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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리뷰] 컨닝, 교활함의 매혹/돈 허조그 지음

    ●교활함(Cunning):(명사) 강한 동물이나 사람을 약한 동물이나 사람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기능.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강한 정신적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상당한 물질적 광고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탈리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모피 장수는 당나귀 가죽보다 여우 가죽을 더 좋아한다.”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인 앰브로즈 비어스가 교활함에 대해서 내린 정의다. 흔히 시험을 치를 때 부정행위란 의미로 사용되는 커닝이 14세기만 해도 박식함을 의미했다고 한다. ‘컨닝, 교활함의 매혹(돈 허조그 지음·이경식 옮김·황소자리 펴냄)’은 교활함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 세계는 온갖 문제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매혹적인 미궁이다. 도덕성과 규칙, 그리고 합리성의 여러 갈래들이 난마처럼 뒤얽혀 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률과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교수인 저자 돈 허조그는 예리하고도 장난기 넘치는 문체로 교활함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혐오를 탐구한다.16세기의 목사 존 켈로는 아내를 살해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아내의 목을 조른 뒤 자살인 것처럼 꾸미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설교도 한다. 신도를 집으로 초대한 뒤 허공에 매달린 아내를 발견하고는 기절하는 척까지 했다고 한다. 이처럼 교활함의 표본과도 같은 목사의 이야기를 사례로 들면서 저자는 선한 것의 감동적인 환상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언한다. 지혜로움을 뜻하지 않고 영리함을 뜻하는 교활함의 기본적 개념은 오디세우스 이야기나 마키아벨리 저작물을 통해 탐구한다. 교활함은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필수 항목일 수도 있다. 전혀 교활하지 않은 포커 플레이어,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 같은 정치가는 상상하기 힘들다. 예나 지금이나 교활한 생각과 행동은 개인의 삶과 법과 정치에, 심지어 학문과 사상 속에도 체계적으로 녹아들어가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면 교활함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스스로의 교활함에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교활함의 영역에서 합리성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도덕성이라는 3개의 개념은 분리되기 힘들기 때문이다.2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가장 영향력 있는 책 ‘해리포터’ 1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지난 25년 동안 독자와 출판계에 큰 영향을 끼친 25권의 책을 선정했다. 1위는 1997년 처음 출간된 해리포터 시리즈 1편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뽑혔다. 주인공 해리가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을 얻고 부모님이 물려주신 ‘사랑’의 힘을 실감하면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법사의 돌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2위는 ‘딥 엔드 오브 더 오션’으로 어머니가 친구들 모임에 함께 데리고 간 아이를 잃어버린 뒤 겪는 고통을 그린 소설.1993년 영화로 제작됐고 한국 관객들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로 기억하고 있다. 3위는 ‘다빈치코드’가 차지했다.2003년 3월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소설로 전세계에서 7500만부가 인쇄됐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자식을 뒀다는 가설에서 출발, 기독교를 왜곡했다는 논쟁이 확산됐다. 2004년 발간된 ‘9·11 사건 보고서’는 4위에 랭크됐다.5위는 1993년 출간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 및 생활 속에서 만나는 작은 감동을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서술한 책이다. 1992년 출간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6위.“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에 둘 사이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1992년 출판된 ‘앳킨스 박사의 신 다이어트 혁명’은 7위를 차지했다. dawn@seoul.co.kr
  • 고바우 영감을 알고 계십니까?

    고바우 영감을 알고 계십니까?

    최근 대표적인 정치풍자 만화인 고바우 영감과 김성환 화백을 다룬 책 《고바우 영감을 알고 계십니까?》(쿠사노네 출판사)이 일본에서 출간됐다. 지은이는 2006년 3월 일본 교토(京都) 세이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만화 박사 학위를 받은 정인경 씨. 《고바우 영감을 알고 계십니까?》는 정인경 씨의 박사 논문이었던 김성환 작가의 ‘고바우 영감’을 다룬 책으로, 고바우 영감이 탄생한 한국전쟁 무렵 김 화백의 스케치, 김 화백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경무대 똥통 만화’ 사건 등 수많은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학술 논문의 문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한 문체를 사용, 일본인들로부터 커다란 공감을 얻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만화가를 꿈꿨다는 정인경 씨. 그녀는 대학도 좀더 풍부한 간접 경험을 위해 사학과를 선택, 만화를 싫어하셨던 부모님도 결국엔 “만화가 발달된 더 넓은 세상에서 시야를 넓히라”며 일본 유학을 권하셨다고 한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간 정인경 씨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년 후. 그녀는 2000년 독일 하노버 엑스포 국제 만화전 입선, 2001년 제13회 黑潮만화대상 입선, 2002년 제5회 교토국제만화전 은상 수상을 비롯해 2004년엔 동양인 최초로 제6회 교토국제만화전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또한 2006년 제35회 일본 만화가협회상 특별상 수상, 현재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활동 집필 활동 등을 하고 있다. Q: 일본 교토대 박사학위 논문이 <김성환 작가의 고바우 영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발간된 책 《고바우 영감을 아십니까?》가 그와 관련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요? A: 2003년에 교토 세이카 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논문 테마를 담당 교수님인 요시토미 야스오 선생님과 의논한 결과,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진 고바우 영감과 저자이신 김성환 선생님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고바우 영감과 김성환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풍자만화인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증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는 전무에 가까운 현실입니다. 미력하나마 제가 먼저 연구를 함으로써 김성환, 고바우 영감에 대한 재조명, 또는 연구에 박차가 가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고바우 영감, 김성환 선생님의 업적을 객관적인 시점으로 분석,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습니다. 만화로 정권 비판을 했던 고바우 영감, 김성환 선생님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가 있었습니다. 풍자와 사회비판을 즐기는 한국 서민에게 있어 고바우 영감은 자신들의 대변자이자 분신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을 쓰면서 역사의 저변에서 민중을 움직이는 만화의 힘, 문화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고바우 영감, 김성환 선생님에 대한 한국에서의 바른 자리매김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선생님과는 어떠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요? A: 논문 작성에 있어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불가결했었습니다. 2003년 8월경 서울에서 인터뷰를 요청, 선생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Q: 개인적으로 김성환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저 역시 대표적인 만화인 고바우 영감을 좋아합니다. 당시의 언론 탄압, 검열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풍자를 통해 정권을 웃음거리로 만든 용기를 존경합니다. 고바우 영감은 한국 신문 4컷 만화의 정석과 같은 존재입니다만, 최근에는 그러한 4컷 만화가 신문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Q: 박사 학위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A: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박사학위는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에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림에 있어서도 학문에 있어서도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 어떠한 만화를 그리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포부가 있다면요? A: 사회풍자, 정치풍자 만화는 물론,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정치보다 세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한국에 언제 들어가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당분간 일본에서 저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그림보다 글을 쓰는 일이 많아졌으나, 글을 통해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의 제 생각을 일본 분들에게 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젠가는 세계 어디에서든지 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도록, 그리고 감동받는 그림을 그리게 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어_조혜린 <삶과꿈 기자>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마왕 ‘폐인 드라마’로 뜬다

