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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회 공초문학상 김후란 시인

    제25회 공초문학상 김후란 시인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25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김후란(82) 시인이 17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지난 2월 펴낸 시집 ‘고요함의 그늘에서’에 실린 ‘지는 꽃’이다.시상식은 다음달 1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시상식이 끝난 뒤 수상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서울 수유리의 공초 선생 묘소를 찾아 54주기 숭모제를 지낸다. 공초문학상은 무소유의 삶을 시로 펼쳐낸 공초 오상순(1894~1963)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됐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진주에, 진주에 갔었다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진주에, 진주에 갔었다

    진주에서 하룻밤 자고 올 일이 생겼다. 피치 못할 행사가 저녁에 있어서 심야우등을 타고 돌아오더라도 당일 고양이밥 주는 데에 차질이 있기에, 하루 ‘알바’를 쓰고 느긋이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진주가 고향인 후배를 비롯해 친구 몇이 동행했다. 이참에 여기저기 둘러보자고 오전에 서울을 떠났다. “너 얼마 만에 서울을 뜨는 건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알바 하루 더 쓰지 그랬니?” 운전을 맡은 친구 말에 도리질을 했지만 설핏 ‘그럴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흠, 자랑하자면, 사실 내가 진주시에서 주는 아름다운 상 ‘형평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혼자 훌훌 다녀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까지 여덟 명이 가게 됐다. 원래 정오쯤에나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야 된다는 주장이 대세여서, 그럼 너희끼리 먼저 가라고, 나는 버스 타고 뒤에 가겠다고 했다가 친구들이 삐지는 바람에 절충해서 오전 10시에 떠나게 된 것이다. “일찍 움직이면 전날 잠도 설칠 텐데, 폭삭 지치고 늙은 모습으로 시상식 가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내 하소연이 먹혀서 그나마 늦춰졌다. 집 앞에 왔다는 전화를 받고 나가자 친구가 인상을 쓰며 빽 소리를 질렀다. “야아! 너 그렇게 입고 가는 거야!?” 가는 길의 피로를 줄이려고 티셔츠에 아래는 파자마 같은 걸 입었더니 그런다. “도착하면 갈아입을 거야.” 나는 의기양양 실크원피스를 들어 보였다. “그래도 그 차림은 너무했다. 휴게실도 들르고 그럴 건데.” 친구가 혀를 찼다. 나는 뒷자리에 올라 좌석 가득 짐을 늘어놓았다. 잠시 후 픽업할 후배가 뒷자리를 탐낼까 봐 그런 것이다. 후배를 태운 뒤 짐을 모두 바닥에 내려놓고 길게 누웠다. 날씨도 쾌청했다. 수다에 동참하다가 어느새 푹 잠이 들었다. 차가 있으니 좋구나. 휴게실에 들렀을 때 깨서 인삼쥬스를 마셨다. 비로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 후배에게 바꿔 앉자고 했더니 괜찮단다.친구는 남편 고향이 진주인데, 그의 고향 사랑이 대단해서 부부가 자주 진주를 다녀왔다. 무슨 비빔밥이니 냉면이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노래를 했던 친구는 이번 기회에 우리한테 맛을 보이게 돼서 보람찬 듯했다. 진주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안내하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다들 배고프던 차였기에 맛이 없을 수 없었다. 친구는 역시 진주의 명물이라는 찐빵집에 들렀다. 단팥이 든 작은 찐빵을 진한 단팥죽에 찍어 먹는 건데, 사려는 사람이 길게 줄을 서기 때문에 바쁜 사람은 맛도 못 보는 거라고, 마침 손님이 없어서 운이 좋다고 했다. 후배는 고향에 아주 오랜만에 온다고 했다. 진주시 모습이 그 옛날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와 후배는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 전부터 있던 것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숙소에 가서 한숨 더 잔 뒤 움직이고도 싶었지만, 나를 위해 왕림한 두 진주 연고자들을 ‘나도 이제 진주 연고자’가 따르지 아니 할 수 없었다. 후배의 모교인 진주고등학교도 들르고, 후배의 소년시절 추억이 깃든 진양호에도 갔다. 진양호는 볼만했다. 진양호 전망대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노약자도 다니기 편하게 기능적이었다. 거기서 내려다보니 마치 남쪽 다도해 같은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게 지리산이라고 했다. 와, 지리산! 나는 정말 가 본 곳이 거의 없다. 숙소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행사장에 갔다. 시상식은 성황이었고 축하공연도 아주 좋았다. 시인 나희덕의 축사도 훌륭했고. 내 수상소감만 엉망이었다. 단상에 올라가니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한 문장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다가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르겠다. 아, 몰라. 그런 망신이 없다. 다음 시상식부터는 잘해야지(헤헤). 나희덕이 새로 낸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를 줬다. 많이도 다니고 진하게도 봤구나. 글도 좋고 사진도 좋다. 언제 봐도 글이나 사람이나 의젓하고 단아한 나희덕이다. 열정을 품은 사람은 모습이 단아하다. 나희덕 산문집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내게 열정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단아함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 “서툴지만 해볼래요” 아이도 외국인도 젓가락질 삼매경

