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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5)

    ◎광복과 함께 새출발/오욕의 역사 청산… 공공지로 재탄생/「서울신문」으로 제호바꿔 11월22일 창간/지령 13738호… 대한매일신보정통성 계승/사장 오세창·주필 이관영 등 새 진용 포진 군국주의 일제의 패망은 한국언론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다.제도적 탄압장치였던 출판법등 언론계 악법이 미군정에 의해 폐기된데 이어 허가제였던 신문 출판물이 등록제로 바뀌어 갖가지 출판물과 신문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간부진 사표 수리 일제치하 36년동안 총독부의 기관지 역할을 하던 매일신보(이하 매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오욕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 「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된 것이다.개편작업은 1945년9월8일 한반도 진주후 이남지역에 대해 군정을 실시하던 미군정청이 해방전 영업국장이던 이상철 임시관리인으로 임명(10월2일),매신의 간부중 일부를 개편토록하는 조치로부터 시작됐다.매신처리 실무를 위임받은 그는 10월9일 매신중역회의를 열었다.이 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한바 있는 사장 이성근과 상무 정인익의 사표를 정식 수리하는 한편 10월25일 신문사의 명칭변경이며 새중역진 선임문제등 주요사항을 토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매신의 자치위원회는 신문사의 처리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자치위원회란 9월23일부터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매신의 운영을 장악,신문을 만들어온 편집국과 공무국등 사원 6백명이 결성한 단체였다.위원장은 문화부기자 윤희순으로 적지않은 발언권을 행사했다.자치위는 10월23일자 지면에 「매신은 어디로」라는 성명을 통해 이 신문은 『특정 정당의 기관지나 개인의 소유가 절대로 될수는 없고 공정한 민중의 기관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견해를 피력했다.이는 자치위가 『불편부당 엄정중립의 보도기관으로 새롭게 발족할것』을 앞서 선언했던것과 일관된 논리였다. 자치위의 이러한 반응속에 주총은 예정대로 10월25일 개최됐다.주총에서 사장에 오세창이 추대됐고 부사장은 이상협,전무취체역 김형원,상무 이상철,주필겸 편집국장 이선근등 간부진용이 결정됐다.그러나 자치위의 강력한 반대의사에 부딪혔다. 주총의 결정이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것이 표면적 주장이었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들이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양측의 막후교섭이 시도됐으나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웠다.이에따라 개편실무를 맡았던 이들은 모두 사퇴하게 됐고 매신은 표류할수밖에 없었다. 매신이 자치위와 개편실무자 사이에 이처럼 표류하고 있을 무렵 매신의 처리문제는 국내 각정당과 사회단체는 물론 언론계 전체의 집중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단순한 호기심의 시선이 아니라 차제에 완벽한 인쇄시설을 갖춘 이 신문사를 접수하려는 직·간접의 암중모색이 여러차례 시도된것이다.천도교세력을 뒤에 업은 공진항이 10월초 매신접수를 시도한데 이어 동아와 조선 양지가 매신인수를 한차례씩 꾀한바 있다. ○개편안 싸고 대립 이러한 상황속에 놓이게된 매신에 대해 그동안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청은 새로운 갈래의 매신개편작업의 필요성을 느껴 본격적인 중재를 결심하게 된다.11월10일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대해 정간명령을 내렸다.그리고 이관구에게 「공정한 언론을 펴는 참다운 신문」을 만들도록 부탁하기에 이른다. 매신에 대한 정간명령은 자치위에게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다.그래서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의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한채 일단 한발 물러서게 됐다.증폭된 갈등속에 난항을 거듭하던 매신의 개편작업은 이로써 순조롭게 진행하게 됐다. 매신개편의 대권을 위임받은 이관구는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있는 인사들로 경영 편집진용을 구성하는등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우선 사장에 위창 오세창을 추대했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3·1민족대표 33인중 하나인 지조높은 항일민족주의자로서 그의사회적 덕망과 이미지는 새롭게 선보일 서울신문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분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 홍명희를 상징적인 고문의 위치에 영입함으로써 그 진용을 더욱 강화시켰다.이관구와 함께 매신개편작업에 참여한 하경덕이 부사장에 내정됐다.그는 저명한 교육자요 사회학자로서의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탄력있는 자유주의 신념의 소유자였다.중후하고 사려깊은 논조를 감당해 나갈 주필에는 이관구가 선임됐다.일제하 독립운동사에서 귀중하게 평가받고있는 민족주의자와 좌파계열의 연합체인 신간회에 참여한바있어 좌우 어느 편에서도 무난히 받아들여질수 있는 인물이었다.특히 해방전 동아와 조선에서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논객으로서의 경력은 금상첨화였다. 당시 최고의 언론인들을 각부 데스크에 앉히고 이를 지휘할 편집국장에는 어문학계의 권위자인 홍기문이 내정됐다. 그리고 신문경영에 오랜 경험을 가진 원로 이원혁과 조중환이 상무에 실업가 김동준이 전무에 내정,안정된 신문운영을 기할수 있는 진용이 구성됐다. 제호는 이관구의 제의를 간부진이 숙의끝에 받아들여 「서울신문」으로 확정했다.제호의 글씨는 서예가이자 취체역인 김무삼이 썼다. 그리고 매신으로부터의 인수재산 확인도 마무리지어졌다. 우선 자치위산하에 있던 사원 6백명의 인원을 고스란히 흡수하기로 했다.인수받은 재산과 시설은 현 프레스센터 자리에 있던 연건평 1천8백30여평 규모의 4층 콘크리트 건물인 구사옥과 그 부속건물을 비롯,부산등 지방에 산재해 있던 당시 35만3천원 상당의 부동산과 독일제 알버트윤전기 4대등 최우수 인쇄설비 일체,지사 지국의 배급망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다.이 규모는 신문사로서 해방전후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개편,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 위한 이 모든 준비작업은 11월21일 하오2시 5층 옥상에서 오세창초대사장의 취임식을 가짐으로써 매듭을 지었다.그리고 이튿날인 22일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지면을 이땅에 드러냈다.발행일자는 1945년11월23일이었다. 당시 사회적 관심의 열도를 반영하듯 미군정장관 아놀드를 비롯,조선인민당위원장 여운형,국민당당수 안재홍,한국민주당수석총무 송진우등의 인사들이 언론정세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경의와 기대를 보내오는 가운데 혁신된 속간호를 내놓게 된것이다. 『「서울신문」으로 「매신」이 경생』이라는 5단 크기의 컷(1면 중앙)과 함께 속간 첫호의 모습을 선뵌 서울신문의 이날짜 지령은 제13738호로 기록돼 있다. 이는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 지령을 그대로 계승한것으로서 서울신문의 계보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 모스크바서 도서전람회/김일성 생일기념

