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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문화전당 설계변경 요구 봇물

    최근 발표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계 당선작을 둘러싸고 지역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예총 광주지부는 14일 “문화전당을 광주의 특성을 살린 아시아 대표 조형물로 기대했는데 여러가지 미비점이 노출됐다.”며 “건물 자체가 광주의 자랑거리로 세워지도록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시민 10만명 서명운동을 지속적으로 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예총은 이에 앞서 지난 12일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및 설계변경 요구 서명운동 1차분(8033명)을 청와대와 문화부·광주시 등에 제출했다. 예총은 이번 당선작이 친환경적이고 우수한 설계라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건축물만으로도 명소가 되는 세계 유명 건물에 비해 조형미가 떨어지고▲사람을 끌어 모으거나 도심활성화에 대한 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광태 광주시장도 이와 관련, “광주를 상징할 수 있는 랜드마크 기능을 갖추지 못해 시민들의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며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광주시의회 신이섭 의원은 최근 열린 예결특위 회의에서 “문화전당 설계 당선작이 광주를 상징할 만한 랜드마크로서, 세계적인 조형미를 갖춘 건축물이 되기를 기대했던 상당수 시민들이 실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문화부 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은 지난 2일 재미교포 건축가 우규승씨의 작품 ‘빛의 숲(Forest of light)’을 1등 당선작으로 발표했다. 이 작품은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인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분수대 등의 건물을 주 건물로 삼기 위해 나머지 건물을 대부분 지하로 넣고 지상은 공원화하도록 돼 있다. 문화중심도시조성추진기획단 관계자는 “이번 당선작의 기본틀을 벗어나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시민의견을 더 들어볼 계획”이라고 말해 실시설계 등 향후 건립 과정에서 약간의 변경 가능성을 암시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장윤정 노래하고 휴보 춤추고

    장윤정 노래하고 휴보 춤추고

    장윤정이 로봇과 함께 트로트를? 12일 저녁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선 한바탕 웃음 소리가 가득했다. 인기가수 장윤정이 자신의 히트곡인 ‘어머나’를 경쾌한 리듬으로 선보인 가운데 우리나라 로봇공학의 상징인 로봇 ‘휴보’가 춤을 추는 이색 진풍경을 선사한 것. 장윤정이 특유의 톡톡 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 데 이어 ‘로봇댄서 휴보’가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손과 팔 동작의 춤을 선보이자 관람객들도 힘찬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흥겨워했다. 이날 공연은 문화관광부와 과학기술부가 함께 마련한 ‘과학과 예술의 만남 2005’ 행사의 하나. 정동채 문화부 장관, 오명 과기부장관 등 문화·과학계 인사들과 초청을 받은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함께한 가운데 진행된 공연에선 장윤정과 ‘휴보’ 이외에도 과학마술사 정성모씨가 과학의 원리를 이용한 마술을 선보이는 한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KAIST 총장인 러플린 박사의 피아노 연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퓨전 국악 연주, 한국원자력연구소 클래식 기타동호회 ‘오르페우스’의 연주가 이어졌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이명박시장, 베스트드레서에

    ㈜모델라인(회장 이재연)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탤런트 한채영씨 등을 제22회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지난 1983년부터 모델라인이 시상하고 있는 이 상은 각 부문별로 한 해 동안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면서 탁월한 패션감각을 선보인 사람을 골라 시상한다. 특히 올해 수상자 선정은 디자이너 그룹, 언론계, 학생, 직장인 등 총 2만여명을 대상으로 온·오프 라인을 통해 설문과 투표를 통해 이뤄졌다. 정치부문 남성수상자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여성수상자는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이 뽑혔다. 영화배우 부문에서는 ‘광식이 동생 광태’ ‘청연’의 김주혁과 ‘귀신이 산다’의 장서희, 탤런트 부문에서는 ‘패션 70’s´의 천정명과 `쾌걸춘향´의 한채영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또 ▲가수부문 MC몽·아이비 ▲운동선수부문 이천수·김요한 ▲모델부문 데니스 오·현영·장윤주 ▲문화부문 이루마·전수경 등이 각각 올해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다. 패션쇼를 겸한 시상식은 이날 오후 6시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렸다.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길섶에서] 추어탕 가을/심재억 문화부 차장

    이 무렵 미꾸라지는 참 실했다. 누른 뱃구레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안 그래도 작은 눈이 살에 묻힐 지경이었다. 학교를 마친 오후, 삶은 고구마에 김치 가닥 걸쳐 대충 얼요기를 한 아이들은 뒤질세라 키만한 삽을 끌고 무논으로 향했다. 미꾸라지는 차진 흙 속에 깊이 숨어 있었지만 숨구멍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곳에 삽날을 지르면 어른 손가락만큼 굵은 미꾸라지가 꿈틀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코를 훌쩍이며 한 나절쯤 파면 주발을 얼추 반 이상 채웠다. 그렇게 한 사흘 잡아 모은 미꾸라지는 ‘기가 막히는’ 탕거리였다. 통소금 치고 거친 호박잎으로 문대 ‘꼽’을 빼낸 뒤, 고으고 걸러 우거지, 들깻가루 듬뿍 넣고 갖은 양념으로 끓여내면 ‘회가 동한다.’는 추어탕이 됐다. 여기에 맵싸한 산초라도 곁들이면 온 몸이 맛있는 열기로 들떠 초겨울 햇추위가 되레 시원하게 여겨지곤 했다. 어느 새 밤이 깊어 마당 짚섶은 개짖는 소리에 놀란 별빛이 하얀 서리로 쏟아져 내리고,“너는 공부 담 쌓고 미꾸라지만 잡아도 먹고 살겠다.”는 어머니의 농을 흘려 들으며 나는 가물가물 편한 졸음에 빠져 들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부고]

