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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도는 용의 기세…휘감는 꿈의 기운

    휘도는 용의 기세…휘감는 꿈의 기운

    충남 홍성 용봉산(381m). 이름 한번 거창하다. 야트막한 산인데도 ‘용’(龍)과 ‘봉’(鳳) 등 전설적인 동물들을 이름으로 삼았다. 안내판은 이름의 유래를 이렇게 적고 있다. “산세가 운무 사이를 휘도는 용의 형상과 달빛을 길어 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봉산이라 부른다.” 새해는 푸른 용의 해다.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면서 용의 기운까지 받을 수 있는 산을 찾고 있다면 용봉산이 제격이다. 봉우리마다 기암을 이고 있어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용의 형상과 봉황 머리를 닮았다’ 용봉산은 말 그대로 가성비가 좋은 산이다. 짧고 굵다. 가파르지만 위험하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산은 작은데 등산 코스는 여럿이다. 용봉초등학교를 출발해 투석봉과 정상, 노적봉, 악귀봉 등을 찍는 종주 산행은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행 삼아 용봉산을 찾은 이들에겐 다소 긴 코스일 수 있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출발해 정상만 찍고 오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소요 시간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한데 너무 야박하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용봉산의 정수를 돌아보려면 노적봉과 악귀봉까지는 다녀와야 한다. 용봉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3시간 남짓 걸리는 코스다. 용봉산을 찾는 산객들 대부분이 이 코스로 오른다. 코스가 그리 길지 않아 출근 전에 운동 삼아 오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용봉산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 숙박객은 물론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 등 각종 시설이 잘 갖춰졌다. 하늘엔 아직 별이 총총이다. 부지런히 오르면 용봉산 정상에서 해가 돋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사위가 캄캄할 때 단독 산행에 나서는 것이 마뜩잖은 이도 있을 터다. 한데 용봉산엔 새벽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혼자 산에 오르는 걸 겁낼 필요 없다. 두런거리며 앞서가는 이들을 자박자박 따르다 보면 금세 정상이다. 용봉산은 조금만 올라도 하늘이 트인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내포신도시가 펼쳐져 있다.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신도시다. 도시의 가로등과 아파트 불빛 등이 어우러져 제법 볼만한 풍경을 펼쳐낸다. 다가오는 ‘푸른 용의 해’ 마중할까노적봉~악귀봉 기암괴석 줄줄이바위 틈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 ●새벽 산행 자박자박 걷다 보니 정상 용봉산 정상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평소보다 더 자주, 더 길게 쉬며 오른다. 땀을 내지 않기 위해서다. 겨울 산행에선 가급적 땀을 흘리지 않는 게 좋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도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용봉산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그렇다. 정상에서 산객을 맞는 건 이른바 ‘길냥이’들이다. 랜턴을 비추면 수십 개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먹이를 던져 주는 산객이 많아 정상 일대를 거처로 삼은 듯하다. 용봉산 정상은 사실 표지석 외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향하는 암릉길이다. 불과 300여m 거리지만 사자바위, 물개바위 등 기암괴석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노적봉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노적봉 아래 바위에는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가 뿌리박고 있다. 이른바 ‘용봉산의 보물’이라 불리는 소나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놀랍다. 분재처럼 앙증맞은 크기지만 수령이 100년을 넘나든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엔 어느 하나 만만히 볼 게 없다. 여기부터 암릉 산행은 절정을 이룬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지고 거대한 바위 군락을 넘어설 때마다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예산의 덕숭산, 서산의 가야산, 내포평야가 시원스럽게 다가오고 동쪽으로 금마천과 삽교천이 느릿하게 흐른다. 악귀봉은 봉우리 전체가 기암괴석의 집합체다. 행운바위, 물개바위 등 용봉산에서 유명한 바위들은 죄다 여기 모인 듯하다. 악귀봉을 내려서면 임간휴게소다. 여기서 용바위를 거쳐 신경리 마애석불로 내려선다. 마애석불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홍진세계에서 온 중생을 토닥거리기라도 하는 듯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홍주읍성 등 문화유적 둘러보고남당전망대 눈부신 ‘장밋빛 노을’갯벌서 방금 캔 석화는 탱글탱글 ●신경리 마애석불, 나를 토닥거리네 병풍바위를 등지고 용봉사가 단아하게 앉아 있다. 개창 연대는 백제 말로 거슬러 오르지만, 여러 전란과 화마를 거친 탓에 1905년 새로 지어 올렸다고 한다. 절집은 소박하다. 대웅전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영산회괘불탱화’(보물)가 보관돼 있다. 지방의 소도시지만 홍성엔 뜻밖에 문화 유적이 많다. 대부분 읍내 중심부에 몰려 있어 돌아보기도 수월하다. 홍주읍성부터 간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옛 성벽이다. ‘홍주’는 홍성의 옛 이름이다. 홍주읍성의 성벽 둘레는 축성 당시 1772m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800m가량 남았다. 읍성 안에 있던 옛 관아 건물과 성곽 문루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 파괴됐다. 조양문과 군청 정문처럼 쓰이는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이 복원돼 남아 있다. 홍주아문 옆엔 해마다 성탄 트리가 세워진다. 고색창연한 조선시대 유적과 현란한 성탄 트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홍성 주민들의 인증샷 명소이기도 하다. 이제 홍성의 바다로 나간다. 서해 쪽이다 보니 아무래도 해넘이 풍경이 빼어난 공간들이 많다. 요즘 가장 ‘힙’한 노을 명소는 세 곳이다. 남당노을전망대는 남당항 바로 옆에 있다. 해 질 무렵이면 해변의 모래들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물든다. 옅은 장밋빛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이 느낌이 참 좋다.●연인 조형물 ‘행복한 시간’ 핫플로 바로 이웃한 어사리 노을공원은 요즘 핫플로 뜬 곳이다. 연인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 ‘행복한 시간’ 덕에 요즘 한창 사진 명소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노을공원 바로 아래에 주민 공동작업장이 있다. 해거름에 갯일 마치고 돌아오는 어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갯벌에서 방금 캔 석화도 살 수 있다. 속동전망대는 뭍과 바짝 붙은 섬에 조성한 전망대다. 요즘 홍성 스카이 전망대 공사가 한창이다. 홍성엔 역사책에서 자주 봤던 위인들의 탄생지가 많다. 홍성 북쪽의 홍북읍은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이웃한 노은리엔 조선 초의 충신 성삼문 유허지가 있다. 독립투사들의 유적지는 ‘홍성 8경’으로 지정해 알리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강하다는 방증일 터다. 홍성 서쪽엔 한용운(3경), 김좌진(7경) 생가지가 이웃해 있다. ‘만주벌 호랑이’ 김좌진 장군은 저 유명한 ‘청산리 대첩’을 이끈 독립투사다. 갈산면 행산리에 그의 생가와 기념관, 사당 등이 조성돼 있다. 인접한 결성면에선 만해 한용운이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하고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는 등 저항문학에 앞장선 인물이다. 생가 주변에 민족시비공원, 만해문학체험관 등이 있다. ■ 여행수첩 산행의 피로는 온천에서 푼다. 용봉산에서 예산 덕산온천이 지척이다. 스플라스 리솜은 용출온도가 약 50℃에 달하는 온천수를 활용해 워터파크, 스파, 리조트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휴식 공간이다. 오는 24일 ‘비보이 산타 스페셜 공연’, 31일 ‘굿바이 2023 스페셜 공연’ 등도 선보인다.
  • 나의 뇌에 여럿의 자아가 연결된다면…나는 나인가

