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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길 잡아끄는 문단·언론계 ‘인물론’

    글은 제 주인을 닮아간다. 그리고 글은 주인의 삶을 다 안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찧고 까불며 혼자 노닌다. 그렇다면 글의 주인은? 그저 흐뭇한 웃음으로 제 글 노는 광경을 지켜볼 따름이다. 노(老)작가 최일남(78)이 내놓은 에세이집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문학의문학 펴냄)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넉넉한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글로 채워져 있다. 여든을 앞둔 작가의 원숙한 시선이 느껴지는가 하면 젊은이 못지않은 재기발랄한 문체가 지면 위를 통통 튕겨 다닌다. 말 그대로 잡문(雜文)이다. 영어를 배우느라 절절맸던 유년의 추억, 유행가부터 가곡, 샹송, 팝송, 재즈, 민중가요까지 섭렵했던 노래와 얽힌 인연, 일본 문학사에 대한 일람 등이 느긋하면서도 해박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박람강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여놓는 와중에도 주제를 한줄로 꿰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사람이다. 그와 수십년의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새삼스럽지만 정연한 인물론이 곁들여졌다. 언론계와 문단에서 자신과 인생의 굴곡을 직접 나눴던 최정호·김중배·조세형·김소운·하근찬·정운영·이규태·이시영·김윤식에 대한 것이다. 이 밖에도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서줬던 일석 이희승 선생은 물론, 스스로 사숙했고 장례식 먼 발치에서나마 봤던 백범 김구의 두 가지 선비론에 대한 기억 등이 보태졌다. 최일남은 “애초에 작심한 건 아닌데 이번에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 공공의 재산이라면 개개인의 삶은 필경 사람에 대한 기억과 사연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했지만 여든을 앞둔 노작가이자 원로 언론인인 그의 글은 젊은 후배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여전히 해학이 넘쳐난다. 재기와 해학이 넘치다 못해 아예 발랄하다. 시인 곽효환의 헌시 ‘그리운 청년, 최일남’은 글과 삶 사이에 있는 최일남을 넌지시 내비쳐 절로 흐뭇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려시대 사료 인터넷으로 본다

    고려시대 사료도 인터넷 전산화 작업이 추진된다. 이렇게 되면 고려시대 기록도 조선왕조실록처럼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옛 한문체 문장도 쉽게 풀어 서비스하는 만큼 원문 이해도와 접근도가 높아진다.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는 중세사학회와 공동으로 10일 경기 과천 국편 국제회의실에서 ‘고려시대 자료 종합 웹서비스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고 8일 밝혔다. 전산화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다. 이제 시작 단계라 서비스 시작 목표 시점은 아직 잡지 못했다. 국편은 2005년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서비스(sillok.history.go.kr)를 시작한 데 이어 올 1월부터 ‘고려사’ 139권 전권을 인터넷(db.history.go.kr)으로 제공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원전과 한글 번역본까지 제공되지만, 고려사는 원문만 서비스하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혼녀·철부지엄마와 그 아들, 불안·고독한 마이너리티 삶은…

    이혼녀·철부지엄마와 그 아들, 불안·고독한 마이너리티 삶은…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펴냄)는 작가 은희경(51)이 안에서 오랫동안 품어 왔던 두 페르소나가 세상에 나와 성장해 가는 기록이다. 철부지 엄마 ‘신민아’와 그의 아들, 열일곱 소년 ‘강연우’다.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자신을 애써 지켜내고 싶은 철부지 싱글맘은 쿨하고 센 척하지만 한없이 약하다. 그에 반해 열일곱 소년은 꽤 의젓하거나 혹은 삶에 심드렁해 보인다. 둘은 쉼 없이 세상과 사랑하고, 연인과 사랑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둘은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지나칠 만큼 섬세한 감성은 사회 주류에 끼어드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내용의 관계 앞에서 남들보다 더 아파하고,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내적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 소설은 지독하리만치 철저히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이혼녀인 엄마의 직업이 ‘옷칼럼니스트’인 것도, 소년이 자석에 이끌리듯 힙합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엄마의 애인이 현학적인 문화평론가인 것도, 소년의 친구 독고태수가 외국 유학 귀국 부적응자인 것도 모두 사회의 주류에 편입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마이너리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인물들은 불안하고 고독하며 따스한 손길을 갈망한다. 소년들이 늘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힘은 이미 스스로 지니고 있다. 도망가지 않기, 솔직하게 들여다보기를 통해 은희경은 이를 하나씩 증명한다. 5년 전 시작한 뒤부터 썼다가 지우고, 지었다가 부수기를 연신 반복하며 내놓은 작품인 만큼 인물들은 잘 영글어 있다. 성장하는 이가 겪어야 하는 모든 복잡하고 세밀한, 그래서 쉬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선의 변모 지점을 에둘러 가지 않고 덤덤하게 마주한다. ‘소년’에는 성장소설이 필연적으로 빠지고 마는 어설픈 훈계가 없다. 게다가 애써 건강한 척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불필요하게 냉소적인 쿨함도 없다. 그저 소년이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존재에 대해, 관계에 대해 하나씩 사유하고 새롭게 발견해 간다. 긴장감 넘치는 극적인 사건의 연속을 원한다면 맥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은희경 특유의 톡톡 튀는 문체-기존 작품들보다 더욱 두드러진다-와 인물 개개인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극적인 사건까지 쉽게 이르게 된다. 실제로 안쪽 가지런한 치열까지 모두 드러날 만큼 활짝 웃거나 콧잔등에까지 잔뜩 주름을 잡아 웃는 은희경의 모습에서 소년-소녀가 아니다- 자체를 읽어 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희경의 힙합 예찬, 달리기 예찬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에게 힙합은 ‘내가 그냥 나일 수 있는 세계’ 혹은 ‘선율을 배제해 버린 채 음악의 완성을 추구하는 배짱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힙합의 혁명성’이다. 표면적으로는 폭력과 욕설을 매개 삼아 내뱉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무정형의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고 하는 전 우주를 오롯이 혼자 짊어진 채 달리는 것’,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 등 고독한 운동 달리기가 주는 만족감을 한껏 드러낸다. 홍익대 주변 힙합 공연장을 직접 찾아다니는가 하면 하프마라톤을 여러 차례 완주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대학 다니는 딸(김새남)과 아들(김이롭)에게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은희경은 책 머리에 ‘감동적인 첫 만남 이후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딸, 아들에게 이 소설을 헌사했다. 딸과 아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페르소나이니 결국 자신에게 바치는 소설이기도 한 셈이다. 왜 그리도 긴 시간 동안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암투병 여성과 메일 주고 받으며 힘겨운 세상의 희망·사랑 담담히