    ●류주영(전 서인천세무서 사무관)삼영(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과장)남영(서울 서부경찰서 경사)씨 부친상 황보협(전 청주 중앙초등학교 교사)황규호(전 서울신문 문화부장)김진호(사업)씨 빙부상 8일 수원 아주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31)219-6654●김용권(자영업)용성(전 한국통신공사)용준(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씨 부친상 임진혁(동연산업 대표)씨 빙부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410-6912●이동익(사업)동식(〃)동석(일진페이퍼 상무이사)씨 모친상 정섭(동양물산기업)씨 조모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010-2262●전훈배(미국 켄터키주립대 의대 외과교수)씨 부친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3 ●양용태(전 중앙대 의과대학장)씨 별세 희진(서울대보라매병원 신경외과 전문의)희수(DSPG 수석연구원)씨 부친상 김용환(LG전자 부장)씨 빙부상 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92-0699●김효걸(사업)효준(한빛의원 원장)효봉(현대증권 신촌지점 과장)씨 부친상 6일 경기도 일산시 주엽동 성당, 발인 9일 오전 9시 (031)918-6674 ●송평조(삼양하드웨어 회장)씨 별세 성환(삼양하드웨어 대표)지환(포천중문의대 교수)씨 부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410-6910●이윤석(두산 부장)씨 부친상 이재홍(공무원)이종규(동서울대 교수)김환영(메타컨설팅 대표)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 (02)3010-2233●안규상(서울시 교위 장학관)씨 별세 한종(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장)씨 부친상 조재용(한국일보 논설위원)씨 빙부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3010-2230
  • 대한민국 스포츠산업 대상 시상식

    박재호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8일 오후 6시 서울 삼성동 COEX 오디토리엄홀에서 정동채 문화부장관과‘2005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 시상식을 갖는다.
  • ‘아시아 문화 발전소’ 역할 기대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이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 문화 수도’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지 3년 만인 7일 첫삽을 떴다. 이번 문화전당 착공은 광주를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 구축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가 제시한 ‘충청 행정수도’‘부산 해양수도’ 조성 등 3대 사업 가운데 가장 먼저 착공식을 가졌다는 것도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업이 완수될 경우 광주는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축이자 ‘문화 발전소’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또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설 문화전당은 최근들어 급격히 침체된 구 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을 전망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개념을 도입한 문화전당은 시설이나 규모. 내용면에서 ‘종합 문화시설’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그러나 건물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 찾는 이가 없는 공간으로 전락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만만찮다. 이 지역 인구 분포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의 취약점도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문화전당 완공예정인 2010년까지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지금부터 해외 관램객 유치, 산업기반 확충, 외국과의 직항로 개설 등 관련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 유동인구를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법안’의 조속한 통과도 현안이다. 이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업 주체인 문화부와 광주시의 굳건한 협력관계 구축과 함께 지역 사회의 의견 수렴 창구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는 ‘특별법 제정’ 이후 100만평 규모의 문화산업단지 조성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예산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길섶에서] 송 감/ 심재억 문화부 차장

    “송감(松監)이 떴다.”는 소문에 마을이 온통 불난 호떡집이 됐다. 쉬쉬들 했지만 몸은 잽쌌다. 땔감용으로 잡아 놓은 소나무 밑둥은 두엄더미 속에 묻고, 간벌해 들인 솔가지는 짚단으로 덮어두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사립문을 걸어잠근 뒤 몸을 빼 집을 비웠다. 이윽고 송감이 마을로 들이닥쳤다. 배를 내밀고 거들먹거리던 송감은 막례네 집에 들어가더니 나무청 짚단 밑에 숨긴 퍼런 생솔을 여지없이 들춰냈다. 막례네는 이제 고구마 열 관 값보다 비싼 벌금을 물어야 할 것이다. 뒷산 어름에 모여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치는 아마 솔냄새라도 맡는 모양”이라거나 “산림보호하자고 굶어 죽자는 말이야.”라며 낭자하게 군소리를 쏟아냈으나 누구도 송감의 발길을 되돌릴 재주는 갖지 못했다. 옛적, 소나무 베어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직책을 송감이라고 했다. 의도야 틀린 게 없지만 한겨울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고는 살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난감했다. 연탄도 기름도 없어 오로지 나무로만 지지고 볶던 사람들은 그래서 송감이 떠나자 다시 지게를 지고 총총 솔숲으로들 들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길섶에서] 혼례, 옛날식/ 심재억 문화부 차장

