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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 특집기획호

    서평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 특집기획호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3월 정식 출간을 앞두고 특집 기획호를 발간했다. 잡지는 ‘뉴욕리뷰오브북스’, ‘런던리뷰오브북스’ 등 고급 서평 전문지를 모델로 한다. 강예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 사회학, 경제학, 자연과학, 인문학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3명의 편집위원이 참여한다. 앞서 진행한 펀딩에서 2주 만에 목표액의 971%를 달성해 화제가 됐다. 최근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ISSUE RE-VIEW’와 주제에 구애받지 않는 ‘RE-VIEW’로 구성했다. 여기에 소설과 에세이를 수록한 ‘LITERATURE’로 별책으로 따라온다. 특집 기획호 주제는 ‘2020: 이미 와 버린 미래’다. 김준혁 소아치과 전문의가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푸른역사)를 중심으로 감염병의 역사를 고찰하고, 공포를 이용해 누가 이득을 얻는지 질문을 던진다. 홍성욱 과학기술학자는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생각의힘),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돌베개) 등 코로나19 관련 서적을 돌아보며 팬데믹 사회를 성찰한다. 건축가 강예린이 ‘정크스페이스’(문학과지성사), ‘짓기와 거주하기’(김영사) 등으로 팬데믹과 공간을 이어본다. ‘RE-VIEW’에서는 특정 주제가 아닌 전문가들의 문제의식을 모았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HBO에서 방영한 드라마 ‘체르노빌’로 참사의 흔적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묻는다. 별책부록 ‘LITERATURE’에서는 김영민 교수의 신작 소설 ‘먹물누아르’를 비롯해 김초엽 작가 단편, 김혼비·박솔뫼 작가 에세이 등을 수록했다. 잡지 측은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창간한다”고 소개하고 “좋은 책을 발굴하기 위한 사유의 장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짧은 소설, 에세이 등 다채로운 글을 수록해 다양성과 재미 역시 놓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물방울 외길 인생 50여년… 하늘로 떠난 김창열 화백

    물방울 외길 인생 50여년… 하늘로 떠난 김창열 화백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92세.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6세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1948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1957년 작가들과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해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 운동을 이끌었다. 김창열은 일찍 국제무대로 눈을 돌렸다.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에, 1965년 제8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했고, 1966년부터 4년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판화를 전공했다. 1969년 백남준의 도움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것을 계기로 뉴욕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고, 평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 마르틴 질롱을 만났다. 고인을 대표하는 작업인 ‘물방울 회화’는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 메’에서 처음 선보였다.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담은 물방울 그림은 예술성과 대중성 면에서 극찬을 받으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들게 했다. 1976년 갤러리현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물방울 그림을 공개할 당시 개막 전에 출품작이 모두 팔리는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2009년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온 이후에도 물방울 그림에 매진했다. 고인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1996),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13),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2017)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사마모토젠조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등에 고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고인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2016년 개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마르틴,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며느리 김지인·캐서린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 발인은 7일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놀(LOL)면서 공부하고 과몰입 해소… ‘1석 3조’ 온라인 게임학교

    놀(LOL)면서 공부하고 과몰입 해소… ‘1석 3조’ 온라인 게임학교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는 152가지 챔피언(캐릭터)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약한 챔피언은 무엇일까요?”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 모인 학생 850명 사이에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유미’지.” “‘유미’는 애초에 서포터(자신이 강해지기보다 팀원을 보조하는 역할)잖아.” “‘케넨’은 평타(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타격)가 약해.” “‘유미’랑 ‘자야’가 1대1 뜨면 누가 이김?”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약한 챔피언과 그 이유”, “다른 친구들은 어떤 챔피언을 가장 약하다고 찍었을까”를 놓고 설문조사를 벌였다. 학생들이 꼽은 ‘최약체 챔피언’ 최종 후보는 ‘유미’와 ‘아이번’. 학생들은 이 둘을 놓고 결선 투표를 벌였다. “선생님, 근데 이런 건 왜 뽑는 거예요?” “하하하, 여러분의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죠.” 학생들의 토론은 1시간 내내 이어졌다. 서울지역 초·중·고등학생인 이들은 매주 두 번씩 저녁에 줌과 구글 클래스룸에 모여 LoL을 공부한다. 밤낮없이 게임에 빠져 사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라면 ‘뒷목을 잡을’ 법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학생들이 모인 곳은 ‘게임 과몰입 해소’를 돕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학교’다. ●초중고생 대상 2주간 프로그램 진행 5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생교육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지금은 LOL(놀) 시간! LOL(놀)면서 공부하는 온라인 게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 프로그램은 2주간 총 4차시로 진행된다. 이달 5기 프로그램이 개강한다. 학교가 추구하는 ‘게임 과몰입 치유’는 학생들이 스스로를 조절하며 게임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것이다. 학교는 “게임하지 마”라는 잔소리 대신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게임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게임을 잘하는 아이들은 그 능력을 환대받지 못합니다.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문제아로 취급당하죠.” 방승호 서울시교육청 학생교육원 교육연구관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게임학교를 운영하는 ‘온라인 드림팀’을 진두지휘하는 방 연구관은 10여년간 ‘게임 중독자’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학생들의 ‘게임 재능’에 주목해 왔다. 아현산업정보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2009년 학교에 PC방을 차린 게 대표적이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 대다수가 가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잊기 위해 게임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문제가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게임 문제는 게임으로 해결한다”는 믿음으로 방 연구관은 학교에 ‘e스포츠학과’도 개설했다. 집에서 밤샘 게임을 하고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던 학생들이 게임을 하러 아침 일찍 학교로 달려왔다. “게임을 잘하는 것도 재능”이라며 칭찬하고 박수를 쳐 주자 방황하던 학생들이 마음을 다잡았다. 실력을 갈고닦은 학생들이 유명 e스포츠팀에 입단하는가 하면 게임 관련 학과에 진학하거나 게임 회사에 입사하기도 했다. ●‘게임은 게임으로 해결’ e스포츠학과 개설 온라인 게임학교의 프로그램은 지난해 8~9월 서울 중랑구 중화중학교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학생교육원은 학생 15명을 대상으로 방과후 저녁 시간에 LoL 게임의 전략과 인문학적 배경 등을 가르치는 ‘온라인 수련교육’을 진행해 참여 학생의 96.7%로부터 ‘만족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 게임학교에서는 ‘게임 영어’, ‘게임 인문학’, ‘게임 글쓰기’ 등 생소한 이름의 수업을 진행한다. ‘게임 영어’는 게임에 등장하는 영어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도 소환사’(Tidecaller)인 ‘나미’(NAMI)라는 챔피언을 놓고 ‘caller’라는 단어를 학습하는 식이다. 영어 공부와 담을 쌓았던 학생들이 익숙한 단어가 나오자 신이 나서 따라 읽었다. ‘게임 인문학’은 LoL 게임이 고대 신화나 세계 각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게임 스토리에 등장하는 나라나 게임 캐릭터가 기반하고 있는 시대의 정치와 경제, 지리 등을 들여다본다. 챔피언 ‘노틸러스’의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며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함께 읽기도 했다. 방 연구관은 “게임을 잘하려면 게임에 나오는 영어와 스토리를 잘 이해해야 해 학생들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전문가들에게 게임 전략을 배우는 수업에 가장 열광했다. 현직 프로게이머와 게임 해설가, 일본의 프로게임단 감독 등이 학생들과 줌에서 만나 ‘라인 관리’, ‘시야 관리’ 같은 전략들을 지도했다.●방승호 연구관 “동기 부여하면 집중력 발휘” ‘게임 글쓰기’와 ‘모험놀이’는 학생들의 변화를 이끈 수업이다. 학생들은 매 차시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날 배우고 느낀 것을 글로 표현했다. 자신의 전략에서 발견한 문제점과 개선사항, 감정 상태 등을 글로 쓰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방 연구관은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만 해 주면 스스로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아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모험놀이’는 학생들이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팔씨름’이나 ‘동전 숨기기’, ‘등 대고 일어나기’와 같은 간단한 신체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게임하는 아이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인식을 뒤집고 가족 간의 단절도 해소한다는 의미가 있다. 공부와 등지고 게임에 빠져 있던 학생들은 게임을 매개로 소통과 학습에 참여하는 방법을 배워 갔다. 줌에 접속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지만 학생들은 카메라를 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채팅으로 참여했다. 방 연구관은 “사춘기 학생들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소통에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 차시 수업마다 과제를 내지만 정해진 기한을 넘겨 제출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자발성과 책임감이 상당하다고 방 연구관은 평가했다. 게임 과몰입은 게임을 즐기며 해소할 수 있다는 온라인 드림팀의 믿음은 적중했다. 1기 프로그램을 시작할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개발한 ‘청소년 인터넷중독 자가진단 척도’ 검사를 시행한 결과 16명 중 13명이 ‘고위험 사용자군’과 ‘잠재적 위험 사용자군’으로 분류됐다. 매일 3시간 이상 게임에 접속하며 일상생활에서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상태다. 이들 학생이 2주간의 프로그램을 마칠 즈음 실시한 사후 검사에서 13명 중 8명이 ‘일반 사용자군’으로 변화했다. “스스로 게임을 절제할 수 있게 됐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게임을 하지 않겠다”, “내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다”는 등의 후기가 줄을 이었다. ●교육원소속 e스포츠선수단 구성 청사진 학교가 제시하는 ‘게임 공부’는 학교 공부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방 연구관은 내다본다.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자신의 LoL 티어(등급)와 목표로 하는 티어, 자신의 LoL 티어를 높이면서 학업도 충실히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한다. LoL 티어와 학교 성적이 동시에 오른 학생에게는 소정의 선물이 지급된다. 게임 공부를 통해 학습 방법을 심어 주고 이를 수업 시간에도 활용한다면 성적도 올라갈 것이라고 방 연구관은 자신했다. 학생교육원은 LoL뿐 아니라 ‘오버워치’,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마인크래프트’ 등 학생들이 즐기는 다른 게임으로도 학교를 확장할 계획이다. 또 우수한 실력을 보이는 학생들을 선수로 뽑아 학생교육원 소속의 e스포츠 선수단을 꾸린다는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온라인 게임학교는 서울시내 초·중·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네이버 카페 ‘마음방역’(cafe.naver.com/sensec1)에서 학교 개강 일정을 확인하고 안내에 따라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별세…시대 아픔 담아낸 거장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 별세…시대 아픔 담아낸 거장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이 5일 별세했다. 92세. 김창열 화백은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실제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물방울에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상처의 고통과 아픔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현대미술에 큰 자취를 남겼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열여섯 나이에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벌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전쟁 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고인은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1957년 박서보, 하인두, 정창섭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세계무대로 눈을 돌렸다. 1961년 파리 비엔날레,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대학 은사였던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 4년간 뉴욕에 머물며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백남준의 도움으로 1969년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했다. 1970년 파리 근교의 마구간을 작업실 겸 숙소로 쓰던 고인은 평생의 반려자가 된 현 부인 마르틴 질롱 씨를 만났다. 고인을 대표하는 작업인 ‘물방울 회화’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처음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유럽 화단에 데뷔하면서 출품한 ‘밤의 행사’(Event of Night)를 시작으로 물방울 소재 작품 활동을 50년 가까이 이어왔다. 동양의 철학과 정신을 함축한 물방울 회화로 고인은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뒤 대학 시절에 발발한 6.25전쟁은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총을 맞아 구멍 뚫린 형상을 표현한 ‘상흔’, 사람이 찢긴 듯한 이미지를 담아낸 ‘제사’라는 초기 작품뿐만 아니라 물방울 작품에도 전쟁의 아픔을 담아냈다.고인은 물방울의 의미에 대해 “시대의 상처를 내포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총 맞은 육체를 연상시키는 전쟁 직후 작업에 대해 “그 상흔 자국 하나하나가 물방울이 됐다”고 했다. 그는 “물방울은 가장 가볍고 아무것도 아니고 무(無)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 상흔 때문에 나온 눈물이다. 그것보다 진한 액체는 없다”고도 했다. 고인은 국립현대미술관, 드라기낭미술관, 사마모토젠조미술관, 쥬드폼므미술관, 중국국가박물관, 국립대만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60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작품은 각종 아트페어나 경매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2016년 3월 K옥션 홍콩경매에서 ‘물방울’(195×123cm, 1973년작)은 5억 1282만원에 낙찰됐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고인의 작품이 있다. 김창열 화백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2013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2016년 제주도 한경면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제주도는 고인이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 정도 머물렀던 인연으로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곳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301호실에 마련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아하! 우주] 13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시간여행 통로 ‘웜홀’ 존재 가능(연구)

