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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재 세상 추임새] 세 사람의 죽음 앞에서

    [박명재 세상 추임새] 세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근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주목을 끄는 세 사람의 죽음을 연이어 목격하게 되었다. 사망순서대로 하면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하였던 카다피 전 국가원수, 영원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그들이다. 박영석 대장이 48세, 스티브 잡스가 56세, 카다피가 69세이다. 우리는 이 세 사람의 죽음의 양태와 고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의 극명한 차이점을 보면서 언제가 한번 맞게 될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상념을 떠올리게 된다. 먼저 히말라야를 가슴에 품고 추락사한 박영석 대장의 죽음은 말 그대로 사고사이다. 한평생 정열과 의지로 정복하려 했던 자연의 설산 속에서 맞이한 안타깝고 장렬한 도전의 죽음이었다. 세네카가 ‘죽음이 어떠한 장소에서도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어떠한 장소에서도 죽음을 기다리라.’고 한 말과 함께, 옛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자는 산에서, 물을 좋아하는 자는 물에서 죽는다.’는 말이 연상되는 슬픈 최후였다. 그는 도전하는 젊은이들과 특히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산악인들의 깊은 애도와 슬픔 속에 영원한 산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는 놀랄 만한 발상과 창조로 애플의 신화를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킨 금세기 최고의 CEO로서, 그의 죽음은 병사였다. 그의 비상한 재주와 능력, 기술도 병 앞에서는 병약하고 초췌한 모습의 환자일 뿐이었다. 전 세계가 이 천재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그의 사후 세상의 흐름과 정보기술(IT) 업계 변화를 예측하고 분석하기에 분주했으며, 소규모 추모행렬이 며칠간 이어졌다. 죽는 날까지 일을 놓지 않고 신제품을 출시하고 발표하면서 정열을 태웠던 기술인·기업인으로서 면모를 보여주고, 찾아온 죽음 앞에 조용히 순응해 간 비교적 젊은 나이의 죽음이기에 그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세상을 좀 더 바꿀 수 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다. ‘영광 속에서 맞이한 죽음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열심히 일한 날은 잠이 잘 찾아오고, 열심히 일한 인생에는 조용한 죽음이 찾아온다.’는 격언이 생각나는 그런 죽음이었다. 카다피는 장기간에 걸친 독재정치체제 하에서 신처럼 군림하며, 절대적 지지와 숭배를 받고 있다고 믿었던 자기 국민들로부터 총살과 시해를 당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끝끝내 총을 쏘지 말라며 애원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추한 모습으로 죽어갔다. 그것도 자기가 믿었던 자신의 고향 땅에서.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망한다는 독재자의 말로를 증명이나 하듯 그의 죽음을 반기는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더럽혀지고 짓밟혀진 채 세상을 등졌다. ‘남의 의지에 의해서 죽는 것은 두 번 죽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려지고, 아주 추하게 자기 국민과 온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카다피의 비굴한 마지막 죽음의 모습은 세계의 오만한 독재자들에게 충분한 경종과 교훈을 주었다. 생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말하랴(未知生 焉知死)는 논어의 경구가 있지만, 행복한 사람은 가장 알맞은 때에 자기에게 알맞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에 앞서 행복이 먼저 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찌 그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할 것인가. “죽음이 찾아올 때 나이와 업적을 참작하지 않으며, 죽음은 이 땅에서 병든 자와 건강한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권력자와 힘없는 자를 구별 없이 쓸어간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죽음에 대비해서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는 선인의 말과 함께, 동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그의 시집 기탄잘리에서 ‘신이 어느 날 문득 죽음의 광주리를 우리 앞에 내밀었을 때, 우리는 과연 그 광주리에 무엇을 담아놓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라고 한 말을 세 사람의 죽음 앞에서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음미하게 된다. 또한 ‘죽음은 교황이나 거지나 모두 용서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영국 속담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CHA의과학대 총장
  • [책꽂이]

    ●잡문집(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비채 펴냄) 소설 ‘1Q84’로 청년들을 사로잡았으며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작가의 자유로운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는 산문집. 30년간 써온 수상소감, 미발표 수필 등의 잡문 가운데 69편을 저자가 직접 골랐다. 1만 4800원. ●그게 뭐 어쨌다고(김홍신 지음, 해냄 펴냄)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요즘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수필. “불안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생각 하나로 배짱을 부렸다.”고 경험을 들려준다. 1만 2800원. ●인간이 만든 질병 구제역(아비가일 우즈 지음, 강병철 옮김, 삶과지식 펴냄) 수의사학자인 저자가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이해당사자들의 태도와 역학 관계에 따라 구제역에 대한 대처가 판이해져 온 역사를 세밀하게 그렸다. 1만 4000원. ●부드러운 양상추(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소담 펴냄)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일본 여성 작가가 음식에 관해 쓴 에세이. 도넛, 장어구이, 우동, 버터밀크 등 좋아하는 음식과 이에 얽힌 추억을 따뜻한 문체로 풀어놓았다. 1만 2000원. ●아빠의 별(최문정 지음, 다차원 펴냄) 소설 ‘바보엄마’를 쓴 저자가 아버지의 희생을 주제로 쓴 장편 소설. 군인인 아버지의 사랑에 목마른 발레리나 수민은 재벌 3세와 결혼하지만 행복하지 않다. 1만 2000원. ●길 위의 황제(박영규 지음, 살림 펴냄) 대중 역사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가 조선 순종을 소재로 쓴 장편소설.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서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노력한 순종의 삶을 섬세하게 그렸다. 1만 2000원.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박연옥 엮음, 오로라드림 펴냄) 미인도에 매진해 온 박연옥 작가가 자신의 그림 163점에다 신사임당, 이옥봉, 허난설헌, 매창, 송덕봉, 김부용, 홍랑 등 조선 여류시인 15인의 한시를 번역해 같이 붙여뒀다. 2만원.
  •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100번째 작품 무대 올리는 ‘연출인생 50년’ 김정옥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100번째 작품 무대 올리는 ‘연출인생 50년’ 김정옥

