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문체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빌라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OST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TRQ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2-0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317
  • 계란장수 과부댁, 일주일 밤 불태운 남자 알고 보니…

    계란장수 과부댁, 일주일 밤 불태운 남자 알고 보니…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여덟번째 이야기는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성에게 계란 판 돈을 모두 날려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0. 계란장수 과부댁을 살살 꼬인 가짜 교사…계란 판 돈 몽땅 먹고 살림까지 팔아먹어 (선데이서울 1972년 10월 8일)    계란장수 여인이 한 알 두 알 팔아 모은 돈 10여만원을 어느 사기꾼에게 깨끗이 날렸다. 게다가 몸도 주고 마음까지 준 그녀는 어찌나 울화통이 터졌는지 자살까지 꿈꾸었으나 실패. 결국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격으로 690일 만에 사기꾼의 목덜미를 잡고 원한을 풀었다..   ●10여만원 날리고 죽으려 투신도 했으나   1970년 11월 2일 오후 5시 30분. 목포발 광주행 완행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순덕(40·담양군 담양읍 112)여인은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면서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때마침 빈 옆자리를 메우는 한 중년 남자가 강여인의 신경을 자극했다. 뒤에 밝혀진 이름이지만 나종선(36·광주시 농성동 493)이란 사람. 약 20분이 흘렀을까, 문제의 나씨가 말문을 열었다. “어디까지 가시지요?” 강여인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광주까지 간다”고 대답했다. 이들의 폭소적 탈선 행각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런 경우의 공식대로 그들은 고향과 나이를 묻고 여행목적을 서로 얘기하는 등 제법 친숙한 말벗이 됐다. 나씨는 감 2개를 사서 그중 1개를 권함으로써 상대방 여인의 호기심을 끄는 작전으로 나갔다. 홀몸으로 12년간 고독하게 살아온 강여인 역시 옆자리에서 권하는 나씨의 말이 별로 싫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얘기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나씨는 일찍 결혼한 탓으로 지금은 홀몸이며 현재 목포 U중학교 교사로 근무한다는 등 자신의 사생활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상대방 강여인의 처지를 탐색하기 위한 엉터리 수작에 강여인은 나씨가 기대한 그대로 자신의 사생활의 전부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20년 전 김모씨와 결혼, 딸을 낳고 아들을 얻지 못해 시가로부터 쫓겨났다는 것. 현재는 도내 곳곳으로 다니며 계란을 수집, 광주 양동시장 도매상에 넘겨 생활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나씨는 자신을 얻었다. 오랫동안 남자를 멀리한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온갖 추파를 던지며 나씨는 강여인에게 접근했다. 두 남녀는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차를 내려 광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탔다. 시간은 밤 11시쯤. 시내 북동 어느 중국집에 들러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T여인숙 2호실에 들어갔다. 그날 밤 오랜만에 남자의 품에 안겨본 강여인은 ‘이젠 고생 않고 살 날이 왔는가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그렇게 나씨가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조서에서 고백. 이들은 이 여인숙에서 일주일 동안 열정을 불태우며 뒹굴었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택시로 유원지 일대를 돌며 지내는 생활들이 강여인에겐 꼭 신혼여행인 것만 같았다. 나씨는 강여인을 마치 자기 아내처럼 여기고 있는 듯 행세했다. “당장 담양의 모든 짐을 꾸려 목포에 있는 근무지로 가자”며 그녀를 바람 태웠다. 강 여인은 계란 한 알 한 알에서 얻은 10전 20전의 이익금으로 모았던 ‘구렁이 알 같은 돈’ 5만 3000원을 유흥비로 날리고도 아까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새로 맞을 남편 나씨의 명령에 그녀는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 유일한 재산인 재봉틀과 가구 몇 점을 끌고 광주로 왔다. 나씨가 반가이 맞이했다. 강여인한테 같이 살 것을 굳게 약속한 나씨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가구를 점검하고 돈이 될만한 재봉틀을 가리켜 이사하는데 번거로우니 처분하겠다면서 광주시내 금남로 5가 모 전당포에서 2000원에 팔아넘기고는 다시 강여인 앞에 나타나 광주발 목포행 열차를 탔다. 나씨는 여기에서 또 한 계책을 꾸몄다. 당장 목포에 가면 방을 구할 전세금이 필요하니 우선 5만원만 둘러대라고 졸랐다. 이때 그녀는 다소 의심이 갔지만 바로 내려가서 봉급으로 이를 갚겠다는 장담을 듣자 별로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열차가 광주역을 떠나 송정리로 가는 사이 나씨에게 전세금 조로 5만원을 건네준 것이 큰 불행. 그날따라 열차 안은 복잡했다. 좌석 하나를 구하겠다고 나선 나씨가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저녁 8시 열차는 목포에 도착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나씨의 말을 따라 그가 근무한다는 중학교로 달려가 나씨의 신원을 알아봤지만 말짱 거짓말이었다. 강여인은 미칠 것만 같았다.   ●뇌 수술로 시력 잃게 되자 약값 구하려고   여관에서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곰곰 생각했다. 남편을 생이별한 후 혼자서 푼푼이 모은 일금 10만 3000원을 단번에 날려 버린 여자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온갖 궁리 끝에 투신자살을 생각했다. 다음날 밤 11시쯤 삼학도 앞 바닷물 속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것도 운이 없었던지 마침 순찰 근무 중이던 해양경찰대원에게 구조 받아 되살아났다. 서광주 경찰서는 지난 26일 나종선씨를 혼인빙자 간음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조서에 따르면 나씨는 어엿이 처자가 있는 몸. 8년 전 현부인 송모(35)여인과 결혼, 4살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경찰에 붙들린 나씨는 해방된 3년 후 일본에서 귀국, 나주 Y중학교를 졸업, 그 후 서울 예술학원에서 2년간 수업하고 간판과 아크릴 주문 초상화 등을 그리면서 제법 단란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5년 전부터 머리가 아프면서 시력을 점점 잃어갔다. 많은 약을 썼지만 신통한 효험을 못 보았다는 것. 약해진 몸으로 더 이상 작업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됐다. 강여인과 처음 만나던 1970년 11월 2일 그날도 나씨는 뇌 신경에 좋은 약이 있다는 친지의 말을 듣고 목포에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강여인을 만났다는 것. 나씨는 결코 강여인과 살아 보겠다는 마음은 아예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약값 마련을 위해 순간적인 사기를 해 본 것뿐이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았던 것인지 나씨가 강여인의 눈길에 걸려든 것은 지난 24일 저녁 7시쯤 광주시 중흥동 68의 12 K여객 차고에서 일하는 사촌동생을 만나러 간 것이 쇠고랑을 차게 했다. 뇌 수술로 시력을 거의 잃은 나씨는 맑은 날씨 말고는 가까운 거리의 사람들도 잘 분간 못하게 된 것. 이날 나씨는 마침 차고 직공들을 상대로 강여인이 무허가 술집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국립중앙도서관 천만장서 달성 기념행사

    국립중앙도서관 천만장서 달성 기념행사

    14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천만장서 달성 기념행사’에서 김종덕 문체부장관 등 참석자들이 전시된 자료를 둘러보고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문학은 아날로그적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문학은 아날로그적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한국계 재미 작가 이창래(50·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 겸 연세대 석좌교수)는 대중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작품을 쓴다. 그런 열정이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그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건 기쁜 일”이라며 “유행이나 돈을 쫓지 않고 사람들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작가로 알아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작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1995년 첫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알에이치코리아)을 더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재출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창래 작가는 “‘영원한 이방인’을 다시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제겐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당시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대중적 인기나 시류가 아닌 언어, 뉴욕, 사람들에 대한 열정으로 쓴 순수한 작품입니다. 보편적인 정서로 마음을 울리는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지금 다시 읽어봐도 만족스러워요.” ‘영원한 이방인’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한국계 미국인 ‘헨리 파크’를 앞세워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다뤘다. 출간 당시 미국 평단으로부터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서정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서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 ‘펜/헤밍웨이 문학상’ 등 6개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영원한 이방인’을 비롯해 ‘척하는 삶’ ‘생존자’ ‘가족’ ‘만조의 바다 위에서’ 등 5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최근엔 세계 자본주의를 다룬 신작 집필에 들어갔다. 그는 “문학은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수로 환산될 수도 없고 디지털화될 수도 없습니다. 디지털시대지만 우리 인생에는 디지털로 담을 수 없는 미스터리한 면이 많아요. 문학은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젊은 세대들이 꼭 알아줬으면 해요.”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작가지만 제 기반은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으로 인식해 준다면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씨줄날줄] ‘라면 권하는’ 단기방학/황수정 논설위원

