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문화부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영정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기수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지방선거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허백윤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589
  • 미얀마 지진 규모 6.8…최소 3명 사망·유적지 훼손

    미얀마 지진 규모 6.8…최소 3명 사망·유적지 훼손

    이탈리아에 이어 미얀마에서도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해 사상자가 속출했다. 또 미얀마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 바간에서도 불탑과 사원이 다수 훼손됐다. 2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쯤 중부 마궤주(州) 차우크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의 깊이는 84㎞다. 이날 지진은 태국 수도 방콕,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도 동부의 콜카타 등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마퀘 주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진의 영향으로 모두 3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차우크 남쪽의 예난추앙에서 지진으로 강둑이 무너지면서 2명의 소녀가 목숨을 잃었고, 북쪽 파코쿠에서는 담배 가공공장이 붕괴하면서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했다. 피코쿠에서 활동중인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빈센트 판자니는 “동료들은 이번 지진이 그동안 미얀마에서 경험한 것중 가장 강력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10∼14세기에 지어진 고대 불교 유적이 있는 인근 도시 바간에서는 불탑과 사원 건물 등 90여개의 유적이 무너지거나 부서졌다고 미얀마 종교문화부가 밝혔다. 미얀마 남부 최대 도시인 양곤 등지에서는 탁자가 흔들리거나 유리창이 깨지면서 고층빌딩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대피했다. 인도 콜카타에서는 여진을 우려해 지하 열차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고,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는 놀란 사람들이 건물에서 긴급히 대피하는 과정에서 최소 20여명이 다쳤다고 현지 방송이 전했다. 미얀마는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는 인도-호주판 위에 위치해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미얀마-태국 국경지대에서 강진이 발생해 최소 74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문화재단 대표에 주철환씨

    서울문화재단 대표에 주철환씨

    서울시는 23일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주철환(61)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MBC PD와 OBS경인TV 대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중앙일보 JTBC 편성 본부장 등을 거친 방송 전문가다. 시는 대중문화부터 정부 예술 정책, 문화예술 및 방송 전반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주 교수가 행복한 문화도시 서울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 [오늘의 눈] 인천상륙작전과 헬조선/홍지민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인천상륙작전과 헬조선/홍지민 문화부 기자

    영화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신작 영화를 개봉 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어떤 영화가 재미있느냐고, 또 어떤 영화를 봐야 하느냐고. 호기롭게 작품을 추천했다가 실망스러웠다는 반응이 돌아온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면 살짝 당황하면서도 각자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곤 하는데, 이보다 더 황망한 순간은 여러모로 뜯어봐도 잘될 것 같지 않던 작품이 크게 흥행할 때다. 영화 보는 눈이 잘못된 것인지, 대중의 흐름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국내 대형 투자·배급사가 일주일 간격으로 비장의 흥행 카드를 내걸었던 올여름이 특히 그랬다. ‘부산행’(뉴)을 시작으로, ‘인천상륙작전’(CJ엔터테인먼트), ‘덕혜옹주’(롯데엔터테인먼트), ‘터널’(쇼박스)까지, 이른바 ‘빅4’의 시사회 뒤 기자와 평론가들은 대체로 ‘부산행’과 ‘터널’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인천상륙작전’에는 혹평을 쏟아냈다. ‘철 지난 반공 영화’라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를 꺼내기에 앞서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고 보니 여봐란듯이 흥행에 성공했다. 수많은 관객들은 초개와 같이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하는 무명의 용사들의 모습에 ‘어찌됐든’ 감동했다. ‘덕혜옹주’에도 언론과 평단은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웰메이드임에는 분명하지만 소재나 (멜로에 가깝게 느껴지는) 장르 면에서 흥행감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화려한 볼거리도 부족했다. 그런데 손예진의 열연과 허진호 감독의 섬세한 감정 연출에 대한 입소문이 나며 역주행했다. 물론,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인 삶을 보여주며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눈물과 감동을 버무린 점도 흥행에 한몫했다. 현재 ‘인천상륙작전’은 관객 700만명을, ‘덕혜옹주’는 500만명을 넘보고 있다. 영화의 만듦새는 논외로 하고, 최근 들어 애국심 등이 흥행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은 두 영화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암살’과 ‘연평해전’이, 2년 전에는 ‘명량’과 ‘국제시장’ 등이 있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극장 안에선 나라 사랑에 뭉클한 관객들이 극장 바깥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헬조선이라며 아우성이다. 취업에 허덕이는 청년 세대는 연애도 포기, 결혼도 포기해야 한단다. 어찌어찌 취직하고 결혼해도 육아 포기, 내 집 마련 포기가 기다린다. 무엇을 더 포기해야 할지 몰라 N포 세대라는 자조가 횡행한다. 중장년층이라고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끝이 없다. 100세 시대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는 고위 공무원의 취중 발언이나, 폭염으로 촉발된 전기료 누진제 폐지 논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헬조선이라는 인식을 부채질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애국심이 흥행 공식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싶어도 마음 줄 구석이 변변치 않은 현실을 역설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영화에서라도 나라 사랑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고 싶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국민들은 ‘인천상륙작전’이나 ‘덕혜옹주’ 등을 관람하며 ‘우리나라를 제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icarus@seoul.co.kr
  • [부고]

    ●박종익(서울신문 나우뉴스부) 종옥(자영업)씨 모친상 19일 서울 성북구 뉴타운 장례식장 2층 8호실, 발인 21일 오전 7시 (02)909-4444 ●심우섭(전 서울신문 감사부장)씨 장모상 19일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31)384-1248 ●이부홍(전 대한상공회의소 전무이사)씨 별세 19일 서울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02)2072-2022 ●주홍행(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겸 사진부장)씨 부인상 정완(JTBC 보도국 스포츠문화부장)정훈(자영업)정엽(천주교 의정부성당 사무장)씨 모친상 김명숙(서울버들초 교사)씨 시모상 1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32 ●이종훈(JW홀딩스 해외영업팀장 이사)씨 부친상 1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2258-5940 ●한천식(전 연합뉴스 국장대우)씨 모친상 18일 강동경희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2)440-8923 ●이인재(삼성카드 전무)씨 부친상 19일 미국 뉴욕, 발인 22일 (02)2172-7596(삼성카드) ●이대진(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씨 별세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6시 (02)3410-6901 ●김동수(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은행 수석부행장·전 우리은행 상무)씨 모친상 보경(연합뉴스 국제뉴스부 기자)태한(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임상강사)씨 조모상 11일 미국 별세, 빈소 서울대병원(20일 오전 11시부터), 발인 22일 오전 9시 (02)2072-2010 ●지관식(한국일보 종합편집부문장)씨 모친상 김지원(신세계면세점 매니저)씨 시모상 19일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 302호, 발인 22일 오전 8시 (02)923-4442
  • 박지원 만난 JP “조만간 안철수 前대표와 냉면 먹자”

