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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2·8독립선언과 노애국지사들

    “3·1운동은 우리 근대사의 서리고 서린 산맥 가운데 위연히 솟은 한 고봉(高峰),이 봉우리 위에 서서 보면,외세의 침노 속에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생성 발전해온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멀리 가까이 제자리를 드러내면서 부각된다.3·1운동은 우리 근대민족운동사의 큰 호수,이 이전의 모든 근대 민족운동의 물줄기가 이리로 흘러들고,이후의 모든 근대 민족운동이 여기서 흘러나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천관우,‘3·1운동 50주년 기념논문집’ 편집후기) 3·1운동은 근대 민족운동사의 거대한 호수다.그렇다면 3·1운동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로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일본에 유학중이던 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것에서 비롯한다.재일 유학생들은 11명의 실행위원을 선출하여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2월 8일 오전 독립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도쿄 주재 각국대사관,일본정부,중의원,조선총독부에 보내고 오후 2시 500여 회원의 환호속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유학생 거의 전원이 모인 이날 독립선언회의에서 학생들은 독립실행방법을토의하려다가 일경에 강제해산당하고 실행위원들은 체포되었다.이에 앞서 송계백과 최근우가 선언서 일부를 국내로 반입하여 현상윤·송진우·최남선 등에게 전달,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었다.재일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 YMCA 건물은 그동안 부채로 존폐의 위기에 있던 것을 지난 연말 정부가 21억6,000만원을 지원하여 은행빚과 건물지하공사비를 갚게 되었다. 스가모감옥터의 노애국지사들 2월 8일 도쿄 YMCA 회의실에서는 2·8독립선언 81주년 기념행사가 조촐하게 거행되었다.재일본 한국 YMCA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국내에서 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과 이강훈(李康勳) 전 회장 등 생존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후손 40여명이 참석하여 기념식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동경한국학교 초등부 어머니합창단이 ‘독도는 우리 땅’을 불러 참석자들을 숙연케 만들었다.행사후 가진 간담회에서 유학생 대표들은 활자로만 읽었던 노애국지사들과의 대면을 감격스러워하면서 새로운 한·일관계와 학생운동의 진로 등을 물었다. 다른 외국에 비해 ‘재일유학생’의 존재는 유별하다.그것은 한말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파견된 유학생중에 매국노로 변신하거나 2·8독립선언을 주도한 학생중에 악질 친일파가 된 경우, 일제시대 많은 유학생들이 총독부 관리나 법관이 되어 일제의 주구노릇을 하고 해방후에는 독재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 때문이다.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일본유학생들은 이 부분에서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그래서 말했다.같은 물을 소가 먹으면 젖을 만들지만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든다,어찌 일본유학생들뿐이겠는가.국내외의 명문대학 출신들이 친일파가 되고 독재의 주구노릇을한 다른 쪽에서는 의로운 길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다,역사가 어느 쪽을승자로 기록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라고. 방일 첫날 노애국지사들은 일제식민지 시대 많은 한인애국자를 수감하고 처형한 스가모(巢鴨)형무소를 방문했다.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이곳은 이봉창·김지섭 의사 등이 옥고를 치르다 사형이 집행된 곳이다.이강훈 옹도 13년 옥살이를 했다.노애국지사들은 만감이 서린 표정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고, 우리 애국선열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에는 생존 지사들의 흐느낌이 배어 2월의 차디찬 스가모 공원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이곳에서 숨진 선열들을 기리는돌비석 하나라도 세웠으면. 도쿄헌책방의 노애국지사들 유학생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 학생이 물었다.생존애국지사들이 대부분7,80 고령인데 사후 광복회의 존립문제와,일제와 맞서 싸운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는데도 독립운동사가 먼 망각의 역사로 퇴락하고 있는 터에 이를 잇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어찌 일본유학생들만의 의문일까만 나는 예상외의 장소에서 ‘해답’을 얻었다.행사를 마치고 도쿄 번화가에 즐비한 헌책방에서 삼삼오오로 만난 우리 노애국지사들의 형형한 눈빛에서 그리고 그들이 찾는 일제시대의 자료와 일본을 알아야 한다면서 푼푼이 모은 용돈으로 일본현대사의 신간을 사는 모습에서,“노병은 사라질지언정 죽지 않는다”는 것을.-일본 도쿄에서[김삼웅 주필]
  • [각료 에세이]열린 마음으로/ 우리사회의 ‘나나니벌’

    이제 열흘 정도 지나면 입춘(立春)이다.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점심시간을이용하여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위원회 근처 골목길을 걸었던 즐거움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시간은 흘러 벌써 봄을 맞을 때가 왔다. 봄을 생각하면 으레 꽃 주위를 나는 나비와 벌을 생각할 수 있다.나비와 벌은 몇 번의 생성과 변화의 과정을 거쳐 화려한 모습을 갖게 되지만 그 중 나나니벌이라는 곤충은 그렇지 않다.조선 중종 때의 문신 신광한(申光漢)의 기재문집(企齋文集)에 나오는 나나니벌은 유일하게 다른 곤충을 자신과 유사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다른 애벌레 몸에 알을 낳아 자신의 모습으로 변하게하는 것이 마치 공자(孔子)가 남의 자식인 안회(顔回)로 하여금 자신과 유사하게 되도록 하였던 것과 닮았다.그 이후로 사람의 경우는 그랬던 사례가 없어 안타깝다. 3월이 되면 중앙인사위원회에서 그동안 실시한 연구용역결과들을 엮은 책이나온다.위원회에서 자체 발간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출판사에 의뢰하여 만들고 서점에도 배포되어 판매될 예정이다.예산도 줄이고 중앙인사 위원회가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외부에 알릴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한 번 만들어진 소중한 자료를 많은 사람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기관에서 실시하는 연구용역결과들은 내부적으로만 공개되거나 보존되어 왔다.그러다 보니 소수 관계자를 제외한 외부에서 그 결과를 알수 없었고, 당연히 어떤 기관에서 어떤 연구와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열린 사회,열린 정부를 지향하는 때이다.닫혀있던 문을 활짝 열고 개방적인정부,투명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정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국민이 알게 하고 참여를 북돋아야 한다.신진대사가 활발한 건강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 외부에서 공직사회를 신뢰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작의 의미를 준다.마른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기시작하고 얼어있던 땅 위로는 매년 모습을 달리 하며 푸른 빛이 번져갈 것이다.앞으로 중앙인사위원회의 ‘나나니벌 정신’이 공직사회에 널리 전파되어 정부는 물론 온 나라가푸른 빛으로 변해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광웅 중앙인사위원장
