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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문예 평론가 이어령씨(이세기의 인물탐구:32)

    ◎평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천부적 관찰력에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조율/약관 22세 데뷔… 예봉·직설로 기성문단에 파문/문학의 전장르 석권… 「흙속에…」이후 한국 재발견에 몰두 전후 한국문학의 기린아·총아 타이틀과 함께 독설적 직설,명쾌의 명문으로 이어령씨가 평단에 데뷔했을 때는 온 문단은 마치 「화약고」인듯 경계의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불어온 미국의 비트제너레이션이나 서구의 누보로망 앵그리영맨처럼 한국의 뉴제너레이션이던 당시 22세의 그는 「집도 가족도,그리고 그 시원찮은 문명이란 것도 학식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분노와도 같은,자엽과도 같은 광기와 젊음뿐」이었으며 「생존하기 위하여 문관노릇을 하던 교수님들 밑에서 반세기전의 증권같은 실력없는 낡은 노트의 학설을 베끼며 인생을 배웠고」 「모든 울분과 공허를 자취방에 드나드는 늙은쥐를 두들겨 잡는 것으로나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을 하고 있는 몇몇 문단선배들을 만나보고 「기절할 정도로 실망」하여 그의 데뷔작품인 「우상의 파괴」에서 문단사에 남을 만한 중견문인들을 향해 「미몽의 우상」 「사기사의 우상」 「우매의 우상」 「영예의 우상」,이미 문단의 큰 봉우리로 우뚝선 노대가들마저도 「현대의 신라인」으로 신랄하게 통박하여 문단을 온통 긴장시키기에 이르렀다.그때 그의 눈에 비친 작가·비평가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직무유기를 하는 한가한 문사」에 불과했으며 「불난 집에서 바둑을 두고 포탄이 터지는 전선에서 자장가를 노래하는 사람같아」 「파괴돼 마땅한 우상」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문학풍토에서 「한국작가는 세계의 고아」 「현대 문명의 외곽지대에서 서식하는 뿌리없는 버섯」,이런 「불모의 상황을 영구화하려는 듯한 기괴한 권위」를 젊은 그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우상의 파괴」로 비판 그러나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당연히 무례로 간주되었고 이 「맹랑한 문제아의 출현」을 놓고 문단은 한때 「일진광풍」이니 「일진청풍」으로 의견을 대립하는 사태가 일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6·25전 한자어세대인 제1세대는 「식민지역사에 반항하여 망명이나 감옥으로 가든지,친일적인 식민지인으로 순응하든지」의 선택의 여지에 놓였던 것에 비해 전쟁직후의 20대,이른바 제2세대들은 일본어도 제나라 말도 서툴고 한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어중간한 허공에 매달린 역사의 기예 같은 존재」라고 또한번 꼬집었다 이제 문단은 더이상 그를 좌시하거나 간과하려 들지 않았다.일부 문인들은 그로 인해 어쩌면 이제까지 쌓았던 공든탑이 무너지고 문인으로서의 생명인 명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느끼는 듯했다.그의 문재와 번득이는 지성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기성문단은 한결같이 그를 냉혹하게 외면했다. 심하게는 「전생에 그리스의 소피스트케이션」이나 견석백마의 곡론가로 매도하고 그의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 들었다.그때 빛나는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그의 적들을 향해 「알렉산드리아」의 작가 이병주씨는 『나는 동족으로서,동시대인으로서 우리에게 이만한 사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런 재능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거침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그의 절친한 후배인 작가 최인호도 「문학이라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을 가는 손오공」,문학평론가 김현도 「단군이래 순발력과 기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임을 여러글에서 밝히고 있다.「그는 과연 동서예술을 천의무봉으로 전개해나갔고 문학평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이에 대해 이어령씨 자신은 「희극과도 같은 만용을 부려야 했던 성급한 과실들은 정말 나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던가」란 글에서 「나는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평론을 했다.그리고 논쟁할 때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흙이 묻고 코피가 흐르던 어린날의 그 주먹다짐을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그 아픈 상처자국을 통해서 나는 그 논쟁이 실은 하나의 대화이며 문학에 대한 애정이라는 의미를 확인했다」고 부연하고 있다. ○“언어 연금술사” 찬사 그후 그는 어린시절의 추억을오늘의 문화에 비쳐본 에세이와 한국문화·문명에 눈을 돌려 「흙속에 저바람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같은 주옥의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문명비평가」로서 재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독일에서 돌아온 전혜린은 센세이셔널한 언어의 풍운을 몰고온 그를 보고 「놀라운 기지,번득이는 혀,해박하고 비상한 두뇌와 창의력」은 마치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에 못지 않다고 찬탄해마지 않아 그는 다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반짝거리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피해 신문사 캐비닛속에 숨어야 하는 행복을 누렸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흙속에…」는 1년만에 10만부,지금까지 60만부이상.한림출판사가 펴낸 영어판은 미컬럼비아대 동양학교재로 채택되는가 하면 대만 원성문화도서 공응사가 번역한 「사토사풍」표지에 쓴 영문이름자인 Lee o young으로 인해 한국에 온 중국문인들이 「이오양」을 찾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제로부터 거칠 것도 걸릴 것도없이 이어령문학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자 그는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 「무익조」,희곡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등 소설·희곡·시·수필에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석권해 나갔다. 그를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노릇이다.신문에 연재되는 글 또는 강의·강연에서 보면 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초일목도 놓치지 않고 그속에 깃든 심오한 뜻과 사색의 깊이를 20 00년대를 향한 민족성 구성에 치밀하게 연결시켜 나간다.그의 천부적 관찰력은 하잘것없는 단서 하나에도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가해져 어느부분에서든지 문화의식의 실체와 만나게 되는 기쁨을 활짝 열어준다. 그의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그 말속에는 그때마다 현목과 일총의 영롱함이 실려 있다. 그는 어떤 강연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준비자체가 불편한 걸림돌이다.다만 청중의 눈빛 하나만으로 모두에서부터 결론을 예고해버린다. 이른바 「이어령문체」로 지칭되는 그의 글은 「말이 혹은 문체가 물이라면 또는 불이라면 또는 바람이라면 또는 화살」이라면 글속에서 「물은 위안과 씻김의 언어,불은 개혁과 새로운 건설의 언어,바람은 몽상과 생성의 언어」이고 「화살은 허무의 허공을 날아가서 마침내 사물의 핵심을 쏘아 떨구는 관통력 높은 사냥꾼의 언어」이며 「시정과 미사에 감싸인 지성의 광휘」로 그 명중률이 정확하다고 평받고 있다. ○「레인맨」 보고도 눈물 그의 창의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손꼽힌다.88서울올림픽때의 「벽을 넘어서」와 텅빈 그라운드에 은빛 굴렁쇠장면은 여백과 침묵속에서 팽팽하게 긴장감 감도는 매화 한송이를 그리는 동양화 이미지를 살려 신아시아 미학추구의 극치로 찬사된 바 있다.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비평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충격이후 그는 아사히,요미우리신문과 NHK방송이 주최하는 강연에 자주 초청되어 회장은 언제나 지성의 관객들로 넘치고 있다. 「독자를 시험하는 경구」 「서구에 치우친 일본으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는 그의 강연은 재치와 기발한 장단점 지적,상상치도 못한 한국 습속과의 비교론으로 언제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아산의 유교적인 지주집안에서 5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 보타이에 양복,구두와 바스켓같은 가방을 들고 자주 서울나들이를 하는 도련님으로 성장하면서 막내답게 장난이 심했고 얼굴엔 노상 상처투성이,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두자리이상의 보태기 빼기등 숫자놀음은 딱 질색,그러면서도 컴퓨터광이라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끝없는 원고청탁으로 하루 3∼4시간 컴퓨터앞에 앉아 실은 물흐르듯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처럼 어렵게,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정도다. 집필의 산실인 보고와도 같은 서재는 수천수만권의 서적,그가 좋아하는 CD·LD,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으면서도 뜸을 들이고 갑자기 쓰고 까다롭게 다듬는다. 냉기와 온기,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갖춰 남보기엔 지나치게 도시적이고 세련되어 숨막힐 듯한 완벽주의로 보이지만 그는 영화 「레인맨」을 보고 눈물짓고 수많은 넥타이중에서도 강의가 잘되던 넥타이를 다시 골라낼만큼 천진한 면이 천성이다. 흘겨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는 그의 책 제목인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처럼 바람불지 않아도 언제나 앞을 향해서만 똑바로 달려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이기를 원치 않는다.자신의 푸른 생명을 증명하는 언어의 슬기,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언어탐색을 위해 그는 단지 쉬지 않고 여전히 똑바로 달려나갈 뿐이다. □연보 ▲1934년1월(음력19 33년11월15일) 충남온양 출생 ▲1956년 서울대문리대 국문과 졸업 ▲196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58∼60년 경기고교사 ▲1960∼66년 서울대강사 ▲1966∼67년 성균관대강사 ▲1960∼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4년 경향신문 구미지역특파원 ▲1970∼71년 미국무성초청 도미 ▲1972∼73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1967∼89년 이화여대교수 ▲1972∼86년 월간「문학사상」주간 ▲1986∼89년 이대 기호학연구소장 ▲1987년 단국대 대학원(문학박사학위) 일외무성초청 동경대 비교문학과교수(81∼82년) ▲1989년 일본대 국제문화연구원교수,환기재단초청 뉴욕체류 1982∼현재 일본생산성본부,일본문화디자인협회,NHK,일본대판JC,신일본제철,독매신문,아사히신문 초청 강연 수차 ▲19 90∼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56년 「비유법논고」「카타르시스 문학론」으로 월간 「문학예술」지등단.「현대문학의 위기와 출구」「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우상의 파괴」(한국일보)발표이래 「흙속에 저바람속에」(62년 경향신문연재) 「나르시스의 학살­이상의 시와 난해성」 「모래성을 밟지 마시오­문단 선배들에게 말한다」「조롱을 여시오­시인 서정주선생에게」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자유문학상을 향하여」 「잠자는 거인­뉴 제너레이션의 위치」등 화제의 비평 1백50여편. 「저항의 문학」(59년) 「지성의 오솔길」(60년) 「고독한 군중」(61년) 「오늘을 사는 세대」(63년) 「흙속에 저 바람속에」(63년) 「이어령에세이 옴니버스」(66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75년) 「이어령 신작집(12권)」(78년) 「이어령전집(20권)」(85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82년 일본 학생사) 「축소 지향의 일본인」(한국어판·영어판·불어판)(82년) 「배구□ 일본□ 독□」(PHP 일본)(83년) 「하이구(배구)문학의 연구」(한국어판 홍성사)(84년)문장대백과사전 강연집「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92년)소설집「둥지를 나는 새」 상하권(93년) 79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
  • 서울 평화상(외신내신)

