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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야 통합 「전국연합」 창립/오늘 발족식

    ◎학생등 3천명 연대서 철야농성/경찰선 원천봉쇄… 충돌예상 「전민련」을 중심으로 한 재야단체와 「전대협」등 학생운동권은 1일 연세대에서 이른바 「민주주의민주통일전국연합」을 발족시킨다고 이 단체 준비위원회가 30일 밝혔다. 준비위는 이날 상오 연세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92년과 93년 권력재편기에 대비,민족민주세력의 통일적인 조직 건설 필요성에 따라 새로운 최대 단일재야조직을 결성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이 조직체는 민중주도의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구심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의 집회가 미리 신고를 하지않은 불법집회이기 때문에 연세대 주변에 전경 등을 배치,참가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그러나 준비위측은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결성식을 강행할 방침』이라고 밝혀 또한차레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한편 이날 하오9시30분쯤 학생 근로자등 3천여명이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연세대로 들어가 전야제행사인 「제3회 임수경 통일문학상 시상식」을 갖고 철야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연세대근처에 있다 정문과 세브란스병원쪽 담을 넘어 들어갔으며 이과정에서 경찰과 학생 근로자 10여명이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부상을 입었다.
  • 공초문학상 기금마련 전시회 개막

    공초문학상 기금마련 희사작품 전시회가 29일 하오5시 서울신문사 1층 서울갤러리에서 개막됐다. 공초 오상순선생 숭모회(회장 구상)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 개막식에는 이어령문화부장관을 비롯,신우식서울신문사사장 서기원한국방송공사사장·문태갑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구상시인·김기창화백·조영암스님등 각계인사 2백여명이 참석했다. 구상·서정주·김기창·이대원·이만익·중광스님등 국내저명 예술인 1백5명이 희사한 1백32점의 시화·서화·서예·도예·회화·조각품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회는 11월9일까지 계속된다.
  • 외언내언

    노벨 문학상 발표 때가 되면 스웨덴 한림원 못지 않게 바쁘고 부산한 곳이 있어 왔다.다름 아닌 한국의 출판계.비교적 무명의 작가로서 수상하는 경우는 그 책을 구하는 데서부터 법석은 시작되곤 했다.◆그 절정은 83년 윌리엄 골딩의 수상 때.그의 「파리대왕」출판에 무려 14개 출판사가 달라들었고 뒤이어 4개사가 다시 뛰어들었다.그건 이전투구의 양상.그 판국에 번역이 제대로 될 턱도 없다.장삿속에 놀아나는 문화적 사대의식의 몰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졌던 마음.그것이 지난해 이르러 수그러들었다.지적 소유권의 제약도 있다 하겠지만 성숙성의 단면을 보인다고도 할 것이다.◆상금도 많고 영예도 따르는 상이다 보니 구설수가 따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무엇보다도 힘의 논이에 지배된다는 비난은 해마다 나왔다.문학상의 경우는 더더구나 그런 것.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저울질하느냐는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돼 온다.10억도 넘는 사용자를 갖는 중국어 작가가 수상한 일이 없다는 것도 이상한 대목.지난 4월 타계한 그레이엄 그린은 거명만 되다 수상 못했다.톨스토이,카프카,프루스트,조이스등등도 그런 사람들이다.◆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네이딘 고디머여사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백인의 눈으로 보는 그 나라의 흑백 갈등을 묘사하는 작품세계.그는 『만델라는 나의 스승』이라고 말한다.말하자면 인류애의 양심에 안겨진 영광.오랜만의 여성 수상자라는 것도 특징이다.66년 스웨덴의 삭스(시)이후 25년 만의 일.이로써 역대 여성 수상자는 7명이 된다.◆우리의 문학 수준이 노벨상 못받을 정도는 아니다.이미 받고도 남았어야 한다.그런데도 못받고 있다.꼭 받아서 맛이라기 보다 받을 수 있게 하는 노력만은 해야 하지 않을까.
  • 올해 노벨문학상에/남아공 고디머

    【스톡홀롬 AFP 연합】 91년도 노벨 문학상수상자에 「남아공문학의 작은 거인」나딘 고디머(68·여)가 선정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3일 발표했다. 한림원의 스투레 알렌 대변인은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리투아니아계 유태인 시계공의 딸인 고디머가 『드물게 폭넓은 작품세계를 가진 여류작가』라고 평가하면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부합되게 인류에게 큰 감동을 준 위대한 서사시를 쓴 공로가 인정돼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여류문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25년만에 처음이며 통산7번째다. 고디머의 작품은 정치색이 짙은 것이 특징으로 인종차별정책에 따라 박해받고 있는 흑인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백인정부는 그녀의 작품의 출판을 금지해왔다. 고디머 여사는 메달 및 상장과 함께 6백만 스웨덴 크로네(약 7억4천만원)를 상금으로 받는다.
  • 남아공 흑백갈등 절묘하게 묘사