    [아하! 우주] 13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시간여행 통로 ‘웜홀’ 존재 가능(연구)

    은하 중심부에 있는 일부 초거대 질량의 블랙홀이 실제로는 우주의 먼 두 부분을 연결하는 웜홀이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천재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공간 또는 시간의 두 지점을 연결하는 웜홀의 존재를 예측했었지만, 실제로 웜홀이 발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러시아 중앙천문대 연구진은 활성은하핵(AGN)중심에 있는 블랙홀이 웜홀의 입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AGN은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은하의 중심영역을 뜻한다. 이론적으로 웜홀은 시간과 공간을 순회할 수 있어 우주선이 통과할 수는 있지만, 강력한 방사능으로 둘러싸인 탓에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선까지도 ‘시공간여행’을 버텨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블랙홀은 입구로 들어간 물체나 에너지가 또 다른 출구로 분출되거나 튀어나오지 않지만, 웜홀은 입구로 들어갔다가 우주의 또 다른 곳을 출구 삼아 나올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웜홀과 블랙홀은 밀도와 부피가 비슷하며, 매우 강력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 유사점도 많아 일부 블랙홀이 웜홀로서 작동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보고 있다.연구진은 또 웜홀의 입구로 들어가는 물질이 동시에 웜홀의 또 다른 입구에서 들어오는 물질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 충돌은 빛의 속도 및 화씨 약 18조℃의 온도에서 웜홀의 양쪽 입구의 플라즈마 구체가 확장되는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충돌이 발생한다면 플라즈마가 6800만 볼트의 에너지로 감마선을 생성하고, 일부 미국항공우주국(NASA) 관측소는 폭발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연구진에 따르면 웜홀일 가능성이 있는 가장 가까운 활성은하핵은 지구에서 약 13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센타우루스A은하다. 연구진은 “웜홀이 실존하는지, 실존한다면 그 내부 구조가 어떤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인간이 이 먼 은하의 핵으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잠재적인 우주비행의 새로운 길이나 시간 여행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웜홀이 강력한 방사선에 둘러싸여 있는데다 지구에서 1300만 광년이나 덜어져 있기 때문에 웜홀을 실제로 확인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간보고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올가을에는 도쿄 거리를 산책할 수 있을까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올가을에는 도쿄 거리를 산책할 수 있을까

    이처럼 밋밋하게 새해를 맞이한 적이 있었나 싶다. TV에서 늘 나오던 보신각 타종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어느새 홀연히 새해가 다가왔다. 신년 인사차 아버지 댁에 잠깐 다녀온 것 외엔 사흘 내내 집에 칩거했다. 이맘때 늘 있었던 신년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연말부터 끌어오던 ‘서경식 교수 정년기념 심포지엄’ 발표 원고를 정초 사흘 동안 가다듬어 최종본을 일본 주최 측에 보냈다. 예정대로라면 학술대회는 1월 23일 도쿄 고쿠분지에 있는 도쿄경제대학에서 열릴 터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결국 줌(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기다린 도쿄행이 무산됐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만나고 싶은 지인과 들르고픈 장소를 마음에서 지울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지금으로서는 올해 상반기에 수행해야 할 김석범 작가와 김시종 시인 연구를 위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위한 두 차례 일본행도 힘들다. 일본문학 연구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나 재일 한인문학 연구자에게 일본 탐방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한국인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는 윤동주, 백석을 비롯한 식민지시대 주요 문인은 일본 유학 경력이 있다. 그들의 행적을 연구하다 보면 당시 그들이 접한 일본문학(문화), 일본 책, 일본 지성의 흐름에 대한 면밀한 탐색 없이는 해당 문인의 문학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게 쉽지 않음을 절감한다. 가령 고(故) 김윤식 교수는 이광수를 연구하고자 일본 유학 시절 이광수의 산책길까지 걸으며 당시 이광수의 내면과 마음을 포착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학문 연구란 이처럼 섬세한 것이다.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책은 윤동주와 백석의 일본 유학 시절을 다룬다. 김태빈의 ‘동주, 걷다’는 윤동주의 교토 산책길과 도쿄 등굣길을 직접 탐사하고 걸으며 시인 동주의 마음을 헤아린다. 김응교의 ‘백석과 동주’는 백석 시인의 일본 체험을 아오야마 학원과 도쿄 기치조지(吉祥寺)를 중심으로 살핀다. 인문학 연구에서 현장에 대한 감각은 텍스트를 둘러싼 작가의 무의식과 내면, 사유를 해명하는 과정에 꼭 필요하다. 현장 탐방을 통해서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예술가의 마음의 무늬와 사유의 표정이 존재한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1925~)의 소설, 김시종(1929~)의 시편은 한민족의 수난과 저항, 소망, 상처를 빼어난 문학적 수준을 통해 형상화해 왔다. 이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기억과 육성, 인생과 역정(歷程)을 기록·정리하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책무다. 이미 구순을 훌쩍 넘긴 이들을 만나기 위한 일본 탐방을 마냥 연기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언제 일본에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재작년 여름 아베 정권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조치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일 간의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인 갈등은 출구가 안 보이지만 문화적인 면에서 한일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왔다. 예컨대 양국 간의 문학 교류, 특히 한국문학의 일본 소개는 아연 활발해졌다. 일본에서 한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황이다. 언젠가부터 주로 연구차 매년 한두 번씩 일본을 방문했던 것 같다. 재작년 가을 도쿄에 가 본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일본을 탐구하고 일본 음식을 먹으며 그 거리를 걷는 과정은 한국학 전공자에게는 수많은 영감과 착잡한 마음을 선사한다. 일본에 대해 안다는 건 단지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숙명이기도 하다. 이 땅의 근현대 그 굴곡과 모순, 저항과 투쟁, 지성과 학문의 이해는 곧 일본의 그림자를 또렷이 응시하는 과정이기도 하리라. 올가을쯤에는 일본의 지인들과 도쿄와 교토의 운치 있는 거리를 천천히 산보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닐 테다. 이 겨울과 새봄은 그 순간을 맞이하고자 함께 인내해야 할 시간이다.
  • 이승우 ‘마음의 부력’ 이상문학상 대상

    이승우 ‘마음의 부력’ 이상문학상 대상

    올해 제44회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이승우(62) 작가의 소설 ‘마음의 부력’이 선정됐다. 이상문학상 주관사인 문학사상사는 4일 “인물 내면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로 단편소설 양식의 전형”이라며 “일상적 소재와 내용임에도 깊은 감동을 불어넣는 이야기와 그 구성의 완결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마음의 부력’은 죽은 형과 동생을 착각하는 어머니와 아들을 통해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기독교적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돼 등단한 이승우 작가는 장편소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등을 냈다. 우수작으로는 ‘97의 세계’(박형서)와 ‘블랙홀’(윤성희),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장은진), ‘아버지가 되어주오’(천운영), ‘야夜심한 연극반’(한지수)이 뽑혔다. 이상문학상은 지난해 1월 ‘수상작 저작권 3년 양도’ 등을 둘러싼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했다. 문학사상사는 논란에 공식 사과하고 계약조건을 수정했다. 대상 상금은 5000만원이고 우수작 재수록료는 각 500만원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옛 도청 부지에 D·N·A 인프라… 북구를 미래 대구 성장 축으로”

    “옛 도청 부지에 D·N·A 인프라… 북구를 미래 대구 성장 축으로”