    눈꺼풀 밑에 덜 깬 잠이 주렁주렁 매달린 아이를 빈집에 둔 채 헐레벌떡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직장 맘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수직 상승한다. 이런 상황은 맞벌이 집안이라면 요즘 아침마다 반복재생되고 있을 ‘안 봐도 비디오’의 장면이기도 할 것이다. 이름하여 ‘단기방학’ 시즌이다. 올해 처음으로 정부는 초·중·고교들에 학교장 재량으로 단기방학을 실시하게 했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한 관광주간에 맞춰 학교를 쉬도록 권장해 학부모들이 부담 없이 움직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올해 정부가 정한 봄철 관광주간은 지난 1일부터 14일까지. 주말을 끼고 짧게는 닷새에서 길게는 열흘간 방학에 들어간 학교도 있다. 전체 대상 학교 가운데 89%가 단기방학에 들어갔다는 것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조사치다. 여가문화가 다양하지 못했던 시절에 방학은 그 자체가 자유와 휴식의 메타포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을 부풀게 만드는 이스트 같은 기표였다. 왜 아니겠나. 글자 뜻 그대로 ‘학업을 잠시 놓아도 되는’(放學) 사회적 합의의 시간인 것을. 생뚱맞은 단기방학의 정체를 정작 아이들은 모른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학교가 왜 쉬는지, 학부모들조차 정확히 모르는 이가 태반이다. 평균 일주일여 이어지는 이 낯선 방학 기간에 엄마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엄마들이 모이는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금세 확인된다. “봄, 여름, 겨울방학 때 먹이는 라면 점심도 모자라 이젠 단기방학 라면까지 먹여야 하나….” 푸념이 아니라 성토다. 저소득층,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는 반듯한 끼니를 또 놓쳐야 하는 쓸쓸한 시간일 뿐이다. 엉뚱하게 사설 학원들이 특수를 누린다는 딱한 뉴스도 들린다. 학원가의 단기방학 집중 교실이 딱히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반쪽짜리 위탁소가 되는 건 당연하다. “너무 자주 쉰다는 소리가 듣기 민망해 웬만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선생님도 있다. 공교육만 놀고 있다는 얘기다. 문체부와 교육부의 걱정과 다르게 자녀의 학업 일정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가정은 많지 않다. 가을에 또 있을 관광주간에 다시 이 방학이 이어지지는 않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관광수익 올리기 ‘부역’(賦役)을 하라고 등 떠미는 건 말이 아니다. 경제 살리자고 책 덮고 고속도로 행락 대열에 끼어들라는 정책은 초라하지 않나. 휴가를 강제하는 나라가 얼마나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국민 관광 독려 차원에서 문체부 장관이 산나물 캐고 버섯 따서 매운탕 끓여 먹는 이틀간의 섬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면 단기방학으로 올린 수입이 얼마였는지 계산해 보여 줄 거라 기대한다. 가정의 달에 ‘대한민국 보통 가정’을 배려하는 가장 좋은 선물은 그냥 가만히 두는 거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老사상가 백낙청, 대전환을 고하다

    老사상가 백낙청, 대전환을 고하다

    1966년 당시 28살의 젊은 논객은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라는 도발적 논문을 썼다. 개인적 감상(感傷)과 감각적 문체가 각광받던 당시 한국의 문단 풍토에서 주창한 ‘시민문학론’은 파천황적인 충격이었다. 김승옥, 이청준 등의 문학은 찬탄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 됐다. 미국 유학을 갓 마치고 온 뒤 계간 학술문예지 ‘창작과비평’을 창간시켰던 백낙청(77) 서울대 명예교수다. 1970년대 들어 서구 문학에 주눅들어 온 문단에 민족문학론을 내세우며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물줄기를 뚫었고, 문학이 시대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음을 각인시켰다. 백 명예교수는 이후 분단체제론, 중도주의 변혁론, 2013년체제론 등으로 시대적 실천담론을 꾸준히 발전시키며 제시해 왔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탈바꿈을 위한 동력 찾아나서 반백년의 시간이 흐른 뒤인 2015년, 이제는 문학평론가, 인권운동가, 통일운동가 등 실천적 지식인에서 노사상가로 자리매김된 그가 다시 한번 한국사회에 파천황적인 대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올 초부터 정치·경제·교육·환경·여성·노동·남북관계 7개 분야의 현장에서 내공을 쌓아 온 전문가들을 차례로 만나 묻고 답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대담집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창비)를 펴냈다. 현장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들의 목소리에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향과 동력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계간 창비 가을호에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를 기고한 것이 대담 기획의 계기였다. ‘적공’과 ‘전환’은 내공을 깊게 쌓고 변화를 준비하자는 의미다. 실제 백 명예교수와 얘기 나눈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사회 전체에 대한 설계가 가능할 전문가들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이범 교육평론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영훈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박성민 정치평론가다. ●대중과 함께하는 중도노선 큰 틀 속 변혁의 관점 놓치지 말아야 백 명예교수는 지난 대선 전에 내놓았던 ‘2013년체제론’에 대해 “당시 선거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스스로도 대선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 그럼에도 2013년체제는 만들어지지 못했다”면서 “좀 더 겸허하게 묻는 자세로 나아가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이번에는 내 생각보다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하면서 이 세상이 어떤 면에서 바뀌고 있고 어떤 면에서 안 바뀌는지, 안 바뀌고 있다면 왜 안 바뀌는지를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고 대담집 기획의 배경을 설명했다. 각 대담을 관통하는 것은 ‘중도주의 변혁론’이다.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힘을 합치고, 더욱 광범위한 대중과 함께하는 중도 노선을 강조하면서도 진정한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변혁의 관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백 명예교수의 문제제기와 대안 제시가 곳곳에 깔려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국민의 여가, 국가의 책무/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국민의 여가, 국가의 책무/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국민의 ‘쉴 권리’와 ‘여가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여가기본법) 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일과 여가의 균형을 이루자는 것이 이번 제정안의 취지다. 여가기본법 제정안은 총 17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우선 국민이 적절한 수준의 여가를 보장받을 권리와 이를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가 증진을 위한 정책 수립 책무를 규정했다. 또 범정부 차원의 여가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 국민의 여가 환경과 수요에 대한 조사·연구, 여가시설과 공간의 확충 등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아울러 자유로운 여가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와 개인에 대한 지원, 직원들의 여가를 장려하는 우수 기업과 공공기관에 대한 시상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세부 조항을 살펴보면 문체부 장관은 “여가 활성화에 관한 중장기 정책목표 및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기간별 주요 추진 과제와 그 추진 방법을 포함한 여가 활성화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추진”해야 한다.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한 “기본계획에 따라 매년 여가 활성화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시행계획과 추진 실적을 제출”해야 한다. 민간의 여가 문제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라는 것이 제정안의 주문인 것이다. 사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전개해 왔다. 우리의 이번 제정안 통과는 외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지나치게 많다.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어 온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장 근로시간 운운하는 것은 이제 듣기도 싫을 정도다. 반면 여가 시간은 짧다. 문체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4년 국민 여가활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은 평일 3.6시간, 휴일 5.8시간에 그쳤다. 그나마 여가 시간을 혼자(56.8%), 휴식으로(62.2%)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휴식의 내용도 TV 시청이 절반 이상(51.4%)을 차지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쉴 틈 없이 최장 시간 근로하는데 휴일에 나다닐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처럼 짧은 여가 시간을 TV 시청 등 소극적인 여가 활동으로 소진하다 보니 여가 만족도 또한 극도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기본이나 기준을 규정하는 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1980년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근로자들이 피 흘리며 주장한 것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준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중요한 건 새 제정안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하위 법령들을 서둘러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다. 법이 속에 담긴 정신을 강제할 힘을 갖지 못한다면 공허한 수사,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가기본법 제정안은 공포된 날로부터 6개월 뒤 시행된다. 올 연말쯤 나와 당신의 여가 형태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angler@seoul.co.kr
  • 호적 확인하니 남편의 20대 女비서가 본처에…

