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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빚으로 지은 집(아티프 미안·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열린책들 펴냄) 국제통화기금(IMF)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45세 미만 젊은 경제학자로 꼽은 저자들이 과다한 가계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들은 책에서 가계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거듭 경고한다. 가계부채의 급증은 소비지출의 감소를 가져오고 장기불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타격을 입히면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빚진 가계들의 자산에 타격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돌고 돌아 결국 모두에게 손실을 입힌다는 것을 경제모형을 통해 입증한다. 저자들은 강력하고 분명한 증거를 바탕으로 대공황과 대침체, 나아가 현재 유럽의 경제 위기까지도 엄청나게 늘어난 가계부채에서 비롯됐음을 밝힌다. 가계부채에서 비롯된 소비 주도 불황을 극복하기에는 기존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가계부채를 줄여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20쪽. 1만 2000원. 어크로스 고전읽기(박홍순 지음, 서해문집 펴냄) ‘미술관 옆 인문학’ 등 저술활동과 강연으로 많은 사람들을 인문학 세계로 안내해 온 저자가 딱딱하고 어렵다고 여기기 쉬운 고전 읽기의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친숙한 문학작품을 마중물로 삼아 인문·사회 고전에 접근한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과 퇴니에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살펴보고,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플라톤의 ‘크리톤’으로 법과 정의의 문제를 짚어보는 식이다. 10개 테마를 다루면서 주제마다 적합한 문학 고전과 인문사회 고전을 함께 읽도록 안내한다. 저자가 귀띔하는 고전 읽기의 비결은 문학작품으로 문제의식의 단초를 마련하고 연관된 인문·사회학 고전으로 들어가기,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라 원문의 핵심 단락이나 문장 스스로 이해하기, 논쟁적으로 접근하기, 고전 내용을 현대 사회와 연결하기, 사회학적 상상력 갖기 등이다. 344쪽. 1만 4900원. 만물의 공식(루크 도멜 지음, 노승영 옮김, 반니 펴냄) ‘알고리즘’은 컴퓨터에서 단계별로 진행되는 일련의 명령을 뜻한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인터넷 검색뿐 아니라 오락, 연애, 결혼, 이혼, 법률을 비롯해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알고리즘이 그 속에 얽혀 있다.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알고리즘’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알고리즘의 시대가 인간의 창조성, 인간관계, 정체성 개념, 법률문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살핀다. 자신의 몸을 숫자로 측정하는 자기 수량화 운동,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알고리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볼 수 있는 사례를 들려주고, 알고리즘의 미래에 대해 전망한다. 저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고리즘이 모든 일을 대신하지는 못한다며 만물의 공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면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336쪽. 1만 7000원. 죽창수필(운서주굉 지음, 연관 옮김, 불광출판사 펴냄) 자백진가, 감산덕청, 우익지욱 스님과 함께 중국 명나라의 4대 고승으로 꼽히는 운서주굉(1535~1615)이 81세로 입적하기 한 해 전에 자신이 살아온 생을 되돌아보며 쓴 글이다. 제목은 죽창 아래에서 붓 가는 대로 썼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굉은 살아오며 보고 느낀 소소한 경험담을 비롯해 구습을 바로잡기 위한 비판, 수행자들에게 내리는 따끔한 경책, 일상의 깨달음 등 진솔하고 담백한 인생의 지혜가 담긴 글 426편을 담았다.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간결하면서도 명료해 오랜 시간 여운을 남기며 삶에 대한 고요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남원 실상사 화엄학림의 초대학장을 지낸 연관 스님에 의해 1991년 처음 소개된 이후 15년간 불교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던 책으로 2005년 절판된 것의 개정판이다. 이해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번역의 오류와 한문투 문장을 다듬고 주석을 대폭 보강했다. 648쪽. 3만원.
  • “지현아 더 좋은 곳 가서 편안히 푹 쉬어라” 황지현양 빈소 눈물바다…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확인

    “지현아 더 좋은 곳 가서 편안히 푹 쉬어라” 황지현양 빈소 눈물바다…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확인

