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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플러스]

    ■ ‘한국민주화 운동 총정리’ 책으로 나와 ●대한민국 건국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사를 총정리한 ‘한국민주화운동사’(돌베개 펴냄)가 출간됐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를 비롯해 정해구(성공회대)·오유석(성공회대)·임대식(서울대) 교수 등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연구자들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다.민주화운동사 정리 작업이 이처럼 공동연구 성격으로 총정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혔다.2010년까지 총 3권으로 완간된다. ■ 이해조 문학기념 특별강연회 ●동농 이해조 선생 기념사업회(상임대표 홍을표)는 15일 오후 4시 포천중문의과대 세미나실에서 홍정선 문학과지성사 공동대표를 초청해 이해조 문학기념 특별강연회를 연다.이해조(1869~1927)는 일제 침략기 신소설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소설가이자 항일민족지 제국신문에서 활동한 언론인이다. ■ 22일부터 일반인 등 대상 한문특강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 부설 고전번역교육원은 겨울방학기간에 대학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특강을 한다.22일부터 내년 2월12일까지 김낙철 연구원이 ‘논어’(화·목·토)를, 공근식 연구원이 ‘맹자’(월·수·금)를 주 3일씩 강의한다.수강료는 과목당 12만원이며,17일까지 7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02)391-5251 ■ ‘…로컬 민속의 글로벌화’ 학술대회 ●한국민속학회(회장 임돈희)는 12·13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동국대학교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글로벌 문화의 로컬화,로컬 민속의 글로벌화’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독일 훔볼트대학 볼프강 카슈바 교수가 ‘글로벌 과정 속의 유럽’이란 제목으로 유럽민족학의 새로운 연구 동향을 발표한다.
  • 인간을 녹슬게하는 산업화의 허상

    인간을 녹슬게하는 산업화의 허상

    온몸에 눅진하게 녹슨 쇳가루가 엉겨붙어 있는 듯하다.녹가루가 황사처럼 자욱이 감싸고 도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무쇠공을 주고받으며 논다.멀쩡한 어금니를 가진 사내들은 북쪽 조선소로 ‘세계 최고 철선’을 만들러 갔고,아내들은 무쇠 식칼을 몇 자루씩 가진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무료한 노인네들은 숫제 일삼아 무쇠 가위를 쩔그럭거린다.또 생 어금니를 몽땅 빼고 무쇠 틀니를 해 박는다.그리고 건강에 좋다며 녹가루를 하루에 두어 숟가락씩 푹푹 퍼먹는다.그러다가 죽으면 무쇠로 짠 관 안에 들어간다.온통 ‘철(鐵)’로 둘러싸인 세상이다. 마을 사람들은 철선이 만들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더 이상 농사를 짓지도,가축을 기르지도 않았다.하지만 32년이 지나도 마을 사람들은 물론,조선소 노동자 어느 누구도 끝끝내 철선을 보지 못한다.1970년대 즈음 울산이 떠올려진다.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철저한 가상의 시대,가상의 공간이다.거기서 펼쳐지는 지독스럽게 기괴한 우화(寓話)다. ●섬뜩한 언어와 상황 설정 김숨은 신작 장편소설 ‘철’(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노동의 가치,노동의 소외 문제,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부속물로 전락한 인간의 문제를 얘기한다.그러나 의식의 각성을 통한 변혁의 승리적 전망을 얘기하는 노동계급적 리얼리즘이나,기본계급으로서 민중들의 건강한 삶이 그려지는 민중적 리얼리즘 등 1980년대 문학의 전형성은 서른 네 살의 젊은 작가 김숨의 몫이 아니다. ‘젊은 이야기꾼’ 김숨의 선택은 환상적 리얼리즘.산업화와 노동자의 희생이 엉켜서 때로는 우화처럼,때로는 섬뜩한 현실을 눈살 찌푸리게끔 그로테스크하게 써내려간다. 김숨은 전작 ‘백치들’에서 보여줬던 서늘한 시선의 관찰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오히려 에둘러가는 듯하면서도 더욱 섬뜩한 언어와 상황을 설정했다.다이내믹한 서사도,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도 딱히 없다. 하지만 특유의 흡입력 높은 문체는 노동과 철선을 맹신하고,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에 만족하고,부속품으로 효용이 다해 버려지면서도 저항하지 않는 이들의 삶을 고발하듯 그려내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다. ●선박 노동자가 모티브 상투적인 전형성을 배제하려는 노력은 파업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김만도는 조선소에서의 노동을 종교처럼 믿고 따르다가 결국 해고된 동료 배복만에게 “조선소와 투쟁하세요.”라고 툭 내던진다.하지만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던진 자신을 이내 스스로 역겨워하고,나중에 석 달치 임금이 나오지 않으며 일어난 ‘폭동(또는 파업)’에서 젊은 동료를 주모자로 고발하며 질기게 살아남는다. 김숨은 “4년 전 우연히 들른 남쪽 도시에서 본,거대한 선박에 노동자들이 개미처럼 붙어 있는 장면이 모티브가 됐다.”면서 “애초에는 파업 관련 부분을 자세히 쓰려 했는데 너무 상투적인 것 같아 의도적으로 노동자의 자의식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투견’‘침대’등 소설집과 장편소설 ‘백치들’을 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일보문학상에 김태용씨

