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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5) 대구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5) 대구길

    청도 옛길은 팔조령을 넘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으로 들어선다. 가창은 지난 1995년 경북도에서 대구시로 편입된 곳이다. 편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시골풍경이 완연하다. 날씨마저 흐려 퇴비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지방도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고 곳곳에 러브호텔이 들어서 개발의 손길이 턱밑까지 왔다는 느낌이다. 팔조령 아래 녹문삼거리는 새로운 도로가 개설돼 녹동서원과 남지장사를 찾는 사람만 지나가는 한적한 곳으로 전락했다. 녹문삼거리에서 2㎞쯤 가면 벌판 한가운데 위치한 데서 유래됐다는 ‘들마마을’이 나온다. ●얼음같이 찬 ‘냉천´ 하루 5000명 발길 오동원을 거쳐 30번 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처음으로 큰 건물을 만난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장외경마장이다. 여기서부터 위락시설과 음식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중 가장 우뚝한 봉우리인 최정산 자락에 허브힐즈(구 냉천자연랜드)가 자리잡고 있다. 가창면 냉천2리 정동곡(50) 이장은 “냉천은 최정산 골짜기와 청도 팔조령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가창면 주리에서 만나면서 큰 계곡을 만들고, 이 물이 얼음같이 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소주회사가 냉천의 물로 소주를 만들 만큼 수질이 좋아 주말에는 하루 5000여명의 대구 시민들이 물을 받기 위해 몰려 든다. 옛길은 냉천에서 파동을 거쳐 신천을 넘어 대구 시내로 들어간다. 파동은 수성못 입구에서 가창까지 난 길이 곧다고 해서 ‘니리미, 파잠, 파집’ 등으로 불렸다. 파동에서 상동교를 거쳐 대봉네거리, 봉산육거리로 이어진다. 이 길은 비교적 곧게 연결돼 있다. 대봉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건들바위가 나온다.4m 높이의 건들바위는 대구시 기념물 2호로 지정돼 있다.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바위의 모양이 삿갓을 쓴 노인과 같다고 해서 ‘입암바위’ 즉 ‘삿갓바위’라고도 불리고 있다. 원래 이 바위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1776년(조선 정조1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면서 물줄기가 신천으로 돌려져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대구시가 1994년 건들바위 종합조경공사를 실시하여 분수와 폭포를 새로 설치하고 물이 흐르도록 하여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건들바위 뒷산은 조선 순조 때부터 정오를 알리는 대포가 설치돼 오포산으로 불렸다. ●약령시 주변 전국서 사람 모여들어 봉산육거리에서 성밖 골목을 지난 옛길은 서문시장과 원대동으로 이어진다. 성밖 골목은 계산동과 대구읍성 남쪽 성곽사이에 난 길이다. 대구시 거리문화시민연대 권상구(32)국장은 “성밖 골목은 전정리라고 불렸으며 우리말로 풀이하면 앞밭골, 앞밖걸”이라고 말했다. ‘대구 천주교사’에는 ‘앞밖걸엔 천주교 신자였던 상인이 많았다. 이들중 중심인물은 최철학이란 사람이었으며 그는 1890년대부터 대구지방 보부상단의 도회장으로 활약했다.”고 적혀 있다. 권 국장은 “성밖 골목은 대구를 지나는 교통요지였으며 넓이는 크게 줄어들어 지금은 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전형적인 골목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곳은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이 만나는 길목이라 일찍부터 자유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성밖 골목에는 약령시의 보조기능을 하는 상점들과 업체들이 들어섰다. 권 국장은 “약령시 주위에는 유생과 한약종상은 물론 한약재를 수집하여 판매하는 중간상인과 객주, 거간 등과 관련되는 한의약업인이 모여들었다.”며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약을 팔고 사면서 여러 날을 이 일대에서 보내야 했고 자연스럽게 성밖 골목 주변은 객주집과 여각이 성업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큰 장으로 통했던 서문시장은 약령시와 함께 전국 상권을 주도했다. 대구문화육성추진협의회 손필헌(72) 위원은 “당시 서문시장은 현 섬유회관 맞은편인 오토바이 골목 일대에 있었다.”며 “성주, 고령, 의성, 김천 등 대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도 2일과 7일 장날에 장꾼들이 모여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서문시장 자리에는 천황지라는 못이 있었으며 1923년 이를 메워 옮겼다.”고 곁들였다. ●관문동 ‘밤숲´ 수백가마 알밤 따기도 서문시장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달성지구대와 자갈마당을 지난다. 달성지구대 건너편에는 달성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달성공원은 대구시민의 오랜 휴식처다. 손 위원은 “고려 중엽 이후 달성 서씨가 대대로 살던 사유지였으나 조선 세종 때 국가에 헌납했다.”면서 “1905년 공원으로 조성됐으며 1967년 5월 대구시가 현재의 대공원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집창촌인 자갈마당은 행정명으로 중구 도원동이다. 낮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상가지역과 다름없이 보였다. 도원동은 복숭아 나무가 많아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있다. 한때 700명이 넘는 윤락녀들이 모여 호황을 누렸으나 윤락행위방지법 시행 뒤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단다.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 지하차도를 건넌 옛길은 달성초등학교를 거쳐 원대오거리로 향한다. 지명에 ‘원’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구 북부의 관문인 원이 위치했던 데서 유래했지만 그 자리는 찾을 길이 없었다. 금호강을 건너면 또 한번 쉬어갈 곳이 나온다.‘밤숲’이다. 현재의 북구 관문동 동양자동차학원 부지 일대다. 이 일대는 밤나무가 무성해 가을걷이 때는 수백가마의 알밤을 땄다고 전해진다. 대구의 강북으로 불리는 이곳도 최근 아파트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는 등 급성장했다. 러시아워 때는 차량이 밀려 팔달교를 통과하는 데 상당한 곤욕을 치러야 한다. 금호강을 건넌 옛길은 현 금호인터체인지에 못미쳐 난 경부고속도로 지하 굴다리를 통과해 경북 칠곡군으로 넘어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조선에 투항한 日장수 모셔져 있는 ‘녹동서원’ 일본 관광객이 대구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녹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시대 김충선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이다. 일본 이름은 사야가. 그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회의를 품고 전투를 포기한 채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김 장군은 임진왜란 동안 화포 및 조총 만드는 법과 사용기술을 조선군에게 전수했다. 또 왜적이 점령한 18개 지역의 성을 탈환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선조에게 간청해 정이품인 정헌대부에 올랐으며, 선조가 그에게 ‘사성 김씨‘라는 성을 하사했다. 그는 1600년부터 우록리에 둥지를 틀었다. 녹동서원은 1789년(정조 13년)에 창건됐으며 김 장군의 후손과 인근 유림들이 봄·가을로 제향하면서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서원 주변에는 녹동사와 숭의당, 향양문, 장군의 이력과 공을 새긴 유적비, 장군의 묘소 등이 있다. 또 충절관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된 조총을 비롯해 모하당(김 장군의 호) 문집과 친필 등 유품, 유물이 두루 전시돼 있다. 연간 2만여명의 관광객이 이 서원을 찾고 있으며 이중 일본인이 5000여명에 이른다. 김 장군의 후손 중에는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지낸 김치열씨 등이 있다. 녹동서원에서 비슬산 쪽으로 1㎞쯤 가면 남지장사가 나온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684년(신라 신문왕 4년)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키고 병사들을 지휘한 곳이다. 사명대사는 3000명의 승병을 이곳에서 배출시켰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있다고 해서 남지장사가 되었다는 유래이다. 왜군에 의해 불탔다가 1940년 중수되었다. 현재는 대웅전과 설현당, 삼성각, 광명류 등이 자리해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사진·산문으로 엮은 뉴욕

