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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도덕성·문장력 최고 외교관… 유일 초강국 원의 ‘고려 편입’ 막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도덕성·문장력 최고 외교관… 유일 초강국 원의 ‘고려 편입’ 막다

    ‘도덕의 으뜸(道德之首), 문학의 종장(文章之宗).’ 고려 말 문신이었던 이색이 지은 이제현의 묘지명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 겨루기에 대한민국은 위태위태하다. ‘한반도의 봄’에도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강대국들을 이용하는 노련한 외교관이 필요하다. 고려 후기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 선생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나를 돌아보니… 홀로 공부하여 고루하였으니 도를 들은 것이 자연 늦었도다 불행은 모두 자신이 만든 것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랴 백성에게 무슨 덕을 베풀었다고 네 번이나 재상이 되었단 말인가 요행으로 그렇게 된 일이기에 온갖 비난을 불러들였구나 못나고 보잘것없는 내 모습 그려서 또 무엇에 쓰겠는가만 나의 후손에게 고하여 주노니 한 번 쳐다보고 세 번 생각하여 그런 불행 있을까 경계하며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노력하라 만일 그런 요행 바라지 않는다면 불행을 면하게 될 것을 알리라 -익재난고(益齋亂藁) 제9권 ‘익재진자찬’ 중 선생이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쓴 글이다. 80세가 넘게 살며 여섯 왕을 섬기고 네 차례나 재상을 지내는 등 영화를 누렸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했다. 실은 이것이 진심일지도 모른다. 15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자 선생은 ‘과거는 작은 재주이니, 이것으로 나의 덕을 크게 기르기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학문 성취가 목표였던 선생에게는 평생의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대제국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의 신하로, 두 나라를 수없이 오가며 줄타기하듯 외교술을 펼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문화의 힘으로 선생은 원나라를 통해 성리학을 받아들였고 원나라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충선왕이 원나라 수도 연경에 만권당을 지어 놓고 선생을 불러들여 조맹부 등 천하의 명사들과 어울리게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충선왕이 “닭 울음소리가 마치 문 앞의 버들가지 같도다” 하고 읊었다. 자리에 모인 중국의 문사들이 그 말의 출처를 물었다. 충선왕이 대답을 못하고 난처해하자 익재 선생이 “우리나라 시에 ‘해가 뜨자 지붕 위의 닭이 우니,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길구나’라는 구절이 있으며 한퇴지의 시에도 이와 비슷한 시구가 있소” 하니 좌중이 다 칭찬하였다. -청장관전서 제32권 ‘청비록 계성사류’ 중 해박한 지식으로 위기에 빠진 충선왕의 체면을 살리면서 동시에 종주국에 맞서 우리 문화의 위상을 드높인 유명한 일화다. 한시를 읊으며 상대국 대표를 위압하던 모습이 겹쳐진다. #할 말은 하자 충숙왕 때 고려의 간신들이 고려를 폐하고 원나라에 편입시키려 한 일이 있었다. 원나라 황제도 이를 받아들여 고려에 정동성을 설치하려 했다. 이때 선생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도당에 글을 올렸다. 중용에 이르기를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 아홉 가지 떳떳한 법이 있으니, 이를 시행해 가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끊어진 세대를 이어 주고 망하는 나라를 일으켜 주며, 혼란을 다스려 주고 위기를 돌보아 주며, 주는 것을 후하게 하고 받는 것을 박하게 함은 제후들을 감싸주는 일이다’ 하였습니다.…(중략)…패자(覇者)도 오히려 이것에 힘쓸 줄 알았는데, 더구나 큰 중국을 차지하여 사해를 한 집안으로 삼는 자이겠습니까? -익재난고 제6권 ‘원(元)나라 서울에서 중서도당에 올린 글’ 원나라는 천하의 대국이니 경전의 말씀대로 남의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생은 과거 원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고려가 도왔던 일들을 열거한 뒤 원나라가 고려왕을 부마로 삼은 은혜와 의리를 부각시킨다. 또 고려에는 쓸모없는 땅이 많으니 재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인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크게 경계할 것이니 경제적, 외교적으로 조금도 실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삼가 바라건대, 집사 각하께서는 역대 황제들께서 고려의 공로를 생각하시던 의리를 본받으시고, 세상을 가르친 중용의 말씀을 명심하시어, 그 나라는 그 나라에 맡기시고 그 나라의 백성은 그곳 백성끼리 살게 하십시오. 자기들의 정사(政事)는 자기들 스스로 닦도록 직책을 부여하여 번방으로 삼으시며, 우리의 끝없는 아름다움을 누리게 하신다면 어찌 삼한의 백성들만 집집마다 서로 경하하여 천자의 성덕을 노래할 뿐이겠습니까. 종묘사직의 영령들도 모두 감격하여 지하에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선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이어 과거 은혜와 의리를 거론한 뒤 실리적인 측면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강대국에 부탁하는 글이지만, 이 정도라면 오히려 당당한 요구에 가깝다. 선생의 글 덕택인지 원나라의 이 시도는 곧 중지됐다. #문인 이제현 선생은 수많은 역사서를 저술하는 한편 문학 부문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조선 말기 학자 김택영은 선생의 문학을 두고 ‘조선 3천년에 제일의 대가(大家)’라고 극찬한 바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종이 이불 썰렁하고 등불 침침한데 어린 중은 밤새도록 종을 치지 않는구나 자던 길손 일찍 문 연다 꾸짖겠지만 암자 앞의 눈 쌓인 소나무 보려 한다네 -익재난고 제3권 ‘산중설야’ 겨울밤 눈이 내린 산사의 풍경과 나그네의 심경이 선명하다. 눈 온 새벽의 한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다. 이 외에도 선생은 역사와 문학을 결합시킨 영사시도 많이 지었고, 패관문학의 대표작인 ‘역옹패설’을 남기기도 했다. 역옹패설은 일종의 수필 문학으로, 딱딱하고 골치 아픈 관직 생활과 정통 성리학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대한 선생 자신의 설명이다. “무료하고 답답함을 달래기 위하여 붓 가는 대로 기록한 것이니 실없는 이야기가 있은들 뭐 괴이할 것이 있겠는가. 공자도 ‘박혁(쌍륙과 바둑)놀음이 아무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하였으니, 장구(章句)를 다듬어 꾸미는 것이 박혁놀음보다는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역옹패설 중 또 익재난고 제4권 ‘소악부’에는 고려가요를 배경 설화와 함께 한역한 작품들이 수록됐다. 오늘날 고려가요 연구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다. 옛날 신라의 처용 늙은이 바닷속에서 왔노라 말을 하더니 자개 이빨 붉은 입술로 달밤에 노래하고 솔개 어깨 자줏빛 소매로 봄바람에 춤추었네 -처용가 바윗돌에 구슬이 떨어져 깨지긴 해도 구슬 꿴 실만은 끊어지지 않으리라 낭군과 천추의 이별을 하였지만 한 점 붉은 마음이야 어찌 변하리 -서경별곡 뛰어난 문장가이자 정치가로서 원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선생의 삶은 오늘날 강대국 사이에 처한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수백 년 전의 지혜가 지금 소중한 이유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익재난고는 10권 3책의 이제현 문집 조선시대 여러 차례 重刊 1363년(공민왕 12년)에 처음 간행된 이래 조선조에 들어서도 세종, 선조, 순조 때 등 여러 차례 중간했다. 모두 10권 3책으로 됐으며 권1~4에는 시(詩), 권5에는 서(序), 권6에는 서(書)·기(記)·비문(碑文)이 실려 있다. 권7에는 비명(碑銘), 권8에는 표(表)·전()이 실렸다. 권9는 상·하 2편으로 이루어졌으며 상권은 고종의 세가이다. 하권에는 사찬(史贊)·사전서(史傳序)·책문(策問)·논(論)·송(訟)·명(銘)·찬(讚)·잠(箴)이 실려 있다. 권10에는 장단구(長短句)가 들었다. 이어 이색이 지은 선생의 묘지명과 중간할 때 추록한 습유가 실려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익재난고’와 ‘역옹패설’ 전·후집을 합해 ‘익재집’(益齋集)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서를 출간했다. 한국고전종합 데이터베이스(DB)에는 원문과 번역문을 모두 구축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희망 사다리’ 문학상 공모전, 어쩌다 ‘삐걱 사다리’ 됐을까