    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김태용(34)씨가 선정됐다. 주관사인 한국일보사는 16일 “김씨의 첫 소설집인 ‘풀밭 위의 돼지’(문학과지성사 펴냄) 가 수상작으로 뽑혔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에 대해 “다양한 실험기법으로 한국 소설에 새 돌파구와 가능성을 마련한 범상치 않은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부상은 2000만원이며, 시상식은 새달 11일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아파트 재개발 놓고 벌이는 갈등·애환

    대한민국 신문에서 가장 ‘문제적인’ 단어는 ‘아파트’일 것이다. 재개발이 어떻고, 규제가 어떻고···. 학교 시사 숙제로 신문을 자주 들추는 아이들에게 이땅의 아파트는 딱히 호감이 갈 리 없는 단어가 분명하다. 문학적 상상의 힘은 그래서 호쾌하다. 아파트가 사람처럼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때로 요란스레 목청까지 높일 수가 있다면? ‘완득이’로 인기작가로 이름 날리는 김려령이 먹음직스러운 상상력으로 전복의 묘미를 꽉 채운 동화 한편을 새로 썼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요란요란 푸른 아파트’(신민재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다. 이 동화를 열어주는 기막힌 열쇠는 말하는 아파트다. 지방 변두리 도시에 지어진 지 40년이 넘어 낡을대로 낡은 5층짜리 아파트 단지. 첫 장에서부터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는 별난 아파트에 눈이 동그래질 만하다. 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재개발 소문이 돌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주민들은 재개발이 취소되면서 삽시간에 풀이 죽는다. 반면,40년지기 끈끈한 우정을 다져온 아파트 4개 동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재건축 꿈을 버리지 못한 주민들은 아파트 담벼락에 현수막을 치고, 보기에도 끔찍한 검정 띠를 둘러놓기도 한다.502호 영감님은 불만을 참지 못해 밤마다 망치로 벽을 두드려댄다. 아파트들은 이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다. 몇십년 동안 한결같이 살뜰히 품어줬건만 은혜를 모르는 주민들이 건물을 무너뜨릴 궁리만 하니 그럴 수밖에. 아파트를 의인화한 재치, 빠른 전개 템포로 동화는 경쾌하다. 신통한 것은 그럼에도 짐짓 ‘오래된 것’에 대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는 아파트들이 주도하던 이야기 얼개에 ‘102호 할멈’이 주요 캐릭터로 끼어드는 것도 의미심장하다.“자식들이 다 뭔 소용이여. 생전 얼굴도 안 비추는 것들이 이제 와서, 에이.” 넋두리를 쏟아내는 할머니에 이어 갑자기 그에게 떠맡겨진 꼬마손자 기동이가 등장한다. 아파트 벽에다 해괴한 낙서를 하고 돌아다니는 사고뭉치 기동이를 끝까지 따뜻이 감싸안는 건 그래도 2동(아파트)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정의 끈을 놓지 않는 아파트들끼리의 관계에도 초점이 맞춰진다. 결국 아파트는 재건축 허가를 받는다. 우당탕 쿵쾅, 소란스레 시소를 타던 유쾌한 이야기는 끝내 콧등 시큰해지게도 만든다. 마지못해 이삿짐을 꾸리는 기동이 할머니의 말 끝에 오래오래 여운이 매달린다.“세상에 나는 것들은 다 지 헐 몫을 가지고 나는 것이여. 허투루 나는 게 한나 없다니께···.” 초등3,4학년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기담(김경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자 극작가의 두 번째 시집.‘무릎의 문양’‘풍선의 장례’‘구멍’ 등 42편이 실렸다. 시(詩)이면서도 시가 아니고 극(劇)이면서도 극이 아닌, 미완의 예술적 경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7000원.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울라브 H 하우게 지음, 황정아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1946년 첫시집 ‘재 안의 불씨’ 이후 7권의 시집을 통해 노르웨이 대표 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저자의 시선집.2003년 출간된 영어판 시선집 중 68편을 추리고,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은 시 ‘한국’을 추가해 묶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쓴 시 ‘한국’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동양의 작은 나라가 겪는 아픔을 대륙 저편에서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핍진하게 그렸다.9000원. ●사랑, 바닥까지 울어야(유안진 지음, 서정시학 펴냄)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작가이자 시인이 5년만에 내놓은 수필집. 표제작을 비롯해 ‘남성 과일’‘지옥이 더 좋을까’‘나는 마흔한 살 왼손이다’ 등 50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문단생활 40년을 훌쩍 넘긴 작가가 짧지 않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길어올린 내면의 이야기.9900원 ●폭풍의 밤(세사르 비달 지음, 정창 옮김, 다산책방 펴냄) 40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셰익스피어의 실제 유언장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추적한 팩션. 인문·역사·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 저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가 비밀의 열쇠가 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하고 그와 관련된 미술작품도 함께 실었다.1만원. ●손광성의 수필 쓰기(손광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달팽이’‘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가 쓴 문학 글쓰기 이야기. 올바른 단어 선택 문제부터 효과적인 내용 전개법, 퇴고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 실례를 통해 오류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1만 5000원.
  • “키스는 내가 너의 심장을 만지는 것”

