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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 서정시의 계승자’/故 박재삼 시인 詩 세계 여행

    ◎1주기 추모 60·70년대 작품묶어 ‘시전집 1권’ 발간/시집 2권·산문집 준비 ‘해방이후 한국 서정시의 정점’에 자리잡은 박재삼(朴在森) 시인이 주위의 안타까움을 훌훌 털고 세상을 떠난 지도 1년.그의 ‘시전집 1권’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이 전집은 시인의 첫번째 시집 ‘춘향의 마음’(62년,신구문화사)부터 다섯번째 시집 ‘뜨거운 달’(79년,근역서재)까지를 묶은 것이다.시 세계의 정수(精髓)가 담긴 시절의 작품들이다.생전에 펴낸 시집을 모아 두 권을 더 펴내고 한 권의 산문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 작가를 떠올릴 때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일체의 형용사를 다 발라내고 박재삼 시인 앞에 붙는 것은‘서러움’이다.그에겐 삶이 서러웠고 시가 서러웠다.그의 설움이 세상에겐 위로였다. 인생의 절반을 병마와 가난과 싸우면서도 올곧은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던 박재삼 시인의 존재는 한국 시사(詩史)적인 의미로만 보더라도 김소월,서정주로 이어지는 민족서정시의 계승자였다.전통적인 리듬에 고유의 정서인 한을 접맥시켜 온 흐름에풍부한 물줄기를 보태고 있다. 그 물줄기는 지금도 의미를 띠면서 유유히 흐른다.80년대엔 ‘싸움터의 소리’에 치이고,90년대엔 ‘현란한 감각의 난장(亂場)’에 치이면서 지칠 대로 지친 현재의 시단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전집을 기획한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이렇게 말한다.“시인의 1주기를 맞아 한국 서정시의 원류를 탐색하는 징검다리를 놓아 보고 싶었다.90년대를 고비로 선정성·실험성이 주춤하는 우리 시의 현주소에서 시의 서정성에 대해 밀도있는 고찰을 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인이 박재삼이다” 세월이 지나도 빛바램이 없는 시인의 육성.(‘천년의 바람’) 자연의 변함없음에 빗대어 인간사의 가벼운 팔랑거림을 나무라고 있다.영리에 눈먼 세상의 덧없음을 한탄한다.그 음조는 비애미(悲哀美)다.(‘사람이 사는 길 밑에’) 시인의 몸은 떠나도 노래의 반짝거림은 남는다.변함없는 음성으로 시 정신의 한 갈래를 지켜 온 그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오늘의 노래도 더 풍성해지리라. 시인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53년 ‘문예’지에 ‘강물에서’,55년 ‘현대문학’에 ‘정적’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고려대 국문과를 수료했으며 평생 가난을 벗삼아 지냈다.살아갈 방도 삼아 서울신문에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기를 싣기도 했다.
  • 동양 最古수학서 ‘九章算術’ 완역/도서출판 서해문집 국내 최초로

    ◎중 삼국시대 위나라 유휘가 주석붙여/조세·관개수로사업 담당관리 필독서/고대 동양 과학수준·사회상 추정 가능 동양 최고(最古)의 수학서로 꼽히는 ‘구장산술(九章算術)’(김혜경·윤주영 옮김)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역돼 나왔다.도서출판 서해문집.일부 중국수학 연구자들이 그 내용을 부분적으로 소개하기는 했지만 완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부터 2,000년전인 후한시대에 그 모습이 갖춰진 ‘구장산술’은 중국은 물론 동양 여러 나라에 보급돼 수학발전에 커다란 구실을 했다.지은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삼국시대 위나라의 유희가 주석을 붙여 펴낸 것으로 전해진다.이 책은 특히 조세 및 부역의 징발이나 관개수로 사업 등을 담당하던 관리들의 필독서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구장산술’은 신성한 책으로 받아들여졌다.조선 말기 순조 때의 수학자인 남병길은 조선의 사정에 맞게 해설을 붙여 ‘구장술해’라는 책을 펴내 산술교본으로 삼았다. ‘구장산술’은 전답의 넓이와 가로·세로 길이를 구하는 방전(方田)장에서부터 직각삼각형의 높이와 길이,넓이를 구하는 구고(句股)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9장으로 이뤄져 있다.그 문제들을 보면 2,000년전 중국에는 이미 방정식과 원주율,피타고라스의 정리 등이 실생활에 응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 책은 중국의 수학이 어떤 내력을 거쳐 발전해 왔는가를 보여 준다.주나라 시대 수학은 육예(六藝) 가운데 하나였다.‘예’란 영어의 아트(art)에 해당하는 말로 넓은 의미의 기술을 뜻한다.주나라 관료들은 이 수학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수학은 궁정 수학자들을 중심으로 관료의 기예로서 발달했다.‘구장산술’은 그러한 중국 수학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구장산술’은 고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과학수준은 물론 정치·경제·사회사까지도 추정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다.‘구장산술’에 따르면 고대 중국 사람들은 속미(粟米),즉 조를 기준으로 곡물을 교환했다.속(粟)이란 껍질을 벗기기 전의 조를 말한다.여미(매조미쌀)·패미(고른쌀)·삭미(정한쌀)·어미(御米,고급쌀) 등 그 찧은 정도에 따라 교환율이 달랐다.조는 후한시대에 주식으로 중요시됐다. ‘구장산술’중의 균륜(均輪)장에 나오는 문제들을 보면 당시 중국의 조세부담이 매우 가혹했음을 알 수 있다.균륜장의 문제들은 정해진 창고로 쌀을 운반할 때 걸리는 날짜 등을 고려해 공평한 부담을 과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러한 작업은 실제로 전한(前漢) 무제시대에 만들어진 관직인 균륜관이 시행했다.
  • 짚풀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3)

