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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윤대녕·시인 이성복 ‘살가운 산문집’ 출간

    소설가 윤대녕·시인 이성복 ‘살가운 산문집’ 출간

    문학의 위무가 더욱 절실해진 궁핍의 시대, 두 작가가 나란히 산문으로 위무의 발언을 했다. 이성복(52)시인의 사진에세이 ‘오름 오르다’(현대문학 펴냄)와 소설가 윤대녕(42)의 연작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사람’(이룸 펴냄). 녹록한 한담을 가장했으나, 곤고한 생을 달래 주는 화법들이 두 작가 모두 독특하고도 살갑다. ■ 윤대녕 “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란 무릇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간다.” 들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신통하고도 빛바랜 그 언표를 작가 윤대녕도 문득 꺼냈다. 청춘을 장식했던 열두 번의 만남을 작가는 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속으로 일제히 소환했다. 여성성마저 환기시키는 작가의 섬세한 시적 글쓰기가 또 한번 힘을 발휘하는 글모음이다. 책은 모두 열두 편의 짧은 산문으로 묶였다. 제목 속의 ‘옆 사람’은 화자인 ‘나’인 셈이다. 지나간 시간 속에 ‘나’는 머물러 있고 그 곁으로 열두 명의 여자들이 서로 다른 빛깔의 열정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까 ‘나’와 기억에서 불려나온 연인이 매번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연작인 셈이다. 한 줄의 서문도 걸치지 않고 곧바로 소개되는 첫번째 글 ‘푸른 비단에 싸인 밤’에서부터 독자들은 몽환적 감성에 잠길 만하다. 인터넷 오디오 파일 동호회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알게 된 스물여섯살의 여자와 ‘나’는 우여곡절 끝에 만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쳤던 사랑의 기억들을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산문들에는 작가의 자전적 글쓰기 흔적이 여실하다.10년 전 다니던 치과의 간호사로 늘 허름한 밥집에서 오동나무 밥상을 마주했던 그녀(‘스물세개의 계단으로 오는 가을’), 가난했던 대학시절 곧잘 술을 사주던 동창생 그녀(‘나의 하이네켄 스토리’), 독자로 만났으나 자신의 사연을 소설로 써주길 바랐던 그녀(‘쥐와 장미’)…. 줄이어 등장하는 사랑이야기 가운데 몇편은 모르긴 해도 작가가 한때 며칠밤을 신열로 보냈을 내밀한 사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불 같은 격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짧은 콩트 형식의 산문들을 통해 “사랑만이, 관계만이 희망이며 유효기간이 없는 삶의 동력”이라 외치는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사연들을 오버랩시켜 감상을 마무리짓게 이끈다. 작가의 연애관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덤이다.“사랑은 비와 같아서 하늘이 알아서 퍼부어줄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윤희하원’) 9700원. ■ 이성복 “가난은 조금 나았다가는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이성복 시인의 새 산문집 ‘오름 오르다’는 매우 독특한 질감이다. 소재부터 낯설어 더 흥미롭다.‘오름’은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제주의 산(山). 고집스럽게 오름을 찍어온 작가 고남수씨의 흑백 오름사진들을 통해 시인은 시적 영감을 이끌어냈다. 흑백사진 속에 둥근 선의 추상으로 들어앉은 오름들. 그들에게서 생의 이치를 은유로 뽑아내는 시인의 감식안은 서늘하도록 날카롭다. 예컨대 솟아오른 잿빛 봉분 앞에서 시인은 ‘시간의 부활’을 읽어낸다.“언제나 현재의 뒤안에서, 딱딱한 사물의 주검을 덮고 있다가, 재생의 빛깔인 잿빛을 띠고, 어떤 한숨보다 나즉히 잊혀진 사물의 목소리로 되살아나는 과거가 되기 위해, 현재는 다시 소멸하는 것일까.”(‘은유의 잿빛 봉분’)빈곤으로 점철되는 삶을 “다, 그런 것”이라며 토닥이기도 한다.“가난은 아주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조금 나았다가는 또 도졌다가 하는 병처럼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고, 그러는 사이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꿈, 깨고 나면 씁쓸하기만 한 꿈을 꾸는 그런 날들을 생각나게 한다.”(‘한심하고 어설픈 가난의 곡선’)범상한 눈으로는 그저 선일 뿐일 오름에서 시인은 번번이 미학의 이미지를 걸러낸다. 그것은 “봉긋한 배와 처진 가슴을 드러내놓고 잠자는 중년 여인”이 됐다가 때로는 “부드럽고 느린 지느러미를 해묵은 슬픔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생명의 본질을 고요히 묵상케 하는 대목들은 글쓴이가 시인이었음을 어쩔 수 없이 환기시킨다. 오름을 흰 선으로 가르는 외줄기 길의 사진에서 시인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보고, 인간이성의 한계를 넌지시 짚는다.“애초에 인간이 구획과 분리의 수단으로 강을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피안도 차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등을 펴냈다.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책꽂이]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어수갑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989년 임수경 방북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공개수배되면서 10여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베를린을 떠돌며 살았던 어수갑씨의 산문집.1만 2000원. ●패권인가 생존인가(노암 촘스키 지음, 황의방·오성환 옮김, 까치 펴냄) 지은이는 미국의 대표적 진보학자이자 반전운동가로, 미국의 세계정책,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정책과 그 전략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1만 5000원. ●미식예찬(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지음, 홍서연 옮김, 르네상스 펴냄) 19세기 초의 음식에 대한 담론을 과학적, 철학적, 역사적으로 전개했다. 미각과 미식법, 음식에 관한 일화, 식생활사는 물론 음식에 관계된 고대의 문헌까지 언급하고 있다.2만 5000원. ●고전 읽기의 즐거움(정약용·박지원·강희맹 외 지음, 신승운·박소동 외 옮김, 솔 펴냄) 강희맹, 이이, 박지원, 이익, 정약용, 정철 등 고려 이규보로부터 조선 후기 이상적에 이르기까지 41가(家) 47편의 명문을 쉬운 문체로 풀어썼다.8800원.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1,2(시와키 고타로 지음, 이혁재 옮김, 재인 펴냄) 논픽션 작가인 지은이가 인도 델리에서 영국 런던까지 장장 2만여㎞가 넘는 길을 버스로 여행한 대정정을 담았다. 각권 9800원. ●비어즐리 또는 세기말의 풍경(박창석 지음, 한길아트 펴냄) 19세기 영국의 화려했던 빅토리아 시대 말기 예술계 한 편을 장식했던 삽화가 비어즐리의 삽화 및 그 이야기. 비어즐리는 오스카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대중 문예지 ‘옐로북’ 등에 삽화를 그렸다.1만 5000원. ●고유명사들의 공동체(김정환 지음, 삼인) ‘르레상스적 교양을 지닌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시인 김정환의 예술 산문집. 일반 교양서부터 동화와 만화, 문학, 음악, 미술,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9800원 ●윤평중 사회평론집(윤평중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흑백논리의 늪에서 부유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한 철학자의 예리한 성찰을 담았다. 진보와 보수, 송두율과 한국 민주주의, 정치에 중독된 사회, 열린 민족주의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논쟁과 담론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준다.1만 3000원. ●로마황제(크리스 스카레 지음, 윤미경 옮김),로마공화정(필립 마티작 지음, 박기영 옮김)‘로마황제’는 로마를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건설한 80여명의 로마 황제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로마 제정사를 개괄한 책.‘로마공화정’은 천년 로마제국을 움직이는 중추이자,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인 로마공화정 이야기다. 각권 2만 8000원, 갑인공방 펴냄.