  • 보훈처 ‘임정 80주년 기념논문집’서 새사실 공개

    1932년 1월 8일 육군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던 일황의 마차에 폭탄을 던진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李奉昌)의사의 의거는 흔히 ‘사쿠라다몬전(櫻田門前)사건’이라고도 불린다.이는 의거현장이 일본 황궁의 앵전문 앞임을 지칭한 것이다.그러나 이 의사의 재판자료 등에 따르면 의거현장은 도쿄 치안의총본부격인 경시청 청사앞으로 밝혀지는 등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고 있어,관련자료의 재검토가 절실한 것으로 지적된다. 최근 국가보훈처가 출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80주년기념 논문집’(상·하)에 실린 ‘이봉창의거 연구서설’이라는 글에서 최서면(崔書勉·72)국제한국연구원장은 “이 의사와 관련된 기존 기록·연구성과 가운데 상당수 오류가 발견됐다”면서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의거현장은 기존 주장인사쿠라다문 앞이 아니라 경시청 청사 정문 현관앞”이라고 밝혔다.최원장은증거자료로 이 의사의 의거 당일자 일본신문의 기사와 의거 직후 경시청 청사 앞에서 일경들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1932년1월 8일 오전 도쿄 시내요요기(代代木)연병장에서 열린 육군 관병식에 참석한 일황이 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쿄 경시청 정문앞을 지날 무렵일황이탄 마차대열에 폭탄이 날아들었다.폭탄을 던진 주인공은 상해임시정부의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 의사였다.그러나 그동안 이 의거사건은 ‘경시청앞 사건’ 대신 ‘사쿠라다몬전사건’으로 불려왔다.의거 당일 오사카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은 호외에서 “경시청 정문 바로 앞에서 32세 가량의 청년이 폐하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고 보도했다.일본정부역시 당일 첫 발표문에서는 ‘도쿄시 고오지마치구(麴町區) 소도사쿠라다몬쵸(外櫻田門町) 1번지 경시청 현관앞’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틀후부터 일본정부는 이 사건을 ‘사쿠라다몬(櫻田門)사건’ 으로고쳐 부르게 했다.사쿠라다몬은 경시청 현관에서 100m 이상이나 떨어진,황궁을 둘러서 흐르는 호(濠)건너에 있는 문이다.최 원장은 “수도치안의 총본부격인 경시청 앞에서 발생한 대역(大逆)사건이어서 경찰의 체면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건명을 왜곡한 것같다”며 “이제라도 ‘경시청앞 사건’으로 고쳐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이밖에도 ‘이봉창전’을 비롯해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나오는 이 의사 관련기록에 오류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우선 이 의사가 한 때 근무했다는 만선철도(滿鮮鐵道)는 당시 한국에 없었으며,의거당일 만주국 황제 부의(溥儀)가 일황과 함께 관병식에 참석했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최 원장은 또 ‘이 의사가 예심도 거치지 않고 사형선고를 받고 그 해 1월 10일 순국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실지로는 이 의사는 총 9차례에 걸쳐 신문을 받았으며 ‘의거 전날 긴장을 달래기 위해 유곽에서 폭음을 했다’는 기록 역시 틀린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최 원장은 “일본 최고재판소에는 14책 분량의 이 의사 신문·재판기록이보존돼 있으며,외교사료관도 이 의사 관련 고문서철 5권을 소장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 1차자료에 대한 접근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춘향전 이몽룡 실제인물 成以性 生家 복원작업

    경북 봉화군(군수 嚴泰恒)은 8일 춘향전에서 이몽룡으로 묘사된 것으로 알려진 ‘성이성(成以性)’의 생가를 복원하기로 했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조선 광해군 때 남원부사였던 성안의(成安義)의 아들인계서(溪西) 성이성을 모델로 했다는 학계의 주장을 근거로 한 것이다. 연세대 설성경(薛盛璟·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성이성 문집에 실린 ‘호남암행록(湖南暗行錄)’을 통해 “이몽룡은 조선 인조때 암행어사를 지냈던 성이성(1595∼1664)이고, 그의 아버지는 남원부사를 했던 성안의(1561∼1629)”라고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나온 가운데 성이성이 광해군 5년(1613)에 직접 건립한 것으로알려진 봉화군 물야면 가평1리의 계서당(溪西堂·국가중요민속자료 제171호)과 어사 부임 당시 썼던 어사화와 족보 등이 새로운 연구자료로 등장했다. 봉화군은 이에 따라 계서당과 어사화,성이성의 묘(영주시 이산면 신암 2리)등 유적을 고증작업을 거쳐 복원하기로 했다. 봉화군 관계자는 “성이성의 유적을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그가 살았던 봉화를 널리 알리기위해 복원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봉화 김상화기자 shkim@
  • 정찬주 창작집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김룡사(金龍寺)는 경북 문경의 운달산 자락에 있는 고찰(古刹)이다.흔히 ‘금룡사’로 부르는 것은 김(金)씨 성을 가진 이가 기도끝에 아들을 얻은 뒤용(龍)이라 이름했다는 이 절의 내력을 모르는 탓이리라.수행의 명당이라는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성철 큰스님이 용맹정진한 곳이기도 하다. 정찬주는 그 성철스님을 소재로 한 장편 ‘산은 산,물은 물’과 산문집 ‘길 끝나는 길에 암자가 있다’로 알려진 작가다.그래서 책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실제로 출가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그럴 용기도 없는 소설가일 뿐”이라고답한다.그러면서도 “나의 글 곳곳에 잿빛 중(僧)물이 들어 있는 모양”이라면서 싫지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가 창작집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해들누리)를 냈다.여기엔 중편 ‘김룡사…’와 ‘월인천강지곡’ 등 두개의 중편과 단편 ‘포옹’이 실렸다. ‘김룡사…’는 부도가 확정된 중소기업 사장이 어릴 적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산사를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그 절은 주인공이 젖먹이였을 때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아버지가 수행하고 있다.