    마왕 ‘폐인 드라마’로 뜬다

    지난 21일 첫 방송된 KBS2 수·목드라마 ‘마왕’이 초반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소수의 마니아 시청자층을 만들어내며 여론을 이끄는 이른바 ‘폐인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마왕은 천사와 악인의 두 얼굴을 지닌 천재변호사 오승하(주지훈)와 범인 잡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않는 의리파 형사 강오수(엄태웅)가 초능력을 지닌 도서관 사서 서해인(신민아)과 펼치는 사랑이야기를 그린다. 특정인의 소유물에 손을 대기만 해도 소유자의 정보를 읽어내는 초능력인 ‘사이코메트리’를 드라마의 주요 소재로 삼아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또 2006년 MBC 드라마 ‘궁’으로 스타가 된 주지훈과 2005년 KBS2 드라마 ‘부활’로 얼굴을 알린 엄태웅의 카리스마 대결 또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방송 첫 주 마왕의 시청률은 다소 저조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22일 마왕의 시청률은 8.7%로 동시간대 경쟁 드라마인 SBS ‘마녀유희’(16.3%),MBC ‘고맙습니다’(14.6%)에 뒤처졌다. ●네티즌 시청소감 1만 1000건 돌파 그럼에도 네티즌들의 관심은 경쟁 드라마를 압도한다.27일 현재 마왕의 드라마 게시판에는 1만 1000 건이 넘는 게시글이 올라와 마녀유희(3100여건), 고맙습니다(2500여건)의 게시글 수를 합친 것보다도 2배 가까이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마왕 지지자들은 “경쟁드라마와의 시청률에 기죽지 말고 ‘엄포스’(엄태웅의 극중 카리스마를 일컫는 말)를 즐기며 ‘닥본사’(닥치고 본방송 사수의 준말)하자.”는 등의 글을 올리며 제작진과 마왕 시청자들을 격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콘텐츠 생산자가 해야 할 드라마 홍보를 콘텐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담당하는 ‘기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작가주의´ 산물… 1998년의 ‘거짓말´ 이러한 폐인 드라마 문화는 1990년대 등장한 ‘작가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드라마 작가의 역량이 높아지면서 작가만의 독특한 상황설정과 감성적 문체가 이른바 ‘코드’를 공유하는 시청자층에게 강하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시청자들이 배우가 아닌 작가를 보고 드라마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폐인 드라마의 원조는 1998년 KBS2의 ‘거짓말’. 당시 드라마를 집필한 노희경 작가 특유의 감성적 대사와 이성재, 배종옥, 유호정 등 배우들의 호연이 맞아떨어지며 PC 통신상에서 수많은 드라마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종영된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을 카페들이 있을 정도. 노 작가는 99년 MBC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배용준·김혜수 주연)를 통해 또 한 차례 ‘우·정·사 폐인’들을 양산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인정옥 작가가 MBC를 통해 2002년 ‘네멋대로 해라’(양동근·이나영 주연)와 2004년 ‘아일랜드(양동근·이나영·현빈·김민정 주연)’를 통해 폐인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갔다.2005년에는 김지우 작가가 KBS2드라마 ‘부활’(엄태웅·소이현 주연)을 통해 ‘부활패닉’(드라마 부활 마니아를 일컫는 말)을 만들어냈다. 당시 부활은 MBC ‘내 이름은 김삼순’에 밀려 10% 안팎의 시청률로 고전했지만 게시판 글이 200만개를 넘어서며 DVD로까지 출시되는 등 네티즌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현재 마왕에 대한 지지는 부활패닉들 덕분이기도 하다. 사실상 ‘마왕’과 ‘부활’은 한 핏줄을 가진 드라마. 김지우 작가가 집필했고, 엄태웅이 형사로 출연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복수극이라는 드라마 설정과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이야기 전개 또한 똑같다. 마왕을 연출하는 박찬홍 PD는 “부활과 마찬가지로 마왕 또한 빠르고 경쾌한 스토리 전개와 타로카드, 박하사탕, 오려붙인 편지와 사진 등 사건해결의 여러 실마리 등을 적절히 배치해 작품성 있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연아 ‘삼중고’ 넘는다

    “이제 정말로 간다. 비행시간 13시간 반, …” 18일 ‘은반 여왕’ 김연아(17·군포 수리고)가 2주 남짓의 캐나다 전지훈련을 마치고 국제빙상연맹(ISU) 피겨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도쿄로 날아가기 직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말이다.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대회에서 우승한 뒤 두 번째 메이저대회에 도전하는 비장한 각오가 여고생다운 솔직한 문체 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허리부상과 억지로 발에 맞춘 스케이트화, 그리고 라이벌의 안방에서 ‘은반의 퀸’을 다퉈야 하는 중압감 등 ‘삼중고’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준비는 모두 끝났다.‘종달새’는 도쿄에서 또 날아오를 수 있을까. ●전지훈련… 시간쪼개기 대회 개막 하루 전인 18일 오후 일본 도쿄에 입성한 김연아의 캐나다 전지훈련은 분·초를 다투는 빡빡한 스케줄 속에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허리부상이 쾌유되지 않았기 때문. 김연아는 새벽 6시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치러낸 훈련 틈틈이 치료를 받았다. 훈련량도 몸상태에 맞게 조절했다. 주치의로부터 “대회에 참가하는 데 지장은 없다.”는 결론을 얻어내긴 했지만 씻은 듯이 나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전훈 당시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강도높은 기술 훈련보다는 매끄러운 동작 다듬기에 무게를 더 뒀다.“면서 “아울러 자신의 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여자 싱글이 시작되는 23일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닷새. 스케이트 부츠의 적응 여부도 몸 상태만큼 중요한 대목이다. 당초 일본에 주문한 새 부츠가 맞지 않아 또 다른 신발로 급히 갈아신은 김연아는 적응에 필요한 한 달의 시간을 겨우 채웠다. ●45명 모두가 라이벌 김연아가 세계 정상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뿐이 아니다.ISU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대회 여자 싱글에서는 매우 격렬한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마오와 김연아 외에 지난 대회 챔피언 키미 마이스너(18·미국)와 유럽선수권 우승자 캐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3위를 차지한 사라 마이어(스위스) 등도 유력한 우승 후보들로 점쳤다. 대부분 김연아(7위)보다 한수 위의 랭킹 보유자다. 김연아도 일본 입성 인터뷰에서 “시즌 마지막 대회를 좋은 결과로 끝내고 싶다. 마오 1명만 라이벌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회가 최대 라이벌 마오의 안방에서 벌어지는 터라 중압감은 더 크다. 대회조직위원회는 18일 오후와 19일 오전 등 두 차례 공식 훈련시간을 공평하게 배정한 뒤에도 마오에게는 이틀 먼저 대회장에서 적응훈련을 할 수 있도록 특별대우를 해줬다. 도쿄체육관 특설링크에서 대회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 꼼꼼한 빙질 점검은 필수다. 마오가 예상보다 홋카이도 비밀훈련을 일찍 끝내고 도쿄에 도착한 것도 이 때문. 그만큼 김연아는 마오에 견줘 불리한 입장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Book Review] 조선 최고 문장가 박지원 21세기 부활