    ‘희망 사다리’ 문학상 공모전, 어쩌다 ‘삐걱 사다리’ 됐을까

    출판사가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문학상 공모전. 그러나 이 제도가 오히려 출판계에 독이 됐다는 주장이 담긴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특히 저자가 2010년 이후 ‘최단 기간 최다 문학상 수상자’인 장강명 작가여서 화제가 된다. 그가 내놓은 문제작은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기자 출신의 장 작가는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후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작가상 등 8년 동안 7개 문학상을 휩쓸었다.“치열한 경쟁을 거쳐 ‘당선’하거나 ‘합격’하면 사회적으로 신분이 올라가고, 이런 문제가 ‘계급화’를 더 공고히 하고 있어요. 실제로 ‘공모전’이라는 단어를 ‘공채’로 바꾸고, ‘대입’으로 바꿔 보니 똑같더라구요. 바로 여기에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간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 작가는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등단을 원하는 작가 지망생, 문학상의 마케팅 파워를 노린 출판사, 그리고 베스트셀러에 집중하는 독자가 맞물리면서 출판계의 부실을 불렀다”고 말했다. 문학상 수상작만 주목받으면서 문학계가 공모전에 매몰됐고, 역설적으로 문학의 토양이 척박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장 작가는 얽히고설킨 악순환 고리를 밝히기 위해 출판사 대표, 편집자를 비롯한 60여명을 취재했다. 그러면서 현재 운영 중인 장편소설 공모전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문학동네소설상(1994년) 등 국내 14개 문학상의 명암을 쫓았다. 그의 취재담에 비춰 보면 문학계에는 한때 상금이 1억원에 이르는 문학상이 등장하는 등 과열 경쟁과 상업적 마케팅이 유행했다. 출판사들이 공모전을 우후죽순 만들면서 출판계 전체가 문학상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구조로 변질됐다. 색깔 없는 비슷한 공모전이 횡행하면서 파격적인 작품이 나오지 못하는 풍토로 바뀐 셈이다. 장 작가는 신인작가나 경력작가 모두 공모전에 골몰하고, 공모전을 통과하지 않은 좋은 작품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현실에 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그는 출판계 공모전과 마찬가지로 기업 공채 시스템이나 대학입시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따지기보다 ‘시험을 몇 년도에 통과했느냐’를 따지는 일은 관료제나 신분사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역동적인 작품이 나올 수가 없어요. 결과적으로 시험을 통해 간판을 얻는 시스템이 문학계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것이죠.” 장 작가는 “‘시험을 없애자’는 식으로 시스템을 일순간에 폐지하자는 게 대안이 될 수 없고, 그런 논의 자체도 비효율적”이라면서 “이를 보완해 사회적 신뢰와 역동성이 생생하게 작동할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판 말고는 평가할 게 없다 보니 간판의 힘이 더 커지는 거예요. 간판의 힘을 어떻게 낮춰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간판이 아니라 가게 안에서 파는 물건을 보여 주면 소비자들의 선택이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사진 장강명 제공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남북 문학 교류의 재개를 위하여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남북 문학 교류의 재개를 위하여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에 남북 정상이 두 차례 만났을 때, 우리 사회에서는 깊은 침묵과 적대감 속에 잠겨 있던 이념적 해빙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제 힘을 찾으며 생성되고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남북 직항로 개설, 고위급 회담, 문화예술 교류 등을 통해 냉전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결빙돼 있던 한반도에 새로운 화해와 협력의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으로 충일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급진적이고 관념적인 통일 논의가 한결 수그러지고 그 대신 합리적이고 대안적인 단계적 분단 극복의 프로젝트들이 분주하게 마련됐던 기억 생생하다. 당연히 그 반대편에서 더욱 강한 기세로 냉전 논리를 묵수하고 과장하려는 힘들도 만만치 않았던 만큼 그때 우리는 분단 이후 거의 처음으로 냉전 구도의 재편을 도모하는 이행기를 경험한 것이다. 물론 그 후 10여년 동안 남북 관계는 다시 경색일로를 달리다가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여러 차원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남북이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지속함으로써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 우리로 하여금 막혀 있던 길을 새로이 뚫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문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두루 나타난 바 있다. 그동안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북한 문학에 대한 객관적 소개로부터 식민지 시대나 해방 직후의 문학운동에 대한 재조명, 냉전 논리에 의해 가려졌던 월북 작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역사적 전환의 한 정점이 바로 2008년 2월에 있었던 ‘통일문학’이라는 문학잡지의 창간이었다. 남북은 2005년 7월 평양, 백두산, 묘향산 등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열었고, 2006년 10월 해방 후 최초로 남북 작가 모임인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으며, 2008년 2월에는 교류의 구체적 결실로 남북 문인들이 함께 만드는 문학잡지 ‘통일문학’을 창간한 것이다. 창간호는 남측이 제작비를 대고 북측에서 편집과 제작을 맡아 5000부를 발행했고, 3호까지 나오다가 중단된 채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평양 공연을 위해 예술단을 이끌고 북을 방문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북의 안동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남북 문학의 교류를 새롭게 협의하면서 ‘통일문학’의 재출발을 논의했다고 한다. 도 장관은 안 위원장에게 10여년 전 있었던 활발한 남북 문인 교류 활동을 상기했고, 안 위원장은 그에 대한 화답으로 남북 문인들이 함께 만들다 중단된 ‘통일문학’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 구체성과 진행 과정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중단된 겨레말큰사전 사업의 재개와 함께 적극적으로 검토될 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한반도는 냉전 구도에서 탈냉전 구도로, 적대 관계에서 화해 관계로 급속하게 재편돼 가고 있다.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양쪽 모두에게 상생적 평화를 가져다줄 절호의 기회다. 그 안에는 세계화 논리를 앞세워 민족 단위의 사유를 불신하고 용도 폐기했던 우리 사회 일각에 대한 엄중한 경종과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평창올림픽과 예술단 방북을 통해 형성된 이러한 연쇄적 징후들은 그 자체로 민족사의 새로운 국면을 알려 주는 상징적 장면이고, 이념적 적대감만으로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겨온 냉전 그룹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다시 민족 단위의 상생적 가치를 확인해 가야 한다는 문화적 책무를 알려 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동시대 북의 문학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감각을 갖춘 소개와 비평 작업이 지속적으로 확산돼야 하고, 우리의 훌륭한 작품들을 광범위하게 북에 소개하는 일도 더없이 중요한 일일 터이다. 일시적 해빙 무드에 그치지 않고, 역사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평화와 협력의 형상적 성취로서의 ‘통일문학’이 다시 남북 모두에 이어져 가기를 희원해 본다.
  •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한 명의 독자 위한 성찰의 편지…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 담겼네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한 명의 독자 위한 성찰의 편지…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 담겼네

