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문학상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관중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동영상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제조사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이지은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78
  •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령 前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 노래…‘생명 그리고 동행’展 연 김병종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령 前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 노래…‘생명 그리고 동행’展 연 김병종 화백

    생명의 그리움, 생명의 존귀함이 새삼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는 흔치 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목이 ‘생명 그리고 동행’(6월 30일까지)이다. 얼마 전 ‘생명의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생명’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을 노래해 온 김병종(61) 화백(서울대 교수)이 만나 ‘생명과 동행’이라는 메시지를 버무리고 있다. 이 전 장관의 시를 김 화백이 묵필로 썼고 ‘생명’을 주제로 한 대작만도 20여점을 내걸었다. 지난 14일 영인문학관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생명의 노래-숲에서’라는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길이만 따져도 족히 8m는 된다. 김 화백의 대표작이자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바보예수’도 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이 전 장관의 시가 보인다.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로 시작된다. 또 ‘미친 금붕어’라는 시도 있다.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날치처럼 어항에서 튀어나와 일제히/(중략)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지느러미 세우고/하늘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화백이 화선지에 직필로 휘갈겨 쓰고 여백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시와 묵필이 어우러져 생명의 고귀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벽에 걸린 김 화백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뭔가 얘기하는 표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의사 전달을 하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눈빛으로 얘기합니다. 꽃에도 눈이 있어 옆에 있는 꽃을 바라보고 찾아오는 벌, 나비와도 눈빛을 마주치지요. 이 그림(카리스 소년)에서는 금붕어와 소년이 서로 바라보며 얘기합니다. 사람의 동행도 둘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윤상훈 미술평론가는 “그의 ‘생명의 노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때로는 거칠고 격렬하며 때로는 잔잔하고 화사한 그의 생명 연작들은 수십년을 두고 다양한 울림과 변주를 이어 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가 ‘바보예수’였다면 1990년대에는 ‘생명의 노래’ 시리즈가 이어진다. 유토피아적인 전경 속에서 모든 대상을 화평하게 어울리도록 한다. 그러면서 ‘바보예수’와 ‘생명의 노래’의 두 주제를 같은 뿌리에 두고 작업해 왔다. 그는 “세계는 생명의 기미로 가득 차 있다. 생명의 정령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생명의 노래를 통해 비로소 인간 이외의 다른 지평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화백은 지난 2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저예산 전시를 열었다. 개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련된 개인 작가의 전관 전시에서 생명 연작을 펼쳐 보인 것이다. 관람객 3만 3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개막식 때 이 전 장관이 강연을 했는데 김 화백의 그림에 대해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바다를 모른다. 오직 가끔씩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날치만이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생명의 날치’라고 표현했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는 김 화백이 직접 작사한 것에 곡을 붙인 ‘사랑가’를 불렀다. 안 명창과는 같은 전북 남원 출신이다. 이 전 장관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제 아내가 이어령 선생의 딸과 대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였지요. 당시 아내가 이대문학상에 당선됐을 때 이 선생이 ‘문학사상사’ 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선생이 제 아내에게 ‘너는 결혼에 신경 쓰지 말고 평생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인연의 첫 단추가 된 셈입니다.” 김 화백의 부인은 소설가 정미경씨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02년 오늘의 작가상과 2006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으며 그동안 창작집을 7권이나 펴낸 중견 작가다. 김 화백은 부인보다 7년 앞서 중앙일보(1980년)와 동아일보(1981년) 신춘문예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과 삼성문화재단 저작상 등을 수상한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김 화백은 13세 때 이 전 장관의 책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를 읽고 감명받은 인연도 있으며 부인이 이 전 장관의 부인인 강인숙 여사와 틈틈이 만나면서 오늘날까지 이 전 장관과 동행의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김 화백은 ‘문학사상’에 삽화를 그렸고 이 전 장관은 김 화백이 전시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강연을 해 줄 정도록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김 화백은 1953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정문자 선생님에게서 ‘너는 화가가 돼라’는 말을 들은 후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환쟁이가 나오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 때문에 그림을 그려 상장을 받아도 집에 갖고 가지 못하고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보리밭에 날려 버리는 일이 숱하게 있었다. 그래도 늘 그림을 그렸다. 억눌림과 쫓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땅에다 그리고 허공에다 그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남원 시내 다방에서 ‘유혹’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분위기로 봐서 마을 어른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그럴수록 혹시 그림을 못 그리게 될까 봐 조바심이 커졌다. 그 무렵 책을 많이 읽은 것도 강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사르트르, 카뮈, 레마르크, 모파상, 앙드레 지드 그리고 ‘금병매’와 ‘벽 속의 여자’까지 빌려 온 책을 방 안 여기저기 쌓아 놓고 죄다 읽었다. 그뿐만 아니다. 소설도 몇 편 썼다. 외국의 기성 문인들을 흉내 내 제법 난해한 시들을 쓰기도 했다. 또한 흰 종이만 보면 허기진 듯 그림을 그려 댔고 늦은 밤이면 시내로 나가 총천연색의 극장 벽보를 몰래 떼어다 벽에 붙여 놓고 며칠씩 들여다보곤 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서울 용산역에 내리게 됐다. 이어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숨은 재능이 제대로 빛을 보게 된다. 전국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시와 소설로 서울대문학상을 휩쓸었다. 그 무렵 ‘대학입시’라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월간지의 기자가 찾아와 서울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 달라고 부탁했고 김 화백은 ‘바람일기’라는 소설을 썼다. 잡지사에서 기획한 ‘캠퍼스 소설’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두 번째 소설은 이화여대 영문과 학생이 쓴 ‘바람의 초상’이다. 그 여학생이 지금의 부인이다. 김 화백은 ‘화첩기행’이라는 책으로 대중과 가깝다. 1998년 시작해 지금까지 5권을 냈다. 그는 이에 대해 “대체로 한달이면 보름쯤은 그림을 그리고 열흘쯤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화실과 서재를 왕래하다 보면 이 두 가지 일은 둘이 아닌 하나로 섞이고 만나게 된다. 문장은 수채화 같은 빛깔을 띠고 그림은 글 기운 비슷한 무엇을 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예컨대 서로 데면데면하게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뒤섞이고 풀리면서 제3의 그 어떤 모양과 빛깔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화첩기행’은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오늘날 동행의 느낌을 재현한 것도 미술과 문학이 함께 섞이는 일이라고 한다. 밥과 반찬이 뒤섞이는 작업이란다. 앞으로도 이 같은 동행이 계속 이뤄질 것임은 물론이다. “살다가 배터리가 방전돼 간다고 느껴질 때마다 저는 가방을 꾸리곤 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때마다 충전이 조금 되지요. ‘화첩기행’을 위해 낯선 공간 속으로 들어가 기록하는 순간의 설렘과 흥분은 저를 새롭게 일어서게 했습니다. 여행은 그런 점에서 진실로 스승을 찾아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올해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요즘 들판의 잡초처럼 뒷심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그림에 대한 사랑과 깊이가 더욱 느껴진다”면서 열정의 가속도가 생기는 만큼 계속 그림에 미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개인전만 8회를 열었는데 올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개인전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계가 주는 무표정하고 비정한 것이 아닌 문인화의 발묵, 발색 같은 여백의 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생명의 노래’에 대해 자신의 시 한 수를 읊는다. ‘산들아/아직도 청정한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느냐/물들아/여전히 그 한 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있느냐/풀들아 숲들아/고요히 눕고 힘차게 일어서느냐/어린 생명부치들을/아직도 땅 위에 네 품을 거느리고 있느냐/아아 조선의 땅아, 바람아, 물들아, 애잔하게 스러져 가는 것들아/오늘 서툰 붓 한 자루에 실어/내 너희 안부를 묻노니.’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병종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성균관대에서 동양예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독일 베를린에서 ‘바보예수’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프랑스 파리, 미국 시카고, 벨기에 브뤼셀, 일본 도쿄, 스위스 바젤 등지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국제 아트페어와 광주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인디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대영박물관과 온타리오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문학 청년이던 시절 중앙일보(1980년)와 동아일보(1981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1년), 미술기자상(1989년), 한국미술작가상(1991년), 선 미술상(1995년), 대한민국 기독교미술상(2004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화첩기행’(전 5권), ‘중국회화연구’ 등이 있다.
  • [주민들 책 사랑, 자치구가 함께 키워 드릴게요] 관악 ‘리빙 북’ 책의 감동 살리고