    “6번가에 사는 존 케이지를 만나러 갈 때, 한국의 곱돌로 지은 쌀밥을 좋아한다고 해서 조그마한 한국 곱돌솥을 하나 선물했더니 기뻐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는 말년에 마르셀 뒤샹처럼 혼자서 체스를 두곤 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도 같이 체스를 두자고 했다.” 1980년대 음악가 존 케이지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사진작가 임영균(50·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는 그를 추억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그의 사진 산문집 ‘뉴욕스토리’(이룸 펴냄)에는 이처럼 뉴욕생활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 담겨 있다. 뉴욕은 그에게 진정한 작가의 삶을 가르쳐준 꿈의 도시. 그의 뉴욕 이야기는 1980년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홀트 아동복지재단의 입양아를 안고 미국으로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사진가로서 사실상 미국 사진계에 데뷔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1983년 소호의 백남준 스튜디오를 방문해 찍은 백남준의 인물 사진이다. 책에는 백남준을 비롯해 백남준과 누드 퍼포먼스를 벌인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 현대 음악계의 거장 존 케이지, 인물사진의 대가 알렉스 카이저, 피카소의 아내 재클린과 사진작가 만 레이의 부인 줄리엣, 사진작가 랠프 깁슨, 시인 김춘수 등과의 일화가 흑백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2만 3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색다른 작가들 3색 산문집

    원로 작가 최일남(74)과 중견 작가 김남일(49)·심상대(46)가 나란히 산문집을 냈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개성만큼 제각각 뚜렷한 빛깔과 향기를 지닌 3인3색의 산문집이다. 등단 50년을 넘긴 최일남은 예리한 성찰로 문학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되새긴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현대문학)를,1980년대 대표적인 노동문학 작가였던 김남일은 인생의 길목에서 마주쳤던 책과의 인연을 기록한 ‘책’(문학동네)을 냈다. 또 위트와 유머의 작가 심상대는 특유의 입담으로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전방위 공세를 펼친 세설(世說)‘탁족도 앞에서’(북인)를 내놨다. ‘어느 날 문득’은 언론인 출신의 최일남 작가가 ‘정직한 사람에게 꽃다발은 없어도’ 이후 13년 만에 발표한 산문집이다. 소설을 업으로 삼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푸근하고 해학적인 문체로 펼쳐진다. 일례로 표제작은 한평생 글을 써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손에 대한 자부심과 감회를 담고 있다.“가운뎃손가락의 돌출은 내가 살아낸 역사의 징표이자 응고”라는 문장에는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담겨 있고,“머리가 제시한 단어를 어김없이 따라 쓰다가도,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다.”는 대목에선 창작의 고통이 은연중 드러난다. ‘우리 말의 폭과 깊이’‘부실했던 모국어 공사’등 우리말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여러 편이다.“그때그때 정황에 따라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말 임자를 만나야 제값”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외래어 틈입과 남북분단이 가져온 말의 이질화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잊지 않는다. 김남일은 1983년 단편 ‘배리’로 등단한 이래 장·단편소설, 청소년소설,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온 다작가(多作家)다. 시대의 억압에 맞선 노동자와 농민의 현실을 그린 작품들로 전태일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책’은 “평생 딱 세 권의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작가의 첫번째 산문집이다. 군더더기 없는 제목처럼 한 소설가의 책과 함께 한 인생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다.1부는 책에 대한 사랑을 넘어 책 자체가 인생이 된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용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서점으로 달려갔던 소년은 청계천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조세희의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실린 잡지를 사 모으는 청년으로 성장했고, 몇 번이나 이사를 다니면서도 7년치 종이신문을 버리지 못하는 어른이 됐다.2부 ‘내 마음의 불온서적’은 무크지 ‘실천문학’과 김지하의 ‘황토’, 신경림의 ‘농무’ 등 젊은 시절 접했던 수많은 불온서적에 관한 이야기로 작가의 문학적 뿌리를 짐작케 한다. ‘탁족도 앞에서’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한 예술가의 거침없는 시각이 돋보이는 산문집이다.‘묵호를 아는가’‘명옥헌’ 등의 창작집과 연작소설 ‘떨림’을 냈던 심상대는 지난 15년간 각종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정치, 경제, 사회, 연예에 관한 시사 비평적인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산문집에는 ‘미당을 위한 눈물’‘반구대 암각화는 보존돼야 한다’ 등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예술문학인의 생각, 사라지는 문화유적의 보존에 관한 의견이 담겨있다. 그런가 하면 탤런트 정혜선·원미경·전도연, 마라토너 이봉주,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던 이을용·설기현 등 대중문화와 연예계에 대한 관심도 공존한다. 작가는 “나는 참정권을 포기하겠다.”는 말로 불신의 골이 깊어진 현실정치와 정치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안거’ 스님도 사람일세