    ◎노벨문학상 수상 고디머의 생애와 작품세계/여성으론 66년 삭스후 25년만에 영예/26세때인 49년에 데뷔… 장편 10·단편집 7권 펴내/“백인·흑인 모두 정치적 피해자다” 역설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의 양심을 대표하여 백인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글과 행동을 보여온 여류작가이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1966년 독일계 스웨덴 작가인 넬리 삭스의 수상이후 여성으로서는 25년만에 7번째로 받는 것으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고디머는 40여년간의 작가생활동안 일관되게 남아공의 현실을 작품소재로 삼아왔다.그의 작품들은 남아공의 정치체제가 소수 백인층과 다수 흑인층에 끼치는 영향을 냉철히 관찰하면서 백인이나 흑인이나 모두 똑같이 체제에 의한 정치적 피해자임을 보여준다. 그는 1923년 11월20일 남아공의 스프링스에서 러시아계 유태인 아버지와 영국계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수녀원에서 경영하는 여학교를 거쳐 요하네스버그의 위트워터스트랜드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일찍부터 글을 쓰기시작했으며,다른 작가들이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망명을 하던 시절에도 계속 남아공에 남아서 자신의 정치사회적 신념과 작가로서의 신조를 지켜왔다.1949년 26세에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작품을 발표할때마다 평론가들의 주목과 찬탄을 받으며 지금까지 7권의 단편집과 10편의 장편을 발표했다.그는 지금까지 WH 스미스문학상,제임스 테이트 흑인기념상,토머스 프링글상,부커상등을 수상했으며 허위의식을 거부하고 진실을 보고자 하는 용기있는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문학적 양심의 대변인으로 꼽히는 고디머의 작품들은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방식은 주로 백인주인공의 갈등하는 내면세계를 통해서이다.백인자유주의자로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던 전남편 맥스의 자살소식을 들은 리즈 반 덴산트의 하루를 담고 있는 그의 대표작 「가버린 부르조아 세계」는 백인중산층의 정신적 방황을 드러내준다.분노와 좌절의 암울함이 넘치는 이 작품에서 고디머는 흑인 뿐아니라 백인도 인종차별체제의 희생물임을 확연히 드러내준다. 7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영국 부커상수상작인 「보호주의자」역시 진보적인 성공한 백인기업가 메링의 삶과 흑인 농장노동자들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지배층인 중산층 백인세계의 불안과 정신적 불모성을 그리고 있다. 고디머는 지난해 장편 「아들의 이야기」를 출간했는데 이 역시 흑인 유부남과 반인종차별운동을 하는 백인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남아공의 현실을 조명하고 있다. 고디머의 작품이 갖는 장점은 정치적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개인이 겪는 갈등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처해있는 정치환경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사회적관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는 또 같은 소재라도 작품에서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과 스타일을 개발해 기법적인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이번수상자 선정에 있어서도 「보호주의자」「버거씨의 딸」등의 복합적인 기법이 주요 선정경위가 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 번역소개된 고디머의 작품으로는 「가버린 부르조아 세계」(창작과 비평사),「보호주의자」(지학사)등의 장편소설과 단편 「아이들」「방문객」등이 있다. □고디머 연보 ▲1923년11월20일=남아프리카공화국 스프링스에서 리투아니아계인 부친 이시도어 고디머와 영국계 모친 낸 고디머 사이에서 출생. ▲1949년=결혼,첫 단편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출간. ▲1954년=라인홀드 카시러와 재혼,두 자녀를 둠. ▲1961년=「프라이데이의 족적」으로 WH 스미스 문학상 수상. ▲1969년=토머스 프링글상 수상. ▲1972년=「명예로운 손님」으로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 수상. ▲1974년=장편소설 「보호주의자」로 부커상 수상 ▲주요작품=「보호주의자」「버거씨의 딸」「7월의 손님」「이방인들의 세계」「허위의 나날들」「아들의 이야기」등.
  • 솔제니친,17년만에 귀국길 열려