  • [책꽂이]

    ●오늘이 역사다(정옥자 지음, 현암사 펴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규장각 관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역사에세이. 오늘의 문제를 역사의 창을 통해 비춰보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씨줄삼아 43개의 이야기를 따뜻한 문체로 펼쳐나간다.8000원. ●존경받는 부자들(이미숙 지음, 김영사 펴냄) 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인 지은이가 한국적·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미국의 기부문화와 미국인들의 자선정신을 살핀 책. 짧은 역사, 인종간 대립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21세기 최강국이 된 저력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일반인들의 기부의식과 부유층들의 자선정신에 있다고 강조한다.1만 3900원.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찰스 프레드 앨퍼드 지음, 이만우 옮김, 황금가지 펴냄) 일찍이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정신분석적 방법을 적용해 사회현상을 연구해온 지은이가 악에 대해 분석한 책. 인종청소, 테러, 연쇄살인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폭력까지 68명의 다양한 사람들과 면담하면서 인간이 악에 굴복하는 이유를 밝힌다.1만 5000원. ●일본만화의 사회학(정현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세계 만화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일본 만화의 막강한 경쟁력의 원인을 만화사적 접근을 통해 분석했다. 만화출판의 오랜 역사속에서 독특한 출판방식, 출판사와 만화가의 유기적 관계, 젊은이들의 독특한 소비문화 등의 토대위에서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해 왔음을 밝힌다.2만원. ●중국의 하늘을 연다(하성봉 지음, 일송북 펴냄) 지난 2001년부터 3년간 한겨레신문 중국특파원을 지낸 지은이의 생생한 중국 현장보고서. 취재활동을 통해 알게 된 거대한 중국의 실체와 그 뒷얘기, 광활한 땅덩어리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그린 여행기 등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1만 3800원. ●환상을 만드는 언론(노엄 촘스키 지음, 황의방 옮김)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지은이가 미국의 주류 언론의 본질과 그 이면을 들여다본 책. 촘스키는 미국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정확하고도 공정하게 언론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란 물음에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어떻게’,‘왜’ 아닌지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있다.1만 2800원.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소운 지음, 도솔 펴냄) 도쿄대, 하버드대에서 13년간 공부하며 수행했던 비구니스님이 들려주는 배움과 만남의 이야기. 특히 하버드에서 만난 진정한 부처의 이야기를 따뜻하면서 재미 있게 소개한다. 미국, 일본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 당차게 지냈던 소운은 항상 수처작주, 즉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처한 곳에서 주인이 되라고 강조한다.9000원.
  • [발언대] 이제 스포츠예술에 눈 돌려야/장상우 서울 동작구 도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

    스포츠는 일종의 ‘움직임의 예술’이다. 최근 우리 사회엔 웰빙바람을 타고 생활체육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다. 이는 과거 전문체육인 중심의 엘리트체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스포츠 욕구를 해소하려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건강 증진은 물론, 이러한 ‘움직임의 예술’까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스포츠인 까닭이기도 하다. 개인의 예술적 기질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러한 ‘예술’에 눈 돌릴 때가 바로 지금이다. 지난달 31일 동작구도시시설관리공단에서 주최한 ‘2004스포츠 페스티벌’에 구민들이 직접 참여, 최근 유행하는 댄스와 체조 등 화려한 무대를 선보여 1000여명의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참가자들은 가정주부에서부터 직장인, 학생 등 평범한 시민들이었지만 전문가 뺨치는 실력으로 생활 속 스포츠예술의 즐거움을 한껏 뽐냈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이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역내 스포츠레저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구·시민들의 참여다. 예술활동이 극히 일부 사람들만이 참여하는 전문 분야라는 인식이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성원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건강성을 새롭게 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언론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자치단체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행사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 스스로의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편화시키는 언론의 노력만이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려는 이들의 사회적 권리를 찾아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또 스포츠예술에 대한 인식과 저변 확대를 위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장상우 서울 동작구 도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
