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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경 무너뜨린 자본 짙어진 국력의 경계

    국경 무너뜨린 자본 짙어진 국력의 경계

    서로 다른 것들의 사이에는 늘 경계가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산 또는 바다 등의 울타리가 있고, 빼앗음과 빼앗김 사이에는 폭력과 탐욕이 경계로서 둘을 가르고 있다. 민족과 민족의 경계, 자본과 노동의 경계, 세대와 세대의 경계, 인간과 자연의 경계, 개인과 집단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 굶주림과 배부름의 경계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약간은 모호하게, 때로는 명징하게 나뉘어 있다. 하종오(57)의 시집 ‘제국’(문학동네 펴냄)은 세상의 모든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또한 그 경계를 거부한다. 시인은 일찌감치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입국자들’ 등을 통해 우리 사회 현실 안에 엉켜 있는 세계화의 문제, 자본의 문제, 인간의 문제를 통찰한 바 있다. ‘제국’의 시 전편을 통해 문제의식은 전 지구적 범주로 확장된다. 그리고 시인의 시선이 향하는 통찰의 지점은 ‘제국(諸國 또는 帝國)의 공장’ 연작시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은 늘 그렇듯 인간이다. 연작시 중 ‘소액주주들’이라는 소제목의 시편에서는 ‘자사주 가진 소액주주’가 공장 폐쇄로 인해 직장을 잃어버렸음에도 보유하고 있는 주가는 올라가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노동자 개인들이 자본주의 질서 안에 깊숙이 편입됐음을 보여 준다. 또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에서 인도로, 또 더 가난한 나라로 옮겨 가는 ‘어패럴 공장 관리책임자’의 탄식(‘갠지스 강’ 중)을 통해 더욱 많은 이익을 위해 국경을 무화(無和)하는 자본의 생리를 명확히 짚어 낸다. ‘숙련공’에서는 ‘수트리스나 씨’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자연에서 살며/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믿으면서도/ 크나큰 자연을 이룬 나무들 베어내는/ 목재공장에 취직하려고 이력서’를 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낸다. 하지만 거기에 그친다면 수면 위로 드러난 현상을 그저 시로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시인은 경계 너머에 있는 경계에 주목한다. 스스로 몸을 불리려는 자본은 이미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자본은 자신의 국적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한국 혹은 미국이 차려 놓은 공장을 다니건 한국으로 건너와서 공장에서 일을 하건 인도, 베트남, 체코, 파키스탄 등 사람들은 각자 조국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서아프리카 출신 청장년들과 / 동남아시아 출신 청장년들은 / 독재와 가난에서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 / 역난민으로 귀국하여 저항’(‘한국의 공장에서’ 중)하려는 꿈을 키운다. 이는 ‘젊은 고려인’의 ‘김예카테리나 씨’ 일가의 얘기를 하며 비극적인 한국식 디아스포라(離散)를 상기시킨 이유와 마찬가지다. 시인은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는 경계를 만들고픈 약자의 역설적이지만 소중한 꿈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 한국에서 몸푼 베트남인 산모와 / …필리핀 산모와 / …태국인 산모와 / …캄보디아인 산모는 시어머니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요 / 시방 / 아기들은 똑같은 소리로 우네요’(‘지구의 해산바라지’ 중)라며 함께 어우러져 있는 세상을 그린다. 시인은 자서(自序)를 통해 확장된 자기 시 세계의 정수를 밝힌다.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좌절하고 환희하는 세계의 시민들에게 제국(諸國)은 공존해야 하고, 제국(帝國)은 부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차별 짓고 착취하는 수단으로서의 경계가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으로서의 경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끄러웠던 그 시대 잊지 말자는 호소

    부끄러웠던 그 시대 잊지 말자는 호소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70)는 대표적인 지한파 작가다. 프랑스 문단에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에서 한국인 독자를 언급한 기욤 뮈소 등 지한파가 많은데 그중에서 클레지오는 2007~2008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초빙 교수를 지냈다. 클레지오의 신작 ‘허기의 간주곡’(문학동네 펴냄)은 그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될 무렵 프랑스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작가가 서울에 머물면서 집필한 책이라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클레지오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말 “당시 발표 일주일 전에 클레지오가 프랑스로 급히 돌아갔다. 노벨상은 사전에 수상자에게 언질이 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언급했다. 노벨상 발표가 날 무렵이면 난리 법석을 떠는 우리의 부박한 국민성과 언론의 행태에 대해 김 교수는 클레지오의 전례를 들어 조용한 조언을 남긴 것이다. ‘허기의 간주곡’은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에 걸쳐 열살 소녀 에텔이 온실 속 화초 같던 외동 아이에서 억척스러운 삶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에텔은 증조부의 죽음, 철 없는 아버지와 염세적인 어머니의 불화, 아버지의 불륜과 파산, 전쟁과 피난, 가난과 모욕 등을 겪으며 어른이 된다. 소설을 통해 클레지오는 한 여인의 성장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을 고발한다. 제목의 ‘간주곡’은 보통 기악곡에서 솔로 부분 사이에 등장해 반복적으로 연주되는 부분을 가리킨다.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단막 발레 작품 ‘볼레로’를 떠올리면 된다. 클레지오는 이 소설을 통해 같은 선율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볼레로처럼 허기를 주기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치욕과 부끄러움의 시대를 영원히 잊지 말자고 호소한다. ‘허기의 간주곡’이 클레지오의 머릿속에서 발아하게 된 계기는 2009년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지성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와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클레지오는 그의 어머니처럼 레비 스트로스가 1928년 열린 ‘볼레로’ 초연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레비 스트로스가 ‘볼레로’를 보고 역작 ‘신화학’을 낳은 것처럼 클레지오 의 어머니도 ‘볼레로’를 본 뒤 인생이 바뀌었다. 클레지오는 ‘볼레로’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예언’이자 ‘어떤 분노, 어떤 허기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임을 깨닫고 그 선율을 담은 소설 ‘허기의 간주곡’을 쓰게 된다. 프랑스인인 클레지오의 어머니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와 레위니옹에서 다시 프랑스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전쟁을 억척스레 헤치고 살아 남은 여성 에텔의 이야기는 곧 클레지오 어머니의 삶이기도 했다. 클레지오는 태어나면서부터 군의관 아버지와 떨어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기에 어머니는 그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형성했다. 클레지오의 신작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관념적이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역시 전쟁을 겪은 한국 사람들의 감성을 울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나쁜 소녀’에 빠진 ‘착한 소년’