    ◎소 연방 검찰서 「반역죄」 공식 취하/74년 「수용소군도」 발표한뒤 추방 【모스크바 외신 종합】 소연방 검찰은 소련의 망명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72)에 대한 반역죄 기소를 17일 취하했다고 소련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솔제니친은 지난 74년 그에 대해 취해졌던 국가반역혐의 기소가 취하된 것을 17일 환영하고 귀국의 열망을 강력히 나타냈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소련이 낳은 가장 주목할 만한 반체제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의 과거에 대해 침묵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지난 74년 국가반역의 혐의로 조국에서 강제추방당했다. 제2차대전중 육군대위로 독일국경전에 참전한후 암수술과 소련관료체제의 박해,그리고 자신을 강경노선 공산주의자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만든 추방생활을 극복한 그는 소련검찰이 17일 반역혐의에 대한 공소를 취하함으로써 17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수 있는 길이 법적으로 열렸다. 솔제니친의 작품과 용기는 전세계의 경의를 불러일으켰고 그로인해 그는 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62년 그의 수용소생활을 바탕으로 한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일약 명성을 획득했다. 45년 참전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것이 발각돼 8년의 수용소 억류생활 중 암수술을 받았던 그는 이어 「암병동」과 수용소 생활을 그린 「제일원」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서방에서의 그의 명성이 더욱 확고해지나 소련지도부의 그에 대한 박해는 점차 가중됐으며 70년 노벨문학상 수상이후는 더욱 박해를 받았다. 74년 그가 소련강제노동수용소의 기록 역사물 「수용소군도」를 발표하자 격분한 소련당국은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강제로 해외에 추방했다. 이로써 그의 지난 17년간의 망명생활이 시작돼 76년 그는 미국 버몬트주 커벤디시에 정착했다. 이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서 보내며 소련의 역사를 다룬 3부작 「붉은 수레바퀴」를 집필,80년대 후반에 차례로 발표했다. 지난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솔제니친에 대한 복권조치를 단행했으며 솔제니친은 그에 대한 반역죄기소의 취하를 요구했었다.현재 작품집필중인 솔제니친은 그러나 당장 귀국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 노벨문학상작가 싱어

    【마이애미(미플로리다주) AFP 연합】 197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이작 B 싱어(사진)가 87세를 일기로 24일 사망했다고 그의 부인이 밝혔다. 싱어는 빈민가에 거주하는 동유럽 유태인들에 관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1904년 7월14일 폴란드 라지민지방에서 태어나 1935년 유럽에서의 유태인 몰락을 예견하고 미국으로 이민했다.
  • 노동해방투쟁 주도… 사노맹 핵심/박노해 그는 누구인가

    「사노맹」 핵심인물이자 「박노해」란 가명으로 널리 알려진 박기평씨는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을 냈고 월간 「노동해방문학」지에 노동해방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의 시·평론 등을 많이 기고,노동계로부터 대단한 관심을 끌며 「얼굴없는 지하 노동시인」으로 불리어왔다. 박씨는 지난 77년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82년부터 운전기사로 일했으며 85년에는 경기도 안양소재 안남운수의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운전사와 안내원들에게 의식화학습을 시키다가 해고됐다. 박씨의 가명인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해방」의 준말로서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83년말쯤 당시 문단에 새바람을 몰고왔던 「시와 경제」라는 시동인지의 2집에 「박노해」라는 필명으로 「시다의 꿈」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부터였다. 박씨는 그후 84년 9월 풀빛출판사에서 시집 「노동이 새벽」을 발간,시인으로 데뷔했는데 이 시집으로 88년 1월 실천문학사가 제정한 「제1회 노동문학상」을 받았으며 그의 시집도 매월 1천여부씩 지금까지 7만여부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었다. 박씨는 지난 83년 서울 경동교회 의식화 학습때 현재의 부인 김진주씨를 만나 결혼했다. 한편 이 당시 함께 수배됐던 박씨의 부인 김진주씨(36·이화여대 약대 졸업)는 지난 1일 붙잡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었다. 안기부는 부인 김씨를 추궁한 끝에 박씨의 소재를 알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 외언내언

    민주개혁의 바다 속에서 알바니아는 과연 얼마나 더 「스탈린주의의 고도」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난 7일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알바니아인들이 수도인 티라나 주재 외국대사관을 거쳐 서유럽으로 떠났을 때 남긴 의문이었다. 약 4천명의 망명희망자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서독(당시) 등의 대사관에 몰려든 「피난민 위기」는 흡사 지난해 동독인들이 이웃 동구로 대거 탈출,동독 공산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엑서더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바니아 최고의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말해준다. ◆알바니아의 자랑이며 올해 노벨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멕시코의 파스와 경합했던 그는 최근 프랑스로 망명한 뒤 『지난 봄 이후 민주화를 위한 작은 걸음이 있었다. 나는 알리아(알바니아 대통령)가 고르비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민주화를 하면 체제가 무너진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민주화를 향해 간다면 지속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그는 그의 대표작 「꿈의 궁전」을 통해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는 알바니아 공산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알바니아인 망명사건들이 정치적인 효과를 크게 나타내고 있는지 꼬집어 헤아리기 어려우나 제2,제3의 망명사태가 발생하면 공산주의는 끝내 붕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러한 관측을 의식해서인지 알바니아인민회의는 비밀투표와 후보 선택을 허용하는 민주적 선거법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인권과 종교의 자유 및 외부세계와의 접촉 확대 등 일련의 새로운 조치들을 시행하기 위한 헌법 개정의사를 밝혀 조심스런 개혁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독립(북한의 주체사상과 흡사)을 앞세워 지독한 고립주의를 택하며 국민을 억눌러온 알바니아.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빈곤해 「동구의 병자」로 불리는 그 나라도 주변정세의 급변에는 어쩔 수 없는지 서서히 문을 연다. 알바니아와 함께 공산주의 고수로 고립을 끝까지 지탱해온 북한과 쿠바에는 언제쯤 「민주의 봄」이 찾아들까.
  • 이번 수상은 뜻밖의 일/스페인어 문학의 개가