    호적 확인하니 남편의 20대 女비서가 본처에…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일곱번째 이야기는 익명의 편지 덕분에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9. <人生극장 법률상담 (7)> 한 호적에 입적된 두 사람의 본처…밀회현장 들키자 마음대로 해보라는 남편 (선데이서울 1972년 9월 17일)   ●부정 알려준 익명의 편지   “아줌마. 편지 왔어요.” “무슨 편지야. 내게 편지할 사람이 다 있나?”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어요.” 노란색 서류봉투에 수신인인 그녀의 이름만 쓰여있을 뿐 발신인의 주소와 이름이 일절 없었다.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봉투를 부욱 찢었다. 봉투 안에선 느닷없는 사진 5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흐윽!”하며 눈을 감았다. “여기 커피 가져왔어요.” 그녀는 비로소 눈을 떴다. 손에 쥔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것은 남편이 어떤 여자와 팔짱을 끼고 호텔 같은 곳에 들어서는 모습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호텔방 앞에 서 있는 모습이며 방 안에서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광경. 그리고 마지막엔 키스광경도 있었다. 그것도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매우 실례되는 줄 아오나 김상무의 부정을 카메라로 잡아 부인에게 보여드립니다. 날짜는 7월 20일 오후 4시에서 8시 사이. 장소는 S호텔 409호실입니다. 호텔방 안 광경은 건너편 어느 사무실에서 망원렌즈로 잡아본 것입니다. 상대방 여자는 상무님 회사의 타이피스트 미스 윤입니다. 두 사람의 불륜은 1년째 되었습니다. 1주일에 3번 이상씩 두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편지는 계속된다. “…두 사람은 점심시간에도 밖에 나가 관계를 맺습니다. 5장 가운데 한 장은 금년 봄, 신촌 근처 어느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입니다. 때로는 독탕을 이용하여 부부행세를 하기도 하며, 중국집에도 들어가 두어 시간씩이나 있다가 나오기도 합니다. 주말에는 인천이나 춘천에 출장을 핑계 대고 가기도 했습니다. 주인께선 가끔 주말에 출장을 잘 가셨지요? 유흥비는 주인의 판공비에서 지출되곤 했습니다. 지금 그들은 너무 깊은 관계에 빠져 있기 때문에 부인께서 하루속히 손을 쓰지 않으면 심각한 파국을 초래할 것입니다. 속히 처리하십시오.”   ●잘못 빌어놓고 밀회 계속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C산업주식회사 판매담당 상무이사 김명준(45·가명)의 부인 박영화(41·가명)는 남편의 배신에 대한 좌절감으로 몸 둘 곳을 몰랐다. 그녀의 동창인 우정연(39·가명)이 C회사 사장의 부인. 없는 일도 만들어 찾아가고 철따라 갖은 선물공세로 접근하기 10여년. 평사원에서 계장으로, 계장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부장으로, 그리고 부장에서 중역으로 순풍에 돛 단 듯 김상무의 출세가 순조로운 데는 자기의 힘이 컸다. 아니 애초에 김상무가 C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주선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계산과 냉철한 이해타산,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박영화는 감정으로 일을 처리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우선 사진촬영의 동기부터 의심해 보았다. 익명의 고자질꾼은 남편의 가까운 사람이며, 그리고 그는 남편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회사 내의 실력 있는 위인이라고 추리해 볼 수 있었다. 일을 함부로 확대하거나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이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사진을 보이며 자숙해 달라고 간청했다. “미안하오. 입이 백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소. 내 몸조심하리다.” 남편은 순순히 모든 사실을 시인하고 잘못을 빌었다. 박영화는 한때의 바람으로 인정하고 모든 사실을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추석을 앞두고 열심히 아이들의 추석빔을 마련하던 그녀는 또다시 익명의 편지와 사진을 받았다. 그것은 남편이 타이피스트와 계속해서 밀회를 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만약 부인께서 방관하신다면 이 사실을 공표하여 문제 삼을 것입니다.” 이번엔 용서할 수 없다고 결심한 그녀는 저녁에 들어온 남편에게 따졌다. 그러나 남편의 답변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다.   ●남편과 그 여자는 호텔로   “어떻게 할 계획이란 말야? 흥! 일단 과거를 용서하면 간통죄 고소가 안된다는 걸 모르나? 마음대로 하라구. 우리는 사랑하고 있단 말야.” 남편은 이렇게 내뱉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녀는 그날 밤 남편의 뒤를 밟았다. 창경원 앞을 지나 안국동으로 해서 시청 앞을 거쳐 R호텔 앞에서 내린 남편은 전화를 걸더니 호텔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705호실에 투숙한 것을 확인한 그녀는 20여분 지나자 뒤따라 타이피스트 미스 윤이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30분쯤 기다린 그녀는 705호실을 노크했다. “여기까지 미행했군. 미스 윤은 이미 호적에 아내로 올라 있어. 좋을 대로 하라구.” 남편은 소리치면서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사태는 이미 수습할 수 없게 비관적이었다. 이튿날 구청에 가서 자신의 호적을 열람한 그녀는 의외의 사실에 놀랐다. 남편의 말대로 미스윤은 호적의 끝 부분에 어엿하게 자신과 함께 아내로 입적이 돼 있었다.   ▒▒▒▒▒▒▒▒▒▒▒▒▒▒▒▒▒▒▒▒▒▒▒   [이런 경우는] 혼인취소 청구하면 호적말소 가능   이런 경우 우리나라 학자들의 통설은 일단 신고되었으니 유효한 혼인이라고 합니다만 이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민법 810조 및 816조 참조) 즉 김씨의 호적에 분명히 처자 모두 기재되었다고는 하나 공무원이 실수로 김·윤의 혼인신고를 호적부와 대조하지 않고 접수했다면 벌써 법률적으로 유효한 것이어서 그 공무원은 호적원부의 끝 부분에 윤을 등재하지 않을 수 없어서 김은 한 호적에 2명의 처를 거느리게 되는 모순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처 박여인은 김·윤 사이의 혼인취소를 청구하여 호적에 기재된 윤을 말소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박여인은 이러한 관계를 원인으로 하여 이혼의 조정 및 심판을 청구하고 위자료 소송을 제기하면 이혼이 되는 동시에 응분의 위자료를 받게 됩니다.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리면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해 봄직합니다.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41)이창숙 ‘무옥이’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41)이창숙 ‘무옥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42개국 가운데 117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성 격차 순위는 계속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옥이가 살았던 1940년대보다 70여년이 더 지났음에도 여성의 지위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은 194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1952년 한국전쟁 직후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화성과 서울,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던 평범한 열네 살 무옥이가 스무 살 공장 노동자가 되어 역사의 순간을 껴안기까지의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그러나 격동의 세월을 산 무옥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사건들은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신파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보여준다. 극적인 사건이 많음에도 맑은 수채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옥의 성정이 작가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형상화된 이유일 것이다. 여백이 느껴지는 삽화 또한 그러한 성정을 드러내는 데 한몫한다. 책 내용은 이십 리를 걸어 학교에 다니는 무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해방이 되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지만 열여섯 무옥이 시집가는 날 집을 떠난다. 무옥의 결혼식 날 동생 무창은 복막염으로 죽고, 그 충격으로 신랑은 초례도 치르지 않는다. 이후 무옥은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 열여덟 되던 해 시댁을 나온다. 서울로 올라온 무옥은 친구 순자의 도움으로 여공 생활을 하며 야학을 다닌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취직한 조선방직에서 파업투쟁이 일어나자 노동자 대오의 선두에 서게 된다. 성장소설이 기성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무옥은 기성사회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조용히 현실과 조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무옥은 여러 사건에 의해 균형이 무너진 삶을 끌어안으면서도 그것을 회복하고자 여러 적대적인 것과 맞서 나간다. 무옥이 삶의 균형이 깨진 이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관습과 이데올로기, 역사적인 사건들 때문이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러 집을 나가고, 당시 여자는 교육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였고 시댁에서의 부당한 대우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전쟁과 가난은 무옥을 공장으로 내몰았으며 부정부패한 정부는 무옥을 노동시위 현장에 앞장서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고립되었던 어린 무옥은 사회적으로 개방된 존재로 나아가고 점차 인식이 확장된다. 무옥은 자신을 알아보기 위해 떠난 길에서 스스로를 시험하고 견디며 고유의 본질, 삶이 추구해야 할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귀한 존재”라는 자각이다. 그렇다면 무옥이 자신의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우선 무옥은 당면한 삶을 진정성 있게 마주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지 않았다. 결핍과 금지가 욕망을 낳고, 삶이 욕망 추구의 과정이라면 무옥이 당면한 문제는 당시 여성으로서 강요받는 삶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 무옥은 현실을 탓하지도 않지만 무조건적으로 순응하지도 않는다. 라캉은 ‘요구’에 의해 채워지지 않은 어떤 정신의 율동을 ‘욕망’이라고 정의하며 그것을 생명력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결핍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어떤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욕망의 대상’이라고 볼 때 무옥의 욕망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누구나 평등하게 존중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무옥은 성큼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또한 우리네 삶이 주변 사람들과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영향받는다는 점에서 무옥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빌려 자신이 갈 길을 꿋꿋이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대표적인 조력자는 아버지와 순자다. 무옥은 아버지가 거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에 대한 존중감을 배우고, 책 읽기를 권한 아버지의 영향은 비록 아버지가 곁에 없을지라도 무옥에게 책의 힘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고 버티고 치유할 수 있는 바탕이 되게 한다. 무옥이 발을 딛는 세계에 먼저 발 딛은 순자에게 무옥이도 동조하여 공장을 다니며 사회 불의에 맞선다. 시집살이를 할 때 책을 읽어 달라고 한 기와집 할머니 또한 무옥에게 큰 힘이 된다. 기와집 할머니의 호의는 비로소 책 읽기가 혼자 몰래하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놀이이자 배움이 된다. 또한 무옥은 노동자 인권을 주장하다 쓰러진 재유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과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옥에게 힘이 된 것은 책 읽기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 읽기를 좋아한 무옥은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책 읽어주는 기쁨을 느낀다. 이 책에는 무옥이가 읽은 많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백석 시집’부터 ‘박씨 부인전’이나 ‘사씨남정기’ 같은 고전, ‘상록수’나 ‘탈출기’ 같은 근대소설까지 망라한다. 무옥에게 책은 친구이며 혈육이며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치유처였다. 그래서 동서에게 기와집에 가서 책 보는 것을 권하면서 “동서, 나두 여러 사람 앞에서 책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거든. 괴로움도 조금 잊을 수 있었구”라고 말하며 “책은 힘이 있구나.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구나”라고 읊조린다. 시대가 변했다고 우리네 사는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근현대사를 거치는 한 여성의 삶을 다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 삶과도 닮아 있다. 어느 시대나 개인과 사회의 간극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개인의 삶은 나름의 고민을 겪으며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를 구속하는 이데올로기가 있고 도움을 주고받는 이웃이 있다. 나를 흔드는 사건들이 있다. 여전히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고군분투한다. 여러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 힘을 내기도 한다. 때론 무옥의 아버지나 순자처럼 희생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웃에게 책 읽어주기가 동네 아낙네들에게 이야기와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것처럼, 재유의 희생을 보며 무옥이 대오에 앞장서게 된 것처럼, 조선방직 노동자 시위가 실패했으나 노동법 제정 계기가 된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군가의 헌신으로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무옥이가 보여주는 삶의 여정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추구할 것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용기를 내 실천하는 것”의 의미를 준다. 책 마지막 장면에 무옥은 쓰러진 채 겨울비를 맞고 있다. 공권력의 제압에도 겨울비에도 부디 무옥이가 일어났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갔으리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진정으로 마주하며 말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소중한 요즘, 문제를 회피하거나 남 탓하기 보다는 직면이 필요한 요즘, 여전히 무옥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운선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난지천은 아이 천국

