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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중독 클리닉 내년 개설

    게임중독과 사이버 범죄, 온라인 사행성 게임 등을 예방·근절하기 위해 100억원 규모의 ‘게임문화진흥기금’(가칭)이 조성된다. 또 ‘게임몰입 전문 클리닉’‘게임종합민원·상담센터’도 운영된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7일 이같은 내용의 ‘건전 게임문화조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국내 게임산업이 연 10% 내외로 고성장하는 등 산업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반면 과도한 게임 몰입, 온라인게임 관련 사이버범죄, 불법 사행성 게임물 증가 등 부작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마련됐다. 먼저 ‘게임문화진흥기금’은 게임제공 업소의 경품용 상품권 발행사를 중심으로 민간 차원에서 연 100억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 기금을 활용해 사회공헌활동과 교육 및 참여프로그램, 게임 역기능 예방과 근절을 위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문화부는 또 대학, 청소년상담실, 시민단체 등과 연계한 ‘게임중독 전문클리닉’을 개설해 내년에 3∼5개를 시범운영한 뒤 그 운영성과를 바탕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클리닉에서는 심리 및 상담, 의학 전문가가 나서 게임 몰입 관련 전문 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된다.‘게임종합민원·상담센터’는 게임 관련 분쟁과 관련한 민원과 상담을 위해 한국게임산업개발원,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중심이 돼 구축된다. 이와 함께 문화부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통보한 ‘룰루게임’‘게임조아’ 등 불법 사행성 온라인게임(도박성 게임류) 18개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음비게법)’에 따라 ▲상설 단속반을 통해 온라인 게임물 제공장치의 절단·수거·폐기, 정통부·초고속망 사업자 등에 대해 사이트 폐쇄조치 요청 ▲검·경에 대한 음비게법상 처벌규정 적용 강화 요청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잠깐이면 될 것이다. 아주 잠깐. 이 쇳줄을 넘어 몸을 던지면 될 것이여. 눈 깜짝할 사이면 저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잉게.”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씨가 지은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朴仁天) 일대기인 ‘집념-길위의 길’에는 1923년 당시 23세이던 박씨의 실패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박씨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장사에 손을 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본 오사카에 돈을 벌러 갔지만 일주일만에 빈손으로 돌아오며 자살을 염두에 뒀을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은 상처투성이였다. 이창동씨는 박씨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박인천의 일생은 우리 역사의 엄정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택시 2대로 운수사업 시작 박씨는 나이 30세를 넘어 정규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으면서도 독학으로 지금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는 등 놀랄 만한 집념으로 인생의 반전을 이뤘다. 이런 그의 의지는 해방 이후 당시로선 노인 취급을 받고 은퇴할 만한 나이인 46세에 광주에서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로 회사를 차려 광주고속이라는 고속버스 회사를 출범시킨다. 박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삼양타이어(현재의 금호타이어), 석유화학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현재 재계서열 10위 그룹으로 키워 냈다. 특히 금호그룹은 5공시절 예상을 깨고 제2민항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며 대표적인 호남재벌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박씨가 택시 두 대에서 아시아나항공까지 키워온 대재벌의 창업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뼈아픈 실패들이 밑거름이 되었다. 남달리 고집이 세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오늘날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박씨의 삶은 좌절과 성공을 향한 몸부림, 해방 후 맨주먹으로 출발해 한국 굴지의 재벌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이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과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호가 ‘금호’(錦湖)인 박인천 회장은 1901년 7월5일 전남 나주군 죽포면 동산부락 일명 신기(新基)마을에서 태어났다. 빈농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열 살이 될 때까지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당에 다녀야 했다.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한 한학이지만 열다섯살 때 팔현강당에서 개최된 강경(講經)시합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곧 한문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자동차가 신작로 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시대에 한문 공부를 해서 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열일곱살 되던 해 지금의 초등학교격인 나주 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식공부에 대한 열의도 2년을 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하는 나이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애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어 버리고 열아홉살 때부터 면화수집상, 대금업, 싸전업 등의 장사를 했지만 손을 대는 족족 손해만 입었다. 이처럼 실패만 거듭해온 박씨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일본으로 건너간 직후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공장 굴뚝 앞에서 조선 사람으로서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그를 바꿔 놓았다.“일본놈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공장을 짓는지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본 순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 뒤 5년 만인 1929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이후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이순정 여사를 배필로 맞았다. 박 회장은 8·15 해방을 맞자 택시 두 대를 구입해 운수사업에 뛰어들었다.17만원(圓)의 자본금으로 포드 디럭스 세단 5인승 택시 두 대를 사들였다. 그때 이 돈은 80㎏들이 쌀 44가마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3남인 삼구 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창업주의 집념, 도전, 개척정신을 본받는다는 취지로 그룹 창업의 모태가 됐던 택시와 똑같은 모델을 구입해 용인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 1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사업수완이 있었던 박 회장은 2년여의 짧은 기간에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48년에 광주여객을 세워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박 회장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50년대에 광주여객을 전라남도 최대의 여객운송업체로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이순정 여사의 내조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올해 95세인 이 여사는 아직도 광주여객을 운영하던 광주시 금남로 212번지에 거주하고 있다. 광주여객을 경영하던 당시 ‘안집’이라고 불렸던 이 집에서 친척, 조카, 버스 차장과 정비공 등 50명의 식솔을 손수 챙길 정도로 남편의 사업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1984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도 이 여사는 900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매년 1억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불우이웃을 돕고 봉사단체를 육성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 여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민간부문 최고 권위의 ‘적십자 박애장 금장’을 받기도 했다. ●제2민항 선정 ‘제2 도약´ 광주여객을 업계 최고의 반열위에 올려 놓은 박 회장은 이후 방적회사인 전남제사, 고려도자를 비롯해 금호타이어(전 삼양타이어)를 설립,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러던 박 회장은 1972년 어느 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큰 아들 성용에게서 중대한 제안을 받는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사무실로 찾아 온 아들은 “경영성과를 높이고 효율적 운영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박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같은 해 10월 10일 박성용 교수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해 지주회사인 ‘금호실업’ 설립을 결의했다. 박 회장은 또 박 교수를 금호실업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1973년 1월1일 금호아시아나는 박 회장이 초대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출범시켰다. 금호는 그룹체제 출범과 함께 계열사별로 경영관리체제를 정비했다. 금호실업은 장남인 성용, 광주고속은 2남인 정구, 금호타이어는 3남인 삼구, 삼화교통은 첫째 사위인 배영환에게 경영을 책임지도록 했다. 1984년 6월6일 타계한 박인천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인 박성용 부회장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강대 교수 재직시절부터 자문역으로 그룹경영을 도와온 박 회장은 금호실업 사장과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 만에 2세 경영시대를 연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88년 정부로부터 제2민항 설립업체로 선정되는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계열사간 합병과 비수익 사업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박성용 회장은 1996년 4월 바로 아래 동생인 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 주었다. 형제간 친족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작금의 경영계에 교훈이 될 ‘형제간 화합경영’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박정구 회장이 2002년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뜨자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4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박인천 회장은 슬하에 5남3녀를 두었다. 성용, 정구, 삼구에 이어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부회장,5남 종구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등이다. 딸은 경애, 강자, 현주씨 등 3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혼맥은 박인천 회장이 생전에 아들딸의 혼사에 매우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정·관·재계 유력 집안과 화려한 혼맥을 맺고 있다. 박 회장은 직접 유력 집안에 줄을 넣어 “사돈을 맺자.”고 청한 적도 있을 만큼 자식들의 혼사를 중요시했다. 특히 호남재벌이면서도 정구, 삼구, 찬구 3형제를 모두 영남 유력 집안에 장가 보냈다. 3세들 결혼도 삼성,LG, 대우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화려한 혼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박 회장이 자식들의 결혼을 직접 챙기는 등 혼사를 중요시 여겼지만 유독 큰아들 성용은 부친의 뜻을 어기며 연애결혼을 강행했다. 