    “나는 이것이 바로 저것이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초상화가 아무리 실물과 닮았다 해도 그림이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은 산천이며 기후가 중국 지역과 다른데도 글 짓는 법과 문체를 중국에서 본뜬다면 아무리 고상해도 거짓될 뿐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이덕무의 문집 ‘영처고’의 서문으로 쓴 글이다. 조선시대 편협한 사고방식과 고루한 중국 답습에 빠져 있던 양반네들에게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그의 일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문집 ‘연암집’ 완역판(신호열·김명호 옮김, 돌베개 펴냄)이 처음으로 나왔다. 남북한을 통틀어 연암집 완역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암 연구사의 중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3권으로 정리된 이 책에는 연암의 한시, 서간문, 비문, 서문, 발문, 소품문, 한문소설 등이 빠짐없이 수록돼 있다. 특히 198행에 이르는 장편 한시 ‘해인사’를 비롯,40여편의 한시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완역된 연암의 문집은 ‘열하일기’ ‘과농소초’ 등이 있다. 또 1960년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 번역·출간한 ‘박지원 작품 선집’이 연암 연구에서 일종의 텍스트 역할을 했지만 부족한 면이 많았다. 이번 완역판은 한학의 대가인 우전 신호열(1914∼1993) 선생이 1978년부터 ‘연암집’ 강독회를 열면서 구술한 국역 초고를 그의 제자인 연암 전문가 김명호(54) 성균관대 교수가 정리해 세상에 선을 보였다. 사제간의 학문적 열정이 연암집 완역이라는 결실을 일궈낸 것이다. 김 교수는 고전 국역 전문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의 의뢰를 받아 2년여 작업 끝에 2005년 ‘국역 연암집’(전2권)을 발간했으나 이번에 4000여개의 주석을 붙이고, 교정까지 더해 전3권의 완역판을 새로 냈다. 김 교수는 연암집 완역과 함께 연암의 소설 10편, 산문 75편, 시 15수 등 모두 100편의 대표작을 뽑아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는 제목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연암 박지원 문학 선집’을 동시에 펴냈다. 김 교수는 ▲문예성, 역사성, 현대성 ▲개성, 인간미 ▲시기별 안배 등을 작품선정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연암이 조선 후기의 가장 탁월한 ‘소설가’였던 점을 감안,‘호질’ ‘허생전’ ‘일야구도하기’ 등의 소설을 1부로 구성했다. 2부에 서문, 비문, 서간문 등 연암의 대표적인 산문들을 배치했다.3부는 한시들로 마무리했다. 연암집 완역판이 전공자들을 위한 학습서인 반면 ‘선집’은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보급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연암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강렬한 매력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탈근대를 외치고,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대에도 연암의 문학은 전혀 낡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암집 완역에 이어 곧 ‘연암 평전’까지 완성할 예정이어서 연암 박지원의 삶과 문학이 어떤 형태로 그려질지 주목된다. ‘연암집’ 545∼593쪽, 각권 2만 5000원.‘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554쪽,1만 8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책꽂이]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1901(지그프리트 겐테 지음, 권영경 옮김, 책과함께 펴냄) “제주도 한라산처럼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광경을 제공하는 곳은 지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두개의 아네로이드 기압계로 신중하게 측정해본 결과 분화구 맨 가장자리 높이는 해발 1950m다.” 독일 베를린 태생인 저자는 처음으로 한라산 높이를 1950m로 측정한 지리학자이자 기자. 쾰른 신문사 기자로 1901년 조선을 방문해 이 여행기를 썼다.‘스웨덴기자 아손,100년전 한국을 걷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1920∼1940´ 등과 같은 맥락의 책이다.1만2000원.●인물로 본 8·15 공간(장을병 지음, 범우사 펴냄) ‘8·15 정국’의 주역인 여운형, 김구, 이승만 세사람의 정치활동과 미국과의 관계를 살폈다. 해방 정국이 아니라 8·15 정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해방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미국과 소련의 군정하로 편입된 만큼 가치중립적 차원에서 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원로 정치학자인 저자는 여운형과 김구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해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는 조화될 수 없어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이승만의 주도로 대한민국이 수립됐지만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은 동족상잔을 불러일으키는 사단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1만5000원.●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3∼5(미하엘 슈튀르머 등 지음, 김남섭 등 옮김, 북폴리오 펴냄) 1권 ‘중국의 세기’,2권 ‘영국의 세기’에 이어 나온 러시아, 독일, 아일랜드 세기편. 러시아편에서는 제정 러시아 시기를 거쳐 1,2차 세계대전과 1917년 사회주의혁명을 겪어낸 러시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 준다. 독일편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나치의 나라 독일의 역사를 다룬다. 아일랜드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민족의 서사시’라는 부제가 붙었다. 정치·군사·종교적으로 투쟁을 거듭한 나라 아일랜드. 그러면서도 조이스, 베케트, 예이츠를 낳고 록그룹 U2를 낳은 아일랜드를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소개한다. 각권 5만원. ●색채의 마력(하마모토 다카시 등 지음, 이동민 옮김, 아트북스 펴냄) 금색과 노란색은 비슷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위상이 매우 달랐다. 금색은 기독교 사회에서 신과 같은 권력을 상징했고, 일본에서도 금각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립식 황금 다실에서 볼 수 있듯 위력이 대단했다. 반면 파란색은 고대 유럽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의 색이라서 불길하고 야만스럽다고 생각됐지만, 대항해 시대에 인도에서 인디고라는 염료를 수입하면서 질 높은 파란색이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 혁명 때는 파란색 제복을 입었던 왕실근위대가 민중의 편에 서면서 파란색은 국민의 색이 됐다. 색채에 관한 에세이.1만2000원.●과학의 수사학(앨런 그로스 지음, 오철우 옮김, 궁리 펴냄) 과학자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는가를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 다윈의 ‘종의 기원’, 베이컨의 ‘새로운 애틀랜티스’, 뉴턴의 ‘프린키피아’, 왓슨의 ‘이중나선’ 등에 나타난 문체와 논거 배열 순서 등을 살폈다.1만5000원.
  • ‘분노와 폭력의 21세기’ 냉소적 접근

    1988년 한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들끓게 했다.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그의 열두명의 아내를 창녀에 비유해 출간 즉시 격렬한 논란에 휩싸인 살만 루슈디(60)의 ‘악마의 시’가 바로 그것이다. 루슈디는 이슬람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고, 영국은 이 사건으로 이란과 단교했다. 루슈디 지지 사설을 실은 미국의 한 신문사는 폭탄테러를 당했고, 이 책의 일본어 번역가는 살해됐다. ‘분노’(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펴냄)는 이 문제적 작가가 2001년에 발표한 액자소설 형식의 작품이다. 인도 뭄바이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한 루슈디는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필치와 장중한 문체를 구사하는 세계적인 작가다. ‘분노’는 루슈디가 영국 도피생활을 청산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쓴 첫 작품. 작가는 이 소설에서 ‘분노와 폭력의 21세기’를 냉소적으로 그린다.케임브리지대 사상사 교수인 말릭 솔랑카는 학문적인 삶에 염증을 느끼고 종신교수직을 내던진다. 학교를 그만둔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온다. 인형들이 나와 대담을 나누는 방송사 철학 프로그램의 기획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솔랑카는 자신이 만든 인형이 저속한 대중의 아이콘으로 변질돼 가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인형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벌인 뒤 살인충동을 느낀 그는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홀로 미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모든 과거가 사라지고 현재만 있을 것 같은 미국에서도 끊임없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방황을 거듭한다. 평생 죽음의 위협 속에 떠돌아야 했던 작가 자신의 내면을 읽는 듯하다.1만 4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문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최기숙 지음

    한문 문체에 ‘전(傳)´이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의 독특한 행적을 기록하고, 거기에 교훈적인 내용이나 비판을 덧붙인 글을 가리킨다.‘문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최기숙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문인들이 남긴 ‘전´ 중에서 중인·평민·천민이 주인공인 것들을 모아 ‘전´의 작가와 주인공들이 나눴을 법한 대화를 재구성한 책이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홍양호·김조순 등 권세 있는 집안 사람들이 남긴 ‘전´뿐만 아니라 성대중·이덕무 같은 서얼 출신의 저자, 조희룡·유재건 등 중인 출신과 정래교·김희령·김낙서 같은 평민 작가의 ‘전´까지 두루 살핀다. 타고난 지위와 명예가 없는 조선의 마이너리티는 사대부 문인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들 중에는 학식이나 문장, 인품이 사대부 못지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풍류패를 이끈 이패두와 거지 두목의 이야기를 담은 성대중의 ‘개수전´, 미인을 돌처럼 본 미소년 이야기인 조희룡의 ‘천흥철전´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1만 1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Seoul In] 3일 종이공예 무료특강

    동대문구(구청장 홍사립) 3일 오후 3시30분 이문체육문화센터 3층 소강의실에서 ‘종이공예 무료 공개특강’을 한다. 전문 강사 송미령씨가 휴대전화줄, 종이 액세서리 등을 만드는 법을 강의한다. 선착순 15명을 모집하며 문화센터 1층 접수처에 접수하면 된다. 이문체육문화센터 963-0534.
  • [Local] 동대문구 22일 주민 무료 건강검진

    동대문구(구청장 홍사립) 22일 오전 10시∼오후 3시 이문체육문화센터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주요 검진 내용은 당뇨·혈액·요당·혈압·초음파 검사 등이다. 체지방 검사를 통해 체내지방률, 비만도 등도 측정한다. 무료 검진에는 의료법인 참사랑병원의 전문의 3명과 간호사 4명이 참여한다. 오는 20일까지 센터 1층 접수처에 사전 등록을 해야 한다. 이문체육문화센터 963-0535.
  • [누드 브리핑] ‘꽁초단속’ 본업추월?