    “인생에는 살맛이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시련 앞에 누구나 가끔씩 좌절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여성 암환자와 중년 기자는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풍연 서울신문 부국장이 펴낸 ‘여자의 속마음’(오래 펴냄)은 진솔한 목소리로 일상의 희로애락을 솔직하게 담은 수필집이다. 올해로 기자 생활 25년째에 접어드는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에세이집 ‘남자의 속마음’을 펴낸 뒤 우연한 기회에 속편 격인 ‘여자의 속마음’을 썼다. 뜨거운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딸 자식도 없고, 오직 아내뿐이어서 속편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는 그는 암투병 중인 여성 독자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여자의 속마음을 알게 됐고, 책으로까지 옮기게 됐다. 책에는 힘겨운 세상살이를 의미있게 만드는 소소한 일상을 간결한 문체에 담은 170여편의 수필이 실려있다. 저자는 군대 간 아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이자 가족을 걱정하는 아내를 다독이는 남편, 실의에 빠지거나 건강을 잃은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부부 간의 사랑, 친구와의 믿음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누님’이라고 칭하는 여성 독자는 50대의 평범한 가정 주부로 몇 년전 남편을 암으로 떠나 보낸 데 이어 자신마저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풀벌레 우는 밤’, ‘감사합니다’, ‘두 딸과의 여행’ 등의 글을 통해 시련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나지막이 속삭인다. 안방 침대에 누워 산으로 넘어가는 달을 볼 수 있는 집에 산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저자의 소박함과 “행복은 가진 것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따뜻한 감동을 준다. 법조 대기자를 거쳐 이제는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저자는 삶과 죽음 등 인생은 물론 시의성 있는 주제를 날카로운 시선과 깊은 통찰력으로 짧고도 간결한 문체에 담는다. 반면 여성 독자의 글은 호흡은 길지만 감성적이고 솔직한 필체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각자 처한 입장과 상황은 다르지만 서로를 통해 배려와 상생을 통한 삶의 자세를 배웠다는 두 사람의 우정이 행간에 묻어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문체반정의 배후로 지목된 열하일기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 정조는 당시 사대부들의 문풍을 어지럽힌 ‘배후’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지목하고, 연암에게 순정한 고문(古文)체로 글을 지어 올리면 음직을 내리겠다고 회유한다. 그러나 졸지에 어떻게 순수하고 바른 글을 짓겠느냐며, 그것이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는 핑계(?)를 둘러대면서 연암은 끝내 어떤 반성도, 전향도 거부한다. 연암에게 글이란 남을 아프게도 하고 가렵게도 할 수 있는, 한마디로 ‘살아있는 것’이어야 했다. ‘열하일기’는 비장에게 들은 이야기, 하인들과 나눈 대화, 중국 선비들과의 필담 등 온갖 ‘잡다하고 품격 없는’ 글들로 가득하다. ‘허생전’이나 ‘호질’처럼 ‘빵빵 터지는’ 스토리들이 있는가 하면, ‘호곡장’이나 ‘일야구도하기’처럼 사유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주는 철학적 아포리즘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영민한 정조가 몰랐을 리 없다. 연암의 문체에 함축된 사유의 반시대성을! ‘열하일기’는 정조의 시대뿐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다양한 사유를 촉발하는, 대단히 위험하고 강렬한 책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된 이병주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된 이병주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대하소설 ‘지리산’으로 잘 알려진 선 굵은 소설가 이병주(1921~1992)가 평소 즐겨 내뱉곤 했던 말이다. 그의 호방한 문체 속에 감춰진 대표적 아포리즘이다. 고향인 경남 하동 섬진강가에 세워진 문학비에 새겨졌음은 물론이다. ‘알렉산드리아’,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 등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와 그 골짜기 어느 자락에서 신음해온 사람들의 모습을 다뤘던 대가의 통찰과 혜안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학병으로 징집됐고, 한국전쟁의 혼돈을 겪은 뒤 1956년부터 부산의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4·19혁명 뒤에는 경남교원노조활동을 했고, 5·16 쿠데타에 대한 비판을 담은 필화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 7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병주는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버티고 서 있었다. 이러한 극적인 체험은 마흔 넷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뒤 써내는 작품마다 핍진한 서사를 풀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병주는 실제 문단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산(多産), 다작(多作)이었다. 등단 이후 27년 동안 한 달 평균 원고지 1000장 분량을 집필, 80여권의 저서를 남겼으니 초인적이라는 평가가 늘 뒤따른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에세이, 산문 등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것들이 허다하다. 문학평론가 김윤식·김종회가 그의 18주기를 맞아 최근 엮어낸 에세이집 ‘문학을 위한 변명’(바이북스 펴냄)에 시선이 가는 이유다. ‘문학’ 은 이병주가 품고 있던 문학 정신의 근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부는 자전적 에세이다. 문학과 역사, 철학에 대한 이병주의 고뇌와 즐거움을 함께 보여준다. ‘지적 생활의 즐거움’은 그의 독서 편력이 대단히 광범위하면서도 균형잡힌 체계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한다. 2부 ‘이병주 문학론’에 담긴 ‘문학의 고갈’을 보면 일본 문예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던진 ‘문학의 종언’이라는 화두를 붙든 채 여전히 논란 중에 있는 요즘 한국 문단의 상황을 일찌감치 갈파 예언했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는 ‘이 각박한 정신의 풍토는 문학의 고갈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라면서 ‘정치적 지식과 경제적 지식, 법률적 지식의 인간화를 위해 괴테, 도스토옙스키, 김동리, 안수길의 문학이 좀 더 깊고 넓게 침투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학에 인구를 흡수하지 못한 것은 문학자의 정열과 기능이 부족한 탓’이라고 일갈하며 ‘문학자가 정신 지도의 주류에 서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문단 내부의 반성을 촉구했다. 에세이집과 함께 그의 소설집 ‘변명’(바이북스 펴냄)도 나왔다. 이병주의 문학적 뿌리와 삶의 곡진한 체험 내역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중·단편 소설 3편을 모아놓았다. 세 편 모두 한결같이 분단이 낳은 비극, 또는 일제에 학병으로 끌려간 내용 등을 담고 있다. ●16~18일 하동서 ‘이병주 국제문학제’ 열려 때마침 고인의 고향인 경남 하동에서는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2010 이병주 하동 국제문학제’가 열렸다. 이병주 추모식과 함께 소설가 조정래의 ‘세계 문학 속의 민족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석한 국제문학 심포지엄 등이 진행됐다. 3회째를 맞은 이병주 국제문학상은 일본 작가 가라 주로(60)가 차지했다. 메이지대학 출신인 가라는 일본 문단에서도 아쿠타가와상, 기시다 희곡상 등을 받았다. 이병주가 떠난 지도 벌써 18년이 됐다. 1960~1970년대 한국 문단의 활화산과 같았던 이병주는 지금 역사가 됐을까, 아니면 신화가 됐을까. ‘문단 최후의 거인’, ‘한국의 발자크’ 등으로 평가 받는 이병주를 내리쬐고 있는 것은 태양과 달빛 모두다. 굳이 표현하자면 ‘신화가 된 역사’쯤 될까.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지혜를 찾아나선 두 철학자 이야기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이재룡 옮김, 사월의책 펴냄)는 저자의 이력이 화려하다. 저자 자크 아탈리(67)는 ‘살아 있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는 데다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술로 유명한 지식인이다.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그랑제콜에서 공학, 토목공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최고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소르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이력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시험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자크 아탈리가 1등으로 당선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역사 소설 ‘깨어 있는’은 아탈리의 몇 안 되는 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설은 12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고대의 지혜를 찾아나선 두 철학자의 이야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책을 찾아가는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와 유태 철학자 마이도니데스(모세 벤 마이문)의 여정을 아탈리는 참고 문헌과 상상력으로 복원해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같은 지식소설의 계보를 잇는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지만 문학적 재미는 훨씬 떨어진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2세기 스페인은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20년 동안의 시절이다. 12세기 초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는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아브라함을 공통의 조상으로 하는 세 개의 종교가 어떻게 해서 어긋나기 시작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사이로 변한 것인지 아탈리는 역사에 추측과 상상력을 보탰다. 소설의 주인공인 철학자는 기록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지만 ‘깨어 있는 자들의 결사단’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라는 책은 허구에 가깝다고 아탈리는 서문에서 밝힌다. 비슷한 분위기의 ‘장미의 이름’이나 ‘다빈치 코드’는 논쟁을 일으키며 미국 할리우드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깨어 있는’의 문체나 소설 작법은 그다지 대중적이지 못하다. “나쁜 소설만이 자전적이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쓰인다. 그리고 그 본성이란 허구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대사가 소설 중간에 나온다. 1만 3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새달 표충사서 사명대사 400주기 추모대제

