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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성있는 언어” 산문집 4권 눈길

    ◎유년시절 고백·분단현실 등 소재 다양/신경숙 「아름다운 그늘」/김하기 「마침내 철책끝…」/함광복 「DMZ… 아니다」/고종석 「고종석의 유럽통신」 한국문학의 지도에서 산문의 위치는 모호하다.붓 가는 대로 쓴 수필로서 감상적인 여고생이나 주부의 심심파적 정도로 치부되기도 하고 시나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깔끔한 언어로 삶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드러내는 글로 대접 받기도 한다. 감상적인 수요층을 노골적으로 겨냥,감미료를 잔뜩 친 수필집들이 서점의 에세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특한 산문집 4권이 나왔다.작가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을 필두로 김하기 산문집 「마침내 철책 끝에 서다」,함광복 산문집 「DMZ는 국경이 아니다」,고종석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등이 그것.이 책들은 주제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개성적인 언어로 산문정신의 본질인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젊은 여성작가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은 마음의 떨림을 섬세한 언어에 담아온 소설가의 사적인고백.농촌에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자란 유년시절,글쓰기와 문단 친구들 이야기 등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속삭이며 작가는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의에 가 닿고자 한다.이 책의 소제목인 「말해질수 없는 것들」이란 말은 그의 감성의 세계를 한마디로 드러내면서 유행어가 돼버렸다.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는 지은이가 휴전선을 따라 여행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행문.백령도·강화도·민통선을 거쳐 최전방 철책 끝에 이르기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민족의 고단한 운명을 보며 한층 불댕긴 지은이의 민족애가 열정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역시 분단 현장인 DMZ을 글감으로 한 글.하지만 사회부 기자의 글답게 DMZ의 생태계와 거주지·역사 등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의 성격이 짙다.천연기념물의 보고로서,주말 외출한 군인들이 애인과 어울리는 최소한의 삶의 터전으로서,그리고 예술가가 월북하고 남북이 정치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으로서 DMZ의 중첩된 의미가 간결하고 차분한 문체에 실린다.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현재 파리에 체류중인 신문기자출신 지은이가 한국의 선후배·동료들에게 띄우는 편지글 형식.1백23년전의 실패한 파리 코뮌,일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대선을 앞둔 파리의 분위기 등 현안을 보는 소감과 현지에서 본 앙리 레비의 영화,반 고흐,생텍쥐페리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상념이 지은이의 두터운 문학적 소양과 사회를 보는 매운 눈에 걸러져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문학동네 차창룡 편집차장은 『산문집이라면 이미 발표한 글을 모으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시골로 내려가서 산문집에 실을 글을 따로 쓰는 시인도 있다』면서 『산문이 푸대접받는 시대라지만 산문을 통해 아름답고 정확하면서도 감각에 맞는 국어에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 문인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고 말했다.
  • 남성잡지 「HIM」창간 최일옥씨(인터뷰)

    ◎“가십·선정성 배제… 삶의 윤활유 역할 할것” 월간지라면 으레 여성잡지를 떠올리게 마련인 우리 잡지계에 올들어 남성지인 「GG」「THE MAN」「HIM」등이 잇따라 창간 됐다.이 가운데 22일자로 창간호(9월호)를 선보인 「HIM」의 발행인은 여성인 최일옥씨(49)이다.「여성이 만드는 남성잡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남자들 세계를 가만히 보면 여가거리가 거의 없어요.기껏 술이나 마시고 화투나 칠까요.이번에 나온 「HIM」은 남성들에게 휴식을 주고,삶에 윤활유가 되는 잡지가 될 겁니다』 최씨가 겨냥한 독자층은 80년대와 90년대 초에 대학을 나와 지금은 사회 경력 2∼7년 정도인 남성이다.최씨는 이들을 「자기 분야에서 프로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스스로 라이프 스타일을 개성있게 연출하는 남자」라고 본다.따라서 잡지에 가십·폭로성 기사등 선정적인 이야기는 다루지 않으며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채우겠다고 말했다. 『매달 주제를 하나씩 정해 지면의 70∼80%를 주제가 곁들인 기사로 구성하겠습니다.창간호인 9월호주제는 여행입니다』 최씨가 말하는 여행은 단순히 피서철 여행 따위를 뜻하지는 않는다.우리 삶이 곧 여행길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그래서 창간호에는 「왜 우리는 떠날 수 없나」라는 화두의 에세이와 설문조사를 비롯,존재의 근원을 찾아 나서는 티베트 여행,배낭 하나로 미 대륙을 횡단한 가족 이야기들을 실었다.또 「시간 여행」이란 개념으로 과거의 인물들을 소개했다. 출판사 「열린세상」대표인 최씨는 지난 86년 단편소설 「문대식씨를 아십니까」로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이듬해에는 KBS방송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또 일간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언론인 출신이기도 하다. 『「HIM」의 편집장도 30대 여성입니다.편집장은 30대 후반인 남편에게,발행인인 저는 20대인 아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여성 발행인과 편집장이 함께 만드는 남성잡지를 눈여겨 봐 주십시오』
  • 신세대 시각(21세기 한­일 새 지평:5·끝)

    ◎한일 공존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우월의식·불신 제거로 과거치유를/상호신뢰 넓혀 「갈등 역사」 청산/청년층 격의없이 자주 만나야/김홍진 ▲75년생 ▲서울대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2년 1995년 8월15일.우리는 「광복」이라 하고,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패망」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지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과거책임은 분명 우선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식민지배가 낳은 분단이라는 고통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민족의 불행과 주권상실의 아픔을 하나의 유전형질로까지 간직하게 된 우리는 까닭도 모르는 채 분단이라는 비극도 떠맡아왔다. 그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남과 북은 이제 민족의 동질성 회복마저 운운해야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36년간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힘겹게 떨치고 난 후에도 아득한 절망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참된 광복은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과거청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한민족의 지난 50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청산의 역사인 반면 우리에게 빚을 진 일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져만 갔다.해방 이후 한·일 역사는 마뜩한 뒷풀이가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풀어나갈 주체와 방향은 어떤 것일까. 기나긴 역사에 비해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만큼 식민지배의 고통을 직접 당한 기성세대가 일본의 죄값을 추궁하는 역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이제는 청년학생이 주축이 되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청년은 「신세대」로 불린다.일본도 이미 80년대에 기존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을 고한 「신인류」의 출현을 맞이했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가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앞으로의 역사도 알력과 대립으로만 점철돼서는 안될 일이다.다가올 세기는 하나된 한반도의 젊은이와 국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섬나라 젊은이의 공존의 시대이어야 한다. ○젊은이 역할 중요 이를 위해서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과 그릇된 우월의식,상호신뢰를 허무는 어줍잖은 영웅의식,이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공동이익을 저버리는 일방적인 국가행위 등을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정황은 아직도 이같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반도는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일본도 이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제국주의자의 망언은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최근에는 자위대증강,핵물질보유 등 군사력 신장과 극우파의 창궐로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감정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일본에서는 얼마전 염한론이 한창 회자됐다.『얼마나 더 사과해야 되나』『이제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수 일본국민의 반한감정이 드러난 형태였다. 우리 국민도 대일감정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싫다고 말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으나 일본이 보여주는 반성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민족우월의식은 거부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영웅의식 극복을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정부는 좀더 대범하고 적극적인 대일외교를 수행,한국과 일본 양국이 헌법에서 밝힌 바대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역사적 대의에서 주도권을 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지역패권을 추구,공존해야 할 이웃국가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한·일 양국이 다가올 세기의 공존과 번영을 이끌어갈 청년학생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양국의 청년이 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양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꾸준한 만남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참 공영의 미래향한 선결과제/상대 바로알기가 선린우호 첫 걸음/무지·몰이해서 오해·마찰 비롯/교육·문화 등 교류확대 급선무/나카가와 도시히코 ▲71년생 ▲일 무사시대 사회학과 4년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치,치마저고리,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T셔츠 등으로 밖에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식의 모자름.나 자신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왜 그런가.그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봄 한달 반동안 한국에 단기 유학했다. ○부정적 생각 깊어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그저 누님 내외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관계밖에 없었다.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알지 못한다」.이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고대 불교와 유교의 전래,고려청자와 이조백자가 일본의 도예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의 교류 등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고 있는 전쟁책임에 따른 부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아무래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종군위안부문제 등 전후처리에 관련된 일도 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갖지 못한 채 「전후책임」이라는 네글자가 눈 앞을 그냥 지나쳐 「부채」라는 프레셔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막연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유학에 임해서 처음 알았다. 또 이러한 문제이전에 한국인을 잘 알지 못했고,한국인들이 속마음으로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도 몰랐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의 강연에 찾아가 볼 기회가 있었다.예상이상으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할 때,입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은 대단히 사납게 주최자측에 따지고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강연장에 들어가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문을 향해서 밀려 들고 밀려나오면 또 나아갔다. ○서로의 고민토로 혼잡을 빚는 사람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국인의 과격함에 압도당해 강연의 건은 아무렇게 돼도 좋게 됐다. 또 한국에 가기 전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혐오감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불안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특히 같은 세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해외의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서양문화를 모방하는데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고 서로 닮은 고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남자가 일본어로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그 남자가 너무 유창한 일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거듭 전쟁책임을 져야한다」등등 가볍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 서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세대다.서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전후 50년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문화가 다르면 이런저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교육 문화교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깊은 이해심 필요 다른 나라와의 오해와 마찰은 상대국에 대한 지식부족,무이해로부터 생긴다.일본인도 노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국민들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아주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민은 감정적으로 의미도 없이 서로 혐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잘 안 뒤에 양자가 이르지 못한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우호관계를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선 한일관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 세계문화 산책/김준길 지음(화제의 책)