    서울의 대표적인 생태공원인 월드컵공원 내 난지천공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어린이들이 맘껏 뛰노는 행사가 열린다. 서울 마포구는 다음달 4일 오전 10시~오후 3시 상암동 난지잔디광장에서 ‘2015 마포어린이축제-마포둥이 모여라’를 연다고 28일 밝혔다. 올해는 ‘자연 속에서 탐색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린이를 키우자’라는 목표로 오감체험 활동을 늘리고 대규모 전시 등을 새롭게 선보인다. 전통, 놀이, 나눔, 문화, 체험관 등 5개 테마로 25종이 넘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테마별 프로그램으로 함께 즐기는 전통마당(흥부네 박타기·절구 찧기·합죽선 만들기·대형 칠교·제기차기 등), 놀이마당(오색풍선 감각놀이, 폐품으로 만든 악기 체험, 풍선가면 등), 전문체육교사의 진행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신체운동놀이가 진행된다. 또 창의적인 표현력을 키우는 문화마당(어린이뮤지컬 ‘이상한 나라 병정들’, 퍼레이드, 버블쇼, 마술쇼 등), 마포소방서·마포경찰서 등 지역사회 기관들이 함께 만든 나눔마당, 과학·안전 체험관이 어린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간식코너에선 유기농과자를 제공한다. 부채, 나무인형, 풍선가면 등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공작품은 가져갈 수 있다. 행사는 마포구육아종합지원센터가 주최·주관하고 마포구 어린이집 및 유치원연합회가 공동 주최한다.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 어린이, 재가(在家) 영유아, 가족, 보육관련 기관 등 1만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박홍섭 구청장은 “마포의 어린이 누구나 함께 뛰놀며 꿈을 키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면서 “어린이축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춤추던 카바레女, 남편 보고 뒤밟았다가 되레

    춤추던 카바레女, 남편 보고 뒤밟았다가 되레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다섯번째 이야기는 카바레에 들렀다가 남편의 두 집 살림을 목격하게 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7. <人生극장 법률상담 (5)> 카바레서 만난 남편과 그 여인…알고보니 가호적에 올리고 어엿한 살림 (선데이서울 1972년 10월 8일)   ●남편의 미지근했던 잠자리 태도 “조용한 장소로 옮기자 얘.” “시장바닥 같구나.” 중년의 두 여인이 투덜거리며 다방을 나갔다. 한쪽은 약간 마른 듯하지만 늘씬한 키에 투피스 차림이 썩 어울려 보이는 멋진 여인. 다른 한쪽은 대조적으로 살이 쪄서 풍만해 보이는 섹스어필한 모습. 두 여인의 말투로 보아 학교 동창인 것 같다. 그녀들은 명동 입구를 나와 지하도를 건너 소공동 어느 빌딩의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갔다. 먹을 것을 주문하고 난 그녀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담배 피울 테야?” “그래. 한대 줘.” 뚱뚱한 쪽이 은하수를 꺼내 건네어 주고 자기도 피워 물었다. “흥 느느니 담배뿐이군.” “누가 아니래?” 그녀들은 솜씨 좋게 연기를 내뿜었다. 너울거리며 퍼져나가는 담배 연기가 이 중년 여인들의 고민을, 좌절을, 그리고 무료한 시간을 뜻하는 듯 맴돌고 있다. “얘, 희야. 네 남편도 그러냐?” “뭐가 그래?” “허구한날 덤비니 이젠 미칠 지경이야. 밤엔 고사하고 낮에도 덤벼들지를 않나… 어휴!” “벼락 맞을 소리 작작해라. 나는 지금 열흘이 넘었다 얘. 행복에 겨워서 나오는 한숨이지 뭘.” “바꿔치기했음 좋겠군.” “물건이라면 그렇게 해서 살아 봐도 괜찮겠다.” “글쎄 말야.” “난 요즘 그이가 수상해서 못 견디겠어. 작년까지도 이틀에 한 번쯤은 자리를 함께 했는데 어쩐 일인지 요즘은 도사가 된 모양이야.” “그거 잘 감시해라. 사내란 건 너무 바치다가 안 바쳐도 이상하고 안 바치다가 갑자기 바쳐도 수상한 거야. 네 서방이 그렇게 갑자기 너를 멀리한다는 건 일단 수상하게 여길 이유가 충분해.” ●현실이 된 동창생의 충고 “그러고 보니 모두 수상쩍어.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홧김에 서방질이라고, 우리 춤이나 한 번 추고 갈까?” “그러자 얘, 속이 답답해서 운동 삼아 돌아 보자.” 시간은 오후 5시 30분. 그녀들은 잡담으로 30분을 더 보내고 나서 종로의 K카바레에 갔다. 운 좋게도 들어가자마자 사내 둘이 걸려들었다. 김문희(37·가명)는 30살쯤 되어 보이는 건장하고 키가 작은 사내의 품에 안겼다. 마른 쪽인 장경숙(36·가명)은 키가 늘씬한 사내를 골라잡았다. 젊은 사나이의 품에 안겨 몇 차례 돌고 나니 가슴에 얹혀있던 화가 가라앉는 듯 했다. “상당히 세련된 솜씨이군요.” “감사합니다.” 김문희는 사내의 추어 세우는 말에 약간 들떴다. 중앙으로 몰아붙이면서 슬쩍 밀착해 오는 사내의 솜씨도 싫지가 않았다. 양장 차림이었기 때문에 밀착돼 온 상대방의 피부로부터 체온이며 호흡 따위들이 세밀하게 느껴져 왔다. 김문희의 그러한 기분을 눈치챈 듯, 사내는 간격 없이 좁혀 들어왔다. 그들은 중앙에서 창문 쪽으로 슬금슬금 옮겨 갔다. 커튼이 늘이워진 창문가에서 느릿느릿 동작해 가며 사내는 그녀의 귓바퀴 밑에 뜨거운 호흡을 토했다. 그러는데 “희야. 잠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발그레 상기한 얼굴을 들고 옆을 보았다. 파트너까지 동댕이 친 장여인의 당황한 얼굴이 무엇인가 심상찮은 예감을 느끼게 했다. ●10년을 감쪽같이 속여와 “네 남편이 저쪽에 있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왔더라.”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지금까지의 무드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사내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그녀들은 밖으로 나왔다. “어떡하면 좋으니?” “이 근처에 지켜 섰다가 네 남편의 뒤를 밟아 보자.” “들키면 어떡하고?” “고양이가 쥐 생각하게 됐니?” 이날 밤 그녀들은 10시 10분쯤, 카바레를 나와 서대문 쪽으로 가는 김문희의 남편 이동재(40·가명)의 뒤를 밟았고, 그리고 그가 충정로 2가 어느 살림집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목격하게 됐다. 그들이 들어간 대문의 문패를 보니 놀랍게도 ‘이동재’라는 성명 3자까지 선명했다. 장경숙은 곧장 그 집을 덮치려는 김문희를 말리기에 진땀을 뺐다. 장경숙은 친구 남편의 뒷조사를 철저하게 해 주었다. 그 결과는 너무도 아연한 것. 김문희와 결혼한 뒤 그는 또 문금자(35·가명)란 여인과 결혼하여 서대문구청에 가호적까지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문희와 결혼한 2년 뒤에 식을 올리고, 현재는 1남 1녀의 자식까지 두고 있는 것이다. 김문희와의 사이에 둔 2남 1녀까지 합하여 3남 2녀를 둔 셈이었다. “어쩌면 10여년 이상 그렇게 감쪽같이 속아 살아왔니?” “전혀 그런 눈치도 못 챘어. 충정로 여자의 재산이 탐나서 총각이라 속이고 결혼한 거야.” “네 호적은 진짜 호적이지?” “아냐. 우리 호적도 가호적으로 돼 있어.” “이쪽 저쪽 모두 속인 거로군.” “저쪽은 처음엔 속였겠지만 지금은 내놓고 행세하는 모양이야.” 이동재는 이 문제로 김문희와 대판 싸움을 벌이고 집을 나가 버렸다. 물론 충정로의 아내의 집으로 나가 버린 것이다. 회사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받지도 않았다. ▒▒▒▒▒▒▒▒▒▒▒▒▒▒▒▒▒▒▒▒▒▒▒ [이런 경우는] 공정증서 불실기재 책임 못 면해 가호적제도를 제정한 것은 이북에서 월남한 분들의 호적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거짓신고를 한 사람이 더러 있는 듯합니다. 예컨대, 이북에 처가 있는 사람이 월남해서 처가 없는 독신자처럼 신고하는가 하면 A구청에 가호적을 하고 B구청에 다른 가호적을 하는 이가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공정증서 원본 불실기재’ 등의 죄로 형사책임의 대상이 됩니다. 김문희 여인의 경우, 즉 가호적이 두곳 있는 경우는 먼저 한 가호적이 효력이 있고 뒤에 한 것이 먼저 한 것과 충돌되면 뒤의 가호적에 기재된 것은 취소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다 거짓이 있고 그것을 증명할 증거가 있다면 다 취소될 듯합니다.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미분양 우려’ 평창선수촌 지방세 감면

    정부가 미분양 우려를 빚어 온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에 지방세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19일 행정자치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방세 소관 부처인 행자부는 최근 평창선수촌에 취득세와 재산세 등을 감면해 주는 데 동의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 숙소인 평창선수촌은 600가구 규모로 계획 중이며, 공사비는 1000억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도는 당초 민간자본을 유치해 평창선수촌을 짓고 올림픽이 끝난 뒤 일반에 분양한다는 계획을 세워 사업자를 공모했지만 어떤 기업도 나서지 않았다. 평창선수촌이 들어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의 인구가 4000명가량에 불과해 분양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이 지역에 부지를 갖고 있는 리조트업체 용평리조트가 세제 혜택을 조건으로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인센티브 없이는 평창선수촌 사업을 시행하려는 업체가 없어 지방세 감면 혜택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정부예산으로 1000억원 이상을 들여 건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지방세 비과세·감면 감축 방침에 배치되고 국민 세금으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논란이 일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해 왔다. 하지만 평창선수촌을 둘러싼 특수한 여건을 고려해 최근 감면에 동의했다고 행자부는 밝혔다. 감면 대상은 사업자가 부담하는 취득세와 올림픽이 끝난 후 선수촌을 분양받은 이들이 매년 내야 하는 재산세이며, 각종 부담금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평창 선수촌에 지방세 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올 정기국회 때 제출될 예정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자다 깨어보니 남편이 언니와 한방에서…충격