    ‘나쁜 소녀의 짓궂음’(문학동네 펴냄)은 남미의 성적 에너지가 가득 찬 연애소설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2006년 펴낸 작품. 흔히 노벨문학상 수상작 하면 연상되는 시점의 변화나 다양한 화자의 무차별 등장, 시공간 질서의 파괴 같은 실험적인 문학 기법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수십년에 걸친 ‘착한 소년’과 ‘나쁜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간다. 착한 소년 리카르도는 1950년대 페루 리마에서 ‘칠레 여자아이’로 알려진 귀여운 릴리를 만난다. 악마에 홀린 것처럼 춤을 추는 릴리에게 바보처럼 한눈에 반한 리카르도는 세번이나 딱지를 맞는다. 1960년대 파리에서 나쁜 소녀는 게릴라 전사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후 쿠바의 아바나에서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1970년대에 리카르도는 런던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이제 나쁜 소녀는 영국 귀족의 아내가 되어 있다. 도쿄에서 나쁜 소녀와 만났을 때는 일본 야쿠자 우두머리의 애인이 되어 있었다. 이후 리카르도는 우연히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나쁜 소녀의 본명이 오틸리타란 사실을 알게 된다. 리카르도는 나쁜 소녀와 재회할 때마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면 그녀에게 달려간다. 끊임없이 신원을 바꿔가며 화려하고 모험 가득한 삶을 사는 나쁜 소녀는 평범한 리카르도가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자신이 힘이 없을 땐 그에게 되돌아온다. 전형적인 팜므 파탈(악녀)이 등장하는 연애소설이지만 ‘할리퀸 소설’(로맨스 소설)과 다른 것은 20세기 사회적 변화상을 요사가 소설에 녹여 냈다는 점이다. 프랑스 68혁명, 동성애 커밍아웃, 히피 문화와 구조주의의 태동, 에이즈 발견, 냉전시대의 종말, 독재정권의 횡포, 경제발전, 테러에 대한 공포 등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사는 삶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20세기 사회 문화적 흐름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연수 ‘7번국도 Revisited’ 작가 자신의 13년여정 개정판에 담고…

    김연수 ‘7번국도 Revisited’ 작가 자신의 13년여정 개정판에 담고…

    7번 국도.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바다와 닿을 듯 부산에서 시작해 포항~강릉~속초 너머로 이어지는 도로다. 생맥주와 말린 바다생물을 파는 카페 이름이며 물고기를 감염시킨 세균의 이름이기도하다. 또한 ‘비틀스의 108번째 싱글 앨범’의 제목이기도 하다. 때로는 짓다 만 건축현장에서 목매 숨진 ‘7번국도씨’이기도 하다. 물을 주지 않아 말라죽어 버린 나무, ‘뒈져버린 7번국도’이거나 아니면 이곳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차에 치인 ‘7번국도의 유령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니면 또…. 현재의 생애-혹은 죽음까지 포함해-를 공유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함께 부대끼고 있는 7번 국도는 김연수 작품의 원형 몫을 톡톡히 했다. 청춘은 결코 완성품이 아님을, 희망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고 사랑 역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달뜨게 만든 숱한 욕망도 부질없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연수의 향후 작품에서 목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개별의 삶과 세상 모든 신념에 대한 의심도 이곳에서 발견된다. 그리하여 7번 국도는 평단과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문장과 서사, 주제를 이미 품고 있었음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최근 펴낸 김연수(40)의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문학동네 펴냄)는 1997년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7번국도’의 개정판이다. 1997년판에서 뼈대만을 남겨두고 지난해부터 꼬박 1년 가까이 문장을 바꾸고, 13년의 시간적 공간을 오가며 새롭게 만들어낸 작품이다. 20대의 터널을 한창 내달리고 있는 두 남자와 한 여자 세희의 이야기다. 비틀스의 희귀 싱글앨범 ‘Route 7’ 레코드판 거래를 매개로 만난 두 남자, 이미 답답한 터널 속에서 ‘진짜 사랑’을 갈구하다 상처를 입었던 ‘나’와 재현이다. 역시 ‘Route 7’이 인연이 돼 세희를 만났고 함께 사랑한다. 나와 재현은 욕하고 싸우다가 7번 국도를 따라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7번 국도에서 죽은 유령들을 만나고, 동시에 세희와 이별한다. 1997년의 이 뼈대 속에 13년 뒤의 작가 김연수가 직접 등장해 7번 국도를 다시 찾고, 떠나간 세희가 다시 나와 그 뒷얘기를 들려준다. 실제와 허구가 뒤엉키고, 소설 속 인물과 실제의 김연수가 상념을 주고받는다. 김연수는 작품 속에서 ‘희망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줄까?’라고 물은 뒤 단호히 조언한다. ‘그건 바로 너희가 망각 속에 파묻어버린 기억들을 모두 되찾는 거야. 기억이 없는 곳에 희망은 없어.’ 삶에 회의를 품고 기억을 더듬어 가는 김연수의 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모든 심상과 욕망, 희망의 집착이 엇갈리는 소설과 달리 우리네 지도 위 7번 국도는 한 줄로 이어진 도로다. 복잡하게 배배 돌리고 꼬이지 않았다. 시작 지점과 끝의 지점이 명백하고 명쾌하다. 복잡다단해 보이는 삶도 하나의 진리에 관통되듯 말이다. 1997년 김연수의 ‘7번국도’를 읽은 이라면 더욱, 읽지 않은 이라면 더더욱 7번 국도의 기억을 뒤따라가 볼 일이다. 참고로 비틀스의 같은 이름 싱글앨범을 찾는 수고로움은 가능하면 참아주기 바란다. 모르고 고생한 이로서 주는 정보다. 책 뒤편 작가의 말에 그 이유가 설명돼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스타 인문학자 3인 첫 인터넷 무료연재

    스타 인문학자 3인 첫 인터넷 무료연재

    “인문학자가 인터넷 공간에 연재 방식으로 이런 글을 쓰는 일은 아직 부담스럽다. 밋밋하고 덤덤하고 지루할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렸던 소중한 풍경들이 인화되지 않은 필름처럼 어둡게 웅크려 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을 하나씩 호명해 내려고 한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새해 1월 3일부터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cafe.naver.com/mhdn)에 ‘우리 시대의 명강의’란 제목으로 매주 글을 연재할 것을 알리며 밝힌 포부다. 문학동네는 28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인문학 붐을 주도하고 있는 정민 한양대 교수,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인문학을 인터넷에 무료로 연재한다.”고 밝혔다. 인기 소설가들이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고 책으로 펴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지만 인문학자들이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는 것은 처음이다.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1762~1836)을 연구해 온 정민 교수는 ‘삶을 바꾼 만남’이란 주제로 다산과 그의 제자 황상(1788~1870) 사이에 이어진 도탑고 진실한 사제 간의 정리(情理)에 주목한다.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간 정약용은 그곳에서 작은 서당을 열었고, 제자 황상을 만난다. 황상은 양반이 아니어서 과거에는 응시할 수 없었으나 평생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스승이 준 ‘삼근계(三勤戒)’의 뜻을 새기며 시를 쓰고 공부에 전념했다. 최근 ‘한중록’을 번역·주석해 독자에게 소개한 정병설 교수는 ‘권력과 인간’이란 주제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꼼꼼하게 읽을 예정이다. 정 교수는 혜경궁 홍씨에게 씌워진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냉혈한 여인’이란 굴레를 ‘한중록’을 통해 벗길 생각이다. 안대회 교수는 ‘궁극의 시학’이란 제목으로 고전 시학의 정수로 인정받는 ‘이십사시품’을 노둣돌 삼아 중국의 추상적인 시학(詩學)을 놓고 정선, 김정희, 오세창 등 조선 후기 지식인이 정서적으로 어떻게 교감했는지 보여 준다. 안 교수는 “네티즌과 호흡을 함께하는 인문학 저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동적인 저술의 한 형태로 재미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며 인터넷 연재에 대한 의욕을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10 베스트&워스트 어워즈] (8·끝) 문학