    ◎씨오쟁이·둥구미에 희망을 담는다/흔한 소재·다양한 생활용품 1년단위로 기획전 꾸며 “굶어 죽어도 씨오쟁이는 베고 죽는다,7년 대한(大旱)에도 씨오쟁이는 나온다더라” 도시의 빌딩숲 사이,자그마한 박물관을 찾아 이런 말을 해보라.자녀에게,아니면 연인에게 얼마나 멋지게 비칠까. 씨오쟁이는 짚으로 만든 씨앗 그릇이다.우리 조상들은 보릿고개로 아무리 배를 곯아도 씨오쟁이 만큼은 손대지 않았다.다음해에 씨를 뿌려 농사를 이어나갈 유일한 희망인 탓이다.제주도에서는 씨오쟁이를 시부개라 부르며 가신(家神)으로 받들기도 했다. 삭막한 IMF시절이지만 작은 행복은 어디서나 찾아진다.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중 하나인 청담 사거리.골목길로 접어들면 ‘짚·풀생활사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짚과 풀로 만든 모든 전통자료를 수집·전시하는 사설 특수전문박물관이다.흔한 소재로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낸 조상들의 지혜가 한눈에 들어온다.IMF역경을 이기는 교훈도 담겨 있다. 짚·풀전문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다.그러나 ‘번듯한박물관’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아무 생각없이 돌아보면 관람은 간단히 끝난다.약간의 사전지식과 학구적 자세가 있어야 즐거움이 배가(倍加)된다.전시품 하나하나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짐은 물론이다. 짚과 풀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재료다.볏짚 보릿짚 갈대 억새 부들 자오랑 띠 댕댕이 등.이것들로 우리 조상들은 그릇 방석 바구니 장식품을 비롯한 여러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짚·풀박물관에서 소장한 자료는 모두 3,500여점.전시공간이 넉넉치않아 1년 단위로 기획전을 꾸미고 있다.93년 개관이래 ‘망·망태·망태기전’ ‘보릿짚·밀짚 특별전’ ‘짚·풀바구니전’등을 가졌다.5월 초부터는 ‘곡식담는 짚그릇전’을 열고 있다. 짚그릇에는 씨오쟁이 외에 섬 멱서리 가마니 짚독 둥구미 종다래끼 등이 있다.섬은 곡물을 담아 운반하던 짚그릇이다.나라에 내는 세미(稅米)도 섬에 넣어 옮겨졌다.섬에는 애국미 헌납,탐관오리 수탈 등 여러 사연이 실려 있다.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멱서리도 있다.장마당에서 물건을 담아 팔때 사용했다.멱서리의 용량은 벼 10∼20말 정도.일정하지가 않았다.어려운 중에도 넉넉한 인심을 반영한다.일제의 한반도 강점후 용량을 정확히 하고 용기의 빈 틈을 없애기 위해 10말들이 가마니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원래는 일본산 이다.가마니에는 일제에 의한 곡물수탈의 한이 서려 있다. 짚으로 만든 독은 생각보다 튼튼했다.삼베로 색선을 내는 멋도 부렸다.쌀 2∼3가마가 들어가는 대형도 있다.둥구미는 온갖 잡곡을 갈무리하던 짚그릇이다.나물캐러갈 때도 둥구미를 가져갔다.50년대까지만 해도 한 집에 3∼4개씩의 둥구미가 있었다.종다래끼는 씨뿌릴 때 허리에 차는 씨앗 주머니다.전시된 짚그릇들은 100년 이상된 것도 있다.대개는 20∼50년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짚은 곡물을 키운 어머니 같은 존재다.그것이 다시 곡물을 보호하는 그릇으로 재생된 것이다.그릇의 역할이 끝나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 만물을 키우는 거름으로 환원된다.자연을 거역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바 크다.플라스틱이 주는 간편함에 젖어 있는 신세대들에게는 짚·풀이 주는 ‘자연순환의 큰 뜻’을 일깨워줄만 하다.짚·풀로 만든 제품은 정형이 없다.필요에 의해 자연스러운 형태로 창조되었다.이것 또한 규격화­정형화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메마름을 적셔줄 요소다. 짚·풀박물관에 마침 경희대 미술학도들이 현장교육을 왔다.20여명의 학생들을 인솔한 朱剛玄 교수(민족문화유산연구소 소장)는 “박물관의 크기에 관계없이 그 속에 숨은 뜻을 살펴야 한다”면서 “최근 거의 다시 지은 불국사만 관람하지 말고 무너진 절터의 깨진 기왓장 하나에서 의미를 찾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했다.학생들은 짚그릇과 함께 전시된 짚신,죽(竹)서방 등을 신기해했다.죽서방은 죽부인(여름밤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끼고 자도록대 나무를 엮어 만든 기구)을 여성용으로 작게 만든 것이다. ◎印炳善 관장/“농업문화 유산보며 조상 지혜 나눴으면” 印炳善 관장(62)의 ‘짚·풀론(論)’과 ‘박물관론(論)’은 확고했다.짚·풀 제품이 지닌 의미를 계승하는 노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신념에가득차 있었다.21세기를 맞아 기존의 박물관을 ‘정보관’개념으로 바꿔야한다고 제안했다. 印관장은 “짚·풀에는 농업시대 자급자족 문화의 장점이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이 땅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룩한 문화입니다.이것들이 사라지기전에 연구·보존해서 후세에 남겨야 합니다”고 강조했다.그녀는 “꼬리를 잡는 심정으로 짚·풀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지금 기회를 놓지면 짚·풀 문화는 영원히 사장(死藏)된다고 경고했다.“예전에 우리는 곡식 담는 그릇을 모두 짚으로 엮어 만들었습니다.방습효과가 뛰어나 곡물이 썩거나 상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지요” 印관장의 ‘짚·풀 예찬’은 끝이 없는 듯 보였다. 印관장은 이어 “박물관은 이제 유물을 적당히 늘어놓는 곳에서 탈피해야합니다.그 민족이나 지역의 문화정보를 가능한한 많이 캐내 일반에게 보여주는 정보관,사회교육관이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짚·풀박물관은 이를 위해 문화연구회를 따로 두고 있다.전통문화를 배우려는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함께 연구해보자는 취지다.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한 짚·풀 문화강좌도 수시로 열고 있다.강좌내용은 수수깡공예 보릿대꽃다발 여치집짓기 곡식인형만들기 등으로 듣기만 해도 친근하다. 印관장은 故 申東曄 시인의 부인이다.서울대 서양철학과에 다니다 그와 결혼했다.유명한 민족시인의 미망인답게 문화사랑이 남다르다.스스로 ‘들풀이 되어라’라는 시집도 냈고 ‘벼랑끝에 하늘’등 산문집도 여러편 썼다. “우리는 박물관수가 200개밖에 안되지만 일본만 해도 3,000개가 넘습니다.가족이나 연인이 산보가듯 이웃 박물관에 들러 조상의 지혜를 나눕니다”라면서 그녀는 정부의 ‘박물관정책’을 조심스레 언급했다.“매달 상당한 적자를 보면서 사설박물관을 운영하는 뜻을 헤아린다면 정부도 지원을 계속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짚풀박물관 가는 길/선릉·삼성역에 마을버스/승용차 주차장 넓지 않은편/김치·어린이박물관 이웃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면 편리하다.2호선 선릉역이나 삼성역,3호선 압구정역에서 일반버스나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10분 이내에 닿는다.일반버스는 710번,63번,567번,137번 등을 이용해 청담 4거리 부근에서 내리면 된다.좌석버스는 30번과 567번을 이용할 수 있다.승용차 이용자를 위한 주차장이 있으나 넓지 않다. 롯데월드,올림픽공원,무역센터,도산공원 등이 차량으로 10∼20분 거리안에 있다.풀무원 김치박물관(562­1075) 삼성 어린이박물관(203­1871) 자수박물관(515­5114) 홍산박물관(572­7496) 호림박물관(566­8329) 등의 전문박물관도 멀지않은 곳에 있다. 개관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월요일은 휴관한다.관람료는 어른 2,000원(단체 1,000원),학생 1,000원(단체 500원).서울 강남구 청담동 97­9.(02)516­5585.
  • 오늘의 미술가상 수상 김성희展

    월간미술잡지 미술시대가 주관한 제5회 오늘의 미술가상 수상작가인 김성희씨의 수상기념전이 30일부터 6월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상갤러리(730­0030)에서 열린다. 김씨는 이번 작품전에서 ‘적막한 날의 기다림’ ‘세월을 비껴가며’ ‘침묵하는 나무에도 새는 날으고’등 제목이 말해주듯 대상을 시적 분위기가 담뿍 느껴지는 심의적 풍경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파스텔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은 시집과 산문집을 낼 정도로 풍부한 문학적 메타포를 지니고 있는 그의 내면에서 용해되고 응축된 이지적인 서정성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는다.
  • 고려대 의대 千駿 교수(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6)

