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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발한 그림·기호·종교·인물 창조 판타지 버무린 잘 만든 영화 보는 듯

    기발한 그림·기호·종교·인물 창조 판타지 버무린 잘 만든 영화 보는 듯

    김중혁(40)의 서사(敍事)는 활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2000년 등단한 그의 엉뚱하고 유쾌한 상상력은 활자의 틀 안에 머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림, 기호, 표 등이 다양하게 동원되어 이야기에 녹아들거나 이야기를 끌고 간다. 지난해 낸 첫 장편소설 ‘좀비들’도, 지난해 제1회 젊은작가상대상을 안겨준 단편 ‘1F/B1’도, 2009년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발표한 단편 ‘C1+y=:[8]:’ 등까지도 모두 마찬가지다. 국가, 현실, 과학, 자연, 이성 등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재기발랄한 입담을 펼치고자 하는 그에게 고정된 소설의 형식은 갑갑하기만 하다. 두 번째 장편소설 ‘미스터 모노레일’(문학동네 펴냄) 또한 유쾌하고 발랄한 아이디어들을 곳곳에 깔아놓았다. 그럴싸한 종교와 교리, 인물 등을 만들어내고, 주사위를 굴리는 보드게임을 개발하고, 분식집 메뉴판, 미장원 요금표, 벨기에 섬유회사 ‘하이-파이버·High-fib(v)er’ 마크 등 기발한 것들이 이어진다. 직접 그린 그림과 표가 곳곳에 등장함은 물론이다. 여기에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 유럽 도시 곳곳을 누비는 모험,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 같은 판타지 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버무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스물일곱살 ‘모노’는 문득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주일 만에 게임을 개발해낸다. 그리고 수천개 이상의 변수를 가진 복잡하고도 흥미진진한 이 게임은 전 세계 사람들을 휘어잡고 그와 동업자 친구 ‘고우창’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안겨준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우창의 아버지이자 평생 무위도식하던 지식 룸펜 ‘고갑수’가 회사 돈 5억원을 들고 사라진다. 알고 보니 그는 ‘볼스 무브먼트’라는, 동그란 구(球)로 우주를 관장하는 ‘우주자’의 힘을 믿는 사이비 종교의 핵심 간부 ‘핀볼 성자’였다. 그가 ‘볼교’의 본산인 벨기에로 떠난 것이다. 한편 ‘모노레일’ 게임 마니아들인 모노와 그의 친구들은 고갑수를 구하기 위해, 혹은 인생을 즐기기 위해, 서로 다른 이유로 유럽 여러 도시를 스펙터클하게 헤맨다. 이들은 정체를 쉬 드러내지 않는 우연과 운명의 갈림길마다 어김없이 정해진 길이 아닌 낯선 선택을 하며 운명 속에 자신을 내던진다. 운명을 얘기하지만 자유로운 영혼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순간의 삶을 즐긴다. ‘처음부터 자신의 선택이란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주사위를 던지고, 자신은 던져진 주사위의 숫자만큼 이동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주사위가 게임 속 멋진 지름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168쪽) 하지만 김중혁은 소설 속 누군가의 입을 빌려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우주자는 우주를 우연에 맡겨두지 않는다. 우리 역시 볼스 무브먼트를 우연의 힘에 맡겨둘 수는 없다.’(222쪽)라고. 그리고 그들은 종교 개혁-을 가장한 박진감 넘치는 어드벤처-를 감행한다. 권태로움 그 자체였던 고갑수가 난데없이 그 중심에서 볼교의 최고 지도자 ‘유니볼 성자’를 납치하는 초절정 영웅적 행위를 선보이고, 우여곡절 끝에 고갑수는 순교하고 다른 친구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작품은 이렇듯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를 연상시킨다. ‘볼스 무브먼트’, ‘헬로 모노레일’, 볼교 예언서를 썼다는 ‘크리스티나 보네티로 교수’ 등의 단어를 검색해봤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충분히 황당한 소설임에도 군데군데 각주까지 달아가며 볼교 교리, 모노레일 게임 방법 등을 너무 천연덕스럽게 설명하고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든 작가 탓이라고 우겨 본다. 김중혁은 책 끝장에 ‘모두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런던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외의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라고 사족 같은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작가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남겼다는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주사위 게임의 기본 법칙”이라는 말(65쪽)도 가짜인가. 확인할 길이 없다. 뻔한 허구임에도 솔깃하게 만드는 젊은 이야기꾼의 능청스러운 입담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 EBS, 매주 월·화 방영

    EBS ‘TV 평생대학 - 역사이야기’는 20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매주 월, 화요일 밤 12시 35분 ‘정병설의 권력과 인간’을 방영한다. 정병설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사도세자는 미친게 아니라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소장 역사학자 이덕일의 주장을 정면 비판해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정 교수는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1737~1815)가 쓴 회고록 ‘한중록’을 기반으로 왜 이덕일의 주장이 틀렸는지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낸 황석영

