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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스님 입적] ‘깨달음의 향기’ 글로 퍼뜨린 법정스님

    법정 스님은 한 법회에서 “깨달았다고 해서 혼자 가만히 있다면 그것은 깨달은 자가 아니다. 그 향기가 바람에 날아가야 한다.”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 중생을 구한다는 대승불교 사상)의 가르침을 펼쳤다. 그 말대로 스님은 평생동안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깨달음의 향기’를 널리 퍼뜨리고자 했다. 법정 스님의 글을 두고 대중을 위한 ‘산문(에세이)’과 수행자를 위한 ‘법문’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깊은 사유의 결과물을 진솔하고도 쉬운 문장으로 전한 그의 글들은 종교는 물론, 산문·법문이란 장르조차 따지지 않고 동시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스님의 대표작은 두말할 나위없이 수필 ‘무소유’다. 1976년 같은 제목의 수필집(범우사 펴냄)에 실린 이 글은 개발독재 시대 물질문명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내던지는 따끔한 죽비와 같았다. “가진 만큼 얽매인다.”는 메시지를 통해 청빈한 삶의 즐거움을 전한 이 작품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수록되면서 스님을 불교계 최고의 문필가 자리에 올려놨다. 이 책은 출간 이래 지금까지 약 290만부가 판매된 종교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이후 나온 책들도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스님은 에세이계의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잡았다. 수필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 펴냄) 65만부,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 펴냄) 29만부,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 펴냄) 30만부 등이 그런 예다. ☞ [포토]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법정 스님 생전 활동 모습 최근 스님의 입적을 앞두고 차례로 출간된 2권의 법문집도 마찬가지다. 스님이 병상에서 펴낸 법문집 ‘일기일회’(문학의숲 펴냄)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문학의숲 펴냄)은 동안거 결제·해제 법회, 초파일 법회 등 수행대중을 대상으로 한 법문을 모은 것임에도 최근까지 각각 15만부, 8만부가 팔리는 등 대중적 관심을 모았다. 스님은 와병 중에도 이 두 권 법문집과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냈다. 최근에는 스님이 법회나 글 등에서 언급한 책을 모은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이 출간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법정론’에서 “법정의 글은 심산유곡의 불심, 고색창연한 불교신앙을 오늘의 이 현실,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 내온 것”이라고 평했다. 그 평가처럼 법정의 에세이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현대인들의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는 감로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법정스님의 명문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무소유’ 중)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일에 묶여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일기일회’ 중) ●나 자신의 인간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내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 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 북학파 박제가 詩文 첫 완역

    북학파 박제가 詩文 첫 완역

    최근 한국 고전학계의 화두 중 하나는 ‘동아시아적 전망의 수립’이다. ‘민족’의 협소한 울타리를 벗어나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유와 그에 근거한 세계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움직임이 자못 활발하다. 이런 흐름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하는 인물이 초정(楚亭) 박제가(초상·1750~1805)다. 연암 박지원, 청장관 이덕무 등과 함께 18세기 후반 조선 지식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북학파(北學派)의 핵심인물.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규장각 검서관 생활과 네 차례에 걸친 연행(燕行·사신이 중국 베이징에 가던 일)을 통해 탁월한 안목과 폭넓은 국제 감각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저서 ‘북학의’(北學議)를 제외하면 박제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좀체 접할 수 없었던 박제가의 문장 세계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한국한문학을 전공한 정민 한양대 교수 등은 최근 시집 5책에 실린 시 1712수와 문집 5책의 산문 123편 등 북학의를 제외한 박제가의 모든 저작물을 모은 ‘정유각집’을 완역했다. ‘해제’와 ‘연보’를 덧붙여 그의 일생을 전 3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박제가의 시문집은 196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문을 활자본으로 간행한 데 이어 1986년 여강출판사에서 ‘정유각집’을 2책으로 펴낸 적이 있다. 또 199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 소장된 시문을 모아 ‘초정전서’(전 3책)를 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학의를 제외한 그의 글이 온전하게 번역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난해한 고사가 도처에 숨어 워낙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 청장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등과 함께 ‘북학파 3인방’의 전작 번역이 마무리됐다. 정 교수는 완역본을 통해 “북학파로 대표되는 연암그룹 내부의 동향과 당대 지성사의 흐름을 더욱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며 “삶의 궤적에 따른 (박제가의) 인식 변화, 뜻을 같이하는 이들 사이에 오간 우정과 교감, 연행(燕行)을 통해 구체화되는 자아의 각성, 유배지에서 역사와 맞대면하는 뜨거운 격정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의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자평했다. 각권 3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잃어버린 자유의 이름 버마를 찾아서…