    ‘안거’ 스님도 사람일세

    스님들의 여름, 겨울철 집단 수행인 안거(安居) 기간에 수행처 선방은 일반인은 물론, 스님들까지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금기의 영역이다. 득도를 위한 치열한 현장이지만 이곳 또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기에 생활의 단면들이 새록새록 스며 있다. 현성(40) 스님이 지난 2002년 전남 장성군 백양사의 산내 선방인 운문암에서 3개월간 안거를 지내면서 기록한 일상들을 세상에 알린 산문집 ‘동안거’(민족사 펴냄)는 그래서 독특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선방이란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면서 한국불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을 과감하게 풀어놓았다. 현성 스님은 충북 괴산 공림사로 출가해 1998년 계간 ‘포스트모던’에 소설 ‘미인암(美人巖)’으로 등단한 재주꾼 수좌. 일찌감치 소설에 뜻을 두었지만 출가 스님인 탓에 다른 세상을 살면서 문재를 인정받은 인물로, 이번 글은 민족사의 제1회 출판원고 공모 당선작이다. 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선방의 자잘한 일상을 감칠맛나게 풀어낸 글솜씨가 돋보인다. 안거를 나려는 선방에 등록하는 방부 들이기부터 스님들이 모두 모여 안거기간 동안 각자 할 일들을 정하는 소임 맡기(용상방),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참선과 운력, 해제까지 안거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선방에서 일어나는 스님들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는 점.‘안거 초보자’의 입장에서 가감 없이 전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스님은 “출세간(出世間)에 나타나는 세간(世間)의 모습들”이라고 말한다. 참선에 든 스님들에겐 독이나 마찬가지인 냄새 나는 파스나 화장품을 쓰는 스님들을 보는 시선이 스님답지 않게 솔직하다. 중생구제의 원을 세운 스님들이지만 역시 사람이기에 원초적인 욕심은 속인들과 다름이 없다. 참선에 들기 전 몰래 라면을 끓여 먹은 스님들이며 선방에서 방귀를 뀌는 스님들에 대한 단상이 흥미롭다. 참선에 들어서도 ‘원자폭탄급’ 방귀를 대수롭지 않게 뀌는 스님에서부터 면도칼로 삭발하던 중 피를 본 일, 불륜인 듯한 남녀가 암자로 승용차를 몰고 들어선 것을 보고 당황했던 일들이 흥미롭게 풀어진다. 현성 스님은 “안거를 두번밖에 지내지 못한 초보 수행자의 입장에서 스님들의 엄숙한 영역인 선원과 수행자들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거꾸로 솔직한 모습을 알리는 게 한국불교와 수행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9500원.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나폴레옹의 시대(앨리스테어 혼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세계지배를 꿈꾸며 유럽제국과 60회나 되는 전쟁을 벌인 나폴레옹. 그에 관한 책은 60만 권이 넘는다. 이 책에선 ‘문화지도자’로서의 나폴레옹에 초점을 맞춘다. 나폴레옹은 아들 로마왕을 위해 샤이오 궁을 세우고 외국과의 전투에서 약탈한 보물로 루브르 박물관을 장식했으며, 리볼리가라는 새로운 거리를 만들었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리의 운하를 건설했고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전을 경축하기 위해 개선문(루이 필립 시대에 완공)을 세웠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통치 25년간을 세련되고 화려한 필치로 정리.8000원.●중세산책(만프레트 라이츠 지음, 이현정 옮김, 플래닛미디어 펴냄) 서양의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중세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다채로움으로 가득한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도기에 나타나는 수많은 모순들로 점철된 중세시대의 일상사를 다룬다. 중세인의 일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중세시대의 상징물 성을 중심으로 살폈다.1만 9800원.●성서의 풍속(허영엽 지음, 이유 펴냄) 그리스도교와 물고기는 어떤 관계일까. 초대교회 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로마제국에서 박해를 받아 지하 공동묘지에 숨어 지냈다. 이때 자기 신분을 다른 신자에게 알리는 일종의 암호가 바로 물고기 표시였다.‘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뜻의 그리스어 앞글자를 따서 순서대로 모으면 ‘익투스’가 되는데, 이는 물고기라는 뜻의 그리스어와 일치한다. 저자(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는 성서 속 역사, 지리, 풍습, 생활습관 등을 풍부한 예화를 곁들어 들려준다.1만원.●茶人기행(정찬주 지음, 열림원 펴냄) 사림파의 종조(宗祖) 김종직은 백성을 위해 차밭을 조성했다. 함양군수 시절 나라에서 거두는 다세(茶稅)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관영 차밭을 일군 것. 그에게 차밭은 목민관으로서 애민(愛民)을 실천하고자 하는 도학정신의 구현이었던 셈이다. 윤선도, 보조국사, 원효대사, 최치원, 사명대사, 경봉선사, 이색, 이규보, 이광수, 이이, 허균 등 우리 역사 속 다인 50명의 이야기를 다룬 산문집.1만 3000원.●오늘 우리는 왜 니체를 읽는가(정동호 등 지음, 책세상 펴냄)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백 년만 기다려보자.” 철학자 니체가 잠언처럼 던진 말이다. 니체의 매혹적인 잠언과 비극적 최후는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를 숭배하게 했지만,‘힘에의 의지’라는 그의 철학적 개념은 파시즘에 이용돼 ‘괴물을 낳은 철학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국내 니체 연구자들이 모여 니체의 삶과 사상, 유고 논쟁,1920년대 한국에 처음 소개된 니체 철학의 현재적 의미 등을 살폈다.2만 5000원.●지구를 치료하는 법(데니스 메도즈 등 지음, 북스토리 펴냄) 1950년대 보르네오섬에 말라리아가 유행하자 세계보건기구에서는 DDT를 뿌렸다. 그러자 모기는 죽고 말라리아는 사라졌지만 그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민가의 지붕이 너덜너덜해지고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불면증에 걸리고 뱀들이 죽어갔다. 또 일본에서는 매립지가 부족해지자 소각로를 만들었다가 심각한 다이옥신 대책을 새워야 했다. 이렇듯 지구상의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 때문에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시스템 사고가 중요하다. 환경고전 ‘성장의 한계’ 해설서.1만원.
  • [Book&Life] 추천사의 진실과 거짓

    “…이 책을 보면 낭만과 사랑이 있으며, 어떤 고급류의 예술과 문학이 몽환적 이미지로 오버랩되어 유장(悠長)의 강으로 흐를 것이다.” 구인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작가 김우영의 ‘술의 나라’(문경출판사)라는 산문집에 붙인 추천사의 한 대목이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한바탕 흥겨운 풍류장(風流場)이요 낭만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만한 높이와 깊이를 지녔는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글쓰기의 양심 문제다. “어떤 고급류의 예술과 문학이 몽환적 이미지로 오버랩되어…” 운운 하는 추천글의 한 토막은 저자의 서문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로 교수이자 그 자신 작가이기도 한 추천자가 서문의 글을 그대로 베꼈단 말인가. 단 몇 줄의 글을 쓰는 데 절반이 남의 글이라니…. 표절의 유혹이란 얼마나 검질기고 파괴적인 것인가. 책에 붙인 추천사가 독자의 향도(嚮道) 구실을 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추천의 글이 어떤 목적성에 함몰돼 엉뚱한 말만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독,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독이다. 추천자로 흔히 등장하는 유명 작가나 연예인, 정치인 등의 이름 값이 있기에 그 폐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무작정 ‘명품’만 끌어다 쓰다가 ‘짝퉁’ 사고를 낳곤 하는 게 우리 천박한 추천사 풍토의 한 단면이다. 출판계에서 명사마케팅 혹은 스타마케팅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자기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한국경제신문)의 대박 요인 또한 스타마케팅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책은 정지영이라는 인기 아나운서를 번역자로 내세웠다. 책은 거창하게도 그를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지적인 방송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번역자가 광고모델로 나서고 사인회까지 하는 등 총력전을 폈다. 역자가 사인회를 갖는 건 이례적인 일. 책을 팔기 위한 그런 노력들이 바로 베스트셀러로 이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한 무리의 인기인이 추천사에 일제히 가세하기도 한다.‘여자생활백서’(해냄)라는 책에는 젊은 여성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배우 이준기·현빈·정려원, 가수 성시경, 사진가 조세현,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등 6명의 추천사가 달렸다.‘명심보감’보다 더 큰 지혜를 전해준다는 ‘양심보감’(새론북스)이라는 책에도 방송인 이금희, DJ 배철수·강석·김혜영 등 4명이 추천 글을 남겼다.“…이렇게 좋은 가이드를 만났으니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제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등. 추천사를 쓰는 건 물론 쓰는 이의 자유다. 출판사들도 할 말이 있다. 책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속 보일 때도 있지만 유명인들의 추천사를 싣는다는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나. 부적절한 추천의 글을 남발하는 것은 진정한 독서에 마(魔)가 끼게 만드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상업성에 휘둘리지 않는, 날렵하게 핵심을 파고드는 촌철살인의 추천사를 언제쯤이나 만나볼 수 있을까.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女談餘談]고독의 영토를 위하여/황수정 문화부 기자