    박학다식한 사람을 흔히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삶의 경험이 풍부하거나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악구에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책을 대출해 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구는 독서 동아리나 주민 모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리빙 라이브러리 사업인 ‘리빙북 대출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구는 2011년 책 잔치와 도서관 행사를 통해 리빙 라이브러리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소통을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자는 취지로 시작된 사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리빙북 대출 서비스는 기존 리빙 라이브러리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해소하는 일종의 부가 서비스다. 구에서 주도하는 게 아니라 학교나 복지시설 독서 동아리, 주민 모임 등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원하는 리빙북을 대출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형식도 강연, 토론회, 대화 등으로 다양하다. 구는 리빙북 사례비를 지원한다. 올해 리빙북 대출 서비스는 지난 14일 행운동 봉원중학교 학부모 독서 모임을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곳곳에서 10회에 걸쳐 열린다. 봉원중 학부모 독서 모임인 ‘시나브로’는 평론가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김이구 작가를 봉원중 도서실로 초대해 동시(童詩)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성현동 구암중학교 학생들은 지난 16일 청소년 문학가로 유명한 ‘가출일기’의 저자 김혜정 작가를 리빙북 대출 서비스를 통해 만났다. 오는 21일에는 관악문화관도서관 독서 동아리인 ‘초수회’가 제1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강태식 작가를 만나 글쓰기에 대해 대화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YMCA복지관 독서 동아리인 ‘글놀이마당’은 문선이 작가를, 선의관악복지관 독서 모임인 ‘북톡’은 문성환 국문학 박사를 초대한다. 구 관계자는 “책이 아닌 사람을 통해 그들이 깨달은 값진 경험과 노하우를 들어 보는 뜻깊은 시간을 꾸준히 마련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시집 ‘심장이’ 평론집 ‘미래의’ 올해 김달진문학상 나란히 선정

    제25회 김달진문학상에 김남조(87) 시인의 시집 ‘심장이 아프다’(2013), 김진희(49) 평론가의 평론집 ‘미래의 서정과 감각’(2014)이 선정됐다고 상 운영위원회가 16일 밝혔다. 기념 시낭독회는 오는 6월 5일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시상식은 오는 10월 창원 진해구민회관에서 열린다.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소설가 최인훈은

    ‘구식 인쇄기의 인쇄지 넘기듯이 걸어가고 있다 / 사람이기보다 / 관념이다 / 관념이기보다 / 관념의 1인칭 독백이 걸어가고 있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최인훈(78)을 이렇게 풀었다. 최인훈은 함경북도 회령 출생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로 등단했다. 4·19혁명 이후 ‘광장’을 발표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고뇌에서 느껴지듯 그의 작품은 관념적이지만, 또한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고민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고은은 최인훈을 두고 ‘관념’이 ‘걸어가고 있다’고 묘사하며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강조한 게 아닐까. 그에게 ‘전후 최후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인훈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극작가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등을 받았고 소설가로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박경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2012년에는 그의 사상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글을 묶은 ‘바다의 편지’라는 책이 나왔다. 책의 부제는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으로 현대문명의 주요 문제들, 인류 문명의 역사적 진화 과정,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최인훈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첫 셰익스피어 전집 운문 번역 출간 박맹호 민음사 회장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첫 셰익스피어 전집 운문 번역 출간 박맹호 민음사 회장

    ‘흐린 하늘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유모가 아직 잠이 덜 깬 필립을 안고 병석에 누워 있는 어머니 곁으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키스를 했다. 앞으로 누가 이 애를 키울까 하는 걱정어린 눈으로 필립을 들여다보았다. 뺨을 만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져 보고는 그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필립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어머니는 사내아이를 분만하다가 죽고 말았다.’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학창 시절 한번쯤 읽어 봤음직한 작품이다. 그렇듯이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좋은 책에 대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리고 ‘제대로’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읽도록 할까. 출판사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민음사 박맹호(80) 회장 얘기다. 민음(民音)은 한자 풀이대로 ‘백성의 소리’를 뜻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벽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액자를 봤다. 하나는 미당 서정주가 79세 때 직접 써 준 것이다.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란초는 궁금해 꽃피는 것이다.’ 박 회장에게 미당과 어떤 인연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미당의 전집도 내고 책을 많이 냈지. 작품 정리는 대부분 내가 했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 다른 액자의 글귀는 ‘민음활성’(民音活聲)이다. 박 회장은 “민음이 활달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뜻이며 20년 전에 경봉 스님이 직접 써준 것”이라고 했다. 민음사라는 출판사 이름 내력에 대해 박 회장은 “학생 때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백성의 소리’를 떠올렸는데 일종의 치기라고 할 수 있지 뭐. 나중에 훈민정음할 때 민음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라고 대답한다. ●셰익스피어 번역 운문 전집 2019년 완간 목표 민음사는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출발했으니 올해로 5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5000종이 넘는 책을 출간하면서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로 성장했다. 박 회장은 “그동안 발간한 책을 권수로 세어보면 아마 5000만권은 넘지 않을까”라고 회고한다. 하기야 민음사의 대표주자인 ‘삼국지’가 1800만부, ‘세계문학’이 1200만부 정도 팔렸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인구 대부분이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한번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이틀에 한 권씩 발간한다. 그에게 “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인간의 완성은 책에서 비롯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에 신경 쓰는 것은 ‘셰익스피어 전집’이라고 했다. 연세대 영문학과 최종철 교수가 20년동안 연구해 온 결과물로 국내 최초 ‘운문번역’ 셰익스피어 전집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들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다. 따라서 운문 형식의 대사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문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깊이와 감동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와 곧바로 연결된다. 1993년 처음으로 ‘맥베스’를 운문 번역하면서 우리 시의 기본 운율인 삼사조(三四調)에 적용했다. 운문 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원문의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6일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세례일 기준)을 맞아 우선 두 권을 출간했고 이달 말 다시 두 권을 출간해 독자들을 찾아간다. 계획대로라면 2019년 10권을 완간한다. 흔히 ‘민음사 책’을 떠올릴 때 ‘세계문학전집’을 떠올리고 이문열, 한수산 등 대형 신인들을 발굴한 업적을 얘기한다. 이문열씨는 이달 말 ‘변경’ 12권을 민음사에서 다시 낸다. ‘세계문학전집’은 그동안 320권을 냈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대단한 기록이다. 앞으로 500권까지 낼 예정이다. 박 회장은 지금도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고 새로운 책을 만들어내면서 이 사회의 지성과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책으로 쌓아 올린 박 회장의 평생에 대해 “아마 우리나라 출판의 격을 조금 높이지 않았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문학을 한데 모았고, 비평서의 효시를 열었고… 출판이란 창조하는 것이며 책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을까. ●신춘문예 도전… 독재 비판 이유로 탈락 그는 서울대 불문학과 시절 교내 잡지 ‘문학’에서 활동했다. 그러면서 소설을 쓰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또 이어령, 유종호 등 쟁쟁한 문학 멤버들과 자주 만나 작품을 논의했다. 한국 최초 ‘불한사전’을 펴낸 불문학자 이휘영 교수는 박 회장에게 “너는 (불문학)공부를 안 해도 되니 대신 소설이나 써라”는 말에 한층 고무되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했다. 장가는 들었으나 취직이 안 돼 고민하던 중 한국일보 제1회 신춘문예에 도전한다. 거의 당선될 뻔했으나 독재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취소되면서 1966년 5월 19일 민음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다. 이날을 창사 기념일로 정해 매년 휴무를 한다. 민음사를 시작한 후 처음에는 사무실을 얻지 않았다. 필자에게 원고를 받아 편집과 교정은 집에서 했다. 아버지는 “그 책들을 한 트럭 정도 내다 팔면 휴지로 끝나는 거 아니냐. 그거 뭐하러 해. (고향)보은에 내려와서 일이나 도와라”고 하면서 반대했다. 당시 아버지는 운수업과 정미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가업을 돕는 것이 영 맞지 않았다. 집안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한 박 회장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했다. 당시 출판사 운영자금은 부인의 결혼 패물을 판 돈에다 여기저기에서 빌린 돈으로 마련해 시작했다. “어릴 적에는 이렇다 할 꿈이나 야망은 없었어. 학교 다닐 때 문예반에서 활동하고 영문학과에 진학해 볼까 정도 생각했지. 책에 대한 생각은 좀 했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책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보고…서울대 약대를 나온 아내가 나 때문에 무척 고생했지. 청진동에 출판사를 낸 것은 문인들을 고려한 것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작가의 꿈을 포기한 것은 잘 한 일이야. 안 그랬으면 글이나 쓴다고 끙끙대고 있겠지 뭐.” 민음사의 첫 책은 ‘요가’였다. 친구 신동문의 권유로 냈다. 198쪽 분량의 양장본으로 집에서 교정을 보고 처남의 전화상 전일사에 나가 이리저리 전화통화를 하면서 혼자 만들어냈다. 책값은 250원을 매겼고 1만 5000권이나 팔렸다. 요즘 같으며 몇십만부에 해당하는 베스트셀러였다. 서점들이 독촉을 하는 바람에 애를 먹을 정도였다. 두 번째 책은 유주현씨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장미부인’이었다. 겁없이 신문에 5단 광고까지 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뒤를 이은 ‘서유기’ ‘반자서전’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 등도 마찬가지였다. ‘요가’로 번 돈을 몽땅 날렸다. 순식간에 빚이 3000만원까지 불어났다. 부인이 돈을 구하러 다녔다. 박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아내의 묵묵한 후원이 없었다면 그 시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내를 위해 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은 만나며 김현 등 4K 문단인맥 형성 민음사 초창기 때 시인 고은과 만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신동문이 나에게 소개를 했어. 신동문은 그때 ‘이 친구가 제주에서 몸만 가지고 덜렁 올라왔는데 사귀어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지. 술을 마시면 기행을 많이 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이탈리아 말이나 프랑스 말을 한다고 무어라 막 목소리를 높이는데 단어가 맞는 것은 아니로되 그럴싸했지. 매일 옥탑방으로 출근을 했는데 점심 때면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고 밤이면 함께 술집으로 향했어.” 고은씨와 만나면서 박 회장은 문단의 인맥을 형성한다. 이른바 4K(김현, 김주연, 김치수, 김병익) 그룹이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문학과 지성사’를 차려서 따로 독립해 나가기 전까지 민음사에서 책도 내고 기획을 함께했다. 오늘의 민음사를 있게 한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총서’ 등으로 시집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때였다. 또한 책 디자이너 정병규를 만나 책 장정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다. 이후 박 회장은 ‘오늘의 작가총서’ 등을 통해 한국문학 출판의 전범을 마련하고 단행본 출판시대를 열어나간다. 또한 ‘이데아 총서’ ‘대우 학술총서’ ‘일본의 현대지성’ ‘현대사상의 모험’ 등을 통해서 인문학, 자연과학 등 기초 학문 출판을 다양한 형태로 장려하고 정착하는 데 앞장섰다. 민음사의 궤적은 한국 출판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박 회장은 자부한다. ●지금도 신문 정독 후 출근… “영원한 현역” 박 회장은 영원한 현역으로 불린다. 평생 해 왔던 것처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지를 정독하고 출판사에 나갈 시간을 기다린다. 민음사는 물론 한국 출판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이러한 박 회장을 가리켜 고은씨는 “발상에서 행동 사이에 거의 틈이 없다”고 했고 대학 동기인 이어령씨는 “씨앗을 싹 틔우고 이앙 전까지 길러내는 묘판(苗板)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는 등산도 하고 골프도 치고 그랬지만 요즘에는 점심시간 때 뚝섬에 있는 서울숲을 주로 걷는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물었더니 “인문학으로 이만큼 살아왔으니 이제는 그 덕을 인문학 발전에 돌려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맹호는 1934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경복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민음사를 설립하고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총서’ ‘이데아총서’ ‘현대사상의 모험’ ‘대우학술총서’ ‘세계문학전집’ 등 일련의 시리즈를 비롯해 5000여종의 단행본을 펴냈다. 197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으며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등을 제정했다. 제45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서울시 문화상, 인촌상,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국무총리 표창, 화관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 [김문이 만난사람] ‘정글만리’ 새달 중국어판 출간하는 소설가 조정래