    세상에는 버마라는 나라와 미얀마라는 나라가 있다. 사실 같은 나라다. 입장에 따라 호칭이 다르다. 원래 이름이 버마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 정부가 1989년 버마 민족 외에 소수 민족도 아우른다며 나라 이름을 바꿨다. 대외적으로 대량 학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반체제 인사들과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은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다. 회원국의 뜻을 존중한다는 유엔은 미얀마라고 쓴다. 우리나라는? 1991년 외래어 공동 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정했으나, 최근 들어 버마라는 이름을 쓰자는 움직임도 있다. 우리에게 버마는 어떤 곳일까.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국제뉴스에 간간이 등장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지 여사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사이 버마는 점점 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기 들릴이 그린 만화 ‘굿모닝 버마’(소민영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버마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 들릴은 두 달 동안의 평양 체류기를 만화 ‘평양’(2003)으로 옮겨 국내에서도 알려진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 겸 만화가다. 그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버마를 찾아간 것은 아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인 아내를 따라나섰을 따름이다. 아내가 의료 구호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어린 아들과 함께 좌충우돌 버마를 알아간다. 유모차를 끌고 수지 여사가 연금된 곳을 찾아갔다가 군인들에게 쫓겨나고, 버마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다가 당국에 잡혀갈 뻔하기도 한다. 그는 신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버마를 보듬는다. 버마에서는 성범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외국영화 관람이 금지되기도 한다. 오토바이는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시내 통행이 금지된다. 모든 출판물에는 검열이 있다. 남의 집에서 자려면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수도가 바뀌기도 한다. 정치적 상황 외에도 군사독재 그늘이 드리운 버마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유머러스하게 묘사된다. 잃어버린 자유의 이름 버마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우리법연구회 해체 안한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오재성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일각의 해체요구에 대해 “외부의 논의에 완전히 귀를 닫은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어떤 대응을 하는 그런 성격의 모임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며 ‘해체 불가’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오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서울 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우리법연구회 정기 세미나에서 취재진과 만나 “외부에서 비판했던 게 밀행성(密行性)인데 홈페이지에 회장과 간사가 누군지 공개돼 있고, 올해 발표할 논문집에서 회원 명단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미나에는 모임 소속 15명 정도의 판사들이 참여했다. 우리법연구회가 주목받는 것이 불쾌한 듯 최근 중앙지법 사무분장과 법원 인사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오 부장판사는 “연구회는 인사 문제에 의견을 밝히거나 하는 단체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표명하면 마치 회원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크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한문고전 번역 30년내 완성”

    지금 추세라면 100년 이상 걸린다는 한국의 한문고전 번역을 한 세대 안에 끝내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번역원)은 약 4000책에 달하는 미번역 한문고전(주로 문집)을 30년 안에 마무리짓겠다는 청사진을 11일 제시했다. 고전 번역은 본격적인 번역에 앞서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정본을 확정하고, 끊어 읽기가 없는 한문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거나 인명, 지명 등을 기호로 표시해야 하는 등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개인 문집 등 일반고전의 경우 연간 20책가량 번역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고전 번역을 완성하는 데 100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 번역원이 발표한 고전번역 프로젝트의 핵심은 ‘권역별 거점 연구소 협동번역사업’이다. 고전번역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전국 각 지역의 번역 거점 연구소를 선정한 뒤 지역 원로 한학자, 고전 관련 학과 등과 연계해 번역 작업을 벌인다는 구상이다. 번역원은 우선 전국을 수도권과 중부권(강원·충청), 영남권, 호남권(제주 포함)의 4개 권역으로 나눈다. 1차 연도인 올해는 21억원을 들여 전국의 중형 연구소 6곳과 소형 연구소 4곳을 선정해 번역서 48책을 펴낼 계획이다. 예산과 지원 규모 또한 점차 늘려 2012년부터는 20개 거점 연구소에서 140명의 고전 번역 인력을 확보해 연간 120책의 번역 성과를 낼 예정이다. 번역원은 원전 정리가 이뤄진 ‘한국문집총간’에 수록된 개인 문집 가운데 번역되지 않은 문집 312종을 중심으로 번역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개인 문집에다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국고 문헌(국가기록물)까지 더한다 해도 한국의 주요 한문고전은 30년 안에 번역될 수 있다는 것이 번역원 측 설명이다. 한문희 번역원 기획사업팀장은 “개인 문집은 실록보다 대단하다.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면서 “번역이 되면 문화계 종사자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번역원은 번역이 끝날 때마다 평가와 검증 작업을 거쳐 책을 출간한다. 또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 일반인이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번역원은 새 달 초까지 사업 신청을 받아 4월 초 대상 연구소를 확정한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名士의 귀향별곡] 하동군 평사리 박남준 시인

    [名士의 귀향별곡] 하동군 평사리 박남준 시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 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무대로 잘 알려진 평사리 끝 동네 마을이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감싸고 앞으로는 맑은 섬진강이 흐르는 평온하고 조용한 산골 동네다. 오십이 넘도록 홀로 지내며 시와 음악과 새소리를 동거인으로 두고 사는 박남준 시인이 이 마을 주민이 된 지 7년째다. 평사리 끝마을 끝집, 또닥또닥 빗방울 소리가 울리는 양철지붕이 덮인 10평 남짓한 작은 토담집이 박 시인이 사는 산방(山房)이다. 허리를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는 비좁고 오래된 집이지만 박 시인에게는 손님을 맞는 영빈관이고 자연과 소통하며 시를 길어 올리는 공간이다. ●동네 젊은 음악 재주꾼과 밴드 만들어 사후에 남에게 신세 지지 않기 위해 관값으로 쓸 200만원만 통장에 넣어 놓고 남는 돈은 이웃과 나누며 욕심 없이 사는 박 시인을 위해 지인들이 몰래 일방적(?)으로 마련해 준 집이다. 박 시인은 전북 모악산 움막에서 12년을 살다 2003년 9월 이곳으로 옮겼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동매마을에 이렇게 오래 살 줄은 그도 몰랐다. 한두 해 지내다 또 발길이 닿는 어느 산골로 들어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정감 있는 모습에 홀려 어느덧 7년째 눌러 살고 있다. “동매마을에 저를 붙들어 놓은 것은 산천경개가 좋아서가 아니고 사람의 정이었습니다.” 박 시인은 “삶을 서로 나누려고 애쓰고, 공동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에 이끌려 발목이 잡혔다.”고 말한다.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는 ‘동네 밴드’를 그가 앞장서 결성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동네 밴드는 2008년 12월6일 마을잔치 때 처음 공연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두 번째 공연을 하며 유명해졌다. “동네 젊은이들이 마을잔치에 가수를 초청하고 싶다며 소개를 해 달라고 하길래 가수를 초청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우리가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해 보자고 제의해 마을 음악 재주꾼들을 모아 밴드를 구성하고 열심히 연습을 했더니 훌륭한 음악 동아리가 됐습니다.” 박 시인은 동네 밴드가 연습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사랑방과 밴드 연습실을 겸한 풍악재를 건립했다. 지난해부터 환경운동단체인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역 문화학교인 ‘지리산학교’의 시문학반 강사로 강의에도 열심이다. 2004년에는 수경·도법 스님 등과 지리산 1500리를 걷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기도 했다. ●지리산 1500리 생명평화 탁발순례도 시인이 살고 있는 동매리 산방은 하루 종일 햇볕이 가득한 양지바른 곳이다. 지대가 높아 전망도 좋다. 나지막한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이 약한 바람에도 ‘땡그렁 땡그렁’ 소리를 낸다. 산방 옆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뒤뜰에는 버들치와 금붕어가 노니는 작은 연못과 원두막도 있다. 산방으로 박 시인을 찾아갔던 날은 하필 그에게 ‘시가 줄을 이어 찾아오던 날’이었다. 그는 “한동안 뜸하던 시가 오늘 모처럼 한꺼번에 오기 시작했다.”면서 ‘시는 막 찾아올 때 받아 놓지 않으면 금방 딱 끊겨 버린다.”고 말했다. “오전에 3~4편을 써 놓았지만 줄지어 오는 날에는 10편 넘게 써야 한다.”며 바쁜 표정이다. 박 시인은 외부 원고 청탁을 많이 받지 않는다. 적게 쓰면 적게 벌어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활방식이다. “차비와 담배·소주 값을 하고 가끔 이웃과 나누고 사는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데 한 달에 30만~50만원쯤 듭니다.” 시인은 한 달에 1~2편의 글로 이 같은 생활비를 마련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이웃에 내놓는다. 원고료를 받지 않고 글을 쓰는 곳도 있다. 받지 않는 원고료는 후원금인 셈이다. 50이 넘도록 혼자 사는 것이 외롭고 적막하지 않을까. 박 시인은 “좀 적막할 때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풀 뽑고, 나무하고,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시 쓰고, 자연에 참견할 일도 많고…. 적막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글 하동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약 력 << ▲1957년 전남 법성포 출생 ▲전주대 영문과 졸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 등의 시로 등단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2000), ‘적막’(2005)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1993),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 ‘꽃이 진다 꽃이 핀다’( 2002), ‘산방일기’(2007)
  • “우리법연구회 해체하지 않을 것”