그곳에서 가을 한철 날아드는 잠자리떼의 날갯짓과 지친 날개를 접고 잠시 부처님의 이마에 내려앉아 쉬고 있는 나비를 통해 자신이 헛꿈에 취해 살아 왔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삶이 힘겨운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쓴 것”이라고 말한다.우리는 진실로 무엇에 지독하게 아파해 보지 않고 헛꿈에 취해 살고 있는데,가열찬 번뇌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해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그려내려 했다는 것이다. ‘김룡사…’가 절을 무대로 하고는 있지만 일주문 밖의 세상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속세를 떠난 두 수행자의 얘기다.진리를 탐구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를 통해 성불(成佛)하겠다는 운수승(雲水僧)과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성불하겠다는사판승(事判僧)의 갈등을 다룬다. 이야기는 시주를 받아 천불탑을 지은 뒤 인도에서 진신사리를 가져다 봉안코자하는 사판승 지웅과,그것을 “깨침을 핑계삼아 신도들의 시주금을 잡아먹는 짓”으로 보는 운수승 법상의 사상적 대립으로 풀어간다.그러나 눈에 보이는 길을 가는 지웅과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법상이 서로 다른 길을 가기에 겉돌고 부딪치지만,그 길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정찬주는 ‘중물’이 들기는 했지만,자신이 결코 ‘불교작가’는 아니라고말한다.요즘 몇몇 젊은 작가들이 불교적 소재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면,자신은 처음부터 불교를 문학적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그런 만큼 자신의 문학이 불교적 뿌리를 두되,외연을 넓혀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일본 법륭사의 구세관음(求世觀音)을 다룬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일본사람들은 성덕태자의 등신불이라고 주장하지만,‘성예초’라는 고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백제 성왕의 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그는 이 작품을 위해 두 차례나 일본을 다녀왔다.역시 불교를 모티브로 하지만,역사와 문화가 주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그의 말처럼 외연을 넓히는 작업인셈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나희덕시인 첫 산문집 냈다

    절제된 언어로 서정적인 시를 발표해온 시인 나희덕씨(33)가 최근 첫 산문집인 ‘반 통의 물’(창작과비평)을 펴냈다.책은 삶의 그물에서 걸러낸 30여편의 맑고 잔잔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유년시절부터의 체험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30대에 들어서면서 부쩍 강해졌습니다.저의 문학세계를 지배해온 일상의 작은 체험을 고백하듯이 담았다고나 할까요” 책은 그의 이런 말처럼 어린시절 느꼈던 노을의 황홀함,자연과 벗하며 얻은 깨달음,어머니와의 정담,‘시힘’동인들과의 만남,시에 관한 단상들을 담박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시인이 산문집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헐벗음을 드러내는 셈이지만 지나온 삶을 반추하면서 생명의 끝없는 순환과 우주질서에 대한 신뢰를 담아내려노력했습니다” 격정을 최대한 정화시켜 격조있는 시어로 표현하는 그답게“혼돈의 시대이지만 인간의 순수성을 마음 깊숙히 끌어안고 싶었다”고 말했다.그는 “‘반 통의 물’이란 충만함이 없다는 뜻으로 부족한 저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라면서 “글을 써오면서 미처 채우지 못한,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척인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나씨는 88년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그동안 ‘뿌리에게’(91년)‘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94년)‘그곳이 멀지 않다’(97년) 등 시집 3권을 선보였다.지난해에는 ‘그곳이‥’로 제 17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값 7,500원. ●나희덕의 약력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제1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정기홍기자]
  • [쉽게 읽기] 신현림 ‘희망의 누드’

    오래된 책갈피 속에서,어쩌다 뒤져본 서랍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에 숨이 멎는다.머릿속은 갑자기 진공상태처럼 느껴지고 손가락 사이로 힘이 살며시 빠져나가는 순간 시공의 벽을 사뿐히 뛰어넘는 진기한 체험.그리하여 생각한다.시시각각 자유자재로 내 마음의 골짜기를 가로지르며때로는 거센 소용돌이처럼,때로는 날카로운 눈보라처럼 아우성치다 이내 잦아들곤 하는 감정이란 것도 사진처럼 고스란히 찍어놓을 수만 있다면.그래서어느 날 문득 꺼내볼 수 있다면. 우리에겐 일상이라는 평범함 속에 묻어두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제같은 오늘,오늘같은 내일일진대 무엇이 새삼스러우랴 하면서 입을 다물고 말뿐이지만 가슴속은 몰아치는 폭풍우를 견디다 못해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그렇다면?….역시 답은 글쓰기일 것이다.아무런 형식없이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진솔하게 적어내려 가는 산문은 그래서 쓰고자 하는자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읽고자 하는 자 또한 누구라도 손쉽게 그 때 그심정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있어 벗으로 삼기 좋다. 가을맞이 독서캠페인을 벌이는 라디오 생방송 진행을 위해 10월의 혼잡한토요일 오후 한 서점을 찾았고 그곳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그녀를 만났다.다소 허스키한 목소리가 남다른 인상을 준다는 느낌.솔직함과 건강함이 느껴지는 그 무엇.베스트셀러 시집의 주인공으로 친숙해진 신현림,그녀가 헤어지면서 자필사인과 함께 건넨 책을 받았다. ‘희망의 누드’(열림원 펴냄).산문집이면서 한편의 글마다 빠지지 않고 사진이 등장한다.독특한 형식이다.혹시 제목에 눈길이 가는가? 작가 자신도 이를 조금쯤 부담스럽게 의식했던 듯 모든 허위허식을 벗어버린 상태로서의 누드에 대한 예찬을,그리고 한 아름다운 봄날의초록빛 들판을 ‘희망의 누드’라 이름짓게 된 경위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굳이 순서에 따라 읽을 필요없이 책장이 펼쳐지는 대로 눈길을 주어도 편하다.첫 줄에 등장하는 짤막한 명언을 음미하는 재미며,작가가 영감을 받았다는 모든 종류의 것들-사진,시,영화,음악 등-을 공동 소유하는 기쁨도 쏠쏠하다.그 가운데 단연으뜸이라면 역시 가끔씩 숨을 멎게 만드는 사진들이다. 현재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공부하는 작가가 일반인들이 흔히 보기 어려운,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사진작품을 선별해 쉬운 설명까지 곁들여 놓았다. 정지된 사진 한 컷이 그토록 많은 얘기를 하고 있는 줄 미처 몰랐던 나의 무지가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는 즐거움도 누리게 된다. 일상에 지쳐가고 있다면,한 줄의 시와 음악마저 사치로 느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고개를 들어 지금 이곳이 아니라 조금 먼 저곳을 바라보아야 할터이다. 구석진 이곳에서의 아옹거림이 부끄러워질 저곳을.찾아가는 길목에벗이 있다면 든든할 것이요,‘희망의 누드’라면 그 어느 누구보다 마음 편한 벗이 될 것 같다. [방송인 오미영]