    최근 2년간 그만큼 구설(口舌)에 오른 작가도 없다.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동행하면서 현 정부를 ‘중도 실용’으로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1989년 방북과 망명생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간 옥살이를 했던 그였기에 논란이 뒤따랐다. 지난해 발표한 장편소설 ‘강남몽’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1962년 서울 경복고 재학 시절 ‘입석부근’으로 문단에 나왔으니 햇수로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황석영(68) 얘기다. 지난해 9월부터 황석영은 미얀마·베트남·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에 칩거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곳을 찾아 달라.”는 그의 부탁에 강태형 문학동네(출판사) 사장이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다. 해발 2400m에 있는 소수민족 나시족의 고대 도시에서 구상과 집필을 한 황석영은 제주도로 옮겨 소설을 마무리 지었다. 연재 방식이 아닌 생애 첫 전작 장편 ‘낯익은 세상’이다. 소설은 1980년대 초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으로 흘러들어온 ‘딱부리’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문명의 이면과 쓰레기장 빈민의 삶, 폐허에서 싹트는 희망을 말한다. 리장의 한 호텔에서 1일 취재진과 만난 황석영은 “내 나이 대에 걸맞은 ‘만년문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구설’들과 관련, “지난 2~3년간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면서 특유의 입담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은 듯 편해 보였다. →‘낯익은 세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내 작품 중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등을 전반기라고 한다면, 방북과 망명, 옥살이 이후 10년여 동안 쓴 작품은 후반기 문학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으로 이어지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닐까란 본능적인 위기감이 들었다. 변신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초조함도 있었다. 이 무렵 술자리에서 전에 추구했던 세계나 가치관, 현실에 밀착한 소설이 아니라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을 그리고 싶다는 얘기를 문인들과 나눴다. 당시 누군가가 쓰레기장에 가면 지난 세월을 보낸 욕망의 존재들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농담처럼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얘기를 하다가 시대나 인물을 추상화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배경이 난지도인데. -상황을 빌려 왔지만 세계 어느 도시에나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생산과 소비를 극대화한 인간 욕망에 대한 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곳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마지막에 ‘땜통’(주인공 ‘딱부리’의 동생으로 도깨비들과도 소통하는 신비로운 존재)이 죽는데. -처음에는 안 죽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땜통은 저 세상(정령들의 세계)이 어울리니 보내자고 하더라. 예전에는 발끈했을 텐데 요즘에는 편집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아량이 생겼다(웃음). →등단 50년이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 -얼마 전 마흔 살 먹은 아들과 술 한잔하는데 ‘더는 사나운 형님 말고, 할아버지가 되라.’고 하더라. 후배들도 ‘잘난 척 그만하고, 술자리에서 혼자 말하지 말고, 당신만 옳다 하지 말라.’고 하더라. (나처럼) 어릴 때부터 칭찬받은 이들의 약점은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거다. 후배 문인들과 얘기하다가 내 또래의 ‘만년 문학’ 얘기가 나왔다. 치매에 걸린 노파가 딸을 몰라보면서도 어린 딸의 사진을 보여 주면 알아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은 지워 버리고 자기가 남겨야 할 기억을 간추리고 재정리하듯 만년 문학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좋다. 여태 썼던 작품과 달리 가야 할 길이 보이니까 다행스럽다. →다음 작품은. -정확히 따지면 내년이 ‘입석부근’으로 등단한 지 50년이다. 처음에는 평론가 몇 명과 대담집을 낼까 했는데 좀 섭섭할 것 같아서 소설을 쓰기로 했다. 제목도 정했다. ‘이야기꾼’이다. 황석영의 아바타 같은 인물을 만들어서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온갖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얘기를 쓸 생각이다. →표절 시비 이후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힐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 문단에서 실제 자료를 다루면서 출처를 밝히는 전례가 없었다. 시대물이나 역사소설에서 창작품이 아닌 자료들은 다 활용을 하지 않나. 팩트(사실)를 소설로 전환시키는 것은 작가적인 권리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놓치고 실수한 거다. 그래도 ‘강남몽’은 후대에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억될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2009년 대통령과 중앙아시아에 갔을 때도 말이 많았다. -나는 남북관계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현 정부의 구성이나 콘텐츠가 내가 살아온 세월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남북관계 변화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은 분명하고 여전하다. 다만 공통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지역 차원에서 풀자는 것이다. 그게 알타이 문화경제연대라는 건데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나온 얘기다. 다음 정권이 오면 다시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소설만 열심히 쓰라고 한다(웃음). 글 사진 리장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가학적 폭력과 폭언으로 포장된 사랑

    가학적 폭력과 폭언으로 포장된 사랑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광어’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백가흠(31)의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 펴냄)가 재출간됐다. 모두 8편의 소설 중 표제작 ‘귀뚜라미가 온다’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갯바람처럼 거칠고 비린 냄새가 난다. 능도 유원지의 바람횟집과 달구분식이 소설의 무대다. 바람횟집에는 스물여섯 살 남자와 서른네 살 여자가 산다. 달구분식은 달구와 노모가 꾸려간다. 바람횟집의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이를 속인 채 사랑을 한다. 남자는 여자를 ‘시발년’이나 ‘미친년’, 기분 좋을 땐 ‘뚱띵’이라고 부른다. 잠이 오지 않거나, 여자 혼자 텔레비전을 볼 때 장난삼아 섹스를 한다. 또 옆집 달구네가 시끄러워지면 싸우는 소리 듣기 싫어 섹스를 한다. 여자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장사 때문에 항상 안절부절못하며 전어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옆집 달구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노모를 상습적으로 구타한다. “이런, 꺼억, 시벌년”하면서 주먹을 휘두른다. 노모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틈으로 몸을 감추며 매일 밤을 보낸다. 이들의 왜곡되고 폭력적인 관계는 ‘귀뚜라미’라는 태풍이 섬을 휩쓸면서 끝난다. 바람횟집 여자는 어렵게 구한 전어가 태풍에 휩쓸려 가자 그것을 건지려다 파도 속에서 사라진다. 달구의 노모는 아들에게 맞을 때마다 피하던 좁은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물속에 잠기고 만다. 작가는 쳇바퀴 굴러 가듯 반복되는 가난한 삶을 가진 주인공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력도 희망도 주지 않는다. 자신이 마련한 돈을 가지고 사라져 버리는 여자를 붙잡지 않는 남자(‘광어’), 생계수단으로 부인의 포주 노릇을 하는 남편과 이를 수용하는 부인(‘밤의 조건’), 자신의 가족을 잔인하게 죽이고 처음 본 여자의 집에서 자살하는 남자(‘구두’) 등 그들만의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란 죽을 만큼 힘겨운 일이다. 평론가 김형중씨는 “백가흠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이며, 모성애의 원형적인 질투에 기인한 경쟁과 소유욕으로 점철된 잔인한 폭력성이 ‘피학적 헌신’, ‘가학적 폭행’, 강간, 신성모독 등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하고 있다.”면서 “백가흠은 남성 판타지와 폭력성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에서, 철학적 탐구로 이행해 가는 도정에 있다.”고 작품세계를 평했다. 1만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계간 ‘시인수첩’ 야심찬 첫발 ‘문학수첩’ 전철 밟지 않기를

    [문화계 블로그] 계간 ‘시인수첩’ 야심찬 첫발 ‘문학수첩’ 전철 밟지 않기를

    677, 151, 463, 125, 101, 93, 66…. 그리고 28과 1. 언뜻 규칙성을 찾기 힘든 숫자의 나열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문학 전문 잡지들의 통권 호수(號數)다. 1955년 창간한 월간 현대문학은 이달 677호를 냈다. 그 뒤 숫자는 계간 창비(1966년 창간), 월간 문학사상(1972년 창간), 계간 문예중앙(1978년 창간), 계간 실천문학(1985년 창간), 계간 문학과사회(1987년 창간), 계간 문학동네(1994년 창간)의 ‘훈장’이다. 오랜 세월, 정치·경제적 등의 이유로 정간과 휴간의 곡절을 겪으면서도 버텨온 한국문학사의 증거 숫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8과 1은? 28은 2003년 창간해 2009년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에 들어간 계간 문학수첩의 통권 호수이다. 1은 그 계간지를 냈던 같은 이름의 출판사 문학수첩이 최근 선보인 시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 창간호(여름호)다. 발행인은 김종철 문학수첩 대표가, 편집위원은 장경렬 서울대 교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 허혜정 한국사이버대 교수가 맡았다. 333쪽에 이르는, 제법 두툼한 창간호 어디에도 상업광고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만화와 시, 사진과 시, 그림과 시 등 시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 앞으로도 ‘시인수첩’에서는 광고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재 20억원을 선뜻 출자한 김종철 발행인은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광고나 외부 도움 없이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인들에게 “정당한 원고료도 지급하겠다.”고 했다. 시를 싣고도 원고료를 주지 않거나 1년 정기구독권으로 대체하는 식의 비뚤어진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선언이다. 그 자신이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기에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김 발행인은 “시인과 평론가들끼리만 서로 칭찬하거나 헐뜯는 풍토를 뛰어넘어 시를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분파주의’와 ‘패거리주의’라는 한국 문단의 고질적 병폐를 창간사에 정확히 적시하고 있는 점도 주변의 기대를 부풀린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발행인은 2003년 계간 문학수첩을 창간할 때도 “출판사 영리와 연계시키는 기존 관행을 배격하고 순수하게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6년 뒤, 무기 휴간을 전격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변화의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종합 계간지 형식보다는 장르 특성을 담보할 전문지가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폐간 선언이었고, 그 배경에는 누적되는 적자가 실질적 이유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제 막 첫발을 디딘 시인수첩에 딴죽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계간 문학수첩의 아픈 전철을 밟지 않기를, 그래서 한국문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e북 르네상스 열리나