    지난 주말, 적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를 탔다. 밀쳐뒀던 번다한 생각의 잔가지들을 말끔히 한번 잘라내 보리라, 며칠을 별렀던 두시간이었다. 욕심이 과하단 걸 알면서도 시집이며 산문집이며 책도 두 권이나 챙겼다. 하지만 기차에서의 계획은 시쳇말로 ‘꽝’이 됐다. 옆자리 대학생들의 수다로 일관한 휴대전화 소음이 서울에서 대전이 가깝도록 이어졌다. 언제부턴가 출퇴근길 광화문 대로의 횡단보도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사물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남녀노소 없이 신종병기처럼 불끈 거머쥔 휴대전화들. 분초를 다툴 일이 저리들 많을까, 우울하고 민망한 살풍경같아 내 손의 병기를 가방 속으로 슬며시 밀어넣곤 한다. 휴대전화의 첨단능력이 나날이 찬미의 대상이 되는 판에 이 무슨 뒷북 감상이냐고 핀잔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고독해지려야 고독해질 여지가 없는, 침묵을 저당잡힌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안쓰럽다. 자기와의 내면대화에 갈수록 서툴러지고 있는 책임을, 단발성 전방위 소통창구인 첨단문명들에 돌려버린다면 그건 억지일까. 최근 한 광고기획사의 면접조사 결과가 흥미로운 뉴스였다. 요즘 중·고생들은 회초리보다 휴대전화 뺏기는 걸 더 두려워한다는 조사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몇달전 중학생 조카에게서 들은 우스갯소리가 현실이었던 셈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건 ‘악플’(악의적 댓글), 악플보다 더 무서운 건 ‘무플’(인터넷에 올린 글에 답글이 없는 것), 무플보다 더 무서운 건 휴대전화 없는 세상? 밖으로의 소통에만 목마른 삶을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바로 그 얘기이다. 실다운 논쟁이 없는 것도, 그릇 큰 논객이 사라진 것도 모두 고독과 침묵을 거세해버린 문명 탓은 아닐까. 어느 시인의 말대로 고독한 이들의 영토가 시(詩)라면, 문학이 시들고 있는 현실 또한 그 때문은 아닐까. 혐연권만큼이나 ‘혐통권’도 똑같이 존중돼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휴대전화 금통(통화금지)구역은 언제쯤이나 생길까. 사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독의 영토를 돌려줄 시간이다. 황수정 문화부 기자 sjh@seoul.co.kr
  • [문학단신] 전경린 산문집 ‘붉은 리본’ 출간

    소설가 전경린이 등단 10년을 맞아 산문집 ‘붉은 리본’(웅진지식하우스)을 냈다.문학상 수상작인 ‘염소를 모는 여자’‘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등의 집필 배경을 비롯해 지난 10년간의 글쓰기 과정, 문학적 단상 등을 실었다.서른넷에 뒤늦게 등단한 저자는 “내게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면 쓰려고 하는 열망과 삶과 꿈을 일치시키는 결의였을 것”(248쪽)이라고 밝힌다.9800원.
  • “어머니의 희생·미덕·향수 못잊어”

    “어머니의 희생·미덕·향수 못잊어”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인 소설가 문순태(65)가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소설집 ‘울타리’와 산문집 ‘꿈’(이룸)을 동시에 펴냈다. 소설집은 2002년 ‘된장’이후 아홉 번째이며, 산문집은 세 번째다.‘타오르는 강’‘그들의 새벽’‘느티나무’등을 통해 분단과 5·18이라는 격동의 현대사에 천착했던 작가는 이제 역사인식의 틀에서 비켜나 자신의 문학적 뿌리인 어머니의 존재를 깊이 응시한다. ●어머니는 언제나 가족 감싸는 울타리 “올해 아흔셋의 노모는 도시 생활을 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농사 걱정을 하십니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가부장제 아래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셨던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 가족을 든든히 감싸는 울타리였지요. 점점 잊혀져가는 농경사회 어머니 세대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의 미덕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수록작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에는 어머니의 냄새를 못 견뎌하는 아내가 나오는데 작가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빌려 어머니의 냄새를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갈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고 표현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2004년 이상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은행나무 아래서’‘느티나무와 어머니’등이 삶의 가치를 어머니와 관련지어 쓴 글들이라면 ‘울타리’는 작가가 요즘 화두로 삼고 있는 ‘경계인’에 관한 소설이다. 젊은 시절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두 친구가 오랜 세월이 흘러 한명은 탈북자로, 한명은 비전향 장기수로 재회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렸다.“‘된장’이후 역사에서 비켜서려 했는데 쓰다보면 결국 역사의 자리에 와있더라.”는 그는 “그게 작가로서 내 운명인 것 같다.”며 웃었다. 산문집 ‘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을 체험한 세대로서의 성찰, 그리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는 시각을 담았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쏟아지는 인파를 보며 시골길의 한적한 버스정류장을 떠올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보며 시골 우물가를 떠올리는 작가의 글은 광속의 시대 아날로그의 미덕을 돌아보게 한다. ●교단 퇴직후 고향서 창작활동할 것 “홀가분하다”는 말로 15년 교단 생활을 마감하는 소회를 전한 작가는 퇴직 후 고향인 담양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에 몰두할 것이라고 했다. 무등산 깊은 골짜기에 집필실 겸 창작교실을 지어 지역 문인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문학 사랑방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은 20년째 미뤄온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의 완간. 작가는 “7권까지 써놓고 시간이 없어 손대지 못했던 것인데 앞으로 3권을 더 써서 10권으로 완간하겠다.”고 말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박물관·미술관 건설 줄잇는다