    나의 뇌에 여럿의 자아가 연결된다면…나는 나인가

    “뇌사 판정을 받았던 남편이 오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황당하면서도 강렬한 첫 문장이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의문문을 끝없이 반복하는 소설의 독특한 문체 탓일까. 이야기를 진행해도 의혹은 좀체 해소되지 않는다. 책을 덮었을 땐 두 가지 묵직한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세계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황모과의 신작 SF소설 ‘노바디 인 더 미러’(아작)는 하나의 뇌에 여러 자아를 연결하는 기술 ‘브레인 페어링’이 현실화했을 먼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다. 2019년 ‘모멘트 아케이드’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의 이번 소설은 첫 장부터 독자를 꽉 붙들고 끝까지 놔주지 않는다. “인간의 뇌파 움직임을 고스란히 재현한 인공 뇌를 만들었는데, 그 뇌가 자아를 갖게 된다면 그건 사물인가요, 사람인가요?”(65쪽) 기능이 멈춘 뇌사자의 뇌에 살아 있는 인간의 뇌파를 이식한다. 그러자 뇌가 별안간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혜’의 남편 ‘영일’도 뇌사에 빠졌다가 이 기술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 남자는 이혜가 예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김영일의 뇌에 보존된 기억을 꺼내 볼 수는 있으나 김영일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49쪽)로 정의된다. “평균적인 인식을 벗어난 말을 하는 젊은 여자는 작은 발언에도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요.”(51쪽) 전작처럼 예민한 젠더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송곳처럼 삐죽한 문장들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황모과는 이름뿐 아니라 성씨도 필명이다. 황씨는 어머니의 성”이라며 “부계 쪽 친척들이 다소 서운해하실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지 시대와 단절하겠다는 내 결심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제 몸으로 모두의 존재가 한꺼번에 그리고 한없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울분과 슬픔과 허망함과 살해 충동, 모두의 감정과 의지가 제 몸을 통해 폭발했습니다.”(103쪽) 현실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박탈당한 여성(또는 존재)들은 브레인 페어링을 통해 이혜의 뇌에서 연대한다. 하나의 몸을 공유하며 서로의 반려자가 된다. ‘아줌마 좀비’로 불렸던 ‘주희’를 시작으로 ‘수연’, ‘용현’, ‘유정’ 그리고 고양이와 토끼에게도 이혜는 기꺼이 몸을 내준다. 처음엔 의식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경쟁도 있었지만 이내 질서를 회복하고 서로의 필요에 따라 몸을 차례로 점유한다.“사람의 의지나 욕망, 또는 중독이라는 것도 단기간에 특정한 방식으로 외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148쪽)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나’라고 여기는 존재는 어쩌면 미디어를 통해 나의 몸에 전사된 수많은 ‘타인’이 아닐까. 마치 하나의 몸에 여러 자아가 깃든 이혜의 몸처럼 말이다. 내가 과연 나인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거울 속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허망함”(151쪽)도 느끼지만 작가의 말은 자못 긍정적이다. “작가 정체성을 포함해 인생에 그 어떤 경력도, 성취도, 자산도 남지 않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자부할 수 있을까? (…)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 모두 해체됐을 때도 내가 나일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그 순간에 함께했던 타자들 때문일 거라 믿는다.”
  • ‘돈 먹는 하마’ 오사카 엑스포…운영비 40% 늘어난 1조원 돌파

    ‘돈 먹는 하마’ 오사카 엑스포…운영비 40% 늘어난 1조원 돌파

    2025년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회장 운영비가 당초 전망한 809억엔(7410억원)에서 40% 증가한 1160억엔(1조 62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전시회장이 완공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상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어 일본 국민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4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국제박람회협회는 이날 도쿄에서 이사회를 열고 엑스포 전시회장 운영 비용에 대해 논의했다. 협회는 2020년 12월 결정한 기본계획에서 운영비를 809억엔으로 정했지만 이를 1160억엔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운영비는 박람회장 안내·통신·시스템 정비·광고 등에 사용되며 협회 측은 인건비 상승 때문에 운영비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회는 이처럼 늘어나는 운영비용을 입장권 수입으로 970억엔(8885억원) 조달하고 기념품 판매 등으로 190억엔(174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2025년 일본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와 관련해서 늘어난 비용은 운영비뿐만이 아니다. 앞서 건설비용도 대폭 올린 바 있다. 지미 하나코 일본 엑스포담당상(장관)은 지난달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엑스포 개최 장소 정비 비용인 2350억엔(2조 1526억원)과 별도로 엑스포의 꽃인 파빌리온(전시장)의 건설 비용이나 개발도상국 지원 등 추가 부담이 837억엔(7667억원)에 달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건설비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제계가 각각 3분의 1씩 내지만 운영비는 협회가 전액 부담한다. 다만 지난달 30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엑스포 입장권이 성인 기준 7500엔(6만 8700원)으로 비싸다는 지적이 많아 계획대로 수익을 달성할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엑스포에 필요한 비용이 천문학 수준으로 늘어나자 엑스포 개최를 반대하는 일본 내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NHK가 지난 8~20일 12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엑스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69%에 달했다. ‘관심이 있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 “전쟁의 반대말은 어린이”…점옥이 눈에 담긴, 서럽도록 푸른 비극의 그날[이주의 어린이책]

    “전쟁의 반대말은 어린이”…점옥이 눈에 담긴, 서럽도록 푸른 비극의 그날[이주의 어린이책]

    점옥이 오승민 지음/문학과지성사/64쪽/1만 8000원 영문도 모를 일이었다. 시월의 그날, 암흑처럼 검은 큰 새가 날아와 까만 씨앗을 떨어뜨린다. 집과 밭에 빨갛고 노란 꽃들이 쿠궁쿵 대지를 뒤흔들며 피어나자 꽃밥을 나눠먹던 언니도, 꽃밥을 지키던 백구도 자취를 감춘다. 함께 소꿉을 놀던 오동나무 밑을 점옥이 혼자 우두커니 지킨다. ‘언니는 어디 있을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이 비와 바람이 점옥이 얼굴을 서서히 지운다. 헝겊 인형 점옥이의 눈에 비친 여순항쟁의 비극이다. 작가는 어른, 아이, 동물 할 것 없이 ‘파랑’이 묻은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그 날의 참혹을 서럽도록 푸르고 아득해지도록 아픈 검은 색조의 그림에 켜켜이 재현해냈다.장면 장면마다 서사를 응축하고 있는 그림의 깊이와 아름다움도 빼어나지만 순진무구한 점옥이의 말투로 이야기를 이끄는 시적인 문장들은 감정선을 더 깊이 파고들며 잊혀진 기억을 현재로 불러들인다. 오지 않을 언니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점옥이는 지워지고 바스라져 간다. 하지만 점옥이가 느꼈을 슬픔과 통증은 서서히, 또렷이 배어들며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되새기게 한다. 김지은 아동문학 평론가는 “작가는 어린이의 반대말은 전쟁이라고 말한다”며 “그림책 속의 푸른색이 겹겹이 서럽게 시려서 책을 읽고 나서는 눈물 없인 눈을 뜰 수 없었다”고 했다. 삶의 곡절과 인간 감정의 심연을 꿰뚫는 작가의 푸른색은 마지막 장면, 그 모든 비극을 지켜보며 우뚝 자란 오동나무 꽃의 보랏빛으로 영근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는 전쟁의 한복판에도 생기과 희망의 보랏빛이 피어나길 바라는 염원처럼.
  • 남편의 탈을 쓴 낯선 존재…거울 앞에 선 나는 누구인가