    올해로 연출 50년을 맞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 김정옥(79) 연출가. 우리 나이로 팔순인 그가 요즘 ‘젊음의 거리’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새달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 100번째 연출 작품이자 50주년 기념작인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이하 ‘흑인 창녀’)을 올리는 것.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쁜 그를 지난 16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트레이드 마크인 베레모를 멋지게 눌러쓰고 나타난 그는 국내 아이폰 최고령 사용자로 조사됐을 만큼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즐기는 이다. 그런 그가 100번째 작품에서는 유난히 고집을 피웠다. 여주인공 캐스팅을 두고서다. 그는 배우 김성녀(61)를 고집했다. ‘템플’은 과거에 얽매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그런데 환갑을 넘긴 김성녀라니, 주위에서 곤혹스러울 만도 했다. ●美 포크너 소설을 佛 카뮈가 희곡으로 각색 “내가 인생을 80년 살았지. 그중 50년을 연극했고…. 그런데 겪어 보니까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한 50~60대 배우들밖에 없더라고. 젊은 연기자들은 매력적으론 보일 수 있지만 성숙한 재미를 보여주지 못해. 인생의 전성기는 예순부터야. 안팎으로 성숙함이 깃드는 시기거든. 여배우도 50~60대 때 가장 아름다워. 무대 위에서 아주 빛나고 우아하지. 그런 면에서 김성녀만 한 적임자가 또 어디 있겠어.” 그렇다면 왜 하필 ‘흑인 창녀’를 100번째로 선택했을까. “99개의 작품을 연출해 봤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문학과 연극의 만남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작품이지. 배역도 중요한데 작품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산만해져. 배우 구하기도 어렵고…. 알맹이가 있으면서 압축된 무대를 만드는 데 이 작품이 제격이었어.” ‘흑인 창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소설가 월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상류층 백인 여성 템플이 자신의 아기를 죽인 흑인 하녀 낸시를 구명하기 위해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내용의 추리극이다. 1969년 국내 무대에 처음 소개한 이가 다름 아닌 김정옥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과 동아연극상을 받았다. 이후 1978년까지 배우를 달리하며 여러 번 무대에 올렸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제목이 다소 파격적이다. “원작 제목은 ‘한 수녀를 위한 진혼곡’이었지. 그런데 작품에 수녀는 나오지 않아. 포크너와 카뮈는 작품 속 흑인 창녀를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수녀라고 생각해 그런 제목을 붙인 거 같아. 하지만 연극은 흥행성도 생각해야지.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는 다르거든. 그래서 고민 끝에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라고 제목을 바꿨지.” 그 과정에 ‘시련’도 많았단다. “서슬이 시퍼렇던 1960년대 말 아니야. 어느 날 검열에서 창녀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 ‘흑인 수녀를 위한 고백’으로 바꿨지. 그랬더니 관객이 확 줄더라고. 그래서 그 다음 공연땐 ‘흑인 O녀의 고백’으로 고쳤어. 검열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 의미도 있었지. 하하.” 당시에는 유명한 작품이었지만 1978년 이후 무대에서 사라진 만큼 지금의 젊은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하다. 노()연출가는 그런 관객들을 위해 관전 포인트를 친절하게 짚어줬다.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겉치레가 아니라는 게 주제야. 난초는 추위를 겪어야 제대로 꽃을 피운다고 하지 않나. 인간도 고통과 고뇌를 겪음으로써 향기를 갖게 되지. 주변을 보게나. 사람들이 점점 거짓에 포장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 이 작품은 그런 것들을 되돌아 보게 해줘.” 그는 여러 번 연출한 작품이지만 할 때마다 새롭다고 했다. 그때마다 연극의 성숙한 맛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도 했다. ●국내 최고령 스마트폰 애용자?… 베레모 즐겨 써 그에게 있어 연극은 ‘삶’ 그 자체이자 ‘종합예술의 결정체’다. 1932년 광주광역시의 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서울로 올라와 수도극장 등에서 영화와 쇼를 보며 예술에 대한 꿈을 키웠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때는 문학 동인회에서 활동하며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영화도 공부했지만 최종 종착지는 ‘연극’이었다. “내 유년기는 일본강점기 때였어. 광주에선 동맹 파업, 좌익 독서회 사건 등 많은 일이 있었지. 나름대로 그때 내가 건방졌어. 서울에 와서 혼자 공부도 하고 그랬지. 연극을 하나 만든다는 건 한 세계와 한 인생을 만드는 거잖아. 영화는 스폰서가 있어야 했지만 연극은 동호인들끼리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극을 하게 됐지.”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학장을 거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 그는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을 세 차례나 연임했다. 예술가에서 예술경영인으로, 그리고 다시 예술가로 돌아온 그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향한 열정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가을 끝자락이다. 창덕궁의 나무들도 겨울을 맞이할 요량으로 나뭇잎마저 무겁다는 듯 후드득 털어낸다. 한 노(老)시인은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시집을 뒤적인다.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장을 넘기던 노시인은 “그래 바로 이 시야, 이거!”라고 탄성을 터뜨린다. 어떤 시일까. ‘팔삭둥이 첫 아들이 죽었을 때/그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죽은 애 또래의 살아 있는 애들을/그리고 있었다/저승동무 길동무로/천도 따는 애며/맨손으로 물고기 잡는 애들이랑/학 타고 날아가는 애도/상기도 애비 목 틀어잡는 녀석이며/여직 애미 젖가슴 뒤지는 녀석/오오라 게한테 물린 고추녀석이 제일 늦구나/개구쟁이 코흘리개 오줌싸개 울보랑 모두 모이자/그는 잠자코 붓을 놓았다/그리고 죽은 애 목덜미에 그림을 그려주었다/십자가보다 더 빛부신 동심(童心)을’ 지난 16일 오전 창덕궁 바로 옆 바움갤러리에서 원로 시인 김광림(82) 선생을 만났다. 그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의 추억을 새삼 떠올린다. ●‘시전집’에 이중섭 연작시 8편 담아 “17살 때 함경남도 원산에서 이중섭 화가를 처음 만났어요. 그의 첫애가 죽어 애도할 때였지. 하루는 이중섭의 집에서 같이 잤는데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온데간데없어요. 그래서 옆방에 슬쩍 가 봤더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뭘 그리나 어깨너머로 봤더니 애들이 하늘에서 새를 타고 다니는 거, 천상의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 학을 타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아버지 목에 매달려 있는 애들, 게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물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리더군요.” 