    최근 경기도내에 수준높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잇따라 착공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18일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앞에서 실학박물관 기공식을 개최했다. 실학박물관은 내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180억원이 투입되며, 대지면적 1232평에 지하 1층, 지상 1층 등 연면적 906평 규모로 건립된다. 문화재단은 박물관 전시를 위해 혜강 최한기의 문집 초고인 잡고(雜藁) 등 그의 작품 195점을 확보했고, 연암 박지원 작품 중 열하일기(熱河日記) 등 78점, 일본 난학 관련 유물 4점을 구입 또는 기증받았다. 이날 기공식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발명해 수원 화성을 쌓는 데 쓴 3m 높이의 거중기가 등장했으며 실제 작업에 동원된다. 도는 이에 앞서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을 기리고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백남준미술관’을 지난 9일 착공했다.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미술관 건립부지에 들어서는 백남준미술관은 289억원을 들여 1만평 부지에 지상 2층, 연면적 1695평 규모로 건립된다. 상설 및 기획전시실, 자료실, 창작공간, 교육실, 수장고, 연구실, 편의시설 등을 갖춘다. 도는 또 백남준미술관 옆에 2008년 5월 문을 열 어린이 박물관을 오는 8월 착공할 계획이다. 어린이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9877㎡규모로 어린이들에게 역사와 유물 등을 직접 보고 만지고 만들면서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된다. 특히 백남준미술관, 어린이미술관이 들어서는 용인 기흥의 경우 기존 도립박물관, 한국민속촌 등과 더불어 새로운 역사문화관광단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광식 도 문화관광국장은 “실학박물관, 백남준미술관, 어린이박물관 등 수준높은 문화시설이 경기도에 잇따라 들어서 주민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소박한 음식에 담긴 사람·세상이야기

    감칠맛나는 입담을 자랑하는 소설가 성석제(46)가 음식 이야기에 사람사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산문집 ‘소풍’(창비)을 냈다. 음식에 관한 책까지 낼 정도면 꽤나 미식가일 듯 싶은데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친다.“미식가들은 주관이 분명한데 나는 변덕이 잦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어느 정도 지나면 물리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책에 거론된 음식들은 부대찌개, 육개장, 김밥, 순두부, 자장면 등 대부분 흔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음식 자체는 별다를 것 없을지 몰라도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별하다.이를테면 새벽 네시 을지로 나이트클럽앞 손수레에서 먹었던 순두부의 맵고 아린 맛과 미국 보스턴에서 재료가 없어 김과 밥으로만 쌌던 소박한 김밥에 얽힌 사연,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먹어본 자장면의 아련한 추억 등은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별미중의 별미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눈·귀·코·혀·몸·뜻의 감각 총체 예술’이라는 그가 음식을 매개로 우리네 인생사의 다양한 면모를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내는 솜씨는 절로 입맛을 돋운다. 반면 유명세만 믿고 손님을 홀대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조미료를 남용하는 상술, 입맛을 평균화시키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는 겨자처럼 혀끝을 톡 쏜다. 책에 실린 글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과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가 섞여있다.“허구와 과장이 있어야 읽는 사람도 맛이 날 것 아니냐.”는 작가는 “그러다 보니 산문치고는 ‘불순한’산문이 돼버렸다.”며 웃었다. 새로운 음식에 한번 맛을 들이면 물릴 때까지 계속 먹어서 끝장을 보는 스타일인 그가 유독 지치지 않고 즐겨먹는 음식은 냉면, 막국수 등 면 종류다. 대부분의 면 요리는 손수 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다.‘좋아하는 음식을 찾아서 맛을 본다는 건 소풍 같은 것’이라는 작가는 차, 커피, 와인 등 기호품에 관한 책도 펴낼 계획이다.98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주말화제] 수필문학상 받은 목경희씨

    [주말화제] 수필문학상 받은 목경희씨

    고향과 나를 갈라놓았던 높은 재보다 더 높은 고개 수십개를 넘고 또 넘었다. 그렇게 나이 80이 됐다. 남들은 몸 건강을 1순위로 여겨야 하는 나이라고 하지만 추억 그리고 역사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싶다. 수필가 목경희(80·여)씨의 바람이다. “어떤 느낌이 들 때면 순간 어디든 적어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글쓰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6·25가 끝난 뒤 편물 장사를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양장, 한복을 만들어 살림을 꾸렸다. 옷을 만들다가도 재단지 한 귀퉁이에 생각나는 것을 긁적이며 삶의 고단함을 달랬다. 목씨는 “고통을 글로 쓰면 객관화가 돼 마음이 편해졌다.”면서 “그러다 보니 물이 줄줄 새는 집에서도 빗방울 소리를 즐길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비교적 유복한 집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뒷모습만 보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목씨는 시앗을 보고 남편의 폭력에 한 맺힌 삶을 사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다. 공부 욕심이 많았지만 정신대에 끌려갈 위기에 처해 학업을 접고 억지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힘들었던 그 시절이 오롯이 하나의 추억이다. 최근에 펴낸 ‘그리움의 나라’에는 한이나 슬픔보다는 보드라운 담담함이 묻어난다. 목씨는 이 책으로 13일 한국수필문학가협회와 월간 수필문학이 주관하는 제16회 수필문학상을 받는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엔 삶이 버거웠다. 살림을 하는 것은 물론 병상에 있는 남편과 친정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생계를 꾸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살아왔다.“원래 인생은 홑으로 사는 게 아니라 겹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넘어졌을 때 다음을 구상하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제대로 펜을 잡은 것은 오십줄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첫 수필집을 1987년 회갑 기념으로 냈다. 본격적으로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모녀산문집 ‘분홍옷 갈아 입고 꽃길을 가네’가 큰 반향을 얻으면서다. 교사였던 맏딸은 사위와 함께 일본 문부성의 지원을 받아 유학길에 올랐다. 힘든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딸에게 남은 것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닌 암이었다. 엄마의 간호를 받다 딸은 86년 세상을 떠났다. 사위로부터 딸의 사진부터 편지까지 모든 유품을 넘겨 받고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래서 무려 5년이 걸려 딸의 간병기를 써냈다. “딸의 생명으로 만들 글이죠.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지금껏 제가 펜을 놓지 않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80세 수필가는 마음이 급하다. 예전에 냈던 책들을 다시 펴내 수익금으로 굶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 오래 살아온 만큼 나보다는 시대를 써서 남기고 싶다. 동시에 마음이 느긋하다. 그는 “이제는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죽음을 준비해야할 시기”라면서 “몸의 건강보다는 정신의 건강을 돌보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儒林 (60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8)