    e북 르네상스 열리나

    출판사 문학동네는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파울루 코엘류(브라질)의 ‘연금술사’를 비롯해 소설집 10종 11권을 전부 전자책(e북)으로 출간했다. 지난해 6월 전자책 전집 출간을 제안했으나 사실상 거절했던 코엘류였다. 코엘류는 최신작 ‘브리다’로 먼저 시장 반응을 살펴보자고 했다. 한국의 전자책 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0월 ‘브리다’ 전자책이 먼저 나왔다. 우려와 달리 ‘브리다’는 석 달 만에 1만 부가 팔렸고, 전자책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코엘류가 전자책 전집 출간에 흔쾌히 동의했음은 물론이다. 비슷한 시기, 도서출판 해냄이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3부작을 전자책으로 내놓았다. 조정래 소설이 전자책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가격은 ‘태백산맥’의 경우 전집 10권에 5만 9000원. 종이책 전집 가격(11만 8000원)의 절반이다. ●전자책 매출액 3년 새 2배… 예상 깨고 ‘빵’ 터지나 그런가 하면 웅진 그룹의 문학출판사 뿔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스웨덴)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 밀레니엄 3부작을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아시아 최초다. 한국 전자책 시장을 낙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올해 들어 코엘류, 조정래, 라르손 등 대형 작가들이 앞다퉈 전자책을 내놓는 등 e북 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9일 한국전자출판협회에 따르면 전자사전, 오디오북, 모바일북 등을 제외한 단행본 형태의 전자책 매출액은 2007년 1235억원에서 2008년 1278억원, 2009년 1323억원으로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975억원으로 껑충 뛰더니 올해는 3000억원에 육박(2891억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 일본에는 못 미치는 규모다. 지난해 미국의 전자책 시장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 800억원), 일본은 650억엔(약 8700억원)이다. 하지만 전자책 시장의 기본 인프라인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에 본격 보급된 점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성장세임은 분명해 보인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전자책 단말기 보급 확산과 더불어 전자책만을 출간하는 출판사들도 올해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는 정부, 출판계, 법조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자책 신(新)르네상스를 위한 준비’ 포럼이 열렸다.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제도적 걸림돌을 지적했다. 이소영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는 저작권 문제를 짚었다. 현행 저작권법에는 ‘출판’의 법적 개념에 ‘전자 출판’이 포함돼 있지 않다. 출판업자에게 ‘판면권’(출판된 저작물의 디자인적 요소에 대한 권리)까지 인정할 것인지, ‘권리 소진’ 원칙을 무형물인 전자책에도 적용할 것인지 등도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은 부가세 면제 혜택 없어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현행법상 종이책은 부가가치세(책값의 10%)가 면제되지만 전자책은 이렇다 할 세제 혜택이 없다.”며 시장 성장세에 비례하는 정부의 제도 정비를 촉구했다. 최근 불거진 ‘전자책 도서 정가제’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업계는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전자책도 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 등은 전자 출판 특성에 맞게 다채로운 할인 혜택을 요구한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동시에 내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갉아먹을 것이라던 당초 우려와 달리 윈윈 효과(종이책-전자책 동반 성장)가 크다.”면서 “다만 최근 잘 팔리는 전자책은 대부분 (작품성과 대중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종이책 명성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독자적인 시장 구축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섣부른 낙관을 경계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국내 문단에 작가 부부는 꽤 된다. 얼핏 떠올려 봐도 구중서(평론)-김윤희(시), 조정래(소설)-김초혜(시)부터 시작해 남진우(시)-신경숙(소설), 홍용희(평론)-한강(소설) 등을 거쳐 김도언(소설)-김숨(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금세 여러 쌍들이 꼽아진다. 그렇다면 형제 작가는? 김원일(소설)-김원우(소설), 황현산(평론)-황정산(시), 박용재(시)-박용하(시) 등 흔하지는 않지만 드문 것 또한 아니다. 여기 쌍둥이 자매 소설가가 있다. 희귀한 예다. 스스로 “우리는 싱크로율(일치율) 95%예요.”라고 깔깔거리는 서른다섯 살의 장은진, 김희진이다. 30분 먼저 세상에 나와 언니가 된 장은진이 200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먼저 등단하면서 혹여 헷갈리지 말라고 성을 ‘김’에서 ‘장’으로 바꿨다. 문장(文章)의 ‘장’이거나 장편소설의 ‘장’(長)이라는 뜻이란다. “장이라는 성도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천연덕스레 거드는 동생 김희진은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들은 지난해 같은 인터넷 웹진(인터파크)에서 나란히 연재했던 작품을 나란히 같은 출판사(자음과모음)를 통해 내놓았다. 언니의 작품은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동생의 작품은 ‘옷의 시간들’이다. 지난 20일 책이 나온 직후 쌍둥이 소설가들과 만나 나눈 유쾌한 대화를 옮겨 본다. 장은진(이하 은진) 광주 집 한방에서 같이 살고, 같이 소설 써요. 속옷하고 신발 빼고는 다 함께 쓰죠. 소설 구상과 창작 과정조차도 나누죠. 김희진(이하 희진) 그래도 소설 쓰는 장소는 달라요. 얘-두 사람의 호칭은 ‘야’, ‘너’다. 자매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난 안 써져서 괴로운데 그 소리까지 들으면 더 기분 나빠져요. 그래서 얘는 방에서 쓰고, 저는 거실에서 써요. 은진 제가 좀 세게 치는 편이긴 해요. 헤헤. 희진 얘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좀 엉뚱해요. 학교(목포대 국문과)에서 단편소설 써 오라는 과제가 있어서 끙끙거리는데, 얘가 쳐다보더니 ‘꼴 같지 않은 짓을 하고 있네.’ 하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래서 “너도 써봐.”라고 권했죠. 은진 전공(전남대 지리학과)은 달랐지만 바로 그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희진 여차저차 설명한 뒤 그 소설을 대학 교수님(유금호)께 보여 드렸더니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보니까 제가 쓴 것보다 낫더라고요. 위기감을 느꼈지요. 은진 지금도 위기감 느끼는 것은 아니고? 하하. 장은진은 소설집 한 권과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등 세 권의 소설을 이미 낸 상태다. 2009년에는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김희진은 등단이 늦은 만큼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이 유일한 작품이다. 뼈 있는 농담으로 들린다. 진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까. 희진 지난해 연재하는 동안 숫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댓글 숫자, 조회 수 등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라고요. 은진 서로 눈치 보고 했죠. 하나라도 제 댓글이 많으면 희진이는 기분 안 좋아했고, 저는 조금 미안하고 그랬고요. 희진 얘는 이미 책을 3권 냈으니까, 뭐, 그럴 수도…. 그래도 속으로는 쟤 소설이 내 것보다 뭐가 낫다고 그래 하는 생각은 여전했지요. 은진 초기 작품들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각자 길을 찾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진 (상대방의 장점은 뭐냐고 묻자) 은진이는 문장이 맛깔스럽고, 작품이 단정해요. 은진 희진이는 에피소드가 신선하고, 대사도 유머러스하고, 사유하는 스타일도 저보다 나아요. 저희는 소설 창작 과정에 대해서도 늘 상의해요. 서로 첫 독자죠. 희진 설령 내가 쓴 게 아무리 형편없어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근데 우리끼리는 가차 없이 말해도 괜찮아요. 상대방 컴퓨터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있어요. 은진 성장과정도 같고 성격, 취향, 심지어 좋아하는 이상형까지 같으니까요. 싸울 일은 없겠다. 과연 그럴까. 희진 한번 다투면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서로 말도 안 하곤 해요.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노트북에 있는 소설을 몽땅 지워 버리면 쟤는 끝장이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화해하고 난 뒤 내가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더니 바로 말을 가로채더라고요. 은진 제가 그랬어요. “너, 내 소설 다 지워 버리려고 했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동글동글한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 까만 뿔테 안경, 전라도 사투리 담긴 음색까지 거의 비슷하다. 외모만으로는 영 구별이 쉽지 않다. “그냥 복제인간이 다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라고 김희진이 말하자 “공동 창작 소설은 쉽지 않겠지만 나중에 영화 시나리오는 한번 같이 써보려고요.”라고 장은진이 덧붙인다. 서로 거들고 다투며 성장하는 사이가 분명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EBS ‘…원작동화’ 8년만에 부활