  • 연암서거 200주년 ‘열하일기’ 완역본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조선 정조 4년(1780) 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청 황제 고종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는 사절단 일원으로 베이징에 다녀온 뒤 쓴 기행문이다. 그 자체로 훌륭한 문학작품이자 조선 후기 실학파의 사상적·문예적 성과를 집대성한 사상서다.‘열하일기’는 조선시대 한문학 유산 가운데 가장 근대지향적인 성격이 뚜렷한 작품으로 꼽힌다. 열하는 중국 기행에서 연암이 건넌 강 이름.‘열하일기’는 연암에게는 한국문학사상 지워질 수 없는 이름을 남기게 했지만, 당대에는 문체가 순정(純正)하지 못하고 잡박(雜駁)하며 도덕을 망친다고 해 1783년 이래 100년 동안 금서 신세로 있었다. 2005년은 연암이 서거한 지 꼭 200주년이 되는 해. 도서출판 보리는 이에 맞춰 연암의 ‘열하일기’ 완역본을 냈다. 상·중·하 세 권으로 된 이 책은 1955년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열하일기’(리상호 옮김)를 남한의 표기법에 맞게 바꾼 것. 오염되기 전의 우리 글맛, 말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찌꺽지, 자채기, 모꼬지, 물역 같은 북에 남아 있는 우리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잔주르다, 덩둘하다, 날탕패 따위의 토박이 말들도 만날 수 있다. 북한의 원문을 대부분 따랐지만 거년(去年, 지난해)등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표기는 일부 바꿨다. 우리 역사상 가장 빼어난 문집이라 할 만한 ‘열하일기’는 명실상부하게 남과 북의 공동 자산이다. 각권 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파이 이야기(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열여섯살 인도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를 타고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는 줄거리의 장편소설.2002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킨다는 찬사를 받았다.‘식스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판권을 사서 영화로 제작중일 만큼 극적 구성이 탁월하다.1만원. ●나를 발효시킨다(이가희 지음, 문학세계사 펴냄) ‘한국 토종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를 펴내 화제가 된 시인 이가희가 첫 시집을 냈다. 무심히 뒹구는 일상속 글감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감각이 재치있고 여유롭다.6000원. ●그 스님의 여자(강은자 지음, 해와달 펴냄)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 남자가 창녀와 사랑의 시련을 겪으면서 조금씩 구도의 길에 접어드는 얼개의 장편소설. 지난해 프랑스 파이야르 출판사에서 출간돼 ‘부르고뉴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작가는 ‘프랑스어권 문학의 혜성’‘동양의 진주’ 등의 찬사를 받았다.9000원.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전2권)(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란 옮김, 새움 펴냄) 인기소설 ‘연인’으로 관능적 문체를 각인시킨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1950년에 발표한 자전소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10대를 보낸 작가가 식민지의 경험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시적 리얼리즘’을 일구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정란의 번역이 꼼꼼하다. 각권 8500원. ●뿌리(상·하)(알렉스 헤일리 지음,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펴냄) 1976년 발표된 미국 흑인문학의 고전 ‘뿌리’를 소설가 안정효가 다시 번역했다.1977년 안정효 자신이 번역한 책에서 빠진 부분(하권)을 보충하고, 만연체 원문의 특징을 최대한 살렸다. 각권 7500원. ●사랑(임의진 지음, 샘터 펴냄) 시인이자 포크송 가수, 수필가이기도 한 재주 많은 작가가 최근에 쓴 수필과 시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전남 땅끝마을 강진의 흙집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행간에 넘치도록 담아냈다. 작가가 손수 그린 기기묘묘한 그림들도 흥미롭다.9000원.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장애인과의 사랑. 감정의 기복이 심한 러브스토리일 거란 편견은 버리자.‘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Josee,the Tiger and the Fish·29일 개봉)은 누구나 겪음직한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펼쳐가는 영화다. 대학생 쓰네오(쓰마부키 사토시)는 어느날 언덕길에서 유모차와 마주친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하반신 불구의 소녀(이케와키 지즈루)가 있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에 나오는 조제로 불리길 원하는 소녀. 그녀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쓰네오는, 엉뚱한 성격의 그녀에게 점점 끌린다. 조제는 이제 쓰네오를 통해 세상과 맞서는 법을 배워나간다. 당당하지만 실제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조제. 쓰네오가 있기에 가장 무서워하던 호랑이도 보고,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인 물고기가 가득한 모텔방에서도 함께 보낸다. 하지만 보통의 연인들이 그렇듯 사랑의 설렘과 빛나는 시간들이 지나자 이들에게도 덤덤한 끝이 찾아온다. 영화는 흔히 상상하듯 모든 장애를 극복할 만큼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의 감정에 정직한 젊은이들이 현실과 부딪치며 빚어내는 파장을 묵묵히 지켜본다. 쓰네오는 조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빠져들어 정직하게 사랑을 했고, 또 버틸 수가 없어 도망쳤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문득 울음을 터뜨린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쓰네오의 전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다.‘천사표’였지만 남자친구를 뺏기자 조제를 찾아가 “장애인인 주제에…”라며 뺨을 때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직한 감정에 맞닥뜨렸을 때의 비참함을 견디지 못해한다. 순수한 영혼들이지만 현실 속에서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딛고 다시 한 발 한 발 용기있게 디디기에 이들의 모습은 찬란하게 빛나보인다. 풋풋하지만 아픈 사랑과 성장이 동거하는 영화. 어느새 떨어진 물감이 도화지에 스며들어 지울 수 없는 색깔을 남기듯 그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에 자국을 새길 영화다. 다나베 세이코의 동명소설이 원작. 간결한 문체의 짧은 소설에 비해, 영화는 유머러스한 극적 상황들을 끼워넣어 보다 풍성해졌다.‘환생’의 각본을 썼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열린세상] 대한장애인체육회를 설립하자/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장애인계가 다시 시끄럽다. 장애인의 체육활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농성 및 공청회로 장애인들은 단풍놀이를 대신했다. 문제의 본질은 그동안 장애인 체육활동이 비장애인의 그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차별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다소 시정되기는 했지만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메달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상금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자격만 박탈함으로써 생활을 더욱 곤궁하게 몰고가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도 받았다. 