    알다 이전에 ‘본다’가 있다. 쓰다 이전에 ‘본다’가 있다. 세상을 바로 보는 시선은 너무도 중요하다. 김수영은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며 ‘보다’라는 행동을 강조했다. 작가란 대상의 본질을 보는 사람이다. 보는 시선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본다’라는 동사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낸 작가를 떠올리면 단연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수 있다.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야. 사람들이 내 그림에 대해, 화가가 깊이 날카롭게 느끼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 (1882년 7월 21일 / 반 고흐, 신성림 옮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2005) 고흐는 자신이 본 풍경을 ‘뿌리 깊은 고뇌’로 새롭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의 고뇌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써 있다. 그의 편지에는 자연과 종교를 대하는 태도, 안부를 묻는 내용이 가득하다. 에밀 졸라, 도스토옙스키 등 소설가에 대한 평과 렘브란트, 밀레 등 화가에 대한 간단한 인상주의 비평문도 들어 있다. 그는 화가이지만 ‘편지문학 작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기는 자기만 읽는 글이지만, 편지는 한 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독특한 문학 장르다. 한 명을 독자로 삼는 편지는 일기 못지않게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한 글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1890년 7월) 당찬 다짐이 들어 있는 편지글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림에 “생명을 걸었다”는 속내는 일기처럼 편지글에서도 드러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맘대로 써도 되는 일기와 달리, 편지는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성찰하며 이야기를 정리해 보내야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1946) 등은 편지문학의 대표작이랄 수 있겠다. 편지작가인 고흐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뿌리 깊은 고뇌’였다. 영어로는 6권, 일본어로는 3권짜리 고흐 서간문 전집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말로 고흐 편지 전체가 번역된 적은 없다.●고흐가 본 시엔 한 통계를 보면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의 85%가 여성 누드라고 한다. 누드를 주문하는 자도 남자요, 그림을 그리고 만든 이도 남자였다. 천사처럼 성스러운 존재만을 누드로 그렸던 미술사를 에두아르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를 그려 흔들어 놓았다. 벌거벗은 여성 곁에서 넥타이에 정장을 갖춘 두 사내가 편안히 정담을 나누는 상황은 황당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의 여성은 그림 밖의 관람자를 태연하게 응시한다. 마네의 ‘올랭피아’(1865)는 더 도발적이다. 흑인 여성을 배경으로 하는 백인 여성의 흰 살은 조금은 외설적이다. 슬리퍼, 보석, 머리의 꽃 장식을 보자. 흑인 하녀가 든 향기로운 꽃다발은 누가 선물로 보냈을까. 고흐도 누드를 그렸다. 다만 고민 없이 혹은 그림을 팔려는 의도에서 그린 누드와 다르다. 고흐는 여성의 성적인 육체보다는 여성이 견딘 ‘뿌리 깊은 고뇌’를 그리려 했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 여성을 대하는 그를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충분히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 임신한 여인을 알게 되었어. 남자에게 버림받은 데다 그 남자의 아이를 배고 있었지. 겨울에 길을 헤매는 임신한 여자가 빵을 얻으려면 어떻게 했을지 너는 알겠지. 나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 겨울 내내 그녀와 함께 일했어. 나는 그녀에게 모델료를 충분히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방세는 내 주었어. 그리고 다행히도 빵을 그녀에게 나누어 주어 그녀와 아기를 굶주림과 추위로부터 지켜주었어. … 그녀와 결혼하는 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결혼은 그녀를 구제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가난해지고, 과거의 구렁텅이로 내몰리는 생활로 돌아가야 해.”(1882년 5월 3~12일)매독에 걸린 채 임신해 있고, 딸까지 데리고 있는 세 살 연상 매춘부 시엔과 고흐는 1년 넘게 함께 살았다. 그녀 때문에 목사인 아버지는 고흐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야단쳤다. 친척이자 존경하던 스승이었던 안톤 모베도 인연을 끊었다.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1882)에서 고흐의 ‘뿌리 깊은 고뇌’를 만날 수 있다.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나 외설적이거나 에로틱한 면이 없다. 오히려 힘없이 헝클어진 머리카락, 볼품없이 나온 뱃살이 지저분하고 추한 느낌마저 든다. 앞서 본 마네의 여인들은 팽팽한 곡선, 탐스러운 머리칼, 풍요한 젖가슴을 갖고 있지만, ‘슬픔’에 앉아 있는 시엔은 전혀 반대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박탈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흐는 37년을 살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슬픔’은 고흐 개인사를 넘어 여성의 누드를 ‘슬픔’으로 보는 전복적인 작품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린 것 중 최고”라고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슬픔’은 그 작은 시작이다.”(1882년 7월 21일) 그가 편지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바람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시엔은 60여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위한 모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시엔을 그린 ‘슬픔’은 여성을 보는 전혀 다른 세계를 제시했다.●감자 먹는 사람들… 빈자의 성찬식 솔직히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느낌 외에 달리 감흥은 없었다.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그 분위기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집안은 온통 어둡고 감자가 놓인 테이블에만 빛이 모여 있다. 초라한 식탁에 등만 보이는 소녀 앞에 찐 감자의 김이 금빛으로 오르고 있다. 당시 유럽에서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왼편에 그려진 광대뼈가 나온 사내는 거칠게 살아온 황소를 닮았다. 고흐는 왼쪽 사내의 손을 가장 공들여 그렸다고 편지에 썼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1885년 4월 30일 편지) 이 작품을 위해 고흐는 고향 누에넨에서 겨울을 보내며 농부들의 초상화 40여점을 그렸다. 고흐는 이 작품을 오랜 친구인 반 라파르트에게도 석판화로 보냈다. 걸작을 제작했다는 확신 때문에 고흐는 라파르트의 부정적인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파르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예술의 규범을 모두 훼손했다고 생각했다. 굴하지 않고 고흐는 이 작품을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작품이라고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 너도 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1885년 4월 30일)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난 가야트리 스피박 교수는 돈도 없고 배운 것이 없어 자신들의 아픔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들을 하위주체, 즉 서벌턴(Subaltern)이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까. 스피박 교수는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라고 요구한다. 고흐의 그림은 스피박의 서벌턴 이론에 호응한다. 고흐의 ‘슬픔’에 나오는 창녀 시엔이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나오는 가난한 가족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서벌턴들이다. 탄광 지역 보리나주에서 썼던 그의 편지를 읽으면 빈자에 대한 심려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괴로운 생활을 보내는 노동자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계몽할 수 있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왜냐하면 그 자신이야말로 우리의 병을 안 위대한 슬픔의 사람이고, 그가 신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목수의 아들로 불린 존재이며,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1878년 12월 26일) 고흐의 편지를 읽는 독자나 그림을 보는 관객은 잠시라도 그가 제시한 슬픔과 가난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의 편지와 그림이 따스한 이유는 낮고 천하고 볼품없고 쓸데없는 것들을 ‘보는’ 그의 시선이 우리를 따뜻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쓸쓸하고 낮은 것과 같이하려는 시선에서 ‘편지작가’ 고흐는 탄생했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열린세상] KBS 개혁과 안철수 ‘적폐정치’/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열린세상] KBS 개혁과 안철수 ‘적폐정치’/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역시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가 보다. 혁명은 반대 세력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지만 개혁은 반대파를 끊임없이 아우르며 가야 하니 그만큼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루쉰은 비분강개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개혁의 반대자들은 개혁자들을 해칠 때는 잠시도 느슨한 적이 없고 그 수단의 혹독함 또한 이를 데가 없다. 개혁자들만이 여전히 깊은 꿈속에 빠져 항상 손해를 보았다. 그래서 중국에는 진정한 개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루쉰이 생각한 대안은 무엇인가. 루쉰의 비유적인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물에 빠진 개는 끝까지 두들겨 패야 한다”는 것, 곧 불의와 어설프게 타협하지 않는 불요불굴의 투쟁 정신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경세(警世)의 목소리가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개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시대의 언어가 됐지만 그것은 사실 개혁, 더 정확하게는 ‘지독한 개혁’이나 다름없다. 기필코 개혁을 이뤄 내야 한다. 지난 정권의 국정 농단으로 인한 적폐를 그냥 두고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없다. 사정은 녹록지 않다. 개혁에 저항하는 일부 기득권 세력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정치보복 프레임을 전가의 보도인 양 들이대며 국민을 현혹하려 든다. 루쉰의 말대로 ‘물에 빠진 개들’에게서도 사람 냄새가 나고 그들이 ‘페어’를 주장할 줄 알 때 페어플레이를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적폐는 교묘히 자신의 몸을 숨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새정치’라는 이름의 적폐행진을 이어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그 한 예다. 안 대표는 지난 26일 최고위원회에서 KBS 고대영 전 사장 해임과 관련, 정부·여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사실상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방송적폐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권편향 방송들이 차고 넘치는데 또 하나의 공영방송 경영진을 자기 사람으로 심으려 한다고도 했다. 국민의당과 통합을 앞둔 바른정당이 “문재인 정부의 ‘사영방송’” 운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 전 사장 해임은 새로운 방송 적폐인가. 고대영 체제 KBS는 한마디로 정권만 바라본 ‘청와대 방송’이었다. 세월호 참사나 최순실 국정 농단 같은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안을 KBS가 어떻게 축소·왜곡 보도했는가를 생각하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KBS에 저널리즘은 없었다. 지난해 12월 KBS가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 재허가 심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기준 점수에 미달해 조건부 재허가를 받은 것은 KBS의 실추된 위상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존에 발의된 방송법 개정안은 ‘정치권 영향력 상존’이라는 한계가 있어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안 대표의 주장은 결국 방송법 개정안과 사장 퇴진을 연계해 KBS 적폐 체제의 연장을 꾀한 개혁 저항 세력과 궤를 같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권 편향 방송이 넘쳐나는가. 편향의 기준부터 밝히고 어떤 방송이 그렇게 본분에서 벗어난 짓을 하는지 말하는 게 도리다. 정치인의 막말은 무엇보다 시급히 청산돼야 할 적폐다. 고 전 사장의 해임으로 140일 넘게 계속된 파업 사태가 수습됨으로써 KBS는 공영방송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추락한 위상을 회복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 안 대표는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KBS 인사를 예단해 “새로운 적폐”라고 몰아붙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코드 인사 논란은 이제 종식돼야 한다. 차제에 정당 추천 형태로 이뤄지는 KBS 이사 선출 방식을 바꿔 공영방송이 정치권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안 대표는 고 전 사장의 해임이 노조의 요구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언론 적폐청산과 공영방송 정상화는 국민의 염원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적법하게 처리된 해임을 적폐로 모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KBS 정상화의 의미를 퇴색하게 한 안 대표의 발언에서 보듯 개혁의 암초는 곳곳에 널려 있다. 공영방송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한다면 적어도 개혁을 적폐라고 강변하는 목소리는 크게 잦아들 것이다. 개혁의 성공은 태반이 언론에 달렸다. KBS는 이제 공영방송의 새 역사를 써 나가야 한다.
  • “전쟁이라는 독약의 치료제는 문학과 예술”