    ”지현아 더 좋은 곳 가서 편안히 푹 쉬어라” 황지현양 빈소 눈물바다…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확인 197일만에 부모 품으로 돌아온 외동딸의 영정 앞에서 억장이 무너진 아버지는 다시 통곡했다. 30일 오후 4시쯤 세월호 침몰사고 295번째 희생자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현양의 빈소가 차려진 고대안산병원 장례식장 201호. 교복을 곱게 입은 황양의 영정 앞에 검은 상복을 입은 아버지 황인열(51)씨와 어머니 심명섭(49)씨가 나란히 섰다. 진도에서 딸의 유품을 직접 확인하고, 오전 시신을 인도받은 뒤 함께 헬기를 타고 안산까지 온 황씨는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누르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시신이 수습된 29일은 황양이 수학여행을 간다며 집을 나선지 197일째 되던 날이었으며, 공교롭게도 18번째 생일인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또 황양은 황씨 부부가 7년여만에 가진 늦둥이 외동딸이었다. 황씨는 ‘이렇게 가면, 이렇게 가면’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이마에 손을 올린 채 눈물을 흘렸고, 쓰러질 뻔한 것을 주변에 있던 유족들이 부축해줘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하나 둘 모인 조문객들은 황양의 빈소 앞 한 벽면에 ‘지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라고 적힌 메모판에 ‘더 좋은 곳에 가서 편안히 푹 쉬어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떠나는 친구를 배웅이라도 하듯 ‘단원고 2학년 친구들. 잊지 않을게. 돌아와 줘서 고마워’라고 적힌 조화도 빈소 한편에 세워져 있었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도운 잠수사들도 조화를 보내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빈소 안 제단 위에는 소설가 김훈 등 작가 12명이 집필한 세월호 헌정 산문집 ‘눈먼자들의 국가’와 황양의 친구들이 가져온 강아지 인형과 초콜릿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자 수업을 마친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들을 비롯한 2∼3학년 학생 40여명이 속속 빈소를 찾아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황양의 아버지는 조문 온 학급 친구들에게 ‘너희가 지목한 곳에서 지현이가 발견됐다. 고맙다’는 말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나란히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들은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시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세월호 사고 생존학생 학부모 등 20명이 조문객을 맞이하는 등 슬픔에 빠진 황양의 유족들을 위로하며 장례절차를 묵묵히 도왔다. 발인은 다음 달 1일 오전 8시로 예정돼 있다. 장지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이다. 앞서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28일 오후 5시 25분쯤 선내에서 황양의 시신을 발견했으나 거센 유속 때문에 수습에 어려움을 겪다가 하루 뒤인 지난 29일 오후 5시 19분께 민간 잠수사를 투입, 한 시간여 만에 시신을 수습했다. 네티즌들은 “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확인, 정말 슬프다”, 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확인,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빕니다”, 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확인, 아픔 잊고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렴”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론] 도서정가제가 궁금하신가요/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시론] 도서정가제가 궁금하신가요/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도서정가제가 궁금하신가요? 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명색이 출판사 대표인데 왜 궁금하지 않으냐고요? 혹시 여러분께서는 매주 가는 등산의 목표 지점이 궁금하신가요? 물론 처음 가는 산의 경우는 다르겠지요. 그러나 늘 가는 곳을 궁금해하는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입니다. 제가 도서정가제를 궁금해하지 않는 까닭 또한 목표 지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가 되었건 그 어떤 문화와 출판정책이 되었건 그 목표 지점에는 돈이 있지요. 다른 말로는 탐욕이라고 하던가요. 문화와 출판 정책뿐이겠습니까? 경제야 그렇다 치고 정치, 사회, 예술, 교육, 나아가 종교까지, 돈을 추구하지 않는 분야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있나요? 그리고 거의 모든 대한민국인들은 각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죠. 돈으로 성을 쌓기 위해 말이에요. 그리고 성을 쌓는 데 필요한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서로 마주앉아 끝없이 다투는 것은 마땅한 결과겠죠. 다시 도서정가제로 돌아가 볼까요. 새로운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눈앞에 둔 지금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목표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돈이죠. 그렇기 때문에 시행령의 한 구절이 초래할지 모르는 상상하기도 힘든 결과를 고민하고 또 우려합니다. 이 제도의 시행을 눈앞에 둔 지금 잘못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오직 돈을 추구하는 이 사회에서 오랜 시간 살다 보니 누구든 상대방 또한 돈을 추구할 거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오직 돈을 추구할 것이 분명하다고 여기며 논의하는 것은 참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렇게 훈련받았지요. 돈이 안 벌리는 책을 내는 출판인은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왜 팔리지 않는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나라가 지원해야 하느냐고 되묻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에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런 훈련을 받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도서정가제가 되었건, 문화진흥이 되었건 결론은 돈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물 샐 틈 없는 방식으로 시행령을 만들고 적용시킨다 해도 결국 물은 샐 것입니다. ‘열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못 잡는다’고 했던가요. 출판이 이 나라의 문화를 창조, 기록, 보관, 전승, 확산시키는 일이라는 생각, 이 황홀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지 않는 한, 상대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추정하지 않는 한, 어떤 방식의 제도도 결국은 돈을 추구하는 자들의 농간에 넘어갈 것이고 그에 따라 모든 이들 또한 그 방식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사재기니 80% 할인이니 하는 따위의 반문화적(反文化的) 행태를 벌이는 것도 출판계요, 조선시대 사관(史官) 대신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 또한 출판계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책의 주요 독자층은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10대야 경쟁몰입교육의 희생자라 당연하다고 치부하더라도 20대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나라의 미래가 어떠할지 불을 보는 것과 같아 참담합니다. 언젠가 퇴근 무렵, 사람 많은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부동자세로 똑같이 머리를 숙이고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폰’에 몰입한 채 이웃들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승객들을 보며 등골이 오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왜 논의하는지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해답을 내는 일은 쉬울 것입니다.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한다면 도서정가제가 경제적 관심사가 아니라 문화적 관심사, 나아가 교육과 겨레의 철학적 관심사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당연한 일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도서정가제 논의 결과가 궁금하지 않고 돈 되는 책을 찾아 눈에 쌍심지를 켤 뿐입니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팝, 경제를 노래하다(임진모 지음, 아트북스 펴냄) 비치 보이스의 ‘서핀 유에스에이’,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플 월드’ 등 위대한 팝의 명곡을 통해 배우는 경제사. 대중음악평론가인 저자는 1930년대 경제공황기부터 2000년대 세계 금융위기까지 경제사를 대중음악을 통해 훑어 간다. 소개된 노래들은 경제적 현실에 따라 울고 웃었던 사람들의 심리를 말해 주는 동시에 힘겨운 삶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는 꿈들을 그리고 있다. 주디 갈랜드가 부른 경제공황기의 희망가 ‘오버 더 레인보’부터 청년 실업자들의 분노를 그린 섹스 피스톨스의 ‘영국의 무정부 상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반영된 그린데이의 ‘네 적을 알라’까지 팝송과 가요 72곡의 중요 가사 부분을 번역해 원어와 함께 수록했다. 당시의 경제적 상황과 사회상이 절절히 담긴 가사 덕분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상황을 이해하며 영미 대중음악사의 흐름도 한눈에 볼 수 있다. 각 곡마다 QR코드를 첨부해 책을 읽으며 노래를 들어볼 수 있다. 232쪽. 1만 5000원. 현대프랑스철학(프레데릭 보름스 지음, 주재형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20세기 프랑스 철학을 독일이 아닌 프랑스 철학 전통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그러면서도 개념의 철학과 생명의 철학이 대립하는 일반적인 프랑스 철학의 이중적 도식화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관계들까지 아우르는 열린 틀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 고등사범학교(ENS) 현대철학 담당교수인 저자는 단순히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시기’ 개념을 통해 자신의 철학사 방법론을 전개한다. 우리가 익히 들어 온 사르트르나 메를로퐁티 외에 앙리 베르그송과 레옹 브룅슈비크, 모리스 블롱델, 레몽 아롱, 장 카바예스 등이 중요한 철학적 흐름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현대 프랑스 철학의 풍요로움에 일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실증적인 철학사 연구를 넘어 프랑스 철학의 사건, 인물, 사실들을 실질적 연속성 차원에서 연구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사 방법론을 전개하고 있다. 정확한 문장으로 철학자들의 사유의 본질적 측면과 다면성을 포착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628쪽. 3만 5000원. 시장, 종교, 욕망-해방신학의 눈으로 본 오늘의 세계(성정모 지음, 홍인식 옮김, 서해문집 펴냄)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성정모 교수의 포르투갈어 저작을 우리말로 번역 소개했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65년 브라질로 이주한 성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브라질을 찾았을 때 강사로 초청받았을 만큼 저명한 브라질 상파울루감신대 인문법대 학장이다. 신자유주의적 추세는 변혁운동의 현실적 어려움을 야기시킴과 동시에 더욱 근본적인 변혁운동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성 교수는 해방신학의 지평을 인간 욕망의 문제로 넓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교성은 결국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다면서 경제와 신학의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 304쪽. 1만 5000원. MANAGA(마나가)(마나가 편집부 지음, 거북이북스 펴냄) 만화가들의 시간과 공간, 일상과 작품을 공유하는 취지로 창간된 만화 전문 무크지. 잡지의 제호는 만화가를 발음대로 쓴 것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지원을 받는 잡지는 국·영문 혼용으로 세계 시장에 우리 만화를 알리는 포트폴리오 역할까지 하겠다는 포부를 펼친다. 작가들의 심층 인터뷰에 이은 단편 게재의 구성으로 첫 호에는 만화가 혹은 피규어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10명을 소개한다. 주호민, 최규석, 백성민, 앙꼬, 정연균, 장태산, 박훈규, 박소희, 김정기, 배낭자 작가의 인터뷰와 작품이 담겼다. 글과 사진, 만화작품을 감각적으로 구성한 레이아웃이 돋보인다.260쪽. 1만 6000원.
  • 중국 문화대혁명이 남긴 생생한 상처