    “키스는 내가 너의 심장을 만지는 것”

    “너는 문을 닫고 키스한다. 너의 문으로 들어간 나는 너의 심장을 만지고 내 혀가 닿은 문 안의 세상은 뱀의 노정처럼 굴곡진 그림들을 낳는다”(‘키스’ 중에서) 시력(詩歷) 16년의 시인이자 로커인 강정(37)씨가 세번째 시집 ‘키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두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건만’ 이후 2년만이다. 표제시를 비롯해 ‘불탄 방’ ‘카메라, 키메라’ 등 강렬함을 추구하던 시인의 이전 시풍(詩風)과는 구분되는 다분히 선정적인 40여편의 시가 실렸다. 시인에게 키스는 모든 것의 출발이다. 그것은 곧 타인과 만나 새로운 윤리를 전파하는 하나의 물질이다. 시인은 “문은 작지만 문 안의 세상은 넓다.”고 말한다. 자신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키스라고 정의한다. 그런 만큼 키스는 단순한 애무를 넘어 그 표면을 찢고 들어가 ‘너’와 뒤섞여 하나의 물질로 녹아든다. 키스가 ‘너’의 표면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너’의 문을 열고 들어가 ‘너’의 심장을 애무하고 문 안의 굴곡진 주름을 펼쳐 놓는다.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1930년대 간도 ‘민생단’ 학살사건

    1930년대 간도 ‘민생단’ 학살사건

    ‘민생단 사건을 아십니까.´ 민생단 사건은 1930년대 초반 중국 간도 일대에서 중국 공산당이 민생단에 일본 스파이들이 침투해 있다고 날조해 500명의 조선인 항일혁명가를 학살한 것을 일컫는다. 역사의 전면에서 밀려나 있던 이 민생단 사건이 소설로 복원됐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작가 김연수(38)씨가 민생단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를 출간한 이후 1년여만에 내놓은 여섯 번째 장편 소설이다.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초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가 서로 죽이고 배신하고 변절하고 미치광이가 되는 가혹한 운명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측량기사로 파견된 김해연이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그에게 한 장의 편지를 남긴 채 자살하는데, 편지를 통해 이정희가 혁명조직의 일원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정희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소설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하이네의 시구처럼 반짝이는 시적 영감을 오롯이 드러낸다.“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이 찾아온다.” 자신이 삶 앞에 정직하고 아름다웠던 사람들의 숨결, 가슴 아픈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웅숭깊게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소설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생 시절부터 이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던 작가는 1995년 장편소설 형태로 썼다가 민생단 자료들을 다시 읽고 계간지에 연재하면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연재를 끝난 뒤에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이야기를 내서 뭣하겠는가?”라는 회의가 생겨 뒤로 밀쳐놨다. 그러다 이번에 내놓은 것은 지난 봄 촛불시위 현장에서 본, 전경들 앞에서 대중가요에 맞춰 춤추던 대학생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사실에 학생시절의 공포를 떨쳐버리고 용기를 얻은 것이다. 민생단 논문을 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사논문을 쓰는 내내 이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며 “논문으로는 다 담을 길 없는 그 깊이 모를 혼돈과 암흑의 심연 속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에 빠져든 인간들의 이야기를 김연수는 처음 끌어안았다.”고 평했다.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한결 가벼워진 시적 행보 뜨거운 생명을 뿜어내다