큰 아들 성용은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미국인 마거릿 클라크를 만나 열애 끝에 1964년에 결혼했다. 박성용 회장은 클라크 여사와 1남 1녀를 뒀다. 장손녀 미영(39)씨는 아직 미혼으로 캐나다에서 머물며 불교 관련 일을 보고 있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재영(35)씨는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구문정(30)씨와 결혼해 1남을 두고 있다. 창업주의 큰딸인 경애(71)씨는 제헌의원 출신 배태성씨의 장남 배영환(72) 삼화고속 회장에게 시집을 갔다. 슬하에 배정철·승현·동철·홍철 등 4형제를 낳았다. 2남인 정구 회장은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형일(59)씨를 배필로 맞았다. 김익기씨는 해태그룹의 창업주였던 박병규씨와 사돈관계이고, 박병규씨는 민병권 전 교통부 장관과 사돈이기도 하다. 정구 회장은 슬하에 은형·은경·은혜씨 등 세 딸과 외아들인 철완씨를 두고 있다. 세 딸은 모두 시집을 갔는데, 재계 유력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장녀 은형(35)씨는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결혼했고, 은경(33)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차남인 장세홍(한국특수형강 이사)씨와,3녀 은혜(29)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재명(일진경금속 영업담당겸 누브인터내셔널 대표)씨와 혼인했다. 아들 철완(27)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미술관장으로 있는 2녀 강자(64)씨는 대한전자재료 회장인 강대균(64)씨와 결혼했다. 강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LSE대 출신인 아들 재원(25)씨와 지은과 지영 등 두 딸이 슬하에 있다. 3남인 삼구 회장의 부인 이경결씨는 한국은행·산업은행 총재, 재무장관을 지낸 이정환씨의 둘째 딸이다. 이정환씨는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30)씨는 2003년 3월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현정(29)씨와 결혼했다. 세창씨는 지난 6월 MIT공대 MBA 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 회사에 취직했고, 딸 세진씨는 유학 중에 있다.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위창남 전 광주투금 사장 딸인 위진영씨와 결혼했다. 장남 준경(27)씨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중동 관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 주형씨는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3녀 현주씨 삼성과 사돈 금호가(家)의 화려한 혼맥은 3녀인 현주(52)씨에서 절정을 이뤘다. 현주씨는 대상그룹 임창욱(56)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현주씨는 1998년 큰딸 세령(28)씨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동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37)와 결혼시켜 삼성가와 사돈 관계로 맺어졌다. 세령씨와 이 상무가 만나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어머니인 현주씨와 홍라희 여사가 불교신도 모임인 ‘불이회’에서 친하게 지낸 게 계기가 됐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세령씨는 결혼과 함께 휴학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남편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세령씨는 유학 중 2000년 장남 지호를 얻었고, 이듬해 귀국해 이건희 회장 부부와 함께 살면서 지난해에는 딸 원주를 낳았다. 둘째 딸 상민씨는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 유학 중이다. 특히 현주씨는 대상그룹의 계열사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지분 75%를 갖고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딸 상민씨를 2대 주주(17%)로 편입시켜 눈길을 끈다. 5남 종구(47)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은 ㈜삼흥복장 사장 이명선씨의 장녀 이계옥(4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건호, 도윤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씨는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별정직 2급)으로 공직을 시작했다.2002년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으로 자리를 잠시 옮겼다가 2003년부터 국무조정실 1급인 경제조정관으로 재직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을 펼치면서도 유독 종구씨만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점도 재계에 비상한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씨는 막내 아들이지만 경제를 전공한 전문가로서 그룹 일에 뜻을 두기보다는 공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으로 집안 내에서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벽안의 맏며느리’ 클라크 여사 ‘벽안(碧眼)의 재벌 며느리’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마거릿 클라크 박 여사는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재벌가에서 조용히 남편을 도우며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동서들을 챙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예일대 수학중 만나 교제 마거릿 클라크 여사는 남편인 박 전 명예회장을 1963년 미국 예일대에서 만났다. 그녀는 대학원 경제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 전 회장을 눈여겨봤다. 동양인이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에 항상 ‘제니스’ 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듣던 박 전 회장에 대한 호감이 컸다는 게 박 전 회장의 이종 사촌인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 등 친인척들의 전언이다. 박성용 전 회장도 미국인이지만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조신하게 생긴 클라크 여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커갈수록 고통이 더했다. 당시로선 유교적 전통이 강한 밀양 박씨의 장손으로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번민의 세월을 보내던 박 전 회장은 아버지에게 클라크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그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동봉했다. 그러나 아버지 박인천 회장은 그 사진을 둘로 찢어서 봉투에 넣어 아들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그것이 박 회장이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단호한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자로 소문난 박 전 회장은 난생 처음 부모의 뜻을 거역했다.1964년 둘이서 법적 절차만을 갖춘 최소한의 결혼식을 올리고 아버지와 사실상 ‘의절’ 상태에 들어갔다. 물론 박 회장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도 않았고,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 박 회장은 큰 아들 성용이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때에 둘째딸 강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자 아들 집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예일대경제학박사를 받은 뒤 클리블랜드시에 있는 케이스 공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인천 회장은 클리블랜드 공항에 마중나온 파란 눈의 며느리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장손녀 미영씨를 맞닥뜨린 뒤 얼었던 마음이 녹아 내렸다. 미국인이었지만 수수하면서도 정이 가는 인상을 가진 맏며느리를 보고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2년반 만에 연 것이다. ●자녀들에 한국식 교육 서구 고문은 “성용 형님이 결혼한 뒤 페기(마거릿 클라크의 애칭) 형수에게 집안의 법도 등 예절교육을 많이 시켰다.”면서 “아버님에게 며느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의 며느리가 지켜야할 예절에 대해 귀가 닳도록 얘기를 했다는 말을 형님으로부터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클라크 여사는 미국인이지만 미영씨와 재영씨를 이화여고와 구정고까지 졸업시킨 뒤에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을 정도로 한국식 자녀교육을 고수했다. 그녀의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클라크 여사는 박 전 회장 사후에 미국 친정에 기거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있는 미영씨와 재영씨를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미국에서 달려와 직접 챙기는 등 아직도 맏며느리로서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박인천 회장도 한국 집안에 시집온 뒤로 별 탈 없이 큰 며느리의 역할을 해내는 미국 며느리에 대해 뒤늦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작한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물에서 한 지인에게 “우리 큰 자부(며느리)가 미국 여자입니다. 나도 잘 이해를 하고 또 역시나 데리고 있어 보니까 똑같아요. 한국 며느리나 외국 며느리나. 그리고 이해심도 있어요. 자기들끼리 좋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창업주 父子 ‘금연 전도사’ ▲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기리기 위해 용인 인재개발원에 전시된 ‘1933년형 포드 딜럭스세단 5인승’ 옆에서 박삼구(왼쪽) 회장과 박찬구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연운동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1986년 금연 캠페인을 시작해 1991년부터는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일선 영업장에까지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이런 금연 노력은 창업주와 2세 경영인들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 박인천 회장은 1938년 심한 폐병을 앓아 2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 지금이야 폐병이 심한 병이 아니지만 당시 폐병을 앓는 환자는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나갔다. 경찰이었던 박 회장은 요양을 위해 순천경찰서에서 보성경찰서로 직장을 옮기고, 몸에 좋다는 각종 약과 치료를 받았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다. 결국 경찰서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목포에서 개업 중이던 김보형이라는 한의사로부터 1년 동안 녹용을 복용한 이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이후 장수를 누려 84세에 별세했다. 박성용 명예회장도 폐가 좋지 않았다.1985년까지 하루에 담배 두갑을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그러나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여 흡연운동을 전사적으로 전개했다. 1986년 8월 박 회장을 비롯한 142명의 임직원들이 금연운동에 동참해 매일 담뱃값 대신 푼돈을 모아 만든 ‘금호건강복지기금’을 조성해 금연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던 그룹 본사 사옥인 아시아나 빌딩을 포함한 전 사업장에 완전금연을 실시했다. 박 명예회장은 이런 공로로 1991년 8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금연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딱딱한 단화를 신지 못하고 스폰지 단화나 등산화 등을 신고 다녔다. 박정구 회장도 폐병으로 2년여 투병생활을 했다.2001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에서 폐기종 치료를 받아 한때 건강을 되찾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나 2002년 7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그룹 관계자는 “창업주를 비롯한 2세 경영인들이 공교롭게도 폐가 좋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가족병이라기보다는 경영인으로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종건 SK그룹 선대회장과 최종현 회장, 양회문 대신증권 회장 등이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스포츠중계 방송 ‘가상광고’ 허용