    중국 문화대혁명이 남긴 생생한 상처

    인간농장/류짜이푸 지음/송종서 옮김/글항아리/382쪽/1만 8000원 그가 기억하고 분류하는 다양한 인간의 유형이 있다. 거개가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다. 돼지 같은 인간, 돼지만도 못한 인간, 영혼 없이 육체만 있는 인간, 꼭두각시 인간, 틀에 박힌 인간, 여기저기 눈치 보는 양서 인간, 잔인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 늑대 같은 인간……. 중국 현대사가 남긴 생채기가 너무 깊은 탓이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류짜이푸(73)는 톈안먼 사건에 연루돼 1989년 중국을 떠난 뒤 20년이 넘도록 홍콩과 미국을 오가며 지내왔다. 중국 대륙에서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비판은 ‘쥐들이 비판하고 갉아먹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며 더 이상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며 일축한다. 냉소와 조롱 속에서도 직접 몸으로 겪었던 혼돈의 역사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다 못해 집요한 비판으로 남는다. 류짜이푸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긴 시간이 흘렀건만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1960년대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문화대혁명, 톈안먼 사태 등 중국이 거쳐온 일련의 현대사의 흔적은 너무도 깊고 강렬하다. 집단의 가치를 강조했던 대약진운동 시절과 공교롭게 겹쳤던 대기근 등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판치는 부조리의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불과’ 10년의 문화대혁명은 인간성이 부정되고, 인간관계가 파괴되는 경험, 상식과 합리가 아닌 집단의 광기가 사회의 지배가치가 됐던 시절이었다. 문화대혁명은 단순히 ‘그땐 그랬지’쯤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껏 여전히 개인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개인의 행위를 규정하는 무형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현대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열쇳말 중 하나다. 잡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저자 스스로 ‘서정적이지도 않고, 서사적이지도 않은, 문명 비판과 국민성 비판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그러면서도 가볍고 짓궂은 글들을 골라낸 산문집’이라고 규정지었다. 글 곳곳에 비판과 냉소, 풍자는 물론 독기 어린 직설적 표현들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지식인의 눈에 비친 중국공산당의 좌우경 편향은 그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대한 기억들이 여전히 생생한 탓이다. 그렇다고 책이 여기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등 서구 지식인들에 대한 단상도 함께 펼쳐진다. 사회와 조우하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변형되며, 궁극적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모색이기도 하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이 읽으면 약간 생뚱맞을 수도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유럽문명의 역사(프랑수아 기조 지음, 임승휘 옮김, 아카넷 펴냄)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기에 활동한 자유주의 정치가이며 역사가인 프랑수아 기조의 대표작.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유럽중심 세계관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저작이다. 기조가 1828년 강단에 복귀한 뒤 파리대학교 인문학부에서 14회에 걸쳐 진행한 근대사 강의를 묶은 강의록이다. 기조는 로마제국의 몰락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1500년에 걸친 유럽문명의 발전과정을 거대한 서사로 재구성한다. 유럽문명의 기원에 해당하는 첫 번째 시기(4~12세기), 유럽이 하나의 국민과 국가로 통합을 준비한 두 번째 시기(13~16세기), 문명의 다양한 요소들이 정부와 인민이라는 두 거대한 힘의 등장으로 통합되는 세 시기로 구분해 서술한다. 다양한 문명 요소의 공존과 경쟁, 그로 말미암은 복잡성을 유럽 문명의 특수성으로 간주하며, 이를 유럽 문명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다. 이는 개별 문명에서 통합으로의 과정이다.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피에르 브루넬로 엮음, 김효정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안톤 체호프(1860~1904)가 1890년 러시아 사할린 섬의 유형지를 조사한 뒤 쓴 현장보고서 ‘사할린 섬’과 편지, 여행일기 등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조언을 추려 발전시킨 실용적인 글쓰기 책이다. 체호프 전문가인 베네치아 카 포스카리대학의 사회학교수 피에르 브루넬로가 엮었다. 감정을 배제한 리얼리즘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 그가 사할린 섬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어떻게 썼는지 글쓰기의 기본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책 1부에서는 서른 살 즈음의 체호프가 사할린 섬으로 출발해 ‘사할린 섬’을 쓰기까지 이야기를 담았고, 2부에서는 체호프의 육성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언과 행동방식을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216쪽. 1만 4000원. 세상을 바꾼 방정식 이야기(다나 매켄지 지음, 오채환 등 옮김, 사람의 무늬 펴냄) 방정식은 언어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어떤 개념을 이해하게 해 주는 수단으로 계속 발전해 왔다. 다수의 수학 교양서들이 어려운 수식을 감추려고 하는데 반해 이 책은 본격적으로 수식을 펼쳐보이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수학과 과학에서 생명줄과 같은 방정식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연결해 주는 다리를 마련해 주고자 쓴 책이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인 저자는 경이로움, 간결함, 중요성, 보편성을 위대한 방정식 판정기준으로 고대에서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24개 수식을 추려내 이야기를 풀어간다. ‘1+1=2’라는 기초 등식에서 출발해 파생금융상품에서 옵션 가치를 산정하는 블랙-숄즈 방정식, 해밀턴의 사원수 등 신비로운 이론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방정식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224쪽. 1만 8000원. 정확한 사랑의 실험(신형철 지음, 마음산책 펴냄) 문학비평으로 드물게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스타 평론가 신형철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영화의 서사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올린 산문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냈다. 어두운 극장에서 27편의 영화를 대여섯 번씩 보며 메모를 해나갔던 그의 ‘정확한 해석자’로서의 재능이 부려진 글들이다. “나는 해석자다.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라는 그는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부정확한 사랑의 폐허로 보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22편의 글은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성장과 의미’의 주제로 묶였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관계한 ‘스토커’, ‘설국열차’를 다룬 그의 글을 읽고 “내가 비평가가 되어 그 영화들을 보고 글을 썼다면-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능력의 최대치에 도달했다면-똑 이렇게 썼겠다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이 표현해놓은 대목과 맞닥뜨릴 때면 좀 무섭기까지 했다”고 상찬했다. 240쪽. 1만 3000원.
  • 한자·영어 공세 속 우리글 5000년 생존사

    한자·영어 공세 속 우리글 5000년 생존사

    한글전쟁/김흥식 지음/서해문집/520쪽/1만 7500원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문화와 역사, 사유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이 말인 탓이다. 저자는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말글살이를 단호히 ‘전쟁’으로 규정짓는다. 한글 대 한문의 전쟁이 500년 동안 지속됐고, 그 전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의 전쟁으로 형태를 바꿔 열전과 휴전을 반복하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영어 공용어화’ 주장까지 등장해 한글과 우리말에 전쟁을 걸어오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다. 문화폭력적인 표준어의 힘 등에 의해 시대 뒤쪽으로 스러져가는 소중한 언어들, 방언들이 전쟁터의 전사자처럼 속출하고 있다. 우리의 말과 글이 거쳐온 5000년의 시간을 ‘전쟁’이라는 틀 안에 넣고 바라보는 통시적 접근법을 큰 줄기삼았다. 또한 명멸해간 다른 언어와 비교 연구하는 시각을 덧붙였다. 말과 글을 둘러싼 숱한 논쟁들의 핵심 맥락을 객관성을 놓지 않은 속에서 쉽게 풀어낸다. 숱한 역사 속 사례들은 언어와 문자의 상실이 국가와 민족의 비극으로 바로 이어짐을 증명한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중국 대륙을 300년 동안 세계 최대 국가 지배자로서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이제는 언어와 문자를 사실상 상실하고 중국의 한족이 보호해줘야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와이의 왕 카메하메하 4세는 1855년 몰려드는 무역상과 거래하기 위해, 또 외국인과 대등한 관계에 서고자 ‘영어교육의 보편화’를 강조했다. 그 결과 왕이 바라던 대로 하와이에서 영어는 보편화됐고 미국 본토로 편입까지 됐지만, 정작 대부분 하와이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될 자유만 얻었을 따름이다. 책 말미 즈음에서 저자는 “대한민국에 영어가 본격적으로 흘러들어온 시기는 1945년 이후로 잡아도 고작 70년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향후 100년 이상 영어 침략이 지속적으로 이뤄진 뒤에도 우리말이 남아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특이한 생각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묻는다. 568돌 한글날을 핑계 삼아 음미해서 읽다 뜨끔해지는 경고들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新 국토기행] 수원 하면 역시 ‘양념갈비’…무슨 소리 ‘수원 통닭’도 있다오!

    [新 국토기행] 수원 하면 역시 ‘양념갈비’…무슨 소리 ‘수원 통닭’도 있다오!

    수원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갈비’다. 매년 10월 초 열리는 수원 화성문화제 행사 중 하나인 음식문화축제에서도 수원갈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 메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1960∼1970년대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 맛을 보기 위해 수원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원조는 팔달구 영동시장에 있던 화춘옥으로 1956년부터 갈비를 천연양념으로 재워 숯불에 구워 팔면서 미식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화춘옥은 옛 궁중이나 명문대가에서 즐기던 대로 길이 7㎝ 이상의 뼈에 붙은 푸짐한 고기에 고추, 파, 마늘, 후춧가루, 배, 참기름 등 40여 가지 양념을 버무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참나무 숯불에 갈비를 구워냈다. 수원갈비는 1950년대 초 당시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사흘이 멀다 하고 시흥에서 말을 타고 달려와 포식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자유당 시절에는 신익희 선생이 자주 찾았다. 공화당 시절에는 박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다. 명성에 걸맞게 수원 시내에는 갈빗집 수십여곳이 성업 중이며 삼부자와 가보정, 본수원갈비 등이 빅 3로 꼽힌다. 이 중 삼부자갈비가 수원 양념갈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원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통닭’이다. 수원 팔달문 인근 통닭거리는 언제나 불야성을 이룬다. 통닭거리에 있는 11개 점포에서 주말이면 하루 평균 5000마리가량이 팔린다. 이 중 1971년 문을 연 매향통닭은 옛날 방식대로 통닭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튀김옷 없이 한 마리를 통째로 가마솥 기름에 튀겨 낸 전통식 통닭이다. 언제 가도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40개 테이블은 빈자리가 없다. 이어 1978년 창업한 용성통닭과 1981년 개업한 진미통닭도 이 거리의 양대 산맥이다. 영통구 망포동 늘푸른 벽산아파트 앞 사거리에 있는 비어스토리의 통닭은 전문집보다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맥줏집인데도 통닭만 사 가는 진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단골손님들은 “매향통닭과 진미통닭의 장점만을 붙여 놓은 것 같다”고 칭찬 일색이다.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김진주(31)씨는 “신선한 국산 생닭을 흑맥주에 재워 적당한 온도에서 숙성시킨 뒤 튀김옷을 최대한 얇게 입혀 고급 식용유에 튀기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우리는 진실의 눈을 떠야 한다 아이들이 눈을 감을수 있도록