    한나라당이 법원의 ‘PD 수첩’ 무죄 판결을 고리로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라고 공세를 펴자, 우리법연구회가 해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45·연수원 18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21일 “판사들의 학술연구단체에 대해 정치권에서 해체 논의를 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며, 대법원이 여러 절차를 거쳐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문 부장판사는 이어 “박일환 법원행정처장도 국회에 출석해 ‘우리법연구회가 학술연구단체라서 해체하라 말라 요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며 해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부장판사는 일부 언론에서 5년 전 자신이 블로그에 이용훈 대법원장과 박시환 대법관 취임을 거론하며 “주류에 편입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회원 출신의 대법관까지 나왔지만, 인사에서 득을 보려는 과거 주류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부장판사는 또 “우리법연구회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있었던 모임이며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사람도 이 모임 출신인데 우리를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한 뒤, “PD수첩 무죄판결이나 강기갑 의원 무죄판결 등도 우리법연구회와 무관한데 이를 끼워넣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10월 우리법연구회 세미나는 공개하고 법원 내부통신망에 학술단체 등록을 마쳤으며, 올해는 학술논문집을 통해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며 법원 내 사조직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제2차 사법파동 당시 신군부가 대법원 수뇌부를 유임하려고 하자, 이에 반발하면서 결성된 판사들의 연구 모임이다. 120여명의 판사가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국가DB구축 일자리 4000개 창출

    정부의 주요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데 4000여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행정안전부는 한국가사문학, 한국전통소리문화, 보호관찰카드 제작 등 27종의 국가데이터베이스(DB) 구축사업을 확정·발주했다고 19일 밝혔다. 여기에는 총 300억원이 투자되고 정보기술(IT) 관련 인력 40 00여명분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덧붙였다. 국가DB 구축사업은 국가적으로 보존 및 이용가치가 높은 행정·공공기관의 지식정보자원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으로 녹색정부 구현과 대민서비스를 개선하는 데도 효과가 기대된다. 행안부는 조기 발주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수요조사를 실시, 대상사업 검토 등 사전준비를 거쳐 최근 전문가들로 구성된 DB심의위원회를 통해 과제심의를 마쳤다. 다음달 중으로 사업자 선정 및 계약을 완료해 실질적 인력고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올해 발주하는 사업에는 유해화학물질, 검찰청 형사사건기록, 보호관찰카드DB 등 행정DB 구축 분야 9종의 사업과 한국문집총간, 식물곤충 표본정보, 조위관측기록지 등 국가적으로 보존이 필요한 지식DB 구축 분야 18종 등이다. 특히 올해는 국가DB사업이 항구적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참여인력(희망자)에 대한 전문교육도 병행해 IT 전문인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게 된다. 교육은 신청자들의 수준에 맞춰 기본·심화교육으로 구분되며 교육 후 취업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가DB 구축 사업과 함께 지식정보자원의 유통 서비스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도시와 산] (42) 충남 예산 덕숭산