    【내외】 북한은 지난 8일 모스크바서 김일성의 81회 생일(4월5일)을 기념한 「북한도서·사진 및 수공예품전람회」를 개막했다고 중앙방송이 9일 보도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주러시아대사 손성필을 비롯해 러시아 문화부·외무부 및 사회과학원산하 동방학연구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공보처 이삿짐 트럭 2백대분/주말 독립청사서 종합청사로 합류

    ◎사무실공간 줄고 「상전」 늘어 불만도 공보처가 이번주말 종합청사 안으로 이사를 간다. 공보처는 86년 4월 이래 세종로 종합청사 건너편의 독립된 청사를 문화부와 나눠 사용해왔다. 그러나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부에 흡수된 체육부와 자리를 맞바꾸는 것이다. 2백명이 넘는 식솔을 거느린 정부부처가 청사를 옮기는 것은 더 엄청난 일이다. 행정서류와 사용하던 책상,컴퓨터,집기등 이사짐의 분량은 4.5t 트럭으로 2백대분량이나 된다.이미 대한통운과 화물운송 계약을 맺었다. 16일부터 짐을 나르기 시작할 예정이지만 주말과 휴일인 17,18일을 꼬박 이사하는데 보내야 할 판이다. 공보처는 이전 비용을 4천만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공보처 예산에는 이만한 돈을 돌려쓸만한 여유가 없다.천상 경제기획원에 예비비를 신청해야 할 처지다. 이 때문에 공보처 내에는 종합청사로 옮겨가는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직원이 적지않다. 단순히 이사하기가 거추장스러워서가 아니다.종합청사로 들어가게 되면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사무실 공간이 크게 줄어든다.지금까지 공보처가 사용해온 면적은 1천여평.이에비해 체육부가 종합청사 3층과 15,19층으로 분리돼 사용해온면적은 6백10평 정도다. 또 아무래도 상전이 즐비한 종합청사안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독립청사가 자유롭고 주차하기도 편하다. 이쯤되니 『공보처가 따로 떨어져 있는 거나 문화체육부가 분리돼 근무하는 거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고 『실세 장·차관을 두고도 우리가 밀리는 이유가 뭐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보처 고위간부들은 『문화부와 체육부는 다소 이질적인 부처이므로 함께 지내야 쉽게 동화가 될 것』이라면서 『부 자체가 없어진 체육부 직원들의 심정도 이해,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도 공보처가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직원들을 달래고 있다.
  • 모스크바서 도서전람회금일성 생일기념【◎】북한은 지난 8일 모스크