    [2010 베스트&워스트 어워즈] (8·끝) 문학

    엇갈린 칭찬, 모아진 눈초리.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해마다 수천권의 소설과 시집이 쏟아지는 현실 속에서 호불호(好不好)의 엇갈림은 자연스럽다. 지난해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서점가를 휩쓸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문학 작품들의 명멸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도 황석영이 새로 내놓은 장편소설 ‘강남몽’에 대한 비판은 빠지지 않았다. 대가(大家)에 대한 높은 기대는 그만큼의 실망을 품고 있었다. 베스트와 워스트에는 많은 작품들이 다채롭게 꼽혔다. 평단의 시선과 대중의 시선에 어느 정도 간극이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준 대목이었다. 폭발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은 한강, 박민규… 시는 송경동, 정수복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는 한강의 신작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 펴냄)에 대해 “추리소설적 기법으로 자신만의 언어와 문체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밀도 있게 다뤘다.”고 호평했다. 고명철 광운대 국문과 교수는 이시백의 소설집 ‘갈보콩’(실천문학 펴냄)과 송경동의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펴냄)을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았다. 고 교수는 “이시백의 소설집은 최근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농촌을 중심 삼아 리얼리즘 방식으로 파헤치고 있고, 송경동의 시집 역시 노동 현장 속 서정성을 절묘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괴짜 작가’ 박민규 베스트 이름 올려 눈길 문학평론가 고봉준은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창비 펴냄)을 주저 없이 올해의 베스트로 꼽았다. “이 한권의 소설로 한국 단편소설의 장르적 경계가 확장된 느낌”이라는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오봉옥의 시집 ‘노랑’(천년의시작 펴냄)과 은희경의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펴냄)를 주목했다. 권성우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는 정수복의 에세이집 ‘파리의 장소들’(문학과지성 펴냄)을 올해 최고의 저작으로 들었다. ●황석영, 작품성·정직성 모두 쓴맛 기대 이하의 작품을 꼽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황석영의 ‘강남몽’은 표절 시비가 붙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강남몽’은 황석영이 십수년 동안 붙잡고 있었다는, 서울 강남 형성의 역사를 통해 한국 사회 건설 개발 시대의 문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문단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드라마 ‘자이언트’와 맞물린 것도 화제를 키웠다. 하지만 출간 이후 “미학적 결핍”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급기야 한 언론 매체의 기사 내용을 표절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워스트의 불명예를 안았다. 권 교수는 “강남 형성사라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좀 더 세밀한 공력과 철저한 자료 조사, 팽팽한 구성이 필요했다.”면서 “작품에 쏟는 공력과 구성의 묘미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문 교수는 “인터넷에 연재된 탓인지 흥미 중심으로 전개됐다.”면서 “인물과 사건이 자연스럽게 용해되지 않는다.”고 평했다. ●조정래, 신경숙, 고은 ‘베스트셀러’도 평단 냉랭 또 다른 유명 작가들의 성과물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자본과 권력의 유착을 파헤치며 화제를 모았던 조정래의 장편소설 ‘허수아비춤’, 30권으로 완결된 고은의 연작 시집 ‘만인보’, 번민과 고뇌로 점철된 청춘의 기억을 되짚은 신경숙의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등은 불티나게 독자들의 손에 오르내렸음에도 일부 평자들은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 작품들 역시 ‘태백산맥에서 보여주던 한국 현대사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읽을 수 없다.’(‘허수아비춤’), ‘상투적 센티멘털리즘으로 작품성을 훼손하고 있다.’(‘어디선가’), ‘대작을 완성했으나 정작 대중과의 교감 능력이 결여됐다.’(‘만인보’) 등과 같은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심사위원 고명철 광운대 교수 고봉준 문학평론가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
  • 출판전문가 5인이 되돌아본 2010

    2010년을 돌아보는 출판 동네의 목소리는 간명하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희망과 낙담이 교차한다. 출판 패러다임의 거대한 변화를 잉태한 전자책 열풍부터, 인문학 독서 붐 등은 출판계를 고무시키는 소식들이었지만, 도서정가제와 사재기를 둘러싼 논란, 군부대의 불온도서 금지 조항의 헌법재판소 합헌 판결 등은 출판계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게 하는 소식들이었다. 한희덕 도서출판 섬앤섬 대표, 여승구 도서출판 지형 대표, 맹한승 PS커뮤니케이션 이사, 박익순 대한출판문화협회 사무국장, 장택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독서진흥부장 등 다섯 명에게서 의견을 들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明 전자책 활성화·인문학 독서붐·추모열기 후끈 늘 새로운 도전은 불안감과 함께 온다. 도전의 결과가 항상 성공인 것만도 아니다.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전자책 관련 담론은 출판계의 판도를 바꿀 전망이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주도해 설립한 전자책관리업체인 ‘한국출판콘텐츠’로부터 시작해 예스24, 인터파크 등이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았고 스마트폰도 가세했다. 다섯 사람 모두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꼽았다. 맹 이사는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각종 앱이 개발되는 등 대한민국 출판 시장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의미심장한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바라봤다. 한 대표는 “출판 시장의 의미있는 변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정부가 나서서 책임감 있게 전자책 표준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 독서 붐도 그 뒤를 이어 훈훈한 분위기 연출의 주역으로 꼽혔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흐름을 이끌었다. 특히 여 대표는 ‘정의란’을 베스트이자 워스트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두 권이 베스트셀러로 롱런하긴 했지만 여전히 인문학 출판사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하버드대라는 간판과 대대적 광고 공세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는 ‘베스트셀러 공식’이 인문학 분야에서조차 통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대중 자서전’, ‘운명이다’ 등 전직 대통령 자서전 등이 추모 열기 속에서 각광을 받았고 “말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법정 도서 다시 읽기도 상반기 출판계를 이끌었다. ●暗 서점가 책값할인 힘겨루기·표절논란·판권경쟁 도서정가제, 책값 할인 문제를 둘러싼 출판계 내부의 힘겨루기가 수면 위로 터져나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7월 19% 할인 판매를 용인하며 사실상 온라인 서점의 손을 들어줬다. 출판계와 오프라인 서점은 이에 대해 지난 9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박 국장은 “도서정가제를 지키려는 출판계의 노력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면서 “당장은 할인 판매가 독자들을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결국은 책값 인상으로 귀결돼 출판계와 독자들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고질적인 관행인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3월 네 곳의 출판사를 사재기 혐의로 문화부에 신고했다. 논란과 곡절을 거치며 혐의 없음으로 결론지어졌지만 올바른 독서 문화 정착을 위한 유통 질서의 확립 필요성은 여전한 과제로 남겨졌다. 여 대표는 “무혐의로 처리됐지만 편법적 사재기와 타겟 마케팅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10월 헌법재판소가 ‘군 불온도서 금지’를 합헌으로 결정한 점도 출판계 안팎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장 부장은 “군인들이 책 읽을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강남몽’, ‘덕혜옹주’ 등 도서들의 표절 논란과 부산의 동보서적 등 중소 서점들의 폐업, ‘1Q84’를 둘러싼 판권 경쟁 등도 출판계 사람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베스트, 워스트 소식을 떠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출판사의 인력난과 청년실업 문제의 윈-윈을 꾀하며 시행한 청년인턴 인건비 지원도 관심을 받았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예년보다 참여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평가 속에서도 늘 불참하던 문학동네가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 이혼녀·철부지엄마와 그 아들, 불안·고독한 마이너리티 삶은…