장애인전용 체육시설 하나도 제대로 없어 합숙훈련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를 전전해야 하는 서러움을 감내해오고 있다. 더구나 지역사회에는 장애인들이 편안하게 접근하여 운동을 하고 몸을 풀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어 넓은 의미의 여가문화 향유는 아예 사치스러운 개념이 되어버렸다. 장애인계는 이러한 차별상황이 초래된 주된 원인을 소관부처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장애인체육은 보건복지부에서 관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복지부가 설정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인하여 열악한 중증장애인들의 시설보호, 기초소득 보장 등이 복지부의 주된 관심사항이며, 체육활동 지원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져온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월25일 공청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장애인체육 영역을 문화관광부로 이관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우선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러한 뜻을 매우 진지하게 개진했고 그동안 난색을 표시해 오던 복지부에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전체적으로 방향은 잘 잡은 듯이 보인다. 장애인특수교육을 복지부가 아닌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관장하고, 장애인 고용분야를 노동부 소관에 두는 행정분업의 정신을 감안하면 장애인체육도 일반체육을 관장하는 문화관광부에서 맡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문광부에서 맡는다면 장애인체육이 비장애인체육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한들 두번째로 위치 지워질 수 있어 복지부보다는 지원의 폭이 커질 수 있으며 이미 구축된 전국의 체육시설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장애 변수만 고려하여 덧붙인다면 장애인체육분야의 발전을 통한 사회의 통합성을 더욱 공고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체육분야의 문광부 이전이라는 행정행위가 장애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선 업무의 이관 이전에 문광부 체육국에 최소한 과 단위의 추진체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무조건 업무만 이관하면 장애인체육이 올림픽의 비인기종목처럼 소외되어 또다시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체계적인 업무의 개발 및 예산작업의 원활화를 위해서도 과 단위의 인력확보를 위한 정부의 조직개편이 요구된다. 둘째, 현재의 장애인복지진흥회의 체육업무를 문광부로 이관하면서 대한체육회에 상응하는 ‘대한장애인체육회’를 설립해야 한다. 이는 장애인체육을 비장애인체육과 동일한 반열에 놓고 추진하기 위해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기관이 있어야만 장애인의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을 전국적인 맥락에서 조화롭게 수행해 나갈 수가 있다. 셋째, 장애인체육을 엘리트 중심의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으로 양분하던 기존의 개념에 재활체육을 첨가함으로써 중증장애인시설, 특수학교 학생 등 중증장애인의 재활에 필요한 운동기능의 중요성을 정책으로 담아내야 한다. 문광부로의 기능이관이 자칫 재활영역의 블랙홀을 만들어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중증장애인의 운동을 통한 재활 역시 매우 중요하며 이 영역은 복지부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업무인수과정에서 분명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모든 개혁작업이 그렇듯이 방향이 잡히면 그 다음에는 추진의 틀이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혁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전보다 더 나은 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유형과 정도, 그리고 의지에 맞게 재활시설에서, 운동시설에서, 올림픽경기장에서 밝은 얼굴을 보이면 세상은 그만큼 밝아지는 것이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정책학 교수
  • 정부 “반미선동 노린 개인소행”

    최근 이슬람 순교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잇따르고 있는 대(對)한국 테러위협 성명은 반미 감정을 선동하기 위한 개인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지난 10일 이슬람 웹사이트에 올려진 ‘하무드 알마스리 순교대대’ 명의의 한국군 및 한국내 시설물 공격 위협에 이어 지난 18일 ‘순교대대’ 명의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글을 분석한 결과, 테러를 가할 능력이 없는 개인이 쓴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아랍어 전문가에 따르면 작성된 두 글의 문체와 문장 스타일, 그리고 철자법 등이 같은 사람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반미감정을 선동하려는 목적에서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순교대대’로 해석되는 아랍어 ID를 이용해 이슬람 웹사이트 ‘오픈 포럼’에 실린 ‘한국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은 “이것은 십자군 전쟁을 벌이는 미국에 무릎을 꿇은 앞잡이인 한국 정부에 두번째 경고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배치한 한국군을 7일 이내에 철수하지 않으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허물어 버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10일에는 다른 이슬람 웹사이트 ‘몬타다’에 ID ‘하무드 알마스리 순교대대’라는 이름으로 올린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라는 글에서 “한국이 이라크 추가파병군을 14일 이내에 철수하지 않으면 한국군과 한국 시설물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정부는 두 사이트가 각각 미국의 뉴욕과 댈러스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 미 정부를 통해 서버 운영자에게 문제의 글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루쉰의 편지/리우푸친 엮음

    중국의 작가이자 사상가,혁명가,금석문연구가,목판화운동가인 루쉰.그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러·일전쟁의 슬라이드를 본 것이 계기가 돼 문학에 뛰어들게 됐다.이 책은 강렬한 문체와 사상으로 중국 근대정신을 일깨운 루쉰이 제자이자 훗날 아내가 된 사회운동가 쉬광핑(許廣平)과 나눈 43편의 편지와 일기 모음집이다.베이징여자사범대학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던 루쉰과 쉬광핑이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사상적으로 교류했던 모습이 담겨 있다.루쉰은 당시 북경 군벌정부의 부패와 오염 수준을 ‘검은 물감이 든 항아리’라는 말로 표현한다.1만 7900원.