    새달 표충사서 사명대사 400주기 추모대제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대사(초상·1544~1610) 열반 400주기 추모대제가 경남 밀양 표충사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차원으로 열린다. 표충사 총무 선혜 스님은 14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음달 9~10일 사명성사 400주기를 맞아 추모법회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면서 “서울과 밀양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학술 세미나를 열어 사명성사 가르침의 현대적 의미와 계승 방안을 비롯해 구국 활동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평가를 나눌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29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과 중앙종회 의원들로 구성된 추모대제 봉행위원회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던 조선시대에도 국가와 유생들이 직접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셔온 전통에 따라 추모대제에서는 성균관유도회총본부에서 주관하는 유교식 다례제와 불교식 영산제를 함께 치르게 된다. 사명대사는 전쟁하는 장수 스님이라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 또는 민간 설화 속에서 도술을 부리는 스님 이미지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30여년 동안 참선한 선승이자 유려한 문체의 문장가,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전쟁을 막고, 인질로 잡혀있던 백성의 송환을 이끌어낸 외교가다. 특히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상징하는 인물인 만큼 추모대제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숨졌지만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800여 승병에 대한 명예회복 및 추모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홍준 교수 ‘한국미술사 강의1’ 출간

    유홍준 교수 ‘한국미술사 강의1’ 출간

    한국 미술의 역사는 고고미술사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김원용(192 2~1993)이 1969년 정리한 ‘한국미술사’ 이후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했다. 1970년대 이후 미술사 연구 풍토가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구체적인 분야로만 깊이를 더해온 탓이다. 미술사에 관심을 가진 대중은 물론,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한참 동안 헤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홍준(61)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40여년만에 한국 미술의 역사를 조망하는 작업에 도전했다. 최근 ‘한국미술사 강의1’(눌와 펴냄)를 내놓은 유 교수는 13일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미술사를 통사(通史)적으로 접근해야할 필요성 및 그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세계미술사의 대표적 시리즈인 56권의 ‘펠리칸 미술사’와 200여권에 이르는 ‘미술 세계(World of Art)’는 세계 각 나라의 미술사를 거의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국미술사는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책은 선사시대부터 발해시대까지 정리한 것으로 통일신라, 고려시대를 다루는 2권은 2011년에, 조선시대를 다루는 3권은 2012년에 낼 예정이다. 3년에 걸친 대장정의 첫걸음인 셈이다. 유 교수는 “우리가 이제껏 우리의 미술사를 정리하지 않았으니 그들 역시 번역할 책 자체가 없었던 셈”이라면서 “각 분야사의 기계적인 덧셈이 아닌 분야사의 연구 성과를 아우르면서 일관된 사관을 갖고 있는 통사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200만부를 훌쩍 넘게 팔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쉽고도 흡입력 있는 문체를 앞세워 어렵고 복잡한 학술 연구서가 아닌 대중을 위한 미술사 입문서를 지향했다. 또한 400여개에 달하는 도판은 그 자체로 생생한 미술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편하게 볼 수 있는 책, 굳이 안 읽더라도 도판만 훑어 봐도 미술의 이야기가 읽힐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교양과 상식으로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스토리(story)’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30년 정치담당 기자 촌철살인 글쓰기