    이웃 반금이 누나가 시집을 갑니다. 마당에 차일이 쳐지고, 부러 아이들을 두셋씩 데려다 잔칫집 마당에 풀어놓은 아낙들은 희희낙락 바지런을 떱니다. 신랑, 신부가 한 동네에서 자란 동무이니 보내는 서운함도 없습니다. 노인들은 “잘 키워 멀리 안 보내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며 기꺼워들 합니다. 사모관대 신랑과 연지곤지 신부가 나서자, 마당을 채우고도 모자라 아이들은 까맣게 토담 위에 올라 앉습니다. 처음 하는 결혼식, 엉거주춤 서투른 신랑을 두고 동무들은 “첨엔 다 그래. 다음엔 잘하겠지.”라며 키득거립니다. 드디어 신부를 태운 가마가 대문을 나서자 코를 문대 소매 끝이 반질거리는 아이들, 약속처럼 비켜서 길을 엽니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가마 앞을 막으면 징 맞고 동티 나 오래 못산다.”고 주절거립니다. 젊은 교꾼들은 “목이 말라 못가겠다.”는 너스레로 술을 청하고, 짧은 초겨울 해가 성큼 기울었습니다. 그 날, 가마 창 틈으로 반금이 누나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쳐 짓까불던 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하얀 한지 너울에 싸인 신부의 꽃다발 속 붉은 동백에 마치 속살이라도 데인 것처럼.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여담여담] 신춘문예 ‘샛별’을 기다리며/이순녀 문화부 기자

    최근 나온 계간 ‘대산문화’겨울호에서 재밌는 글을 읽었다. 소설가 조경란씨가 쓴 단상이다. 내용은 이렇다. 이번 학기에 일주일에 한번씩 대학에서 ‘소설쓰기’를 가르쳤는데 문학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각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더란다. 한국 소설은 물론이고 외국소설도 일본 소설을 빼곤 거의 읽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한 필자는 ‘그렇게들 안 읽고 어떻게 글을 쓰나, 어디 소설 한번 보자.’고 단단히 별렀다. 그런데 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들이 제출한 소설을 읽고 깜짝 놀랐단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글을 보면서 ‘책을 읽으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했다는 일화다. 출판 시장, 그중에서도 문학 분야의 독자 감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소설의 쇠퇴는 심각하다. 오죽하면 문화예술위원회가 침체된 한국 문학을 회생시키겠다며 올 들어 분기마다 우수문학도서와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을 선정해 지원할까 싶다. 단적으로 지난달 넷째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소설은 ‘해리포터와 혼혈왕자’(1위),‘도쿄 타워’(4위),‘모모’(8위)등 모두 번역소설이다. 그런데 앞서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렇게 소설을 읽지 않는 세대인데도 신기하게 재능있는 작가들은 해마다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1980년생 김애란과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1981년생 안보윤이 대표적이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신인작가들은 한국 소설을 읽지 않는 또래집단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문학 관계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아는 구문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낸 까닭은 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와서다. 독서량은 적어도 개성이 강한 글을 쓸 줄 아는 20대 문학지망생부터 열정만은 이들 못지않은 늦깎이 ‘문학청년’들까지 단체로 열병을 앓는 달이다. 문학이 죽네사네 해도 매년 신문사에 투고되는 작품 수에 크게 변화가 없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신춘문예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좋은 작가들이 새벽 하늘을 밝히는 샛별처럼 새해 첫날 각 일간지를 장식하길 기대해 본다. 이순녀 문화부 기자 coral@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첨단문명의 혜택으로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가볍고, 사변적이고, 공격적인 글이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할수록 치열한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옹골진 시어와 문장이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입니다. 문학의 영원한 가치와 예비 문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응원해 온 서울신문이 2006년도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 모집은 단편소설·시·희곡·문학평론·시조·동화 등 6개 부문이며, 문단의 권위와 공정성을 인정받는 전문가들이 부문별 심사를 맡습니다. 우리 문학의 미래를 이끌 역량있는 신인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 공모 부문 및 고료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시조(3편 이상) 200만원 ●동화(30장 안팎) 150만원 ※장 수는 200자 원고지 기준 ■ 마감 2005년12월9일(당일 소인까지 유효) ■ 당선작 발표 2006년1월1일자 서울신문 지면 ■ 보낼 곳 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1가25 서울신문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인터넷 접수 불가) ■ 유의사항 -원고 겉장에 본명(필명일 경우),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 번호) 등을 명기할 것. -우송할 때는 겉봉에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표기할 것. -원고는 원고지 혹은 A4용지. -타사에 중복 응모했거나 표절 사실이 확인되면 당선을 취소함. -응모작품은 반환하지 않음. ■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02)2000-9192∼5.
  • [길섶에서] 호미 연가/심재억 문화부 차장