    【뉴욕 로이터 연합】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멕시코 작가 옥타비오 파스(76)는 이번 수상의 영예는 스페인어권 문학의 개가이며 실로 뜻밖이었다고 첫 수상소감을 밝혔다.
  •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멕시코시인 옥타비오 파스

    【스톡홀름 로이터 UPI 연합】 올해 노벨문학상은 멕시코의 시인겸 수필가인 옥타비오 파스(76)가 타게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11일 발표했다. 노벨문학상이 멕시코인에게 돌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림원의 스투레 알렌 사무총장은 문학상 수상자 발표에서 파스의 시와 에세이들이 멕시코와 멕시코인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미적 지성과 인류애적 일관성으로 특징지워지는 폭넓은 시각을 겸비한 감동적인 작품들』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파스의 작품중 큰 점수를 딴 것은 돌에 새겨진 아즈텍 문명의 대형 태양력 유물을 묘사한 57년작 시인 태양의 돌(SUN STONE)라고 밝히면서 그의 작품들이 『묘사가 곤란한 인류문화의 결실을 훌륭히 그려냈으며 콜룸부스 이전의 인디안문명과 스페인 정복자들,서구 모더니즘을 소재로 다뤄왔다』고 말했다. 지난 1914년 멕시코 시티의 스페인 가계에서 태어난 파스는 커다란 서재를 갖추고 있던 조부의 영향으로 어렸을때부터 문학에 심취해 왔으며 25년간 외교관으로서 각국 대사관에서 일해왔다.
  • 노벨문학상 옥타비오 파스의 생애와 작품세계