    “옛 경북도청 부지와 삼성창조캠퍼스, 경북대를 연계한 트라이앵글 지역을 도심융합특구로 조성하겠습니다.” 배광식 대구 북구청장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통해 북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배 구청장은 “옛 경북도청 부지 개발 종합개발 추진과 함께 엑스코선 건설, 복현고가교 철거 등도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하 배 구청장과의 일문일답.-옛 경북도청 부지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지난해 2월 도청 부지 개발을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7월에는 도청 부지개발추진단을 신설해 도청 부지 개발의 기반 마련을 위한 준비를 해 왔다. 지난해 3월 도청 부지 및 주변 권역별 발전과 미래 북구의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도청 부지 종합개발 기본 구상안을 마련했다. 이는 대구시의 도심융합특구 조성계획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또 이 계획으로 지난해 12월 22일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심융합특구로 최종 선정됐다. 도청 부지 및 주변 지역에 데이터(D), 네트워크(N), 인공지능(A) 분야의 핵심 인프라 구축과 기업 및 청년 창업공간, 첨단기술 연구개발(R&D) 시설을 유치하겠다. 이를 통해 이곳에 우수한 복합 인프라를 갖춘 도심 내 고밀도 혁신공간을 조성하겠다. 그렇게 되면 경북도청 부지는 금호워터폴리스와 엑스코 등 인근 지역과 함께 미래 대구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북구는 대구 경제 핵심 축으로 도약하게 된다.” -경북도청 이전 후 주변인 산격동 인근이 낙후됐다는 지적이 있다. “산격동 등 옛 경북도청 주변 지역은 전형적 구도심 지역으로 상당히 낙후돼 있다. 경북도청 이전 후 시청별관마저 이전이 확정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소외감이 높았다. 도청 터 및 주변 지역의 개발은 지역주민들의 간절한 염원 실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에 따라 도심융합특구 용역 단계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발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개발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들의 행복이 실현될 수 있는 개발이 되도록 노력해 나갈 예정이다.”-도시철도 엑스코선 건설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해 12월 29일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심의에서 최종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내년부터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28년 준공 목표로 추진될 예정이다. 엑스코선 건설로 도심융합특구와 시너지 효과 창출이 기대된다. 또 경북대와 엑스코 등의 많은 유동인구에 도시철도망을 제공해 대중교통 복지사각지대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심융합특구 조성에 발맞춰 구상하고 있는 계획은. “산격동 구암서원과 침산동·칠성동에 걸쳐 있는 근대산업유산, 경북대 스마트타운을 연계해 역사와 첨단을 아우르는 시티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 또 다양한 문화공간과 신천 수변공간 개발을 통한 휴식공간을 조성하고 스마트시티 및 빅데이터 관련 도시기반시설을 구축하겠다. 교통체계를 개선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북구의 성장이 대구의 미래라는 말도 있다. “옛 도청 부지 개발과 함께 대구 군공항 이전도 추진된다. 여기에다 금호워터폴리스가 착공에 들어갔다. 2023년까지 금호워터폴리스가 조성되면 금호강의 수려한 수변, 그리고 유통단지와 연계한 첨단 미래형 복합산업단지가 조성된다. 대구의 미래산업을 견인할 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지난 한 해 북구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감염병의 확산과 긴 장마, 잦은 태풍으로 온 나라가 힘들었고 북구 주민에게도 힘든 한 해였다. 지난해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구민들의 건강을 지켜내기 위한 빈틈없는 방역과 감염병 확산 방지였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 경제 회복을 위해 120억원을 들여 129개 희망일자리를 만들었다. 저소득 위기가구를 위한 긴급 복지지원금 182억원, 소상공인 생존자금 388억원을 투입, 긴급복지 지원정책을 시행했다. 대면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치매예방버스 운행과 치매안심 기억보따리 운영 등의 치매안심서비스, 노인복지관 서비스 공백 최소화를 위해 비대면 노래교실, 건강강좌 등을 실시했다. 옥산로 일대와 이태원길 구간에 희망의 빛거리를 운영해 주민들에게 희망과 극복의 메시지를 전달했다.”-임기 동안 구정 운영 성과를 꼽는다면. “경제 쇠퇴, 성장동력의 부재, 인구유출과 고령화 등으로 산격동, 침산동, 복현동, 칠성동 등 구도심 지역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이들 지역에 주민 자생적 성장기반을 마련했다. 대구 국제고, 청소년 문화의 집 등의 개교를 통해 청소년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었다. 국제고 개교는 글로벌 인재 양성의 터전으로, 청소년 문화의 집은 청소년들에 대한 다양한 활동 공간으로 각각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격시장 청년몰과 칠성야시장 개장으로 전통시장 상권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중대형 마트의 유입과 상인들의 고령화 진행 등으로 전통시장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칠성야시장의 경우 대구를 대표하는 야시장으로 관광명소화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생활권 내 녹지공간 확충으로 주민 행복체감 지수를 높였다. 대표적으로 명봉산, 함지산을 비롯한 6개 구간의 등산로 정비와 연암공원, 침산공원 등 5개 구간에 맨발산책로를 조성했다. 또 대구3공단 공업단지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 등의 오염물질 저감과 열섬·폭염 완화를 위한 차단 숲 조성을 완료했다. 올해는 동암로 및 구리로 일대에 미세먼지 차단 숲 공사를 계획하고 있다.” -북구가 역사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는 평가가 있다. “2015년 제1회 바람소리길 축제를 개최했다. 그동안 지역마다 산재했던 작은 축제들을 통합해 북구민이 함께 참여하고 소통하면서 즐기는 축제이다. 금호강변에 ‘오토캠핑장’을 조성했다. 캠핑장 16면과 다목적광장, 편의시설, 놀이시설 등이 있어 주말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고 있다. 또 어두침침했던 상가 뒷길을 정비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이태원길’도 올해 개장했다. 이태원문학관, 버스킹 존, 이태원광장 등을 조성했다.” -올해는 어떤 부문에 중점을 두고 구정을 추진할 계획인가. “감성마켓 조성 사업으로 서리지로를 만든다. 도시철도 3호선 칠곡경대병원역에서 서리지 입구까지 이색 이정표와 포켓전망대를 만들겠다. 3~4월에 열리는 하중도 유채꽃 축제를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겠다. 구암동 고분군에 첨단기술인 VR을 도입해 고분군 발굴현장을 체험토록 하겠다. 게임적 요소를 가미해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하겠다. 구암동 고분군을 운암지 수변공원 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해 개발할 계획이다. 국민대표 간식인 떡볶이를 소재로 한 페스티벌 개최를 구상하고 있다. 세계 최초 떡볶이박물관이 북구에 있어 지역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복지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높다. “장애인 체육재활센터를 고성동 시민운동장 내에 만들겠다. ‘행복북구 통합 가족센터’를 2022년 준공 목표로 건립하겠다. 고령층의 건강관리, 운동, 여가활동 등을 할 수 있는 경로당사업을 추진하겠다. 가동이 중단된 서변가압장에 어린이 물놀이장과 꿈 놀이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주민들을 위한 평생학습 야간강좌도 운영하겠다.”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올해는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는 유지경성의 자세로 구정을 펼치겠다. 북구의 비전이 담긴 정책들이 순조롭게 실현돼 북구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새해에도 주민 여러분 가정과 직장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고 항상 건강하길 기원드린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약한 자들의 연대, 복수를 넘다

    약한 자들의 연대, 복수를 넘다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 혹은 현대 간호학의 체계를 정립한 인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지저귀는 소리가 예쁜 자그마한 새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호킨스(샘 클라플린 분)는 목소리가 고운 클레어(아이슬링 프란치오시 분)를 나이팅게일이라고 부른다. 칭찬만은 아니다. 호킨스에게 클레어는 자기를 즐겁게 해 주는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심기를 거스르면 때리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 1825년 호주에서 영국 장교 호킨스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남자다. 더구나 클레어는 형기를 마쳤다고 하나 죄수 신분이 아니던가. 아이를 낳은 유부녀라도 그녀가 호킨스의 새장에 갇힌 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내를 이제 그만 놓아 달라고 호소하는 클레어의 남편과 울부짖는 아이까지 호킨스가 죽였다. 눈앞에서 참극을 겪은 클레어는 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킬빌’이나 ‘친절한 금자씨’ 같은 핏빛 잔혹극을 떠올릴 듯하다. 그러나 클레어는 더 브라이드 같은 탁월한 검술 실력이 없고, 금자처럼 치밀하게 앙갚음 계획을 짤 여력이 없다. 이글대는 분노가 클레어가 가진 전부다. 영화 ‘나이팅게일’은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인 복수담을 들려준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길을 나서긴 했다. 한데 시간이 지나니 춥고 배도 고프다. 막상 호킨스와 대면하면 어떻게 그를 처단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처단할 수나 있을까? 클레어에게 동행이 있긴 하다. 길잡이로 고용한 빌리(베이컬리 거넴바르)다. 그렇지만 그를 믿지는 못한다. 빌리는 원주민이다. 18세기 후반부터 대규모로 이주한 백인들은 원주민을 살해하고 그들의 터전을 빼앗았다. 원주민은 백인이라면 이가 갈린다. 이런 까닭에 클레어는 빌리가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여정을 지속한다. 이때부터 이 작품에 현실적인 복수담 외 한 가지 테마가 더해진다. 낭만적인 연대의 타진이다.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빌리의 사려 깊은 행동에 클레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빌리도 클레어가 오랜 세월 영국인에게 시달려 온 아일랜드인임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진심으로 도우려고 나선다.이들의 흥미로운 연결고리는 클레어의 별명이 나이팅게일(갈색 새)이고, 빌리의 본명이 망가나(검은 새)라는 데 있다. 자꾸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을 사람이자 새인 둘은 노래하면서 견딘다. 무력해 보이나 실제로는 유력한 아름다운 곡조의 가치다. 거기에 난관을 타개하겠다는 주술성이 가미된다. 그렇기 때문에 클레어와 빌리의 관계를 낭만적인 연대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와 제국,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의 위계가 중첩된 복잡한 사안. 이것을 제니퍼 켄트 감독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결속으로 접근해 풀어냈다. 단호한 응징보다 훨씬 다루기 어렵고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4·3’ 조명한 한강… 기후 재앙 꺼낸 빌 게이츠