    ◎“문화 인프라 없이 세계화 없다” 역설 젊어서 부터 문화편력벽이 심했던 「영원한 보헤미안」이 50대 후반에 정리한 문화예술론.프랑스·스웨덴을 중심으로 자신이 체험한 서양 문화예술의 정수를 소개하고 우리 문화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지은이는 「한국 문화는 왜 노벨문학상이나 칸·베니스영화제의 그랑프리를 탈 수 없는가」고 스스로에게 묻는다.그리고 우리 사회에 하루빨리 「문화 인프라」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인프라」란 경제학에서 물류를 위한 여러가지 시설과 구조를 뜻하는 사회간접시설 개념.지은이는 이를 문화에 도입,문화 인프라(Cultural Infrastructure)라는 용어를 창조했다.곧 「문화예술 활동을 북돋우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사회의 정신적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고속도로가 없으면 물류가 원활하게 흐를 수 없고,정보통신망이 없으면 의사전달이 시대를 좇아갈 수 없듯이 문화인프라가 이뤄져야 한국 문화의 세계화가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기자,출판사사장,대학강사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지은이는문공부 공보관으로 프랑스·스웨덴·미국에서 오래 생활했고,지금은 공보처 정부간행물제작소장으로 있다. 인시 6천5백원.
  • 서울신문 새 연재소설 「파도여,파도여」 집필 김민숙씨(인터뷰)

    ◎“모국 떠난 교포들이 소외된 삶 조명”/파리체재 경험 바탕 다양한 유형인물 돌출 『제가 워낙 게으른 데다 허약체질이거든요.신문연재 같은 장기 레이스를 잘 뛸 수 있을지 두려움부터 앞서네요』새달 1일부터 실리는 서울신문의 새 연재소설 「파도여,파도여」의 작가 김민숙(47)씨.대뜸 엄살섞인 첫마디를 꺼내놓지만 이 작가의 첫인상은 말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자그마하지만 다부진 체구에 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짧은 커트머리,가무잡잡한 피부와 초롱초롱한 눈빛….마치 자신의 인기소설 「내 이름은 마야」의 주인공처럼 아직도 짓궂은 호기심이 철철 넘치는 소녀 같은 모습이다. 『지난 84년 13년간 다니던 잡지사에 사표를 던지고 파리로 1년 휴가여행을 떠났었지요.그 이후에도 긴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 작품은 그 때의 체험에서 우러난 것입니다』 소설은 파리에 유학온 한국 여학생 명화의 눈을 빌려 진행된다.여행사 가이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보태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와 다투는 명화는 파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외국학생 중의 하나.그러나 그녀는 이곳에 건너와 있는 여러 한국인과의 만남을 통해 해외 한국인의 처지를 차츰 인식하게 된다.모처럼 한국을 벗어나 어떻게든 사랑이건 섹스건 「한건」해보려고 덤비는 염치없는 여행객에서부터 유학온 남편을 따라왔다 우울증에 빠져버린 아내,유학생과 사랑에 빠진 상사 주재원까지 모두 한국과 프랑스라는 이중구조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특히 모순되는 요구 사이에서 부대끼는 이같은 이방인의 괴로움은 에쓰코라는 재일교포 3세가 등장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험난한 여정으로 연결된다. 『소설속에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이곳으로 건너온 뒤 한국인만 만나면 허겁지겁 매달리는 여자 얘기가 나와요.이것은 실제로 파리 전철에서 저를 붙든 어떤 한국여자의 이야깁니다.모국의 품을 떠나 뿌리뽑히고 소외된 교포들에 대해 빚을 갚는 마음으로 쓰는 소설이 될겁니다』 지난 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지은이는 6.25가 가족사에 남긴 상흔을 다룬 「봉숭아꽃물」「시간을 위한 진혼곡」등을 발표,녹원문학상을 타면서 「여성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눈부신 감수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가 쓴 청소년 소설 「내 이름은 마야」는 3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아 영화와 TV드라마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장편소설 「사막의 달」「그림자 밟기」「눈 내리는 아침의 잠」과 꽁트집 「담배 피우는 여자」등을 발간했다. 지은이가 좋아하는 작가는 솔 벨로와 밀란쿤데라.심각한 문제조차 희화화하는 시니컬한 문체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삶의 쓰라린 부분을 날카롭게 집어내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거대한 사회문제에 달려들기보다 한 개인의 상처와 방황을 진지하고 꼼꼼하게 묘사하는 과정에서 큰 얘기를 절로 따라오도록 하는 지은이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답이다.
  • 시인 박두진(이세기의 인물탐구:75)