    시각적 언어로 폭넓은 세계관 표현/20여년 외교관생활… 동양문학서 영향받아/“인간의 실존』에 관심,초현실주의 수법 구사 금세기 중남미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중의 한사람인 옥타비오 파스는 스웨던 한림원이 그의 노벨상 수상결정과 함께 밝혔듯이 넓은 세계적인 전망을 지닌 지성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 태생으로 스페인 내란때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20여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에서 프랑스 미국 영국 인도 일본 등 세계각지의 영사 및 대사로 근무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폭넓은 시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동양문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남미작가로 중국시나 일본시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도 했고 공간시ㆍ실험시로 불리는 시각적 이미지의 난해한 시를 쓰기도 했다. 멕시코 국립대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931년 바란달(Barandal)이라는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시그룹 타예르(Tallero)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7∼1938년에는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라파엘 알베르티,루이스 세르누다,기옌 데 카스트로,파블로 네루다,세사르 바예호 등 당시의 유명시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그후 1943년에 구겐하임(Guggenheim)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공부한 파스는 파리 주재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초현실주의자 및 실존주의자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멕시코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정부의 유혈진압에 항의하여 외교관직을 사임한 후 귀국하여 오로지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제네바 주재 유엔대표 시절에 국제시상을 수상하였던 파스는 1985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외교관으로서의 공직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예술가생활을 조화있게 영위하였다. 그는 인도와 파리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특히 인도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대사생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동양적인 시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모든 인간의 행위와 예술을 주재하는 것이며 시의 목적은 언어와 사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해방시켜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그가 시의 사회적ㆍ역사적 관점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현대의 시경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초기작품 「언어밑에서의 자유」는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문제에 눈을 돌린 형이상학적인 시세계를 보여주며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시 「태양의 돌」이나 「독수리 혹은 태양」은 남미의 아즈텍 문명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초현실주의 수법을 드러낸다. 우리가 죽은 후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아있는 지금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인간실존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집 「불도마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꿈과 비논리의 세계를 들어가는데 언어사용의 새로운 국면을 시도한 이 작품집은 파스의 가장 난해한 시가 실린 책으로 꼽힌다. 이 시인의 시어탐구는 「동쪽기슭」에서 절정에 이르며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에 영향을 받아 글자배치 및 시의 공간적인 표현방식까지 보인다. 파스의 가장 큰 관심은 시간으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에 대한 그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시간적 이미지를 배치한 「토포에마스와 시간적인 음반」을 냈을 정도다. 이 시각시는 여러가지형태의 판독을 가능하게 할 뿐더러 독자가 직접 작품구성이나 창작에 참여하게 한다. 최근 그의 시는 회화적이고 음악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의 본질은 잔치의 본질과 비슷한 것으로서 달력속에 들어있는 날짜와 달리 그것은 시간의 단계적인 진행을 깨뜨리는 한 파열이며 어제나 내일없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한 현재의 돌입이다. 모든 시는 잔치이며 순수한 시간의 응결이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이다. 그는 또 『역사 없이는 시가 있을 수 없으며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 이외의 시의 다른 사명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난 85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국내에서도 그의 시선집 「태양의 돌」(민용태 옮김)이 발간됐으며 「문학사상」 「외국문학」 「작가세계」 등 문예지에 그의 시론 및 작품세계 등이 소개된 바 있다. □옥타비오 파스연보 ▲1914년 3월31일=멕시코 멕시코시 교외에서 출생. ▲1931년=아방가르드잡지 「바란달」을 창간,자작시를 발표하여 작품활동 시작. ▲1933년=첫 시집 「안개속의 달」 출판. ▲1937년=멕시코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수여 거부. 스페인 내란당시 공화파 적극 지지. 초현실주의 입각한 제2시집 「인간의 기원」 출판. ▲1938년=문예지 「타예르」 창간. ▲1944년=미국 구겐하임 문학상 수상. ▲1946년=외교관 입문,파리에 첫 부임. 카뮈,사르트르,브레튼 등 실존주의 작가들과 교우. ▲1962∼68년=일본 등을 거쳐 인도대사 역임. ▲1971년 이후=미 텍사스대 하버드대 영 케임브리지대 등 객원교수 역임. ▲1981년=스페인어권의 최고권위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 수상. ▲1982년=미 노이스타트상 수상. ▲1985년=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름. ▲주요작품=「야생의 달」(1933) 「돌과 꽃 사이로」(1941) 「세계의 기슭에서」(1942) 「말 아래서의 자유」(1949) 「태양의 돌」 「격렬한 계절」(1958) 「불도마뱀」(1962) 「완전한 바람」(1965) 「공백」(1967) 「동쪽 산기슭」(1969) 「선회」(1976) 등 다수. ○독백 허무와 꿈 사이, 부서진 기둥들의 밑에서, 나의 불면의 시간을 가로질러 가는 너의 이름의 음절들 붉으레한 너의 긴 머리칼, 한여름의 번갯불이 밤의 등 뒤에서 달콤한 횡포의 불빛으로 떨리고 있다. 폐허에서 솟아나는 꿈의 어두운 물살, 허무로부터 너를 벼루어내는 물에 젖은 밤의 해변이여 거기 눈 먼 바다가 밀려와 미친 듯 후려치고 있다.
  • 소설가 이문희씨

    소설가 이문희씨(55)가 7일 상오3시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숙환인 간경화증으로 별세했다. 이씨는 충남 보령군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57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모니카의 계절」(61) 「흑맥」(63) 등을 발표,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제11회 현대문학사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씨는 최근 10년간 절필하다시피 해왔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1남1녀가 있다. 발인은 9일 상오9시 한강성심병원 영안실,장지는 벽제 시립묘지. 연락처 663­9221.
  • “소,북한ㆍ쿠바와 관계 청산해야”/솔제니친,프라우다지에 기고

    ◎새러시아 건설 위한 4가지 방안을 제시/“공산당은 착복한 재산 국가에 반환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련의 저명한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데르 솔제니친(71)은 18일 자본주의의 착취와 같은 서방 문화의 쓰레기를 배제한 상태에서 인민 민주주의와 러시아 정신을 부활시키고 슬라브족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소련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솔제니친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게재된 「어떻게 러시아를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라는 제목의 4페이지에 걸친 기고문에서 물질주의 보다는 유심론에 대한 오랫동안의 선호,통합된 슬라브 국가에 대한 열망,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경멸,민주사회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을 피력했다.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의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구조는 아직 붕괴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 잔재 아래 남을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ㆍ백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 3개 공화국만으로 구성된 단일국가,즉 러시아 연방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거대한 왕국(소련)을 유지하는 것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솔제니친이 조국 소련에 대한 희망을 밝힌 이 기고문은 지난달 그가 복권된데 이어 소련 사회에서 그의 공식적인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이어 소련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을 4가지 꼽았다. 첫째 사람들에게 일하는 맛을 줘야 하고 둘째 러시아의 부를 축내고 있는 모든 정권,특히 쿠바 및 북한과 관계를 끊는 일이다. 셋째 공산당이 착복해온 엄청난 부와 재산을 국가에 반환하는 일,넷째 현 소련정부 부처의 5분의 4를 폐지하고 공산당이 경제와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북녘 손님을 보내며… /실향작가 강용준씨