    우리는 진실의 눈을 떠야 한다 아이들이 눈을 감을수 있도록

    “(세월호 참사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중략)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박민규) 박민규 작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글 쓰는 대신 아내와 함께 동네 전철역에 나가 진실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이고 이곳에 발붙인 인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가 모두 내릴 수 없는 한배를 탔기 때문에 아프다”는 그의 목소리는 죽비가 되어 우리를 내리친다. “이것이 근본적인 수리 없이 ‘땜빵’만 거듭해온 사회, 진실이 한 번도 밝혀진 적 없는 나라에 역사가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는 작가들의 당부가 산문집으로 묶였다. 소설가 김애란·김연수·박민규·황정은·배명훈, 시인 김행숙·진은영, 문학평론가 황종연·김홍중 등 12명의 문인, 학자들이 계간 ‘문학동네’ 올해 여름·가을호에 쓴 세월호 참사 관련 글을 묶은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다. 신형철 문학동네 편집주간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숙연한 열정으로 써내려간 글들이 더 많은 분에게 신속히 전달돼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으로 단행본을 엮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 임시분향소를 찾은 김애란 작가는 우리 사회의 아찔한 ‘기울기’를 어떻게 풀지 아프게 되묻는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傾斜)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진은영 시인은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괴로워하는 이유는 죽은 사람들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어가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엉망진창인 시스템을 방치한 우리 자신에 대한 수치심 때문”이라며 “세월호 이후의 문학은 온정주의의 금지선들, 시혜의 논리를 반동적으로 활용하는 감성정치들이 정당한 싸움을 마비시키지 못하도록, 고통받는 이들의 표상을 여러 방식으로 균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출판사 측은 책 판매 수익금을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여러 활동에 기부할 계획이다. 그래서 책 가격도 5500원으로 낮췄다. 3일에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문인 버스’가 팽목항을 찾는다. 김훈 작가의 주도로 김애란 소설가, 김행숙·송경동·허은실 시인 등 8명의 문인들이 버스에 올라 ‘눈먼 자들의 국가’ 300권과 ‘한줄 선언 팜플렛’을 실종자 가족,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송경동 시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반성을 통해 이후 한국 사회가 이윤보다 인간과 생명의 가치들이 우선되는 사회로 이전되기를 바라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들을 싣고 간다”고 밝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8년째 이어도연구회 이끄는 고충석 이사장

    [김문이 만난사람] 8년째 이어도연구회 이끄는 고충석 이사장

    한때는 상상의 섬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럴까. 가슴에 묻어둔 한 많은 섬이다. 눈을 뜨고 쳐다봐도 그렇고 이내 돌아서더라도 하염없이 눈물 맺히는 곳이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우리 애기 잘도 잔다/우리 서방 만선 되어 낼 모래면 돌아온다/우리 애기 잘도 잔다~.’ 이어도를 바라보며 제주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노래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와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들은 바닷가로 나가 며칠이고 통곡했다. 이어도 바다를 원망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용왕님께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아서 돌아오게 해달라고. 이어도에 대한 대중가요도 있다. 양인자씨가 작사하고 김희갑씨가 작곡했다. 노래는 김국환씨가 했다. ‘너를 불러보았다 이어도/그리워서 불렀다 이어도/한라산이 열리면서 바닷속에 숨겨놓은 여인/마라도 남남서쪽 일백사십구 킬로/4미터 물속 아래 숨바꼭질하는 그대/오늘도 안녕하신가.’ 색소폰 연주자 찰리 김도 이 노래를 자주 연주한다. 1984년 4월에도 이어도에 대한 노래가 나왔다. 부부 가수 정태춘, 박은옥씨가 불렀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정씨 부부는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평화의 땅이자 무욕의 땅인 이어도를 생각하고 노래를 지었다고 당시 말했다. 이런 노래들은 관념적으로 존재했던 이어도를 분명한 실존적 존재로 대중에게 다가가게 했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 나오는 대목을 잠시 보자.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비록 그곳에 가면 살아서는 되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시사철 먹을거리가 많은 곳으로 여겨지는 섬이다. 또한 이승의 삶에서 먹을거리가 없어 지겹도록 고달플 때면 항상 가고 싶어 하는 저편의 섬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구원의 섬이기도 했다. 요즘 영화 ‘명량’이 화제다. 중심에는 이순신이 있다. 왜 이순신일까. 한 나라가 멸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은 해상방위를 소홀히 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위대한 해양문화의 유산이 있음에도 왜구의 침략과 서쪽 세력이 밀려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모반이나 해외 탈주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뱃사람을 비하하는 의식구조로 해양정신의 몰락을 자초했으며 끝내 망국으로 치달았다. 아마 이순신은 그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결국 그런 해양정신으로 적을 막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 36년을 생각할 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최소한의 해상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조선이 망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은 모처럼 국민정신은 활발하기에 가장 좋은 원동력이 될 바다를 가졌건만 이 훌륭한 보배의 가치를 이용하지 못했다. 조선국민은 밖으로 내어뻗을 기운을 부당하게 고폐압축(錮廢壓縮)한 탓으로 그것이 국내에서 자가중독 작용으로 전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중국은 이어도를 포함시키는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후였다. 외국 군용기 800대가 진입했고 23개국 56개 항공사가 중국민항에 2만여회의 비행계획을 통보했으며 방공안보를 위해 중국 정찰기와 조기경보기, 전투기 등 51개팀이 87회나 긴급발진하는 등 각종 항공기의 활동상황을 중국군이 완벽하게 감시·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중심 하늘 아래에는 바로 우리의 이어도가 있다. 그렇다면 이어도는 어떤 곳이며, 어떻게 존재의 이유를 국내외적으로 잘 입증해야 할까. 우선 이어도는 우리 한반도에 매년 불어오는 태풍을 가장 먼저 온몸으로 막고 태풍의 진로를 상세히 알려준다. 독도가 동해를 굳건히 지키는 맏형이라면 이어도는 남해에 있는 외로운 막내쯤 되겠다. 그다음은?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 고충석 이사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본다. “이어도는 옛날부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생활의 자리이자 피안의 섬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 숨 쉬어온 역사적 영토입니다. 중국의 이어도 해역 영유권 주장과 그들의 관공선, 어선, 항공기, 군함 등에 의한 침범은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여전히 미지근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더 높아진다. 독도를 매개로 한 한·일 영유권 문제에는 국회를 비롯해 정부, 사회단체, 학계, 나아가서 국민의 관심이 대단하며 언론도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애국가에서, 날씨예보를 할 때에도 독도는 늘 화면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도는 어찌 보면 무지나 무시에 가까울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어도는 중국과 해결하지 못한 해양경계 협상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도는 수심 4m 아래에 있는 남북 1800m, 동서 1400m 크기의 수중 암초이며 10m 정도의 큰 파도가 쳐야 이어도 정상이 노출된다.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처음 수중 암초를 확인한 후 국제해도에 소코트라 록(Socotra Rock)으로 표기된 바 있다. 이후 1984년 제주대학 팀의 조사에 의해 바닷속 암초 섬의 실체가 확인됐다. 인근 수역은 조기, 민어, 갈치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황금어장이며, 중국·동남아 및 유럽으로 항해하는 주 항로가 인근을 통과하는 등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해역이다. 뿐만 아니다. 이어도 해역은 3000억 달러를 돌파한 무역대국 한국의 수출입 물량 99%가 통과하는 핵심무역 통로이다. 특히 중동의 원유를 실은 수송선들은 반드시 이 해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또한 이어도 주변해역의 원유 매장량은 줄잡아 100억~1000억 배럴로 추정되고 있다. “이어도 주변해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은 오랫동안 협상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어도 해역은 중국으로부터 200해리 이내에 위치해 한·중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수역이어서 중국이 틈만 나면 자국 영토라고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어도 종합해양기지 건설과 관련해 중국은 여러 차례의 이의제기와 건설중단을 요구했지요.” 고 이사장은 이어도의 관할권을 둘러싸고 앞으로 한·중 양국의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라고 우려한다. 지난 3월에 중국 류츠구이 국가해양국장은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이어도는 중국의 관할 해역’이라고 주장하면서 감시선과 항공기로 정기적인 순찰을 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미래 해양자원의 보고이자 한·중·일 해양관할권 논쟁이 예상되는 이어도는 이제 종합적인 학문 데이터의 축적과 함께 법, 제도, 문화, 역사 등 제반 분야에서 우리의 논리를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어도연구회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해양영토문제의 갈등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대응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2007년 설립됐습니다. 현재 이어도연구회는 이어도에 대한 학문적 자료를 구축하고 있으며 2003년 건설된 종합해양과학기지를 활용해 주변 해역 관측자료를 정기적으로 산출,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연구대상은 이어도의 해양자원 발굴 및 관리방법, 법제 연구와 해양수산 정책, 이어도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영토관리 및 국내외 홍보 등으로 정리된다. 2010년부터 연구성과를 책으로 묶어 ‘이어도연구 저널’을 펴내는 한편 이어도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문학집, 그리고 세계인들을 위한 영문집도 발간하고 있다. 이어도 관련 국내외 정세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어도연구회는 2011년부터 해마다 세계 석학들을 초빙해 해양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지성의 힘을 모아왔다”면서 “이러한 노력이 크게는 동아시아 해역의 평화정착에 기여하고 지역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탐라인들은 이어도를 항상 섬이라고 불렀으며 이와 관련된 수많은 신화와 전설, 설화가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중국에 비해 138㎞나 한국에 가까이 있는 것은 물론 고대 이래 문화적으로도 한국의 영역 내에 있음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엄연한 우리의 영토입니다.” 지구 면적의 71%를 차지하는 해양을 활용하는 것은 국가발전의 필수요소라고 말하는 그는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이어도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이를 발판으로 우리의 해양활동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은의 시 ‘이어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어도로 가리 땅이 스스로 넓어진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고충석 이사장은 1950년 제주 우도에서 출생했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행정학과에서 행정이론과 조직론을 전공해 행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11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 5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제주대 총장을 역임했다. 1992년 3월부터 2001년 9월까지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 공동대표로 비정부기구(NGO)활동을 했고, 2001년 9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제주발전연구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 이사장과 제주국제대 총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유고슬라비아 노동자 자치 관리제도와 조직권력’ ‘제주,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이어도 해양분쟁과 중국 민족주의’(공저) ‘대한민국 최남단 이어도’(공저) 등이 있다.
  • [씨줄날줄] 지석(誌石)/서동철 논설위원