    ◎신·자연·인간을 노래한 “해의 시인”/불의·적당주의·시속과 타협 단호히 거부/독학으로 인생행로 개척한 극기의 인물/등산·수석채집 30여년… 붓글씨·서화에도 능해 「해야 솟아라.해야 솟아라.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넘어 산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산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혜산 박두진의 「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우리나라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인 그를 일컬어 문단은 「해의 시인」으로 부르고 있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인환(고대교수)은 『밤과 밤을 몰아내는 해와의 대조위에 전개되는 「해」에는 혜산이 희망하는 세계가 투영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세계는 꽃과 새와 사슴과 칡범과 인간이 한 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동심을 이루고 있지만 과연 현실이 기다림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그의 시적 변모는 이러한 질문에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혜산 박두진의 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한 줄기 정신은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신앙의 영향은그로하여금 인간중에서 가장 많이 고통받고 가장 위대하게 사랑한 예수의 생애를 통해 언덕과 하늘과,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집단이 감동속에 결속되고 있음을 「갈보리의 노래」로 절규하고 있다. ○“위선과 탐욕 버려야” 「마지막 내려덮는 바위같은 어둠을 어떻게 당신은 버틸 수가 있었는가? 뜨물같은 치욕을,불붙는 분노를,에어내는 비애를,물새같은 고독을,어떻게 당신은 견딜 수가 있었는가,꽝꽝 쳐 못을 박고,창끝으로 겨누고 채찍질해 때리고,입맞추어 배반하고 매어달아 죽이려는,어떻게 그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우주의 생명과 우주의 질서」에 눈을 돌려 「이제 사물과 인간은 우주적 무도에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하나의 사건이 되고,가식과 위선과 탐욕을 버리기만 하면 누구나 생명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의 특징은 작품에서 개인적인 감상을 추구하지 않는 점이다.86년 한 신문에 발표한 칠순기념 특별기고에서 「가난이라든가 개인적인 슬픔,사람에 대한 배반감이나 기쁨을 시로 승화시킬 수는 있다.그러나 문학은 인간 누구나가 느끼는 인류공동의 문제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로 천착하여 진실에 대한 투시력을 보여야 한다」고 논한 바 있다.즉 「시의 사상,시의 윤리,시의 심미적 창조가치는 언제나 그 창조의 주체인 시인에 의해서만 시적 진실이 획득된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개탄하면서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젊은 사람은 나이든 사람을 업고 나와 학연·지연을 앞세워 설쳐대는 것은 문학의 권위와 문학인의 자존심을 잃는 일」이라고 우려해 마지않았다. 혜산의 생애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일컬어 「극기의 인물」로 평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앙상하리만큼 야윈 체구에 오랜 등산과 수석채집으로 다져진 강단은 일상생활에서도 불의에 굴하거나 적당주의나 시속의 타협이 없이 무엇을 하든 정의감과 선비적 자세를 지켜왔고 그의 시의 소재들은 이런 다양한 지란을 이겨낸 심혼의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인 신대철은 팔순을바라보는 나이에도 언제나 꼿꼿한 자세와 순수무결한 시심을 잃지 않는 혜산을 향해 『자기초월의지를 가진 인격과 고고한 학자의 기풍과 시인의 기상을 흐트리지 않아 문단에서는 물론 대학에서도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고 자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 안성 「고장치기」로 불리는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청렴한 선비이던 선친으로부터 일찍이 한문과 붓글씨를 배우고 안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 외엔 그는 혼자서 독학으로 인생행로를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4세때 「문장」지에 등단 24세에 「문장」지의 시 추천을 거쳐 문학활동을 전개하기 이전까지 그는 측량소·경성부청·금융조합원 생활을 전전했고 45년 해방과 함께 그 당시 유일한 출판사이던 을유문화사에 입사한 것이 조지훈·박목월과 만나 「청록집」을 출간하는 계기가 된다.이후 자연과 신을 주제로 하는 시들을 끊임없이 발표하더니 60년대말부터 수석취미에 침몰하여 「돌」 하나만을 주제로 하는 「수석열전」시리즈를 「현대문학」지에 수년간 연재,지금은 「돌의 시」로써 시인만의 청복을 누리는 시기다. 서대문구 창천동 그의 집에 가보면 마당과 거실과 서재와 베란다는 「뇌뢰낙락하고 고하고 괴하면서 관용자수 한 명석」들이 일사불란하게 도열해 있고 그의 돌에 대한 사랑은 3천여편 이르는 시작 외에도 서화나 수필에 넘치도록 표현되어 있다. 「작은 한개의 돌이 갖는 형태미와 색채미는 어떤 조각품에도 견줄 수 없는 묘막한 조형미가 갖춰져 있다.난이 정의 극치라면 수석은 의 극치,난이 부드러우면서 의연하다면 수석은 웅혼섬세하고 표일 불기이면서 차라리 성자롭다」등,그리고 「시를 쓸 때의 사무사의 맑은 마음,맑은 눈만이 석격이 심웅하고 석품이 우귀」한 것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혜산의 취미는 다양하다.시를 쓰는 것과 동시에 30년남짓 등산을 하고 난을 키웠으나 그는 이를 굳이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붓글씨와 서화에 능하여 앞을 향해 질주하는 듯 한 아름다운 필체는 「혜산체」로 일가를 이루고 있으나 서도를 감히 취미라고 하지 않는다.「어떤 것은 너무 높은 경지라그렇고,어떤 것은 나 자신이 족히 미치지 못해 모자라는 것을 취미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시를 좋아하면서 산을 좋아했는지 산을 좋아하다가 시를 좋아했는지는 모르나 산은 심약한 그를 「의지적 인간」으로 바꾸어놓았고 일목일초에 기울이는 정서적·감각적 운치를 알게 했으며 「한개의 돌에 얽힌 정신적 파동」은 그의 시심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돌아본다. 문단의 교분은 다양하진 않지만 월탄이 생존해 계실 때는 종로구 충신동 월탄댁에 가끔 모여 「문주반생기」의 무애 양주동,「명정사십년」의 수주 변영로,공초 오상순,연포 이하윤등 문단의 주호들과 맥주 두잔의 술실력으로 「도도한 무애의 웅변,월탄의 호통,공초의 무언,수주의 독설속에서 시를 주고받고 휘호를 치면서 철저하게 밤을 새운 이야기」는 문단사의 향기로운 추억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수석에 물을 뿌리고 돌보면서 가슴속에 들끓는 정열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그럼에도 자신을 「시인으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의식해 본 일이 없다」고 끝내 도도하다.다만 「시는 한낱 감상이 아닌 인간이 신의 손길에 의해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덕윤과 경외의 념」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할 뿐이다.언제나 쓸 것이 밀려 있고 생각에 쫓겨 「한없이 즐겁고 한없이 탄력을 느끼면서 고양된 감정,맑은 생각,투지와 저항,여유와 절박감이 뒤섞인 속에서」 그는 총체적으로는 어떤 즐거움과 보람같은 것을 느껴왔다고 수필집 「돌과 사랑」에서 밝히고 있다. 연세대 교수 정년퇴직후엔 일주일에 두번 추계예술대 강의,그외엔 2박3일정도로 수석채집을 위한 여행길에 오르고 수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면 수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데 지루해 하지 않는다.가족은 동화작가인 이희성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만 4형제. 『시인은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기꺼워하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내부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한 워즈워스의 말은 그를 두고 적절하다.혜산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 속에는 시가 있고 시를 상실한 사람은 인간의 순수성을 상실한 사람이며 시는 본질적으로 진실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며 신의말씀」이라는 그의 시론을 시로써 실천해냈고 마지막 붓끝까지도 신과 자연과 인간의 결속을 불후의 명시로 성취할 이 시대 진정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연보 ▲19 16년 경기도 안성출신,호 혜산 ▲39년 「향현」「묘지송」등이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추천 ▲46년 첫시집 조지훈·박목월등과 「청록집」(을유문화사)출간 ▲48년 한국청년문학협회 시부위원장,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49년 제2시집 「해」(청만사)출간,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 ▲51∼81년 연세대 교수 ▲65년 우석대 조교수 ▲70년 이화여대 부교수 ▲81년 단국대 초빙교수 ▲86∼현재 추계예대 전임대우교수 시집 「오도(오도)」(54년)「박두진 시선」(56년),수필집 「시인의 고향」(58년),시론집 「시와 사랑」(60년),시집 「거미와 성좌(성좌)」(61년)「인간밀림(인간밀림)」(63년)「하얀날개」(67년)「청록집·기타」「청록집 이후」(68년),시론집 「한국현대시론」,수상집 「생각하는 갈대」(70년),영역시선집 에드워드 W 포이트라스역 「Sea of Tomorrow」(71년),수상집 「언덕에 이는 바람」,시집 「고산식물」「사도행전」「수석열전」,시론집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한국현대시문학대계 「박두진」(73년),시집 「속·수석열전」(76년)「야생대」(77년),시선집 「예레미야의 노래」,시집 「포옹무한」「하늘까지 닿는 소리」「박두진 전집」(범조사 81년)「나 여기에 있나이다,주여」(82년)「청록시집」(83년),수상집 「돌과의 사랑」「그래도 해는 뜬다」,시선집 「일어서는 바다」(86년) 「불사조의 노래」(87년),시집 「빙벽을 깬다」(90년),산문전집 「햇살,햇볕,햇빛」(91년)「박두진 전집」(신원문화사 95년) 아세아자유문학상(56년) 서울시문화상(63년) 3·1문화상 예술상(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76년) 인촌(인촌)상(88년) 지용문학상(89년)
  • 올 공초문학상에 홍윤숙씨/서울신문사 제정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시인 홍윤숙씨(70)가 선정됐다.수상작은 지난해 출간된 홍시인의 10번째 시집「낙법놀이」에 수록된 「낙법­놀이·33」. 근대 신시운동의 선구자 공초 오상순선생을 기리는 이 상의 심사는 박두진(시인·위원장),김장호(시인·공초선생 숭모회 부회장),박철희(평론가·서강대교수),김용직(평론가·서울대교수),이근배씨(시인)등이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 「낙법­놀이·33」이 『모과향기의 낙하를 우리 자신의 한계의식과 일치시키면서 서정시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뛰어난 기법과 상상력으로 신선한 시상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 「낙법­놀이·33」으로 본사제정 공초문학상 수상 홍윤숙 시인