    그동안 방송광고시장 자율화 방안을 검토해오던 문화관광부가 일단 가상광고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문화관광부는 방송위원회 등과의 협의를 통해 10월쯤 최종안을 낼 예정이다. 그러나 방송위가 문화부의 독주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데다, 광고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신문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그나마도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한편 문화관광부가 방송광고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운영해온 방송광고 TF팀은 8월로 활동을 마감했다.여기서는 가상광고뿐 아니라 중간·간접광고 문제, 코바코의 진로와 연관있는 미디어렙 도입방안 등이 논의됐다.TF팀은 가상광고를 허용하되 시청자 주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스포츠중계에 한해 방송시간의 3%이내 등의 조건을 붙여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쪽으로 결론지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전자마약’에 빠진 中청소년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전자마약’에 빠진 中청소년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1억 3000만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지난 97년 62만명에 불과했던 인터넷 인구가 8년사이 160배나 늘어나 ‘인터넷 대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청소년들은 인터넷 게임과 인터넷 상의 각종 포르노물에 중독되면서 인터넷은 각종 ‘청소년 범죄의 온상’으로 변했다. 중국 청소년들이 이른바 ‘전자 헤로인’의 심각한 피해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 게임중독 450만… 고민하는 ‘인터넷대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1억 3000만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지난 97년 62만명에 불과했던 인터넷 인구가 8년사이 160배나 늘어나 ‘인터넷 대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청소년들은 인터넷 게임과 인터넷 상의 각종 포르노물에 중독되면서 인터넷은 각종 ‘청소년 범죄의 온상’으로 변했다. 중국 청소년들이 이른바 ‘전자 헤로인’의 심각한 피해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대학교 시먼(西門) 부근의 한 왕바(PC방).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이 PC방은 100명을 수용할수 있으며 저녁 8시 전후로 빈 자리를 거의 없을 정도로 만원이다. 18세 이상만 출입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구 중·고등학생들이 적지않았다. 에어컨 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찌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라인 게임이나 채팅에 열중해 있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PC 위에는 낡고 먼지가 수북한 선풍기가 PC방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밤샘파 인터넷 중독자 급증 하루에 800여명이 온라인 게임과 채팅 등 인터넷을 즐기고 있으며 하루 12시간 이상을 인터넷에 몰두하는 ‘밤샘파’ 중독자들도 적지않다는 것이 PC방 주인의 전언이다. PC방 사용료는 시간당 3위안(약 390원)으로 1년 회원권(50위안)을 사면 시간당 2위안을 낸다. 중국의 PC방은 전국적으로 대략 35만개. 불법 PC방이 다수를 차지한다.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 대부분 대도시에 몰려 있으며 최근 중소 도시는 물론 농촌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는 인터넷 중독자를 대략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3.5%인 450만명 안팎으로 추산한다. 청소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터넷 중독자들은 용돈을 PC방에서 날리고 인터넷 접속을 위해 범죄 유혹에 빠져드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변하고 있다. ●살인, 자살부르는 인터넷 중독증 톈진(天津) 탕구(塘沽)에 사는 중학생 샤오이(小藝·14)는 2년전부터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면서 결국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PC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지면서 인터넷 비용이 부족한 그는 부모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길거리 자전거를 훔쳐 파는 전형적인 ‘전자 헤로인 중독자’가 됐다. PC방 출입을 막는 어머니를 살해한 그는 500위안을 훔쳐 가출을 했다가 붙잡혔다. 샤오이는 경찰 조사에서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태연하게 진술했다. 아들의 인터넷 중독을 비관한 어머니의 자살 사건도 일어났다. 고등학생 류궈휘(劉國輝·16)는 2년 전 집에서 9000위안(약 110만원)을 훔쳐 가출한 뒤 선양(瀋陽)의 한 PC방에서 줄곧 폐인 생활을 했다. 돈이 다 떨어지자 지난 6월 집에 돌아왔지만 류군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인터넷을 위해 집을 나가고 남의 것을 훔치는 절도범으로 전락해 철장신세를 지는 청소년도 늘고 있다는 게 현지 언론의 전언이다. 중국청소년 네트워크협회 비서장 하오샹훙(向宏)은 “인터넷 중독자 95%가 13∼18세의 청소년들”이라며 “인터넷 게임을 모방한 살인사건이나 포르노 중독자들의 성범죄도 급격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상하이(上海)의 경우 지난해 청소년 범죄 가운데 26%가 인터넷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상하이시 검찰의 주샤오핑 청소년과장은 “폭력적인 온라인 게임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청소년 범죄가 매년 30% 이상 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온라인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급증함에 따라 이를 치유하기 위해 공식 클리닉도 적지않다. 웹 중독에 빠진 어린이를 치료하고 있는 타오란(陶然) 박사는 “클리닉을 찾는 청소년들은 매일 게임에 빠지거나 채팅에만 매달려 학업을 중단한 상태”라며 “이들은 의욕상실과 불안, 공포, 타인에 대한 반항심, 정신적 공황, 흥분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중독 상황을 전했다. 환자 대부분은 14세에서 24세로 불면증이나 체중 감소, 대인기피 등 증상을 보인다. ●인터넷 중독 예방에 착수한 당국 중국 당국은 급증하는 인터넷 게임의 중독 폐혜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예방 정책에 착수했다. 지난달 23일 ‘중독 방지 시스템’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온라인 게임 이용 시간이 3시간을 초과하면 ‘불건전한’ 것으로 간주, 이용자에게 게임상에서 각종 불이익을 주는 것이 주요 골자다. 오는 10월부터 시행될 이 중독방지 시스템은 게임 5시간을 초과하면 15분마다 ‘즉시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라. 당신이 획득한 아이템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뜬다. 중국은 지난해 온라인 인터넷게임에 대해 전국적인 조사에 착수, 올 초에 ‘피파 2005’ 등 폭력성 짙은 50개 게임에 대해 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중국당국의 인터넷 규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모든 미등록 웹 및 블로그를 폐쇄할 것임을 천명한 데 이어, 오는 10월까지 불건전 온라인 게임에 대해 강도 높은 단속을 전개할 예정이다. 지난 5개월간의 단속에서 ‘섹스 비치(Sex Beach)’를 포함한 총 9개의 온라인 게임을 불법물로 규정하고 8개의 게임업체를 처벌했다. 중국 언론들은 “온라인 게임이 게으름과 무능, 심지어 살인까지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당국이 오는 9월까지 포르노, 폭력, 도박 등 선정적이고 불건전한 온라인 게임에 대해 강력한 ‘정화작업’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문화부도 “일부 게임들이 포르노와 도박·폭력 등 불건전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좌시해선 안 된다.”며 강력한 척결 의지를 밝혔다. oilman@seoul.co.kr ■ 작년 온라인게임 시장규모 4700억원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의 인터넷 산업 시장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현재 1억 3000만명이지만 2년 후인 2007년에는 2억명을 넘어서 미국(1억 7000만명)을 추월할 것이 확실하다. 중국의 전체 인구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10%에 불과하다.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네티즌 1억 3000만… 2년뒤 2억 넘을듯 시장 조사기관 니코 파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온라인 게임 이용자는 2300만명으로 추정되며 2003년 1380만명에 비해 엄청난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온라인 게임시장 규모도 전년보다 47.9% 증가한 4억 6780만달러(약 4700억원)로 4년 후인 2009년에 20억달러(약 2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인터넷 산업의 확산은 ‘정보화 사회’ 진입을 독려하는 중국 당국의 적극적인 육성책 때문이다. 인도는 인구가 11억명으로 중국(13억명)에 뒤지지 않지만 인터넷 이용자 수는 중국의 4분의1인 3000만명에 불과하다. ●상하이시, 게임업체 30여곳 집중지원 중국 정부는 지난 5년간 통신망 구축에만 1400억달러(약 140조원)를 쏟아 부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산업 보호에도 적극적이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온라인게임 엔진 개발 등을 국책 과제로 선정하고 정부 출자 회사 2곳을 새로 설립했다. 상하이시 정부는 소프트웨어·게임 업체들에 토지 매입과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 30여개의 자체 개발 온라인 게임을 선정,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하이는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50%를 휩쓰는 게임 메카가 됐다. oilman@seoul.co.kr ■ 하오샹흥 청소년네트워크비서장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인터넷 중독은 마약 중독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파괴하고 잠재적 범죄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청소년 네트워크협회 하오샹훙(向宏) 비서장은 “수년전부터 인터넷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중국은 선진국처럼 올바른 인터넷 문화가 정착될 시간이 없었다.”며 “오락 거리가 별로 없는 중국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시바허에 소재한 중국청소년 네트워크협회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회단체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컴퓨터 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인터넷 중독 청소년들의 상담과 치유·예방이 주요한 업무다. 하오 비서장은 “인터넷 중독자는 전국적으로 대략 450만명 안팎이지만 베이징의 경우 인터넷 사용자의 13∼15% 정도가 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 중독자 가운데 게임 중독이 가장 많으며 채팅과 포르노, 인터넷 서핑 중독자들도 적지않다.”며 95%가 13∼18세 청소년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 중독자 급증과 함께 유료 예방센터가 붐을 이루고 있다.”며 “치료는 3주 정도 걸리며 비용은 2000위안(26만원) 안팎”이라고 밝혔다. 또 인터넷 중독 증세와 관련,“컴퓨터 사용 시간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인터넷이 정상적인 학교·사회 생활을 파괴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청소년 네트워크협회가 지난 1년동안 치유한 청소년 중독자들은 대략 500여명으로 회복률은 60% 안팎이다. 그는 “보통 치료 기간은 3주정도 걸리지만 상황에 따라 중독 증세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완전 치유는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터넷 중독과 청소년 범죄와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며 그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베이징 하이덴(海淀)구의 경우 청소년 범죄의 90%가 인터넷 중독과 관련이 있다는 통계도 있다.”고 소개했다. 하오 비서장은 한국의 인터넷 중독 예방 상황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한국 청소년 관련 단체와의 교류를 희망했다. oilman@seoul.co.kr
  • [서울이야기 (20)] 문화 르네상스를 꿈꾼다