    창작동화를 각색해 어린이용 드라마로 선보였던 EBS 프로그램 ‘TV로 보는 원작동화’가 8년 만에 부활한다. 방영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첫 방송은 5일로 잡혔다. 아동도서 출판사인 문학동네, 주니어 김영사와 손잡고 북 캠페인도 함께 벌인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아이가 꼭 봤으면 좋을 만한 책을 선택해 게시판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책을 준다. ‘EBS 어린이 연기자단’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전국 오디션을 통해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어린이 배우들이 프로그램에 대거 출연한다.
  • 프로방스서 전해온 감성·사유

    너나없이 쓸 수 있는 일기 또는 여행기다. 하지만 이 평범한 형식의 산문은 예술의 공간과 인물을 넘나들며 금세 몸을 뒤튼다. 알베르 카뮈의 글과 흔적과 접속하며 문학의 향기를 잔뜩 피워내나 싶더니 빈센트 반 고흐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서는 빛과 색의 만찬을 한상 가득 차려낸다. 본업인 사회학적 사유 역시 빠질 수 없다. 경계짓기에서 자유로운 산문이 예술의 일부분이자 학문의 영역에 속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문학동네 펴냄)은 재불 사회학자이자 ‘전문 산책자’를 지향하는 정수복(57)이 발걸음을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로 옮겼다. 프랑스의 공간에 대해 쓴 세 번째 책이다. 정수복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1990년대 환경운동연합, 사회운동연구소 등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그리고 2002년 ‘정신적 망명객’으로서 프랑스로 터전을 옮겨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는 2005년 여름 꼬박 한달 동안 프로방스 지역의 몇몇 작고 한적한 마을들에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자가 아닌 정주자(定住者)가 돼 느릿하고 단조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햇빛과 바람, 문학과 미술을 만끽하며 가진 성찰과 사유를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일기 중간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예술로서 사회학적 사유’의 글들이 들어 있다. 이는 ‘정수복식 글쓰기’를 완성케 하는 대목이자 그의 책이 단순한 여행기 또는 산문집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인문학적 산문집으로 자리매김되는 이유이다. 카뮈가 마지막에 살았던 루르마랭,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무대가 된 뤼베롱 산, 고흐가 말년을 지낸 아를 등의 기억은 이미 전작(前作)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과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과 또 다른 감성을 건넨다. 파리에서의 치열했던 지성이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프로방스는 완전한 휴식의 시간과 공간이니까. 그는 “한국은 빨리빨리 병으로 인해 획일화됐고 그런 모습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삶에 대한 영감을 메마르게 한다.”면서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느림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37살 동갑내기가 쓴 아주 다른 이야기

