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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문학생활]당신이 설 연휴에 읽어야 할 책

    [슬기로운 문학생활]당신이 설 연휴에 읽어야 할 책

    패기만만하고 호기롭게 적어본다. 설 연휴에 문학책을 읽어보자고. 안 읽어도 상관없지만, 넷플릭스에 지친 당신이 불현듯 활자를 읽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하나만 파다 보면 좀 질리는 법이고, 설 연휴나 되니까 당신이 책을 집어들 수도 있으니. 혹여나 읽어보고 재미가 없으면 기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도 된다. ●강화길 ‘음복’: 가족 내 진짜 ‘빌런’은 누구인가. 장례식장에서 다른 가족들이 일하는 동안 본인 앞으로 들어온 조의금을 세보는 사람, 식구들이 모이면 너는 성적이 어느 정도이고 취직은 언제할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가. 올해 젊은작가상 대상에 빛나는 강화길 작가의 ‘음복’에 등장하는 시고모의 모습이다.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집안마다 한 명씩 있는 그런 사람’. 시할아버지 제삿날, 고모의 무례한 질문에 점점 더 기분이 나빠진 ‘나’는 얼결에 ‘음복’까지 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집안마다 한 명씩 있는 그런 사람’은 과연 시집에만 있을까? 그리고 끝판왕 같은 ‘진짜 악역’은 원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가족 내 진짜 ‘빌런’은 누구인지 다각도로 살펴보게 하는 작품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소설 보다 2019,가을’에 실렸다. ●박해울 ‘기파’(허블): 문턱이 낮은 SF소설 ‘SF가 유행이라며’ 라는 말을 문학에 관심 없는 이들도 한 번 쯤은 들었을 법 하다. 지난해 김초엽 작가 같은 걸출한 신예의 등장, 기존 작가들의 활약, SF 무크지의 등장으로 SF 시장은 더없이 풍성해졌다. 그러나 SF 문학에 입문하는 일은 소설 좀 읽는다 하는 사람도 쉽지가 않다. 특히나 ‘스페이스 오페라’류의 하드한 SF는 문학 담당인 기자에게도 만만치가 않았다. ‘나도 SF 한번 읽어보자’하는 초심자에게 권한다. 지난해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부문을 수상한 ‘기파’다. 향가 ‘찬기파랑가’에 SF를 접목한 작품인 ‘기파’는 신라 시대 화랑으로 널리 알려진 ‘기파’가 해독자에 따라 의사로도, 승려로도 해독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추리 형식의 미스터리 SF다. 사이보그와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근미래에, 예기치 못한 운석 충돌로 난파된 우주크루즈 안에서 벌어지는 추격극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술술 넘어가는데다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 없어 조금 조숙한 초등학생 조카와도 나눠 볼 수 있다. SF 못지 않게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90년대생’의 사회복지사인 작가가 썼다. ●김보라 ‘벌새’(아르테): 시나리오로 다시 보는 ‘벌새’ 영화 아니다. 국내외 영화제 45관왕 달성에 빛나는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다. 영화를 보고 보면 더욱 의미가 풍부해질 것이다. 영화에 담지 않은 신들도 모두 들어가 있기에. 순서를 바꿔도 상관은 없다. 내가 만든 머릿속 영화와 실제 영화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기에. 인물들 대사의 뉘앙스를 고르고 고르는 김보라 감독 특유의 작법을 되새기는 데 이만한 책이 없다. 가령, 오빠에게 맞아 고막이 터진 어린 은희를 진찰하는 의사의 말 같은 것. “혹시… 진단서가 필요하니?” 모종의 폭력이 일어났음을 눈치챘지만 은희의 의사를 묻는 것이 먼저인 그의 행동을 감독은 섬세한 말의 뉘앙스를 통해 구현해냈다. 뒤에 실린 영화 리뷰도 놓칠 수 없다. 최은영, 남다은, 김원영, 정희진의 글에 이어 그래픽 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과 김 감독의 대담까지…. 영화 ‘벌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감독의 벌새 같은 날갯짓을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아침달): 90년대생들의 시 90년대생 시인 3명으로 이루어진 창작동인 뿔의 시집이다. 최지인·양안다·최백규 세 명의 시인으로 이루어진 ‘뿔’은 미래를 지향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미래는 무조건적인 장밋빛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바라보는 슬픔 어린 미래가 마냥 먹빛도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 슬픔은 또한 아름다운 것이거나, 혹은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능력이 이들에게는 있노라고 출판사 측에서는 설명한다. 슬픔도 공감을 동반한다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일테다. ‘회사 생활이 힘들다고 우는 너에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게 계속 일할 의지 계속 살아갈 의지가 없다는 게 슬펐다’(54쪽, ‘기다리는 사람’ 부분) 처럼 현실에 발 디딘 시편이 많다. 그 덕에 시가 일상과 멀리 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3명의 시인들은 각 시편마다 이름을 적지 않았다가, 마지막 장에 깜찍하게 밝혔다. 아까 그 시의 마지막은 ‘우리는 가만히 누워 손과 발이 따듯해지길 기다렸다’이다. 따뜻한 설 연휴 되기 바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020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것들 -강성은의 시