    ◎“나이 70에 받는 복된 선물 기뻐요”/47년 등단… 인간의 아픔 보듬어 안는 자세로 시작 『나이 칠십 먹어 새롭게 상을 타려니 공연히 쑥스럽네요.하지만 제 문학 일생에 주시는 복된 선물로 알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공초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선정된 홍윤숙(70)시인은 마냥 기쁘기보다 옷 매무시를 가다듬게 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지난 47년 스물셋 나이로 시단에 데뷔,끊일듯 끊일듯 이어온 문학과의 인연이 어느새 50년이 다 되었다.문학과 함께 젊은 날과 중년을 보내고 문학에 기대 황혼을 맞게 된 셈.오랜 나날의 두터운 온축으로 시인은 이제 기쁨과 슬픔에도 큰 진폭으로 흔들리지 않는 무심의 영토에라도 들어선듯 하다. 『물론 상을 타면 좋기 한량없지요.하지만 우리 문학하는 사람 가운데 상받으려고 글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우리는 목소리가 우러나는 대로 그저 시집을 쌓아가는 것 뿐이고 그러다 찾아오는 상이란 뜻밖의 횡재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시인의 시세계는 수굿하고 초연한 평상시의 모습과 전혀다르다.그의 시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픔을 누구보다 크게 앓으면서도 흠집난 그 삶을 결국 품어안고 마는 「치열한 사랑」의 세계다.시인의 이런 실존적인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기는 이번 수상작「낙법­놀이·33」도 마찬가지.사람된 삶의 아픔을 터득했기에 「돌무더기 무너지는 아슬한 석양의 벼랑에 서서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를 아름답게」 느끼는 역설이 가능한 것. 『젊을 때는 사는 일에 허덕여 나이 먹고 났을 때를 챙겨볼 여가가 없지요.그러나 막상 인생의 하류에 당도하고 보니 그때 그렇게 허둥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회한이 절로 밀려오데요.담담하게 고백하는 심정으로 시를 썼어요.인생에 자신만만한 구두점을 찍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를 포함,놀이 연작시 65편 등 78편을 수록한 시집 「낙법놀이」는 「낙화」의 아찔한 절망감과 싸워온 시인의 삶의 자취다. 이처럼 지난날을 회한속에 돌아보는 시인이지만 젊은 작가들에겐 너그러운 점수를 주고 싶단다. 『요즘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나 소설들을 나름대로 뜻있다고 생각합니다.문학이란 본디 다양성을 먹고 자라는 것 아니겠어요.하지만 마지막엔 문학의 본원적인 자리,원형으로 돌아가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써온 정통시만이 유일한 원형은 아닐테지만 결국 문학도 고향을 꿈꾸니까…』 최근엔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을 재미있게 읽었다고.후배의 작품에 대해 『단순한 듯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소재와 시각이 산뜻했고 필치도 신선했다』고 촌평한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탤런트를 갖고 있고 우연한 계기로 이것이 싹트면서 삶의 길을 결정하는 것 같다』는 시인은 『지나고보니 나도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우연에 더 큰 부채를 진 것 같다』고 문학에 꿈을 품었던 스무살 무렵을 에둘러 회고했다. 『아무튼 문학이 없었으면 뭘 먹고 살았을지 막막해요.글쓰는 것 빼고는 재주라곤 없었으니….다시 태어나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겠지요』 「독실한」이라는 단서를 접고 카톨릭 신자라고 밝히는 홍시인은 『늘 회의하고 구속에 투덜거리는 「불량」신앙인이었다』면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묻고 싸웠기에 오히려 절대자에게 한발 더 다가갈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욕심이 있다면 그건 허욕일테지요.그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쓸수있는 데까지 쓸 생각이에요』 무성했던 잎을 떨쳐버리고도 거칠 것 없이 곧게 선 겨울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시인의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다. ◎심사평/40여년 쓴 작품서 묵은 포도주 향기/수상작 「낙법…」뛰어난 상상력 발휘 시인 홍윤숙이 우리 시단에 등장한 것은 19 50년대 중반기로 알려져 있다.그러니까 이 시인의 시력은 줄잡아도 40년이 넘는다. 한 시인이 오랜 세월 시작활동을 했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긍정적인 각도에서 볼때 그의 시는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좋은 방향을 가질수 있다.그러나 이런 경우 끼어 들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될 수 있다.자칫 그의 시가 안이해질지도 모른다는 부정적 그림자가 그것이다. 시인 홍윤숙은 후자와 같은 우리 생각을 문자 그대로 기우에 그치게 하는 경우다.오랜 시력에도 불구하고 사물을 포착하는 그의 눈길은 여전히 매섭고 맵짜다.또한 그것을 도마위에 올려 요리하는 손길 역시 날래고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수상작으로 추거된 「낙법놀이」에는 한국시단이 가져야 할 좋은 시의 또하나 자격요건이 내포되어 있다.널리 알려진대로 현대에 와서 시는 서정시를 가리킨다.그런데 서정시는 그 속성이 사적인 세계를 노래하는 것과 함께 형태가 축약적인데 있다.이런 속성 때문에 서정시는 자칫 편향된 노래가 되기 쉽고 소수 호사가들의 애장품으로 떨어질 공산도 크다. 그런데 시인 홍윤숙은 그런 부정적 가능성을 정서의 보편성 확보로 극복했다.또한 신선한 시상제시로 그의 시가 많은 사람에게 애송될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낙법­놀이·33」에서 시인 홍윤숙은 모과향기의 「낙하」를 우리 자신의 한계의식과 일체화시키기에 성공했다.이 기법,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이번 수상을 축하한다.
  • 흑인문화 중짐지 할렘가(브로드웨이 “새바람”:14)

    ◎「블랙르네상스」 부활의 꿈 가꾼다/“범죄·마약·빈곤의 거리” 오명씻기 안간힘/중심가에 22층 국제무역센터 건립도 추진/시인 앤젤루·영화감독 울프 등 고무적 예술활동 『……/밤이 깊어지면 그는 낮은 톤으로 노래하고/별빛이 사라지고 달빛만 남게되면/가수는 노래를 멈추고 잠자리로 가네/그가 낮게 부른 고난의 블루스만이 메아리 되어 귓가를 스치고/그는 바위처럼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네//』(랭스턴 휴스,「고난의 블루스」 The Weary Blues 중에서) 1920년대 미국 블랙르네상스의 기수로 당대 미국의 최고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랭스턴 휴스는 할렘흑인들의 힘들고 고난에 가득찬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그러나 당시의 할렘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으며 할렘을 흑인문화의 중심지이자 흑인인권운동의 중심지로 아프리카나 카리브해에서 이주해온 흑인들의 자랑스런 고향으로 만들었다.그래서 할렘은 한때 「세계 흑인수도」라고까지 불릴 정도였다. ○한때 「세계 흑인 수도」로 블랙내셔널리즘의 대부인 마르쿠스 가베이가 1916년 국제흑인진흥회를 만들어 백인과의 투쟁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운동」(Backto Africa Movement)을 벌여 노예상태의 흑인들에게 자각의식을 불어넣었던 곳이 바로 할렘이다.오늘날 이곳에는 마르쿠스 가베이 파크가 있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할렘은 범죄·마약·빈곤 등 불안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온통 낙서투성이의 거리,퇴락한 빌딩군,지저분한 쓰레기 더미,이곳저곳에 널려있는 홈리스(집없는 걸인)등 같은 맨해튼 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20∼30블록 남쪽의 거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할렘은 지리적으로 센트럴파크의 북쪽끝인 110스트리트로부터 북쪽으로 155스트리트까지를 일컫는다.그 가운데 컬럼비아대학과 세인트 존 디바인성당등이 있는 모닝하이츠라고 부르는 허드슨강변의 언덕지역은 제외된다.또한 피프스(5th)애브뉴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히스패닉이 모여살아 이스트할렘 혹은 스패니시할렘이라 부르고,블랙이 모여 사는 서쪽은 웨스트할렘과 센트럴할렘으로 구분된다.브로드웨이는 웨스트할렘을 종주한다.따라서 할렘은 브로드웨이의 또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블랙르네상스의 부활」.이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할렘」사람들의 최대의 희망이다.할렘을 절망의 땅에서 건져올려 희망의 땅으로 만들려는 할렘사람들의 노력은 생존의 몸부림만큼 절박하게 와닿고 있다.이를 위해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의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블랙문화의 정통성을 찾고 그를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 첫번째 노력은 할렘을 동서로 가르지르는 중심가인 마틴 루터 킹 블루바드(125스트리트)를 무역의 거리로 만들자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그 한복판에 22층 높이,40만 평방피트(1만1천평) 규모의 국제무역센터를 건축한다는 것이다. 뉴욕 & 뉴저지항만청이 올봄 주정부 도시개발공사의 승인을 받아 총8천3백만달러의 예산으로 98년 완공을 목표로 착공할 할렘국제무역센터 내에는 1백개 룸의 호텔과 7백50명 수용의 회의장,전시장,기타 오피스룸등이 최고급 시설로 들어서게 된다.종합유통업체들의 진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할렘국제무역센터 건립추진위의 퍼시 서튼 위원장은 『21세기의 할렘은 희망의 땅으로 이곳 주민 뿐 아니라 미국내 모든 흑인들에게 꿈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다. ○「블랙문화」 보존 움직임 할렘의 문화적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도 아직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마틴 루터 킹 블루바드에 위치한 할렘의 대표적 극장인 아폴로극장은 할렘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1914년 백인전용의 오페라하우스로 개관했던 이 극장은 1934년 소유주가 바뀌면서 모든 인종에게 개방됐고 할렘에 흑인들의 이주와 함께 점차 흑인전용극장으로 바뀌게 됐다. 아폴로극장이 매주 수요일 개최하는 「아마추어의 밤」은 어느 최고 극단의 공연보다도 재미 있다.아마추어들이 저마다 특색있는 몸차림을 하고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박수에 따라 평가받는 이 쇼는 수요일밤의 열기로 그득하다.재즈의 원형으로 흑인 전통 대중가곡 형태인 블루스를 비롯,재즈·스윙뮤직·랩·힙합등 온갖 형태의 노래와 춤들이 어우러지는 한마당은 할렘이 생생하게 숨쉬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또한 최근 흑인예술인들의 두드러진 활동도 큰 고무가 되고 있다.93년의 경우 클린턴대통령 취임식에 시인 마야 앤젤루가 축시낭송을 위해 초청된 것을 비롯,영화감독 조지 울프는 토니상을 받았다.소설가 토니 모리슨은 넬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작가가 됐으며 유세프 코무니아카는 시부문 퓰리쳐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흑인들의 독특한 창조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해주기에 충분하다.할렘의 이같은 회복 분위기에 따른 사회안정를 반영하듯 할렘의 범죄율은 최근 3년간 두드러지게 감소했다.지난해의 경우 할렘에서 살해된 사람은 3백50명으로 93년보다 20% 감소를 보였으며 90년의 6백50명 보다는 31%의 감소율을 나타냈다. ○범죄율 크게 줄어들어 한편 할렘의 서쪽을 달리는 브로드웨이는 114스트리트에서 아이비리그의 일원으로 미국 최고의 명문대에 속하는 컬럼비아대학을 만난다.이 대학은 120스트리트까지 계속되며 각 단과대학들이 인근 빌딩에 들어서 있어 넓은 대학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유서 깊은 교회들도 많다.허드슨강을내려다보고 있는 리버사이드처치(122스트리트)는 1930년 설립된 21층의 고딕양식 교회로 2만2천개의 파이프로 이뤄진 세계최대의 파이프오르간으로 유명하다.컬럼비아대학 남동쪽에 위치한 세인트 존 디바인 성당은 1892년 건축을 시작하여 1백년 넘게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 한국문학 수상작 50년전/국립중앙도서관,내일부터 22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은 광복이후 지난해까지 국내 주요문학상을 받은 작품 3백여점을 모은 「한국문학수상작 50년전」을 12∼22일 1층 전시실에서 연다.제31회 도서관주간(12∼18일)을 맞아 마련한 이 전시회는 주요문학상수상작 가운데 시·소설부문 대상작을 가려뽑은 것으로 수상작가 사진,친필원고등을 함께 소개한다. 전시작은 선우휘의 「불꽃」,손창섭의 「잉여인간」,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등 동인문학상 수상작과 고은의 「만인보」,송기숙의 「녹두장군」등 만해문학상 수상작을 포함하고 있다.또 월탄문학상을 받은 박경리의 「토지」1부,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한수산의 「부초」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이상문학상에 빛나는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이산문학상 수상작 최인훈의 「화두」도 전시된다. 전시회기간중 초청작가 강연회와 영화감상회도 열리는데 12일 하오3시 5층 비도서자료실에서 「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윤씨가 강연하는 것을 비롯해 ▲「젊은 남자」(13일)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7일) ▲「세상밖으로」(18일)등의 영화가 하오2시 대강당에서 상영된다.
  • 일 지방선거 돌풍 두 주역

