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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뜨거운 문화유산 보존실태/황규호 문화부 기자(서울논단)

    세계 몇몇 나라의 고고학자들이 지난 주말 동해안에서 만났다.시골 읍소재지 양양문화원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가 그 만남의 자리였다.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유적을 중심으로 주변 동아시아지역 신석기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학술회의다.다섯 나라 학자들이 참가한 비교적 덩치 큰 국제학술회의였다. 그런데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외국학자들이 오산리유적을 높이 평가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자국의 문화유산 보존 현실을 소개한 대목에 와서 그만 부끄러워진 것이다.자랑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이끌어낸 유적보존 사례는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우리 쪽에서 참가한 학자들은 물론이고 참관한 사람들도 주눅이 들고 말았다. ○외국사례 부러워 일본 학자는 아오모리켄(청삼현) 아오모리시 야구장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꺼냈다.지난 1993년 야구장 건설공사 중에 신석기유적이 발견되어 건설계획 자체를 전면 백지화했다는 것이다.2·3루 스탠드 공사를 마무리한 상태에서 건설계획을 취소해버린 용기가 놀라웠다.그 자리는 바로 산나이마루야마(산내환산)신석기 유적인데,양양 오산리유적과 거의 같은 위도선상의 동해건너에 있다. 그뿐이 아니다.지난 1975년 후쿠이켄(복정현)에서도 공업단지 조성과정에 신석기유적이 나와 공사를 중단했다.그 이후 도리하마(조빈)신석기유적으로 가꾸어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선견지명이 보였다.엄청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온다고 했다.산책하다 쉬고 또 산 지식도 섭취하는 일본의 명소가 되었다.우리 경제력만도 못한 중국에서도 선사유적지 마다 유적관을 지었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그 국제학술회의 개최지 양양에 있는 오산리유적은 학계의 보존노력에도 불구하고 11년째나 방치되어 왔다.동아시아 최고의 신석기유적으로 6천∼7천년전 문화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구미 여러나라 고고학사전에 소개된 세계적 유적이기도 하다. ○오산리유적 방치 그 유명한 유적이 보존·복원은 커녕 훼손 위기를 맞고 있다.한 건설업체가 호텔과 콘도를 짓기 위해 바로 길 건너 산을 통째로 밀어붙였다.그리고 파낸 흙을 오산리유적과 조화를이룬 쌍호라는 이름의 늪에다 버리고 있다.유적 훼손을 부추기면서 천혜의 생태계마저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아주 최근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학계가 구제발굴키로 한 경부고속전철구간에 든 유적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이 역시 건설업체가 의도적으로 뭉개버린 것이다. ○보존함으로써 개발 그런 현실을 대할 마다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채택한 한 권고를 음미해 보았다.「문화유적 및 자연유산 국내 보호에 관한 권고」가 그것인데,「보존함으로써 개발한다」는 취지를 담았다.자못 형이상학의 논리가 엿보인다.그러니까 문화유산 보존은 개발 이상의 실익이 가능한 정신적 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마침 내년을 「문화유산의 해」로 정하고 지난 23일 조직위원회 현판을 달았다.반짝 빛나고 마는 이벤트 행사보다는 문화유산을 가꾸고 보존하는데 필요한 청사진 밑그림을 확실히 그려주기 바란다.그리고 내년을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문화유산보존 원년으로 삼아 제도보완에 따른 의견도 폭넓게 수렴해야 할 것이다.
  • 마이클잭슨 공연 충격/서정아 문화부 기자(오늘의 눈)

    『청룡열차라도 탄 기분이었어요』. 11,13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을 본 한 관객의 말이다. 가로 77m,높이 25m의 대형무대에 로켓이 솟아오르고 탱크가 등장한 그의 공연은 우리 공연계에 「융단폭격」같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2시간여동안 관객들은 내내 탄성을 지르며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144개의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터질듯한 소리,잭슨의 모든 동작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두대의 멀티스크린은 차라리 숨막히는 마술쇼를 보는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내한공연을 둘러싼 찬반여론과 잭슨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보여준 무례하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반감들도 이 공연장에서는 모두 날라가버렸다.다만 30억원(출연료 및 체제비 18억원과 공연제작비,광고비)에 이르는 엄청난 값을 들여 제작된 「마이클 잭슨」이라는 「문화상품」의 포장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그 상품성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상품에 넋을 앗긴 관객들 뒤로 우리 공연계의 뼈아픈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변변한 공연장 하나없는 형편에 지하소극장 아니면 역도·체조경기장 등이 그나마 능력있는 우리 가수들의 발표무대가 된다.몇천만원대의 예산을 구하지 못해 공연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가수는 부지기수다.이제 더욱 쏟아져 들어올 외국 유명가수들의 화려한 공연은 이들의 몫을 더욱 앗아갈 것이 뻔하다. 『대중문화는 단지 보고 즐기면 된다』거나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만 걸어잠그고 있을 수 없다』는 단순한 잣대를 내세워 「문화개방시대」를 맞이한다면 머지않아 공연을 비롯한 우리 문화시장은 막강자본을 지닌 외국인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서정아 기자〉
  • 판소리 명창 조상현(이세기의 인물탐구:106)