노시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추억의 편린들이 가을 낙엽과 함께 머릿속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올해가 이중섭 화가 탄생 95주년이고 작고 55주기가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시인은 “아, 그렇게 됐나요. 나보다는 13살 위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얘기 도중 가끔 백발을 쓰다듬는 모습이 어쩌면 천상의 복숭아를 따러 날아가 버린 이상한(?) 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시, 그는 시인이 부러워 시처럼 그림을 그렸지…. 은박지 그림이 생각나. 내가 군 장교로 있을 때였어. 외출을 나올 때마다 군보급품 박스에 있던 양담배 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수집해 갖다주었어요. 아주 좋아했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 그림들을 죄다 불태워 달라고 했어. 참으로…. 은박지 그림만 200~300장 됐어.” 이중섭 화가는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과 대구 미공보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실망과 충격으로 대구에서 만난 김 시인에게 “내 그림은 다 가짜야.”라고 하면서 불태워 달라고 했다. 이중섭 화가는 그렇게 그림을 던지고 확 가 버렸고 김 시인은 은박지 그림과 소품들을 보관했다가 이중섭 화가와 같이 머물고 있던 친구이자 소설가 최태응에게 모두 돌려줘 가까스로 은박지 그림을 살려냈다. 이 그림들은 지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노시인은 2006년 이중섭 화가에 대한 추억의 글과 시를 모은 ‘가짜와 진짜의 틈새에서’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의 그림을 불사르지 않고 세상에 남아돌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중섭 작품에 대한 순수한 평가보다는 그림값을 올리려는 상업적 행태가 눈에 거슬린다는 지적을 했던 것. 노시인은 지난해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김광림 시전집’을 펴냈다. ‘이중섭 생각’이라는 연작시 8편도 담았다. 여기에서 노시인은 ‘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우겼을까/그가 진정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꿈틀대는 어기찬 생명력을 더 지켜보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다하지 못한 정을 엽서에다 그리고/ 은박지에 또 그려서/고통을 환희로 바꿔 찬 한 사내가/거뜬히 시의 수렁 속을 가고 있다/갈증도 모르고 허기도 저버린 채’라고 그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이중섭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또 그런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시를 쓰게 됐어요. (다시 백발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작시 말고 또 뭐 있더라….” 옆에 있던 딸 김상미씨가 얼른 기억을 돕는다. 노시인은 요즘 병원에 다니느라 딸 집에 기거하고 있다. “아마 ‘사막’일 겁니다. (딸이 시를 읊는다) ‘화가 이중섭은 사막으로 걸어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랫도리를 게의 예리한 발톱에 찝힌 것이다. 물린 순수의 피나는 이적(異蹟)을 담배 은종이에 나타내었다’ 아버지 맞죠.” 노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나.”라며 활짝 웃는다. 화제를 바꿨다. 문단 데뷔 시절을 물었다. “전쟁 2년 전인가 그래요.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 새벽녘에 문득 낡은 문풍지를 보고 시를 하나 썼어. 그랬더니 친구가 ‘안양에 박두진 시인의 문하생 동인(청포도)들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쓴 시를 박두진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10년 후면 우리나라의 시가 달라지겠네’라고 하면서 구상 시인한테 가보라고 하더군. 그때 구상 시인은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었지. 구상 시인과는 원산에서 만났던 사이였지. 어쨌든 찾아갔어.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를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가 우동 두 그릇을 시키면서 ‘배가 고플 텐데 두 그릇 다 먹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시를 읽더니 ‘관념적이긴 하지만’이라고 말을 하더군. 그 2~3일 뒤에 ‘문풍지’라는 제목으로 시가 발표됐어. 그래서 데뷔작이 ‘문풍지’야. ●“그의 그림에서 詩 영감 많이 얻어” 이후 6·25전쟁이 끝난 1957년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라는 3인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펼쳤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시작으로 2009년 제10회 청마(靑馬)문학상을 수상한 ‘버리면 보이느니’까지 통산 18권의 개인 시집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평양 출신의 박남수(1918~1994) 시인과 친하게 지냈으며 문덕수(83)·홍윤숙(86) 시인 등과 절친 문우로 교류했다. 1990년 제12차 세계시인대회 때였다. 일본의 저명한 국제적 여류 시인 시라이시 가즈코가 ‘오늘의 율리시스’라는 시를 낭독하기 직전 노시인이 “나는 북에서 온 한국의 율리시스입니다.”라고 말해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낸 일화는 지금도 문단에서 회자된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6·25전쟁 때는 9사단 29연대에 배속(소위)돼 백마고지와 저격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전우의 죽음을 다룬 시 ‘진달래’가 ‘국방’지에 게재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으며 후에 은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슬하에 김상수(사업가)·김상일(조각가)·김상호(중문학자)·김상미(주부)씨 등 3남 1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노시인에게 시 한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죽음이란 걸(주제)로 병원에 있을 때 써보긴 했는데….”라는 대답이 나지막이 돌아온다. 다음은 그가 최근에 쓴 미발표작 시.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광림은 김광림은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충남(忠男)이다. 원산공립중학을 거쳐 평양종합대 역사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48년 12월 한탄강을 거쳐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해 안양에서 ‘청포도’ 동인과 어울리다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구상 시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문풍지’라는 시를 처음 발표했다. 경기 여주군 북내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중 6·25전쟁을 만나 육군 소위로 9사단 29연대에 배속돼 전쟁에 참가했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으며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두 번째 시집 ‘심상의 밝은 그림자’, 1965년 세 번째 시집 ‘오전의 투망’ 등 지금까지 18권의 시집을 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3년 장안대 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1985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아 아시아 시인대회 서울대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등을 받았다. 2009년에는 ‘허탈하고플 때’로 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 “내 작품은 소셜 스릴러”