    [김문이 만난사람] ‘정글만리’ 새달 중국어판 출간하는 소설가 조정래

    그는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세월호 안에 있는 아이들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그 아이들 중에는 베토벤도 있고 모차르트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꿈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울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작가 조정래(71)씨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에게는 작가적 한이 남다르게 많다. 몸부림쳐지도록 장대한 글을 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그리고 최근의 ‘정글만리’만 보더라도 그 한이 켜켜이 배어 있다. 험난하고 처절한 역사를 그려낸다. 작가적 사명감으로 자신과 외롭게 싸우면서 수없이 구슬을 꿰고 또 꿴다. 역사와 세상 앞뒤 면을 특유의 통찰력으로 깊게 파헤치고 넓게 살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200자 원고지에 정성으로 옮긴다. 하루 평균 30장, 글발이 좀 받을 때는 100장까지 달린다. 농부의 호미가 녹슬 겨를이 없듯이 열심히 글 밭고랑을 일구는 지난한 경작을 한다. 그러다 보니 위궤양과 오른팔 마비, 탈장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조정래 문학산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씨는 올해로 문학 인생 44년이다. 그리고 부인 김초혜 시인은 50년을 맞는다. 부인이 문학적 나이로서는 선배인 셈이다. 둘은 우리나라 원조 캠퍼스 커플이다. 동국대 2학년 때 만나 조씨가 군 복무 시절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이라는 감동적인 말을 해 결혼에 골인했다. 지금도 그 사랑을 나누며 둘은 알콩달콩, 닭살 돋도록 잘살고 있다. 조씨는 부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새록새록 피어나는 영혼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뉴스거리가 하나 있다. 조씨의 최근작 ‘정글만리’가 130만부 이상 팔렸고 오는 6월 중국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소설 자체가 중국 무대로 했으니 중국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재미있는 책은, 예를 들어 무협지만 하더라도 1억부 이상 팔린다고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또 있다. 그의 부인 김씨 또한 오래간만에 책을 출간하는데 중국어판까지 낸다. 김씨가 쓴 원고는 ‘시인 할머니가 손자한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내용이다.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국내판은 다음 달에 나오고 중국어판은 오는 9월쯤 발간될 예정이다. 동갑내기 작가 부부가 거의 동시에 중국어판을 낸다는 점에서 관심거리다. 조씨 부부의 문학 인생에서는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만난 자리에서 누구나 다 갖고 있는 휴대전화가 왜 없느냐고 했다. 안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낸다. 첫 장에는 부인, 그리고 두 번째 장에는 손자 사진이 있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 가족이며 친지 등 필요한 전화번호를 적어놨다. 길거리 가다가 꼭 전화할 일이 있으면 지나가던 예쁜 여학생한테 “나 조정래라는 사람인데 휴대전화 잠시만 사용할 수 있느냐”고 하면 얼른 빌려주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굳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며 웃는다. 수첩에는 좌우명처럼 여기는 선시들이 적혀 있다. 잠시 들여다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가 한 말이다. ‘청산은 나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나옹 선사가 한 말이다. 또 있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에 맡겨두고/ 강산을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이 전남 담양에 면앙정을 10년간 짓고 나서 지은 시다. 그는 “얼마나 멋진 말들이냐”고 반문하면서 가끔식 들여다보며 혹시라도 기울어진 마음을 올바로 세운다고 했다. 화제를 ‘정글만리’로 옮겼다. ‘정글만리’가 현재 130만부를 돌파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팔릴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물었다. “아마 150만부 정도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다시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을 다 합하면 몇 부나 되느냐고 물었다. 1600만부 정도(팔린 것)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조씨는 자신이 펴낸 책들의 인지를 직접 찍는다. 그렇게 많은 분량을 어떻게 찍을까. 그러자 “아주머니들이 대신 찍어주는데 그들에게 일감을 주니 고용창출이 아니냐”며 웃는다. 작가는 많은 독자를 만나는 것이고 그 과정 또한 소중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곁들인다. ‘정글만리’는 언제부터 준비했느냐고 하자 “1990년 ‘아리랑’을 쓰기 위해 처음 만주를 갔을 때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 후 중국 관련 서적만 80여권 읽었으며 고시공부 하듯이 중국을 분석했다. 중국을 16차례 다녀오면서 깨알같이 기록한 취재수첩만 해도 90권에 이른다. 중국어판 ‘정글만리’는 청도출판사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중국에서는 짝퉁이 많다고 하는데 ‘해적판 정글만리’가 나오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냐. 그만큼 독자들이 늘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얘기를 한다. “소련은 몰락했지만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가 구해줬지요. 만약 안 그랬으면 중국도 소련처럼 무너졌을 것입니다. 중국은 중국식 자본주의로 굳건히 버티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요. 앞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을 정확히 봐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 번째가 88서울올림픽이다. 처음 올림픽을 유치했을 때 중국의 100분의1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깔끔하게 대회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게 생각했다. 두 번째는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한국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데 금 모으기 등을 하면서 극복해내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한류와 스포츠. 가수 싸이의 말춤으로 세계를 휩쓰는 것을 보고 감탄해 했고 또한 탁구로 중국과 서로 자웅을 겨루고 양궁으로 올림픽을 연속 제패하는 것을 보고 대단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민족적 자질이 우수한 강소국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대(自大)하는 한국인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했다. 즉, 스스로 큰 것처럼 잘난 척하는 한국인들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인들 앞에서 자대하지 말고 중국을 이성애적으로 겸손하게 대해주면 우리나라에 관광객 1억명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일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란다. 작년 하반기였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세계의 베스트 서적’을 다뤘다. 이때 ‘정글만리’에 대한 서평이 눈길을 끌었다. ‘왜 중국은 좋게 보고 일본은 안 좋게 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이 난징대학살 등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좋게 보지 않으니 그렇게 다루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은 일본에 대해 지난 100년의 굴욕을 극복했으며 자동차나 고속철도 등 마음껏 길을 뚫고 발전해 나가고 있지요. 잠재력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중국은 말 그대로 파도 파도 끝없는 광맥이 나옵니다.” 왜 대하소설만 고집하는지 물었더니 “우리나라는 지난 5000년 동안 크고 작은 외침을 931차례나 받았다. 이것을 다루려면 당연히 대하소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처럼 TV와 스마트폰에 매료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면 장면이 진지하고 빨리 전환돼야 하기 때문에 문명의 이기와 싸우며 문장 하나하나에 마침표를 치열하게 찍고 있다고 말했다. 석가탄신일을 얼마 앞두고 있어서 출생에 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는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스님이었다. 일본이 한국에 들어와 황국화 정책을 외치면서 승려에게 결혼할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풍경소리와 목탁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뱃속에서 자랐다. 고 3때였다. 아버지가 하늘과 벗 삼아 지내라는 뜻이 담긴 인천(隣天)이라는 법명을 직접 지어주며 출가하라고 엄명했다. 하지만 조씨는 문학을 하겠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만해 스님을 거론하며 “출가해서 마음만 있으면 뭐든 크게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다. 조씨는 다시 “그분은 10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훌륭한 분”이라고 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대신 동국대로 진학해 불교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 법일 스님, 공허 스님 등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의 책상에는 ‘문학의 길’과 ‘길없는 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바로 옆에는 염주가 놓여 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까. 우선 술을 안 한다. ‘태백산맥’을 시작하면서 딱 끊었다. 매일 7000보 이상 걷는다. 비가 오면 집에서 이 방 저 방을 오고 가며 걷는다. 학생 때 배웠던 보건체조를 꾸준히 한다. 요새는 부인도 보건체조에 동참한다. 식사 시간은 반드시 40분을 지킨다. 이때 조용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신문 사설을 읽는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얼빈에서 티베트까지 박물관 루트를 취재해 ‘열하일기’식으로 써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그러자 “인생에 대한 총체적 탐구이며 작가는 인문학적 소양이 아주 깊어야 한다”면서 후배작가들에게는 “테크닉 위주로 글을 쓰지 말고 고층빌딩을 쌓듯이 박애, 사랑, 종교 등 모든 분야에 대해 지독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조정래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1953년 벌교로 이사했다. 1962년 서울 보성고를 거쳐 1966년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 ‘누명’으로 데뷔했다. 월간문학 편집장(1973년), 소설문예 발행인(1977년) 등을 지냈다. 1983년 ‘태백산맥’의 집필을 시작해 1986년 ‘태백산맥’ 전10권을 완간했다. 1994년 ‘아리랑’ 전12권, 2001년 ‘한강’ 전10권을 발간했다. 이 밖에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2003년), 조정래 문학전집 전9권, ‘시간의 그늘’ 등 문학지에 소설 50여편을 발표했다. 주요 수상으로는 현대문학상(1981년), 대한민국문학상(1983년), 제1회 동리상(2003년), 제7회 만해대상(2003년). 제11회 현대불교문학상 소설부문(2006년) 등이 있다. 2003년 전북 김제에 ‘아리랑문학관’, 2008년 전남 보성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개관했다.
  • 조선 백자 여백처럼… 깊은 울림을 전한다