    노벨재단 집행위원장 바론 라멜은 지난 91년 노벨상금을 1백만달러로 인상하면서 『위대한 상은 상금에 있어서도 상당수준이라야 권위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하나의 영예롭고 권위있는 상이란 결코 그 상금의 분량과 무게에 있지 않다는걸 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공쿠르상은 상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1만원도 안되는 50프랑(7천5백원)이지만 프랑스 문학인이면 누구나 탐내는 영예로운 상이다.작품으로서의 문학성과 순수성·예술성을 평가받고 인정받는 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가 해마다 영화계 각분야의 최우수자에게 주는 아카데미상도 상금없이 높이 26㎝ 무게 3㎏의 청동트로피가 고작이다.오스카상으로 칭해지는 이 상 역시 영화인들의 필생의 목표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의 버나드쇼는 노벨상후보에 오르자 『나는 1925년,무엇 한가지 한 것이 없다.그래서 상을 준단 말인가』고 자조한 적이 있다.받을 만할때 받지 못한 시비,또는 상에 대한 불명확성,불공정 의혹일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분야에 수많은 상이 제정되고 마치 한 사람의 유명인사가 타계하면 그의 생애와 업적을 「상제정」으로 평가하려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취지도 명분도 뚜렷치 못한 싸구려 상들이 남발되고 따라서 돌려먹기식,나눠먹기식,지역안배의 잡음도 심심치않게 일고 있다.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서울평화상도 그런 유의 하나가 돼버렸다. 「동양의 노벨상」을 겨냥하고 거창하게 출범하더니 수상대상을 「수상」하게 선정하는 바람에 「받는 사람조차 영예롭지 않게 여기는 상」이 되어 그 존폐여부를 재검토하는 모양이다. 상금없이 권위있는 상이 있다면 30만달러(2억4천여만원)의 상금은 결코 적지않은 액수다.굳이 세계로 눈을 돌려 애매한 수상자들에게 선심을 쓰기보다 국내에 정착시켜 「엄격·공정」한 심사로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참으로 기쁘고 영예로운 권위있는 상으로 남기를 바란다.
  • 공초문학상 시상식·추모제/서울신문사 주최

    ◎이형기시인 수상… 추모시 등 낭독 공초 오상순(1894∼1963)선생의 사거 30주기와 탄신 1백년을 기념하는 추모행사가 5일 상오 11시부터 문인·제자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수유리 북한산기슭 빨래골 묘역에서 엄수됐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고 공초 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구상)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설창수,구상,박노석,이원섭,문덕수,성찬경,이형기,박희진,이근배씨등 생존당시 선생을 따랐던 원로·중진급 시인들과 김낙준출판문화협회회장,이정연공초문학상운영위원장(서울신문 제작이사)·김인근화백등이 참석,고인의 넋을 기렸다. 분향제배,헌화,추모시낭독,감사패증정,추모사등의 순서로 1시간 30분동안 계속된 이날 추모식에서 구상숭모회회장(75)은 『선생은 가셨으나 그 넋은 여전히 살아 곁에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그동안 숙원사업이던 공초문학상을 30년이 지난 올해에야 제정,첫 수상자를 내게돼 마치 숙제를 마친 학생의 심정』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한편 이날 하오4시 한국프레스센터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회 공초문학상시상식에서는 박두진심사위원장,김종길,김광림시인등 1백여명의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상자로 선정된 이형기시인(60·동국대 국문과 교수)에게 상금5백만원과 상패를 전달했다. 이한수서울신문사장은 개식사를 통해 『한국문학사에 우뚝 솟은 그분의 업적과 행적을 기리기 위해 상을 만들게 됐다』고 제정취지를 밝히면서 『공초문학상이 국내 최고수준의 문학상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이어 2부순서로 선생의 문학과 생애를 재조명하는 추모문학제가 진행됐다.
  • 공초 문학상(외언내언)

    공초 오상순.우리나라 신시의 선구자이며 19 20년 문예지 「폐허」의 동인으로 참여했던 시인이다.해방후에는 스님처럼 머리를 빡빡 밀고 수복후에는 연기 자욱한 명동의 청동다방에서 「청동산맥」이란 사인첩을 만들어 놓고 문인들과 제자들에게 선문답같은 낙서와 시문을 적게했던 기이한 시인이다. 공초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행운류수처럼 떠돌이 생활을 해왔고의 탈속한 경지에서 그야말로 무애도인으로 살다 갔다.그래서 그는 많은 일화와 기행을 남기기도 했다. 어느날 공초가 기르던 고양이가 죽자 집에 초상이 났다고 부음을 보내어 친구들이 달려가본즉 뜰에 고양이 무덤을 만들어놓고 곡을 하더라는 것이다.그의 유명한 명문 『짝잃은 거위를 곡하노라』는 이때 쓰여진 것이 아닐른지. 공초의 숱한 기행과 일화는 너무나 유명해서 정작 그의 시 세계의 진가를 가리는 역할을 했다.공초의 시 세계는 서정성이 주류를 이루었던 우리 시문학사에서 드물게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며 구도적인 면을 지녔으며 우주적인 광활한 세계를내포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장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치 예언자의 절규같은 치열함을 보여준다.공초의 치열한 시 정신,심오한 사상성,그리고 우주적인 스케일이 근래에 와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고 재평가되고 있다. 올해는 공초의 탄생 1백년이자 30주기.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초 오상순선생 숭모회와 서울신문사가 함께 공초 문학상을 제정,제1회 수상자로 이형기시인을 선정했다.공초를 따르고 존경하던 후배문인들이 서화를 내놓아 전시회를 열고 그 판매수익금으로 1억여원의 기금을 조성하여 제정한 상이라 더욱 값지고 귀하다.
  • 제1회 공초문학상 수상 이형기씨(인터뷰)

    ◎“기쁨에 앞서는 두려움의 심경”/“공초문학에 정통한 인물” 정평 『평소 흠모해오던 오상순선생을 기리는 공초문학상의 첫번째 수상 영예가 저에게 돌아와 어깨가 무겁습니다』 시단의 선비로 후배들에게서 존경받는 이형기시인(60·동국대 국문과 교수)은 「상의 가치는 수상자에 의해 결정되며 그 상의 이미지의 팔할은 첫 수상자에 의해 지워진다」는 통설을 되새기는듯 기쁨에 앞서는 두려움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교수는 경남 진주산으로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16살때인 19 49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천재소리를 들었다.「적막강산」「심야의 일기」「예보」「풍선심장」등 시집을 펴냈으며 「감성의 논리」「한국문학의 반성」「시와 언어」등 비평집을 갖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그를 「신문기자 이형기」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서울신문 정치부기자를 거쳐 고 이병주선생이 주필을 맡고 있던 부산 국제신문에서 폐간당시 마지막 편집국장을 지내는등 20여년을 정치부기자로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특이한 경력때문이다. 이번 제1회공초문학상 수상후보에 오른 시인으로는 성찬경·박재삼·박성룡·김남주·고은·박희진씨등 쟁쟁한 한국시단의 중진들이었다.심사는 박두진·이근배·설창수씨등 시인 3명과 박철희(서강대)교수,신동욱(연세대)교수등 문학평론가 2명등 모두 5명이 맡았다. 선정이유는 「공초문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한 연구에도 일가견을 가진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초는 그의 문학성뿐만아니라 근대정신사에서도 특출난 인물이었습니다.무소유·무정처의 그의 생애자체가 시를 뛰어 넘는 한편의 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자신 공초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씨와 공초의 인연은 서울 명동 청동다방시절까지 거슬어 올라간다.그 유명한 공초의 「청동문학」속에 자신의 단상도 몇점 들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또한 10여년전부터 공초문학에 관심을 가져 「오상순의 시와 공사상」이란 논문을 남겼다.게다가 이번에 고인을 기리는 문학상까지 타게 됐으니 공초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굵다란 인연의 동아줄로 얽혀 있었던 셈이다.
  • 제1회공초문학상/이형기씨 선정/서울신문사주최 공초선생 숭모회 주관