    37살 동갑내기가 쓴 아주 다른 이야기

     서른일곱 동갑내기인 두 여성 소설가가 비슷한 시기에 성격이 다른 소설집을 펴냈다. 김숨과 백영옥의 단편소설집 ‘간과 쓸개’, ‘아주 보통의 연애’는 제목처럼 소설의 성격이나 소재가 판이하다. 등단 시기는 다르지만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문학계를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되는 두 작가의 작품은 찬찬히 비교해서 읽어 볼 만한 재미가 있다. 차분한 문체로 되살린 삶의 어두운 풍경[간과 쓸개]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연이어 당선되며 문단에 나온 김숨은 2005년 ‘투견’을 시작으로 해마다 한권씩 꼬박꼬박 책을 내고 있다.  표제작인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아픈 노인의 이야기다. 간암에 걸린 예순일곱의 ‘나’는 30여년 전에 산 경기 평택 땅을 팔아 돈을 자식들에게 나눠 준다.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몸무게가 점점 줄어드는 ‘나’는 복부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끼워 쓸개즙을 빼내야 하는 큰 누님을 만나러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그러다 친구에게서 받은 골목(榾木)에 버섯이 열린 것을 보고 마침내 누님을 찾아가게 된다. 어렸을 때 누님을 따라 저수지에 갔을 때 그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물빛을 바라봤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간과 쓸개가 아픈 두 노인은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골목’과 같다. ‘나’가 어렸을 때 본 검푸른 저수지의 물빛은 누님의 간과 심장과 위와 대장을 썩어들게 하고 있다는 쓸개즙 색과 흡사하다.  소설가 하성란은 “‘간과 쓸개’는 김숨의 소설일까 싶게 현실적”이라며 “기괴한 환상이 교차하던 이전 소설들과 비교하면 땅 위로 안착한 듯하지만 환상이 사라진 그의 소설은 여전히 쓸개즙처럼 쓰디쓸 뿐”이라고 말했다.  ‘간과 쓸개’뿐 아니라 소설집 곳곳에는 병든 인물들이 등장한다. 거동이 자유롭지 않아 유폐되듯 갇혀 살아가는 노인(‘북쪽 방’), 네 번째 뇌수술을 앞둔 사내(‘내 비밀스런 이웃들’) 등 죽음의 이미지와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필사의 삶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성란은 “내가 아는 김숨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김숨 자신도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고 말한다. 숨조차 가만가만 쉴 듯한 작가는 어쩔 수 없는 질병이나 가난에 사로잡힌 소설 주인공들을 통해 뒤틀린 인간의 존재방식을 드러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족을 포함한 타인의 무관심은 아프게 감지된다.  소설집에는 귀뚜라미가 두번 등장한다. ‘간과 쓸개’의 나는 수도 계량기통 속에서 죽은 귀뚜라미들을 나무젓가락으로 건져 낸다. ‘흑문조’에서는 부모님에게 빚까지 지워가며 마련한 집이 귀뚜라미 천지가 된다.  뒤엉켜서 서로 다리와 더듬이를 질근질근 물어뜯고 있을 것만 같은 귀뚜라미처럼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기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몸이 아프고 물질적 조건이 풍족하지 못하다면 더욱더.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죽을 힘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숨의 소설은 쓸개즙처럼 쓴 현실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다. 유쾌한 문장으로 드러낸 처절한 욕망과 진심[아주 보통의 연애]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백영옥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를 뿌린 장편 소설 ‘스타일’로 이름을 알렸다.  ‘스타일’에는 패션 잡지 기자로 일했던 작가의 전력이 일정 정도 담긴 듯하지만 ‘아주 보통의 연애’(문학동네 펴냄)에는 잡지사 관리팀 직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청첩장 디자이너, 출판사 편집자, 갈비집 사장, 인터넷 서점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소설집 제목에서 이번에도 현대 여성의 사랑을 다루었겠거니 지레짐작한다면 재능 넘치는 백영옥 소설의 재미를 느낄 기회를 놓칠 것이다. 연애 소설이라 굳이 이름 붙인다면 표제작인 ‘아주 보통의 연애’ 정도만 해당하고, 나머지는 추리 소설, 미스터리 등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가족드라마’에는 바람이 나서 딴살림을 차리고 유방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아버지, 드라마 중독자 어머니, 세번 이혼하고 로또 1등 당첨금 15억원을 모두 사기당한 도박 중독자 삼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 하는 여동생, 삼류 포르노 잡지에서 섹스 기사를 쓰는 나까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인생이 나온다.  하지만 벼랑 끝까지 몰린 가족은 인생은 비극보다는 희극이라고 이야기한다. ‘고생 끝에 오는 건 낙이 아니라 병’이라고 말하는 주인공과 가족은 시트콤보다 더 웃기면서 슬픈 한편의 드라마 같은 소설을 완성했다.  단편 ‘푹’은 전문 몽타주 요원인 ‘나’가 고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남학생들에게 복수한 여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눈에 띄게 예뻤던 여학생은 머리는 있지만 양심은 없는 남학생들의 희생양이 된다.  남학생들은 자라서 의사, 교사, 금융회사 간부가 되고 각각 결혼과 약혼을 앞두고서 반지를 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경찰서에서 만난 이들은 고3 때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떠올리지만 “전부 다 미쳐 있었다. 기계처럼 공부만 했다. 러미널 같은 각성제까지 수십알씩 먹어 가며”라고 입시 스트레스 탓으로 돌린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명함과 프로필 뒤로 자신의 맨 얼굴을 숨긴 사람들의 연약한 내면과 상처 입은 자의식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고 백씨의 소설에 대해 설명했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 뒤로 숨어 버린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진심이 소설 속에 펼쳐지는 것.  ‘가족드라마’의 아버지는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지만 가족 누구도 아버지의 사연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청첩장 살인사건’의 청첩장 디자이너는 아무 연고자도 없는 결혼식에 참여해서라도 가족사진에 담기고 싶어했지만 결국 연쇄 살인 용의자로 몰린다.  현대 여성에서 발전해 다양한 현대인들의 욕망을 천연덕스럽게 그려 낸 ‘아주 보통의 연애’를 읽고 나면 백영옥의 다음 소설이 가슴 뛰도록 기다려진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그래, 책이야!(레인 스미스 지음, 김경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 등 여러 그림책 상을 받은 레인 스미스가 디지털 시대의 ‘책’에 대한 절묘하고 유머러스한 통찰을 편안하고 재미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9000원. ●아트 어드벤처(정나영 글, 김강호 그림, 상상의집 펴냄) 예술 작품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학습 만화 시리즈로 첫 번째 이야기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다. 만화와 고흐의 작품집이 함께 출간돼 아이들의 미술 교육을 돕는다. 1만 1800원. ●옛그림 속 우리 동물(이소영 지음, 낮은산 펴냄) 젊은 한국 화가이자 연구자인 심홍 이소영씨의 세 번째 책으로 열두 띠 동물을 중심으로 옛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친근하고 귀여운 동물 그림으로 동양 예술 정신을 조근조근 설명해 준다. 1만 1000원. ●라몰의 땅(A 라마찬드란 글·그림, 엄혜숙 옮김, 보림 펴냄) 인도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책으로 다채로운 색으로 신비로운 이야기를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냈다. 인도 그림의 전통적인 색채와 혁신적 표현법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그림책의 세계를 열어 준다. 1만 1000원.
  • 애들아, 네 안에 웅크린 괴물 잘있니?

    애들아, 네 안에 웅크린 괴물 잘있니?

    중학교 2학년 3반 교실, 뽀송뽀송한 얼굴의 소년도 아니고, 피와 뼈가 튼실히 자리잡은 청년도 아닌 이들이 우글대는 공간이다. 자아는 아직 여물지 않았고, 사람 관계에 대한 공부는 부족하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공부에 대한 중압감에 답답해하며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는 짐승을 발견한다.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짐승은 ‘야동’을 보거나 친구를 괴롭히는 식으로 안팎에서 불쑥거린다. 말간 개구쟁이 여드름 낯빛으로 그 심각성조차 알지 못한 채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그저 일상 속 유희로 삼을 정도다. 그들 안에 들어 있는 짐승은 악어 또는 하이에나, 사자 등의 모양으로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괴물이 되기 일쑤다. 순해 보이는 기린, 임팔라, 가시두더지와 같은 초식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배제와 따돌림이라는 나름의 폭력을 통해 피해자 역시 또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가 은이정(42)의 ‘괴물, 한쪽 눈을 뜨다’(문학동네 펴냄)는 학교 안에서 이뤄지는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 즉,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충남 천안의 한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은이정은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겪었던 경험과 고민을 핍진하게 작품 안에 녹여냈다. ‘왕따’ 문제는 그동안 문학 작품 속에서 수없이 반복 변주됐던, 새로울 것 없는 주제다. 그러나 ‘괴물’은 다르게 접근한다. 어설픈 해법을 제시하지도, 선생 연(然)하며 아이들을 계몽하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괴물의 실체를 눈 부릅뜨고 마주보게 만든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눈으로, 방관자의 눈으로, 피해자의 눈으로, 교사의 눈으로 소설의 시점을 바꿔가며 그 실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학습 장애를 겪으며 늘상 아프리카 사바나 동물들이 나오는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왕따 영섭이는 현실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있는 판타지로 인식하며 주변 인물들을 사자, 하이에나, 하마, 코끼리, 악어, 임팔라 등으로 변신시킨다. 스스로 변신을 꾀함은 물론이다. 영섭이는 판타지에 머물며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인식은 현실을 엄정한 눈으로 꿰뚫고 있다. 반장 태준이는 모범생이면서 피해자 영섭이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먼저 살피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문득문득 집단 가해를 통해 희열을 느끼다가 곧바로 죄의식을 함께 가지는 보통의 청소년 심리를 보여준다. 태준이의 마음 속 충동과 함께 절대적 희생자인 것만 같은 영섭이가 자신 안에도 ‘폭력의 육식동물’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는 장면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괴물이 똬리 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괴물은 다스려지는 것이라는 사실. 은이정은 2006년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을 받으며 아동문학가로 등단했다. ‘괴물’은 ‘나를 찾아줘’ 등 장편동화 4권을 펴낸 뒤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그는 요즘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고 있다. “괴물은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 속에 잠재하고 있는 본연의 모습입니다. 통상 공격 욕구, 방어 심리 등으로 드러나죠. 다만 어른들은 이성으로 숨기고 다스리곤 하지만 청소년들은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은이정은 “청소년들이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의 실체를 솔직히 마주하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이를 다스리는 법을 스스로 얻어 나가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이덕일&백승종