    박지원 만난 JP “조만간 안철수 前대표와 냉면 먹자”

    박 비대위원장 “반총장의 ‘ㅂ’도 안나와” “명월관이 냉면을 잘하던데. 안철수 전 대표도 같이 데리고 와서….”(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대중 대통령님도 갈비를 좋아하셔서 잘 가시던 곳이죠. 제가 안 전 대표랑 같이 모시고 가도록 하겠습니다.”(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19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을 방문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국민의 정부 문화부 장관을 지낼 당시 총리였던 김 전 총리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등 깍듯한 예우를 갖췄다. 박 비대위원장은 “잘 지내셨느냐”며 건강을 물었고, 김 전 총리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를 언급하며 “저녁에 올 때면 사모님이 항상 저를 꽉 안아주셨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박 비대위원장과 30여분간 비공개 만남을 가진 뒤 배웅하며 “내일 냉면을 먹자”고 제안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광주 일정이 있다고 하자 “서울에 돌아오면 안 전 대표도 데려와서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예방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전 총리께서 국민의당이 국민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지 확실히 설명하고 매일 국민을 설득하라고 하셨다. ‘안철수 전 대표의 설득이 가장 필요하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시기 전 얼마나 국민을 설득했느냐’라며 많이 걱정하셨다”고 전했다. 특히 김 전 총리는 “국민을 확실하게 설득하지 못하면 국민은 뭘 하려는지 이해 못한다”고 강조했다고 박 비대위원장은 덧붙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반기문의) ‘ㅂ’도 안 나왔다”고 선을 그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첫 출근일은 1981년 9월 23일, 결혼 날짜는 1982년 12월 20일입니다. 아직 기사 마감 전이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다음날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때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도움 될 만한 정보와 자료들을 문자와 이메일로 알려 왔다. 참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달진(61) 관장은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과 집요함이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연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지금의 그를 있게 했으리라. -“신문 쪼가리 모아서 밥은 어떻게 먹고살려는지…쯧쯧.” 어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신문이건 잡지건 서양 명화가 실린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오려서 스크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나중에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을 게다. 나도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은 좋아하는 취미가 우선이었다. 비록 인쇄물이긴 해도 르누아르, 피카소, 천경자, 박수근의 그림을 모으는 기쁨은 컸다. 고교를 졸업할 때 내가 모은 미술자료는 스크랩북으로 10권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자료들이 내 밥벌이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충북 옥천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초등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셋째 형님을 따라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작은 껌종이, 담뱃갑, 우표 등이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우체국 창구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주부생활’ ‘여원’ 등 잡지에 실린 세계 명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틈만 나면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6, 7, 8가를 돌며 미술전집 등을 샀다. 서점 주인에게 그림 한 장을 뜯어서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1972년 고 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보니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모은 거냐? 참으로 기특하구나.” 고 3때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이경성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막연하나마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계와 학계, 출판계에 계신 분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뜻밖에도 이 교수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큰절을 한 뒤 가방에 싸 간 스크랩북 10권을 보여 드렸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때의 만남이 나중에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인사동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동대문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를 알게 됐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학천 사장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라. 지금의 남대문경찰서 인근 초원다방에서 만났는데 대뜸 “잡지 일은 어렵다. 사환으로 심부름도 하면서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 월급은 따로 없고 교통비 정도만 줄 수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때가 1978년이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미술자료 기획물도 연재하고, 편집일도 배우며 신나게 일했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바람으로 잡지가 폐간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전시계’가 폐간된 뒤 청주에서 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던 1981년 이경성 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당장 편지를 썼다. 관장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당시 미술관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 전시과, 서무과 2개만 있었고 큐레이터란 직제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선생이 그때 전문위원으로 큐레이터 역할을 했는데 전문위원실에 책상 하나를 얻어 자료 수집을 담당했다. 하루 4500원 일당의 임시 일용직이었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매주 금요일마다 출근부에 사인한 뒤 인사동, 사간동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전까지 미술관은 보내오는 자료만 수집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얻은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든 채 신문사와 전시장을 쏘다녔다. 화랑 관계자들은 “뭐하러 이걸 가지고 가느냐. 다 보내줄 텐데”라고 의아해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도록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도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니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편집광적이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걸 어쩌겠나. 한 번 잘못 기록되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 하도 몸을 혹사한 탓인지 2011년 척추에 종양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년퇴직 때까지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1996년 1월 미술관을 그만뒀다.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응어리가 지더라. 처음 별정직 7급 계약직으로 들어가 8년을 일했는데 그다음에 기능직 10급으로 강등됐다. 미술 잡지에 내가 쓴 미술자료 관련 글이 여럿 소개되고, 신문에도 인용 보도되면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승진은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다. 마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과 인연이 닿아 자료실장으로 발탁됐다. 5년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가나아트’ 잡지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기획물과 인터뷰 기사를 썼다. 이 사장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미술 정보지 ‘파리스코프’를 견본으로 포켓용 전시회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나에서 독립한 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내게 됐다. -2001년 12월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내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그해 9월 미술정보 포털 사이트 ‘달진닷컴’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8년 40여년 가까이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각종 희귀 자료와 기증 자료,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 자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면서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평창동,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전월세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3월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 겸 사옥을 마련했다. 