    ◎5일 30주기 맞아 성대한 추모행사/“초윤리의 사상가·시를 체험한 시인”평/후배문인들 91년 기금1억 마련 근대 신시운동의 선구자이자 자신이 즐겨 피우던 담배연기처럼 살다간 기인 공초 오상순시인(1894∼1963)이 우리곁을 떠난지 5일로 30주기를 맡는다.올해는 또 선생의 탄생 99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사와 공초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구상)는 선생의 설흔번째 기일을 맞아 3일 상오11시 문인·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수유리 빨래골 묘소에서 기제를 올린다.이와함께 하오4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올해 처음 제정한 「공초문학상」시상식을 개최한다.제1회 수상자로는 이형기시인이 선정됐다. 이어 열릴 추모행사에서는 수상자인 이형기시인이 「공초의 시와 공사상」이란 공초론을 발표하며 시인 이원섭씨(숭모회 부회장)가 「공초의 생애와 사상」강연등 성대한 행사를 치를계획이다. □공초문학상제정배경및 취지 「공초문학상」은 지난91년 10월 공초선생의 제자인 구상숭모회회장 주도로 서울갤러리에서열린 「공초문학상기금마련 희사작품전」의 수익금으로 제정됐다.숭모회측은 구상·박두진·서정주·조병화·설창수·홍윤숙씨등 문인들과 화가 김기창·김영주·박고석·이대원씨등 모두 1백5명이 내놓은 자작친필과 소장품 1백32점을 팔아 모은 기금 1억1천5백만원을 지난4월 서울신문사에 기탁해 온 것이다. 이에따라 「공초문학상」은 서울신문사 주관으로 매년 시부문 1명을 시상하며 시상대상자는 20년이상의 문단경력을 가진 작가로 작품의 우수성뿐만아니라 수상자의 인품을 고려하는등의 운영규정을 정했으며 매년 6월중 시상식을 갖게 된다. □공초의 생애와 사상 오상순은 1894년 8월9일 서울 시구문안(지금의 장충동2가)에서 태어났다.비교적 개방적인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경신학교를 거쳐 19세에 일본유학길에 올라 경도의 동지사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인텔리였다. 1920년 변영노·남궁진·김억·염상섭과 함께 한국신시운동의 선구가 된 동인지 「폐허」의 창간동인이 되었다. 「허무혼의 선언」「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등 명시를이때 발표했다. 청춘기의 공초는 만년의 트레이드마크인 빡빡깎은 머리와는 달리 길게 드리운 올백머리의 멋쟁이 청년이었다.그는 40대에 대구에서 연하의 과부와 잠시 동거생활을 한 이외에는 평소 지론이던 독신주의를 지켰다. 그는 살아생전 혈육한점,머물 지상의 집한칸,시집 한권 내지 않았다.공간을 초월,시간속에 영원히 산다고 해서 「공초」라 했던가.그득한 담배연기속에 묻혀 살았다고 「꽁초」라고 불리었던가.그의 삶은 세속을 떠난 성자의 그것이었다. 6·25를 전후해 서울 푸라워,대구 아리스,부산 금강,서울 명동 청동,서라벌등 다방을 무대로 문학을 교리처럼 설파한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며 신화다.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담배불을 꺼뜨리지 않았다.제자의 결혼식 주례에서도,세수할때도 담배는 항상 손에 있었다.하루평균 1백80개비(20개들이 9갑)를 연기로 만들었다.다방에서 제자들에 둘러싸여 「청동산맥」이라는 서명첩을 내놓고 「연기는 사라져 어디로 가나」같은 선문답문제를 내 제자나 방문객들이 나름대로의 단상을 적은 「청동문집」1백98권이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다. 무일푼,무소유로 일관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원종신회원,예술원상,서울시문화상등 상복이 따랐다.1963년 6월3일 노환으로 입원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제자들의 간호를 받으며 운명했다.그는 무교리의 종교가,초윤리의 사상가,시를 몸소 체험한 유일한 시인이었다.
  • PC통신 통해 소설·시 읽는다/「컴퓨터문학관」 크게 인기

    ◎복거일·이문열씨 등 「하이텔」에 연재/유명작가 다양한 작품 선보여 PC를 통해 소설이나 시를 읽는 「컴퓨터 문학관」이 인기메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컴퓨터 문학관은 한국PC통신이 종합정보통신망인 하이텔을 통해 「하이텔 문학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비롯,천리안(데이콤)의 「스페셜코너­컴퓨터 소설」,포스데이터(포철)의 「연재마당」이 현재 개설돼 있다. 종합통신망 회사들이 저마다 컴퓨터소설란을 마련한데는 국내 컴퓨터소설의 「효시」인 복거일의 「파란달 아래」가 지난해 5월부터 하이텔에 연재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에는 기성 유명작가의 작품은 물론 아마추어 작가의 작품도 실려 전문 비평가들로부터 비평을 받을 기회도 마련돼 있다.컴퓨터 문학관은 독자가 읽는 시간이나 공간상 제약때문에 단편소설이나 콩트,수필,연재소설 등이 단연 인기가 높다. 지난 12일부터 본격 서비스에 들어간 하이텔문학관에서는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시인과 도둑」(이문열),동인문학상 수상작 「회색눈 바람」(최윤) 등단편소설 12편과 아산문학상을 받은 「환합니다」(정현종) 등 시 30여편이 나온다.단편소설 가운데는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가 독서횟수 772회로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김영현의 「내 마음의 서부」,박상우의 「샤갈의 마음에 내리는 눈」,이청준의 「가해자의 얼굴」 등이 5백회 이상 읽힌 인기 컴퓨터소설이다. 한국PC통신은 수록작품을 계속 늘리고 오는 10월에는 일반소설(단편)과 과학소설,정보통신관련 논픽션,시 등 4개 부문에 걸쳐 신춘문예를 공모해 컴퓨터문학의 저변 확대와 질적 향상을 계획하고 있다. 천리안의 「컴퓨터문단」은 자유문단,기성작가문단,아마추어 일반·공상과학소설 등 6개 코너로 구성돼 있다.특히 이용자들로부터 소설 개설요청이 들어올 경우 소설의 줄거리와 작가의 경력 등을 간단하게 심사,아마추어 작가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컴퓨터문학관은 PC 이용자들이 독자로서 뿐만아니라 직접 작가로 변신해 볼 수 있다는 매력에서 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한국PC통신의 한 관계자는 『PC를 통한 문학 작품의 소개가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지만 2∼3년후면 기성 작가들도 크게 관심을 갖는 새로운 문학 매체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문화사업에 기업이 앞장서야죠”/숭민산업사장 이광남씨(인터뷰)

    ◎문예지 지원 등에 35억 회사 『미력하나마 기업이익의 사회환원과 참다운 기업문화구현을 위해 문예지지원사업을 계획하게 됐습니다』 재정난에 시달려온 월간 「문학공간」지에 올 4월부터 95년 3월까지 2년동안 월5백만원씩 총1억2천만원의 거금을 지원키로한 숭민산업 이광남사장(51)은 문화지원사업에 대한 그의 의욕은 확신에 차있다. 그는 지난 한햇동안 예총기관지 「예술세계」지원,정신대대책협의회지원사업,소년·소녀가장돕기,노인문제연구소지원등 61건에 모두 35억원을 내놓았다.이 돈은 음지에서 고생하는 이름없는 단체나 사회복지차원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권위있는 문학상을 올해안으로 제정할 생각입니다.시·소설·희곡·평론등 4개 부문에 1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갈 작정입니다』
  • 소설가 이제하씨(이세기의 인물탐구:27)