    ◎타고난 성음 거침없는 연기력 객석 압도/전통고수보다 「시대의 향」담긴 음악 주장/“국악을 대중가까이…” 매년 수십차례 공연 이 시대 걸출한 인물의 한사람인 명창 조상현.타고난 성음에 거칠 것 없는 연기력은 어느 무대에서나 흥청거림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목은 묵직한 철성을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동편이나 감칠맛이 넘실대는 서편제와는 다르다.억세면서도 바닥이 고르게 다져진 우람장중한 힘과 정한이 배분된 강산제소리로 장시간 소리를 질러도 갈수록 목이 터서 유려한 가슴의 소리를 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훤칠한 체구에 두둑한 배짱,사나이다운 기백이 전신에 서린 조상현을 가르켜 일찍이 국악계의 대부이던 정권진은 「몇십년만에 한번씩 나오는 희한의 득음」으로 찬사한 바 있다. ○변화무쌍한 소리 구사 실제로 오음과 육률을 임의로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평성으로 하다가 위로 튀는 목이며 목청을 좌우로 헤쳐가며 힘차게 내는 걸쭉한 반 수리성은 중상성을 낼 때도 세성을 내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혼자서 일인다역을 감당하는 「심청전」 「춘향전」 「수궁가」 완창에서 장(우조) 한(만조) 화(평조) 원(계면조)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하고 아니리 발림에 능란하다.그중에서도 향청의 창고직이,감관과 색사를 두루 잡아들이는 「춘향전」의 「어사출도」장면은 「만장의 폭포가 쏟아지듯 웅건장대한 자진몰이」로 현란하게 말을 엇붙이고 장단을 가지고 놀면서 시원한 통성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그가 즐겨 부르는 「심청전」중 맹인잔치에서 심봉사가 청이를 만나 눈뜨는 장면 역시 평계면에서 끓어오르는 격정을 토해내는 진계면으로 넘어가는 대목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지난 90년5월 도쿄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일본공연에서 히다치노미아(상융궁) 일왕자부처를 비롯,전현직 장관·중참의원 등 1천700여관객이 만장한 가운데 장중한 공연이 끝나자 10여분간의 뜨거운 박수갈채로 심봉사로 분한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겪어온 숱한 고초가 부녀상봉과 개안이라는 환희의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장단은 중모리에서 빠른 자진모리로,창조도 애원성을 담아 관객이 눈물을 적시는슬픈 대목인데도 청승푸념이 범람하지 않는 영출한 기량에 일본신문은 한같이 「관객의 심금을 울린 명무대」로 호평하고 있다. 판소리 다섯마당중에서도 그가 특히 「심청전」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그가 살아온 지난날이 애통비절과 가난의 파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가 태어난 전남 보성군 결백면 오호리는 강산제의 원가인 회천면 금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부친 조기원씨는 순천일대를 주름잡던 한량에다 광폭의 주란으로 그는 하루도 가정불화가 그치지 않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다행히 부친이 못 배운 것을 한하여 3남2녀중 막내인 그만은 유독 서당에 보내주었다.6살때부터 동몽선습에서 대학·소학을 배우고 율포중에도 진학했다.그러나 어릴 때부터 「강산제의 정한어린 노랫가락」을 들으면서 소리에 눈뜬 그는 협률사공연을 보고 「소리꾼」이 될 것을 결심,12살되던 해 인근의 유명한 정응민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보성고를 졸업할 때까지 꼬박 7년을 하루 10시간이상 강산제소리인 춘향가·수궁가·심청가를섭렵했고 20세되던 해 광주로 나가 「적벽가」의 박봉술 명창을 사사,한때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그는 「나를 당할 명창이 누구냐」는 식의 호기와 만모로 군복무중에는 군예대를 만들어 전방을 휩쓸고 광주의 극장을 누비는등 객기만만의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가난과 객기의 젊은시절 그러나 목포문화방송의 국악프로를 맡아 출연하던 무렵 그곳에 들른 박녹주명창이 『지방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란 이유로 그를 수양아들을 삼았고 그때부터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명창의 자택에 머물면서 문밖출입이나 사람만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 참으로 가혹한 시련의 학습시기를 거쳤다.그리고 이제까지의 타성이던 떠는 소리(발성),입안소리(함성),비성과 횡성을 말끔하게 씻고 그는 비로소 명창서열에 들어섰다. 71년 국립창극단에 입단,잘 생기고 떡벌어진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만조와 평조,판소리장단을 두루 꿰뚫자 청중은 그를 환호해 마지않았고 73년 국립창극단 「수궁가」를 필두로 그가 주역으로 나오는 공연은 관객이 3층 복도에까지 차는 이변을 빚었었다.「TBC향연」에 나가면서 삼성 이병철회장의 눈에 띄어 각별한 사랑을 받는등 서울공연 4년만에 집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가정이 파탄이 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자택은 양천구 목동아파트,부인 이숙정 여사와의 사이에 2남이 있다. ○80년대 장극무대 휩쓸어 옳은 말을 잘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탓에 82년 국악향상을 위한 국립창극단 오디션에 모순점과 부정이 개입됐다는 이유로 이에 앞장서 항의하다 자진사퇴해버렸고 그후 KBS창극단무대를 통해 「멀 있는 국악을 대중 가까이 끌어들인 개척자」를 자처하여 텔레비전 화면에 가장 자주 비치는 국악인의 한사람이 되었다. 사나이다운 광활한 성격에 비해 술·담배를 입에 대지 못하는 그는 국악의 대중화라는 이름 아래 모든 창극에서 주역을 휩쓸면서 86년 파리 퐁피두문화센터에서의 「조상현 춘향전완창」, 89년 예향 광주에 시립국극단을 창단,「심청전」 유고·헝가리순회와 「아리랑」 구소련순회 등 70여개국을 도는 화려한 소리의 여정을 펼쳐나갔다.매해 수십차례의 공연을 끊임없이 가지는 중에도 「전통판소리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선이 아니라 당대의 향취와 후대를 동반할 수 있는 음악을 지키려는 것」이 그의 의지다. 중국 악서에 나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춤을 보면 그 나라의 덕을 알 수 있다(문낙지정 관무지덕)」는 구절을 성취하려는 그는 요즘도 1주일중 사흘은 광주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서울판소리보존연구회의 판소리강습, 3년전부터는 전국판소리명창대회를 직접 주관하는 등 한시도 쉬지 않는 완강한 젊음과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판소리 옛예인의 단아단정하며 오로지 전통을 지켜나가는 소극적 이미지가 아닌,사나이의 호방과 웅장청원으로 새로운 판소리명창의 인상을 새긴 그는 지금 대광입신의 경지에서 거장다운 절창을 펼치면서 판소리무대의 「영원한 젊음」으로 우뚝 서 있다. □연보 ▲1939년 전남 보성출신 ▲51∼58년 율포중재학중 명창 정응민사사,보성고 졸업 ▲58∼60년 광주국악원서 박봉술 「적벽가」 사사 ▲60년부터 명창 박녹주문하사사 ▲71∼82년 국립창극단원,주역 ▲7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판소리후계자지정 ▲73∼75년 판소리보존연구회 사무국장,판소리의 전승보급 ▲74년 남원 전국명창대회 1등 ▲76년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부문 대통령상 ▲78년 한국국악협회 상무이사 ▲80년 「수궁가」 완창발표(국립극장대극장) ▲82년 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 ▲83년 「수궁가」 완창발표(서울 문예진흥원대강당,부산 가톨릭센터) ▲84∼95년 전남대 국악강사 ▲86년 「춘향전」 완창발표(파리 퐁피두문화센터) ▲89년 광주시립국극단창단 ▲90∼현재 광주시립국극단 서울공연 「놀보전」(호암아트홀)을 비롯,창극 「아리랑」 구소련순회,「놀보전」 「심청전」 유고·헝가리순회 등 매해 수십회공연 ▲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지정 ▲94년 전국판소리 명창대회 주관 〈현재〉 판소리보존연구회 이사장·광주시립국극단단장 〈수상〉 대한민국국악대상(82년) 한국방송60년 방송유공자문화포상 대통령상(87년) 무등문화상(89년)
  • 텔레비전 만화와 문화정체성/이중한 논설위원(서울논단)

    TV방송 어린이 프로그램의 절반이상이 외국만화로 메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국감에서 나왔다.근거는 방송위원회 집계자료.1980년부터 95년 사이 어린이 프로그램의 만화영화 편성비율은 KBS1 20%,KBS2 35%,MBC 35%,SBS 57%이고 이중 수입만화비율은 MBC 98%,SBS 95%,KBS2 89%,KBS1 81%다.이를 다시 수입국별로 보면 미국 48%,일본 36%가 된다. 이 문제제기는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다.시청자운동단체에 의해서만도 여러번 논의됐다.그러나 이를 실제문제로 보는 인식은 아직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이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매체는 지금 멀티미디어시대로 진입하고 있다.한국TV도 인터넷동시방송을 시작했고 수십개의 외국방송채널이 한국의 하늘로 들어올 준비를 끝냈다.이제는 손쉽게 사다가 틀기만 하면 되던 외국프로의 입지자체가 바뀌고 있다.그들 프로는 그들이 직접 팔고 우리는 우리 프로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이 정황에 외국프로 편중이란 무엇을 뜻하는가.이것이 바로 생각해야 할 과제다. 국제화시대라고 하지만 많은 나라가 철저하게국적을 따지고 전통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중 가장 대표적 대상이 어린이 만화와 동화다.이 영역에서는 원칙적으로 자국작품만을 보여주려 한다.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습득해야 하는데 외국문화의 감수성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하버드대 심리학자 데이비드 매클런드의 60년대 명저 「성취사회」는 세계의 동화 1천300편을 모아 분석하고 이를 각국이 어떻게 읽히고 있느냐를 연구한 책이다.인도·레바논·독일·일본이 가장 잘 자신의 동화를 통해 민족정서적 창조와 발전동기를 부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린이에 있어 만화는 동화보다 더 강력한 매체다.만화는 세상을 단순화시키고 이를 과장함으로써 호소력을 만든다.독자는 이 간결함을 통해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한다.그러므로 정말 단순하게 흡인되고 열광할 수 있다.하지만 이 때문에 해설자로서 만화는 환상과 현실의 차이마저 단순화시키게 되고 무엇보다 공명정대하지 못하게 된다.폭력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단지 재미 있는 행위로만 묘사한다.폭력을 늘 실제보다는 덜 심각한 것으로 인지시킨다.이 구조속에서 문화적 우상을 만들어낸다.미국의 「슈퍼맨」 「마블대장」 「배트맨」 「원더우먼」 「스파이더 맨」 「헐크」,일본의 「아톰」이 그것이다.이는 성인도 즐겨보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지속적 성장을 거듭했지만 그것이 어린이에게 열심히 보여야 할 작품이라는 평가는 그간 받아본 적이 없다. 문제는 이정도 만화도 괜찮은 축에 든다는 것이다.80년대 중반부터 확산된 상업적으로 극단적인 폭력·외설만화영화는 각국에서 TV방영이나 비디오판매과정에서 끊임없이 사회적 지탄을 받아온 것이다.우리사회만 태평으로 지냈다.94년 그 최악의 대표작인 「무적 파워레인저」마저 우리는 방영했다.그러고 나서 비디오수입은 허락되지 않았다.이 뒤를 이은 「플레시 맨」 「바이오 맨」 「마스크 맨」이 다 그 원산지는 일본이다.「무적 파워레인저」도 일본판을 미국서 리메이크한 것이다.매우 잔인하게 아무 의미도 없는 흑백대결만 이어지는데 유일한 가치는 나를 돕는 자만 내편이라는 것이다.이 시점 또 하나 강조되고 있는 개념에 문화산업이라는 것이 있다.이 관점에서 말해도 지금 우리 어린이는 미국과 일본의 문화상품을 그들보다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훈련을 받아온 것이다.별게 문화침식이 아닌 것이다. 89년 프랑스는 국가가 직접 나서 「아스트릭스」라는 만화영화를 만들었다.방송이 아니라 시중으로 들어오는 외국만화에 대응하겠다는 정책답안이었다.최소한 공영방송은 우리 어린이의 문화감수성에 대한 책임을 이제나마 느껴야 한다.이것이 문화의 특수성과 독창적 창조성으로만 살 수 있다는 문화산업시대의 생산기반이라는 점도 이해를 해야 한다.
  • 한글날 문화­학술행사 다채/반포 550돌…15일까지 특별전시회도