    [문화계 블로그] 이덕일&백승종

    역사학자 이덕일(왼쪽·50)이 다시 논란이다. 그를 둘러싼 논쟁이야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cafe.naver.com/mhdn)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잠시 다른 역사학자 얘기를 해 보자. 최근 ‘정조와 불량 선비 강이천’을 펴낸 백승종(오른쪽·54)이다. 이덕일과 백승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알기 쉬운 역사책을 써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은 있으나 쉽게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존재는 귀하다. 하지만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두 사람은 사뭇 다르다. 백승종의 ‘강이천’은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연상시킨다. ‘치즈’는 16세기 이탈리아 농부 메노키오에 대한 종교재판 기록에서 출발한다. 메노키오는 우유에서 치즈가 나오고 치즈에서 구더기가 생기듯이 우주와 삼라만상이 창조됐다고 주장했다. 천지창조와 삼위일체에 대해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하찮은 농부를 용납할 수 없었던 기독교는 종교재판 끝에 그를 화형시킨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얘기인데,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가 치즈와 구더기의 비유를 스스로 생각해 냈다고 주장한 점에 주목했다. 당시 농부가 체계적 논증법이나 수사학을 배울 수는 없다. 아마 당대에 떠돌아다니던 민담에다 농사짓던 체험 등을 모조리 섞었으리라.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의 진술을 통해 그 어느 공식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16세기 유럽 민중사를 들춰 낸다. 백승종도 강이천에 대한 재판 기록 ‘죄인강이천등추안’을 파고들어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개혁 군주인가, 아니면 보수 반동 군주에 불과한가. 조선이 망한 것은 정조의 개혁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정조의 성리학 근본주의가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던 때문은 아닌가. 민속화가 김홍도는 혹시 왕실의 어용화가가 아닌가. 파격적인 주장임에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 때문이다. 다시 이덕일로 돌아가 보자. 그의 핵심 주장은 노론 망국론이다. 노론이 친일파로 이어지고, 이들이 일제 식민사학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일제 식민사학 하수인’ 취급을 받고 가만 있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이덕일에게 이를 갈고 있는 학자가 100명은 된다.”는 농담처럼 주류학계는 “노론 망국론은 조선을 부정하기 위해 일제 식민사학이 만들어 낸 것”이라며 따라서 “이덕일이야말로 식민사학의 후예”라고 반격한다. 학계에 논쟁이 많은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것은 감정적 대립이다. 서로에게 ‘식민사학 후예’ ‘학자인 양하는 장사꾼’이라는 식의 꼬리표 붙이기 말이다. ‘치즈’는 역사서임에도 추리소설처럼 쓰여서 문학과 역사학의 행복한 만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백승종도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사료를 끄집어내 자신이 품은 의문을 독자와 함께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강이천’을 썼다. 이 같은 접근법을 이덕일과 그 반대 진영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제는 모진 언사로 상대를 깎아내리기보다, 자신은 조금 다른 관점에 서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는 책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어떨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콩가루 가족’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콩가루 가족’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가족은 늘 든든한 버팀목이다. 세상에서 내쳐지더라도 넉넉히 품어주리라 기대할 수 있는 곳이고, 남들이 다 손가락질하더라도 내 편에 서서 그들과 대거리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지쳐 무너져 가는 어깨를 따뜻하게 붙잡아 줄 수 있는 마지막 이들이 있는 곳이다. 문학 속 가족도, 현실 속 가족도 그렇다. 그러나 ‘여울이네’ 가족은 다르다. 채권 추심업을 하는 아버지 ‘불곰’과 주식투자로 망한 뒤 뇌경색에 걸린 삼촌, 서로 배 다른 3남매, 그리고 여든셋의 할매가 함께 산다. 세 명의 ‘엄마’는 부재하는 존재며, 가족 사이에서 금기어로 굳어 있다. 맞다. 구성 자체가 이미 위태롭다. 1학년 여고생 여울이는 호시탐탐 가출을 노리지만, 정작 그에 앞서서 집을 뛰쳐나간 것은 고3 언니였고, 그 다음이 뇌경색 삼촌, 그리고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오빠였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마저 구속돼 감옥소 생활을 하며 집을 빠져나간다. 집을 나가 양로원에 들어가서 남이 지어 주는 밥 먹고 싶었던 할매는 결국 여울이 곁에 주저앉고 만다. 모든 구성원들이 가족 바깥에서 살 길을 찾고파 하는 전형적인 콩가루 집안이다. ‘나이트클럽 댄서의 딸’ 여울이는 코스튬 플레이(만화나 게임 주인공과 똑같은 의상을 입고 흉내내는 행위)를 통해 학교와 집안에서 겪는 숨막히는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로 삼고,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하고 싶은 욕망을 분출하며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채운다. ‘불량가족 레시피’(손현주 지음, 문학동네 펴냄)는 불온하다. 세대의 경계에서 늘 불안한 오르내림을 거듭해야 하는 청소년의 속내를 비치는 것도 모자라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의 파괴를 겪어야 하는 세상의 속살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심드렁한 말투로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낄낄대게 만드는 문체로 서사(敍事)의 흡입력까지 높이니 그 불온성은 절정에 이른다. 지난해 만들어진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현주(48)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늦깎이로 등단한 손현주지만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 지난해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을 받는 등 창작 활동의 보폭이 넓다. 문학평론가 유영진은 “가족 해체 과정을 통해 새롭게 가족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한 작가의 성취를 뛰어넘어 우리 청소년 문학의 성취라고 할 만하다.”고 상찬을 보냈다. 소설은 톨스토이가 인류에 던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2011년 한국 사회에 착근시키며 풀어낸다. 천상에서 인간세상으로 온 ‘천사 미하일’이 구두수선공 부부의 사랑과 연민으로 함께 지냈듯, 여울이는 여든 넘은 할매의 거친 욕설 뒤에 숨겨진 사랑과 서로 무관심하지만 보이지 않는 줄로 얽혀 있는 가족들의 관계 속에 큰다. 오로지 코스튬 플레이를 위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 낸 여울이는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하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떠난 상황이 닥치자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이 되어서 아빠, 언니, 오빠, 삼촌, 그리고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엄마까지, ‘불량한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을 기꺼이 맞는다. 천사 미하일이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감을 깨달은 뒤 다시 하늘로 올라가듯 말이다. 가족의 진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멀리 떠나는 날은 매서운 한파도 잠시 멈칫하며 아득한 먼길을 애도했다. 25일 오전 10시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렸다. ●각계 인사 500여명 마지막 길 지켜봐 큰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여러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와 같은 문학계 인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독자 등 500여명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성길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면서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돌이켰다. 또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박하고도 단아했던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쓰셔야 할 소설이 동백처럼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각별함을 유지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면서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절감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조사를 끝맺어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워 길게 이어졌다. 시신은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의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의 어머니가 꿈속에서 독일어로…”