    ◎“겨우 잡힌 「통일의 가닥」 놓칠 수 없기에 「망향설움」도 삼키며 화답 기다리려오”/새벽부터 통일로 달려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5년쯤 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때도 이와 비슷한 취지와 내용의 글을 어느 일간지에 쓴 일이 있다. 상당한 세월의 흐름이 있은 뒤의 얘기라 지금 그 구체적인 내용이며 정확한 날짜 등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무슨 가무단의 교환방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했던 바로 그 회담때의 일이 아니었던가 싶고,그나마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식의 다분히 냉소와 불신이 주조가 된 그런 글이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그로부터 5년간의 세월이 지나 북측 대표단을 다시 맞게 되었고,3박4일 동안의 일정이 모두 끝나 이제 다시 또 그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면 5년전의 그때와 거의 비슷한 내용 비슷한 느낌을 되풀이 확인하고 체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고,그 가사에 또 그 곡조로구나」 이렇게 다가온다. 예의 그 불신감이며 냉소라고 하는 악마 같은 놈 말이다. 이 점 필자는분명이 해두려한다. 어떤 당위성이나 분위기의 압력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 개인의 경우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저쪽의 이른바 통일전선 노선이 변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우리는 저쪽을 믿어야 하고 또한 믿을 수 있으며,그래야지만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우리앞에 바짝 다가서게 된다. 하는 투의 발언을 어느 얼빠진 대학교수 하나가 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야말로 대단히 수상하고 진짜로 얼빠진 언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결과적으로 오히려 반통일주의자의 행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속으로는 이렇다 할 신념도 자신감도 없으면서 그저 시세에 따라 무책임하게 언동해대는 감상주의적 작태,혹은 또 그 얄팍한 인기주의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하는 식의 편승주의 내지 파렴치한 기회주의적 작태를 필자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점 대단히 기이하지만 이번은 그 색감이며 분위기가 약간은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아직은 너무 막연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없어서 그 섬세한 기미의 핵심을 족집게로 집어내듯이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전체적으로 와닿는 느낌이 전과는 조금 다르다. 4일 상오 10시경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으로 넘어온 북측 대표들의 표정이며 언동들이 비교적 밝고 활기에 차 있었다는 점,서울이 처음이라는 연형묵 총리가 계속해서 『45년동안 넘어서지 못한 곳을 오늘 넘어와 보니 쉽게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을때 그것이 예의를 갖춘 인사말쯤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가슴에 와닿는 부피같은 것 때문에 이제까지 많이 보아온 그 과장된 경직성의 제스처며 혹은 또 그 무지막지한 혁명선동자 같은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런 사정들 때문이었는가. 북쪽의 연총리가 경제테크노크라트 출신이라는 사실도 이쪽의 신경을 풀어놓는 일에 다소간의 심리적 기능으로 작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강영훈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서 『여기 북과 남의 동포형제들이 어울려 있지만 누가 북이고 누가 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가 갈라져 있는 것이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해준다』고 했다는 대목을 기사를 통해 읽으면서 필자는 솔직히 가슴이 뭉클했었다. 그런데 남북한 유엔 단일가입 문제,팀스피리트훈련 문제,콘크리트장벽 철거문제,미군 및 핵철수문제 등을 다시 들고 나왔을 때는『아이고』하고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이것이 또 그 판에 박은 자장가인 것이다. 남북문제라고 할 때 가장 현실적인 당면의 문제이면서 절실하고 또한 가장 해결이 쉬운 이산가족의 재회문제에 대하여 북측은 거의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또한 필자는 그렇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참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가를 말한 것」이 불과 몇시간 전의 일이었는데…. 막말로 필자는 우리식의 나이로 겨우 스무살일 때 그림자까지 합쳐야 겨우 혈혈단신의 몸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이에는 자그마치 40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의 틈이 끼어들었고 따라서 내일이면 환갑의 나이가 된다. 앞으로 필자몫의 시간이 어느정도나 남아있는 것일까. 건강관리를 제대로 해오지 못한 터라 결코 많은 시간이 남아 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흔한 말로 그 전에 한번쯤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모형제의 생사라도 확인해 보아야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지 않을까. 근년으로 접어들면서 필자는 이런 식의 절박감 같은 것을 일종의 섬뜩한 본능처럼 종종 체험하게 된다. 그래 필자의 경우 속으로는 불신감과 냉소감으로(더 노골적으로는 분노감과 증오감으로) 속이 편치가 않으면서도 북측 대표들이 판문각을 넘어오는 그 시각부터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나 돌아가는 그 시각까지 내내 텔레비전앞에 붙박이듯 앉아서 양측 대표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흡사 기도라도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른바 실세라고 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필자 같은 사람의 처지로서는 알 길도 없고 또한 솔직히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어쨋든 한 국가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총리들이 아닌가. 이번만은 어떻게든 좀 해달라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그들의 언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던 것이다. 북측 대표들이 돌아가는 7일 아침 필자는 참 웃기지도 않게 평소 같으면 9시쯤이나 되어야 겨우 일어나 꾸무럭대기 시작하는 평소의 생활패턴에도 불구하고 진새벽부터 일어나 소란을 피웠고 이번엔 서둘러 그들이 거쳐갈 통일로까지 직접 달려갔으며 그리하여 또한 그들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이제 알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그 절박감과 또한 기도라도 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원컨대 원로에 몸들 편히 잘들 가시도록. 아울러 부탁하거니와 85년도인가 가무단을 따라 서울을 다녀간 기자들을 텔레비전앞에 끌어다 놓고는 『거 보니까니 남반부 인민들은 거저 소원이 밥이라도 한번 실컷 먹어보구 죽었으믄 한이 없갔다 그러더구만요』하는 식의 그 우스꽝스러운 짓거리 역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마시도록 당부한다. □약력 ㆍ1931년 황해도 안악태생 ㆍ1950년 평양사대 재학중 인민군 입대,참전중 포로 ㆍ1960년 「사상계」 제1회 신인상에 「철조망」 당선 문단데뷔 ㆍ한국문학 창작상ㆍ작가상ㆍ대한민국문학상 수상.
  • 「범국민 통일주간」 9월 선포