    1999년 11월부터 2010년 7월까지 11년 가까운 시간이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을 모두 아울렀겠다. 1490편의 칼럼을 모았으니 분량도 방대하다. 500쪽 분량의 두툼한 책이 모두 세 권이나 된다. ‘정치? 통탄한다’(윤창중 지음, 해맞이 펴냄)는 언론사 정치부 기자, 정치담당 논설위원 등으로 꼬박 30년 세월동안 대한민국 정치의 안팎을 넘나들었던 저자가 기록한 한국 현대정치의 생생한 역사다.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이 지나간 자리는 어제의 자리에 의해 가능한 것임을 목도한다. 1권은 2010년 7월12일 자 ‘어느 정치인의 병역 스캔들’ 제목의 시론으로 시작한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병역기피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이명박 정권에 만연한 부도덕함에 대한 질타를 쏟아낸다. 이렇게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가며 정운찬, 한명숙, 이명박, 박근혜, 이재오 등 유력 정치인을 하나씩 호출해간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노무현 정권을 거쳐 3권에 실린 마지막 글 ‘차기 그룹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 주변의 보신주의를 비판하며 마무리짓는다.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정치의 흐름은 물론, 그의 문장과 문체, 정치적 입장이 점점 더 거침없어져 가는 흐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MB정권의 실질적 주주’를 자처하며 보수 우파의 육성을 대변하는 그의 필치는 때로는 중도실용론을 표방하며 갈팡질팡하는 이명박 정권을 오른쪽으로 거세게 밀어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대구·경북 인사가 아닌 새로운 인물을 중용하라든가, ‘박근혜와 대타협하라.’는 구체적인 제안을 던지기도 한다. ‘좌파’에게 결코 정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1~3 각권 1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정권의 운명 쥐락펴락하는 日신문/이종락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정권의 운명 쥐락펴락하는 日신문/이종락 도쿄 특파원

    며칠 전 일본 신문기자, 대학교수와 함께 스모 선수들이 먹는다는 창고나베 식당에 갔다. 최근의 한·일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양국 신문기자가 있어서인지 화제가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신문으로 넘어갔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다소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는 질문을 불쑥 꺼냈다. 한국과 일본 언론 중 누가 더 영향력이 있느냐는 우문(愚問)이었다. 일본 교수와 기자는 한국 언론이 더 세다고 주장했다. 정부 부처 장관실을 불쑥불쑥 드나들 수 있는 한국기자가 더 파워풀해 보인다고 했다. 6개월째 일본 언론을 접해 본 기자는 손사래를 쳤다. 일본 언론, 특히 일본 신문이 훨씬 영향력이 있고 사회의 어젠다를 이끌고 있다고 응수했다. 입씨름이 계속됐지만 결국 기자의 주장에 두 사람이 승복하는 걸로 술자리를 파했다. 일본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08년 기준 30개 회원국의 유료 일간지 발행부수 조사 결과 일본이 5100만부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300만부로 미국(4900만부), 독일(2000만부), 영국(1500만부)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인구가 2008년 기준 1억 2728만명인데 이 당시 신문 구독률은 90.25%(일본 신문협회조사)에 이른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어린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성인이 종합일간지, 지방지, 스포츠지 등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신문은 힘이 세다.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 구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지만 일본 신문의 영향력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 니혼게이자이, 산케이신문 등 6개 신문사가 일본의 여론을 이끈다. 서울신문과 제휴 중인 도쿄신문은 나고야에 본사를 둔 주니치신문사의 도쿄 지역지(블록지)이지만 6개 신문 중 가장 진보적인 논조를 보이는 중앙지 대우를 받는다. 이들 신문은 방송사도 소유하고 있다. 아사히는 아사히TV, 요미우리는 니혼TV, 산케이는 후지TV, 니혼게이자이는 TV도쿄의 대주주이고 마이니치는 TBS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달리 신문이 해당 계열사 TV의 논조를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선거 기간 언론의 보도가 어느 정도 선거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승패를 가르진 못한다. 일단 대통령이 선출되면 잘하든 못하든 5년 임기가 보장된다. 언론이 대통령을 중도에 낙마시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신문은 정권의 운명도 쥐락펴락한다. 내각책임제인 일본 정치는 여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 임기제가 아니어서 여론의 향배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 여론 형성은 당연히 신문이 주도한다. 신문들은 진보(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와 보수(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산케이) 등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부의 정책과 총리를 평가하고 비판한다. 특히 신문사들은 매월 여론조사를 통해 내각 지지도를 발표한다. 보통 한 번 조사하는 데에 200만엔(약 2700만원)을 들여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다. 하토야마 총리 재임 때에도 그랬듯 내각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지면 총리가 옷을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일본에서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정치와 정당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 언론사들이 편향적, 자극적 설문으로 여론조사의 부작용을 조장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신문사의 입맛에 맞춘 ‘권력 개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들은 언론, 특히 신문기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일본 기자들은 종종 공정성이 도마에 오른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정권을 비판해야 할 신문기자들이 기득권 세력이 돼 정부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도 듣는다. 언론인이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신화로 들릴 정도다. 일본 신문체제를 도입한 한국 언론이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jrlee@seoul.co.kr
  • ‘중간자’ 독고준의 지적 여정 읽기