    ◎전립선암 새 유전자 치료물질 세계 첫 개발/‘오스테오칼신 프로모터’ 쥐·개 임상실험서 확인/부작용 없고 癌세포만 선택 파괴하는 효과 입증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도 암(癌)은 정복되지 않고 있다.수술외에 방사선요법,항암화학요법,면역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따로 또는 병용해서 시도하고 있지만,상당수 암에서는 아직도 생존율을 높이는 데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21세기 의학의 꽃’으로 불리는 ‘유전자 치료법’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전자 치료법은 환자에게 결핍된 유전자나 전혀 새로운 기능의 유전자를 인체에 넣어,암을 비롯한 난치병을 근원적으로 고치는 것이다.90년대 들어와 유전자 조작기술이 발전하면서,현실적인 항암치료법의 하나로 급속히 부각되고 있다. 고려대 의대 千駿 교수(39·안암병원 비뇨기과)도 이 분야를 연구하는 젊은 의사다.그는 미국 암연구학회 정회원으로,국내보다 유전자치료법이 한 단계 앞서 있는 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버지니아의대 분자생물학교실 연구원으로 일하던96년 7월 골육종(뼈암)에 대한 새로운 유전자 치료법을 발표한 게 계기였다.정상세포를 파괴할 수도 있는 기존의 유전자 치료법의 부작용을 제거,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골육종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美 암연구학회서 검증 그는 골육종 등 악성 골종양 및 뼈로 전이된 전립선 암세포에만 특이하게 적용되는 촉진제(프로모터)를 운반체인 아데노바이러스에 붙여,전달하는 방법을 썼다.국내에서는 유전자치료를 할때 운반체로 라이포좀이나 특히 레트로바이러스를 많이 쓰는데,미국에서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는 것.운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아데노바이러스를 반복해서 쓰면 항체가 생길 수도 있는데 최근에는 항체가 안 생기도록 면역요법을 유전자 치료법과 병행,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千교수의 연구 핵심은 운반체가 아닌 프로모터.바로 악성 골종양세포 및 뼈전이성 전립선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붙는 ‘오스테오칼신 프로모터’(Osteocalcin­promoter)다.이것을‘HSV­TK’라는 자살유도유전자와 함께 아데노바이러스로 암세포에 운반한다.이렇게 해서 합성된 것이 ‘rAd­OC­HSV­TK’라는 새로운 유전자치료 물질이다.r=recombinant로 재조합했다는 뜻이다. 이전의 유전자 치료법에서는 ‘오스테오칼신 프로모터’가 아니라 ‘유니버설 프로모터’를 썼다.그런데 유니버설 프로모터는 아무 세포에나 붙어,정상세포를 파괴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千교수는 세계 최초로 ‘오스테오 칼신 프로모터’를 독자적으로 개발,이런 부작용을 없애고 안전성과 치료효과를 동시에 높일 수 있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발표된 직후 유효성을 검증받았다.이어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등록을 기다리고 있다.일본의 한 연구팀도 몇 개월 뒤 비슷한 내용으로 미국에 특허를 출원했지만 千교수의 연구결과가 출원중이었기 때문에 거부됐다. 千교수가 골육종을 유전자 치료법의 1차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많이 걸리는 이 병이 기존의 항암요법으로는 잘 낫지 않기 때문이다.악성 골종양중 가장 빈도가높고,처음 진단했을 때 이미 15% 정도가 폐나 뼈에 전이된 것으로 나타난다. 부분적으로 절제수술을 하고 적극적인 항암제 투여를 해도 2년 생존율은 불과 65% 정도.30% 이상의 환자는 1년안에 폐로 번진다. 더구나 1차 치료가 끝난 뒤 2차로 재발하면 항암제 치료도 효과가 없다.골육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했다. 비뇨기과에서 흔히 보는 전립선암도 비슷한 경우.미국내 남성암 발생률 1위로 호르몬 치료가 거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다.하지만 치료후 일단 암조직이 호르몬 저항성으로 변하고,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뼈전이까지 생기면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千교수가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이처럼 뼈까지 이미 퍼진 전립선암이었다.지금은 일반 전립선암에 대해서도 유전자 치료법의 유효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千교수의 유전자치료법은 동물실험까지 모두 끝난 상태.95년부터 쥐와 개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실험(동물실험)에서는 암세포만 선택해서 죽이는 확실한 효과가 입증됐다. 그는 뼈로 암세포가 넓게 퍼져 기존의 항암요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환자들을 대상으로 곧 1차 임상실험에 들어간다.여기서 안전성이 입증되면 미국과 공동으로 2차 임상시험을 시작한다. 기존의 항암요법에 새로 개발한 유전자치료법을 병용하려는 연구도 하고 있다. 이렇듯 千교수가 한국인 의학자로 드물게 유전자치료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우직하게 연구에만 몰두했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하루 4시간 이상 자 본 기억이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연구원을 할 때는 밥먹고 새벽까지 실험만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지요.학교 도서관에서도 언제나 제일 먼저 나와,맨 꼴찌로 나가니 수위들의 눈총을받을 만도 했지요” 이런 노력 끝에 새로운 유전자치료법 개발에 어렵게 성공했지만 연구지도를 맡았던 교수조차 처음엔 이 사실을 믿어주지 않았다.실험이 성공한 뒤에도 반복해서 연구내용의 확인작업만 시킬 만큼 불신감이 컸다. 그러다 그의 연구내용이 미국 암학회에서 발표돼 ‘엑설런트’(excellent) 판정을 받고,권위있는 학술저널에서 잇달아비중있게 다뤄지자 그제서야 인정하는 눈치였다. ○독일 등 외국서 8회 발표회 千교수의 관련 논문은 그 뒤 미국에 9편 등 외국 논문집과 학회지에 모두 11편이 실렸다.암유전자요법에 대해 지난 2년간 독일 등 외국에서 모두 8번이나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이처럼 유전자치료 분야에서 세계 톱클래스의 반열에 들었지만 그는 유전자치료법을 맹신해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한다. 유전자치료법이 지금까지 나온 암치료법 중 가장 앞선 방법임에는 틀림없지만 기존의 항암치료법 등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환자에게만 철저하게 선택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 물론 골육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도 이미 암세포가 폐 등으로 퍼져 다른 방법으로는 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기환자들만 엄선해 시도하게 된다. 千교수는 “3년 넘는 동물실험에서 효과는 입증됐지만 사람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실제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곧 시작할 임상실험 결과에 적지 않은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감추지는 않았다. ◎유전자 치료법이란/선천성 유전질환서 암·에이즈 등 후천성까지/바이러스­라이포좀 등 화학물질도 사용 치료 유전자치료법은 초기에는 선천성 유전질환이 주된 대상이었으나,요즘은 암,에이즈 등의 후천성 질환의 치료에 주로 쓰인다. 유전자치료법은 90년 미국에서 처음 임상실험이 시작된 뒤 현재 200여개의 임상실험에서 1천여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5년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許大錫 교수팀이 악성 피부암과위암 등 말기환자 9명에게 면역유전자요법을 실시한 것이 처음.실험결과,2명에게서 암이 줄어든 사실이 확인됐다. 유전자의 치료에서는 유전자의 전달방식이 특히 중요하다.레트로바이러스나 아데노바이러스 등의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방법과 양이온성 라이포좀 등의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세포내로 유전자를 전달하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라이포좀은 합성이 가능해 실험실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달효율이 낮다는 게 문제.바이러스는 전달효율은 높지만 면역반응 또는 염증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최근에는 이들의 장점만을 합성하려는 연구가 심도있게 진행중이다. 암치료를 위한 유전자 요법은 암세포에 발생한 유전자의 결함을 교정하는 방법,특정유전자가 형질도입된 세포는 특정약제에 민감하게 반응해 죽게 되는데 이를 이용,암세포를 죽이는 방법(千교수의 경우),체내의 면역반응을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골수세포에 항암제의 저항성을 갖게 하는 유전자를 형질도입한 후 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하여 암세포를 죽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부작용없이 더욱 효과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전달체계의 개발,원하는 세포에서만 유전자가 작용하게 하는 방안,저하된 암환자의 면역체계의 활성화방안 등이 앞으로 개선되야 할 부분이다. 연세대 의대 종양내과 金周恒 교수(47)는 “유전자치료는 현재까지는 대상환자의 10∼20%에서 치료효과를 보이고 있는 미미한 실정이지만 장기이식이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널리 쓰이듯 머지 않은 장래에 유전자치료도 보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千駿 교수 약력▲고려대 의학박사 ▲고려대 의과대학 비뇨기과학교실 부교수 ▲고려대 암연구소 유전자치료 연구부장 ▲미국 암연구학회정회원 ▲미국 암학회 연구비 수혜,전립선암 환자 치료를 위한 유전자치료법 개발 ▲97년도 대한의사협회 학술상 수상
  • 제갈량 문집 난세를 건너는 법/오수형 편역(화제의 책)

    ◎난세의 지략가 제갈공명 문집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제갈량(181∼234).우리에게 공명(孔明)이란 자(字)로 잘 알려진 그는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해 사관(仕官)하지 않았으나 와룡선생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제갈량은 207년 위의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의 예로써 초빙됐다.그는 이내 ‘천하삼분지계’를 진언하고 군신지교를 맺었다.221년 한(漢)이 멸망하고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그는 재상이 됐다.그러나 제갈량은 234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과로로 오장원에서 병사,정군산에 묻혔다.한자문화권의 동양인에게 특히 지혜의 상징이자 충성스런 신하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 바로 제갈량이다.이 책은 중국의 여러 역사서에 흩어져 있는 제갈량의 글들을 모은 문집이다.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인간으로서는 거의 완전무결한 경지에 이른 실질상의 주인공으로 묘사된다.그러나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문학작품 속의 제갈량이 아닌 현실의 제갈량이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처세를 했는가를 보여준다.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뤄졌다.1부 ‘제갈량의 난세경영’에는 제갈량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초려에서의 천하대계’‘형 제갈근에게 수양계곡의 길을 닦은 일을 알리는 글’‘도끼제작의 교령’ 등 50여편의 글이 실렸다.또 2부 ‘장군의 길’은 비록 위작(僞作)이기는 하나 제갈량의 이름을 빌려 세간에 크게 유행한 ‘장원(將苑)’으로 엮여져 있다.‘장원’은 장군의 덕목과 군대 운용에 관한 단편들을 모은 것이다.제갈량은 유가5경(五經) 가운데 하나인 ‘서경’의 한 대목을 인용해 장군의 바른 길을 일러준다.“군자를 모욕하면 그 진심을 다하게 할 수 없고,소인을 모욕하면 그 힘을 다하게 할 수 없다” 문학과지성사 8천원.
  • 이청준 소설세계 전집으로

    ◎도서출판 열림원 내년 8월까지 28권 출간 4·19세대 작가인 이청준씨(59)의 30년 소설인생이 전28권의문학전집으로 묶인다.도서출판 열림원은 작가의 회갑인 내년 8월 완간을 목표로 ‘이청준 문학전집’을 기획,1차분으로 네 권을 펴냈다. 초월적 세계관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 장편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억압의 시대 좌절한 지식인의 내면풍경을 그린 자전적 소설 ‘조율사’,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한과 판소리로 이해한 연작소설 ‘서편제’,금단의 빛과 광기의 세계를 다룬 중단편소설집 ‘소문의 벽’이 그것이다. 이청준은 65년 단편 ‘퇴원’을 ‘사상계’에 발표하며 등단,한국 현대소설의 본격적인 출발기라 할 수 있는 60년대 소설문학의 한 장을 열었다.그는 이후 33년 동안 120여편의 중단편과 11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토속적인 민간신앙의 세계에서부터 산업사회에서의 인간소외와 지식인의 존재해명을 거쳐 전통적인 정서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양한 소설세계를 일궈왔다. 지난 30여년 동안 치열한 산문정신으로 창작된 그의 소설들은 개화기 이래 수용된 서구 소설장르의 한국적 갱신과정을 보여준다. 전집은 장편소설 11권과 중단편소설집 10권,연작소설 3권,산문집 2권,그리고 동화집과 작가론 및 작품론으로 이루어 졌다.중단편소설집의 경우 연대순으로 구성된 기존전집들과 달리 ‘불화하는 개인과 관계의 실종’‘개인의 진실과 집단의 힘’‘어머니의 세계’‘예술가의 세계’‘광기의 세계’‘원시적 동일성의 세계’‘복수와 용서’등 주제별로 엮은 것이 특징.한편 전집 2차분으로는 장편‘ 자유의문’과 중단편 ‘이어도’가 6월중 나올 예정이다.
  • 성과 사회/오생근·윤혜준 등 지음(화제의 책)

    ◎인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성의 문화 성(性) 또는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문제를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한 논문집.섹슈얼리티는 섹스(sex)라는 말에 뿌리를 둔다.섹스는 라틴어의 ‘섹서스(sexus)’에서 파생된 것으로 19세기 이전까지 이 말은 어원 그대로 ‘섹션(section)’의 뜻,즉 인류를 크게 남과 여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 의미로 쓰였다.예컨대 여성을 가리켜 영어에서 ‘the weaker sex’라고 할 때 에로틱한 의미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이 책에서는 20세기 우리 지성사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성의 문제를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인류학적으로’다룬다. 이 책의 출발점은 서울대 전경수 교수의 도발적인 글 ‘에로스 인류학과 인류학의 토착화’에서 찾을 수 있다.전교수는 이 글에서 지금까지 서양 인류학이 성문제에 관한 한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고 전제,이 침묵을 깨는것이 우리의 학문적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임을 역설한다.그는 성 또는 에로스를 인류의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체험으로 간주한다. 금기에 도전하고 사회적 규율을 위반하며 다시 태어나는 에로스는 어차피 텍스트와 상상력의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현실은 그러한 위반을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이다.아니면 그러한 위반을 상업화해 자본주의적인 형태로 관리한다. 이것이 바로 포르노그라피다.외국어대 윤혜준 교수의 ‘포르노에도텍스트가 있는가’는 상업화된 에로스의 세계와 그것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대응방식의 문제를 다룬다. 문학적 텍스트가 포르노의 본질적 비문학성과 나누는 은밀한 거래의 고리들을 잡아내려는 게 그의 의도.윤교수는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법적인 혹은 제도적인 단죄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한편 좀더 정당한 에로스의 문학적 표현은 인정해 주자는 입장이다.나남출판 9천원.
  • 李祭夏 가수/李世基 社賓 논설위원(외언내언)