    ◎아오시마 도쿄 도지사/탤런트·작가 출신… 참의원 5선 9일 실시된 일본 통일지방선거에서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아오시마 유키오(62)는 탤런트이자 작가출신으로 참의원 5선의 관록을 가진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 55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한뒤 59년 TV버라이어티쇼 각본가로 데뷔했으며 한동안 탤런트로도 활동한 그는 작가로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81년에는 권위있는 나오키(직목)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8년 참의원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금권정치의 상징인 다나카 전총리를 『돈으로 총재자리를 산 사람』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71년에는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당시 총리를 「재계의 정부」라고 비난해 국회에서 징계를 받는등 일관되게 금권정치를 비난해왔다. 또 92년 자민당의 거물 정치인 가네마루 신(김환신)수뢰사건때는 검찰의 형식적 수사에 항의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 28만통의 편지데모를 유도,결국 가네마루에 대한 사법처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개혁과 참신한 이미지를 앞세워 도쿄도 유권자의 50∼60%를 차지하는 유동층의 지지를 받아 자민당,사회당,신당사키가케등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인 공명당의 추천을 받아 출마한 화려한 경력의 이시하라 노부오(석원신웅)전관방부장관을 물리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요코야마 오사카 부지사/국졸 코미디언… 한인에 우호적 일본 지방선거에서 오사카부(부) 지사(지사)로 당선,연예인출신 후보의 돌풍을 만들어낸 요코야마 노쿠(횡산 Knock·63)는 국민학교 졸업학력의 유명 코미디언.본명이 야마다 이사무(산전용)인 그는 한편으로 지난 68년 참의원에 당선된뒤 4선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원직을 갖고도 계속 무대에서 코미디를 해왔고 이번 선거에서는 어깨띠 하나만 두른채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로 유세에 나서 히라노 다쿠야(평야탁야)전 과학기술차관을 누르고 당당히 당선됐다. 지난 56년 연예계에 들어와 이듬해 만담가 아키타(추전)의 문하생이 됐다가 60년 지금의 이름으로 요코야마 훅,요코야마 펀치등의 예명을 가진 두사람과 만담콤비활동을 해오면서 인기를 끌어왔다.이로인해 68년 상만만담대상이란 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이 해에 참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이번에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아오시마 유키오등과 「이원클럽」이란 정치친목단체를 만들어 정치자금 정화를 부르짖어오기도 했다. 당선직후 그는 한국교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지사로서 『한국인등 모든 정주 외국인에게 공평정대한 대우를 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 중단편소설 중복 출판 많다/문학단체·출판사 「모음집」앞다퉈 펴내

    ◎신경숙의 「깊은 숨을…」은 3곳서 출판 「’95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서점에 선보이고 있다.최근에는 문학단체와 출판사에서도 「올해의 소설」「우수단편소설모음」하는 식으로 앤솔로지를 펴내 우수작모음집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우수작모음집들의 경우 동일작품을 서로 중복수록하는 예가 많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문단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국가적으로 출판의 낭비이며 독자와 출판사·작가 3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현재 시중 서점에서 선보이고 있는 우수작모음집은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사상사)「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현대문학)「4대문학상 수상작가 대표작」(작가정신)등 줄잡아 10여종.대부분 문예지에 발표된 우수 중·단편소설을 매년 또는 부정기적으로 선정 수록해 대중성이 적은 순문학작품이 읽히게 하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심하면 우수작모음집 수록소설의 3분의 1이 다른 모음집과 겹치는 등모음집의 중복수록이 심각하다.올해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현대문학)의 표제작인 신경숙의 「깊은 숨을 쉴 때마다」는 이미 「,95우수중편소설모음」(한국소설가협회 선정)에 실렸던 작품.지난해 「문예중앙」겨울호에 발표된 것을 포함하면 작가의 창작집에 실리기에 앞서 3번이나 출판되는 것이다.또 「,95우수단편소설모음」에 수록된 단편 「차력사」(김영현)「푸른 기차」(최윤)「마지막 테우리」(현기영)「늪이 있는 마을」(김소진)등은 이미 다른 모음집이나 창작집에 실렸던 것들이다. 이같은 중복수록은 우수작품은 적은데 이를 묶어내는 출판사가 많은데 따른것.독자들로서는 우선 이처럼 중복수록하며 여기저기서 펴내는 우수작모음집이 과연 수록작품 선정에 있어 보편적 타당성을 지녔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최근에는 중견작가들이 중·단편소설을 거의 쓰지 않아 모음집에 수록할 작품이 없다는게 문단 관계자의 설명.결국 모음집에 실린 작품 전부가 대단한 작품은 아니며 출판사가 책을 팔기 위해 한 시기의 대표작을 읽는다는 기분이 들도록독자들을 오도한다는 것이다. 출판사측에서도 중복수록의 부작용을 유발하면서 과연 판매신장에 성공하고 있는지 의문시된다.일부 출판사에서 펴내는 우수작모음집 외에는 기대만큼 판매가 순조롭지 못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복수록의 가장 큰 수혜자처럼 여겨지는 작가들은 실제로는 가장 큰 불만집단이다.독자들이 찔끔찔끔 작품에 먼저 접함에 따라 정작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낸 창작집에는 무심한 것이 그 이유다.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한 인기작가는 『창작집을 내기에 앞서 재수록을 위해 작품을 내주면 상처받는 느낌이 들고 기운이 빠진다.거절하고 싶지만 까다롭게 군다고 출판사에 밉보일까봐 그러지 못한다』고 말했다.작가들의 경우는 또 재수록료가 턱없이 싸 생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판매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도 불만요인이다. 결국 모음집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는 일부 출판사를 빼고는 모두가 피해자인 셈.소설가 박덕규씨는 『출판사가 모음집 출간으로 큰 돈을 벌겠다는 자본논리를 버리지 않는 한 피해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어떤 식으로든지 이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늦깎이 시인 박해석 시집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시인의 땀과 눈물 물씬/독자 큰 호응… 발간 1주일 만에 재판 돌입/소시민·밑바닥인생에 따뜻한 시선 담아 최근 출간된 박해석(45)시집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민예당 펴냄)가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올해 「국민일보 문학상」 2천만원 고료 시부분 당선작들을 묶은 「눈물은…」은 시집으로서 초판 발간 1주일만에 2쇄를 찍는 등 독자들의 큰 반응을 얻고 있다.이같은 결과는 시쓰기에 뜻을 둔지 30여년 만에 문단에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의 아픔과 고뇌가 아름다운 결정으로 맺혀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더 이상 바랄 아무런 것도 없이/우리가 한몸이 되기 위하여/우리는 서로의 피를 나누어 가질 수밖에/그보다 먼저 예행연습하듯/서로의 조바심으로부터 마음을 빼앗기 위해/응,응,그래,그래,마음을 덮치는 수밖에/그때 남루의 옷자락이 한켠으로 벗겨지면서/봉긋 솟은 알몸의 마음을 서로 부둥켜 안는 수밖에/숨이 끊어질 때까지 마음에 젖꼭지 물리고 빨리는 수밖에』(「마음을 덮치다」)소시민과 밑바닥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시편들에서는 어려웠던 지난 시절 시인의 땀과 눈물이 물씬 묻어난다.박씨는 고교시절부터 문재를 날려 68년 경희대 국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어린시절 부친을 여읜 가정형편상 1년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다녀온후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그 이후 여러 잡지의 편집장을 전전하면서 시를 버렸고 생활에 함몰당했다. 대학친구인 정호승시인이 첫시집을 낼때 유명한 발문을 써서 한동안 문단에도 알려졌으나 자신은 『발문이나 쓴다』는 자괴감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시를 버렸다.지난 89년 몸을 다쳐 두달여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박씨는 자신에 대한 심한 모멸감과 반성으로 다시 시를 적기 시작했고 그것이 등단의 바탕이 됐다. 『그동안 많은 것을 떠나보내고 흘려보내고 잃어버렸다.그러구러 기쁨 보다는 슬픔과,즐거움 보다는 괴로움을 동무삼아 살아왔다.분노와 좌절을 느낄 때마다 마지막 기댄 곳은 시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회고한 시인은 『내 시가 요란하고 화려하기 보다는 겸손해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 일 언론/김지하 시인 재조명 활발