    호미는 험한 세상, 힘겹게 살았던 모든 어머니들의 흔적입니다. 삽과 괭이가 남정네들의 연모라면 호미와 바늘 등속은 여인네들의 그것이었으니까요. 검댕이 수북 쌓인 부엌 나무창살에 걸린 호미의 닳은 손잡이는 금방이라도 퍼런 도깨비불이 일렁일 듯 어머니의 인(燐)으로 반질거렸습니다. 한 날, 대장간에서 막 벼린 새 호미를 사오신 어머니, 마루에 걸터앉아 혼잣말을 하십니다.“이걸로 또 얼마나 땅을 파야 할꼬.”어린 제게도 그 모습이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었는데, 문득 강아지 귀때기처럼 닳은 헌 호미가 눈에 듭니다. 손바닥만한 새 호미날, 저걸로 맨땅을 얼마나 파고 긁어야 꽝꽝한 무쇠가 저리 졸아들까요? 새 호미를 거머쥔 어머니는 서둘러 밭으로 나서고, 어린 아들은 그의 지친 생애 한 구석에 뎅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 옛집에서 문득 그 닳아빠진 호미와 마주치고는 목이 잠겨 한동안 말을 잊습니다. 발갛게 녹이 슬어 뒹구는 그 호미날에 ‘사는 게 고행’이라던 어머니의 잔상이 어리고, 그 어머니가 차마 가져가지 못한 동통(疼痛)이 새삼 제 허리께로 울려 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길섶에서] 고자나무/심재억 문화부 차장

    사람들은 그 은행나무를 ‘고자나무’라고 빈정댔다. 나이가 ‘틀림없이 삼백살은 넘었고, 어쩌면 오백살도 됐을 것’이라는 그 나무는 교동리 향교 담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여름에는 너른 그늘을 드리워 쉼터를 만들어 줬고, 가을엔 온통 샛노란 단풍이 눈길을 모았다. 풍채도 위풍당당한 거목이었다. 이런 나무를 ‘고자나무’라고 부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은행나무는 수컷이었다. 주변에 암나무가 없으니 풍채는 당당했지만 과실이 열리지 않았다. 이 가을에 그 나무를 바라보노라면 거느린 식솔 없는 ‘홀’의 궁상이 뚝뚝 묻어나는 듯했다. 예전, 고집 센 향교의 교수(敎授) 한 분이 그랬단다.“여기가 어디라고 은행나문들 암컷을 심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들 말게.” 가끔 그 길을 지나다 보면 아직도 홀로 선 이 나무가 무척 추레하게 여겨졌다. 가을에는 그런 생각이 더했다. 맨땅에 노란 단풍을 떨궈 샛노란 자리를 깔고는 빈 가지로 돌아가는 모습이 허허롭기 짝이 없었다. 소싯적, 그 은행나무에 대한 아버지의 품평은 이랬다.“봐라. 저 장골(壯骨)나무도 짝 없으니 영락없는 말뚝 아니냐.”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발레유학 벨로루시로 오세요”

    |민스크(벨로루시) 박상숙특파원| “우리나라는 세계 수준의 음악대학원과 국립발레학교가 있습니다. 이곳에 많은 한국 학생들을 유치하고 싶습니다.”체르노빌 원전참사의 최대 피해지로 알려진 벨로루시는 이제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정립하고자 노력 중이다. 최근 벨로루시 수도 민스크 중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만난 레오니트 굴리아카 문화부 장관은 예술·교육분야에서 한국과 교류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라며 이같이 운을 뗐다. 1992년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뒤 양국의 교역은 날로 증가해왔지만 국가적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인지도 제고를 위해서 문화 교류가 가장 주효하다. 몇년 전부터 벨로루시 국립발레단의 내한공연이 지방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한다. 벨로루시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볼쇼이, 키로프 발레단과 더불어 구 소련 3대 발레단으로 통한다.얼마 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김수진씨가 이 발레단에 정식 오디션을 거쳐 최초로 입단, 화제가 되기도 했다.또한 올해 7월 한국의 포천시와 벨로루시의 모길로프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양국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벨로루시 국립발레단은 올 연말 처음으로 서울 공연을 연다. 그는 발레단의 인지도가 낮은 데 대해 “그동안 홍보에 소극적이었다.”면서 “이번 서울 공연 때는 많은 정보를 담은 책자와 팸플릿을 싸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벨로루시 국립발레대학 졸업생의 80∼90%가 발레단에 입단하며,15년 동안 40개국에서 순회공연을 펼쳐 호평을 받은 베테랑팀”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숱한 외침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적 경험과 전쟁을 딛고 발전을 이룬 것, 온화한 성품의 민족성을 두 나라의 공통점으로 들면서 문화교류 사업에 대해 낙관했다.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벨로루시 정부의 지원을 묻는 질문에 가장 반색했는데 “헌법으로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이 명시돼 있다.”며 “민스크시 안에 있는 정규 극장 9개를 모두 국가에서 운영한다. 입장료의 75%를 국가에서 지원하므로 양질의 공연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국영 정규 극장은 전국에 28개가 산재해 있으며, 개인 소유의 극장이라도 해외예술제에 나가 상을 받으면 국가가 반드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년 전 체조협회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한국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다는 그는 “한국의 전통 석탑, 도자기, 불상 등을 보고 느꼈던 감동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alex@seoul.co.kr
  • 정상명 검찰총장후보 청문회…與 호된 질타 野 무딘 추궁