    “전쟁이라는 독약의 치료제는 문학과 예술”

    “전쟁을 휴머니즘을 침해하는 독약으로 본다면 그것을 처방할 수 있는 약은 문학과 예술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창의성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예술적이고 미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파괴와 전쟁이 아닌 사랑과 평화를 창조하는 정신만이 우리 미래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국내외 작가들이 분쟁과 전쟁, 억압과 폭력,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학과 예술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일 서울대 두산인문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계기 국제인문포럼’에서다. ‘세계의 젊은 작가들, 평창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다-자연, 생명, 평화의 세계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서 국내외 200여명의 작가들은 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모색했다.터키의 구전 시 전통을 현대시에 구현하는 작업을 해 온 메틴 투란 터키 민속연구재단 교수는 ‘부식과 오염 속에서… 세계를 감싼 불꽃’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전쟁으로 가족을 잃는 상실의 고통을 평화롭게 극복한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 “상실과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킨다”면서 “정신문화를 공유하고 서로 연대해야만 이 세계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피력했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을 재구성해 완성한 소설 ‘한 명’을 쓴 김숨 작가는 ‘돌아오지 않은 여자들, 돌아온 여자들: 전쟁과 여성의 성 욕망하는 자들’이라는 발표에서 1988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윤정옥 교수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해 들려줬다. 김 작가는 “과거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침묵해야 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유교 문화와 순결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면서 “유교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을 때 ‘잘못된 길로 들어선 나쁜 여자’라는 죄의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작가는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과 관련해서는 “여성들이 어떤 욕망의 대상이 아닌 욕망하는 자의 자리로 이동하는 중인 것 같다. 긍정적인 욕망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중요하다”면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휴머니즘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사회 이슈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해 온 장강명 작가는 신작 소설집 ‘산 자들’(가제)에서 다룰 예정인 한국의 비인간적인 경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꺼냈다. 장 작가는 “어느 정도 제도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일수록 분쟁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갈등 관계가 매우 첨예하고 복잡해지는 것 같다”면서 “작가들이 지적으로 성실해지지 않으면 비참한 양상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안네 프랑크가 ‘안네의 일기’를 썼듯 작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기록으로 남길 줄 알아야 한다”면서 “문학 작품의 결과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인 부조리가 터졌을 때 악인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을 통해) 고발하고 상상하는 행위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제르바이잔 작가 바기프 술탄르는 ‘현대 세계의 평화와 작가의 임무’라는 발표를 통해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전쟁 때문에 분단되고 그로 인해 일부 지역 사람들이 모국어로 글을 쓰거나 읽는 권리를 박탈당한 현실을 들려줬다. 그는 “문학의 사명은 인간이 인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본주의적 양식이 사라지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것”이라면서 “작가는 단어의 힘과 영향력을 사용해 세계 정치사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본주의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찬 양질의 작품을 써야 한다”고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사고] 문학의 힘, 당신을 기다립니다…서울신문 신춘문예 새달 6일까지 접수

    ■마감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5편 이상) 300만원 ●시조(5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보내실 곳 (우편번호 04520)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서울신문사 3층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8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이름(반드시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는 A4 용지에 별도로 적어 원고 뒤에 첨부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8
  • [사고] 서울신문 신춘문예 샛별 기다립니다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불꽃을 쏘아 올리는 일.”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 쓰기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도전한 이들의 첫발이 그랬습니다. 소설가 하성란·강영숙·한강·편혜영·백가흠, 시인 나태주·김경주 등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작가들이 쏘아 올린 불꽃은 한국 문단에 찬란한 순간들을 새겨넣었습니다. 문학의 새날을 열어갈 주인공은 여러분입니다. 시대의 아픔과 불합리를 꿰뚫어보는 깊은 눈, 절망을 희망으로 옮기는 반전의 글쓰기로 ‘문학의 힘’을 일깨워 줄 당신을 기다립니다. ■마감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5편 이상) 300만원 ●시조(5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보내실 곳 (우편번호 04520)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서울신문사 3층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8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이름(반드시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는 A4 용지에 별도로 적어 원고 뒤에 첨부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5
  • 소설가 조정래 등 4명 은관 문화훈장

    소설가 조정래 등 4명 은관 문화훈장

    소설가 조정래, 화가 김구림, 민화 작가 송규태, 국악인 고(故) 이상규가 은관 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일 이들을 포함해 문화예술인 35명이 ‘2017년 문화예술발전유공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MB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난을 겪기도 했던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치열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민중에 대한 신뢰를 담아낸 작품들로 한국 현대문학의 지평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았다. 1960년대 말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 대지예술을 발표한 김구림은 무체사상·음양 등 전통 사유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한국 전위예술의 첨병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민화전통문화재 제1호인 송규태는 51년간 한국 민화를 계승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서 민화계의 상징적인 존재이자 대가다. 대금의 명인이자 작곡가, 지휘자, 교육자로 활동했던 고 이상규는 400여 곡 이상의 창작국악을 남기는 등 우리 전통 음악의 대중화와 현대화에 힘을 보탰다. 보관 문화훈장 수훈자로는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근원적인 본질을 탐구해온 소설가 한수산, 예술기관의 발전과 현대미술 진흥을 위해 많은 후원을 한 일신방직 대표 김영호, 환경건축가로서 40년간 많은 우수건축물을 설계한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김원, 전통음악의 현대화에 기여한 전 한국예술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 고 강준일, 한국 연극계를 대표한 연극배우 고 윤소정이 선정됐다. 또 시인 박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등 8명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로 뽑혔다. 시상식은 2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홍지민 기자 icaus@seoul.co.kr
  • 부천은 ‘한국판 에든버러’…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세계로”

    부천은 ‘한국판 에든버러’…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 세계로”