    [서울이야기 (20)] 문화 르네상스를 꿈꾼다

    2005년 서울. 서울은 지금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다.2002년 월드컵 축구에서 보여준 ‘꿈은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2015년이면 세계적인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청계천복원 준공일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시청 앞에 광장을 만들어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등 문화도시를 향한 꿈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가 서울시교향악단을 지휘하고,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원대한 계획도 진행중이다. 뚝섬에 서울숲이 조성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숭례문 광장도 시민품으로 돌아왔다. 도심의 낙후지역을 뉴타운으로 만들고 있다.21세기에 세계적 수준과 어깨를 견주는 삶의 질과 시민 문화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의 문화도시를 향한 꿈은 실현 가능한 목표라 할 수 있다. ●문화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성장동력 문화도시란 한마디로 역사적 정체성과 다양한 문화예술, 다시말해 삶의 질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역사가 살아 있고 다양한 예술로 삶의 질이 높은 도시를 문화도시라 할 수 있다. 문화도시는 1985년 유럽각료회의에서 그리스 문화부장관이자 영화배우였던 멜리나 메리쿠리가 제안한 개념이다. 메리쿠리는 유럽 도시 중 역사가 잘 보존돼 있고, 인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실현된 도시를 문화도시로 선정해 발표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스 아테네가 제1회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이후 매년 1∼3개 도시를 문화도시로 발표해 오고 있다. 서울이 문화도시를 꿈꾸는 것은 필연적이다. 무엇보다도 서울이 처한 다급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2005년 상반기, 서울시 산업생산율은 전년도 동기 대비 8.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주도 다음으로 높은 하락 수치다. 산업생산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서울이 직면한 이같은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예측돼 왔다. 1990년 당시 지식·정보사회 진입과 더불어 앞으로의 산업은 문화·창의를 중심으로 형성될 것으로 예측돼 왔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창의 영국(Creative Britain,1998)과 창의 미국(Creative America,2002)을 선언했다. 선진국은 이미 지식·정보사회에 걸맞게 산업구조를 문화와 창의 산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문화도시로의 전환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국가적으로는 문화산업에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서울시로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한류를 관광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서울이 아닌 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지방으로 직행하고 있다. 아시아를 지배하는 한류가 있다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한류를 체험할 수 없는 현실 역시 서울이 문화도시를 서두르는 이유다. 또한 2008년 문화산업의 시장규모가 무려 1조 7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된다. 세계 4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경제규모보다 무려 3000억 달러나 큰 규모다. 이 시장을 놓치면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문화산업은 현재 연평균 6.8%씩 성장하고 있고, 특히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서울이 문화도시를 선언한 것은 이 문화시장을 잡겠다는 것이다. 제조업과 공업 중심 도시에서 지식과 창의성 중심의 산업구조로 전환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문화도시=삶의 질 향상 문화도시에의 도전은 산업구조 혁신에만 있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시의 삶, 즉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 세계 주요도시와 경쟁할 수 있는 서울을 만들어 보자는 데 있다. 시민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다.1년에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시민 수는 13% 이하이다. 그나마 보는 횟수는 연 0.12회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 중 26%가 태어나서 한번도 예술행사를 관람하지 않는 도시. 이런 도시에서 문화의 미래와 풍요로운 삶의 질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서울의 삶의 질은 세계 90위.‘머서휴먼리서치센터’가 세계 215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 도시 중에서는 도쿄(34위)와 요코하마(36위), 고베(39위)가 50위권에 포함돼 있다. 서울의 경쟁도시인 싱가포르 또한 도쿄와 더불어 34위다. 이런 현실에서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과 ‘노무라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은 특급호텔 수, 외국인 학교 수,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 측면에서 외국자본과 인력이 활동하기 어려운 도시로 지적되고 있다. 정보 인프라와 안전성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사회적 인프라인 문화와 삶의 질에 있어서는 매우 낮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도시는 지금 자본과 인력을 끌어들이고자 삶의 질 제고와 생활환경 개선에 매진하고 있다. 천혜의 깨끗한 환경을 가진 싱가포르는 부오나비스타 지역에 5만 6000평 규모의 바이오폴리스를 개발해 일과 생활, 연구와 놀이가 어우러진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깨끗함뿐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싱가포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 또한 국제 금융도시로서 위상을 갖추기 위해 제2차 푸둥지역개발을 설계하면서 세계일류학교 유치, 국제학교 증설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 발전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제는 시장규모만으로는 안 되고, 외국기업이나 인력이 살 수 있는 도시환경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도시의 핵심은 이처럼 다양한 문화예술과 수준 높은 삶의 질을 갖추는 데 있다. 세계적인 문화예술을 유치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에스플라나드 공연장을 건립했고 상하이는 동방예술센터를, 홍콩은 구룡반도를 문화예술단지로 개발하고 있다. ●청계천·한강문화벨트 조성 등 다양한 변화 서울은 인구 1000만명이 사는 세계 10위의 거대도시다.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2500만 명이 몰려 사는 도시다. 이 많은 사람이 살려면 도시는 기능을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도로를 넓히고 건물을 높이고 주택지와 산업지, 사무지역으로 나누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 서울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이러한 서울이 2002년 이후 변화하고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혼탁한 환경을 허용하지 않는다. 도시를 깨끗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길이라면 참고 버틴다. 