    ◎“글을 그림처럼”… 절제된 언어의 마술사/「환상 리얼리즘」기법 구축,무의식세계 조파/사회 선입감·통념 거부… 쓰고싶은 글만 고집/「나그네는…」 이상문학상 수상… 시인·화가로서도 경지에 꾸부정하게 걷는 비뚤어진 걸음걸이,구겨진 청회색 점퍼에 벙거지를 눌러쓴 이제하의 모습은 카뮈의 뫼르소나 사르트르의 로캉뎅 일수도 있다.그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무심한듯 생각에 잠긴 묵연은 그대로가 시적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시킨다. 만사에 서툴고 세련된 티를 보이지 않는것도 이 예술가의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그러나 말 하기가 싫어 억지로 하는처럼 어눌하게 굴다가도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펼때는 드물게 치열함을 드러낸다.메마른듯한 그의 가슴에 정열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때 뿐일것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는 단순한 소설가만은 아니다.시인이자 화가이며 화가이자 소설가다.그리고 타고난 다방면의 재능을 한 수준으로 고루 이끌어 자연스러운 자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1회 학원문학상수상 그가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세때인 57년 여름,정식 데뷔보다도 훨씬 이전의 일이다.52년 마산동중시절 이미 「학원」지에 투고하여 그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는 전국의 문학소년소녀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었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보라빛 노을을 가슴에/안았다고 해도 좋다/…아아 밀물처럼 온몸에 스며 흐르는/노곤한 그리움이여/로 전개되는 「청솔 그늘에 앉아」는 박목월 조지훈씨의 심사로 제1회 학원문학상 수상과 함께 60년대까지 중3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서 또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내 이름을 불렸을때의 그 가슴의 고동을 잊지 못한다』는 감격과 홍대 조각과에 진학하여 『대학 2학년이 될때까지 학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을 들수 있다.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그는 대학이란 강의시간이나 학점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는 장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그의 단순함은 문학쪽에서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현대문학」지의 시추천 완료후 그는 다시 신문의 신춘문예와 월간지를 통해 소설데뷔 관문을 거쳤고 당시 발표한 「유원지의 거울」「흰제비의 여름」또 속물과 진정한 예술가의 대립을 그린 「유자략전」등으로 「표현수법에 있어 속도감을 느끼게 하는 뛰어난 압축미」「소설로 쓰여진 한편의 예술사회학」이란 호평속에서 문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무한한 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그의 「초현실」이나 「잠재의식」등의 기법상의 탐구는 「쉬르계열의 그림을 느끼게하는 난해성」으로 지적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환상리얼리즘」으로 표현,이를 설명하기도 전에 한 평자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지연(지연),학연을 거론하면서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대칭이 어떻게 한 이름으로 공존할수 있는가」란 의문을 제기하여 그는 한순간 환멸감과 모멸에 빠지는듯 했다. 그는 후에 「신뢰할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없는 리더의식과 옹졸한 콤플렉스로 지연·학연·인정주의 따위로 섹트를 조성하고 60년대식,70년대식으로 작가를 구분하려 든다」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환상리얼리즘」이란 한낱 조어가 아닌 기왕에 있어온 미술상의 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를 잠시 소설에 차용한 것이지만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외형적 사회의식보다 개인의 무의식세계,그들의 꿈과 악몽을 다루기 위해선 초현실주의 기법을 취할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옳지않은 것,속된것,뻔뻔스러움과 적당주의는 그와는 맞지 않음을 명료하게 구분짓는다. 74년 채식주의를 테마로한 「초식」발표와 함께 현대문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문단에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모든 문학상이 일반적으로 너무 무난히 주어지며 과열된 문협선거에 얽힌 문단정치에 혐오감을 느꼈다는게 수상거부의 이유였다. 작가의 시대적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명제란 무엇인가. 그는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것은 당대가 직접 간접으로 요구하는 유형무형의 온갖 윤리감각」이라고 말한다.예의 「모든 사람들이 물을 원할때는 불을 이야기함으로써 물에 대한 감각을 없애주는 것이○수상 거부로 큰 파문 작가의 사명이며 책임일 뿐」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해서 작가마저 부화뢰동하고 나서면 작가 본래의 본성이 와해되고 작품은 몰개성화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과연 『쓰고싶은 것을 써서 생존이 가능한 작가는 몇사람이나 되겠는가?』를 자문하고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로 팔아 연명하는 하릴없는 날품팔이』라는것과 이에따른 자책지심을 문단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자세는 문단초기인 신촌시절에서 동숭동 팔판동 지금의 평창동에 이르기까지 시종여일 변함없는 소신을 지키는듯 하다. 신촌시절에는 그의 부인(고행자씨)이 삐에로 의상실을 경영,화곡동에 집을 산적도 있으나 부인의 사업실패로 난생처음 가져본 집을 빚잔치로 없앴고 이 때의 고생을 바탕삼아 장편 「광화사」와 중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에 물리적인 힘으로맞서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문학은 대결로서 당장 결판을 보는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견디고 스며들고 녹이는 작업』임을 상기시킨 저 유명한 수상연설을 남기고 있다. 『문학에서의 가장 큰 고함소리는 침묵입니다.좋은 작품을 읽고 났을때의 그 멍청히 강요당하는 침묵­』 그리고 그의 소설은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림에서의 구성 색채 주제의 형상화 과정이 그 형식만 다르게 나타날 뿐 글쓰기와 많이 닮아있음을 강조했다.이는 일찍이 시인 김춘수씨가 그의 소설 「황색강아지」를 보고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소설」이라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군제대후 조각과를 4학년 1학기에서 그만두고 서양화과 3학년에 편입,그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델보를 비롯,뭉크와 스텡 프란시스 베이컨에 빠져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는 한때 소형영화클럽을 만들만큼 영화광,요즘도 시간이 날때마다 청계천에 들러 레이저디스크를 복사해온다.비디오테이프만 8백여개.좋아하는 작품은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를 꼽고 있다.그는 한때 까마귀를 비둘기처럼 뱃심좋게 훈련시켜 돈심부름을 시켜봤으면 바란적도 있고 팔판동에 살때는 밤 10시가 넘어 총리공관이 있는 행길까지 내려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며 딸아이와 뛰어놀기도 했다. 한번은 딸아이(슬·고2)가 좋아하는 빵을 사기위해 호텔 지하에 위치한 제과점에 가려다가 호텔 직원에게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꺼부정한,초라한 행색이 사뭇 못마땅한듯 한참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그 안에 뭐가 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 사람의 두눈을 똑바로 마주한채 「총」이라고 대답하여 혼비백산시킨적도 있다.이 사회의 선입감,오래묵은 관념에 대한 특유의 냉소가 또하나 이제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시나리오 작업이후 일간신문을 비롯,월간지등에 「이제하 영화칼럼」을 쓰고 있다.좋아하는 영화를 마음껏 보고 마음껏 평을 쓴다.물론 본격적인 평이라기 보다 객석에서의 느낌을 좀더 심층있고 사려깊게 쓰는 식이다. ○노래엔 기품 가득 그리고 때때로 젊은 시인 가수들과 어울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평소 대화때는 꺼들꺼들 쇠된 목소리를 내지만 노래할 때의 음성은 청량한 기품이 일품이다. 그는 이제 우리문단의 중진의 위치다.그의 말대로 그가 책임질 수 있는 예술을 성취해 가고 싶어한다.그래서인지 그에게선 느슨한 기는 찾아볼 수 없다.긴장을 푼듯 방심하고 무심한 속에서 오히려 감수성의 현을 전보다 더한층 팽팽하게 당기는 자세다. 그런중에도 친구들과 다양하게 교분을 트고 있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간혹 그가 괴벽이나 기인기질을 지닌 것이나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반듯하다.선배나 후배들에게도 따뜻하고 정중하다.어느날 갑자기 그의 달라진 환경과 연륜과 함께 갑자기 표현하는듯한 속된 구석은 근원적으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그가 지닌 예술성과 인간미는 이 시대에선 몇사람 되지않는 「비범임에는 틀림없다.그래서 그의 예술추구는 정련되지 않은 생금에도 비유된다. 그 옛날 그가 시추천을 받을 무렵 미당이그의 시를 향해 「신시쩍 나무」라고 한것처럼 도무지 「가뭄」을 타지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정」,「우리의 공명선에 잘 직통하는 그의 특수어법」은 바로 그림으로 그려진 소설,소설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연보 ▲1937년 5월20일(음)경남 밀양출생.이해동씨와 김일선여사의 3남매중 독자 ▲1946년 마산으로 이주 ▲1953년 마산 고1 시「청솔그늘에 앉아」로 제1회 학원문학상 ▲1956년 마산고졸「새벗」잡지에 동화「수정구슬」당선 홍대조각과 입학 ▲1957년 「현대문학」에 시「노을」「설야」「바다」서정주추천 신태양사 「황색강아지」당선 ▲1958년 「소설계」중편 「나팔산조」 준당선 ▲1961년 군제대후 홍대조각과 4년에서 서양화가 3년으로 편입,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손(수)」입선 ▲1964년 육십년대 사화집동인(성찬경·박재삼·박회진등) ▲1966년 연작동화 「노래하는 돌」(신아일보연재) ▲1969년 동화 「느림보의 다섯가지 수수께끼」(대한일보연재) ▲〃 문제작 「유자략전」발표로 화제 ▲1973년 첫 창작집「초식」(민음사간) ▲1974년 「초식」으로 현대문학상 수상했으나 수상거부 ▲1977년 꽁트 스케치집「새」(수문서관간)「소설문예」 창간 편집위원 ▲1978년 창작집 「기차,기선,바다,하늘」(홍성사간)월간「수상」(월간 에세이 전신)주간 ▲1979년 화랑협회 계간지「미술춘추」주간 ▲1982년 첫 개인전,개전기념시집「저어둠속 등빛들이 느끼듯이」(청하간) ▲1983년 일러스트집「사라의 눈물」(우석사간) ▲1984년 서양화 10인 소품전·문학선집 「밤의 수첩」(나남간) ▲1985년 중편「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발표(이장호감독으로 영화화) ▲1986년 동화집「노래하는 돌」(샘터간)장편「광화사」(한국일보연재) ▲1987년 장편「광화사」1·2부(문학사상간)「소녀유자」(문학사상 연재) ▲1988년 장편「소녀유자」(고려원간)장편「시습의 아내」(경남매일연재)수필집「길떠나는 사람에게」(동아간)이상문학상수상전집「임금님의 귀」(문학사상간) ▲1990년 장편「진눈깨비의 결혼」(청맥간)문학선집「포말위의 식사」(강천간) ▲91­현재 창작집 「기차 기선 바다 하늘」외 창작들 재간.영화칼럼집「시네마천국」(우리문학사간) 이상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
  •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전」/“시를 그림으로” 이색 향연 눈길