  • ‘고전문학회’5년작업끝 완간-조희룡 전집전 6권 펴내

    호산(壺山) 조희룡은 19세기 조선시대 중인 출신이면서 서화(書畵)에 관해독창적인 이론을 세워 당시 미학이론가 중 최고봉을 이룬 인물이다.그러나같은 시기에 교유했던 추사(秋史) 김정희의 그늘에 가려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국내 한국학 연구의 산실인 ‘실시학사 고전문학회’가 5년여의 번역작업 끝에 ‘조희룡 전집’(한길아트 펴냄,전 6권)을 출간,그의 예술세계를 알려준다. 전집에는 ▲산문집인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 ▲유배생활 수필집 ‘화구암난묵’ ▲그림에 써넣는 시문(詩文) 262개를 모아놓은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시모음집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와 ‘일석산방소고’(一石山房小稿) ▲60편의 편지를 모은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外赤牘) ▲전기물이자 인물비평집인‘호산외기’(壺山外記) 등이 담겨 있다. 특히 문인 승려 등 소외계층의 전기물인 ‘호산외기’는 중간 신분층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이기백 전 서강대교수는 이 문헌을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규사’(葵史) ‘희조일사’와 함께 ‘19세기 사회사적 기록’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호산의 예술세계는 중인이란 철저한 신분 자각을 통해,상층 사대부 문화를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자신의 경지를 펼쳤다는 점에서 요즘들어 높이평가받고 있다. 정기홍기자 hong@
  • 佛작가 발자크 저서 번역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 출간

    “전혀 글을 쓰지 않고도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신문사 사장이자 주필,사주 겸 편집장까지 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150여년전 격동의 시기,프랑스의 유명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저서 ‘저널리스트들-파리 언론의 모노그래피’를 통해 언론계의 현실을 이렇게 비판했다. 최근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윤호미 감역, 서해문집 펴냄)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된 이 책은 마치 요즘 우리 언론현실을 적은 듯한 착각을일으키게 한다. 스스로 실패한 신문사 사장이자 논설위원이라고 밝힌 발자크는 기사 한 줄쓰지 않고도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는 신문사주들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발자크는 “신문사주들은 사장,주필,편집장의 역할을 겸하면서 이중한가지 직함을 내세워 자본가와 사업가,투자가와 가까이 하고 있으며,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일에 관여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들은 어떤 사업이나 한 사람을 밀어주기도 하지만,반대로 매장시키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또한 “재주는곰이 부리고 돈은 전부 거둬들이는 서커스단장과 같은데도 자신을 신문의 혼으로 자부하고 있으며,정부는그와 협상을 하지 않을수 없다”고 비꼬았다. 발자크에 따르면 신문사 사주들은 야심가와 사업가,그리고 순수한 신문인으로 나뉜다.야심가는 그가 지지하는 정치체제를 옹호하거나 자신이 정치적으로 두려운 인물이 되기 위해 신문을 만든다.사업가는 신문을 자본으로 간주하며,그 이윤이 권력이나 쾌락 또는 돈의 형태로 돌아오길 기대한다.결국 야심가와 사업가는 신문을 수단으로 이용,사회적 명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다.반면 순수한 신문인은 경영에 대해 이해가 깊고,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면서도 이윤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발자크는 “대체로 신문사주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정부와 닮아 개혁을 두려워하고,재능있는 사람들을 시기해 곁에 두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런 이유로 가장 잘 만들어진 신문은 항상 사라지게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김미경기자
  • [김삼웅 칼럼] 秋史의 ‘秋思’를 기리며

    시간의 입체성을 말한 이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였던가.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흐른다.잃어버린 시간은 찾을 길 없고 오는 시간 또한 막을 길이 없다. 아침 저녁의 바람결이 상큼하고 한낯의 햇볕도 한층 엷어졌다.늦은 밤 돌담의 귀뚜라미 소리 제법 청량하고 가끔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청자빛 하늘이너무 곱다. 어느 무명씨의 시조 한 편 . 강호에 비 내리듯 마음은 설레고 내 마음은 저절로 저 먼 곳에 떠 있어라 그려도 애닮다마는 하는 수가 없구나. 폭우와 폭염과 폭풍이 심했던 지난 여름의 변덕 속에서도 곡식과 과일은 무르익고 청초한 가을 꽃이 산과 들녘을 수놓는다.그리고 나뭇잎의 색조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가을의 조락이 깊어간다. 이맘 때면 누구보다도 가을을 앓는 추사(秋史:金正喜)와 그의 시를 생각하게 된다.추사의‘추사(秋思)’란 시는 그의 아호와 시제(詩題)가 같은 음이어서인지 옛사람들에게도 많이 읽혔다. 어젯밤 총총한 별,싸늘한 서리남쪽의 가을 생각 끝없이 자아낸다.하늘 바람 사람 말이모두다 가르침이요 글씨 쓰고 시 짓는 데 반드시 법도가 있다네 기러기 한 번 울자 이렇게 한 해가저물다니 잎사귀마다 가을 재촉하는 듯 떨어지기 바쁘네 흰 구름 붉은 단풍 나그네 마음 흔들어 햅쌀 밥에 게장 먹는 고향이 꿈에도 그리워라. (정후수 역) 추사가 이 시를 쓴 것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이다.‘햅쌀 밥에 게장 먹는’고향을 그리며 깊어가는 가을날에‘가을 생각(秋思)’을 읊은 추사의 처지가 애닯다.누구인들 저문 계절의 애수가 엷을까만 귀양살이 9년을 넘긴 추사의 심사는 남달랐을 터이다.그래서 가을의 노래가 많다.‘추일만흥(秋日晩興)’도 그중의 하나. 가을꽃 수도 없이 뜨락 머리에 환히 피었으니 산집(山家)에 가장 좋은 가을이 돌아옴을 알겠구나 석류꽃 지고 국화 피기 전에 구경거리 계속해주니 장원홍(狀元紅·붓꽃)이 모든 풍류를 도맡았구나. 시인 묵객치고 국화 좋아하지 않는 이 있을까만 추사도 무던하여 그의 문집에는 국화를 노래한 시가 꽤 된다.역시 이맘 때의 작품으로‘중양황국(重陽黃菊)’이 있다. 망울 맺은 노란국화 초지(初地)의 선(禪)인듯이 비바람 치는 울타리 가에 고요한 인연을 의탁했네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뒤꼍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가을은 깊어가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인생도역사도 흘러간다.4세기 초 중국에 귀화한 인도의 학승 나가르주나는‘중론(中論)’이란 글에서 시간의 논리를 정리했다. 만일 과거 시간으로 인하여 미래와 현재가 있다고 한다면 미래와 현재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있으리라. 이제 두달여 지나면 새 천년의 새벽이 열린다.그러고 보니 이 가을도 2000년대의 마지막 추절(秋節)이다.신동엽의 시집‘아사녀’에는‘산에 언덕에’란 빼어난 시가 있다.추사를 기리면서 깊어가는 가을날에 못잊을 송가로 부르면 어떨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국향(菊香) 짙은 만추에 가을걷이 끝난 농부와 함께 추사(秋史)의 ‘추사(秋思)’를 기린다. 김삼웅 주필