    경기 부천시가 동아시아 최초로 지난 1일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에 지정돼 영국 에든버러를 비롯해 아일랜드 더블린, 체코의 프라하 등 세계적 문학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8일 부천시에 따르면 2년 전 이라크 바그다드시 이후 부천시가 동아시아 최초로,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에 가입하는 영광을 안았다. 부천시는 특화도서관과 아트밸리 등 시민 중심의 문화활동이 다양하고 유명 문인들의 기념사업을 시민 주도로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업도시로 시작한 부천시는 문학도시로 성장하며 제3세계와 동아시아의 롤모델이며, 파급 효과가 높다는 점이 유네스코로부터 높이 평가받았다.문학적 자원이 뛰어난 영국 에든버러를 비롯해 더블린, 프라하 등 세계 28개 도시와 더불어 부천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로 활동하게 된다. 창의도시에 가입돼도 상금은 없다. 이보다 값진 건 부천시가 국제적 문학창의도시로 인증받았다는 점이다. 향후 유네스코 로고와 창의도시 명칭을 사용할 수 있어 도시 품격이 한층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국제도시들과 다양한 문화사업을 공동 추진할 수 있어 국제적 문화도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학창의도시에 가입했다고 해서 마냥 즐기기만 할 건 아니다. 4년마다 유네스코에 성과보고서를 제출하게 돼 있어 앞으로 활동이 더 중요하다.●도서관 교류 등 유네스코 이념과 잘 맞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추진 사업은 2015년 말 한경구 서울대 교수의 조언을 받아 시작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대구·파주시와 함께 국내 심사를 통과했다. 올해 6월 대구는 음악으로, 파주와 부천은 문학분야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부천시는 ‘삶을 바꾸는 문학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문화특별시 부천의 도서관과 만화영상진흥원 외 문학 자원과 3대 국제축제 등 부천의 매력적인 요소를 부각시켰다. 시민과 함께해온 지역문학의 발전상도 제시했다. 또 단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룬 압축적 근대화와 민주주의의 정착 성공모델을 제3세계 도시들에 전파하겠다고 설득한 점 등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이번 문학창의도시에 대규모 출판단지 인프라를 갖춘 파주가 탈락되고 부천시가 선정된 의미는 남다르다. 부천에는 유명한 문인이나 출판단지 등 변변한 문학적 인프라도 없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문학적 환경 속에서 시민과 함께 성장해온 교육과 문화·도서관·시민역량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향후 중장기 추진계획으로 제시한 ‘디아스포라 펄벅국제문학상 격상’과 ‘도서관 교류’ 등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잘 맞아떨어졌다. 부천은 신생 산업도시이지만 짧은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현대 문학의 전통을 갖고 있다. 한국 신시의 선구자이며 초대 한국 펜클럽 회장을 지낸 변영로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지용이 부천과 깊은 인연이 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당시 이곳 주민의 삶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외에 부천의 문인 작품 중 상당수가 초·중·고 (국어 및 문학) 교과서에 수록됐을 정도로 부천은 한국의 현대 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변영로·정지용·목일신·양귀자 등 인연 부천에서 문단과 문인활동이 발전하기 시작한 계기는 1973년 시 승격 이후 이곳에 이주민이 늘어나고 여러 교육기관이 확대되면서 기성 문인과 작가 지망생들도 함께 늘어났다. 실제 이 시기에 다양한 문인단체들이 창립되기 시작했다. 이즈음 부천에서 왕성하게 활동한 문인들을 보자. 먼저 신시의 선구자 변영로를 들 수 있다. 변영로는 자신의 호를 부천의 옛 이름을 따서 수주라 했다. 서울에 거주할 때도 주소는 부천에 두고 죽어서도 부천 고향집 뒷산에 묻혔다. 부천 시민들은 변영로의 문학적 성취를 기념하는 다양한 노력을 했다. 고향집에 문학 푯돌을 설치하고 묘 아래에는 시비를 마련했다. 부천 중앙공원에도 그의 시비가 있다. 부천 입구인 고강지하차도 근처에는 기념동상이 있다. 변영로가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박목월 시인의 평가에서 엿볼 수 있다. 박목월은 변영로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언어연마의 길을 연 분”이라고 극찬했다. 아다시피 1948년 중등국어 1학년 교과서에 ‘벗들이여’가, 1953년 중등국어 3학년 교과서에는 ‘논개’ 시가 실렸다. 변영로의 ‘논개’는 이후 2003년까지 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한번 걸러 수록됐다. 부천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정지용과도 인연이 있다. 가톨릭 신자였던 정지용은 공소만 있던 부천에 신부를 모셔왔다. 이를 본당으로 승격해 부천 최초의 성당을 창립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전쟁 기간 중 월북 혐의로 정지용 작품은 1988년에 이르러 전면 해금됐다. 현재 그가 살았던 소사동 89-14번지 일대에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부천중앙공원과 소사본동 주민센터 앞에는 그의 시비가 있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2003년 중학교 국어교과서를 비롯해 고등학교 작문교과서, 문학 교과서에 실렸다. 한국아동문학가협의회 부회장을 지낸 목일신도 있다. 1960년 부천으로 이사 와 1986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다. 그의 작품 중 ‘자전거’, ‘자장가’,‘비눗방울’, ‘아롱다롱 나비야’, ‘참새’ 등 수많은 작품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주민들은 부천중앙공원에 노래비를 세우고 범박동에 그의 이름을 딴 일신초등학교와 일신중학교를 세웠다. 역곡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유경환의 동시 ‘샘물’은 2002년 초등학교 5학년 읽기 교과서에 실린 바 있다. 특히 양귀자의 단편집 ‘원미동사람들’ 가운데 ‘일용할 양식’은 2003년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전문이 수록됐다. 이후 현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문학을 통해 부천을 알고 있다.부천의 문학 전통 중 특이한 것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벅 여사와의 인연이다. 펄벅 여사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부천을 중심으로 전쟁고아를 보호하고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처우 개선운동에 앞장섰다. 그녀는 본인이 관찰한 한국전쟁과 혼혈인을 소재로 ‘살아있는 갈대’와 ‘새해’를 집필하기도 했다. 부천시는 펄벅 여사의 숭고한 삶과 봉사정신을 기념하며 그녀의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려 노력하고 있다. 부천이 산업단지로 발전하면서 배움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55년 전쟁고아 교육을 위한 소사성당 야학이 설립됐다. 이후 1980년대에는 노동자 야학기관이 10여개로 늘어났다. 야학에서 시작해 정규학교로 개교한 사례도 있다. 야학운동은 주민을 위한 도서관운동으로 이어졌다. 현재 시립도서관 13곳을 비롯해 작은도서관과 전문도서관, 이동도서관 등 특화된 도서관 126곳을 갖춰 ‘도서관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다. ●국내 교류… 국제 심포지엄·세미나도 부천은 오는 18일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지정을 축하하는 기념식과 북페스티벌을 연다. 또 18일부터 이틀간 한국문학인대회를 열고 부천작가콘서트가 다음달 12일까지 진행된다. 내년에 다양한 문학행사와 지역문인기념 사업을 확대해 기반 분위기 조성을 해나갈 예정이다. 대외적으로 오는 21일 경남 통영에서 창의도시 워크숍 참석을 개최해 국내 교류가 시작된다. 내년 10월에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 가을대회 유치가 확정돼 심포지엄과 국제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다. 대내적으로는 이달부터 문학창의도시 지정 후속 대책으로 단기전략과제 조언을 받고 사업추진계획수립 TF팀을 구성한다. 내년부터는 부천글쓰기 대회와 문화장르 창의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중장기 과제 발굴을 위한 용역을 계획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문학의 힘, 당신을 기다립니다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불꽃을 쏘아 올리는 일.”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 쓰기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도전한 이들의 첫발이 그랬습니다. 소설가 하성란·강영숙·한강·편혜영·백가흠, 시인 나태주·김경주 등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작가들이 쏘아 올린 불꽃은 한국 문단에 찬란한 순간들을 새겨 넣었습니다. 문학의 새날을 열어 갈 주인공은 여러분입니다. 시대의 아픔과 불합리를 꿰뚫어 보는 깊은 눈, 절망을 희망으로 옮기는 반전의 글쓰기로 ‘문학의 힘’을 일깨워 줄 당신을 기다립니다. ■마감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5편 이상) 300만원 ●시조(5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보내실 곳 (우편번호 04520)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서울신문사 3층 편집국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8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이름(반드시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는 A4 용지에 별도로 적어 원고 뒤에 첨부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8.
  • “터키 독자에게 영감 주는 것이 곧 연대”

    “터키 독자에게 영감 주는 것이 곧 연대”

    “터키인들 문화적으로 유연… 한국 문학 잘 받아들여 놀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주목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통을 겪는 터키인들을 떠올렸습니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쿠데타가 많았는데 그런 게 국민에게 늘 상처였죠. 이런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치료하기조차 힘들죠. 소설의 화자인 소년이 극단적인 고통에 내몰려도 동정을 자아내기보다 오히려 독자를 웃게 만들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습니다.”●한국전 참전했던 터키인 이야기 소설가 손홍규의 장편소설 ‘이슬람 정육점’에 대한 터키 영화감독이자 소설 평론가인 르자 카르치의 평이다. 2010년 출간된 이 작품은 터키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게 된 터키인 하산이 주인공이다. 그가 마음속 상처가 큰 고아 소년을 입양해 함께 생활하면서 세상의 따뜻함을 알아 간다는 내용이다. 터키에는 2013년 소개됐다. 5일 이스탄불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튜얍전시장 내 한국관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카르치 감독과 손 작가는 40여명의 독자 앞에 앉았다. 대부분 참석자들이 젊은 학생들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행사 이후 이어진 사인회에서도 현지 독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참전했고, 온 가족이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나왔다”는 22세 청년(얄츤 오주유렉)부터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책을 샀다”는 40대 중년 여성(귤친 요르군)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한국·터키 문학인들 소통 중요” 이날 서울신문과 만난 손 작가는 “한국 문학에 대한 터키 독자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한류의 덕인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손 작가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든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든 아무래도 괜찮다”면서 “터키인들이 한국에 대해 폭넓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면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작가는 특히 “문학을 알게 된다는 것은 우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소통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작가는 터키인들이 문화적으로 융통성이 있고 개방적이어서 우리 문학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무슬림이 정육점을 운영하는 설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곳 인터넷 서평 별점이 박하다고 들었는데, 많은 터키인들이 소설의 설정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놀랐다”면서 “터키는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세속주의를 추구해 유연하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터키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의 매력을 알리려면 우선 양국의 문학인들이 소통, 교류하는 장이 필요할 터다. 카르치 감독과도 이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는 손 작가는 “촛불 혁명을 거치고, 험난한 시국에도 당당히 맞서 온 한국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터키 작가와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영감과 힘을 전해 주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방식이지만 이것이 곧 연대”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이스탄불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아동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 김이구씨 별세