    [도시와 산] (42) 충남 예산 덕숭산

    “조계종 본사 25개 가운데 절 앞이 탁 트인 곳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삼현칠성(3명의 큰스님과 7명의 성인)이 나올 산이라고 스님들 사이에 말이 무성합니다.” 충남 예산 수덕사 정암 총무국장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 선(禪)을 있게 한 게 수덕사다. 절이 있는 덕숭산이 조그마하고 밋밋하지만 예사롭지 않다. 오래 살아 보니 산이 참 좋다.”며 이같이 말했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다고 다가 아니요, 선풍(仙風)이 있어야 명산’이라고 했던가.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해발 495m)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산이다. 이웃 가야산보다 낮은데도 수덕사가 자리잡은 것만 봐도 그렇다. 여기에 부처 전설까지 내려오는 것을 보면 명산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 불교 선의 종가인 수덕사… 다비사찰로도 유명 옛날 이곳 마을에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사냥을 갔다 덕숭이란 낭자를 보고 반해 청혼했지만 여러 번 거절당한다. 덕숭은 자기 집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는 조건으로 청혼을 승낙한다. 수덕은 절을 지었으나 낭자에 대한 연모 때문에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 전소됐다. 목욕재계하고 다시 절을 지었지만 역시 불에 탔다. 세 번째는 부처만 생각하고 절을 지어 결혼에 성공했다. 하지만 끌어안는 순간 덕숭은 사라졌고, 그의 버선만 손에 들려 있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했다. 덕숭은 관음보살의 화신이었다. 절은 수덕의 이름을 따 수덕사가 됐고, 산은 덕숭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됐다고 한다. 수덕사는 덕숭산의 꽃이다. 덕숭산은 몰라도 수덕사는 대다수가 안다. 덕숭산이 ‘수덕산’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일 터.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는 한국 불교 5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이다. 정암 스님은 “수덕사는 다비(茶毘) 사찰로 유명하다. 스님들이 모두 수덕사에서 다비를 하고 싶어 한다.”면서 “다른 곳은 다비가 1~2일 걸리는데 여기는 3~4시간이면 끝난다. 소나무와 절 기운이 합쳐져서 그런 것 같다.”고 해석했다. ‘사람 몸에서 나온 것인데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다비식 후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불교계에서는 금강산에서 출가하고, 묘향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리산에서 깨달음을 전하고, 덕숭산에서 열반하는 게 행복으로 통한다. ●경허·나혜석 등 고승과 앞선 예술가 흔적 곳곳에 수덕사에는 큰 스님과 여러 유명 예술가의 흔적도 많이 있다. 경허 스님과 그의 제자 만공 스님이 유명하다. 두 스님은 조선 말기부터 구한말 불교가 세속화하는 것을 막고 참선을 일궈냈다. 경허는 인근 서산 부석사 등 사찰을 거쳐 해인사로 갔지만 만공은 수덕사에서 입적했다. 숭산·원담·법장·수경 스님도 이곳 출신이다. 정암 스님은 “수덕사는 한국 선의 종가”라고 자랑한다. 그는 “만공 스님이 최초의 비구니 암자인 견성암을 지었지만 수덕사가 비구니 절은 아니다.”면서 “대중가요 ‘수덕사의 여승’은 잘못된 노래다. 비구니들이 ‘퇴폐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려 이 노래를 부른 송춘희가 한동안 수덕사를 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수덕사에는 또 한국을 대표하는 신여성 일엽 스님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도 머물렀다. 환희대, 선수암 등에는 이들의 흔적이 배어 있다. 수덕사 주변에는 정혜사, 소림초당 등 많은 암자가 있다. 둘은 수덕사로 가다 보면 왼쪽에 있는 수덕여관에 머물기도 했다. 수덕여관은 조선조부터 구한말까지 손님이 거처하던 곳. 둘 모두 기구한 삶을 살다가 마감했다. 나혜석은 만공 스님으로부터 “너는 스님이 될 재목이 아니다.”라고 거부당하자 수덕여관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이 여관은 나혜석의 영향을 받은 고암 이응노 화백이 1944년 매입,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살았다. 고암은 1967년 동백림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이곳에 잠시 묵기도 한다. 여관에 그가 바위에 새긴 암각화와 현판도 있다. 당초 땅 주인인 수덕사는 2005년 말 고암의 큰조카로부터 여관을 매입,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덕사~정혜사 1080개 계단 놓여… 기암괴석도 많아 덕숭산은 아름다운 계곡과 기암괴석이 많아 ‘호서(湖西)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정암 스님은 “30년 전만 해도 기암괴석이 보였는데 요즘은 육송이 커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높지가 않아 옛날에는 바닷가와 내포(가야산 주변 지역)를 오가는 통로로도 쓰였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정혜사까지 1080개 계단이 놓여 있다. 오르면서 열번은 ‘백팔번뇌’를 하는 셈이다. 2대 방장인 벽초 스님이 놓았다. 정상에 오르면 가야산과 예당평야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안면도와 천수만도 보인다. 덕숭산은 주변에 육산들을 거느려 마치 꽃잎으로 둘러싸인 꽃술처럼 보인다. 바위산이 오롯이 솟아 있는 형상이다. 작아도 다부져 보이는 금북정맥의 등줄기다. 1970년대 예산중학교에서 ‘심은경’이란 한국 이름으로 영어를 가르쳤던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가 취임 직후인 2008년 10월 예산중을 찾은 뒤 덕숭산에 오르기도 했다. 문화해설사 강희진(53)씨는 “덕숭산은 차분한 느낌이 나고 많은 생각을 낳게 한다.”고 말했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연간 460만명이 찾는 ‘덕산온천’ 날개다친 학 치료해준 약수… 주말 차량주차 전쟁터 방불 충남 예산 덕숭산은 ‘3덕(德)’이 모인 곳이다. 덕숭(德崇), 수덕(修德)과 함께 ‘덕산(德山)’이 그것이다. 모두 ‘덕을 숭상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덕숭산과 수덕사가 모두 덕산면에 있으니 덕산이 모두를 품은 셈이다. 덕산의 대명사는 덕산온천이다. 율곡 이이는 문집 ‘충보’에서 “날개와 다리를 다친 학이 날아와 상처에 온천물을 발라 치료하고 날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덕산온천의 역사가 여간 깊지 않음을 보여준다. 덕산온천은 1917년 처음으로 탕을 이용한 온천으로 개장했다. 지하 300m 깊이에서 43∼52도의 약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온천수가 나온다. 예산군은 72만 2700㎡를 덕산온천지구로 지정, 개발하고 있다. 지구에는 숙박시설 8동, 상가 7동, 놀이시설 1곳 등을 갖추고 있다. 2005년 문을 연 덕산스파캐슬은 콘도와 대형 온천탕은 물론 물놀이시설인 워터파크까지 갖춰 인기를 끈다. 등산 후 온천욕이 제격이어서 덕숭산 등산객 등이 많이 찾는다. 김진영 예산군 관광사업계장은 “주말이면 주차할 곳이 없다. 전쟁터 같다.”면서 “연간 700만명가량이 예산군을 찾는데 이중 3분의2가 덕산온천을 들르고 있다.”고 말했다. 서해안고속도로에 이어 지난해 5월 대전~당진고속도로가 개통돼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관광객을 30%나 늘렸다고 김 계장은 덧붙였다. 예산군은 오는 3월부터 추사고택~예당저수지~수덕사~덕산온천을 잇는 관광 버스투어를 실시한다. 김 계장은 “수도권 전철을 타고 아산 신창역까지 온 뒤 들르는 서울 사람들도 있다.”면서 “민자를 유치, 온천지구에 콘도를 더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전국플러스] 대전 족보박물관 4월 완공