    “서툴지만 해볼래요” 아이도 외국인도 젓가락질 삼매경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에 있는 30여개의 관절과 70여개의 근육이 움직이며 두뇌 활동을 도와준다. 젓가락질이 정확한 손놀림과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이유다. 우리나라가 골프와 양궁 강국이 되고 반도체, 줄기세포, 복제기술 등 미세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 우수한 것도 젓가락의 힘이라고 한다. 젓가락이 세계를 들어 올린 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작가 펄 벅은 “한국인의 젓가락질은 밥상 위의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다”고 극찬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젓가락의 위대함이 충북 청주시의 젓가락 테마사업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젓가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한국만의 색채와 장인정신을 입히자 외국의 반응까지 뜨겁다. 젓가락을 통한 새로운 한류 열풍이 기대되고 있다.지난달 25일 태국 방콕의 한국문화원 전시관. 일본·영국·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태국주재 문화원 관계자와 태국 현지인 등 300여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청주시의 젓가락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다. 개막 축하공연으로 사물놀이와 젓가락 장단 퍼포먼스가 시작되자 전시관은 한순간에 축제장으로 변했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흥겨운 장단에 모두가 하나가 됐다. 관람이 시작되자 외국인들은 한국 젓가락의 매력에 눈과 귀를 모두 열었다. 젓가락의 역사와 사용법을 배운 외국인들은 서툰 손놀림으로 젓가락질을 하며 실수를 연발했다. 그러나 젓가락질이 재미있고 신기한 듯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젓가락 만들기 등 체험코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문화원이 인터넷을 통해 체험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모집 하루 만에 정원을 초과했다. 주태국 한국문화원 강은아 원장은 “2013년 한국문화원 개원 이후 다양한 콘텐츠를 태국에 전파했는데 이번 젓가락특별전은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며 “젓가락콘텐츠를 더욱 발전시키면 동남아는 물론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사업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다음달 2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특별전은 조상들의 지혜를 담아 청주가 만든 옻칠 수저, 분디나무 수저, 방짜유기수저 등을 소개한다. 옻칠은 방습, 방염, 방충 효과가 뛰어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장점이 있고 중부권에 자생하는 분디나무는 잎과 열매가 맵고 항균성이 좋다. 구리와 주석을 78대22의 비율로 합금해 만들어 낸 유기는 무독, 무취, 무공해의 특성을 지녔다.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한국의 수저 유물 등도 함께 전시된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이범석 청주 부시장은 지난 2일 “특별전은 청주에서 열린 ‘젓가락 페스티벌’에 대한 나라 안팎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주태국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이뤄졌다”며 “젓가락을 테마로 한 전시가 젓가락 비문화권에서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청주의 젓가락사랑은 2015년 시작됐다.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를 통해 청주가 중국 칭다오, 일본 니가타와 함께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된 게 계기가 됐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은 한·중·일 3개국이 매년 1개 도시를 선정해 활발한 문화교류를 진행하는 것이다. 사업 취지에 맞게 청주시가 3개국이 함께할 수 있는 소재를 고심하던 중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의 명예위원장을 맡은 이어령(83) 전 문화부 장관이 젓가락을 제안했다. 젓가락은 3개국이 2000년 넘게 사용한 필수품이자 나라의 음식문화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는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식탁이 커 길고 끝이 뭉뚝한 나무젓가락을 주로 사용해 왔고 일본은 생선가시를 자주 발라 먹다 보니 젓가락이 짧고 끝이 뾰족하다. 한국은 고기와 전 등 무거운 음식을 먹어 금속젓가락을 사용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3개국의 젓가락 이야기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다’며 무릎을 탁 쳤다. 또한 청주는 젓가락과 인연이 깊다. 청주권에서 5000여종의 수저 유물이 출토됐고 고려가요 ‘동동’에 분디나무젓가락 이야기가 나오는데 분디나무는 청주권에 대량으로 자생하고 있다. 옛 수저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디자인과 문양이 그려졌는데, 청주는 인류생명문화의 상징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볍씨 유적이 있는 곳이다.첫걸음은 2015년 11월에 개최된 젓가락페스티벌이다. 청주시는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하고 이날을 전후해 다양한 젓가락 행사를 열었다. 젓가락을 테마로 한 학술회의와 전통 유물부터 창작품까지 3개국의 진귀한 젓가락 1000여점을 전시한 젓가락특별전을 열었다. 또한 젓가락질 도사를 뽑는 젓가락경연대회도 가졌다. 세계 최초의 젓가락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일본 NHK가 젓가락페스티벌의 주요 내용을 세계 150여 지역에 생방송으로 중계했고 아랍계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영했다. 중국과 일본 주요 매체들도 페스티벌의 내용과 취지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지난해 열린 젓가락페스티벌도 대박 행진을 이어 갔다, 유물과 창작젓가락 등 기상천외한 젓가락 3000여점이 호기심을 자극해 방문객이 5만 2000명에 달했다. 우리나라 최초 젓가락협동조합인 ‘가락공방’과 이종국 작가가 펼친 ‘내 젓가락 갖기 프로그램’ 작업장 역시 관람객으로 붐벼 1000여명이 자신만의 젓가락을 만들어 갔다. 젓가락 판매까지 이뤄져 방문객이 행사 기간에 구입한 젓가락이 1억원어치나 됐다. 올해는 3개국의 젓가락 전문가들이 3개국의 젓가락 문화를 이해하는 책을 내기로 했다. 청주시는 특색 있는 디자인과 스토링텔링을 접목한 청주만의 젓가락 50여종과 젓가락 장단 공연 콘텐츠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달에는 젓가락 상품 개발과 글로벌마케팅, 페스티벌 등 모든 젓가락 테마사업을 주도할 젓가락연구소를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내에 설립할 계획이다. 젓가락연구소 설립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이승훈 청주시장은 “젓가락연구소가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해서 콘텐츠 개발 등 모든 젓가락 테마사업을 주도하게 된다”며 “청주만의 특성이 가미된 젓가락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세계화해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주요 도시에 상설 판매장을 운영하고 전시회, 박람회 등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내 젓가락 갖기·선물하기 운동도 전개한다. 3개국이 공동으로 젓가락문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시는 젓가락이 3개국의 공동문화인 데다 포크와 나이프 역사보다 1500년 가까이 오래됐고, 젓가락질이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유전자라는 점에서 문화유산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은 “한·중·일 3개국이 손을 잡고 젓가락 테마사업을 펼치는 것은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벨 평화상감”이라며 “젓가락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직지와 함께 청주를 상징하는 또 다른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젓가락을 통한 지역경제활성화를 꿈꾸고 있다. 그는 “젓가락콘텐츠를 통한 장인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유도해 그들이 경제적 가치를 얻도록 할 방침”이라며 “젓가락 공방이나 갤러리 등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청주공항 등 지역 내 곳곳에 청주젓가락 상설판매장을 만들고 수출도 하겠다”며 “이미 유럽 사람들 사이에는 한국 젓가락을 수집하는 유행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젓가락을 통해 문화가 산업이 되고 지역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강조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新전원일기] 바리스타 농부, 사람 향기 좇는 커피 마을의 꿈