    바서 김일성의 81회 생일(4월5일)을 기념한 「북한도서·사진 및 수공예품전람회」를 개막했다고 중앙방송이 9일 보도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주러시아대사 손성필을 비롯해 러시아 문화부·외무부 및 사회과학원산하 동방학연구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북한은 9일 김일성을 비롯한 당·정 고위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시 서성구역 연못동에 새로 건설한 3대혁명전시관 개관식을 가졌다고 중앙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이날 개관된 3대혁명전시관은 연건평 8만여㎡ 규모로 중앙에 3대혁명을 상징하는 세폭의 붉은기로 이루어진 3대혁명기념탑이 위치하고 있고 여기서부터 뻗어나간 폭 1백m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총서관·중공업관·경공업관·농업관·전자공업관·새기술혁신관 등 6개동의 전시관이 대칭으로 놓여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이 방송은 3대혁명전시관의 개관과 관련해 『3대혁명노선의 정당성과 함께 당의 영도따라 사회주의 건설의 힘찬 진군을 승리적으로 다그쳐 나가는 인민들의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과시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일성은 이날 상오10시 전시관에 도착,개관테이프를 끊은 뒤 전시관 내부를 둘러보고 그동안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을 통해 자주·자립·자위의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3대혁명노선을 철저히 관철해 나가는데 있어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했으며 전시관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고 이 방송은 덧붙였다. 【◎】북한은 최근 조총련의 자금지원을 받아 강원도 원산에 신형 원동기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금강원동합영회사」를 설립했다고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했다. 북­조총련간 공동투자로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59년부터 이앙기·전기톱·소형선반용 원동기 등을 생산해 오던 「원산원동기공장」을 새로운 유형의 원동기 생산에 적합하도록 제반 시설을 증축·보강한 것인데 고성능의 원동기를 매년 수만대씩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 「금강원동기합영회사」는 생산한 원동기를 국내공급과 함께 수출도 하게 되며 오는 90년대말에는연간 70만대의 원동기를 생산할 목표로 시설투자 및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는
  • 이란에 영화바람/회교사원에서도 “건전물” 상영

    ◎VTR밀수 급증… 음란비디오 판쳐/“차라리 개방”… 극장 5백개 지을 계획 엄격한 회교율법의 나라 이란에 때아닌 영화바람이 일고 있다. 이란정부는 앞으로 5년동안 약 5백개의 소규모 영화관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요즈음 그 재원을 마련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영화 주무부서인 문화부는 영화관 건립에 앞서 국민들에게 건전한 영화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성직자들에게 회교사원에서 영화를 상영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문화부는 이를 위해 지난달 21일부터 각 사원들로부터 영화상영 허가신청을 받고 있다. ○과거엔 퇴폐의 상징 정부가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이같은 영화장려운동은 지난 79년 회교혁명때 수십개의 극장이 「퇴폐의 상징」으로 지목돼 불탔던 것을 상기해볼때 가히 혁명에 가까운 것이다. 회교사원들에 대한 영화상영 요청은 정부로서는 일종의 모험으로 간주되고 있다.정부는 약 8만개로 추산되는 사원들을 군 징병소와 배급소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입안했다가 성직자들의 강한 반발로 포기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정부가 「알라의 성전」인 사원에 「영화관」역할을 맡아달라고 감히 요청하고 나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서구문화 오염 심각 이란에서는 개인이 녹화재생기(VTR)를 소유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그러나 밀수 등을 통해 2백만가구 이상이 VTR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에 따라 각종 서구영화를 취급하는 지하 비디오판매상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이들은 점차 퇴폐적인 음악비디오와 음란비디오물로 취급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밀수된 위성수신용 접시안테나를 설치,반회교적인 이단의 서구문화를 즐기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알라의 가르침으로 무장돼 있어야 할 국민들이 이처럼 서구문화에 급속히 오염돼가자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안이 바로 영화장려정책이다.아주 퇴폐적인 영화를 못보도록 하기 위해 그보다는 덜 퇴폐적인 영화를 보도록 장려하자는 것. ○성직자도 적극 협력 이 정책에 대해서는 회교성직자들도 협력할 뜻을 밝히고 있다.정통 회교율법의 관점에서 오락을 탐하는 영화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지만 율법을 지키기 위해 영화를 보급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회교홍보기구(IPO)의 예술담당 책임자인 성직자 호야톨레슬람 잠은 『우리 국민들은 불법 비디오와 위성TV의 현란한 내용에 면역이 안돼 있다.따라서 양성화된 영화는 더할 나위없이 중요하며 극장을 대폭 늘리는 것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한다.따라서 앞으로 이란에서는 영화관이 크게 늘어나고 보급되는 영화의 수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키스·폭력장면 금지 문제는 이란정부가 어느 정도까지를 국민에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현재 관계당국은 서구에서는 단순한 일상사로 여겨지는 키스장면을 포함,일체의 성적인 묘사와 대부분의 폭력장면을 금지하고 있다.그러나 앞으로도 이같은 엄격성을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회교를 지키기 위해 회교정신에 반하는 영화를 장려해야 하는 오늘날 이란의 고민은 이란국민들의 달라지고 있는 문화적 취향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폭력·음란성 미 비디오 판친다