    ◎“남북은 하나”… 민족공동체 인식 심는다/9월9일∼15일까지/영화제·8도 사물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북한도 초청,「한반도」 국제학술회의도 정부는 제1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8월중 서울에서 개최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북한도 함께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민족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일반인식을 폭넓게 확산시키기 위해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1주년(9월11일)을 전후한 오는 9월9일부터 15일까지 1주일동안을 범국민통일주간으로 선포할 방침인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함께 통일문학상과 통일대상제도를 신설,통일문제와 관련해 우수작품을 쓴 작가에게 통일문학상을,남북 대화진전과 통일문제 발전에 공로가 있는 학자·시민·공무원 등에게 통일대상(가칭)을 각각 시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분단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통일주간 행사에서는 북한 및 중·소·미·일 등 한반도 관련국 학자들을 초청,「한반도 통일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8도 사물놀이·통일사진전·북한영화제 등 각종 문화행사,그리고 「북한바로알기운동」을 비롯한 대중행사 등이 다채롭게 개최된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남북 쌍방총리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되는등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통일문제가 냉전논리에 입각,효율적인 대처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데다 국민 실생활과 너무 멀어져 있었다는 자체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행사기간중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7천만 사물놀이 한마당」이 대학로등에서 벌어지며 ▲그동안 매달 한번씩 광화문 북한자료센터내 영화관에서 상영되던 북한영화를 매일 상영하고 ▲일반국민들에게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북한영화·사진 등도 많이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 “경제개혁… 민주화… ”세계 곳곳 선거열풍