    ‘중간자’ 독고준의 지적 여정 읽기

    돌아온 ‘독고준’이다. 눈썰미있는 문학 독자라면 금세 눈치챘을 주인공이다. ‘광장’을 쓴 최인훈이 1960년대에 썼던 연작 소설 ‘회색인’, ‘서유기’에서 이념과 사랑 앞에서 늘 회의하고 고뇌하는 중간자이자 경계인으로서의 인물이다. 두 작품에 걸쳐 독고준은 북한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전쟁 때 내려온 국문과 대학생이었다. 최인훈의 자전적 성장소설에 가깝다. 고종석(51)의 ‘독고준’(새움 펴냄)은 최인훈의 작품을 이어서 독고준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년이 된 독고준과 그의 딸 원을 앞세워 미완으로 끝날 뻔했던 작품을 완결지은 셈이다. 애초 3부작을 예상했던 최인훈은 마지막 작품을 마무리짓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곤 했다. 고종석은 1993년 ‘기자들’ 이후 17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로 ‘최인훈 이어쓰기’를 택했다. ‘독고준’ 속 독고준은 ‘얼음처럼 차가운 회의주의와 수정처럼 투명한 문체’를 높게 평가받으며 소설가로서 일가를 이룬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임 대통령이 자살하기 몇 시간 전 1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한 채였다. 소설은 독고준의 1주기 즈음 딸 원이 1960년 4·19부터 시작해 2007년 대통령 선거일까지 47년간 아버지가 쓴 일기를 다시 읽으며 자신의 상념을 보태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독고준의 일기는 한국 사회가 거쳐온 47년의 격변 속 어느 한 쪽이 넘쳐나는 이념 과잉의 우리 모습을 꼬박 담고 있다. 강렬하게 투영된 독고준의 지적 여정이기도 하다. 고종석이 설정한 장년의 독고준은 흥미롭다. 유명한 소설가면서 창비(창작과비평), 문지(문학과지성)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는 여전한 중간자이자 경계인이었다는 점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활달하고 적극적인 화가인 이유정 대신, 순종적인 신앙인 김순임과 결혼하게 한 것, 독고준의 마지막 생을 자살로 마감지은 것 등은 고종석의 적극적 해석이다. ‘광장’의 이명준을 떠올리면 그 역시 예상할 법하긴 하지만 말이다. 고종석은 “젊은 시절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고 난 이후에 ‘독고준’이 살아갈 삶이 궁금했었다.”면서 “장년기 이후의 ‘독고준’에 대해서 상상의 놀이를 해오다 소설로 옮기고 싶은 욕망을 가졌고 결국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전작을 이어가면서도 독고준과 그의 딸 원의 관념과 생활을 그린 독립적 작품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회색인’ ‘서유기’와 같이 읽어도, 따로 읽어도, 좋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등단 6년차의 간단찮은 첫 소설집

    43세, 등단 6년차, 그리고 일곱 편의 단편이 담긴 첫 소설집. 지독히 과작(寡作)하는 늦깎이 소설가 혹은 소설가 문패만 걸어 놓고 유유자적하는 이의 이력 정도로 보여진다. 2004년 실천문학 중단편 신인상으로 등단한 유형수다. 그가 자신의 첫 소설집 ‘스윙 바이’(문학들 펴냄)를 내놓았다. 한데 심상치 않다. 그가 둘러보는 시선과 내딛는 발걸음은 진중하면서도 애써 경계를 짓지 않는 자유로움을 함께 지니고 있다. 남쪽 바닷가 어느 도시를 하릴없이 배회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게릴라와 민병대의 총격이 오가는 콜롬비아 산중으로 훌쩍 발길을 돌린다. 또한 ‘나’는 알파 켄타우로스 별에서 온 여인과 별빛 반짝이듯 사랑을 나누다가도 의뭉스럽게 벅수(장승)를 소개시켜주는 밥집의 당돌한 딸 ‘단감이’와 결혼한다. 1980년 5월의 고통스러움이 헌병대 군 영창의 현실로 또는 꿈틀대면서도 느릿느릿한 태권도장 간 대결로 현현되기도 한다. 종횡무진이다. 쉬 따라가기 힘겨울 정도다. 한 작가의 작품인가 싶게 일곱 편의 작품마다 풀어내는 실험적 문체와 주제의 매개물이 천변만화다. 간단치 않은 주제를 묵직히 부여쥐고 있건만 자칫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남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을 오롯이 관통하는 지점은 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천착이다. 그리고 개인과 역사의 관계 맺기다. 그리고 일견 단단하고 견결해 보이는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먹먹함과 아픔의 정서다. 백인들의 침략에 고통스러워하는 남미 인디오의 의문을 얘기할 때도(‘세상의 아침들’), 북미대륙에서 인디언을 절멸시키는 백인의 뻔뻔함을 조소하면서도(‘모히칸족의 최후’), ‘끝없이 우주선을 쏘아올리자는 말일 뿐’으로 상징되는 경쟁 사회를 음울히 지적할 때도(‘혼잣말을 하는 사내’), 늘 우리 현실의 자장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군 영창이건, 이 나라건, 이 별이건, 속절없이 갇혀 있을 뿐이라는 자조적인 인식(‘구름의 파수병 셋’)이 드러나는 것은 필연적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했음직한 일련의 사건들과 지독히 현실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우화와 한데 버무러진 뒤 역사의 골짜기를 지나 실존적 고뇌의 강까지 건너가 하나의 지점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는 아파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아픔과 생채기를 빠짐없이 차곡차곡 챙겨 풀어낼 준비를 이미 마친 이다. 소설가 한창훈은 “외롭고 고단함으로써 이렇게 아픈 언어를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라고 유형수의 첫 소설집을 평했다. 본명(유형석) 대신 필명을 앞세워 첫 책을 내놓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어느 별을 헤매면서 ‘지금, 여기’를 조우하게 해줄까.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랑을 찾고 상처받고 외로움은 모두의 고통 그러나 또 봄은 오고…