    한결 가벼워진 시적 행보 뜨거운 생명을 뿜어내다

    “조물주는 만물을 창조할 때/바로 그것들이 되어 그렇게 했다/새를 창조할 때는/새와 함께 날고/개를 만들 때는/개와 함께 뛰었으며/물고기를 창조할 때는/물고기와 함께 헤엄쳤다/틴토레토의 ‘동물창조’에서 보듯이/(모든 창조의 최상의 길)”(‘창조’) 시인 정현종(69)씨가 43년의 시력이 오롯이 담긴 아홉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견딜 수 없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하루’‘걸음걸이’‘거대한 무의식’ 등 날빛의 생명력이 충만한 시 60편이 실렸다. ●정현종 시인 5년만에 9번째 시집 펴내 시인은 허무주의적이고 거창한 비유를 걷어내고 사뭇 생동감 넘치는 삶의 행보를 내딛는다.“아침에는/운명 같은 건 없다/있는 건 오로지/새날/풋기운!/운명은 혹시/저녁이나 밤에/무거운 걸음으로/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아침에는/운명 같은 건 없다.”(‘아침’) 아침의 세계에서 현재는 간단없이 과거와 조우하며 인간의 운명과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한결 가벼워진 시적 행보는 안과 밖, 나(自)와 남(他), 사물과 시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무한의 세계로 확장된다.“방 안에 있다가/숲으로 나갔을 때 듣는/새 소리와 날개 소리는 얼마나 좋으냐!/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속속들이 한 몸이요 /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그 파동 서로 만나/만물의 물결,/ 무한 바깥을 이루니……”(‘무한 바깥’) 시인은 닫힌 오감(五感)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온갖 사물들의 날빛을 그대로 받아들여 뜨거운 생명력을 뿜어낸다. 시인에게 ‘푸르다’는 것, 그것은 바로 사물에서 뻗어 나오는 힘찬 에너지의 상징이다.“금세기의 우리들이여/시간을 잃은 지 오래되지 않았는가./생각해보자, 예컨대/돈과 기계에 마비되어/바삐 움직이면서/시간을 돈 쓰듯 물건 쓰듯 쓰기만 하고/시간 자체!를 느끼는 일은 전무한 듯/하니, 시간의 꽃인 그 시간 자체는/어떻게 되었는가.”(‘꽃 시간2’ 중에서) 시인은 시간의 주인으로 자처해온 인간이 시간을 물 쓰듯 하면서, 이내 시간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음을 서늘한 시어로 깨우쳐 준다. ●시인과 시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몸으로… 그렇지만 날빛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본다.“시간의 물결을 보아라./아침이다./내일 아침이다./오늘 밤에/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나의 물결은/푸르기도 하여, 오/그 파동으로/모든 날빛을 물들이니/마음이여/동트는 그곳이여”(‘꽃 시간1’) 요컨대 시인은 뭇생명과의 내적 교감을 통해 보다 광대한 시적 세계로 자장(磁場)을 넓혀 간다. 문학평론가 박혜경씨는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의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광휘의 속삭임이 시인과 시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몸으로 들어올려진 시”라고 평한다.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현대인 진단엔 과학소설이 제격”

    “현대인 진단엔 과학소설이 제격”

    “현대 사회에서 과학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과학이 현대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만큼 현대인을 진단하는 데는 과학소설이 제격이지요.”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복거일(62)씨가 소설집 ‘애틋함의 로마’(문학과지성사)를 내놓았다.1987년 출간한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 사회평론집 ‘현실과 진단’, 산문집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등 전방위적 필력을 과시해온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가깝게는 20년, 멀게는 990년 뒤의 미래 무대 ‘서울,2029년 겨울’‘대통령의 이틀’ 등 모두 10편이 실린 이 책은 이 가운데 7편이 가깝게는 20년, 멀게는 990년 뒤의 미래를 무대로 쓴 과학소설이다. 그런 만큼 인공수정과 생명공학, 로봇, 복사(scan)인간 등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첨단 과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피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과학과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학소설을 쓸 수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 과학을 멀리하거나 외면해 버린다면 소설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표제작 ‘애틋함의 로마’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생명체를 만드는 복제(clone)의 차원을 넘어, 기억까지도 베끼게 될 경우 일어날 수도 있는 정체성의 혼란을 다룬다. 수록작 ‘서울,2029년 겨울’은 인공수정 문제를 통해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하고 언어가 변화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기적의 해’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영생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대통령의 이틀´은 현실정치 에둘러 비판 그렇다고 과학의 영역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현실 정치도 에둘러 비판한다. 좌파를 물리치고 집권했다가 좌파에 의해 물러나는 우파의 로봇 대통령이 등장하는 ‘대통령의 이틀’은 헌법 정신을 조롱하는 듯한 일들을 숱하게 벌인 전임 대통령을 정조준한다.“국민들은 늘 유치했다. 합리적 판단이나 원숙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들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실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른 채, 제 이익을 지키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이기심과 시기심을 부추기는 선동자들에게 열광했다. 그들은 그의 전임자를, 그 ‘어릿광대’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우리가 걷지 않은 길’은 실정법보다 떼법이 앞서고, 헌법보다 국민정서법이 오히려 힘을 발휘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풍조를 비판한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현실을 떠날 수 없다.”는 작가는 “다음 작품은 ‘사람이 늙어 가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문학과지성 대표 김수영·홍정선씨

    문학과지성사는 최근 이사회에서 김수영(43) 편집주간과 홍정선(55)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를 공동대표로 선출했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두 사람은 1일자로 사임하는 채호기 대표이사의 후임으로 선출됐으며, 김수영 편집주간이 상임 대표이사를, 홍정선 교수가 비상임 대표이사를 맡는다.
  • ‘당신들의 천국’ 소설가 이청준씨 별세

    ‘당신들의 천국’ 소설가 이청준씨 별세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한국 문단의 버팀목이 돼온 소설가 이청준 씨가 31일 오전 4시1분 폐암으로 타계했다.69세. 지난해 폐암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아온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약물치료를 받아왔다.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단편 ‘퇴원’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1967년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1969년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등단 직후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당신들의 천국’ ‘이어도’ ‘남도 사람’ ‘잔인한 도시’ ‘자유의 문’ ‘축제’ 등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며 40여년간 문단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고인은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도 지난해 여름 단편 ‘이상한 선물’,11월 작품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내놓는 등 창작의 혼을 불태웠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14호실(02-3410-6914).2일 오전 8시에 발인하며, 오후 2시 장지인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에서 노제를 지낸다. 장례는 문인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자문위원이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경자씨와 외동딸 은지씨가 있다. 한편 정부는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1일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자연과 귀향 노래한 ‘서정의 라이벌’