    ‘4·3’ 조명한 한강… 기후 재앙 꺼낸 빌 게이츠

    코로나19 사태에도 출판 분야는 오히려 호황을 맞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을 찾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신간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요 출판사의 올해 출간할 주목할 만한 책들을 살펴봤다.(일부 확정됐지만 책 제목 대부분은 가제다.) 우선 문학 부문에서는 한강, 최은영, 강화길, 박상영, 신경숙, 장류진, 조남주 등 유명 작가들의 신간이 독자들을 만난다. 문학동네는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상반기 중 출간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처럼 현대사의 아픈 과거인 제주 4·3사건을 조명한다.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은 5년 만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유명한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도 올여름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가족 4대의 삶을 비추며 100년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를 훑는다. 강화길 작가의 신작 장편 ‘대불호텔의 유령’, 2019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받은 박상영의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도 올여름 문학동네에서 나온다.신경숙 작가가 ‘창작과 비평 웹매거진’을 통해 연재한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창비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고통을 참으며 자리를 지켜 내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나’와 아버지의 삶을 교차하며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심훈문학대상을 받은 장류진 작가의 소설 ‘달까지 가자’도 상반기 중 출간한다. 민음사는 오는 3월 조남주 신작 소설집 ‘오기’를 낸다. ‘가출’, ‘여자아이는 자라서’, ‘오기’ 등 단편소설을 수록했다. “전작을 둘러싸고 작가가 받은 심리적 고통과 갈등으로 여성 서사를 돌아본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문학과지성사는 이장욱 작가가 2017~2018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연재하며 호평을 받았던 ‘밤과 미래의 연인들’을 출간한다.외국 작가들의 기대작도 속속 출간된다. 민음사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오는 4월 출간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7월에는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페스트의 밤’이 예정됐다.비문학 분야에서도 주목할 책이 여럿 나온다. 김영사가 다음달 출간하는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가 직접 쓴 책이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그동안 진행해 온 환경·기후 관련 연구 결과와 해법 등을 담았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신, 만들어진 위험´으로 올해에도 무신론을 주장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지난해 국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야마구치 슈의 신간 ‘일의 철학´은 직업 선택을 위한 마음의 자세와 실제 준비 과정, 직업과 이직에 관한 논의를 담았다. 지난해 활발한 출간으로 국내 인지도가 높아진 리베카 솔닛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조각들’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저자로는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미래의 질문´이 눈에 띈다. 김영사는 “팬데믹, 외로움, 세계화, 음모론, 트라우마 그리고 사랑 등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본질과 미래상을 뇌과학자의 시선으로 돌아본다”고 설명했다. 시공사는 ‘카라반 모녀’ 사진으로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을 받은 김경훈 로이터통신 기자의 사진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효리네 민박’에 출연해 유명해진 문경수 탐험가가 쓴 천문학책 ‘우주로 가는 밤´도 곧 선보인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물들도 이어진다. 예술가의 고향을 기행한 아르떼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지난해까지 26권이 나왔다. 올해는 정준호 음악평론가(차이콥스키), 노승림 음악평론가(말러) 등이 이어 간다. 서울대 교수들의 명강을 담은 북이십일의 ‘서가명강’은 올해 15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홍진호 독어독문학과 교수, 구범진 동양사학과 교수, 장병탁 컴퓨터공학과 교수 등이 바통을 잇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교육 가치 컸는데”… 英 ‘EU 교환학생’ 탈퇴 우려

    “교육 가치 컸는데”… 英 ‘EU 교환학생’ 탈퇴 우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브렉시트)함과 동시에 유럽 교환학생 제도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전문 매체 유로뉴스는 2일(현지시간) 영국 정부가 자국 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하고 이를 대체하는 ‘튜링 계획’을 운용할 예정이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을 전했다. 르네상스 시대 최대 인문학자의 이름을 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1987년부터 시작해 300만여명의 학생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새해부터 유럽대륙과의 관계를 하나둘 끊어야 하는 영국은 ‘브렉시트 이혼 서류’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학창 시절 이 제도의 혜택을 본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우려를 전했다.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출신의 연극인 톰 버드는 “에라스무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며 “정부의 결정은 교육의 반달리즘(문화재·공공시설 파괴 행위)과도 같다”고 성토했다. 정부는 이 같은 비판을 달래기 위해 1억 파운드(약 1487억원)를 투자해 3만 5000명의 학생들을 유럽만이 아닌 세계 각국에 보내겠다는 ‘튜링 계획’을 발표했다. 연수 대상자와 대상 국가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이 계획의 명칭은 자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인 앨런 튜링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정부는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서 탈퇴하는 이유로 비용 절감 문제를 들기도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2020년 영국이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 기여한 예산이 18억 유로(약 2조 4000억원)인데, 이 기간 자국 학생들에게 돌아온 혜택은 10억 유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교육을 비용 문제로 접근하고, 외국 유학생들이 영국에서 공부하며 형성되는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가치를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일자리 확대와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세계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 때문에 ‘에라스무스’를 통한 국제사회의 연계는 더욱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사분의자리 유성우’ 오늘밤 극대…시간당 110개까지

    [이광식의 천문학+] ‘사분의자리 유성우’ 오늘밤 극대…시간당 110개까지

    새해 벽두부터 우주 쇼가 펼쳐진다. 사분의자리 유성우가 오늘 밤 극대기를 맞는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 쌍둥이자리 유성우와 함께 3대 유성우 중 하나인 사분의자리 유성우는 시간당 떨어지는 유성의 개수가 가장 많은 유성우이다. 우리말로 별똥비라고 불리는 유성우는 공전하는 지구가 혜성이 지나간 궤도에 접어들 때, 혜성이 남긴 티끌들이 지구 대기 속으로 떨어지면서 빛을 내는 현상이다. 따라서 양력 날짜로 해마다 비슷한 날에 유성우가 나타난다. 유성우는 마치 하늘의 한 지점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지점을 복사점이라 하고, 복사점이 있는 별자리 이름을 따서 유성우 이름을 짓는다.매년 1월 3~4일경에 발생하는 사분의자리 유성우는 복사점이 사분의자리에 있어 이렇게 불리는데, 사분의자리는 큰곰자리, 헤르쿨레스자리, 용자리, 목자자리와 인접했던 별자리로, 지금은 용자리에 편입되어 없어졌지만, 예전부터 부르던 관습에 따라 유성우의 이름으로 계속 남아 있는 셈이다. 현재 사분의자리 유성우의 복사점은 목자자리다. 올해 사분의자리 유성우 관측 최적기는 1월 3일 밤을 넘어 1월 4일 새벽일 것으로 예상한다. 극대시간은 1월 3일 23시 30분이며, 규모는 적어도 ZHR 110(시간당 110개 관측 가능) 정도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때는 복사점의 고도가 낮아 자정을 넘은 새벽 시간대가 관측하기에 더 낫다. 다만 월령 20일의 비교적 밝은 달이 밤새도록 떠 있기 때문에 관측 조건이 좋지는 않다. 이 유성우는 12일 정도까지 관측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분의자리 유성우는 속도가 초속 41㎞로 약간 느린 편인 데다, 화구(火球·fireball: 매우 밝은 유성으로, 때로는 폭음을 내면서 불꽃의 흔적을 남김)의 비중이 높고, 단시간에 많은 양의 유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관측하기 좋은 유성우다.​ 재미있는 점은 사분의자리 유성우의 근원이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채로 있다가, 한국의 한 연구팀에 의해 지난 2009년 최초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경북대학교 박명구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조선왕조실록'의 혜성 기록을 분석한 결과, 성종 21년(1490) 말에 나타난 혜성이 사분의자리 유성우 기원임을 처음으로 규명했으며, 아울러 이 혜성이 소행성 2003 EH1의 모체일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한다. 2003 EH1은 혜성 C/1490 Y1과 연관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천문학회지(MNRAS)에 게재됐다. 관측 요령은 긴의자나 돗자리를 준비해 북쪽이 틔어 있는 어두운 곳을 찾아 자리잡는 것이다. 유성 관측에는 특별한 장비는 필요치 않지만, 쌍안경 하나쯤은 챙겨가는 게 좋다. 날이 추우니 특히 방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95세에도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제갈삼 전 교수, “좌우명은 ‘잔심’”

    95세에도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제갈삼 전 교수, “좌우명은 ‘잔심’”