    강남구의 공초 단속이 성과를 거두면서 과태료 부과금액이 4억 60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노원구가 최근 벌거벗은 채 하수도로 도망친 날치기범 추적에 하수관 탐사로봇을 활용토록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표창을 주기로 했습니다.●꽁초 과태료 4억원 돌파 지난 1월2일부터 시작된 강남구의 꽁초 단속이 지속되면서 한달여 만에 과태료 부과금액이 4억 60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꽁초 없는 거리가 될 때까지 단속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인데요. 단속이 강화되면서 꽁초를 버리는 행위가 다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연말 과태료 누계치는 3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데요. 짭짤(?)한 수입을 놓고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부업이 본업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답니다.●하수도 탐사로봇 동원 직원 표창 검토 상계동 백병원에서 지갑을 훔치려다가 들키자 알몸으로 하수도로 도망친 날치기범(서울신문 1월31일 7면 보도)이 화제가 됐었는데요. 노원구가 이 날치기범 검거에 하수도 로봇을 동원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직원의 표창을 검토하고 있답니다. 이노근 구청장은 “아무리 범법자지만 그 좁고 어두운 하수관에서 나갈 곳도 찾지 못한 채 방치됐으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라며 “범인도 잡고 목숨도 구한 만큼 그 직원을 표창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치수과 직원 이모(49·토목7급)씨는 경찰이 하수도 도면을 달라고 하자 “도면만으로는 탐색이 힘든다.”며 로봇 이용 아이디어를 제시했답니다.노원구는 현재 경찰에 이씨의 표창을 건의하는 한편 자체 표창도 검토 중이라고 하네요.●경쟁력강화추진본부가 헷갈려요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신설된 경쟁력강화추진본부(경본)의 상임위 배정을 놓고 시의회 상임위 간에 연고를 내세우며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경계가 애매한 경본의 업무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경쟁력과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는 경제과학위 배정이 마땅하지만 경본 업무의 대부분이 관광객 1200만명 유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화체육위원회와 밀접하기 때문이랍니다.논란 끝에 경과위에 낙찰됐지만 문체위 의원들이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후일담입니다.시청팀
  • “부동산 기사 구체적 자료로 승부를”

    “부동산 기사 구체적 자료로 승부를”

    서울신문 4차 독자권익위원회가 ‘부동산 기사’를 주제로 31일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으며, 중앙대 신방과 4년 임효진(전 중대신문 편집장)씨, 김경원 서정조세연구원 상임고문, 장영란 한중문예진흥원 이사장, 독자 오병학·정인순씨가 독자권익위원으로, 박재범 서울신문 미디어지원센터장이 간사로 참여했다. ●임효진 부동산 기사는 한두사람의 사례를 일반화시켜 불안심리를 조장하기보다 구체적 자료로 승부를 걸어줬으면 좋겠다. 부동산 정보 기사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렵다. 어려운 용어는 해설을 첨부해줬으면 한다. 부동산 정책을 분석할 때는 서민과 실수요자 목소리가 강하게 실렸으면 좋겠다. ●김경원 부동산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을 때 특정 몇몇 전문가만 언급되는데 같은 사람을 계속 취재하는 것은 문제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논조를 신중하게 가져갔으면 한다. 정책은 발표할 때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더라도 신문사 입장은 어디로 갈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신문사 나름의 철학을 설립할 시점이 됐다. ●오병학 대부분의 독자들은 언론 보도로 부동산 정책을 이해하고 평가한다. 부동산 정책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물의 깊이와 같다.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언론 보도가 되어야 한다. 집값 잡는다고 정책 발표가 나왔는데 며칠 뒤 어느 지역이 몇 % 올랐다는 보도가 나온다. 극소수의 투기꾼을 위해 언론이 뛰어다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서민의 입장을 고려하고 희망을 주는 기사를 써줬으면 한다. ●장영란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고 특정 지역만을 논하는 것은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여러 부동산 전문가의 분석을 담아 다양한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정인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불신이 많이 생겼다. 신문, 방송, 정치인을 모두 못 믿겠다. 신문에 부동산 기사를 낼 때는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문형 1월의 서울신문 부동산 기사를 보면 열심히 분석은 했지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부동산 문제는 교육, 금리, 국가균형발전, 인구분산, 주거철학 등에서 국민은 변하는데 정부 정책은 못 따라가서 발생한다. 부동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진단이 언론의 역할이다. ●임효진 지역 행정기사가 홍보성이 많고 탐사보도가 없다고 지적했는데 최근 기획 및 탐사보도 기사가 늘어나서 뿌듯하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병자호란 다시읽기’‘한양의 중인’과 같은 기획은 재미있으나 내용이나 전개방식은 분량이 길어서 지루했다. 문체가 신선해지고 필진이 시사적 감각을 보태 현재 한국 사회를 꼬집어주는 시도가 있으면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한매일신보 1905년 논설 ‘시일에 우방성대곡’ 필자는 신채호 아닌 박은식”

    단재 신채호가 썼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1905년 12월28자 대한매일신보 논설 ‘是日에 又放聲大哭(시일에 우방성대곡)’은 실제 필자가 백암 박은식임을 세밀히 고증한 주장이 제기됐다. 경북대 김주현 교수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30일 열리는 월례학술회의에서 이런 내용들을 담은 ‘신채호 문학의 자료발굴 및 원전확정 연구’를 발표한다. 김 교수가 이 논설의 필자를 단재가 아닌 제3의 인물로 간주하는 근거는 크게 세가지이다. 논설이 발표되던 무렵에 단재는 이 신문에 관여하지 않았고, 문체가 단재의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글에 나타난 사상 또한 단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필자를 추적한 결과 논설 게재 무렵 대한매일신보 주필은 박은식이었으며,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통감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입사한 날짜는 1907년 11월6일임을 밝혀냈다. 김 교수는 ‘시일에 우방성대곡’의 ‘청아일언(聽我一言)하시오.’ 등의 청유형 문체는 박은식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문체이자 자강과 자립에 대한 신념, 자녀교육 강조, 권력자 비판 등은 ‘백암 박은식전집’에 수록된 글에 자주 나타나는 사상이라고 지적했다.‘시일에 우방성대곡’은 장지연이 1905년 11월20일 황성신문에 발표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이 나온지 한달만에 비슷한 제목과 논조로 일본의 무단침탈을 통렬히 비판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고비사막의 절대 고독

    “별똥별이 떨어진다/그것은 적막을 가르며 적막 속으로 떨어진다/우리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다/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의미 있는 것에서 의미를 지워버린다/사막의 초대는 그렇다//”(‘별똥별’ 가운데) 생태시인 최승호(53)가 지난해 5월 열흘간 고비사막을 횡단하면서 만난 ‘고독’을 열두번째 시집 ‘고비’(현대문학 펴냄)로 풀어냈다. 시집에 실린 72편의 시들은 모두 횡단여행 중 쓴 것들로 대부분 미발표작이다. 회갈색 풍경과 바람만이 존재하는 고비사막의 한가운데서 시인이 본 것은 오로지 ‘무(無)의 풍경’이었다. “어느 날 내가 눈을 떴을 때/사방이 텅 비어 있었다/아무것도 없었다/나는 놀랐다//여기가 무밭이었다면/사방이 무뿐인 어마어마한 무밭에서/내가 애벌레였다면//”(‘지평선’ 가운데) 시집에 수록된 시들 가운데 ‘우울’ ‘고독’ ‘고요’ 등의 표제를 단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띈다. 시인이 만난 불안과 초조, 고독, 그리고 공포가 모두 오롯이 시에 녹아 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사막에서도 시인은 해학을 놓치지 않는다. “걸어간다/그들이 나를 볼 수 없는 곳으로/뒤를 돌아보며 걸어가야 한다/더 이상 내가 보이지 않는 곳/똥 눌 자리를 찾아/먼 지평선 쪽으로 한참 걸어가다//이쯤이면 내가 안 보이겠지/사막 한복판에 쭈그려 앉아보는데/어! 지붕이 없다 벽이 없다 문짝이 없다//(‘시선’ 가운데) 최 시인은 올해 등단 30년째를 맞았다. 첫 시집 ‘대설주의보’ 이후 2∼3년마다 꼬박꼬박 새 시집을 선보이면서 독자들을 자신만의 시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동안 보여줬던 회화적 이미지의 시 경향과는 달리 이번 시들은 음악성이 강조된다. 반복과 리듬이라는 새로운 ‘최승호식 문체’가 완성됐다는 평가다. “내가 생각하는 뼈의 음악은 그렇다. 아무런 악보도 없이 뼈로 뼈를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흔든다. 청중으로는 적막이 제일이고 연주자로는 바람이 적합하다.”(‘뼈의 음악’ 가운데)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고종·순종실록 완역 인터넷으로 본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통치기록이 완역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렬)는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 열람할 수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서비스에 고종·순종실록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국사편찬위는 2005년 12월부터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sillok.history.go.kr)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일제때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빠져 있었다. 왜곡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고종·순종실록은 국보뿐 아니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빠져 있다. 국사편찬위는 “두 실록은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규례에 맞게 편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의 왜곡이 심해 실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두 실록과 나머지 실록의 위상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황제의 실록이 조선왕조 마지막 순간의 통치자료인 만큼 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는 고종·순종실록은 한문 320만자에 달하는 분량이다.원문에는 없는 17종의 문장 기호를 추가했으며 기존 조선왕조실록과 동일한 문체로 수정한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인사]