    ◎오에 겐자부로 노벨상 수상연설서 김 시인 언급계기로 관심/김 시인의 지적편력·생명사상 높이 평가/아사히·도쿄신문,김 시인­오에 좌담·인터뷰 특집 최근 일본 언론에 한국의 시인 김지하씨가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김 시인은 물론 그가 한참 활동하던 군부 독재정권 시절 저항의 몸부림이 절절히 배어 있는 작품들은 일본에서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그의 대표작 가운데 일부는 일본어로 번역돼 출판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그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저항 시인으로서가 아니다.일본 언론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독재 치하로부터 민주화로 한국 사회가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김시인이 보여주고 있는 탐색과 고뇌를 통한 인간의 재발견 작업이 강력한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시인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데는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씨에 덕입은 바 크다. 오에씨는 수상 연설인 「애매한 일본의 나」에서 한국에 대해 두번 언급했다.첫번째는 일본의 도덕성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조선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방사능 장해를 짊어지고 있는 피해자들에 포함돼 있다」고 말한 부분이고 두번째가 연설의 후반부에서 김시인을 중국의 정의,막언 두 시인과 함께 언급하면서 그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단식투쟁을 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다.오에씨는 연설을 다소 서투른 영어로 했지만 그의 수상 연설은 일본 신문에 일본어로 전문 소개됐다. 그 뒤 아사히신문은 올해 들어 지난 10일자에서 오에씨와 김시인의 좌담을 기획,전면 보도했다. 일본의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씨와 자리를 같이한 김시인은 『동북아시아인들이 자본주의 기계문명 아래서 존재의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이의 출구로서 인간의 가운데 영적인 우주가 내재하고 있다고 하는 동학 불교 양명학 등 동양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에씨는 자신은 서구 휴머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소개하면서 『생명과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고 국경을 초월해 손을 잡자고 하는 김시인의 「아시아 생명공동체」론에 일본인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에 이어 도쿄신문은 지난 21일부터 3차례에 걸쳐 김시인의 대형 인터뷰 기사를 싣고 그의 사상 편력과 아시아 생명공동체의 내용을 솔출판사에서 나온 「중심의 괴로움」에 실린 새 작품 소개를 곁들여 가며 상세하게 소개했다.특히 그가 저항의 시인에서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시인」으로 옮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에서 그가 새롭게 각광을 받는데는 시대 상황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일본은 냉전체제 아래서 경제발전 한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정치를 비롯한 새로운 지향점,변화가 요구되고 있지만 뚜렷한 것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21세기를 향한 지적인 탐색이 요구되고 있는데 김시인의 아이디어가 호소력을 갖고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와관련,김시인을 취재한 도쿄신문의 고토 기이치 기자는 『아시아 시대다.경제가 성장했지만 소외문제도 심각해졌다.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이 필요하다』면서 『인간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는 김시인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 연변동포작가 류연산씨 한·중 국경르포(두만강 7백리:1)

    ◎화룡 8순노인 “강 건너 뼈 묻었으면”/중국땅에 이주했지만망향의 한 때문에 못떠난다/강너머 들려오는 고국 기차소리… 그리움 사무쳐 사연많은 두만강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동북으로 달려 7백리.이름하여 두만강이다.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으로서 중국 조선족과 북한 동포들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채 살아 가고 있다.서울신문은 그 강 유역에 얽힌 사연들을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 류연산(38)씨가 엮는 「두만강 7백리」를 새로 연재한다.두만강 양안(양안)에서 한쪽은 변화의 회오리 바람속에 놓여 있고 다른 한쪽은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다.이 시리즈 집필을 위해 작가 류연산씨는 2개월 남짓 두만강 7백리를 답사했고 사진은 본사 김윤찬 차장이 촬영했다. 배낭을 등짐삼아 두만강 7백리를 굽이굽이 돌아 가노라니 깊은 정회가 가슴에 스며들고 마음은 곧 애수에 젖는다.나뭇잎이 져 버린 산야가 사뭇 허전한데 밤새 강물도 꽁꽁 얼어붙었다.물결이 넘실댈 두만강의 봄은 아직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김정구 선생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얹혀 한민족 가슴에 설움을 심어준 이 노래는 답사길에 오른 내 가슴을 적신다.이주민 3세인 젊은 심정이 이러할진대 그 당시 조상들이 살아온 고난의 시대를 구태여 말해서 무엇하랴. 광복전 김정구 선생이 연변공연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자 장내는 눈물바다로 변했다.그 이튿날 도문(오늘의 연변조선족 자치주 도문시)에서는 한 여인이 두만강에 몸을 던졌다.기약도 없이 돈벌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여인이 삶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그만큼이나 한많은 사람들이 두만강가에서 모진 삶을 살았다다.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화용시 노과진 노과촌)을 찾았을 때 조창렬(85·함경북도 경선군 주을면 봉파리 태생)노인은 피맺힌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부모님이 낳은 지 일곱달되는 나를 업고 이곳으로 이사왔디요.그때 증조부님은 굶어 죽더라도 조상산소를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불호령을 쳤다지 뭡니까.막무가내로 자식의 등허리에 업혀 고향을 떠나온 노인은 운명을 앞두고 조상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수다.사람이 팔십이면 쌀벌레라는데 죽어서도 고향땅에 묻히지 못할 걸 생각하면 나는 잠이 안오우다.저 강이 야속하고 인생이 원통할 뿐이외다』 아버지 시신까지는 귀향시키고 외롭게 떨어져 늪골(노과의 원명)을 지키고 있는 노인은 쓸쓸해 보였다. 『삐익』 그 집앞 두만강건너에서 증기기관차가 끄는 열차가 기적을 뽑는다.노인은 그 쪽에 망연한 눈길을 주고는 한숨 짓는다.열차는 조선 삼형제굴을 지나 남촌굽이로 뱀같이 구불구불 흘러온다.애달프다.저 기찻길은 서울도 통하고 중국도 통하건만 고국 땅 허리의 군사분계선과 국경선이 발목을 잡고 있다. 두만강에 얽힌 32년전 19 63년 12월27일의 이야기 하나를 꺼내고자한다.무산쪽으로 달리는 99 31호 열차에서 청년 둘이 뛰어 내렸다.쇠처럼 굳은 언 땅에 나뒹굴던 그들은 벌떡 일어서면서 옷을 벗어 던지고 강쪽으로 달려갔다.그들은 얼음장이 둥둥 떠내리는 물에 서슴없이 첨벙첨벙 뛰어들었다.바로 조선 청진철도국 백암열차구 차장 김형호와 함북 무산 임산사업소 공무직장 선반공 최상현이었다.이수촌(지금의 노과진 이수촌)에서 5백여m 떨어진 두만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자 아이들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때 물에 빠졌던 여자 아이 가운데 하나가 지금 중국 화룡시 팔가자진(화용시 팔가자진) 부진장의 부인인 한친선(원명 한순자·45)이다. 19 64년 1월9일 화룡인민영화관에서는 중조 인사 7백여명이 김형호·최상현의 살신성인적 용기를 기리기 위한 대회를 거행했다.이 자리에서 한순자의 부친 한창도는 구명은인한테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딸의 이름을 한친선으로 고쳐 부를 것을 약속했다.그날 저녁 연변가무단은 김형호·최상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각색한 가극 「친선의 물결」을 공연했다. 이러한 옛날 일을 회상하는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30여년전 이른바 중조 친선의 미담은 오늘날에 와서 많이 퇴색해 버릴만큼 세월이 변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십년 대동란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한때 중국과 북조선관계에 틈이 생겼다.조선의 은인들과 빈번한 편지거래를 가졌던 한친선은 처녀시절에 수정주의 조선간첩 혐의를 받기도 했다.중조관계가 완화된 후엔 연락처를 몰라 문안편지 한장 전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지난 연말 두만강 답사길에서 북조선에 사는 김형호 소식을 들었다.용정시 백금향(용정시 백금향)의 최몽필(48)문화잠장이 북조선에 갔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다는 것이다. 『재작년 가을 웅기로 친척방문을 가게 됐드랬습니다.도문해관을 넘어 북조선 남양에 이르렀더니 뉘엿뉘엿 해가 지더군요.그곳에서 밤을 나고 이튿날 웅기행 열차를 탈 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디요.기래서 짐들을 보관시키고 갖고 간 쌀과 고기며 술을 가방에 넣고는 무작정 아무 집이나 찾아갔습니다.남양군 남양읍 42반이라고 쓴 벽돌집이었는데,방에 앉아 유심히 집안을 뜯어보다가 깜짝 놀랐댔시요.북조선 정부에서 발급한 라성교(조선전쟁 당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희생된 중국 지원군 병사)식 영웅이라는 훈장과 중국 정부에서 발급한 상장들이 액틀속에 정히 넣어져 벽에 걸려 있었댔습니다.그 전에 두만강에서 우리 조선족 처녀들을 구해준 김형호 그 사람이었습네다.우리는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네다. 나는 김형호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화룡시 팔가자진에 사는 한친선 여인에게 전했더니 퍽 감격스러워 했다. 오늘 우리는 도문에 가면 중조교두를 마주하고 선 친선탑을 볼 수 있다.문화대혁명시기 이 자리에는 모택동 사상이 조선에 비치라는 의미에서 조선쪽을 향해 선 모택동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었다.문화대혁명이 끝난 70년대 말에 모택동 동상을 폭파하고 거대한 두 손이 악수하는 모양의 친선탑을 세웠다.자초에는 중국과 조선의 혁명적 친선을 상징하는 뜻이었으리라.하지만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이제는 그 이미지가 폭을 넓혀 두만강 건너 한반도전부를 포함하게 되었다. 연변의 친선탑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대립된 남북한 통일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작가약력 ▲중국 길림성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출생 ▲연변대 조선어문학부 졸업 ▲중산대 철학부 연수 ▲단편소설「푸른매」로 문단데뷔,「아 쪽박새」「인생숲」 등 중·단편소설 60여편 발표 ▲「해란강」「청춘무대」등 문학상과 전국소수민족 우수도서 편집상 수상 ▲현재 연변작가협회 이사,연변조선족 문화연구회 회장,연변 인민출판사 문예부 편집위원
  • 한­일/과거보다 미래에 비중/일 지성인 솔직한 과거인정 필요