무려 3년이 넘게 걸려도 아무런 불평 없이 참아 준 청계천 복원사업, 도시 한복판 거대한 인터체인지를 없애버린 시청 앞 서울광장과 숭례문 광장 조성,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따른 버스중앙차로제 시행 등은 이제 시민이 문화를 받아들이고 문화를 우선시하고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빠른 성장을 위해 잠시 포기했던 인간 중심의 가치를 이젠 허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서울시는 도시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문화도시로 나아갈 전망이다. 도심과 한강을 연결하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도심문화벨트를 조성하고 한강의 서울숲과 노들섬, 선유도를 연결하는 한강문화벨트를 조성함으로써 미래를 열어가는 문화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20세기 산업혁명의 진원지였던 청계천과 한강을 이젠 서울의 문화발상지와 르네상스의 기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서울의 전략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장 굴뚝연기가 자욱하던 구로산업단지는 상암과 목동, 영등포를 연결하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거듭날 것이다.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굴뚝공장은 문화플랜트로서 창의적인 서울 도시를 이끄는 심장이 될 것이며, 홍대주변과 대학로, 인사동은 창의적 인구와 예술이 모이는 문화터미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서울 전역이 문화공장으로 생동하게 된다. 문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서울시의 정책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일상과 라이프사이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음주 중심 문화에서 가족과 자기계발을 위한 여가활동, 텔레비전 시청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문화향수활동, 눈으로 보기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활동을 할 수 있어야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활동이 있어야만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신문 ‘서울 이야기’를 통해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이런 서울의 모습과 방향을 진단하고 전망해 볼 예정이다.▲서울의 상징인 한강 이야기 ▲도심의 다양한 열린 문화쉼터 ▲서울의 역사문화공간▲ 신명난 서울의 축제 이야기▲인사동·대학로의 실태 ▲문화로 읽는 청계천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이어 ▲시민들의 일상과 문화소비 ▲여성들의 문화활동 ▲외국인들의 문화활동 등이 이어질 것이며 ▲도시의 건축 이야기▲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지하철 문화공간 ▲이색적인 문화공간 찾기 등 연재물을 쫓아 가면 자연스럽게 서울의 문화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도시는 문화중심 도시로의 전환과 창조적인 산업 육성, 시민 생활 변화 등이 있어야만 가능한 도시발전전략이기 때문에 손쉽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얼마나 수준 높은 삶의 질과 문화적 수준을 갖췄느냐에 따라 도시 운명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이제 서울은 그 운명에 도전하고 있다. 서울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이제 그 한강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문화도시를 만드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꿈은 꿈일 수 있지만 꿈꾸지 않는 자는 이룰 수 없는 게 꿈이다.20세기 한강의 기적을 21세기 문화의 기적으로 바꾸는 서울시의 도전과 꿈은 이뤄질 것이라 확신한다. 라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 신문유통원 설립준비위 구성

    문화관광부는 신문유통원의 설립 근거를 담은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이 7월2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30일 신문유통원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설립준비위는 한국신문협회, 한국언론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한국신문서비스가 추천한 5명과 문화부가 위촉한 2명 등 7명으로 구성됐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송인근 국민지주주식회사(국민일보) 경영지원실장, 윤석인 한겨레신문 경영기획실 이사대우, 윤후상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 정연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여동진 매일신문 상무, 이병석 제이피알 상무가 위원으로 위촉됐다. 설립준비위는 3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신문유통원의 정관과 조직, 신문사의 참여방법 등 구체적인 설립방안을 논의하는 등 자문 기능을 맡게 되며, 이를 통해 마련된 설립안을 토대로 10월 중에 공청회를 개최한 뒤 11월에 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 [여담여담] 딸 가진 부모의 행복/김미경 문화부 기자

    직업상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말에 사우나와 찜질방을 자주 찾는다. 사우나에 가면 피로만 풀리는 게 아니다.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대고 앉아있다 보면 ‘이웃사촌’처럼 친근감까지 느껴진다. 우연찮게 그들과 나누게 되는 대화는 참 진솔하다. 살을 빼야 한다는 둥, 집값이 안 오른다는 둥, 각자 마음속에 있는 얘기들이 술술 나온다. 그러던 중 임신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수다를 떨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녀에게 쏠렸다. 쏟아지는 질문들.“몇개월이에요?아들이래요, 딸이래요?” 그녀는 수줍게 딸이라고 답했다. 상당히 아쉬운 눈치였다. 그러자 50∼60대 아줌마들의 반격(?)이 시작됐다.“어머나, 딸이에요?좋겠네. 딸이 재산이에요. 키워보면 안다니까요. 딸이 아들보다 훨씬 나아요.” 이어지는 이야기들.“우리 딸도 다음달에 애를 낳는데 손녀랍니다. 난 너무 기뻐서 펄쩍 뛰었는데 딸은 섭섭해합디다. 뭘 모르는 소리죠. 아들 키워봤자 처가만 챙기고 효도도 제대로 못 받아요. 딸이랑은 어려운 일 털어놓고 얘기할 수도 있고, 사소한 것도 얼마나 챙겨주는지 몰라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지난달 해외연수에 참가하면서 만났던 한 대기업 과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연수 중 부인이 둘째 아이를 낳아 타지에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더 아쉬운 것은 둘째도 아들이라는 것. 아들을 키워보니 재미(?)가 없어 딸이었음 하고 내심 바랐는데 또 아들이란다. 내년쯤 부인과 상의해서 딸을 하나 꼭 낳았으면 한다며 술잔을 기울였다. 최근 통계청이 밝힌 ‘2004년 출생·사망통계’에 따르면 출산율은 지난해보다 낮아졌고,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출생성비’도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상당수 ‘딸딸이’부모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도전하는(?) 셋째와 넷째아 이상의 출생성비도 지난해보다 많게는 10명이나 줄어들어 2000년 이후 해마다 감소추세다. 출생성비가 정상성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출산율 저하가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남아선호사상’이 그만큼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딸을 가진 부모들의 행복이 갈수록 커지면서 언젠가 ‘여아선호사상’으로 번져 출생성비가 뒤바뀌는 날이 오지 않을까?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27일 경희대·마쓰시타 정경숙 국제학술대회 공동개최