    아동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 김이구씨 별세

    아동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로 활동해온 김이구(金二求)씨가 31일 오전 10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59세.195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국문과와 서강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문학의 시대’ 4집을 통해 소설가로,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학평론가로 각각 등단했다. 고인은 아동·청소년문학과 국어교육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아동문학전문지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 편집사원으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상무이사를 역임했고 최근까지 창비교육 상임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로 문학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평론집 ‘어린이문학을 보는 시각’, ‘우리 소설의 세상 읽기’,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와 동화집 ‘궁금해서 못 참아’ 등의 저서를 남겼다. 소설집으로 ‘사랑으로 만든 집’, ‘첫날밤의 고백’ 등이 있다. 2015년 이재철 아동문학평론상, 2007년 ‘올해의 출판인’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아내와 딸이 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 3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2일. ☎ 02-2633-4455.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욱동의 창문을 열며] 이시구로의 미덕

    [김욱동의 창문을 열며] 이시구로의 미덕

    노벨문학상은 여섯 분야에 걸쳐 수여하는 노벨상 중에서도 여러 모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노벨문학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다른 상과는 달리 인간의 정신적 측면, 즉 인간 정신이 빚어낸 찬란한 우주에 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상은 다른 분야와 달리 선정 기준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물리학상이나 화학상만 같아도 절대적 기준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객관적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클래리베이트는 2002년부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해 왔다. 그 기관의 예측이 크게 벗어나지 않아 흔히 ‘노벨상 족집게’로 통한다. 클래리베이트는 뉴욕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정보기업 톰슨 로이터의 IP 및 과학 사업부의 새 이름이다.그러나 노벨문학상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다국적 정보기업이 아니라 영국의 도박회사 래드브록스가 수상자를 예측해 왔다. 래드브록스는 매년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배당률을 공개한다. 영국에 있는 최대의 스포츠 베팅 회사인 래드브록스는 특히 축구와 경마에서 좋은 배당률을 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렇게 도박회사가 노벨문학상을 예측한다는 것은 그만큼 객관적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올해 노벨문학상은 래드브록스 예측을 뒤엎고 일본 태생의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영예를 안았다. 1954년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이시구로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해 1982년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영국 귀족의 장원을 우주로 여기고 살아 온 한 남성의 삶을 통해 1930년대 격동기 영국 사회를 다룬 ‘남아 있는 나날’로 1989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결정하면서 그가 “엄청난 감동적인 힘을 지닌 소설에서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환상 밑에 있는 심연을 밝혀낸”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시구로는 문학적 업적 말고 또 다른 면에서 상을 받을 만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수상 소식이 전해질 당시 그는 북런던 자택의 뒤뜰에 앉아 있었다. 에이전트로부터 수상 소식을 처음 전해 듣고 그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가짜 뉴스의 희생자가 됐다고 의심했다”고 말했다. 에이전트에 이어 그는 곧바로 스웨덴 한림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시구로는 “스웨덴으로부터 걸려온 상냥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나에게 노벨문학상을 받아들일 것인지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화 목소리가 침착한 낮은 목소리여서 놀랐다”면서 “그들은 나를 어떤 파티에 초대하는 것 같았고, 내가 거절할까 봐 염려하는 듯했다”고 전했다. 이시구로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가짜 뉴스’로 생각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상에 이렇다 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껏 자신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작가로서 작품 창작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을 뿐 상을 받으려고 애쓰거나 안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작가에게 최고의 영예는 상이 아니라 작품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작가로서의 성실성, 외부 압력에 무릎 꿇지 않는 작가로서의 양심이다. 그러므로 이시구로에게는 작가로서 가장 큰 미덕인 겸양이라는 또 다른 상을 주어 마땅할 것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문인 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러시아의 양심’으로 일컫는 레프 톨스토이가 그러하고, 상징주의 시를 굳건한 발판에 올려놓은 폴 발레리가 그러하며, 근대극을 완성한 덴마크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그러하다. 자연주의 문학의 대부 에밀 졸라도 노벨문학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작가들도 더러 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너드 쇼는 1925년도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수상 결정을 거부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복권이라 부르며 가치를 폄하했다. 개인의 소신보다는 정치적 이유가 큰 몫을 했지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도 노벨문학상을 거부했다.
  • 문향에 취한 성북의 가을

    문향에 취한 성북의 가을

    깊어지는 가을, 서울 성북구에서 문학의 향기에 취할 수 있는 ‘2017 성북문학제’(포스터)가 열린다.성북구는 12일 오전 11시 성북천 바람마당에서 문학, 사진 작품을 전시하고 일부 작품을 낭독하는 시간이 마련된다고 10일 밝혔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지난달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성북문예작품 공모전 입상작이다. 해당 공모전에서 시, 수필, 편지, 사진 부문의 작품을 공모했으며 심사를 거쳐 14개의 수상작이 뽑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공모전 입상자에 대한 시상도 진행될 예정이다. 시 부문에는 ‘처진 가을 꽃’의 홍란씨 외 3명, 수필 부문에서는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의 임진회씨 외 3명, 편지 부문에서는 ‘살아갈 힘을 주는 고마운 동생에게’의 조영수씨 외 3명, 사진 부문에서는 ‘공룡이 나타났다’의 정진아씨 외 1명이 입상했다. 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은 치매에 걸린 노모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담았다. 수필 부문 최우수 작품은 환경미화원, 경비원, 요양병원 간병인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담았다. 성북구 관계자는 “시민의 숨은 글솜씨와 작품을 만나 보는 기회와 더불어 다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문화의 장이 펼쳐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사단법인 여성중앙회, 여성문제연구회, 여성꿈의공동체 등 성북 지역 내 여성단체가 다양한 부스를 운영한다. 서예, 퀼트 모임의 작품 전시, 벼룩시장, 먹거리 판매, 양말인형 만들기, 캘리그래피 체험 등의 부스가 마련된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제인 오스틴의 통찰, 카프카의 부조리’…노벨문학상은 英 작가 이시구로에

    ‘제인 오스틴의 통찰, 카프카의 부조리’…노벨문학상은 英 작가 이시구로에

    노벨문학상이 다시 ‘정통 문학’의 손을 들어줬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현지시간)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을 올해 수상자로 호명했다. 영국 작가의 수상은 도리스 레싱(1919~2013) 이후 10년 만이다.이시구로는 이날 발표 직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은 내가 위대한 생존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됐다는 의미라 매우 감명깊은 영광”이라며 “불확실한 시대에 노벨상이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시구로는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등 여덟 편의 장편소설과 영화·드라마 대본, 서정시 등 장르를 자유로이 횡단해 온 영미권 대표 작가다. 한림원은 “이시구로는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 있다는 우리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냈다”는 평으로 노벨문학상이 다시 문학의 ‘본류’로 회귀했음을 보여줬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그는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뒤섞은 듯한 매우 흥미로운 작가”라고 했다. 지난해 미국 가수 밥 딜런, 재작년 벨라루스 출신 르포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에게 상을 안기며 잇단 ‘파격’을 연출했던 노벨문학상이 올해는 세계 문단이 수긍할 만한 안정적인 선택으로 돌아선 셈이다. 그의 오랜 문우인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시구로도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도 만들 수 있다. 밥 딜런을 간단히 눌러버리라”는 농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내가 쓴 일본은 상상한 일본”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해양학자이던 아버지가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켄트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한 그가 작가로 등단한 것은 스물 여덟 살이던 1982년. 데뷔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폭으로 황량해진 일본의 풍경을 절제된 목소리로 그린 ‘창백한 언덕 풍경’이었다. 이 작품과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 역시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과거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나눈 한 대화에서 그는 “작품에서 드러낸 일본은 상상한 일본이었다”는 말로 일본 태생이 작품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간 일본 태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는 “일본어로 말하는 가정에서 일본인 부모님들에게 자랐기 때문에 완전히 영국사람과 같지는 않다. 부모님도 일본 사회의 가치를 내게 가르치려 하셨기 때문에 내 관점은 (보통 영국인들과)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저작들은 살만 루시디,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 등과 자주 비교되지만 이시구로는 그런 평가를 거부해 왔다. 대표작은 1930년대 격동기 영국을 배경으로 귀족의 장원을 관리하는 집사 스티븐스의 삶을 그린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1989)이다. 자신의 의무를 위해 사랑마저 거절하는 집사의 고지식하고 정직한 성정을 파고드는 섬세한 문장들로 이시구로는 결함과 미덕을 지닌 인간의 양면을 보여주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영미권 대표 문학상인 맨부커상 수상작인 작품은 앤서니 홉킨스, 엠마 톰슨 주연의 영화로도 대중들에게 익숙하다. 최근작인 파묻힌 거인(2015)까지 8편의 장편, 영화·드라마 대본 등을 써 온 그는 2009년 더타임스가 선정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1995년)을, 프랑스 문예훈장(1998년)을 받기도 했다.풍요하고 서정적인 언어 구사로 독자 사로잡아 한기욱 인제대 영문과 교수는 “이시구로는 서정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병행해 온 그는 풍요하고 서정적인 언어 구사, 1인칭 시점 등을 통해 독자에게 인물에 대한 호소력, 서사에 대한 흡인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재능이 있는 작가“라며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복제인간이 등장하는 미래 세계, 중세 유럽 도시 등 다양한 시기와 배경을 다루며 문명 비판적인 목소리도 내왔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에도 다수 출간돼 있다. 데뷔작인 ‘창백한 언덕 풍경’을 비롯해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 길러진 복제인간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린 ‘나를 보내지 마’, 세계 대전 당시 선전 예술을 통해 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화가 이야기를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 등이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최고 생산성은 주민 참여”… ‘협치 은평’으로 지방자치 완성