    대전 중구는 침산동 ‘뿌리공원’에 건립 중인 족보 전시장의 명칭을 ‘한국족보박물관’으로 확정하고 오는 4월 완공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전체 면적 1478.95㎡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한국족보박물관에는 족보 등을 전시하는 상설전시실 3곳 외에 기획전시실, 수장고, 시청각실, 정보자료실, 문중협의회실, 세미나실 등이 들어선다. 족보박물관 건립에는 전국에서 82개 성씨별 문중이 참여했으며, 356건 1100여점의 족보와 문집류, 고문서, 탁본, CD와 영상자료, 영정사진 등이 기증됐다.
  • [학술·종교플러스]

    ‘한국문집총간’ 663종 웹서비스 한국고전번역원은 ‘한국문집총간’ 정편 663종 350책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끝내고 이달 말 웹서비스(db.itkc.or.kr)를 시작한다. 2000년부터 시작된 디지털화 작업은 꼬박 10년이 걸렸으며, 글자 수는 무려 1억 60 00만자나 된다. 통일신라시대 ‘계원필경’(최치원)부터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이규보), 조선시대 ‘삼봉집’(정도전), ‘퇴계집’(이황), ‘율곡전서’(이이) 등의 문집을 시대순으로 총망라했다. ‘한국 천주교 해외원조’ 심포지엄 한국카리타스(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21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강당에서 해외원조 100억원 시대의 ‘한국 천주교 해외원조 현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2010년 해외원조주일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02)460-7637.
  • [키워드로 본 2009 문화] 김추기경·장진영·DJ 등 애도열기 책으로 쏟아져

    [키워드로 본 2009 문화] 김추기경·장진영·DJ 등 애도열기 책으로 쏟아져

    김수환 추기경, 장영희 서강대 교수,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배우 최진실·장진영씨 등등…. 올해는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정치인이 포함된 만큼 이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와 반응이야 엇갈리기도 했지만 애도 열기만큼은 전 사회적으로 퍼졌다. 출판계 역시 고인의 책, 고인과 관련된 책을 통해 애도를 보냈다.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뒤 출간된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가 상반기 내내 독자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으며 10만부 이상 팔린 것을 시작으로 장영희 교수가 유고 산문집으로 남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나오자마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헌신 그 자체였던 김 추기경의 삶은 물론, 장애인으로서 마지막까지 암과 투병하면서도 주변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은 장 교수의 글편들은 감동의 여운을 길게 늘어뜨렸다. 지난 5월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하반기까지 서점가에는 연일 노무현 관련 서적이 쏟아졌다. 15년 전에 나온 자전 에세이 ‘여보, 나좀 도와줘’를 비롯해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노무현의 리더십이야기’ 등 기존의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지난 9월에 나온 마지막 회고록 ‘성공과 좌절’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 ‘배움’, 1994년 정계은퇴 뒤 쓴 첫 자서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옥중서신’,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중참여경제론’ 등 수십년 동안 스테디셀러 자리에 있던 책들이 추모 열기 속에 개정 출간됐다. 지난 9월 위암으로 세상을 뜬 영화배우 장진영씨의 남편 김영균씨가 장씨와 관련된 내용을 엮은 책 ‘마지막 선물’도 최근 출간돼 추모 출판 열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강세였던 재테크 서적은 올해 주춤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재테크 여유’가 위축된 여파로 풀이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최동호 오솔길 산책]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