    남편의 탈을 쓴 낯선 존재…거울 앞에 선 나는 누구인가

    “뇌사 판정을 받았던 남편이 오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황당하면서도 강렬한 첫 문장이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의문문을 끝없이 반복하는 소설의 독특한 문체 탓일까. 이야기를 진행해도 의혹은 좀체 해소되지 않는다. 책을 덮었을 땐 두 가지 묵직한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세계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황모과의 신작 SF소설 ‘노바디 인 더 미러’(아작)는 하나의 뇌에 여러 자아를 연결하는 기술 ‘브레인 페어링’이 현실화했을 먼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다. 2019년 ‘모멘트 아케이드’로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의 이번 소설은 첫 장부터 독자를 꽉 붙들고 끝까지 놔주지 않는다. “인간의 뇌파 움직임을 고스란히 재현한 인공 뇌를 만들었는데, 그 뇌가 자아를 갖게 된다면 그건 사물인가요, 사람인가요?”(65쪽) 기능이 멈춘 뇌사자의 뇌에 살아 있는 인간의 뇌파를 이식한다. 그러자 뇌가 별안간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혜’의 남편 ‘영일’도 뇌사에 빠졌다가 이 기술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 남자는 이혜가 예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김영일의 뇌에 보존된 기억을 꺼내 볼 수는 있으나 김영일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49쪽)로 정의된다. 젠더적 위계 파헤치는 예리한 시선 “평균적인 인식을 벗어난 말을 하는 젊은 여자는 작은 발언에도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요.”(51쪽) 전작처럼 예민한 젠더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송곳처럼 삐죽한 문장들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황모과는 이름뿐 아니라 성씨도 필명이다. 황씨는 어머니의 성이다”라며 “부계 쪽 친척들이 다소 서운해하실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지 시대와 단절하겠다는 내 결심을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제 몸으로 모두의 존재가 한꺼번에 그리고 한없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울분과 슬픔과 허망함과 살해 충동, 모두의 감정과 의지가 제 몸을 통해 폭발했습니다.”(103쪽) 현실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박탈당한 여성(또는 존재)들은 브레인 페어링을 통해 이혜의 뇌에서 연대한다. 하나의 몸을 공유하며 서로의 반려자가 된다. ‘아줌마 좀비’로 불렸던 ‘주희’를 시작으로 ‘수연’, ‘용현’, ‘유정’ 그리고 고양이와 토끼에게도 이혜는 기꺼이 몸을 내어준다. 처음엔 의식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경쟁도 있었지만, 이내 질서를 회복하고 서로의 필요에 따라 몸을 차례로 점유한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사람의 의지나 욕망, 또는 중독이라는 것도 단기간에 특정한 방식으로 외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148쪽)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나’라고 여기는 존재는 어쩌면 미디어를 통해 나의 몸에 전사된 수많은 ‘타인’이 아닐까. 마치 하나의 몸에 여러 자아가 깃든 이혜의 몸처럼 말이다. 내가 과연 나인지 의심되는 상황에서 “거울 속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허망함”(151쪽)도 느끼지만, 작가의 말은 자못 긍정적이다. “작가 정체성을 포함해 인생에 그 어떤 경력도, 성취도, 자산도 남지 않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자부할 수 있을까? (…)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 모두 해체됐을 때도 내가 나일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그 순간에 함께했던 타자들 때문일 거라 믿는다.”
  • 尹, 포니부터 이어진 네덜란드 협력 부각… “반도체는 양국 협력 상징”

    尹, 포니부터 이어진 네덜란드 협력 부각… “반도체는 양국 협력 상징”

    尹, 한·네덜란드 비즈니스 포럼 참석한국전 참전용사 간담회 보훈 행보도순방 답례 문화행사 후 국왕 내외 환담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한국과 네덜란드의 기업인들을 만나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들의 든든한 조력자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윤 대통령은 이날 한·네덜란드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네덜란드는 60여 년 전에 한국이 유럽과의 무역을 본격화하기 위해 최초로 무역관을 개설한 국가다. 1979년 한국의 첫 국산 자동차인 포니가 유럽 시장의 문을 처음으로 두드린 곳이 바로 이곳 암스테르담”이라면서 네덜란드와 한국의 관계를 부각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국 협력관계 구축에 기여해 온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미래 협력방향을 제시했다. 마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반도체 동맹’ 구축을 발표한 윤 대통령은 “반도체는 오늘날 양국 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의 ASML과 한국의 삼성, SK하이닉스는 상호보완적이고 호혜적인 협력을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양국 간 협력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반도체 분야의 전략적 연대를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반도체 동맹에 대해 “우리 두 나라가 정부, 기업, 대학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반도체 동맹으로 발전하는 튼튼한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양국 기업들은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우고, 대학원생들이 최첨단 기술을 함께 배우며 정부 간에는 반도체 대화 채널을 개설하기로 했다”며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달성을 위해 원전, 수소, 해상풍력 등 무탄소 에너지 분야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포럼을 계기로 양국 기업 및 기관들은 ▲첨단산업 ▲무탄소에너지 ▲물류 ▲농업 등 분야에서 총 19건의 계약 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부는 MOU가 구체적인 성과로 조기에 가시화되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포럼은 양국 간 최초로 개최되는 대규모 비즈니스 포럼이다. 한국 측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황주호 한수원 사장,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 등이, 네덜란드 측에서는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말튼 디얼크바거 NXP 최고전략책임자(CSO), 잉그리드 타이센 VNO-NCW(네덜란드 경영자협회) 회장 등 양국 경제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윤 대통령은 비즈니스 포럼에 앞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간담회에서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지금 누리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우리 정부와 국민은 70여 년 전 공산 침략에 맞서 싸운 네덜란드 청년들이 흘린 피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며 “그러한 감사의 마음 위에 양국의 굳건한 연대가 지속되어 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담회에는 특별 참석자인 카투사 출신 최병수(90)씨를 비롯해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한국전 참전용사와 유가족,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임원, 양국 정부인사 등 50여 명이 자리했다. 최씨는 한국전쟁 당시 네덜란드 부대의 부대원으로 원주, 횡성지구 전투에 참전했으며 이곳 암스테르담에서 70여년 만에 옛 네덜란드 전우들과 다시 만났다. 또 이 자리에선 한국전 참전용사 코르트 레버르(93)에게 6·25전쟁 참전 유공자 단체복인 ‘영웅의 제복’이 전달됐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비즈니스 포럼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AFAS 라이브에서 열린 ‘네덜란드 순방 답례 문화행사’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한국 전통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 다양성을 유럽 사회에 알린 답례 문화행사 공연에 박수를 보내고, 공연이 끝난 뒤 네덜란드 국왕 부부와 환담을 가졌다. 행사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보유자인 신영희 명창과 승무 보유자인 채상묵 명무, 가곡 종목의 김영기 보유자, 국립국악원 연주 단원 등 국악인들이 출연해 국악을 소개했다. 특히 국빈 초청의 답례에 부합하기 위해 신 명창이 조선시대에 네덜란드에서 귀화한 조선의 무관 더벌터브레이(한국명 박연)와 제주도에 표류해 서양에 한국을 처음 알린 하멜의 이야기를 판소리 단가 형태로 구성하여 한국과 네덜란드의 뿌리 깊은 인연을 전했다. 판소리 이수자 박애리, 남상일씨가 네덜란드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에 대한 이야기를 몇 사람의 창자가 소리를 하는 입체창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불교 사찰 승려의 춤을 표현한 승무, 국악원 민속악단의 기악합주, 시조와 민속무용 장구춤, 서도민요 등도 선보였다. 끝으로 신 명창과 박애리씨, 남상일씨가 합창으로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국악원 민속악단의 판굿으로 공연이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는 네덜란드와 1961년 수교 이후 첫 국빈 방문에 따른 문화행사로, 한국의 전통음악을 통한 양국의 문화적 교류와 우호 증진에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 시대 초월한 환경 담론… 기후위기 시대에 다시 읽는 ‘난쏘공’

    시대 초월한 환경 담론… 기후위기 시대에 다시 읽는 ‘난쏘공’

    ‘가난한 자의 벗이 되고, 슬퍼하는 자의 새 소망이 되어라.’(조세희 ‘침묵의 뿌리’) 조세희 작가 1주기를 앞두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기후위기, 자본주의의 폭압적 그늘이 극심해지는 우리 시대에 건네는 울림을 재조명하는 책이 나왔다. 30년 넘게 소설을 거듭 읽고 신판 해설, 작가 특집 기획 등에 꾸준히 참여해 온 우찬제(61) 문학평론가(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발표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이다. 우 평론가는 조세희의 문학적 생애를 ‘깊은 고통에 깊은 공감을 보낸 시대’라 정의한다. 그러면서 ‘난쏘공’을 거듭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 “난장이로 상징되는 취약한 인간 존재의 ‘깊은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며 그것이 “문학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한다.‘그는 일련의 ‘난장이 체험’을 통해 ‘나도 난장이다. 우리는 난장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고 난장이의 고통에 깊게 스며들어 갔다. 그렇게 엄중한 글쓰기를 수행하며 분명한 윤리적 전망을 내보였다.’(10쪽) 특히 최근에 소설을 다시 살핀 결과물인 7장에서는 소설이 생태적 애도의 서사에서 더 나아가 지구 차원의 생태 공동체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세계시민주의를 모색하고 지향했음을 포착한다. 저자는 조세희 문학이 산업화 시대 정치경제학의 교과서이자 환경생태학의 교과서라고 평가한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1970년대에 사회생태적 측면에서 구조적으로 환경 문제에 접근했다는 이유에서다. 작가가 작품에서 다룬 죽음이 대부분 자연사가 아닌 생태적, 사회생태적 곡절로 인한 죽음이며 작가는 그런 죽음을 애도하며 이를 예방할 방안과 회한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할 생태 윤리는 어떤 방향일지 고민했다는 지적이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는 “체계적인 생태환경 담론을 펼칠 단계가 아니었던 1970년대 한국 지식 사회에서 생태적 각성과 환경 윤리를 환기하고 환경 정의를 추구하는 서사 기획을 심미적으로 승화했다는 것은 매우 값진 성과”라며 “난쏘공은 이 기후위기 시대에 다각도로 다시 읽혀도 좋을 텍스트”라고 평했다.
  • 서울시 캠퍼스 용적률 풀어주니… 대학 미래산업 학과·건물 증설 붐