    1. 별일, 없습니까? 강성은을 줄곧 예의주시하던 독자라면, 그녀가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현대문학, 2018)에서 보여 준 세계가 결코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안개가 도시를 뒤덮어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 여기에는 비록 논리적 인과가 생략되어 있지만, 그동안의 그녀의 작품 세계를 떠올려 보자면 이러한 결말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일단 그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도록 하자. 타인의 죽음을 노래하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보다 무서운 것은, 그녀의 ‘별일 없습니다’라는 말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강성은의 세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현실의 비틀림을 시적 언어로 치환하여 구조적 폭력과 그 속에 놓인 주체를 치밀하게 조망한다. 그 세계는 희생자의 관점에서 추상된 세계이기에, 폭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영역으로 남는다. 세계는 악몽이며, 깰 수 없는 꿈이라는 인식 속에서 강성은은 극복이나 초월을 말하지 않으며 단지 악몽을 더듬어갈 뿐이다. 그간 강성은이라는 시인이 평단과 독자 양쪽 모두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그녀의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해석이 부재했던 것은 타자의 세계와 응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기묘한 매력이 있음을 동시에 암시해 준다. 이 낯선 세계와 마주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별일 없다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에게는 보다 대담한 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령 악몽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악몽’을 나란히 세워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자리에 스즈키 고지 원작의 영화 ‘링’1)을 놓아보자. 악몽에 일상을 겹쳐 놓음으로써 ‘이것은 악몽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악몽에 또 다른 악몽을 겹쳐 놓음으로써 강성은 시의 깊이에 초점을 맞춰 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가 가진 디테일과 그로부터 펼쳐지는 어떤 파국의 매혹에 대해, 그리고 그 파국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심층적 의미에 대해 깊게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2. 죽음을 상연하는 세헤라자데의 서커스 -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 2009)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시인은 ‘세헤라자데’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는 아직 비어 있다. 드러나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마치 본 사람 중에 살아남은 이가 없어 아무도 그 내용을 모르는 ‘링’2)의 비디오처럼.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 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 (…)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 매일 당신이 하는 이야기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당신이 매일 하는 그 이야기 끝이 없는 이야기 흔들리는 구름처럼 불안하고 물고기의 피처럼 뜨겁고 애인의 수염처럼 아름답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 (…) 어젯밤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내일 밤 내가 당신 귀에 속삭일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 ‘세헤라자데’ 중에서 천일야화 속 등장인물인 그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 가는 인물이다. 예컨대 그녀는 왕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도록 매혹해야 하는 숙명에 빠져 있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소재가 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성격에서의 매혹과는 다른 결로 표현되어 있다. 그 이야기는 ‘무겁고’, ‘툭 끊어’질 것 같고, ‘비릿하고’ ‘개 같’다. 심지어 화자는 그것을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라고 말한다. 혼란에 빠진 듯 두서없이 말하는 시에서 내용이 아닌 목적에 맞춰 질문을 던져 보자. 그녀는 이런 설명으로 어떻게, 어떤 청자를 매혹하려는 걸까? 보편적 매혹과 구별되는 설명이 매혹으로 작용하는 경우에 대해 떠올려 보자. ‘링’의 첫 대목은 여고생의 통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저주받은 비디오에 대해 상대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보면 죽게 되는 비디오’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기묘하고 혼란스러운 장면이 영화의 시작을 장식하는 것처럼, ‘세헤라자데’가 시집의 첫 작품으로 배치될 때 환기시키는 것은 위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매혹이다. 그렇다면 ‘세헤라자데’는 누구로부터 죽음을 연기하려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집에서 ‘죽음’이 특정한 사건이 아닌, 세계에 만연해 있는 일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는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하며(‘서커스 천막 안에서’), 자줏빛 스카프와 같은 사물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하며(‘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때로는 바람이 몰아쳐 내장을 쏟아내며 죽기도(‘새벽 두시의 변기’) 한다. 그 외에도 무수하게 변주되는 죽음의 양상 속에서, 죽음은 특별한 인과가 아니라 세계의 이상성을 보여 주는 한 표지(標識)가 된다. 여기에 덧붙여 화자가 죽음을 ‘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서커스’(‘잠의 형제’)라고 말한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죽음은 슬픔, 그리움,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을 동반하는 사건이 아니라 신의 유희를 위해 상연되는 그 무엇이다. 이 시적 세계에서 인물은 신의 유희를 위한 희생양의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희생양의 위치는 공포영화 속 인물의 위치와 같다. 공포영화에서 인물이 죽는 것은 살인마에 의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관객의 긴장과 응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 인물의 삶과 죽음은 오직 내적 서사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을 염두에 둔 상태로 전개된다. 영화 ‘링’의 결말 부분에서 인물의 죽음은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된다. 눈은 1차적으로 내적 맥락인 사다코의 저주를 표상하지만 이는 동시에 외적 맥락인 관객의 응시 또한 형상화한다. 이어지는 엔딩에서 여주인공 아사가와는 다른 이에게 저주의 비디오를 전달하러 떠난다. 자신의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세헤라자데’ 또한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자신의 죽음을 연기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계속해서 상연하는 서커스라고 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집에서의 수많은 죽음은 화자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연을 위해 화자가 뒤집어쓴 인물들의 죽음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신 앞에서 계속 죽음을 연기(演技)해야 하는 저주받은 자이고, 그것이 시집에서 표상되는 세헤라자데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고, 종국에는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게 된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세헤라자데의 저주받은 삶을 표상하는 문장인 셈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신체 절단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서커스에 연관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시인의 개성적인 상상력이면서, 작품 내적으로는 신의 눈을 홀리는, 화자가 계속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의 그로테스크함은 통각의 언어이면서, 화자의 세계를 지탱하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의 증상3)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그로테스크한 발화를 다룰 때, 그것을 단순히 희생자의 광기 어린 토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가끔 그녀의 감은 눈꺼풀 속 검고 깊은 구멍 속에서 하얀 꽃잎들이 흩어져내렸네’(‘나무가 되는 법’)라거나 ‘나는 나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점들은, 살점들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선명하게 붉은 점이 되었다’(‘태양의 반대편’)라고 말할 때, 이는 화자의 광기를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하고 유지하려는 절박한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때에 나타나는 난해성은 해석에 저항하는 관성적 구성물로서 증상의 필연적 산물이다. 결국 증상들로부터 예증되는 이 그로테스크한 절박함이야말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통해 강성은이 펼쳐 보인 시적 세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s廓r Tod) -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통해 강성은은 저주받은 세헤라자데의 몸을 빌려 독자적인 시적 세계와 그 속에서의 증상적인 발화를 보여 주었다. 그녀의 첫 시집은 이렇듯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죽음을 연기(演技)하는 분투였다. 이는 두 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에도 이어지는 것으로서, 여기에도 강성은은 자신의 시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연기(演技)이자 제스처라는 방식을 줄곧 유지한다. 가령 ‘외계로부터의 답신’에서 화자는,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 ‘외계로부터의 답신’ 중에서 라고 말하며 삶과 연기의 간극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두 가지 효과가 발생하면서 이 시집이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첫째로 자신의 삶이 하나의 연기임을 완전히 선언했다는 점이다. 전작에서 화자는 ‘구두’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삶이 수많은 배역의 연기임을 드러냈지만, 이 같은 대비를 전경화하지는 않았다(전작에서 화자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점에 유의하자). 두 번째는 연기와 삶 사이의 틈을 무대화한다는 점이다. 그 틈은 ‘단지 조금 이상한’ 것으로,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 병/잠처럼’(‘단지 조금 이상한’)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으며 드러나지 않지만, 해소될 수도 없는 틈. 화자는 그 틈을 어렴풋이 감지하며 그것의 윤곽을 그려 나간다. 이처럼 연기와 화자 사이의 틈이 무대화되는 지점에서 화자는 존재론적 물음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올란도’에서 화자는 과거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가 죽었다 몇 세기에 걸쳐 꿈을 꾸었다 수많은 계절들의 반복과 변주 수많은 사람들의 반복과 변주 어제와 내일의 경계가 사라져도 이 꿈은 사라지지 않아 죽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다음 생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밤이 저 오랜 질문을 던지고 슬그머니 얼굴을 바꾸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몇 세기에 걸쳐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 나의 노래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나의 얼굴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이 오랜 꿈이 끝나고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 - ‘올란도’ 전문 타자의 몸을 빌려 그로테스크한 죽음을 상연하던 것에 대해 이제 화자는 그것을 하나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꿈은 깨지 않는 꿈이고 사라지지 않는 꿈이다. 그 꿈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실체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직면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그러나 화자는 대답할 수 없다. 무수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란 ‘켜켜이 쌓여’가는 반복과 변주라는 사후적 형식으로만 파악될 뿐이다. 그렇기에 질문은 존재론적 해답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에는 빗나가며 실패한다. 화자는 그 빗나감과 실패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윤곽선만을 그려본다. 그 대답을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라며 사후의 순간에 은유할 뿐이다. 이때 ‘죽음’이라는 기표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조직된다. 이전 시집에서 그것이 신의 유희를 위해 상연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죽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될 시간, 화자가 ‘밤’이 되는 순간으로 재전유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변화를 의미할까? ‘링’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아사가와의 표정을 상기해 보자. 이 장면에서 아사가와는 우연히 저주받은 비디오를 봐 버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매개물이 되어 자신의 부모에게 저주를 전염시키러 떠나고 있다. 여기에서 아사가와는 슬픔에 찬 눈과는 대조적으로 약간의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다. 먼저 확실한 것은 그 표정이 저주에 사로잡혀 공포에 떨던 표정도,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조해하던 표정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표정은 한결 평온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링’을 구성하는 두 개의 쇼트 형식4)은 완전히 겹쳐지고 영화는 끝이 나는데, 이는 아사가와가 저주로 인한 삶의 비틀림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그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더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앞서 ‘올란도’를 통해 보았듯이 화자는 죽음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전 시집에 비해 연과 행의 나눔이 정갈해지는 변화 또한 이 같은 요소로부터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아사가와가 저주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났듯이,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 또한 죽음을 언젠가 찾아올 필연적 사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말하기 방식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말이다. 이 같은 태도는 ‘기일(忌日)’과 ‘불 꺼진 방’, 그리고 ‘구빈원’의 세 편의 구도를 통해 다른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선 두 편의 시는 동일한 장면에 대한 서로 다른 위치에서의 관점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기일(忌日)’에서는 화자가 집 밖의 쓰레기장을 바라보며 거기에 버려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반면 ‘불 꺼진 방’에서 화자는 내다 버려진 ‘죽음’의 입장에서 주변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의 두 관점은 그 내용에서 두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차이는 ‘구빈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변증법적 종합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종합은 통상적 정·반·합의 구도와는 다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실은 모두가 버려지고 있다/너무 먼 곳에 버려져 잊었을 뿐이다/이 행성이 우주의 거대한 쓰레기장이라는 걸/우리는 모른다/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화자의 가장 비참한 형상(죽어 버려진 모습)을 자신의 인식론적 밑바탕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마치 ‘링’의 아사가와가 저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자기 삶의 변화된 기반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나아가듯이 말이다. 4. 커져가는 소음 속에서 자라나는 것 -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그러나 세계는 여전하고, 화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잠자는 듯했지만/엄마 오늘밤 우리의 악몽은/태어나지도 깨어나지도 않는 영원한 불길함입니다’(‘양수 속에서’,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중)라고 표현했던 세계에 있다. 단지 자신의 죽음을 필연적인 것으로, 그것을 인식의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화자의 관점만이 변화했을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화자의 시각장을 재조직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 그의 눈에 포착되면서, 시는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요소가 생활감 있는 유령들의 출몰일 것이다. k는 죽은 후에도 가끔 산책을 한다 p는 죽은 후에도 가끔 시를 쓰고 담배를 핀다 r은 술을 마시고 꿈도 꾼다 어제는 오래전 죽은 친구를 만나 강에서 수영을 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b는 살아 있는 사람인 척 온종일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사람들도 살아 있는 척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 ‘계면’ 중에서 인용된 작품 전반부에서 죽은 이들은 생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이어 간다. 이 가운데 화자는 도시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러한 독백 이후로 화자는 산 사람들의 삶을 나열한다. 그들(z, w, n)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죽음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강성은의 시에서 죽은 이의 출몰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전 시집에서 죽은 자들은 악령이었거나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모습이었던 반면 여기서 포착되는 죽은 자들은 보다 생활감 있는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가 죽었음을 알면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래는 시의 후반부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 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 가수는 노래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죽고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 노래하고 s는 어제 쓴 일기를 반복해 써 내려가고 c는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을 매일 베껴 적는다 불행한 일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불운한 날들이 빛처럼 쏟아져 내려도 도시가 잠기도록 비가 내려도 - ‘계면’ 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면, 죽음과 살아 있음의 차이는 경미해진다. 시에서 죽은 인물들과 산 인물들의 이미지가 대비가 아닌 나열의 방식으로 나타나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라고 화자가 독백할 때, 여기의 행간에는 앞선 산 자와 죽은 자의 비교로 인해 ‘삶이 죽음보다 더 죽은 것 같다면’이라는 문구가 새겨지고, 죽음과 삶의 의미는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산 자는 알 수 없는,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문구이다. 물론 이것은 불온한 인식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세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축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Lo-fi’는 이런 불온한 인식이 거듭 쌓여가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 여자는/살아 있을 땐 죽은 여자 같더니/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Ghost’),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0℃’)과 같은 독백들, 혹은 ‘오늘 죽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오늘 산 자는 영원히 살지 않고//결코 다시 죽지 않으리’(‘안티고네’)와 같은 발화에서, 그 불온한 인식은 임계점을 향해 가는 힘처럼 시집에 거듭 축적되어 간다. 여기에 더불어 ‘이상하게도 그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카프카의 잠’)라는 독백은 그러한 힘이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발생시킬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기서 잠시 ‘링’으로 돌아가 보자. ‘링0’5)에서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저음질의 소음이 영화를 메운다. 이는 공포영화 특유의 클리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인 사다코의 스트레스와 사건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음질의 소음은 일종의 시그널로, 현재의 장면 속 어딘가에서 포착할 수 없는 일이 준비되고 있으며 그것이 곧 현실로 분출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소리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가장 작은 크기로 들리다가, 사다코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최대치에 이르게 되며, 이는 저주를 통한 살해의 시발점이 된다. 어쩌면 ‘Lo-fi’ 또한 이러한 공포물의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시집이 계속될수록 쌓여가는 불온한 힘이 저음질(Lo-fi)의 소음과 같은 형태로 점차 커져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시집에서 이처럼 커져가는 소음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현실의 밑에 차곡차곡 쌓인 어떤 것이 이윽고 분출되리라는, 절정이 곧 다가오리라는 암시인 것일까? 그것은 화자의 파멸인가, 아니면 세계의 파열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화자가 ‘섣달 그믐’에서 말하고 있는 한 점에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밖에선 종말처럼 어두운 눈이 내리고 있고/나는 이제 잠에서 깨버릴 것 같’다고. 이때의 ‘잠’은 이전 시집의 ‘올란도’에서와 유사한 의미로 들린다. 그때에 화자가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라고 했던 점을 상기하자면, 이는 곧 화자가 ‘밤’이 될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의 시집들을 경유하여 살펴보자면 그 ‘밤’이 이성의 빛이 도래하기 이전의 암흑의 시간으로서의 ‘밤’이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세계의 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탈구시키는 근원적 혼돈이자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잉여인 동시에 그것의 결핍을 드러내는 틈으로서의 ‘밤’. 그것은 주체의 출현을 암시하는 강력한 은유이다. 그러므로 ‘섣달 그믐’의 시점에서 ‘올란도’를 돌이켜본다면, 이는 다음과 같이 재의미화된다. 그녀가 온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그녀가. 그때 이 모든 잠의 의미를 우리는 알게 되리라. 5.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것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안개가 도시를 뒤덮어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로. 처음에는 국소 범위였던 안개가 점차 도시를 가득 메워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B시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M시의 사람들은 이윽고 그것을 촬영하던 리포터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이제 안개는 B시를 넘어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확산의 이미지는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반복된다. ‘꿈에서 배를 가르자/흰 솜뭉치가 끝없이 나왔다’(‘소설(小雪)’), ‘불행의 구렁텅이에 차오르는 빛 하나로/서로의 손과 발을 묶고’(‘첫아이’), ‘그가 가방을 열고 모래를 꺼낸다 가방에서 모래가 끝도 없이 나온다’(‘손님’), ‘그의 주위로 쇄기풀이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풀은 무섭게 자라 기관실을 뒤덮고 곧 모든 객차를 넘실거리며 물결칠 것’(‘객차’) 등등. 이 같은 이미지들 가운데 ‘객차’의 ‘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보자.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공황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풀은 모든 것을 잠식하는 공포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기차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해서 달린다. 이러한 상황에 이어 재난상황은 확산과 그로 인해 퍼져가는 공포감을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재난이 벌어졌다고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재난은 처음이라고 우리들의 육체와 영혼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다줄 것이며 이후로는 결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방송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며 재앙을 계속될 것이라고 1분 후 다음 재난 방송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더욱 경악할 만한 재난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였다 일요일 오후였다 - ‘재난 방송’ 중에서 화자는 재난 방송을 본다.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리포터마저도 그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사태는 심각해져간다. ‘이후로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표현은 재난 규모가 미증유의 것임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이다. 화자는 방송을 바라보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이며 일요일 오후의 일상을 준비한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왜 화자는 재난 앞에서 평온한 것일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왜 화자는 ‘별일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잠시 ‘링’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다코의 원한을 해결했으니 이제 저주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한 류지는 자신의 방에서 밀린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방에 놓여 있던 TV가 갑작스레 켜지며, 예의 저주받은 비디오가 재생된다. 경악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류지를 향해 사다코는 우물에서 기어 나와 점차 다가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사다코가 TV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나타났을 때, 류지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통상적 해석을 따르자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현실화되는 재앙의 순간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자면, 이것은 류지에게는 재난이지만 사다코에게는 출생의 순간이 아닐까.6) 마찬가지의 구도를 이 시집에 적용해보자. 세계에 몰아친 재난은 화자가 출생하기 위한 조건인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축적되어온 불온한 힘이 마침내 이야기의 틀을 넘어 현실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와 더불어 ‘링’에서 거듭해서 나타나는 자라나는 머리칼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점차 자라나며 외부를 향해 확산되는 머리카락은 섬뜩한 무엇이면서, 사다코가 점차 비디오를 넘어 현실로 틈입해 들어오고 있음을 예시하는 이미지이다. 마찬가지로 강성은이 이 시집을 통해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는 확산의 이미지들 역시 서서히 증식되는 불길함의 이미지이면서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내러티브인 것은 아닐까? 그것은 세계의 입장에서는 악몽이지만 화자에게는 출생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출생은 모든 의미가 혼란에 빠지는 시간이며 주체가 세계를 잠식하는 사건이다. 이 시집에서 안개의 확산을 거대한 재앙으로 표현한 것은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한 서사화이며, 지젝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체적 보편성으로서의 주체가 추상적 보편성으로서의 세계를 잠식하는 과정이다. 강성은의 시세계는 이 지점을 통해 재의미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악몽이었으되, 주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고 말이다. 오직 그 악몽으로부터, 그것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체가 출현하기 위한 조건이다. 서서히 고조되는 불온한 분위기에서 스스로의 출생을 예감하고 마침내 세계를 잠식한다는 점에서, 강성은의 시적 주체의 탄생은 세계를 정지시키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네 권의 시집을 거쳐 비로소 태어난 이 시적 주체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여기에는 그간 강성은이 여성 화자를 강조해왔다는 사실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구체적인 여성과 거리가 멀다. 강성은의 여성 주체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에서, 궁극적으로는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항으로 출현한다. 억압된 것의 귀환 혹은 여성 주체의 직립. 그녀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는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위협하던 세계를 위협하는 공포다. 아사가와에서 사다코로의 기묘한 이행, 이것이 강성은의 궤적이며,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어떤 것이다. 1) 여기에서는 ‘링’의 시리즈 가운데 ‘링’(나카타 히데호, 1998)과 ‘링0-버스데이’(쓰루타 노리오, 2000)를 주요 텍스트로 삼고 있다. 이하 글에서는 ‘링’과 ‘링0’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2) ‘링’의 주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방송국 기자 아사가와 레이코는 보면 일주일 후 죽게 된다는 어떤 비디오에 대한 학생들 사이의 소문을 취재하던 중 조카 도모코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도모코와 같은 날 죽은 세 명의 학생들이 같은 비디오를 봤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사가와는 그 비디오를 찾아나선다. 결국 아사가와도 그 비디오를 보게 되는데 그는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3) 지젝은 라캉이 말하는 증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것은 특수하고 병리적인 기표적 형성물로 해석과 소통에 저항하는 관성적인 오점이면서 사회적 유대의 네트워크 속에 포함될 수 없는 얼룩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러한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만드는 실정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슬라보예 지젝, 이수련 역,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새물결, 2013, 132쪽 참조. 4) 영화 ‘링’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둘은 숏의 형식을 통해 구별된다. 현재는 시간과 날짜가 표기되며, 컬러 화면으로 구성된다. 반면 과거는 인물의 회상적 발언이 표지의 역할을 하며 흑백 화면으로 구성된다. 이 둘이 뒤섞이는 것은 영화에서 딱 두 번 나타난다. 하나는 저주의 장본인인 사다코가 TV화면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위에 예시된 아사가와의 장면이다. 사다코의 경우 흑백의 화면에서 컬러의 세계로 빠져나와 클로즈업되는 반면, 아사가와는 컬러의 세계로부터 흑백의 화면으로 넘어가며 롱숏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5) ‘링0-버스데이’는 저주의 비디오가 태어나게 된 계기인 사다코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사다코는 어머니의 자살 이후 극단에 소속되어 연기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영적인 능력이 의지와 상관없이 발현되면서 극단은 공포에 휩싸인다. 계속되는 불길한 현상과 단원들의 죽음에 패닉에 빠진 단원들은 사다코에게 집단 린치를 가해 살해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다코가 귀신이 되어 저주가 구체적인 형태로,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 세상에 남게 되는 계기가 된다. 6) 이 장면에서 사다코가 좁디좁은 TV 브라운관으로부터 고통스레 기어 나와 천천히 두 다리로 선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머리부터 빠져나와 두 팔을 뻗는 사다코의 모습은 자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태아의 모습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고통스레 두 다리로 직립을 시도하는 모습은 인간의 성장 과정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것처럼 느껴진다.
  • 삶과 죽음의 틈에서 건진 시, 몸에 붙은 44편의 노래