    “피아노와 난 하나지, 이것 없으면 어찌 살겠어?” 만 96세로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제갈삼 전 부산대 교수. BBC 코리아는 지난달 초 부산 자택에서 만난 제갈 교수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 잡혔지만 피아노 건반을 가르는 손가락은 가볍고 경쾌하기만 했다고 지난달 26일 전했다. 제갈 교수는 일제 강점기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사범학교(5년제 중고등 교육기관)에 진학해 14세 때 피아노 특기생으로 뽑혔다. 10대 시절 큰 형이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야학을 세웠는데 누나가 음악 교사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계기가 됐다.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일이야. 어느날 누님이 하얀 한복을 입고 야학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거야. 그게 내 눈에 천사로 보였어, 천사…. 내가 피아노를 하게 된 동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제갈 교수는 사범학교 졸업 후 19세 때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한국전쟁이 터졌다. 청년이면 누구라도 길을 걷다가 강제로 징집되는 시기였다. “책 사려고 부산 거리로 나왔는데, 딱 잡혀버린 거야. 잡혀갈건데 옆에서 어떤 이가 날 보고 ‘선생님!’하고 부르는 거야. 그러니까 경찰관이 ‘뭐? 이분이 너 선생님이야?’한 거지. 그래서 내가 살았다. 그때 교사는 살려줬다고….” 제갈 교수는 부산여중, 경남여고에서 음악교사를 하다가 부산대 음악학과 교수로 1991년 정년 퇴임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무대에 서는 등 지금껏 연주를 쉬지 않고 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악보는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손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일일이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고 손이 다 외우고 있어. 희한해요, 이게. 젊은 시절 열심히 해놓은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부인과 사별하고 기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오후 피아노 연습은 빼먹지 않는다. ‘꾸준히 하는 마음’이 그를 지치지 않게 한다고 했다. “잔심(殘心)이란 말이 있어요. 사전을 찾아보니까 이건 꾸준히 하는 마음을 뜻해요. 내가 피아노를 꾸준히 치는 것도 잔심이야. 이 말이 참 좋지.” 지난해 7월 11일 제갈 교수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최고령 기네스 음악회’를 연 것이다. 1946년 악보 대신 건반을 두드리며 작곡한 독주곡 ‘감각적인 환상곡(판타지아 센티멘탈)’과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 전 악장을 연주했다. 제자인 소프라노 김유섬(창원대 교수)이 스승이 동료 문학 교사로 교유했던 고 김춘수 시인의 시에 선율을 붙인 가곡 ‘네가 가던 그날은’과 한하운 시인의 시에 선율을 입힌 ‘보리피리’를 들려줬다. 100세에 단순히 피아노 연주를 한 기록은 있지만, 음악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90대에 음악회를 개최한 건 폴란드 출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외에는 없었다. 루빈스타인은 95세이던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기네스 등재는 진행 중이다. 그는 “내가 할 수 있으면 해보자, 이런 마음에서 한 것이지 뭔가 도전 의식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무리해서 뭔가 도전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매일 피아노 치는 이유는 그거예요. 이렇게 기회가 허락하면 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돼요.” 제갈 교수는 자신의 연주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다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 그래도 기본은 ‘큰 힘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라’는 것 말고는 없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탐사 신기원…美·中·UAE 탐사선 2월 화성 도착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탐사 신기원…美·中·UAE 탐사선 2월 화성 도착

    우주선을 화성 궤도에 올리기 좋은, 이른바 ‘발사의 창’이 열린 지난해 7월, 3개의 우주선이 잇달아 발사됐다. ​7월 20일, 23일, 30일 차례대로 발사대를 박차고 화성으로 떠난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 그리고 미국의 탐사선은 2월이면 속속 화성 궤도에 도착한다. 화성으로의 대장정에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UAE의 화성 궤도선인 ‘아말’(희망)은 예정대로라면 UAE 건국 50주년에 맞춰 2월 9일 가장 먼저 화성 궤도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로버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도 트위터를 통해 “아말 발사 축하해! 나도 서둘러 이 여행에 동참하고 싶어!”라는 축전을 보냈다. 아말이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 UAE는 미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화성 진입에 성공한 국가가 되는 만큼 세계의 시선이 이를 주시하고 있다.​두번째로 발사된 중국의 톈원(天問) 1호는 궤도선, 착륙선, 로버(탐사차량)로 이뤄져 총 무게가 5t에 이른다. 미국이 여러 차례 나눠서 성공한 일을 중국이 한꺼번에 시도하는 대담한 도전이다. 톈원은 ‘하늘에 묻는다’라는 뜻으로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의 시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중국국가우주국(CNSA)은 지난 10월 1일 중국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톈원 1호가 화성으로 향하던 도중 찍은 ‘셀피’ 2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톈원 1호는 2월 11~24일 화성 궤도에 도착한 뒤 4월 23일경 착륙선과 로버를 화성 표면에 내려놓을 계획이다. 톈원 궤도선은 화성 고도 265㎞에서 1만 2000㎞ 사이를 오가는 극타원궤도를 돌며 1년간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착륙 예정지는 화성 북부의 유토피아 평원이다. 지름 3300㎞의 유토피아 평원은 많은 양의 얼음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양전지판을 장착한 로버는 240㎏ 무게로 약 90일간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착륙선과 로버는 화성의 토양과 지질 구조, 대기, 물에 대한 과학 조사를 진행한다. 중국이 화성착륙과 탐사까지 성공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화성착륙에 성공한 국가가 되며 명실공히 우주 강국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1년 화성탐사선 ‘잉훠 1호’를 러시아 화성 탐사선과 함께 러시아 소유스 로켓에 실어 발사했으나, 지구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실패한 바 있다. 올해 최대의 화성탐사 도전은 7월 30일 아틀라스V 로켓에 실려 발사된 NASA와 유럽우주국(ESA)의 합작 탐사로버 ‘퍼시비어런스’다. 퍼시비어런스는 발사 57분 뒤 아틀라스 로켓과 분리된 데 이어 1시간 25분 뒤에는 지구와 교신에도 성공하며 성공적으로 화성으로 향하고 있다. 퍼시비어런스가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올해 인류가 화성에 보내기로 예정한 세 탐사선이 모두 성공적으로 화성으로 향하게 됐다. 2월 18일 ‘예제로 크레이터’에 착륙할 예정인 무게 1043㎏의 대형 로버인 퍼시비어런스는 고대 미생물의 흔적을 찾고 다음 우주선이 회수해 지구로 가져올 수 있게 토양·암석 샘플을 채취, 보관하는 임무를 맡았다. 퍼시비어런스는 1997년 최초의 화성 탐사로버로 착륙에 성공한 ‘소저너’와 2004년 착륙한 ‘스피릿’ ‘오퍼튜니티’, 2012년 ‘큐리오시티’에 이은 NASA의 5번째 화성 탐사로버다. 기존 탐사로버들이 화성의 기후와 대기, 물의 흔적, 암석 조사 등의 임무를 수행한 것과 달리 퍼시비어런스는 화성 토양을 수집해 지구로 다시 가져오는 임무를 맡고 있다. 미국이 화성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아홉 번째다.또 다른 대형 ‘우주 이벤트’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발사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어 우주를 더 멀리, 더 깊이 들여다보는 제임스웹 차세대 우주망원경은 여러 차례 연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10월 31일 우주로 향한다. NASA는 프랑스령 쿠루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5호 로켓에 실어 발사할 예정이다. 처음 개념 설계를 시작한 1996년부터 따지면 무려 25년 만에 우주로 올라가는 셈이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18개의 육각형 거울을 벌집처럼 이어붙인 독특한 형태로도 유명하며, 로켓에는 거울을 접어 싣는다. 접힌 거울은 우주 공간에서 로켓과 분리되면 펼쳐진다. 망원경의 이름은 아폴로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NASA 과학자인 제임스 웹에서 땄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2020년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 ‘달러구트 꿈 백화점’

    2020년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 ‘달러구트 꿈 백화점’

    2020년 마지막 주간 베스트셀러는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1위를 차지하며 마무리했다. 4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12월 5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집계 순위에 따르면,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1위,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2위를 차지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크라우드 펀딩 후원으로 전자책과 독립출판물을 냈으며, 단행본 출간 이후에는 독자들 입소문을 타고 상위권에 올랐다. 20대 여성층 구매가 가장 많지만, 20~40대까지 고르게 책을 샀다. 10주 연속 종합 1위 자리에 올랐던 ‘트렌드코리아 2021’은 3위로 하락했다. 한국사랑이 각별한 짐 로저스가 코로나 시기 속 세계 경제 흐름과 전망을 내놓은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가 4위로 바짝 추격하는 모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5위를 차지했다. 한편,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거둔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간 ‘미드나잇 선’이 출간과 종합 25위에 진입했다. 10대 독자부터 30~40대 애독자층이 가세하며 겨울 서점가에 판타지소설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다음은 교보문고 12월 5주 종합베스트셀러. 1.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 2.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베리) 3. 트렌드 코리아 2021(미래의창) 4.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리더스북) 5. 일인칭 단수(문학동네) 6.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김영사) 7.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알에이치코리아) 8.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위즈덤하우스) 9.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길벗) 10. 돈의 속성(스노우폭스북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2021년, 금리 오르면서 대출 부담 늘어날 것” 월가의 경고

    “2021년, 금리 오르면서 대출 부담 늘어날 것” 월가의 경고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내년에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비안코는 인플레이션 수준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목표치인 2%를 0.5%포인트 정도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짐 비안코 월가 비안코리서치 설립자는 31일 미국 CNBC 인터뷰에서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며 “이것이 내년에 겪을 가장 큰 우려”라고 전했다. 비안코는 “상승 폭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2.5%는 사실상 지난 28년 동안 없었던 최고치”라며 “이는 거의 한 세대 동안 인플레이션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이 어떤 것인지 잊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또 비안코는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상승하면 증시가 이것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며 “모든 사람들이 1년 안에 1달러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고 이는 수입 저하로 이어진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매체를 통해 전했다. 1경5000조 넘는 돈 풀려…경제 정상화 맞물려 물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연준을 필두로 유럽연합(EU)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시중에 푼 유동성 규모는 14조달러(약 1경5225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경제 정상화가 맞물리면 물가가 크게 상승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야누스핸더슨의 존 파툴로도 억눌린 소비가 폭발하면서 내년 인플레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시장의 인플레 기대치도 1년6개월여만에 최고치까지 오른 상황이다. 지난 28일 뉴욕 연준의 11월 소비자기대지수 조사결과 향후 1년간 인플레 기대치 중간값은 2.8%에서 3%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루도빅 콜린 본토벨 에셋 매니지먼트 매니저는 “악몽이 끝나고 경제 활동이 한꺼번에 재개될 때 사람들은 그동안 풀렸던 유동성이 여전히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년 봄 슈가러시가 시작될 것이고 우리는 더 높은 인플레를 예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평론 심사평] 촉각 통해 자기 자신으로 재귀… 엄청난 집중력 보이며 분석