    ‘빈들판으로 바람이 가네,아하/ 빈하늘로 별이 지네/ 빈가슴으로 우는사람 거기서서/ 소리없이 나를 부르네’로 시작되는 ‘빈들판’은 李祭夏가 시를 쓰고 곡을 붙인 노래다.87년 그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에서도 그는 영화주제가를 불렀다.노래·작곡·연주솜씨가 일찍이 문단에 회자(膾炙)되어 10년전에는 그가 직접 녹음한 테이프 ‘나그네 노래집’을 가까운 이들끼리 나누어 갖기도 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동화·영화평론에 손대면서 지난해엔 회갑(回甲)기념문집인 ‘뻐꾹아씨,뻐꾹귀신’이라는 자작 그림소설집을 냈다.실제로그의 그림솜씨는 수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평을 들었고 현재 중견화가로도 활동중이다.그런 그가 이번엔 CD음반을 낸다는 것이다.음반제작에 앞서 며칠전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는 그 옛날의 ‘청솔그늘에 앉아’ 등 자신의 시에다 직접 곡을 붙이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불러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물론 문단에 노래 잘부르는 사람은 얼마든지있다.곡목을 많이 알고 3절까지 부르는 실력으로는 소설가 김승옥을 따를 사람이 없다.연전에 타계한 시인 박재삼은 주로 일본의 엔카를 잘 부른다.수첩에다 가사를 꼼꼼히 써가지고 다니다가 술한잔 걸치면 양복 안주머니에서 수첩부터 꺼낸다.그러나 문단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4인’은 이제하를 포함하여 시인 김지하,소설가 송영,평론가 정현기가 손꼽힌다.다방면의 재주꾼들이지만 어느 하나도 허술하지 않은 전문가 수준이다. 평소 이제하의 음성은 갑자기 괴성이 튀어나오거나 나른한 데가 있어서 그가 노래를 잘 부르리라곤 상상하기 힘들다.그러나 소설가 김채원에 따르면 그의 노래는 ‘사람 마음에 정서(情緖)의 비’를 뿌려준다.이른바 노래란 미성(美聲)이나 입술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륜이 메아리치는 감동임을 실감시킨다.그의 노래는 곡과 가사를 알고 부르는 시인의 노래이자 화가의 노래이고 인간의 노래이다.어쨌든 나이 60에 콘서트를 열고 음반을 제작한다는 것은 ‘인생은 60부터’라는 시작과 출발의 의미라서 더욱 값져 보인다.
  • 중 ‘전인대 한글보도자료’ 첫 배포/북경 정종석(특파원 수첩)

    요즘 북경의 인민대회당 주변은 연일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취재하는 각국 보도진들로 북적인다. 이번 대회를 취재하려고 몰려든 국내외 보도진은 줄잡아 1천명 가까이 되며,대회 프레스센터에 등록한 외신기자만 해도 380명에 이른다.중국 당국은 등소평 사후 처음 열린 지난해 제15차 공산당대회의 정신을 이번 전인대에서 관철한다는 정신 아래 종전보다 대외홍보에 적극적인 인상이다. 인민대회당 빈관(빈관·게스트 하우스)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는 중국헌법과 관련법률을 비롯해 전인대의 각종 법률문집을 비치,각국 보도진들에게 나눠준다.중국정치 기본정황을 소개한 자료와 티베트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소개한 자료도 마련했다. 올해는 특히 처음으로 전인대 대표 2천980명의 명단과 이력사항을 담은 인사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또 국유기업 개혁,금융,대외무역 등 현안에 대한 일련의 브리핑과 기자회견을 마련하고 중요인물의 인터뷰를 주선하는 등 세심한 곳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당국이 전인대 개막일인 5,6일 잇달아 한글보도자료를 공식으로 배포한 것은 한국기자들에는 ‘큰 사건’이었다.인민대회당 2층 출입구 앞에서 이붕 총리의 정부업무 및 정부 예산안 보고 등 굵직한 뉴스의 보도자료를 한글판으로 배포했기 때문이다.과거에도 내부용 비공식 자료를 만든 적은 있으나 공식 보도자료로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도용 전인대 자료는 중국어와 영어,프랑스어,독어,러시아어,스페인어,한국어,일본어의 8개국어로 나와 있었다.이들 8개언어 사용국 가운데 중국내에 소수민족(55개)이 사는 나라는 한국 뿐이며,현재 18명의 조선족이 전인대대표로 참석중이다.하지만 조선족이 있다고 해서 전인대의 8개국 보도자료에 한글판이 생긴 것은 아닌 것 같다.오히려 나라별로 상주 외신기자들이 많고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나라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해부터 외교부의 공식브리핑(매주 화·목요일)때 영어답변을 폐지하고 중국어 만을 사용하는 등 ‘신중화사상’을 고취하고 있다.그런 가운데 전인대의 한글판 보도자료는 신중화사상의 기반 위에 중국의새로운 국제화와 대한반도 인식을 보는 것 같아 매우 반갑다.
  • 기획예산위­예산기획·행정개혁 2실체제/예산기구 직제 어떻게

    ◎예산청­평성은 예산실… 집행은 10개과 정부조직개편위(위원장 박권상)는 17일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실행위 및 심의위를 잇따라 열어 정부 부처별 직제개편 작업을 마무리했다.회의에서는 특히 16일 신설이 확정된 청와대 기획예산위와 재경부 예산청의 직제를 새로 마련하는데 논의를 집중했다.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의 직제는 당초 설치 예정이었던 기획예산처의 직제를 원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기획예산위는 장관급 위원장밑에 차관급 부위원장과 상임위원을 두고 이를 뒷받침할 실무기구로 예산기획실과 행정개혁실의 2개 실을 두리라는 전문이다.예산기획실은 기획관리국과 재정기획국 등 2개 국과 중기재정과,재정협력과,재정정책과,기획총괄과 등 4개과로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개혁실는 전문집단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국·과 체제 대신 ‘행정개혁단’과 ‘재정개혁단’의 2개 팀제로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행정개혁단은 행정조직팀,공공관리팀,성과관리팀을 두고 재정개혁단은 사업조정팀과 집행평가팀,예산정책연구팀을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예산의 편성과 집행,감시를 맡게 될 재경부 예산청은 1급의 예산실과 감사담당관,그리고 예산실 직속으로 예산총괄심의관,예산1심의관,예산2심의관 등 3개 심의관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예산집행기구로는 예산총괄과와 예산관리과,국방예산과,산업예산과,건설교통예산과,자치환경예산과,교육과학예산과,행정문화예산과,복지노동예산과 등 9∼10개 과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개편위 김광웅 실행위원장은 “예산기능의 분리는 세계 유례가 없는 것으로 자칫 두 기구간 업무가 중복 또는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기획예산위의 재정기획국과 예산청 예산실을 중심으로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 음악평론가 이상만(이세기의 인물탐구)