    자다 깨어보니 남편이 언니와 한방에서…충격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네번째 이야기는 한집에서 정성껏 돌봐준 언니가 자신의 남편을 꼬드겨 불륜의 정을 통하면서 졸지에 이혼을 당하고 만 20대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6. <人生극장 법률상담 (4)> 제부가 형부 되니 자매가 대판 싸움…남편의 까닭 없는 손찌검이 늘어나더니 (선데이서울 1972년 10월 15일) 아내를 극진히 위해 주던 남편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횡포는 점점 심해졌고 아내는 끝내 이혼서류에 도장을 안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헤어진 남편집에 들락거리는 여인이 있었는데…. 뒤를 밟아 급습했더니 언니가 옷장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한집서 살 때도 의문 많아…이혼하고 나니 함께 살아 “에이 더러운 것.”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25세가량의 예쁘장한 여인이 자기보다 서너 살 더 먹어 보이는 여인에게 욕을 하더니 따귀를 갈겼다. 욕과 함께 따귀를 얻어맞은 여인은 아무런 대꾸도 못했고 옆에 있던 20세가량의 소녀는 발만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5일 낮 서울 명동 A양장점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들은 김미영(30·가명), 희영(27·가명), 숙영(19·가명) 등 3자매. 모두가 미녀 타입. 사연은 이 양장점의 단골인 큰언니 미영이 동생 희영의 전 남편인 이건호(45·가명)씨를 빼앗아 살게 되자 동생이 막내 숙영과 함께 큰 언니를 잡으러(?) 다니다 양장점에서 마주쳤던 것. 양장점 안에서 “가자”, “못가겠다”며 한동안 승강이를 벌이다 큰언니는 하이힐의 뒷굽이 달아난 채 동생들로부터 협조를 부탁받았던 노점상의 힘을 빌어 택시에 억지로 실려 동생집으로 납치(?)되어 갔다. “개보다 못한 것, 그래 네가 언니냐?” “네가 이혼을 했으니까 그랬지.” 흥분한 동생에 비해 검까지 씹으며 오히려 태연한 건 언니 쪽이더라는 게 택시에 동승했던 노점상의 말. “차 안에서 싸우지 말라”는 운전사의 주의를 받으며 집까지 온 두 아우는 언니를 달아나지 못하게 한 뒤 친정인 전북 전주로 부모님들에게 “속히 올라오시라”고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처녀 때부터 말썽…지난해엔 시집서 쫓겨나 “그런 여자는 머리를 빡빡 깎고 얼굴에 못쓰게 만들어야 해.”, “그럴 필요도 없지. 그냥 죽여버려야지.”, “얘 더럽다. 말도 하지 마. 애 퉤퉤.” 싸움의 현장을 목격했던 양장점 아가씨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분해서 못 견디겠다고 흥분했다. “언니가 지난 봄 집에 오기 전까지 저는 누구못지 않게 행복했습니다. 시집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게 불쌍해서 집에 오라고 한 뒤 보약까지 사줘가며 지극정성으로 언니를 대접했는데….” 결과는 남편을 언니에게 빼앗기고 자기는 이혼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 희영씨가 남편 이씨와 결혼한 건 4년 전인 23세 때. 전주에서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 7남매(아들 2, 딸 5) 중 둘째로 태어난 희영씨는 “타고난 팔자가 나이 든 신랑에게 시집가야 행복하다”는 점장이들의 충고에 따라 그때 이미 41세였던 이씨와 결혼을 했다는 것. 점장이들 말대로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끔찍이도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N맨션아파트에서 살면서 모든 걸 최고급으로만 해주는 남편이었다. 지난 봄 첫 아기로 사내를 낳자 남편의 사랑은 더욱 뜨거웠다. 남편 이씨는 함경도 출신으로 6·25 때 월남, 미군부대에 근무하여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첫번째 결혼한 아내가 바람이 나서 자기 명의로 된 재산을 몽땅 처분하고 불륜남성과 달아나 버렸던 것. 그러니까 희영씨와는 재혼을 한 셈이었다. 언니 미영씨는 동생과 달리 처녀 때부터 집에서 내놓은 자식이라고 했을 정도로 바람둥이였다. 결혼 뒤에도 계속 말썽을 부려 지난해 남편으로부터 쫓겨났다는 게 동생들이 양장점에 와서 하소연한 이야기. “남편과 언니가 늦게까지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예사로 여겼지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의문되는 점이 많아요. 아기를 안고 곤하게 자다 아기가 울어 깨어보면 옆에 있던 남편이 없을 때가 잦았어요. 그래도 ‘화장실 갔겠지’하고 그냥 잠들어 버리곤 했었죠. 또 어떤 때는 남편이 새벽 같이 목욕탕에서 나온 적도 있었고.” 뿐만 아니라 언니가 온 뒤 얼마 지나서부터 그때까지 없었던 남편의 손찌검이 시작되었다는 것. 손찌검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드디어 지난 여름에는 이혼을 하자고 강요하더라는 것. 매일 싸움질이 계속되자 언니는 들락날락했다. 수상쩍어 급습했을 땐 옷장에 숨어 있어 그때 언니의 몸가짐은 엉망진창. 자기 남편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두 다리를 쩍 벌린 채 앉아 있지를 않나, 하여간 자신이 부끄러워 몇 번인가 언니에게 충고를 해 주었을 정도였다는 것. 계속되는 남편의 이혼 강요를 싫다고 했더니 손찌검 정도가 아니라 두들겨 패기까지. 견디다 못해 지난 8월 친정에 알리지도 않고 위자료 100만원만 받고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준 뒤 아기를 데리고 나와버렸다는 것. 물론 아기 양육비도 일체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집을 나와 아파트 근처에 셋방을 얻어 살면서 보니 헤어진 남편의 아파트에 하필이면 언니가 들락날락하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그래서 4일 시누이(법적으로는 남이지만)들과 함께 밤중에 아파트를 급습했다.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부수다시피 하고 들어가 보니 옷은 있는데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다락을 찾아보고 옷장을 열어봤더니 그래도 양심은 있던지 옷장 속에 쭈그리고 숨어 있더라는 것. 그러나 법적으로 남이 된 자신, 어쩔 수 없이 돌아나온 뒤 5일 명동으로 언니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언니가 C양장점 단골이라 이날 양장점에 찾아와 이상과 같은 호소를 하고 협조해 주기를 부탁했던 것. 양장점 아가씨들은 모두가 자신의 일같이 분해하면서 언니라는 여자가 잘 다니는 또 다른 단골 A양장점을 함께 찾아갔다가 마침 그곳에 있던 언니를 만났던 것. 6일 집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막내 숙영 양은 “어제 부모들이 상경해서 모두 해결됐다. 아무것도 아니니 이야기할 필요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 [이런 경우는]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민법 809조 및 815조에 규정된 바에 따르면 처제(처형)와의 혼인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설령 처와 사별을 했거나 이혼을 했을 때에도 적용됩니다. 같은 이유에서 형수(제수)와도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관계 서류가 접수되었을 때 그 혼인은 유효합니다. 이때 관계 당사자는 이를 이유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친동생이 방에서…충격