    儒林 (60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8)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38) 조선왕조의 역사를 통틀어 율곡이 23세 때에 쓴 ‘천도책’의 내용은 최고의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천도책’의 내용은 명나라의 조정 사이에서도 널리 회자되어 많은 중국의 선비들이 율곡을 ‘해동의 주자’라고 일컬을 정도였다.‘천도책’의 내용이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어져 있음인가는 출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양응정의 문집인 ‘송천유집(松川遺集)’에도 ‘천도책’의 내용이 전재되어 있음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또한 이 ‘천도책’의 중요한 점은 율곡이 평생 동안 추구하였던 이기론이 23세의 젊은 나이 때 이미 정립되었으며, 이러한 철학관은 평생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음인 것이다. 평생 동안 성리학연구에 몰두하였던 율곡의 이기론은 ‘이(理)가 아니면 기(氣)는 근거할 데가 없고 기가 아니면 이는 의착할 데가 없다.(非理則氣無所根 非氣則理無所依著)’라고 36세 때 절친한 친구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장함으로써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이미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율곡의 독특한 이기론은 이미 ‘천도책’의 내용에 그 단서를 보이고 있다. 이는 퇴계가 주장하였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즉 ‘이(理)는 기(氣)의 주재(主宰)요, 기(氣)는 이(理)의 자료’로서 이와 기를 두 가지로 나누었던 사상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것이었다. 훗날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퇴계의 ‘이기이원론’은 마치 ‘말을 타고 출입하는 사람의 경우에 비유(人馬之喩)’할 수 있다. 퇴계는 사람이 말 위에 타고 있을 때, 사람은 이(理)이고, 말은 기(氣)이므로 사람과 말이 함께 타고 있지만 말을 부리는 것은 사람이므로 사람과 말은 분별(分別)되어야 하듯 이와 기는 마땅히 분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훗날 퇴계와 조선조사상 최대의 논전을 벌였던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과 같이 율곡은 ‘사람이 간다’하면 ‘말도 간다’하고,‘말이 간다’하면 ‘사람도 간다’는 것이므로 이와 기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원론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퇴계는 ‘이와 기는 서로 나누어 생겨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퇴계는 맹자가 말하였던 측은지심의 인(仁)과 수호지심의 의(義)와 공경지심의 (禮)와 시비지심의 지(智)의 사단(四端)은 성선설의 요인이 되는 것으로 이는 이(理), 즉 이성이 바라는 것이요, 기쁘고(喜), 화내고(怒), 슬퍼하고(哀), 즐겁고(樂), 사랑하고(愛), 미워하고(惡), 탐욕스러운 것(慾)과 같은 7가지 감정은 기(氣)가 발한 것으로 퇴계는 기(氣)라는 말 위에 이(理)의 사람이 올라탄 것으로 ‘칠정의 말’을 ‘사단의 이성을 가진 사람’이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공자처럼 군자에 이를 수 있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 “만나는게 내겐 상처… 詩로 치료했죠”

    “만나는게 내겐 상처… 詩로 치료했죠”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마는 누군가는 그 상처를 열 배, 백 배 더 아프게 감지한다.“나를 키운 건 팔할이 상처”라고 말하는 작가 공지영(43)도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는 지 모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사랑후에 오는 것들’등 두 권의 소설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으며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는 공지영이 가슴 깊숙이 묻어둔 상처의 흔적과 치유의 과정을 담은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황금나침반)를 냈다.10년 전 ‘상처없는 영혼’을 출간한 이후 두번째 산문집이다. 작가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상처라고 느꼈던 시절’‘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여러번 소리쳐야만 했던 날들’을 담담히 고백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처참하게 버림받았던 기억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일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14쪽) 고통과 상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그를 위로한 건 시였다. 글을 쓰지 못하고 칩거하던 긴 시간동안 힘들 때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시는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시인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던 작가의 문학적 토대다. 이번 산문집은 기형도의 ‘빈 집’, 김남주의 ‘철창에 기대어’, 자크 프레베르의 ‘이 사랑’등 39편의 주옥같은 시편들과 그 시들에서 비롯된 산문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 혹독한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친 작가의 내면은 한층 성숙하고, 단단해진 듯 보인다.“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43쪽)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城큼城큼 다가온 수원 화성