    조선시대 장례의식의 마지막 절차는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지석을 묻는 것이었다. 묘표(墓標)나 묘갈(墓碣), 신도비(神道碑)라고 하는 묘비에는 죽은 이에 관한 정보가 담기게 마련이다. 신도비는 일반적으로 묘표나 묘갈보다 죽은 이의 행적을 더욱 자세히 새겨 놓은 것을 일컫는다. 신도비는 ‘귀신이 오가는 길에 세워진 묘비’라는 뜻이다. 죽은 이의 혼령이 비석이 세워지는 무덤 동남쪽으로 오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석(誌石)은 별도로 만들어 봉분 앞에 묻는다. 죽은 이의 행적을 담는 것은 묘비와 다르지 않지만 무덤의 위치와 방향이 내용에 덧붙여진다. 조선시대 문집을 엮은 ‘대동야승’(大東野乘)은 ‘묘갈은 묘밖에 세우고, 지석은 묘 앞에 묻는 것인데, 이는 만일 세월이 오래되어 비갈이 없어지면 지석을 상고하여 누구의 묘인가를 알고자 하는 데 있다’고 적었다. 죽은 이의 덕과 공을 후세에 전하고자 묘비나 지석에 적는 글이 묘지명(墓誌銘)이다. 죽은 이의 성씨와 벼슬·고향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지(誌)라 하고, 죽은 이를 칭송하는 문학적인 글을 명(銘)이라고 구분했다지만 실제로는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대개 글을 지은 이, 글을 쓴 이, 글을 새긴 이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유명인이라면 적어넣는 게 집안의 명예를 높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지석의 가장 이른 사례는 4세기 중엽 고구려의 안악3호분에서 보인다. 백제 무령왕릉의 주인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지석 때문이었다. 1971년 충남 공주 송산리 발굴 당시 널길 입구에서 2개의 장방형 판석을 발견했는데, 무령왕(462~523)과 왕비의 지석이었다. 특히 왕비의 지석 뒷면에는 왕의 매지권이 새겨져 있었다. 매지권(買地券)이란 죽은 사람이 지신(地神)으로부터 묻힐 땅을 사들인 증서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불교의 화장 풍습으로 지석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같은 불교국가라도 고려시대로 접어들면 화장 이후 매장하는 풍습이 번져간다. 검은 석판에 글을 새겨넣는 지석이 대세였다. 조선시대가 되면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라 매장이 일반화됐고, 도자기 산업의 발전으로 도자 지석도 크게 유행한다. 한 사립 박물관장이 무려 558점의 지석을 숨기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조선시대 전체를 망라하는 다양한 형태의 지석이어서 놀라움을 준다. 기존에 알려진 지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경찰은 도굴품이 분명한 만큼 지석을 후손들에게 돌려줄 방침이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먼저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관련기관이 나서 철저하게 유물 조사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논문도 많지 않은 학계의 지석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퇴계 이황의 ‘두 번째 직업’은 시골 의사였다

    퇴계 이황의 ‘두 번째 직업’은 시골 의사였다

    조선의약생활사/신동원 지음/들녘/951쪽/3만 9000원 ‘부모가 역병으로 사망했다면 묘소를 지켜야 하나, 피해야 하나?’ ‘노비가 아프면 약을 써야 하나?’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이 쓴 ‘성호사설’에 담겨 있다. 제13권 ‘피려’는 역병의 유행과 예절의 충돌을 심각하게 다루면서 성리학적 질서를 놓고 갈등하는 당시 지식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역병이 돌 때 친한 친구나 부모, 형제 사이에 피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 아니냐는 게 논쟁의 핵심이다. 이익의 입장은 단호했다.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살아남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봤다. 이익은 조선 최고 유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말을 인용한다. “생명을 살리는 것 우선, 산 자 우선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1599년 간행된 문집 ‘퇴계집’이 널리 읽히면서 퇴계의 언행은 후대 조선 사대부의 귀감이 됐다. 공교롭게도 퇴계집에는 병과 의학에 관한 방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향약구급방’ ‘구급방’ ‘화제’ ‘의방’ 등 유명 의약서들이 종종 인용되고, 이황이 처방을 내릴 때 어떻게 약을 썼는지 알려주는 글귀들도 상당하다. “‘도적산’으로 열을 다스려 열이 낮아진즉 ‘분청음’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식이다. ‘퇴계전서’에는 직접 처방을 내린 20여건의 약제 목록이 등장한다. 아들 준의 감기에는 순기산과 정기산을 처방했고, 조카 혜의 번열에는 반총산을 지어 먹도록 했다. 노비인 아노의 눈병에는 도체탕과 활혈탕을 달여 먹게 했다. 이쯤에서 두 번째 답도 나온다. 조선시대 대다수 사대부는 자신의 의학 지식과 약물을 노비에게 베풀었다. 노비는 집의 가장 큰 재산이며, 병 치료는 자발적 복종을 끌어내기 위한 좋은 계기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한국과학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퇴계의 의술 정도라면 할 이야가 어느 정도 있다”고 말한다. 이황은 명나라 주권이 쓴 의서인 ‘활인심방’의 상권을 직접 필사해 활용할 만큼 의학 지식이 풍부했다. 저자는 “이황이 언제부터 의학을 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의원이 없는 시골에서 의료 행위를 펴던 유의(儒醫)와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유성룡, 정약용 등 다른 저명한 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퇴계집에는 16세기 중후반 조선의 의료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지방의 난치병 환자들이 장안 최고 의원이라는 안판서, 손사균, 조성, 유지번 등을 찾아가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들이다. 한양 출신 의원이 이황의 며느리를 침술로 고친다는 구절에선 당시 한성과 시골 간 의료 격차를 가늠할 수 있다. 저자가 꼽은 또 다른 대표적 유의는 조선 인종 때 문신인 이문건(1495~1567)이다. 승정원 부승지를 지낸 그는 손자 숙길의 성장기를 담은 ‘양아록’과 41~73세까지 쓴 ‘묵재일기’로 유명하다. 11년 11개월 분량의 10책이 현존하는 묵재일기는 3분의1가량이 질병과 의료 기록으로 채워졌다. 조선 최고의 의약생활사로 꼽히는 이유다. 거기에는 환자로서 이문건 자신을 비롯해 가족, 노비, 이웃의 발병과 대응이 날마다 적혀 있다. 그 가운데는 사또나 관찰사도 포함되며 심지어 말, 소, 돼지의 병력까지 엿보인다. 16세기 조선 사람들이 어떤 병을 많이 앓았고 치료했는지 알려 준다. 저자는 또 1786년 4~6월 유행했던 정조 때의 홍역을 다루며 혁신군주라던 정조의 질병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당시 홍역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지만 이는 정조의 대책이 효과적이었다기보다 1775년 이후 병균의 독력이 약해진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정조는 당시 홍역이 하늘의 기운에 따라 발병하며, 원혼을 달래 병을 낫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아울러 1700~1791년 조선에서는 서양의학이 ‘참으로 괜찮은 것’이란 담론이 형성됐으나 이후 천주교가 사악한 종교로 규정되면서 의학마저 부정되는 양상을 띠었다고 증언한다. 또 조선총독부 기록을 인용, 1914년 조선의 인구 1만명당 의원의 분포는 1.55명(황해)부터 15.92명(경성)이었다고 전한다. 책은 조상들이 많이 앓던 병과 병의 원인, 치료방법, 의료지식 등을 추적한다. 실제로 병을 앓은 사람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미시사의 관점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손녀 바보’ ‘눈물 자국’… 최인호의 민낯 엿보기