    훈민정음 반포 550돌을 맞아 오는 9일 한글날을 전후해서 전국에서는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우리문자를 정보화시대에 창조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문화·학술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문체부는 9일 상오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한글날 기념식을 갖고 제15회 세종문화상 수상자 및 한글발전 유공자에 대한 시상식과 함께 한글의 가치를 조명한 영화「세계로 한글로」를 상영한다.이와 함께 9∼15일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지나온 한글,나아간 한글」 부제의 한글날 기념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문체부는 또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이 정하고 있는 「한글만을 사용하는 주간」인 10월7∼13일 정부기관 및 공공단체의 각종 보고서·공문서는 물론 신문의 전면 또는 부분이 한글만으로 제작되도록 권장할 계획이다. 이밖의 한글날 기념행사는 문예행사로 ▲한글날경축 창작무용공연(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한글이름 큰잔치 시상식(9일 한글회관)▲한글조각전(10∼11일 김포문예회관) ▲제5회 외국인 한글백일장(8일 덕수궁) ▲세계문자전(16∼21일 예술의 전당 서예관)등이 있고 학술행사로 ▲어문규정 등에 대한 학술강연회(6∼10일 경북·강원·충북 3개지역) ▲국제한국어학술대회(13∼17일 서울시 교육문화 회관) 등이 있다.
  • 「대모」 홍성덕씨 자전에세이집 내

    ◎“「여성국극」은 한국판 뮤지컬이죠”/전통가락+춤사위·연기=무한한 가능성/60년대 들어 사양길… 정부·기업 지원 절실 『여성국극이 한때의 옛 이야기로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시대에 맞지않는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국극은 우리의 전통가락과 춤사위,연기가 어우러진 「한국판 뮤지컬」로 현대감각만 살리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장르인데 말이죠』 「여성국극의 대모」로 불리는 홍성덕씨(56·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가 자전에세이집 「내뜻은 청산이요」(한뜻)를 냈다. 조선후기 창악인들의 단체인 「협률사」단장이던 아버지와 판소리 명창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4세때 동편제의 달인 강도근 선생에게 수궁가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소리꾼 인생을 살게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팔랐던 예술가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지난 51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인 「동지사」가 창단되면서 여성국극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그러나 60년대초부터는 사양길에 접어들어 이제는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형편이에요.돌이켜보면 집과 패물을 팔아 공연하기 예사였고,기껏해야 가설무대가 전부였어요』 같은 전통예술인 판소리의 경우 62년 국립창극단이 생기고 64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정부의 배려로 활기를 찾고 있는데 비해 여성국극은 여전히 무관심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쇠퇴의 길을 걷게된 한 요인.『여성국극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국극인 스스로의 혁신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정부의 지원 또한 절실합니다.가까운 예로 1912년에 창단된 일본의 여성극단 다카라즈카(보총)는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속에서 세계유수의 극단으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우리 여성국극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극은 비교적 근대적인 성격의 연극양식이지만 여성국극은 고전 판소리를 모태로 한 일종의 전통극인 만큼 한층 시선을 끌만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한국 공연단체로는 처음으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여성국극 「내뜻은 청산이요」 초청공연을 가진데 이어 최근미주 9개도시 순회공연을 마친 홍성덕씨.그는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의 의무요 사명』이라고 말한다.
  • 휴대용 쓰레기통 미 특허 획득

    ◎치과의사 양동봉씨 4년간 각고끝에 성공/물청소 필요없는 종이제품… 공해방지 도움 『남을 생각해야 바로 보입니다』 휴대용 쓰레기통을 발명,미국 환경특허를 2개나 획득한 양동봉씨(43·강원도 속초시 청학동 선치과의원 원장)는 자신이 만든 휴대용 쓰레기통 「푸른주머니」는 끽연보조기가 아님을 누누이 강조한다. 대만·일본·싱가포르 등지에서 시판중인 기존 제품은 크기가 작고 물청소를 해야하는 등의 불편이 있지만 푸른주머니는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다.현재 담배갑만한 크기의 휴대용은 시제품이 나와 있고 비치용은 설계 단계에 있다.불붙은 담배를 넣으면 자연적으로 꺼지게 돼있다.휴대용은 재질이 종이로,2차 오염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다 담배꽁초·껌·침 등을 모두 처리할 수 있으며 물청소 등이 필요없다.비치용은 현재 전세계에 3백조∼5백조개의 재떨이가 있어 사업성도 충분하다는 견해다. 양원장이 푸른주머니를 개발한데는 그의 철학이 뒷받침됐다.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만인의 마음이 움직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감동」을 주는 게 필수적인데 감동을 「창조」하는 지름길이 바로 쓰레기 줍기라는게 그의 결론이었다.그때가 93년.그의 말을 빌리면 「개안」을 한뒤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대전에다 「미래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철학·마케팅 등 5∼10개 분야 박사들이 머리를 맞대 시제품이 나오는데 4년이나 걸렸다.그간 수천건에 이르는 기존 기술을 검토했고 1백가지 점검항목을 만들어 일일이 검토했다.비용은 본인과 참여한 박사·독지가가 각각 분담했다. 량원장은 『푸른주머니는 남을 생각하는 인격과 명예심,죄의식을 자극해 담배꽁초 등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문화상품의 성격이 강해 환경공해방지와 후세교육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0392)635­2822.〈박희준 기자〉
  • 조각가 김영중(이세기의 인물탐구:100)