    ◎화랑의 바닥·천장 등 전공간 활용/최승호의 시어 박지숙이 형상화/서교동 녹색갤러리서 9일까지 계속 시와 미술의 만남.두개의 예술장르가 아름다움의 조화를 이루는 이색공간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녹색갤러리(323­4941)에서 꾸며지고 있다.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전」(5월9일까지)이라 이름붙은 이 전시는 시인 최승호씨와 여류화가 박지숙씨가 조우, 문학적 명상을 회화적으로 형상화시킨 내용물들을 선보이는 것.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시인 최승호씨의 명상집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에 담겨 있는 시어들을 화가 박씨가 화랑의 벽,천장,바닥 전체공간을 이용하여 새로운 미술작품으로 되살린 전시회이다.여러 시인의 시와 여러 화가의 그림이 어울리는 기존의 시화전들과는 달리 두 작가만의 개성이 진하게 어우러진 색다른 맛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씨의 명상집에는 소박한 자연물에 대한 애정깊은 작가의 얘기들이 있다.물방울의 투명함,짐없는 나비들의 자유,돌들의 고독,잠자리들의 평화,나무들의 자족적인 삶,이슬들의 눈짓등이 그것이다.시인 김승희씨는 그의 명상집을 보고 『미셸 푸코의 「바깥으로부터의 사유」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탈출에 대한 책』이라며 투명한 꿈이 콸콸 쏟아지는 듯하다고 했다. 김시인의 칭송처럼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 자연의 신비를 쉽게 놓치지 않고 있는 최씨의 투명한 시어들을 화가 박씨는 솔직한 감성으로 대범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예술이라는것,그 막연함과 공허감을 과연 무엇으로 메워야 하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밀착됨을 느낄수 있을까?」 이같은 고민을 안았던 박씨는 「소박」 「천연」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들을 「조선민화」에서 그 모티브를 찾아냈다고 한다.선조들의 자연에 대한 애착과 순박한 자연주의를 통해 드러난 민화의 특성을 자기화시킨다는 의욕으로 시어에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시인 최승호는 천진한 마음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의 불안에 찬 모습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인물.도시에 대한 소재를 주로 다뤄온 그가 이번에는 대상을 자연에 두고 관점 또한 긍정적이면서도 단순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을 풀어나갔다. 젊은 화가 박지숙씨는 삶에 대한 긍정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찬 작품세계를 지닌 작가로 고유의 밝은 기질이 작품속에 싱싱하게 살아넘치도록 마음과 손을 가다듬었다. 이들이 모처럼 꾸민 이 이색공간은 황폐한 기분에 봄을 느끼지 못하는 도시인들이 한번쯤 들를만한 고싱다.
  • 신경숙 「풍금이 있는 풍경」(이 작가 이 작품)

    ◎풍금소리에 실린 삶과 사랑의 노래/시문체로 다듬은 9편의 단편소설 모음/자신의 비사회성·결함,글쓰기 통해 해소 지난 90년 첫창작집「겨울우화」로 90년대 문체미학의 극치를 보였다는 문단의 평을 받으며 세상에 나온 젊은 여자소설가 신경숙(30)이 그 평가를 확인시켜 주는 두번째 작품모음집 「풍금이 있는 풍경」(문학과 지성사간)을 내놓으면서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9편의 글에는 풋풋한 풀냄새가 배어있다.15살때 「경제적」이유로 엄마손을 잡고 고향 전북 정읍에서 올라온 「반서울내기」임에도 서울이 주는 각종 공해에 전혀 해를 입지 않은 것같다.고집스러울 만큼 「정읍적」인 소박함과 덤으로 얻은 서울살이에서 터득한 절실함이 그녀의 문학하는 힘을 이루고 있다. 얼마전 서울 구기동에 마련한 「분에 넘치는」 그녀의 집필실겸 살림집은 서울생활 15년동안 연례행사로 치른 16번에 걸친 이사끝에 어렵사리 구한 그녀만의 공간이다.그속에 오도카니 앉아 북한산자락에서 쏟아지는 빛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그녀는자신의 소설에 나오는 어느 인물,어떤 행동보다 평범한 여자다. 그녀의 글쓰기는 자신의 비사회성과 여러가지 결함들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온 과정이거나 자기식으로 짜여진 삶의 생김새인지도 모른다.자전소설 「모여있는 불빛」에서 털어 놓았듯이 그녀는 「소설이란 자신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또 마음속에 기른 헛것들을 더 이상 가두어 놓을 수가 없어 문장의 해원풀이를 통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워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유난히 가족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부에 매달리고 있는 이 작가는 이번 「풍금이 …」에서 첫작품집 「겨울우화」에서 느껴졌던 어두움과 「모든 비참한 관계」를 많이 청산하고 있다. 「풍금이…」는 작가가 문체적 애착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작품이다.또한 작가의 개인사적인 성격이 강하다.그러나 「풍금이…」엔 풍금이 나오지 않는다.다만 풍금소리가 소설전체에 잔잔하게 흐를 뿐이다. 『처음부터 소설이라 생각지 말자고 생각하며 썼습니다.삶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그려 보고싶었는데,시쓰시는 분들이 웃을지도 모르지만 한편의 시로 읽혀졌으면 해요.제 개인적으로는 과학적인 논리와 합리 바깥에 있는 것,정서적인 울림이나 운명적인 흐름,살며서 쌓이는 이미지들,얼토당토 않은 연민들,그런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적 문장으로 다듬어진 긴글을 쓰고자 했던 거죠』 신경숙의 작품은 올해 두번이나 문학상후보로 올랐다.「풍금이…」가 이상문학상에,「배드민턴 치는 여자」가 김유정문학상과 동인문학상에 각각 후보가 됐다.한작가의 각기 다른 작품이 여러 문학상후보로 꼽히는 보기드문 일이다.이 작가에 거는 문단의 기대가 큼을 보여주는 증거다.
  • 한국문학의 국제화 전략/김병익 문학평론가(정경문화포럼)

    ◎영·불 문학권에 정예작가 집중소개/노벨상에 버금갈 문학상 제정할만 문예진흥원이 기왕의 「대한민국문학상」을 전면 개편하여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옮긴 번역작품에 몰아서 시상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보도를 본데 이어 새로 설립되는 문화재단과 몇몇 대출판사가 거액을 투입하여 비슷한 번역문학상을 제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우리 문학의 풍부한 생산과 뛰어난 성과들이 그 소수민족 단위의 언어라는 한계 때문에 세계문학에서 바른 평가를 받지 못해온 것이 늘 섭섭해 오던 참에,우리 작품의 국제적인 진출에 큰 벽이 되고 있는 번역작업에 거액의 투자를 하게 되었다는 뉴스는 우선 반갑고 대견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공공의 시상중에 가장 관록있는 대한민국문학상을 폐지하기까지 하면서 그 상금들을 번역문학으로만 전환해야 할 것인지도 의심스럽거니와 한국문학의 국제화 전략이 번역문학의 「상」으로만 집중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의아스럽다.「상」이 유발할 수 있는 일정한 효과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음에도 거액의 상금이 동반할 수 있는 폐해도 적잖이 예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의 문단과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수용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데 있어서는 상이라는 제한된 방식보다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며 중요한 전략구상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이 외국문학에 찾아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번역된 작품의 출판이다.그 출판을 위해서는 좋은 번역자의 훌륭한 번역이 전제되어야 하며 그래서 번역문학상을 제정하는 기획에까지 이른 것이겠지만,그러나 그 목적이 출판에 있는 한 우리가 더 치중해야 할 것은 외국출판사들이 그 번역작품을 출판하도록 여건을 지원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우리 문학의 좋은 번역이 드문 것은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문학자가 양으로나 질로 적기 때문이고 그 출판이 미미한 것은 외국의 상업출판사들이 한국문학을 간행해도 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이렇다는 것은 외국의 한국문학 번역자와 연구자들을 양성해야 할 필요성,출판사의 이윤을 맞추어 주어야 할 필요성이 우선적으로 중요한 전략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번역문학상에의 급작스런 거액투자는 그를 위한 여러가지의 과제중에 전시효과가 더 큰 하나의 항목에만 모여진 것이며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작업의 폭넓은 효과를 일구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근년 외국에서의 한국 작가 초청과 우리 문단에서 외국 작가들을 초청하여 작가 대 작가간의 인적 교류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고 있는데,그 성과는 의외로 큰 것으로 보인다.외국 작가와 문단은 한국 작가를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혹은 한국을 방문,체험함으로써 막연하고 추상적이던 한국문학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면을 하게 되는 것이고,그를 통해 한국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이런 유의 작업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마구잡이로 작품과 작가를 전시하듯이 내놓기보다는,이제 정말 좋은 작가와 작품을 골라 집중적으로 외국 문단에 파고들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노벨상을 목표로 한 일본이 그러했는데,그들은 몇몇 작가들만을 영·불 문학권에 침투해들어갈 수 있도록 집중적인 홍보와 투자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이후 80년대초부터였는데 그것은 물론 우리 작가도 노벨상을 타야한다는 기대에 의한 것이다.그러나 다른 어떤 분야와 달리,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그러고서도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와 비평의 적극적인 조명을 받아야 겨우 유력한 후보로 지목될 정도이다.그러니,올림픽을 유치하는 것과는 달리 많은 투자를 들인다 하더라도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수 없고,그래서 우리에게 그 차례가 빨리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그럴만큼 지구력을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버금할,또는 그에 대척될(예컨대 제3세계문학상이라든가 소수민족언어문학상 같은) 거액의 문학상을 제정하고 권위있게 시행할 일이다. 서구와 미국·일본의 문학이 그 경제적 풍요성과 사회적 안정때문에 상대적으로 문학적 열의를 잃어가고 그 주제 의식이 쇠퇴해가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새삼스런 주목을 가하기 시작하고 있다.프랑스의악트 쉬드사가 한국 작가들의 소설 간행이 성공하면서 그 작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든가,독일과 일본·미국이 한국의 소설과 시집을 번역 간행하고 권위있는 문학지에서 본격적인 소개를 시작하고 있어 우리 문학의 국제화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이 호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번역문학상의 갑작스런 증가로만 모아져서는,들인 경비에 비해 그 효과도 의심스럽고 방향도 비능률적인 쪽이라는 점을 강조해두지 않을 수 없다.
  • 「리고베르타 멘추」(화제의 책)