    자연과 귀향 노래한 ‘서정의 라이벌’

    최근 출간된 두 권의 시집은 두 시인이 각각 연세대 국문과와 고려대 국문과 출신이라는 점, 또 각각 창비(창작과비평)와 문지(문학과지성)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는 점, 그리고 각각 두 출판사가 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숙명의 라이벌’ 대결이라고나 할까. 장철문(사진 왼쪽·42) 시인의 ‘무릎 위의 자작나무’(창비 펴냄)와 문태준(오른쪽·38) 시인의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펴냄). 연대 출신인 장 시인은 이번이 5년 주기로 낸 세번째, 고대 출신인 문 시인은 6-4-2-2년 주기로 낸 네번째 시집이다. 두 시인 모두 1994년 등단한 뒤 ‘농축된 정서의 형질’(장),‘서정시 가문의 적자’(문)라는 평을 들으며 시단의 주목 속에 작품활동을 해왔다. 장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결 순연해진 눈길로 자연을 노래한다. 문 시인은 소처럼 ‘마실’ 다니며 둥글고 의뭉스럽게 귀향을 이야기한다. “자작나무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다/돋아나고 있다, 가슴에서도/피어나고 있다/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자작나무가 자작나무를 낳고 있다/구겨져서 납작하게 눌린 나무가/잎사귀에 피어서/주름들이 지워지고 있다/내가 자작나무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무릎 위의 자작나무’ 가운데)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감나무가 너무 웃자라/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 같은 구름/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한 몸의 그늘/그늘의 발달/…/나는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그늘의 발달’ 가운데) 공교롭게도 두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아이를 소재로 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도 여러 편 들어 있어 비교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각각 7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남성적 언어로 쓰고 노래한 ‘사랑’

    시인 성기완(41)에게는 시인 말고도 여러가지 ‘타이틀’이 더 따라다닌다. 그는 날카로운 문화평론가이자 음악을 선곡하는 라디오 DJ이면서 인디밴드(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홍대클럽에서 기타를 친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몸담고 있는 일은 크게 글쓰기와 음악 두 가지이다. 본래 시와 음악은 하나라고 했던가. 시인은 오래전부터 시와 음악의 결합을 시도해 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성 시인은 이번에도 세번째 시집 ‘당신의 텍스트’(문학과지성사 펴냄)와 두번째 솔로 앨범 ‘당신의 노래’를 동시에 발표했다. 시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시가 되는 궁극의 결합을 이루어낸 것.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당신의 텍스트 1-사랑하는 당신께’ 가운데) 시집 ‘당신의 텍스트’에는 표제작 연작시 11편을 포함, 모두 6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앨범에는 아홉 곡의 노래와 네 편의 낭송이 담겨 있다. 시와 노래의 모티프는 그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사랑과 연애이다. 그래서인지 평론가 이광호씨도 “그가 사랑이라니?”라며 낯설어했다. 특히 그의 사랑시는 여성 화자가 읊조리는 기존의 사랑시와 달리 남성화된 것이 특징. 하드코어적인 사랑의 담화가 이어진다.“너를 오랄하고 싶어/너의 빨간 암술을 헤치고/노란 수술을 빨고 싶어…”(‘꽃’ 가운데) 시인은 시집과 앨범이 서로 한 쌍이라고 규정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도 “당신을 사용합니다./당신을 사랑합니다./사랑을 사용합니다./노래가 되었습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책꽂이]

    ●처세술 개론(최인호 지음, 푸르메 펴냄) 등단 이후 천재적 작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최인호의 문학상 수상작 모음집. 제17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타인의 방’‘처세술 개론’,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깊고 푸른 밤’ 등 모두 7편의 작품을 실었다. 다양한 문학적 모색을 통해 현대인들의 고통과 불안을 치유하는 ‘최인호표 글쓰기’를 실감할 수 있다.1만 500원.●벚꽃나무 아래(김향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예리한 작가의식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가가 ‘서서 잠드는 아이들’ 이후 8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욕망과 부조리의 삶을 살아가며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또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작가는 갈등과 반목 속에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화해의 논리를 꾸준히 개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고 있다.9000원.●녹두장군(송기숙 지음, 시대의 창 펴냄) 부패한 봉건왕조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모아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했던 혁명가 전봉준의 삶을 조명한 소설.14년에 걸친 집필 끝에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을 맞은 1994년 전12권으로 완간한 뒤 절판됐던 것을 이번에 재출간했다. 첫 출간되던 해에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구수한 호남 사투리와 아름다운 호남의 산하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각권 1만 800원.●제국의 뒷길을 걷다(김인숙 지음, 문학동네 펴냄) ‘김인숙의 북경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가 김인숙씨의 첫 산문집.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베이징 곳곳을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작가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작가는 베이징 곳곳에 산재한 제국의 흔적 속에서 사라진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1만 2000원.
  • 한 소녀와 세 할머니의 유쾌한 에피소드