    ◎선과 면의 결합으로 「인간주의」 실현/구상서 추상까지 고루 섭렵… 작품마다 실험정신/대형건물 미술품설치 의무화 등 미술발전 앞장/광주 비엔날레 「경계를 넘어」·세종문화회관 「비천상」 등 대표작 연대 정문에서 명지대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연희조형관.건물 베란다를 둘러싼 청청한 송죽과 추상조각으로 이뤄진 하얀 돌기둥이 눈에 띈다.이 건물은 해방후 조각 1세대로서 이 시대 대가의 한사람인 우호 김영중의 미술관이다. ○해방이후 1세대 조각인 화단경력 40년에서 그가 쌓은 업적과 작업량은 엄청나다.우선 세종문화회관 외벽부조인 「비천상」,독립기념관의 상징조형물인 「강인한 한국인」군상,서울신문 외벽부조인 「질서」가 그의 작품이다.서울 어린이대공원내 소파 방정환을 비롯해 인촌 김성수,의제 허백련,고하 송진우,일민 김상만,가인 김병로,용인 호암미술관의 이병철,명창 임방울초상등 등 시비·화비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동안 홍대·이대·중앙대 교수를 거쳐 한국미술가협회이사장,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심사위원장을 지냈고 63년 원형조각회를 창립한 이래 한국현대조각연합 상파울로비엔날레 한국현대미술전과 도시의 환경조각,음악과 무용미술전 등 대대적인 그룹전·기념전에 그는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개인전을 연 적이 없고 자전적인 화집 한권도 갖지 못했다고 하면 아무도 곧이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지난해 고희기념으로 후배들이 화집발간을 권유했을때도 그는 『내 화집을 내손으로 만드는 것은 쑥스럽다』면서 후학들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미술도서,미술전문잡지,팸플릿과 각종 슬라이드·비디오테이프등 2만5천여점을 내놓아 그의 조형관에 미술자료실을 먼저 만들었다. 실제로 80년대 그는 재능있으나 가난하여 전시회를 갖지 못하는 35세미만의 젊은이들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열어주었고 대형건물에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는데 앞장서는등 누군가 해내지 않으면 안될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미술을 발전시킨 역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우호라고하면 그의 작품들은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몇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이른바 한국성을 강조하면서도 국경을 초월한 「생명주의 추구」가 그것이다. 첫째 그는 면과 면의 만남이 선을 형성하고 선과 면의 결합에서 한국적인 형상을 발현한다는 확신이 투철하다.여인의 버선목에 나타나는 유연하고 완만한 곡선미는 예리하고 차가운 석질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만져질듯 부드러운 감촉을 만들면서 빛의 농도와 조사 각도를 통해 조각에다 발색과 채도 조명기법을 도입하고 있다.또 모뉴망 하나라도 그것이 사면팔방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광선과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작품으로서 완벽할뿐만 아니라 면은 물론 표현의 성격도 달라진다는 것을 면밀하게 계산해낸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성취하기 위해 구상에서 추상,반추상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헤프닝과 실험과 조형양식을 고루 섭렵해왔다.그리고 어려움이 닥칠때마다 피하지 않고 「홀로 선다」는 각오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중고차 한대를 사서 해머로 두들겨 부수고 구겨서 이를 새로운 조형물로 재생한 적이 있고 널빤지에다 새끼줄을 이용한 입체적인 콜라주기법을 부조에 응용하는가 하면 풍경과 종을 환조에 달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를 내는 「소리나는 조각」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천착하는 중에도 부르델과 마이욜의 지중해적 고요와 격정,슬픔의 상황고조를 극복해냈고 부랑쿠시와 아르프의 현대추상작품에서 보이는 유기적 생성표현에 집착하면서 미지의 어떤 것,보이지 않는 진실에 독해가능성을 부여하는 작업에 치중해 왔다. ○경력 40년… 개인전 연적 없어 먼저 그의 릴리프들은 우아하면서도 모던한 회화성이 새롭다.흰 벽면 전체를 캔버스 삼아 양각과 음각으로 터치된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비천상」은 그 것이 돌조각인데도 승천하는 천사의 움직임을 율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거대한 빌딩의 외부 혹은 내부벽면 부조 역시 밤의 조명속에서 마치 백색 유화물감만으로 마감한 싱그러운 마티에르와 볼륨을 살린다.초상작품도 마찬가지다.각 인물의 명철과 청념,정한과 인자,고매한 인품과 꿋꿋한 지조를 형형한 눈빛와 미소에 담아 그들의 지나온 역정을 고백성사처럼 들려준다. 기념조형물중에는 광주비엔날레 상징물인 「경계를 넘어」가 김영중 모더니즘의 압권으로 손꼽힌다.원형으로 휘어진 붉은 무지개다리는 하늘의 푸른 색과 조화를 이루면서 우주를 향한 교량답게 극적인 긴장감과 지성미를 품고 눈부신 창공에 고고하게 걸쳐져 있다. 「단순히 조각을 위한 조각은 예술로서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주의 실현이며 인간의 행복에 보조를 맞출 수 있을때 비로소 예술가의 긍지가 빛난다」고 그는 말한다. 우호는 광주농림고시절 학교에서 전교생에게 점토로 작품을 만들게 하고 그중에서 우수작품에 선발되자 그때부터 그림과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조선조 중엽의 성리학의 태두인 하서 김인후의 13대 직계손이며 부친 김요흠씨는 전남 장성의 대지주로 그는 한서와 서예와 시조의 풍류가 있는 지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실수 용납않는 완벽주의자 해방후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로 학업을 중단했다가 홍익대 조각과로 옮겨 대학을 졸업,58년 제7회 국전에서 「장갑낀 여인」이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을 때도 국전출품을 계속하지 않고 있다가 75년 국전의 재야영입 케이스로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지금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10살에서 30살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격의없이 어울리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만년 미래지향형이다.요즘은 오는 11월4일로 잡힌 동아일보초대 첫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그의 조형관 지하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고 있다.가족은 디자이너출신의 부인 임원순씨와의 사이에 8남매,위로 딸 7형제중 3녀 명수씨가 현대무용가이고 외아들 경수씨는 올봄 예일대 졸업후 귀국해 있다. 우호의 성격은 대체로 예의가 바르고 겉으로 부드러우나 일을 앞세우면 사적 애정을 떠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속물적인 타협이나 시세에 편승하는 법도 없다.다만 정이 많고 친구를 좋아하는 다감한 일면이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다. 미술평론가 김남수씨는 『조각가,교수.미술행정가로서 화단에서 쌓은 수많은 업적중에도 지난해 60일간에 걸쳐 무려 1백90만명의 관광객을 동원한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은 당연히 우호의 몫』이라고 평가한다.조각가 조성묵씨는 『생명이 있는한 그 삶의 정의로움과 사랑을 어찌나 중요시하시는지 거기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의 후배사랑을 주변에 전한다. 대문호 괴테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그의 형태는 「견고하고 명확하고 한정된 볼륨과 외부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균형잡힌 고요」를 성취한 가운데 절대를 향한 내면에 깊숙이 접근되고 있다.그리고 현대적인 균제미와 구상주의를 절충한 그의 상황조각은 최상의 배경인 자연의 풍광속에서 언제 어느 면에서 보든지간에 낯의 빛과 별들의 빛을 수용하면서 살아숨쉬는 생명주의를 실천해 내었고 결국 예술의 끝인 「휴먼」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연보 ▲1926년 전남 장성 출생 ▲46년 서울대 미대 입학 ▲56년 홍대 미대 졸업 ▲58년 제7회 국전 「장갑낀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 수상 ▲62∼63년 홍대,서라벌대 출강 ▲63년 원형조각회 창립기념전 ▲73∼78년 이대 및 중앙대출강 ▲75년 국전추천작가 ▲77∼현재 동아미술제운영위원회 의장 및 심사위원 ▲80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86∼현재 서울신문사주최 서울현대조각공모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 ▲9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장 ▲93∼현재 서울특별시예술위원 ▲94년 광주비엔날레조직위부위원장 ▲95년 「미술의 해」조직위원 〈작품출품〉한국현대연합조각전 서울미술대전 현대미술초대전 원로조각초대전 상파울루비엔날레 구상조각전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전 등 1백여회 출품 〈대표작〉독립기념관 「강인한 한국인상」,세종문화회관외벽 「비천상」,13도 창의군탑,서울시시설관리공단 「일하는 사람들」,광주어린이대공원 어린이탑 「희망」,마산종합운동장 상징탑,해남 명량대첩기념탑,서울신문사 내벽부조 「질서」,중앙일보사외부조각 「배달소년상」,동아일보 충정로사옥앞 「기수」,광주비엔날레상징 무지개다리 흉상및 동상등 수점 〈현재〉한국조각공원연구회장·한국미술협회고문·홍익조각회회장·한국성미술연구회 고문 〈수상〉대통령 표창(82년) 서울특별시문화상(88년) 예총 예술문화상(91년) 청곡문화상(93년) 옥관문화훈장(94년) 호암예술상(95년)
  •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홍일식 지음(화제의 책)

    ◎21세기 민족적 비전 제시한 글 40여편 실려 대학의 도덕재무장운동,「바른 교육,큰사람 만들기」교육개혁운동 등으로 우리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지은이(고려대 총장)의 지상강의록.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민족적 자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40여편의 글이 실렸다. 지은이는 우리 전통문화의 핵심인 「효사상」이야말로 앞으로의 사회가 요청하는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는 「미래적 사상」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열린 사상」이라고 강조한다. 또 우리민족의 장래가 특히 밝은 것은 우리에게 남다른 문화적 저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한 저력을 중국과의 관계사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중국과 인접한 국가나 민족이 대부분 「거대한 불가사의의 용광로」이던 중국에 흡수돼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거나 역사적 정체성을 상실한 반면 우리민족은 강인한 「문화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지은이는 우리의 국가적 지표는 경제대국이나 군사대국이 아닌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데 맞춰져야 하며,그것이 21세기의 지도국가가 되기 위한 유력한 방편이라고 역설한다.정신세계사 6천5백원.〈김종면 기자〉
  • 「21세기 문화복지 향상안」의 함축

    ◎국민 「삶의 질 향상」 청사진 구체화/문화정수 기회제공 기반조성에 주력/지방·기업·가정·개인의 직접참여 유도 문화정책개발원이 7일 공표한 「국민문화복지향상방안」은 문화선진국에 대비,국민 「삶의 질」향상을 위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았다.이 방안의 집행과 사업수준은 공청회와 재경원및 한국개발연구원의 최종결정을 거치는 순서가 남아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소홀하던 국민의 문화·정신적 복지향수에 대한 균배인식을 크게 개선한 작업으로 평가됐다. 정부의 현재 전체예산중 0·56%에 불과한 문화부문 예산은 그나마 문화재관리나 문화시설 건립비등에 편중돼 문예진흥과 국민문화복지향상을 위한 재원은 태부족한 실정.국민문화복지에 대한 시설자원투자도 일부 대도시에 치우쳐 지방도시나 농어촌은 문화소외지대로 방치돼왔다.무엇보다도 「문화예술부문 투자가 소모적」이라는 그릇된 관념은 문화정책의 재원동원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문화복지여건마련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초반에는 한국이 선진국G7대열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문화·건강·여가등 문화적 삶에 대한 욕구는 필연적으로 높아진다.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 역시 자연스럽게 상승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화정책개발원은 이 방안에서 장차 도래할 「문화우위시대」를 대비했다.문화향수기회제공을 위한 기반조성과 여건마련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가와 지방·기업·가정·개인의 직접참여를 유도하는 계획이 그것이다.국민문화향수폭의 확대는 「삶의 질」향상은 물론 근로의욕을 끌어올리는 정신적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을단위의 「문화의 집」을 설치한다는 계획은 문화향수폭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됐다.그리고 기초,혹은 광역생활권역별 공공도서관·문예회관·전시관 및 국공립박물관·미술관·대중예술공연장 확보계획에는 문화복지국가의 필수적 시설이자 기본틀을 갖추겠다는 의도를 내포했다.이는 수혜자를 문화예술의 주체에서 일반 향수권자로 옮기겠다는 적극적인 노력의지로도 풀이된다.여기에 초고속통신망과 연계한 온라인매표나 종합할인입장권 및 카드제·문화상품권제를 도입하고 문화소외계층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문화프로그램」개발을 추가했다.이들 사업에는 문화인프라를 바탕으로 전국민의 문화향수기회를 넓혀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선 소요재원확보와 관련법규개정,기업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각종 규제완화등 추진기반조성이 선결과제로 부상한다.그래서 정책개발원은 정부예산의 문화예술부문 점유율을 2001년까지 1%로 끌어올릴 것과 2020년까지 국민문화복지기금 2조원 조성,문화시설경영자인증제도를 통한 전문인 대우등에 따른 재정확보를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김성호 기자〉
  • 문화계 준비(출발 2002년 월드컵:4)