    이혼녀·철부지엄마와 그 아들, 불안·고독한 마이너리티 삶은…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펴냄)는 작가 은희경(51)이 안에서 오랫동안 품어 왔던 두 페르소나가 세상에 나와 성장해 가는 기록이다. 철부지 엄마 ‘신민아’와 그의 아들, 열일곱 소년 ‘강연우’다.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자신을 애써 지켜내고 싶은 철부지 싱글맘은 쿨하고 센 척하지만 한없이 약하다. 그에 반해 열일곱 소년은 꽤 의젓하거나 혹은 삶에 심드렁해 보인다. 둘은 쉼 없이 세상과 사랑하고, 연인과 사랑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둘은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지나칠 만큼 섬세한 감성은 사회 주류에 끼어드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내용의 관계 앞에서 남들보다 더 아파하고,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내적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 소설은 지독하리만치 철저히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이혼녀인 엄마의 직업이 ‘옷칼럼니스트’인 것도, 소년이 자석에 이끌리듯 힙합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엄마의 애인이 현학적인 문화평론가인 것도, 소년의 친구 독고태수가 외국 유학 귀국 부적응자인 것도 모두 사회의 주류에 편입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인물들은 불안하고 고독하며 따스한 손길을 갈망한다. 소년들이 늘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힘은 이미 스스로 지니고 있다. 도망가지 않기, 솔직하게 들여다보기를 통해 은희경은 이를 하나씩 증명한다. 5년 전 시작한 뒤부터 썼다가 지우고, 지었다가 부수기를 연신 반복하며 내놓은 작품인 만큼 인물들은 잘 영글어 있다. 성장하는 이가 겪어야 하는 모든 복잡하고 세밀한, 그래서 쉬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선의 변모 지점을 에둘러 가지 않고 덤덤하게 마주한다. ‘소년’에는 성장소설이 필연적으로 빠지고 마는 어설픈 훈계가 없다. 게다가 애써 건강한 척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불필요하게 냉소적인 쿨함도 없다. 그저 소년이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존재에 대해, 관계에 대해 하나씩 사유하고 새롭게 발견해 간다. 긴장감 넘치는 극적인 사건의 연속을 원한다면 맥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은희경 특유의 톡톡 튀는 문체-기존 작품들보다 더욱 두드러진다-와 인물 개개인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극적인 사건까지 쉽게 이르게 된다. 실제로 안쪽 가지런한 치열까지 모두 드러날 만큼 활짝 웃거나 콧잔등에까지 잔뜩 주름을 잡아 웃는 은희경의 모습에서 소년-소녀가 아니다- 자체를 읽어 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희경의 힙합 예찬, 달리기 예찬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에게 힙합은 ‘내가 그냥 나일 수 있는 세계’ 혹은 ‘선율을 배제해 버린 채 음악의 완성을 추구하는 배짱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힙합의 혁명성’이다. 표면적으로는 폭력과 욕설을 매개 삼아 내뱉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무정형의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고 하는 전 우주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 채 달리는 것’,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 등 고독한 운동 달리기가 주는 만족감을 한껏 드러낸다. 홍익대 주변 힙합 공연장을 직접 찾아다니는가 하면 하프마라톤을 여러 차례 완주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대학 다니는 딸(김새남)과 아들(김이롭)에게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은희경은 책 머리에 ‘감동적인 첫 만남 이후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딸, 아들에게 이 소설을 헌사했다. 딸과 아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페르소나이니 결국 자신에게 바치는 소설이기도 한 셈이다. 왜 그리도 긴 시간 동안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젊은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 천기누설’

    젊은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 천기누설’