    ◎미 5개 메이저사 제품 매년 20%이상 국내시장 잠식/무분별 유입에 국민정서 황폐화 우려/작년 2천여편… 대여마진까지 챙겨/국내대기업 참여,소프트웨어업 활성화 절실 안방극장 이대로 좋은가. 비디오문화의 폭발적 대중화추세에 따라 청소년을 비롯한 국민 정서의 황폐화는 물론 미국 대중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이 더욱 우려되고 있다. 이는 통상개방압력의 파고를 타고 미국 5개 비디오소프트웨어 메이저사가 국내 시장점유율을 날로 확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부관계자와 비디오업계는 지난 한햇동안 비디오판매시장규모가 2천5백억원,대여시장은 6천억원이상인 것으로 추산하고,최근 해마다 20%이상의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비디오소프트웨어 총생산량은 1천5백90만개로 추산하고 있다. 또한 문화부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수입된 2천여편의 비디오 가운데 70%이상이 미 CIC등 5대 메이저사 제품인 것으로 집계됐다.국내제작분은 3백여편이었다. 그러나 이들 메이저사의 제품은 흥행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비디오문화를 대변하는 「저질 폭력 음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게다가 국내시장에서 상품성이 높은 비디오 가운데 90%이상이 미 메이저사 제품이라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비디오시장이 최근 급격한 증가세를 나타냄에 따라 앞으로 이들 메이저사의 국내 시장 점유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이미 이들 메이저사들은 국내수입업자들에게 비디오를 직배해오던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국내 비디오대여점에 직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이는 판매마진은 물론 대여마진까지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국내에서도 비디오소프트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문화부의 한관계자는 『국민들이 수입품과 국내제작품을 50대 50정도로는 볼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그러나 아직 비디오 제작업체가 영세하다보니 흥행성을 갗춘 제품을 찾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비디오시장이 고부가가치산업으로서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는만큼 수출증대차원에서 비디오제작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국내 비디오소프트업이 뒤떨어져 있는 것은 정부 정책에도 원인이 있다.가장 큰 이유는 자본금을 갖춘 대기업들이 비디오제작에 참여하는 길이 제한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기존 비디오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비디오제작,복제,유통을 함께 묶어 중소기업에 유리하도록 제도를 시행하다보니 자본금이 영세한 업체들로서는 좋은 제품을 만들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당국이 비디오및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비디오소프트웨어업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또한 현재 문화부가 운영하고 있는 영상음반대상제도등을 더욱 활성화해 훌륭한 비디오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 김정일 개인사진집 발간/권력세습 정통성 강화 목적

    북한당국이 지난해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한 정통성 강화움직임으로 보이는 김정일사진집을 발간했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집은 70년대부터 찍은 그의 사진 3백20장을 대부분 컬러로 실었으며 그중에는 83년 6월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회담하는 사진등 미공개 사진도 많이 들어있다. 80년대 사진들은 대부분 김정일이 경제·문화부문을 지도하는 사진들이지만 그가 군사부문에 참가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은 거의 없다.
  • 교육부간부 땅 가명으로 헐값 매입/드러난 김문기씨 편법행적