    ◎김 대통령,일 오에 접견 김영삼대통령은 4일 『일본 지성인들이 양심에 따라 솔직하게 과거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대강건삼낭)씨의 예방을 받고 이같이 말한 뒤 『그렇게 해야 한일 두나라는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과거보다 미래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지진피해에 대해서는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막대한 재산피해가 난데 대해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히고 『지난번 재일동포를 위한 구호품을 보낼 때 민단계와 조총련계를 구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오에씨는 『김대통령의 신속한 위로와 한국 정부의 지원에 일본사람들은 가슴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특히 고베시의 지진 피해 복구과정에서 민단계와 조총련계 한국인들이 서로 협력하고 일본인들과도 긴밀하게 돕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일본인들이 감명을받았다』고 전했다. 오에씨는 한국의 크리스천 아카데미와 일본의 이와나미(암파) 서점이 「해방 50년과 패전 50년」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한일석학 심포지엄 서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 내한 일노벨상 수상작가/오에 겐자부로(인터뷰)

    ◎“인류의 화해·상처치유 위한 작품 구상”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대강건삼낭·60)씨가 크리스찬아카데미 창립30주년기념 한·일심포지엄에 발제자로 참석하기 위해 1일 내한했다. 오에씨는 이날 하오 3시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람들과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작품에 대한 비판도 받는다는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왔다』면서 『김지하시인과 폭넓은 대화를 갖고 싶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70년대 김지하시인 석방운동에 참가한 문인으로서 황석영 박노해 등 현재 구속된 한국의 문인들에 대한 견해는.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된다.그러나 문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정치적 요구에 따라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노벨상 수상기념 연설에서 일본 헌법상의 영구평화원칙을 개정하려는 것은 아시아와 원폭피해자에 대한 배반이라고 말했는데. ▲일본헌법 개정 움직임에 반대하며 앞으로 일본의 국제적 역할은 인류전체의 화해와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 생각한다.일본의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포함해서 특히 한국 중국 필리핀 등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해야 한다. ­소설을 그만 쓰겠다고 말한적이 있는데….그리고 소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1주일 전에 완성한 3부작 소설 「타오르는 푸른나무」를 끝으로 소설을 그만 쓰고 세계의 상처 치유와 화해를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5년동안 공부하며 구상할 계획이다.종전의 소설형식은 쇠퇴할 것이라 보며 앞으로는 한국 중국 등 세계문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변두리국가에서 훌륭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세계에서 보여준 화해와 치유노력이 서구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그러나 김지하시인의 불교적 세계관과 지명관목사의 기독교적 휴머니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 한국·일본의 과거·미래점검/크리스천아케데미 창립30돌기념 심포지엄

    ◎양국 작가·교수 등 지식인 참석 한국과 일본의 작가·대학교수 등 지식인들이 한데 모여 양국의 과거와 미래를 점검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크리스천아카데미(원장 강원용)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일본 이와나미(암파)서점과 함께 서울 아카데미하우스(2월1∼3일)와 도쿄 아사히스퀘어(4월7∼8일)에서 한차례씩 심포지엄을 갖기로 했다. 「해방50년과 패전50년­화해와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내건 이 심포지엄 서울모임에는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야스에 료스케 이와나미서점 대표,지명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들이 참석해 사상적·정신적 과제를 주로 다룰 예정이다.특히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방한,김지하시인과 대담할 계획이다.. 또 일본 행사에는 소설가 이데 마구로쿠,김용덕 서울대교수,미야진키 이사무 대화총련 이사장,조순 전 부총리,가모 다케이코 도쿄대교수,김영호 경북대교수,하라 도시오 전 교토통신사장,이헌조 금성사회장들이 참여해 역사청산과 미래구상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강원룡원장은 심포지엄 개최와 관련,『국교 정상화 30년을 맞아 한일관계의 근본문제를 파고들어감으로써 협력의 새 방향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번 대회를 통해 과거청산의 해결책과 미래지향의 과제를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 소설가 강신재(이세기의 인물탐구:67)