    찬바람이 불어친다. 바야흐로 신춘문예 계절이다. 창작과비평, 실천문학, 문학동네 등 내로라하는 문예지들도 신인작가를 뽑고 있지만 신춘문예가 지닌 묵직한 무게감은 예비 문인들에게 떨쳐내기 어려운 유혹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예비 문인들을 위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 3명의 젊은 스타작가로부터 ‘신춘문예 천기누설’을 들어봤다. ●심사위원과 역대 당선작 눈여겨보라 ‘나쁜 피’,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등을 펴낸 소설가 김이설(35)은 당선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출산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날아온 당선 소식은 산모의 힘겨움은 물론, 10년간 이어졌던 낙선의 막막함도 훨훨 날려 보냈다. 그는 “아직도 이맘때가 되면 가슴이 아련해진다.”면서 “요즘같이 감각적인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문학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 경이롭고 숙연해질 따름”이라고 말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한국 문단의 팔방미인 김경주(34)는 신춘문예에 도전한 지 두 번 만에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그 역시 “한국의 문청(문학청년)이라면 이 계절에 속앓이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역대 심사위원과 경향을 꼼꼼히 살펴본 뒤 희곡과 시에 함께 응모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예술의 영역을 점수로 객관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심사위원들의 개별적 판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역대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그들의 작품을 꼼꼼히 읽어 보는 것도 한 요령이 될 수 있다고 김경주는 조언한다. ●‘신춘문예 스타일’ 따로 있다? 중복 투고하지 않는 것은 필수다. 간혹 이러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응모 분야를 정확히 기재하는 것과 분야별 원고 분량 및 투고 편수를 차지도 넘치지도 않게 맞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원고지 80장 안팎의 단편소설 분야에 150장짜리 원고를 보낸다거나, 시 분야에 10편 남짓씩 ‘물량 공세’를 펼치는 것도 곤란하다. ‘신춘문예 스타일’이 따로 있다는 말도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예컨대 ‘첫 문장은 단문으로 짧게, 시작과 결말의 구성 및 인물은 서로 대응하게, 너무 튀는 주제보다는 보편적인 주제를 선택해야’ 등의 얘기다. 오랜 분석을 통해 나온 공식인 만큼 근거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신봉할 금과옥조는 아니라고 김이설은 말한다. 그는 “응모작이 수백 수천편 되다 보니 아예 새로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원고에 (심사위원의) 눈길이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춘문예 당선 자체를 목표 삼지 마라 장편소설 ‘재와 빨강’ 등으로 유명한 편혜영(38)은 “당선 뒤 3년 동안 작품 청탁이 오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신춘문예 당선 자체를 목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충고다. 그는 “물론 지나고 보니 개성 있는 주제의 작품을 쓰면 될 뿐,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면서도 “그때를 돌이켜 보면 자칫 화려하게 등단한 뒤 남모를 속앓이와 방황의 시간에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예비 당선자들에게 조언했다. 김이설도 “당선 이후 목표를 상실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습작 시절이나 당선 뒤나 ‘좋은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흔들림 없이 작품 활동에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신춘문예에) 도전 중인 후배들을 떠올리면 함부로 내뱉기 힘든 푸념일지 모르지만 평생을 함께할 문학임을 명심하고 작품 활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순두 해째를 맞는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이들 세 사람 외에도 하성란(1996년 ‘풀’), 백가흠(2001년 ‘광어’), 우승미(2005년 ‘빛이 스며든 자리’), 황시운(2007년 ‘그들만의 식탁’) 등 이미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한 젊은 작가들을 대거 배출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흐름을 꿰뚫는 부동산 투자 전략(윤홍기 지음, 미르북스 펴냄) 한국토지공사, 한국토지신탁에서 근무한 저자가 30여년간의 직무 경험을 바탕으로 손해를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부동산 투자 성공 노하우를 공개한다. 부동산 투자의 현실과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물론 부동산과 관련된 최근 이슈를 다뤄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만 5000원. ●파워 오피니언 50(웨인 비서 지음, 뗀데데로 펴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동문 3000명이 1950년대 이후 출간된 책들 가운데 세계관 형성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명저 50권을 수록한 책. 국내 미출간 도서 19권과 시너지, 지속가능 발전, 바이오미미크리(생체모방)와 같이 보편화된 용어들을 처음 세상에 알린 저서들도 접할 수 있다. 2만원. ●정언이의 좌충우돌 미국 유학 스토리(박정언 지음, 에듀웰 펴냄) 미국 유학 6년 차인 저자가 미국 중·고등학교에서 살아남는 법을 소개한다. 한국과 다른 미국 중, 고등학교 생활의 이모저모는 물론 낯선 학교 적응하기, ESL 수업받기, 시간관리와 리더십 등 공적인 미국 유학생활을 위한 팁을 소개한다. 1만 2000원. ●리딩으로 리드하라(이지성 지음, 문학동네 펴냄) 10대에 이미 대부분의 서양철학 고전을 독파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8살 때부터 인문고전을 그리스·라틴어 원전으로 읽었던 존 스튜어트 밀 등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을 소개한다. 가정에서 인문고전 독서 교육을 할 때 주의할 점, 추천 도서 목록 등 실용적인 정보도 담았다. 1만 5000원.
  • 사람의 몸과 꽃·나무·자연이 서로 엉기며… ‘나’의 숲은 희망을 꿈꾼다

    사람의 몸과 꽃·나무·자연이 서로 엉기며… ‘나’의 숲은 희망을 꿈꾼다

    소설가 박완서가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내 살갗을 저미는 것 같았다.’라고 평했던 김훈(52)의 문장이 신작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 펴냄)에서는 훨씬 누그러진 느낌이다. 주인공인 화자가 1인칭 여성이어서일까. 디자인회사에 다니는 미혼인 ‘나’(조연주)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다. 하위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그 작은 직권으로 성병에 걸린 접객업소 여종업원을 협박하거나 검진증을 팔아먹는다. 단속정보를 미리 빼돌려 영업정지 처분을 막아주거나 풀어주면서 벌어온 돈으로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합격해 서울에 올라온 연주에게 방 두칸짜리 아파트를 구해준다. 4년간에 걸친 등록금, 미술 재료비, 용돈 그리고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 출퇴근용으로 쓰라고 소형 자동차도 마련해준다. 6급 지방 공무원인 아버지가 뇌물죄로 구속 수감되면서 더 이상 이 세상과 부딪치거나 비비적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연주는 편안해한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사직한 연주는 계약직 공무원 공채 선발과정을 거쳐 최북단 민간인 통제선 안 국립 수목원의 세밀화가로 채용된다. 민통선 검문소에서 연주는 김민수 중위를 처음 만난다. 연주가 수목원에서 패랭이꽃, 목련, 작약꽃, 서어나무, 겨울눈 등의 세밀화를 수채화로 그리는 동안 아버지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일곱달 만에 뇌일혈 발작으로 세상을 뜬다. 김 중위의 부탁으로 정전 50주년 기념 전사자 유해발굴단이 찾아낸 뼈 그림도 그린다. 수목원의 예산 부족으로 재계약이 되지 않은 연주는 서울로 돌아온다. 연주의 핸드백에는 제대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한 김 중위의 명함 한장만이 들어 있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김 중위는 연주에게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없이 자신의 개인사를 술술 말한 뒤 뼛조각 이야기를 하고 명함을 건넨다. 주인공이 수목원에서 일하는 화가인 만큼 소설에는 사람의 몸과 꽃,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 서로 엉기어 드는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미술학원 원장의 자살이나 공무원의 비리 구조, 연주 아버지의 병세, 유해발굴단의 작업을 묘사할 때는 잠시 소설 주인공이 화가에서 사회부 기자로 바뀐 듯한 착각이 든다. 6·25전쟁에 참전한 병사의 편지와 삐라의 내용은 자세하게 인용한 출처를 밝혀놓았다. 최근 작가들이 소설에 다른 책이나 기사의 내용을 인용했다가 표절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어 무심하게 보아 넘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단편 ‘언니의 폐경’을 제외하면 여성 주인공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일이 흔치 않은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은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라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그녀는 숲속 마법자의 ‘솔메이트’

    그녀는 숲속 마법자의 ‘솔메이트’