건물 사느라 은행에 빚을 많이 졌는데 건축가 김원이 재능 기부로 리모델링을 맡아 준 덕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잡지 미술 연재물 기록을 시작으로, 미술단체카드, 미술인명카드, 주제별 미술기사 색인 카드 등을 정리했다. 1980~90년대 중반까지 내가 발표한 글이 신문에 자주 인용 보도되면서 ‘자료 하면 김달진’이란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평론가를 비롯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특히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의 힘이랄까,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널리 알린 게 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인 하면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만을 생각하지만 나는 비창작 미술인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작품 보존 및 수복전문가 등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아트가이드’ 미술계 인명록에 이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수집해 꾸준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해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 1’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채용신부터 1850년 이후 태어난 4900명을 실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10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 책에 약력이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가보로 삼겠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밤하늘 별 중에 왜 일등별만 기억해야 하느냐.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 인명록에 숫자 1을 붙인 건 언젠가 2권을 꼭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현재 달진닷컴에서 7800명의 미술인이 검색되니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최명자씨)는 전시계에서 일할 때 같이 근무한 동료였는데 책을 좋아하고, 서예가 취미인 점 등이 나와 잘 맞았다. 박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할 때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하고, 우유 배달해서 살림에 보탰다. 직장이든 집이든 자료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관악구 남현동의 오래된 예술인 마을에 살았는데 자료를 놓아 둘 데가 없어서 라면 박스와 사과 박스에 담아서 안방에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잤다. 어느 날 무게를 못 이겨 마룻바닥이 휜 것을 본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앞집의 빈 지하실을 얻어서 자료를 옮겼는데 여름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자료를 몽땅 버려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그때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딸 영나(32)와 아들 정현(29)은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했고, 아들은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일부러 시킨 건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아빠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를 잇겠다고 하더라. 미술계 지인들이 다 부러워한다. 아내도 서울아트가이드 발행인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다. 전시, 학술, 뮤지엄 분과로 나뉘어 있고 3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라키비움(라이브러리+아카이브+뮤지엄)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작품 이력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 등 눈에 보이는 지원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화, 공공 수장고 확보 등 미술계 토양을 튼튼히 하는 인프라에 좀더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05년 11월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국내 미술계가 직면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계 위작 시비,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시 리플릿 한 장, 메모 한 줄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년 전 ‘관람객은 속고 있다’에 쓴 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신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46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에 매진해 온 자타공인 국내 미술자료 전문가 1호다. 미술계 안팎에선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로 통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스스로를 “한국 근현대 미술의 기록과 공유를 지향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라고 부른다. 2013년부터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아키비스트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55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 졸업(1993),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1999) ▲월간 전시계(1978~198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1996),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관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및 협회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 서울시박물관협의회 이사,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회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2010),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14), 홍진기창조인상(2016)
  • 쓸데없이 목숨 건다 vs 가치있는 인생 경험…‘전쟁관광’ 논란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인 8명, 미국인 3명, 독일인 1명으로 구성된 관광객 일행이 아프가니스탄 서부 고대 유적지를 여행하다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7명이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탈레반의 잔악무도한 테러 행위에 대한 비난과 별개로, 수천 명 주민이 유혈사태를 피해 탈출하는 아프간으로 누가 왜 목숨 걸고 관광을 떠나는지 의구심 담은 눈길이 쏠렸다. AFP통신에 따르면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전쟁 관광객(war tourist)’들이 납치와 폭탄테러 가능성에 대한 경고에도 해마다 아프간으로 향해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인 산악지대와 장엄한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고 있다. 올해 6월 아프간으로 ‘휴가’를 다녀온 미국인 배낭여행가 존 밀턴(46) 씨도 그중 하나다. 과거 북한과 소말리아에도 다녀온 밀턴 씨는 AFP에 “분쟁지역이나 인적이 드문 지역을 가보면 평범한 관광지를 여행할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친지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남다른 것을 감수할 의지가 없다면 평범한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며 “흉터 하나 없이 죽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아프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2013년 일본인 무역상 후지모토 도시후미 씨는 ‘단조로운 일’이 지겨웠던 나머지 2011년부터 심각한 내전 상태인 시리아 알레포를 잠시나마 다녀왔다. 그는 역시 분쟁 상태인 예멘에도 다녀왔다고 AFP에 말했다. 관광객들은 분명히 자신의 의지로 분쟁지역을 찾고 있으나 이들의 ‘모험’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4일 탈레반 공격을 받은 서양 관광객들은 당시 아프간군의 호위를 받고 있었으며 부상자 중에는 아프간 현지인 운전기사가 포함됐다. 이번 여행객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여행사의 대표도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서방 대사관 대부분이 위험 지역 여행을 자제하라고 자국민에 경고하는 가운데 관광객들이 무모하게 위험을 감수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위험지역 여행을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는 ‘훈장’과도 같이 여기고 소중한 인명을 위험에 노출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단지 스릴을 즐기러 이런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항변도 만만치 않다. 아프간, 소말리아 등지의 관광 상품을 취급하는 영국 여행사 ‘언테임드 보더스’(Untamed Borders)의 제임스 윌콕스 대표는 “사람들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장소를 보고 싶어 우리 여행에 참여한다”며 “그곳이 위험해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전리품’을 위해 이런 여행에 나서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대부분 사람들은 누가 아프간에 다녀왔다고 해서 감탄하지는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아일랜드 배낭여행객 조니 블레어(36) 씨도 “아프간에 관해 남은 것은 (북부) 사망간 주의 불교사원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했던 기억, 마자리샤리프에서 밤에 물담배를 피우고 차 한잔을 마셨던 기억”이라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완전히 있다”고 말했다. 분쟁과 테러에 피폐한 국가 역시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아프간 상당 부분이 무장조직에 장악됐지만, 항공편으로 진입 가능한 지역과 평화가 비교적 잘 유지되는 지역이 일부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 문화부 대변인 하룬 하키미는 작년에만 2만 명이 카불을 방문했다면서 “아프간은 간절히 외국인 관광객이 필요하다.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어 이것(외국인 관광객 유치)이 중요한 수입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한국방송협회장에 고대영씨