    집에 돌아오니 아내와 친동생이 방에서…충격

    2011년 영국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라이언 긱스가 동생의 부인과 8년에 걸쳐 은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드러나 전 세계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들이 엮이는 불륜·치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형제애와 가족윤리를 파탄낸다는 점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집니다. 한쪽의 극에 달한 분노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1972년 기사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5. 형수와의 불륜이 빚은 심야의 살인(선데이서울 1972년 10월 22일) 동생이 형수를 좋아하는 것은 흔한 일. 그러나 좋아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불륜을 저질렀던 30대 젊은이가 형의 손에 살해됐다. 시간은 새벽 2시. 잠에서 깬 형이 문득 건넌방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그건 기막히게도 동생과 아내의 그것이었다. 아내의 신음소리 형이 칼 들고 달려가기까지 지난 9월 27일 새벽 5시쯤 경북 의성경찰서 112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기는 봉양면인데요. 살인사건이 발생했어요. 잠자던 사람이 피투성이가 돼 죽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곧 비상을 걸어 형사대를 소집했다. 형사대가 의성군 봉양면 구미동 현장에 급파된 것은 새벽 5시 30분쯤. 사건 현장에는 주인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으며 숨을 거둔 이 마을 신모(31)씨가 형(37)의 가슴에 안겨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신씨의 집 건넌방에는 형의 아내 김모(33) 여인이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새파랗게 떨고 있었다. 형사대는 사건 현장을 세밀하게 감정한 후 유일한 목격자인 형 신씨의 아내 김여인을 불러 사건 경위를 캐 물었다. 그러나 김여인은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만 쳐다볼 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수사진이 추궁하자 김여인은 끝내 전신을 떨면서 쓰러졌다. 즉시 동네 의원에 입원시켰으나 그날 하루 종일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 측 진단은 쇼크로 인한 실어증. 수사진은 사건 현장에서 도난당한 흔적이 없는 점으로 보아 이 사건을 우선 치정살인으로 보고 주변 수사에 착수했다. 형을 불러 사건 발견 경위와 동생과 아내의 관계를 캐물었다. 형은 그날 새벽 4시쯤 들일을 나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건넌방에 들어갔다가 사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또 아내와 동생의 관계는 평소 매우 가까워 전부터 같이 잠을 자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으며 그날도 대구에서 동생이 내려와 밤 늦게까지 같이 놀다 가 자기는 아이들과 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여인을 다시 대구 경대 부속병원으로 입원시켜 입을 열도록 치료를 계속하면서 신씨의 신병을 확보, 김여인과 숨진 동생 주변 수사를 벌였다. 결국 사건 발생 8일 만에 형 대섭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함으로써 이 사건은 치정살인으로 끝이 났다. 신씨의 자백에 따르면 아내와 동생 간의 불륜의 관계는 동생이 1967년 부산 개전우체국 집배원으로 취직, 집을 떠나기 전부터 일 것으로 추측했다. 형이 이들의 불륜을 확인한 것만도 2년 전. 소문이 나면 집안이 창피해서 참아왔다는 것. 여러번 현장 목격하고 타일러도 봤으나 숨진 동생이 집배원으로 취직해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한 집에서 농사를 지어왔으며 부산으로 떠난 후에도 매월 정기휴일에 집에 들렀다고. 김여인이 입을 열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 어떤 계기로 언제 어디서 맺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생이 부산으로 떠났을 때는 이미 깊은 관계에 있어 집에 들를 때마다 남몰래 불륜을 일삼고 있었다는 것. 신씨가 이들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 부산에 있는 동생이 집에 올 때마다 아내가 화장을 하고 옷을 바꾸어 입는 등 소란을 떨었으며 동생과 오랫동안 방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곤 했다. 그해 여름 이들의 관계는 드디어 신씨에 의해 발각됐다. 들에서 몸이 불편해 일찍 돌아와보니 대낮에 아내와 동생이 방에서 엉겨 있었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힌 후 둘을 불러 조용히 타일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동생이 부산에서 30대의 이모(39)여인과 의남매를 맺어 동거, 집에 자주 들르지 않아 관계가 끊기는 듯했으나 지난 1월 대구 우체국으로 전근. 둘의 관계는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봄에는 동생이 의남매를 맺은 이모여인과 함께 고향에 들러 3일이나 묵고 간 일이 있는데 이때 김여인은 질투에 불타 안절부절. 둘의 관계는 공공연히 외부에까지 알려지게 됐다. 신씨가 고향을 다녀간 후 김여인은 신씨에게 질투에 찬 편지를 10여 통이나 보내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형 신씨는 이들의 불륜의 관계를 여러 번이나 목격하고는 소문이 두려워 고민만 해왔다고. 사건 당일에도 동생은 정기 휴일을 맞아 집에 들렀는데 그날 밤 2시쯤 형 대섭씨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건넌방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흥분,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와 아내와 엉겨 붙은 동생을 찔러 현장에서 숨지게 했다. 신씨의 아내 김여인은 그 당시 충격으로 아직도 말문을 열지 못하고 대구 경북대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스포츠산업 R&D에 130억원 투입

    정부가 스포츠산업 분야 연구·개발에 총 130억원을 투입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 “스포츠산업기술 전문기관인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을 통해 신규과제 10개 및 계속과제 9개를 지원하며 과제 특성에 따라 2~4년에 걸쳐 연구개발비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다양한 융합과 함께 수도권에 집중된 스포츠 레저를 지방으로 분산하는 데 있다. 스포츠와 정보통신기술(ICT)의 결합, 또는 스포츠와 정보기술(IT), ICT의 융합, 또 여기에 관광산업적 요소까지 덧붙이는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스포츠 콘텐츠 고급화를 위해 영상기반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시각화 요소 기술을 개발하는 과제를 비롯해 자전거 코스, 문화관광 정보, 내비게이션 등을 제공하는 스마트 헬멧 및 콘텐츠 기술, 청소년용 실감 체험형 스포츠 통합 플랫폼 기술, 자전거 부품 산업 등을 개발하는 데 지원된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지역 스포츠산업 거점’을 선정해 해당 지역에 특화된 스포츠산업 연구개발 및 사업화 촉진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윤양수 문체부 스포츠산업과장은 “스포츠를 국민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스포츠 시장을 창출하고 지역 스포츠산업 육성의 기반을 다져나갈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체부, 국민진흥체육공단은 16일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를 시작으로 서울, 광주 등을 돌며 공모과제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민체육진흥공단(www.kspo.or.kr)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인학 국립장애인도서관장

    이인학 국립장애인도서관장

    문화체육관광부는 13일 신임 국립장애인도서관장에 이인학(50)씨를 임명했다. 이 신임관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고열로 실명한 뒤 대구대에서 특수교육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지난 2년 동안 국립국어원 한국점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현재 국립서울맹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문체부는 “신임 관장이 교단과 특수교육 분야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 취약계층인 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을 향상하고, 수요자 중심의 도서관 장애인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임기는 2년이다.
  • 창조관광기업 육성 펀드 1000억 조성

    정부가 의료, 정보기술(IT), 공연, 쇼핑 등 고부가가치 사업을 융·복합한 관광사업 육성 지원에 나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3일 “관광벤처기업의 시장 선도적 투자수익 모델을 창출하고,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올해 안으로 정부와 민간이 6대4 비율로 출자해 220억 원 규모의 ‘창조관광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라면서 “2019년까지 1000억원 규모로 확대하는 것을 통해 관광산업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펀드는 관광 분야에 60% 이상 투자하며, 이 가운데 절반을 창조관광기업에 투입한다. 나머지 40%는 별도 제한 없이 벤처·중소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문화부는 이번 펀드 조성으로 관광벤처기업 성장 여건이 마련되고, 관광산업에 선진 금융투자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펀드 투자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는 초기 투자액 200억원 기준 약 528.7명으로 분석했다. 김철민 문체부 관광정책관은 “관광벤처기업을 지원하는 투자 지원 체계가 금융제도권에서 조기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과 각종 지원 대책을 적극 강구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20대女, 결혼식 갔더니 새 신랑이 남편…충격