    ◎문화예술 이벤트의 마술사/‘서울 국제음악제’·‘한국 작곡가의 밤’ 등 기획/우리음악의 세계화·국악­가국 발전에 헌신 한눈에 보아도 재사의 이미지가 번뜩이는 음악평론가 이상만,무르익은 경륜을 내심에 수장한채 나이를 멈춘듯 만년청년같은 동안만을 보인다. 어느자리에서나 넘치거나 과하지 않으면서도 냉정성과 정감을 지키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술을 마시지 못하지만 친구들을 좋아하고 크고 작은 문화예술 관련 모임에서 유머와 재치로 좌석을 이끄는 사회자로도 유명하다.그의 총민은 최고조로 화려했던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 지금도 변함없이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켜 미래를 향한 앞장선 그의 예측은 거의 빗나간 적이 없다. ○유머·재치로 모임 이끌어 단순한 음악평론가만은 아닌 것이 그는 무엇보다 우리 문화예술계에 한 획을 긋는 수많은 행사를 주도한 ‘이벤트의 대가’이자 ‘행사의 귀재’이고 행사음악에서 ‘한국적 특성’을 가장 먼저 시도한 혁명적 인물이기도 하다.지난 62년 공보부가 주최한 국제적 규모의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에서는 우리만의 전통 ‘아악’을 연주하는가하면 아무도 감히 생각지 못할때 작곡가 김성태 구두회 김동진 등의 창작곡을 위한 ‘한국 작곡가의 밤’을 기획하기도 했다.우리로서는 국립단체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시기에다 ‘국제’라는 타이틀이 붙은 행사는 불모였으나 그는 때마침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오사카페스티벌을 적시에 원용하여 일본에 오는 외국인 연주자들을 국내에 초치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밑그림에서부터 행사전반에 걸친 야심찬 내용과 세련된 진행을 보고 시인 이상노씨는 ‘이상만의 저력과 능력으로 만들어진 국제음악제는 천지개벽에 비유되리만큼 완벽했다’고 평한바 있다.프로그램과 포스터제작에서도 서울대 미대 민철홍 한도룡교수에게‘한국적 특징’을 살린 태극문양을 의뢰하고 만다라는 지금까지도 여러 행사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정착되고 있다. ○본지 연예 천일야화 연재 69년 제1회 서울음악제에서는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제례악(제예요)’을 연주,그의 행사경영은 ‘센세이셔널리즘’과 ‘예술적 리볼루션’으로 평가되었고 그는 다음해 유네스코장학금으로 벨기에 브랏셀 고등기술학교에 유학,유럽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청소년을 위한 음악운동’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이후 ‘우리에겐 대형행사에 강한 이상만이 있다’는 확신에서 광복 30주년기념음악제와 78년 세종문회회관개관 기념음악제를 구상할수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세종문화회관기념음악제는 그 스스로도 ‘일생일대 걸작중의 걸작’으로 꼽는 성과의 하나다. 그해 4월부터 장장 3개월간 계속된 이 음악제는 158회연주에 관객 27만명을 동원,로열발레 이탈리아파르마오페라단 필라델피아·뉴욕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한국전통음악과 서구적 리듬을 조화시켜 우리음악을 세계언어로 발전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미국의 ‘더 타임스’와‘타임’지 등은 ‘한국의 세종문화회관’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이상만을 향해 ‘지칠줄 모르는 지도자’‘촛불같은 사람’으로 표현하고 수많은 공로가 인정되어 서울시는 예술문화 관련의 기관장을 맡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항상 서구의 움직임과 발전에 민감하게 관심을 둔 그는 예술재정과 극장경영을 좀더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생각에서 다음해 미국 UCLA와 예일대에 유학,‘올림픽 문화행사’에 관한 논문을 써서 다시한번 성세를 과시했었다. 이상만은 충남 보령에서 신교육을 받은 이민우씨의 3남1녀중 차남,그림과 글씨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은 부친 덕분에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어릴때는 바이올린을 켜고 오보에와 튜바를 불었으며 대전공고시절에는 브라스밴드부에서 활약,서울대 작곡과 졸업작품도 한국악기만을 사용한 ‘삼현육각오중주’이다.대학재학중 김준연에게 ‘피리’를 배우고 굿판을 따라다니며 이충선에게 ‘소각’을 사사했으며 국악계의 거두 이혜구씨의 수제자로서 음대 작곡과를 졸업했으면서도 음악계에서는 국악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문예지나 교지를 편집하고 교수들의 논문집을 맡아 대필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글 잘쓰는 사람’이 되었고 58년 2월,서울신문에 ‘연예천일야화’를 연재한 이래 신문에 글쓰기 시작한지 올해로만 40년이 된다. ○‘다움’ 문화연구소 설립 그의 운명은 아직 젊은 날에 지나치리 만큼 광채를 드러냈고 행사가 있을때마다 근무처인 방송국보다 주로 정부행사에 차출되거나 투입되어온 셈이다.행사를 맡을 때마다 일손이 달리고 예산은 빠듯했으나 ‘완벽하게 해낸다’는 욕심에서 임시로 차린 행사사무국을 떠나지 않았고 200원짜리 자장면으로 요기를 때우는 때가 대부분이었다.음악계는 ‘국악발전’과 ‘우리 음악의 세계화’‘우리 가곡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공적과 ‘한국의 독창적 문화예술을 일으키는 데 기여한 투철한 예술철학’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그러는 가운데 그의 일방적인 독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시샘도 적잖았을 것이다.요즘 개인이나 나라나 경제적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지만 그는 오히려 ‘어려운 일을 딛고 이기는 힘과 삶에 대한 애착이 어느때보다 강하게 싹틀때’라고 말한다.아침마다 등산,실내장식가인 윤희씨와의 사이에 남매,지난 80년초 부인이 촛불전시회를 하다 서교동 자택에 화재가 난 후엔 평창동으로 이사해서 부부만이 살고 있다. 그는 우리 문화예술의 새틀을 짜야한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다.우리에게 수많은 별빛같은 예술가들이 있지만 이들의 활동을 관리하고 운영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지난해말 ‘한국답다’는 뜻의 사단법인 ‘다움’문화연구소를 설립,샘솟는 창의력으로 이 시기에 맞는 신선한 행사를 꾀하기 직전이다.언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무적인 면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니고있는 그로서는 맨마지막에 가장 큰 것을 이룩하면서 결국 ‘최후에 웃는자가 승리자’가 될 것에 틀림없다.따뜻한 봄과 함께 이상만다운 활기찬 도약의 도모는 작은 거인의 앞날에 서조를 예고하는 현재다. □연보 ▲1935년 충남 보령출생 ▲1961년 서울대음대작곡과 졸업 ▲1957­61년 서울중앙방송국PD ▲1962년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기획 ▲1963­66년 동아방송음악프로듀서 1966­80년 한국방송공사 음악계장·사업부장·홍보조사부장·방송위원 ▲1970­71년 벨기에 부랏셀고등기술학교 매체예술전공 ▲1975­78년 광복30주년기념음악제·제1회 대한민국음악졔·국제청소년연맹 세계대회조직위·세종문화회관건립 추진위원 및 개관기념예술제 사무국장 ▲1978­79년 미 UCLA대학원에서 예술경영 및 비교음악수업 ▲1979­81년 미 예일대 대학원 극장경영 및 예술철학 전공 ▲1986­88년 서울올림픽조직위 음악분과위원장·개폐회식 전문위원 현재­‘다움’문화연구소 대표,서울예술단·세계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이사,국립극장·국립국악원·예술의전당 운영위원,중앙대객원교수 5월문예상(68년) 예총상(78년) 대통령표창(75년) 옥관문화훈장(95년)
  •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프란츠 카프카 지음(화제의 책)

    ◎‘블랙유머’ 번득이는 카프카 산문집 기괴하고 수수께끼같은 작품세계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난해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그는 1924년 41번째 생일을 한달 앞두고 폐결핵으로 오스트리아 키어링의 한 요양원에서 죽었다.그때까지 그는 몇번의 짧은 여행을 빼고는 프라하를 떠난 적이 없었다.그러나 그의 문학은 프라하에서 보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더 많이 읽히고 사랑받아 왔다.낯설게 하기,뒤집어 보기의 명수였던 카프카.이 책에서는 카프카의 ‘블랙 유머적 감각’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다.그런 감각은 특히 인간이 뭔가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동물을 등장시키는 짧은 글들이나,익숙한 신화들을 새롭게 쓰고 있는 글들,혹은 자신의 글쓰기를 한 시골의사의 방황에 비유한 글들에서 한층 뚜렷히 나타난다. 이 산문집에 실린 작품들은 씌여진 연대 등과는 상관없이 ‘모티프의 친화성’에 따라 묶여졌다.그런 만큼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식 광대’나‘법 앞에서’처럼 완결된 형태의 산문 텍스트가 실려 있는가 하면 관찰기록의 성격이 강한 단편적인 우화들도 담겼다.카프카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유대교의 전통,특히 구원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유대교의 언어관과 역사관이다.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원죄이후 정지돼 있다.메시아가 나타나 이 왜곡된 시간과 공간을 바로잡을 때 비로소 역사는 다시 이어진다는 것.때문에 역사를 진보적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카프카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옮긴이의 설명이다.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오드라덱’은‘가장의 근심’이란 산문에 나오는 실패를 의인화한 말이다. 김영옥 옮김 문학과지성사 5천원.
  • 김 당선자,이홍구·이수성씨 면담

    ◎서로 호감… ‘깊숙한 얘기’ 나눈듯/동서화합 차원 새 정부 요직 중용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우연으로만 돌리기에는 쉽지 않은 만남을 하루에 두번이나 가졌다.9일 이홍구 전 총리와 이수성 전 총리를 잇따라 만난 것이다.두 사람은 여권에 몸담으면서도 당선자와는 호의적 관계를 유지했다는 공약수를 갖고 있다. ○…김당선자와 이홍구 전 총리간 면담은 이 전 총리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중장기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아시아·유럽비전그룹의 한국측 위원자격으로 아시아 5개국 순방을 위해 10일 출국하기 앞서 김당선자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전 총리측은 면담 직후 “그동안 여당으로 ASEM에 관여했으나 정권교체로 야당이 된 만큼 그 일을 계속 맡아야 할지 김당선자의 뜻을 물어보기 위해 방문했다”고만 설명했다.그러나 대면이 20여분간 ‘독대’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다른 깊숙한 얘기도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당선자와 이수성 전 총리간 만남은 이 전 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소파 방정환선생기념관건립위원회’가 이날 하오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소파 방정환 문집’ 발간 헌정식 참석 초청에 응함에 따라 이뤄졌다. 이수성 전 총리는 대선직전 한때 김당선자가 국민회의 총재직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대선에서 ‘중립’을 지킴으로써 관계개선의 여지를 열어놓은 상태다. 이 전 총리는 국민회의 입당은 몰라도 진작부터 동서화합을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혀온 만큼 당선자가 구상인 국민화합위원회를 맡을 가능성이 그럴싸하게 거론되고 있다.
  • 시인 김상옥(이세기의 인물탐구:160)