    허벅지를 드러낸 채 창가에 걸터앉아 바깥 세상을 무심히 쳐다보는 한 여인의 모습. 반쯤 열린 창문 새로 들어온 바람은 커튼을 펄럭이고 있고, 창밖에는 주황색의 꽃들이 무성히도 피어 있다. 세상과 자아의 경계선상에 앉아 있는 여인이다. 표지 그림이 소설을 여실히 설명해주고 있다. 김규나의 첫 번째 소설집 ‘칼’(문학에디션뿔 펴냄)은 여성주의 소설의 또 다른 전형을 창출하고 있다. 11편의 작품마다 거의 빠짐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고, 사랑에 상처받고, 피붙이를 빼앗기며 갈구하고, 불안과 혼돈을 섹스에 의존하는 등의 인물들이 나와 말을 건넨다. 지독하게 불행하고 깊숙이 베인 상처 자국을 가진 이들이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 흔히 존재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표제작 ‘칼’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망자의 동선을 따라가는 방식이나 부검의의 심리 묘사 등 파격적인 설정, 꼼꼼하고 섬세한 문체 등이 돋보인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서사 기법으로 돋보였던 ‘2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을 일찌감치 구사했음도 보여준다. ‘내 남자의 꿈’, ‘바이칼에 길을 묻다’, ‘뿌따뽕빠리의 귀환’ 등 열한 편 어느 작품에서든 쉽게 찾아진다. 불안하고 흔들리며 사는 이들의 숱한 삶들은 섬세한 감각으로 구성된 ‘김규나’라는 프리즘을 힘겹게나마 통과하고 나면 한껏 차분해진다. 고통과 고독의 현실을 인정하며 감내하고, 세상에 대한 작은 희망의 싹을 심으려 한다. 체념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관조와 자기 위로를 배워내는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외로움과 절망은 나의 몫만이 아니라는 사실로도 위안받을 수 있다. 훈훈한 봄바람처럼 행복했던 시절이 지나고 상처투성이의 고통스러운 시간만이 연속될 때 여자는 중얼거린다. “다시 봄이 올까?”라고. 자신 아닌 또 다른 사랑에 상처받은 남편을 위해 북어를 손질하다가 지느러미와 가시에 손을 찔린다. 피도 나지 않고 약간 부풀어오를 뿐이다. 비록 지금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메마른 가을, 매서운 겨울이 차례로 찾아옴을 안다. 그 다음 순서로는 또 다른 봄이 준비됐듯 말이다.(‘북어’) 소설을 모두 읽고 표지를 다시 들여다 보니 여인의 눈동자가 채 그려지지 않았다. 훌훌 털고 햇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갈 때는 아직 아닌 듯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윤동선(전 수원대 부총장)씨 별세 성호(풀무원 차장)성준씨 부친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3 ●이규돈(전 한국정보인증 전무)씨 모친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4 ●신현준(서대문문화원장)현영(서대문체육회 이사)씨 모친상 1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30분 (02)2227-7587 ●구교형(경향신문 기자)씨 조부상 12일 충남 논산 강경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41)745-4401 ●고정진(유진투자증권 홍보팀장)씨 장인상 11일 중국 하북성 석가장시 시립 제1병원, 발인 14일 010-3784-7398 ●금교신(대구MBC 뉴스취재팀 차장)씨 부인상 12일 경북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53)420-6148 ●문현상(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현석(소년한국일보 사장)현구(한양대 공과대학 교수)씨 모친상 김정호(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석연구위원)씨 장모상 12일 한양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2290-9453 ●이종철(동아석유 회장)씨 별세 대우(세종연구소)창우(동아석유 사장)씨 부친상 12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2650-2743 ●유종호(한진중공업 총무담당 상무)씨 모친상 김진학(대우조선해양)임창영(강릉시청)이억환(ED엔지니어링)씨 장모상 12일 부산 동아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 (051)256-7013
  • 젊은 歌客 보내는 구슬픈 이별가

    젊은 歌客 보내는 구슬픈 이별가

    노래 한 곡에 담긴 것은 그저 즐거움 혹은 사랑, 이별 등의 정조만은 아니다. 시대와의 약속,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의 어우러짐, 대의를 향한 다짐, 개인의 운명에 대한 구원 등이 고루 담긴다. 심각하게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담은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뙤약볕 아래 콩밭 노동의 힘겨움을 달래주는 민요 한 자락도, 황량한 안데스 산맥의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불렀던 머나먼 라틴대륙의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운동)도, 희뿌연 최루탄 연기 속에 쿨럭대며 불렀던 투쟁가도, 누렇게 모서리 파인 선술집 탁자 반주에 흔들거리던 뽕짝의 들썩임도…. 모두 마찬가지다. 조용호의 첫 장편소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 펴냄)는 노래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가객(歌客)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한 젊은이를 떠나보내는 구슬픈 이별가다. 나아가 노래의 선율 안팎에서 그 시대를 겪어냈던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눈물겨운 송가(送歌)다. 또한 절대자의 조롱과도 같은 운명 앞에 무기력하게 놓인 개인이 죽음으로나마 불같이 맞설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기도 하다. 조용호 자신이 젊은 시절 연행패로, 또 노래꾼으로, 노래운동을 하며 살았던 경험이 핍진하게 투영돼 있다. 작품 제목은 아르헨티나 음유시인이자 ‘누에바 칸시온’의 선구자인 아타우알파 유팡키(1908~1992)가 부른 노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그는 기타 반주를 애써 아끼며 호소력 짙은 낮은 목소리로 ‘…/ 이 밤은 왜 이다지도 기냐/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라고 노래했다. 소설은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린 시대의 노래꾼 ‘연우’와 그의 행적을 뒤쫓으며 헤매는 ‘나’와 연우의 아내 ‘승미’가 끌고 간다. 연우는 ‘나’에게 ‘나의 노래가 사라진 곳으로 떠난다.’면서 비망록을 남긴다. 비망록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종적을 감추기 전까지 자신의 짧지 않게 격정적이었던 삶을 그저 아침, 오전, 대낮, 오후, 저녁과 같이 하루의 시간으로 갈음한다. 대학 시절 연우와 함께 노래패 활동을 했던 나, 그리고 후배 승미는 연우의 비망록을 따라 그를 찾아 나선다. 비망록에 담긴 연우의 일생, 그를 찾는 숨바꼭질과 같은 과정, 젊은 시절 그들의 치열했던 시간들이 씨줄날줄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 대륙 칠레까지 가서 이대(二代)에 걸쳐 반복되는 연우와 ‘해금의 여인 선화’가 얽힌 기구한 운명의 농간까지 목도하게 된다. ‘40년을 훌쩍 넘겼을 터이건만, 돌이켜보니 그저 하루만큼의 삶일 뿐이었더라’ 하는 연우의 비망록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아온 당대 젊은이들의 바래진 청춘을 보는 듯해 가슴 저릿해진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왔던 그이들은 밤무대로, 룸살롱 밴드로 내몰려 벌거벗은 채 취객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노래가 주는 꿈에서 헤어나지도, 혹은 내버리지도 못했다. ‘기타여’의 연우, 승미, 선화의 삶이 향하는 발길은 그들과 궤적은 약간 다를지라도, 결국 본질적으로 맞닿는다. 토지문학관, 만해문학관, 연희문학창작촌을 전전하며 6년 동안 썼다고 한다. 199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뒤 단단한 단편을 주로 써온 조용호이기에 서사의 굵직함 이상으로 문체의 미려함이 돋보인다. 소설에는 실제 열일곱 곡에 이르는 노래가 침묵의 선율 속에 담겨 있다. 이 노래들이 부록으로 CD에 담겨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객의 삶과 노래의 운명을 한두 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독자들이 소설을 읽을 때 좀 덜 숨가빴을텐 데 하는 그런 아쉬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기 써는 무슬림으로 양면성 파헤치다