    ■ 법무부 ◇승진 (일반직 고위공무원)△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 林永秀(부이사관)△재정기획관 韓俊燮△교정기획과장 宋永三■ 환경부 ◇과장급 전보 △민간환경협력과장 尹明鉉△유해물질과장 직무대리 方鍾植△산업폐수과장 沈戊慶△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단장 朴永錫△낙동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林鍾賢△금강유역환경청 환경관리국장 金善鎬△영산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金正豪■ 국회사무처 ◇승진 (관리관)△기획조정실장 李秉吉△법제〃 金仁喆(이사관)△감사관 具秉會△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문위원 鄭求福△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심의관 李權雨△국회사무처 李龍遠◇이사관 전보△농림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 林秉圭△건설교통위원회 〃 이율복△의정연수원장 成碩鎬△산업자원위원회 전문위원 李元鐸△국회사무처 李吉成◇이사관 파견△중앙공무원교육원 李晉浩△한국무역협회 池星培△한국국방연구원 李圭健△한국디자인진흥원 鄭然重◇부이사관 전보△법제실 행정법제심의관 林塡垈△의사국 의정기록관 金要煥△농림해양수산위원회 입법심의관 金九△건설교통위원회 〃 朴明洙△정보위원회 〃 朴昌奎△예산결산특별위원회 〃 韓功植△국제국 의원외교정책심의관 金匡默△의정연수원 교수 洪承邱△관리국 시설심의관 安聖億△〃 공업심의관 鄭柱星△법제실 경제법제심의관 李仁庸△국회사무처 金炳鮮 孫石昌■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 관리직△정보전략실장 鄭基文 ◇경륜운영본부 관리직 △지점총괄실장 金弼鉉 ◇본부 실장급 △기획조정실장 李碩鎬 △경영혁신〃 崔容碩 △경영지원〃 金君大 △재무관리〃 李明鎬 △문화사업〃 孫周滿 ◇경륜운영본부 실장급△고객만족실장 吳治政 △공정〃 具滋玹 △운영〃 崔禎鎬 △훈련원장 金正洙 △심판실장 南永哲 △상봉지점장 權五烈 △일산〃 金大根 △장안〃 趙崙柱 △분당〃 孫商瑢 △길음〃 申凞涉 △당산〃 安景燦 △유성〃 李相赫 △인천〃 韓圭錫 △시흥〃 文昌薰 △논현〃 金光凞 △올림픽공원〃 金潤洙 △의정부〃 朴仁鎬 ◇올림픽파크텔운영본부 실장급 △총지배인실장 陰斗完 ◇경정운영본부 실장급 △고객만족실장 崔尙憲 △경주〃 李鉉槿 △운영〃 李章信 ◇스포츠레저운영본부 실장급 △스포츠산업실장 安京元 ◇체육과학연구원 실장급 △정책개발연구실장 李龍植 △전문체육〃 崔奎正 △행정지원〃 金鍾奭 ◇본부 팀장급 △홍보팀장 鄭孝衡 △정보기획〃 金奭斌 △정보지원〃 柳泳勇 △전략기획〃 李孟圭 △경영평가〃 李鍾俊 △예산〃 尙炯錫 △변화추진〃 韓淙圭 △SR경영〃 崔藝瀞 △총무〃 鄭炳燦 △인력관리〃 崔昌烈 △노사협력〃 金光植 △기금지원〃 李允喜 △자금관리〃 李提遠 △회계〃 蔡秉三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심사평

    올해 서울신문 평론 응모작 가운데 10여 편 이상이 상당한 질적 수준을 확보하고 있어, 그 우열을 가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최종까지 논의 대상으로 남은 것은 ‘청춘의 시학, 기억의 윤리학-박상우론’(한민주),‘멸과 환의 리토르넬로-하성란론’(박창범),‘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이장욱론’(이찬)이다. 세 편의 글로 압축함에 있어서, 제일 큰 기준으로 삼은 것이 비평정신이다. 비평은 동시대의 문학은 물론이고, 문학이 포괄하는 사회문화의 제반 측면에 대한 비평가의 시선과 전망을 핵으로 삼는다. 이것은 비평이 단순한 작품 해설이 아니라는 점과 연결된다. 그것은 세계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혁하려는 창조적인 예술행위의 하나이다. 그러나 많은 응모자들이 이 점을 종종 잊고 있다. 가령 김영하, 한강, 이성복의 작품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몇 편의 글들의 경우,‘왜 이 작품인가’라는 비평의식이 미흡했다. 한민주씨의 글은 박상우의 작품을 차분한 어조로 정밀하게,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조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박상우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박창범씨와 이찬씨의 글을 두고 심사자들은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글 모두 작품에 대한 독창적이면서 심도 있는 분석, 논리 정연한 전개가 단연 돋보였다.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신인으로서의 패기가 두 글의 우열을 갈라놓았다. 박창범씨의 글은 하성란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유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좀더 과감하게 자신의 비평관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심사자들은 이찬씨에게 당선의 영광을 돌리기로 했다. 이찬씨의 ‘서정시’에 대한 도발적인 접근은, 작품에 너무 깊이 몰입해 서정시가 갖는 많은 장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간 거슬렸다. 그러나 역으로 그것은 신인만이 가질 수 있는 당찬 패기이자 뚜렷한 비평정신이며, 앞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비평세계를 개척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점에 심사자들은 동의하였다. 이찬씨의 의욕적인 비평활동을 기대한다. 황현산, 문흥술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이장욱론/이찬