    ‘행복빌라 미녀 사총사’(유영소 지음, 김중석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참신한 캐릭터로 신선도에서 점수를 챙기고 보는 창작동화다. 으레 동화 속 할머니의 역할이란 몇몇으로 좁혀져 있게 마련.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성찰하게 하거나, 결손가정을 배경으로 한 성장동화를 떠받치는 주변적 인물로 그려지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예 할머니들이 이야기의 기둥이다. 직장 다니는 딸을 대신해 손녀딸을 봐주는 할머니와 그 이웃 할머니들이 엮는 유쾌한 에피소드에 책장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주인공 지현이는 학교가 끝나면 늘 할머니댁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할머니와 위아래층에 사는 할머니들도 언제부턴가 지현이 친구가 됐다. 아래층 할머니의 별명은 ‘뻐꾸기’, 위층 할머니는 ‘팝콘’. 할머니들과 어울려 지내는 지현이는 날마다 즐겁다. 발 냄새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겨대는 청국장을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할머니들 덕분이다. 이젠 지현이도 할머니들에게 좋은 동무가 돼주고 싶다. 혼자 외롭게 사시는 뻐꾸기 할머니의 생신날. 미국의 아들에게서 전화 한 통 없어 쓸쓸히 눈물을 훔치는 뻐꾸기 할머니를 위해 멋진 파티를 준비해 드린다. 지현이의 ‘마음의 키’도 쑥쑥 커나간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로 운을 뗀 동화는 그러나 갈피갈피에 판타지의 양념을 듬뿍 뿌려 놓는다. 마법사의 양탄자가 불쑥 등장해 아이들 눈을 동그랗게 만들기도 하는, 아이디어가 푸짐한 책이다. 초등저학년.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실용주의 거봉의 삶 자유롭게 그렸죠”

    “실용주의 거봉의 삶 자유롭게 그렸죠”

    “‘다산’이라는 거대한 준봉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소설도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군요.” 소설가 한승원(69)이 조선 실학자 정약용의 삶을 파고든 역사소설 ‘다산’(전2권, 랜덤하우스)과 시집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을 동시에 펴냈다.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2003),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2005), 다산의 후학 김정희를 복원한 ‘추사’(2007)에 이어 내놓은 시리즈 완결편이다.‘초의’ ‘흑산도 가는 길’ ‘추사’는 모두 ‘다산’을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던 셈이다. ●작가 스스로 유폐된 삶 선택… 토굴 짓고 글쓰기 “10여년 전 다산 공부를 시작하면서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다산은 18년간 전남 강진에 유배돼 갇혀 살면서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500권이 넘는 책을 쓰면서 철저히 자기 삶을 승화시킨 분이었습니다.” 작가 또한 스스로 ‘유폐의 삶’을 택했다.”나를 가두면 뭔가 큰 일을 이루지 않을까 싶어 13년 전 서울을 떠나 전남 장흥으로 내려와 토굴을 짓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물이 바로 ‘다산’입니다.” 소설은 다산이 결혼 60주년 회혼일(回婚日)에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시작된다.“‘다산’을 시간 순으로 다루진 않았습니다. 다산의 임종을 전후해 시간을 넘나들며 영상적인 기법으로 처리했습니다.” 역사소설의 딱딱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배려라는 작가는 “그림으로 치면 남종화처럼 자유롭게 썼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정조 임금의 승하 후 1801년 서용보의 간언으로 다산이 형제들과 함께 잡혀들어가는 장면에서 다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참 선비의 길을 걷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등 긴박감 넘치는 구성이 가능했다. 물론 다산이 오랜 유배를 통해 절대 고독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적 고뇌도 생생하게 그렸다. “다산은 유학자였지만, 천주교·불교·도교 등 다른 종교와의 교유가 폭넓게 이뤄진 까닭에 사상체계가 방대하죠. 때문에 이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다산의 저술은 물론 천주교의 천주실의·칠극, 도교의 노장서적, 유마경·화엄경의 불경, 사서삼경 등 200권 이상을 독파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다산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재조명되고 있는 인물”이라며 ”다산은 성인의 뜻에 따라 백성을 이끄는 것을 ‘사업’이라 했고 이런 사업을 하는 사람을 선비로 봤다.”고 설명한다.“단지 밥밖에 모르고, 그 천덕스러운 밥을 위해 백성들을 속이는 실용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각권 1만원.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의 세계 함께 나온 시집 ‘달 긷는 집’은 소설을 집필하는 틈틈이 쓴 71편의 시를 묶은 것.‘열애일기’(1991),‘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1995),‘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1999)’에 이어 네번째로 펴낸 시집이다. 내 몸을 소진시켜 진리를 추구한다는 뜻이 담긴 ‘달 긷는 집’은 한과 샤머니즘,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의 세계를 진솔하게 그려냈다.“우주를 화려하게 색칠하는 것이 꿈인 나는/피어나는 것이 아니고/혈서처럼 세상 굽이굽이에 시를 쓰는 것입니다.”(시 ‘꽃’중에서) 꽃과 바다, 구름 등 천하만상(萬象)이 불교적 색채 속에 오롯이 휘감겨 있다. 작가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계 없이 사유하는 것인 만큼 굳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며 “내 시는 특별한 기교가 없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그동안 쓰고 싶었던, 인간의 근원적인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문학으로 삶의 시원을 탐구해보자는 것이지요.” 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고립의 불안과 고통 해결책은 ‘소통’