    ◎고유문화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공연시설 확충… 지방문화 부흥 기대/한·일 이해폭 넓히는 공동행사 계획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가 열린 LA다저스 스타디움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른바 「빅3의 향연」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등 세계적인 3인의 테너가 이날 저녁 보여준 공연은 미국 월드컵을 단순한 축구잔치로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2002년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는 문화예술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국제적인 이벤트임에 틀림없다.우리 고유문화를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공연장등 문화인프라확충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월드컵이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미묘한 관계를 맺어온 한·일 양국의 공동개최란 점은 색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시아권에선 처음인 2002년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는 크게 보면 3가지 측면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문화예술계는 기대하고 있다.「세계화」 차원에서 ▲우리 것의 정체성을 확립해 세계에 알리면서 ▲학술행사등 문화행사를 통해 한·일화합을 이끌어내고 ▲남북관계의 개선까지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것의 세계화」.흔히 세계인에게 우리문화가 일본문화의 아류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에서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인이 추진할 것으로 예견되는 부분이다.문화체육부가 한국문화의 상징을 정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특히 주목된다. 문화행사가 필수적 부대행사로 개최되는 올림픽보다도 월드컵은 오히려 대회기간이나 성격상 관심의 집중도가 더 강하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지난 서울올림픽때 1백30여개 문화프로그램이 집중됐지만 크게 각광받지 못한 것과 달리 2002년 월드컵은 문화예술계의 주체적인 노력과 조직력에 따라 우리문화를 얼마든지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문화예술계는 이에 따라 2001년 열릴 예정인 광주비엔날레를 월드컵에 맞춰 2002년으로 미루는 것을 비롯해 국악위주의 대규모 음악제전 마련등 벌써부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림픽이 주요대도시에서열린 것과는 달리 월드컵은 10개 도시에서 분산개최되는 만큼 이같은 세계화노력은 자연스럽게 지방문화부흥측면에서도 문화인력과 내용의 보강,시설확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문화예술계는 대규모 국제학술회의나 문화예술의 공동작업을 통한 과거사 청산과 반일(한)감정해소도 기대하는 눈치다.양국이 문화행사를 함께 치르면서 양국문화의 동질성 찾기나 이해의 폭 넓히기에 성공할 경우 첨예한 문제로 남아 있는 일본 대중문화개방도 어느 정도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문화가 국제무대에서 일본에 비해 덜 인정받고 있는 추세에서 한국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개발,집중적으로 소개해 일본문화에 대한 우리것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부각시켜야 한다.한·일 양국이 월드컵 개최때까지 자국 홍보차원에서 또 한차례 「문화전쟁」을 치를 전망이어서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은 갈수록 가열될 전망이다. 이번 월드컵은 남북관계개선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즉 남북한음악인이 남북연합교향악단을 구성해 남북한,혹은 비무장지대에서 순회공연을 벌이는 합동공연이나 고대사관련 남북한학술회의를 열 경우 학술·문화적인 성취 말고도 세계를 향한 문화상품 차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 김문환 교수(미학·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는 『월드컵은 올림픽보다 프로성격이 더 강한 국제행사로 한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아시아문화권의 문명전환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문화·예술인의 노력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묶어줄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성호 기자〉
  • 제8회 「정보문화상」 시상식/2백여명 참석

    ◎대상에 국군 제1363부대 제9회 정보문화의 달 기념식 및 제8회 정보문화상 시상식이 3일 상오 이수성 국무총리,이석채 정보통신부장관등 정보통신 관계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정통부가 주최하고 산하단체인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는 정진일 정보문화센터사무총장의 정보문화의 달 경과보고에 이어 정보문화상 수상자들에 대한 시상식과 이총리의 치사가 있었다. 이총리는 치사를 통해 『앞으로는 정보를 생산·수출하는 고도의 기술보유국이 되지 않고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면서 이달안에 국가 사회 전반에 걸친 「정보화촉진 기본계획」을 확정,지속적으로 정보화작업을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보문화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인 정보문화대상은 국방정보화를 위해 힘써온 국군 제1363부대가,국무총리상인 정보문화진흥상은 한국통신 초고속통신추진본부 이경준 종합계획국장(48)이 받았다.또 정보문화기술상은 (주)핸디소프트 안영경 사장(42)이,정보문화교육상은 강원도홍천군 내촌초등학교 김광해 교사(39)와 서울 신일고등학교 김효원 교사(42)가 공동 수상했다. 정보문화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천만원,부문별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3백만원이 수여됐으며 수상자 전원에게는 해외시찰의 기회가 주어졌다. ◎대상받은 제1363부대/전산시스템 도입 업무개선/국방의 과학·정보화 큰 공헌 제1363부대(정보통신단장 이재규)는 지난 94년 정보통신단을 창설한 뒤 종합정보통신망·통합광파일시스템·사무자동화시스템 등 군업무에 전산시스템을 도입,보급함으로써 군의 업무개선에 크게 기여한 공을 인정받았다.이 부대는 또 군정보시스템의 종합운영체계를 구축하고 전산운용자격제도를 도입해 부대원의 정보활용 능력 제고 등 국방의 과학화·정보화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외국남성들 인도처녀 “신부감 1위”

    ◎“순수하며 순종적” 배필 찾아 인도방문 줄이어/“지참금 부담 없다” 인도여성도 국제결혼 선호 인도여성들이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를 찾는 극동,구미 등지의 외국남성들에게 최고의 신부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들 신랑감이 자기 나라의 문화적·도덕적 타락현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순수하면서도 순종적인 인도여성들에게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인도남성들의 경우 세습적 계급제도인 카스트를 비롯,피부색·종교·가족배경·궁합 등을 따지는데 반해 이들 외국남성들이 이런 것들을 전혀 문제삼지 않고 주로 상대의 심성을 보려하는 점도 인도여성들의 국제적 인기를 높이는 요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 뉴델리에만 5백여개를 포함,전국적으로 수천개에 달하는 인도의 결혼상담소들은 이제 외국 남성과 인도 처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현상마저 생겨났다. 다케시 도시히코란 일본청년도 작년에 인도인 색시감을 찾기위해 뉴델리를 방문,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결혼상담소로 직행했다. 도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올해 25세의 다케시는 뉴델리시 서부의 레가르푸라에 있는 이 결혼상담소의 소장 다람 찬드 아로라(65)씨와 면담한뒤 신랑감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렸고 한달만에 마음에 드는 인도여성을 찾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아로라씨는 인도 전역의 건물벽에 시커먼 페인트로 광고를 써놓아 가장 많이 알려진 자신의 사무실에만 지금까지 다케시와 같은 목적을 가진 외국인이 수백명이나 찾아들었다고 자랑했다. 벨기에의 이혼남인 비즈니스맨 조젭 귀스타프 다니엘(38)씨도 『서방에서 이혼율이 놀라울 정도로 치솟고 있지만 인도에서는 전통문화상 결혼이 평생의 약속으로 간주되고 있어 전반적으로 이혼율이 낮다』며 인도여성들이 썩 좋은 신부감임을 강조했다. 인도여성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인도남성들이 요구하고 있는 엄청난 지참금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는데다 결국 가족들로 하여금 인도를 떠나게해줄 수도 있기 때문에 국제결혼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인도 여권신장운동가들은 외국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진부한 인도여성상에 대해 분노하면서 이런 국제중매의 배후에 모종의 동기가 깔려있지 않나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김규환 기자〉
  • 국빈 나들이(외언내언)

    30여년전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화상이던 앙드레 말로가 일본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일본열도가 침몰한다면 나는 한점의 미술품을 가지고 나가겠다.그것은 호류지(겁강사)의 백제관음보살상이다』 목조로 된 이 백제관음은 천의자락 휘날리는 부드러운 몸매와 은은한 미소로 세계최고의 걸작조각품으로 꼽힌다.1천3백년전 백제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조각품이다. 국내에는 가부좌를 틀고 오른쪽 손으로 턱을 고인 특이한 자세의 대형 불상이 둘 있다.국보 83호와 78호로 지정된 백제시대 금동반가사유상이다.그런데 똑같은 반가사유상이 일본 고류지(광강사)에 전해지고 있다.재질이 나무라는 점이 다를 뿐 신비하고 고졸한 천년의 미소는 너무도 똑같다.동일인의 작품이 아닌가 느껴질 정도다. 백제의 금동반가사유상은 불상으로나 조각으로나 세계최고의 걸작품이다.7세기 한반도 서안에 자리잡았던 작은나라 백제가 어떻게 이렇듯 최고수준의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다.『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미술을 연결하는 고리다.그리고 서기 6백년경 조선의 미술은 찬연한 융성의 자리에 도달하였고 분명히 두 경쟁자인 중국과 일본을 능가했다』 이것은 동양미술사를 전공한 미국 페놀로사 교수가 1920년 그의 저서에서 밝힌 탁견이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1912년 당시 이왕가박물관에서 일본인 도굴꾼에게 거금 2천6백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도굴품이라 출토지가 불명으로 돼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경주근처에서 출토됐다고 하고 충청도 벽촌에서 수습했다는 설도 있다. 이 반가사유상이 애틀란타올림픽 문화예술행사에 선보이기 위해 6월에 나들이를 떠난다.79년 한국미술 5천년전에 이어 두번째.이 불상에 걸린 보험금은 5천만달러(4백억원)나 된다. 79년 나들이때 반가사유상 등 국보 46점을 포함,3백54점의 보험금이 1백20억원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상승이다.우리 문화재가 해외에서 가치와 평가를 제대로 받게 된 것이다.〈반영환 논설고문〉
  • 경기 평택 원정리/국내 최대 폐총유적 발굴