    “내 작품은 소셜 스릴러”

    2009년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Q&A’를 쓴 비카스 스와루프(48)가 15일 한국을 찾았다. 스와루프는 소설가이자 외교관으로 터키, 미국, 에티오피아 등을 거쳐 일본 고베의 총영사로 재직 중이다. ‘Q&A’는 그가 영국 런던에서 근무하며 두 달 만에 쓴 데뷔작으로 42개 언어로 번역됐다. 두 번째 책 ‘6인의 용의자’ 역시 한국어(문학동네 펴냄)를 포함해 3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곧 영화로 제작된다. 스와루프는 자신의 문학 작품을 ‘소셜 스릴러’라고 규정했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 독자를 궁금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척 운이 좋았죠. 두 번째 책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첫 작품이 영화로 세계적 흥행을 하기 전에 소설을 완성했어요. 첫 책에서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이야기라고 판단해 ‘6인의 용의자’는 6개의 이야기를 탄탄한 구조에 짜 넣었습니다.” 그는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수상 후보에 오른 맨 아시아 문학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한국 문학에 대해 비카스는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데 신경숙이나 김영하의 ‘빛의 제국’ 같은 작품이 그런 마술을 부린다.”고 말했다. 스와루프의 소설에는 삼성 휴대전화나 현대 자동차가 자주 등장하는데 “삼성으로부터 커미션(수수료)을 받아야겠다.”며 껄껄 웃기도 했다. ‘Q&A’는 가난한 청년이 퀴즈쇼에서 우승해 부자(밀리어네어)가 된다는 성공담으로 ‘슬럼독’(빈민가 소년)이란 영화 제목에 분개한 인도인들이 제작진을 고소하기도 했다. 스와루프는 “인도인들은 세계인의 시선에 민감한 편이다. 슬럼 지역 사람들이 개를 두 마리 사서 영화감독(대니 보일)의 이름을 따 ‘대니’와 ‘보일’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더라. 내 책은 배경이 슬럼일 뿐 주제는 용기와 결단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6일 중앙대, 18일 부산외대에서 특강을 마친 뒤 돌아간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도전에서 성공까지