    20대女, 결혼식 갔더니 새 신랑이 남편…충격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직장을 따라 서울로 간 남편이 아내 몰래 젊고 예쁘고 부유한 사내 여직원과 새 장가를 들어버린 용서못할 사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4. <人生극장 법률상담 (3)> 아내 두고 총각 장가간 남편…결혼식장 덮쳤지만 바람처럼 사라져 (선데이서울 1972년 7월 23일) 보는 사람마다 요즘 얼굴이 안됐다고 한 마디씩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이 보기에도 몹시 여윈 것 같다. 직장에 나가도 시들하고 세상 살 맛이 도대체 없는 것이다. 3주일째 남편 최희문(28·가명)이 찾아 주지를 않고 있다. 끝숙이는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끝숙이’란 이름은 부모들이 장난하느라 붙여 준 것이 아니고, 딸을 넷까지 낳고 기진맥진해서 이걸로 딸은 끝을 낼 거라 해서 영숙, 명숙, 공숙의 3언니 다음인 그녀에게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자로 ‘장말숙’(張末淑)이라 호적에 올렸으니까 ‘끝숙이’란 이름은 절대로 틀린 것은 아니다. 어쨌든 끝숙이는 서울에 올라가 있는 남편의 동정이 요즘 수상하기 짝이 없어서 흥신소에 의뢰해 볼 작정을 세웠다. 3주째나 꼼짝도 않더니…. 화장을 끝낸 그녀는 1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흥신소란 곳을 찾아가 남편의 이름과 직장을 적어 주고 계약금을 지불했다. 일단 수속을 끝내고 나니 불안이 가시기는커녕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바람을 피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바람이 한순간에 그치기만 한다면 그녀는 몹시 관대해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약 고칠 수 없는 바람이라면? 어지럽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은근히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날 밤, 끝숙이는 어떤 생맥주집에 들어가 콜라라도 마시듯 맥주를 들이켰다. 울분과 초조함으로 견딜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토요일에 다시 그녀는 흥신소를 찾아갔다. 머릿기름을 반지르르하게 바른 담당 직원은 의미있게 웃으며 자기가 본 듯이 그럴싸하게 얘기를 들려주었다. 결과는 그녀의 기우가 마침내 적중했다는 것이었다. 적중 정도가 아니고 상상하지도 못 했던 비밀이 터져 나왔다. 그 줄거리는 이러했다. 최희문은 이미 결혼 날짜까지 받아놓고 있었다. 상대는 윤희정(가명·22)이란 같은 직장의 아가씨였다. 흥신소 직원은 윤의 사진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사진에 의하면 끝숙이를 완전히 기죽이는 용모였다. 엄청난 비밀에 치를 떨어 기다란 보기 좋은 머리칼과 날씬한 콧날, 만월처럼 시원한 얼굴의 윤곽 등 나무랄 데가 한 곳도 없었다. 끝숙이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길이 확확 일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 선생이 먼저 프로포즈했어요. 3주일 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훨씬 전부터 두 사람은 데이트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었던 사이였죠. 퇴근 무렵에 최 선생이 오늘 좀 만나자고 얘기를 건넸어요.” 그들은 양식을 먹고 인천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어물어물하다 보니 돌아오기엔 너무 시간이 늦어 부득이 호텔에 들게 되었다. 윤은 최에게 모든 것을 거의 자발적으로 바친 것만은 틀림 없다는 것이었다. 이 뒤부터 두 사람은 저녁마다 자리를 함께 했고, 결혼 약속도 하게 됐다. 혼담이 무르익어 날짜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끝숙이를 치명적으로 절망시킨 것은 윤이란 처녀가 그녀보다 압도적으로 부자라는 사실. 남편은 미혼남으로 행세하며 윤의 미모와 재산을 탐냈던 것임에 틀림 없었다. 간곳없는 조강지처의 꿈 끝숙이와 최는 같은 고향에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생.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들은 서로 남다른 감정으로 바라보게 됐고, 졸업 무렵엔 사랑까지 고백했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이들은 육체적 관계로 발전했고, 직장을 가진 뒤부터 최의 요구로 결혼식까지 올렸다. 다만 혼인 신고는 미처 못했지만. 주변에서 부부 사이로 정당하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 서울로 직장을 옮길 기회가 생겼어. 우선 내가 먼저 올라가 터를 잡을 테니까 당신은 몇 달만 참아주어요. 당분간 하숙하며 지내겠어.” 3개월 전 이렇게 얘기하던 때까지만 해도 남편의 심경은 분명 진실이었고 그래서 끝숙이도 이의 없이 수락했다. 3주 동안이나 남편이 전혀 내려오지 않았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분명히 알게 된 그녀는 ‘기왕 못 먹을 밥’으로 체념하고 골똘히 보복의 길을 궁리했다. 흥신소 직원의 조언대로 그녀는 사람을 열 명쯤 동원, 결혼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통한 마음은 가시기는커녕 더욱 괴롭기만 했다. 최와 윤의 결혼식은 3월 19일 오후 1시. 끝숙이는 현기증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날 낮 1시 40분쯤 식장에 나타났다. 그 시간에 벌써 신랑·신부는 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원된 사람들과 함께 식장 안으로 난입해 들어갔다. “이 결혼식은 무효요. 사기꾼과 결혼하지 말아요.” 식장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고 난입해 들어간 축들과 신랑·신부 측 가족들이 뒤엉켜 난투극까지 벌어졌다. 끝숙이는 식장에서 기절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신혼부부는 허니문을 떠나버렸다. 그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 갔다. 오로지 그만을 하늘처럼 의지하고 살아온 그녀로선 삶의 기둥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죽치고 누워서 최를 연연해 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때묻은 것을 털어버리며 재출발을 해야 할 그녀는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삶의 지표를 찾을 것인지 암담하기만 했다. ▒▒▒▒▒▒▒▒▒▒▒▒▒▒▒▒▒▒▒▒▒▒▒ [이런 경우는] 강제 혼인 바람직하잖으니 물적·정신적 배상 소송을 법률적으로 볼 때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씨와 윤씨는 혼인신고를 누가 빨리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최씨의 아내로 결정됩니다. 다른 한 분은 최씨로부터 위자료 및 기타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씨의 경우에는 최씨가 혼인신고에 응하지 않을 것이니까 ‘혼인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사실상 혼인관계존부 확인청구’(가사심판법 2조)를 하여 가정법원의 조정 및 심판을 받아 최씨와 법에 의한 강제 혼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강제 결혼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니 장씨는 그동안의 물질·정신적 피해를 감안하여 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손해배상액수는 변호사와 의논을 하십시오. 그리고 최씨의 솜씨로 보아 이미 그는 윤씨와 혼인신고를 끝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앞으로도 장씨는 몸을 함부로 하지 말고 혼인신고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주의하십시오.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53. 술 못하는 남자는 싫다는 블루진 바지의 양희은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3. 술 못하는 남자는 싫다는 블루진 바지의 양희은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과거에는 신문·잡지의 지면이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를 팬들이 접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타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상세한 신상정보를 소개하는 코너들을 지면에서 자주 볼수 있었는데, 그 중 대표격이 선데이서울의 [스타의 비밀: 알고 싶고 듣고 싶고 말하고픈 팬들의 스무고개]라는 코너였습니다. 1972년 여름 양희은편을 소개합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3. [스타의 비밀: 알고 싶고 듣고 싶고 말하고 픈 팬들의 스무고개] 술 못하는 남자는 싫다는 블루진 바지의 양희은…두툼한 손 가진 사람이 좋아 -1972년 7월 23일자 “노래는 취미로 부르는 거지 가수되는 게 제 소망은 아니에요.” 대학 1학년 때인 작년 5월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 ‘아침이슬’, ‘세노야’ 등으로 1년 만에 스타덤에 올라선 양희은(20)양은 가수라기보다는 그저 꿈에 부푼 여대생이다. 맑고 생명력 있는 노래만 부르고파 화장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블루진 바지에 T셔츠 차림. 어깨엔 끈을 길게 늘어뜨린 백이 걸려 있고 발엔 언제나 운동화가 신겨져 있다. “간편해서 활동하기에 편하지 않아요? 요즈음 다른 여대생들도 바지를 많이 입어요. 저도 입어 보니까 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더군요.” 언제나 바지에 대한 그녀의 말.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양희은(영세명 비비안나)은 경기여고를 마치자 사학자의 꿈을 안고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싱어가 된 것은 우연한 일. 1971년 5월 YWCA에서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집’ 마련을 위해 만든 ‘청개구리 클럽’에 가입해서 송창식, 서유석 등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평소부터 노래에 취미와 재질이 있었던 그녀는 거기서 알게 된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김광희의 ‘세노야’를 불러 대학생들 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데뷔 1년 만에 내놓은 독집 3장째 물음1) 오늘은 어째 블루진 차림이 아닌데…. -흰 바지예요. 옷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고.  물음2) 여름휴가 계획은? -마산 결핵 요양소 초청으로 21일쯤 마산엘 가요. 그것이 끝나면 가톨릭 마산교구 고등부연합회 하계수련대회에 참가해요. 4일쯤 걸리는데 틈이 나면 거기서 해수욕을 할 예정이죠.  물음3) 자신의 노래에 대한 평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잖아요? 다만 제 소망은 맑고 호소력 있고 건전하고 생명력 있는 노랠 부르고 싶어요.  데이트는 고2 때 사귄 남자친구와  물음4) 취입한 노래는 얼마나? -작년 9월에 처녀 출반으로 저의 독집 ‘아침 이슬’이 나왔죠. 아마 12곡이 실렸을 거예요. 10월에 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나왔고 지난 6월 10곡이 담긴 ‘서울로 가는 길’이란 독집이 나왔어요. 3장 나온 셈이에요. 물음5) 어떤 가수를 좋아하나? -‘파란 많은 세상’을 부른 ‘밥 딜런’. 국내 가수로는 창식 형(송창식)과 조영남 아저씨(군인이니까)도 좋고 그렇게 따지자니 다 좋은 것 같아요. 물음6) 데이트는? -고2 때부터 아는 남자 친구가 하나 있죠. 두달에 한번 쯤 만나는데 가벼운 데이트죠. 그것이 전부.  물음7) 그럼 결혼은 언제 누구와? -30살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물론 연애결혼. 착하고 우직한 남자였으면 해요. 말하자면 ‘보낸저’의 ‘호스’같은 사람. 얼마 전에 죽었다죠? 결혼은 30살까지 기다려서 연애로  물음8) 연예계에 있는 사람 중 누구와 친한가? -‘청개구리’ 가족은 다 친해요. 송창식, 서유석, 김민기, 이주원, 김윤태…. 물음9) 남자를 볼 때 어디부터 보나? -손부터 봐요. 손은 그 사람의 성품을 나타내는 거울이래요. 마른 가지처럼 생긴 손을 가진 이는 다정다감하고 예술적이고 소극적. 두툼하고 큰 손을 가진 남자는 포용력 있고 인자하답니다. 크고 두툼한 손이 좋지요. 물음10) 충고해 주고 싶은 남자를 열거하면? 1. 옷 자주 갈아입는 남자 2. 술을 한 모금도 못하는 남자 3. 천연덕스런 거짓말쟁이 물음11) 자신의 몸 중에서 예쁘고 미운 곳? -손과 귀는 자타가 공인하는 뷰티포인트. 눈이 미워요. 하나는 쌍커풀이 있는데 또 하나는 아니거든요. 짝눈인 셈이에요. 화장 모르고 이발만 한 달에 한 번씩 물음12) 가수로 힘든 점은? -엄청난 공부를 끝없이 해야 된다는 사실이에요. ‘세노야’를 작곡·작사한 김광희 언니한테 음악이론과 시창레슨을 받고 있어요. 물음13) 취미는? -묵주 수집과 상본 ‘가톨릭’에서 쓰는 축하 카드 모으기. 묵주는 예루살렘의 나무 열매로 만든 것을 위시해서 10개. 상본은 1500장 정도 모았어요. 물음14) 여가에 하는 일? -프랑스 자수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내요. 다독하는 편이에요. 물음15) 화장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미장원엔? -한 달 1회. 다만 이발하러 가는 일 뿐이에요. 노래는 졸업전까지만, 기자가 큰 꿈 물음16) 목욕은? 집 앞의 대중탕. 2일에 한 번씩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미. 목욕이 취미란에 끼어야 될 정도예요. 물음17) 잘 먹는 것은? -평양냉면. 아빠의 고향이 이북이라서인지 제일 좋아요. 군것질로는 감자와 옥수수를 우선 꼽아야겠어요. 물음18) 월수입과 용돈은? -하루 용돈은 500원에서 1000원. 거의가 택시비예요. 다방에는 가기 싫어하니까 찻값 지출은 거의 없는 셈. 월수입은 밝히지 않을래요. 물음19) 옷은 몇 벌? -엄마가 반도 아케이드에서 양장점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옷이 많은 것은 아니고 셔츠 10개, 바지 6개 (그중 제일 많이 입는 것은 블루진 하나), 무대의상 3벌, 20벌이 전부에요. 물음20) 앞으로의 계획은? -노래는 대학에 있는 동안만 부르고 좀 더 공부했으면 해요. 가능하면 유학을 가서 역사철학을 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식을 가진 신문기자가 되고 싶고. 앞으로 더 생각해서 두 가지 중 한 길을 택하겠어요. <미니 신상메모> ▲홀어머니 윤순모(43·양장점 경영)씨의 세 딸 중 맏이. ▲키 166㎝ ▲몸매 35-23-36 ▲1952년 8월 13일생.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한집 동거 20대女, 밤마다 아버지 방 찾아가…