    1. ‘인공정원’ 으로서의 ‘시’를 넘어서 시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어떤 체험의 순간을 지금-여기로 다시 불러오는 존재이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시작품들 가운데, 이 순간을 상투적인 표현들로 재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구체적인 체험 속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생(生)의 순간들과 그 감각적 비의(秘義)들은 관례화된 문법을 통해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장르의 전래적인 형식과 표현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되었든, 지금까지 ‘시’가 보존해 온 관습적 전범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과격하게 실험하는 ‘전위적인 현대시’가 되었든, 이러한 ‘상투성’으로부터의 이탈은 ‘문학’(literature)이라는 현대적인(modern) 산물에 요구되었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문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다. 이장욱의 시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과 풍경들을 1인칭 화자의 감정과 의식과 가치를 표상하기 위한 대리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왕(旣往)의 관례화된 ‘시’의 문법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서정은 만상을 일인칭의 내면적 고도(高度)에 걸어두는 방식이다.”(‘꽃들은 세상을 버리고’,《창작과 비평》,2005년 여름,70쪽)라는 그의 진술은 우선 ‘시’(‘서정’) 장르의 일반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통상적인 ‘시’ 문법에 대한 그의 반감(反感)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장욱이 재래(在來)의 ‘시’의 문법에 대해 품고 있는 회의와 반감은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 세계의 ‘만상’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동일적인 영혼을 표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유(專有)하며, 마침내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상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휘발시키는”, 조작된 ‘인공정원’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이러한 ‘인공정원’으로서의 ‘시’(‘서정’)가, 세계의 그 풍요로운 다양성을 또한 사물과 사건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육체적 질감들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밀폐된 서정적 우주”로 복속시켜 버리거나 혹은 그 바깥으로 추방시킨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그에 따르면,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시’의 문법은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시인의 ‘일관된 가치와 의미와 정서’에 의해 세계의 만상들에 얼룩져 있는 ‘혼탁한 사물성’을 그 바깥으로 밀어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조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1인칭 화자의 나르시시즘적인 ‘인공정원’이 가공될 수 있을 뿐, 세계 그 자체의 참다운 실상들이 발견될 수 없다. 2. 표상의 외부와 마주침의 유물론 “객관적인 아침/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깨어나고/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구름을 통과하는 비행기와/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리진다./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희미한 풍경 같아서.”(‘객관적인 아침’ 전문) ‘객관’(object)이란 철학적 인식론에서 주체의 의식 바깥에 놓여 있는 외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의 시선과 지시작용(designation)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어떤 미지(未知)의 영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곧 ‘객관’이란 주체의 의식 바깥의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 혹은 세계이기는 하나, 주체의 시선과 자기의식에 의해 호명되고 포획되어, 이미 ‘있다’고 알려진 어떤 인식적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장욱에게 ‘객관’은 이렇게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객관적인 아침’은 ‘나’와 ‘당신’과 ‘침묵’과 ‘종이 비행기’가 서로 ‘무관하게’ 자신들의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시간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아침’이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주체의 시선과 사유에 이미 포착되어 있는 어떤 외부적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의 자기회귀적인 의식의 궤도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 또는 사물 그 자체가 지닌 복수적 다양성을 표현한다. 기왕(旣往)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시작품의 경우라면, 위의 시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은 ‘단 하나의 소실점’을 위해 봉사하였을 테지만,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내면 풍경의 표상(表象)들로 고용되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 그것들은 시인이 설정한 ‘소실점’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의 존재를 보존한다. ‘내 시선의 끝’에서는 모든 사물이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 ‘그대와 나’라는 인간의 ‘시선 바깥’에선 ‘멸종 위기의 식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허공’에 ‘포자’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또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인간이 설정한 세계의 위계질서와 그것의 ‘소실점’ 역시 하나의 ‘희미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하늘’이라는 자연물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까닭은 분열되고 오염된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마음의 도원(桃園)’을 표상(表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은 자기 내부에서 발아한 동일자의 표상(representation)들만을 세계로부터 수집할 따름이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위(僞)와 악(惡)과 추(醜)를 볼 수 없으며, 그것들과 결코 마주칠 수 없다. 이 영혼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을 보며, 보고 싶은 것만을 고백하며, 고백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등뒤에 있다”는 ‘절규’의 첫 구절은 시인 이장욱이 가진 인식론적 지평을 축약하여 드러낸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다양한 상징적 편린(片鱗)들로 산포되어 나타난다. 이 편린들은 예컨대 “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두 그루 전신주는 아름답고 밤눈은 내리고 녹슨 제 땅에서 제 어둠을 파 내려갔으므로 단 한 번도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그 오래된 이야기”(‘이상한 나라’),“꽃은 15층 베란다에 서서 까마득한 지상을 가늠하는 자와 그 흐린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꽃은, 오로지 나무일뿐 인 무서운 나무들 사이에서 아직도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사라지는 꽃’),“하지만 너무 흔한 최면처럼 아직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이 너무 흔한 최면처럼 실편백에 내리는 빗물이, 다시 나를 이끈다는 것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돌아오지 않기 위해 내가 치를 수 있는 무엇이, 더 있었을 것이다”(‘너무 흔한 풍경’)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시구들은 1인칭의 나르시시즘적인 영혼이 웅변하는 ‘기억’과 ‘고백’과 ‘이야기’가 ‘거짓’이거나, 세계의 풍요로운 실상과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폐쇄적인 ‘아름다움’에 불과하다는 이장욱의 인식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이 볼 수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기 자신일 뿐이며, 그것이 도취하고 열망하는 자연의 풍경은 ‘너무 흔한 최면’일 따름이다.‘하늘’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리하여 모든 자연과 사물의 풍경이 ‘나’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에만, 시인은 ‘너무 흔한 풍경’을 재생하지 않을 수 있고,‘이 당대적 상투성의 거리’(‘상투적’)를 벗어날 수 있다. 이 벗어남은 1인칭의 고백적 화법이 마련한 자기 동일적인 표상체계 바깥으로부터 느닷없이 밀려닥치는 우발적 사건과 그것에 수반되는 ‘낯선 것의 폭력’을 통해 시작된다. 세계의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실재성과의 마주침은 바로 이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간 것이다.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가는 하오의 육신 쪽으로 수직 낙하하는 겨/울 잎, 겨울 잎 안에서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겨울 잎의 풍경 속을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으나./그것은 무성하고 울울한 저 너머, 횡단 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가 오래도록 통과할 숲의 풍경./나무에 깃들여 사라진 벌레들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의 어젯밤 꿈속을 나는 거/닐었는지도. 말하자면 그 꿈속의 눈 내리는 거리를./그러므로 이곳은 겨울 잎과 햇빛과 벌레들이 이루는 세/계. 뚜레주르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나오는 늙은 사내는/어젯밤의 아주 쓸쓸한 수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나는 떨어지는 겨울 잎에 눈을 두고 지나쳐갔으나 우/리가 그 겨울 잎이 기억하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의심의 여지가 없는 겨울 잎’ 부분) 이미 드러나 있는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사태들의 일부로서 성립된다. 우리가 그 자신들의 눈앞에 어떤 사물과 사건의 잔상(殘像)조차 데려다 놓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물과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화자가 ‘지나가는’ ‘겨울’의 ‘거리’에 드러나 있는 것은 ‘겨울 잎’이나,‘겨울 잎 안’에는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 것이’며,‘우리’가 ‘떠올리지 않’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들이 이루는 세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모든 1인칭의 시점(視點) 내부에 선재하는 명석 판명한 대자의식(對自意識)으로서의 ‘나’의 확실성이 아니라,1인칭 주체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만상들이며 그것들이 이루는 변화와 이행의 과정이다. 결국 시인 이장욱이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자 하는 것은 뚜렷한 형태와 공간적 점유들로 구분지어진 사물과 사건의 가시적(可視的)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구분의 경계들을 횡단하는 힘들의 배치이며, 모든 존재자들이 지닌 복수(複數)의 가면(假面)으로서의 ‘자세’와 ‘포오즈’이며,‘지나가’고,‘사라지’고,‘통과하’는 것으로서의 세계의 실재성이다.‘겨울 잎’ 속에는 ‘사라진 햇빛’이 ‘있었’듯이,‘나’와 ‘그대’의 ‘생’에는 ‘사라져가’고 ‘흘러간’ 것으로서 ‘무성한’ ‘잎 새’와 ‘숲’과 ‘천천히 사라진 햇빛’도 ‘있었던 것’이다. 설혹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명징한 감각과 사유가 아니라,‘꿈속을 거닐었는지도’ 모를 상상(想像)을 통해서만 겨우 감지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있었던 것’들이다. 위의 시에서 자주 활용된 ‘지나가다’,‘사라지다’,‘통과하다’ 등등의 동사들은 어떤 사물과 사건의 고정된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어떤 경계를 구분지울 수 없는 사태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동사들은 ‘시’ 장르의 통상적인 화법 내부에 선재하는 자기의식의 투명성을 표상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것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다양성과 그 변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러 시편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지나치다’,‘건너가다’,‘흐르다’,‘멀어지다’,‘스쳐가다’ 등과 같은 동사들 역시 세계의 ‘천변만화’하는 실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물과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이질성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표상적인 감정과 가치로 바꾸어버리는 ‘시’ 장르의 관례화된 문법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시적 전략의 하나이다. 3. 假面과 ‘脫’ 인격적 주체로서의 화장 이장욱의 시가 ‘시’ 장르의 통상적인 문법에 내재되어 있는 ‘유토피아적 자기회귀’라는 ‘상투적’인 ‘최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주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적 화자’를 단일한 감정과 의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전제하는 관례적(慣例的) 설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정적 자아’의 단일한 목소리를 ‘시적 화자’의 분열적이고 다수적(多數的)인 목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이며,‘서정’의 화법에 내재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순결성과 엄숙한 고백체를 조롱하고, 그것 속에 은폐되어 있는 숱한 가면(假面)들을 폭로하는 것이다. “감정은 어떤 포우즈 금홍아 금홍아 마당귀 화단에 잘린 벽돌들 녹슬어 고요한 철대문, 어쩌다 딱딱한 것들과 친해졌는지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게 엽서를 띄우고 싶어 이십세기와 (짱껭뽕)을 해서라도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 품에 안기고 싶네 하루 종일 내 딱딱한 그림자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에 골몰중인지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만한 일일뿐 금홍아 금홍아아 하지만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니?”(‘금홍아 금홍아’ 부분)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이상’(李箱)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적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이상’과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로 표기되는 여러 작중 화자들이 동일한 존재일 수 없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이상’(李箱)이면서 ‘이상’이 아니며, 또한 ‘이장욱(李章旭)이면서 ‘이장욱’이 아니기도 하다. 다시 말해,‘이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 혹은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인격적 실체로서의 고유명사 ‘이상’(李箱)이 아니라, 그가 어느 한 시점(時點)에서 취한 하나의 정념과 태도로서의 ‘나’(假面)일 뿐이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인격적 자기동일성을 전제하는 고유명사 ‘이상’(李箱)이거나 혹은 ‘이장욱’(李章旭)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황과 그 순간적 배치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정념(情念)과 태도로서의 ‘나’일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나’는 그 정황과 배치의 변화에 따라 무한히 변양(變樣)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부기(附記),“금홍이는 시인 이상의 애인이다.箱(1910-1937)과 나(1968-)의 불편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소설 ‘날개’,‘逢別記’,‘終生記’ 등에서 몇 구절을 차용했다.”에서 ‘箱과 나의 불편한 관계’란 하나의 자기 동일적인 인격체로서의 ‘이장욱’이 ‘이상’이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서의 시적 화자를 차용하거나 혹은 ‘이상’(李箱)의 목소리를 재연(再演)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불화(不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이상’의 목소리 속에 ‘이장욱’의 목소리가, 또는 ‘이장욱’의 정념(情念) 속에 ‘이상’의 정념이 서로를 전제하면서 공명(共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공명은 ‘이상’과 ‘이장욱’이라는 경험적 인격체 전반이 공유하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이 둘이 여전히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공명이 어떤 특정한 한 순간에만 존속(存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 만한 일일뿐”이라는 구절은 ‘시적 화자’, 더 나아가 모든 발화의 상황 속에 놓인 화자의 존재론적 특성을 축약하여 표현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시’ 장르가 전제해왔던 화자의 자기 동일성은 실상 ‘위조’된 것일 뿐이며, 화자는 시인의 전(全) 인격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시적 정황과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하나의 가면(정념)에 불과하다.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의 이러한 변양과 분열을 의식하지 못하는,1인칭 고백체의 화법은 ‘사기’,‘거짓’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사기치지 말라,高手는 그냥 느낀다, 그대 생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표식은, 그대의 육체이다”,“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당신이 당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됩니다.”