    고립의 불안과 고통 해결책은 ‘소통’

    “한동안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어려움을 겪었죠. 혼자 분투하던 시절의 글을 소설집으로 묶게 되니 기분은 좋습니다.” 조경란(39)은 이번에 펴낸 소설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를 계기로 슬럼프를 벗어나 다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소설집으론 2004년 ‘국자 이야기’ 이후 4년만이다. 이번 소설집엔 1인칭 ‘나’의 시점으로 쓰여진 여덟편의 단편이 실렸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루한 주인공들이 소통을 통해 불안과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냈다.“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통과 두려움입니다. 달리 말하면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또한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작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표제작 ‘풍선을 샀어’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7세 철학도의 입을 통해 “한국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우정과 신뢰에 바탕한 대화와 휴식”임을 강조한 1인칭 소설. 풍선을 불어 날리며 절대고독 속에서도 희망의 단서를 잃지 않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다. 또다른 수록작 ‘달팽이에게’‘형란의 첫번째 책’‘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밤이 깊었네’ 등도 타인과 벽을 쌓고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주인공들이 소통을 통해 상처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자기 치유의 미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원작과 드라마의 함수관계

    원작과 드라마의 함수관계

    최근 정이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SBS 16부작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연출 박흥식, 극본 송혜진)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원작 소설의 판매량 또한 크게 늘고 있다. 원작과 드라마의 ‘윈-윈 효과’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허영만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사전제작드라마 ‘사랑해’의 시청률 참패에서 보듯, 성공한 원작이 반드시 흥행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과 드라마는 과연 어떤 함수 관계에 있는 것일까. 30대 초반, 직장 7년차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달콤한 나의 도시’가 지난 6일 첫 방영된 이후,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랑스러운 드라마”라는 찬사가 잇따르고 있다. 아직 4회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열기는 온·오프라인 서점가에서도 감지된다. 인터파크도서 집계 결과, 원작소설 일일판매량이 드라마 방영 전인 5월 평균 하루판매량에 비해 최고 14배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파크도서 관계자는 “13일 현재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이달 ‘역대 월 최고 판매량’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런 열기는 2006년 하반기 단행본을 출간했을 당시의 인기에 버금가는 것. 책을 낸 ‘문학과지성사’의 홍대기 영업팀장은 “현재 출판사 집계치로 ‘달콤한 나의 도시’가 하루에 4000∼5000부씩 팔리고 있으며, 드라마 방영 이후인 6∼12일에만 2만부가 판매됐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의 판매량이 급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커피프린스 1호점’‘하얀거탑’‘쩐의 전쟁’ 때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인터파크도서 김미영 과장은 “원작을 드라마화할 경우, 기존 마니아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관심이 몰려서 판매량이 일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면서 “특히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스테디셀러의 경우, 드라마가 방영되면 판매량이 상대적으로 더 큰 탄력을 받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가 반드시 시청률 보증수표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허영만 원작의 ‘사랑해’(4월7일∼5월27일 방영)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시청자들이 실망을 느끼는 진폭도 컸다. 원작 또한 4월 판매량이 전달 평균 판매량에 비해 43.7% 증가(인터파크도서 집계)했지만,5월에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등 드라마 방영 효과가 미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같은 현상에는 트렌드의 미반영, 완성도 미흡 등 복잡한 요인이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원작의 명성에 기댄 맹목적인 판권 확보 경쟁의 부정적 이면을 드러냈다고도 풀이할 수 있다. 원작의 인기는 제작진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캐릭터나 줄거리 등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시청자들의 ‘참견’이 많다는 점도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트렌드에 맞출 수는 있지만 완성도나 작품성을 오히려 해칠 여지도 있기 때문. 아닌 게 아니라 ‘달콤한 나의 도시’ 시청자 게시판에는 벌써부터 “최강희가 너무 동안이다.”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꿔달라.”는 등의 시청자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시청자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유연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달콤한 나의 도시’ 이현직 책임 프로듀서는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겠지만, 스토리나 캐릭터의 재해석은 어디까지나 감독과 드라마 작가의 몫”이라면서 “12부 이후부터는 시청자 반응을 고려해서 결말을 다르게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작자 정이현 씨도 “드라마가 꼭 소설을 똑같이 재현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도 어디까지나 시청자 중 한 명일 뿐이며,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