    ‘짚신도 짝이 있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파울루 코엘류의 신작 ‘브리다’(권미선 옮김, 문학동네 펴냄)에서는 영혼의 조각인 ‘솔메이트’로 표현된다. ‘브리다’의 여주인공 브리다는 21살로 무역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며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산다. 주말에는 숲 속에 사는 마법사로부터, 주중에는 도심에 사는 마녀 위카로부터 마법을 배운다. 브리다에게는 물리학과 조교로 일하는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남자 친구 로렌스가 있다. 위카가 브리다에게 들려주는 ‘솔메이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신의 현현(顯顯)인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다. 처음 세상엔 아주 적은 수의 인간들만 있었는데 지금의 이 많은 새로운 영혼들은 윤회를 통해 분화됐다. 영혼이 분화할 때는 언제나 남자와 여자로 나뉜다. 매번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영혼의 나뉜 조각인 ‘솔메이트’를 다시 만나 결합하는 신비로운 사명인 ‘사랑’에서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각각의 윤회한 삶에서 적어도 한번은 솔메이트를 만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솔메이트를 받아들이지도, 발견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지나쳐 보낼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 솔메이트를 만나기 위해 한번 더 윤회를 거듭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이기심으로 우리 스스로가 빚어낸 최악의 벌을 받아야 한다. 고독이라는 벌을.” 전생에 마녀였으며 마녀가 되고자 달 전승(傳承)이란 마법 수업을 받는 여자 ‘브리다’에 관한 이야기는 코엘류가 1988년 출간된 ‘연금술사’ 직후에 집필했다. 1990년에 브라질과 영어권, 스페인어권 국가에 소개됐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작가가 절판시켰다. 그리고 18년 만인 2008년 36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출판사 측은 “‘브리다’는 코엘류가 본격적인 소설 형식으로 쓴 첫 책으로 코엘류 작품세계의 원류이자 가장 코엘류다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세상의 비의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숲 속의 현자를 찾아가 홀로 ‘어두운 밤’을 보내는 브리다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꿈을 좇으려고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는 용기(‘포르토벨로의 마녀’), 섹스를 통한 영성의 발견(‘11분’)처럼 그동안 코엘류가 천착해 온 다양한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마법과 마녀의 세계를 다룬 ‘브리다’가 현대의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모든 예술과 문학의 원천인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숲 속의 늙은 마법사는 느닷없이 찾아온 브리다가 자신의 솔메이트임을 한눈에 알아보지만 그녀가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지켜보기만 한다. 게다가 마법은 일상적인 전화 통화 속에서, 늘 드나들던 자동차 정비소에서, 상점이 가득한 쇼핑센터에서 한순간에 되살아난다. 코엘류의 소설이 연금술이나 순례, 마법이나 마녀처럼 현대인에게는 낯선 것들을 다루지만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된 까닭도 마녀 위카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마법은 최고 지혜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야. 인간이 어떤 일을 하든 그것으로 그 지혜에 다다를 수 있어. 마음에 사랑을 담고 일한다면 말이지.” 코엘류는 인간이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법사인 셈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부산국제영화제의 아버지 ‘미스터 킴’ 김동호의 영화 이야기

    부산국제영화제의 아버지 ‘미스터 킴’ 김동호의 영화 이야기

    전 세계 영화계에서 ‘미스터 킴’으로 통하는 남자, 부산국제영화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세계 각지를 돌며 기록한 영화제와 영화계 안팎의 이야기를 엮은 책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문학동네 펴냄)를 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끝으로 퇴임하는 김 위원장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책이다. ●세계적 축제 만들려고 20년 발로 뛰어 1988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사장이 되기 전까지는 평범한 관객이었던 김 위원장. 국내 최초로 국제 규모의 영화제를 세우고 세계적인 영화 축제로 만들기 위해 20년이 넘는 시간을 발로 뛰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알리는 파티가 열리면 한 시간 전부터 행사장을 지켰던 그는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 영화제. 저자는 영화제가 단순히 영상을 쏘아 스크린에 보여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행사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곳에선 제작자, 감독, 배우 등 영화를 생산한 사람들과 관객, 영화 구매자, 기자 등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자유로운 교류가 이뤄진다. 영화제는 이처럼 영화라는 매체의 예술적 가치를 인증하는 동시에 산업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자리다. 김 위원장은 수십년간 영화제를 탐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영화제 시스템의 이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 그 자체를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까지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책은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5대륙에서 개최되는 40개의 영화제를 프랑스 칸,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등 유명 영화제부터 먼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다 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화제의 규모에 우열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다루자는 김 위원장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세계 3대, 8대 등 유수의 영화제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거의 들어 보지 못한 영화제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과거 원양어업의 전진 기지에서 한국 교민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화합의 장으로 탈바꿈한 스페인의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웃음과 평화’ 시상 부문을 만들어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본의 ‘오키나와 국제영화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바뀌면 영화제의 성격도 바뀐다.”고 강조하는 김 위원장은 책에서 소개된 40군데 영화제의 창설자와 운영진, 관람객들을 매번 언급한다. 그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처럼 영화제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새로운 문화적 힘을 불어넣을 수도 있지만, 파시즘 정권하의 베니스 국제영화제처럼 정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충고한다. ●칸·베니스 등 40개 영화제 소개 김 위원장은 아직도 다루지 못한 30여개의 주요 영화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이미 수록된 영화제만으로도 세계 영화제 전체의 흐름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영화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정보뿐만 아니라 영화 감독들의 필모그래피 및 영화사의 요긴한 정보들은 작은 영화 백과사전을 방불케한다. 굳이 자신의 리더십을 내세우지 않아도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타이완의 허우샤오시엔 감독 등 그를 따르는 모임이 결성될 정도로 국내외에서 덕장으로서의 면모를 인정받은 김 위원장. 담담하고 차분하게 영화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마무리는 언제나 한국 영화의 미래로 귀결되는 그의 영화 사랑이 행간에서 그대로 읽힌다. 1만 6000원.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소설가들의 경험·추억 엿본다

    작가 자신의 전기적 사실과 체험을 밑그림으로 빚어낸 작품을 일컫는 자전소설. 김사과, 하성란, 김연수, 박민규, 전성태, 김애란, 성석제 등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어떤 속 이야기를 풀어낼까. ‘자전소설’(도서출판 강 펴냄)은 문예지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 특집’ 시리즈에 실린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작가들의 자전소설을 한데 묶은 책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의 작가 정이현이 쓴 ‘삼풍백화점’에서는 대학 졸업 후 백수 신세로 취업 준비를 하던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나’가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 ‘R’를 우연히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또 영원히 멀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10여분 전 그곳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작가의 경험과 당시 막막했던 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지금은 잊힌 친구와의 아련한 추억은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금도 가끔 그 앞을 지나간다. 고향이 꼭, 간절히 그리운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 그곳을 떠난 뒤에야 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정이현은 20대의 다양한 경험들이 작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에둘러 말한다. 천명관의 ‘이십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못한 채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죽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록밴드를 꿈꾸던 스무살 청춘은 ‘디제이 형’을 존경하고, 여종업원 ‘개구리’를 사랑한다. 작가는 갓 스무살의 나이였던 자신이 “이미 수십년을 굴러다닌 자동차처럼 덜그럭거렸다. 털이 다 빠진 늙은 개처럼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배 속이 늘 휑한 기분이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다. “전생엔 메릴린 먼로였다.”는 독특한 서두로 시작되는 박민규의 ‘축구도 잘해요’는 먼로와 아서 밀러·조 디마지오와의 결혼과 결별, 문학평론가 김현과의 만남 등을 넘나들며 작가가 문학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한다. 이처럼 40여명의 작가들이 개성 있게 녹여낸 자신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작가와 독자의 거리감을 좁힌다. ‘자전소설’ 시리즈는 모두 4권으로 출간될 예정으로 1권 ‘축구도 잘해요’와 2권 ‘오, 아버지’가 먼저 나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장편 ‘새엄마 찬양’ 등 6권 국내 소개