(‘편집증 환자가 앉아있는 광장’) 등은 이장욱이 1인칭 화자의 자기애적(自己愛的) 순결과 정직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1인칭의 발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위조’와 ‘위장’과 ‘가장’을 들추어내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거의 모든 시 속에 스며있는 위악적(僞惡的) 포즈와 하드보일드 문체(hard-boiled style)는 1인칭의 발화 상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백적 화법의 위선(僞善)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혐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위선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하여,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시적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시적 화자를 자기의식(自己意識)의 명석 판명함을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주체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상성의 외부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병리적(病理的)이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혹은 괴물과 같은 존재자들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편집증 환자’,‘투명인간’,‘킬러’,‘도플갱어’,‘뱀파이어’,‘좀비’ 등과 같은 화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화자의 진술 자체를 신빙성(信憑性)이 결여되거나 불명료한 어사(語辭)들로 구성함으로써, 시작품 내부의 단일한 ‘의미화’(signification) 주체로서의 화자를 그 중심의 자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그를 지나 그녀를 지나 그대를/지나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정오를 지나 새벽을 지나 오/후 네 시를 지나 그리고 어느 이상한 날에 빈 공터와 당구/장과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문득 흥겨운 술집의 죽은 친/구의 화사한 여자들의 기나긴 과거를 걸어가는 어느 이상/한 날”(‘결국,’ 부분) “그렇지. 나는 어쩌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혹시 모른다. 행복할 리도 황폐할 리도 없는 바람들/이 애초에 공릉동의 주민이었는지도 혹시 모르지. 이곳/에서 모든 빛들은 현재형으로 명멸한다. 너무 상투적인/가? 하지만 그때 한 마리 늑대가, 월계동 쪽의 불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문득 망망한 비가/내렸는지도, 혹시 모르지. 그의 마른 등을 향해 몇 장의/ 낡은 신문이 날아들었는지도.”(‘공릉동의 바람 속으로’ 부분)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여행중이었던/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생각하는 사람’ 부분) 위의 시편들에서, 화자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를 명징하고 확실한 것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결국,’에서처럼,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동대문 운동장’과 ‘정오’와 ‘오후 네 시’라는 구체적 지시어들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상한’이라는 형용사의 집요한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언어의 체계 혹은 일상적인 개연성의 세계로부터 추방된다. 또한 ‘공릉동의 바람 속으로’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과거 추측의 의미를 지닌 어미(語尾),‘-이었는지도’의 반복과 기억의 불명확성을 표현하는 ‘모른다’라는 서술어의 반복에 의해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상실한다. 결국 그의 시의 화자들은 이러한 어법들로 인해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 이야기 등과 같은 의식 내용을 능동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라는 ‘생각하는 사람’의 한 구절은 화자인 ‘나’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화자를 ‘사로잡아’ 그를 지배하는 것처럼 언술됨으로써, 시의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주관)와 그 구성 요소로서의 대상(객관)의 관계를 역전(逆轉)시킨다.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된 “어쩌면 여행 중이었던 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라는 구절 역시, 화자의 진술을 합리적으로 독해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만들면서, 화자의 의식으로부터 기원하는 어떤 의미의 계열도 자명하지 않은 것이 되게 하거나 또는 어떤 신비에 둘러싸인 미지(未知)의 것이 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어사(語辭)들의 반복적 활용은 전래의 시적 관습에서 전제되었던 단일한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를 그 의미화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물러나게 하는 시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장욱의 시는 재래의 ‘시’ 장르에서 화자에게 관례처럼 부여되어왔던 의미화의 지배권을 박탈함으로써, 화자의 단일한 감정과 의식과 가치가 아니라,‘脫’인격체로서의 시적 주체의 복수적인 가면들과 정념들, 그리고 사물들 그 자체의 다양한 변양들을 시의 새로운 의미 내용으로 새겨 넣는다. 아마도 그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실재성과 마주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으로 이러한 시적 화법을 고안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4. 비선형적 시간과 존재의 주름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를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분열적 주체로 조형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시제(時制)이다. 그의 시는 시간의 일정한 단위 분절을 통해서만 수립되는 ‘현재’의 시제 속에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중첩시킨다. 즉 어떤 특정한 외연(外延)으로 수렴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그 외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비동시적인 사건들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서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되어지는 선형적(線形的) 시간의 투명성이 사라지게 되며, 그것의 명료한 경계 분할이 흐릿해지게 된다. “나는 오로지 지금 이곳에 있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작된다./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는 얼어붙는다./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온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결정’ 부분) “최선을 다해 개인적인 관계들을 생각하자/드디어 당신과 나는 10년 후의 야구를 이해한다./누군가 플레이 볼이라고 외치자/나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그리고 10년 후의 1루 베이스를 향해/필사적으로 달려갔다”(‘10년 후의 야구장’ 부분) “자꾸 다르게 보여/당신은 이미 태어났는데/당신은 사랑을 했었는데/당신은 지난해의 가을을 여행 중인데/당신은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막 떠올려 미소 지었는데”(‘정확한 질문’ 부분) ‘결정’에서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는 ‘다가온다’라는 현재시제 동사의 주어가 됨으로써 ‘지금 이곳’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10년 후의 야구장’에서는 ‘1루 베이스’가 ‘10년 후’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에서,‘달려갔다’는 과거시제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정확한 질문’에서는 ‘지난해의 가을’이라는 과거 시점의 명사가 ‘여행 중인데’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와 결합되는 시제의 혼란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제의 혼란과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공존은 어떤 특정한 현재적 사태 속에 감싸여져 있는 잠재성(virtuality)의 차원을 시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다. 위의 시들에서 표현된 ‘생각’과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화자의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명징한 자기의식과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 위에서 구축되는 주체의 실존적 동일성과 연대기적 서사(narrative)를 일그러뜨리는 존재의 주름들이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이다. 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시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예컨대,“일어나지 않았던(일어났던)”이라는 과거시제나 “일어나지 않을(일어날)”이라는 미래시제는 모두 현실성(actuality)의 척도를 통해서만 측정되고 구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드러나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현실성의 차원은 실상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 가운데 그 일부가 선택되거나 배제됨으로써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잠재성의 차원은 그러므로 일정한 외연을 가진 어떤 ‘현재’로 수렴되지 않으며,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늘 존속(存續)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의 주어진 물질적 사태로서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항상 ‘실재하는 것’(re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삼 분전의 잠’ 부분) 이 시를 단지 특정한 ‘잠’ 속에 나타난 잡다하고 무질서한 꿈의 내용 혹은 그 환상적 이미지들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화자의 현실적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망각과 오해와 무의식의 무한한 잠재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꿈속에서 우리는 ‘삼 분 전의 문’과 ‘삼십 년 전의 그대’와 ‘삼일 전의 기슭’이 동시에 결합되거나 병치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것’(과거)과 ‘일어나고 있는 것’(현재)과 ‘일어날 것’(미래)은 선형적인 질서를 벗어나 한데 뒤엉키며, 시간은 산술적 단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연대기(年代記)를 벗어난다. 이것은 곧 꿈의 본질적 특성이 비선형적(非線形的) 시간의 조합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라는 구절은 이 시의 의미가 단지 화자의 ‘잠속’에 나타난 꿈 이미지들의 재구(再構)를 통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네 번이나 반복된 ‘잠에서 깨어’는 이 시의 화자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잠’의 안쪽만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모래산에 쌓이네”에서 ‘쌓이네’라는 술어(述語)는 ‘모래산’이 퇴적(堆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내 잠 깊은 모래산’은 그것이 화자의 신체에 부수되는 어떤 행위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내면적인 것인 동시에 퇴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기억’이다. 따라서 ‘잠’이 비단 현실적인 ‘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내 잠 깊은 모래산’은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 혹은 ‘나의 의식에서 지워져버린 망각들’로 해석된다.‘기억’ 또한 의식 주체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서 가공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세계의 실상 그 자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칭과 시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축되는 개연적 서사(허구)에 가깝다. 따라서 ‘기억’의 내부에는 망각되고 삭제된 그 무엇이 여전히 어떤 잉여로서 남아있게 된다. ‘잠재성’의 차원은 단지 환상이나 몽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이미 실재하는 것이다. 잠속의 꿈과 의식되지 못한 무의식과 기억의 사슬에 무수하게 주름 잡혀 있는 망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내 잠 깊은 모래산’에 무수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이 기거하고 있듯이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또한 인칭과 시점을 달리한 숱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명성은 주체의 의식과 기억의 자명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의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잠재성의 차원들이 실재한다는 것의 자명성이며, 주체의 단일한 의식(기억)이 조작된 서사와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의 자명성이다. 모든 1인칭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그들의 처지와 욕망과 권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인칭 주체의 자기의식은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이 아무리 많이 추가되고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을 포착할 수 없다. 또한 그 어떤 충만한 기억도 ‘모래산’처럼 부서지기 쉬운 공허(空虛)와 무의미(無意味)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는 삶의 근원적인 공허와 무의미를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언어이며, 이러한 현자(賢者)만이 지닐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표현한다. 현실성의 내부에 잠재성이, 의식의 내부에 무의식이, 기억의 내부에 망각이, 무한한 주름들로 감싸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에게만,‘우연’은 이 세계의 진상을 목도(目睹)할 수 있는 어떤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5.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 “서랍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어느 날 문득 서랍 속으로 돌아오듯/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오래전의 목소리./……/어느 순간 너를 습격하는 상형문자들./너의 내부에서 드디어/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날이 있다./혹은 돌아오는 날.”(‘복화술사’ 부분) ‘시적 에피파니’가 도래하는 시간은 시인이 어떤 신비를 능동적으로 예감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너를 습격하듯이’ 밀려닥치는 우발성의 시간이며,‘상형문자’로서의 시적 언어가 시인의 관습적 감각과 사유를 폭력적으로 뒤흔들어 놓으면서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그러므로 능동태(能動態)의 시간이 아니라 수동태(受動態)의 시간이다. 또한 이 시간은 시인에게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세계의 만상들이 그 자신들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따라서 이 순간은 “너(시인)의 내부에서 드디어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날”이기도 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는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시인의 명징한 의식과 관습적 표상작용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기에,‘돌아오는 목소리’(반복)인 동시에 ‘다른 목소리’(차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복되는 것(‘돌아오는’)은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세계의 풍요로운 만상들이며, 이 반복을 통해 차이(‘다른’)를 발생시키는 것은 ‘너의 목소리’ 곧 시인의 관례적인 감각과 도식들이다. 김수영이 ‘絶望’에서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모든 미학적 실천과 시적 창조의 공간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례적 감각과 도식을 매번 혁파하기 위해서는, 섬광처럼 우리를 헤집고 지나가는 모든 우발성들을 용기 있게 승인해야 하며, 이 우발성들이 우리들에게 가해 오는 ‘낯선 것의 폭력’과 과감하게 마주쳐야만 한다. 이장욱의 말처럼 “이 고투를 통과한 자에게만”,‘시적 에피파니’는 비로소 그 자신을 개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고투를 체험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어떤 ‘에피파니’의 순간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시에서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충직한 순결성을, 일상적 경험 속에서 피어나는 순박한 인간애를, 그 아름다운 빛으로 충만해 있는 시적 감동의 순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이 아니라 1인칭의 자기애적인 영혼이 미리 전제하고 있는 어떤 관념적인 조화이자 이상적인 도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는 이것들이 배제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세계의 잔인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가 진정으로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혜안(慧眼)과 비전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시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그 무수한 가면과 정념을,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그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만상을, 현대적 일상의 그 지루한 반복과 권태를, 저토록 리얼하고 또 잔인하게 묘사해준다면, 그의 시는 하나의 예술로서 그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찬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심사평