    [최동호 오솔길 산책]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

    겨울바람이 매섭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힘들고 어려운 아버지들이 많아진다. 경제지표가 좋아졌다지만 서민들의 체감지수는 아주 낮다. 서민 경제가 어려울수록 아버지들은 힘들다. 가족의 중심에서 아버지가 설 자리가 없어진 지는 오래다. 육아나 교육은 물론 재산권 행사에서도 아버지는 그 주도적 위치를 상실한 지 오래다. 공휴일 가족나들이의 운전기사로 전락했다고 자조하는 이도 있다. 최근 한 텔레비전 방송에 아버지들이 나왔다. 울고 싶은 사연들로 가득한 아버지들이었다. 한 아버지는 30년 동안 환경미화원을 하면서 자녀들에게 자기 직업을 속이고 살아왔다고 했다. 자녀들이 창피해할까 봐서였다. 30년의 비밀이 열리는 순간 아버지가 울고, 자녀들이 울고, 동료 청소원들도 함께 울었다. 다른 아버지는 반복되는 질문에도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참다 못한 리포터가 아버지를 사랑하느냐고 묻자 비로소 아들은 ‘네 그래요. 아버지를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한 아버지는 자녀를 두고 집을 나간 아내에게 복수를 맹세하며 18년간 쪽방에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나타났고, 그 아내의 늙고 쇠약한 모습에 그만 모든 걸 용서하고 함께 살게 됐다고 했다. 한데 바로 다음날 딸이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가게에 나가는 그에게 아내의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 중엔 이보다 더 기막힌 사연을 가진 이들도 많을 터다. 어머니가 없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아버지가 없다 해도 역시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한다 해도 그 세상은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한다. 연말이 되면서 힘든 경제 상황을 돌이켜 보게 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을 아버지로 둔 자녀들이 아버지를 회고하며 만든 산문집 ‘아버지, 그리운 당신’이 간행됐다. 황동규, 조정래, 신달자, 박범신, 공지영, 한강, 공선옥, 서하진 등 시인과 작가들이 그려낸 35명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이 산문집에서 우리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려 볼 수 있다. 한국사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여겨지는 지난 20세기 고난의 시대에 과연 아버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아들과 딸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이 산문집의 중심 주제다. 아버지란 아들로부터 부정되거나, 극복돼야 할 존재라는 것은 그리스의 고전적 비극인 ‘오이디푸스왕’으로부터 전해오는 영원한 문학적 테제 중의 하나다. 그러나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다. 평생을 부정하고 평생을 피해 다니려 해도 운명처럼 어느 한순간에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마는 것이 아버지라는 존재일 것이다. 아버지라는 책무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아버지들로 가득 찬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찍은 사진 한 장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가는 아버지들…. 아버지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일제의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윤동주는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고 했다. 이처럼 아버지는 밤하늘 어둠 속으로 걸어가면서 그 뒷모습을 우리에게 남기고 가는 운명적인 존재이다.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연말연시에 굳세게 견디려 해도 마음속으로 울고 싶은 아버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녀들의 진심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사랑의 말 한마디일 것이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카뮈 전집, 23년만에 완역

    1987년 산문집 ‘결혼·여름’이 나올 때만 해도 그저 프랑스의 앙가주망 지식인의 한 사람인 알베르 카뮈(1913~1960)에 대한 평범한 번역서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소설 ‘이방인’이 나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무려 23권에 이르는 카뮈의 모든 저작 리스트가 책에 ‘출간 예정’으로 소개됐다. 그리고 꼬박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시사평론’(카뮈 지음, 책세상 펴냄) 번역을 마치면서 이 지난하고 방대한 노작(作)에 마침표를 찍었다. 카뮈와 관련된 모든 책은 책세상과 독점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카뮈 전집의 상당수는 국내 초역이고, 완역이다. 카뮈 타계 50주년이 되는 2010년 1월4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이뤄낸 성과다. 그동안의 고단함은 고스란히 김 명예교수의 몫이다. 그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카뮈 연구자로 꼽힌다. 1974년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카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원전에 충실한 번역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유려한 글쓰기가 그의 강점이다. 40대 중반의 피끓는 젊은 문학평론가였던 그는 카뮈와 함께하며 어느덧 일흔을 앞둔 노() 학자가 됐다. 그는 서문을 통해 “카뮈의 책 가운데서도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산문,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온전한 번역이 나와 있지 않은 책을 번역한다는 즐거움에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20세기의 대표적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었던 1942년 소설 ‘이방인’을 발표,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신문기자이자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적극 가담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됐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1960년 1월4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카뮈 20권 전집에서 빠진 마지막 3권은 ‘시사평론’ 2·3,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서한집’이다. 책세상 측은 “이 책들에 대한 한국 독자의 관심이 너무 떨어져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절구통 수좌’ 70년 수행기록 출간

    보통 고승의 말과 행적을 담은 법문집이나 행장(行狀·생전의 행적을 기록한 글)은 그가 열반에 든 뒤 제자들의 손으로 묶는다. 그러다 보니 누락되는 내용도 많았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제자들마다 그리는 스승의 모습이 다르기도 했다. 조계종 종정(宗正)인 법전(84) 대종사(大宗師)의 일대기를 그린 ‘누구 없는가’(김영사 펴냄)는 그러한 점을 감안해 생전에 발간한 행장이다. 고승이 죽기 전에 행장을 내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 수행자들은 흔적 없이 살다 가는 삶을 최고의 경지로 보기 때문이다. 한 번 참선에 들면 미동도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首座·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라 불릴 정도로 법전 스님 역시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이지만, 그는 선사들의 행적이 소실되는 전철을 밟을 수 없다는 제자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책에는 13살 어린 나이에 산에 들어가 스님들을 모시던 일부터, 몸을 던져가며 수행하던 날들, 처음 대중교화에 나섰던 때의 감회 등 출가생활 70여년을 살아 온 스님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평생의 스승인 성철 스님과 얽힌 일화들은 여러 편에 걸쳐 소개된다. 득력(得力)을 인가받았던 ‘무(無)자 화두’ 등 서로 화두를 소재로 나눈 선문답 기록을 비롯, 생전 성철 스님을 그려내는 필치가 각별하다. ‘누구 없는가’라는 제목도 평소 성철 스님이 제자들의 공부를 독려하며 자주 쓴 표현을 따다 넣은 것이다. 책은 스님의 구술에 바탕을 둔 자서전 형태로, 불교계 이름난 ‘글쟁이’이자 스님의 상좌(上佐)인 원철 스님과 수필가 박원자씨가 정리했다. 스님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실려 있다. 홈페이지(www.kimmyoung.com/truth)에 불교용어와 인물 등에 대한 설명을 따로 정리해 뒀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무전취식… 술먹고 쌈박질 일삼고…잡범처럼 살던 시인 유용주의 자전소설