    조선 백자 여백처럼… 깊은 울림을 전한다

    ‘어디 가서 ‘선생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일 슬프다.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평범한 시인!’ 이순을 훌쩍 넘긴 시인이 ‘시인의 말’에 적어넣은 글귀다. ‘고루한 어른이 되지 말자’는 다짐에서 스스로 새기는 초심이다.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 의식과 투명한 서정을 모두 시 안에서 아우를 줄 아는 이시영(65) 시인 얘기다. 초심을 되새기는 시인답게 그가 최근 펴낸 열세 번째 시집 ‘호야네 말’(창비)에서는 순정하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 범속한 세상사가 ‘오래된 노래’가 되어 흐른다. ‘자고 일어나 보니 새똥들이 방금 가장 아름다운 지구의 무늬를 만들어 놓았구나’(일행·一行) ‘검은점호랑나비 한 마리가 산나리꽃 위에 앉아/ 자울자울 조을고 계시다/ 자세히 보니 바람에 날개가 많이 찢기었다’(호랑나비) 간결한 일상어로 눌러 쓴 짧은 서정시는 수묵화 한 폭처럼 단정하고 담백하다. 공연한 정황이나 장식을 달지 않은 시는 조선 백자처럼 넉넉한 여백으로 독자를 맞이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만해문학상과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한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후 2년 만에 펴낸 시집에서 그는 짧은 서정시를 중심으로 산문시, 인용시 등 다양한 시적 체험을 안긴다. “일부러 그렇게 쓴 거야. 시라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데, 요즘은 소통이 안 되면 안 될수록 좋은 시라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서정시를 쓰면 촌스럽고 낡았다고 생각하죠. 스스로는 그간 참여시, 저항시 등 서사시만 너무 많이 써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표현되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울림을 자아내는 짧은 서정시를 써보고 싶었죠.” “이시영 시인은 삶의 결정적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순간이 결정적인 순간들임을 눈가가 따뜻하게 젖은 사람의 마음으로 찍고 있다”(박형준 시인)는 평처럼 그는 보잘것없는 미물의 움직임은 물론 세속의 풍경에서 포착해낸 순간에서 삶의 이치를 캐낸다. “시인이 짧은 서정시로 모색하는 세상은 ‘고맙다’의 세상일지도 모른다”(오철수 문학평론가)는 지적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선함과 겸손함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힘임을 지그시 강조한다. ‘서초중앙하이츠빌라의 머리가 하얗게 센 경비 아저씨는/ 저녁이면 강아지와 함께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세상엔 이렇게 겸손한 분도 있다’(절) “타인에 대한 배려라든지 고마움, 겸손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각박하게 살면서 잃어버린 선한 마음, 배려의 마음은 세계 도처에 남아 있어요. 잘난 사람도 많고 지배하려는 사람도 많지만 타인과 사물에 대해 공감할 줄 아는 감수성이 있어야 인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오랜만에 그윽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는 시인이지만 그는 ‘결빙(結氷)의 시절’(십이월)이 된 요즘 현실의 참혹 앞에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말을 거듭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보니 민주주의를 말하기 이전에 책임감, 사명감은 물론 국민에 대한 헌신,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지도층의 민낯을 보고 분노의 마음이 들더군요.” 국가가 무엇인가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쓴 ‘‘나라’ 없는 나라’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돌아보게 하는 시가 됐다. ‘어디 남태평양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은 없을까. 국경도 없고 경계도 없고 그리하여 군대나 경찰은 더욱 없는. 낮에는 바다에 뛰어들어 솟구치는 물고기를 잡고 야자수 아래 통통한 아랫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자며 이웃 섬에서 닭이 울어도 개의치 않고 제국의 상선들이 다가와도 꿈쩍하지 않을 거야. (중략) 아, 그런 ‘나라’ 없는 나라가 있다면!’(‘나라’ 없는 나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새뮤얼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새뮤얼 베케트(1906~1989)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트리니티 대학을 졸업했다. 청년 시절 프랑스에서 영어 교사로, 아일랜드로 돌아온 뒤는 프랑스어 교사로 활동했다. 1938년 베케트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소설과 희곡을 썼다. 프랑스어로 쓴 3부작 소설 ‘몰로이’, ‘말론은 죽다’, ‘명명하기 힘든 것’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고도를 기다리며’로 프랑스 문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고도를 기다리며’ 이후 인간사의 무의미함이나 서구적인 합리주의 세계의 붕괴를 주로 극화했다. 후기작으로는 어두운 무대에서 입술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독백하는 ‘내가 아니다’ 등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베케트는 시상식과 인터뷰를 거부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고통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소련 독재 체제에 항거하다 투옥된 작가이자 체코의 초대 대통령인 바츨라프 하벨에게 ‘파국’을 헌정하기도 했다. ‘파국’은 연출가가 최종 리허설을 하는 주인공에게 몸동작을 바꾸게 하거나 색칠을 함으로써 억압적 폭력을 동원하는 모습을 그린 희곡이다. 권력자의 폭력과 개인의 무력함을 대비시켰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새뮤얼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새뮤얼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인 도봉산역 승강장에서 흰색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근처에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사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 저녁 7시 3분. 여인:(혼잣말로) 워매~. 귀신이 물어가겄네. (스마트폰을 입쪽으로 대고) 여보세요? 아, 거그 워디여? (스마트폰을 귀로 옮겨) 뭐? 도봉역? 아, 어쩌자고 여적치 거그 있디야? (목소리를 높여) 뭔 소리여 시방? 내에~ 거그 있다가 없어서 여그로 왔구만. (더 큰 소리로) 내 참, 여그가 워디긴 워디여? 도봉산역이랑게. 도봉이 있고, 도봉산이 있당게. (들리는 않는 듯) 여보세요? 여보세요? …. (발이 아픈지 구두에서 한쪽 발을 빼내 꼼지락거리며)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오, 아이고오~. 한 시간을 이러고 돌아댕겼네. 다시 여인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여인:(악을 쓰다시피) 여보세요? 아, 여그 도봉산여억~! 거그서 하나 더 오믄 도봉산역이랑게…. 그라믄 거그서 택시를 타고 일로 오등가. 승강장의 사람들은 모두 여인을 쳐다본다. 여인:(기운이 빠진 듯) 그라믄 아예 수락산역에서 만나. 그래, 수!락! 산! 역!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 워치케든 와. 이러나저러나 거그로 가야항게. (전화를 끊고) 귀신이 물어가겄네. 워매 환장하겄네. 수락산행 전철이 승강장에 들어서고 여인이 전철에 탔다 닫히는 출입문 사이를 비집고 다시 내린다. 여인:(통화를 하며) 그라믄, 거그 있어. 내 도로 갈랑게. 전철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닫히고 전철은 수락산역을 향해 출발한다. 승강장엔 흰색 정장의 여인이 저녁 어스름에 희미한 흰빛으로 남아 있다. 통하지 않는 통화를 하던 어떤 아주머니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아주머니는 그 사람을 만났을까.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한 시간이나 헤맸다는데 안타까웠다. 생각만 하고 있는 사이에 전철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무심히 타고 떠났다. 나는 건너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은 나도 내가 타야 할 전철을 타고 도봉산역을 떠났지만 아주머니가 그 사람을 만났는지 계속 궁금했다. 나는 왜 그 사실이 궁금했던 것일까. 어찌 해서 승강장의 흰빛이 아련하게 남는 것일까. 이런 잔상은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체 2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무대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시골길이다. 그 나무 아래서 떠돌이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기다림이 지루한 두 사람이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죽인다. 