    [新전원일기] 바리스타 농부, 사람 향기 좇는 커피 마을의 꿈

    봄꽃이 절정을 지나가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등이 전 국토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다가 서서히 지고 있다. 졸졸졸 물 흐르는 계곡 옆 경기 ‘가평하늘커피 농장’에도 진한 커피 꽃 향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모양도 향도 색깔도 재스민 꽃과 비슷하다. 농장주 엄기용(61)씨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나무가 되나요”란다. 물론 된단다. 온도만 잘 맞춰 주면….# 보고 듣고 체험하는 커피 농장의 재미 커피는 흔히 6~7세기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칼디’라는 염소 치는 목동이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염소들이 유난히 활기차고 밤에도 잠을 잘 자지 않아 살펴보니 빨간 열매를 먹고 있더란다. 그 열매를 부근의 수도원으로 가져가 보고했다. 수도원장은 ‘신의 저주’라 여겨 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열매 안에 들어 있는 콩이 타는 냄새가 온 수도원 안으로 향긋하게 퍼졌다. 수거해 뜨겁고 검은 음료를 추출해 냈다. 그 후로 밤샘 기도를 하는 수도사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됐다.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터키 등으로 퍼지며 11세기 페르시아에서는 약재로 처방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때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무슬림이 즐기는 음료라 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그 맛과 향과 효능을 높이 산 교황이 커피에 세례를 주고서야 일반 대중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게 됐다. 한쪽에서는 묘목이 자라고, 한쪽에서는 커피 꽃이 피고, 한쪽에서는 열매가 맺어 빨갛게 익어 가는 온실의 입구 벽에 붙은 칼디상 앞에서 엄씨가 일사천리로 설명하는 커피의 역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세계 3대 커피의 특징과 원산지, 재배법, 향과 맛을 비롯해 씨앗을 뿌리고 싹이 돋고 묘목이 되어 3~4년이 지난 뒤 열매를 수확하기까지의 과정, 열매 채취 방법, 가공 방법에 따른 분류에 대해서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故박완서 선생님 만남과 이유 있는 퇴임 엄씨가 농장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 개장한 지는 이제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1981년 양평군에서 7급 공채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엄씨는 34년이 되던 해인 2014년 여름, 구리시 안전도시국장이라는 직함의 3급 부이사관으로 인생의 제1막을 마감했다. 그가 2년 이른 퇴직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계획했던 사업 추진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계획했던 사업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커피 테마 농장이었다. 아침에, 식후에, 일하다가, 손님을 만나, 휴식을 취하며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좀더 특별하게 만난 것은 그로부터 4년여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기획한 아차산 고구려 대장간 마을 조성을 위해 인근을 수시로 드나들 때였다. 아치울 마을의 주민인 고 박완서 선생을 댁 앞에서 우연히 만나 집 안으로까지 들어가게 됐다. “집 안에 진한 커피 향이 가득 차 있더라고요. 한창 바쁠 때였는데,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계셨는데 집안의 분위기며, 새로 내려주시는 커피 향과 어우러져 뭔가 다른 격조가 느껴졌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일에만 급급하며 살아왔는지.” 이후 화분에 심긴 커피 묘목 한 그루를 구입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는데 한 해가 지나니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해 다시 심어봤다. 신기하게도 싹이 나고 떡잎이 자라 나무가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니 34평 아파트 베란다가 온통 커피나무 숲이 되었다. “커피는 늘 마시는데 한 잔에 5000~6000원씩이나 하고. 이왕 마실 거 좀 알고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더욱 빠져들게 됐고 테마 농원 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죠.” 그러나 사실 베란다에서 조금씩 키울 때부터 바쁜 엄씨 대신 물을 주고 순을 따 주는 등 가꾸는 일은 주로 아내 장경순(58)씨의 몫이었다. 그런데 커피로 귀농을 한다니, 취미로 즐겁게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터였다. 게다가 장씨는 정든 도시를 떠나 도통 시골살이를 할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엄청 반대했어요. 남편만 내려가게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저렇게 좋아하는데, 34년 동안 가족을 위해 일만 해 온 사람인데,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게 해 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은 귀농, 나는 귀촌이라고 못을 박고 들어왔죠. 그런데 농사일이라는 게 어디 또 그런가요. 막상 닥치니 네 일, 내 일이 없게 되더라고요.” 그 대신 엄씨는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새로 구입하는 땅이며 집 등을 모두 아내 장씨의 몫으로 돌렸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이름으로만 하고 살아왔더란다. 아내에게도 아내의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 농장 대표도 실은 저 사람이에요. 저는 그냥 여기 일하는 사람이죠. 바리스타 농부 엄기용, 저는 이제 그거면 되거든요.”# 경험의 힘, 실수가 선생이다 2013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4년 농지를 매입했다. 그전부터 목공이며 작물 선택 및 관리 등의 귀농 교육도 꾸준히 받았다. 그해 6월에 퇴직하고 인근 마을로 세를 들어 이사했다. 다음해에 농가주택 건축 허가를 받아 집을 지었다. 농장을 조성할 때에도 집을 지을 때에도 마을 주민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이 추천하는 업체에 의뢰했다.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주민들은 서로 내 일처럼 도와주었다. 그런데 자금 계획을 착실하게 세운다고 세웠는데도 2년여간 예상 외의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엄청 좋다’라는 지인들의 칭찬에 취해 생활비 부담만 가중시켰다. 관상용 커피 외에 보조 작물로 친환경 논농사도 시작하고 각종 과수도 심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큰 나무를 이식했다가 고목으로 사라지게 하고, 일 없는 포도원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했다가 70%를 동사시키기도 했다. 커피나무를 시험재배했던 비가림 천막이 날아가 막 모내기를 마친 인근의 논바닥을 헤집고 포도 꽃이 잔뜩 피어 있는 남의 포도나무에 가 걸려 있기도 했다. “구리시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었는데 마을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그땐 정말 거기서 여기까지가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포도 꽃이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잖아요. 대체 얼마나 배상을 하게 될지 가늠도 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다행히 넝쿨 유인줄을 고정시키는 철사에 딱 걸려서는 꽃이 거의 다치지 않은 거예요. 정말 하나님이 도우셨구나 싶었죠.” 하루에도 열두 번씩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커피나무는 품종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23~25도를 유지해 줘야 한다. 온실관리 비용 등 운영비는 계속 들어가는데 입소문만으로 교육생과 체험객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희망은 점점 더 절망 쪽으로 치우쳐 갔다. 그때 찾아낸 것이 ‘가평군 농촌교육농장 시범사업 공모’였다. 처음 구상 단계부터 그린 설계도와 마인드맵을 바탕으로 열심히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심사받고 실무자의 현장 실사도 받았다. 11개 농가 중 최종 2개 농가 안에 들어 보조금을 받게 됐다. 엄씨는 공직 생활로 선정하던 입장에서 막상 받는 입장이 돼 보니, 보조금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며 어떤 곳에 쓰여야 하는지 새삼 절감하게 됐단다. 전반적으로 갖춰져 있는데 약간 부족한 상태, 교육장 및 시설 확충을 위해 1500만원, 스스로 교육자가 되기 위한 공부 및 컨설팅 비용으로 1000만원, 도합 2500만원의 지원금이 당시로서는 2억 5000만원보다도 더 큰 의미로 다가오더란다. 절망 끝에 끌어올린 희망이었다.# 커피 꽃의 꽃말 ‘언제나 당신과 함께합니다’ 직접 흙바닥을 고르고 나무 탁자와 의자 등을 짜서 한 달 만에 바리스타 교육장을 온실로부터 분리시켰다. 로스팅만 하는 장소와 시설을 따로 마련하고 화장실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도 새로 꾸몄다. 농장을 조성하고 집을 짓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 과정을 한 달 내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생중계했다. “퇴직하면서 ‘네이버 밴드’(꿈이 열리는 커피나무)를 열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는 퇴직 후 뭐든 하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처음부터 커피 농장을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퇴직을 했던 터라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죠. 그런 속설을 깨고 후배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후 그것이 거꾸로 농장의 자산이 됐다. 후배들이 타지에서 교육생을 보내고, 지인들의 입소문을 통해 학교와 학원 및 각종 단체, 개인 체험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휴양단지인 지역 특성을 활용해 인근의 펜션과 연수원과도 협약을 맺었다. 2016년 4월 정식 개장 이후 12월 말까지 1600여명의 교육생과 체험객이 다녀갔다. 8개월 동안 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려 운영비를 확보하고 올봄에는 관상용 묘목을 500그루 이상 판매했다. 현재까지의 예약 상황만으로도 올해 5000만원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고 있다. 농장의 규모는 전체적으로 1700평 정도란다. “가장 보람 있을 때는 3, 4대가 함께 와서 즐거워할 때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녀, 손자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잖아요. 마지못해 억지로 체험 학습 온 학생들이 바리스타뿐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여러 직업군에 대해 알게 되고 그 꿈을 갖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올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최종 목표이자 꿈은 조선 숙종 때부터 신숙이라는 분을 중심으로 100여년간 유토피아였다는 이 지역을 커피 테마 마을로 조성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내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여유 있고 격조 있는’ ‘휴식’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커피 꽃의 꽃말이 ‘언제나 당신과 함께합니다’인 것처럼, 그들이 택한 인생의 제2막은 결국 사람인가 보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할 때 삶의 격조는 저절로 깊어질 터이다. 그들의 바람은 곧 우리의 바람. 흙 냄새, 물 냄새, 바람 냄새, 갓 볶아 내린 진한 커피 냄새 속에 내가 있고, 또 당신이 있다.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괴산’으로 EBS 라디오 문학상 수상. 저서로는 소설집 ‘붉은 나무젓가락’, 장편소설 ‘수목원’ 등이 있다.
  • [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천재들의 브로맨스