    [제주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도전에서 성공까지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2008년 12월이다. 뉴세븐원더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 7곳을 뽑기 위해 전 세계 네티즌이 추천한 440곳을 대상으로 인터넷 1차 투표(2007년 7월∼2008년 12월)를 한 결과 제주도를 포함한 261곳이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제주도관광공사는 본격적인 참여를 위해 2008년 12월 뉴세븐원더스 재단에 공식후원기관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인터넷 2차 투표(2009년 1∼7월)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2009년 7월 21일 세계 7대 자연경관 최종 후보지 28곳에 포함될 때까지만 해도 제주관광공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는 우근민 지사가 2010년 7월 취임하면서 비로소 발벗고 나섰다. 그해 하반기부터 제주를 7대 자연경관에 올려놓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고, 같은 해 12월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위·위원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범도민추진위원회’(위원장 부만근)가 출범했다. 결선 투표가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나서야 투표참여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제주도는 다른 후보지에 비교해 상당히 불리했다. 하지만 범국민위와 제주도가 지난 1월 13일 내외신 기자 100여명을 초청, ‘세계 7대 자연경관 도전 선포식’을 열어 불을 지피고 국내외 유명인사와 재외동포, 기업,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참여 열기가 이어지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한국계 미국 풋볼 스타 하인스 워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오페라 가수 폴포츠, 아시아태평양지질공원 의장 이브라힘 코무 등 여러 분야의 유명 외국인들까지 제주 홍보대사로 나섰다. 미국 LA와 샌디에이고, 캐나다 토론토,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에도 7대 경관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등 국내외에서 제주를 지지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삼성물산, 대림산업, 대한통운, KT그룹, LG그룹 등 대기업과 한국야구위원회,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불교 조계종,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등 각계의 지원활동도 뜨거웠다. 각계각층의 염원에 힘입어 제주는 세계자연유산 등재, 세계지질공원 인증,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등 유네스코 자연환경 분야 3관왕을 휩쓴 데 이어 마침내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명성을 더해 그야말로 ‘보물섬’으로 거듭나게 됐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세계인문학포럼 24일 부산서

    이 땅의 모든 인문학적 지혜를 모으는 세계인문학포럼이 부산에서 열린다. 부산시는 오는 24~26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제1회 세계인문학포럼’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부산시와 교육과학기술부, 유네스코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관한다. 세계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비롯해 국내외 인문학 석학 60여명이 참여하며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개막식 당일인 24일에는 김우창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지구화 세계의 보편윤리’를, 25일에는 프레드 달마이어 노터데임대 교수가 ‘인류의 인간화’를, 26일에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열리는 문’을 주제로 다문화시대에 대한 견해를 들려줄 예정이다. ‘문화 상대주의와 보편주의’ ‘글로벌 시대의 다중 정체성’ ‘문명 갈등의 양상과 전망’ ‘지구윤리와 문화소통의 가능성’ 등 소주제별로 각 대륙에서 참가한 철학·역사학·문학·인류학 분야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잇따라 열린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원로 소설가 손장순씨 모교 서울대에 20억 기부

    원로 소설가 손장순씨 모교 서울대에 20억 기부

    서울대는 7일 원로 소설가 손장순(76)씨가 문학연구 진흥을 위해 모교인 서울대에 20억원을 쾌척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지난 8월 서울대와 기부 약정을 하면서 “우리나라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써 달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손씨가 기부한 20억원을 ‘손장순 문학연구기금’으로 지정하고,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외국 교수와 박사급 연구 인력의 학술활동 지원 등 한국문학 세계화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씨는 1958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소르본대 대학원에서 현대 프랑스문학을 연구했으며, 한양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같은 해 ‘현대문학’에 단편 ‘입상’, ‘전신’이 추천돼 등단했다. 한국여류문학상(1967), 펜문학상(1996)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 남들도 울며 읽지 않아요”

    5년 전쯤 따뜻한 봄날의 일이다. 시인 도종환(57)과 충북 보은에서 만난 적이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한적한 황토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암탉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특하게도 암탉은 현관문 신발장이 있는 곳에 거의 매일 알을 낳는다. 도씨에게는 그런 암탉이 유일한 벗이자 시를 쓰는 마음의 상대였다. 이어 상사화가 피어 있는 곳으로 가 대화를 한다. 혼자 살지만 결코 외롭지 않을 만큼 여러 벗을 두었다. 그렇게 시인은 절해고도 같은 곳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내 문학의 시작은 “가난·절망·눈물…”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시인이 됐다. 부드러우면서 곧은 시인으로 말이다. 그가 이번에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한겨레 출판 펴냄)를 출간했다. 이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이야기, ‘접시꽃 당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절,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의 이야기까지 절절하게 담았다.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의 채색 그림이 시를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기서 작가의 말을 잠시 들어보자.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됐고 그것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결혼한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아내가 암에 걸려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울면서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습니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었습니다.” 1만 5000원. ●제13회 백석문학상 수상 겹경사 4일 낭보도 날아들었다. 창비가 주는 제13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 수상작은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로, 상금은 1000만원이다. 심사위원단은 “이순에 가까운 시인이 발견한 의외로운 시적 경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 혹은 ‘다른 시간’의 겸허한 수락”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제 소설은 공상이고 망상… 가능성 찾는 자세로 봤으면”