    한국방송협회장에 고대영씨

    한국방송협회는 고대영(61) KBS 사장이 신임 회장에 취임했다고 1일 밝혔다. 고 회장은 KBS 모스크바 특파원,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KBS비즈니스 사장 등을 역임했다. 임기는 2년이다. 한편 협회는 이날 새 사무총장으로 김혜송 전 KBS 선거방송기획단장을 선임했다. 김 사무총장은 KBS 파리지국장, 보도국 문화부장·해설위원 등을 지냈다.
  • [세종로의 아침] 도계의 눈물/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도계의 눈물/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오겐키 데스카?’란 문장 기억하시는지. 한국말로 ‘건강하시지요?’쯤 될까.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1995년)에 나오는 명대사다. 이 대사를 들으면 가슴 설렐 ‘아재’들 꽤 많지 싶다. 영화의 주무대는 일본 홋카이도의 항구도시 오타루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꽤 많이 찾는 곳인데, 이 오타루의 주력 관광상품 중 하나가 유리공예다. 1970년대쯤 유리공예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하니 얼추 40여년 만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된 셈이다. 국내에도 오타루의 유리공예를 벤치마킹한 곳이 있다. 강원 삼척시 도계읍의 ‘유리마을’이다. 탄광마을인 도계가 유리공예에 눈을 돌린 것은 풍부한 재료 때문이다. 세 단계로 나뉘는 석탄 채굴 과정의 첫 번째 단계에서 ‘경석’이 나오는데, 이게 유리공예의 재료가 된다. 탄광이야 지척에 널려 있으니 재료 확보와 운송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일 터. 한데 아쉽게도 오타루만큼 성장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유리마을 앞엔 철길이 지난다. 2012년 폐선된 철길이다. 지금은 마을 위 ‘하이원 추추파크’에서 관광객을 실은 증기기관차가 하루 한두 차례 이 철길을 오간다. 그런데 증기기관차는 오가도 내리는 사람은 없다. 역이 없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객차 안에서 힐끔거리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도계역에 내려서는 대충 역 주변만 훑어본 뒤 서둘러 셔틀버스를 타고 추추파크로 돌아간다. 간이역이라는 접점이 없어서 꽤 괜찮은 관광상품 둘이 하나로 묶이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관광 열차인데, 유리마을 앞에 간이역 하나 만드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유리마을에서 개성 넘치는 공방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철길 옆에 건물 세 동을 지은 뒤 그 안에 공방들을 몰아넣었다. 개성은커녕 예산 들여 후딱 조성한 티가 역력하다. 얼핏 생색내기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주변에 수두룩한 광부 사택 같은, 낡은 근대의 풍경들을 공방으로 활용했으면 더 나았을 뻔했다. 도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광마을이다. 이는 도시 전체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말과 같다. 정부는 진작부터 ‘석탄산업 합리화’를 외쳤다. 사실상 석탄산업을 접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석탄산업에 기댄 상황에서 탄광이 문을 닫으면 도계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다른 지역 탄광마을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돈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오타루처럼 관광객들이 기꺼이 찾아 지갑을 열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 게 진짜 돕는 길이지 싶다. 도계 등의 탄광마을들에도 요청할 게 있다. 광부 사택촌인 ‘꺼먹마을’ 같은 근대의 기억이 담긴 건물들을 쉬 개발업자의 손에 넘기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최소한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게 더 이득이 될지 고민을 해봐 달라는 부탁이다. 근대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산업역군’ 광부들에게 꽤 많은 부분을 신세졌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차례다. 무엇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를 말이다. angler@seoul.co.kr
  • [데스크 시각] 증강현실, 가상현실, 리얼리티/이순녀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증강현실, 가상현실, 리얼리티/이순녀 문화부장

    믿기 힘든 현실과 마주할 때 쓰는 ‘영화 같다’거나 ‘드라마 같다’는 표현은 이제 용도 폐기돼야 할 듯싶다.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온 뉴스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현실들이 사회 곳곳에서 은밀히 벌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설마 저렇기야 하겠어?”, “재미를 위해서 실제보다 부풀렸겠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가령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과 다음의 대화를 비교해 보자. “나는 최고 스펙을 지향한다. 너희도 그러길 바라고, 그래야만 하고. 왜냐? 우매한 대중은 거기서 이미 마음이 약해진다. 간단해요. 어느 대학을 나온 의사에게 내 건강을 맡길 것이냐, 어떤 변호사한테 내 재산과 권리를 맡길 것이냐.” “우매한 대중이란 거 자체가 틀린 전제 아니에요? 그건 대중을 무시하거나 대중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니들 아침 안 먹었지? 뇌가 허해서 헛소리들을 하는구나.” 지난해 방영됐던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나오는 장면이다. 굴지의 대형 로펌 대표인 한정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아들과 며느리에게 가르치며 나누는 대화다. 대대로 누려온 최상위 1%의 삶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에게 대중은 ‘힘과 전략으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다만, 그는 이런 말이 ‘돌 맞을 만한 말’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입 밖에 내지 말고 조용히 실천하라’고 당부한다. 이 장면을 볼 때만도 해도 그저 웃어넘겼다. 세태 풍자 드라마의 성격상 과장됐겠거니 했다. 그러다 올 초 영화 ‘내부자들’에서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어 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란 그 유명한 대사를 듣고는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렇게 막가도 되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더 큰 반전이었다. 나라의 교육 정책을 좌우하는 고위 관료가 아무리 사석이라지만 기자들 앞에서 ‘신분제 공고화’ 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에 말문이 콱 막혔다.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즉 진경준 검사장과 김정주 넥슨 회장 간 석연치 않은 거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 등 기시감 충만한 사건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면서는 아예 체념했다. 검사와 스폰서 기업 간 유착 관계, 정치인과 기업인이 연루된 성 스캔들, 1%끼리 서로 챙겨 주는 그들만의 리그. 그래,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보아 온 신물나는 장면들은 허구의 스토리가 아니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구나. 스크린과 TV를 통해 ‘풍문으로 들’었던 ‘내부자들’의 ‘부당거래’는 그렇게 눈앞의 현실로 쓱 다가왔다. 소위 사회지도층, 엘리트를 자임하는 이들의 비뚤어진 인식과 탐욕을 적나라하게 목도하는 와중에 또 다른 한편에선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실세계에 펼쳐 놓은 가상의 캐릭터를 잡으러 수많은 사람들이 속초로, 울산으로, 부산으로 뛰어갔다. 덩달아 가상현실(VR)에 대한 관심도 수직 상승했다. 현실이 더 영화 같은 세상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쯤이야 무슨 대수일까. 누구 말마따나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coral@seoul.co.kr
  • 조각가 박은선, 미켈란젤로 잠든 피렌체 깨우다