    “안 맞으면 못 살아.” 혹자는 “김민정이니까 할 수 있다”고 했던 시집 제목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거기는 커서 우리는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에 대한 해명(?)이 그랬다. 거침없고 도발적인 시 세계로 알려진 김민정(44) 시인의 말이다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력 20년의 끝자락에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인은 덧붙였다. “내 문학에 대한 본령인 ‘거기’는 내가 모르는 곳이니까 작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는 세계인데 내 열망은 너무 큰 거죠. 그래서 나는 늘 시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의 책 내느라 자기 책 쓸 겨를이 없던 성공한 편집자인 시인의 책은 어느 날 느닷없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16일부터 사흘 밤낮을 앉아서 쏟아낸 덕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중편소설 써내려 가듯 쭉 쓴 다음에 시 44편으로 분절했다. 시는 지난해 10월 ‘문학동네’ 100호에 냈던 산문을 보고 김혜순(65) 시인이 보내온 문자메시지에서 기원한다. “민쟁(민정)은 이미 몸에 말이 붙어서 쓰기만 하면 다 시여.” 결국엔 스스로가 말한 시집 제목에 대한 설명처럼 ‘못 살아서’ 썼다. “문학성을 계산하기 전에,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산란스러워서 썼어요.”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2019년을 꼬박 먼저 간 이들을 기리는 데 썼다. 1년 내내 황현산 문학평론가, 박서영·배영옥·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묶었다. 허 시인의 49재와 황 평론가의 1주기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정작 본인은 슬픔을 몸으로 체화할 여유도, 겨를도 없었다. “황현산 선생님 돌아가신 날도 안 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슬펐다”는 그는 “길 가다가도 울고, 책 보다가도 울고. 그들의 아른아른거리는 것들을 일단락 짓지 않으면, 산 사람으로서의 내 생활이 안 되겠더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슬프거나 못 만나는 아쉬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잘 기억하게 하는 다음의 도모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나온 시집은 이전과는 좀 다르다. 시집으로서는 드문 페이지터너로서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특유의 가혹하고 그로테스크했던 정서는 사라졌다. 시인은 이제 ‘나’에게 천착하기보다 죽은 이들을 비롯한 주변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말을 주워 담는다. 가령 1만원도 하지 않는 양파를 가지고 퀵 서비스 기사와 벌이는 실랑이가 담긴 ‘준이의 양파’ 같은 시는 정말, 그야말로 ‘골 때린다’. ‘누나 이 중에 한 개의 무름이 있어요’(62쪽)라는 박준 시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 소동. ‘한 개의 무름은 모두를 무르게 하는 무름’이라 화자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반드시 오늘일 필요가 있겠냐’는 기사의 반문에 끝끝내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만 오늘이라고 끝내 한 번 더 대답하는 지경’(64쪽)이 된다. 양파를 둘러싼 소동만큼이나 시인이 불러 모으는 이의 스펙트럼은 더욱 넒어졌다. 중국의 여성 노동자 시인 정샤오충, 파주의 ‘교하 중국정통마사지집’에서 마사지하던 내몽골 여인 등 국경도 없고, 노소(老少)도 없다. 시인에게 지난해는 ‘죽은 사람의 스케줄 따라 다니느라 안 죽어서 다행인 해’였다. 새해는 ‘선택과 집중의 해’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나부터 직립할 거예요.” 그러나 산 사람들의 책 스케줄이 꼬박 밀려 있어 시인이 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나의 부록.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 책 첫머리에 나온 ‘시인의 말’처럼 새해에도 그의 ‘많은 사랑’은 쉼이 없을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내 문학에 대한 본령인 ‘거기’는 내가 모르는 곳이니까 작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는 세계인데 내 열망은 너무 큰 거죠. 그래서 나는 늘 시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 삶과 죽음의 틈에서 건진 시, 몸에 붙은 44편의 노래