    ◎아주대·서울대,공동조사 결과 공개/1,800평 규모… 석기·토기 대량 출토/환황해권 신석기 문화 규명에 큰몫 서해안지역의 조개더미(패총)유적이 최근들어 속속 발굴되어 한반도 신석기문화가 보다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있다.그 하나가 서울대조사단(단장 임효재)과 아주대박물관(관장 조길태)이 공동발굴에 나서 지난 26일 공개한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조개더미유적.이에 앞서 지난해 겨울에는 인천시 영종도 신공항 건설공구내 삼목도 조개더미유적이 서울대와 서울시립대에 의해 발굴되었다. 서울대와 아주대가 공동발굴한 원정리유적은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조개더미로 망거내산 일대 1천8백여평을 차지했다.이 조개더미는 당시 신석기인들이 먹고버린 굴껍질로 이루어졌으며 더러 소라와 대합껍질도 섞여있다.출토유물은 토기와 석기류가 대부분이다.토기는 주둥이 부분을 무늬새기개(시문구)로 눌러 빗금무늬(사선문)를 찍고,몸통에는 고기뼈무늬(어골문)를 새긴 빗살문계통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서해안 신석기유적에서는 처음으로 점선을찍어 마름모꼴(릉형)무늬를 연속적으로 새겨넣은 토기도 발견되었다.이 같은 점선의 마름모꼴 무늬를 새긴 토기는 지난해 여름 강원도 양양 지경리 신석기유적에 이어 두 번째 나온 유물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석기류 가운데 날이 예리한 돌낫과 돌갈판은 원정리 신석기 사람들이 먹거리를 바다에만 의존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충당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또 수정으로 만든 연모가 나왔는데,이 유적 근처 다른 산에서 일제시기까지 수정을 채취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원석은 현지에서 조달했을 가능성이 많다. 해발 49m의 야산에 자리잡았는데 바로 아래에는 모래톱과 자갈이 많은 갯벌이다.그리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6∼7m나 되어 당시 신석기시대의 이 해안은 물고기와 조개류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자연환경을 유지했을 것이다.이 같은 입지적 조건은 신석기시대가 끝나고도 계속 사람들을 끌어들여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로 이어진 흔적이 원정리 유적에 겹쳐 나타나고 있다. 이번 발굴에 참여한 서울대 이선복 교수(고고학)는 『사상 최대규모의 원정리 조개더미유적 발굴로 기원전 3세기경 신석기 중기의 서해안 선사 문화상을 규명할 수 있게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교수는 『앞으로 발굴이 더 진행되기 때문에 신석기인들의 잡자리 등 생활상을 보다 규체적으로 밝히는 자료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엿다.
  • 지휘자 임원식(이세기의 인물탐구:93)

    ◎26세에 지휘봉 잡은 “한국의 토스카니니”/46년 고려교향악단 창설… 4대교향곡 국내초연/서울 온 오사카필 등 단골 지휘… 일 TV서도 소개/서울예고·예원학교 설립… 7순넘긴 나이에도 “꼿꼿한 현역” 미국의 NBC교향악단이 세기적 거장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음악의 자존심」 임원식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그는 음악을 위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이름은 음악사의 중앙을 가로질러 우뚝한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평생을 통해 그처럼 존경과 사랑과 선망을 한몸에 받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그리고 음악의 발전·보급과 그 질을 높이는데 지금도 식을줄 모르는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첫째,그는 우리나라 교향악운동에 초석을 놓은 독보적 존재다.아직 새파랗게 젊은 나이인 26세에 하얼빈교향악단 지휘로 음악계에 데뷔,국내 최초의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여 46년 서울 부민관무대에서 첫지휘봉을 잡았을 때 『혜성같이 나타난 젊고 아름다운 예술가에 대한 청중의 열광은 참으로 대단했다』『연주 때마다 객석은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그날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은 극장의 창문을 깨뜨릴 정도였다』고 그의 오랜 동료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전봉초씨가 이를 증명한다.그로부터 10년후인 56년,KBS교향악단창단과 함께 그는 지금까지 「현역의 단정함」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지난 94년 음악생활 50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베토벤 교향곡 1번·5번을 필두로 다섯차례나 암보지휘를 하여 노익장을 과시했다. 전에는 비교적 섬세한 해석이 눈에 띄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큰 흐름을 붙들면서 「음률의 마디마디에서 거인의 숨결이 느껴지고 인간정신의 승리가 구가되는 한층 심화된 경지」를 펼쳐보였다.『그가 지휘봉을 드는 순간이 바로 음악을 이루는 순간』이라는 박용구씨의 평은 결코 과장일수가 없다. ○연주때마다 관객 만원 둘째,음악교육에서도 그는 미래를 지향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만든 일이다.미 줄리어드 음악학교 유학시절 청소년예능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이화재단 신봉조이사장과 의논하여 예술고교를 설립하는 한편 해외에 나가있는 재능있는 젊은이가 눈에 띄면 어떤 방해도 뿌리치고 국내무대에 진출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음악계 일선에서 쟁쟁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원경수를 비롯,이남수 박은성,피아니스트 백낙호 정진우 신수정 이경숙 백건우등등 연주자 성악인의 대부분은 그의 도움을 받아 발돋움한 이들이다. 우리나라에 클래식이 보급되는 역사와 더불어 그는 주옥 같은 명편을 직접 들려준 첫지휘자이기도 하다.이른바 4대교향곡으로 일컬어지는 차이코프스키의「비창」,드보르자크의「신세계」,베토벤의「운명」과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초연은 물론 음악애호가들이 탐닉해마지않는 모차르트에서 프로코피예프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이모셔널한 시심과 티없이 순수한 천상의 음악」으로 그때마다 지식층의 청중들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말았다. 그는 지방교향악단의 위상과 연주확대의 차원에서도 남이 넘볼수 없는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83년 인천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부임했을 때 동호인 그룹에 불과하던 이 악단을 3관편성의 풀오케스트라로 전열을 가다듬었고 지방시향으로선 엄두도 못낼 동남아및 미국순연으로 활기와 용기를 불어 넣었다.이런 면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성장시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처럼 굵직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 대한 행사는 떠들썩하게 소문내는 법이 없다.62년 이래 오사카필을 비롯,일본 NHK심포니·도쿄필하모닉의 단골지휘자였으며 지난 71년에는 서울에 온 오사카필을 지휘,내한공연을 갖는 외국교향악단을 최초로 지휘한 기록을 세웠고 77년 일본 도쿄와 삿포로에서 열렸던 아시케나지와의 협연역시 「아시케나지 특유의 탁월한 기교와 시적감성 표출을 절묘한 조화로 이끌어냈다」는 일본신문들의 특필이 있었으나 이를 과시하지 않고 평상적으로 지나갔다. ○유학도 국내진출 뒷받침 91년에는 레닌그라드필,다음은 러시아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로 차이코프스키를 연주,「음 하나하나를 갈고 닦은 다이내믹한 쾌감과 가슴을 파고들게한 더없이 아름다운 거장의 선율」로 호평되었고 지난해엔 일본 마이니치 TV가 제작한 세계 최원로지휘자인 아사히나 다가시(조비나 융)다큐멘터리에 참가,이 프로그램은 다가시와 다가시의 후계자였던 그의 하얼빈교향악단 지휘 50년을 기념하는 동양음악사에 남을만한 내용이었다. 그의 성품이 바로 그렇다.폭이 넓고 대범하면서도 절도와 예의범절을 중시하여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는다.단지 싫고 좋은 것을 선명하게 가리는 까다로움 때문에 「카리스마적」이라든가 또는 「독선적」으로 몰아붙이는 예가 없지 않으나 이는 임원식 카테고리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질투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 간단해진다. 오히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강건한 의협심은 작곡가 윤이상씨가 국가보안법에 관련되어 주변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려할 때도 점심을 싸들고 구치소에 드나들며 「거대한 예술가」의 고뇌와 슬픔을 달래주고 예술혼을 격려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래서 윤이상씨는 『임원식은 나의 유일한 은인』임을 자랑삼았고 바로 이런 정의감과 의리가 그의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끈끈한 친화력은 다양한 층과 교분을 트고있는 사교맨이기도 하다.정·재계는 물론 체육계와도 깊이 관련되어 70년대엔 남자대학농구협회부회장을 지내는가 하면 바로 「농구의 노래」를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농구와의 인연은 그가 누구도 「못말릴 농구광」이기 때문이다.그가 얼마나 열렬한 농구광인가는 그가 있는 곳엔 반드시 어린이농구든 어머니농구든 농구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짐작하면 정확하다. 그는 평북 의주의 독실한 개신교집안에서 태어났다.집안이 만주로 이사하는 바람에 봉천서 유년기를 보내고 하얼빈에 있는 제일음악학원에서 피아노와 이론을 사사,교회찬양대를 반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접할수 있었다.편곡과 작곡에도 능하여 도쿄음악학교시절에 작곡한 파인 김동환의 「아무도 모르라고」는 지금도 폭넓게 애창되는 가곡의 하나다.가족은 플루티스트인 고순자씨와의 사이에 2녀1남,연극연출가 임영웅씨가 그의 조카다. ○각계각층 인사와 교분 토스카니니가은퇴해야 할 69세부터 87세까지 거장다운 황금시대를 누렸고 스토코프스키가 95세까지 7천회의 지휘로 금자탑을 쌓았다면 그는 지금 욕구와 절제,감성과 이성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음악의 정수를 순수한 형태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결집된 시기다.그의 열렬한 지지자의 한사람인 원경수는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점에서 『그는 파우스트적』이라고 말한다.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의 피아니시모는 예리하고 그의 포르티시모는 누구보다 웅장하며 긴장되고 팽팽한 현의 울림,꽉차오르는 관의 장중한 볼륨은 거센 폭풍우를 분출시키면서 청중의 가슴속에 날카롭게 꽂힌다』고 경탄해 마지않는다. 올해는 그가 하얼빈서 돌아와 첫지휘봉을 잡은지 만50주년이 되는해,상대방의 내부에 음악의 혼을 심어준 「위대한 음악의 은인」에게 우리 모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의 기립박수를 보낼 때이다. □연보 ▲1919년 평북 의주출생 ▲1942년 일본 동경고등음악학교 졸업 제정삼낭사사 ▲1945년 중국하얼빈심포니 지휘데뷔 ▲1946년 고려교향악단창단,초대상임지휘자 ▲1948년 줄리어드음악학교 수학 ▲1949년 탱글우드음악제서 러시아출신의 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사사 ▲1953년 서울예고 창립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1956∼71년 KBS교향악단 창단,상임지휘자 ▲1961∼75년 서울예고교장 ▲1962년이래 일본 오사카·도쿄필,NHK교향악단 등 50여회 객원지휘 ▲1966년 한국음악협회이사장 ▲1971년 내한 오사카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서울시민회관) ▲1973∼86년 국제청소년 음악연맹 한국지부 회장 ▲1976년부터 서울예고 명예교장 ▲1978년 경희대 음대학장 ▲1981∼84년 예총부회장 ▲1984∼95년 인천시향상임지휘자 ▲1985년부터 추계예대교수 ▲1987년 인천시향 동남아순회연주 및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3개도시 연주 ▲1991년 싱가포르 교향악단 및 레닌그라드필 지휘 ▲1994년 음악데뷔 50년 기념음악회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전곡」지휘,러시아국립교향악단 지휘 ▲1995년 국제청소년음악연맹 한국지부회장 예술원회원,인천시향 및 서울아카데미심포니 명예지휘자 서울시문화상·방송문화상·오월문예상·대한민국예술원상·서독문화훈장·은관문화훈장·음악동아대상
  • 김석원·조량호씨 전경련 부회장에/35회 정총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경제인클럽에서 최종현 회장과 나웅배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김상하대한상의회장,박상희 중소기협중앙회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35회 정기총회를 갖고 김석원쌍용그룹전회장 대신 김석준신임회장을,조중건대한항공부회장 대신 조량호한진그룹 부회장을 전경련 부회장으로 선임했다.이날 총회에서는 기업윤리헌장 채택과 제7회 자유경제출판문화상 시상식도 있었다.
  • 민속연구가 심우성(이세기의 인물탐구:91)