    서울시 캠퍼스 용적률 풀어주니… 대학 미래산업 학과·건물 증설 붐

    고려대 정운오IT교양관은 이 학교 전신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한강관광호텔 창업주 고 정운오 회장 유족의 200억원 기부로 설립이 추진 중이다. 애초 자연계열 학생들의 교양수업을 위한 7층(28m) 규모 건물로 설계됐으나 최근 10층(41.5m)으로 공간을 5565㎡ 늘려 짓기로 결정됐다. 서울시가 이 건물을 대학 혁신성장시설로 보고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줬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스마트모빌리티 학부와 반도체공학과 등 첨단학과를 정운오관에 입주시키고 산학협력시설과 창업지원센터 등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가 공간 부족으로 미래산업 관련 학과 증설과 시설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을 위해 건물 용적률 기준을 풀어주면서 대학들이 앞다퉈 건물 신·증축에 나서고 있다. 시는 13일 홍익대 잔다리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성태 서울총장포럼 회장(상명대 총장)을 비롯해 8개 대학 총장이 참석하는 대학 공간혁신 사례 공유 발표회를 열었다. 시는 지난해 7월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대학이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해 창업 및 산학협력 공간을 확보하도록 용적률을 1.2배 완화하는 혁신성장구역을 도입하고 자연경관지구 내 대학시설 높이 제한도 없앴다. 시내 54개 대학 중 26%(14곳)가 이미 용적률의 80% 이상을 사용해 증축이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신산업 관련 학과나 산학협동과정을 개설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규제가 풀리자 대학들은 캠퍼스 공간 신·증축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연세대는 지난해 11월 7층 연면적 8264㎡의 제5공학관을 신축하기로 했다가 개정 조례 덕에 11층 1만 5537㎡로 규모를 늘렸다. 이에 따라 1.5배 더 넓은 반도체클린룸을 확보했다. 서강대는 학생창의연구관과 신과학관을 증축해 스타트업 육성 공간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창작교육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성균관대는 빅데이터와 AI 등 첨단 융합학문을 포함한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세종대는 AI데이터사이언스학과, AI로봇학과, 우주공학드론학부 등의 신설을 위한 애지헌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이화여대와 중앙대도 첨단학과 신설을 위한 건물 신·증축을 설계하는 단계다. 이미 용적률 한도에 도달한 홍익대는 혁신성장구역 도입을 계기로 현대미술관과 아트센터, 첨단공학센터 등을 연결하고 주변 지역의 문화 활성화를 돕는 혁신 캠퍼스 설계안을 마련했다. 오 시장은 “더 많은 대학이 공간혁신을 실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조세희 1주기…기후 위기 시대, 생태적 애도로 다시 읽는 ‘난쏘공’

    조세희 1주기…기후 위기 시대, 생태적 애도로 다시 읽는 ‘난쏘공’

    ‘가난한 자의 벗이 되고, 슬퍼하는 자의 새 소망이 되어라.’(조세희 소설 ‘침묵의 뿌리’ 가운데) 조세희 작가 1주기를 앞두고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기후 위기, 자본주의의 폭압적 그늘이 극심해지는 우리 시대에 건네는 울림을 재조명하는 책이 나왔다. 30년 넘게 소설을 거듭 읽고 신판 해설, 작가 특집 기획 등에 꾸준히 참여해온 우찬제(61) 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학과 교수)가 발표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이다. 우 평론가는 조세희의 문학적 생애를 ‘깊은 고통에 깊은 공감을 보낸 시대’라 정의한다. 그러면서 ‘난쏘공’을 거듭 읽어야 할 이유에 대해 “난장이로 상징되는 취약한 인간 존재의 ‘깊은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며 그것이 “문학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일련의 ‘난장이 체험’을 통해 ‘나도 난장이다. 우리는 난장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고 난장이의 고통에 깊게 스며 들어갔다. 그렇게 엄중한 글쓰기를 수행하며 분명한 윤리적 전망을 내보였다.’(10쪽)특히 최근에 소설을 다시 살핀 결과물인 7장에서는 소설이 생태적 애도의 서사에서 더 나아가 지구 차원의 생태 공동체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세계시민주의를 모색하고 지향했음을 포착한다. 저자는 조세희 문학이 산업화 시대 정치경제학의 교과서이자 환경 생태학의 교과서라고 평가한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1970년대에 사회 생태적 측면에서 구조적으로 환경 문제에 접근했다는 이유에서다. 작가가 작품에서 다룬 죽음이 대부분 자연사가 아닌 생태적, 사회 생태적 곡절로 인한 죽임이며, 작가는 그런 죽음을 애도하며 이를 예방할 방안과 회한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할 생태 윤리는 어떤 방향일지 고민했다는 지적이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체계적인 생태 환경 담론을 펼칠 단계가 아니었던 1970년대 한국 지식 사회에서 생태적 각성과 환경 윤리를 환기하고 환경 정의를 추구하는 서사 기획을 심미적으로 승화했다는 것은 매우 값진 성과”라며 “난쏘공은 이 기후위기 시대에 다각도로 다시 읽혀도 좋을 텍스트”라고 평했다.
  • 캠퍼스 높이 규제 풀었더니…연세대에 클린룸, 고려대에 스마트모빌리티 학부 생긴다

    캠퍼스 높이 규제 풀었더니…연세대에 클린룸, 고려대에 스마트모빌리티 학부 생긴다

    고려대 정운오IT교양관은 이 학교 전신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한강관광호텔 창업주 고 정운오 회장 유족의 200억원 기부로 설립이 추진 중이다. 애초 자연계열 학생들의 교양수업을 위한 7층(28m) 규모 건물로 설계됐으나 최근 10층(41.5m)으로 공간을 5565㎡ 늘려 짓기로 결정됐다. 서울시가 이 건물을 대학 혁신성장시설로 보고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줬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스마트모빌리티 학부와 반도체공학과 등 첨단학과를 정운오관에 입주시키고 산학협력시설과 창업지원센터 등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가 공간 부족으로 미래산업 관련 학과 증설과 시설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을 위해 건물 용적률 기준을 풀어주면서 대학들이 앞다퉈 건물 신·증축에 나서고 있다.시는 13일 홍익대 잔다리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성태 서울총장포럼 회장(상명대 총장)을 비롯해 8개 대학 총장이 참석하는 대학 공간혁신 사례 공유 발표회를 열었다. 시는 지난해 7월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대학이 미래경쟁력 강화를 위해 창업 및 산학협력 공간을 확보하도록 용적률을 1.2배 완화하는 혁신성장구역을 도입하고 자연경관지구 내 대학시설 높이 제한도 없앴다. 시내 54개 대학 중 26%(14곳)가 이미 용적률의 80% 이상을 사용해 증축이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신산업 관련 학과나 산학협동과정을 개설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규제가 풀리자 대학들은 캠퍼스 공간 신·증축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연세대는 지난해 11월 7층 연면적 8264㎡의 제5공학관을 신축하기로 했다가 개정 조례 덕에 11층 1만 5537㎡로 규모를 늘렸다. 이에 따라 1.5배 더 넓은 반도체클린룸을 확보했다.서강대는 학생창의연구관과 신과학관을 증축해 스타트업 육성 공간과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창작교육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성균관대는 빅데이터와 AI 등 첨단 융합학문을 포함한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세종대는 AI데이터사이언스학과, AI로봇학과, 우주공학드론학부 등의 신설을 위한 애지헌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이화여대와 중앙대도 첨단학과 신설을 위한 건물 신·증축을 설계하는 단계다. 이미 용적률 한도에 도달한 홍익대는 혁신성장구역 도입을 계기로 현대미술관과 아트센터, 첨단공학센터 등을 연결하고 주변 지역의 문화 활성화를 돕는 혁신 캠퍼스 설계안을 마련했다. 오 시장은 “더 많은 대학이 창의적인 핵심 역량을 끌어내는 공간혁신을 실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피노키오는 동화책? 인간성 묻는 철학책!