    ◎시·서·화 3절의 시조문학 거두/글자 한자한자마다 ‘도자기의 자해’ 닮은 품격/조춘·옥적·백자부 등 명편 중고교과서에 실려 ‘무거운/덧문을 열고/뜨락을 한참 내다본다/ 이 아침/매연 속에/목련꽃 차츰 벙글어/ 사노라/때묻은 눈에도/봄은 이처럼 부신가!’(조춘)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는 어느 시를 읽어도 절조를 울리지만 그중에서도 중고 교과서에 실린 ‘조춘’‘옥적’‘백자부’등은 ‘시상의 간명한 처리,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사고의 반전,멋들어진 은유와 섬세한 언어구사’로 더이상의 시를 생각할수 없게 만드는 명편들이다.마치 적설에 파묻힌 보석이 눈이 녹자 자태를 드러내듯이 말속에 숨겨진 온오와 시적 함축은 글자 한자한자마다가 옥구슬처럼 영롱하다.성격도 그렇다.그의 눈에 거슬리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이를 두고 소설가 김동리는 ‘인은 곧 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결곡하고 강개한 인품은 족히시에 반영되어있다’고 평한 바 있다. ○초판 1천부 모든 매진 ‘완벽을 기하려는 영악(영오)한 조사와 중속을 떠난 고매한 시혼은 우리문단의 한 이채’로써 ‘전통적 정서나 시인의 인식은 시대가 흐르거나 나이가 들어도 그 광채는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시작에 대해 얼마나 까다롭게 선별하는가는 지난 89년 고희기념시집인 ‘향기남은 가을’을 낼 때 시집 8권과 그동안 써두었던 1천여편중에서 103편을 고른 것만봐도 알수 있다.‘이미 활자화된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냥 써두었던 것’중에서 시집 30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을 며칠동안이고 찢어버린 것이다.그리고 시집의 서문에다 ‘세상에 시는 넘치도록 흔하지만 정작 시는 드물다’고 자탄하고 ‘한 구절이라도 후일 남을 수만 있다면참으로 분외의 보람이겠다’는 겸양은 후학들의 문학에 대한 자세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고가 아닐수 없다. 그의 인생역정은 ‘사환에서 점원, 연독이 자욱하던 시골인쇄소의 인쇄공과 도장장이’에 이르기까지 안해본 일이라곤 없다.해방직후 출판된 그의 첫번째 시집 ‘초적’은 편집 교정 문선 조판에서 인쇄 장정의 전과정을 손수해냈고 초판 1천부는 즉시 매진되어 고서점에서도 구할수 없는 희귀본으로 유명하다.고향에서 오랫동안 중고교교사로 봉직하다가 60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골동상인 아자방을 경영한 것은 실은 ‘서화 골동을 감식하고 부자도 못한다는 연적 콜렉션’에 가까이 하려는 의도였으며 실제로 그의 서와 전각실력은 의재필선에 이르는 경지다. ○한때 고향서 중고교사로 지난 70년초 신세계미술관초청 ‘시·서·화전 이후 일본 교토초청 전시등 10여차례의 전람회를 가진바 있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와 그의 작품을 구입했던 작가 박완서씨는 ‘이것은 단지 문학의 여기가 아니라’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이른바 ‘시·서·화 삼절’로 지칭되는 그의 글과 그림은 고루한 화풍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파격성과 독창성,소쇄한 여백처리로 도자의 품격을 흐트리지 않는다.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화로는 지난 74년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의 초청으로 ‘시와 도자’에 관한 특강에서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라면 도자는 흙으로 빚은 시’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자’나‘시’를 말할 때마다언제나 인용되는 명구다.그는 참으로 시를 사랑하고도 자를 사랑한다.‘일호의 작위도 없는 우리 고도를 나의 시로써 시못지않게 사랑’하여‘나의 치아보다 먼저 이빠진 항아리에게 순금의 의치를 만들어 끼워주는’ 자세이고 시에서도 ‘이빠진 자욱이 눈에 띠면’ 이만하면 되겠다고 마음에 찰 때까지 몇밤을 지새워 퇴고를 거듭한다. 초정은 경남 충무시에서 기호 김덕홍씨와 진수아씨 사이의 6녀1남중막내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외독자이다.6세때부터 동네에 있던 한문서당 송호재에서 수강하여 최연소자로서 ‘괴’를 받았고 일찍이 ‘동필’소리를 들었으며 역시 소년시절인 17세에 문단에 등단후 그가 18세때 쓴 ‘청자부’를 읽은 가람은 ‘글이 너무 절정에 올라가 있어 이런 글을 쓰면 단명하다’고 걱정스러워할 정도였다. ‘우기를 머금은 달무리/시정은 까마득하다//맵시든 어떤 품위든/아예 가까이 오지말라//이 적막/범할수 없어 꽃도 차마 못꽂는다’한평생을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백자’처럼 살아온 초정은 최근에는 금아 피천득과 만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인사동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골동품을 보는 기쁨이 낙이다.그런중에도 그가 보여주는 최근의 시는 누에고치에서 청명한 비단실이 뽑혀오르듯이 ‘밤마다 밤이 이슥토록/묵을 갈다가/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지울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고 노래부른다. ○한국시조사의 한획 그어 이미 ‘시’니 ‘시조’니 하는 경계에 묶여있지 않은 ‘무위자연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말은 오직 시일뿐’이라는 것이며 ‘속세의만사는 한낱 군소리에 지나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압축해 보인다.부인 김정자씨와의 사이에 3남매,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산구 이태원동청화아파트에서 자녀들은 출가하고 부부만이 살고 있다. 그의 제자이던 시인 박재삼은 생전에 ‘스승의 시는 도자에 그려진 한송이 백매와 같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기막힌 위치에 자리잡고있어 한치도 움직일수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 이유다.평자들로부터 ‘가람·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어놓은 시조시인’으로 받들어진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곡진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시적 자존심은 사우세풍을 지나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간 사람’이라는 찬사와 함께이 시대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닌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연보 ▲1920년 경남충무출생 ▲1926년 한문서당 송호재 수강 ▲1930∼35년 진산 이찬근 완선 김지옥 노제 장춘식사사 ▲1936년 시지 ‘아’동인 ▲1937년 시지 ‘맥’ 동인 ▲1938년 문예지 ‘문장’·동아일보에 시·시조·동요 추천,당선 ▲1945년 해방기념제전 시부 장원,삼천포문화동지회 창립,통영문협회원 ▲1946∼62년 중학교교사 봉직 ▲1947년 시조집 ‘초적’(수향서헌)출간 ▲1948년 시집 ‘고원의 곡’(성문사)출간 ▲1952년 문교부편수국 자문위원 ▲1954년 충무공 시비건립,통영문협재건,‘참새’지 복간 ▲1972년 일본 경도에서 서화화전개최,서울·부산·대구·대전·마산등 개인전 10여 차례 ▲1973년 삼행시집 ‘삼행시’출간▲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초청 ‘이조도자’에 관한 특별강연 ▲1977년 육필 몰자귀비 건립 ▲1986년 산청에 시비건립 ▲1989년 고희기념시집 ‘향기남은 가을’(상서각)출간 시집 ‘이단의 시’(49년)·‘의상’(53년)·‘목석의 노래’(56년)‘묵을 갈다가’(80년), 동시집‘석류꽃’ (52년)·‘꽃속에 묻힌집’(58년) 산문집‘시와 도자’(75년)등 12권 제1회 중앙시조대상·제1회 노산문학상·제2회 충무시 문화상 등
  • 출판/‘단행본의 꽃’소설 퇴조 뚜렷(’97 문화계 결산)