    ◎남사당패 쫓아 풍물 놀고 탈 만들고…/현장 찾아 자료 채집·기록… “발로공부” 평가 받아/1인극 「쌍두아」는 인형에 혼을 담은 산무대로/「꼭두각시 놀음」·「발탈」 무형문화재 지정에 큰몫 심우성(민속연구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삼단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다홍치마를 두루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은반지를 사주고 싶은/고운 처녀도 있었건만/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처녀야!/나는 집씨의 피였다./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시인 노천명은 옛유랑 예인집단의 기약없는 인생과 서글픈 족적을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몇년전 타계한 예용해씨는 「일수가 좋으면 공청에나 또는 주막집 기역자 판을 끼고 잘때도 있지만 인심이 사나운 마을에서는 처마끝에서 비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고 남사당패의 일상을 그의 저서에 쓰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에 걸식행각으로 밥을 빌어먹을 망정(걸양) 그들은 「꼭두각시놀음(우희)으로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에 겨워 살다가」 「어느 낯선 고장에서 길섶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판소리나 춤이나 연극을 하는 예인들의 대부분은 설날 명절 때 동네에 찾아든 유랑극단이나 광대패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그들의 연희에 반해 길을 따라나서거나 부모의 대를 이어받는 수가 흔하다.인형극연희자인 심우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그의 예능 기질은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은 것은 더욱 아니다.단지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고 있던 불가사의한 「끼」에 의해 뒤늦게 연희자로 돌아선 케이스다. ○머슴살던 노인에 영향 그는 언제부턴가 남사당패의 삶을 쫓아 풍물을 놀고 탈과 인형을 만들고 「취발이」나 「미얄할미」나 허세부리는 샌님,미소를 머금은 백정의 탈을 쓴 온갖 인형을 조종하면서 때론 분노로 때론 질타로 어느 때는 주책없고 어느 때는 넉넉하게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손끝에서 펼치더니 어느 날 스스로 연희자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민속연희중에서도 유독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대장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무대밖의 공간이 연결되는 극적 공간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의 무대는 혼자서 극중인물이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자에다 산받이까지 도맡아 양반들의 어처구니 없는 횡포나 위선위귀를 징치하기도 하고 재난을 물리치는 홍동지의 기개를 앞세우는 등 지배층에 대한 세찬 비판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광대」란 역사속에 놓여진 동시대인들의 희로애락을 세상으로 되돌리는 영혼의 울림대이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충남 공주의 만석지기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휘문중에 다니다가 6·25를 만나 고향인 공주군 의당면에 머물면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를 읽은 것과 집안의 나이든 머슴인 정광진노인으로부터 남사당패들의 내력을 들은 것이 연희자가된 동기다. 한때는 소설가 신문기자가 될뻔도 했고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걸핏하면지방 방송국에 출장간다는 핑계로 옛 남사당패를 찾아 나섰고 거의 전국을 떠도는 뜬 광대노릇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풍물놀이(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등 남사당놀이 여섯가지를 재현해 내는데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들여왔다.가족들에겐 의논도 없이 3년만에 방송국을 집어치우고 나서도 「어디어디 답사,무슨무슨 녹음 촬영」등으로 새벽부터 집을 뒤쳐나가는가 하면 여행과 술에 지쳐 며칠씩이나 대낮에도 이불을 펴고 눕는 것이 다반사였다.오죽하면 그의 부인(권숙현여사)이 「올해도 당신 작년처럼 그렇게 지낼거예요」했다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그는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서 부친이 마련한 집을 팔기도 하고 동해안 서해안으로 다니다가 간첩혐의를 받기도 하고 녹음기와 카메라와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5·16직후에는 종로 YMCA강당서 남사당창단 기념으로 남사당놀이중 「덧뵈기」를 공연하려 했을 때 「남사당」이 정당이름인줄 잘못알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빚기도 했다.59년 8월,전국에 흩어져있는 남사당패를 모아 지금의 남산도서관 자리인 빈터에서 요즘의 약장사처럼 「꼭두각시 놀음」을 공연한 것이 본격적인 해설가의 출발이 되었고 그후 전국각지 순회공연으로 「꼭두각시 놀음」과 「발탈」을 공연한 것이 후에 이 놀이들이 중요무형문화재(3호 7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책이 아닌 발로 공부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것은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현지에서 이를 확인보충하고 채집·기록한 공적과 실제로 수백여회에 이르는 연희를 주관하고 실연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우성.민속예술에서 괴팍한 개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틀이 번듯하고 아나운서 출신답게 우아한 말씨를 쓰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광대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틀림없다.이제 그 시절의 남사당패는 사라지고 없으나 유일하게 그 흔적과 체취를 물씬 풍기는 무대가 있다면 심우성의 1인무언극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나마 재혼하는 과부의 설렘으로 무대에 서렵니다』 비장한 인사말과 함께 그가 지난 80년 공간사랑 소극장무대에서 선보인 첫번째 1인극 「쌍두아」는 글자그대로 머리가 둘,손은 넷에다 발이 둘인 전남 구례지방 풍장굿의 비비새놀이에 나오는 접광대를 본뜬 것으로 음악과 인형과 자신의 몸짓만으로 두동강난 조국의 분단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던 그가 이렇게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속되고 다난한 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고 그리고 인형속에 혼을 불어넣는 산무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는 「연희자가 무대에 나와 인형과 함께 춤춘 최초의 시도」로서 평론가 양혜숙은 「가면극이 인형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예술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다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지난 88년 초연이래 최근까지 공연되고 있는 「남도 들노래」도 「민족적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을 담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희생된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속박물관 5월 개관 「민속이란 고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라」는 강한 비판도 있었으나 그는 「민중의 습속이 시대따라 변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속극도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옛 것을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을 한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해 고향인 공주에다 오랜 숙원이던 민속박물관 건립을 시작,각종 탈전시에서 모든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민속과 관련된 자료전시관및 야외공연장을 오는 5월쯤 개관할 예정이다.가족은 노부모와 부부와 아들 하용씨(27·미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가 그를 돕고 있다. 호라티우스는 일찍이 「인간은 타인의 끄나풀에 조종당하는 인형 같이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인형은 「하나의 굳어버린 표정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웃고 있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있는」 아이러니와 시니시즘의 묘미를 그 때마다 능란하게 연출해낸다.오늘 그의 소원은 「타고난 광대의 운명」속에서 「피가 흐르고 살아숨쉬는 진짜 인형」이 되어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으로 핍진하게 이룩하려는 것이다. □연보 ▲1934년 충남 공주출생 ▲53년 서울휘문고졸업 ▲53∼56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58년 홍익대 신문학과졸업 ▲59년 남사당놀이패공연(남산) ▲60년 남사당놀이중 「덧뵈기(탈놀음)」공연(종로 YMCA강당) ▲64년 민속극회 남사당결성 ▲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 창설 ▲79년부터 극단 서낭당창단,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창작인형극 「홍동지의 나들이」「신경림의 농무」「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우리산 우리강」외 김명수춤판,강만홍 인도무용,이동안 전통무용,이매방 민속무용,김숙자 무속무용,우옥주 만구대탁굿등 공연 ▲80년 1인극 「쌍두아」로 무대데뷔(공간사랑소극장) ▲83년 우리문화연구소장,인형극 「만석중놀이」(문예회관소극장) ▲85년 「문」(산울림소극장) ▲86년 서강대·한양대강사 ▲90년 인도 국제인형극제에서 1인극 「남도 들노래」 참가 ▲91년 프랑스·말레이시아·일본민속극제 참가 ▲93년 「판문점 별신굿」 공연 ▲94년 제주 4·3항쟁추념 「남도 들노래」및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 「새야새야」(문예회관대극장)등 3백여회 공연 현재=우리문화연구소장,민학회회장 「남사당패연구」(74년)이후 「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전통무용용어의 연구」「마당굿 연희본 1·2」,평론집 「민족문화와 민중의식」「꼭둑각시놀음」등 20여권 서울시문화상(인문사회과학부문·79년)
  • 문화예술 혁명/임청산공주전문대교수(굄돌)