    정상명 검찰총장후보 청문회…與 호된 질타 野 무딘 추궁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상명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첫날 여야 청문위원들은 날선 질문으로 후보자의 직무능력과 자질, 도덕성을 검증했다. 화두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좁혀지면서 김대중(DJ) 정부 시절의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이 구속된 ‘민감한’ 현안도 부각됐다. 열린우리당은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정 후보자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반면, 한나라당은 천정배 장관의 수사지휘권 논란을 강조하며 은근히 검찰을 두둔해 대조를 이뤘다. 첫 질의에 나선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은 X파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그는 “도청은 YS(김영삼 전 대통령)때 더 많이 했는데 왜 DJ의 국정원장만 구속시켰느냐.”고 쏘아붙였다. 같은 당 우윤근 의원은 “아무 고민도 없이 무조건 구속하라는 식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느냐.”고 호통쳤다. 국회 정보위 소속이기도 한 최재천 의원은 “수사를 하려면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하거나 최소한 통신비밀보호법 제정(1993년) 이후부터는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일부분만 똑 떼어내 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용규 의원은 “DJ정부에서 문화부장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씨만 봐도 (구속 수사를 받았지만)결국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됐다.”면서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어떻게 이런 사유로 기소할 수 있느냐.’고 했다.”는 논리로 검찰을 싸잡아 비난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 후보자는 “두 분을 구속하면 국민의 정부 시절 실질적인 인권신장과 IMF 극복 등의 성과가 가려지지 않을까 고심했지만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부분은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YS때의 불법 도청은)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역사적, 도덕적 평가는 시효가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말해 여운을 남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이 “아무리 도둑을 잡는 것이 좋다고 해도 무조건 아주 옛날 도둑까지 다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바로 이 때문에 공소시효가 필요한 것”이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같은당 김재경·장윤석 의원 등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게 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가리켜 “법에 위배되지는 않지만 정당하진 않았다.”“오히려 검찰의 중립성을 해쳤다.”며 검찰을 두둔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오늘의 눈] ‘국보 1호 유지’ 결정에 바란다/김미경 문화부 기자

    국보 1호(숭례문) 재지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문화재위원회의 ‘국보 1호 유지’ 결정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10년 전에도 ‘일제 잔재 청산’ 등을 이유로 국보 1호 교체 논의가 있었던 만큼 이 문제는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 불거진 과정을 살펴보면 1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감사원이 최근 문화재 관리실태를 조사하던 중 국보 1호 재지정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결국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교체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옆구리 찔려’ 할 수 없이 ‘1호 정도는 바꿀 수 있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판단은 냉철했다. 국내 최고 문화재 전문가들이 모인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분과위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오히려 문화재 지정번호가 국보의 서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번호에 불과하며, 국보로서 숭례문이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역사적인 의미까지 강조하고 나섰다. 이로써 1955년 당시 문교부 문화국에 의해 국보 1호로 지정된, 복층 구조의 아름다운 우리 건축물인 숭례문에 드리워진 일제 잔재의 그늘을 걷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193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 1호로 지정됐을 때나,1955년 우리 정부가 국보 1호로 지정했을 때도 숭례문은 ‘서울지역’의 ‘건조물’이라는 이유로 1호가 됐을 뿐, 다른 국보들과 서열을 겨룬 것은 아니었다. 문화재위원회는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한 가지 단서조항을 달았다. 문화재청이 준비하고 있는 지정문화재 분류·관리체계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안이 마련되면 이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 국보 1호 교체 가능성을 언급했던 유 청장은 서둘러 “개선안에 문화재 지정번호를 관리번호로 바꾸는 방안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국보 1호 숭례문’이 일본·영국 등과 같이 번호가 행정상 관리용으로만 분류될 뿐, 지칭·표기 시에는 ‘대한민국 국보 숭례문’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지정번호를 없애는 것에 찬성하는 만큼, 문화재청의 개선안에 쏠리는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유 청장이 공언한 ‘2∼3개월의 준비기간’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더 이상 국보 1호 교체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된 개선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지정번호 삭제로 인한 부작용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김미경 문화부 기자 chaplin7@seoul.co.kr
  • [데스크시각] 선생님에 대한 두 가지 기억/임창용 문화부 차장