  • ‘돈 경멸’ 선비들의 美德?…평론가 이동하교수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돈’을 천시했다.한마디로 재물을 철저히 경멸했다. 어떤 이들은 그 결과 조선이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고,결국 조금더 빨리 근대화된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지않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처럼 돈,나아가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경멸한 조선의 선비정신에 오늘날에는 상당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한국의 문인들이 돈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 문학평론가 이동하(서울시립대교수)는 최근 펴낸 산문집 ‘한 자유주의자의세상읽기(문이당)’의 상당 부분을 ‘한국문학과 돈’문제에 할애했다. 결론은 “돈을 경멸하는 조선시대 사상은 염상섭이나 채만식같은 특출한 작가를 제외하면 20세기 들어서도 한국작가 상당수의 가슴속 깊은 곳에,여전히완강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멸시하는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에는 그것대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정신에 깃든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사회를 건강하고,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문화·경제 엘리트가모두 존중받는 가운데 협력하면서,견제하는 관계로 존립해야 한다.그런데 조선조는 앞의 두가지에만 드높은 가치를 부여하고,마지막 한가지는 철저히 배척·부정했다. 이런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집단이 그래도 실학파 지식인들 가운데 북학파다.그러나 북학파를 대표하는 연암 박지원 마저 그 한계를 완벽하게 넘어서지는 못했다.‘열하일기(熱河日記)’가운데 ‘옥갑야화(玉匣夜話)’에 나오는 허생은 연암이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스러운 지식인의 모델이다.그러나허생 조차 경제엘리트를 마음속으로 천시하는 등 선비정신의 한계만 선명하게 드러냈다.더 큰 문제는 오늘날에도 ‘옥갑야화’류의 작가정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20세기 한국소설에서 기업인을 다루는 방식은 천편일률적으로 부정 일변도다.소설속에서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예는 많지않다. 중립적인 시각으로 대하는 때 조차 흔치 않다. 이를 가장 먼저 문제삼은 것은 지난 66년 ‘풍속적 인간’을 발표한 문학평론가 김현이다.그는 “한국소설에서 여러가지 타입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소위 ‘근대인’들이 겪고 있는 치명적인 결점은 돈에 대한 모멸,혹은 경멸에기반을 두고 있는 듯 하다”면서 “한국소설이 그처럼 재미없이 성교를 다루고,그처럼 구질구질하게 관념을 잘게 짓이겨놓은 것은 바로 돈에 대한 경멸때문”이라고 말했다.김현의 통찰은 그러나 아직도 작가와 평론가 모두에게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동하는 조선말의 비극이 시사하듯 “작가들이 돈과 기업인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그리는 경향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그럼에도 그렇게되지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현대 지식인들 일반의 반자본주의적 편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결국 우리 사회가 참다운 의미에서 근대적 사회,진보된 사회,열린 사회로 나아가려면 이러한 편향성을 철저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이동하의 결론이자 충고다. 서동철기자 dcsuh@
  • ‘조선족 문학’ 자료연구 어디까지 왔나/중 옌벤대학서 심포지엄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문학은 한국문학사의 한 지류로 분류할 수 있다.그러나 국내 작품활동이 사실상 봉쇄된 1940년대 전반으로 국한하면,한글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이 지역을 문학사의 주류에 편입시켜도 지나치지않다는 것이 최근의 평가다. 지난 8월8일 중국 옌벤대학에서는 ‘동아시아 문학에서의 만주 체험’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이 자리에서 권철 옌벤대교수의 ‘중국 조선민족 문학자료 수집,정리 현황’이 발표됐다.언급된 자료는 아직 미진한 이 시기 문학연구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권교수에 따르면 조선문학연구는 1958년 중국정부가 ‘중국소수민족문학사’ 편찬을 결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문학자료 수집조’는 19세기말엽부터 광복에 이르는 각종 문학작품을 수집했고,‘문학사 편찬조’는 이를바탕으로 ‘중국 조선민족문학 개황 제강’과 ‘연변문학사’를 펴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닥친 ‘문화대혁명’으로 조선민족문학 연구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모두 ‘반동학술권위’나 ‘잡귀신’으로몰리어 잔혹한 박해를받았고,그동안 모은 자료들도 모두 ‘독초’로 취급되어 휴지통에 들어갔다. 연구가 다시 활성화된 것은 중국정부가 ‘개혁개방’을 표방한 70년대말 ‘소수민족문학사’ 편찬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한민족이 만주로 이주한 시기부터 20년대 사이에 널리 애창된 창가,독립군가요,혁명가요,시·소설작품과30년대 초반부터 광복 사이에 나온 출판물과 주요 작품,동북 항일유격구(대)와 조선의용군,광복군,독립군의 항일가요,연극대본 등 많은 자료가 확인됐다. 이는 ‘중국 조선민족문학선집’(전 10권)과 ‘광복전 중국조선민족문학작품선’(출판중),‘김택영전집’(전 10권,출판중),‘신규식시문집’‘신채호문학유고집’‘류린석전집’ 등으로 나타났고,또 ‘중국조선족문학사’ 등 20여편의 저술로 발전했다. 한중수교 이후에는 ‘민성보’와 ‘만선일보’‘만몽일보’의 일부가 연세대에서 발견되는 등 새로운 발굴이 잇따르고 있다.그럼에도 1930년 안팎에발표된 박계주의 소설과 시,1930년대 후반에 ‘만선일보’에 발표된 염상섭의 장편소설 ‘개동’,현경준의 ‘선구시대’ 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권교수는 한국문학의 수집·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중국과 한국의 연구소 및 유관단체는 물론 한국과 북한의 교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으로 결론을 삼았다. 한편 이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은 계간 ‘한국 문학평론’에 실렸다. 서동철기자