    ◎‘…가지’류 가벼운 책 선풍적 인기… 모방출판 줄이어/재고도서 처리 ‘뜨거운 감자’·유통업계 불황 찬바람 일반대중의 책읽기는 시대 분위기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97년은 대기업의 연쇄도산과 감원바람 등으로 우리 사회 전반이 심리적 공황에휩싸인 한 해였다. 어수선한 때일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고 거대한 허상에 감춰진 잔잔한 일상의 감동을 원한다. 올해 출판·독서계를 강타한소설 ‘아버지’와 ‘람세스’,산문집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심리적 기제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었다. 97년 출판계는 ‘아버지 신드롬’으로 시작됐다. 우울한 시대상황을 등에 업고 소설 ‘아버지’(김정현 지음,문이당)는 지난 3월까지 대형 베스트셀러로 출판시장을 주도했다. ‘아버지’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은 독서계에 ‘이집트 열풍’을 몰고온 ‘람세스’(크리스티앙 자크 지음,문학동네)였다. 고대 문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함께 사회적으로 만연된 불안심리가 절대적 카리스마에 의존하게 만든 결과다. 이밖에 소설부문에서는 이문열의 ‘선택’,최인호의 ‘사랑의 기쁨’,김종윤의 ‘슬픈 어머니’등이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연말로 들어서면서 소설은 이른바 종합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단한 권도 끼지 못하는 부진을 보였다. 내놓기만 하면 기본 5만부씩 팔리던 유명 작가들의 책도 초판을 소화하기 힘들었다.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등 작년까지만 해도 소설이 출판시장을 주도했던 것과 퍽 대조적이다. ‘단행본의꽃’으로 군림해왔던 소설의 퇴조야말로 97년 출판계의 뚜렷한 흐름 중의 하나다. 반면 ‘…가지’류의 ‘가벼운’ 책들이 비소설 매장을 뒤흔들었다.그 물꼬를 연 것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 지음, 이레)였다. 자본주의의 속도전에 멀미를 내면서도 한 모금의 감동과 위안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의 감성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까. 이 책은 100만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무려 40여종에 이르는 ‘…가지’ 문패의 유사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들은 결과적으로 경조부박한 독서풍토와 아류출판 내지 모방출판의‘병폐’를 낳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한편 올해는 거의 한달에 하나꼴로 도매상들이 쓰러져 유통업계로서는 혹독한 시련의 시기였다. ▲영세성과 과당경쟁,중복거래로 난마처럼 얽힌출판계의 구조적인 결함 ▲할인점과 대여점의 지속적인 증가와 참고서 시장의 축소로 인한 소매상의 위축 등이 유통업계의 어려움을 더해줬다. 더욱이 최근에는 IMF한파까지 몰아쳐 우리 출판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먹구름에 휩싸이게 됐다. 재고도서 처리방안을 둘러싼 논쟁도 격렬했다. 이 문제는 최근에는‘다품종 소량’생산의 출판경향과 불황이 겹치면서 한층 심각해졌다. 재고도서 처리문제가 민감한 것은 도서정가제와 맞물려 있기때문이다. 지난 9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재판매가격유지 도서를 한정하겠다고 발표한 뒤,2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난 올해 3월 선보인 재경원의 도서정가 제개선방안은 출판계를 요동치게 했다. 학습참고서·잡지 등의 정가제 폐지와출판 후 1년이 지난 책은 할인판매를 허용한다는 골자의 도서정가제개선 방안은 출판·서점계의 ‘자정노력’약속으로 현행제도를 유지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러한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출판사들의 베스트셀러 사재기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출판업계의 전반적인 침체속에서도 일산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대형서점들이 생겼으며,종로서적을 비롯해 영풍·교보 등이 인터넷 서점을 열어 통신판매를 본격화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저 ‘분단과 한국사회’

    ◎민족분단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4·19혁명 10월유신 교원노조운동 등 실어/천민자본주의·지배이데올로기 문제 분석 “한국 자본주의 혹은 한국사회의 역사구조적인 기초는 한국전쟁과 민족의 분단입니다.식민지 경험이나 조선시대의 사회 문화 등도 오늘의 한국사회를 만들어낸 기초가 되었지만 한국전쟁과 분단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외적 조건이자 변수라고 할 수 있어요”김동춘 성공회대 교수(39·사회학)가 한국전쟁과 분단을 중심에 놓고 한국문제를 분석한 논문집 “분단과 한국사회 역사비평사”를 펴냈다. 이 책은 “산업화,자본주의,민주화,시장.계급 등 근대사회 일반에 나타나는 보편적 개념들은 수없이 논의되어 왔지만 분단과 민족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다”는 문제의식 아래 김교수가 지난 10년동안 쓴 논문들을 묶은 것.분단에 따른 사회현상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춘 “분단과 한국사회” “한국전쟁과 지배이데올로기의 변화”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과 지배질서” “사상범 통제의 한국적 특성” “남북한 이질화의 사회학적 고찰” 등의 논문과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을 다룬 논문인 “4.19혁명의 재조명” 민족민주운동으로서의 4.19 시기 학생운동 “왜 60,70년대 민주화운동은 10월유신을 저지하지 못했는가”교사집단의 계급적 성격과 한국 교원노조운동 등 모두편의 글이 실렸다. 김교수는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영국의 사회학자 라쉬와 어리가 지적한 것처럼 세계시장의 성장과 자본의 국적성 희석화,화이트칼라와 서비스 계급의 비중강화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는 의연히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한다.그런 관점에서 한국사회는 “탈조직화된 자본주의 징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그는 또한 1980년대 한국사회를 이른바 시장권위주의 내지 시장기제적 억압체제로 개념화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이같은 입론은 자유경쟁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복지국가로 연결되는유럽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뿌리를 둔 “시장”과 “국가”의 개념을 한국사회에 무매개적으로 적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김교수는이 책에서 소유권 절대주의 등한국의 천민자본주의와 지배이데올로기의 부정적 양상을 꼼꼼히 살피고 있어 주목된다.해방전의 친일파와 해방후의 친미세력으로 이루어진 지배집단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안보국가 군사주의 성장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했으며,이는 노동자 시민사회 등 피지배계급에 대한 무시로 이어졌다는게 김교수의 견해.때문에 ”일반적인 삶의 조건은 황폐해질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김교수는 우리 학계는 이같은 문제점들을 방치한 채 서구이론에만 매달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집권하면 일자리 1백만개 창출”/이인제 후보 초청 TV토론중계

    ◎“내가 당선되면 정계개편 될것/경선승복 약속 못지킨것 사과/DJ지지율 구성 건강하지 못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대통령선거전의 3자 구도가 확립된 뒤 12일 처음 열린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 주관의 TV토론회에 참석,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원이 낭설이라고 주장하는데. ▲독자출마 45일 동안 나에게는 1명의 의원도 없었다.국민 지지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졌을 것이다.국민들이 현명하게 가려줄 것으로 믿는다. ­상향식 민주정당을 표방하지만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당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다.아직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현재 지구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상향식이 불가능하다.선거가 끝나고 내년 봄쯤이면 체제가 정비될 것이다. ­신당은 급조된 정당이다.수권 능력이 있는가. ▲급조가 아니다.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만들어 가고 있다.국가경영은 공무원 같은 전문집단의 역할을 발현시키면 된다.나에게 부족한 것은 ‘가신’이다.그러나 통치가 아니고 경영이 필요한 이 시대에는 가신이 도움되지 않는다.또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3김시대를 끝내라는 국민의 뜻이 표현된 것이다.새로운 차원 정계개편 이뤄지고 안정적 기반을 갖게 된다. ­대통령이 된 뒤 인사 방침은. ▲각료와 수명을 같이 할 생각이다.경기도지사 시절 인사권 행사한 경험이 있다.당시 인사청탁은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지사 시절에 골프장을 몇개나 허가했나. ▲하나도 없다.신청 자체가 없었다. ­‘이인제파일’에 대한 입장은. ▲그런 것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무슨 공장이 있는 것 같다. ­경선 불복 컴플렉스 느끼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그러나 경선뒤 경선승복 약속만 지키고 있기에는 더 큰 국민의 요청이 있었다.약속을 못지킨 것은 사과한다.그러나 출마해서 국민에게 선택의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 나의 가야할 길로 믿었다. ­지지율 때문에 출마했다면,지지율 1위인 김대중 후보를 청산하자고 말할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시대가 요구하는것은 젊은 지도력이다.김대중 후보 지지율의 구성을 따져보면 건강하지 못하다. ­경선불복은 청소년들에게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 정당은 민의에 바탕을 둔 완전한 구조 아니다.민주정치 잘 되는 상황에서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출마 결심한 것 아니다. ­여권 분열로 김대중 후보만 돕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승리를 확신한다.현 상황은 여야 2분구도가 아니다.신한국당은 이미 여당을 포기했다. ­금리와 물가 정책은. ▲임기중 13%의 금리를 7%로 내리도록 하고,물가도 3%선에서 안정시키는 정책을 취하겠다. ­고임금 구조에 대한 입장은. ▲이미 올라간 임금은 낮출수 없다.앞으로는 생산성 범위내에서 올리도록 하겠다. ­무노동 부분임금을 옹호하나. ▲나도 시장경제론자다.일하지 않는데 임금이 어디서 나오나. ­실업대책은. ▲집권하면 5년이내에 1백만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 만들어 내겠다.단기적으로는 직업훈련 강화와 고용정보망 확대,고용보험의 내실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어떻게 일자리 1백만개를 만드나. ▲벤처산업을 육성하면 관련분야의 고용이 창출된다. ­고교 평준화를 폐지할 용의는. ▲예전처럼 1,2,3류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전교조를 합법화할 생각은. ▲무리하게 추진하기 어렵다.교원단체 통해 교사들의 복지요구가 반영되는 체제로 가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될 때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노조의 정치 참여는. ▲노조가 직접 나서 후보를 내고 조직,자금으로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좋다. ­현재 13%인 여성고용 할당비율에 대한 입장은. ▲집권하면 30%까지 올리겠다. ­김정일을 어떻게 펑가하나. ▲아직 잘 모르겠다.그러나 개인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당면한 객관적 상황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 정서환 저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싱크탱크’