    교원평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 기억. 올 2월 딸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날 일이다. 운동장에서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담임선생님과 아이들, 학부모들이 교실에 들어왔다. 30대 초반쯤 된 그 여선생님은 “부모님들께선 잠시 나가주세요.”라고 하더니 문을 닫고 TV를 켰다. 화면엔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했던 1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풍 가서 게임을 즐기던 모습에서부터 발표하는 모습, 운동회 때 젖먹던 힘을 다해 뛰는 모습, 수업 중 조는 모습까지. 선생님은 이 날을 위해 틈틈이 찍어놓았던 사진을 비디오로 편집해 두었다고 했다. 한 장면 한 장면 넘어갈 때마다 아이들은 때로는 웃고, 때로는 생각에 잠기는가 하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이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나서야 선생님은 아이들을 불러내 졸업장을 주었다. 한 사람씩 꼬옥 안아주면서. 키가 선생님보다 큰 남자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눈가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는 지금도 주말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그 선생님을 찾아가 수다를 떤다. 두번째 기억.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다. 그 졸업식 며칠 전 날 밤. 퇴근해 보니 5학년이었던 아들이 졸업식에서 ‘송사’를 읽기로 했다며 내일까지 원고를 내야 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자기가 전교 부회장이어서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아이와 함께 머리를 짜내 새벽 1시까지 원고를 완성했다. 한데 그 다음날 사단이 났다. 퇴근 후 집에 가보니 아이는 기운이 쫙 빠져 있었고, 눈엔 불만이 가득했다.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학교 방침이 올해부터 바뀌어 다른 아이가 송사를 읽기로 했단다. 졸업식 날, 송사를 읽은 아이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맡고 있는 학부모의 아이였다. 그 선생님은 이미 학기 초부터 다른 일로 골머리를 앓게 했었다.3월 한 달 동안 하루 걸러 한 시간씩 책상 위에 무릎을 꿇려 단체기합을 주는가 하면 자신은 그 시간에 잡무를 처리했다. 또 자습을 가장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지금 6학년인 아들은 어쩌다 학교에서 그 선생님이 보이면 멀찌감치서 돌아간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선생님이란 위치는 여전히 특별한 자리다. 간혹 못된 학부모로부터 행패를 당하는 선생님 이야기가 뉴스에 오르내리며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개탄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대다수의 학부모에게 선생님은 속된 말로 여전히 ‘갑’의 존재다. 나는 아직 우리 교단에 딸 아이를 맡았던 분 같은 선생님들이 아들 담임이었던 분을 닮은 선생님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원 평가는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요즘 피부로 느낀다. 직장에서든, 친구들과 만나든, 조용히 이야기하다가도 학교 이야기, 자녀와 선생님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그 상당 부분은 선생님을 ‘성토’하는 소리다. 지금 전교조가 필사적으로 교원평가를 저지하려고 한다. 교원 통제 수단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논리를 주장하기엔 아무런 평가도 받지 않는 선생님들께 아이를 맡길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너무 크다. 전교조가 내걸고 있는 가장 큰 모토는 참교육이다. 그래서 군사정권 시절, 학교·선생님·학생들을 옥죄고 있던 악습을 깨자며 힘을 모았고, 그 와중에 많은 선생님들이 해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나는 차라리 전교조가 교원 평가를 적극 수용하고, 오히려 이끌어나감으로써 참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아부나 일삼고 전인교육을 방해하는 교사들,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교사들, 수업 알기를 아이들 간식쯤으로 여기는 교사들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드는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 교원을 통제하려는 불순한 의도는 그와 더불어 퇴치해나가도 늦지 않다. 임창용 문화부 차장 sdragon@seoul.co.kr
  • 이어령 전 장관 초청 VIP포럼

    건국대 총동문회(회장 김태경 KT건설 회장)는 16일 오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초청,‘한류, 아시아문화, 우리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건국VIP포럼을 연다.
  • 일간지 제호 쓴 명필은 누구냐