    한·일간 연대와 협력. 요즘 같은 분위기에 가능하기나 할까. 싫든 좋든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열린다.‘동북아 지역 협력을 위한 한ㆍ일관계의 모색’을 주제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과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은 27일 경희대 광릉캠퍼스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공동개최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마쓰시타 정경숙. 일본에서는 꽤 합리적 면모를 갖춘 ‘최고의 정치 엘리트 양성소’로 꼽힌다. 그래서 ‘극우·군국주의’로만 일본을 바라봐온 우리에게 ‘합리적인 우익의 길’을 찾아보려는 일본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리 배포된 자료에서도 이런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안보협력분야 발제를 맡은 게이오기주쿠대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일본에 대한 남한의 잘못된 인식 3가지를 지적했다. 첫째는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인식이다.4대가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3대강국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시에 중국과 일본의 대립을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국정책은 미·일동맹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과거사 청산 등의 문제를 두고 일본의 우경화를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지적이다. 최근 이런저런 우경화의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경화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주장이다. 이 뜻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일지, 아니면 ‘중국의 영향권’을 염두에 둔 계산된 발언인지는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이외에도 다쿠쇼쿠대학 와타나베 도시오 총장, 문화청 데라와기 겐 문화부장 등이 경제와 사회문화 분야에서 발제를 맡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는 시민 누릴 기본권리”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천명한 ‘문화헌장’이 제정된다. 23인의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문화헌장 제정위원회(위원장 도정일)는 23일 문화헌장 초안을 공개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10월20일 ‘문화의 날’에 최종안을 공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순수 민간 문화시민단체가 제안하고 문화관광부가 지원하는 형식을 통해 제정되는 문화헌장은 앞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문화권리들을 확인하고, 문화관광부 등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정책 수립시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게 된다. 전문과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문화헌장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 등 기본인권으로서의 문화적 권리와 함께 평등권으로서의 문화적 권리, 타자의 문화적 차이들을 존중하는 문화다양성,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활용할 권리 등을 담고 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문화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8월부터 작업을 벌여온 문화헌장 제정위원회에는 도정일 경희대 교수와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김현미 연세대 교수, 박명진 서울대 교수,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이성원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 김광조 교육인적자원부 인적자원총괄국장, 김종헌 예총 사무총장, 허권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팀장, 이영욱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등 학계와 문화부, 교육부, 문화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도정일 위원장은 “이번 문화헌장은 과거의 국민교육헌장처럼 정부가 주도해 상의하달하는 게 아니라 문화시민단체가 주도해 제정한 것이 특징”이라며 “국민의 문화적 권리의식을 높이고, 정부가 제대로 된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 박영대 문화정책과장은 이와 관련, “공청회 등 국민의견 수렴을 거쳐 문화헌장의 취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확산되면 문화헌장이 구체적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 마련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협찬노출 제한적 허용 추진

    문화관광부가 ‘간접 광고’ 논란을 빚고 있는 ‘협찬 노출’과 관련,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22일 “최근 서면답변서를 통해 이같은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심 의원에 따르면 문화부는 “협찬노출은 방송이 협찬주로부터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장소 등을 제공받고, 프로그램에 제공 물품 등을 노출시키는 것”이라며 “프로그램과 광고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 사실을 프로그램 전후에 고지 또는 명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TV 간접·중간광고 매체 균형발전 역행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가 방송광고 규제완화조치를 공식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신문협회는 17일 문화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방송광고 규제 완화정책에 대해 “균형감각을 상실한 편파적 정책”이라며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협회는 성명을 통해 “문화관광부가 매체 균형발전을 외면한 채 지상파 방송사에 가상·간접·중간광고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문화부가 추진 중인 정책은 다른 매체산업의 위축을 가속화해 언론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방송광고 정책은 언론·광고산업뿐 아니라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충분한 사회 공론화를 통해 다른 매체산업과 국민생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편파적 미디어 정책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금 부산에선] 韓流 원조 ‘조선통신사’ 200년만의 행차

    [지금 부산에선] 韓流 원조 ‘조선통신사’ 200년만의 행차

    17∼18세기 200여년간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첨병역할을 한 조선통신사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화려하게 부활한다. 특히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 남편을 따라 관부연락선을 타고 한국으로 온 일본인 처들의 모임인 부용회 회원들이 행사에 동참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통신사 학회의 출범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조선통신사’는 생소한 단어로 느껴졌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연구를 해오던 학자와 대학교수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단지 조선시대 일본에 문물을 전파했다는 단편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을 뿐 정확히 조선통신사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 등 학계 및 관계 전문가 19명이 지난 2002년 3월 조선통신사 행렬재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위원회는 이후 매년 일본과 국내 도시들을 순방하며 17세기 조선통신사 활동과 한국 전통공연 등을 소개해 왔다. 이후 행렬재현위원회는 조선통신사문화사업추진위원회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지난 3월 문화관광부로부터 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올해는 문화부와 부산시로부터 각각 5억원씩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행사 규모가 확대되고, 재현행렬 행사를 갖고 학술행사도 개최한다. 특히 지난달에는 조선통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조선통신사학회가 창립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학회는 그동안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통신사의 복원작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교류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하게 된다. 강 위원장은 “최근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일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학회는 의견을 같이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행사 올해는 한·일국교 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까지 부산 , 의성, 밀양, 서울과 일본의 쓰시마(對馬島), 시모노세키(下關) 등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라는 문화기행 행사는 지난 4일부터 국내와 일본 현지 등에서 8일까지 개최됐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조선시대 200여년간 한·일 문화 교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당시 조선통신사의 주요 행렬을 예술기행단이 답사하게 된다. 예술기행단은 조선통신사학회 소속 학자와 시인, 수필가, 극작가, 사진작가, 미술가, 국악인 등 예술가와 대학생, 일본의 언론인 및 미술가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국내와 일본 등지의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를 탐방해 사진촬영, 문예작품 창작, 현장 학술토론 등을 벌이게 되며 기행을 마친 뒤 기행문과 그림, 사진 등을 모아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특히 오는 19∼22일에 열리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가는 뱃길’ 행사와 9월8∼11일에 열리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오는 뱃길’ 행사인 ‘교류의 뱃길 100년’ 이벤트는 행사의 백미로 꼽힌다. 이 행사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의 뱃길이 열린 100주년을 짚어보는 이벤트로 가는 뱃길에는 일본인 부인들인 부용회 소속 할머니들이 동행한다. 오는 뱃길에는 시모노세키 민단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20∼21일 양일간 시모노세키 일원에서 열리는 ‘바칸마쓰리’ 행사에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과 조선통신사 복식 패션쇼 등이 열린다. 이에 앞서 8∼9일에는 일본 쓰시마에서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마쓰리’와 한·일 공연단의 예술공연이 이어져 현지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에는 1711년 조선통신사 정사였던 조태억의 9대 후손 조동호씨가 정사를 맡아 더욱 눈길을 끌었다. 조선통신사학회는 오는 9월6일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마련, 조선통신사 연구자인 일본 교토예술단기대학 나카오 히로시 명예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을 초청해 강연과 통신사와 문학, 회화, 음악 등에 대해 폭넓은 내용을 살펴볼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과기·문화부 과장급 맞교환

    과학기술부와 문화부는 과학ㆍ문화의 융합발전, 두 조직의 상호발전 등을 위해 업무 연관성이 있는 과장급 간부를 맞교환하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16일 밝혔다. 과장급 인사교류는 과기부의 배재웅 과학기술문화과장이 문화부의 문화기술인력과장으로, 문화부의 황준석 문화기술인력과장은 과기부의 과학기술문화과장으로 각각 자리를 바꿨다.
  • [여담여담] 초대받은 남편들/최광숙 문화부 차장