    ◎노벨평화상수상 멘추의 구술자서전 92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과테말라 인디오 원주민 출신의 여성 인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의 구술 자서전. 소수 백인정권과 혼혈인 메스티조인 「라디노」의 토지수탈에 맞서 인디헤나의 고유한 전통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몸을 던진 리고베르타.그녀가 그 과정에서 겪어야했던 남동생의 고문과 화형,부친의 대사관 점거투쟁과 피폭사,모친의 성고문 및 밀림유기,친구의 토막살인 등 만행에 대한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책은 지난 82년 파리에 체류중이던 베네수엘라 태생의 인류학자인 엘리자베스 부르고스여사에 의해 정리됐으며 이듬해인 83년 쿠바의 「카사 데라스 아메리카스 문학상(아메리카인들의 집)」을 수상했다. 윤연모 옮김 장백 6천5백원.
  • 아동문학가 어효선씨(이세기의 인물탐구:19)

    ◎동심에 「사랑심기」 한평생/간결·치밀한 문체로 127권을 펴낸 “노소년”/「꽃밭에서」·「과꽃」 등 대표작 “동요의 고전”으로/특유의 문장력갖춘 수필·문인화도 상당한 경지 『이 눈매좀봐,부처님처럼 웃으시는군』 『모나리자의 미소는 유가 아냐』 『이렇게 부드럽고 깨끗하시고야.인품이 곧 예술이야.이러니까 위대한 예술을 낳으시지』 이는 원당 김정희의 흑백 초상 사진한장을 놓고 난정 어효선씨가 감탄해 마지않는 장면이다.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번은 난정의 고서화취미를 알고있는 후배작가 이상현이 그의 집에 있던 원당의 글씨 한점을 가져다 보이겠노라고 했다. 「뭐라고 적혀있나」 「글씨체는 어떤가」 「호는 무엇으로 쓰셨던가」꼬치꼬치 캐묻고는 글씨때문에 그날밤 잠을 설쳤고 다음날도 일이 손에 잡히지않아 대문만 바라봤다는 얘기다.드디어 글씨를 대하는 순간의 감동을 그는 「□서일기」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비단으로 꾸몄다.무자가 둥근 무늬위에 적혀있다.진회색 둥근 무늬가 일곱개,그 무늬위에 한자씩 또박또박 적혀있다.무쌍채필산호가,만향로인에 원당도장을 찍었다」고. 「노과」니 「노원」 「노홍루」며 「칠십이구당」등 완당의 여러 호를 알고있었지만 「만향로인」은 처음이어서 그는 도무지 흥분을 감출수 없었다.그날 이 글씨를 사진 찍어두고는 완당을 애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완당의 예서를 뵈온날,그 위대앞에서 황홀했다기보다 사뭇 혼도직전에 있었다」고 극구 자랑삼았다. 『중국학자들과 문교계실때 쓰신 노필이지.가로 그은 획이 중간에서 멈칫했다가 다시 힘을 주었어.만향노인,불교의 성화인 만다라화의 향기라는 뜻일게요』그는 진필을 대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사진이라도 찍어둔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사진이 되면 한장씩 드리지』했다. ○어릴땐 춘원·육당에 매료 이처럼 깨끗한 선비의 인품과 천진한 동심을 지닌 이가 아동문학가 어효선씨다. 「늘 현재생활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살만한가」,사는 일을 심각하게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똑바른 심성이 그 숱한 주옥편의 동화 동시를 쓸수 있었으리라는생각이다. 어릴때는 춘원과 육당 위당 정인보선생의 글과 글씨가 실린 잡지를 오려서 문집을 만들고 표지에다 「어효선 저」라 쓰고는 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장래 그와 같은 인물이 될것을 그는 꿈꿨다. 그리고 그당시 쌀알위에다 「깨알보다 더 작은 글씨」를 써서 유명해진 부친 어재환씨보다 이웃에 살고있던 소석 김태희씨댁에 드나들면서 한문과 붓글씨를 배웠다. 소석은 기독교신자였으나 자택에서 예배를 보고 복음신보를 만들던 이른바 무교회주의자였다.아직 10대의 나이에 고서화를 감정하고 감상하는 노객들 틈에 끼여들어 그는 「노소년」이란 별명을 들으며 추사의 세계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동요를 짓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었다.매동국민학교 교사시절 학생들이 졸업할때와 학생들이 스승을 생각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하는 윤재천교장의 권유에 따라 「졸업축하의 노래」와 「선생님의 은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보다는 52년 피란지 대구에서 쓴 「꽃밭에서」가 단연 대표작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습니다.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6·25의 배경이 실린 이 동요는 권길상의 곡이 붙여져 전국으로 파급되었고 다음해 쓴 연작동요 「과꽃」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사랑을 받게되었다. 「올해도 과꽃은 피었습니다.꽃밭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살았었지요」 그러나 이때 스승처럼 모시던 강소천씨가 『당신은 왜 그렇게 슬픈 노래만 쓰느냐?』고 타박했다. 특히 「꽃밭에서」의 2절중 「아빠가 생각나서 꽃을 딴다」,「아빠는 꽃처럼 살라고 했다」는 구절은 동요가 아니니 바꿔쓰라고까지 꼬집었다. 선비적 소극성을 미덕으로 알던 난정으로서는 소천의 이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꽂혀 한동안 헤어나올수 없는 커다란 충격이 되었다.오죽하면 61년 첫 동요집 「봄 오는 소리」를 출간할 때 그는 끝내 이 「꽃밭에서」를 빼버리고 말았다.소천은 그만큼 그에게 영향력이 큰 존재였다. ○강소천에 많은 영향받아 그의 나이 60세가 되던 85년 동화 「새처럼 훨훨로 뒤늦게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기쁜 날도 평생 처음이고 이렇게 부끄러운 날도 평생 처음』이라는 착잡한 소감으로 지난날을 되새겼다.존경하던 소천의 상을 받는 일은 기쁘나 환갑이 되어서야 이를 수상하게 된것이 새삼 쑥쓰럽다는 뜻이었다. 난정은 14대째 집안이 서울서만 살아온 서울토박이다. 종로구 인사동에서 태어나 낙원동 골목에서만 33년,불광동으로 이사한 후에도 노부모를 모시고 아들가족과 4대가 한집안에서 사는등 옛스러운 풍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했다. 「유리창에 비친 달보다 완자창에 비친 달빛,아스파라거스보다 난초나 수선화,이동백의 창과 거문고,다홍색 댕기에 비취잠,연옥색 모시치마를 입은 여인」의 우아미를 운치의 극치로 찬양했다. 「난정」이란 호도 「난을 가꾼다」는 뜻으로 스스로 지어가진 것이다. 서재에 매화가 피면 「방안에서 맞은 이른 봄의 멋을 혼자 보기 아까워」친구들을 불러모아 다를 즐기거나 그림을 그린다.그리고 매화가 좋아서 그려본 그림을,써본 글씨를 친구들에게나눠 주기도 하지만 청한다고 해서 아무때나 선뜻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수십년 친구인 원치호씨(전 서울YMCA총무)가 그림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예가 그렇다. 그의 문인화는 「상당한 경지」로 평가되어 여러 전시회에 초청되고 올 감정원 달력그림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즐거움으로 멋으로 하는 이런 것을 값어치로 따지지도 않는다. 동요·동화뿐 아니라 향기높은 난정 수필은 원고를 청탁한 편집자들을 그때마다 감탄케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 치밀한 문체는 하나의 운문적 효과를 양성하여 「난정 특유의 문장술」을 이루고 있다. 또 동화나 수필의 배경은 언제나 종로의 좁은 한옥과 유치원,학교와 골목 안으로 한정되어 어린시절에 대한 그의 애절한 그리움을 면면히 담고있다. 등장인물도 일선에서 물러난 영락한 노인과 도심속에 버려진 외로운 동심,노년과 유년이라는 세대간의 격차를,결국 「사랑」이라는 심리적 대비로 승화시켜서 전편에 뜨거운 감동을 담는 것이 특징이다. 「자라는 아기들,귀여운 그들에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사람과 사람사이의 오고가는 정,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심어주는 일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며 그래서 그만이 할수있는 「어효선 동시 동화」를 남기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20대엔 국민학교 교사,30대부터 출판사의 여러 소년잡지,수많은 어린이 글짓기대회등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현재 근무처인 교학사에 몸담은지 벌써 20년,한평생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동안 써낸 동요·동시·동화집이 1백27권이나 된다. 이제는 시대변화에 따라 2남2녀를 모두 분가시키고 지금은 서교동에서 노부부(부인 한정애씨)가 90노모(이을남여사)를 모시고 있다. 빠르게 마시는 술,끝없는 줄담배,일요일이면 오랜 산친구인 남정 박노수 삽화를 그리는 김세종 고대 철학교수인 김충렬씨등과 북한산에 오르고 평소엔 아침 8시10분이면 회사에 출근하여 바쁜 일과 틈틈이 「붓장난」을 즐긴다. ○어린이관련 일 몰두 여전히 「웃는듯 우는듯 춤추는듯 성낸듯 세찬듯 부드러운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있는 원당을 완상하고 매란의 고결한 향취에 심취하려는 것은 언제나 깨끗한 동심에 머물러 좀더 밝고 맑은 어린이의 세계를 그려내고 싶은 바람에서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여요/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잎으로/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파아란 하늘보며 자라니까요」 소천에게 타박받은 답례로 「파란마음 하얀 마음」을 쓰고 나서야 동심에 상심을 줄 것을 우려한 소천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늘처럼 푸르고 흰눈처럼 깨끗하게」살고싶은 선비의 소박하고 간절한 기원처럼 언제부턴가 난정 그의 미소속에는 때묻지 않은 싱그러운 「예술」이 문득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연보 ▲1925년11월 서울 종로 인사동 출생,서울 중앙유치원­교동국민학교 졸업,소석 김태희 문하 서예 사사 ▲43년 서울 한영중학원졸업,청서가 자정 하소기 화첩으로 화익힘. ▲43년 일본흥아 서도 연맹주최 전국서도 전람회 동상입상 ▲44년 계명학원 출강 ▲45년 매동국민교 교사 ▲47년 서울시 초등교육검정고시합격 ▲48 「졸업축하의 노래」「선생님의 은혜」작사(박재훈작곡) 아동문학가 이원수선생교류 ▲49년 문교부주관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노래 현상모집 동요 「어린이 노래 당선」이후 「어린이」 「소년」 「새동무」 「아동구락부」에 동요·동시 발표 ▲51년 피란지 부산 토성국민교교사,윤석중 윤극영 권길상선생교류 ▲52년 대구에서 동시 「꽃밭에서」(권길상작곡)발표 ▲53년 남산국민교 교사 동시「과꽃」발표 ▲55년 「학생계」(주간 박두진) 창간호 편집 ▲56년 새싹회 창립 동인 ▲57년 동요「파란마음 하얀마음」(한동희작곡)발표 ▲57년 「소년계」편집장,서울사범학교 근무 ▲57년 고려대 국어학과 3년 수강(연구생) ▲61년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초대 편집과장 출판사,「어문각」창설 멤버 「새소년」지 창간(주간) ▲67∼73년 금란여고교사 ▲73년∼현재 교학사 주간·한국문협이사·문예교육연구회 고문 신세계백화점주최 한국문인서화전,문인여기전,한국소설가협회 유고문인돕기 문인서화가 백자도예전,기독교방송주최 선교1백주년 기념 도서화전 문예교육연구회 초대회장,대한적십자 청소년적십자 자문위원 소년동아일보편집위원 소년중앙·세종아동문학상 심사위원 KBS 방송자문위원 저서 동화 「소나기 그치고」 「달나라소동」 「집나간 바둑이」 「개나리피면」 「도깨비나온집」 「나비잡는 할아버지」 「느티나무」 「종소리」,동요 「봄오는 소리」 「우리집」 「인형아기잠」 「고조끄만 꽃씨속에」 다시본 한국전래 동요·동화(전23권),번역서외 127권,수필집 「멋과 운치」(각 학교교가 31편) 출판문화상,한정동아동문학상·서울시문화상,소천아동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KBS 동요대상
  • 국내 문학계간지들 「90년대 반성」 특집