    삶과 죽음의 틈에서 건진 시, 몸에 붙은 44편의 노래

    “안 맞으면 못 살아.” 혹자는 “김민정이니까 할 수 있다”고 했던 시집 제목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거기는 커서 우리는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에 대한 해명(?)이 그랬다. 거침없고 도발적인 시 세계로 알려진 김민정(44) 시인의 말이다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력 20년의 끝자락에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인은 덧붙였다. “내 문학에 대한 본령인 ‘거기’는 내가 모르는 곳이니까 작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는 세계인데 내 열망은 너무 큰 거죠. 그래서 나는 늘 시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남의 책 내느라 자기 책 쓸 겨를이 없던 성공한 편집자인 시인의 책은 어느 날 느닷없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16일부터 사흘 밤낮을 앉아서 쏟아낸 덕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중편소설 써내려 가듯 쭉 쓴 다음에 시 44편으로 분절했다. 시는 지난해 10월 ‘문학동네’ 100호에 냈던 산문을 보고 김혜순(65) 시인이 보내온 문자메시지에서 기원한다. “민쟁(민정)은 이미 몸에 말이 붙어서 쓰기만 하면 다 시여.” 결국엔 스스로가 말한 시집 제목에 대한 설명처럼 ‘못 살아서’ 썼다. “문학성을 계산하기 전에, 사람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산란스러워서 썼어요.”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2019년을 꼬박 먼저 간 이들을 기리는 데 썼다. 1년 내내 황현산 문학평론가, 박서영·배영옥·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묶었다. 허 시인의 49재와 황 평론가의 1주기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정작 본인은 슬픔을 몸으로 체화할 여유도, 겨를도 없었다. “황현산 선생님 돌아가신 날도 안 울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슬펐다”는 그는 “길 가다가도 울고, 책 보다가도 울고. 그들의 아른아른거리는 것들을 일단락 짓지 않으면, 산 사람으로서의 내 생활이 안 되겠더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슬프거나 못 만나는 아쉬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잘 기억하게 하는 다음의 도모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나온 시집은 이전과는 좀 다르다. 시집으로서는 드문 페이지터너로서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특유의 가혹하고 그로테스크했던 정서는 사라졌다. 시인은 이제 ‘나’에게 천착하기보다 죽은 이들을 비롯한 주변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말을 주워 담는다. 가령 1만원도 하지 않는 양파를 가지고 퀵 서비스 기사와 벌이는 실랑이가 담긴 ‘준이의 양파’ 같은 시는 정말, 그야말로 ‘골 때린다’. ‘누나 이 중에 한 개의 무름이 있어요’(62쪽)라는 박준 시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 소동. ‘한 개의 무름은 모두를 무르게 하는 무름’이라 화자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반드시 오늘일 필요가 있겠냐’는 기사의 반문에 끝끝내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만 오늘이라고 끝내 한 번 더 대답하는 지경’(64쪽)이 된다. 양파를 둘러싼 소동만큼이나 시인이 불러 모으는 이의 스펙트럼은 더욱 넒어졌다. 중국의 여성 노동자 시인 정샤오충, 파주의 ‘교하 중국정통마사지집’에서 마사지하던 내몽골 여인 등 국경도 없고, 노소(老少)도 없다. 시인에게 지난해는 ‘죽은 사람의 스케줄 따라 다니느라 안 죽어서 다행인 해’였다. 새해는 ‘선택과 집중의 해’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나부터 직립할 거예요.” 그러나 산 사람들의 책 스케줄이 꼬박 밀려 있어 시인이 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나의 부록.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 책 첫머리에 나온 ‘시인의 말’처럼 새해에도 그의 ‘많은 사랑’은 쉼이 없을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서라벌문학상에 이수명… 신인상 황인찬·천희란

    서라벌문학상에 이수명… 신인상 황인찬·천희란

    제18회 서라벌문학상에 이수명 시인이 선정됐다. 서라벌예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총동문회는 서라벌문학상 수상작으로 이 시인의 시집 ‘물류창고’(문학과지성사)를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신인상 수상작에는 황인찬 시인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창비)와 천희란 작가의 소설집 ‘영의 기원’(현대문학)이 선정됐다. 이 시인은 서울대 국문과를 거쳐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등을 썼다. 총동문회 측은 선정 이유에 대해 “일상적 대상들의 비존재성, 비결정성, 비의미성을 드러냄으로써 확정성의 세계에 대한 문제적 시각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밝혔다 신인상을 받은 황 시인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를 썼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는 “일상을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젊은 세대의 서정의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천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첫 번째 소설집 ‘영의 기원’은 “죽음의 사유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묻는 우리 시대의 독특한 우화”라는 평이다. 시상식은 18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동작구 중앙대 R&D센터에서 열리는 총동문회 정기총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10살 보트피플 ‘루’, 사라진 생명 대신한 현실의 삶은…

    10살 보트피플 ‘루’, 사라진 생명 대신한 현실의 삶은…

    ‘나는 불꽃이 터지고 빛줄기가 화환처럼 펼쳐지고 로켓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환한 하늘의 그림자에서 태어났다. 나의 탄생은 사라진 다른 생명들을 대신하는 임무를 지녔고, 나의 삶은 어머니의 삶을 이어 갈 의무를 지녔다.’(11쪽) 소녀는 1968년 베트남 전쟁 중 북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펼친 대공세 속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름에 철자 부호만 하나 다른 이름을 하고. 그러나 조국의 역사는 어머니를 이어 가야 한다는 임무에서 소녀를 떼어냈다. 불과 열 살 때였다. 소설 ‘루’는 열 살 때 베트남을 떠나 캐나다 퀘벡에 정착한 보트피플인 작가 킴 투이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의 데뷔작인 ‘루’는 출간 10년 만에 지난해 성추문으로 취소된 노벨문학상을 대신하는 뉴아카데미 문학상 최종심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다른 이주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루’는 시종일관 평온하다. 이국의 땅에서 겪는 소외감과 조국에 대한 향수보다는 지금 현실의 삶에 집중한다. 말레이시아 수용소의 2000명 난민 중 한 명으로, 분뇨 구덩이 위에서 파리들의 노래를 듣는 삶을 거쳐 소녀는 퀘벡의 작은 도시 그랜비로 간다. 그랜비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같은 정성’으로 이방인들을 품어 주었다. 베트남어로 ‘루’라는 말이 ‘자장가’라는 걸 상기해 보면 소녀에게 베트남은 이국으로 온 이들에게 삶의 고단함을 달래 주는 자장가이며 그랜비는 지나간 고통을 달래 주는 자장가다. “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는 베트남 속담 그대로 소녀는 운명을 조용히 감내하지만, 그 수동성 속에는 강함이 있다. 킴 투이는 모국어인 베트남어 대신 퀘벡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다. “베트남어는 유년기의 언어이며, 프랑스어는 글을 쓰고 사랑을 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루’와 함께 출간된 ‘만’ 역시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정착한 베트남 남자에게 시집간 베트남 여인 ‘만’이 식당을 운영하며 겪는 이야기다. ‘만’이 여러 사연을 담은 베트남 음식을 만들며 사랑을 베풀 듯 킴 투이도 언어로 그 과정을 지나오고 있는 듯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8년 이어온 ‘문화/과학’…100호 어떻게 나올 수 있었나?

    28년 이어온 ‘문화/과학’…100호 어떻게 나올 수 있었나?