    얼마전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들과 한달에 한번 정도 얼굴 보는 모임이다. 모임의 이름은 ‘도토리’.4명의 멤버 모두 짤막짤막한 다리를 지니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약칭 ‘토리’ 모임이라고도 한다. 한 선배가 “쬐매한 여자들끼리 뭉친다.”는 자격지심을 토로한 이후 남들이 알지 못하게 ‘도’자를 살짝 빼서 ‘토리’라는 ‘우아한’ 모임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우리 ‘도토리’들은 찜질방에서 수다 떨며 건강 얘기를 하기도 하고, 인사동 밥집에서 두런두런 모여 앉아 세상사 돌아가는 얘기도 한다. 가끔 ‘도토리’모임에 남편들이 초대되기도 하는데 이날은 한 선배의 남편이 직장을 옮겨 신고식을 겸해 한턱을 내는 자리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편들이 한 수 더 떴다.“다들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고 바람을 잡더니 노래방으로 향했다. ‘도토리’ 멤버의 나이와 직업이 다양하듯 남편들도 각양각색이었지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잘 어울렸다. 노래방에서는 서로 마이크를 잡고 난리였다. 제일 연장자인 큰 형부는 신세대 가수의 곡까지 잘 소화하는 ‘가수’다. 법조인 출신의 작은 형부는 마이크 잡으면 평상시의 근엄함을 찾아볼 수 없다. 막둥이인 나의 남편은 ‘형님들’이 노래를 부르면 무대로 뛰쳐나가 탬버린을 흔들며 분위기를 살렸다. 마누라들의 모임에 초대된 남편들의 이런 진지한(?) 노력과 재롱(?)잔치에 우리 여인네들은 깔깔 웃으며 박수치고 격려했다. 모두들 마나님들이 흥겨운 자리가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못 보던 남편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보너스다. 다음날 남편에게 물어봤다.“어제 어땠느냐.”고.“남자들 모임에 가면 누가 돈 많이 버네, 어디 산 땅값이 올랐네, 자기는 무슨 일 하네, 잘난 체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것 없어 정말 편안하다.”고 답했다. 그동안 부부동반 모임하면 으레 남편들 모임에 부인들이 초대를 받는 자리였다. 공들인 화장에 예쁜 옷 차려 입고 나가 남편의 체면이나 세워주는 자리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부인의 모임에 남편들이 거꾸로 초대받는 자리가 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우리네 남편들은 이제 ‘노래방 외조’까지 기꺼이 하고 있다. 최광숙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 DJ, 文의장 사절…우리당에 ‘빗장’

    여권 인사의 잇따른 병문안과 화해제스처에 동교동은 아직도 앙금이 가지시 않은 표정이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측은 “현 정부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었다.”면서 DJ의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1일 재임기간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과 전윤철 감사원장, 그리고 안주섭 전 경호실장을 직접 만났다. 반면 이날 병문안 의사를 밝혀온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에게 당장 면회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져 ‘온도차’를 느끼게 했다.DJ의 최경환 비서관은 “어느날 갑자기 국민의 정부를 몰아쳐오고,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에서 (DJ가)마음이 좋으시겠느냐.”면서 DJ의 입원이 ‘홧병’임을 각인시켜줬다. ●호남민심 술렁… 민주당 고무 민주당은 최대한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모습이다.DJ입원으로 호남민심이 술렁이고 있는데 고무됐다. 청와대가 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는 음모론를 비판하고 나서자 정면으로 맞섰다. 유종필 대변인은 “민주당을 파괴하려는 기도에 대해 ‘지렁이도 꿈틀’하는 차원에서 저항하는 것”이라면서 ‘정당방위’임을 역설했다. ●DJ “문병고맙다는 말 대통령께 전해달라” 한편 입원 이틀째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는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안정과 치료가 중요하다는 병원측의 권유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비서진을 통해서만 방문객을 받았다. 오후 병실을 방문한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이어 일각에서 일고 있는 음모설을 강력부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직접 비서실장을 보내 설명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노 대통령께도 꼭 전해달라.”고 말했다. 대화 도중 김 비서실장이 “식사는 잘 하시냐.”고 묻자 DJ는 “잘못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외 최규하 전 대통령도 난을 전했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유승민 비서실장을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전날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자택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석 황장석기자 pjs@seoul.co.kr
  • [데스크시각] 경천사 10층석탑과 8·15 유감/김성호 문화부장

    우리나라 최초의 대리석탑으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석탑이 10년간의 이전·복원 작업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0개년 계획을 세워 의욕적으로 복원을 추진해와 마침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정밀실측과 보존처리, 레이저를 사용한 오염물 제거,3차원 정밀 스캔작업을 통해 제모습을 찾은 것으로 과학적인 문화재 복원처리의 중요사례로 높이 살 만하다. 경천사 10측석탑이 복원됨에 따라 오는 10월28일 용산에 개관할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사업중 하나가 마무리됐다. 박물관측이 이 석탑을 8·15 광복절을 앞두고 공개한 데는 나름대로 숨은 뜻이 있어 보인다. 일제에 의해 밀반출됐다가 환수된 대표적인 ‘수난 문화재’의 원형복원이란 점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석탑의 밀반출 사실을 폭로한 것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배설이었다.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에 의해 석탑이 해체되어 일본으로 밀반출된 사실을 ‘Korea Daily News’등에 폭로함으로써 국내 반환운동의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석탑은 1918년 반환돼 경복궁 회랑에 다시 들어섰지만 밀반출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돼 시멘트로 복원된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경천사 10층석탑이 외국 언론인의 관심과 민간 단체의 노력으로 반환됐다면 지난 6월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의 남북한 합의에 따라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요청해 반환될 것으로 보이는 북관대첩비 역시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되돌려받는 일제 약탈 문화재의 전형이랄 수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때 함경도 경성·길주에서 의병장 정문부가 왜군을 대파한 사실을 기념해 숙종35년에 세워진 전승기념비로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비석을 파내 일본으로 가져간 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다. 북관대첩비의 성격상 국내 반환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은 미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 우리 정부가 이 기념비의 반환을 놓고 보여준 방관적인 자세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경천사 10층석탑과 북관대첩비 말고도 일제에 의해 약탈된 우리 문화재는 부지기수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빼앗겨 일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줄잡아 3만∼4만 점에 달한다. 학계에서는 국보·보물급을 포함, 전세계에 유출된 문화재가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 정부 소유로 돼있는 1321점을 반환했으나 이후 좀처럼 추가 반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는 단순히 물질적인 결정체에 머물지 않고 한 민족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제는 민족 말살과 탄압 차원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정책적으로 대거 훼손, 강탈해간 측면이 짙다. 그래서 민간 주도로 반환된 경천사 10층석탑의 제모습이 살아난 것과, 북관대첩비 송환에 쏠리는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8·15를 전후해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의 이런저런 행사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광복절 당일인 15일에는 문화관광부, 행정자치부, 서울시가 경복궁∼숭례문 구간에서 기념행사를 제각각 마련한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도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광복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자고 하는 취지야 탓할 바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또 문화재청은 통영시 해저터널의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예고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존칭에서 유래한 ‘태합굴’(太閤堀)이란 가명칭을 붙여 빈축을 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서둘러 사과문을 내 새 명칭을 붙이겠다며 여론 진화에 나섰지만 그 ‘잔인하다고 할 만큼의 무신경’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문화재의 수난은 민족의 수난이다. 일회성의 생색내기 행사보다는 수난받은 문화재, 아니 수난받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본질적인 노력에 더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 8·15 광복절에는 경천사 10층석탑 복원과 북관대첩비 반환의 의미만이라도 곱씹어 볼 수 있었으면….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 마지막 망명객들 돌아온다