    “작가보다 몇 수 높은 독자들이 있는가 하면, 천자문의 천지현황(天地玄黃)을 3년 넘게 읽어도 ‘도로아미타불’인 독자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송두리째 삼켜 버릴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삼킨 것을 몇 번이고 토해내 씹고 삼키고 또 씹어야 하는 책도 있지요.” ‘난해 작가의 대명사’ 박상륭(68)씨가 장편소설 ‘잡설품(雜說品)’(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내놓았다.1969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가 창작집 ‘소설법’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인간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들려주는 ‘잡설품’은 1975년 구도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와 고행 이야기를 그린 ‘칠조어론’에 이은 ‘죽음의 한 연구’ 시리즈의 완결편이다.‘죽음의 한 연구’는 가상의 고장 ‘유리’의 육조(六祖) 촌장 이야기.‘칠조어론’이 작가가 칠조(七祖)라고 ‘참칭’하며 펼치는 설법을 담고 있다면,‘잡설품’은 주인공 시동이 고행 끝에 해탈하는 팔조(八祖)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조(祖)는 불교 선종의 조사(祖師)를 일컫는데, 초조(初祖) 달마로부터 육조(六祖) 혜능까지 이어졌다. ‘잡설품’은 경전과 소설의 사잇글이라는 뜻의 ‘잡설’에다 불교 경전에서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품’을 덧붙였다.“세상에는 두 종류의 잡설이 있지요. 하나가 철학자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나머지 하나가 나의 글이죠.‘차라투스트라는’가 몰락의 축에서 쓴 글이라면,‘잡설품’은 상생의 축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추상적인 것도 물질로 구상화해 사고하는 서구적 한계를 벗어나 마음속에 우주가 깃든 추상적 이미지의 동양 정신을 풀어 보려고 했죠.” 소설도, 서사시도, 경전도 아닐 수 있지만 소설이나 서사시, 경전 모두로도 읽힐 수 있다 보니 이 글의 제목을 ‘잡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이라 할 패관을 화자로 등장시켜 극과 시의 형태를 종횡무진 오가며 주인공 시동이 해탈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의 신화와 설화, 종교와 철학을 한데 아우르며 작가의 화두인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문제의식을 펼쳐낸다. 작가가 소설은 쉽게 썼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소설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까닭에 읽기에 적잖은 공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소설은 인간 본연의 문제를 깊이 있게 짚어낸다.“오늘날 물질적으론 매우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날로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타락한 현대 우리 사회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본연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죠.” 난해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하나의 책이 모든 계층 독자들의 기호에 맞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작가는 “난해하다, 난삽하다,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는 말은 일견 찬사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작자와 독자 사이를 소원하게 하는 만큼 작가로서는 매우 손해를 보게 만드는 말”이라고 털어놨다. “허리도 아프고 고혈압·당뇨 등 온갖 성인병은 다 갖고 있어요. 아직까지 다음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필 선언은 아니지만, 물러날 때가 되면 물러나야지….” 작가는 “이제 마지막 이민 길 가는 기분”이라며 “즐겁게 죽는 연습이나 해야겠다.”며 허허롭게 웃었다.1만 40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어린이책꽂이]

    ●때때옷 입고 나풀나풀(이미애 글, 최미란 그림, 중앙출판사 펴냄) 한복에 대한 모든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옷을 만들어 입는 과정에 따라 8개 주제로 나눠 설명. 씨아, 솜활, 물레, 날틀 등 옷감 제작 과정에 등장하는 물건들에서부터 갈옷, 쪽물치마, 노랑 명주저고리 등 다양한 우리 옷들을 보여준다. 초등저학년까지.9500원.●날마다 뽀끄땡스(오채 글, 오승민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섬마을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열두살짜리 소녀 들레. 돈벌러 뭍으로 나간 엄마가 재혼한 줄도 까맣게 모른 채 엄마만 손꼽아 기다리는 소녀의 이야기가 때론 유쾌하고 때론 가슴뭉클하다. 제4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 초등 고학년.8500원.●상큼한 오렌지, 작은 물고기(황베이자 글, 나오미양 그림, 주니어김영사 펴냄) 중국 문학의 독특한 감수성을 맛보여줄 수 있는 중국의 인기 여성작가의 창작동화. 자폐아 성향을 가진 열살난 소년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가 화해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초등 고학년.9000원.●뭐든지 거꾸로 세번(장경원 글, 김유대 그림, 느림보 펴냄)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만 들고 앉은 엄마 때문에 심심해진 꼬마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뚱보 아줌마, 이어폰을 낀 노랑머리 형이랑 빙글빙글 춤을 추는 재미난 상상이 꼬리를 무는데…. 상상력이 번득이는 동심을 절묘하게 표현한 그림책.7세 이상.9800원.●털뭉치(김양미 글, 정문주 그림, 사계절 펴냄)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선생님과 소년이 고양이를 매개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 표제작 ‘털뭉치’를 비롯해 모두 4편의 창작동화가 묶였다.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죽음, 신체장애에 대한 편견 등을 고민해보게 할 듯. 초등3년 이상.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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