    우여곡절 속에 살아온 이라면 “내가 살아온 얘기를 글로 쓰면 대하소설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보자. 돌솥 뚜껑처럼 두텁고 넓은 손바닥, 그리 크지 않은 눈에 두툼한 눈두덩, 빗물이 고임직한 넓은 평수의 콧구멍, 튀어나온 광대뼈가 제대로 된 촌놈 얼굴이다. 커다란 덩치에 핏줄 튀어나온 굵은 팔뚝까지 완벽하다. 비교적 귀여운 느낌의 ‘슈렉’을 제외하더라도 ‘백곰’, ‘고릴라’, ‘멧돼지’ 등 별명 역시 딱 어울리는 것들만 모았다. 술 먹고 쌈박질 일삼는 전형적인 ‘잡범(雜犯)’의 모습 아닌가. 게다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열네살부터 겪지 않은 일이 없다. 공사판 막노동은 기본. 중식, 일식, 한식집 주방을 섭렵했으며, 제과점, 구두닦이, 유리공장, 사탕공장, 술집 지배인, 트럭운전, 목수, 우유보급소 등 거치지 않은 일이 없다. 그 뿐인가. 엉덩이 비벼댄 형무소도 군대, 사회 가리지 않았다. 시인 유용주다. 하지만 잡범같은 그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사람에 대한 뜨거운 애정, 문학에 대한 확신,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이 바로 그 재능이다. 유용주의 삶이야말로 소설 그 자체다. ‘가장 가벼운 짐’(1993), ‘크나큰 침묵’(1996), ‘은근 살짝’(2006) 등 시집으로 평단의 뜨끈뜨끈한 호응을 얻었고, 2000년에는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느낌표!’ 도서에 선정되며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름을 각인시킨 그였다. 유용주가 자전적 장편소설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한겨레출판 펴냄)를 내고 ‘소설가 선언’을 했다. 이미 또다른 자전적 성장소설 ‘마린을 찾아서’를 냈지만, 이번 작품은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작품에 가깝다. 시(詩) 안에만 담아놓기에는 삶의 굽이마다 빼곡히 새겨진 이야기 보따리가 너무도 터질 듯 부풀어있는 탓이다. ‘어느 잡범’은 고스란히 유용주, 자신의 얘기다. 공무집행방해, 재물손괴, 폭행, 무전취식 등을 저지른 잡범 ‘김호식’이 군대에서 겪은 기구한 3년(군대 2년+군 교도소 1년)의 시간을 중심으로 사회에 나와서도 잡범 신세를 전전하는 삶을 펼쳐냈다. 초가을 바람과 안개만으로 숭늉 냄새를 맡고 들판에 나락이 팼음을 짐작하는 시인의 감성(321쪽)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오랜 세월 시를 써온 유용주 식 운문(韻文)의 감성이 걸쭉한 입담을 타고 산문(散文)의 형식에 접목되는 과정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유용주는 “최근 ‘루저 파문’이 있었는데 나야말로 최상급 루저”라면서도 “소설을 통해 승자들이 만든 세상이 고작 이 정도냐고 묻고 싶었고, 그들이야말로 위장전입, 논문 표절, 탈세 등 거짓된 삶 아니었냐고 따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그리운 당신, 아버지…

    그리운 당신, 아버지…

    ‘아비’는 늘 상처를 품고 산다. 애틋한 자식 사랑을 애써 감춰야 하는 상처, 눈물이 돌덩이로 쌓여가도 꺼이꺼이 울 수 없는 상처, 훨훨 벗어던지고픈 힘겨운 노동의 무게로 퍽퍽해진 어깻죽지, ‘아빠’가 아닌 ‘아버지’로 불리며 만들어진 자식과의 멀디 먼 거리감 등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로 남겨놓는다. 그럼에도 헌신적 희생의 칭송 대상은 ‘엄마’로 한정되기 일쑤다. ●늘 상처 품고 사는 외로운 존재 묵직한 책임감을 두 어깨에 받쳐든 ‘위대한’ 존재이지만 그로 인해 가족 관계에서 부재(不在) 중 존재이거나 심지어 부정(否定)과 극복의 대상이 되곤 하는 이가 바로 아버지다. 다시 아버지를 노래한다. 황동규, 조정래, 신달자, 정호승, 공지영, 공선옥, 한강, 김애란 등 시인·소설가 ‘자식’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얘기한다. 서정시학이 최근 펴낸 산문집 ‘아버지, 그리운 당신’에서다. 김달진, 김광섭, 이효석 등 시인·소설가를 아버지로 둔 자식들의 글도 들어 있다. 차마 말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책감 등의 모습은 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거대한 벽 같은 존재였던 문인 아버지를 둔 경우는 더 하다. 시인 황동규는 “지금까지 아버지(황순원) 얘기를 삼갔으나 타계하시고 8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돌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허락을 받고 조부 앞에서 담배 피우던 아버지, 문인의 길에 접어드는 것을 반대하던 아버지, 결국 대를 이은 아들에게 선배로서 가르침을 주던 아버지 등의 모습을 회고했다. 소설가 한강 역시 “귀밑머리 희어질 때쯤 쓰겠다라는 말로 오랫동안 아버지(한승원)에 대한 글을 피해 도망다녔다.”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게 찾아온다. 그것이 자식의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검찰총장, 안기부장을 지낸 아버지(서동권)는 늘 근엄하고 어렵지만 서하진의 첫 소설집이 나오자 100권을 사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 딸 소설”이라며 자랑하고, 문예지 한 구석에 실린 글까지 꼼꼼히 찾아 읽었다. 딸은 최근에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 ‘천변풍경’의 구보 박태원의 아들(박일영)은 첫 돌을 기념해 구보가 직접 만든 천자문을 가보로 간직하며 살고 있다. 아버지가 서울을 돌며 1000명에게 한 글자씩 받아서 만든 애정과 헌신의 상징물 같은 책이다.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의외로 적어 시인 최동호와 함께 책을 엮은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은 24일 “작가들에게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달라고 했을 때 ‘없다.’는 대답이 의외로 많이 되돌아왔다.”면서 “우리가 잊고 살지만 작가들에게 아버지는 화해와 통합을 담는 그릇이자 무궁한 서사의 발원지”라고 말했다. 책을 다시 보니 한승원-한강 부녀, 김달진-김구슬 부녀, 마해송-마종기 부자, 시인 정호승과 그의 아버지, 서동권-서하진 부녀 정도가 아버지와의 사진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엄숙한 표정의 가족사진이나 증명사진을 겹쳐놓았다. 가족 안에서 그림자가 된 아버지의 존재를 말해주는 한 단면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순천만/이춘규 논설위원