    “30호를 기념해 흥국생명 13층 대회의실에서 특집 ‘이데올로기와 욕망’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2002년이었는데, 당시 진보 강연 열면 고작 10명, 20명 오던 시절이었다. 100명 정도 들어설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자리를 다 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웬걸, 꽉 채우고 모자라 바닥까지 앉아서 듣더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400명 정도가 오간 거 같다. 그날 뒤풀이 자리에만 80여명이 왔다. 급기야 열댓명이 장소를 옮겨 밤을 새워 이야길 했다. 그동안 숨겨왔던, 하강하는 것처럼 보였던 진보 좌파에 관한 관심이 지속적인 결속을 만들어냈다. 이를 계기로 맑스코뮤날레가 탄생했다.”(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의 진보적 문화 운동 연구를 주도해온 계간지 ‘문화/과학’이 2019년 겨울호로 100호를 맞는다(사진). 1992년 창간 이후 무려 28년을 달린 셈이다. 잡지 시장이 쇠락하면서, 현재는 계간지 ‘진보평론’과 함께 그나마 진보 잡지의 명맥을 이어온다.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문화/과학’ 100호 발간 기자간담회에는 1기(1~70호) 편집인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이사장과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비롯해 2기(71호~100호) 편집인 이동연 한예종 교수, 3기 공동편집인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박현선 서강대 인문한국(HK) 연구교수 등 편집인들이 모였다. ‘문화/과학’은 창간호 특집 주제인 ‘과학적 문화론을 위하여’를 시작으로 육체, 욕망, 문화공학, 문화사회, 사회미학, GNR 혁명, 문화행동, 동물문화연구, 페미니즘 2.0, 플랫폼자본주의, 인류세 등 혁신적이고 학제를 넘나드는 주제들을 선정했다. 초창기 때 특집 주제는 주로 논쟁을 통해 선정했다. 강 이사장은 “거의 매주 토요일이면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일종의 심포지엄이랄까. 무수한 논쟁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게 바로 역동성을 끌어냈다. 1기가 그렇게 특집 주제를 정하면서 70호까지 끌어갔다”면서 “다양한 주제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학술계 특유의 분과주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연 교수는 “70호를 30호 이전과 이후로 한 번 더 나눌 수 있다. 30호까지는 주로 예술, 인문 쪽이었다면 31호부터는 사회성 강한 주제를 내세웠다. 이후 2기에는 좀 더 세부적인 주제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100호까지 거쳐 간 필진만 어림잡아 1000명을 넘는다. 1000명의 지식인들은 ‘자발적’ 노동에 기꺼이 참여했다. 심 교수는 “비정규직 필자에게는 원고료를 주지만, 정규직 필자에게는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 ‘문화/과학’이 다른 잡지와 달리 ‘이론적 실천’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이론으로 실천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데에 기꺼이 동참했다. 기존 잡지와 다른 중요한 특징”이라 설명했다. ‘창작과비평’이나 ‘문학과지성’, ‘황해문화’와 같은 다른 진보적 문예지와 달리 ‘문화/과학’은 이론 연구가 아닌 실천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원동력 삼아 현실 참여의 장도 넓혀갔다. 1999년 문화운동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를 창립했다. 2003년부터는 2년마다 한국 최대의 진보좌파 학술문화 행사 ‘맑스코뮤날레’를 연다. 2007년 생태문화 코뮌주의 실천을 위해 ‘민중의 집’도 설립했다. 2015년에는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 대학을 만든다. 100호를 낸 시점에서 ‘문화/과학’의 갈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다. 심 교수는 “30년 전 사회주의가 붕괴하며 역사의 한 순환이 끝나는 시점에 새로운 순환을 준비하기 위해 창간했다”면서 “100호를 내는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해체 과정을 밟고 있다. 내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맹아들이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 100회를 내게 돼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브렉시트, 트럼프 기후협정 탈퇴, 미중 무역 전쟁 등 내년부터 신자유주의 해체가 가속하고, 문명사적인 전환기가 온다고 내다봤다. 3기를 끌어가는 이들은 다양화, 세분화를강조한다. 박현선 교수는 “전임 편집인들의 역량이나 파급력 생각하면 3기 편집위가 감당할까 사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깨도 무겁다. 지금까지 사회 전반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앞으로도 그런 흐름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전체 26명 편집인 가운데 11명이 여성인데, 3기에서는 페미니즘을 문화와 과학 속에서 찾아내고 가시화할 예정이다. 그런 점들이 문화 과학이 변모하는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광석 교수는 “70호를 기점으로 편집위원이 30명 넘게 늘어났다. 그러면서 다양한 주제를 설정할 수 있었다. 2기 때에는 책임 편집위원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편집위원이 청탁부터 원고 감수까지 하는 방식이었다”며 “3기는 책임을 좀 더 분산하는 데에 노력할 예정이다. 특집 주제를 선정하는 데에 많은 이들이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씨줄날줄] 49년 마르지 않던 샘터/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49년 마르지 않던 샘터/박록삼 논설위원

    한국의 근대는 ‘잡지의 시대’였다. 1896년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만든 ‘대조선일본유학생친목회보’를 국내 최초의 잡지로 꼽는다. 국한문 혼용체의 이 계간 잡지는 교육·국방·정치·외교·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견해와 방향을 담은 독립사상, 개화사상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도, 해방 이후에도 여러 분야와 내용의 잡지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앎에 목마른 이들에게 또 다른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고, 특정한 전문적인 분야의 식견과 깊이를 더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전쟁 중에도 잡지 발행의 맥은 끊기지 않았다. 마종기, 윤후명, 황동규, 이승훈, 최인호 등 이름 짜한 시인, 소설가를 배출한 잡지 ‘학원’도 피난 중 창간됐다. 군사독재 불의에 맞서 시대의 어둠을 밝힌 잡지 ‘사상계’의 시작도 한국전쟁 중이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른 1980년대가 잡지의 암흑기였다. 신군부는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뿌리깊은나무’ 등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잡지들을 줄줄이 폐간시켰다. 출판사와 작가들은 1980년 ‘실천문학’처럼 정기간행물이 아닌 ‘무크’(매거진+북) 운동으로 양심과 지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세상 물정 몰랐던 어린이들이야 ‘어깨동무’, ‘소년중앙’, ‘소년경향’ 등을 보며 키득대던 시절이었다. 1970년 4월 창간된 월간 ‘샘터’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도 독야청청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창간 당시 가격은 100원. 담뱃값보다 싸야 한다는 발행인 김재순(전 국회의장)의 고집이 반영됐다. 그리고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쉼 없이 49년 동안 샘터는 퍼올려졌다. ‘샘터’에는 피천득,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정채봉, 장영희 등 글쟁이 명사들의 편안한 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지면을 기꺼이 내줬다. 당연히 정치와 이념 같은 골치 아픈 얘기는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이웃의 삶과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내용이었다. 남들의 삶도 자신과 다르지 않음에 위로받았고, 큰 불행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의지에 눈물 훔치며 격려했다. ‘샘터’ 정기구독권은 좋은 이에게 슬며시 전하는 마음의 선물이기도 했다. 40대 이상의 나이라면 ‘샘터’와 얽힌 추억 한 자락 없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일상 속 감사, 행복 등 긍정 에너지를 퍼나르던 ‘샘터’가 오는 12월호 598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한다. 계속 쌓여 가는 적자 구조를 더는 버티기 어렵게 된 탓이다.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실상 폐간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벌써 허전하다. 늘 곁에 있어 소중함 느끼지 못했던 친구가 멀리 떠나는 느낌이다. youngtan@seoul.co.kr
  • 40년 만에 제출한 나의 ‘청춘 반성문’

    40년 만에 제출한 나의 ‘청춘 반성문’

    어느덧 청춘을 회고하는 일에는 공감이 뒤따르기 힘들어졌다. 동년배가 아니고서야. “우리 땐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스러운 시선이거나 아니면 “지나고 보니 좋았더라” 하는 식의 무대책과 낭만이 범벅이 되니까. 그런데 은희경이라서 모종의 기대가 일었다. 그라면 적어도 그 시절을 마냥 아련하게는 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소설가 은희경이 가진 대표 수식어가 ‘세상에 대한 냉소’ 아니었던가. ‘냉소의 아이콘’ 은희경(60) 작가는 실은 ‘은블리’였다. 신작 장편 ‘빛의 과거’(문학과지성사) 출간에 부쳐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꽃무늬 블라우스에 테니스 스커트, 하이힐 차림이었다. 웃을 때마다 나풀거리는 짧은 웨이브 머리가 발랄했다. ‘빛의 과거’는 2017년의 ‘나’가 작가인 오랜 친구 희진의 소설을 읽으며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학 기숙사는 서울과 지방, 계급과 젠더 의식 등 여러 ‘다름’이 처음으로 섞이는, 다소간 폭력적인 공간이다. 이는 1977년 숙명여대 국문과에 입학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는 왜 지금에 와서 1977년을 소환했을까. “그 전까지는 주어진 조건으로 살아오다가 20대부터는 스스로를 프로그래밍하잖아요? 그때의 첫 경험, 첫 만남들이 굉장한 에너지로 사람 몸에 프로그래밍돼서 오늘의 내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때의 내 모습을 지금에 와서 객관적으로 보는 게, 지금의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과 같은 의미더라고요.” 소설에서는 322호와 417호에 살던 8명의 룸메이트 중 하나인 ‘나’(유경)의 서술과 희진의 소설, 1977년과 2017년이 60페이지 안팎으로 교차한다. 1977년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기억을 교차시켜 그 시절을 명료하게 그리기 위함이다. 소설에는 1970년대 대학가 젠더 담론을 알 수 있는 케이트 밀릿의 ‘성의 정치학’이 등장한다. ‘섹스는 사실 남성이 지배자이고 여성은 피지배자임을 확인시켜 주는 정치 행위’임을 역설하는 책은 미국의 페미니즘 붐을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강사들을 중심으로 대학가에 널리 퍼졌다. “선진 이데올로기이니까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걸 우리 현실에 맞춰서 권리 주장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소설을 준비하면서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걸 접했을 땐 비감이랄까, 나의 방관과 도피도 이런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싸우지 않고 회피했던 것들과 아직도 젊은이들이 싸우고 있어요.” 소설은 그 시절을 지낸 기성세대의 반성문이라고 그는 여러 차례 말했다. 그래서 작가의 소설은 냉소보다는 객관에 가까워 보인다. 부러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보다 정확하게 보려는 시선 같은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유경의 반성이 그렇다. ‘나의 결혼은 길거리 헌팅과 비슷하게 절차를 무시한 타인의 행동력에 의해서 결정되었다.(중략)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181쪽) “제가 지향하는 건 정확하고 건조한 문장이에요. 적실하게 묘사하기를 좋아하고요. 저는 절대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휴머니스트예요. 객관적으로 말하려는 사람은 되게 많이 관찰하고 생각한 사람일 텐데,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면 그렇게 하겠어요.” ‘냉소’라는 평에 대한 그의 귀여운 항변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환갑인 작가의 객관을 지탱하는 힘은 뭘까. “역지사지를 많이 해요. 저도 무슨 사건이 나면 제가 속한 집단의 입장이 맨 먼저 생각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동시대인인데 자꾸 옛날 생각으로 보면 안 되죠. 몸도 중력 반대 방향으로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정신도 침잠물이 생기지 않도록 자꾸 섞어야 해요.” 비법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는 후배 작가들의 신작에 제일 먼저 코멘트를 하는 선배다. 트위터 중독이고.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미래를 담보 삼아… 주식처럼 돌아가는 과학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미래를 담보 삼아… 주식처럼 돌아가는 과학