    조각가 박은선, 미켈란젤로 잠든 피렌체 깨우다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탈리아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의 꽃이라 불리는 두오모와 피렌체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 그 위의 베키오 다리, 미켈란젤로가 잠들어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 등 문화유산으로 빼곡한 피렌체 시가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이곳에 지난 20일부터 현대적인 조형물 3개가 설치됐다. 하늘의 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쌓아올렸던 오벨리스크처럼 한 켜 한 켜 쌓아올린 대리석 조형물은 지극히 현대적인 형태를 하고 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유서 깊은 도시의 아름다움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꼬아지면서 올라가는 높이 13m의 흰색과 회색 대리석 조형물 받침대에는 ‘무한기둥’(Colona Infinita Accrescimento)이라는 제목과 함께 ‘PARK EUN SUN’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쓰여 있다. 이탈리아에서 거주하고 작업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조각가 박은선(52)은 미켈란젤로 광장 외에 메디치 가문이 거주했던 피티궁 앞 광장과 베키오 궁전 등 피렌체 시내 곳곳의 유서 깊은 장소에서 ‘피렌체의 박은선’이라는 제목으로 대형 조각 작품 14점을 선보이고 있다. 오는 9월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피렌체시 문화부가 주관하는 ‘피렌체의 여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을 본떠 만든 청동 다비드상이 우뚝 서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이 관광버스 주차장에서 광장으로 복원된 뒤 처음으로 열리는 문화행사다. 박은선 작가는 “건축가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인 미켈란젤로가 활동했던 피렌체시의 초청을 받고는 최고의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년간 준비했다”면서 “광장의 넓이, 광장에 서 있는 청동 다비드상의 높이를 감안하고 피렌체 유적들의 색깔과 형태를 고려해 작품의 크기와 형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대리석과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의 무게가 최대 30t까지 나가기 때문에 시청과 행정부가 승인했더라도 안전 문제 때문에 일일이 안전 검사를 받아야 했고 전시 장소가 변경되기도 해서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대해 전문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작가와 오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조각가 피노티는 “박은선 작품의 색깔과 형태들이 산타크로체 성당, 두오모, 베키오궁과 조형적으로 너무 잘 어울린다”며 “뒤틀리면서 위로 올라가는 형태가 시간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감동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시 장소의 한 곳인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의 베르나르데 주임신부는 “박은선의 작품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교차한다. 죽음으로 삶이 끝나지만 빛의 도움으로 재생하는 것 같은 성스러운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고, 피렌체 라디오방송국 콘트로라디오의 지미 트랑킬로 에디터는 “지금까지 많은 컨템퍼러리 예술가들의 전시가 열렸지만 박은선의 작품처럼 피렌체의 스카이라인과 잘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고 평했다.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다리오 나르델라 피렌체 시장은 “박은선 작가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컨템퍼러리 예술가 중 가장 뛰어난 예술가”라며 “과거와 현대, 미래를 잇는 그의 조각 작품이 동양과 서양, 한국과 이탈리아를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박은선의 전시를 기획했고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경희대 조소과,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원을 졸업한 박은선은 미켈란젤로가 한때 머물며 작업했던 이탈리아 중서부 해안도시 피에트라산타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그가 이탈리아에 온 것은 24년 전이다. 돌에 균열을 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두 가지 색의 대리석이나 화강석을 쌓아 올리는 독특한 작품으로 동양적인 정서를 담은 현대 조각을 구사하는 그는 이제 전 세계가 알아주는 ‘마에스트로’가 됐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프랑스 라볼, 스위스 루가노, 룩셈부르크 에스페란제 등 유럽 곳곳의 명소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지난해엔 고대 로마의 유적지 한복판에 위치한 메르카티 디 트라야에 초청돼 전시를 열었고, 피사의 갈릴레이 공항에는 지난해부터 2년째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내년에는 피에트라산타와 파도바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글 사진 피렌체(이탈리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전국 학교 우레탄 트랙 1767곳서 기준치 이상 납 검출

     전국 초·중·고교 운동장의 우레탄 트랙 3곳 가운데 2곳에서 유해 중금속인 납이 과다 검출됐다. 하지만 이를 제거하고 재설치하는 데에 드는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자칫 개학 이후에도 학생들이 건강을 위협하는 우레탄 트랙에 그대로 노출되게 생겼다.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교 우레탄 트랙의 유해성을 전수 조사한 결과, 우레탄 트랙을 설치한 2673개교 가운데 64%인 1767개교에서 한국산업표준(KS) 기준치 90㎎/㎏을 초과하는 납 성분이 검출됐다고 22일 밝혔다. 특히 15개 학교는 기준치의 100배를 넘기도 했다.  현재 전국 시·도교육청은 이들 학교에 우레탄 트랙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한 상태다. 학교는 우레탄 트랙이 학생들의 신체에 닿지 않도록 트랙에 덮개를 씌우고 주변에 안내 표지판 등을 설치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애초 방학 동안 문제가 되는 우레탄 트랙을 제거하고 재설치할 예정이었지만, 예산 마련에 차질이 생기면서 개학 이후에도 남 범벅 우레탄 트랙이 그대로 방치될 것으로 보인다. 우레탄 트랙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교육부가 문화부와 함께 우레탄 제거와 재설치 비용을 절반씩 내기로 했지만, 문화부에서 리우 올림픽을 이유로 예산 부족을 알려오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 추가경정 예산 1474억원을 신청했지만, 예산을 전부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문제가 된 우레탄 트랙을 모두 교체할 예정”이라며 “모자란 비용에 대해서는 정부에 국고를 요청하고 시·도교육청에 예비비 등을 내도록 협조하는 방식으로 충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엉터리’ 한식 외국어 메뉴판 없앤다

     곰탕을 ‘베어 수프’(bear soup), 육회(肉膾)를 ‘식스타임즈’(six times)로 쓰는 등 엉터리 외국어로 번역한 한식 메뉴판이 사라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립국어원, 한국관광공사, 한식재단, 한국외식업중앙회와 협의체를 구성해 한식 메뉴판의 오역을 고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국립국어원과 한식재단은 외국어 전문가와 음식 전문가로 그룹을 구성해 표준화된 한식 메뉴의 외국어 표기법을 만든다. 관광공사도 한식당의 메뉴명을 번역하기로 했다. 현재 외국어로 표준화된 한식 메뉴는 200개 정도고, 표준화는 되지 않았지만 번역에 오류가 없는 메뉴는 3700여개 정도다. 네이버 등 검색포털 사이트와 함께 검색창에 음식 이름을 입력하면 3개 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의 표준 번역이 나오도록 할 계획이다.  한식재단은 이달부터 2개월 동안 외국어 메뉴 오류 사진과 상호 이름을 온라인으로 신고하면 식당에 연락해 이를 개선하는 시범 사업을 펼치고 관광공사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지역의 식당 1000곳에 외국어 메뉴판 제작을 지원할 방침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화장실 섹시 댄스 춘 중국 BJ 방송금지 처분