    [박형주 세상 속 수학] 천재들의 브로맨스

    얼마 전 런던에서 만개를 앞둔 봄꽃을 보며 잠시 망중한을 누린 런던대학 근처의 공원 이름은 러셀 광장이었다. 이 공원 옆 드모르간 하우스는 수학적 귀납법을 체계화한 영국 수학자의 이름을 땄다. 이 건물의 주인은 런던수학회이고 건물 안에서 가장 큰 회의실은 하디 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셀과 하디라는 두 이름을 한 골목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하디는 최근 개봉됐던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서 인도 수학 천재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친구로 나와 국내에 알려졌다. 인도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며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한 라마누잔을 케임브리지대학에 초청해 천재성을 꽃피게 해 준 바로 그 사람이다. 하디 자신도 수학적 엄격함을 영국에 도입한 훌륭한 수학자였지만, 자기 평생의 가장 큰 성취는 라마누잔을 발견한 것이었다고 털어놓곤 했다. 그래서 천재와 교수의 브로맨스를 다루는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이 주연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실화 버전에 가깝다. 버트런드 러셀은 할아버지가 영국 총리를 두 번 역임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유클리드 기하학 논문을 쓴 수학자였고, 칸토르 집합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러셀 패러독스를 창안한 논리학자였으며, 화이트헤드와 함께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를 저술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1950년 노벨상은 정력적인 저술 작업에 대한 문학상이었다. 러셀과 하디와 라마누잔은 5년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 여러 갈래로 얽힌다. 라마누잔이 인도를 떠나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건 1914년이었고 박사 학위를 받은 건 1916년, 영국왕립학회의 역사상 최연소 펠로로 선출된 건 1918년인데 같은 해에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펠로가 됐다. 교수가 된 것이다.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평화운동을 벌이다 1916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 직에서 해임됐다. 하디는 러셀 구명 운동에 나서지만, 결국 라마누잔이 1919년에 인도로 돌아가자 옥스퍼드로 자리를 옮긴다. 하디가 트리니티를 떠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러셀이 없는 곳, 라마누잔도 떠난 곳에 더 머무르기 싫어서였을까. 하지만 1931년에 하디는 케임브리지 교수로 되돌아간다. 런던수학회는 왜 학회 건물에서 가장 큰 방을 하디 룸이라고 했을까. 대개 학문 분야에서는 학자들의 결사체가 있어서 학문적 진전의 확인과 기록, 그리고 난제 해결을 위한 생각의 교환 매체 역할을 한다. 수많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논문지를 발간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리하고 드러낸다. 보통은 각 나라 수학자들의 모임이라는 성격 때문에 미국수학회나 대한수학회처럼 국가 이름이 앞에 붙는다. 반면에 영국은 런던수학회나 에든버러수학회같이 도시명이 붙은 수학회가 몇 개 있다. 오랜 영연방 역사의 산물인데, 통상적으론 런던수학회가 영국수학회 역할을 한다. 하디는 70세의 나이로 1947년 사망할 때까지 독신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을 런던수학회에 기부했다. 덕분에 수학자들이 내는 연회비에 의존해서 근근이 살림을 꾸려 나가던 런던수학회는 건물을 샀고 건물 내 일부 공간을 타 학회에 대여해 안정된 재정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됐다. 학술지 발간 등의 활동에서 세계적으로 드문 규모와 수준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런던의 어느 작은 골목에서 본 학자들의 선의와 지적 우정의 흔적은 러셀 광장의 봄꽃만큼이나 여운이 남았다.
  • 김남조 시인 ‘시계’ 정지용문학상

    김남조 시인 ‘시계’ 정지용문학상

    제29회 정지용문학상에 김남조(90) 시인의 시 ‘시계’가 선정됐다고 지용회가 17일 밝혔다. 심사에 참여한 김재홍 경희대 명예교수는 “생명에 대한 순응 또는 생의 쓰라린 긍정을 통해서 삶의 고독과 허무를 이겨내려는 안간힘을 표출하고 있다. 원로시인의 인생 또는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고뇌를 잘 형상화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새달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제30회 지용제 행사와 함께 진행된다.
  • ‘K2 무산소 등정’ 美 리지웨이,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첫 수상

    ‘K2 무산소 등정’ 美 리지웨이,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첫 수상

    울산 울주군은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첫 수상자로 미국의 릭 리지웨이(68)를 선정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울주세계산악문학상은 전 세계 자연과 환경, 등반, 영화, 문학, 언론 등 산악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선정위원회는 올해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로그램 콘셉트인 ‘자연과의 공존’에 가장 맞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제2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기간(오는 9월 21~25일)에 열릴 예정이다. 리지웨이는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K2를 1978년 미국인 최초로 무산소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1985년 세계 최초 7대륙 최고봉 원정대와 함께 오른 뒤 ‘세븐 서밋’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또 산악문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 권위 다큐멘터리 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고 두 번이나 표지 모델로 뽑혔다. 리지웨이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측의 배려에 감사하고 선정 덕분에 더 겸허한 마음을 갖는다”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우호인문학상에 김항·남수영씨

    재단법인 우호문화재단은 제7회 우호인문학상 수상자로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와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김항 교수의 ‘20세기의 보편주의와 ‘정치적인 것’의 개념’, 남수영 교수의 ‘벌거벗은 시선 마주하기:영화적 장치의 진화에 맞서다’가 수상작이다. 우호인문학상은 생전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우호(于湖)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뜻을 기려 기초 인문과학 분야의 학술연구를 격려하고자 제정됐다. 시상식은 21일 오후 6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암 앞에 의연했던 50인의 마지막 기록

    암 앞에 의연했던 50인의 마지막 기록

    암, 50인의 용기/야나기다 구니오 지음/김성연 옮김/바다출판사/472쪽/1만 6500원 고령화시대에 웰빙만큼 주목받는 것이 바로 웰다잉이다. 일본의 80대 노장 르포라이터가 30년간 암에 걸린 유명인사 50여명의 인생의 마지막장을 기록한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암은 우리 앞에 깊이 각인된 비극의 초상이지만 암 환자들의 일상은 비극 일색이 아니었다. 담담한 하루와 절망스러운 하루가 교차하고 오히려 더 행복해서 이상한 하루도 있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조금 빨리 우리가 ‘죽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을 뿐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직시는 삶의 농도를 진하게 하며 풍부한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풍부한 삶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암 환자들은 문학, 음악, 학술, 영화, 재계 등 각계각층에서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불치병과 함께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의 말로를 보냈다. 저자는 고인들이 남긴 투병기와 유가족 인터뷰 등을 통해 이들이 암을 마주하는 자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암과 함께한 삶 속에는 절망과 희망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생의 사유가 피어났다. 노벨문학상에 자주 거론됐던 ‘빙벽’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는 암 진단을 받고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의연한 태도로 투병 중에 장편소설 ‘공자’의 집필을 마무리했다. 일본 만화계의 아버지이자 ‘우주소년 아톰’의 만화가인 데쓰카 오사무는 암에 걸린 주인공이 마지막 작가 혼을 불태우는 만화를 구상했다. 걸출한 현대 음악가 다케미쓰 도루는 날마다 긍정적인 일기를 쓰며 투병 생활을 견뎠고 작가 고쿠분 이치타로는 위의 대부분을 잘라낸 뒤에도 일본 정부의 사상 탄압에 맞섰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암이라는 병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일상을 선사한다. 하지만 암을 앓았던 이들이 겪은 병고의 현장에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있었다. 히로히토 일왕이 암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가장 막막했던 것도 왕비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지였고 데쓰카 오사무의 부인은 남편에게 암 진단 사실을 속인 것을 후회했다. 저자는 “그들이 번뇌하던 삶의 끝자락을 함께 걷다 보면 우리의 실존적 운명을 숙고하게 된다. 그것은 절망 일색이 아닌 다채로운 사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시선들