    [평론 심사평] 촉각 통해 자기 자신으로 재귀… 엄청난 집중력 보이며 분석

    투고작들 중에서 편차가 분명한 작품들이 많아 쉽게 2편으로 최종 논의를 좁힐 수 있었다. 두 편 모두 각각 시와 소설 장르를 텍스트로 삼아 개성 있고 완성도 높은 평론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편 모두 텍스트 분석력이 뛰어나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전개한 점이 신뢰가 갔다. 자신의 논지를 확대시키는 과정도 논리적이어서 지속적인 평론 활동도 가능할 것 같다는 기대도 갖게 됐다. 2편 중에서 아깝게 당선작이 되지 못한 ‘선명한 징후와 쏟아지는 물음들-이장욱론’은 이장욱의 시를 대상으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경계에서 영원한 질문들을 쏟아내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그 과정에서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역설적 긍정을 정치하게 도출해 내고 있다. 탄탄한 문장으로 이장욱 시가 지닌 ‘고요한 힘’을 힘차게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이다. 그럼에도 시에 대한 직접 인용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 ‘정(正)·반(反)·합(合)’이라는 도식적이고도 변증법적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당선작인 ‘만질 수 없음을 만지는 언어: 촉각의 소노그래피-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작품론이면서도 작가론으로 확장되고, 작가론에서 문학론으로 다시 심화되는 글이다. 실명(失明)과 실어(失語)라는 존재론적 한계를 지닌 인간이 어떻게 촉각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재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분석해 나가고 있다. 사용되는 개념 자체가 다소 비약적이고 관념적이지만, 그런 한계를 한강의 적절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잘 극복하고 있다. 언어를 통한 인간의 고통 혹은 구원 문제까지 연결시키는 뒷심도 눈여겨볼 만했다. 발전 가능성이 큰 글이자 평론가라는 믿음에 당선작으로 최종 결정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기대에 부응하는 신진 평론가로서의 활동을 기대한다.
  • [평론 당선소감] 전승민 “읽고 쓰기, 본격적으로 사랑해도 좋을 것 같다”

    [평론 당선소감] 전승민 “읽고 쓰기, 본격적으로 사랑해도 좋을 것 같다”

    세상일은 참 알 수 없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있다. 학창 시절 가장 자신 없고 싫어하던 과목이 국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이 너무나 행복하다. 신기한 일이다. 보고 싶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들로 마음이 가득 찬다. 나의 글에는 동네 공원의 햇빛과 새끼 딱따구리의 주홍색 배털, 오래된 도서관의 종이들처럼 맹렬히 썩어가던 가을 낙엽들, 유모차와 킥보드, 그리고 공원 마당을 거닐던 사람들의 자취-지나온 모든 순간이 배어 있다. 내 글은 그들 모두와 이 세상에 빚을 지고 있다. 20대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때 한강과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통원치료를 위해 상경하던 고속버스 안에서 창 안으로 부서지는 햇빛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시를 읽었다.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는 한강의 뼈들은 나의 뼈들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하루 전날에는 언제나 ‘댈러웨이 부인’을 읽었다. 그러므로 당선된 글은 한강과 울프와 함께 쓴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난해 여름, 수업에서 발표한 과제에 대해 “혹시 비평해 볼 생각 없어요?”라는 말로 평해 주신 우찬제 선생님의 한마디가 내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시작’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서강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서강영문은 언제나 저의 자랑입니다. 김영주 선생님, 당신은 저에게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제 글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주신 김미현 선생님, 유성호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더욱 본격적으로 읽고 쓰기를 사랑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학은 사랑입니다. ■전승민 ▲여아 낙태율 최고치를 경신한 1990년 팔삭둥이로 진주에서 출생 ▲서강대 영문과 4학년 재학 중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의 25년차 팬 ▲2020년 제19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만질 수 없음을 만지는 언어:촉각의 소노그래피/전승민