  • [책꽂이]

    ●러브 아다지오(박상순 지음,민음사 펴냄) 1996년 현대시 동인상을 수상하고 ‘초현실주의’‘해체주의’ 등의 수식어로 기억되는 박상순 시인이 현대적·실험적 감각으로 묶어낸 세번째 시집.고통의 현실을 때론 사실적으로 때론 서정적으로 변주해내는 그의 시세계를 최승호 시인은 “개인적 암호를 즐기는 고독한 취향”이라고 해석했다.6000원. ●소년의 눈물(서경식 지음,이목 옮김,돌베개 펴냄) ‘나의 서양미술순례’의 재일 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길잡이가 돼준 책들을 되돌아봤다.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문학작품들과 그들에서 영감을 얻은 사연 등이 수필형식으로 재구성됐다.1만원. ●인간 동물원(츠츠이 야스다카 지음,양억관 옮김,북스토리 펴냄) 일본 현대사회의 폐단과 인간본성의 추악함을 기발하고 유쾌한 문장으로 풍자한 SF단편 소설집.일본인 인기작가의 여유있는 해학이 돋보인다.9500원. ●아미엘의 일기(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지음,김욱 옮김,바움 펴냄) 톨스토이가 ‘지상 최고의 일기문학’이라고 극찬한 스위스의 문학가 겸 철학가의 일기.내면의 동요를 섬세하고 예리한 필치로 살려냈으며,당대 문명과 풍속에 대한 관찰력이 탁월하다.1만 8000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김태형 지음,문학동네 펴냄) ‘로큰롤 헤븐’의 젊은 시인 김태형의 두번째 시집.히말라야시다 배롱나무 등 나무 이미지를 인고와 침묵의 표상으로 즐겨 차용했다.7000원. ●검의 대가(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김수진 옮김,열린책들 펴냄)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뒤마 클럽’ 등으로 알려진 스페인 작가 레베르테의 초기작.해박한 지식과 격조높은 문체를 통해 지적 미스터리를 경험할 수 있는 정치소설이자 탐정소설.9500원. ●불멸의 이순신(4·5권)(김탁환 지음,황금가지 펴냄) 안방극장에서 방영중인 대하사극의 동명 원작소설.원균에게 콤플렉스를 갖기도 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렸다.10월 말까지 8권으로 완간될 예정.각권 8500원.
  • 이순신·원균 누가 진짜 맹장?

    ‘이순신 열풍’을 타고 임진왜란을 조명한 소설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역사소설의 대가로 꼽히는 월탄 박종화(1901∼1981)의 ‘임진왜란’(달궁 펴냄,전 10권)과 소설가 고정욱의 ‘원균’(산호와진주 펴냄,전 2권). 1957년 초판돼 1966년 6권짜리 개정판으로 나오기도 했던 ‘임진왜란’은 1982년 재출간됐다가 22년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월탄의 유려한 문체와 장중한 서사구도로 재구성된 ‘임진왜란’에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원균,곽재우,논개,왜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다양한 인물들이 생생히 되살아난다.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의 국정과 외교적 상관관계까지 두루 짚은 점이 특징이다.각권 9000원. 명장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 폄하됐다는 일각의 평가를 받아온 원균 장군도 모처럼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원균의 공을 가로채고 그 아들까지도 모함하는 이순신은 밝히고 싶지 않은 역사”라는 작가 고정욱은 “왜곡된 사관(史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소설의 의미를 맞췄다.”고 설명했다.이순신 장군의 실책을 가차없이 파헤치는 반면 원균을 임진왜란 최고의 맹장으로 부각시키는 내용 전개가 파격이다.각권 89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김인배, 동학농민혁명의 선두에 서다/이이화·우윤 지음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말기인 1894년(고종 31년) 외세의 수탈과 정치·사회제도의 문란,경제적 파탄이라는 삼중고를 겪던 농민들이 새 세상을 갈구하며 일으킨 민중봉기다.약 300만명의 농민이 참여해 그 중 3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 항쟁은 그동안 ‘동학란’으로 불려오다 지난 2월 ‘농민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발발 110년 만에 ‘동학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으로 재평가됐다.이 책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영호대접주라는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동학의 최고 책임자로 활약했던 김인배의 삶을 다룬다.1만 1000원. ●마쿠라노소시(枕草子)/세이쇼나곤 지음 일본 수필의 효시로 꼽히는 작품.우리말로 옮기면 ‘베갯머리 서책’이라 할 수 있다.11세기 초 세이쇼나곤이라는 이름의 궁녀가 천황비인 데이시(定子) 중궁을 보필하면서 보고 들은 일을 자유로운 문체로 써내려간 수필집으로,헤이안 시대(794∼1192년) 수필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일본 고전소설의 대표 작품인 ‘겐지 이야기’가 왕조시대의 귀족적인 미학을 그대로 구현해 내향적이고 은근한 반면,‘마쿠라노소시’는 자연과 사람을 밝은 마음으로 찬미하며 솔직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302개의 장단(章段)으로 이뤄져 있다.2만 2000원. ●기사도의 시대/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중세 유럽(800∼1500년)의 기사들은 전시든 평상시든 기사도라고 하는 상세한 윤리지침의 지배를 받았다.기사들 중엔 영주에 대한 충성의 대가와 동료 기사들과의 마상시합에서 획득한 노획물을 통해 부유하고 강력한 지주가 된 사람들도 적잖았다.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은 다소 경멸적인 어투로 ‘중간시대’,즉 중세라고 불렀지만 이 시기는 역동적인 시기임에 틀림없다.중세는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이룩한 위업의 토대가 됐다.이 책은 중세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복잡하고 순수한 중세의 이상,신앙의 깊이,예술의 장엄함 등을 살펴본다.2만 5000원. ●덩샤오핑/벤저민 양 지음 불굴의 의지로 중국의 21세기를 설계한 지도자 덩샤오핑 평전.재미 중국인 학자인 저자는 덩샤오핑은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이 실패해 3000만명이 굶어죽는 참상을 보고 충성스러운 마오쩌둥의 지지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중국의 국체인 공산주의마저 실용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바라본 인물이 바로 덩샤오핑.자기 손으로 이룩한 공산주의를 생시에 스스로 청산한 그는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웬만큼 여유있는(小康) 사회’라는 새로운 비전을 현실로 관철시켰다.“단호하게 대처하고 재주껏 이용하라.”는 게 덩샤오핑의 외교지침이다.1만 8000원. ●내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베네트 서프 지음 미국의 유명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설립자 베네트 서프의 자서전.1927년에 설립된 랜덤하우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유진 오닐,월리엄 포크너,싱클레어 루이스 등을 비롯해 거트루드 스타인,트루먼 커포티,제임스 미치너,아인 랜드,윌리엄 스타이런 등 20세기 미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책을 펴내 명성을 날린 출판사.책에는 미국 출판계와 문학계의 뒷 얘기들이 실렸다.아내에게 구박받으며 불행한 생을 마감한 유진 오닐,고집불통이었던 싱클레어 루이스,허름한 옷차림에 구멍난 양말을 신고 다녔던 월리엄 포크너 등의 일화가 흥미롭다.2만 5000원.