    마지막 망명객들 돌아온다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에 반체제 활동 등으로 입국이 불허돼 오던 해외인사 13명이 참가한다. 독일지역에서 반유신·반독재 운동을 벌인 이영빈·김순환 목사 부부와 프랑스에 거주하는 고 이응로 화백의 조카인 이희세 선생 등이 해외대표단 자격으로 고국을 찾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0일 “유럽과 일본, 캐나다 지역의 입국불허 인사 13명이 해외대표 자격으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거나 반정부단체로 규정된 범민련에서 활동하는 등 반체제 활동에 관련돼 입국을 하지 못했다. 이번 축전의 유럽대표단 단장을 맡게된 이희세(73·프랑스 도르돈 거주) 선생은 고 이응로 화백의 조카다. 이 선생은 큰아버지인 이 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화가의 꿈을 접었다. 모교인 홍익대 강사로 일하다 1964년 프랑스로 유학간 뒤 41년 만의 입국이다. 이 선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입국하는 것이)하도 오래 된 일이라 덤덤하다. 그러나 남북·해외동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통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가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 선생은 한국을 찾게 되면 마지막으로 살았던 서울 돈암동과 부모님이 묻힌 충남 예산을 찾아가 못다한 효도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영빈(79)·김순환(77) 부부는 지난 1955년 독일로 유학을 간 뒤 ‘민주사회건설회’(민건)와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기통회), 유럽 범민련 활동 등을 하며 반독재,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지난 1988년 고 문익환 목사의 초청으로 통일신학동지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입국불허자’라는 이유로 4시간 만에 공항에서 쫓겨나 사실상 정식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영빈 목사 부부는 지난달 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자택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그동안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 때문에 가고 싶어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면서 “이역만리 해외에서 남북통일을 위해 애써 왔던 삶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고국방문의 기대를 밝힌 바 있다. 그밖에도 전 범민련 유럽본부 의장을 지낸 최기환(76·스위스 거주) 선생과 전 재일한국학생동맹 문화부장을 지낸 이용(70·스웨덴 거주) 선생 등도 40∼50여년 만에 입국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수필가협회 조경희 이사장 별세

    수필가협회 조경희 이사장 별세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이 5일 오전 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87세. 1918년 인천시 강화읍 태생인 고인은 언론인 겸 수필가로 활동하며 여성계와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화여전 문과에 다니던 1938년 잡지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돼 등단한 그는 이듬해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어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부산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1980년 한국일보 부국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0여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71년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왔으며,1974년 창간한 계간 ‘수필문예’는 ‘한국수필’로 이름을 바꿔 현재 격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1979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지냈고 1984년 여성 문화인으로는 처음 예총 회장에 당선됐다. 1988년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정무 제2장관에 발탁돼 여성 권익 향상에도 힘썼다.13개 시·도 가정복지과장을 일제히 국장으로 승진 발령해 안팎의 화제를 모았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필요한 예산 500억원을 끌어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예술의전당 이사장,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모스크바 국제펜대회 한국 대표 등 최근까지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문화예술계에서의 다양한 업적에 힘입어 한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본상, 프랑스예술문학공로상, 은관문화훈장, 한국수필대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달 7일에는 올해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홍춘희(개인사업)씨, 딸 성미(미국 거주)씨, 손자 기두(해군대위)·기돈(대한항공)씨가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30분,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02)929-6699.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음악가 정율성을 아시나요

    중국 인민 해방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광주 출신 음악가 정율성(1914∼1976)을 기리는 음악제가 열린다. 5일 광주시 남구에 따르면 오는 11월11∼12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중국문화부 대외문화협력국과 공동으로 ‘제1회 광주 정율성 국제 음악제’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제는 고국에서 잊혀진 이름이 된 정율성을 부활시켜 한국과 중국간 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됐다.이번 행사는 정율성의 대표곡을 우리나라와 중국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합창단·광주시립교향악단·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소프라노 박선영·베이스 김명지·피아니스트 임미정 등이 참가한다. 중국에선 중국교향악단합창단과 지휘자 엄량곤(嚴良坤) 등 중국의 유명 음악인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또 그가 남긴 다양한 곡들이 연주되며 추모사진전과 학술대회 등 부대 행사도 열리게 된다. 남구는 음악제뿐 아니라 정율성의 생가(양림동)복원,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키로 했다.정율성은 ‘인민 해방가’외에도 중국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연안송’ 등 수많은 유명 노래를 작곡해 13억 중국인의 영혼을 사로잡은 인물이다.중국 국민의 80% 이상이 그의 노래를 한곡 이상 알고 있을 정도로 위대한 음악가인 동시에 항일투쟁가이자 혁명가로 추앙받고 있다. 1914년 8월13일 광주시 양림정(현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숭일소학교를 마치고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난징(南京), 상하이(上海) 등지를 전전하는 동안 크리노아에게서 작곡과 성악을 배웠다.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연안(延安)으로 옮긴 정율성은 루쉰예술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연안송’‘팔로군 대합창’ 등을 작곡해 발표했다. 특히 ‘팔로군 대합창’에 나오는 ‘팔로군 행진곡’은 1988년에 중국 인민해방군가로 정식 비준을 받았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오늘의 눈] 인터넷서점 판매순위의 허와 실/김미경 문화부 기자

    “선후배 여러분, 반드시 아래 알려드리는 인터넷서점 3군데 중 한곳에 들러 책을 구입하신 뒤 서평도 많이 달아주세요. 한턱 크게 내겠습니다.” 최근 생애 첫번째 책을 출간한 대학 후배가 인터넷카페에 띄운 글이다. 고생스럽게 쓴 책인 만큼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느 베스트셀러 작가 못지않다. 그러나 책을 내고 보니 인터넷서점 판매순위가 성패를 좌우한다며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은 출판담당 기자로서 씁쓸함을 느끼게 했다. 요즘 출판계는 인터넷서점에 의해 좌우되는 분위기다. 책을 쓴 작가들은 물론, 출판사와 독자 모두 인터넷서점 판매순위에 열을 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4∼5개의 대형 인터넷서점이 앞다퉈 기간별, 분야별, 연령별, 지역별 판매순위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 직접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실시간 출판정보를 얻는 상당수 독자들이 인터넷서점 판매순위와 네티즌들의 서평에 민감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면 ‘입소문’이 나서 순식간에 판매량이 급증한다는 것이 출판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저자와 출판사는 인터넷서점 판매에 주력하고, 인터넷서점에 서평을 쓰는 ‘아르바이트생’까지 쓴다는 웃지 못할 루머까지 나돈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경제서적을 펴낸 한 선배는 “인터넷서점에 서평이 많이 붙더니 주간 베스트셀러에서 종합 베스트셀러로 올라갔다.”면서 기뻐했다. 물론 인터넷서점이 출판계에 미친 긍정적인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 유통단계 단축에 따른 가격할인과 무료배송·멤버십카드·포인트제도 등 다양한 혜택으로 독자층 확대의 ‘1등 공신’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자칫 인터넷서점에 쏠린 관심이 판매시장의 독과점을 낳고, 잘못된 판매순위·서평 등 정보 왜곡으로 이어진다면 출판계의 양적 확대를 기뻐하기보다는 질적인 저하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기자의 이런 걱정에 오랫동안 출판계에 몸담아온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잣대를 갖고 책을 사라.”고. 좋은 책은 인터넷서점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언제나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불변의 진리를 잊지 말라고.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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