    문학의 칼 칼날과 포옹할 수 있을까? 한강에게 언어는 세계와 자신을 가르는 칼이다. 언어는 전체 의미 중에서 표현 가능한 부분만을 잘라 기표에 담으므로 진실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그래서 문학 하는 이들에게 언어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고통이다. 문학의 괴로움은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비-진실해지는 이 운명에서 비롯한다. 현실의 경험을 기표로 쪼개어 재조합하는 언어로는 그 어떤 실재에도 완벽히 다다를 수 없다. 현실을 조각내지 않는 언어는 과연 가능할까?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2011)은 진실을 조각내는 언어의 칼금과 대결하며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은 현실을 분절하는 한계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순수한 상태의 언어에 의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언어가 언어이기를 포기할 때 획득되기에 순수를 추구할수록 더욱 비-순수해지는 역설 속에 있다. 그 ‘순수’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어떤 인과나 합리적 추론으로 증명되는 참인 명제가 아니라 오직 몸으로 살아낼 때만 느끼는 힘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남자와 여자는 이 거대한 진실을 유한한 인간의 몸뚱이로 견디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진실은 영원한 실명, 여자의 진실은 계속되는 실어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실과 고통은 보상이나 처벌의 체계에서 비롯하지 않으며 당위나 인과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각자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영원히 실패한다. 예정된 실패의 운명 속에서 ‘희랍어 시간’이 길어 올리는 물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가이다. 이 궁극의 물음에 대해 소설은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파괴하는 재귀적인 답을 제시한다. 삶이 인간에게 들이미는 통각은 소거되어야 할 병증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생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은 인물의 아픔에 관한 원인을 굴착하기보다 그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 통과한다. 서사는 플롯의 인과와 시간의 합리적 흐름에 복무하지 않고 다만 고통의 양태와 통각을 소슬히 응시하기 위해 흐른다. 그래서 ‘희랍어 시간’에서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소설의 언어 역시 일반의 언어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요컨대 한강은 인간과 문학이 삶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 그러나 ‘왜’로 시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언제나 오류일 수밖에 없는 어떤 질문과 대결한다.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105쪽) 신성의 잠재태로서의 고통 ‘희랍어 시간’의 시간은 환(環)으로 흐른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26쪽) 소설에서 읊어지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첫 번째 장은 ‘1’에서 시작해 21번째 장까지 진행된 후 마지막 장에서 ‘0’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1에서 0을 향해 구부러지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삶이 전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사(前史)는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1) 남자와 여자는 ‘해부극장’ 연작에 나오는 백골의 전생이며, 백골의 고통은 곧 여자가 느끼는 통증이다. 그것은 말의 소리가 신체의 발음 기관을 경유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갈 때 발생하는 비릿하고 붉은 통각이다.2)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희랍어 시간’·165쪽) 여자의 고통이 언어가 파열될 때 발생한다면 남자의 고통은 반대로 무언가가 덩어리로 뭉개질 때 발생한다. 완전히 실명하게 되리라 진단받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그는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16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모국으로 돌아온다. 사물과 풍경의 날카로운 경계는 그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는 실명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남자의 삶 역시 독일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으로 분절되어 있으므로(“그때 내 인생은 거의 정확히 절반씩 두 언어, 두 문화로 쪼개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40쪽) ‘희랍어 시간’은 여자와 남자가 공유하는 고통 그 배면의 시간이다. 여자는 두 번째로 찾아온 실어 증상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고, 남자는 자신을 둘로 쪼개는 힘을 피해 “수천 년 전에 죽은 언어 (…)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119쪽)과 같은 희랍어 속으로 숨어든다. 이 공통의 시간 너머에 있는 그들의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백골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아픔은 단지 붉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성에서 비롯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파야만 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고통받는 인간은 신을 찾아 헤맨다.3)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의 고해는 세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발송되는 편지는 독일에서 살던 시절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장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를 욕망한다.(“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47쪽) 그는 “백치처럼 순진하게”(47쪽) 그녀에게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말을 해 보라고 요청한다. 남자는 그녀의 청각장애를 자신의 예정된 실명과 동등하게 고려하지 못한다. 그녀의 독순술이 그의 ‘결핍’을 보충하는 자질이 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누군가의 언어 행위는 그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언어는 강요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품는 모든 욕망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당화되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라 ‘백치처럼’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녀는 사과하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세계를 두 눈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왜곡되지 않은 상(像)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 사물을 보는 눈과 인간의 고통을 보는 눈은 다르다. 한편으로, 인간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다른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두 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여동생 란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앞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의 운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똑같은 병을 앓았던 아버지였음을 말한다. 그의 시력 상실은 부계 유전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스름이 정말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지”(82쪽)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끝까지 멀리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에 결국 실패하면서 삶으로부터의 자기 소외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어둠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빛 속으로 한 발짝도 걸어 나가지 못했던 셈이다. 이제, 앞서 소설이 던진 유일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도착한다. 인간이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혼 안에 어리석고 나쁜 것과 함께 어떤 좋음 또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능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새’는 그것의 체현물이며(“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145쪽) 말하자면 새는 인간이 생의 통각에 반응하는 마음의 일부로서 육체와 정신을 이어 준다. 새를 통해 인간은 육체의 통증을 실존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되겠지만, 인간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새’로 인해 자기 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를 두고 인간이 각자 품고 있는 어떤 신성(神性)의 잠재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유한자로서의 운명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은’ 차원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분명 신성하다. 요컨대 인간은 선험적인 신성을 배태하므로 고통받는다. 여자는 특히 이 신성의 언어적 측면이 육화된 존재다. 문자가 소리로 변할 때 언어가 겪는 분절의 고통을 그녀는 자기 몸의 통증으로 겪는다. 심장과 혀를 경유하여 귀로 도달하는 모든 파열하는 소리는 여자에게 폭력이다. 그래서 실어증은 파괴하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다. 침묵은 그녀를 에워싸고 보호한다. 실어의 원인은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55쪽)다. 여자는 언어의 신성 그 자체이지만 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란다. 어머니가 뱃속의 그녀를 지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 속 무언가의 실존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 아는 그녀는, 그래서 무언가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변형시키는 힘에 대해 온몸으로 대항한다. 그녀에게 폭력은, 어떤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자리로부터 박탈시키는 모든 종류의 유형력이다. 목소리 역시 그러하다. 음성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존재들을 밀어낸다.(“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쪽) 여자에게 말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실어는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랑의 행위-신의 사랑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는 대신 언어를 시선으로 번역한다. “신은 보는 존재이거나, 시선 그 자체인 건가요?”(104쪽)라는 대학원생의 물음은 반쯤 정답을 향해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참히 다룬 죄를 고해하고 받은 상처를 토로하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남자가 찾던 신의 모습은 여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과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소노그래피 그녀가 희랍어로 힘겹게 써 내려가는 시는 마치 예수가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서 썼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목구멍에 눈(雪) 눈두덩에 흙. (64쪽) 차가운 무덤 속에 묻힌 신의 눈에는 흙이 있고, 입과 목은 차가운 눈으로 막혀 있다. 그녀는, 신은 말할 수 없다. 무덤 안은 남자와 여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다. 카타콤베 묘지에 갔던 남자의 기억이 떠오른다. 여러분, 왜 관 속에 유골이 없을까요? (…) 박물관에 가져다놓은 거 아니에요? (…) 누군가가 훔쳐갔나요? (…) 다아 여기 있습니다. (…) 관 속에 보이는 흙을 분석하면 칼슘과 인 성분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면, 사람의 뼈가 삭아서 이런 흙이 되는 겁니다.(153쪽) 백골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남자는 자신이 곧 그 백골이라는 것을 안다.(“수천 구의 육체들이 뼈까지 깨끗이 삭아버린 거대한 무덤 속에, 그토록 따뜻한 몸을 가진 우리가 모여 있었다는 게.” 155쪽) 그는 구토감을 느낀다. 온몸에 묻은 죽음의 흙냄새와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여자에게 고해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가 정원지기인 줄로만 알고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 묻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다.(요한복음 20:15) 그는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신에게 거듭 질문한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말, 거기서 듣고 있나요?(161쪽) 두 사람의 과거로 구부러졌다 돌아오곤 하던 현재는, 남자와 여자가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는 배타적인 둘만의 시간, 즉 17장부터 21장까지의 시간 동안 직선으로 그러나 더 천천히 흐른다. 건물 안으로 날아온 새를 구하려던 남자는 발을 헛디뎌 안경을 깨뜨리고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한다. 밖으로 나온 여자가 남자의 소리를 듣고 그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밖으로 나간다. 빈자리들이 이상한 통각을 띠고 그녀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아보았다. 그녀의 시간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어긋난 것 같았다.(160쪽) 남자의 시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자신의 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39쪽) 두 사람의 대화는 남자의 빈자리가 발생시키는 시간의 진동을 여자가 감지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간의 감각은 파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남자는 여자의 구두 소리를 듣고 난간을 주먹으로 두드려 자신이 있음을 알린다.(“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진동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133쪽) 여자가 ‘들은’ 것은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몸 전체, 피부 세포에 닿아 그것들을 흔드는 진동이다. 그들의 대화는 시신경에 의한 시선도, 청신경에 의한 소리를 통해서도 아닌 바로 이 촉각의 소노그래피(sonography)를 통해 이루어진다.4) 시인이 존재들에게 엑스선을 투과시켜 백골들의 영상을 얻어낸다면(“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해부극장 2’)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는 소노그래피를 통해 육체의 말랑한 조직들, 피부나 혀, 심장에서 반향된 영상을 보여 준다. 엑스선은 말랑한 것들을 찍을 수 없고 초음파는 뼈를 투과할 수 없다. 통증은 말랑하고 붉은 것의 감각이다. 뼈에는 통각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뼈가 육신을 가졌을 적의 고통의 서사다. 소노그래피의 언어는 존재 자체가 내뿜는 파동이므로 소리로 쪼개지지 않는 언어다. 이것 역시 몸으로부터 유래하지만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55쪽) 가는 목소리가 갖는 폭력성은 없다. 여자가 말 대신 택한 시선의 언어 역시 그런 점에서 비육체적이다.(“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55쪽) 이때 접촉의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 배제된 상태의 대리보충, 즉 실제 피부의 감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5) 소노그래피의 촉각은 오감의 유무와 관계없이 존재가 뿜어내는 살아 있음의 파동, 즉 여자가 말한 ‘시간’의 감각이다. 한강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두 인물 사이에 반향되는 소노그래피를 형상화한다. ‘희랍어 시간’에는 큰따옴표나 작은따옴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자유간접화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유간접화법은 문장 안에서 형식적 서술자와 서술 내용이 담는 의식의 주인을 불일치시키며 서술자보다 인물을 부조한다. 그러나 한강의 문장에서 3인칭 화자는 남자와 여자의 의식 이면으로 유보되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곧장 전해지는 말은 인물의 목소리를 3인칭 서술자와 동일한 층위에 위치시키며 그들 간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모든 소리는 세계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자기 안으로 시를 틈입시킨다. 인용부호에 의해 절단되지 않는 하나의 커다란 말뭉치(corpus)를 만들어 내는 서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3인칭 서술자 각각의 인격을 부각한다.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한 공간-소설 안에서 인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시가 되고 그들의 모든 말은 행과 연의 형식으로 배열된다. ‘희랍어 시간’은 세 인격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 풍경(soundscape)이다.6)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 (…) 그녀는 그를 똑똑히 보고 있다. (…) 그늘진 그의 얼굴을,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건너다보고 있다.(169쪽) 촉각의 소노그래피가 만드는 소리 풍경 안에서 듣는 일은 곧 보는 일이며, 보는 일은 곧 듣는 일, 존재의 파동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진동은 소리가 글자로 박제되는 것과 달리 발생하고 감각되는 즉시 사라진다.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는 소노그래피는 존재를 파열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투명하게 통과한다. 모든 인물의 말이 인용부호 없이 제시되지만 특히 여자의 목소리는 서사 세계 안에서도 음성화되지 않는 가장 시적인 목소리다. 여자의 문장들은 기울어지면서 남자의 목소리와 구분된다.7) 19장 ‘어둠 속의 대화’ 후반부에는 이렇게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두 사람의 파동이 중첩되는 대목이 있다.8) 서사 표층에서 실제로 발화되는 음성은 남자의 목소리뿐이므로 소노그래피가 아니라 일반적인 감각으로 읽어낼 경우, 소설은 오직 남자의 독백으로만 가득 찬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각자가 소환하는 기억의 단위들로 교환되며 소리가 아닌 언어, 파동의 접면들이 교차하며 이루어진다.(“잉크 위에 잉크가, 기억 위에 기억이, 핏자국 위에 핏자국이 덧씌워진다.” 155쪽) 언어의 칼금을 막아내기 위해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소설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 겹치며 일으키는 간섭을 현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화해할 수 없었다.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모든 곳에 있었다. (…) 독한 취기 같은 피로가 그녀의 의식을 둔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꿈인 것처럼, 아주 먼 곳에서부터 토막토막 끊긴 채 울려온다.(166쪽) 여자의 파동은 남자에게로 전해진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167쪽) 여기서 남자의 응답은 여자의 파동과 똑같은 기울임체로 발화된다. 두 존재가 고막을 통해 소리를 교환하지 않고도, 살을 맞대지 않고도 그 무엇보다 깊은 층위에서 교감하는 장면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거로 여러 통의 편지를 쓰던 인간은 신의 고통 안에서 그와 함께 현재적으로 공명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여자의 그것으로 중첩되며 같은 기울임체로 서술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그것으로, 다시 말해 기울어진 목소리가 평평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여자는 신성의 체현자이기 때문이다.(“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78쪽) 구원의 빛이 침묵의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 이제, 소설의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답이 제시된다.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감각하는 신성이 서로에게 중간태인 동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가 아닌 제3의 태, 중간태가 있다.(18쪽) 중간태는 어떤 행위가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게 했던 행위가 다시 주체로 돌아오는 이 재귀적 운동은 소노그래피의 언어가 보이는 양태다. 소노그래피의 방식은 그 자체로 중간태적 추론이다. 그는 대상에게로 뻗어 나간 자기 파동의 반향을 소노그램으로 읽어 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의 원인을 축자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하는 일이다.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하더라도 고통은 결코 동일한 정도로 감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와 같은 유전질환으로 인해 시력을 이미 잃은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동일한 조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주파수를 오롯이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일이다. 가령, 남자가 곧 실명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불투명한 비닐봉지를 자기 눈에 갖다 대며 “이건 소파고 이건 책장이야. (…) 이렇게 걸어도 안 넘어질 수 있어.”(146쪽)라며 일부러 왔다 갔다 하던 여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오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칠 ‘어둠’이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을 거라는”(147쪽) 위로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은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점근선의 영역이다. 반면 마지막 고해, 요아힘과의 이야기는 남자 역시 언어의 육체성이 자아내는 폭력을 경험했음을 들려준다. 그 폭력은 곧 타인의 고통을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포획하여 해석해 버리는 일이다. 요아힘은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욕망을 타인과 자신의 고통 안에서 어떻게 겹쳐 두어야 하는지 모르므로 남자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는 고통의 완전한 극복과 단절을 믿는다. 시한부 선고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10쪽) 말하는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꼭 같은 경험을 몸의 기록으로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어둠과 죽음의 병실을 물리친 그에게 생의 감각은 생동하는 육체의 폭발적인 감각, 물컹하고 뜨거운 것이다. 요아힘은 여자에게는 고통이었던 육체적인 것과의 접촉을 갈망한다. 남자가 어둠을 품은 이라면 요아힘은 빛의 질서를 품은 이다. 남자가 비논리와 모순을 껴안는 문학을 사랑한다면 요아힘은 사고를 명징하게 자르는 철학을 사랑한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고 믿는 이의 강한 확신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누구보다도 눈을 멀게 만든다. 자신이라면 완전한 어둠이 다가올 그때를 위해 점자를 배워 두겠다는 철학자의 명랑한 조언은 남자의 신앙인 소멸의 이데아를 산산조각 낸다. 다시 한번, ‘백치처럼’ 순진한 이 조언은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아힘에게 그것은 단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118쪽) 이것 봐.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118쪽) 빛이 소멸한 세계에서 앞으로의 생을 계속해야 하는 남자에게 요아힘의 논증, 어둠 속에는 좋음의 이데아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반박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꺼트린다.(“네 말을 들은 순간,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118쪽) 그래서, 점자를 통해 남자와 진정으로 닿기를 바라던 요아힘의 욕망은 언어의 폭력적인 육체성과 실상 같은 것이다. 남자는 요아힘으로부터 깨닫는다. 자신이 독일에서 여자에게 던진 사랑의 말, 너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할 테니 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그 고백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받은 상처로부터 타인에게 준 상처를 깨달은 마리아는 이제 눈앞에 현전한 예수ㅡ언어의 육신을 본다. 신과 인간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한데 뒤섞인다. 남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의 파편들,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희랍어 시간의 여자 그 자체다. 그녀의 이름은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100쪽)이다. 고통받는 두 인간의 신성은 한데 섞이고 소노그래피는 중첩된다. 말할 수 없는 이와 볼 수 없는 이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해는 공통원소 없는 그 존재들의 배면에서 투명한 파동을 통해 전해진다. 파동은 한 곳으로 수렴하지 않고 서로의 몸 안을 투과하며 지나간다. 이제, 신은 요아힘과는 다른 ‘접촉’의 방식으로 남자를 구원하고 눈으로 목이 막혔던 그녀 역시 그 구원으로 인해 부활한다. 따로따로 제시되던 목소리는 한 연으로 묶이면서 말을 주고받는 직접적인 대화의 국면에 도달한다. 1인칭 단수 화자들은 ‘우리’를 직감한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167쪽) 구원은 끝없이 멀어지는 존재가 내 안으로 들이닥쳐옴을 느낄 때 일어난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는 말을 남기며 떠나간다.(요한복음 20:17) 멀어지는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이 말은 타자를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납치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타자를 몇 번이고 무한히 떠나보냄으로써 그의 존재를 부조하라는 율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부축해 그의 집까지 데리고 온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쓴다. 그녀가 그에게 최초로 대답한 말은 떠난다는 말이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171쪽)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이 접촉은 소설이 시종일관 지양해 온 폭력적인 접촉과 다르다. ‘어둠 속 대화’의 절정 이후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두 몸의 접촉 이후 다만 ‘모른다’는 진실의 무자비한 범람만이 남자를 압도한다.(“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183쪽) 그가 그녀를 안자마자 뒤이어 열네 번의 ‘모른다’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그래서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까지도 둘의 접촉은 항구적인 비접촉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현전하는 단 하나의 진실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184쪽)나는 ‘시간’이다. 마리아는 이제 떠남 속에서 빛이 아닌 어둠을 본다. 이때의 ‘봄’은 시각과 무관하게 생의 파동을 온몸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의미하지 않는다.9) 그것은 죽음 안에서 떠나가는 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구원은 영생이 아니라 떠나감의 현전 안에서 일어난다. 보르헤스가 말한 시간-존재를 태우는 불(122쪽)이 여자와 남자를 통과하고 나면 새는 날아가고 백골만이 남는다. 개별 존재의 신성이 육신 속에서 체현된 것이 새라면 죽음 이후부터 그 신성은 뼈들이다. 플라톤이 말했듯 진실에 대한 앎은 전생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상기할 뿐이다. 전생의 기억은 시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빛도 소리도 그곳에는 없었지요. (…) 마침내 당신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까지, 입술 사이로 둥글고 가냘픈 물거품이 새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185~186쪽, 21장 ‘심해의 숲’) ‘심해의 숲’의 다른 이름은 ‘해부극장 3’으로 부활 이후 무덤가에 나란히 누운 여자와 남자의 그림이다.10) 죽었던 신과 고통받는 인간이 함께 나란히 누울 수 있다면, 인간의 신성은 더는 논증이 불필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의 신성과 달리 인간의 신성은 죽음으로부터 몸을 ‘일으켜’ 고통을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다만 죽음 안에서 옆에 누운 다른 이의 뼈를 쓰다듬는 일이다.11) 구원을 바라던 신은 부활하여 드디어 입술을 연다. 시종일관 남자의 목소리를 사용하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0’에서 오직 한 번 여자의 목소리로 발화한다. 현전하는 이 말씀, 로고스는 음성도 문자도 아니다. 그것은 그 무엇도 파괴하고 밀어내지 않는 언어, 촉각으로 전해지는 파동의 말씀이다. 남자와 여자는,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어긋나는 방식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결국, 구원의 반증은 ‘우리’라는 단어다. 그래서 소설은 ‘0’의 끝에서 다시 ‘1’로 돌아간다. 신은 말한다. 에모스, 에메테로스. 나의, 우리들의.(10쪽) 역설의 구원 한강의 문학에서 시간은 정말로 환(環)처럼 흐른다. 그러므로 ‘희랍어 시간’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읽은 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는 눈사람이다.(‘작별’12)) 언 몸이 진눈깨비로 흩날리며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눈사람은 남자가 갈망하던 소멸의 이데아의 현현이면서 새와 백골의 중간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많은 것을 안다. 그는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몸 안의 심장을 얼리는 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150쪽)다고 확신한다. 아이와 애인과 가족과 작별하며 그가 마주하는 최후의 질문은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150쪽)이다. 이는 ‘희랍어 시간’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물음이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13)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최후까지 남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눈(雪)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소멸하는 것처럼 한강의 인물들은 사랑할수록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바로 그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서로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작별’, 133쪽)가 된다. 나와 당신은 같아질 수 없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나를 떠나는 중이므로 나는 당신과 연결된다. 눈사람은 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실체는 다만 촉각의 소노그래피뿐이며 그것은 “변함없이 진동하며 두 사람 사이에 고요히 걸쳐져 있”(134쪽)음을 안다. 그리고 이 파동을 타고 전해지는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어서 거의 인간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134쪽)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은 강렬한 접촉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멀어지는 ‘사이’에서 전해진다. 언어는 이때 비로소 완전한 순수에 도달한다. 의미는 분할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따옴표로 분절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행과 연을 만들면서 소설 속에 시를 쓴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죽음 안에서 삶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작별’과 ‘희랍어 시간’의 마지막 장면이 모두 두 존재의 입맞춤으로 끝나는 것은 붉은 혀와 입술이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일 테다. 우리는 서로를 만지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감각한다. 나의 파동이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살이 아니라 다만 당신의 뼈, 시간의 불에 타고 남은 마지막 눈의 결정이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기에 당신은 나를 구원한다. --------------------------------------------------------------------------------------------- 1) 시집의 해설을 쓴 비평가 역시 한강의 시들은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의 화자들을 ‘희랍어 시간’ 속 남자와 여자로 잠시 연결하며, ‘희랍어’를 “순수한 언어의 능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조연정,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42~143쪽.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한강, ‘해부극장 2’, 한강, 위의 책. 3)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한강, 위의 글. 4) 소노그래피는 초음파를 이용해 시각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5) 양현진은 실명과 실어가 몸짓, 촉각에 의한 소통에 주목하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과 몸짓만을 대화로 보는 것은 국소적인 독해다. 소설에서 시각과 청각이 배제될 때 도드라지는 것은 시간, 즉 파동의 흐름이다. 양현진, ‘한강 소설의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 ‘한국문학이론과비평’, 70집,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6. 6) 사운드스케이프는 여러 가지 소리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듣는 영상’으로 단지 소리가 만드는 공간적 환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지각하는 청취자의 지각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다. 7) 한강은 대상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기울임체를 사용한다. 시집에 수록된 ‘해부극장 2’의 백골과 ‘조용한 날들 2’에 등장하는 달팽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나타난다. “(건드리지 말아요) (…)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8)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파동은 동일한 공간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두 파동이 동일한 지점에서 교차할 때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파동의 중첩 현상이라 한다. 9)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장뤼크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37쪽. 10) 한강의 시 ‘해부극장’ 연작은 두 편뿐이지만 소설의 ‘심해의 숲’은 남자가 쓰는 또 한 편의 시다. 11) 낭시는 예수의 부활을 수직 변화로 이해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인간의 신성은 수평적이다.“이 ‘자세’가 (…) ‘부활’을, 다시 말해 ‘들어올림’이라는 사태를 만든다. (…) 무덤의 수평성과 직각을 이루는 수직성으로서의 들림 혹은 일으켜 세움인 것이다.” 장뤼크 낭시, 위의 글. 12) 한강, ‘문학과 사회’, 2017년 겨울호, 문학과지성사. 13) 한강, ‘회상’, ‘서랍에’, 문학과지성사, 2013.
  • [동화 심사평] 흑백논리에 갇히지 않고 ‘디지털원주민’ 멋지게 형상화