    세월호를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시선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김탁환 지음/돌베개/352쪽/1만 3000원“끔찍한 불행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찾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작은 희망들을 문장으로 옮기고 싶었다.” 지난해 장편 ‘거짓말이다’로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한 김탁환 작가의 수상 소감이다. 작가는 이 바람을 소설집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세월호를 망각의 늪에 침몰시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8편의 중단편소설로 엮였다. ‘이기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직접적인 희생의 당사자가 아닌 주변의 관찰자들이다. 사람의 눈동자를 그 사람의 지문만큼이나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눈동자 수집가, 세월호 희생 학생의 책상을 촬영하며 학생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해 주는 사진작가, 세월호 생존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한 세월호특조위 조사관 등의 시점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서사들에 다른 색채를 입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참혹함과 분노, 슬픔을 딛고 서로의 어둠을 지키는 방풍림 같은 이들이 있어 우리는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북마크] ‘반역자’들을 위한 변명

    [북마크] ‘반역자’들을 위한 변명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도깨비’의 해외판 제목이 ‘고블린’으로 번역돼 논란이 됐습니다. 서양 신화에 등장하는 고블린은 작고 추한 외모를 가진 탐욕의 상징입니다. 잘생기고 멋진 도깨비 역할을 한 배우 공유의 이미지나 드라마 부제인 ‘찬란하고 쓸쓸하神’의 애잔한 사랑과는 꽤 거리가 있는 제목입니다. 이걸 창작으로 이해할까요, 아니면 오역 나아가 원작의 훼손으로 봐야 할까요. 우리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든 해외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든, 번역자는 ‘모국어(원작)의 반역자’라는 업보를 짊어지고 삽니다. 작은 ‘흠’도 신뢰와 결합해 번역자들에게는 치명상이 될 수 있죠. 국내에서도 수년 전 번역을 둘러싼 갈등이 번역자와 비평가 간 고소 사건으로 비화된 적이 있습니다. 언제든 씹어댈 준비가 된 원작자와 비평가, 독자 앞에서 번역자는 ‘을 중의 을’입니다. 미국 그레고리 라바사(1922~2016)가 쓴 ‘번역을 위한 변명’(세종서적)은 ‘반역의 영혼’을 지닌 번역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남미 문학 번역자로, ‘번역자들의 교황’으로 불린 인물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라바사를 가리켜 그의 번역이 스페인어 원작보다 더 뛰어나다고 칭송했습니다. 마르케스가 라바사에게 ‘백 년 동안의 고독’ 영역을 맡기기 위해 3년을 기다린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가 말년에 쓴 이 책은 번역자들의 고뇌와 옹호를 담은 변론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병으로 복무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는 번역자가 저지르는 원작에 대한 배반 혹은 반역의 불가항력적인 측면들을 자신의 길고 긴 작업 명세서를 통해 변명합니다. 번역자가 진부한 규범에 얽매여 직감을 희생할 때 더 큰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하죠. ‘원작을 읽으면서 번역하는’ 일명 동시 번역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하는 그는 “단어들이 자신을 이끌도록 내버려두는” 본능과 자유 의지를 중시합니다. 그는 번역자도 작가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을 악착같이 시비 거는 ‘번역 경찰’로 부르는 대목에서는 그 역시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 이종인씨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한 구절을 “내 배가 이처럼 남산만 한데도 당신은 나를 사랑해줄 거야”로 옮겼다가 편집자와 옥신각신한 경험을 전합니다. “헤밍웨이가 서울의 남산을 어떻게 알아 이렇게 썼겠느냐”고…. 위대한 번역자의 회고록이지만 모국어의 일탈이 어디까지 용인될지 정답은 없습니다. 최종 판결은 독자의 몫입니다. 일본 근현대 문학의 대가 나쓰메 소세키는 서양 소설의 사랑 고백(I love you)을 “달이 참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죠. 수줍은 고백이 설레고 낭만적이지 않나요. 안동환 문화부 기자 ipsofacto@seoul.co.kr
  • 소설… 사람들 가슴속을 파고들기 위해서 사회학자가 썼다

    소설… 사람들 가슴속을 파고들기 위해서 사회학자가 썼다

    “지난해 가을 겪었던 문제들을 논문으로 쓸 순 있겠죠. 하지만 논문은 강약도 없고 인물들의 고민도 잘 보여주지 못하잖아요. 사람들 가슴속을 파고들기는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방치했던 문학의 세계로 잠시 이주했습니다.”●그간 읽은 소설 5t 트럭 하나쯤 될 테니 사회학자 송호근(61) 서울대 교수가 소설가로 자리를 바꿨다. 첫 장편 ‘강화도’(나남)를 펴내며 5일 기자들과 만난 그는 “학자가 소설을 쓴다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문사(文士)로서 소설은 다른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간 읽은 소설책 양이 5t 트럭 하나쯤은 되니 소설 쓰기란 내게 굉장히 오래된 현재”라고 했다. 그에게 소설 쓰기란 40여년간 밀쳐 뒀던 열망이었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1978년 대학문학상에 평론으로 응모한 적이 있다. 1977년엔 강적(정과리 현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을 만나 떨어지고 1978년엔 당선됐다. 당시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그에게 한마디 물음만 던졌다. “자네, 문학을 하겠는가.” ●김윤식 선생 질문에 지금 ‘응칠’합니다 “당시 김윤식 선생님의 말뜻을 생각하다가 ‘그냥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답했어요. 그러니 제 소설은 응팔이 아니라 응칠인 셈이죠. ‘응답하라 1977’이요. 자네 문학을 하겠는가란 김윤식 선생의 질문에 지금 응답을 한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송 교수에게 첫 소설 쓰기의 동력은 역설적으로 지난해 국정농단, 탄핵 정국이었다. 답답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는 그는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고 흘러온 과거가 만들어낸 ‘누추한 미래’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그때 그는 봉건과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 신헌(1811~1884)을 떠올렸다. 유학자이자 무관, 외교관이었던 신헌은 조선 측 협상 대표로 나서 1876년 조·일 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맺은 인물이다. “1876년은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여러 국제적 압력과 위치, 내부 논쟁의 출발점이자 기원입니다. 왜 이런 현실이 계속 반복되는가,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소설로 물어본 거죠. 신헌은 날아오는 창을 붙잡고 자신이 쓰러지며 창이 조선의 깊은 심장에 박히지 않도록 한 사람이죠. 문무를 겸비한 유장(儒將)이 어떻게 문제를 풀었는지 그 기원을 더듬어 보면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때문에 신헌을 주인공으로 한 그의 역사소설은 19세기 조선과 세계의 격동기, 척사와 개방론 사이에 끼인 인물의 고뇌를 그리지만 오늘날 한반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특히 사드 문제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에 건네는 메시지도 심겨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일본과 미국, 한국은 군사동맹이었어요. 사드에 반대할 순 있지만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야죠. 문제는 중국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겁니다. 중국과 우리는 역사동맹이에요. 때문에 중국이란 역사동맹에 사드에 해당하는 선물을 무언가 줘야 합니다. 21세기의 신헌이라면 ‘중국과 역사동맹을 유지할 수 있는 역사적 사드는 무엇인가’ 답을 찾아내려 했겠죠. 그러면 역사동맹과 군사동맹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정권에서 이를 정밀하게 논의해야겠죠.” ●김훈 작가가 의식됐고, 또 고마웠어요 송 교수는 이번 소설을 쓰면서 김훈 작가가 의식됐다고도 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등 김훈의 세 작품이 합쳐진 근대의 모습이 신헌의 ‘심행일기’에 압축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척사와 개방론 사이에 끼어 있는 무장, 천주교 박해 등이 합쳐진 스토리인데 이걸 왜 김훈 작가가 이걸 놔뒀을까 싶었죠. 나보고 쓰라고 놔뒀구나 싶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4·3 넋 기린 제주, ‘평화 훈풍’ 기원하다