    장편 ‘새엄마 찬양’ 등 6권 국내 소개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 중 국내에 소개된 책은 장편소설 ‘새엄마 찬양’(문학동네 펴냄)을 비롯해 총 6권이다. 페루 리마의 한 부르주아 가정을 배경으로 한 ‘새엄마 찬양’은 도덕적 규범과 갈등하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새엄마와 의붓아들의 아슬아슬한 에로티시즘을 따라가면서 이들의 이야기와 연관된 여러 명화에 얽힌 일화를 끼워 넣어 상승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페루 국경 아마존 지역에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창설한 ‘특별봉사대’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냈다. 작가는 속으로는 부패했으나 겉으로는 청교도 같은 행동을 보이는 페루 군부를 조롱하면서 유머 속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은연 중에 드러낸다. 소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녹색의 집’,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에세이집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등도 번역돼 나와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독재자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의 암살과 그 후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염소의 축제’와 파리에 정착해 작가이자 번역가로 살아가는 리카르도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화려한 삶을 꿈꾸는 가난한 리마 여인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최신작 ‘나쁜 소녀의 짓궂음’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노벨문학상 수상 바르가스 요사 작품세계·삶

    노벨문학상 수상 바르가스 요사 작품세계·삶

    남미 문학 하면 주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사실성과 유머, 에로틱함을 겸비한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사실적인 표현 방식, 빠른 사건 전개, 치밀한 구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요사의 문학 세계는 날카로운 위트와 재치, 풍부한 상상력, 짙은 휴머니즘 정신에 의한 공감과 감동으로 세계성을 인정받았다. 요사는 1936년 페루의 아레키파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외교관인 할아버지를 따라 볼리비아로 갔다. 아홉 살에 귀국해 수도원 부설 학교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고, 1950년 리마의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에 진학했다. 군사학교에서의 경험은 1963년 27살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도시와 개들’에 녹아 있다. 외부와 단절된 군사학교를 배경으로 시험지 유출 등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위선과 도덕적 부패, 폭력으로 얼룩진 페루의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이 작품으로 요사는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53년 리마의 산마르코스 대학교에 입학해 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5년 결혼했다가 1964년에 이혼했으며, 이듬해 지금의 부인인 사촌 패트리샤와 재혼해 2남1녀를 두었다. 요사의 젊은 시절은 지난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자전적 장편소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에 잘 녹아 있다. 이 소설은 ‘열여덟 살이나 먹은 남자 마리오와 서른두 살밖에 안 된 여자 훌리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마리오가 일하는 라디오 방송국 인기 연속극과의 교차 편집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벽을 허물고 동시다발적인 인간 삶의 다양한 형태를 유머로 풀어 냈다. 대선에 출마할 정도로 요사는 사회 현안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사회비판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며 독재 정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1971년 쿠바의 한 젊은 시인이 시집에서 쿠바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우파로 돌아선다. 이 사건은 많은 지식인이 쿠바 정부의 이념적 경직성에 회의를 품게 했고 요사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장 변화를 설명하는 글에서 밝혔다.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는 7일 “요사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 교수는 “199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를 요사가 변절자 취급한 적 있는데 그 역시 현재 좌파로부터 변절자, 백인 중심주의자로 비난받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1990년 대선에서 낙마한 것도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공약 탓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요사의 작품을 예정작까지 포함해 5종 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 해외문학팀의 오영나 부장은 “적당히 야하고 풍자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등장하는 요사의 작품은 이미 한국에서도 충실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며 “현실에 기반을 둔 상상력이 환상적인 데다 아이러니한 삶의 모습이 녹아 있으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강하다.”고 말했다. 요사는 1982년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 남미에서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요사는 ▲1936년 페루 아레키파 출생 ▲1952년 16살에 희곡 ‘잉카의 도주’로 문단 데뷔 ▲1953년 리마 산마르코스대학에서 문학과 법학 전공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 ▲1963년 ‘도시와 개들’ 발표 ▲1966년 ‘녹색의 집’ 발표. 페루국가상, 스페인 비평상 수상 ▲1994년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
  • 세계최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6일 개막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 전시회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6일부터 닷새간 열린다. 올해 62회째인 도서전에는 전 세계 111개국 7533개 업체가 참가해 총 30만여종의 도서를 전시한다. 지난해(100개국 7314개사)보다 참가업체수가 다소 줄어들 것이라는 당 초 전망과 달리 소폭 늘었다. 전자책 발간 등 출 판 환경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화두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디지털 출판’이 될 전망이다. 주빈국인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출판계 간 디지털 네트워크 구축 작업의 하나로 ‘스파크’(Sparks) 프로젝트를 새로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 ‘스토리 드라이브’(Story Drive)라는 공간을 마련해 출판업자는 물론 영화·음악·게임·소셜 미디어·콘텐츠 개발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전시장 곳곳에 고품질의 신형 전자책(e-reader)을 체험할 수 있는 ‘핫 스팟’(Hot Spots) 코너도 설치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한 전시회 정보 제공도 처음 시도한다. 1961년부터 이 도서전에 참여해온 우리나라는 올해 문학동네 등 75개 업체가 참가해 860여종의 도서를 선보인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20㎡ 규모의 한국관을 운영한다. 한국전자출판협회는 전자책 단말기 제조업체와 공동으로 전자책 단말기 코너를 마련, 한국의 우수한 전자책 기술력과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co.kr
  • 고은 시인, 노벨문학상 탈 수 있나