    “한국의 어머니가 꿈속에서 독일어로…”

    “모어(母語)는 잊혀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언어의 현장과 떨어져 있어 스스로 자기 운동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인 허수경(47)이 지난 19일 서울 서교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꼬박 10년 만의 고국 방문이다. 문학동네 시인선집을 통해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낸 데 이어 자전적 성장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를 조만간 내놓는다. ●독일어는 일상언어… 한국어는 어머니의 언어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허수경은 1992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고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4월 잠시 들른 이후 다시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2005년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을 내놓았고, 6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조국을 떠난 시인은 고향의 안락함을 포기한 대가로 모국어를 사용해 디아스포라(離散)로서 인류 보편의 사유와 시상에 다다를 수 있게 됐다. 그는 ‘빌어먹을’을 통해 고스란히 이를 보여준다. 허수경은 “낯설 줄 알았는데 다들 반갑게 맞아줘서 집에 돌아온 것 같다.”고 경상도 사투리가 여전한 말투로 환국의 감회를 밝혔다. 그의 고향은 경남 진주다. 파격적 형식의 이번 시집에 대해서는 “늘 내 시가 수다스러운 게 마음에 걸렸는데 여기서 구해줬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에게 독일어는 생활 속 일상 언어다. 또한 수메르어와 아카드(메소포타미아 고대어)는 고대의 흔적들과 대화하기 위한 학문의 언어다. 하지만 한국어는 허수경을 비로소 시인이게 하는 어머니의 언어다. 그러나 그가 어느날 꿈속에서 만난 어머니 얘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어머니는 독일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데, 어느 날 내 꿈에 나타나 독일어로 말하고 있었지요.” ●젊은 후배들 없는 길 가는 사람되길… 판타지와 같은 상황까지 담아낼 수 있는 문학동네 시인선에 대한 칭찬이었건만 그날 새벽녘 문득 잠자리에서 깨어나 허탈해했을 허수경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사무쳤을 그리움과 먹먹함도 함께 느껴지니 짠함이 앞선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진짜 있는 길인지, 없는 길인지 스스로 묻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죠. 젊은 후배 시인들이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불현듯 시단에 등장해 정련된 민족과 민중의 정서를 보여준 뒤 홀연히 독일로 떠난 시인이 젊은 후배들에게 건네는 당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詩 담는 그릇 확 바뀌었네

    詩 담는 그릇 확 바뀌었네

    시(詩)를 담는 그릇을 깨뜨렸다. 그리고 아주 새로운 그릇을 빚어냈다. 겉에는 파랑, 빨강, 검정의 ‘은은한 원색’을 곱게 칠했다. 모양도 눈에 설다. 수십년 동안 모두가 그러려니 했던 시의 그릇을 완전히 바꿔냈다. 두배 가까이 커졌고, 세로를 가로로 비틀었다. 그 결과? 시는 해방됐고, 시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됐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2년 남짓 준비 끝에 최근 선보인 시인선집은 한국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야심찬 기획 의도답게 시집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파격을 도모했다. 첫 걸음을 뗀 1차분 시집은 3권이다. 최승호의 ‘아메바’, 허수경의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송재학의 ‘내간체를 얻다’이다. 세권 모두 여러 형식의 실험을 도입하고 있다. 판형의 혁신을 시도한 특별판은 물론, 보편적인 일반판도 함께 펴냈다. 예컨대 최승호는 바뀐 형식의 시집에서 한 페이지를 네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한 편의 시를 네개의 새로운 이미지로 변주하는 자체 확장의 실험을 단행한다. 허수경은 ‘카라쿨양의 에세이’ 같은 시편에서 무려 9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에세이 같은 시’를 썼다. 일반판 시집으로는 13쪽이다. 희곡 형식의 시 ‘내가 쓰고 싶었던 시 제목, 의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최근 시의 흐름이 단형 서정시 형태가 아닌 서사화, 산문화를 띠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지만 기존의 판형으로는 그저 답답한 틀 안에 가둬지는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집의 판형이 그저 산문시에만 적합한 것은 아니다. 송재학의 ‘내간체를’을 보면 선명한 이미지를 새겨낸 길지 않은 시편이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넓은 여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이는 새로운 ‘그릇’이 전통적 서정시와 산문시에 모두 어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새 판형의 시집을 받아본 시인들도 흡족해하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최승호는 “도전과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새 판형의 잠재성을 직접 확인했다.”면서 “시의 배치를 통해 차별성을 선명히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메바’는 최승호의 열세 번째 시집이면서 그동안 내놓은 12권의 시집에서 골라낸 58편 시의 이미지들로 재구성됐다. 기존의 시편 속 이미지가 새롭게 분열하고 증식 확산하며 새로운 생명을 얻어가는 식이다. 허수경 역시 “산문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시집(의 형식)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면서 “전 지구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시의 메시지와 산문화한 서정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문학동네 시인선은 올해 20~30권 정도 출간될 예정이다. 중진과 신인들을 고르게 참여시킨다는 복안이다. 김민정 문학동네 편집자는 “100여명의 시인들을 직접 찾아갔고, 표지 시안만 100개 넘게 놓고 고민했다.”면서 “새로운 실험이 가능할 것 같다는 시인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시인선을 기획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단순히 형식적 차별성을 선언하듯 과시하기보다는 실제로 차별할 수 있는 장(場)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젊은 시인들과 노련한 시인들이 새로운 판형에서 어떤 실험을 할지 기획자 입장에서도 몹시 궁금하고 기대가 크다.”고 털어놓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도세자 해묵은 논쟁 인문학 열기 달구다