  • 전경린 새소설 ‘황진이’

    전경린 새소설 ‘황진이’

    ‘정염의 작가’ 전경린이 황진이(이룸출판사 펴냄)를 소설로 불러냈다.‘끼’라면 남 못지 않은 작가와 역시 ‘끼’라면 둘째가 서러운 조선시대 기녀와의 만남 자체로 눈길을 확 끈다.3일 서울 인사동에서 작가를 만나 작품구상과 자료 수집에서부터 황진이의 해석과 형상화 등 원고지 1540장에 자신을 태운 10개월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이태준·최인호,북한의 홍석중 등이 다루었던 인물을 다시 소재로 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고 시절 마냥 끌린 여성들이 나혜석 윤심덕 전혜린 그리고 황진이였다.‘언젠가 소설로 옮기고 싶다.’고 마음먹었다.게다가 등단 10년을 맞아 현재를 무대로 한 어떤 스토리도 황진이만큼 끌리지 않았다.” 조숙했던 여고생 전경린을 사로잡은 여성들은 모두 당대의 문제적 인물.여성문제를 감각적 문체로 빚어온 작가의 작품세계와 맥이 닿는다.따라서 곧바로 ‘전경린의 황진이는?’이라는 호기심으로 이어진다.“야담·야사는 황진이의 몸을 남자를 유혹하는 위험하고 저급한 것으로 규정하는데 저는 이것이 표피적이라 판단,몸 이데올로기를 긍정하고 존중했다고나 할까요.이야기 얼개는 야사를 존중했습니다.” 황진이의 정신적 세계에 무게를 뒀다는 말이다.그래서 작가는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홀려 파계하게 만들거나 서경덕을 유혹하는 장면을 단순하게 처리한다.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기생 황진이’의 가장 큰 자긍심은 역시 사랑”이라는 작가의 시선은 선비 이사종과의 사랑을 묘사할 때 어느 판본 못지않게 후끈하다.“자기 운명의 모순 속에 스스로 갇히면서도 그 속에서 억압을 풀어가는 황진이와 선비 이사종의 운명적 사랑을 그릴 때 제일 행복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둘의 사랑은 절제된 열정이기에 더 뜨거워 가슴이 델 것 같다. 황진이를 낳기 위해 들인 공은 만만치 않다.야사나 야담은 샅샅이 훑었고 송도 거리를 그리기 위해 이중환의 택리지와 조선시대 생활사 관련자료 등 엄청난 자료를 섭렵했다.이런 내공은 서얼 차별이 조선시대에 시작됐다거나 서경덕의 주기론에 대한 설명,서경덕의 제자인 허난설헌과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과 토정 이지함의 사연 등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나아가 당대 유교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바라보는 비판으로 피어나기도 한다.“이전의 황진이 묘사는 남성적 서술에 유린당한 면이 있습니다.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 품위 있고 진정한 학자이고 넘어가면 위선이라는 구분도 너무 작위적입니다.” 창작 도중 작가에게 힘을 준 것은 인간의 보편성이었다.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500년 전의 황진이나 현대 여성의 내면의식에 흐르는 동질성을 발견하고 자신감이 생겼고 이후에는 그 느낌을 따라갔다고 한다. 작가는 작중 인물에게 자신의 내면의식을 불어넣으면서 대화한다.그 과정에서 닮은 점도 발견할 것이다.“신분 차별의 희생양 황진이나 도읍의 영화를 한양에 내준 송도,유교 가운데 주변부 이론인 주기론의 서경덕 등 모두가 비주류잖아요.제도적 권위나 출세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제 생각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이런 애정은 작품 끝까지 이어져 “갖은 세파를 넘어온 황진이 앞에 또 하나의 생이 열리는 듯한” 신비감 속에 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벽화작가 서용 4일부터 ‘둔황 벽화전’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인 중국의 둔황은 둔황학이란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낳았을 만큼 인류문명의 보고다.둔황은 고대 동서문화 교류의 현장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권이라 할 만하다.둔황의 꽃은 막고굴 석굴.둔황 막고굴은 4세기 중반 처음 뚫기 시작해 원나라 때인 14세기까지 1000여년에 걸쳐 조성됐다.현재 확인된 석굴의 숫자는 492개로 각각의 석굴엔 소상(塑像)이 들어있고 벽화가 사방을 메우고 있다.‘사막의 미술관’인 셈이다. 4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센터에서 열리는 ‘영원한 사막의 꽃-서용 둔황 벽화전’은 둔황 고대벽화를 현대미술로 승화시킨,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전시다.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사막 한가운데 서서 벽화를 감상하는 듯한 감흥을 준다.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과 란저우(蘭州)대학 등에서 수인(水印)판화와 벽화,둔황학을 공부한 서용(42)은 이번 전시에서 둔황 막고굴 벽화를 그대로 재현한 작품과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서용은 둔황 벽화를 소재로 작업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벽화 작가.7년동안 둔황에 머물며 벽화 모사 작업을 해온 그의 작품엔 둔황 벽화의 율조와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둔황벽화가 지닌 원색의 화려함 대신 중후한 색채를 사용한 것도 그의 벽화작업의 특징이다. 출품작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토와 마(麻),안료,암채를 재료로 한 가로 10m의 대작 ‘수하설법천불도’.사방연속 문양처럼 일정한 크기의 화불(化佛)을 화면 가득히 배치하고 중앙에 별도의 불화를 넣은 작품이다.또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둔황 벽화 중에서 천장그림으로 가장 아름답다는 제390굴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작가는 “벽화는 영원히 살아 쉼쉬는 예술”이라고 말한다.(02)395-0330.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대영제국은 인도를 어떻게 통치하였는가(하마우즈 데쓰오 지음,김성동 옮김,심산문화 펴냄) 인도는 영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획득하고 지배하는데 전진기지이자 관리센터의 역할을 했다.스리랑카,미얀마,싱가포르,말레이시아,홍콩은 모두 인도의 군사력이나 인도정부의 외교력으로 영국이 획득한 아시아 식민지다.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 통치의 첨병이었다.그러나 1858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에 대한 직접 지배를 선언함으로써 허울뿐인 회사로 전락했다.이 책은 기업통치,즉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동인도회사 통사다.1만 6000원. ●탈무드 솔로몬(이희영 지음,동서문화사 펴냄) 바빌로니아판 탈무드를 깊이 있게 다룬 탈무드 자료집.5000여년의 유대인 역사와 처세,성공전략이 응축돼 있다.유대인의 금전철학부터 부자철학,유대식 협상법,행복한 부자되는 법,토라의 진리까지 폭넓게 다뤘다.유대학을 연구해온 저자는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역사상 어느 민족보다 많은 인재를 배출한 데는 그들의 피 속에 탈무드의 유대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미국은 유럽인이 건설했지만 유대인이 점령해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는 근거없는 빈말이 아님을 알게 한다.2만 5000원. ●무용의 현대(미우라 마사시 지음,남정호·이세진 옮김,늘봄 펴냄) 발레를 중심으로 현대무용을 조망.