    피노키오는 동화책? 인간성 묻는 철학책!

    1940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주제가 ‘When you wish upon a star’(당신이 별에 소원을 빌 때)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피노키오’는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1883년 출간한 ‘피노키오의 모험’ 속 주인공이다. 올해로 출간 140주년을 맞은 ‘피노키오의 모험’은 전 세계 26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중 하나이다.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로 접했던 사람들은 착한 어린이가 되라는 교훈을 담은 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호모 사케르’라는 책으로 크게 명성을 얻은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신작 ‘피노키오로 철학하기’(효형출판)에서 “피노키오는 인간의 조건을 묻는 심오한 철학책”이라고 주장한다. 아감벤은 “피노키오의 모험은 동화 같은 하이브리드 문학의 전형”이라며 “세상에 내던져진 나무토막 꼭두각시가 근대 질서와 규약, 제도를 거부하고 행동하다가 결국 꿈속의 꿈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인간성에 관해 묻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감벤은 2002년 발간한 ‘열림, 인간과 동물’이라는 저서에서 제시했던 ‘인류학적 기계’라는 개념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류학적 기계는 인간이 스스로 인간을 정의하는 경계의 기준이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동물은 물론 노예, 야만인, 외국인, 난민을 배제하거나 포함하는 기준이 된다. 인간은 인류학적 기계라는 개념을 통해 지나칠 정도로 인간성을 경계 지음으로써 동물과 인간, 자연과 역사적 실존을 구분한다. ‘피노키오의 모험’에는 이런 인류학적 기계가 매번 방해받고 가로막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아감벤은 꼭두각시 나무 인형과 인간 아이가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 분리된 채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이 장면이 인간을 정의하는 근대성이라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거나 오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 주며 인간은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피노키오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황수정 칼럼] 한동훈 장관과 ‘못 보던’ 정치인/수석논설위원

    [황수정 칼럼] 한동훈 장관과 ‘못 보던’ 정치인/수석논설위원

    지난가을 내내 엉뚱한 생각으로 길을 걸었다. 서울의 구청들이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은행 열매들을 탈탈 털어 냈다. 멀쩡한 은행잎들까지 털리는 야만을 보면서 나는 왜 국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을까.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보면서 걷는 즐거움” 이런 문장쯤으로 살아 있는 나무의 멱살을 흔드는 부박함에 제동을 거는 정치인이 있다면. 소로였든, 루소였든 걷기를 예찬한 수많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도 인용할 수 있다면. 묻지마 지지자가 돼 주겠다는, 비현실적인 상상. 최근 학계 인사에게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은 일화를 들었다. 2000년 학술 행사로 방한한 세계적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청와대 초대를 거절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던 자신의 철학과 김 전 대통령의 노선이 어차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난 뒤 부르디외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상찬을 거듭했다고 한다. 까칠한 ‘반골 석학’의 마음을 토론으로 움직였던 전직 대통령의 지적 내공.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김 전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벌였던 유명한 지상논쟁을 새삼 복기했다. 현실의 정가는 너무 초라하다. 종횡무진의 지적 편력은 언감생심. 지적 편린조차 느낄 수 없는 상식 이탈의 장면들이 거의 날마다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7가지 사건의 10가지 혐의로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다. 어떤 날은 재판을 받느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한다. 진영 논리만 앙상한 “더러운 평화”라는 형용모순의 언어가 그에게서 나왔다. 정치 원로가 된 이해찬 전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 돈을 빼돌려 유죄 판결을 받은 이에게 “왜 자료를 안 태웠느냐”고 했다. “어린 놈”, “암컷” 등 막말은 잘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이 정치 품격의 마지노선을 넘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화제를 몰고 다닌다. 야권의 노련하고 조직화된 공격에도 밀리지 않는 언술과 저돌성. 지리멸렬한 보수 정치권에서는 희귀한 장면들이다. 세련된 입성 등 이런저런 퍼포먼스도 인기에 한몫을 한다. 고교 동기인 배우와 식사를 하자 배우의 여자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의 주식이 연속 상한가를 찍었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 1위인 그의 압도적 지지층은 현재로는 보수 장·노년층이다. 그를 곁눈질로 주시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보수 쪽에만 있을까. 그가 ‘셀럽’처럼 떠오르는 이유가 구태 정치권에서 못 보던 캐릭터라는 단지 그 반사작용일 뿐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치닫고 있을 때.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책을 손에 쥐고 걷고 문학작품의 한 구절쯤 아무 연설에서나 밥을 씹듯 녹여냈다. “저런 대통령, 수입이라도 했으면” 시중 농담이 돌 때 농성 자리에도 책을 갖다 놓던 이가 문재인(당시 의원, 상임고문) 전 대통령이었다. 못 보던 정치인의 면모였다. 그런 갈증을 채워 주리라는 주권자들의 기대를 얻지 못했다면 문 전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사후 평가와는 별개의 얘기다. 내년 총선을 위한 인재 영입에 여야가 골몰해 있다. 철인(哲人)정치 흉내라도 내겠다면 막대기한테라도 한 표를 줄 것 같다. 철학적 소양을 갖춘 정치인이 품귀 현상을 빚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정치 불신이 커지니 제도권 바깥의 인물로 시선은 더 쏠린다. 그래서 다시 한동훈. 차기 대선주자 선호 조사에서 그(16%)가 이재명(19%) 대표를 턱밑까지 쫓아갔다. 한 장관의 셀럽 현상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지도자를 꿈꾼다면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고 싶은지 철학적 근력을 보여 줘야 한다. 21년 이력의 똑똑한 검사. 이것 말고는 그의 지적 지형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지금 나는 그의 서재가 궁금하다.
  •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조선의 ‘우주 덕후’ 김석문 [이광식의 천문학+]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조선의 ‘우주 덕후’ 김석문 [이광식의 천문학+]