    사도세자 해묵은 논쟁 인문학 열기 달구다

    임금인 아버지가 세자 아들을 죽인 사도세자의 죽음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로 사극에서도 자주 다루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쓴 글이라는 ‘금등지사’를 놓고 극의 갈등을 만들어 냈다. ●‘우리 시대의 명강의’ 연재 인기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이 또다시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계기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인문학 부흥을 위해 지난 3일부터 인터넷 카페(cafe.naver.com/mhdn)에 연재 중인 ‘우리 시대의 명강의’다. ‘권력과 인간’이란 주제로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꼼꼼하게 해설하고 있는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해 논쟁에 불을 댕겼다. 이 소장의 ‘사도세자의 고백’은 1998년 출판된 책으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읽힌 역사서다. 고등학생 추천도서로도 선정돼 학생들의 역사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 교수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사료를 잘못 읽거나 왜곡해서 오류로 가득 찬 대중 역사서가 쉽게 읽힌다는 이유로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소장의 책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무덤이 아니라 사당을 가리키는 태묘를 태조의 묘로 오독하고, 혜경궁이 가장 미워한 정순왕후의 일가가 혜경궁의 친정과 협력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지엽말단적인 부분만 문제 삼아 막무가내로 ‘학자가 아니다.’라고 몰아붙이고 있다.”며 “주류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다른 프레임(사도세자의 죽음이 당쟁으로 말미암은 희생이라는 설)을 제시한 것인데, 그 프레임에 대한 정면 비판은 하지 않으면서 몇 가지 부분만을 문제 삼아 전체 논지를 흐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소장, 조목조목 반박 정 교수는 다시 “이 소장이 제시했다는 프레임은 1968년 발표된 이은순 교수의 논문 ‘한중록에 나타난 사도세자의 사인’에서 처음 제기됐다.”며 “이 소장은 주류 역사가 기록한 프레임을 사용하면서도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이 소장은 사도세자에 관한 논문은 거의 다 찾아봤지만 이 교수의 논문은 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역사학술지인 ‘역사비평’에 ‘사도세자의 고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글을 실을 예정이다. 이 소장도 적당한 기회에 글을 통해 정 교수의 비판을 반박하겠다고 밝혔다. ●네티즌 “치열한 두 분 즐겁다” 네티즌들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덕분에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두 분은 치열하신데 하나하나 알아가는 유익이 즐겁습니다.”란 내용의 댓글을 수백 개씩 남기며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 시대의 명강의’를 기획한 강명효 문학동네 기획실장은 “인문학의 온라인 첫 연재 시도에 대한 반응이 기대보다 뜨겁다.”며 “인터넷에서 인문학자와 네티즌들이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가 어떤 방식의 인문학을 요구하는지 고민하고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는 자리가 생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천사의 바늘 앙드레 김(이미애 지음, 이정선 그림, 문이당어린이 펴냄) 패션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의 생애를 어린이들이 본받을 점을 중심으로 동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사실 기록에 바탕을 두었지만, 위인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9800원. ●곰의 아이들(류화전 지음, 이윤희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으로 신예 작가 류화선의 첫 장편 동화다.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려 했다는 단군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 9800원. ●어린이를 위한 사회성(방미진 글, 최정인 그림, 위즈덤하우스 펴냄) 어린이 자기 계발 동화다. 소심한 어린이 ‘간공주’를 주인공으로, 새로 전학 온 ‘나칠칠’, 독불장군 ‘우장한’, 삐치기 대장 ‘왕선해’ 등의 캐릭터를 통해 학교생활에서 사회성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9000원. ●지구를 지켜라 슈퍼마켓맨(강여울 글, 김보미 그림, 한솔수북 펴냄) 한솔수북의 ‘Go Go 지식박물관’ 시리즈로 환경이 병드는 원인이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슈퍼마켓 사장인 ‘슈퍼마켓맨’의 이야기를 통해 지구를 살릴 방법을 들려준다. 8500원.
  • 국경 무너뜨린 자본 짙어진 국력의 경계

    국경 무너뜨린 자본 짙어진 국력의 경계

    서로 다른 것들의 사이에는 늘 경계가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산 또는 바다 등의 울타리가 있고, 빼앗음과 빼앗김 사이에는 폭력과 탐욕이 경계로서 둘을 가르고 있다. 민족과 민족의 경계, 자본과 노동의 경계, 세대와 세대의 경계, 인간과 자연의 경계, 개인과 집단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 굶주림과 배부름의 경계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약간은 모호하게, 때로는 명징하게 나뉘어 있다. 하종오(57)의 시집 ‘제국’(문학동네 펴냄)은 세상의 모든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또한 그 경계를 거부한다. 시인은 일찌감치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입국자들’ 등을 통해 우리 사회 현실 안에 엉켜 있는 세계화의 문제, 자본의 문제, 인간의 문제를 통찰한 바 있다. ‘제국’의 시 전편을 통해 문제의식은 전 지구적 범주로 확장된다. 그리고 시인의 시선이 향하는 통찰의 지점은 ‘제국(諸國 또는 帝國)의 공장’ 연작시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은 늘 그렇듯 인간이다. 연작시 중 ‘소액주주들’이라는 소제목의 시편에서는 ‘자사주 가진 소액주주’가 공장 폐쇄로 인해 직장을 잃어버렸음에도 보유하고 있는 주가는 올라가는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노동자 개인들이 자본주의 질서 안에 깊숙이 편입됐음을 보여 준다. 또한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에서 인도로, 또 더 가난한 나라로 옮겨 가는 ‘어패럴 공장 관리책임자’의 탄식(‘갠지스 강’ 중)을 통해 더욱 많은 이익을 위해 국경을 무화(無和)하는 자본의 생리를 명확히 짚어 낸다. ‘숙련공’에서는 ‘수트리스나 씨’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자연에서 살며/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믿으면서도/ 크나큰 자연을 이룬 나무들 베어내는/ 목재공장에 취직하려고 이력서’를 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낸다. 하지만 거기에 그친다면 수면 위로 드러난 현상을 그저 시로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시인은 경계 너머에 있는 경계에 주목한다. 스스로 몸을 불리려는 자본은 이미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자본은 자신의 국적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한국 혹은 미국이 차려 놓은 공장을 다니건 한국으로 건너와서 공장에서 일을 하건 인도, 베트남, 체코, 파키스탄 등 사람들은 각자 조국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서아프리카 출신 청장년들과 / 동남아시아 출신 청장년들은 / 독재와 가난에서 조국을 구할 수 있다면 / 역난민으로 귀국하여 저항’(‘한국의 공장에서’ 중)하려는 꿈을 키운다. 이는 ‘젊은 고려인’의 ‘김예카테리나 씨’ 일가의 얘기를 하며 비극적인 한국식 디아스포라(離散)를 상기시킨 이유와 마찬가지다. 시인은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는 경계를 만들고픈 약자의 역설적이지만 소중한 꿈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 한국에서 몸푼 베트남인 산모와 / …필리핀 산모와 / …태국인 산모와 / …캄보디아인 산모는 시어머니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요 / 시방 / 아기들은 똑같은 소리로 우네요’(‘지구의 해산바라지’ 중)라며 함께 어우러져 있는 세상을 그린다. 시인은 자서(自序)를 통해 확장된 자기 시 세계의 정수를 밝힌다.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좌절하고 환희하는 세계의 시민들에게 제국(諸國)은 공존해야 하고, 제국(帝國)은 부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차별 짓고 착취하는 수단으로서의 경계가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으로서의 경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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