    ◎소설가ㆍ일본계 2세후보 백중세 페루/총 4백의석 놓고 38개 정당 각축 불가리아/실권없는 「잠정의회」 8대1 경쟁 쿠웨이트 페루의 대통령 결선투표와 불가리아 및 쿠웨이트 자유총선이 10일 일제히 치러진다. 정치ㆍ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숙제로 안고 있는 이들 나라의 자유총선 안팎 사정을 최종 점검해 본다. ▷페루◁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후보(54)와 농학자 출신의 일본계 이민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후보(51)간의 백중세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 4월8일 9명의 후보가 출마했던 1차선거에서는 요사후보가 27.6%를 득표,24.6%의 후지모리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앞서 1위를 차지했으나 그후 이른바 「후지모리 선풍」에 밀려 후보사퇴까지 고려하는 등 열세에 몰렸다가 지난달 중순부터 맹추격전에 나서고 있다. 연간 2천%를 상회하는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는 페루의 최대 선거쟁점은 경제문제. 요사후보는 비대한 관료체제의 재정비,적자국영기업의 민영화,세제개혁 등 충격적 경제개혁을 통해 만성 인플레를 연간 10%이내로 잡겠다는 등의 급진 개혁적인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에 반해 후지모리후보는 점진적인 경제정책 재조정을 통해 인플레율을 연간 1백%선으로 끌어내리고 외채문제를 일본 등에 호소,타개해 타가겠다는 입장이다. 요사후보는 후지모리후모가 뚜렷한 경제정책을 제시하지 않은채 시간을 끌며 유권자들의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하는 유치한 전략을 펴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후지모리후보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은 서민층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역공세를 펴고 있다. 요사후보는 국민들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긴축경제정책을 지나치게 구체적이고도 솔직하게 밝힌 것이 서민층의 지지를 잃게한 요인이라고 판단,공무원 대폭감원 등의 구상을 철회하기도 했다. 지난 1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에서 강세를 보이는 후지모리후보가 도시지역에서 우세한 요사후보에 비해 4%포인트 정도 앞서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난 3일 실시된 두 후보의 TV공개토론에서 끝내 구체적인 경제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후지모리후보가 열세를보여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대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불가리아◁ 직선의석과 정당별 비례득표 의석 절반씩 총 4백석을 놓고 38개 정당 및 정치연합체들이 후보를 내놓고 있는 이번 선거는 44년만의 자유총선으로 지난해 민주화 개혁을 이룩한 동구제국 일련의 자유총선중 마지막 차례다. 과반수에 미달할 경우 결선투표는 17일에 실시된다. 최근 실시된 여러차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권 사회당(구공산당)이 41∼49%의 지지를 받아 최대 야당인 민주세력동맹(22∼26%)과 농민당(10∼15%)을 크게 앞질러 가고 있다. 야당측은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정치현상을 조작한 것이라고 비방하면서 승리를 장담하고 있으나 홍보부족 등으로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축출된 지프코프 전공산당서기장의 실정으로 인해 1백억달러에 달하는 외채와 소비재부족 등 참담한 경제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야당측은 서구식 시장경제도입과 사기업육성,기업과 농업분야에서의 모든 국가통제 제거 등 충격요법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당측은 야당이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대규모 실업과 사회불안 및 정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강력한 정부를 원하는 불가리아 국민성에 비춰볼 때 위로부터의 혁명을 착실히 수행해온 집권 사회당의 승리는 확실한 것 같다. ▷쿠웨이트◁ 임기 4년의 잠정국민의회 의원 50명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에는 나선 후보가 4백여명. 입법권이 없고 다만 행정부측에 법률제안권만을 갖는 이 잠정국민의회는 허수아비 기구나 다름없다. 종전에는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회가 있었으나 이 기구가 행정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자비르알 아하마드 알 사바하 국왕이 지난 86년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외국의 음모가 개입됐다』는 이유로 강제해산시킨 뒤 25명의 국왕임명직 의원을 추가시킨 잠정국민의회로 격하시켰다. 해산 당시 32명의 국민의회 의원을 포함,야당들은 이같은 격하조치가 국민의회의 입법권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대중집회 등을 통해 선거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야당인사들이 구속되기도 했다.〈김주혁기자〉
  • 미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발사 성공

    ◎무게 10tㆍ15억불짜리 첨단허블망원경 탑재/“갈릴레오이래 최대의 진전”… 천문학자들 환호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24일 인간이 우주를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깊숙히 들여다 볼 수 있을 천문학상의 놀라운 장비인 15억달러 짜리 허블우주망원경을 싣고 발사되어 우주왕복선으로서는 기록적으로 높은 지구궤도에 진입했다. 우주비행사 5명을 태우고 상오 8시34분(한국시각 하오 9시34분) 케이프카내베랄 우주공항을 이륙한지 5시간이 채 경과되기 전에 디스커버리호에 적재된 허블 우주망원경은 첫시험 무전신호를 보내 휴스턴의 지상관제소에서는 이 망원경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졌다. 디스커버리호는 발사후 30여분만에 고도 6백11㎞의 지구궤도에 진입했는데 이것은 우주왕복선으로서는 지금까지 지구궤도에 진입한 가장 높은 지점이었으며 종전의 기록은 84년 챌린저호의 4백97㎞였다. 25일 우주비행사 스티븐홀리는 디스커버리호의 팔모양 공구로 무게 10t의 허블 우주망원경을 우주왕복선의 화물실 밖으로 들어올려선 밖으로 떨어뜨려 자체의 궤도를 비행하게 한다. 발사광경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허블 망원경을 약 4백년전 갈릴레오가 작은 망원경을 세워 눈으로 천체를 관측한 이후 천문학상의 최대의 진전이라고 환호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길이가 13m에 직경이 4m이고 궤도비행중 6개의 과학 계측기의 동력을 날개와 같은 두개의 태양열 장치로부터 받는다. 디스커버리호는 오는 29일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착륙,지구에 돌아올 예정이다.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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