    일간지 제호 쓴 명필은 누구냐

    신문의 제호(題號)는 바로 그 신문의 얼굴이다. 독자는 자기가 선택한 제호에 모든 신뢰를 걸고 하루의「뉴스」를 읽게 되는 것. 그럼 신문의 얼굴인 그 제호들은 누가 썼을까? 당대의 명필들의 글씨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몇 십 년 제호에 익숙한 독자라도 그 글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거의 모른다. 연륜이 오래된 신문사인 경우 그 신문사의 사장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게 바로 제자(題字)를 쓴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처럼「베일」속에 감추어 있는 글씨의 주인공들은 과연 누구일까? 오는 7일은 제13회 신문의 날 - 아득히 잊혀진 제자의 주인공들을 찾아가보자. 현재 서울에서 발간되는 전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일간지는 모두 8개. 이중 대한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의 3개지가 한글제자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아일보가 한문제자를 쓰고 있다. 글씨체는 거의가 궁체 아니면 예서(隷書). 광범위한 독자층을 상대로 하다 보니 알기 쉽고 눈에 잘 띄는 체를 골라 쓰게 된 것이다. 제자 뒷배경으로 쓰인 무늬로는 한반도가 들어간 것이 동아일보, 대한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5개지, 무궁화를 무늬로 넣은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2개지, 횡선(橫線)을 사용한 신문이 대한일보, 서울신문, 신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의 5개지이며, 경향신문만은 아무런 무늬 없이 흰 배경이다. 신아일보는 횡선뿐. 횡선에 한반도를 넣은 신문이 대한, 조선, 서울, 한국 등 4개지로 제일 많고, 동아, 중앙이 무궁화무늬다. 제호는 한반도와 무궁화와 횡선을 가장 좋아하는 모양. 제자를 쓴 사람들은 모두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분들로 역사가 오랜 동아, 조선은 이미 고인이 된 김돈희(金敦熙)씨, 오세창(吳世昌)씨가, 그리고 해방 후의 신문제자는 주로 김충현(金忠顯)씨, 안종원(安鐘元)씨, 이철경(李喆卿)씨 등이 많이 썼다. [조선일보(朝鮮日報)] 위창(葦?) 오세창(吳世昌)씨의 글씨다. 1920년 창간 당시 방응모(方應模) 사장이 직접 오세창씨를 찾아 부탁, 아무런 보수 없이 써준 것이다. 하루는 소전(素?) 손재형(孫在馨)씨가 위창댁을 찾아가니 4, 5개의 제자를 놓고『어느 것이 좋은가 골라 내라』고 하여 소전이『이왕이면 다 신문사로 보내시지요』하였더니 위창은『그러면 신문기자들이 보나마나 이것저것 좋은 글자 골라서 오려 쓸 터이니 안된다』하면서 하나를 골라 보겠다고. 그 후 야간 개칠이 되어 현재까지 쓰여지고 있다. 창간 당시 관여했던 인사들이 모두 작고(作故)하거나 납북되어 신문사 자체기록엔 제자를 누가 썼는지 밝혀져 있지 않고 심지어 몇 십 년을 근속한 고위간부 되는 분도 모르고 있는 실정. 해방 후 신문판형이 바뀌거나 단수(段數)가 조정될 때마다 그 크기는 바뀌었으나 글씨는 여전히 오세창씨의 것. [경향신문(京鄕新聞)] 1946년 10월 창간 당시 편집국장이던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씨가 당대의 명필 안종원(安鐘元)씨에게 부탁, 제자를 받아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경향(京鄕)」은 원래 교황청 기관지인「우르비·엣·오르비」의 의역(意譯)으로 초대사장인 양기섭(梁基涉) 신부가 정한 것. 창간 당시부터 현재처럼 무늬없이「京鄕新聞」의 네 글자만 박아 넣어 쓰다가 4·19 이후 이준구(李俊九)씨가 사장이던 한때 볏잎 무늬를 넣어 썼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창간 당시로 되돌려 현재와 같이 무늬 없이 쓰고 있다. 개칠을 너무 많이 해서 제자의 원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에 최근 창간 당시의 신문에서 제자를 복사해서 원래의 모양을 다시 찾았다. 창간 당시 관여했던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의 글에 의하면 제자를 오세창씨가 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소전 손재형씨는 안종원 오세창 양씨에게 부탁, 안씨의 것을 썼다고 한다. [서울신문] 우리나라에서 한글제호를 제일 먼저 쓰기 시작한 게 바로「서울신문」이다. 그러나 제호의 운명은 무척 기구해 역대 고위간부가 바뀔 때마다 제호의 글씨와 모양도 바뀌어 왔다. 그 동안 김충현(金忠顯)씨 등 수많은 명필들이「서울신문」이란 제호를 써왔다. 그러다가 1966년 7월 8일자부터 한글 궁체의 제1인자로 알려진 이철경(李喆卿)여사의 정성 어린 글씨를 받아 오늘날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지금 쓰이고 있는 글씨는 1점 1획의 수정이나 가필 없는「텍스트」그대로이다. 장태화(張太和)사장을 비롯한 간부진은 제자에 여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문화부 기자는 거의 열흘 동안 딴 일은 못하고 이철경여사와 제자에만 매달렸다는「에피소드」도. 이여사는「서울판」「전남판」하는 10개 지방판의 제호 글씨도 또한 썼다. [한국일보(韓國日報)] 「태양신문(太陽新聞)」을 인수, 약 20일 그대로「태양신문」제호를 사용하다 창간한 해인 54년 6월 9일자부터「한국일보(韓國日報)」로 개칭. 약 1년간「韓國日報」로 그대로 쓰다가「한국일보」로 한글로 바꾸면서 독자들에게 제자를 공모했다. 현재 쓰고 있는「한국일보」의 제자는 바로 이 현상모집에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현상응모서 당선된 사람의 이름은 확인할 길이 없다.(동사(同社) 조사부 보관사사(保管社史)나 사고(社告)철에 남아 있지 않음) 어쨌든 이 현상 당선된 제자를 사장인 장기영(張基榮)씨가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씨에게 들고가 신문에 어울리게 가필한 것이 오늘날 한국일보의 제자다. 자매지인「주간(週間)한국」은 제자는 창간 당시 김기승씨에게 씌운 것을 오늘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동아일보(東亞日報)] 조선일보보다 창간이 약간 늦은「동아」는 원래 설립자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씨가 朝鮮日報로 제호를 내정했다가 조선일보에 빼앗기는 통에「동아(東亞)」를 채택, 전 동남아를 상대로 한 신문을 만들겠다고 기염이 대단했단다. 글씨는 인촌이 직접 당대의 명필인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선생(작고)에게 부탁, 몇 차례 왔다갔다한 끝에 현재까지 쓰고 있는 글씨로 결정되었다. 김돈희선생의 수제자인 소전 손재형씨의 말을 따르면 김돈희선생은『근대 한국의 제1의 명필』이었다고. 김돈희선생이「東亞日報」의 넉 자를 일부러 멋을 살려 좀 삐뚜름히 썼더니 신문사측에선「곤란하다」고 난색을 보여 5, 6회 다시 썼다고 한다. 인촌선생은 김돈희선생의 글을 받았다고 좋아하는가 하면 김돈희선생은「동아」의 제자가 자기 글씨라 서로 좋아하기도. [중앙일보(中央日報)] 65년 9월 22일 창간 두어 달 전부터 김충현씨에게 부탁 받아 썼다. 당시 삼성(三星)의 모비서가 10여 차례 돈화문 앞 김충현씨가 차린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를 드나들며 몇 차례 받아갔다가 다시 쓰고 한 무척 힘이 든 글씨다. 마지막 김충현씨가 써준 5개의「中央日報」제자 중 몇 개에서 집자(集字)해 썼을 것이라는 게 김충현씨의 의견. 김충현씨는「중앙일보」제자 외에 2개의 휘호(揮毫)를 창간 축하인사로 써주었는데 중앙일보측에선 양복감 한 벌과 10만원을 사례로 보내왔다고. 창간 당시부터 동아일보에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온 동사에서는 제호의 무늬도 동아일보가 쓰고 있는 무궁화무늬를 쓰기로 결정. 동아일보가 무궁화에 둘러싸인 한반도를 그려 넣은 대신 중앙일보는 무궁화무늬만을 넣고 한가운데 한반도 모양의 흰 공백을 두고 있다. [대한일보] 1960년 10월 19일「평화신문(平和新聞)」을 그대로 이어받아 4개월간 쓰다가 61년 2월「대한일보(大韓日報)」로 게재하면서 김충현(金忠顯)씨에게 제자를 부탁, 계속 써왔다. 그러다가 66년 8월, 한글로 바꾸면서 한글 궁체의 1인자 이철경여사에게 글씨를 받아왔으나 획이 섬세하고 가늘다 해서 동사 사장인 김연준(金連俊)씨가 가필(加筆), 획을 굵게 고쳐서 썼다. 그러니까 이철경씨의 글씨도 아니고 김연준씨의 글씨도 아닌 제호를 약 6개월간 써오다가 동사 전무이며 한글학회이사인 한갑수(韓甲洙)씨가 쓴 것이 오늘날 쓰고 있는 제호이다. 한갑수씨의 경우도 5, 6회 글씨를 써서 직접 동판을 떠서 인쇄해 보고 효과가 좋지 않으면 다시 쓰곤 했다. 그러니까 외부인사 아닌 사내 식구에게서 제자를 받아 쓰고 있는 것은「대한일보」단 하나뿐. [신아일보(新亞日報)] 너무 갑자기 창간준비를 서두르다 보니 제자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단다. 장기봉(張基鳳)사장과 평소 교분이 두터운「아마추어」서예가 이(李)모교수가 장사장의 청탁을 받고 써준 것이 창간 당시 신아일보가 쓰던 것. 65년 5월 6일 창간 후 약 한 달 동안 이 글씨를 그대로 써오다가 너무 획이 약해 얼핏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하여 당시 동사 조사부 차장이던 장상섭(張相燮)씨(현재 문화부 차장)가 이교수의 글씨를 더 굵게 가필한 것이 지금 쓰이는 신아일보의 제자 바로 그것이다. 장상섭씨는 기자이면서 한때 교편을 잡은 바 있어 도안(圖案)엔「프로」급 이상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신아일보 제자는 이모교수와 장상섭씨가 합작해 만들어 놓은 셈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4/6 제2권 14호 통권 제28호 ]
  • [어떻게 지내세요] 베이징서 회고록 펴낸 박세직 前 올림픽 조직위원장