    ‘손녀 바보’ ‘눈물 자국’… 최인호의 민낯 엿보기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 지난해 9월 25일 침샘암으로 세상을 떠난 최인호 작가의 서재를 고스란히 옮겨온 책상 위에 흰 조약돌 두 개가 ‘반짝’ 웃고 있었다. 작가의 외손녀 정원과 친손녀 윤정이 삐뚤빼뚤 눈, 코, 입을 그려넣은 조약돌 곁에 정원이 솜과 헌 단추로 만든 눈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아버지 최인호’가 늘 책상 앞에 두고 보던 손녀들의 선물이다. 작가의 지극한 손녀 사랑은 최근 출간된 에세이집 ‘나의 딸의 딸’(여백)에도 응축돼 있다. 월간 샘터에 1975~2010년 연재한 ‘가족’ 가운데 딸 다혜와 딸의 딸인 외손녀 정원에 대한 글만 추린 것으로, 작가가 작고하기 4년 전에 이미 제목을 정해두고 출간을 고대하던 책이다. 책에는 화가로 활동하는 딸 다혜가 아버지의 책 표지, 내지를 배경으로 활용한 그림들도 함께 실어 고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전한다. 책에는 외손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사탕이나 초콜릿을 미끼로 몰래 주다가, 유아원에 가기 싫다는 외손녀의 말에 함께 백화점에 가서 땡땡이를 치다가 딸에게 된통 혼이 나는 할아버지 최인호의 민낯이 담겼다. 그런 손녀를 작가는 인생 최고의 보물찾기 쪽지라 일컬으며 주체할 수 없는 사랑과 감동을 고백한다. ‘이제 열흘 뒤면 정원이가 온다. 정원이가 오면 나는 손가락도 베어먹고, 발가락도 잘라먹고, 깨소금 나도록 뽀뽀도 하고, 번쩍 안아서 함께 검둥개 앞세우고 달마중갈 것이다. (중략) 정원이는 지금까지 인생의 풀밭에서 내가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하였던 하느님이 주신 보물쪽지 중에 그 으뜸이다.’(282쪽) 이처럼 오는 25일 최인호 작가의 1주기를 맞아 문단에서는 추모전, 산문집 출간 등으로 ‘영원한 문청’의 자취를 되짚어보고 있다. 고 김상옥·박완서 작가에 이어 12세 연하, 띠동갑인 최인호의 1주기전을 마련한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작가들의 1주기전을 열 때마다 한 인간, 한 예술가의 사라짐이 한 왕국, 한 성채가 사라짐과 같다는 아픔을 느낀다”며 “‘소설가는 남의 얘기를 주워 쓰는 사람이니 거지’라며 늘 소년의 눈, 개척자의 눈으로 새것 찾기에 골몰했던 최인호의 문학적 향취를 전시에서 느껴가시길 바란다”고 했다. ‘최인호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내건 1주기전에는 투병 중이던 작가가 마지막 작품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쓰다가 촉이 비뚤어져버린 만년필, 항암 치료로 손톱이 빠져 손에 끼우고 글을 써나가던 고무 골무, 고통과 절망으로 쏟아낸 눈물 자국이 포도송이처럼 남은 서재의 책상 등 글에 매달린 작가의 사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품들이 전시돼 있다. 고인이 아내, 딸, 손녀 등 가족, 동료 문인 등과 나눈 편지, 데뷔작인 ‘견습환자’부터 ‘개미의 탑’, ‘별들의 고향’, ‘지구인’ 등의 육필 원고도 눈길을 끈다. 전시는 오는 11월 8일까지 계속된다. (02)279-3182. 월요일 휴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詩’ 그것은 실패의 연속 불가능의 표현… 벙어리 입모양 같은 것

    ‘詩’ 그것은 실패의 연속 불가능의 표현… 벙어리 입모양 같은 것

    “선불교에 ‘혀 없는 놈이 말 뱉듯하고 주먹 없는 놈이 주먹 쥐듯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렇게 절름거리고 말이 나오지 않는 벙어리 입모양 같은 게 시예요. 이 때문에 시는 언제든지 웅변이 아니고 눌변이죠. 이렇게 표현을 하려고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게 예술입니다. 그러니 시 쓰기란 늘 실패하는 것이고 인생의 본질, 즉 불가능의 자리를 보여 주는 것이죠.” 1980년대 ‘시의 시대’를 이끌었던 이성복(62) 시인. 40여년간 시의 외길을 걸어온 끝에 그는 결국 시 쓰기란 ‘실패하는 것’이자 ‘불가능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시에 시를 발전시키려고 발버둥 친 노력들이 시를 망친 짓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 “시란 공부해서 원숙한 지점에 오르는 게 아니라 매 순간 벼랑에 서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실성한 상태에서 중얼거렸던 내 20대 때가 시에 가장 가까웠던 때”라고 회고한다. 그가 시에 가장 가까웠던 시절을 다시 불러냈다. 1976~1985년에 쓴 미간행 시 150편을 묶은 시집 ‘어둠 속의 시’(열화당)를 통해서다. 치기 어린 성적 연애, 사랑 이야기를 담거나 검열로 잘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와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1986)에 싣지 못한 시들을 한데 모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첫 시집의 지하실’에서 길어 올린 작품들이자 이성복의 ‘아픔의 시편’들이 태어난 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그의 시력(詩歷) 40년을 굽어볼 수 있는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과 대담집 ‘끝나지 않는 대화’도 함께 출간됐다. 산문집에는 1976년~2014년에 쓴 산문 21편이 실렸다. 삶과 죽음, 세상, 예술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해 온 시인의 자취가 만져질 듯 생생하다. 맨 앞에 자리한 ‘천씨행장’(千氏行狀)은 일기와 시, 희곡, 편지 등이 어우러진 단편소설이다. 1983년~2014년 사이에 진행된 대담 16편을 묶은 대담집에서 이문재·김행숙·김민정 시인, 신형철 문학평론가 등 16명의 대담자들은 시와 불가능한 사랑을 지속해 온 시인의 민낯을 ‘갉아먹듯’ 드러낸다. 시인은 지난 16일 생애 첫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소회를 소상하게 밝히라고 하면 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인은 “원래 농담으로 얘기한 건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고”하면서 겸연쩍어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시의 자리에서 살아온 40년, 내 모든 인생을 모은 자리였거든. 문득 장례미사 때 부르는 가톨릭 성가가 생각나더라고요. ‘오늘 이 세상 뜨는 이 사람 보소서. 주님을 믿고 살아온 이 사람 보소서.’ 딱 내가 죽어서 관에 누워 있고 사람들이 나를 조문하는 느낌이 들었어. 안 울 수가 없지. 나에겐 주님이 문학이었으니까.”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진 임재천 제공
  • 한국 성문화, 음지에서 더 사악해지다