이 둘의 대화와 행동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블라디미르는 모자를 벗었다 썼다 하고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었다 신었다 한다. 무슨 이야기를 열심히는 하는데 서로 잘 알아듣는 것 같지 않다. 독백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듯하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한 소년이 와서 고도는 오늘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말을 전한다. 그다음 날에도 두 사람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고도 역시 오지 않는다. 연극은 2막에서 막을 내리지만 영원히 이 기다림은 계속될 것만 같아 책장을 자꾸만 넘겨보게 된다. 우리는 이 작품을 책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만날 수 있다. 디디와 고고, 이 두 사람이 고도가 오니 마니 하며 만담처럼 지껄이는 헛소리들이 화제가 되고 회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도를 기다리며’를 이야기할 때 부조리극이라는 형식이 꼭 따라다닌다. 부조리극이란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의미나 목적이 없고 인간은 서로 간에 소통이 불가하다는 전제 아래 논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뜻조차 없는 말, 때론 침묵으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전달하려는 전위적 극을 말한다. 특별한 서사 구조가 없는 이 작품은 소통의 어려움을 자각하기 시작한 현대인의 어려움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단절의 상태, 말은 끊임없이 이어지되 교감은 없는 허무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게 되는 것들이 지독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베케트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프랑스어를 배웠다. 공부는 물론 못하는 스포츠가 없었고 대학에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전공으로 수석 졸업했다.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시집을 출간했다. 번역을 하고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면서 모교의 교수가 되지만 곧 회의를 느끼고 사직했다. 2차 대전 중에는 프랑스 친구들과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인 기다림을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을 때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체의 인터뷰도 사양했다. 노벨상 수상은 그가 작품에서 그렸던 하루와 또 하루처럼 무의미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화는 그의 작품에 드러난 편집증적 폐쇄성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한다. 그가 살았던 더블린 근교의 집은 숲과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 바닷바람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만이 있는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곳이었다. 이런 환경은 아일랜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그의 작품 곳곳의 배경이 됐다. 그 어느 곳에나 있지만 그 어떤 곳도 아닌 공간과, 국경과 특정 언어의 뉘앙스를 넘어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떠돌이의 모습은, 무엇인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자신만의 고도를 기다리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설을 완성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다 보면 내 삶에서의 고도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신이라든가 희망, 자유, 미래, 죽음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정답은 없다. 삶을 견디게 해 주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막연하게 그려볼 뿐이다. 고도는 누구였을까. 베케트는 “내가 알면 작품에 썼겠지”라고 답했다. *팁: 이 작품은 연극으로 상연된 동영상을 보며 책을 들고 등장인물이 돼 대사를 쳐 보기라도 하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DVD도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스마트하게 고전을 읽어보자. www로 연결되는 사유를 책읽기에도 적용해 보자.
  • [기고] 남용되는 “대한민국 ○○○대상”/전기성 한양대학교 지방자치연구소 조례클리닉센터장

    [기고] 남용되는 “대한민국 ○○○대상”/전기성 한양대학교 지방자치연구소 조례클리닉센터장

    오는 6·4 지방선거에 나선 예비 후보들의 경력란에 ‘대한민국 000대상’을 받았다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다. 국회의원에 수여된 ‘대한민국 000대상’은 27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게 수여된 ‘대한민국 000大賞’은 60개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마치 국가기관에 의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고의 상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민간단체인 사단법인이거나 주식회사 또는 임의단체들에 의해 수여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민간단체가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국가 소유인 국호(國號)를 민간단체가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상호의 경우라면 상표법 위반에 해당할 것이나 국호는 등기대상이 아니라 제재가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민간단체가 상의 명칭을 단체 이름을 쓰지 않고 ‘대한민국 000대상’을 쓰는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행사로 과장하려는 의도가 그 첫 번째다. 즉 시상자(단체)의 명칭만으로는 국민의 시선을 끌기 부족하기에 ‘대한민국’과 ‘대상’을 써서 국가적, 공공행사로 보이려는 것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과 선출직인 지방의원 등에게 상을 수여하려면 의정활동을 평가할 월등한 능력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의 명칭에 시상자의 이름을 당당하게 넣어야 한다. 그럼에도 시상자가 스스로의 명칭이 아닌 ‘대한민국’의 명칭을 무단 차용하는 것은 심하게는 도용이라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상을 수여해 격려하려는 순수한 의미는 이미 상실됐다고 볼 수 있다. 오직 홍보 효과와 경제적 이익을 취하겠다는 얄퍅한 상술만 물씬 풍긴다. ‘노벨문학상’을 ‘노르웨이 문학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노벨상의 심사방법이 공정하고 부상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000대상’에 부상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남용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호 사용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가칭 ‘대한민국 국호 사용에 관한 법률’ 제정을 제안해 본다. 즉 국호는 국가기관이 직접 시행하거나 국가기관이 민간기관에 위탁해 시행하는 경우에만 사용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이에 준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미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 이상 사용치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서울특별시 문화상’ 등을 시상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시민상 운영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경우를 참고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사단법인이나 민간단체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이나 입법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시상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경우 국회의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다. 즉 사단법인의 경우 정관 목적에 ‘국회의원의 의정평가’를 포함하고 평가기준과 방법, 평가인력, 상의 명칭을 제시하면서 국회의장에게 승인을 요청하고 승인을 받은 경우에 시행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경우에는 내용에 따라 해당부처 장관 또는 광역자치단체장의 승인을 받는 것으로 한다. 국민의 판단이 올바를 때 대한민국이 바로 서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도록 6·4 지방선거전에 과대포장된 각종 상의 명칭을 정리하길 바란다.
  • [부고]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 ‘영원한 고독’ 속으로