    고기 써는 무슬림으로 양면성 파헤치다

    소설의 공간은 분명히 우리나라 서울 이태원 이슬람 사원 주변 어디쯤이다. 등장하는 이들 역시 한국 국적-태생지는 그리스, 터키, 한국으로 나뉘긴 한다-의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이 주요하게 공감하는 시대적 사건 역시 1950년의 한국전쟁이다. 하지만 왠지 낯설다. 먼저 성장소설이 흔히 품는 문법과 다르다. 담고 있는 주제와 정서 또한 기존의 성장소설이 반복해온 것들과 진한 선을 긋는다. 인간의 삶과 전쟁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다루건만 그렇다고 정색하고서 한국전쟁의 의미와 평가 등을 풀어내는 것도, 애써 에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결핍을 드러내면서도 능청스럽게 빈틈없이 채워내는 문체와 문장 또한 눈에 익숙하지 않다. 이것저것 몽땅 낯설다. 하지만 아주 반갑게 낯설다. ●낯선 문체·문법으로 문학적 성취 손홍규(35)가 4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이슬람 정육점’(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우리 문단이 목마르게 기다려왔던, 반가운 낯섦이자 새로운 문학적 성취다. 비루한 삶들의 터전인 이태원 어느 골목은 영국 런던의 빈민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뒷골목으로 바꿔도 그만이다. 영혼 깊은 곳에 헤어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겨놓은 한국전쟁은 예컨대 코소보 내전이라도 좋고, 2차 세계대전이라도 상관없다. 또한 한국전쟁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층위에 있는 그 사람의 고향 나라가 그리스이지만 아니라도 좋고, 터키지만 역시 아니라도 좋다. 인종과 민족, 국가, 종교 등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손홍규는 지구적 보편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문장과 문제의식을 앞세워 인류집단이, 사회가, 개인이 겪은 상처를 마구 헤집어 눈앞에 보여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은 어떠한 기존의 관념에도 결박되지 않겠다는 듯 등장하는 모든 상처입은 영혼의 안팎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성실하게 성찰한다. ●한국전쟁에 신음하는 남녀노소 필독서 소설의 제목이자 주된 인물인 터키 출신 한국전쟁 참전 군인인 ‘하산 아저씨’의 직업 설정부터 파격적이며 문제적이다. 삼겹살을 썰고 돼지 목살을 포장하는 독실한 무슬림(이슬람교도)이라니…. 그는 ‘나’를 입양한다. 총상을 비롯해 몸과 마음 곳곳에 크고 작은 흉터가 파인, 상처투성이로 고아원을 전전하던 ‘나’는 오전 11시면 뛰쳐나가 화단에 오줌을 누고, 동상의 팔을 부러뜨리는 행동으로 학교에서 쫓겨나듯 벗어나는 문제적 소년이다. 흉터에 신음하는 이는 하산과 ‘나’뿐 아니다. 그리스 내전 중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해 사살했다는 죄책감에 한국전쟁에 도망치듯 자원한 그리스 출신 ‘야모스 아저씨’,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3년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뒤 늘 군복에 군가를 부르며 사는 ‘대머리 아저씨’, 남편의 폭력에 도망쳐 나온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죽을건데 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소년 염세주의자, 언어의 부정확성에 회의하며 말을 더듬는 ‘유정이’까지, 등장하는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깊숙한 상처에 신음한다. 손홍규는 “하산의 직업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지만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종교적으로는 일종의 타락이지만 인간 자체의 타락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전쟁 역시 인류의 타락이지만 인간을 완벽히 타락시키지는 못한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상처를 품고 있다면 눈 부릅뜨고 그 상처와 대면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성장이다. 작가는 ‘통과의례’라는 말로 개인과 사회의 영혼에 깊이 패어 있는 상처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쟁의 기억도, 개인의 공포와 불안·상실도 모두 ‘지금, 여기’에서 소중히 다뤄지기를 원한다. 성장소설을 표방한 ‘이슬람 정육점’이 노소를 떠나 필독되어야 할 진정한 이유다. 트럭을 빌려 교외로 소풍 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 역시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장편소설 ‘강남몽’ 출간한 황석영 작가