    한국 성문화, 음지에서 더 사악해지다

    섹슈얼리티는 정치학이다/이성은 지음/서해문집/240쪽/1만 5000원 여권의 옹호/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손영미 옮김/연암서가/656쪽/3만원 “회식에 가면 남자 상사랑 뒤엉켜 춤을 춰야 해요. 정말 싫은데 그들이 요구하면 뭐라 대응할지 생각이 안 나요.”(유현재·가명) “종종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서 이사님이 나한테 춤추자고 그러고 몸을 만져요.”(최정희·가명) “블루스 타임이 있잖아요. 그럼 남자 직원들과 부장님이 억지로 플로어로 끌고 가요.”(손지혜·가명) 이들 모두 20대 젊은 여성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감정평가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원치 않는 춤을 남자 상사와 함께 춘 경험들이 있다. 회식에선 술 시중을 도맡고, 나이 많은 남자와 얼싸안고 춤추는 괴로움을 떠안고 산다. 1차 고깃집, 2차 노래방, 3차 룸살롱으로 이어지는 거나한 회식문화 속에서 “이거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야. 귀 막고 듣지 마”라며 음담패설이 이어지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민감하게 반응하면 남자 동료들과 같이 일하지 못한다”는 여직원들의 푸념만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이들은 국내 3대 대기업을 놓고도 제각기 평가를 내린다. A기업은 차별 없는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존재하며 B기업은 부드럽고 자유로운 이미지와 달리 매우 보수적이라고 꼬집는다. C기업은 거친 마초문화 속에서 여성이 아예 ‘명예 남성’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영국 요크셔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책 ‘섹슈얼리티는 정치학이다’를 통해 한국사회의 ‘슈퍼 갑’인 남성들의 행태에 대해 따지고 든다. 저자는 2013년 5월,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에 수행했던 청와대 대변인이 주미 대사관의 인턴 여직원을 성희롱한 사건은 20년 전(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과 처음과 끝이 완전히 닮았다고 주장한다. 몇몇 관련자들의 책임만 묻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히 덮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은 20년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한국의 가정, 직장,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성(性)에 얽힌 권력관계를 생생한 인터뷰와 관찰로 추적해 나간다. 이른바 ‘대한민국 섹슈얼리티 보고서’다. 책은 주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평범한 이웃들의 은밀한 속내를 전한다. 예컨대 권력관계로서의 성은 조직뿐 아니라 가부장적 결혼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서적 친밀감은 아내가 아닌 말이 통하는 여자 친구와 음주로 풀고 성욕은 성매매로 푼다”는 38세의 별정직 남성 공무원은 아내와 살짝 손목이 닿는 것도 싫다고 고백한다. 중매로 결혼한 40대 부부는 19년간 혼인관계를 이어왔음에도 성관계를 ‘그게’라고 낮춰 부를 뿐이다. 은행원 출신의 49세 전업주부는 부부관계를 졸업한 지 오래이며, 대신 남편의 경제적 기반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저자는 그럼에도 ‘섹스리스’ 부부들이 혼외 성관계에 대단히 배타적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예외 없이 ‘외도=이혼’의 등식을 품는데, 결혼제란 강력한 규범이 오히려 결혼제 밖의 위험한 성을 선택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고 추정한다. 저자가 새삼 화두를 던진 배경은 단순하다.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아, 피해자와 지난한 인터뷰를 벌인 뒤 한국 사회의 이성애 중심 문화가 생성해 온 위험한 권력관계를 파헤쳐 왔다. 책은 그간 연구 결과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의 섹슈얼리티 문화는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더 사악하게 변하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반면 여권 운동의 어머니라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대표작 ‘여권의 옹호’는 가슴에 엉킨 한국 여성들의 멍울을 달래준다. “남녀 모두 같은 지식을 익히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습속을 고치기 어렵다”는, 프랑스 혁명 직후 남성 편향 교육에 반발했던 저자의 글들이 오늘날 여전히 의미를 갖는 것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은 양성 불평등 탓이다. 저자는 여권의 옹호를 통해 여성의 역할을 사회적 경제 활동과 정치 참여로 확대하고 남녀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잠재된 예속과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 질서의 재편을 촉구했다. 덕분에 책이 출간된 1792년은 여권 운동의 기념비적 해로 꼽히며 저자는 ‘근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추앙받는다. 2008년에 이어 국내에 재출간된 책으로, 다른 작가들의 비평이 묶여 나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사대부, 산수유람을 떠나다(정치영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펴냄)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여행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산수(山水) 유람을 중요한 공부로 생각했다. 사대부들은 다양한 이유로 여행길에 올랐고 유산기(遊山記)를 비롯한 각종 기행문학을 남겼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유산기를 비롯한 과거에 남긴 여행 기록을 통해 조선 사대부들이 유람하면서 견문한 과정과 당시 여행지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600여편의 작품 중 북한산, 금강산, 속리산, 청량산, 가야산, 지리산, 백두산 등 7개의 산을 대상으로 개개인이 남긴 기행문 형식의 일기를 통해 여행자들의 특성과 그에 따른 여행 목적, 준비 과정, 여행 중 숙식장소, 교통수단, 여정과 방문지, 여행 중의 활동까지 다룬다. 376쪽. 2만 5000원. 인생의 맛(앙투안 콩파뇽 지음, 장소미 옮김, 책세상 펴냄) 몽테뉴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맞춤한 책이다. 프랑스 라디오에서 몽테뉴의 사상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출발한 책으로 저자는 프랑스의 저명 문학평론가. 몽테뉴 ‘수상록’의 특정 부분을 발췌해 해설을 붙이는 방식으로 지적 욕구와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목받았다. ‘수상록’에 나오는 명구절들을 소개한 뒤 거기에 투영된 몽테뉴의 사상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몽테뉴라는 인물과 그의 철학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나는 춤출 때 춤추고, 잠잘 때 잠잔다.” “세상의 가장 높은 왕좌에서도 우리 자신의 엉덩이로 앉기는 매한가지다. 최고로 아름다운 인생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삶의 순간순간에 충실하자는 몽테뉴의 메시지는 5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다. 192쪽. 1만 3000원. 논쟁으로 본 조선(이한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조선시대를 다섯 가지 논쟁을 뼈대로 재구성해서 바라보게 하는 역사해설서다. 조선 600년을 돌아보는 키워드로 지은이가 꼽은 중대사안들은 태조와 태종 연간에 한성 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토지제도 개혁을 위해 17년간 이어진 세종시대 공법 실시 논쟁, 현종 시대에 왕의 정통성을 둘러싼 두 차례의 예송 논쟁, 서학과 소품체의 유행을 막기 위한 정조의 문체반정 논쟁 등을 꼽았다. 저자는 당대의 격렬한 토론을 실록과 문집에 의거해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지식과 읽는 재미를 균형미 있게 엮었다. 왕과 신하들이 벌인 논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정책들은 다양한 함의를 지녔던 것으로 파악한다. 역사적 사건의 진행 이면에 엄청난 진통과 기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토론을 통한 정책합의 능력이 바닥인 오늘날 정치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2008년 출간된 ‘조선 아고라’ 개정판. 440쪽. 1만 8000원. 이것이 깨달음이다(백창우 지음, 김영사 펴냄) 불교 수행의 가장 큰 목적인 깨달음을 쉽게 풀어쓴 수행지침서. 기존 수행법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바르고 건강한 깨달음을 위한 쉽고 빠른 공부법을 소개한다. 영원한 자유를 찾기 위한 수행의 시작부터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방편, 공부의 점검, 깨달음 이후의 세계까지 다룬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지름길은 있는지, 깨달으면 어떻게 되는지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십대 중반이 넘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직업 군인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생겨나는 의문들을 해소하고 수행 중 옆길로 샐 가르침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둔 만큼 갓 입문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굳이 힘들게 다리를 꼬고 용쓰지 않아도 되고, 생각만 할 줄 알면 얼마든지 가능한 수행”이라고 강조한다. 800쪽. 2만 8000원.
  • [지구촌 책세상] 음모의 열쇠 찾으러 신비의 섬으로