    “제 소설은 공상이고 망상… 가능성 찾는 자세로 봤으면”

    그의 인상은 자매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경숙 작가와 닮았다. 하지만 신 작가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인간의 내면을 향했다면 소설가 강영숙(44)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신 작가가 ‘국보급’인 데 견줘 자신은 장편소설 2편을 냈고 그중 한편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됐음에도 ‘신인급’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20년 넘게 한 직장 다니며 두 자녀 키워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8월의 식사’로 등단한 강 작가가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이후 2년여 만에 네 번째 소설집 ‘아령 하는 밤’을 펴냈다. 가장 처음 실린 단편 ‘문래에서’는 2011년 김유정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구제역’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구제역으로 수많은 동물을 살처분한 이의 정신적 상처를 다뤘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아이오와가 배경인 ‘라디오와 강’,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뉴올리언스에서 펼쳐진 이야기 ‘재해지역투어버스’ 등 올 상반기에 쓴 세 편의 단편이 모두 공교롭게도 자연재해를 다루고 있다. 서울 노원구 일대 주택가에서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접한 도시인들로서는 ‘프리퍄트창고’ 역시 눈이 가는 소설이다. 프리퍄트는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던 체르노빌 원자로의 근로자들이 살던 주거 지역이다. ‘프리퍄트창고’에서 주인공은 ‘프리퍄트’를 자신의 심리적 고향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방사능에 노출된 ‘잠재적 암 환자’라고 믿어버린다. “기질인 거 같아요. 아이오와에 가도 누구는 음악에 끌리는데 저는 홍수의 흔적을 찾아다녔으니까요.” 재해로 가득한 도시를 그린 작품을 쓰는 까닭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미국 아이오와는 국제창작프로그램을 통해 3개월간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20년 넘게 한 직장을 다니는 생활인이자 두 자녀를 키우는 엄마다. 직장이 사회단체라 자유로운 근무가 가능하지만 하는 일의 중량은 크다. 작가는 ‘노동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자 직장 생활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글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쓴다. ●“문학, 경향성 안 따졌으면… 다양하면 좋아” 강 작가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기까지는 8년이 걸렸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응모한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여성 작가들이 존재론적 문제에만 천착한다는 의견에 대해 “성별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뭔가 큰 얘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문학을 하나의 경향으로 몰기보다는 다양하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공대생들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나오면 한 권씩 사곤 했다. 문학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떨어진다는 걱정에 대해 소설가도, 문학을 담당하는 신문 기자도 뾰족한 대안을 찾진 못했다. 작가는 “결국 고급 독자가 남지 않겠느냐….”는 비관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작가 자신도 소설보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이 더 재미있다고 하면서. ●“인터넷글 소설보다 재미… 고급 독자만 남을 것” “이상한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억지로 만들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부터 써라.” 작가가 소설창작론을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여전히 문학 청년들은 있지만 9·11밖에는 겪은 게 없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가 신통하지만은 않다. 김유정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거푸 수상한 작가는 “잘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에 대입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찾는 자세로 봤으면 좋겠어요. 제 소설은 결국 다 공상이고 망상이니까요.”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많은 여성 작가들은 설거지를 끝낸 저녁 식탁에서 작품을 썼다. 그 문학 작품은 노동하는 손에서 나온 것이기에 삶에 대한 끈질긴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佛 교사가 최고 권위 문학상 수상

    프랑스 리옹의 한 고등학교 생물학 교사가 프랑스 내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주인공은 알렉시스 제니(48)로 그의 첫 소설인 ‘전쟁에 대한 프랑스 예술’로 공쿠르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공쿠르상 심사위원단이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제니의 소설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와 알제리를 식민지로 두던 시대의 유산을 다룬 모험 소설로, 아이티 작가인 라이오넬 트두일로트와 막판 경합을 벌였다고 AFP가 보도했다. 공쿠르상은 노벨문학상, 맨부커상에 이어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프랑스 작가 에드몽 공쿠르의 유언에 따라 1903년 창설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염무웅씨 등 대산문학상 수상