    [자치단체장 25시] “최고 생산성은 주민 참여”… ‘협치 은평’으로 지방자치 완성

    “집단지성이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주민 자치가 바로 그것입니다.”김우영(48) 서울 은평구청장은 지난 18일 은평구청 사무실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능력 있는 카리스마형 지도자나 계몽군주가 주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구청장은 “한 명의 뛰어난 리더보다 다양성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길”이라면서 “이런 면에서 주민참여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참여 행정’은 민선 5~6기를 관통해 온 김 구청장의 소신이자 최대 성과이다. 김 구청장은 주민참여 행정이 성공해야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 구현이 가능하다고 보고 취임 초기부터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10년 7월 민선 5기에 취임한 이후 그해 12월 서울시에서 최초로 ‘주민참여 예산제’를 시행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공무원이 아닌 주민들이 예산 편성 과정에 직접 참여해 예산 낭비를 막아 지방재정 투명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참여민주주의 제도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 기본조례안’을 제정해 참여 자치의 기반을 조성했다. 이어 2011년 11월에는 주민 총회를 개최하고 2012년부터는 인터넷, 모바일 투표도 시행하며 주민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늘려 왔다.김 구청장은 “처음에는 주민참여예산제 등 주민 자치에 대해 절차가 복잡해지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면서 “전문가 용역을 통해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득해 가면서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은평구의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서울시가 이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은평구는 2011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공모해 ‘구산동 도서관마을’ 조성 관련 예산 24억원을 얻어내며 사업 추진을 위한 초기 자본을 마련했다. 이후 노후 다가구와 다세대주택들을 리모델링해 만든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과 제10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받는 성과도 이뤘다. 불광천변 공중화장실 설치, 갈현동 비탈길 소형제설차량 구입 등도 모두 주민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한 주민참여예산 사업이다. 올해 3월에는 한발 더 나아가 민관협력과 주민참여 활성화를 지원하는 ‘은평구 민관협치활성화를 위한 기본 조례’를 제정했다. 또 지난 8월 ‘협치은평선언 대회’를 개최해 지역주민, 시민사회, 행정이 협치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이뤄 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 구청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방자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 관련, “지방자치는 현재 중앙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지방으로 분배하자는 것”이라면서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가지는 권력을 그 힘의 원천인 국민에게 돌려주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은평구는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김 구청장은 2010년 민선 5기를 시작하면서 주민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을 위해 두꺼비하우징이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첫 사업 대상지는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이었다. 1960~70년대 망원 지역 수해민들이 이주해 온 지역으로 재개발 사업성이 없어 낙후됐었다. 이에 구는 10억원 정도를 서울시로부터 받아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주민들과 공무원이 몇십t의 쓰레기를 치워 텃밭을 만들었다. 보도블록 하나도 주민이 고르고 설계했다. 그 결과 산새마을은 안전하고 쾌적하며 주민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마을로 재탄생했다. 은평구에서 시작한 도시재생사업은 서울시 정책이 되고,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토대가 됐다. 김 구청장은 “도시재생사업은 단순히 건물에 페인트를 칠하고 마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복원시켰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산새마을은 주민들이 사업을 주도하면서 텃밭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 간의 관계망이 형성됐다. 주민의 삶이 운영되는 원리를 바꾼 것”이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춰 불광동 향림마을에서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해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불법 주정차 폐쇄회로(CC)TV 구축, 홀몸 어르신의 집안에 센서를 설치해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홀몸 어르신 서비스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은평구는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서울 자치구 중에서 가장 많은 구이기도 하다. 이에 김 구청장은 공공 노인 일자리 사업을 꾸준히 시행한 결과 2004년 150명이 참가했던 일자리 사업이 올해는 68개 사업에 2805명이 참여하는 규모로 크게 확대됐다. 특히 김 구청장은 문화를 통한 지역성장 동력을 마련하고자 임기 내내 힘써 왔다. 북한산과 불광천 등 자연환경이 좋고 많은 문인과 예술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특색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김 구청장은 “은평구는 변방이지만 역사와 문화 자원이 풍부하다”면서 “교육과 문화를 통해 품격을 높이는 방법으로 도시 발전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15년 한문화체험특구로 지정받은 진관동 북한산 일대를 북한산둘레길, 은평역사 한옥 박물관, 셋이서 문학관 등과 연계해 한류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기자들이 모여 살았던 기자촌 지역에 언론기념관을 짓고 한국 고전번역원 등이 건립되면 기자촌~은평한옥마을~북한산을 잇는 문화체험 관광벨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은평구는 남북을 잇는 통일로의 접점지역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이에 구는 최근 ‘분단문학의 거장’ 이호철 작가를 기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제정했다. 이 작가는 은평구에서 50년 이상 거주하며 분단 현실과 사회 갈등을 다룬 글을 쓰다가 지난해 별세했다. 김 구청장은 “통일로는 도로 명칭이기도 하나 통일이라는 목표를 뜻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생전 이 작가와 함께 공을 들였던 국립한국문학관 유치가 무산 위기에 빠지면서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다. 정부는 2015년 서울 4개 자치구와 세종시를 대상으로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기본계획 용역 및 심사를 벌여 은평구 기자촌을 문학관 설립 적격지로 결정했다. 공모 결과 전국에서 24개 지자체가 참여하는 등 유치전이 치열해지자 문체부는 지자체 간 과열 경쟁을 이유로 공모를 취소했다. 김 구청장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립문학관 유치를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또 남은 임기 동안 수색역사를 문화 역사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구청장은 “수색역은 통일의 관문이고 인천공항철도와 경인선이 만나는 교두보”라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그동안 수색역 개발 문제를 민간 자본에 의지해 추진하려다가 사업이 늦춰졌다”면서 “공공 개발 방식으로 바꿔 수색역세권을 문화·교통 전진기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김우영 구청장은 누구 민선 5기 41세 최연소 당선… 정치·행정 두루 경험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은 강원 강릉 출신으로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고 장을병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민주당 이미경 의원 입법보좌관으로 10년 가까이 일했으며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당시 41세로 ‘최연소’ 구청장으로 당선된 후 민선 6기 구청장을 맡고 있다. 지방행정과 중앙정치를 두루 거치면서 정치와 행정 분야 양쪽에서 경험을 쌓았다.
  • [열린세상] 공영방송과 그 적들/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열린세상] 공영방송과 그 적들/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바진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야만성을 이렇게 고발했다. “10년 문화혁명 중에 나는 수성(獸性)의 대발작을 충분히 보았다. 조반파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와 늑대가 되는지 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는 사람과 짐승이 뒤바뀌는 과정을 똑똑히 보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화혁명은 혁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광란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무너지고 문화는 파괴됐다. 상상을 초월한 한 바탕의 대재앙, 그 전위가 바로 홍위병이다. 그런 광란의 역사를 모르지 않을진대 어떻게 홍위병이라는 섬뜩한 말을 예사로 할 수 있을까. 지난겨울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일부 정치 세력은 집회 참가자들을 홍위병이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공영방송 사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또 홍위병이라는 말이 나왔다.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MBC 김장겸 사장은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이 참담하게 무너졌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등을 거론, “언론 노조의 직접 행동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했다”며 노조를 홍위병에 빗댔다. 홍위병의 실체는 알고나 하는 말인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유를 하더라도 대상을 제대로 짚어 해야 할 것이다. 노조이고 아니고를 떠나 같은 회사 직원을 광기와 미망의 주체로 규정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이미 조직의 책임자로서 자격이 없다. 바진의 말대로 문화혁명 당시 사람들은 사람과 짐승이 뒤바뀐 채 서로 적이 되어 싸웠다.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 뒤섞였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짐승이었던가. 세상에서는 불의가 곧잘 정의 행세를 한다. 가당치도 않게 법을 얘기하고 원칙을 얘기하고 가치를 얘기한다. 