    ◎장부정리 교묘해 공금유용 못밝혀/부정입시생 낸 백지답안 학교측 기입 ○…이번 수사에서 92년12월 김전의원에 서울 종로구 평창동 대지1백여평을 판 것으로 밝혀진 모영기국립교육평가원장은 계약상의 양도자를 김전의원이 아닌 황모씨로 해줬는가 하면 거래액수도 실거래액이 3억9백만원인데도 계약서에는 2억6천만원이라고 써준 것으로 밝혀지기도. ○…재산공개뒤 부동산편법매입및 학교재단전횡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문기전민자당의원은 결국 31일 구속됨으로써 재산공개파문 「구속국회의원 1호」를 기록. 이로써 검찰은 지난27일 허만일전문화부차관을 수뢰혐의로 구속한데 이어 김전의원의 비리도 사법처리,문민정부출범과 함께 내건 부정부패척결 기치를 가시화하는데 성공. ○…지난 29일밤 신병을 확보한지 이틀만에 김전의원을 구속한 검찰은 일단 「수사성공」에 안도하는 모습. 재산공개와 함께 파문은 크게 일었으나 정작 김전의원을 데려와 조사하는 과정에서 딱 떨어지는 부정사례를 발견하는데 애로를 겪은 검찰은 상지대 한의학과 부정편입학 적발이 없었다면 구속이 어렵지 않았겠느냐며 다행이란 자평. 특히 국세청과 교육부등의 감사팀을 동원해 김전의원의 아들이 경영하며 상지대학 건물공사를 했던 J종합건설과 이 대학 주거래은행인 강원은행 원주지점·제일상호신용금고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결과는 별반 없었던 것. ○…김전의원은 상지대 재단을 관리하면서 회계장부를 말끔히 정리해 둬 결국 자금유용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후문. 실무를 맡은 한 검사는 『김의원이 교육부 등에서 매번 감사를 받으면서 회계장부를 너무도 깨끗하게 가꿔놨다』면서 『특히 그의 가명계좌에는 현금만 입금돼 있어서 추적조차 어려웠다』고 고충을 토로. ○…검찰은 상지대가 편입학시험을 조작하면서 그야말로 드러내놓고 한데 대해 혀를 내두르기도. 상지대는 90년 편입시험에서는 구술 20점·면접 40점·학교성적 40점으로,91년에는 영어 30점·전공논술 30점·구술및 면접 40점 등으로 된 시험과목중 비중이 높은 면접·구술부문에서 다른 학생은 대폭 낮은 점수를 주고 미리 「낙점한」 학생에게는 만점을 줘 당락을 결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상지대는 또 OMR(광학문자판독)카드 답안지를 작성하는 필기시험에서는 학생이 백지카드를 내면 아예 답안을 학교측이 작성해 주기도 해 객관식 만점의 점수가 나오기도. ○…상지대 부정편입학 사실이 알려진 뒤 검찰주변에서는 과연 이 학교 부정편입학 대가가 얼마냐에 관심이 집중. 당초에는 이 대가가 2천만∼3천만원이 아닌가라며 추측하던 일부 사람들은 결국 1억원을 호가했음이 밝혀지자 놀라움을 표시. ○…검찰은 상지대 부정편입학을 수사하면서 80년대에 1백30여명을 부정입학해 교육부감사에 지적된 점을 들어 최근의 입시부정도 저질러졌음을 충분히 감지했음에도 결국 입시부정은 수사를 안하기로 방침을 결정. ◎김문기는 누구/가구점검원서 출발 투기로 돈방석 31일 구속된 김문기 전의원은 가구점 점원으로 출발해 3선 국회의원의 관록을 쌓은 별난 인생역정을 가진 인물이다. 강원도 강릉출신인 김전의원은 14세때 맨 주먹으로 상경,서울 종로구 인사동 「빠고다 가구」의종업원으로 취직한 뒤 군 제대후 가구점을 인수해 60년대 불어닥친 「호마이카가구 선풍」을 타고 재력을 키웠다. 그는 그뒤 가구장사에서 번 수입으로 60년대말부터 땅을 사들이기 시작해 땅부자가 됐으며 종로구에서 출마했던 민관식씨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이 발판이 돼 정부에 가구를 납품하면서 본격적인 「거부」대열에 올라섰다. 74년 부실경영에 허덕이던 원주대를 인수,상지대를 설립하면서 학원경영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김전의원은 80년 민정당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제12대총선때 민정당 전국구예비후보 1번으로 등록,임기만료 6개월을 앞둔 87년 결원으로 의원직을 승계했다.
  • 주용기 상무부총리에/중국 전인대,국가기구인선 매듭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의 8기 전국민인대표대회(전인대)1차회의는 29일 주용기부총리를 상무부총리로 승진시키고 국무원 산하 41개 부위원회의 수장들을 인준함으로서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국가주요기구 책임자 인선을 마무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주부총리와 추가화부총리가 유임되고 그동안 정렬적인 활동을 보여온 전기침외교부장과 이남청대외경제무역부장이 각각 부총리로 승진했다. 이밖에 국방부장에는 지호전 전총참모장,국가계획위원회 주임에 진금화,국가경제무역위원회 주임에 왕충우,문화부장에 유충덕,신설된 전자공업부장에 호계립 등이 선임됐다.
  • 열차참사사건 관련/황총리 등 사퇴촉/구리 민주대표

    【부산=이도운기자】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29일 부산열차참사사건과 관련,황인성국무총리와 고병우건설장관·정문화부산시장·강신태철도청장등 관계기관장들이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 허만일씨(문화부 전 차관) 전격 구속