    한집 동거 20대女, 밤마다 아버지 방 찾아가…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남편이 자신의 정부를 집에 식모로 들인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그 아들이 보내 온 사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52. <人生극장 법률상담 (2)> 식모로 위장한 아버지의 정부(情婦)…대학 중퇴 요정 호스티스가 안주인 자리를 노려 (선데이서울 1972년 8월 20일) 매사 조심스럽던 몸가짐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숱하게 식모들이 거쳐 지나갔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온 김명희(23·가명)라는 식모는 전연 식모다운 데가 없다. 열심히 일을 하고는 있지만 그 부지런함은 무엇인가를 감추려고 일부러 설치는 것 같아 보였다. 시선도 그랬다. 무슨 죄를 졌는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눈을 내리깔고 있는 편이 많았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시선이 부딪치면 그 당황해하는 모습은 오히려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런대로 쓸만한데, 아까워. 도저히 식모생활을 할만한 처지가 아냐. 뭔가 뒷사연이 있는 여자야. 분명히 뭔가가 있어.” 권주도(26·가명)씨는 거실 소파에 앉아 먼지를 털고 있는 김씨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보며 혼자 뇌까린다.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권씨는 벌떡 일어나 라디오 방송을 튼다. 포케리니의 첼로 협주곡이 터져 나온다. 그는 볼륨을 끝까지 올려놓았다. 야노스 스타커의 첼로 솜씨가 집안 전체를 뒤집어엎는 것 같다. 외출 준비를 끝낸 어머니가 얼굴을 찡그리며 나온다. “얘야. 내장 속까지 덜덜 떨린다 원. 그 음악은 네가 레코드로도 사놨지 않아?” “와. 어머니 귀도 보통이 아니군. 서당개 3년이면 어쩐다더니….” “저 녀석 엄마한테 하는 말솜씨 좀 보게.” “오늘 용돈이나 좀 두둑이 주세요. 좋은 판이 나왔대요.” “레코드 사는 거야 얼마든 지 안심이지. 돈 1만원이면 되겠냐.” “충분하고도 남아요.” 그때 전화가 울렸다. 권씨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명희 좀 바꿔주세요.” “어디십니까?” “여기 광화문이에요.” “기다리세요.” 권씨는 김씨를 불러 바꿔준다. 그러면서도 그쪽의 여자 목소리가 너무 귀에 익은 것 같아 이상한 생각도 든다. 어머니가 나가고 권씨도 외출 준비를 한다. 그때 김씨가 다가와 오늘 낮 12시쯤 나갈 일이 있으니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두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충무로 쪽에 가서 레코드 두 장을 사고 난 그는 B호텔 K상사로 전화를 걸어 이순정(가명)씨를 불러냈다. 이씨와 B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그는 천천히 걸었다. 20분 뒤 B호텔에 도착한 그는 호텔 주차장에서 낯익은 아버지의 차를 발견했다. 그 순간 머리를 때리는 이상한 예감에 권씨는 전신이 긴장으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까 집에서 김씨를 찾던 전화의 낯익은 목소리가 아버지의 비서 미스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호텔 로비 구석 의자에 숨듯이 앉았다. 낮 12시 10분쯤. 권씨의 예감이 적중했다. 날아갈 듯 날씬하게 차린 김씨가 총총 들어서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린 것이다. 권씨는 이씨와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명희라는 아이의 정체가 무엇일까? 아버지는 그 시간에 무슨 일로 B호텔에 와 있었을까? 미스최는 왜 전화를 걸었을까?’ 두 달의 여유를 두고 권씨는 직접 김씨의 정체를 캐기 위해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김씨는 A요정의 일급 호스티스 출신으로 여자대학 중퇴. 1년 전에 아버지 권모(51) 사장을 만나 그날 저녁으로 S 호텔에서 동침했고 1주일에 보통 3회 이상 만나 즐겨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집안에서 감쪽같이 밀회 뿐만 아니라 대담하게도 최근에는 집 안에서마저 두어 차례 이상이나 동침을 했다. 보통 자정이 넘어 화장실 가는 체 하고 권 사장이 밖으로 나와 김씨의 방에서 새벽까지 지내고 돌아오는 것이다. 50평생 아내 외의 딴 여자를 전혀 모르고 근엄하게 살아왔던 아버지가 뒤늦게 ‘로맨스 그레이’가 되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동정의 여지도 있었지만 그러나 계획적으로 그 여자를 식모로 위장시켜 집 안에 잠입시킨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아들은 결론을 내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 그대로였다. 게다가 김씨의 속셈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일단 식모로서 온갖 수모를 감수하는 대신 권씨 집안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말겠다는 엄청난 계획이었다. 이 속셈이 전혀 터무니 없는 건 아니었다. 권 사장의 총애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 아들로서는 놀랍기만 한 사실이었다. 권씨는 결국 이 문제를 일단 어머니와 상의하기로 했다. 어느 날 어머니와 자리를 마련한 그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어머니의 반응도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잘 알고 있어. 네가 알아냈을 정도인데 난들 왜 모를 리가 있겠냐? 다만 네가 나보다 정확하고 깊이 많은 것을 알아냈구나. 지금 나로선 아직 어떻게 한다는 결정적인 방침이 없다. 명희라는 아이의 야심이 대단하니까 이쪽에서도 그에 지지 않는 수단을 마련해야 될 거야.” 아내에게 처분 맡긴 남편 “놀랐습니다. 역시 부자 사이보단 부부 사이가 더 밀착되어 있군요. 어떻게 하죠?” “글쎄다. 그것 때문에 골치 앓고 있는 거 아니니?” “적당히 위자료조로 돈을 주어서 내보내는 것도 어떨까요?” “적당한 위자료가 어떤 선이 될지도 모르고 설령 그것으로 결정을 본다 해도 우리 쪽 재산을 탐내고 있는 이상 당장 호락호락 물러서겠냐?” “역시 간통죄로 몰아 잡아넣고 법으로 해결하는 편이 좋겠군요.” “아버지 위신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명희가 바로 이런 약점을 노리고 있어요.” “오늘 저녁에 일단 아버지와 함께 이 문제를 진지하게 얘기하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사자가 알아야 하니까요.” “그러기로 하자.” 이날 밤 권 사장은 부인에게 자신이 최근 걸어온 부도덕한 애욕 행각을 낱낱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당신의 조치에 일임한다”며 체념하고 말았다. ▒▒▒▒▒▒▒▒▒▒▒▒▒▒▒▒▒▒▒▒▒▒▒ [이런 경우는] 법 호소에 앞서 아량 베풀어 용서를 배우자 있는 사람이 외도하는 것도 용서 못할 일인데 정부를 식모로 위장하여 자기 집안에 잠입시킨 뒤 계속 바람을 피운 것은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권 사장과 김명희 여인은 고소를 당하면 징역을 가고 권 사장은 아내와 이혼하고 위자료도 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부인의 입장에서는 보복을 한 것으로 다소 속이 후련할지는 모르지만 권 사장이 사회적으로 매장되며 그 자녀들에게도 좋을 수 없고 가정이 파탄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겠지요. 부인의 억울한 마음에 십분 동정이 가지만 인간으로서 실수가 없을 수 없으니 권 사장이 진실로 뉘우친다면 그 여자는 내보내고 권 사장을 용서해 주는 아량을 베풀어 새 출발을 해 보는 것도 어떨지요. <정범석 건국대 시민법률상담소장>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5월 관광주간 단기방학 최대 8일 근로자도 휴가간다? 혜택보니

    5월 관광주간 단기방학 최대 8일 근로자도 휴가간다? 혜택보니

    5월 관광주간 단기방학 최대 8일 근로자도 휴가간다? 혜택보니 ‘5월 관광주간 단기방학’ 전국의 초·중·고교가 5월 봄 관광주간 행사 기간 동안 최대 8일까지 자율휴업을 하거나 단기방학에 들어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일 “5월 1∼14일 봄 관광주간 캠페인에 정부부처·전국 자치단체·공공기관·기업·학교 등이 참여해 ‘공무원과 근로자의 휴가 가기’ 행사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 기간에 전국 초·중·고교 1만199곳은 자율휴업 또는 단기방학을 진행한다. 이는 전체 전국 초·중·고교 1만1464곳의 88.9%에 해당한다. 행사 기간에는 ▲주요 관광지·지역축제와의 연계 강화 ▲부처간 협업으로 ‘캠핑주간’ ‘행복만원 템플스테이’ ‘농촌관광 가족주간’ 등 체험 프로그램 확대 ▲전국 숙박업체 1411개·지역 대표 맛집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5월 봄 관광주간에는 휴가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정부부처·기업·학교가 합심했다. 정부 부처 장·차관은 관광주간에 1∼3일 연가를 내 직원들의 휴가를 촉진할 예정이다. 문체부는 인사혁신처·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공무원·공공기관 임직원·기업 근로자의 휴가 사용을 지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도 관광주간 참여를 적극 장려할 예정이다. 아울러 전국 관광업체들도 다양한 이벤트로 국민의 봄 휴가철 문화 확산에 나섰다. 문체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촌관광 가족주간’을 열어 농촌체험휴양마을 148곳에서 체험행사·숙박시설·특산물 판매 가격을 20% 할인한다. 환경부는 행사기간인 5월 5∼16일 국립공원 야영장 28곳의 이용료를 50% 할인해준다. 문화재청은 4대 궁과 종묘 입장권을 50% 저렴하게 판매한다. 전국의 1411곳의 숙박업체에서는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지역 추천 맛집·외식업체·농가맛집 등 음식점 439곳도 동참해 음식 관광을 촉진한다. 롯데월드·한화 아쿠아플라넷·대명 비발디파크·오션월드 등 유명 테마파크와 창조관광기업 13곳도 할인행사에 참여한다. 우수쇼핑인증업소 20곳과 롯데마트, 하나카드, 솔베이, 코베아 등 다양한 업체도 할인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