    [부고]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 ‘영원한 고독’ 속으로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노벨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마르케스는 17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코요아칸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그의 가족들이 밝혔다. 15년간 림프암과 싸워온 마르케스는 지난달 말 폐렴과 요로 감염증 등의 증세로 입원 치료를 한 뒤 1주일여 만에 퇴원했으나 이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1927년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에서 태어난 마르케스는 17세기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 이후 가장 중요한 스페인어권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작가뿐 아니라 열정적인 기자이기도 했다. 23세였던 1950년 신문사에 입사해 정부 비판적인 기사들을 썼다. 그의 신변 안전을 우려한 신문사가 그를 유럽 특파원으로 발령 내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 신문사가 폐간되자 이후 그는 귀국하지 못하고 유럽과 멕시코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는 기자 경험을 살려 중남미 역사의 현실성에 토착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독특한 소설 기조를 만들어냈다. 1967년 출간해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 전형이다. 그가 할아버지와 어른들에게서 어릴 적부터 들어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그가 태어난 이듬해 고향의 바나나 농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최악의 노동자 학살사건을 다뤘다. 그는 35개국 언어로 번역돼 5000만부가 팔려나간 ‘백년 동안의 고독’ 외에도 1970년에 쓴 ‘콜레라시대의 사랑’, 1975년작 ‘족장의 가을’ 등 장편 6권, 중편 4권, 단편소설집 6권, 논픽션 7권 등을 남겼다. 그는 ‘가보’(Gabo)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위대한 거장의 죽음에 각국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콜롬비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죽음에 천년의 고독과 슬픔에 빠졌다”면서 3일간의 국장을 선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세계는 가장 선견지명 있는 작가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백년 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잠들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7일(현지시간) 타계했다. 87세. 멕시코 일간 엑셀시오르와 콜롬비아 일간 엘 에스펙타도르 등에 따르면 마르케스는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코요아칸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가족들이 성명을 통해 밝혔다.지난 50여년간 멕시코에서 생활했다. 마르케스는 지난달 말 멕시코 국립의료과학연구소에서 폐렴과 요로 감염증 등의 증세로 입원 치료한 뒤 1주일 여 만에 퇴원했으나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난 15년간 림프암으로 투병하면서 암세포가 폐 등 장기로 전이된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추정했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위대한 콜롬비아 출신 거장의 죽음에 천년의 고독과 슬픔이 느껴진다”며 유족을 위로했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마르케스는 17세기 미겔 데 세르반테스 이후 현존하는 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혔다. 이 저서는 세계 35개국 언어로 번역돼 5000만 부가 팔렸다.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은 역사의 리얼리티와 토착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소설 미학을 창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콜롬비아의 카리브해연안에 있는 아라카타카라는 마을에서 전신국 직원의 11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스페인 정착민과 원주민, 흑인 노예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조부모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1981년 멕시코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지만 박해를 받았다고 여길만한 요인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마르케스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자신의 연설문집을 모아 발간한다는 소식이 2010년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치매 때문에 모든 집필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그의 동생이 밝힌 적이 있다. 2002년 엘 에스펙타도르 등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의 첫 회고록을 펴냈다. ‘가보’(Gabo)라는 별명을 가진 마르케스는 쿠바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델 카스트로(87)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절친한 사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 길은 글이다