    4·3 넋 기린 제주, ‘평화 훈풍’ 기원하다

    제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봉행됐다. ‘4·3의 평화훈풍! 한반도로 세계로’란 슬로건을 내건 이번 추념식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 정부 인사와 유족, 도민, 각계 인사 등 1만여명이 참석했다.추념식은 국민의례와 묵념, 헌화·분향, 4·3희생자유족회장과 제주도지사 인사말, 경과보고, 대통령 권한대행 추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황 권한대행은 “화해와 상생의 4·3 정신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며 “제주도민이 보여 오신 화해와 상생의 정신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는 희망의 에너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제주가 국내외적 여러 상황으로 외국인이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 유치 다변화, 국내 관광 활성화, 관광업계 긴급경영지원 등을 통해 관광산업이 다시 도약하도록 하고 신항만과 제2공항 건설 등 인프라 구축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배·보상 문제와 희생자·유족 심의·결정 상설화, 수형인 명예회복, 행방불명인 유해 발굴 등 남은 과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 확산, 국민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4·3 70주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장은 “암울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인권 침해의 중대 과실을 범한 국가가 피해자에게 법적인 배·보상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추념식에 앞서 종교의례와 제주도립 제주·서귀포합창단의 ‘빛이 되소서’ 합창, 제주도립무용단의 진혼무가 공연됐다. 추념식 말미에는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 ‘검정고무신’이 낭송됐다. 정부는 2014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매년 국가의례로 추념식을 봉행하고 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산수유 붉은 알알이…” 원로 시인 김종길 별세

    “산수유 붉은 알알이…” 원로 시인 김종길 별세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시 ‘성탄제’로 유명한 원로 시인 김종길(본명 김치규)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가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지난달 21일 부인 강신향씨를 먼저 떠나보낸 충격으로 힘들어 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192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스물한 살에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등단했다. 서구의 이미지즘을 받아들이면서도 고전적 품격을 지닌 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은 1969년 펴낸 첫 시집의 표제인 ‘성탄제’다. 시집으로는 ‘성탄제’를 비롯해 ‘하회에서’(1977), ‘황사현상’(19 86), ‘천지현황’(1991), ‘달맞이 꽃’(1998),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 ‘그것들’(2011) 등이 있다. 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영미시학회, 한국 T.S.엘리어트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목월문학상·인촌상·청마문학상·육사시문학상·이설주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선국(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민(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선경·선형·선숙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4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마석 모란공원. (02)923-444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밥 딜런, 비공개리에 노벨문학상 받아...사진 안남겨

    밥 딜런, 비공개리에 노벨문학상 받아...사진 안남겨

    미국 포크가수 밥 딜런(75)이 지난 연말 노벨상 시상식에 불참한 지 넉 달 만에 비공개 행사를 통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선정 및 시상을 담당하는 스웨덴한림원에 따르면 딜런은 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공연을 앞두고 공연장 인근 한 호텔에서 2016년 노벨문학상 증서와 메달을 받았다.공교롭게도 1일 그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만우절 뉴스’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노벨상위원회는 웹사이트를 통해 그의 수상 소식을 밝혔다. 행사는 딜런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상을 받는 장면도 찍지 않았다. 딜런은 이 자리에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며, 이날 오후 스톡홀름 워터프론트 공연장에서 열린 공연에서도 노벨상과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스웨덴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국장은 공식성명을 통해 “한림원 위원 12명이 출석했으며, 기념 건배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딜런은 매우 멋지고 다정한 사람이었다”며 “행사는 잘 진행됐다”고 전했다. 딜런은 2016년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수상 여부를 한동안 밝히지 않아 논란이 일었고, 12월 10일 열린 시상식에도 ‘선약’을 이유로 불참했다. 딜런은 노벨상 수상자가 관례적으로 진행하는 수상 기념 강연도 직접 하지 않고 녹음해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딜런이 이번에 800만 크로네(약 10억원) 상당의 노벨상을 받은 만큼 6월 10일까지는 기념 강연을 보낼 전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메달 수령했다고? 만우절 거짓뉴스 가능성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메달 수령했다고? 만우절 거짓뉴스 가능성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76)이 노벨문학상 메달과 상금을 지난해 12월 시상식이 열린 뒤 3개월이 지나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결국 받았다고 영국 BBC가 현지 언론 보도를 인용해 전했다. 하지만 딜런이 1일(이하 현지시간) 공연할 예정이었던 스톡홀름에서 개인 모임을 갖던 중 스웨덴한림원으로부터 상을 전달받았다고만 보도했고 구체적인 내용이 상당히 빠져 있다. 또 만우절이란 점 때문에 진위 여부를 가리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한림원 간부들은 딜런이 노벨상 수상자들이 상금 800만크로네(약 10억 4000만원)를 수령한 뒤 의례적으로 하는 수상 연설을 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동영상으로 녹화해 아카데미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만약 그가 시상식이 열렸던 지난해 12월 10일 이후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수상 연설을 하지 않으면 상금을 반납해야 한다고 간부들은 덧붙였다, 이 상을 수여했던 스웨덴한림원 회원은 AP통신에 “잘 진행됐으며 딜런은 아주 좋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앞서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작고 친밀한” 무대가 만들어졌으며 어떤 언론도 딜런의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니우스 총장은 이날 딜런의 공연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이날과 다음날 같은 무대에서의 공연, 오는 9일 룬트에서의 공연 중 한 곳에서 메달 전달식이 있는 것 아니냐고 추정하기도 하고 있다. 딜런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다. 한림원은 “위대한 미국 노래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들을 창안해냈다”고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딜런의 모습을 시상식에서는 볼 수 없었다. 앞서 그는 자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달 위에 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 회고록/최용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 회고록/최용규 논설위원