    해와 달과 별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땅덩어리 자체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것이라고 인류 중 처음 알아낸 사람은 2,300년 전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BC 310-230)였다. 그가 지구-달-태양의 상대적 거리와 크기를 측정하고 행성들을 태양 주위에 정확히 배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정관념은 그의 지동설을 1800년 동안이나 묻어뒀다가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다시 지상으로 복구시켰다.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로 되살아난 지동설은 1610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별에서 온 메신저(Sidereus Nuncius)>에 이르러 천동설을 완전히 퇴장시키고 인류의 정신세계에 확고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서양 천문학을 소개 갈릴레오가 자작 망원경으로 금성의 위상변화를 관측하고 목성의 4대위성을 발견함으로써 천동설의 관짝에 마지막 대못을 박은 시점인 1610년, 당시 조선은 막 임진왜란을 지난 광해군 즉위 초로 임해군과 영창대군이 유배당하고 죽임당하던 격동의 시기였다. 이런 조선에서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사색하던 조선의 ‘우주 덕후’들 중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포천 출신의 역학자이며 호가 대곡(大谷)인 김석문(金錫文, 1658-1735)으로, 그가 지은 <역학이십사도총해>라는 책에서 조선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의 책에는 지동설이 아니라 ‘지전설'(地轉說)이라 칭했다. 어쩌면 이 용어가 지구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력서 첫머리를 살펴보면, 숙종 때 음보로 영소전 참봉(종9품)에 기용되었으며,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26년 통천군수를 지냈던 것으로 나온다. 김석문은 40살에 완성한 <역학이십사도총해>라는 저서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일찍이 동양의 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역(易)에 관심을 가지고 주돈이, 정이, 장재 등 성리학 형성에 중추적 구실을 한 사상가들의 우주론을 두루 익힌 뒤 이 책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성리학이란 남송의 주희(朱熹:朱子)가 집대성한 신유학의 한 갈래로, 이(理)·기(氣)의 개념을 구사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인간 심성(心性)을 고찰하는 철학 체계를 말한다. 여담이지만, 성리학을 확립한 주희는 10살 때 유학자인 아버지에게 “하늘 바깥으로는 무엇이 있나요?”라고 물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 같은 성리학을 섭렵한 김석문은 나아가 당시 청나라에서 활약하던 서양 신부 자크 로(중국명 羅雅谷)의 <오위역지(五緯曆指)>에 소개된 천체관을 접한 뒤 크게 영향을 받아 그의 독자적인 지전설을 개척해나간 끝에 <역학도해>를 편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지구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달과 태양 및 항성이 회전하며 다시 태양의 둘레를 수성·금성·목성·화성·토성 등이 회전해 우주를 형성한다는 튀코 브라헤(1546-1601)의 천체관이 소개되어 있다. 김석문은 이 가운데서도 브라헤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지전설을 개척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지구와 달, 태양을 비롯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5성(星)의 상대적인 크기가 제시되어 있고, 지구가 남북극을 축으로 하여 하루에 한 바퀴 자전하면서 1년에 총 366번 회전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태양 주위를 행성들이 공전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설명했는데, 이것은 튀코의 우주관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특히 브라헤의 천체관에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지구는 자전하지 않는다는 브라헤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낮과 밤은 분명히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는데, 이 시기에 처음 대두된 지구 구형설을 수용하여, 누구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이 땅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종합적 판단 능력은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다. 세차 문제로 순환적 역사철학 펼치다 김석문의 우주체계는 삼대환공부설(三大丸空浮說)로 널리 유포되었으며, 그의 저서 가운데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회전함으로써 낮과 밤의 하루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마치 배를 타고 산과 언덕을 바라보되, 산과 언덕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배가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함과 같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학자의 지전설 중 가장 체계가 있는 논리라 하겠다. 당시 조선인의 우주관을 담은 김석문의 역작 <역학도해>는 모두 그림 44점, 해설 14,500여 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김석문의 지전설은 세밀한 천문관측을 통해 자연과학적 논리로써 체계화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역학도해>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성리학의 미비점을 보충하기 위한 설명으로서의 천체관이었으며, 따라서 여기에 한계점이 있다.  김석문은 또, 일정한 시기를 주기로 인류 역사와 문명 그리고 자연현상까지도 흥망성쇠를 되풀이한다는 순환론적 역사철학을 주장했다. 그는 또 ‘세차 문제’를 언급하며, 하지·동지에 적도와 황도가 23.5°의 상거각도를 이루는데, 그 각도는 때때로 달라진다는 점, 고비사막처럼 옛날에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기도 하고 지금 해안의 어느 곳은 해저로 가라앉고 있다는 점, 지구의 각 지점마다 받는 태양의 광량(光量)이 달라 한서(寒暑)·흉풍(凶豊)·정치윤리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 중심의 세계관·역사관에서 탈피하려 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요컨대, 오늘날 중국이 문화의 원천지로서 영광된 역사를 누리는 것은 인문 생활에 알맞은 온대지역이기 때문이지만, 어느 때에 동토(凍土)로 변해 소멸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금은 비록 삭막한 한대지방이지만 문화가 꽃필 수 있는 온대지역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 같은 김석문의 지전설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 김원행(金元行)과 제자 황윤석, 안정복 등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실학파 홍대용, 박지원의 지전설·역사철학은 그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 김석문은 만년에 포천 다대곡(多大谷)에 살면서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세월을 보내다가, 아이작 뉴턴이 죽은 지 8년 뒤인 1727년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옥중 어머니 대신 노벨평화상 수상한 쌍둥이

    옥중 어머니 대신 노벨평화상 수상한 쌍둥이

    옥중의 이란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를 대신해 쌍둥이 자녀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수도 오슬로 시청에서 키아나(17)와 알리 라흐마니에게 상과 함께 상금 1100만 스웨덴크로나(약 13억 8380만원)를 전달했다. 주최 측은 두 남매 사이에 빈 의자를 놓아 그녀의 부재를 부각시켰다. 모하마디는 테헤란 에빈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13차례 체포됐고 다섯 번 유죄 판결을 받으며 형량이 31년에 이른다.이날 남매는 어머니의 수상 소감을 전달받아 프랑스어로 낭독했다. “나는 교도소의 높고 차가운 담 뒤에서 이 메시지를 쓰고 있다”고 시작하는 소감에는 “정부에 의한 히잡 강제 착용은 종교적인 의무도, 전통문화도 아닌 사회 전반에 권위와 복종을 유지하려는 수단일 뿐”이라며 “이란 젊은이들이 거리와 공공장소를 광범위한 시민 저항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해 9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반대 시위를 언급한 것이다. 이어 “국민들이 끈기 있게 싸워 이란 정부의 압제와 권위주의를 이겨낼 것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남편이자 정치인인 타그니 라흐마니는 남매와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에서 지내고 있다. 라흐마니는 전날 영국 BBC 인터뷰에서 부인이 전에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내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했다. 이란 외무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모하마디가 선정됐다는 소식에 “일부 유럽 국가의 반이란 정책과 간여주의에 따른 것이며 편향적”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한편 같은 날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는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의학, 경제학 등 다른 부문 노벨상 시상식이 거행됐다.
  • 김홍구 경북도의원, ‘지방정부 치수 권한·역량 강화’ 주문

    김홍구 경북도의원, ‘지방정부 치수 권한·역량 강화’ 주문

    경북도의회 김홍구 의원(교육위원회, 상주2)은 11일 개최된 제343회 제3차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경북도의 주도적인 치수(治水) 정책을 주문했다. “수계관리기금의 배분 및 집행의 효용성 제고”를 주제로 한 5분 자유발언의 주요 골자는 ▲낙동강수계관리기금 집행이 천편일률적이고 요식행위에 그치는 점을 지적 ▲수계법 개정(24년 2월 시행)으로 재해·재난 예방 활동에 주도적 치수(治水) 정책을 주문 ▲경북도와 시군 간 수계관리기금 사용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김 의원은 “최근 5년간 매년 약 861억원을 받고 있으나 환경기초시설에만 국한하여 76.4%의 거대한 금액을 집행하고 있다”라며 “20년간 천문학적인 예산이 요식행위에만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방정부가 자주적으로 집행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상주·문경을 지역구로 하는 임이자 국회의원은 올해 7월, 수계관리기금의 용도를 가뭄·홍수 등 재해 예방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대표로 발의했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4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 의원은 “임이자 국회의원의 노력이 빛을 발해 상위법령의 개정을 끌어냈고, 이로써 경북에는 상당한 갈증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지방정부가 치수(治水)에 있어 재해·재난 예방 부분도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 달라”고 촉구했다. 또한 김 의원은 20여개 시군이 각자도생하는 것보다 하나의 경북에서 서로 호혜적인 치수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도-시·군 간의 수계관리기금 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 전남대 의예 419점·조선대 의예 416점