    ◎시대변화 따른 민족문학 새 좌표 모색/문학사를 보는 관점의 재점검 등 다양 주요 문학계간지들이 최근 나온 봄호 지면을 통해 90년대 문학의 성격과 그 반성등을 각자의 입장에서 분석한 글들을 실어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복간5주년 기념호를 낸 「창작과 비평」은 「미래를 여는 우리의 시각을 찾아­다시 생각하는 민족문학,동아시아·세계질서」라는 내용의 고은·백낙청 대담을 실었다.시대변화에 따른 민족문학의 새좌표를 모색하기 위한 기획물이다.또 10년만에 소설을 발표한 송기원의 단편소설 「아름다운 얼굴」과 김지하 시인의 「예전엔」등 근작시 7편,김사인의 「김남주 시에 대한 몇가지 생각」등 오랜만에 접하는 이들의 글이 많이 실렸다. 「문학과 사회」는 지난해 가을호의 역사특집의 연장선장에서 「문학사에 대한 점검」을 특집으로 마련했다.새로운 방향설정을 위한 기초작업으로 한재영 울산대교수의 「소설사·언어사·소설 언어사」와 10년 단위의 시대구분문제를 비판한 김철 교원대교수의 「문학사의 지양과 실현」,하정일의 「80년 국문학연구의 현황과 90년의 새로운 모색」,문학사를 보는 관점 자체에 대한 점검과 그 대안을 제시한 김진석의 글들이 눈길을 끈다. 한편 「실천문학」은 최근의 소설·시와 리얼리즘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글 3편을 특집으로 꾸몄다.문학평론가 김명인의 「실천적 리얼리즘론을 위하여」와 최두석의 「리얼리즘시 재론」,윤여탁의 「시와 리얼리즘 논의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과제」등이다.「작가세계」는 소설가 한수산 특집과 함께 그의 신작중편 「국경」을 실었으며 제2회 「작가세계문학상」수상작인 장태일의 「49일의 남자」를 전재했다.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생의 다른 곳에」등으로 많은 국내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해외작가특집으로 다루었다.그러면서 그의 신작소설론 「판뉘르쥬가 더 이상 웃기지 않게 될 날」을 번역·소개하고 있다.
  • 아시아추리작가협 창설/추리작가협 10돌 기념사업 다양

    ◎한일 작가·작품 교류 활성화/이 움베르토에코 초청강연회도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창립10주년을 맞아 한국 추리문학의 질적인 발전과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펼친다. 한국추리작가협회는 추리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창립10주년기념행사들을 통해 추리문학의 영역을 확대·심화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계획은 한국과 일본,대만,중국,소련등 5개국이 중심이돼 오는 11월 창설 예정인 「아시아 추리작가협회」이다. 오는 10월하순 제3회 한·일추리작가교류회를 4∼5월쯤 개최하고 「장미의 이름」을 쓴 이태리 출신의 세계적인 추리작가 움베르토 에코를 초청,강연회도 가질 계획이다.이밖에 일본추리작가협회의 추천을 받아 일본대표작가 단편선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국내행사로는 오는 11월초 이해조 채만식 김래성 현재훈등의 작품을 대상으로 「추리문학세미나」를 개최한다. 또 대상·신인상 시상에 그쳤던 추리문학상의 시상부문을 올해부터는 추리단편상,추리영화상,추리TV드라마상,추리연극상등 6개 부문으로 확대·실시한다.
  • 예술부문에 51억5천만원 지원/올 문예진흥기금사업계획 확정

    ◎대한민국문학상 폐지,번역상 신설/데이타베이스 구축에 50억원 투입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정한숙)은 19일 93년도 문예진흥기금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올해부터 개인창작 분야에 대한 지원은 축소 조정해 점차적으로 개인의 자율활동에 맡기는 한편 공연예술등 기반이 취약한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려 나가기로 했다.이에따라 올해부터 대한민국 문학상이 폐지되고 그대신 「한국문학번역상」이 신설,운영되는 한편 작가에 지원사업인 「문학작품창작지원사업」도 없어진다. 문예진흥원은 또 정보화시대를 맞아 세계적 수준의 종합적인 문화예술아카이브를 육성하기 위해 오는 94년까지 50억원을 연차적으로 투자해 문화예술데아터베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다.한편 전통예술 공연예술 활동지원의 건당 지원금액을 확대하고 「공연예술창작활성화사업」의 경우 지원규모를 종전의 5백만∼3천만원까지 지원하던 것을 1천만∼5천만원으로 상향 조정시켰다. 미술부문의 「30대 작가전」,무용부문의 「젊은 춤꾼의 발표무대」등 역량있는 20·30대 인재들을 발굴,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하고 「문화예술의 해」관련 우수사업은 정규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켜 나가기로 했다. 올해 문예진흥원 전체 예산은 총3백86억7천만원으로 지난해 총예산보다 1백95억원이 줄어들었다. 전체 예산가운데 순수 문예진흥 사업비는 2백28억1천만원으로 부문별 집행내용은 ▲예술진흥부문 51억5천만원 ▲문화촉매부문 22억원 ▲국제문화교류부문 24억2천만원 ▲문화환경조성부문 64억1천만원 ▲대중예술진흥을 위한 영화부문 60억원 ▲기타 6억3천만원등이다.
  • 제5회 전태일문학상/시부문 맹문재씨 당선(문단소식)

    제5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수상작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있는 맹문재씨(30)의 「미싯가루를 타며」가 뽑혔다. 시상식은 오는 2월20일 하오4시 민예총 강당에서 열린다.
  • 「제주 민속문학 변용」 특집마련

    ◎제주문학 22집 출간… 김지원의 시 등 담아 남도 제주도 문인들의 정성이 담긴 「제주문학」제22집이 나왔다.「제주민속문학의 현대문학적 변용」이라는 특집을 마련해 제주설화·무가·민요·동요등이 현대문학에 어떤 형태로 변용되었는가를 다뤘다. 소설가 오성찬씨의 「제주시인 1호 김지원」은 19 20년대 중반 「조선문단」을 통해 중앙문단에 데뷔한 김지원의 생애와 작품들에 관한 글들을 발굴,게재했다.그밖에 오경훈 정순희씨의 단편소설과 강용준의 희곡이 실렸다.지난 연말 「그 짝글레기의 유품」으로 제9회 요산문학상을 수상한 오성찬씨의 수상소감과 제2회 제주신인문학상 입상자들의 입상소감등 기성·신인 문인들의 작품이 골고루 실려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제주문학」은 지난해부터 매년 2차례씩 발간되고 있다.
  • 소설가 최인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0)