    이 길은 글이다

    참,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남도 얘기다. 여수 가서는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선 인물 자랑 말고, 벌교 가선 주먹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그뿐인가. 진도 가서는 ‘귀 명창’ 소리 들을 망정 제 소리 자랑일랑 아예 말랬다. 밭고랑에서 풀 뽑던 아낙도 앉은 자리에서 곧잘 소리 한 가락 뽑아낸다니 말이다. 전남 장흥에선 함부로 글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발 닿는 곳마다 시인 묵객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취를 되짚어 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정이 될 터.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 장흥에서 문향(文香) 좇는 여행 해 보자는 건 이런 뜻에서다. 글 자랑 말라는 얘기는 먼먼 섬 청산도에도 전해진다. 한데 전후 사정이 장흥과는 다소 다르다. 옛 청산도는 고등어 파시 등으로 비교적 부유한 섬이었다. 섬 사내들은 똥지게 지고도 곧잘 한시를 읊조렸고, 요족한 집안에선 아들 일본 유학 보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청산도에 이른바 식자층이 두꺼웠다는 뜻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작품의 배경 이에 견줘 장흥은 글 짓는 이가 많았다. 위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 가사 ‘관서별곡’을 지은 백광홍(1522~1556)을 비롯해 이청준(1939~2008), 한승원(75), 송기숙(79) 등 당대의 문장가들에다 차세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힌다는 소설가 이승우(54) 등 신진에 이르기까지 작은 고장 안팎이 문인들로 차고도 넘친다. 백광홍에서 비롯된 문맥은 이청준의 ‘눈길’ ‘축제’ ‘선학동 나그네’(천년학), 한승원의 ‘포구’ ‘앞산도 첩첩하고’, 송기숙의 ‘녹두장군’, 이승우의 ‘샘섬’ 등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러니 장흥 어디를 돌아봐도 문향(文香)과 맞닿아 있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 장흥을 문향(文鄕)이라 이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천관산 아래 천관문학관에서 대략의 내용을 먼저 짚는 게 순서다. 장흥에서 나고 자란 문장가는 누군지,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한 무대는 또 어디인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 문학관 위쪽으로는 15m 높이의 문탑과 문학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문탑 밑엔 구상, 박완서 등 작가들의 친필 원고 50여점과 연보 등이 캡슐에 쌓여 묻혔다. 문탑 아래쪽은 천관산문학공원이다. 친필 원고에 적힌 글들을 50여개 문학비에 각각 새겨 놓았다. 주민들의 가훈을 모은 가훈탑 등의 돌탑들도 무리 지어 있다. ●남도의 갯마을 한눈에 들어온 천관산… 소설길을 몸으로 읽다 무르팍에 힘이 남았거들랑 가급적 천관산까지는 힘써 오르길 권한다.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장흥은 물론 남도의 갯마을들이 한눈에 잡힌다. 문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안겨준 득량만이 얼마나 너른지, 그 안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또 어떤지 낱낱이 굽어볼 수 있다. 이대흠 천관문학관 관장에게 어떤 경로로 돌아봐야 할지 자문했다. 그는 이청준의 생가에서 출발해 ‘문학 자리’로 여겨지는 이청준의 묘와 선학동, 회진마을, 덕도의 한승원 생가, 정남진 전망대 등을 둘러본 뒤 남포마을과 한승원 해산토굴에서 여정을 마치라고 권했다. 이 길을 쭉 이으면 그가 주창했던 이른바 ‘소설길’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관장은 오가는 길에 오래된 교회들을 잊지 말고 살피라 주문했다. 동서양의 사상이 녹아든 교회도 문향 형성에 한몫 거들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청준, 한승원의 생가 인근에 각각 100년을 헤아리는 연혁의 교회가 서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장흥엔 100년 넘은 교회만 4곳이라고 한다. 이청준 생가 주변의 진목교회는 장흥 지역의 근대교회 도래지로 꼽힌다. 한승원 생가 인근의 명덕교회도 얼추 그쯤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들머리는 진목리의 이청준 생가다. 그의 대표작 ‘눈길’에 등장하는 바로 그 집이다. 이청준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두 차례 집안이 ‘거덜 나는’ 시련을 겪는다. 당시 그의 영혼과 몸의 안식처였을 생가도 빚쟁이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그걸 2005년 장흥군이 매입해 복원했다. 생가는 마을의 좁은 고샅길 중턱에 있다. 사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방과 장독대가 가지런하고 마루와 뜨락도 정갈하다. ●장흥 문학의 자궁 회진포구… 이청준 ‘눈길’의 무대 많은 이들이 “장흥 문학의 자궁”이라고 표현했던 회진포구에서 진목리에 이르는 길은 소설 ‘눈길’의 무대가 됐다. ‘눈길’은 이청준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내’가 고교 1학년 때 전답과 선산, 심지어 고향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간다. 어머니는 타향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주인이 바뀐 고향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빈 고향집에서 기다린다. 새 집주인에겐 물론 통사정을 했다. 옛집에서 하룻밤 아들을 재운 어머니는 이튿날 새벽 다시 ‘나’를 대처로 내보낸다. 어머니와 함께 걷던 눈 덮인 새벽길, 어찌 뇌리에서 사라질 수 있으랴. 소설 속의 ‘나’는 물론 이청준이고 집이 넘어간 것은 그가 광주일고 1학년이었을 때쯤이라고 한다. ‘눈길’은 바로 이 참담한 이른 아침의 기억이 모태가 된 작품이다. 진목리에서 회진포구 쪽으로 돌아 나오면 선학동마을이다. 원래는 산저마을이었는데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에서 모티브를 얻어 마을 이름을 바꿨다. ‘선학동 나그네’는 이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으로 재해석된다. 회진리 바닷가에 ‘천년학’ 세트장이 남아 있다. 정남진(正南津) 전망대가 있는 신동은 소설가 이승우의 고향이다. 그는 멀리 바다 위로 뜬 ‘가슴앓이 섬’을 바라보며 ‘샘섬’ 등의 작품을 썼다. 한승원의 생가가 있는 덕도는 동학군의 후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자부심도 세고 문향도 짙다. 할미꽃이 무리 지어 핀 한재에서 마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다. 용산면 남포마을은 일출 명소 소등섬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자체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주 촬영지 노릇을 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건 이청준이 지은 동명의 소설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삶의 여러 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안양면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발표한 한승원의 문학 터전이다.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을 마련한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여닫이해변 앞엔 ‘한승원 문학 산책로’도 조성됐다. 한국관광공사가 ‘깨끗한 갯벌이 숨 쉬는 아름다운 바닷가’로 선정한 곳이다. ‘어등’ ‘모래알’ 등 그의 글이 새겨진 비석들이 700m 정도 이어진다. 이 지역의 공식 주소가 ‘한승원산책길’로 정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해고속도로 영암·순천 구간으로 갈아탄 뒤 장흥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가장 알기 쉽다. 빠르게 가려면 다소 복잡하긴 해도 광주, 화순 등을 거쳐 가는 게 낫다. 호남고속도로 동광주나들목으로 나와 외곽순환도로로 갈아탄 뒤 29번 국도를 타고 화순 쪽으로 빠진다. 화순읍 지나 이양면소재지에서 장평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서 유치 방면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장흥 쪽으로 가는 23번 국도와 만난다. →맛집:요즘 제철 해산물은 바지락과 갑오징어다. 해산토굴 근처 수문해수욕장은 바지락이 많이 나는 곳이다. 특히 바지락회무침이 봄철 미각을 자극한다. 바지락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따뜻한 밥에 썩썩 비벼 놓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바다하우스(862-1021)가 그중 알려졌다. 갑오징어는 이즈음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는 몸통에 먹물이 섞이지 않게 해서 먹는데 장흥에선 부러 먹물을 섞어 가무잡잡하게 해서 먹는다. 보기엔 먹음직스럽지 않지만 그래야 비릿한 향이 살점에 돌고 건강에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 목숨 지키려는 갑오징어가 먹물을 터뜨리기 전 재빨리 명줄을 끊는 게 요령이다. 그래야 먹물이 몸통 구석구석 고르게 스민다. 읍내 싱싱횟집(863-8555)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한 접시에 4만원 선. →잘 곳:회진면에도 숙박업소가 몇 개 있으나 가급적 장흥 읍내에서 자는 게 좋겠다. 크라운모텔(863-0777)이 깨끗한 편이다. 편백숲 우드랜드(864-0063)도 늘 인기 상종가다.
  • 조남현·황훈성·김성곤 교수 우호인문학상 수상자 선정

    우호문화재단(이사장 신철식)은 ‘제6회 우호인문학상’ 수상자로 한국문학 부문에 조남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외국문학 부문에 황훈성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비교문학 및 문화학 부문에 김성곤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각각 선정했다. 이 상은 우호 신현확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국내에서 발행된 한국문학, 외국문학, 비교문학 및 문화학 부문의 저서를 대상으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학자와 저술가를 선정, 시상한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 黃 “감옥생활 세 번 해서 역사적 상처 많이 알아” 申 “앞 못 보는 사람 얘기나 실패한 사랑 얘기가 차기작”

    黃 “감옥생활 세 번 해서 역사적 상처 많이 알아” 申 “앞 못 보는 사람 얘기나 실패한 사랑 얘기가 차기작”

    “세번이나 감옥에 들락날락해서 누구보다 역사적 상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역사소설을 쓴 것은 작가로서의 책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상황이 되면 마찬가지로 대응하겠지만 돌이켜보면 작가로서는 불운했다고 생각한다.”(황석영) “현대인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산다.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특히 엄마라는 존재를 통해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쓰고 싶었다.”(신경숙) 현대 한국 문학의 대표주자인 소설가 황석영과 신경숙이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열리는 2014년 런던 도서전에서 유럽 독자들과 만났다. 8일(현지시간) 오전과 오후에 각각 열린 두 작가와의 대화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황 작가는 영국의 파키스탄계 소설가 카밀라 샴지와 문학, 역사를 주제로 대담하면서 “오에 겐자부로와 르 클레지오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부럽다고 하지만 나는 자유가 있는 그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국가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사나운 마누라와 함께 사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한국인들의 내면은 쓰레기 더미 위에 핀 들꽃처럼 어둡다. 그렇지만 문화적 의욕은 매우 강하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집도 없고 통장에는 한달치 생활비만 남아 막막했던 나를 살려낸 것은 한국의 독자들이었다. 그런 독자들이 있는 한국에 태어난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 펜클럽과의 문학살롱에 참석한 신 작가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의 문학담당 에디터인 아리파 아크바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에 대해 “집필 기간은 1년 반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쓰인 작품”이라며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밤 기차에서 엄마의 고단한 얼굴을 보고 저 고단한 엄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 소설의 씨앗”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너무나 빠르게 뭔가가 변화하고 뭔가를 상실하게 되는 구조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다 ‘엄마’라는 상징성을 떠올려 주제로 삼았다”고 부연 설명했다. 또 “이 작품을 통해 엄마도 나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고 또 다른 엄마의 배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울면서 태어났다는 것, 강해 보이지만 상처가 많고 그 자신도 엄마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2008년 발표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해외 31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이 소설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2011년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해외 번역본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예컨대 “한국에서 부부간 정을 담아 쓰는 호칭인 ‘당신’이 무미건조하게 ‘you’라고 번역된 부분 등은 아쉬웠다”고 했다. 차기작이 무엇이냐는 독자의 질문에는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사람 이야기, 네 사람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되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며 “빨리 정해서 당장 내일부터라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런던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문화 In&Out] 출판계 ‘이방인 번역’ 논란 왜?

    [문화 In&Out] 출판계 ‘이방인 번역’ 논란 왜?