    전남대 의예 419점·조선대 의예 416점

    광주진학부장협의회와 진로진학지원단이 전남대 의예과 419점, 조선대 의예과는 416점 내외에서 지원 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11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3고 재학생 기준으로 수능 실채점 점수를 분석한 결과, 올해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난도가 높았던 전년도에 비해 더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영역별 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등급 구분 표준점수는 국어 133점, 수학 133점, 영어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 비율은 전년도(7.83%)에 비해 대폭 감소한 4.71%였고 2,3등급 비율도 마찬가지로 감소했다. 국어와 수학 선택과목별 응시인원은, 국어 9649명[‘화법과작문’ 6927명(71.8%)/‘언어와매체’ 2722명(28.2%)] 응시, 수학 9531명 ‘확률과통계’ 4,545명(47.7%) ‘미적분’ 4,780명(50.1%) ‘기하’ 206명(2.2%)] 응시했다. 과목별 난이도를 파악할 수 있는 표준점수 최고점의 경우, 국어 ‘언어와매체’는 150점으로 전년도 134점에 비해 16점 상승했고, ‘화법과작문’은 146점으로 전년도 130점에 비해 16점 상승하여 변별력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학 미적분은 148점으로 지난해 145점보다 3점 올랐고 기하는 142점(지난해와 동일), 확률과통계는 137점으로 지난해 142점보다 5점 낮아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됐다. 광주진학부장협의회와 진로진학지원단 진학정보분석팀은 국어, 수학, 탐구 3개 영역 표준점수 600점 만점 기준으로 서울대학교 인문계열은 401점 내외, 자연계열 412점 내외에서 지원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고려대와 연세대 인문계열 398점 내외, 자연계열 393점 내외에서 지원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광주교육대학교 지원가능 점수는 364점 내외,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원가능 점수는 397점 내외,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는 404점 정도에서 지원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남대 인문계열은 영어교육과 366점, 국어교육과 363점, 행정학과 362점, 경영학부는 361점, 정치외교학과 356점, 국어국문학과 354점, 인문계열 지원가능 점수는 345점 내외로 분석했다. 자연계열은 의예과(지역) 419점, 치의학전문대학원(치의학과)(지역) 413점, 약학부(지역) 408점, 수의예과 404점, 전기공학과 387점, 간호학과(지역) 361점, 수학과 362점 등으로 분석했다. 조선대 자연계열은 의예과(지역) 416점, 치의예과(지역) 412점, 약학과(지역) 407점, 간호학과(지역) 337점 내외로 판단된다. 정시 선발 비율이 전년도 20.5%에서 올해 8.8%로 대폭 감소하여 정시 지원 시, 수시 이월 인원 확인의 중요성이 확대됐다. 광주시교육청은 14일 오후 4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대강당에서 고3 진학부장을 대상으로 실채점 결과분석 설명회를 진행한다. 또 수험생들의 정시모집 대입지원을 위해 수험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14일 오후7시 광주교육연구정보원 대강당에서 정시모집 지원 대비 대입 설명회를 개최한다. 고3 재학생, 졸업생, 검정고시생, 학교밖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한 정시모집 대비 집중상담도 18일부터 23일까지 광주진로진학지원센터에서 실시한다.
  • 피노키오는 착한 아이 되라는 동화책? 인간 존재를 묻는 철학책!

    피노키오는 착한 아이 되라는 동화책? 인간 존재를 묻는 철학책!

    미국의 대표적인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When you wish upon a star’(당신이 별에 소원을 빌 때)라는 제목의 노래다. 이 곡은 194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주제가로 지금도 사랑을 받는 명곡이다. ‘피노키오’는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신문에 연재했던 이야기를 보완해 1883년 출간한 ‘피노키오의 모험’ 속 주인공이다. 전 세계 26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많이 번역된 책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이 번역된 이탈리아 책으로 꼽힌다. 세계 명작동화 전집 중 하나로 접한 많은 사람은 피노키오는 어른 말을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라는 교훈을 주는 동화로 생각한다. 그런데, 세계 문학사의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피노키오의 모험이 사실은 동화가 아니라면 믿을 수 있을까. ‘호모 사케르’라는 책으로 금세기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주목받은 조르조 아감벤은 ‘피노키오로 철학하기’(효형출판)라는 책에서 “피노키오는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심오한 문학책이자 철학책”이라고 강조한다. ‘피노키오의 모험’ 탄생 14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아감벤의 책은 이탈리아 비평가 조르조 만가넬리가 1977년 출간한 ‘피노키오, 평행 해설’을 한 번 더 해석한 것이다. 아감벤은 원작자인 콜로디가 남긴 행간의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 언어학, 문헌학, 계보학 지식을 총동원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피노키오가 모험에서 마주하는 등장인물들 모두 켈트 설화, 북유럽 신화, 그리스·로마 철학에 기반을 둔 상징적 존재라고 설명한다. 아감벤은 “피노키오의 모험은 동화이길 거부하지만, 동화스러운 일종의 ‘하이브리드 문학의 전형’이다”라면서 “세상에 내던져진 나무토막 꼭두각시가 자기 본성에 어긋나는 근대 질서와 규약, 제도를 거부하고 행동하다가 결국 꿈속의 꿈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구성은 인간성에 관해 묻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감벤은 앞서 2002년에 발간한 ‘열림, 인간과 동물’이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인류학적 기계’라는 개념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류학적 기계는 인간이 스스로 인간을 정의하는 경계의 기준이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동물같이 다른 생명체뿐만 아니라 노예, 야만인, 외국인, 난민을 배제하거나 포함하는 기준이 된다. 인간은 인류학적 기계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성을 지나칠 정도로 경계 지음으로써 동물과 인간, 자연과 역사적 실존을 구분한다. 그런데 ‘피노키오의 모험’에서는 이런 인류학적 기계가 매번 방해받고 가로막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아감벤은 특히 꼭두각시 나무 인형과 인간 아이가 분리된 채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이 장면은 인간을 정의하는 근대성이라는 장치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거나 오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기준을 갖고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피노키오에서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아감벤은 주장한다.
  • 옥중의 이란 운동가 모함마디 대신 쌍둥이 자녀 노벨평화상 수상