김 사장은 대통령과 여당이 압박하고 언론노조가 행동한다고 해서 합법적으로 선임된 공영방송의 경영진이 물러난다면 이것이야말로 언론 자유와 방송 독립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공신력과 객관성을 인정받는 영국 BBC 같은 공영방송 흉내라도 낸 후에야 비로소 할 수 있을 법한 말이다. 제작 자율성 침해에 ‘MBC판 블랙리스트’ 논란까지 ‘비정상의 일상화’를 가져온 사람이 누구인가. 김 사장은 부당 노동행위와 심각한 보도 공정성 훼손 등의 이유로 이미 ‘공영방송의 적’이 됐다. MBC 정상화 투쟁을 “정치권과의 결탁” 운운하며 음모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그것은 공영방송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마치 언론 독립 투사라도 된 양 ‘도덕적 확신범’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볼썽사납다. 창공을 나는 쾌락, 아니 본능을 잊지 못하는 매는 떨어져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벼랑 끝에서 최후의 비행을 시도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끝내 창공을 질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물의 세계다. 인간의 세계에서 그것은 언제나 선은 아니다. 본능대로 살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만은 없는 게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책임윤리가 있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이 우주보다 한층 더 나은 이유는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 없는 동물의 삶을 살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의 삶을 살 것인가. 김 사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실존적 결단이다. 바진이 말했듯이 아무리 수천, 수만 송이의 꽃으로 치장해도 거짓말이 진리로 변할 수는 없다. 어떤 수사를 동원해도 공영방송 MBC가 빈껍데기만 남은 사실은 가릴 수 없다. MBC의 브랜드 가치가 하락한 게 단지 파업 때문인가. 김 사장의 반언론·반민주 행태와는 무관한가.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을 ‘유사언론’의 지경으로까지 내몬 ‘불량 언론인’부터 정리돼야 한다. 전비(前非)를 뉘우치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MBC는 총파업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는 이해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국가적 과제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영방송의 파행 원인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한 채 언론개혁을 ‘의도적’으로 오독하려 한다. 그렇기에 언론 스스로 더욱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론에 아직 자정의 능력이 남아 있다면 정치 권력에 복무하는 ‘언론 아닌 언론’, ‘언론인 아닌 언론인’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언론개혁은 한시도 지체될 수 없는 개혁과제 중의 개혁과제다.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이국에서 길어 올린 모어 사랑 30년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이국에서 길어 올린 모어 사랑 30년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다. 재미시인협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에 나태주 시인과 함께 강연자로 참여한 것이다. 재미시협은 모어(母語)의 품과 격을 견지하면서 시를 써 가는, 일상적으로는 이중언어 환경에 놓인 ‘이민자’ 시인들의 모임이다. 그 나름의 치열한 언어 의식을 가지면서 이국에서의 오랜 경험 속에 녹아 있는 모어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정성스레 개척해 가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에둘러 외현(外現)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시인들의 노마드적 언어는 이민 생활에 따른 보람과 행복은 물론 근원적이고 인생론적인 고독이나 결핍까지 선명하게 전해 줌으로써 한반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한국문학의 예외적 성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시인들은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이나 조국에 대한 애정 혹은 보편적 인생론 등을 힘 있게 노래함으로써 오랜 이민 생활을 한편으로는 누리고 한편으로는 견뎌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시인들은 모어에 대한 애착을 통해 자신들의 시 쓰기가 불가피한 존재론적 사건이자 작업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이민 생활을 관통하면서 존재하는, 양도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일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자신이 살아온 오랜 세월에 대한 그리움도 가로놓여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쌓아 온 재미시협의 성취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모국과 이국 사이에서, 기원(origin)과 현재형 사이에서 자신을 가능케 했던 모어에 대한 사랑의 힘을 거듭 확인하게 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문학 단체가 처음 설립된 것은 1982년 9월 미주한국문인협회가 신호탄이 됐다.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면서 한국인 문학 단체는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재미시인협회’와 ‘미주시인협회’가 나뉘는 아픔을 겪었지만, 최근 다시 통합돼 이번에 뜻깊은 행사를 치른 것이다. 조옥동 재미시협 회장은 “많은 시인이 동참하여 시밭을 드넓고 아름답게 펼쳐 나갈 사명”을 확인해 가겠다고 말했고, 행사에 참여한 김낙중 LA 한국문화원장도 한국의 예술과 역사를 알리는 공동 목표를 한국문화원과 재미시협이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격려했다. 현재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는 재미시협 기관지 ‘외지’(外地)는 이러한 성과를 앞으로도 담아 갈 것인데, 이러한 이들의 활동에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더욱 많은 후원이 있기를 희망해 본다. 오래전 한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나운서는 ‘해외동포 여러분!’을 꼭 인사말 앞에 넣었다. 그 ‘해외동포 여러분’은 여전히 모어의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언어 공동체를 자신의 존재론적 원천으로 상상해 가고 있다. 물론 트랜스내셔널 시대를 가로지르는 디아스포라 경험을 한국문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은 첨예한 쟁점을 안고 있는 문제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문학적 성취를 한국문학의 중요한 심층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한반도 바깥에서 펼쳐지는 중국 조선족문학,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 미주문학 등은 한국문학의 소중한 외연이자 ‘이민문학’이라는 특수성이 집약된 결실일 것이다. 어쩌면 시간이 갈수록 모어로 글을 쓰고 작품집을 내면서 자신의 경계적 정체성을 사유해 가는 그들의 숫자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민문학의 코어에서 더욱 창작에 진력하는 분들이 많이 나오고, 그분들의 경험과 기억이 국내 문단에도 매우 중요한 ‘타자의 거울’이 되기를, 그리고 이민문학을 해가는 분들도 국내 문단에의 종속성을 한결 덜어 내면서 자신들만의 오롯한 특수성을 개척해 가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이번 행사는 그 점에서 한국 이민문학의 뚜렷한 역사적 표지(標識)가 돼줄 것이다. 그렇게 이국에서 길어 올린 모어 사랑 30년이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이들의 ‘외지’에서의 시 쓰기는 지속될 테니까 말이다.
  • “소설, 흑백 역사관·단편적 사고 맞서는 존재”

    “소설, 흑백 역사관·단편적 사고 맞서는 존재”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설은 그런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고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최근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출간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8)가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출판사 문학동네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서다. 국내에서도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하루키는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7년 만의 신작은 여름철 서점가를 강타, 이번에도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했다. 문학동네는 지금까지 4쇄, 40만부를 찍었다. 하루키는 이번 신작에서 난징대학살을 다뤄 일본 우익의 공격을 받았다. 한국은 최근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좌우 갈등을 겪었다. 양국에서 역사관의 대립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소설은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일종의 (좋은 의미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재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순수한 흑이냐 백이냐’ 하는 원리로 판단이 이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버리죠. 사람들은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대고요. 이것은 매우 슬프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을 소생시켜야 합니다. 말을 따뜻한 것, 살아 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양식’(decency)과 ‘상식’(common sense)이 요구됩니다.” 소설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강조하면서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념의 도구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신작에서 그가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것처럼 한국에선 세월호 사태라는 재난 이후 문학의 역할론이 대두됐다. 그는 크고 깊은 집단적 마음의 상처를 유효하게 표현하고 치유하는 일이 문학의 역할이긴 하나 “‘어떤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쓰인 소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처 치유는)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진 중대한 과제다.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거나(혹은 지워버리는),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9세에 첫 소설을 쓴 그는 “그땐 ‘소설 같은 건 앞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예순여덟이 되고 보니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만큼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글쓰기는 악기 연주처럼 예나 지금이나 즐겁다고 강조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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