    [동화 심사평] 흑백논리에 갇히지 않고 ‘디지털원주민’ 멋지게 형상화

    어린이의 심리적 특성을 고려해 한 문장도 낭비하지 않도록 정확하고 신중하게 선택된 언어로 함축적이며 생생한 문학적 경험을 전하는 것이 동화다. 좋은 동화는 삶의 한 조각을 통해 세계의 의미를 드러내거나, 스스로 평생 풀어야 할 수수께끼를 가슴속에 심어준다. 올해 응모작은 이런 기준에서 어느 해보다 수준이 높았다. ‘축구가 제일 쉬웠어요’는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제의식 속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장애 아닌 장애라는 점을 환기하는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주제로만 수렴되는 것이 아쉬웠다. ‘아기감기’는 ‘아기감기’에 걸려 아이가 된 아빠를 돌보는 인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다만 이런 ‘역할 바꾸기’가 동화를 통해 위로받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심리가 무의식중에 투영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앙앙’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다시 만난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린다. 새 반려견을 들인 것 때문에 눈치를 보는 주인공, 삐진 듯하면서도 이를 이해하는 앙앙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구름이 돼 따뜻한 곳을 찾아 마음껏 뛰노는 개들의 사연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야만성을 돌아보게 한다. 다만 이런 소재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졌다는 점이 아쉽다.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는 스마트폰 자동글자완성 기능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일기를 쓰게 되는 아이의 모습을 재치 있게 그렸다. 흑백 논리에 갇히지 않고, 디지털원주민으로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멋지게 형상화했다. 심사위원은 우리 아이들이 ‘포노사피엔스’로서 어떻게 슬기롭게 살아갈 것인지를 예견하는 이 작품에 손을 들기로 했다. 끝으로 본심평에 언급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한 작품이 여럿 있었음을 꼭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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