    화장실 섹시 댄스 춘 중국 BJ 방송금지 처분

    인터넷 생방송에서 ‘화장실 섹시 댄스’를 춘 중국 BJ가 당국으로부터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5일자 보도에 따르면, 논란의 주인공은 댄서 송지신(Song Zixin). 그녀는 중국 최대 인터넷방송 ‘와이와이’(YY)에서 10만 명의 팬을 거느리는 인기 BJ다. 최근 송지신은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상의와 핫팬츠에 하이힐을 신고 화장실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는 모습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그녀는 제스 글린의 ‘돈 비 소 하드 온 유어셀프‘(Don’t Be So Hard on Yourself), 지연의 ‘1분 1초’, 애프터스쿨의 ‘첫사랑’ 등의 음악에 맞춰 변기 위에 올라 몸을 흔드는 등 적나라한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송지신의 댄스가 최근 개인 인터넷방송 단속에 나선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물론이었다. 결국, 송지신은 당국으로부터 방송 금지 처분을 받게 됐다. 이를 두고 중국 SNS에서는 “부끄럽다”, “역겹다”라는 반응과 함께 “옷을 완전히 벗은 것도 아닌데 방송을 금지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누리꾼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개인 인터넷방송 시장 급팽창과 함께 선정적 콘텐츠가 역시 늘어나면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문화부는 부적절한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 개인 인터넷방송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이 음란한 행위를 내보내는 것을 24시간 자체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또 지난 5월 중국 정부는 개인 인터넷방송을 통해 바나나를 먹는 행위를 금지하기도 했다. ▶[관련뉴스] ‘바나나 야하게 먹기’ 금지한 중국 당국에 이색 시위 벌인 유튜버 사진·영상=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폭언·권위·서열 버려라… 대기업의 변신

    폭언·권위·서열 버려라… 대기업의 변신

    “상사의 폭언은 해사 행위입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이런 표어를 내걸고 사내 방송을 통해 15분짜리 제작 프로그램인 ‘다시 폭언을 말하다’를 내보내고 있다. 삼성은 우리 조직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언문화가 직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물론 2차 피해자를 양산하는 식으로 조직에 해악을 끼친다는 취지에서 2013년부터 폭언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7일 “사내 온라인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폭언 근절 교육을 하다 보니 확실히 개선되고 있다”면서 “아랫사람들한테 고함을 지르고 서류를 집어던지는 부장들은 이제 별로 없다”고 말했다. 캠페인이 시작된 것은 삼성전자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상사의 폭언을 못 견디고 회사를 그만둔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캠페인 전후를 비교할 때 과거 사내 인터넷에는 상사한테 폭언을 들으면 서로 위로하는 대화가 많았지만 요즘은 “인사부에 고발하라”는 답글이 주저없이 달린다고 한다. 국내 그룹들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각종 캠페인이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1등을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어’가 아닌 시장을 주도하고 앞서가는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상명하복식 권위주의 문화부터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다. 현대차그룹은 전날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 대강당에서 팀장 이상 임직원 300여명을 모아 놓고 약 두 시간 동안 ‘스마트 리더’의 자질에 대해 교육하는 자리를 가졌다. 질책보다는 칭찬을 해주고, 부하의 고민에 관심을 가져주는 리더가 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인 일명 ‘스마트 리더 10계명’을 설파했다. 10계명은 우선 ‘일하고 싶은 조직은 리더의 언행에서 시작됨을 명심해야 한다’며 리더가 직원들 앞에서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솔선수범할 것을 주문했다. 또 모든 직원에게 평등한 기회와 애정을 줘야 하며, 팀장이 직원들에게 휴가 등을 활용해 재충전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라고 당부했다. SK그룹은 아예 제도를 통해 권위주의를 타파하자는 분위기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지난달 팀장·임원 워크숍에서 “직원들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하고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복장도 완전 자율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2013년 SK C&C(현 SK㈜ C&C) 최고경영자(CEO)로 있을 때 여름에 반바지 출퇴근을 허용하기도 했다. 중간 관리자인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연공서열이 아니라 업무의 담당자로서 수평적으로 근무하는 문화가 속속 도입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텔레콤, SK플래닛, SK E&S 등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LG그룹은 ‘안식휴가제’, ‘팀장 없는 날’, ‘유연출퇴근제’ 등의 제도를 도입하는 식으로 권위주의 타파를 실천하고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더민주 손혜원 의원 “새 국가브랜드 표절 의혹… 장관 날아가게 생겨”

    더민주 손혜원 의원 “새 국가브랜드 표절 의혹… 장관 날아가게 생겨”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6일 새 국가브랜드인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에 대해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나라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더민주 홍보위원장을 지냈던 손 의원은 이날 국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프랑스의 무역투자진흥청 비즈니스 프랑스가 선정한 ‘크리에이티브 프랑스’ 캠페인의 슬로건을 공개하며 표절을 주장했다. 손 의원은 “참 불행한 것은 표절된 슬로건에 ‘크리에이티브’란 말이 들어있는 것”이라며 “표절과 창의, 참으로 비극적인 코리아”라고 일침을 가했다. 손 의원은 “이 상황을 보면서 부끄럽기 그지없다”며 “제가 디자이너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김종덕) 문화부장관이 (홍익대) 제 직속 후배란 사실도 부끄럽고, 마지막 최종 결정을 했을 이 나라의 대통령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했다.  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이 일로 장관 한분 날아가게 생겼다”라며 “돈은 둘째치고 나라망신은 어떻게 하나. 만든 인간은 물론 심사한 사람, 지휘한 사람, 모두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선진국형 농업의 리더 될 것…광주 정서로 전북 판단 말라”

    “선진국형 농업의 리더 될 것…광주 정서로 전북 판단 말라”