  • 정년퇴임 제주 초·중교장 책 출간 잇따라

    8월말로 정년퇴임하는 제주도내 초·중교 교장들이 그동안의 교단생활을 마감하는 의미로 자신들의 일상이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그린 문집을 속속출간해 화제다. 30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강정통 삼양초등학교장은 ‘교풍정곡집(敎風精谷集)’이라는 시집을,고성하 귀덕초등교장은 ‘황돌이와 검순이’라는 동화집을,양경림 효돈중교장은 ‘하원의 맥’이라는 수기를,김봉육 도남초등교장은 ‘교단여록’이라는 수상집을,홍석여 함덕중교장은 ‘고교영어의 지름길’이라는 지침서를 각각 펴내 정년을 새로운 출발로 맞고 있다. ‘교풍정곡집’은 교사가 되기까지와 되고 난 이후를 7가지 주제로 정리한시 모음집으로 저자의 교사관을 엿볼수 있게 한 글이다.농촌 어린이들의 꿈,산과 바다,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황돌이와 검순이’에는 농촌을 사랑하는글 12편이 담겨 있다.‘하원의 맥’은 자신의 교단인생을 정리한 수상집으로 조부모 등에 대한 효를 강조하고 있다.‘교단여록’에는 44년 교육인생을돌아보고 반성하는 글 31편이 실려 있다.‘고교영어의지름길’은 20여년간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얻은 경험과 설문조사,대담결과 등을 토대로 영어공부를 쉽게 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기고] 조작된‘전자파 유해’논문의 폐해

    전문가의 논문은 관련분야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만약 그 논문이 조작된 것이라면 우리에게 미치는 폐해는 이루 말할수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최근 외국에서 전자파에 대한 논문이 조작되었다는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지난 7월24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로렌스 버클리연구소의 세포생물학자인 로버트 리버디가 전자파 발생과 암과의 관계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 제시해온 2편의 논문이 조작되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당국 조사관들은 리버디가 자신의 결론과 일치하지 않는 자료를 삭제했고,조작된 논문으로 330만달러의 연구지원비를 받았다고 전했으며 연구원직 사임 및 자신의 연구논문을 취소하는 데 동의했다고 덧붙였다.미 보건후생부는 “리버디가 생의학 연구를 수행하던 중 연구자료의 조작을 통해 과학적 범죄행위를 저질렀으며 조작된 자료에 근거하여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공고했다. 그 동안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립과학원(NAS)이 전력선의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고 수차례 발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 리버디가 문제의 논문에서 전자파가 세포막의 칼슘 흡수를 변형함으로써 생물학적 영향을 유발시킨다는 자료를 발표하여 가전제품 사용에있어 전자파 발생을 지나치게 걱정하게 되고 고압선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전력사업자의 마찰이 계속되는 사회적 폐해를 가져 온 것이다. 문제의 논문 2편 중 하나는 ‘세포시스템과 시변 전자파의 생물학적 상호작용’이란 제목으로 뉴욕과학아카데미 연보에 발표되었고 다른 하나는 ‘전자파에 노출된 임파구의 칼슘신호’란 제목으로 유럽생화학연합(FEBS)의 논문집에 발표되었다.익명을 요구한 한 조사관은 “만약 그가 그러한 조작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 누가 그의 논문에 관심을 가졌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고압전기선에서 발생한 전자파와 암과의 관계에 대하여 오랫동안 연구한 메릴랜드대학 물리학 교수인 로버트 박은 리버디의 자료 조작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발생한 발암 원인의 책임을 전력산업계에 전가하려는 사람들의 관심을끌기 위하여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으며 전자파 유해성을 주장하는사람들이 물리적 효과를 찾으려 온갖 노력을 했을 때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리버디 논문의 ‘칼슘반응신호’였으나 그것이 조작으로 발표됨으로써 고압전기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 유해성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있는 실정이다. 또한 미 국립암연구원 및 소아백혈병 최고 권위의 전문가들이 2년 전 대규모의 심도있는 연구에서 고압전기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모든 병력을 추적한 결과 이 전자파와 백혈병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비춰볼 때 고압전기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케 하며,관련분야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든 사건인 것 같다.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고압전기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문제에 대하여 일부 부정적인 주장을 부각시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적인 연구에 동참함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실정에 알맞은연구를 수행하여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전자파 문제를 바르게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백영기 한전 계통사업단장]
  • 소설가 고종석씨 산문집 ‘언문세설’ 펴내

    “ㄹ은 액체성의 자음이다.‘흐르다’와 ‘따르다’에도 이미 이 ㄹ이 있다.…고려속요 ‘청산별곡’은 ㄹ을 타고 흐른다: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에 살어리랏다/멀위랑 다래랑 먹고/청산에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그야말로 ㄹ의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유랑민의 이 서글픈 노래는 ㄹ소리로 가멸차다.소리가 의미를 압도한다.‘청산별곡’은 흐르고 흐른다”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고종석씨(41)가 ‘언문세설(諺文細說)’이란 산문집을펴냈다.도서출판 열림원. 그는 한때 국어사전 편찬자가 되기를 꿈꿨다.한국의 웹스터나 라루스가 되겠다는 퍽 야무진 것이었다.그러나 그 꿈은 현실의 몸을 얻지 못했다.이 책은 저자의 좌절된 꿈에 대한 일종의 ‘자위’로 씌어진 한글자모(字母) ‘사전’이다.한국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그의 언어관 혹은 한국어관은 어떤 것일까.“모든 순결주의가 그렇듯 언어순결주의도 파시즘에 정서의 탯줄을 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모든 언어는 혼혈이며,순수한 언어는없다는 것이다.그에 논법에 따르면 외래어나 일본제 한자어,북한의 이질적인 언어 등이 뒤섞여 한국어는 더욱 풍부해진다. 