    ◎예술의 전당 사장때 3천만원 수뢰 대검 중수부 3과(박주선부장검사)는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예술의 전당 신축과정에서 공사진척도를 높게 산정해주는 대가로 시공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긴 허만일 전예술의 전당 사장(53)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하고 허씨에게 뇌물을 건네준 건설업체 한양 전대표이사 강법명씨(57)를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김영삼정부출범이후 전직 차관급의 고위당직자가 뇌물수수로 구속되기는 처음이다. 허씨는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재직중이던 지난해 10월 예술의 전당 신축공사와 관련,당시 시공업체인 한양 대표이사였던 강씨로부터 공사진척도를 실제보다 높게 산정,공사대금을 미리 받게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있다. 허씨는 문화부 종무실장·기획관리실장·차관등 요직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이달초까지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재직해 왔었다.
  • 문화체육부 귀중/이호림 월간책 발행인(굄돌)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새 봄입니다.봄날이긴 합니다만 아직 그 고운 자태를 쉽게 드러내놓지 않은듯합니다. 새로 부임하신 장·차관님 이하 공무원 여러분의 안녕과 건투를 함께 빌어봅니다.출판·서점업계에 종사하는 저로서는 문화체육부가 타부처보다도 소중하고 보다 월등하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19 93년은 문민정부가 들어서 새로운 정치문화 질서가 가닥을 잡아가는 해입니다만 또한 「책의 해」이기도 합니다.「책의 해」가 갖는 참 의미의 구현과 그 성과는 출판·서점업계만의 관심사일 수 없고 귀부서의 중요 관심사항이기도 할 것입니다.다만 업계로서는 문화행정만을 담당했던 문화부가 체육행정까지 겸하는 문화체육부로 통·폐합된 점을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이는 혹시나 정부의 문화발전의 총괄적 의지가 그만큼 축소내지는 후퇴한 것이 아닌가하는 점 때문입니다.정부가 문화부를 신설할 때만해도 문화행정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를 반영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즉 한 나라의 문화발전의 폭이 그 나라의 총체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의 관건이라는 사실과 전세계의 나라들과 민족들간에 문화표방주의적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내 출판문화발전에 대해 한 말씀만 드리고자 합니다.귀부서에서도 잘알고 계시는 것과 같이 출판문화발전은 단행본시장의 폭을 최대로하면서 월부물과 학습참고서등이 뒤따르는 발전이어야 합니다.하지만 국내출판업계의 현구조는 그렇지 못합니다.전체출판물시장의 연간 외형규모는 전집물 35%,학습물 40%이상인 것에 비하여 단행본시장은 불과 25%내외에 머물고 있습니다.이런 현상은 상업주의출판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출판선진국임을 자부하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미국등과 비교하면 그 열등구조를 잘 알수있습니다.이들 출판선진국들은 전체적으로 단행본시장이 70%이상을 차지합니다.따라서 앞으로의 국내출판문화의 발전과 국민의식수준의 향상은 곧 단행본 출판업계의 발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출판문화행정을 계획하고 운영하는데 있어 참고하시고 각별한 이해와 지지를 바라마지않습니다.문화체육부의 새로운 태동이 갖는 우려가 한때의 기우였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이 기회를 통하여 출판문화행정에 좀더 넓은 혜택이 출판사·서점·독자들 모두에게 베풀어지기를 거듭 기원드려 마지않습니다.
  • 신임 공연윤리위원장 김동호씨(인터뷰)

    ◎“제재보다 문화산업 지원에 힘쓸터” 『소재 자체를 문제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다만 도덕이나 정서를 크게 저해하는 공연물 만큼은 적절히 걸러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동호 신임 공연윤리위원장은 앞으로 올바른 정치·사회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물론 폭력·에로물이라도 예술적 당위성을 지녔으면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그러나 『객관적인 견지에서 청소년 정서에 크게 해악을 끼친다고 판단될 때는 엄격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면서 『공륜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중요시되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김위원장은 평소 문화부차관까지 32년에 걸친 공직생활 가운데 영화진흥공사사장 시절을 가장 보람으로 여길 만큼 특히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에 보기 드물게 깊은 이해를 지닌 인물이다.따라서 공륜도 이제 「가위질」만 하는 곳에서 벗어나 문화산업을 지원하는데 눈을 돌려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영화와 비디오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가는데 산업자체는 크게 위축되어 있습니다.특히 올해는 외국영화의 수입이 크게 늘 전망이고 내년에는 복제 벌수의 규제도 해제되는 등 시장이 더욱 크게 개방될 것 입니다.이런 상황에서 공륜도 무엇인가 할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공륜이 국내 창작물은 최대한 지원하되 외국 창작물 특히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디오에 대해서는 「좀 세게」관리하는 것도 방법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영화의 소재심의 대신 관람가부를 연령별로 세분화하는 등급심의제나 특히 포르노전용관의 신설 문제에 대해서는 『결국 여론의 추이에 달린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지난 64년 국전에 입상한뒤 여가가 없어 중단한 붓글씨를 다시 시작하고 우리나라의 영화정책을 체계적으로 다룬 조그마한 책도 한권 펴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 고대 신경하교수,「중국당대 40년사」 출간