일본의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20세기 후반부터 무대예술의 중심은 연극에서 무용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한다.20세기 전반 무대예술이 카뮈와 베케트로 대표되는 부조리극에 의해 지배됐다면,1960년대 모리스 베자르의 ‘봄의 제전’과 70년대 후반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를 기점으로 그러한 흐름이 무용으로 이동했다는 것.미시마 유키오와 윌리엄 포사이드를 비교하고,피나 바우쉬의 안무에서 그의 고통을 절감하는 저자 특유의 시각과 문학적 문체를 접할 수 있다.1만 2000원. ●에이미 카마이클(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윤종석 옮김,복있는사람 펴냄) 아일랜드 태생의 여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의 전기.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여년 동안 인도에서 머문 카마이클은 힌두교 사원에 팔려가는 아이를 구출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도나부르 공동체를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1만 5000원. ●내 사랑이 너를 붙잡지 못해도(서영은 지음,해냄 펴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의 자전적 산문집.강릉 바닷가의 성장기를 거쳐,사랑과 문학에 대한 단상을 묶었다.93년 출간된 책을 작가가 좋아하는 샤갈의 그림을 함께 수록해 재편집했다.9000원.
  • 반주류 실크로드사/김영종 지음

    실크로드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로마나 페르시아,인도,중국 등 정주(定住) 제국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때문에 연구 주제 또한 무엇이 어디를 거쳐 어떻게 전파됐는가 하는 ‘문명전파론’에 모아졌다.특히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흐름이 강조됐다.중국 민족과 중국 문명이 서방에서 비롯됐다는 학설이 그 한 예다.또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로마의 조각 양식이 동양으로 전파됐음을 밝히는 강력한 증거로 통한다. ‘반주류 실크로드사’(도서출판 사계절)를 펴낸 소설가 김영종씨는 서양 중심의 ‘문명전파론’은 어디까지나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실크로드는 교역의 산물이 아니라 전쟁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유라시아 동쪽의 실크로드는 한나라의 장건이 흉노를 공격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나선 여행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알려졌고,서방의 실크로드는 스키타이와 페르시아의 투쟁과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을 통해 형성됐다.‘전쟁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의 실크로드가 먼저 생겼고,‘교역의 길’이라 할 동서의 실크로드는 그 후에 열렸다는 것이다.실크로드는 낙타가 아니라 말에 의해 탄생한 셈이다. 로마와 한나라 사이에 비단 교역은 이렇게 만들어진 실크로드를 통해 이뤄졌다.저자는 실크로드의 주인공은 로마도 중국도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도 아닌,오아시스의 현지 주민이라고 강조한다.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한 길,즉 실크로드의 주민이야말로 실크로드를 장악한 강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실크로드를 살려온 이들이기 때문이다.힘없는 오아시스 국가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존망의 슬픈 역사를 겪어야 했다. 실크로드의 동과 서를 중개한 소그드 상인은 빛나는 존재다.소그드인들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일대의 아무다리아와 시르다리아 유역의 광활한 초원지대에 살면서 서쪽으론 페르시아와 동로마제국까지 사절단을 보내 교역의 물꼬를 텄으며,동쪽으론 중국의 수·당 제국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하지만 실크로드의 메신저였던 소그드 상인들은 8세기 중반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 저자는 이처럼 역사에 부각되지 않은 ‘약자의 세계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비로소 실크로드의 실체를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실크로드의 역사는 여러 민족의 역사가 퍼즐처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지명도 생소해 술술 읽히지 않는다.책은 이런 점을 감안,처음부터 끝까지 존댓말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을 넘어선 형식’의 문체를 택해 눈길을 끈다.130여컷의 도판이 이해를 돕는다.1만 4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꼬마 철학자/알퐁스 도데 글

    ‘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이따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곤 했습니다.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단편 ‘별’중에서) 서정적이고 미려한 문체의 ‘별’은 알퐁스 도데의 문학성과 빼어난 감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프랑스 남부지방의 정서가 담뿍 담긴 그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따뜻한 인간미가 배어 있다.무엇이 그의 내면을 이토록 풍부하게 만들었을까. ‘꼬마 철학자’는 알퐁스 도데의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자전적 성장소설이다.1840년 남프랑스 님에서 견직물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도데는 9살 때 아버지를 따라 리옹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학교 사환으로 일하면서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부유한 유년시절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춘기를 거쳐 리옹과 파리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꼬마철학자’의 주인공 다니엘은 다름아닌 도데의 분신이다. ‘부모님에게 있어 나는 불행한 별이었다.사실이었다.내가 태어난 직후부터 믿어지지 않는 불행들이 마구잡이로 닥쳐왔다.’ 집이 몰락하면서 한순간에 삶의 형태가 바뀐 다니엘은 누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닥친 운명을 극복하면서 성숙해진다. 짓궂은 인생은,다니엘을 문닫은 방직공장을 놀이터삼아 놀던 철없는 아이에서 큰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아버지에게 감추려 애쓰는 속깊은 아이로 변화시킨다.