한편 고종석은 소설가 복거일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민족어가 가까운 장래에 ‘박물관 언어’화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사회는 서구의 라틴어와 동아시아의 한문이 그랬듯이 민족어와 영어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이중언어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글 자모라는 한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써내려간 ‘언문세설’은 민족어로서의 한국어를 보다 정확하고 아름답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ㄱ’에서 ‘ㅎ’,‘ㅏ’에서 ‘ㅣ’에 이르는 한글 자모 스물네 자는 그의 붓끝을 따라 새 이미지와 생명을 얻어 파닥거린다.이 책은 한글 자모가 생겨나 변해온 과정,각각의 모양과 소리,고유한 법칙들을 꼼꼼히 살핀다.하지만 국문법 책처럼 딱딱하지는 않다.하나의 글자가 주는 어감을 풍부한 어휘와 시구를 통해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그 한 예로 그는 ㄴ이라는 자음이 얼마나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가를 김수영과 레미 드 구르몽,황인숙의 시 ‘진눈깨비’를 통해 보여준다. 고종석은 이미 ‘사랑의 말,말들의 사랑’‘감염된 언어’ 등의 에세이집을 통해 국어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사랑을 보여줬다.그는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민족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그러나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이 민족주의자의 한 징표라면,나는 민족주의자의 인력권 바깥에 있지도 못하다”고 고백한다.그러나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한국어는 그에게 또 다른 감옥으로 다가온다.“모국어는 내 감옥이다.오래도록 나는 그 감옥 속을 어슬렁거렸다. 행복한 산책이었다.‘언문세설’은 그 산책의 기록이다”김종면기자 jmkim@
  • [책과 세상] 김영환 지음 ‘홀로 선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감동이 있는 정치.온갖 혼탁함으로 얼룩진 정치판에서그러한 감동적인 정치가 가능할까.국회의원 김영환(44)에게서 그 가능성을읽는다.시인인 그의 깨끗한 정치는 시의 운율을 타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깨끗한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 ‘홀로 선 당신이 아름답습니다’가 나왔다.(중앙M&B 7,000원).70·80년대 ‘어둠의 시절’을 온 몸으로 저항하며 살아온 고단한 삶과 이념적 동지로 같은 길을 걸어온아내와의 결혼 등 일상생활의 이야기도 담고 있는 이 책은 시가 있는 산문집이다. 김영환(국민회의)의 경력은 독특하다.의과대학생 구속 1호를 기록한 운동권학생이었으며 노동현장을 전기기술자로 전전한 노동운동가였다. 시인이며 치과의사였고 벤처기업 창업자였다.그는 다양한 삶의 굽이를 돌아,‘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지만 큰 의사는 가난을 고친다’는 이제마 선생의 교훈을 가슴에 품고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무소유’의 정치철학을 실천하며 탁류의 정치판을 정화시키고 있다. 그는 얼마전 유일한 재산이던 42평짜리 아파트를 팔았다.96년 정치를 시작한지 3년만에 강남의 잘 나가는 병원과 아파트를 팔아먹은 것이다.남아있는 재산은 전세금이 전부다. 1,0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많은고민을 하다 결국 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깨끗한 정치라는 이름으로 아무 일도 하지않는 소극적인 정치가는아니다.경제청문회 때는 ‘스타 정치인’이었으며 지난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기피문제를 폭로,대선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활정치를 펼치는 일이다.전화요금의 인상을 막고 터무니없는 이동전화요금을인하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등 생활정치를 실현하고 있다.그는 적지만 국민의 깨끗한 땀과 사랑이 담긴 후원금으로 국가를 살리고 국민을 살맛나게 하는 감동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정치를 구원할 희망의 빛이다.그 빛이 찬란하게 빛날 때 ‘정치가 시보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의 꿈도 현실화될것이다.그러나그 빛은 부정부패의 검은 구름에 가리워져 있고 그는 혼탁한정치판에 홀로 서 있다. 이창순기자cslee@
  • 그림처럼 아름다운 ‘고갱의 타히티 기행’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1903). 연금술사와도 같은 황홀한 색채감각을 보여준 감성의 천재.그를 생각하면 두 권의 책이 함께 떠오른다.고갱이 직접 쓰고 그린 ‘고갱의 타히티 기행’과 고갱을 소재로 한 영국 작가 서머싯몸의 ‘달과 6펜스’다.몸은 ‘고갱의 타히티 기행’의 서문에서도 “지금고갱은 내 서재에 있다”고 적고 있다.그만큼 ‘고갱의 타히티 기행’은 자연인 고갱을 바로 가까이서 느끼게 하는 책이다. 최근 도서출판 서해문집에서 ‘고갱의 타히티 기행’을 펴냈다.특히 이번에 선보인 ‘고갱의 타히티 기행’(남진현 옮김)은 고갱의 타히티 체류기간중제작한 목판화 10점과 수채화들이 그대로 담긴 오세아니판(版)을 완역한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책의 원래 제목은 ‘노아 노아(Noa Noa)’.타히티 말로‘향기로운,향기로운’이라는 뜻이다.고갱은 타히티에서의 삶에 대한 기록과 함께 마오리족에게 구전돼 내려오는 고대 신화를 문학적으로 가공해 이 책에 담았다.세밀하면서도 경쾌한 고갱의 문체는 여백에 그린 수채화와 예술혼을담은 목판화와 더불어 천재 예술가의 영혼을 느끼게 한다. 광활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의 작고 아름다운 섬 타히티.온화한 열대기후에 울창한 정글이 있는 이 섬에서 고갱은 오염되지 않고,타락하지 않고,유럽적이지도 않은 아름다운 원주민들을 만났다.그림을 그리고 종려나무 아래를 거닐면서 낙원의 삶을 꿈꿨다.그러나 유럽의 문명이라는 악을 피해 타히티로 건너간 그의 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갱은 자신의 작품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타히티 섬에서 보냈다.그는 타히티 생활중 스스로 정신적 유언장이라 여겼던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우리는 누구이며,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비롯,‘타히티의 전원’등 필생의 대작을 남겼다.하지만 당시의 유럽 화단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1903년 고갱은 마지막 도피처인 도미니크 섬에서 심부름하는 소년이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55세로 생을 마감했다. 풍요로운 열대의 풍경을 그림 그리듯 묘사한 ‘고갱의 타히티 기행’은 고갱의 내면의 자서전으로,또한 한 편의 어엿한 기행문학작품으로 읽힐 만하다. 김종면기자 jmkim@k.daily.com
  • ‘추억의 만화’ CD롬으로 나왔다