    ◎최대강국 미국의 두뇌집단 실체/전략문제연구소·JFK스쿨 등 20곳 소개/다인종·토론문화가 싱크탱크발전의 모태 미국을 이끌어 가고 있는 두뇌집단들의 탄생과 성장,시련과 변신의 과정을 생생하게 파헤친 싱크탱크 보고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싱크탱크’(도서출판 모색)가 나왔다..지은이는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정서환씨(현 부산일보 경제부장).그는 이 책에서 ‘상상이 가능한 모든 것을 현실로 옮긴다’는 미국 싱크탱크의 주요 활동상황과 미래의 비전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의 싱크탱크와 현실사회와의 관계는 흔히 회전문에 비유된다.이는 행정부나 의회 인사들이 회전문을 통해 건물 안팎으로 드나드는 것처럼 임기를 마친 뒤 싱크탱크로 자리를 옮겨 연구하다가 기회가 오면 다시 행정부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그러한 회전문으로서의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전략문제연구소(CSIS)이다.워싱턴 D.C.K가 1800번지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지난 62년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데이비드 앱시러가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를 본떠 만든 것.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브레진스키 전 카터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윌리엄 브로크 전 노동장관 등이 CSIS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이 연구소는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인에 대한 미국입국 비자 면제를 주장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싱크탱크가 가장 많이 들어서 있는 곳은 워싱턴과 캘리포니아 지역이다.특히 수도인 워싱턴 D.C.지역에는 495벨트웨이 안쪽에만 연방정부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치·경제·외교·군사문제 등을 전담하는 싱크탱크들이 200여개나 몰려 있다.이 책에서는 전략문제연구소를 포함,20개의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들을 소개한다.세계 컨설팅계의 산 증인인 ADL연구소,‘보수파의 브루킹스’로 불리는 미국기업연구소(AEI),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여피(yuppies)세대 싱크탱크로 불리는 카토연구소,‘자유시장 환경주의’를 주장하는 기업경쟁력향상연구소(CEI),세계 유일의 쌍방형 뉴스박물관을 설립한 프리덤 포럼,유엔과 아시아에 대한 보수정책의산실 헤리티지 재단,환경정책 전문 싱크탱크 월드워치연구소,공공부문의 지도자를 집중 양성하는 JFK스쿨,주 정부의 정책연구 전문집단인 매디슨 그룹 연구소들,미국 최대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친유태적 파워그룹인 외교협회(CFR),전쟁과 평화에 관한 전문 연구기관인 후버연구소 등을 우선 꼽을수 있다. 이 책은 미국 입법기관의 싱크탱크에 대해서도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미국 연방의회의 전문 싱크탱크로는 연방의회 산하에 4대 보조기관이 있다.의회의 행정부 감시업무를 지원하는 회계감사원(GAO),각종 입법정보와 자료 등의 제공과 미래예측기능·의원에 대한 지속적인 자문활동을 담당하는 입법조사국(CRS),경제전망과 예산상의 정보제공 등을 통해 의회 예산과 입법과정을 돕는 의회예산처(CBO),국가의 중대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과학적 분석평가를 담당하는 기술평가처(OTA)가 그것이다.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연구기관이 거의 없다시피한 우리의 현실과 매우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전문적 두뇌집단의 출현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심지어 전문적인 공부를 한 존경받는 대통령들도 당대의 국민들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미국의 제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그의 지나친 철학적 자세에 대해 공격을 받았다.퇴근뒤 저택에서 추상적인 이론을 떠벌리고 평범한 사실에 대해서도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현실적 감각을 갖추지 못한 점 등이 늘 비난의 대상이 됐다.또 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달걀머리(egghead)라고 불렸으며,헨리 월리스와 스피로 에그뉴 부통령은 포인티 헤드(pointy­head,아류 지식인)라고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어떻게 싱크탱크 문화가 견고한 뿌리를 내릴수 있었을까.이와 관련,지은이는 뉴욕시에만 98개 인종이 모여 살 정도로 다인종 국가인 미국 사회의 특수성에 주목한다.이같은 다원사회적 현실에서 미국이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토론문화를 활성화시킬수 밖에 없었으며,이러한 토론문화가 싱크탱크의 발전을 앞당겼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 무용가 김말애(이세기의 인물탐구:149)

    ◎혼 깃든 춤사위… 한국춤의 선도자/“한국춤은 얼굴과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 수려한 용모·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을 개척하는 타고난 춤꾼이다” 무용가 김말애가 사진집 ‘춤’을 출간했을때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말애는 끝없이 춤추는 이 시대 서정시인”이라고 했다.흑백사진속에서 그는 마치 수평선을 넘나드는 한마리 새가 되어 ‘살을 푸는 떨림과 한을 푸는 흐름’으로 장면장면마다 선명한 춤선을 그려내고 있다.지난 여름 LA예총 초청으로 ‘회귀선’공연을 가졌을때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운씨가 ‘아득한 꿈길 돌아오는 배’란 즉흥시를 지어 능란한 춤꾼인 김말애에게 헌사했다.‘아득히 끝도없이/꿈이 철철 넘치게/출렁이는 배 하나/지구가 돌아가는 선을 가르고/지금은 어디쯤 어느 물길에/덩실덩실 춤을 굴리나…’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망망대해에 뜬 한척의 배를 인생행로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은 출발도 끝도 없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김말애의 무일물사상을 실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끝없이 춤추는 서정시인”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흔치않은 대형무용가’다.한국춤은 얼굴이 작고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잘생긴 얼굴과 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에서의 ‘정중수로’와 ‘동중백학’을 성취해 보인다.그중에서도 한국춤의 정신을 되살린 창작무 ‘춤을 위하여’는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추게 하며 어떻게 추어야 하는가’를 빠르게 돌아가는 리듬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강철같은 강인함을 엇섞어 내딛는 보폭마다 절륜의 백태를 연출해낸다.또 누구보다 전통춤을 잘 가꾸고 보존시키는 무용가이기도 하다.음악이 춤을 능가하거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음악을 몰고가는 쪽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다른 무용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대성과 참신도를 간직하면서 ‘역동성의 균형’을 포착하는 안무실력이 특징이다. 그는 “춤추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머니 장종숙여사로 인해 춤추게 되었고 그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딸의 후견인이자 열렬한 열성팬이다.여섯살되던 해 삼척읍에 있던 심덕진무용연구소에 데려갔고 “너는 반드시 훌륭한 무용가가 돼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아동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삼척의 택시들을 총동원하여 딸을 태우고 시내퍼레이드를 벌인 일도 있다.이로 인해 “딸을 광대로 만들거냐”고 춤을 반대하던 부친 김태규씨(수산업·89년 타계)마저 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되던 해 서울로 전학,당대 최고의 무용가이던 조택원·김문숙씨 댁에 머물수 있게 도와주었다.그러다가 김백봉의 ‘부채춤’에 반해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무용연구소에 찾아갔으나 스승은 “아무도 너를 추천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남의 제자를 훔쳐온 줄로 알겠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후에 김문숙씨와 ‘춤’지의 조동화씨가 적극 권하여 상명여중 시절에 김백봉 문하에 정식 입문했다. ‘어찌나 춤을 잘추던지’ 무용계의 거봉 조택원씨는 66년,일본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에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제하로 ‘너는 최승희를 능가하는 무용가가 되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백봉 스승은 공연때마다 그를 언제나 센터에 세워주었고 고교 2학년되던 해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무용콩쿠르’에서 특상하여 장학생 특전을 받았으나 ‘김백봉’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이 몸담고 있던 경희대에 진학했다. ○6살때부터 무용 배워 그는 우리 무용사의 신화적인 존재들인 최승희와 조용자,그리고 김백봉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아마도 외모 이전에 예술에 대한 치열성과 자신감때문일 것이다.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타악기·구음 등의 생음악으로 춤의 활력을 작동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지난 20년동안 대학교수로서 예술현장을 지키는 춤작가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기를 서슴지않는 춤꾼으로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으나 오로지 무대에서만 ‘끼’를 펼칠 뿐이며 ‘예술가는 무대에서 빛나야 한다’는 고집을 굳건히 지킨다.그러나 ‘예술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도정에 늘 함정이 도사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나에게는 스승만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나의 제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래서 제자들이 설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에 없이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을 트는가 하면 춤공연을 펼칠수 있도록 춤·타래무용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수많은 춤중에서도 김백봉스승에게 전수한 ‘부채춤’을 빼놓을수 없다.전립의 패영을 늘어뜨린 장삼차림에다 두 부채를 편채 열정적으로 춤추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기상을 보이면서 지음실력으로 인위(인위)와 자연의 극치를 조화시킨다’는 평을 듣는다.지난 8월 LA 윌셔 이벨극장에서 그가 재구성한 일련의 전통춤공연을 펼쳤을때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그의 춤스타일과 그가 구사하는 무용언어가 전혀 새로운 영역의 한국무용이라는 점에서 이런 류의 우리무용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고전제하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부채춤이나 장고춤이 행사나 형식무용이 아닌,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예술로 재인식됐다”고 극찬했다.가족은 사업을 하는 김효영씨와 남매. ○여중때 김박봉 문하생 입문 그는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흥과 청으로 마치 무당처럼 춤추고 억제할 수 없는 벅찬 감동때문에 춤을 추는 동안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남보기에 행복하고 순탄한 역정을 지나친 것 같지만 모든 고통스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예술적 파란과 시행착오를 이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평론가 김태원이 “극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휘몰아갈수 있는 특이한 스타적 재능을 가진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춤을 추는 춤의 완결앞에서 어느때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의지를 지금 만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시기다. □연보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1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1972년 김말애 작품발표회 ▲1973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1976∼현재 경희대 교수 ▲1983년 김말애 창작무용발표회 ▲1985년부터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1986년 뮤지컬 ‘양반전’ 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개막식 ‘차일춤’ 안무,주불대사관 초청 서울올림픽 유럽 홍보공연 ▲1988년 창작무용 ‘애장터’ 안무 ▲1989년 일본 오사카예술대 교환교수,우시마도국제예술제 공연 ▲1990년 춤·타래창단공연 ▲1995년 한국무용제전 참가 ▲1996년 김백봉춤 보존회 열린무대 ▲1997년 ‘아,김백봉무용’ 공연출연,LA한국예총 초청 미주 공연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85년)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안무상·음악상(92년) ▷저서◁ ‘춤’(94년)‘한·중·일 궁중무용의 변천사’(96년)외 논문집 ▷현재◁ 대한무용학회 이사·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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