    1965년 한 잡지에 실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만화는 당시 상상했던 미래 생활상을 묘사한다. TV로 뉴스를 보고 소형 전화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놀랄 만큼 지금의 모습과 닮았다. 한편 달나라 수학여행은 실현되지 않았고, 청소로봇은 아직 납작한 원반 모양일 뿐 그럴싸한 인간형 본체를 갖추지 못했다. 이 만화는 인터넷에서 꽤 화제가 됐는데 21세기의 생활상을 거의 완벽하게 예측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20년을 맞이한 지금도 사람들은 일종의 ‘과학상상화’를 그려 보곤 한다. 이를테면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이 이끄는 미래의 모습을. 미래 예측은 학문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이처럼 범람하는 미래 담론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제시한다. 과학기술학자 전치형, 홍성욱의 공동 강의에서 출발한 이 책은 분명한 미래 예측 대신 ‘미래의 모호함’을 화두로 던진다. 미래는 정말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이곳에 도래하는 것일까?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기술에 기반한 미래상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의 미래 예측들을 분석해 보면 예측이 들어맞기도 매우 어려울뿐더러 예측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객관적 판단 역시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난다. 신기술의 혁신적인 특성상 그 등장을 예측하기는 어렵고, 반대로 기술의 실패에도 늘 생각하지 못한 엉뚱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미래 예측은 끊임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의 기대와 낙관을 끌어들이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과학기술 활동을 바꾸고 있다. 저자들은 ‘약속의 과학’이 학계와 시장에서 미래에 대한 약속을 퍼뜨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연구의 결과로 얻을 가능성, 편리, 건강 등을 제시하며 기대를 부풀리고, 그것이 실패하면 다른 영역으로 옮겨 가면서 과학 활동이 마치 주식시장처럼 돌아가게 된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미래학이 말하는 낙관대로 미래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누구의 것이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묻는 일이다. 자본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미래가 아니라 “문제투성이 현재와 불편한 미래를 포용하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연대를 만들어 내는 시민들”의 미래를 상상할 때 비로소 우리가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신중한 통찰이다.
  • [책꽂이]

    [책꽂이]

    동정에 대하여(안토니오 프레테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펴냄) 문학과 예술 작품에 나타난 동정이라는 감정의 역사를 추적한 인문 비평서. 문학 비평가인 저자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학사를 관통하는 동정의 서사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심도 있게 추적하고, 그 고통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촉발되는 감정의 다양한 양태를 파헤친다. 384쪽. 2만 2000원.프랑스 엄마의 힘(유복렬 지음, 황소북스 펴냄)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 7년 2개월, 외교관 생활 6년 6개월을 보낸 20년 베테랑 엄마가 프랑스를 이끄는 엄마들의 저력을 분석했다. 대다수 엄마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 때문에 별도로 ‘워킹맘’, ‘직장맘’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 프랑스. 그곳 엄마들의 가장 큰 힘은 사회 정의와 질서, 나의 자유를 동시에 수호하는 ‘투쟁’ 정신이다. 271쪽. 1만 4800원.연대기(한유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적 실험을 거듭하며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같은 시공을 살아간다는 사실뿐이지만, 바로 그것이 가장 확실한 연대의 조건이 아니냐고 작가는 되묻는다. 단어와 문장이 반복, 나열, 부정, 역전을 거듭하면서 온전한 의미에 가닿으려는 노력을 이어 간다. 228쪽. 1만 3000원.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로웅 웅 지음, 이승숙·장미란 옮김, 평화를품은책 펴냄) 앙코르와트로 대표되는 찬란한 문화유산과 함께 20세기 가장 참혹한 학살극인 ‘킬링필드’가 공존하는 국가 캄보디아. 순진무구한 어린 캄보디아 소녀의 목소리로 국가 폭력에 희생된 개인의 내면과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회고록이다. 2017년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416쪽. 1만 5800원.여행은 차로 하는 거야(박성원 지음, 몽스북 펴냄) 10년간 전 세계 99개국, 미국 50개 주 중 49개 주를 렌터카로 여행한 5인 가족의 이야기. 여행은 투명인간이던 가정 내 아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아이들에겐 다름을 인식하고 현명하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학습의 장이다. 504쪽. 1만 7500원.유시민, 이재명(김인성 지음, 홀로깨달음 펴냄) 디지털 범죄 수사 전문가인 저자가 지난 10년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유시민, 이재명을 분석했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보도자료, 법원 제출용 의견서, 조사보고서 등을 배치해 두 정치인에 대한 검증을 시도했다. 320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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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칠, 끝없는 투쟁(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돌베개 펴냄) 독일인으로 태어나 영국으로 망명, 언론인으로 일했던 저자가 독일을 잿더미 속으로 밀어넣은 전쟁 영웅 처칠의 일대기를 그렸다. 1940~1941년 처칠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거대 게르만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고 상찬하는 한편, 처칠이 기실 파시스트에 가깝고 정치인으로서는 네빌 체임벌린보다 하수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한다. 336쪽. 1만 6000원.첨성대의 건축학적 수수께끼(김장훈 지음, 동아시아 펴냄) 첨성대는 천문관측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과연 그곳에서 어떻게 하늘을 관측했을지 의문이 무수히 제기돼 왔다. 김장훈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옛 문헌 기록과 실측도·복원도를 실어 얼개와 기울기 등 첨성태의 건축 양식을 탐구했다. 240쪽. 1만 6000원.작가라서(파리 리뷰 엮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 1953년 창간한 미국의 문학 잡지 ‘파리 리뷰’가 작가 303명을 인터뷰해 얻은 919개의 생각을 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귄터 그라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대문호들이 어디에서 제목을 떠올리는지, 어떻게 원고를 퇴고하고 슬럼프를 극복하는지 그들의 작업 방식과 감성,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616쪽. 2만 6500원.불평등의 세대(이철승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계급 대신 세대라는 틀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한 저작.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386세대가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독점해 온 과정과 그로 인해 어떻게 세대 간 불평등을 야기해 왔는지를 다양한 데이터 분석으로써 드러냈다. 361쪽. 1만 7000원.두 얼굴의 법원(권석천 지음, 창비 펴냄)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사법농단 심층 기록.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의 베일을 벗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탄희 전 판사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법조기자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취재원의 증언, 재판 취재 등을 통해 사법농단은 몇몇 인물들의 일탈 때문이 아니라 대법원장 중심의 법원 시스템에서 파생된 것임을 역설한다. 420쪽. 1만 8000원.1945(배삼식 지음, 민음사 펴냄) 식민지 시대의 절망과 혼란을 담은 희곡 2편을 담은 희곡집. 해방 후,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머물렀던 전재민 구제소를 배경으로 민족과 국가 바깥으로 밀려났던 이들의 귀환 스토리를 곡진하게 담아냈다. 232쪽. 1만 3000원.
  • 문학과지성사 새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 출간

    문학과지성사 새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 출간

    문학과지성사의 새 산문 시리즈 ‘문지 에크리’가 출간됐다. 첫 출간분은 고 김현(1942~1990) 문학평론가의 ‘사라짐, 맺힘’, 김혜순(65) 시인의 ‘여자짐승아시아하기’, 김소연(52) 시인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이광호(56) 문학평론가의 ‘너는 우연한 고양이’ 네 권이다. ‘에크리’란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쓰다’라는 뜻이다. 작가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최대한 자유로운 방식으로 구현한다는 취지다. 문학과지성사의 창립자이기도 한 고 김현 평론가는 문학 비평을 넘어 일상의 언어로 영화·음악·여행 등을 기술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캐나다의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은 ‘페미니즘이 시와 만났을 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김소연 시인은 사랑을 명사가 아닌 동사형으로 이해하며 사랑의 유동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시도를 이어 가며,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이광호 평론가는 고양이의 매혹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문지 에크리’는 이제니·나희덕·진은영·이장욱 시인과 소설가 정영문·한유주·정지돈 등의 산문집으로 이어진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그 작가의 북캉스는 [   ]다