    城큼城큼 다가온 수원 화성

    선부(先父) 사도세자의 능제를 위해 화성(수원)으로 가던 정조대왕의 어가행렬이 야트막한 고개를 만나 잠시 멈춰섰다. 저멀리 사도세자의 능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오자 정조는 나지막이 탄식했다.“아버님께 가는 길이 왜 이리 더딘가(遲遲)?”그때부터 이름붙여진 것이 지지대(遲遲臺)고개. 오늘날 경기도 의왕시와 수원시의 경계가 되는 고개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효(孝)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곳이기도 하다. 참배를 마치고 환궁할 때도 정조는 이 고갯마루에 멈춰서서 오랫동안 선친의 묘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정조의 효심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수원시 화성 또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배어있는 곳. 화성을 세운 명분 중 하나가 바로 현륭원(사도세자의 묘)의 보호였기 때문이다. 화성을 기반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반대했던 노론세력을 누른 다음, 정치개혁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효의 달. 정조가 갔던 길을 따라 가족들과 함께 화성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역사유적을 둘러보며 효의 정신을 되새겨볼 수 있는 곳. 바로 수원의 화성이다. 글 사진 수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렇게 돌면 편해요 주차장이 마련된 화성행궁이나 동장대 지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화성행궁은 ‘대장금’등의 TV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져 일본과 중국 등의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무예24기 시범, 장용영 수위의식 등의 다양한 상설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화성행궁 뒤편은 팔달산. 얼마전 화재가 났던 서장대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화성 전경을 둘러본 다음 동장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무난하다. 성곽을 모두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 노약자와 함께라면 화성열차를 고려해 볼 만하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팔달산 강감찬 장군 동상앞에서 출발해 동장대가 있는 연무대까지 운행한다. 어른은 1500원, 어린이는 700원을 받는다. 매주 월요일과 우천시엔 운행하지 않는다. 문의는 (031)228-4422. ●문화해설사를 활용하자 : 70여명의 문화해설사들이 화성 각지역에 배치되어 있다. 모두 자원봉사자들. 예약을 하면 지역별 문화해설사들과 동행하며 화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의 수원 화성사업소 (031)228-3064. ●가는길 승용차:경부고속도로 신갈IC→동수원사거리→중동사거리→팔달문 로터리→종로사거리→화성행궁 영동고속도로 동수원IC→창룡문사거리→종로사거리→화성행궁 1번국도 동수원사거리→중동사거리→팔달문 로터리→화성행궁 ●시설물이용요금 화성: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수원시민은 무료. 화성행궁: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효원의 종 타종:1000원. 국궁체험:1회 5발 1000원. ■ 정조대왕 효심·정약용 실사구시·선조들의 낭만 # 화성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성은 5.7㎞에 이르는 성곽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성곽에 딸린 50여개 부속시설물은 물론 유·무형의 주변 문화유산을 통칭하는 개념이다.1793년 수원도호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면서 얻은 행정명칭을 이르기도 한다. 화성의 중심건물은 화성행궁. 편전인 봉수당을 비롯해 장락당, 낙남헌 등 570여칸에 달하는 조선시대 최대의 행궁이다. 화성행궁을 아우르는 성곽에는 장안문, 팔달문 등의 4대문과 군사조련장인 서장대 등 50여개의 부속시설물들이 갖춰져 있다. 화성내 모든 건물의 이름은 사서삼경중 시경(詩經)에서 따왔다. 우진각이나 팔작 등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붕양식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는 것도 볼거리. # 화성은 왜 만들었나? 화성축성 예산은 25만냥. 실제 투입금액은 87만냥. 당시 집 한 채가 15냥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화성축성에 투입됐다.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에 정조가 굳이 군사시설물인 성곽을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조의 승하 이후 보위에 오른 정조는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최대의 약점인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지 않고서는 자신이 원하는 개혁정치를 힘있게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조가 추구한 개혁은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노비제도의 완전한 혁파. 신분해방을 통해 평등사회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위에 오르기 전 수차례 죽을 위기를 겪을 만치 정조의 정치적 기반은 허약했다. 최대의 정적이었던 할머니 정순왕후, 그리고 노론 벽파 등과 대립각을 세우던 정조는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줄 정치적인 배후도시와 개혁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사도세자의 능이 있던 수원은 모든 면에서 가장 적합한 도시.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킨 정조는 초대 유수로 좌의정 채제공을 내려보낸다. 노론 몫의 영의정이 공석이었던 당시에 좌의정은 그야말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 화성에 대한 정조의 애착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화성이 건설되면 자신은 왕위를 이양하고 군통수권과 사법권, 인사권을 쥔 상왕(上王)으로 물러나 화성에 머무를 계획이었다. 즉 자신이 새로 조성한 신도시 화성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 축성과정은? 남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지금의 병점)으로 옮긴 정조는 1792년 다산 정약용에게 화성의 설계를 명령했다. 화성을 실용적인 성곽으로 축조하기 위해 젊은 실학자에게 설계를 맡긴 것. 1794년 10년내 완공을 목표로 시작된 공사는 2년9개월 만인 1796년 완공되었다. 거중기, 녹로 등 당시로선 혁신적인 축성장비들이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축성과정에서 사망자가 없었던 것도 특이한 점. 부상자는 의원에 누워있어도 임금의 50꽭?지급해 주기도 했다.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농땡이’치는 인부들이 있었다고 한다. 대충 일하고 돈만 챙겨가는 인부들이 늘자, 조정에서는 정해진 양을 모두 채운 인부들에 한해 돈을 지급하는 규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화성은 원래 원형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이사를 가야 하는 백성들의 고충을 고려한 정조의 뜻에 따라 현재의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조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공사중 예산이 부족해지자 화서문 앞에 주막을 차려놓고 인부들이 마시고 지불한 돈을 다시 공사비용으로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 정조는 어떤 인물? “성리학적 가치체계를 온몸으로 실천하려 했던 국왕”이란 것이 김준혁(39) 화성사업소 학예사의 주장이다. 김 학예사는 정조의 인간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 화성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화성지킴이’. 그의 말에 의하면 정조는 지극한 효심을 몸소 실천한 국왕이었다. 여색을 멀리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국왕 중 유일하게 문집을 남긴 정조의 ‘홍재전서’에 따르면 “나의 굄을 받은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 정비인 효의왕후와의 사이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후궁이었던 원빈 홍씨나 수빈 박씨 등은 모두 노론쪽 정치세력의 딸들이었다. 최초로 안경을 쓴 국왕이자 ‘골초’이기도 했다. 노론 등과의 대립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담배로 풀었다는 것. 술은 멀리했지만, 한번 마시면 폭음을 했다고 전해진다.‘불취무귀(不醉無歸)’. 같이 술을 마신 신하에게 대취하지 않았으면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단다. 또 음식이 남으면 싸서 신하들에게 줄 만큼 자상한 임금이기도 했다. ■ 수원까지 왔는데 여기도 둘러봐요 ●융·건릉 정조는 효심이 각별했던 임금. 왕위에 있는 동안 보여준 지극한 효심은 백성에게까지 추앙을 받았다. 비운에 숨져간 선친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긴 정조. 자신도 사후에 선친의 능옆에 묻혔다. 수원시 교외 약 8㎞쯤에 자리잡은 융건릉(隆健陵)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묻혀 있는 곳. 사도세자 장조와 혜경궁 홍씨를 모신 융릉(隆陵)과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를 모신 건릉(健陵)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융릉은 화산의 서남쪽, 건릉은 서북쪽 기슭에 들어 있어 모두 서향. 해질녘이면 더욱 그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융건릉 주변의 소나무숲과 상수리나무숲은 역사교육과 산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 숲속 오솔길을 다 돌아보는데 1시간정도 걸린다. 어른 1000원, 학생 500원. 문의 (031)222-0142. ●용주사 사도세자의 위패가 봉안된 원찰. 백성들의 모금으로 지어진 절이기도 하다. 융건릉에서 1.7㎞정도 떨어져 있다. 병자호란때 소실돼 폐허가 된 절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면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낙성식날 밤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꿔 용주사(龍珠寺)란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정조가 이 절을 중건할 때 하교했다는 10개항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새긴 탑비가 서있다. 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도가 그린 걸작. 최초로 서양기법인 원근법과 음영법이 도입된 명화다. 정조대왕이 심었다는 회양목은 수령이 200년이 넘는다. 천연기념물 제264호. 범종각의 동종도 역시 손꼽히는 걸작. 국보 제120호다. 문의 (031)234-0040,www.yongjoosa.or.kr ■ 김준혁 학예사가 추천하는 수원화성 절경 베스트3 1.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화성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화홍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문. 수문에 누각이 있는 유일한 시설물이기도 하다.“화홍문 누각에 앉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원천의 물줄기와 버드나무를 보면 정조시대 사람들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김 학예사의 감상이다. 선조들의 도시경관에 대한 고민이 한껏 나타나 있다는 것. 화홍문 수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장쾌한 물보라와 아름다운 주위환경은 예로부터 ‘화홍관창’이라 불릴 만큼 명승이었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좇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정자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누각. 서장대처럼 전투지휘소로 만든 건물이었지만 실제로는 쉼터로 많이 이용됐다. 정조는 이곳에서 자주 수원의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누각의 돌출된 부분에 정조의 어좌가 있었다고 한다. 방화수류정 앞의 용연은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해서 수원8경의 하나인 곳. 용연에는 여러개의 달이 뜬단다. 하늘에 뜬 달이 용연과 술잔에 비치고, 다시 그 달들이 연인의 눈동자에 뜬다는 것. 2.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화서문은 화성으로 들어오는 4대문중의 한곳.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문주변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두른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공심돈이란 성곽주변을 감시하고 유사시엔 적의 동향의 살피기 위해 만든 망루. 정조의 아이디어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물 중에서는 처음으로 화성에 선보였다. 특히 서북공심돈은 전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공심돈 외벽에 나있는 구멍들은 총과 대포를 쏘기 위해 만든 것. 3. 팔달산과 서장대 화성의 전경은 물론, 사통팔달의 수원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화성행궁에서 도보로 약 20분정도 걸린다. 정조가 장용영 군사들에게 야간 군사훈련을 시키던 서장대가 이곳에 있다. 얼마전 술주정꾼의 방화로 불에 타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 日유출 한반도 고서 5만여권 목록 집대성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서 5만여권의 목록이 한 일본인 학자의 일생에 걸친 작업 끝에 집대성됐다. 일본 조선서지학 연구의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 도야마 국립대 교수는 그 결실로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 중 첫 권인 ‘집부’(集部·개인문집)를 지난달말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고려말부터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네진 방대한 양의 고서를 확인, 일목요연하게 분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목록에는 고서의 저자와 판본, 각수(刻手·판목을 새긴 사람), 장서인, 종이질, 활자, 간행연도 등 서지학적인 정보가 망라돼 책의 성격과 내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후지모토 교수는 한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0년부터 궁내청 도서관과 동양문고, 국회도서관, 도쿄대, 교토대, 게이오대 도서관 등 일본 대형도서관은 물론 지방의 공·사립 도서관과 개인서고, 영국 대영박물관, 타이완 고궁박물관 등 100여곳의 도서관을 훑었다. 이번에 교토대 출판부에서 나온 첫 권인 ‘집부’(1350쪽)에는 3000여종 1만권 이상의 개인문집 목록이 수록됐다. 특히 조선전기 성리학자인 김종직의 문집인 ‘이장길집’(李長吉集) 1권 1책, 안평대군의 문집인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 6권 2책,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의 문집인 `사숙제집´(私淑齎集) 17권 4책,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의 문집인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 13권 13책 등 한국에는 없는 일본 유일본과 최고본, 선본(善本) 등 귀중한 문집이 다수 발굴돼 목록에 포함됐다. 후지모토 교수는 “이 작업이 조선학을 공부하는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taein@seoul.co.kr
  • [업계소식-서적] 법용스님 수필집 ‘21세기의 달마’