연약함과 순수함을 간직한 다니엘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겪는 고통과,그런 고통의 과정에서 건져올린 섬세한 감수성들은 도데 자신의 이야기여서 더욱 감동을 자아낸다. 1868년에 발표한 ‘꼬마철학자’는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1858년 첫 시집 ‘사랑하는 연인들’로 문단에 데뷔한 도데는 ‘별’이 수록된 단편집 ‘풍차방앗간 편지’(1866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풍차방앗간 편지’는 작가가 고향 남프랑스 지방의 인물과 풍토를 배경으로 삼았다.그중 남프랑스의 순진한 청년 장의 비련을 그린 ‘아를르의 여인’은 후에 3막의 연극으로도 상연됐다. 1870년 보불전쟁에 자원해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3년 뒤 단편집 ‘월요이야기’를 출판했는데,패전국의 비애와 애국심을 묘사한 단편 ‘마지막 수업’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1만 3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여성작가 3人 눈길끄는 작품집 3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않았지만 자기 나름의 작품세계를 일궈온 여성작가 세 명이 나란히 작품집을 냈다.‘빙화’(세계사 펴냄)‘나의 피투성이 연인’(민음사 펴냄)‘행복’(창비사 펴냄)을 출간한 이나미(43) 정미경(44) 정지아(39)가 주인공.각각 ‘속도감과 힘있는 문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세계’ ‘변혁의 꿈 좌절 이후’ 등의 평을 들으면서 여느 작가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영역을 확보한 이들의 개성있는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본다. ●‘빙화’=내면의 상처 연대 통해 치유 8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92년부터 4년 동안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묻어나는 작품집이다.표제작의 제목이 처연하고 인상적이다.꽃은 꽃인데 얼음꽃이다.곱지만 차가운,아름답지만 곧 사그라질 이 모순이 공존하는 얼음꽃의 상징성은 작품집 전반에 배어 있다. 표제작 ‘빙화’의 여주인공은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후배가 러시아 기숙사의 화재로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감정의 공황 상태에 빠진 주인공은 둘이 함께 어울렸던 장면들을 차분히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아 간다.그 과정을 다루면서 작가는 정듦과 이별,생성과 소멸이 부질없음을 들려준다. 작품집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개 위태롭다.상처입은 영혼들이기 때문이다.레즈비언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동성애자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푸른 등불의 요코하마’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이혼한 뒤 유학간 주인공을 다룬 ‘부활제’ 등은 그를 잘 보여준다. 평론가 정호웅은 “작품집 중심인물들은 거의 예외없이 상처로 인한 고통 속에 현실을 견뎌내는 투쟁자들”이라며 “깊은 연민의 마음으로 스스로 유폐된 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은 혼돈의 세계를 기꺼이 끌어안고 연대를 통해 상처가 치유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그 치유 능력은 작품 ‘봉인’의 주인공이 지닌 열정에 잘 녹아 있다.자신의 꿈을 찾아,가족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러시아 유학을 강행하는 작품 속 주인공은 작가가 세상에 던지려는 메시지이자 문학에 거는 꿈으로 다가온다.“내가 매달리고 지켜 나갈 것은 이상과 열정뿐이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지난 2001년 늦깎이로 등단한 뒤 1년 만에 2002년 장편 ‘장밋빛 인생’으로 26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준비된 작가’임을 입증한 작가 정미경의 첫 작품집이다. “눈부신 글솜씨”“시뮬라시옹시대에 걸맞은 주제를 탁월하게 형상화” 등의 찬사를 받은 작가의 중·단편 6편을 모았다.특히 표제작은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데 다음의 표현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그를 향해 전화기를 집어던질 수도,얼굴에 손톱자국을 낼 수도 없는 곳에 존재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껴야 하는 자신.분노를 폭발시킬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데 살갗이 벗겨지도록 제 살을 긁어대야만 하는 자신만이 혼자 남아 있었다.”(96쪽) 주인공이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에게 갖는 배신감·분노의 심정을 옮긴 것이다.“모든 게 좋아.너의 모든 것이”라는 말이 온전히 자신만을 향한 표현인 줄 알았던 유선이 남편의 미발표 원고 파일을 정리하다가 죽기 직전까지 남편이 사랑한 숨겨 놓은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망연자실하고 온 몸이 스멀거리는 가려움증에 시달린다.믿었던 사랑마저 가짜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시뮬라시옹(거짓 꾸밈)의 시대’를 소설로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가짜에 대해 삿대질하지 않는다.대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연민을 느끼고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표제작에서 고민하던 유선은 결국 남편의 유고집 출간을 포기하고 남편의 사랑을 ‘자기만의 것’으로 남기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행복’=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 90년 부모의 체험을 살린 ‘빨치산의 딸’로 문학동네에 맨살을 보인 뒤 96년 제도권 문학의 통과장치인 신춘문예로 재등장해 녹록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노동해방문학’ 등에서 활약하며 “세상을 구원하는 글쓰기를 꿈꿨던” 작가의 작품 속에는 ‘좌절된 꿈’으로 인한 눌림과 그것을 극복해 가는 표정이 잘 드러난다. 표제작 ‘행복’은 “어머니는 남부군,아버지는 전남도당 소속”인 부모 아래서 자란 한 여교사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 성격이 짙다.늙은 부모와의 첫 여행에서 주인공은 “빨치산 시절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었던 부모들이 현실에서 느낀 생소함과 그로 인한 어둠이 자신에게 미친 내력을 들려준다.평론가 김영찬은 해설에서 정지아 소설의 주인공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런 상처의 외적 근원이 “좌절된 정치적 꿈에 대한 저린 상실감이자 희망 없는 현재의 삶에 대한 낯선 두려움이며,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갖게 되는 잔혹한 슬픔”이라고 분석한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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