    ◎중국 1949∼1989년 무슨 사건 있었을까/당대사 국내 첫 연구성과 결실/중공 수립·국민당 대만 이주시기 기점/체제 다른 두 정권 역사 알기쉽게 정리 1949년부터 1989년까지의 중국대륙.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이후 천안문사건을 거쳐 중국특유의 사회주의개방정책이 뿌리를 내린 이 40년동안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간헐적인 언론보도만으로 전해 들어야 했던 이 시기의 중국대륙과 대만의 당대사를 정리한 「중국당대40년사」(고려원간)는 이같은 궁금증을 풀어준다. 고려대학교 중국학총서시리즈의 하나로 기획편찬된 이 책은 신승하교수(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가 자신의 「중국근대사」「중국현대사」작업이후 펴낸 완결편에 해당한다.그동안 역사학연구에서 금기시돼왔던 당대사를 한국학자가 학문적으로 연구한 첫 성과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당대사」란 바로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현재,지금이 포함된 시기의 역사로 역사학에서 「현대사」와는 구별되는 용어다. 기점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으로,하한점을 1989년으로 잡고 있다.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더불어 국민당정부가 대륙을 떠나 대만으로 옮겨간 시기를 당대로 구분,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중국의 당대사는 체제가 다른 두 정권의 역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를 배합해 하나의 시기로 구분하는데는 다소 무리가 따랐다. 이 저술은 크게 8가지 시기로 나눠 40년사를 정리하고 있다.▲중국사회주의 국가의 건국과 중화민국의 대만기지건설(49년∼52년10월) ▲사회주의와 삼민주의체제로의 기본적 개조와 발전(53∼56년) ▲사회주의 건설대약진과 반공복국의 표방(57∼60년)으로 우선 구분했다.그리고 ▲대약진의 좌절과 국민경제의 전면조정(61년∼66년4월) ▲문화대혁명과 중국문화부흥운동(66년5월∼70년9월) ▲문화대혁명실패와 문혁기(70년10월∼76년10월) ▲사회주의 현대화와 대만의 본토화(76년11월∼82년)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노선과 대만의 민주화(83∼89년)등 큰사건및 정책변화에 시기별 전환점을 두어 설명했다. 이밖에 오늘의 중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49년10월 정권수립서부터 89년 12월 중화민국3항공직자선거까지중국본토와 대만에서 일어난 대사년표를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중국어·일어·영어·한국어로 된 각종 참고문헌목록도 실었다. 신교수는 『역사란 지나간 일로만 설명되고 또 그렇다고 보지만 이것은 오늘이 있기까지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따라서 진실을 밝히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근접되어 있는 당대기라고 당대사서술의 어려움을 설명했다.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밝혀질때까지 역사서술을 미룰 수만은 없으며 비록 잘못 꾸며질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좀더 계통적인 흐름의 당대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불법테이프 시판/치안신문 지부장 구속

    서울지검 형사6부 박장수검사는 20일 치안신문 관악지부장 김영훈씨(38·관악구 봉천3동 1의72)를 음반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최재열씨(40·서초구 신운동)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도봉구 방학동에 설치한 중앙시장이라는 불법카세트 지하판매 창고와 강남구 신사동 545 테이프보관소에서 문화부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없이 만든 불법테이프 30여만개를 불법음반제작자들로부터 개당 4백∼5백원에 구입,시중에 6백원씩 받고 하루에 7천여개를 팔아 지금까지 5천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있다.
  • 예술의 전당 사장 김상식씨

    문화체육부는 19일 예술의전당 사장에 김상식전문화부 기획관리실장을 임명했다.허만일전사장은 이 날자로 사표가 수리됐다.
  • 공윤위원장 김동호씨

    공연윤리위원회는 18일 제7대 위원장에 김동호전문화부차관을 선출했다. 신임 김위원장은 서울법대출신으로 문공부 기획관리실장과 영화진흥공사사장을 거쳐 예술의전당사장·문화부차관을 역임했다.
  • 문화체육부장관 이민섭씨(인터뷰)

    ◎“문예·체육·청소년정책 적절히 조화”/공무원사회 체질개선… 관행 탈피/민의 최대한 반영 정책입안 계획 『문화예술과 체육청소년 정책은 분리했을 때보다 종합적으로 추진했을 때 얻어지는 효과가 훨씬 큽니다.이 세가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민섭 초대 문화체육부장관은 문화와 체육이 다소 이질적이지 않느냐는 일부의 시선을 의식한듯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로 분리되어 있을 때보다 인원은 크게 적어졌으나 할일은 더욱 많아졌다』는 이장관은 지난달 26일 장관에 취임한뒤 통합에 따른 직제확정과 현판식,본부 간부에 대한 인사 등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이장관은 그러나 이같은 물리적인 통합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더 큰 과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공무원 사회의 체질개선입니다.이제 책상에 앉아 계획을 세우고 서면으로 보고를 받는 과거의 관료적 관행은 탈피해야 합니다.문민정부가 의의 있는 것은 국민의 소리를 최대한 정책에 반영하기 때문이아닙니까.생생한 민의의 현장에서 정책자료를 수집하고 정책을 입안해 실천해야 합니다』 이장관은 춘천·양구·인제를 지역구로 하는 민자당 현역 4선의원.이장관은 지역구 활동으로 업무에 지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일부의 우려에 다소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제 경우는 일요일에만 지역구 활동을 합니다.남들이 쉬는 휴일에 많은 국민을 만나 행정실태를 직접 점검한다는 것은 이점은 될지언정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제 지역구는 사실 문화도 체육도 청소년 시설도 아무것도 없는 곳 입니다.이때문에 많은 낙후된 지역민들이 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장관은 11대때 민정당 전국구로 정계에 진출하기전까지 15년동안 서울신문에 있으며 정치부차장과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신문기자 초년병 시절 문화부에 배치되어 문학과 연예를 담당했고 당시 문화공보부에 출입하기도 했습니다.그 것보다도 언론 자체가 문화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까.또 12대때는 문공위간사로 13대에는 문공위원장으로 문화부는물론 체육청소년부를 속속들이 파악할수 있었습니다.지금 생각이지만 문화체육부장관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부임했다면 다른 쪽은 크게 소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장관은 현재 두 부처의 통합으로 참석해야 할 자리가 너무 많아 크게 고심하고 있다.그럼에도 취임 다음날 부터 오페라 「임을 찾는 하늘소리」와 「리골레토」「포스카리가의 두 사람」 등을 서울오페라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을 오가며 관람,먼저 「문화」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다.이는 앞으로 문화예술 및 스포츠 행사에 「자리를 빛내는」역할이 아닌 「보고 즐기며 격려하는」장관이 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 “43년만의 귀향” 새 정부에 감사/송환소식접한 이인모씨 표정