    ◎「젊은 느티나무」로 60년대 낭만주의 새바람/주제설정 명확하고 작중인물 심리파악에 민감/오페라 가수가 아리아 부르듯 혼신의 창작작업/“언제나 깨어있는 작가”… 최근엔 역사재조명 작업 전념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아니,그렇지는 않다.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시작되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1962년 이 소설이 발표되자 문단은 한동안 「젊은 느티나무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당시 카뮈 사르트르의 반항과 부조리문학에 감염되어 기진하고 황폐하던 젊은이들에게 이 한편의 명편은 푸르른 낭만과 사랑의 절제를 심어줬으며 「비누냄새」는 지금까지도 싱그러운 젊음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다. 강신재소설은 현대적 감각과 단편소설만의 「영롱한 완벽성」을 추구하면서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화섬의 문체가 특징이다.그의 글은 독자에게 긴장된 추적을 강요하지 않는다.난해한 관념을 함축하기보다 간결하고 명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설명해낸다.사랑에 빠진 한 소녀가 상대방 청년에게 느끼는 미묘하고도 애틋한 감정을 「그에게서 비누냄새가 난다」고 표현한 것이 그 예다. ○천분의 재질 갖춘 작가 일찍이 월탄은 그의 소설을 향해 『주제설정이 명확하고 작중인물의 다면적·복합적 심리파악에 특히 민감하다』고 했고 남의 작품평에 까다로운 박화성도 『인물들의 개성을 신기에 가깝도록 그려내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평론가 김윤식은 그의 첫장편소설인 「임진강의 민들레」에 이르러 『천분의 재질로 황홀한 경지를 이룩한 작가』임을 전제,『만일 불모성을 향한 소멸의 미학이 사랑이라면 한국문학은 이 작가에 의해 종종 양식에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을 예고했다. 작가자신은 「언제나 깨어 있는 작가」이기를 원한다.그리고 작품을 쓸 때마다 자신의 슬픔이나 기쁨을 『마치도 오페라가수가 전심전력을 기울여 아리아를 부르듯,혹은 해변의 빛과 볕에 마음을 그을리듯』 그렇게 함몰된 상태에서 혼신을 다했다고 말한다.이런 투철한 문학정신으로 63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파도는 노소층을 막론한 이례적인 절찬을 모았고 그후 20여개에 이르는 신문연재소설도 일과성이 아닌 문학작품의 범주에서 독자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사회기구의 힘을 어떻게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으며 그것의 포악과 비정과 어리석음을 작가로서 어찌 무심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모든 시대상의 아픔을 가족사나 남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승화시키면서 작품의 진실과 완벽성에 천착할 뿐 이리저리 가꾸어 맵시나게 만들자는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그런 만큼 「감각적」이라거나 「아름다운 수채화」란 말을 듣기보다 「이지적인 필치」「냉정한 태도로 대상을 간파한 문학작품」이란 평을 들을 때 그는 비로소 작가로서의 긍지를 느낀다. 그에게선 시류에 휩쓸리거나 감정에 복받치거나 상황에 따라 모습을 변환시키는 속물근성은 찾아볼 수 없다.불가근불가원으로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세상을 냉철하게 정시하고 어떤 소설에서든지 적시에 삶의 진실과마주치는 필연을 제시해나간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따뜻한 표정은 실은 무한히 다정할 것 같지만 은근히 까다롭고 은근히 고집과 자존심이 세어서 하지 않는다고 마음먹은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60년대말 조선일보에 「유리의 덫」을 연재할 때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당시 편집국장으로 있던 선우휘가 그에게 연재소설을 부탁했고 『원고료는 작가에게 실례가 되지 않게 대접해드리겠다』고 단서를 붙였다.그러나 연재 한달만에 붙여온 고료는 결코 섭섭지 않게 대접하겠다는 약속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그는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일년동안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은 지키겠다.그러나 원고료는 보내지 말라.이번에 보낸 고료도 다시 가져가라』고 했다.이 전화를 받은 선우휘는 혼비백산하여 사정을 알아보고는 그에게 백배사죄한 후 그의 부군인 서임수씨를 만나 『서선생,애 많이 잡숫갑시다』했다는 것이다.「그처럼 까다로운 여류작가를 부인으로 모셨으니」 부군으로서 참으로 고달프리라는 우려였다. ○남편의 식사는 손수준비 그러나 실은 그는 누구보다 가정적인 여류로 유명하다.번거로운 모임이나 단체에 관여하지 않고 어쩌다 문단모임에 나와서도 시간이 되면 소리없이 빠져나가 부군의 식사를 손수준비한다.미식가이며 특히 무청과 배추줄거리를 좋아하는 부군을 위해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 채소상이 길에 버린 무청을 거둬들이자 시장사람들이 오죽하면 『집에서 토끼를 기르시나보다』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그런 그를 문단에서는 「쌀쌀이」란 별명을 붙이고 있지만 낯모르는 후배가 책을 출간하여 증정하면 잘 받았다는 축하카드와 함께 반드시 문학의 정진을 격려하는 글을 써서 보내준다. 언젠가 「북간도」의 작가 안수길은 『강신재가 있으면 장미꽃밭처럼 화사하고 향기롭다』고 말한 적이 있다.원로·중진들이 엄숙하게 모여앉은 자리에 그가 나타나면 무겁고 지루하고 낡아보이던 모든 것이 금가루를 뿌린 듯 금세 현란해진다는 것이다.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타고난 미모탓일 수도 있다.지금도 여전히 섬연하여 만모의 기색이나 비풍이 없이 사람을 반기고 감싸면서 그가 쓴 「레이디 서울」처럼 만년숙녀의 모습을 변함없이 간직한다. 그는 지금의 남대문근처인 용산구 어성동에서 태어났다.부친은 세브란스병원 의사인 강태순씨이고 어머니는 숭의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풍금·피아노가 있는 환경에서 비바람을 모른 채 곱게 성장했다.경기고녀에 다닐 때는 영미문학에 심취했으나 일본인 교사가 『귀축미영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영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상이 불건전해 보이기 쉽다』고 경고하여 이전 가사과에 가게 되었다.그러나 염색이니 자수·재봉은 체질에 맞지 않아 대학재학중에 만난 서임수씨와 결혼,우연히 써본 단편소설을 손소희를 통해 김동리에게 보였고 과찬의 추천사와 함께 문단에 등단했다. ○아직도 청랑의 미모간직 그가 소설을 쓰기까지는 서임수씨(남성해운 이사)의 보이지 않는 외조를 빼놓을 수 없다.서임수씨는 경향신문부사장·국회의원·국민대학장등을 지낸 저명인사로 그는 소설집필에 필요한 모든 자료와 책들을 일일이 구입해주어 서재에 산적해 있는 수천여권의 장서중작가의 손으로 산 책은 한권도 없을 정도다.자녀(건축가 기영씨와 피아니스트인 타옥씨)는 결혼후 따로 나간 지 오래이고 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옥수동 한남 하이츠빌라에서 부부가 새벽산책과 음악과 미식을 즐긴다. 그에게도 어쩔수없이 세월이 스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이제는 청랑의 미문이나 감각의 번뜩임을 휘두르기보다 「육성에 닮아 있을수록 문학이 우수하다」는 것을 지키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로 존재하던 소설이며 소설은 존재할 수 있던 역사』라는 공쿠르의 말에 공감하여 최근에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재조명하는 작업에 계속 전념해 있다.지난해말 아홉번째 역사소설인 「광해의 날들」을 펴냈고 이번 겨울 조선조말을 무대로 하는 다음 작품의 구상을 끝냈다. 별은 딸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생각하는 인간의 행위는 이후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그리고 그런 행위에 많은 시간과 힘을 바치는 사람들의 행렬에 끼어 그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별빛 같은 화섬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비쳐줄 것이다. □연보 ▲1942년 경기고녀 졸업 ▲1944년 이화여전 중퇴 ▲1949년 「문예」지 소설「얼굴」「정순이」추천 ▲1958년 단편집 「희화」(계몽사) ▲1968∼82년 문협 PEN이사 ▲1982년 한국여류문학인 회장,한국소설가협회 분과위원장 ▲1992년 소설가협회 대표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소설가협회 대표위원 단편집 「여정」(중앙문화사 59년)「젊은 느티나무」(대문출판사 72년)「황량한 날의 동화」(삼중당 76년) 장편집 「청춘의 불문률」(여원사 60년)「임진강의 민들레」(을유문화사 62년)「이 찬란한 슬픔을」(신태양사 64년)「그대의 찬손」(신태양사 65년)「오늘과 내일」(을유문화사 66년)「신설」(대문출판사 67년)「숲에는 그대 향기」(대문출판사 69년)「유리의 덫」(삼성출판사 70년)「파도」(대문출판사 72년) 강신재대표작전집 8귄(삼익출판사 74년)「레이디 서울」(선일문화사 75년)「서울의 지붕밑」(문리사 76년)「그래도 할말이」(서음출판사 77년)「마음은 집시」(태창문화사 77년)「밤의 무지개」(청조사 77년)「천추태후」(동화출판사 78년)「불타는 구름」2권(지소림 78년)「우연의 자리」(명서원 78년)「모험의 집」(범조사 79년)「사도세자빈」3권(행림출판사 81년)「사랑의 묘약」2권(중앙일보사 86년)「신사임당,문정왕후 아수라」(한벗 87년)「간신의 처」(문학세계사 89년)「명성황후」3권(세명서관 91년)「광해의 날들」(창공사 94년) 수필집「사랑의 아픔과 진실」(중앙문화사 66년)「모래성」(서문당 74년)「거리에서 내마음에서」(평민사 76년)「무엇이 사랑의 불을 지피는가」(나무사 86년) 한국문협상 여류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예술원상
  • 시집 「서울의 새벽」/한국문학상 수상 김후란씨(인터뷰)

    ◎“서울 노래한 시로 상 받게돼 더욱 기뻐” 『뜻깊은 시집으로 상을 타게 돼 더 기뻐요』 여섯번째 시집 「서울의 새벽」으로 한국문인협회가 주는 한국문학상을 최근 받은 시인 김후란(60)씨는 짧은 한마디에 수상의 큰 기쁨을 담았다. 이 책은 서울의 역사적인 유적지와 오늘의 풍모등 정도 6백년을 맞은 서울의 면면을 소개하는 시 22편을 담은 연작시집. 경복궁,남대문,인경종 등 선조의 자취가 스민 현장을 돌아본 「역사의 숨결」과 서울의 새 까치,창경궁의 웨딩드레스,덕수궁 돌담길 등을 스케치한 「서울 소묘」 2부로 나눠 서울의 탄생부터 오늘까지를 두루 살피고 있다. 『서울토박이인 나는 교동국민학교를 다닐때 하루도 빠짐없이 예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사동을 거쳐 등교를 했어요.그때부터 서울이야기를 꼭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지요』 시인이 된 후 서울을 주제로 한 시를 이따금 발표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집 준비에 나선 것은 2년전.자료를 모으고 현장답사를 다니며 서울의 역사를 깊이있게 알려는 노력을 쏟았다.책 외모에서부터 고도의 정취가 풍기도록 제본없이 책한권이 병풍처럼 접히게 만들었고 겉표지부터 속지까지 한지를 사용한 것도 독특한 점. 지난 5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씨는 『그간 여성개발원 원장등 여러 직함을 갖느라 35년만에야 여섯번째 시집을 내게 됐다』며 『이제는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서 자유롭게 글쓰기에 몰두하고 싶다』고 「작은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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