    그 작가의 북캉스는 [   ]다

    바야흐로 여름 바캉스 ‘극성수기’ 시즌이다. 해마다 요맘때 꼼짝 말고 출근하는 것이 되레 시원하다고들 하지만, 또 마음은 어디 그러한가. 더우면 짜증이 나고, 짜증 나면 ‘지금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소설을 읽는 일은 제일 저렴하게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휴가를 가는 이에게는 이중삼중의 여행을 즐기시라는 의미에서, 휴가를 안 가는(또는 못 가는) 이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지금 이곳을 잊으시라는 의미에서 소설을 물색했다.극성수기만큼 독자들이 열광하는 소설가 8인이 ‘여름 휴가에 가져갈 책’을 꼽아주었다. 의례적인 추천이 아닌, 실제로 여행가방에 넣을 책으로 말해 달라고 했다. ‘스릴러퀸’ 정유정은 최고의 좀비 소설을, ‘문단 아이돌’ 박상영은 뜻밖에 고전을 골랐다. 이외 신인 작가의 최신작부터 SF, 무더위를 날릴 범죄 스릴러까지 이야기의 바다가 펼쳐질 만하다. 이것이 김금희·김봉곤·김연수·김초엽·박상영·장강명·정유정·편혜영 작가(가나다 순)의 캐리어, 혹은 머리맡에 놓일 책들이다.김금희 이번 휴가는 동네와 가까운 곳으로 갈 예정이다. 공원이나 야외 수영장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묻는 윤성희의 새 장편소설 ‘상냥한 사람’(창비)을 읽는 것이다. 윤성희 소설에서 나는 가장 멋쩍고 심드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목에서조차 삶의 상냥한 위안을 발견해왔으므로 충분히 환한 날들이리라 생각한다. 먼 곳을 다녀오지 않아도 긴 휴식을 하다 돌아온 사람처럼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당연히 더 깊어져 있을 것이다. 김봉곤 최은미의 소설과 잘 연결되지 않는 계절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여름이었다. 낙하하거나 쓸쓸하거나 얼어붙게 만드는 소설들. 하지만 ‘아홉번째 파도’(문학동네)에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해 뜨거움과 물기 역시 가득하다. 어제는 없었고 내일은 없을 듯 흥청흥청한 여름. 의외로 여름은 여름 아닌 계절을 생각하기에 좋은 계절이며, 어쩌면 바캉스는 내게도, 너에게도 ‘비어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채우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바로 이 소설이 여름과 바캉스, 그 자체로 느껴진다. 김연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2’(민음사)를 읽을 예정이다. 몇 년 만에 새 작품인지 모르겠다. 테드 창의 ‘숨’(엘리)도 오랜만의 신작이었는데 좋았다. 포어 역시 늘 다음 작품이 궁금했던 우리 시대 작가라 기대가 크다. 김초엽 휴가지에서는 역시 밀실 살인사건이다. 그냥 밀실이 식상하다면 우주선이 나오는 무르 래퍼티의 ‘식스 웨이크’(아작)를 추천한다. 고립된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 승무원 마리아는 공중에 둥둥 떠있는 동료들과 자신의 시체를 목격한다. 대체 누가 ‘나’를 죽였을까? 승객들은 모두 냉동 수면 중이고, 범인은 우리 중에 있다. 복제인간이 보편화한 미래에 벌어지는 밀실 추리게임은 상당히 혼란스럽고, 아주 재미있다. 박상영 유대계 러시아인, 미혼모 가정, 가난…. 로맹 가리와 어머니, 둘뿐인 가정은 프랑스 사회에서 온갖 사회적 마이너리티로 점철돼 있다. 로맹 가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새벽의 약속’(문학과지성사)은,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꿈을 불어넣고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유머러스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낄낄 웃으며 화자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상처와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야말로 로맹 가리적인, 로맹 가리만이 쓸 수 있는 소설. 장강명 아내와 7박 8일로 몽골로 떠난다. 몸과 마음 모두 최대한 21세기 한국에서 멀어지고 싶다. 고비 사막의 별 아래서 읽을 책으로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노블마인) 시리즈를 골랐다. 옛 소련을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물이다. 평이 엄청 좋고, 박산호 번역가의 추천도 믿는다. 1~3권을 합하면 1500쪽이 넘지만 나는 전자책으로 볼 예정이라 짐 부담은 없다. 정유정 독자의 기대를 배반할 때 소설은 존재를 드러낸다. 전형적인 좀비 소설이 아니라는 단언에도, 숨 막히는 열기를 식혀주기를 기대하며 콜슨 화이트헤드의 ‘제1구역’(은행나무)을 펼치면, 그렇다. 핏빛 좀비들에게 쫓기며 유혈이 낭자한 길을 달리는 대신,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망령 같은 기억의 구조물과 마주 서게 된다. 다만 그 기억이 서늘함을 자아낸다는 것이 여름에 읽는 이 소설의 미덕. 편혜영 휴가 때는 대개 세 권 정도 챙긴다. 한 권은 장편, 두 권은 단편 소설집으로. 장편은 다시 읽으려고 벼르던 고전으로 고른다. 올해는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문학동네)이다. 단편소설집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발표 당시 이미 다 읽은 소설이지만, 유머와 슬픔을 넘나드는지라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나머지 한 권은 신인 작가 임승훈의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문학동네). 휴가는 그게 어디든 지구 밖으로 떠나는 기분일 테니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소멸·죽음에 대한 선험적 생각이 시인의 감수성”

    “소멸·죽음에 대한 선험적 생각이 시인의 감수성”

    “시상식장, 낭독회장에 관객 1000여명이 있었는데 모두 백인들이었어요. 번역자와 저만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너무 놀라서….” 2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혜순(64) 시인은 수상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시인은 지난 6일(현지시간) 아시아 여성 최초로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을 영역한 최돈미(57) 시인과 함께였다. 수상작인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은 2015년,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삼차신경통’을 앓았던 시인이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죽음 속에서 써내려 간 49편의 시를 모은 책이다. 그는 “시라는 것, 시인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인 생각이라고 본다”면서 자신의 시집을 “죽은 자의 죽음을 쓴 것이라기보다는 산 자로서의 죽음을 쓴 것”이라고 했다. “아마 심사위원들도 그런 상황들이 있었으니까, 그런 시적 감수성이 그들에게 닿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소감을 던졌다. 49편 중 시인은 ‘저녁메뉴’라는 시가 가장 아프다고 했다. “그 시에는 엄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요.” 수상 소감에서도 어머니를 언급했던 시인은 며칠 전, 모친상을 당했다. ‘한국 시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시인은 페미니즘 담론이 나오기 이전부터 여성의 목소리에 천착해 시를 썼다. 그는 여성들의 몸짓을 얘기할 때 ‘시하다’, ‘새하다’처럼 ‘하다’라는 동사를 붙인 신조어를 만들어 썼다. 그는 “관념과 사물을 동일시하는 유사성의 원리보다, 여성들이 시 안에서 움직이고 말하는 걸 많이 봐 왔다”며 “‘되다’라는 은유에서 느껴지는 폭력적인 힘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하다’라는 용어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올해 시력 40년을 맞았다. 그간의 소회를 묻자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시인은 “여러분이나 저나 당면한 오늘을 바라보고, 당면한 한국 사회 문제들 속에서 사유하게 돌아볼 시간은 많지 않다”고 에둘러 답했다. 돌아볼 시간조차 아까운 시인은 새달 초 신작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여성詩 최전선 지킨 김혜순… 그의 목소리, 세계 보편이 되다

    여성詩 최전선 지킨 김혜순… 그의 목소리, 세계 보편이 되다

    투병생활·세월호·메르스 다룬 시 49편 시집 영역 최돈미 번역가와 함께 수상 “영혼이 우리 곁 떠나는 고통 담아” 평가 1979년 등단… 매번 ‘시의 정치성’ 발현 “국가 도움 못 받은 영혼들에 영광” 소감‘아직 죽지 않아서 부끄럽지 않냐고 매년 매달 저 무덤들에서 저 저잣거리에서 질문이 솟아오르는 나라에서, 이토록 억울한 죽음이 수많은 나라에서 시를 쓴다는 것/중략/ 이 시를 쓰는 동안 무지무지 아팠다.’ 김혜순(64) 시인은 지난 2016년 출간한 시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에 이렇게 썼다. 2015년,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경험을 한 시인은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삼차신경통’이라는 사적인 고통과, 세월호·메르스의 참상 속에서 49편의 시를 써내려 갔다. 그렇게 씌어진 시는 지난 6일(현지시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을 영역한 최돈미(번역가) 시인과 함께다.그리핀 시 문학상은 캐나다의 기업가이자 독립문학 출판사인 아난시 프레스의 대표 스콧 그리핀이 시 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2000년에 설립했다. 자국인 캐나다 부문과 국제 부문으로 나눠 수여되며 영어권에서는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캐나다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는 등 큰 영예로 여겨진다. 한국에서는 고은 시인이 2008년 공로상을, 한국계 미국 시인 수지 곽 김이 2014년에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이 있지만 본상 수상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죽음의 자서전’은 ‘2019 펜 아메리카 문학상’ 해외 번역시 부문에서도 결선에 오른 바 있다. 그리핀상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덴마크 시인 울리카 게르네스는 “영혼이 우리의 곁을 떠나는 고통스러운 49일 간의 여정을 49편의 시에 담아낸 역작”이라고 평했다. 김 시인은 ‘시인이 간 자리가 한국 시의 최전선’이라는 평가를 듣는 인물이다.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이래 시인은 매번 ‘시의 정치성’에 바투 다가섰다. 1980년대 군부 독재 시대에는 ‘장검 대신 깡통 차고 늠름하게 펄럭’이는 허수아비를 비웃었고(‘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중), 한국문학에서 남성에 비해 늘 차별과 혐오, 폭력과 소외 상태에 노출 되어온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시를 썼다. 그는 자신의 시 창작을 ‘시쓴다’고 하지 않고, ‘시한다’고 한다. ‘내 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시한다’는 것은, 내가 내 안에서 내 몸인 여자를 찾아 헤매고, 꺼내놓으려는 지난한 출산 행위와 다름이 없다.’(시론집 ‘여성, 시하다’ 중) 시인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나오기도 전에 여성적 글쓰기, 저항적 글쓰기를 이어나간 페미니스트였다. 그리핀상 수상작 ‘죽음의 자서전’에서 시인은 세월호, 메르스 등에 대한 직접적 거명 없이도 그들 참사를 환기시킨다. ‘너는 언니다. 동생을 기른다/(중략)/동생의 시신을 바다에서 찾았습니다만/너는 네 시신을 찾았대 동생에게 말해준다/그러고도 같이 산다 꿈도 대신 꿔주고 친구도 만들어준다/동생의 시신을 확인하고 와서도/동생이 바다에 가라앉는 꿈을 꾼다’(시 ‘동명이인’ 중) 김 시인은 계간 ‘문학동네’ 2016년 여름호에서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에게서 ‘아이’나 ‘바다’ 같은 단어는 아직도 은유가 되지 않는다”며 “단어들의 영토성이 줄어버렸다”고 했다. 시집 해설을 썼던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세월호 같은 비극을 재현하면서 그 비극 자체가 소모될 수도 있는데 김 시인의 작품에는 감정의 조장이나 드라마적 요인이 완벽하게 제거되어 있다”며 “이러한 일들을 외부의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고 ‘너’라는 인칭을 통해 함께 겪는 일임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시인이 12권의 시집을 낸 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김혜순의 시는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층위의 죽음이 시인의 몸으로 들어와 아픈 여성의 몸을 통해 발화한 것”이라며 “이번 수상은 한국 문학 속 여성의 목소리가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인의 그리핀상 수상 소감은 이것이었다. “오늘은 한국의 현충일입니다.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많은 불쌍한 영혼들에게 이 수상의 영광을 드릴게요.” 등단 40년을 맞는 현재도, 시의 정치성 한복판을 가장 치열하게 통과하고 있는 시인다운 소감이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혜순 시인,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김혜순 시인,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 ‘그리핀 시 문학상’(The Griffin Poetry Prize 2019) 국제 부문에 김혜순(64)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이 선정됐다. 그리핀 재단은 6일(현지시간) 김 시인과 이를 영어로 번역한 최돈미 작가가 ‘더 그리핀 포이트리 프라이즈 2019’ 국제부문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부문에는 이브 조셉의 ‘말다툼’(Quarrels)이 선정됐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6만 5000 캐나다 달러(570만원)가 지급된다. 시집 ‘죽음의 자서전’은 2015년 ‘삼차신경통’이라는 온몸이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고통을 겪었던 시인이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옳겨 다니는 이중의 고통 속에서 써내려 간 49편의 시다. 김 시인은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이래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등을 냈다. 그의 시는 언어적 실험을 통해 여성의 존재 방식과 경험을 사유한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한 디지털 시대… 가짜와 진짜 사이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한 디지털 시대… 가짜와 진짜 사이