    “호남이 아니라 전주와 나주·제주도를 합쳐 전라도였고, 전라도의 원주인은 전북이고 전주입니다.” 송하진(64) 전북도지사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한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구한말 전국 3대 도시였던 전주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북 지역 국회의원 10명과 정책협의회 조찬 모임을 막 마친 그는 “광주 정서로 전북의 정서를 평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행정고시 24회로 전북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해 전주시장을 거쳐 전북지사가 된 덕분인지 ‘전북 DNA’로 꽉 차 있다. ‘명문가의 자제’로 알려졌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수성가의 길을 밟았을 뿐”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기회가 적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2006년 전주시장 시절부터 뛰어 10년 만에 ‘탄소산업’에 시동을 건 송 지사는 “‘삼락농정’으로 선진국형 농업대국의 길을 전북이 열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북은 정치적으로 광주·전남을 쫓아가지 않나. -언론에서 전북을 호남의 일부로 다루는 데 불만이 크다. 전북과 광주는 정서도 민심도 완전히 다르다. 현대에 와 광주가 커졌다고 형 대접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제주도를 합한 것이다. 그 전라도의 수부가 전주다. →전주·전북이 광주와 호남으로 묶여 피해를 봤나. -피해가 많다. 공공기관과 기업의 호남 본부가 광주에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국민 화합을 위해 ‘동진정책’ 하느라고 전북이 역차별받고 소외됐다. ●자수성가 정치인… 전북 떠난 적 없어 →명문가·금수저 출신 아닌가. 강암 송성용 선생의 막내 아들이고, 송하철 전 전북부지사, 서예가 송하경 성균관대 교수, 송하춘 고려대 교수와 형제다. -김제의 가난한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강암 선생이 비석 글씨 써 주고 쌀 한 말 받는 식으로 사시다가 서예가로 이름난 것은 60세가 넘어서다. 그때 친구들 도움을 받아 전주로 나왔다. 근대 교육을 받은 큰 형님이 9급 공무원이 돼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전북 공무원으로 있다가 붓글씨 잘 쓴다고 상장에 글씨를 쓰라고 8급 때 서울 내무부에 불려 올라갔다. 둘째·셋째 형님에 나까지 ‘응팔’에 나온 쌍문동 산비탈에 있는 큰형님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송하경 교수도 돈 없어서 김제에서 농사짓다가 아버지 몰래 성균관대 시험 봐서 장학생으로 학교 다녔다. 명함만 보면 그럴듯한데 형제들이 이렇게 자수성가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출세 모형이다. 나도 도지사가 되고 보니까 엄청 출세한 것 같은 사람이 됐다. 하지만 벅차다. →성공에 가슴이 벅차다는 것인가. -능력이 벅차다. 도민의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다. 부족한 사람은 채우려고 노력한다. 금수저란 생각을 안 하니까 빈자리를 채우려고 뼈 빠지게 노력했다. 정치적으로도 자수성가했다. 시골 바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국회의원 한 번도 안 해 보고 도지사 된 사람이 나밖에 더 있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있다. -국회의원 안 했어도 대통령 만든 사람인데…. →요즘 20대들이 ‘흙수저’라며 절망하는데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조언한다면. -사회 구조적인 측면이나 경제적 시스템을 수정하는 것은 중앙정부가 할 일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돌아보면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는 길이 가장 빠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때보다 기회가 적어졌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국민들이 골고루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 농업이 중요하다. →왜 농업이 중요한가. -미래에 농업, 농식품, 농생명 산업으로 가지 않으면 무궁무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농촌 인구 감소는 농업을 키우지 않고 막을 수 없다. →선진국은 농업대국이다. -당연하다. 궁극적으로 선진국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나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농업은 안 하고 2·3차 산업만 하면 경제대국으로 갈 것으로 믿는다. 잘못됐다. 농업, 농민, 농촌 세 가지가 다 즐거운 ‘삼락농정’이 필요하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류가 10억명이 넘는 만큼 양적인 농업 증대와 농산물의 질을 높이는 농생명, 농식품 산업을 함께해야 한다. →행정고시 출신인데 전북도청에서 공무원을 시작했다. -원래 목표가 전북이었다. 부처를 선택할 때 1순위 내무부, 2순위도 내무부, 3순위는 문화부라고 썼다. 큰형님의 영향이 컸다. 이왕이면 고향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다. 여산 송씨인데 본관도 전북에 있고 전북을 떠나 본 일이 없다. 그렇다 보니 전북이 보였다. ●‘농도’서 선진농업 꿈… 청년에도 기회 →전북이 어떤 모습으로 투영됐나. -적자인데 서자 취급받는 아픔이 보였다. 산업화 이전에는 전북이 농도로서 최고였다. 그런데 265만명이던 인구가 187만명으로 줄었다. 조선 말에 전주는 3대 도시였다. 오늘날에는 20대 도시를 넘어섰다. 내가 태어나고 뿌리를 박았던 내 고향이 낙후되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전주시장 8년을 하면서 느낀 점이 너무 많았다. →전북도 DNA만 가진 행정가처럼 발언한다. -전북을 살리려는 사람은 전북을 정확히 냉철하게 봐야 한다. 금수저는 흙수저 심정을 모른다. 당해 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친하다는 소문이다. -대학 선배다. 총학생회장 할 때 난 고시 공부했다. 공교롭게 그분이 당직을 맡고 계실 때 정치에 입문했다. 출마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53세 때 명퇴했다. →어떻게 출마를 결정했나. -전북도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할 때 나에게는 정치인이 될 DNA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을 하며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서울에서 출마하겠다는 각오를 밝히지 않고 정치인 100여명을 만났다. 국회의원, 시장·군수 당선자, 낙선자, 시·도 의원까지 두루 만났다. 당시 가장 궁금한 게 정치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나, 조직은 무엇을 조직이라 하는가, 배경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등이었다. 하지만 다 필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선거에 나가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조직은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책학에서 ‘느슨하게 연결된 조직’이란 게 있다. 우호 세력이 많으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우호 세력을 비교적 많이 보유한 사람 중 하나다. →비결은 뭔가. -성격과 출신이다. 성격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남들과 잘 섞이되 내 주관을 잃어버린 일이 없다. 남들이 나를 너무 물렁하고 사람 좋아 보인다고 하지만, 자신에겐 서릿발 같고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은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을 체화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는 김제, 중학교는 익산, 고등학교는 전주,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외가는 완주다. 전북 180만 인구 가운데 120만은 나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하려고 어려서부터 그렇게 돌아다녔냐”고 농담하는 분도 있다. →국내 탄소산업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탄소산업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전주시장 8년 동안 연구개발비로 1200억원을 투입했다. 금방 성과가 나오는 일도 아닌 일에 기초정부가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는 어려웠다. 정치적 오해, 방해, 모함, 협박까지 받았다. 중앙 부처는 물론 광역정부인 전북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지방정부 단체장 혼자 설쳐 2년 전 발의한 탄소산업육성법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자랑스럽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전북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이 오고 있다. 지금까지 방식으론 경제 흐름을 잡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전북이 가장 유리하다. 탄소, 농생명, 관광, 새만금 등이 키워드다. 관광도 막연한 관광이 아니다. 전주시장 때 한옥마을을 키운 이유다. ●새만금 후퇴 안 해… 드론 산업 추진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한 새만금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지금이라도 발 빼야 하지 않나.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10년이 지났다. 절대로 후퇴할 수 없다. 같은 해 착공한 상하이 푸둥지구는 이미 완공돼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좌고우면이 아니라 속도다. 한·중 경협단지 추진, 규제 특례지역 조성 등으로 개발의 호기다.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새만금 기본계획대로 2020년까지 완공돼야 한다. →새만금에서 추진할 새로운 사업은. -드론산업이다. 주변에 공장도, 주택도 없어 하늘과 땅이 모두 필요한 드론을 연습할 수 있는 천혜의 여건을 갖췄다. 가상현실 산업도 좋다. →새만금 신공항 건설 가능성은. -새만금은 여의도 140배의 새 땅이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새만금 공항과 연계하는 건 부적절하다. 국토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새만금 신공항 건설계획이 반영됐다. 공항은 건설돼야 한다. →2023 세계잼버리 유치 전망은. -새만금은 천혜의 야영지다. 경쟁지인 폴란드 그단스크에 앞선다는 평가다. 폴란드는 전·현직 대통령과 노벨평화상 수상지 바웬사 등 정부가 적극 나섰다. 2015년 일본에서 열린 대회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리에게 부담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가 필요하다. 개최 결정까지는 1년 정도 남았다. 유치에 최선을 다하겠다. 대담 문소영 사회2부장 정리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불려… 20대 총선전 민주 탈당 ‘4선’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불려… 20대 총선전 민주 탈당 ‘4선’