    옥중의 이란 운동가 모함마디 대신 쌍둥이 자녀 노벨평화상 수상

    이란 인권 활동가 나르게스 모함마디(51)의 10대 쌍둥이 자녀들이 노벨평화상을 대리 수상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수도 오슬로 시청 홀에서 키아나와 알리 라흐마니(이상 17)에게 수여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모함마디는 악명 높은 테헤란의 에빈 교도소에서 징역 10년형을 복역 중이다. 2010년 이후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맡지 못하고 있다. 그는 13차례 체포됐으며, 다섯 차례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만 31년이 된다. 교도소에서 몰래 수상 소감 원고를 밖으로 내보내 자녀들이 대신 프랑스어로 읽었다. 물론 이란의 압제적인 정부를 규탄하고, “이란 국민들이 끈기있게 싸워 압제와 권위주의를 이겨낼 것임을” 확신한다며, “의심할 바 없고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남편이자 정치인인 타그니 라흐마니는 두 자녀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 파리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 자녀들과 못 만난 지도 몇 년이 돼 간다. 수상 소감은 “나는 이 메시지를 교도소의 높고 차가운 담 뒤에서 쓰고 있어요”로 시작한다. 이어 이란의 젊은이들이 “거리와 공공 장소를 광범위한 시민 저항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9월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반대 시위 및 반정부 집회를 언급한 것이다. “저항은 살아 있으며 투쟁은 약해지지 않는다. 저항과 비폭력은 우리의 최고 전략이다. 이란인들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어려운 길이지만 역사적 양심과 집단 의지 덕에 여기까지 왔다.” 쌍둥이들은 1100만 스웨덴 크라운(약 13억 2000만원)이 적힌 수표를 받아들었다. 시상식장에는 두 자녀 사이에 빈 의자를 배치, 그녀의 빈 자리를 부각시켰다. 전날 남편은 BBC 하드토크(Hardtalk) 인터뷰를 통해 부인이 전에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내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해 용서해주길 바란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들려줬다. 한 달 전 모함마디는 단식 투쟁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란 외무부는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일부 유럽 국가들의 반이란 정책과 간여주의에 따른 것이며 편향적”이라고 깎아 내렸다.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다른 상 시상식도 거행됐다.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문학상을, 세 과학자가 화학상을, 피에르 아고스티니와 페렌츠 크러우스, 얀 릴리에가 물리학상을, 경제학상 시상도 함께 거행됐다.
  • 도시를 바꾼 곡선, 인간 삶까지 바꾸다[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도시를 바꾼 곡선, 인간 삶까지 바꾸다[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인간은 건물을 만들어 내지만, 그 이후에는 건물이 인간을 만든다.” 윈스턴 처칠의 명언이다. 과연 그렇다. 건물을 짓는 것은 인간이지만 그 건물에 영향받고, 동선을 바꾸고, 공간의 분위기에 길드는 것도 인간이다. 작게는 방이나 부엌, 서재, 집에서부터 크게는 학교, 병원, 카페, 식당, 도서관,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건물들에 얽힌 기억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어 왔다.좁은 원룸에 살 때의 나는 끊임없이 ‘탈출’을 생각하는 외로운 청년이었고,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 외의 다른 목표를 생각하기 어려웠으며, ‘언제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당신은 어떤 곳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가. 당신이 지닌 잠재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장소는 어디인가. 당신은 어느 장소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미래의 살 집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평생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개인에게 딱 맞는 장소를 찾는 일도 어려운데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생활하는 거대한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어떨까.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수천, 수만명을 위한 공간을 기획하고 창조하는 사람이 바로 건축가다. 때로는 건축가 한 사람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잿빛 공업도시 스페인 빌바오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야말로 그런 사람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생기기 전 빌바오는 철강산업으로 유명했지만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부족했다. 관광지가 되려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적인 장소가 필요한데, 빌바오에는 특색 있는 장소가 별로 없었던 탓이다. 게리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하면서 기존의 미술관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구겐하임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왜 그토록 네모반듯한 건물들 속에서 평생 살아왔는가’ 하고 한탄하게 된다. 과감한 곡선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탄을 자아낸다. 중력의 법칙에서 자유로운 듯한 매끄럽고 활기찬 곡선들은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것 같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각도에 따라 꽃이 피어나는 거대한 꽃밭 같기도 하고, 물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무거운 재료들로 이렇게 가벼운 곡선의 느낌을 살려 낼 수 있다니. 유리, 티타늄,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이 독특한 미술관은 건물 바로 앞 거리보다 네르비온강 쪽에서 바라보면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분명 고체로 만들었는데 액체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이 변화무쌍한 건물은 재즈처럼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자유분방한 음악을 닮았다. 게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건축은 시간과 장소에 대해 말해야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것을 갈망해야 한다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과연 시대를 뛰어넘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공간의 예술이자 시간의 예술이기도 한 건축이 나아갈 방향성을 보여 줬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1997년 처음으로 공개됐을 때 그 경이로운 규모와 과감한 설계는 즉각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생기기 전인 1995년 연간 2만 5000명에 불과하던 관광객은 2018년 무려 93만 20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 당시 미국 잡지 ‘뉴요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20세기의 걸작’이라 예찬했고, 전설적인 건축가 필립 존슨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건축’이라고 호평했다. 빌바오는 일약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면서 관광 인구뿐 아니라 도시 인구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제 ‘빌바오’ 하면 저절로 ‘구겐하임 미술관’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미술관은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비평가 캘빈 톰킨스는 ‘뉴요커’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을 일컬어 “티타늄 망토를 두른 물결 모양의 환상적인 꿈의 배”라고 묘사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눈부시게 반사되는 패널이 정말 물고기 비늘처럼 보인다. 처칠의 명언처럼 우리는 장소의 영향을 받는다. 층고가 높고 여백이 많은 공간에 가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좁고 더러운 공간에 가면 의욕과 열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한때 건축이 너무 눈에 띄고 거대해 정작 안에 있는 작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과감하고 풍요로운 전시 기획이 넘쳐나 오히려 다른 미술관에서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제프 쿤스의 ‘퍼피’와 ‘튤립’, 리처드 세라의 ‘시간의 문제’ 등 구겐하임 미술관의 영구 소장 작품들은 이제 미술관뿐 아니라 빌바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특히 ‘시간의 문제’는 거대한 철강 구조물로 빌바오의 정체성, 즉 철강산업의 중심지라는 지역적 특징을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예술적인 아름다움도 유감없이 펼친다. ‘시간의 문제’ 속으로 들어가 걸어 보면 설치미술 작품이 또 하나의 새로운 건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시간의 터널로 들어서서 도시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느낌도 들어 그 자체가 감미로운 타임머신 같다. 보통 미술관에 가면 작품 가까이 가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어 작품을 자세히 감상하려고 조금만 다가가도 ‘삑’ 소리가 나 당황스러울 때가 있는데, 구겐하임 미술관은 넓다 못해 광활한 느낌을 주는 장소이기에 그런 민망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의 문제’처럼 그 속을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고 규모가 큰 작품이 많아 웬만하면 거리를 두고 봐야 작품의 전모가 드러난다. 거대한 거미를 형상화한 ‘마망’ 앞에 서면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이고, 우리는 거미 왕국에 초대된 릴리퍼트 왕국 사람(‘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사람들)으로 변신한 것처럼 앙증맞은 존재가 된다. 부르주아는 왜 거대한 거미에게 ‘엄마’(마망)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부르주아는 이렇게 말한다. 이 거미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찬가라고. 어머니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거미가 거미줄을 자아내듯 어머니는 쉼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부지런하고 총명한 존재였다. 질병을 퍼뜨리는 모기를 잡아먹는 거미처럼 어머니는 자식들을 세상의 숱한 위협으로부터 구해 주는 사람, 끊임없이 자식들을 걱정하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부르주아의 거미가 친근하고 푸근해 보이는 까닭은 ‘마망’이라는 제목에 담긴 따스한 모성의 추억 때문이다. 드넓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천천히 관람하다 보면 미술관은 단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름답고 풍요로운 산책의 공간처럼 다가온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관람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 ‘사람이 많아 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는 생각(흔히 오르세 미술관이나 우피치 미술관처럼 늘 인파로 북적이는 장소에 가면 느끼는 안타까움)이 끼어들 틈이 없다.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적이고 조화로우며 생동감 넘치는 건축물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시적인 신호다.” 작품을 넘어 건축이라는 또 하나의 예술을 관람하면서 우리는 이토록 호방하고 기백 넘치는 공간을 통해 사유의 반경이 넓어지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빌바오의 운명을 바꾼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도시의 운명을 바꾸는 눈부신 건축들이 우리 일상 곳곳에서 발견됐으면 좋겠다. 사람을 노동하고 거주하게 하는 기능적인 건축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건축, 사람과 자연을 눈부시게 이어 주는 건축을 꿈꿔 본다. 사람을 돌보고,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감성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적인 건축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지친 도시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를. 문학평론가·작가
  • 우크라·가자서 ‘늑대의 아이들’ 되살아나다

    우크라·가자서 ‘늑대의 아이들’ 되살아나다

    “원고를 처음 읽은 밤, 소설의 장면들이 꿈에 나타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비몽사몽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한국어판 제안서를 넣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있었던 잊혀 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우리가 알았으면 했다. 기억은 힘이 세니까. 그리고 기억은 다짐이니까.” 리투아니아에서 국민 작가로 불리는 알비다스 슐레피카스의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사진)를 한국어로 펴낸 출판사 양철북의 조재은 대표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일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어느덧 1년 10개월째, 얼마 전부터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도 양보 없는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리투아니아의 역사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지난 6~7일 방한한 슐레피카스는 다시금 전쟁 상태에 돌입한 인류를 향해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도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없더라도 우리 서로가 평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은 리투아니아에서도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가는 ‘늑대의 아이들’ 이야기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4년 소련군이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국경 지역인 동프로이센을 점령했는데, 당시 독일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1만명에 이르는 고아가 생겨났다. 국경을 넘나들며 먹을거리를 구걸하던 이 늑대의 아이들 실화를 작가가 15년에 걸쳐 꼼꼼히 취재해 써냈다.책의 리투아니아어 원제는 ‘내 이름은 마리톄’다. “독일인은 어른이고 아이고 다 죽이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소련군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독일인 소녀 레나타가 ‘마리톄’라는 리투아니아식 이름으로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시적인 문장과 함께 암울하고도 위태롭게 펼쳐진다. 슐레피카스는 “수차례 사실을 확인했고 복수의 증인이 없다면 쓰는 걸 자제할 정도로 확실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면서도 “이 책은 문학인 만큼 제가 과거에 겪었던 배고픔 등의 경험과 감정도 충실히 활용했다”고 말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2019년 이 책을 그해 최고의 역사소설로 꼽으며 “역사 속에서 잊힌 비극을 흔들림 없이 묘사하는 이 소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평했다. 조 대표는 “늑대의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비참한 시간을 살아 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고 연대라고 생각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지금 내가 겪는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질책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도 이데올로기 차이로 가족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던 역사가 있다”며 “이런 슬픔을 나누는 것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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