    ‘축음기영화타자기’(문학과지성사)에서 저자 키틀러는 단언한다.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매체학자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의 말을 쉽게 넘겨버릴 수가 없다. 그간 기술 매체들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도구라고 여겨 왔으니까. 한데 그것이 우리의 존재 양식 자체를 틀 짓는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니. 그런 사례 중 대표적인 매체로 키틀러는 19세기 후반의 발명품인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든다. 기존에는 문자로만 저장되던 정보를 각각 음향, 광학, 텍스트로 나누어 처리하게 되면서 인간의 감각 체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아날로그 매체뿐 아니라 디지털화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변조, 변환, 동기화. 느리게 하기, 저장하기, 전환하기. 혼합화, 스캐닝, 매핑. 이렇게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매체연합이 매체 개념 자체를 흡수한다. 기술이 사람들에게 연결되는 대신, 절대적 지식이 끝없는 순환 루프로서 돌아간다.” 이 책이 출간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키틀러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에게도 디지털화는 탐구 대상이었다. 이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그는 영화 ‘논-픽션’으로 내놓았다. 사실 키틀러의 매체론 연구와 비교하면 이 작품은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정교한 관점, 치밀한 논증, 충격적 반향이 부족해서다. 그렇지만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와 ‘퍼스널 쇼퍼’ 등의 수작을 만든 감독의 신작인 만큼 ‘논-픽션’도 근사한 매력이 있긴 하다. 출판인, 작가, 마케터, 배우, 비서관이 서로 얽혀 나누는 지적인 대화는 물론 각각의 에피소드가 결합해 빚어내는 아이러니한 유머는 관객에게 충분하진 않아도 괜찮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오디오북에 참여할 스타로 쥘리에트 비노슈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셀레나(쥘리에트 비노슈)가 끼어드는 장면은 좀 지나치다 싶지만 말이다. 감독이 뭘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는 알겠다. 이는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 논픽션, 다시 말해 사실·허구의 구분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이쯤에서 ‘논-픽션’의 원제목이 ‘이중생활’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직업 활동 외에 비밀스러운 사적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한마디로 불륜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누가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 다만 나는 이들의 직업 활동과 사적 생활이 논픽션처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더불어 이것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변형시키는, 혹은 애초에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삶의 디지털화가 이미 한창 진행 중이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했다. 디지털화라는 물살에 일찌감치 올라탄 한국인들에게는 좀 심심한 전언이긴 해도.
  • 느닷없는 삶의 함정… 소년은 늙기 쉽다

    느닷없는 삶의 함정… 소년은 늙기 쉽다

    소년이로/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256쪽/1만 3000원소년이로. 주자의 문집에 수록된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의 ‘소년이로’다. ‘소년은 늙기 쉬운데 학문을 익히는 것은 어렵다’는 뜻에서 ‘소년은 늙기 쉽다’만 남았다. 늙은 소년은 무엇이 될까, 그 자체로 어른이라 부를 수 있을까.편혜영 작가의 열 번째 책이자 다섯 번째 소설집 ‘소년이로’에는 느닷없이 함정에 빠진 늙은 소년들이 등장한다. 성실히 일했을 뿐인데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원더박스’, ‘식물 애호’), 용량대로 제초제를 사용했지만 왜인지 마당은 엉망이 되어버린다(‘잔디’). 상상도 못한 일 앞에서 누구나 그렇듯 소설 속 인물들은 당황하고, 더러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그러다 결국 하나의 질문에 집착하기에 이른다. 대체 누구 잘못이냐고, 누구의 잘못으로 내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냐고. ‘돌아갈 곳을 잃었다. 지금 잃은 건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나면서 잃었다.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모든 걸 결국 잃게 될 줄도 모르고 애써 달려온 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99쪽, ‘식물 애호’) 소설이 말하는 삶의 불가해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관계가 장모, 장인과 사위다. 이들은 부부의 부산물로 생겨난 관계로,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관계다. 이들을 이어주는 단 하나의 존재인 아내 혹은 딸이 부재할 때, 이들은 걷잡을 수 없이 어색하고 더이상 체면치레할 이유가 없는 이가 된다. 차 사고로 딸은 죽고 홀로 살아 돌아온 사위를 돌보는 장모는 부부가 함께 번 돈을 무람하게 사용하고(‘식물 애호’), 무능하다고 구박을 받던 사위는 치매로 전쟁 놀이에 빠진 장인의 상사로 군림한다(‘다음 손님’). 이런 불가해한 일들은 남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데 누굴 설득시키겠는가. ‘잔디’에서 설명서에 따라 제초제를 사용했지만 잔디가 엉망이 된 것에 대해 항변하는 부부의 근거는 얼마나 취약한가. 제조사 소비자 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남편은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남들에게는 코웃음을 유발하는 상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출판사 측의 ‘한국형 서스펜스의 최선두’라는 카피는 그래서 이해가 된다. 블록버스터는 멀리 있고, 생활 밀착형 공포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더없이 가까웠던 관계가 무너져내리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이 모든 것의 시작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일 같다. ‘수만의 탓이 아니었다. 그러나 편리하게 김의 탓이라고 떠넘길 수 없었다. 연민이 드는 가운데 누구도 잘못한 게 없다면, 자신이 전적으로 피해자라고 여긴다면, 바로 그 때문에 수만에게 잘못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원더박스, 113쪽) 편혜영표 한국형 서스펜스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중이다. ‘식물 애호’는 2017년 미국의 문예 주간지 뉴요커에 실리며 ‘금주의 소설’로 선정됐다. 2017년에는 장편소설 ‘홀’로 셜리 잭슨상을 받으며 미국 문학 시장에서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증명한 바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오후의기타(김종구 지음, 필라북스 펴냄) 흔히 기타를 치기는 쉬워도 잘 치기는 어려운 악기라고 한다. 작은 음량 때문에 쉽게 다른 악기와 합주를 이루기 어려운 기타는 사실 참 개인주의적인 악기다. 기자 출신의 저자는 10년간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실제 무대에 오르기까지 함께한 삶을 흥미진진하게 풀어 냈다. 308쪽. 1만 5000원.너와 나의 5·18(김정인·김정한·은우근·정문영·한순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대학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5·18 관련 교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 5·18기념재단이 기획한 책이다. 책은 4부 13장으로, 한 학기 15주 수업용으로 활용할 수 있게 구성됐다. 496쪽. 2만 6000원.중국을 사랑한 남자(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 조지프 니넘의 평전이다. 현대 문명의 기념비적 역작인 ‘중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의 탄생 과정과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넘의 비범한 삶을 조명한다. 472쪽. 2만 2000원.진짜 이야기를 쓰다(하버드대학 니먼재단 기획, 마크 크레이머·웬디 콜 엮음, 알렙 펴냄) 사실보도 위주의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대안으로 제시된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실제 경험과 조언이 담겨 있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이 어떻게 세상의 진실을 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640쪽. 2만 6000원.버지니아 울프 북클럽(이택광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사람들은 페미니즘의 상징과도 같은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울프의 소설은 읽기가 어렵고 배경지식이 없으면 더욱 난해하다. 이 책은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울프의 대표작을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다. 264쪽. 1만 5000원.눈물들(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비올라 다 감바 거장 생트 콜롱브를 재조명하는 등 신화나 역사에서 망각된 인물을 찾아온 파스칼 키냐르가 다시 멋진 옛 이야기를 선보인다. 역사상 첫 프랑스어 문서인 스타르부르 조약을 기록한 역사가 나타르와 그의 쌍둥이 형 아르트니를 통해 언어의 탄생을 조명한다. 272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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