    29일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박지원 의원은 원내대표만 세 번을 지낸 ‘노회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1942년생으로 올해 74세인 박 위원장은 30여년의 정치 경험과 연륜을 자랑한다. 호남 정치의 좌장 격으로, ‘DJ(김대중)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도 불린다. 전남 진도 출신인 박 위원장은 단국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가발 사업을 하다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1987년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에는 제14대 국회 전국구(비례대표)에 당선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대북송금 특검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제18~20대 전남 목포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4선 고지에 올랐다. 20대 총선 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 국민의당에 합류해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됐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만렙·지지… 표제어 2188개 ‘게임 사전’ 출간

    만렙·지지… 표제어 2188개 ‘게임 사전’ 출간

    “지금 지지(GG) 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아?” “만렙 찍으신 분들이 하드 캐리 하시네요.” ‘지지’는 ‘굿 게임’(Good Game)의 약자로 게임 플레이어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에서 유래해 ‘게임을 포기하다’(Give up Game)라는 항복 선언으로 확장됐다. ‘만렙’은 플레이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능력치를, ‘하드 캐리’는 능력치가 높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아군의 승리로 이끌어 가는 행위를 뜻한다. 이들 게임 용어는 10~30대들의 일상까지 파고들었다. “놀러 가려다 너무 더워 지지 쳤다”, “이번 프로젝트는 박 팀장이 하드 캐리했다”는 식이다. 이 같은 게임 용어들을 선별하고 가다듬어 사전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빛을 보게 됐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과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는 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제작 발표회를 열고 ‘게임사전: 게임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출간했다. 게임사전 편찬은 문화와 사회, 산업의 관점에서 게임을 들여다보고 학술적 가치를 발굴하는 작업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됐다. 게임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게임 개발자 사전 정도가 발간된 상황이다. 윤송이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사장은 “게임은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 수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무관심을 극복하고 사회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이인화 교수와 한혜원 교수를 비롯해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 연구진 62명이 집필하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감수를 맡아 1년 6개월간 작업했다. 게임사전에는 게임의 개발과 플레이, 게임 문화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추려 낸 표제어 2188개가 담겨 있다. 지난 5년간 게임 플레이어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아이템’으로, 사전에는 이를 8페이지에 걸쳐 다뤘다. ‘스트리트 파이터’ ‘리니지’ ‘스타크래프트’ 등 시대별 대표 게임도 선정해 수록했다. 이인화 교수는 “게임에서 쓰이는 언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만들어 지식의 자격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버거운 조선의 ‘빅데이터’/안동환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버거운 조선의 ‘빅데이터’/안동환 문화부 차장

    작가 한강이 출간한 지 9년이나 된 작품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첫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번역의 힘’이 컸다. 지난해까지 작가에게만 상을 주던 맨부커 수상위원회가 올해부터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에게도 공동으로 상을 준 것은 번역을 ‘또 다른 창작’으로 인정하기 때문일 게다. 작가와 번역자는 ‘문명의 장벽을 허무는 동반자’다. 어느 시대고 한 문명의 발전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이슬람은 830년 바그다드에 세운 번역원 ‘바이트 알히크마’(지혜의 전당)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어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한 게 출발점이었다. 이들의 정확하고 빠른 번역 덕분에 당시 카이로 중앙도서관은 100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할 수 있었다. ‘유럽의 과학 르네상스’로 불리는 12세기 문명의 발흥도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옮겨진 고전들을 다시 라틴어로 재번역한 덕분이다. 서양 고전 번역보다 유독 홀대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 우리 고전(古典)의 우리말 번역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비서실인 승정원이 288년간(인조 원년~순종 4년) 국왕의 일상을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 정밀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2억 2600만자)는 1994년 시작된 후 22년이 지나도록 번역률이 19.1%에 그치고 있다. 직역과 오역으로 2011년 재번역에 착수한 ‘조선왕조실록’(4800만자)이 10.6%, 임금이 쓴 국정일기인 ‘일성록’(4800만자)이 겨우 절반 가까운 40%에 도달했다. 셋 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빅데이터’인데도 이 정도다. 디지털 작업을 하면 뭐하는가. 정작 제 나라 국민은 읽을 수도 없는 ‘까막눈 기록’들인데….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승정원일기는 완역까지 앞으로 45년, 일성록은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구한말 망국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전후 복구로 먹고살기도 힘들었다고 해도 1945년 나라를 되찾은 후 70년이 흘러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우리말로 옮기지 못한 고전이 무더기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우리 기록문화유산의 수준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정부가 지원하는 한 해 번역 예산은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하다. 올해 승정원일기 번역 예산이 12억 9000만원, 조선왕조실록 재번역 예산은 6억 6800만원, 일성록 4억 5000만원이다. 이 돈으로 번역자들에게 장당 1만 6000원의 원고료를 준다. 번역자 1명당 1년간 평균 1800장을 번역하니 연봉으로 치면 2880만원. 처우조차 나빠 고전 번역을 꿈꾸던 이들 10명 중 2명은 중도 포기한다. 번역 인재 양성 시스템도 비효율적인 ‘이중고’를 안긴다. 한학의 맥이 끊긴 국내에서 고전 역자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세월은 현 시스템으로는 ‘10년’.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한 후 고전번역교육원에서 5~7년(연수과정 3년, 전문과정 1·2 각 2년)간 별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 번역 과정을 마쳐도 학위를 주지 않아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다시 따야 한다. 국내 고전 학술 번역자로 진입하는 연령이 ‘평균 40세’인 이유다. 오래전부터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을 대학원대학교로 바꾸자고 거론됐지만 예산 타령을 넘지 못하고 수수방관돼 왔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우리 고전을 정확하고 속도감 있게 모국어로 옮기는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할 때다. ipsofact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