    [어떻게 지내세요] 베이징서 회고록 펴낸 박세직 前 올림픽 조직위원장

    “요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김치파동으로 다소 껄끄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리 환경적으로 볼 때 두 나라는 순치관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서로 관계개선이 필요하지요.” 박세직(72·육사 12기) 전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국가안전기획부장(1988년)과 서울시장(90년) 등을 거쳐 14·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국제환경노동문화원 이사장과 육사 총동창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마을’ 총재,‘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와 ‘2080CEO포럼’(대표 박봉규)에서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우호의 밤’ 행사에 참석한 뒤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지난 90년에 발간된 자신의 저서 ‘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의 중국어판 ‘나는 서울 올림픽을 이렇게 기획했다’의 출간 기념식도 가졌다. 아울러 그동안 애지중지 보관해왔던 서울올림픽 성화봉 전달식도 가져 관심을 모았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박씨를 만났다. 양복 상의 왼쪽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달고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오래전부터 항상 태극기 배지를 다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라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열심히 애국운동을 벌어야 하지 않느냐.”며 웃는다. 이어 중국에 다녀온 것과 관련,“최근 김치문제로 양국은 똑같이 망신당한 셈이 됐다. 하지만 좋든 나쁘든 양국은 늘 관계개선을 통해 서로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한·중 우호의 밤’ 행사도 그런 취지에서 열렸고 중국측 역시 많은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고 부연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살려 다음달 8일 서울에서 ‘한·중 우호의 밤’ 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가 중국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83년 5월5일. 춘천 인근에서 발생한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때였다. 당시 안기부 해외담당 2차장으로 기체와 승무원 등의 신속한 송환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측 관계자들과 가깝게 접촉하면서 인간적 환대를 받기도 했다. 이후 86년 서울 아시안게임때 중국이 참가하면서 양국간 교류로 이어졌고, 결국 88년 서울올림픽때 구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참여해 동서 냉전을 해소하는 기폭제가 됐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한반도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아울러 서울평화상을 제정하게 됐지요. 또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때 당시 강영훈 총리에게 건의해 팩스와 자동차를 제공하는 등 민간외교에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는 한·중 교류뿐만 아니라 ‘한·일 기독교문화협의회’‘한·미 우호협회’‘한·미 군사연구회’ 등에서 고문직을 맡아 친선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한동네(서울 평창동)에 사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금진호 전 상공부장관 등과 ‘평창이웃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고 하자 “동네 단골 목욕탕에서 헬스와 요가, 맨손체조 등을 즐긴다.”고 대답했다. 요즘들어 차기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2006년 4월)에 나가라는 주위 권유가 많아 심사숙고 중이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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