    회고록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이다. 평전이나 전기와 달리 기술 및 구술 주체가 본인이다. 찬사 못지않게 왜곡이나 미화 논란에 빠지는 이유가 된다. 특히 대통령의 회고록은 재임 시절의 일이 주가 되는지라 출간되기 무섭게 찬반양론이 일고, 세인의 입에 오르기 십상이다.살아 있는 현대사로 평가받는 JP(김종필)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묻는다. “임자(JP)는 회고록을 많이 읽었다는데 누구 게 맘에 들어?” 1979년 궁정동에서 10·26 총성이 없었다면 박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냈을 것이다. 뭔가 맘에 둔 게 있어 심복에게 의중을 묻지 않았을까. 어쨌든 JP 왈(曰) “처칠과 드골이지요”. 대통령의 회고록은 ‘1차 사료’다. 먼 훗날 후손들이 펼쳐 보고 그 시대를 반추하기에 개인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시대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어야 한다. 거짓과 미화가 아닌 객관적 사실이 생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 회고록’이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전쟁 영웅인 원스턴 처칠(1874~1965)의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은 회고록의 바이블로 통한다. 처칠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줘서가 아니라 1500만명의 사망자와 3450만명의 부상자를 기록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인간적 고뇌를 사실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사실에 입각한 회고록은 감동과 흥분을 자아낸다.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면 정가는 후끈 달아오르는 법이다. 죽은 권력이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글이 포함되기 마련인 탓이다. 찻잔 속의 태풍이 되기도 하지만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전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십중팔구 회고록을 집필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해명을 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했다. 구속된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는 3권짜리 회고록이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10·26사태 이후 더이상 (박근혜)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를 전방 군부대에 격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사람들을 보내 대권 의지를 내비치며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하기에 완곡하게 뜻을 접으라 했다고도 썼다.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박 전 대통령이 지닌 여건과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밀함을 건드린 이 회고록에 훗날 박 전 대통령이 뭐라 할지?.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밥 딜런, 결국 노벨문학상 받는다

    밥 딜런, 결국 노벨문학상 받는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수 밥 딜런(75)이 시상식 불참 논란 끝에 결국 노벨상 증서와 메달을 받기로 했다고 AFP 통신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사라 다니우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이날 공식 블로그를 통해 “밥 딜런이 한림원과 이번 주말 만남을 가지기로 결정했다”면서 “이때 한림원은 딜런에게 노벨상 수상증과 메달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는 딜런과 한림원 관계자들만 함께하는 소규모 비공개 회동이 될 것이라며 이것은 딜런이 직접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딜런은 다음달 1일과 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콘서트를 연다. 한림원과 딜런의 만남이 언제일지에 대해서 한림원은 명시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가 상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수상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강연을 해야 한다. 그러나 딜런은 이번에 강연을 하지 않는다고 한림원은 설명했다. 강연은 연설뿐만 아니라 공연, 비디오 영상, 노래도 가능하나 딜런이 6월 10일까지 대체 강연을 하지 않으면 상금을 박탈당한다. 앞서 딜런은 지난해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된 후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아 노벨상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제약사 회장보다 ‘우리말 광부’ 택한 시인

    제약사 회장보다 ‘우리말 광부’ 택한 시인

    투덕투덕(얼굴이 두툼하고 복스럽게 살찐 모양), 숭굴숭굴(성질이 수더분하고 원만한 모양), 떼걸다(관계하던 일에서 손을 떼다)….국적 불명의 외래어와 정체 불명의 조어들의 홍수 속에서도 그의 시집에는 낯설면서도 감칠맛 나는, 토종의 원형이 생생한 우리말이 풍성하다. 원로 김두환(82) 시인이 최근 펴낸 12번째 시집 ‘영원한 영원을 오르는’(고요아침)에 실린 시들은 마치 우리말 대사전의 용례집처럼 알짜배기 표현들이 흥을 돋운다. 1987년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문청(문학청년)에서 시인으로 등단한 지 올해 30년을 맞은 그가 쓴 씨는 1837편. 그중 1500편이 순우리말로만 쓴 시다. 이번 시집에는 ‘만발’, ‘보리밭 풍경’, ‘봄바람은 그런다네’ 등 노(老)시인의 고향인 전남 순천의 풍경을 빼닮은 긴 호흡의 연작들을 담아냈다. 김 시인은 28일 “스스로의 상상력을 확인한답시고 밤에 덜 자면서까지 쓰며 고치며 뜯이했던(헌 옷을 빨아서 뜯어 새로 만들다) 소출들이자, 샛별 눈빛 뜨더귀(가리가리 찢어 낸 조각)가 묻어 있는 시집”이라며 순우리말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그의 우리말 사랑은 ‘오매 단풍들것네’의 김영랑 시인을 기린 ‘영랑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시인의 말은 우리말인데도 그 의미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우리말에 심취해 캐내 온 그야말로 세월이 켜켜이 쌓인 사라진 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조계사 인근에 있는 그의 서재 책상 위에는 1991년 11월 28일이라는 인지가 붙은 벽돌 크기의 금성출판사 국어대사전 두 권이 놓여 있다. 늘 들여다보니 손때가 묻어 해질 대로 해졌다. 그동안 너덜너덜해져 바꾼 대사전이 세 질이다. 책상 한쪽에는 깨알 만한 글씨로, 30여년간 수집해 온 우리말을 적어 놓은 노트도 놓여 있다. “우리말로 된 시어 하나를 찾아 사전을 뒤지기도 하고, 고민도 합니다. 우리말이 사장되지 않도록 시를 통해 되살려내는 게 내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싶어요.” 김 시인은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 출신이다. 그가 1964년 서울 낙원동 허리우드극장 인근에 차린 ‘가야약국’에서 제조해 팔던 피부병 연고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365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난한 시절이라 피부병이 흔했어요. 군 병원에서 익힌 피부병 치료 경험이 인생을 바꿨죠. 한미약품 창업주인 임성기씨가 당시 동대문에 차린 임성기약국과 함께 서울 3대 약국으로 불렸어요. 제약회사를 설립할까도 고민했지만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제약회사 회장보다 시인의 삶이 더 좋아요. 지금도 시에 취해 살고, 시를 쓰는 기쁨을 만끽하며 살아요.” 그는 2000년 약국을 접고 은퇴한 뒤 시작(詩作)에만 전념했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원고지에 육필로 쓴 20여편의 시를 꺼내 들었다.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시를 쓰고 있더라구요. 내년에는 그동안 쓴 시 가운데 150편을 추려 시선집을 낼 생각이에요.” 글 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부처님 당대 쓰던 ‘빠알리어’엔 나의 福 아닌 중생 행복 바라는 초기 불교의 원 사상 담겨 있죠”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부처님 당대 쓰던 ‘빠알리어’엔 나의 福 아닌 중생 행복 바라는 초기 불교의 원 사상 담겨 있죠”