    현대사회는 대중들을 존중하는 대중사회다.대중사회는 대중매체를 통한 대중문화와 대중예술로서 대중들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다.대중문화예술에는 신문방송,도서출판,필름테이프,음반비디오,디스켓,멀티미디어 등의 대중매체를 활용하는 대중언론,대중문학,대중음악,대중미술,대중무용,대중연예,대중영화,대중만화,컴퓨터통신 등이 현대문화예술의 주류를 형성한다. 그동안 정부당국과 기업체의 문화예술정책은 소수 특권층의 문화귀족과 예술엘리트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전통문화와 순수예술의 보존차원에서만 운영예산을 쏟아부었다.반면에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대학에 전문학과의 개설과 인력양성이 일천하고 관련 단체의 활동과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하여 국가정책으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통속성·오락성·불건전성만을 지적할 뿐이었다.이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한 신세대들이 그토록 선호하고 열광하는 대중문화예술을 건전화·고급화·산업화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의 왜색화·서구화를 민족문화예술의 발전과 국가경쟁력의 제고로 승화시켜야 할때다. 첫째,대중문화예술의 육성을 위한 「대중문화예술진흥법」을 마련하고 「대중문화예술진흥원」을 설치하여 대중문화예술을 건전하게 육성하여야 한다.대중문화예술을 청소년유해매체의 심의와 규제대상으로만 보지 말고,신종 문화산업의 육성차원에서 재인식하여야 한다.우선 기존의 문화예술진흥법과 문예진흥원 안에 대중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추진하면서 확대 개편해도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둘째,대중문화예술을 세계적인 문화산업으로 개발하기 위한 「한국문화산업대학」을 설립하여 전문 예능사를 양성하여야 한다.멀티미디어,정보통신,만화영상,가요음반,방송연예,디자인 등의 첨단산업과 선진예술의 예술공과대학을 개설하고 순수예술 영역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수준으로 운영하여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대응하고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전세계시장에 민족문화예술을 전파하여야 한다.과도기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안에 몇개의 학과라도 우선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복합매체시대에 탈장르현상이 보편화된 오늘날 대중들의 혈세를 그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문화예술의 평준화·문민화·세계화 정책이 총선·대선 공약에 수용된다면 21세기를 대비하는 문화예술혁명이 아니겠는가.
  • 권태준세추위원 「지방의 세계화 전략」 주제발표

    ◎“산업구조 재조정·문화상품 개발을”/지역실정 맞는 개별전략 수립… 시장확보 힘쓸때/국가차원 거시정책은 계층 갈등·재정 불안 불러 국경을 초월한 「국경 없는 경제」체제의 형성과정에서는 지방의 세계화가 긴요하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키 어려울 것이다.26일 세계화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수성·김진현) 추진위원인 권태준서울대교수가 발표한 「지방의 세계화」추진전략과 방안은 그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한 방향제시가 아닐 수 없다.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열린 세추위 발족 1주년 기념 보고회의에서 「세계화에 대응하는 지방화」라는 제목으로 제시한 권교수의 주제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국경 없는 경제」체제의 형성과정이기 때문에 위험부담과 기회가 한 나라 안에서도 여러 지방에 대해 차별적이다.따라서 세계화에 대응하는 개별국가의 전략에는 반드시 그 나라 안 각지방에 대한 지방화방안이 있어야 한다. 지방의 세계화전략은 ▲경쟁력 있는 세계적 기업에 대한 생산입지제공 ▲지방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강화 ▲정보화를 통한 세계유수기업의 본사 중추기능유치 ▲지방고유문화의 상품화를 통한 「틈새시장」개발등 4가지로 압축된다. 첫번째 전략은 경쟁력 있는 세계적 기업에 대해 생산시설을 설치할 자리를 내주는 「장소판촉」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스스로의 자본과 기술로는 경쟁력 있는 산업을 일으킬 수 없는 지방에서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토지를 내세워 노동집약적 외국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이다.그러나 이는 후진국형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주로 두번째 이하 유형일 것이다.둘째유형은 기존산업의 제품개량을 하거나 생산공정·경영체제를 「재구조화」해 생산능률을 제고함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70∼80년대 일본 전자산업,그리고 최근 일본과의 경쟁에서 고지를 재탈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의 자동차도시의 예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유형은 세계적 대기업의 경영관리중추기능이나 새로운 고기술연구개발기능을 집중유인입지케 하는 전략이다.세계적 경쟁력을 회복키 어려운 전통적 제조업중심도시가 기존의 생산시설을 폐쇄하거나 다른 나라에 옮겨버리고 새삼 「재산업화」하는 전략인 셈이다. 여기에는 그에 알맞는 도시공간구조의 재편성을 도모하는 전략이 포함된다.영국·미국등 과거 제철업·조선업·섬유산업중심도시가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끝으로 네번째 전략은 해당지방의 고유문화제품이나 기술을 세계 「틈새시장」을 대상으로 상품화하는 것이다.이를테면 이탈리아 몇몇 지방의 수공예·가구나 의상디자인기술,프랑스 여러 지방의 고급포도주나 방향원료등의 경우처럼 비교적 소수의 고객이기는 하나 고가의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독점하는 전략이다.일종의 「문화의 상품화」전략인 셈이다. 그 어느 경우에나 종래와 같은 전국차원의 거시경제적인 시책보다는 개별기업의 조직과 기술,경영방식,근로자의 적성 및 기술숙련도와 생활여건,개별상품의 시장성등에 대한 미시적 접근과 조절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의 지방중소기업의 경우 이같은 「근접·미시」적 지원·조정이 절실하다.개별적이고 특수한 문제에 대해 국가적기구와 제도는 너무 거시적이고 획일적이기 때문에 해당지역사회의 공동체적 중재와 조정망의 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세계화는 또 국가의 시장개입능력을 약화시켜 한 국가사회 안에서도 계층과 직업간에 차별적인 위험부담과 기회를 가져온다.교욱·소득이 높은 계층이나 첨단기술분야 종사자가 종전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기회를 얻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층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면 국가도 지방도 세계화과정에서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때문에 세계화에 대한 국가적 대응에는 사회통합적 배려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기말에 진행되고 있는 경제체제의 세계화는 개별국가단위에 있어 중앙 및 지방정부의 재정기반 자체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다.따라서 여기에서도 지방·지역사회의 공동체적 중재와 협동이 필요하다.그리고 이런 지방공동체적 네트워크는 정부와 민간,사용자와 근로자,대기업과 중소기업,각급학교,기타 연구기관과 시민사회단체등이 모두 참여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세계화에 대한 국가적 대응은 기본적으로 세계적 경제체제변화에 대해 지방(공동체)적 동화를 도모하는 것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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