    [업계소식-서적] 법용스님 수필집 ‘21세기의 달마’

    도서출판 국부카르마는 법용스님이 13년 만행 기간에 겪었던 일화를 단상형식으로 엮은 수필산문집 ‘21세기의 달마´를 펴냈다. 달마대사의 수행담과 경전들을 알기 쉽게 풀어쓴 이 책은 수행자의 표상으로서 달마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5만 여장의 달마도를 불자들에게 그려준 지은이 법용스님은 앞으로 20만장의 달마도를 더 그리겠다는 의지와 함께 달마상을 건립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02) 583-9928.
  • [책꽂이]

    ●세계의 영웅전설 김재혁 옮김. 독일의 권위 있는 민담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요하네스 카르스텐젠이 지은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 유럽의 영웅 전설 이야기.‘롤랑의 전설’,‘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야기부터 아름다운 엘자 공주를 차지하려는 악당 델라문트에 맞서 싸우는 백조 기사 로엔그린의 활약상을 그린 ‘로엔그린’, 기사가 되려고 길을 나선 파르치팔의 모험을 담은 ‘파르치팔’ 등 환상적인 이야기 21편이 실렸다. 현대문학.344쪽.2만 5000원. ●청소년을 위한 택리지 이중환 글·김흥식 옮김. 전국 방방곡곡의 고을 인심과 풍속, 역사와 문학, 물자 등을 소개한 조선시대 대표적 인문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를 청소년들 눈높이에 맞게 엮었다. 불필요한 한자와 주석을 빼고 어려운 문장을 쉽게 다듬었으며 특히 각 지역의 옛 지도를 청소년들이 한눈에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중학생 이상. 서해문집.264쪽.8500원.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 H R 밀라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다섯 남매가 하루에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주는 모래요정을 만나 겪는 모험 이야기. 영국 유명 아동문학가 에디스 네즈빗(1858∼1924)의 대표작.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환상여행을 통해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원작으로 국내에서도 줄거리 자체는 잘 소개돼 있다. 비룡소.328쪽.1만원.
  •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첫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

    이수호(58)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모멘토)를 냈다. 그간 ‘예수 학교에 가다’‘일어서는 교실’등의 산문집과 동화집 ‘까치 가족’을 낸 적은 있지만 시집은 처음.1991년 서울구치소 독방 수감때부터 쓰기 시작해 15년 간 가슴에 쟁여뒀던 시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다 해직된 그는 10여년간 전교조 사무처장과 부위원장, 국민연합 집행위원장 등을 지내다 98년 서울 선린인터넷고로 복직했다.2001년 전교조 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10월까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올초 평교사로 돌아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시집에는 붉은 색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을 이끌던 ‘노동계 수장’의 강인한 면모 대신 주변의 작고 보잘것없는 사물에 정겨운 시선을 보내고, 일상의 소소한 기쁨에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는 늦깎이 시인의 순정한 마음이 엿보인다.‘여의도로 이름이 바뀐 뒤/보기 어렵다는/흰 배추나비 한 마리/팔락 팔락/천막 안을 기웃거린다/참/곱다’(‘꿈’전문)‘누가/몰래 갖다 놓았을까/농성장 구석/새 양말 한 켤레/비닐 천막 안/그윽히/난향 넘친다’(‘누가 몰래 갖다 놓았을까’전문) 전교조 교사 출신의 시인 도종환은 시집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그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지도자이지만 ‘티없이 맑은 천진스런 웃음’과 ‘언제나 맑게 깨어있는’ 영혼을 지닌 사람을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평했다.1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작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얘기 30편

    베스트셀러 산문집 ‘연탄길’‘행복한 고물상’ 등을 펴낸 이철환 작가가 신작 ‘곰보빵’(꽃삽)을 출간했다. 지난 5년 동안 손바닥만한 노트에 틈날 때마다 조금씩 써왔던 글을 모은 것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30편의 아름답고 가슴시린 이야기를 담았다. 첫 작품 ‘축의금 만 삼천원’은 10년 전 작가의 결혼식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날 무렵 친구의 아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남편의 편지를 전해줬다.‘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원이다.’이밖에 식모살이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쌍둥이 형제 이야기 ‘쌍둥이 눈사람’, 새끼를 구하려고 독사와 사투를 벌이다 죽은 다람쥐 이야기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등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소박한 내용들이 삶의 훈기를 느끼게 한다. 판화가 유기훈의 따뜻한 그림들이 더해져 한층 감동을 자아낸다.89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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