    언제부터인가 소설읽기가 불편해졌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전통 서사가 사라지고 엽기, 괴기가 난장을 이루면서 문체마저 왜곡되고 있는 현상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문제는 소설만에 지워지는 부담은 아니다. 극단을 지향하는 디지털/인터넷 문화와 더불어 새로운 주류를 넘보는 만화/영화와의 관련 아래에서 심각하게 논의되어야 할 일이기에 흥분과 우울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신/구 문화(소설)의 교체와 혼재는 신춘문예 응모작들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그 가운데서도 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은 가장 좋은 의미에서 이러한 현실을 대표한다. 말하자면 전통적 서술과 새로운 메시지가 어울린 수작이다. 모형 음식을 만드는 공장 종사자인 여주인공이 진짜 음식에는 식욕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정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후자에 기울어 있는 오늘의 문화에 대한 비유로 읽혀질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몸에 대한 마음의 우위라는 신세대 감각의 정체를 드러낸다.‘사소한 몸의 문제’가 아닌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만으로 충분한’ 새세상을 증거하면서도 재미와 가독성을 확보하고 있는 새로운 작가의 등장을 축하한다. 소금사막과도 같은 의식의 황폐함을 그리고 있는 ‘등’(윤희원), 가난한 일상에서 지구탈출을 꿈꾸는 외로운 의식을 개를 매개로 형상화한 ‘라이카’(김성욱) 등도 균형잡힌 솜씨로 작품을 훌륭하게 빚어낸 수작들이지만 자신의 고통에만 너무 집착한 감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와 현실을 그리되, 그것을 뛰어넘어 세상을 향한 어떤 메시지를 뿜어내기도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좋은 작품들에 대한 세세한 평을 쓰지 못해 유감이다.(김주영,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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