    한국불교는 1700년에 걸친 대승의 선(禪)불교 전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맏형 격인 조계종이 금강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택해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간화선을 근간으로 삼는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한국의 불교 종단은 대승불교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 대승불교의 대세 속에 이젠 남방불교의 물결이 도도하다. 적지 않은 사찰에서 위파사나 등 초기불교 수행법이 급속히 번지고 있고 초기불교 경전을 연구하는 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 초기불교 경전과 수행법은 이 땅에선 외도로 이단시되며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했었다. 전재성(64) 한국빠알리어성전협회 회장은 대승 일변도의 한국 불교계에서 초기 불전 연구와 번역에 몸 바쳐 사는 독특한 인물이다.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S아파트 1층. 문이 열리자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수행자 풍모의 전 박사가 반갑게 객을 맞는다. “그냥 홍제동에 있다 해서 홍제암이라 부른답니다.” 서재의 사방에 빽빽이 들어찬 책들. 그 장서에 압도당한 채 탁자에 앉자니 탁자 위에도 낯선 종류의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테라가타’ ‘테리가타’ ‘빠알리어사전’ ‘디가니까야’ ‘쌍윳따니까야’ ‘숫타니파타’ ‘십지경 오리지날 화엄경’…. 한국빠알리어성전협회 회장. 일반인이라면 이름조차 생소할 듯한 빠알리어. 왜 이렇게 빠알리어 불전에 파묻혀 사는 걸까.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취업도 못한 채 몸이 너무 아파 안양천에 앉아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빛이 온몸을 감싸면서 자신과 세상이 사라지는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일종의 신비 체험이다. 그 기이한 체험을 하고 난 뒤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가 불교철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종교의 모든 경전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을 통해 불교를 더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본 대학에서 9년간 산스크리트어와 빠알리어, 티베트학, 인도학 등을 공부하며 박사 과정을 마쳤다.전 박사는 원래 어릴 적부터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생물 교사로부터 참선지도를 받아 처음 불교를 접했고 사춘기 시절 종교적 고민으로 방황하기도 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농과대에 불교학생회를 조직했으며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었으니 신비 체험도 가능했을 터이다. 전 박사가 빠알리어 불전에 천착하게 된 건 독일 유학시절 ‘거지 성자’ 페터 노이야르를 만나면서였다. ‘집 없이’ ‘돈 없이’ ‘여자 없이’ 수행하며 산다는 그를 통해 빠알리어로 초기 경전을 들었는데 그동안 품었던 근원적인 의심이 풀리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거지 성자’로부터 쾰른시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서 불교서적들을 소개받았는데 당시 대부분의 빠알리어 ‘니까야’(빨리 삼장의 경장)가 독일어로 번역됐음을 알고 놀랐다. 전 박사의 인생을 바꿔 놓은 순간이었다. “빠알리어는 사실 모든 서양언어의 모태어입니다. 유럽 각국에서 모태어인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 불전을 일찍부터 연구해 번역한 게 당연하지요.” 그 말마따나 서양의 빠알리어 연구 성과의 흔적은 도처에 깔려 있다.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1877~1962)만 하더라도 ‘마지마 니까야’를 보고 ‘데미안’(1919년)을 썼다고 한다. ‘싯다르타’(1922년)며 ‘유리알 유희’(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같은 헤세의 작품들도 대부분 초기 불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빠알리어는 부처님 생존 당시에 사용되던 언어입니다. 그 언어로 경전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불교의 사상과 원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경전들은 대개 중국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옮긴 만큼 오역이 많고, 심지어는 정반대의 해석도 적지 않아요.” 유학을 마치고 1989년 한국에 돌아와 보니 제대로 번역된 초기 불전이 단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빠알리어 불전 번역 작업을 시작한 계기이다. 당시는 그야말로 초기 불전이나 수행법이라면 모두가 꺼리는 분야였다. 온통 대승불전과 수행법 일색인 터라 학술토론회에서도 초기 불전 연구자는 공격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도법(현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스님이 사찰들에서 모금한 돈을 출판에 써 달라며 건네 왔다. 예상 밖의 후원이었다. 입국해서 무려 10년 만에 첫 번역 성과를 낸 게 바로 1999년 세상에 나온 ‘쌍윳따니까야’다. 이후로 그가 번역해 놓은 책만 해도 수십 종에 달한다. 국내 첫 빠알리어본 율장 완역인 ‘마하박가’와 ‘쭐라박가’를 비롯해 빠알리어대장경의 ‘법구경’ 원전을 직역한 ‘법구경-담마파다’, 12만개의 표제어를 담은 ‘빠알리어사전’, ‘디가니까야’, 위파사나 수행지침서‘ 제따시까’, 가장 오래된 불경이라는 ‘숫타니파타’가 모두 전 박사의 손을 거쳐 처음 우리말로 직역된 초기 불전들이다. 최근 발간된 ‘테라가타-장로게경’과 ‘테리가타 장로니게경’은 석가모니 첫 비구·비구니 제자들의 게송을 직역해 불교계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 지금 초기 불전 연구와 수행법이 많이 퍼져 있다곤 하지만 힐링과 심리상담, 수행자들을 위한 전문서가 주종을 이룬다. 전 박사는 그런 작업과는 조금 다르게 일반 수행자와 신도들을 위해 쉽게 쓴 대중서로 접근하고 있다. 개인적인 체험이 큰 동기라지만 빠알리어 성전 번역 작업에 평생을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초기 불전에는 별 게 다 들어 있어요. 대장경도 중국에서 들어와 오역이 많아요. 원래 부처님 당시의 언어로 바로 보자는 것이지요.” 그의 말대로 빠알리어 초기 불전에는 부처님 당대의 설법과 말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교의 원 사상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토대인 것이다. 심지어는 지금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자살 같은 사회윤리적 문제에 대한 언급도 숱하다. 이 대목에서 전 박사는 우리 불교에 흔하다는 기복 문제를 정색하고 입에 올린다. “불교는 내 바깥의 절대적인 존재(신)에 의지해 구원과 복을 기원하는 종교와 달라요. 초기 불전에는 기복의 개념이 없습니다. 나의 복을 비는 게 아니라 일체중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자애의 기도라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연관된 일체 생명을 향해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게 기도이고 모든 수행의 방법은 기도로 나아가야 한단다.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간화선에도 1700개의 공안(화두)이 있듯이 수행 방법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초기 불전에도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37조도품’이 있지요.” 종교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전 박사는 간절한 마음으로 실천하고 탐구하다 보면 궁극적인 깨달음이 열리게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래서 수행 방법에도 대승, 소승의 우열은 있을 수 없고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다른 것들에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초기 불전 번역에 매달릴 수 있었다”는 전 박사에게 돈은 필요하지만 욕심 내선 안 되는 대상이다. 조계종단에서 한 해 약간씩의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번역서를 낼 때마다 독지가들의 지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전 박사는 흩어진 채 진행 중인 초기 불전 연구와 수행을 한 군데로 모아 체계적인 연구와 응용을 주도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국 식민지였던 스리랑카의 정부 법률고문이었던 리스 데이비즈 박사가 1882년 세워 지금 영국 초기 불전 연구를 이끌고 있는 ‘빨리텍스트소사이어티’(PTS)가 모델이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손바닥에 얹어 놓은 것처럼 자명하게 알 수 있는 초기 불전 연구를 이제 등한시할 수 없어요. 서양철학과 서양과학 등 근대적 교육에 익숙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는 지금 초기 불전 연구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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