    전라남도 동남쪽 끝자락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의 순천만은 수많은 문인들에게 문학적 상상력의 젖줄이다. 시인 곽재구는 산문집 ‘포구기행’에서 “저문 시간이면 순천만에 나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너른 개펄이 좋고 개펄 냄새를 이리저리 싣고 다니는 바람의 흔적이 좋다. 키 넘게 훌쩍 자란 갈대숲·갈대들의 목은 꺾여져 있다. 모두 같은 방향이다. 바람은 가끔씩 갈대숲 사이로 들어온다.”고 추억했다. 시인 나희덕은 순천만 와온마을의 낙조를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고 읊었다. 그런 순천만이 용케도 개발폭풍을 피했다. 개발바람이 남해안 지역을 강타했을 때 접근성이 좋고, 드넓은 순천만도 홍역을 앓았다. 개펄을 매립해 공업단지를 유치하면 지역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며 개발론자들의 기세가 등등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순천만은 거기 그대로 있게 됐다. 순결함을 지켜냈다. 그래서 더 값지다고 지역주민들은 안도한다. 지금도 너른 개펄은 갈대, 철새를 품고 생명을 노래한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지정돼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켜주듯 개발바람의 열병을 치른 순천만은 순천시에 효자가 됐다. 한때 무분별한 생태관광으로 훼손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민관이 일체가 되어 생태계가 더욱 자연친화적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습지 생태계의 보고로 입소문 나며 공단이 들어선 것 이상의 경제적 혜택도 주고 있다. 2007년 180만명에 이어 지난해는 26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연간 경제효과만 적게 잡아 1000억원이란다. 공업단지 효과를 훨씬 능가한다고 순천시는 분석한다. 순천만을 내세워 순천시는 ‘대한민국의 생태 수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달 초 서울에 상주하는 외국 특파원들이 순천만을 다녀갔다. 세계 각국 환경단체 회원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도 속속 방문한다.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국내외 관광객의 급증은 순천만의 평화를 다시 심각하게 위협할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만이 순천만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우리법연구회 회원명단 공개

    ‘우리법연구회’가 회원 명단을 완전 공개하기로 했다.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14∼15일 충남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회원 명단 공개 여부와 방법을 집중 논의한 끝에 표결을 통해 최종 결정했다. 월간 학술세미나를 엮어 발간할 논문집 끝에 회원의 이름을 게재하는 방식이다.문형배(부산지법 부장판사·사시28회) 회장은 “외부에서 명단을 공개하라고 하니 학술단체로서 논문집을 펴내며 거기에(회원 명단을) 싣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전했다.소속 회원인 서울남부지법 마은혁(사시 39회) 판사와 연구회에 대한 일부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회원들은 마 판사에 대한 비판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섰지만 연구회 차원에서 대응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들은 이번 총회에서 오재성 성남지원 부장판사(사시 31회)를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책꽂이]

    ●역사 사용설명서(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공존 펴냄) 역사에서 정당성의 근거, 조언을 구하는 것이 적당할까. 조지 W 부시가 역사를 오용하고 악용하는 것에 ‘영감’을 얻어 책을 집필한 저자는 히틀러, 처칠, 마오쩌둥 등 위대하거나 악명높은 인물과 사건을 통해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파헤쳤다. 1만 5000원. ●슈퍼 글로벌 리더가 세상을 움직인다(이미숙 지음, 김영사 펴냄) 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저자가 토머스 프리드먼, 빌 에모트, 라울 리베로, 기 소르망 등 세계 1%의 지성과 함께한 인터뷰를 엮은 책. 그들의 가치관, 세상을 보는 눈, 미래를 위한 전략 등을 생생하게 전한다. 1만 3000원.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유달승 지음, 한겨레 출판 펴냄) 외대 이란어과를 거쳐 테헤란 국립대학교에서 유학하며 한국인 1호 이란 유학생이었던 저자가 오늘날 국제 정치에서 절대 간과할 수 없고, 경제 교류에 있어서 대한민국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란을 이해하기 위해 그 핵심고리인 호메이니의 삶을 풀어낸다. 1만 3000원. ●개념어 총서 WHAT 시리즈 1~5(채운 등 지음, 그린비 펴냄) 재현, 권력, 공(空), 내재성, 주체 등 인문학의 개념들이 단순한 관념을 뛰어넘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용되고 작동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린비가 앞으로 계속 출간할 이 시리즈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6900~7900원. ●명가의 탄생(홍순도 지음, 서교출판사 펴냄) 미국 록펠러 가문, 일본 최고 기업가인 마쓰시다 가문, 존경받는 부자가 되라고 가르쳤던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문화재 보존을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은 간송 전형필 선생 가문 등 인류사회에 기여도가 큰 위인 23명과 그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뤘다. 1만 2500원. ●코민테른(케빈 맥더모트·제레미 애그뉴 지음, 황동하 옮김, 서해문집 펴냄) 1919년부터 1943년까지 레닌과 스탈린 시기, 볼셰비키화와 민주주의, 인민전선 등 코민테른에 대한 역사를 에릭 홉스봄을 비롯한 저명한 학자들의 주장과 코민테른 현장의 목소리로 조명하고 있다.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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