    ‘황금가면’(김종래) ‘흰구름 검은구름’(박기정) ‘라이파이’(김산호)….요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처음 듣는다”고 하겠지만 40대 후반을 넘은 성인들에게는 절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만화들이다. 지난 50∼60년대 코흘리개 아이들을 꿈과 상상의 세계로 이끌며 당대를 풍미했던 국내 희귀 만화가 CD롬으로 나왔다.2장으로 제작된 CD롬에는 ‘아기포졸’(김원빈) ‘고바우영감’(김성환) ‘감초선생’(박기당) ‘싸워라 지구함대’(신동우) ‘원자탄 코코’(오명천)등 34편의 만화가 수록돼있다.56년 8월 창간된 본격 성인만화잡지 ‘만화춘추’도 들어있다.영인본으로도 제작된 이 잡지는 당시 유명한 신문만화가인 김성환,정운경,김기율 등이 그린시사성 강한 작품이 담겨있어 당시의 세태와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희귀만화모음집 CD롬은 만화문화의 기초를 다지고 올바른 만화문화를 정립하고자 지난 5월 부천시에 둥지를 튼 부천만화정보센터(소장 조관제)의 첫사업이다.보존과 열람이 쉽지 않은 옛날 만화를 자료로 묶어 만화전문인들의연구와 창작활동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아울러 일반인도 쉽게전통 만화를 접하게 함으로써 우리 만화에 애정과 긍지를 갖게 하자는 뜻도갖고 있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작품들만을 모으느라 ‘발품을 꽤 팔았다’고 한다. 부천만화정보센터는 앞으로 희귀본 만화를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작업을 계속 하는 한편 만화연감,연구논문집 등을 차근차근 내놓을 계획이다.이번 CD롬은 소량 제작한 탓에 꼭 필요한 이들에게만 1만원에 판매한다.(032)320-3745이순녀기자
  • [공무원 스터디그룹]’통계 연구’ 논문집도 발간

    “내 일은 내가 최고!” 보수삭감에다 격무 속에서도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각종 공무원 연구모임 소속 공무원들이 주인공들이다. 정부는 최근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 연구 모임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이 모임들은 21세기 지식·정보통신 혁명의 시대에 국가 경쟁력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공무원들 연구모임은 대략 60여개가 파악돼 있다.이 가운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구모임을 차례로 소개한다. “기존 통계를 이용하는 2차 가공(加工)통계를 개발하는 데 더욱 정진할 생각입니다.” 통계청의 통계전문가들이 만든 ‘한국통계연구회’회장 윤형백(尹亨佰)사회통계과장의 다짐이다. 이 연구회는 지난 96년 6월 만들어졌다.유럽연합(EU)통계처에서 3년간 근무하다 귀국한 이동명(李東明)기획과장이 선진국의 통계경험을 전파하고 연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청내 여러 동호인 모임 가운데 유일한 학술 연구모임으로 회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회원은 서기관 14명,사무관 17명,주사 11명 등 4급 이하 실무 공무원들로이뤄졌다.이 가운데 박사 회원이 10명이나 된다.간부회원은 없다.고위간부들이 끼면 자유로운 토론이 어렵기 때문이다.모임은 인구 총조사의 방법과 평가 등 통계청에서 처리하는 통계업무에 대한 자체적인 평가와 개선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창립 이후 지금까지 30차례나 세미나를 열었다.내실 있는 토론을 위해 회원들이 발표자의 발표 요약문을 미리 읽는 것은 기본이다.세미나는 발표자의발표가 끝나면 해당 업무를 다룬 적이 있는 2∼3명의 토론자가 발표내용을평가하고 참석한 회원들이 종합토론에 가세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토론열기는 여느 학술대회 못지 않다.연구회 이름으로 된 ‘통계연구’라는 논문집도 발간했다. 세미나 운영은 다달이 내는 회비 5,000∼1만원으로 충당한다.그러나 세미나 발표 뒤 이어지는 회식비는 아무래도 서기관들이 찬조출연을 해야 한다고이과장이 귀띔한다. 농촌과 도시의 인구이동이 어떤 양태를 띠는지에 대해 발표한 산업통계과의 김경태(金京泰)계장은 “직원들과의 토론을 통해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되고 다른 부서의 이해도 구할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하다”고평가했다. 이 모임은 올해 안으로 정치·경제·사회·인구·표본·데이터처리 등 전문분야별로 연구반을 편성할 예정이다.분야별로 구미 선진국의 조사개념과 조사기법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활동을 펴 현행 통계작성 절차 개선에 도움이되겠다는 것이다. 박현갑기자
  • 조봉암 탄생 100돌 사상·업적 책으로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공산주의운동가로,해방후에는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올해는 바로 그가 탄생한지 100돌이 되는 해이자 이승만 정권하에서 ‘간첩죄’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40년이 되는 해다.이념의 혼돈 속에서 시작된 20세기가 막을 내리는 가운데 이념과 권력의 희생자였던 그의 사상·업적·일생을집대성한 ‘죽산 조봉암전집’이 7월초 세명서관에서 발간된다. 지난 3월 그의 40주기를 맞아 개최된 학술토론회에 이어 그의 명예회복·재평가와 관련한 두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후 40년만에 출간되는 ‘죽산 조봉암전집’은 전6권으로 구성돼 있다.‘전집’에는 국내외에서 입수한 문헌·신문자료와 그동안의 연구성과,그리고 진보당 관계자들의 회고담 등 죽산과 진보당 관련 자료가 망라돼 있다. 제1권은 죽산의 개인문집으로 생전에 죽산이 직접 쓴 글 모음집이며,제2·3권은 일제시대∼미군정기 죽산의 항일·공산주의 운동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우합작운동 관련자료들(당시 신문자료와 미국서 발굴·입수한 미군정 정보보고서 등)을 포함하고 있다.제4권은 죽산이 ‘진보정치’의 슬로건을 내걸고56년 혁신계를 규합,창당한 진보당 관련자료의 집대성이다.4권에는 특히 1956년 11월10일 진보당 창당식 행사의 녹취록을 풀어서 실었는데 전문공개는이번이 처음이다. 제5권은 ‘진보당사건’ 관련자료만 따로 모은 것이며 마지막 제6권은 생존하고 있는 진보당 관계자들의 회고와 학계의 죽산에 대한 평가·재조명 등연구성과를 모은 것이다. 이번 ‘전집’은 진보당 당원출신 한 인사와 한 소장학자와의 ‘아름다운만남’이 싹을 틔운 결과다.편집위원장 정태영(鄭太榮·68·건국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씨는 당시 동양통신 기자 신분으로 진보당에 입당,활동한것이 문제가 돼 58년 ‘진보당사건’ 재판 때 피고석에 섰던 인물이며 편집간사 오유석(吳有錫·36·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 연구원)씨는 현대사 전공 소장학자다.오씨가 진보당사건 관련 논문을 쓰면서 정씨를 인터뷰한 것이인연이 돼 두 사람은 ‘전집’을 출간키로뜻을 모았다. 당시 진보당원으로 활동한 주인공이자 이미 ‘조봉암과 진보당’을 출간한바 있는 정씨는 증언과 자료수집을 맡고,전문연구자인 오씨는 편집과 해설등 편찬실무를 맡았다.출간경비는 외부지원 없이 전적으로 정씨가 사재를 털어 부담했다.편집진은 국내외의 죽산 관련 자료를 뒤진지 1년만에 7월초 ‘옥동자’ 출산을 앞두고 있다.정씨는 “죽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항상 주도적으로 활동해온 인물이었으나 그동안 관련학계의 연구가 부족했다”며 “‘전집’출간을 계기로 죽산 선생의 명예회복과 인물연구에 자극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7월 3일 출판기념회를 겸해 죽산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학술발표회도 가질 예정이다.12만원(전6권),(02)702-3862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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