    출판계에 때아닌 ‘번역 논란’이 일고 있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이방인’이 국내에선 원작과 다르게 번역돼 읽혀 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번역돼 수천만 부가 팔린 고전 중의 고전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는 이정서라는 필명을 지닌 블로거다. 이씨는 최근 카뮈 권위자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카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카뮈전집을 완간한, 프랑스 문학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다. 이씨가 최근 펴낸 ‘이방인’(새움)은 340쪽이 넘는 책의 절반 이상을 역자노트로 채웠다. 작가는 “원래 카뮈의 ‘이방인’은 서너 시간이면 다 읽고 감탄할 수 있는 (쉬운)소설이었다. 어느 한 문장 이해되지 않는 곳이 없는 완벽한 글”이라고 강조한다. 이씨는 김 교수의 번역본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김 교수의 번역본에서는 주인공(뫼르소)이 태양빛이 너무 찬란해 아랍인에게 총을 쏘지만, 이씨의 책에선 아랍인의 칼날에 비친 햇빛을 보고 위협을 느껴 총을 쏜다. 이씨는 주인공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해석한 것이다. 이씨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권위와 번역자의 위상에 이중으로 짓눌려 지금껏 작품의 실체를 제대로 뜯어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방인’ 번역본과 김 교수의 번역본, 원문을 나란히 놓고 김 교수 번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는 “책을 내면서 본명과 약력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실제 문장만을 집중해서 보자는 취지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문단에선 원작과 괴리된 번역이 종종 문제점으로 지적돼 오고 있다. 해외 원작을 번역하는 데 있어 역자의 문학적 재량은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돼야 하며, 그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는 앞으로 출판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소설가 김남일 실천문학사 대표에

    소설가 김남일 실천문학사 대표에

    소설가 김남일(57)씨가 최근 열린 도서출판 실천문학사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1983년 ‘우리세대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김 신임 대표는 ‘청년일기’, ‘천재토끼 차상문’, ‘일과 밥과 자유’, ‘민중신학자 안병무’ 등 다양한 소설과 평전 등을 냈다. 1981년 겨울부터 1983년까지 독립된 실천문학사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으며 제1회 전태일문학상, 제2회 아름다운작가상, 제17회 제비꽃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권정생 창작기금을 받았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어지럽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시대에 그 우뚝했던 창간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지 슬기롭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 [아낌없이 주는 마음 더 널리 퍼지길…] 개관 앞둔 증평군립도서관에 어린이책 1200권

    [아낌없이 주는 마음 더 널리 퍼지길…] 개관 앞둔 증평군립도서관에 어린이책 1200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지낸 이상배(62) 작가가 25일 고향인 충북 증평군에 책 1200권을 기증했다. 이 작가가 기부한 것은 아동을 위한 책들이다. 책 가운데 470권은 사비 300여만원을 들여 구입한 신간이다. 나머지는 자신의 저서와 가지고 있던 책들이다. 이 책들은 다음 달 1일 개관하는 증평군립도서관에 비치된다. 이 작가는 “군립도서관 개관을 축하하고 고향에 독서 문화가 확산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내놓게 됐다”면서 “책을 접할 기회가 적은 증평 어린이들을 위해 계속 책을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책 기증은 처음이 아니다. 증평 도안초등학교 37회 졸업생인 그는 최근 5차례에 걸쳐 책 500여권을 모교에 전달했다. 오는 5월 어린이날을 맞이해서도 도안초교에 책을 기증할 계획이다. 이 작가는 1982년 ‘엄마 열목어’로 등단했으며 그동안 도서상 기획편집부문, 한국동화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그가 쓴 ‘책 읽는 도깨비’는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1호 증평군민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경남 군 평생교육담당은 “군립도서관에 책을 기증한 것은 이 작가가 처음”이라면서 “이 작가의 도서 기증을 계기로 많은 분이 군립도서관에 책을 지원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증평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인생은 뜨겁게(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세기 대표 지성인이자 저술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필가이기도 한 영국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자서전이다. 2003년 상·하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첫 완역판에서 각 장에 수록된 서간문을 덜어내고 한 권으로 재편집한 개정판이다. 러셀은 생의 마지막에 출간한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을 지배해 온 세 가지 열정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대한 열정, 진리 추구에 대한 열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그것이다. 러셀은 이 열정들이 거센 바람과도 같이 자신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면서 그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했다. 영국 웨일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도덕적으로 엄격한 조부모 밑에서 고독한 유년 시절을 보낸 러셀이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성장하는 과정, 1차 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던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596쪽. 1만 9000원.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가 넘게 팔린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60세이던 1950년 쓰기 시작해 15년 뒤인 1965년 완성한 자서전이다. 작가의 경력은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그녀의 수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델이 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 유명 작품을 쓰게 된 계기와 후기 등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프랑스에서의 추억, 1900년대 상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세계대전 무렵 영국 여성들의 삶이 묘사된다. 크리스티는 서문에서 인생은 흥미진진하고도 즐거운 현재, 모호하지만 흥미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미래, 현재를 떠받들고 있는 기억과 사실들인 과거로 구성된다면서 추억의 즐거움을 누리겠다고 했다.자서전을 끝내며 크리스티는 “이만 자서전을 끝맺어야 할 듯싶다. 삶에 관한 한 말해야 할 것은 모두 말했으니”라고 했으나 이후 10년이 그녀 생애 최고의 시간들이었다. 808쪽. 2만 8000원. 인간관계를 발명한 남자(스티븐 와츠 지음, 정지현 옮김, 아템포 펴냄) ‘현대 성공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일 카네기(1888~1955) 평전이다. 카네기의 삶을 전면적으로 다룬 최초의 평전으로, 미주리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미국 현대 인물의 평전을 집필하는 스티븐 와츠가 썼다. 현대 미국 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20세기 현대 성공철학의 메시아로 불리는 카네기의 삶과 의미를 풀어 나간다. 미주리 주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아버지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데일은 대학 시절부터 대중 연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형식주의를 거부하는 카네기의 수사법과 연설법은 대학 공부를 마칠 무렵 완성됐다. YMCA에서 대중 연설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현대적인 성공철학을 정의한 베스트셀러 ‘카네기 인간관계론’(1936년 초판 발행)을 썼다.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호감 가는 성격을 만들고 다른 사람의 심리적 요구를 이해하라며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조언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632쪽. 2만 8000원. 모험본능을 깨워라(스킵 요웰 지음, 이채령 옮김, 푸르메 펴냄) 세계적인 아웃도어용품 ‘잔스포츠’의 공동 설립자인 히피 출신 사업가 스킵 요웰(1946~)의 인생, 모험 그리고 창의적인 사업 이야기다. 미국 서부 캔자스주의 촌구석 출신 소년이 모험 중독자이자 훌륭한 산악인이 된 사연, 삼촌의 정비소 창고에서 사촌과 그의 여자 친구 잔이 패밀리 사업으로 시작한 일이 아웃도어 산업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사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초기에 창립자 3명이 인디언이나 에스키모 복장을 하고 직접 카탈로그 사진을 찍었던 일, 돔형 텐트를 착안한 일화 등을 통해 저자는 잔스포츠의 성공 비결로 한계를 정하지 않은 창립자들의 순수함, 철저한 제품 검증 등을 꼽았다. 매우 독특하고 유쾌한 인물의 자서전인 동시에 성공한 벤처 사업가의 경영 전략이 담긴 경영 서적이기도 하며 모험 에세이로도 읽을 수 있다. 288쪽. 1만 5000원.
  • “미남 아니잖아!”… ‘新 4대 미남’ 그림 불만 폭주

    “미남 아니잖아!”… ‘新 4대 미남’ 그림 불만 폭주

    중국에서 전시중인 그림 ‘신 4대미남도’(新四大美男图)가 담긴 액자가 훼손됐다. 범인은 그림을 보던 한 시민이었고, 이유는 “그림 속 4대 미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중국 중신망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8일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에서 전시중인 이 그림에는 모옌, 류샹, 리위강, 천광뱌오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다양한 유명인들이 포함돼 있다. 모옌(莫言, 60)은 중국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가이며, 류샹(劉翔, 32)은 현재 정치인으로도 활동하는 육상선수다. 리위강(李玉刚, 37)은 가수이자 배우로, 천광뱌오(陳光標, 47)는 중국 출신의 괴짜 백만장자로 유명하다. 고운 비단옷을 차려입고 한 손에 부채를 든 4명을 한 화폭에 담은 ‘신 4대미남도’는 중국의 유명 화가 왕쥔잉이 그린 것이다. 왕쥔잉은 지난해에도 중국을 대표하는 4대 미녀를 담은 유화 ‘신 4대미녀도’를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당시 그의 작품에는 가수 쑹주인, 배우 판밍밍, 섹시스타 루옌, 배우 천슈 등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 중 3명은 ‘성형미인’이라는 별칭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 4대미남도’가 공개되자 역시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생겨났고, 급기야 한 시민이 “그림 속 인물 선정에 불만이 있다”며 액자를 부수기에 이른 것. 네티즌들은 “‘’신4대미남’ 그림 속에 ‘미남’이 없어서 화가 났을 것”, “‘미남,미녀도’가 공개될 때마다 논란이 되는 것 같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해당 화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