    장편소설 ‘강남몽’ 출간한 황석영 작가

    어머니 대지로서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것이 땅의 오롯한 역할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근대화의 바람 속에서 땅에 사람의 탐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땅은 ‘부동산’이라는 이름을 얻더니 사고 파는 과정을 거듭하며 스스로 몸값을 불려나갔다. 달뜬 탐욕 앞에서 호박이며 배추, 고추 등속을 길러내던 말죽거리 밭뙈기가 금싸라기 땅으로 변신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소설가 황석영(67)이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펴냄)을 내놓고 이렇듯 부끄러움조차 잃은 채 한국사회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자라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낱낱이 들춰냈다. 소설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현대사에 아로새겨진 우리의 남루한 자화상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황석영으로서는 1980년대 말 ‘장길산’을 마친 뒤부터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무려 20년이 넘는 산통이 담겨 있는 셈이다. 지난해 9월부터 여덟 달 동안 인터넷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었다. 그는 30일 서울 신문로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품의 주제는 무겁지만 정색하고 대드는 리얼리즘 방법은 아닌 것 같고, 장편대하소설도 아닐 것 같아 고민만 하다가 뒤로 자꾸 미뤘다.”면서 “지난해 문득 우리 전통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처럼 몇몇 캐릭터를 만들어서 풀어나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화류계 여인, 친일과 반공을 앞세워 부를 쌓은 재벌, 부동산 투기업자, 이권만을 좇아 재벌과 정치권에 기생하는 조폭, 먹이사슬 맨 아랫단에 있으면서 늘 집, 땅에서 쫓겨나는 노동자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1995년 무너져내리는 삼풍백화점(소설 속에서는 대성백화점)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좌우의 대립, 개발독재, 민주화 노력 등 긴 역사를 숨가쁘게 그려낸 뒤 다시 1995년으로 돌아온다. 황석영 특유의 힘있는-인터넷 연재를 통해 더욱 젊고 빨라진-문체가 서사를 끌고 간다. 또한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뒤져가며 얻어낸 새로운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역사적 인물의 실명과 함께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는 이들이 소설을 끌고 가고 있다. 황석영이 스스로 ‘다큐 소설’이라고 이름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면서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자료 중심으로 풀어냈음에도 우리 욕망의 뿌리를 확인시켜주는 이 소설은 불온할 수밖에 없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마따나 김구와 여운형의 죽음 뒤에 미국이 있었다거나 박정희의 남로당 활동 경력 등을 재확인하며 심기가 불편한 이들도 있겠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어릴적 고향 얘기 이제 그만할래요”

    “어릴적 고향 얘기 이제 그만할래요”

    그는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이유로 독서의 집중을 방해한다. 담임 선생과 부잣집 아이가 반장인 자신을 빼고 작당 모의를 할까봐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바지에 똥 싼 이야기며, 개똥에 돼지 쓸개까지 갈아넣어 만든 것을 동네 할아버지에게 불로장생약이라고 먹인 이야기, 갈치 몇 토막으로 과부 인심 얻으려다 망신당한 동네 유부남 이야기 등은 책으로 얼굴 가리며 낄낄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한때 박치기왕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가 이제는 알츠하이머에 시달리고 있는 퇴역 레슬러와의 만남, 20년 전 유족도, 남도 아닌 채 연인을 떠나보내고 검은 상복을 입었던 대학 시절 여자 선배의 기억, 치매에 시달리고 있는 어머니 얘기 등은 먹먹하게 퍼지는 울림에 잠시 책을 덮고 먼산을 바라보도록 한다.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채만식문학상, 무영문학상, 민족문학연구소 올해의 작가상 등을 받은 17년차 소설가 전성태(41)가 유쾌하면서도 가슴 저릿해지는 산문집 ‘성태 망태 부리붕태’(좋은생각 펴냄)를 내놓았다. 좋은생각 웹진(www.positive.co.kr)에 올해 초까지 일곱 달 동안 연재한 글을 묶었다. ‘개똥 든 불로장생약’을 먹은 할아버지가 불렀던 어린 시절 별명을 그대로 제목 삼았다. 부제는 ‘전성태가 주운 이야기’다. 28일 서울 태평로 한 음식점에서 만난 전성태는 “어머니, 할머니, 동네 이웃 등 함께 지낸 사람들이 만들었고, 그것을 그냥 옮겨 적었다.”면서 “잃어가던 기억을 되찾는 시간이었고 독자들과 함께 공감,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까마득한 남쪽 바닷가 전남 고흥군 도덕면 신성리다. 이름 바꾸기 전에는 귓등마을로 스무 집 남짓 모여 사는 곳이었다. 고갯길 지나던 트럭에서 훔쳐낸 연탄을 보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며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으니 문명과 떨어진 거리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전성태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세대들보다는 열댓 살 윗줄 선배들과 기억을 공유할 때가 많았다.”면서 “작가가 되고 나서야 느꼈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소설적 자산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책으로 충분히 풀어냈겠건만, 기자들과의 만남 내내 그의 이야기 보따리는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갯벌에서 축구하던 얘기, 자책골 넣고 동네 형한테 귀싸대기 맞은 일 등…. 해학적이면서도 민중적인 묘사와 문체는 여전하건만 그동안 그가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선 굵은 서사, 민중들에 대한 진지한 애착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김일, 유제두, 백인철 등 고흥 출신 스포츠 영웅들과 교직하는 한국 현대사, 슬픈 지역사를 장편소설로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이번 산문집으로 고향 얘기, 어릴 적 얘기는 그만하고 좀 더 본격적으로 소설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우리 터, 우리 혼 남한산성(최진연 글, 다할미디어 펴냄) 사진작가 최진연이 30년간 카메라에 담은 남한산성 모습을 답사 형식으로 엮었다. 동문에서 시작해 북문, 서문, 남문, 행궁 순으로 여정을 잡았다. 호젓한 산성 길, 성벽에 걸리는 낙조, 가을 단풍, 설경 등을 카메라에 담아 소개한다. 최초 항공촬영으로 담은 남한산성 전경도 압권이다. 2만원.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김선주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신문 등에서 20여년 간 생활해온 언론인 김선주의 첫 에세이집. 1993년부터 쓴 칼럼 102편을 한데 모았다. 정치, 경제, 남북관계, 여성, 결혼, 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사람답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답한다. 날카로운 시선과 간명한 문체가 돋보인다. 1만 4000원. ●두루미, 천년학을 꿈꾸다(이종렬·이기섭 지음, 필드가이드 펴냄) 자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종렬과 두루미 연구가 이기섭 한국두루미네트워크 대표가 10년 동안 추적한 한국 두루미의 모습을 담았다. 비무장지대, 주남 저수지, 순천만 등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등 해외 두루미 서식지를 방문하며 각종 두루미의 생태를 상세히 모니터했다. 3만 3000원. ●콜로서스, 아메리카 제국 흥망사(니알 퍼거슨 지음, 김일영·강규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에는 제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미국이 성공적인 자유주의 제국이 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미국이 오랫동안 스스로 자신이 제국임을 부정해 왔다며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 제국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유럽 또는 중국과의 대척점 속에서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한다. 2만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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