    “언제까지 글을 쓸지 모르지만 마땅찮게 여겨지는 시대와 문학을 통한 대결을 계속해 나가겠다.” 국내 최대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의 19회 수상자가 발표됐다. 대산문화재단은 1일 시 부문에 신달자의 ‘종이’, 소설 부문 임철우 ‘이별하는 골짜기’, 희곡 부문 최치언 ‘미친극’, 평론 부문 염무웅 ‘문학과 시대현실’, 그리고 번역 부문에는 하이디 강·안소현이 독일어로 공역한 김훈 원작의 ‘칼의 노래’(Schwertgesang)를 각각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염무웅(70) 평론가는 위와 같은 수상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은 ‘문학과 시대현실’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문학의 ‘현장성’이 현재 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우호인문학상’ 정민 교수 등 3명

    ‘우호인문학상’ 정민 교수 등 3명

    우호문화재단(이사장 신철식 STX그룹 부회장)은 27일 ‘제4회 우호인문학상’ 수상자로 한국문학 부문에 정민(왼쪽)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외국문학 부문에 이경원(가운데)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공로상에는 지난 7월 작고한 신광현(오른쪽)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이 상은 우호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뜻을 살려 기초인문과학 분야의 학술 연구를 격려하기 위해 제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11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 英작가 줄리언 반스 ‘부커상’ 영예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65)가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부커상 수상위원회는 18일(현지시간) 소설 ‘더 센스 오브 언 엔딩’(The Sense of an Ending)의 작가 반스를 픽션 부문 올해 수상자로 최종 선정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상금은 5만 파운드(약 9272만원).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동화 시상 ‘정채봉문학상’ 제정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을 기리는 문학상이 만들어졌다. 제자들로 구성된 ‘정채봉 선생 10주기 추모위원회’는 16일 “‘동심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고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제1회 정채봉문학상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정채봉문학상은 1년 동안 국내 문예지에 발표된 창작 단편동화 중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 한 편을 선정해 시상한다. 상금은 1000만원. 첫 회 수상자로는 ‘그 고래, 번개’를 쓴 류은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고인의 생가 근처에 마련된 전남 순천문학관에서 열린다.
  • 자유분방한 상상력 가득한 단편소설 9편

    집과 땅 사이의 틈이 점점 벌어지면서 허공이 생긴다. 그 허공 위로 계단이 놓이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소녀는 점점 투명해지다가 결국 증발하고 만다. 모든 것이 허공으로 떠오른 뒤 투명하게 사라지는 세계. 하지만 일할 곳 없어도 소년의 성장판은 닫히지 않고, 아이 낳을 세계가 사라지는데도 소녀는 달거리를 거르지 않는다. 소녀는 이렇게 묻는다.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 문학계의 유망주로 꼽히는 소설가 김성중(36)의 첫 소설집 ‘개그맨’(문학과지성 펴냄) 가운데 ‘허공의 아이들’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대는 환상적인 세계지만 소녀의 질문이 겨냥하고 있는 건 ‘88만원 세대’ ‘거마대학생’ 등이 널부러진 뼈아픈 현실이다. 책은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웹진문지문학상 등을 잇달아 수상한 김씨가 등단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 9편을 묶은 것이다. 그 덕에 33세에 등단한 ‘중고 신인’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김씨의 문학적 사유는 흔히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표현된다. 쉽게 말해 평이한 일상 속에서 기이한 상상을 이끌어내길 즐긴다는 뜻이다. 책엔 이 같은 그의 성정이 잔뜩 녹아 있다. 몇 줄 읽다 보면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 혹은 미국의 영화감독 팀 버튼이 퍼뜩 떠오른다. 다만 팀 버튼이 다소 가볍고 컬트적인 상상을 즐긴다면, 김성중의 화법은 보다 내밀하고 인간적이다. 소설 행간엔 재기가 번뜩인다. 요즘 인기 개그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참 대단한 앙팡테리블 나셨다, 그죠?”다. 표제작 ‘개그맨’은 고통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심연을 들춰낸다. 한 개그맨과 사랑했지만 다른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 후 14년간 ‘무탈하게’ 산 여자가 주인공이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자는 옛 애인이었던 개그맨의 부고를 받고, 자신과 헤어진 뒤 그가 걸었던 삶의 족적을 뒤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가 세밀하게 드러난다. 고전 ‘토끼전’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패러디해 상처와 치유에 관해 우화적으로 접근한 작품 ‘간’과 희망은 봉인되고 출구마저 막힌 악몽의 끝없는 순환을 보여 주는 ‘순환선’, 서로의 그림자가 바뀌면서 왜곡되고 전도된 그림자들로 혼돈의 도가니가 된 섬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사건들을 담고 있는 ‘그림자’, 모든 사람들이 탈모가 된 뒤 머리에 피는 꽃의 아름다움에 따라 사람의 우열이 결정되는 도시의 우울한 이야기를 담은 ‘머리에 꽃을’ 등도 만만찮은 내공을 담고 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동인문학상에 소설가 편혜영

    소설가 편혜영(39)씨가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 수상작은 소설집 ‘저녁의 구애’(문학과지성사 펴냄)다. 심사위원회는 “편혜영씨의 소설은 현대사회의 익명성과 인간 소외에 대한 고발이란 익숙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만의 시각과 어조로 그 주제를 완전히 환골탈태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편씨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이슬털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 서초 6급 이규종씨 소설 출간