    [지구촌 책세상] 음모의 열쇠 찾으러 신비의 섬으로

    포인트네모 섬/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 지음/쥘마/464쪽 신학기가 시작되는 매년 9월은 프랑스인들의 문화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10월과 11월에 열리는 각종 문학상의 수상자 명단이 윤곽을 드러내는 때이기 때문이다. 2014년 시즌의 소설 607편 가운데 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의 작품이 분명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될 듯하다. 막대한 재산가이자 멋쟁이 신사에 아편중독자인 마르시알 캉테렐은 비아리츠의 거처에 은거하며 다리우스 보병대와 이에 맞선 알렉산더 대왕 군단의 저 유명한 가우가멜라 전투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은 오랜 친구인 존 실록 홈즈와 그의 집사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에 의해 중단된다. 의례적인 방문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두 명의 ‘신사’는 이상한 사건의 이야기를 방금 들은 참이다. 맥레이 부인과 그녀의 딸 베리티의 저택이 있는 스코틀랜드의 해안에서 ‘아낭케’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은 오른발이 하나 발견됐는데 얼마 후 두 개가 발견되고, 또다시 세 개의 오른발이 발견된 것이다. 맥레이 부인은 캉테렐의 옛 애인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놀랍게도 ‘아낭케’는 얼마 전 어느 부유한 상속녀가 도난당한 전설적인 다이아몬드에 붙여진 이름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가로지르는 끝없는 지평선, 태평양의 신비한 안개, 스코틀랜드의 황야에서부터 이 모든 음모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열쇠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유토피아 ‘포인트네모’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모험의 여정은 너무나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기상천외한 이야기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와 문학상을 받은 산문집이 출간된 지 6년 만에 나온 소설은 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의 재기 넘치고 현란한 솜씨가 변함없음을 보여 준다.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들의 이름을 붙이는 데 귀재이며, 시인 생존 페르스 풍의 다의적 표현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영국식의 능청스러운 유머 구사력까지 갖춘 문체의 풍부함은 그 끝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상관없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주변 인물들의 삶들까지도 환상적으로 엮어간다. 그들의 삶은 씁쓸하게도 너무나 현실적이며 참담한(특히 성적인 면에서) 우리 현대사회의 반영이다. 이러한 구성과 그 극단성을 통해 소설은 미디어의 엄청난 물량 공세로 우리의 창의성을 구속하고 꿈꾸는 방식조차 강요하는 현대의 엔터테인먼트를 힘주어 비판한다. 래티시아 파브로 주한프랑스문화원 출판진흥담당관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워터게이트-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밥 우드워드·칼 번스타인 지음, 양상모 옮김, 오래된생각 펴냄) 탐사보도의 고전이 된 책.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17일 백악관과 대통령재선위원회 주요 당직자들이 모의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입주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불법 침입, 도청 장치를 설치하다가 발각된 사건이 발단이 됐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2년 11월 재선에 성공한 데 이어 측근들과 함께 적극적인 은폐 공작에 나서지만, 2년간의 끈질긴 추적 취재에 의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국 상원의 탄핵 결의가 나오기 전인 1974년 8월 사임한다. 특종을 건진 두 기자가 그해 2월 펴낸 책은 2년간에 걸친 힘겨운 권력과의 싸움과 기사 이면의 취재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1977년 영화평론가 정영일씨의 번역본 ‘대통령의 사람들’(학일출판사)이 절판된 이후 새로운 번역으로 37년 만에 재출간됐다. 496쪽. 1만 7500원. 책중일록(이민환 지음, 중세사료강독회 옮김, 서해문집 펴냄) ‘오래된 책방’ 시리즈의 16번째 책. 1619년(광해군 11년) 2월 명나라의 지원 요청으로 조선의 도원수 강홍립, 부원수 김경서 등이 1만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평안도 창성에서 압록강을 건너 여진족이 세운 후금을 치기 위해 진군한다. 역사에서 보기 드문 해외 파병이었던 심하(深河) 전투는 훗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도화선이 된다. 그해 3월 4일 심하의 들판에서 진격하던 조선군은 후금 기병의 습격을 받고 무참히 패배했다. 두 원수와 장수 여덟 명, 그들의 하인들은 포로로 잡혀 허투알라성 안에 마련된 수용소에서 거처하게 된다. 처참한 수용소 생활은 1620년 7월 송환될 때까지 1년 반 동안 계속됐다. 책은 이민환이 강홍립의 종사관으로 종군하면서 겪은 행군 경로, 전투, 포로수용소 생활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목책 안에 갇혀 지낸 데서 일기의 제목을 책중일록이라 했다. 208쪽. 1만 1900원.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만권당 펴냄) 저자는 방대한 문헌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 변형시킨 한국사의 원형을 되살리는 노력을 경주해 온 역사학자다.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주류 역사학계의 관점을 ‘식민사관’이라며 비판해 온 그는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앞장서 꾸며낸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무한 증식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는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이 그간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서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전파한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인 사건들을 제시하면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한다. 식민사관의 문제를 제기하는 ‘재야’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배척해 왔는지 적나라한 증언으로 책은 마무리한다. 408쪽. 1만 8000원. 라캉미술관의 유령들(백상현 지음, 책세상 펴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윤리라고 말했다. “끝까지 욕망하고, 끝까지 저항하라”고 했던 라캉의 윤리적 명제를 ‘유령 이미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작품 속에서 풀어냈다. 저자는 파리 8대학에서 라캉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령 이미지란 우리가 안주하려는 세계의 허상을 폭로하는 ‘비(非)존재’로 저자가 라캉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부랑아들을 성화 속 인물들의 모델로 삼았던 바로크 회화의 거장 카라바조, 오랫동안 성서나 신화에 갇혀 있던 기독교적 이미지를 해방시킨 고야 등 당대의 질서와 지식체계, 권력 등에 반항하는 이미지들을 통해 하나의 예술작품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윤리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320쪽. 1만 6000원.
  • 위헌 결정난 ‘차벽’ 남발… 인권 무시하는 경찰

    위헌 결정난 ‘차벽’ 남발… 인권 무시하는 경찰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 현장과 유가족 농성장을 경찰이 ‘차벽’(버스로 특정 장소나 시위대 봉쇄)으로 차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1년 ‘차벽 설치’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난 3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와 국민대책위원회가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날 경찰은 4000여명(경찰 추산 2000여명)이 모인 광화문광장을 차벽으로 봉쇄했다. 그리고 30개 중대 24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해 집회를 감시했다. 또 미신고 집회라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책위는 “서울시로부터 광화문광장 정식 사용 허가 공문을 받았다”며 집회를 강행했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한 서울대·경희대 학생 500여명 중 일부가 청와대 쪽으로 향하자 100여대의 경찰버스를 동원해 가로막기도 했다.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을 시작한 지난 22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을 경찰버스 10여대로 포위했다. 가족들은 “범죄자 취급하느냐”며 반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항의가 잇따르자 지난 26일부터 차벽 일부가 사라졌다. 현재 낮에는 경찰버스 한 대만 주민센터에서 대기하고 밤에는 다시 차벽이 설치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6월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과 관련해 헌재는 “극단적인 조치로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다. 불법 집회 가능성이 있다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지만, 경찰은 이후에도 시국집회 및 시위에 종종 차벽을 세웠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세월호 특위 위원장은 “차벽 설치는 위헌인 것은 물론 형법상 직권남용과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민변 차원에서 대응팀을 꾸려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오면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교통 대란이 일어난다”며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엑소더스-전지구적 상생을 위한 이주 경제학(폴 콜리어 지음, 김선영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10억명의 국제 이주민이 엄존하는 현실에 대한 고찰이다. 이주노동자 유입국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대신 문화 충돌을 겪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인력 유출국은 외화를 벌어오는 대신 교육된 인재를 잃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저자는 두 가지 이득이 최고점에 이르는 적정 수준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84쪽, 2만 3000원. 중국과 미국의 해양경쟁(이재형 지음, 황금알 펴냄) 현재 중국의 국경 분쟁은 절대적으로 바다에서 이뤄진다. 타이완,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과 다투고 있지만 실제로는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과 맞서는 상황이다. 에너지 자원 및 대외무역 문제도 함께 걸려 있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도입하는 등 해군력 증강에 힘을 쏟는 이유다. 304쪽, 2만원. 장서의 괴로움(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정은문고 펴냄) 장서가. 꽤 고상해 보이는 명명이다. 하나 실상은 탐욕의 다른 이름이고 책에 치여 허덕이는 고단한 현실이다. 책에 대한 상념을 풀어내며 ‘책 다이어트 방법’, 장서의 기술 등을 소개한다. 3만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저자는 가장 적정한 장서의 양을 500권이라고 제안한다. 진짜?248쪽, 1만 3000원.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임건순 지음, 서해문집 펴냄) 고리타분한 공자, 맹자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나라와 사회가 더 발전하고 백성들이 살기 좋아질까’ 하는 사상의 핵을 틀어쥐고서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유하고 실천해 온 정치사상가 13명의 이야기다. 2000여년 전 이들을 호출해 2014년 한국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창으로 삼고 해법을 모색한다. 496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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