    ◎“통일매듭 푼것”… 사경헤매던 얼굴에 화색/전향거부한채 34년간 복역… 88년 가석방 『모든 문제를 초월해 민족적인 측면에서 나를 고향으로 보내주기로 결심한 새정부에 감사한다』 미전향장기수 출신 이인모노인(76)은 10일 상오 입원중인 부산시 서구 아미동 부산대학병원 932호실에서 자신을 무조건 북송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을 전해 듣고는 감격해 마지않았다. 지난달 13일 폐렴등의 증세로 입원해 한때 사경을 헤매기도 했던 그의 얼굴은 송환소식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이노인은 시종 환한 표정으로 『북에 있는 아내와 딸,손자·손녀들을 빨리 보아야 할텐데』라고 되뇌었다. 이노인은 우리 정부의 결정을 『그동안 남북 양측이 고집해 오던 이기적인 관점을 버리고 대국적인 측면에서 통일의 매듭을 푼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의 송환을 계기로 남북이 모두 억류하고 있는 사상범들을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길 바랐다. 이노인은 지난 50년 인민군 문화부 종군기자로 일하다 52년 12월 부상을 입고 국군에 체포된 뒤 34년동안 복역했다. 그는 장기복역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전향을 거부했다. 이노인은 지난 88년 10월27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경남 김해군 진영읍 신용리 483 김상원씨(42)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자신의 방 벽에 부인 김순임씨(66)와 딸 현옥씨등 가족의 사진을 걸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으며 함경남도 풍산군 자신의 고향에서 보내던 어린 시절을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러다 지난달 10일 감기증세로 근처 병원에서 1차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되자 3일만에 부산대병원으로 옮겼었다. 담당의사 박순규씨(48)는 『이노인의 증세가 입원 당시 폐농양으로 진전돼 있어 매우 걱정했다』면서 그러나 요즘 많이 좋아져 고향길을 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하오1시10분쯤 문익환목사가 이노인을 문병,하루빨리 나아 고향의 가족과 만나라고 위로했다.
  • “국민복지시대 앞당기겠다”/송정숙 신임보사장관 포부

    ◎의보혜택·사회보장제 확충 전력/공동체의식 강화로 「그늘」 거둘터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한국창조의 첫 과제는 국민복지시대 실현인줄 알고 있습니다』 신임 송정숙보사부장관은 『민족사적 국운을 가름하는 시기에 중책을 맡게돼 「두렵고 걱정스럽다」』면서도 『국민복지향상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비뚤어진 시대상황을 그때그때 날카로운 필치로 지적해온 신임 송보사부장관은 『우리사회의 어둡고 그늘진 곳이 더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고 중점행정의 방향을 제시했다. 송장관은 이를 위해 『국민소득 수준에 걸맞게 온 국민들이 고급 의료시설의 혜택을 고루 받도록 하겠으며 사회보장제도를 크게 확충하는 계기를 마련해보겠다』고 강조했다.그는 또 지체부자유자 시설수용자등 소외받는 계층에대한 지원사업을 활성화하여 우리사회의 일원으로써 새한국창조의 대열에 동참할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참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우리사회는 경로사상으로 요약되는 아주 좋은 공동체의식을 가꾸어 왔습니다.우리사회의 「그늘」을 거두어 내는데 우리만의 미풍양속을 십분 활용하겠습니다』 25세때인 지난 61년 서울일일신문 기자를 시작으로 한국일보를 거쳐 서울신문 문화부장,논설위원으로 평생을 언론인으로 일해온 송장관은 『정년 퇴임하는 최초의 여기자가 되고 싶었다』면서도 『신한국창조에 동참하는게 이 시대인의 소명이라는 생각에서 입각에 기꺼이 응했다』고 밝혔다. 『개혁은 이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새로운 바람입니다.불어오는 바람을 받아들일 창문을 어느 쪽으로 내고 얼마큼 열어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이 바로 장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럼니스트로서만 아니라 펜클럽(PEN)회원으로 소설가이기도한 송장관은 『전문 행정관료들의 식견을 존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분위기를 만듦으로써 보사행정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겠다』고 행정방향을 밝혔다. 송장관은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데다 원만한 성품을 지녀 최근 관훈클럽의 언론인 지원사업인 신영연구기금의 이사장에 추대되는등 주위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 남편오병승씨(61세 서울교대교수)와의 사이에 1남. ▲대전출신·57세 ▲이화여대 국문과입학,건대 국문과졸,성균관대 대학원수료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서울신문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시대의 초상」「큰나무 작은나무」「사생아」「2시간45분」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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