 순례 코스를 조성해야 한다. 탐방로는 이동통로가 아닌 삼각산의 자연환경을 만끽하고 삼림욕까지 즐길 수 있는 산책 공간으로 조성한다. 묘역이 집중한 곳엔 역사문화관을 짓고, 다양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묘역 주변이 역사교육의 장이자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사랑받을 것이다. 강북구는 올해부터 순국선열 묘역 성역화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삼각산의 순국선열 묘역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을 찾는 성지로 각광받을 날도 머지않으리라 믿는다. 따뜻한 봄, 주말 가족과 함께 4·19묘지를 지나 순국선열 묘소로 발길을 돌려보자. 20세기를 관통하며 조국 독립과 건국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에게 묵념을 드리고 아이들에겐 그분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을 설명해 주시라. 김현풍 서울 강북구청장
  • ‘기무사터 아트페어’ 미술계 화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 1월 문화예술인과의 신년인사회를 서울 소격동 옛기무사 강당에서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기무사터를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 분관으로 활용한다.”고 발표해 문화예술인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3개월 만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첫 행사로 특정언론사가 주최하는 미술시장(아시아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ASYAAF)을 열겠다고 최근 결정해 미술계가 발끈하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이같은 행사가 부적절하다며 7월로 예정된 이 행사 자체를 미술계의 힘으로 막겠다고 나섰다. 미술계는 올 2월 문화부의 자문요청을 받고 “미술관을 개관하기 전 첫 행사로 상징적이고 미래적인 미술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기무사터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용하기로 결정한 만큼 정식으로 개관을 했든 안 했든 이미 미술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런 상징성을 가진 곳에서 특정 언론사의 미술행사가, 그것도 대학생들의 미술품을 사고파는 상업적인 활동이 이뤄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묵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5월 중순에 ‘기무사터의 국립미술관 설립방안에 관한 연구(가칭)’ 세미나를 열고 정부의 이번 결정을 조목조목 비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은 상업화랑과 달리 미술품을 팔 수 없는 곳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계 관계자는 “기무사터를 미술관으로 만들기 위해 15년간 애써 왔던 미술계로서는 문화부의 이번 결정이 앞으로 생길 서울 분관의 상징성·순결성을 잃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기무사터의 첫 행사가 ‘아트페어였다.’는 얘기가 늘 거론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미진(홍대 미술학과 교수) 예술의전당 전시실장도 “기무사터에서 미술품을 사고파는 시장이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정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10월 미술관 조성 이전에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통해 도심 속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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