    ◎「자신의 언어」에 충실한 “지적성직자”/현실묘사보다 관념성 짙은 작품활동 주력/화제작 「광역」발표로 “전후최고작가” 명성도/다방면에 해박한 지식·분석정신… 주관 강한 성품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 다른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소설 「광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추악한 밤의 광장인 남쪽이나 밀실은 없고 광장만 허용되는 북의 기계적 체제등 모든 것에 염증과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어딘가 먼곳,아득한 이상의 나라인 제3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실종되자 독자는 그의 실종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은둔인가,영원한 죽음인가,그렇다면 희망과 기대없는 암담한 절망이란 말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소설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곧 이 소설은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을 동시에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점과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첨예하게 묘사됐다는 이유외에도 불꽃튀기는 눈부신 지적 문체와 지성미 넘치는 철학적 사고,극명한 체제분석등은 60년당시 정치상황의 독자들에겐 싱그러운 통쾌한 충격일수밖에 없었다. 최인훈은 문단데뷔 1년만에 일약 유명작가로 부상되었고 많은 평자들은 다각도로 그를 조명하기에 앞을 다투었다. 문단과 젊은 문학도들은 당연히 이 당돌한 신인작가가 누구인가에 주목했다.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인훈은 그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거나 물러서지 않은,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적당한 범주속에서 언제나 담담하고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다. ○견고한 자기세계 구축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 자신이 자신을 감추거나 도사린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실체를 공략할 수 없게끔 이미 탄탄하고 견고한 지식의 성속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다. 그와 친한 친구들­이라기보다 그를 가까이 하려고 접근했던 이들은 그의 문학과 철학 역사와 생태학 진화론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지적직관,철저하게 파고드는 분석정신에 삼투된 나머지 오히려 그를 난삽한 존재로 규정짓고는 일찌감치 그에대한 현혹을 포기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그는 아무나를 만나서 선뜻선뜻 대화에 응하거나 문학지등이 내건 잡다한 기획에 뛰어들어 그때마다 지면을 장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필자는 아니다. 그가 나설 자리 나서지않을 자리를 또박또박 구두점을 찍어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타당성 여부를 명료하게 따지고 타진한다.그래서 편집자측도 그에게 맞는 마땅한 기획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되었고 그역시 『부덕한 사람이 실수를 피할수 있는 길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상』임을 전제,상대방이 빠져나갈수 있는 탈출구를 터주고 있다. 만사에 긍·부정을 분명히 하면서 이렇게 적당한 변명을 달아주는 것만봐도 지금까지의 주변의 평가대로 그의 행동과 말에는 막무가내의 기미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라는 작위」가 갖는 위치가 「막대한 부채를 인수한 상속자」라 현지라도 체면상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거나 체면상 글 한줄 써야 하는 허례와 허식,의례적 형식들을 외면하기 위해서,그러니까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걸맞는 이유를 장치하고 있었는지도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라하지도 않고 갈만한 일도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된다.따라서 사교적인 모임이나 장소에서는 객관적으로 건너다보아도 그의 존재는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의 네 귀가 딱딱 들어맞아 빈틈이나 허술함을 찾아볼수 없듯이 그의 평상시의 모습,작가로서의 모습도 여전히 그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의 걸음걸이에서도 성격이 나타난다.그는 손끝까지 똑바로 편채 걷는다.호들갑스럽게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지 않는다.침착하게 아주 천천히 반응하기 때문에 그와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자연스러운 자리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아무리 떠들어도,그래서 의도적으로 작가의 어떤 면을 꿰뚫어보고 그 대답을 얻고자 하는 방법일 때는 그 질문이 명료해질 때까지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린다.그리고 산만함중에도 상대방의 의중이 진지하고 진실하다고 여겨지면 비로소 한마디의 압축된 대답으로 노냐 예스냐로 반응한다. 그는 말을 절제하되될수 있는한 명증한 말만을 고르고 있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 그의 소설은 흔히 「관념소설」또는 「환상소설」,작가로서의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현실적이라고도 말한다. 혹자들은 그의 소설에는 「생동하는 인물」보다 「지적괴뢰」들이 넘쳐있으며 「쉽게 쓸것도 어렵게 쓰고」그래서 그는 「관념보다는 현실을 그리는게 목적인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꼬기도 한다. 이른바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는 로맹롤랑이나 레마르크처럼 삶의 향훈이 물씬 풍기는 눈물과 한숨과 인생역정과 사랑의 애증을 그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은 관념에 우선한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관념」은 예술적으로 소설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도 「현실에 우선할 수 있는 소설적 기법」임을 그의 여러소설에서 단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고귀한 자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비극적 상황」만이 독자의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정답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는 유클리드의 공식만큼이나 자명하고 단순할뿐 「고귀한 자」는 「한사람의 남자」이거나 「귀족」이거나 「영웅」이전에 그가 처하고 있는 사회적·철학적·도덕적 차원에서 「고뇌하는 현대인」「방황하는 지식인」일수도 있음을 그는 대표작 「광장」과 「가면고」「회색인」「웃음소리」등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평소의 그는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24시간 책읽기에 빠져있고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남들과의 케상공론보다 아들 윤F(20)에게 「영산회상곡」이나 베토벤을 신청해 듣는 것이 행복하다. 바둑을 둘줄도 모르고 스포츠도 모른다.다른 취미나 오락이 있을리 없다.요즘은 긴 방학을 맞아 갈현동 2층서재에서 오랜만에 신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실은 소설에 손댈 경황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34세에 뒤늦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 윤F가 중2때 간염백신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보균자로 나타나는 바람에 그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일념과 기원으로 좋은 의사,좋은 병원을 찾아 뛰어다녀야만 했다. 학업을 중단한채 누워서 책과 음악으로 소일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둥처럼 무너져 내렸으리라. 문학이 예술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예술일 것이다.아들의 아픔을 보면서 이를 체험으로 끄집어내고 휘두를만큼 그는 잔혹하지 못하다. 그것이 작가로서 위대한 것이라면 그는 「사양하고 싶은 위대함」이라고 외면해 버린다.2년전 윤구는 회복하여 검정고시합격으로 지난해 대학에 갔다.딸아이 윤경이도 올해 이대 영문과에 입학,모처럼 가정에 안락이 찾아들어 그는 작품구상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무슨일에든 까탈을 부리거나 까다롭게 군 적은 없다.남들이 지레짐작하는 것이라면 그로서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그는 다만 글을 쓰는 일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않아 쓰지않을때도 언제나 내면에서 쓰고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광장」이후 사람들은 그를 향해 작품을 쓰느니 못쓰느니 끝없는 소요로 들끓었다. 그가 「광장」을 쓴것은 24세때다.이후 이 소설은 대학생과 문학도들의 필독서에다 지난 32년간 해마다 1만부이상,지난해엔 2만부,지난해초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단일작품으로는 평자들의 가장 많은 논란을 받았고 「전후 최대의 작가」로 찬사되기도 했다. ○24세때 「광장」 발표 그는 함남 회령출신으로 6·25때 가족이 모두 월남,피란지 부산에서 16세때 장편소설 「두만강」을 쓰기 시작해서 이 소설은 7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아무런 목적없이 법과를 택한 자책감에 학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출석미달로 4학년에서 1학기를 남기고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웃음은 순백하다.그의 심성은 천진무구한 소년과도 같고 그의 행동은 순리를 좇아 자연스럽기만 하다.그는 집에서는 두남매와 소탈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원영희씨)와의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고 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이다. 평론가 김현은 그의 향기높은 지적 탐구로서의 문학에 대해 롤랑 바르트와 줄리앙 방데의 말을 빌려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그는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에 성실하게 맞부딪치려고 글을 쓰고 있다.그의 정신의 질서는 혼란된 세계를 조리있게 파악하려는 의지이며 논리에 따라 부당하게 기울어지지 않는 천칭,그는 바로 지적 성직자」라고. 그리고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임무가 무엇이든 성직자에겐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연보 ▲1936년4월 함북 회령서 목재상인 부친 최국성씨와 김경숙여사의 4남2녀중 장남 ▲47년 함남 원산으로 이사,회령국민교에 이어 원산중­원산고2까지 ▲50년 6·25로 가족 전원 월남,부산 정착 ▲57년 서울대 법대 4년때 출석미달로 중퇴 ▲58년 군입대,통역장교로 근무 ▲59년 「GREY 구락부 전말기」「라울전」이 안수길씨 추천으로 「자유문학」지 통해 문단 데뷔 ▲60년 문제의 작품 「광장」을 「새벽」(10월호)에 발표 ▲61년 단행본 「광장」(정향사)출간 ▲67년 「총독의 소리 1·2」연작 발표에 이어 단편집 「총독의 소리」(홍익출판사)출간 ▲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현암사)출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극단 자유극장공연),11월17일 신문회관에서 이헌구씨 주례로 원영희씨와 결혼 ▲71년 창작집 「서유기」(을유문화사)출간 ▲72년 창작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삼성출판사)출간 ▲73년 장편 「태풍」(중앙일보)연재 ▲73년8월∼76년5월 미국체류,미아이오와대 세계작가 프로그램(IWP)초청,「광장」(일어판),수필가 김소운씨 역으로 일본 동수사출간 ▲76년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극단 산하 초연) ▲77년 「봄이오면 산에들에」(극단 동랑레파토리 공연) ▲78년 「둥둥 낙랑둥」(국립극단 97회 정기공연) ▲79년 미뉴욕주 브록포드대 초청,「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참가,「최인훈전집」(문학과 지성사)완간(전 12권) ▲80년 소설집 「왕자와 탈」(문장사),「하늘의 다리」(고려원)출간 ▲81년 소설집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민음사)출간 ▲82년 희곡집 「한스와 그레텔」(문학예술사)출간 ▲87년 미 뉴욕 「범아시아 레파토리」극단 10주년기념공연,「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 참관 ▲89년 창작선집 「달과 소년병」(세계사),산문집 「길에 관한명상」(청하),창작선집 「웃음소리」(책세상)출간 ▲9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소설 「광장」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 ▲77∼현재 서울예전 교수 그외 대표작 「구운몽」「회색인」「가면고」「크리스마스캐럴」「두만강」「우상의 집」과 수필집 「유토피아의 꿈」외 동인 문학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서울극평가 그룹상(달아 달아 밝은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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