    공무원 시인인 이규종(서초구 세무과 6급·필명 이훈강)씨가 두 번째 단편소설집 ‘타잔과 백수’(한은 펴냄)를 냈다. 활발한 창작 및 동인 활동으로 고정 팬을 확보한 그는 이미 ‘사랑보다 더 먼 곳에 있는 아픔’, ‘서울 하늘은 별빛을 기다린다’, ‘활터에서’ 등 시집 3권과 단편소설집 ‘돌 속을 나는 새’를 낸 바 있다. 이번 단편집에는 기존 시집과 마찬가지로 휴머니즘을 주된 정서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겨울비’, ‘곱사등이 천사’, ‘타잔과 백수’, ‘바람꽃 피는 언덕에’ 등 간결하고 탄성 있는 문체로 쓰인 7편이 실렸다. 2002년 첫 시집을 내고 2003년 한국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씨는 2008년 두 번째 시집 ‘서울 하늘은 별빛을 기다린다’로 한국시문학대상을 받았다. 일본 무궁화 통신, 루마니아 문예지 세덴 등 해외와 국내 문예지 ‘문학과 창작’을 통해 다수 작품을 발표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2011 노벨문학상 발표] 고은 시인, 자택서 두문불출

    6일 오후 8시 경기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고은(78) 시인의 자택 앞에 모여 있던 마을 주민들은 고 시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 양기철(53)씨는 “수상 결과가 나오기 1시간 전에 (고은) 선생님 집에 들렀는데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계셨다.”면서 “올해는 꼭 좋은 소식을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 시인은 언론의 취재 요청을 모두 거절한 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 시인은 2005년부터 해마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올해 문학상이 스웨덴에 돌아가면서 한국 문학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문단 안팎에서는 한국 문학 세계화의 고질적인 걸림돌인 번역 문제에 국가가 좀 더 체계적으로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번역원이 올해 겨우 출범 10주년을 맞는 등 한국 문학은 이제야 세계 문학 시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며 “이런 형편에서 고은 선생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점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지금까지 28개 언어권에서 486종의 출간을 지원했다. 1945년 무렵부터 2만여종의 작품을 해외에 출간한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다. 김종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은 최근 해외에서 큰 화제를 모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 우리 소설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려면 한국적인 부분과 함께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동시에 담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일원으로 위상이 높아진 데는 고은 시인의 역할이 컸다.”면서도 “앞으로 고 시인만을 바라볼 게 아니라 깊이 있는 텍스트의 생산, 더욱 체계적인 번역, 세계문학과의 면밀한 교류 등 저변 확대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문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11 노벨문학상 발표]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세상을 관조하다

    [2011 노벨문학상 발표]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세상을 관조하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의 시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 펴냄)의 표제작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스웨덴의 국민시인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말똥가리 시인’이란 별명처럼 정치적 다툼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 영원한 침묵처럼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일 년에 평균 네댓 편의 시를 써냈다. ●김성곤 교수 “삶의 통찰로 현대시 새 길” ‘말똥가리 시인’이란 별명은 높은 시점에서 지상 자연세계의 자세한 일에 초점을 맞추는 시 세계 때문에 붙여졌다.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는 그의 특징적인 시작법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언론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이혼 뒤에 아버지와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주로 섬에서 지냈던 트란스트뢰메르는 고고학과 자연에 매혹되어 탐험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인과 심리학자로 동시에 활동한다. 2004년 ‘기억이 나를 본다’가 한국에서 출간될 때 트란스트뢰메르는 1990년에 닥친 뇌졸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뇌졸중으로 한동안 반신마비에 빠져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어판 시선집을 낸다는 편지에 흔쾌히 승낙 의사를 표시한 뒤, 영역본 시집을 주로 참조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 있다. 사건을 가득 담고 /빗속 햇빛 속에 밤이나 낮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 가는 중이고, 배추머리가 되어 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가 되어 가는 중이다. /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 자신이 되듯.” ‘역사에 대하여’란 그의 시에서 알 수 있듯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그의 시의 주요 영역이기도 하다. ●“종교적 경사 심하다” 비판도 중기 작품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이 투영돼 있다. 특히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와 긴밀히 연관된다. 이런 점 때문에 “종교적 경사가 심하여 반대로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되었다. 특히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런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시 세상을 구축했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 흐름을 주도했다. 그렇다고 트란스트뢰메르가 시에서 정치사회적 발언을 전혀 내비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오의 해빙’이란 시에는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 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시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제3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받는 시인은 중용의 인생관을 구현하고자 했다. ‘100%’란 표현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이 같은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신비스러운 진리의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것이 똑바로 선 인생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시인인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독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영어 등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스웨덴 작가로는 1974년 수상한 시인 H 마르틴손에 이어 37년 만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도 다수 받았다. ●‘기억이 나를 본다’ 국내 유일 출간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시인은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시인의 딸 파울라 트란스트뢰메르는 한 외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아버지가 수상 사실을 차분히 전해 듣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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