    고은 시인, 노벨문학상 탈 수 있나

    오는 7일 수상자가 발표되는 노벨문학상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스웨덴 한림원 종신 서기인 페테르 엥글룬드가 지난 2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수상자는 이미 결정됐으며 7일 형식상의 투표 절차를 거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혀 궁금증은 더 증폭됐다. 엥글룬드는 “노벨문학상이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인 것이 문제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도 해 수상자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남겼다. 최근 14년 동안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적이 없었던 데다 최근 수상자가 유럽권에 집중되었다는 점을 들어 AP통신은 알제리 출신 여류 시인 아시아 제바르,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등과 함께 한국의 고은 시인을 유력 후보로 꼽았다. 최근 노벨문학상은 1994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2003년 남아공화국의 J M 쿠체, 2006년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유럽 작가가 차지해 ‘유럽 중심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유럽에서 수상자가 나온다면 알바니아 출신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로메르가 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오르한 파무크의 수상을 적중시킨 온라인 베팅사이트 래드브록스는 올해 가장 유력한 후보로 트란스트로메르를 꼽았다. 4일 현재 2위는 케냐 소설가 응구기와 시옹오, 3위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4위는 고은 시인이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와 함께 공동으로 형성하고 있다.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 이탈리아 소설가 안토니오 타부치, 호주 시인 레스 머레이, 알제리 여류 시인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 시인 이브 본느프와 등도 유력 후보군에 포진했다. 올해 79세인 트란스트로메르는 13살에 글을 쓰기 시작해 23살에 17편의 시를 처음 출간했다. 글에 정치적 이슈가 없다는 비판도 받았으나 그의 시는 모더니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를 통해 20세기 시 언어를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뇌졸중으로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지만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고은 시인처럼 여러 번 노벨상 수상 후보로 꼽힌 그의 시는 5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시인이기 이전에 저명한 심리학자로 청소년 교도소에서 일했으며 장애인, 마약 중독자, 재소자 등을 도왔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마니아 출신 헤르타 뮐러의 소설을 펴낸 문학동네 해외문학팀의 오영나 부장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오히려 흥행에 도움이 안 되는 영화와 달리,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많아 판매에 많은 도움이 된다.”면서 “올해도 비슷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 허삼관 매혈기’ 중국작가 위화 청년시절 문학의 뿌리 엿보다

    ‘ 허삼관 매혈기’ 중국작가 위화 청년시절 문학의 뿌리 엿보다

    ‘허삼관 매혈기’로 유명한 중국 작가 위화가 직접 중편소설 네 편을 골라 묶은 ‘4월3일 사건’(문학동네 펴냄)이 출간됐다. 위화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게 된 계기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이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부터. 이후 1996년 출간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2002년 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을, 2004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과 미국 대형 서점 반스 앤드 노블의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어느 지주의 죽음’ 등 네 편 직접 골라 “하루를 편하고 싶지 않으면 손님을 초대하고, 일 년을 편하고 싶지 않으면 집을 짓고, 평생을 편하고 싶지 않으면… 아내를 얻어 아들을 낳으라 했던가.” 소설집 ‘4월3일 사건’의 ‘어느 지주의 죽음’ 편에 나오는 한 대사다. 책은 이처럼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인생을 다룬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묘사한 ‘4월3일 사건’, 자연재해에 맞서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 ‘여름 태풍’, 아이의 시선으로 본 원시적 존재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조상’이 있다. 모두 위화가 1987~92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청년 작가의 형식 실험과 삶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위화는 1960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이를 뽑는 발치사로 일했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4월3일 사건’을 번역한 조성웅 씨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흐트러진 머리와 허옇게 일어난 얼굴, 허름한 옷차림,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전화. 내 머릿속에 있는 작가의 이데아와는 수만 광년쯤 떨어진 모습이었다.”며 몇 년 전 홍콩도서전에서 작가 위화와 실제로 대면한 경험을 묘사했다. 흔히 작가하면 연상되는 모습이기보다는 일반적인 중국 아저씨 같은 행색에 번역자는 사인조차 받지 못했다고 했다. 조씨는 이번 작품을 번역하면서 “위화가 살아온 인생과 내가 살아온 삶을 생각하니 번역의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엄습해왔다.”고 털어놓으며 청년 시절의 위화가 낯설었다고 고백했다. ●실험정신·전통서사·풍유 등 다양한 작품 소설집의 얼굴인 ‘4월3일 사건’은 몽환적 풍경,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묘사 등으로 공포의 주체와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 작법은 카프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공포와 압박에 시달리는 소년의 심리는 현대 중국인들의 마음과 다를 바 없을 듯하다. 젊은 시절 위화는 인간 내면의 공포와 억압, 인간 사회를 둘러싼 폭력과 죽음에 천착했다. 그 이유를 묻는 주변 사람들에게 위화는 “우리가 사는 곳에 이런 것들이 없는지 한번 찾아보라.”고 말했다 한다. 책은 실험정신이 가득한 작품, 전통 서사를 추구한 작품, 알레고리(풍유)를 밑바닥에 깐 작품까지, 색과 맛이 다른 내용물이 골고루 담긴 ‘위화 종합세트’란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대작가 위화의 색다른 풍모를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흥미로운 선물이 될 듯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쥐의 세계를 통해 본 인간세상

    #1. 향수공장이 있다. 사장은 요전에 점심시간을 1시간에서 30분으로 줄이더니 앞으로 20분씩만 주겠다고 한다. 수당? 그런 건 없다. 딸이 있는 여성 근로자가 사장을 찾아왔다. 아이가 아픈데 일찍 퇴근하면 안 되겠냐고. 사장은 의사도 아닌데 집에 가면 할 일이 뭐 있겠냐며 하던 작업이나 신경쓰라며 퇴박을 놓는다. #2. 이 사장에게 설탕 판매업자들이 찾아왔다. 너도나도 설탕을 팔겠다고 하니 경쟁 때문에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울상이다. 설탕도 공급하고 있는 사장은 어렵지 않게 대책을 던져준다. 어려울 땐 힘을 모아야 한다며 설탕값을 똑같이 올리라고. 단맛에 길들여졌는데 비싸도 지들이 안 사고 배기겠냐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온기 없는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신문 사회면 또는 경제면을 통해 늘상 접해온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어린이책에서 나온 내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어린이책 ‘난 쥐다’(전성희 글·소윤경 그림, 문학동네 펴냄)는 아동소설에서 좀체 다루지 않던 노동 착취, 정보 독점, 분배의 불공평 등 묵직한 주제를 다뤘다. 쥐의 세계를 통해 인간 세상을 비추는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세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책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한다. 모순되지만 책의 주인공인 소년 쥐 나루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매트릭스’의 네오에 비견된다. 네오가 모피어스를 만나 금기의 알약을 먹고 세상의 이면을 보는 여행을 떠나듯 나루 또한 비슷한 여정을 겪는다. 인간 세상에서 가족과 헤어져 헤매던 나루는 엉뚱한 역사학자 고리 아저씨를 만나 땅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쥐들의 세계 ‘뉴토’로 들어간다. 늘 어딘가 있을 쥐들의 천국을 꿈꿨던 나루는 잠시나마 뉴토행에 흥분한다. 그러나 여기서 나루가 본 것은 세상을 작동시키고 있던 추악한 진실이다. 쥐 주제에 인간처럼 입고, 걸을 뿐 아니라 일까지 하는 동족을 보며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자본과 정보를 독점하고 다른 쥐들을 회유, 협박하면서 자신의 배만 불리는 자본가 파라의 행태를 보며 잘못된 사회 구조를 고치겠다는 작은 걸음을 뗀다. 책은 아이들에게 네오가 집어삼킨 진실을 보게 해주는 ‘알약’ 같은 구실을 한다. 어른들에겐 세상을 비꼬는 우화(寓話)로 읽힐 만하다. ‘거짓말학교’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전성희 작가의 작품이다. 98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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